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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충사석탐 보수중 불상 등 유물 발견

    문화체육부는 2일 경남 밀양군 단양면 표충사 경내의 보물 4백67호 표충사 3층석탑 보수를 위해 해체 공사중 1층 탑신석에서 사리장엄구로 보이는 백자완 1개,청동파편 3개,청색 유리구슬 4개,백색 유리구슬 1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문체부는 또 길이 1m,너비 50㎝,두께 10㎝의 적심석안에 음각된 명문이 발견되고 기단 적심안에는 17㎝,4.9㎝,12㎝,8㎝의 청동불상 4구가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 고대학회,「한·중 원시농경문화」 학술발표회

    ◎“동북아 쌀농사 중국 장강서 시작”/중하류지역 신석기유적서 벼껍질 출토/화북지방선 조·기장 재배… 화북설 부인 동북아시아의 벼농사 기원과 전파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일고있다.최근 학술적 성과를 거둔 중국 절강성 하모도 유적 발굴이 그 계기를 이루었다.「한·중 원시농경문화의 여러 문제」를 주제로 한국고대학회가 주최한 학술발표회(26일·서울대박물관)도 그같은 움직임의 하나.이번 발표회에는 한·중·일 학자 11명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여했다. 중국에서는 하모도유적 발굴책임자인 절강성박물관 모소석 관장이 나왔다.그는 벼농사가 중국 화북지방에서 한반도 남부를 거쳐 일본 구주로 들어갔다는 화북설을 부정하는 입장을 보였다.또 산동반도에서 해로를 통해 건너갔다는 학설도 부정했는데,그 이유로 화북의 농사는 조와 기장이고 산동인들은 지금도 쌀밥을 싫어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의 주장은 농사에서 황하유역과 대조를 이루는 장강 중하류의 벼농사가 동북아시아 쌀농사문화의 원류라는 것이다.중국 신석기유적에서 벼껍질이발견되는 지역은 이 장강유역에 1백10곳이나 집중돼 있다고 밝힌 그는 절강성 여요시 하모도유적에 주목했다.지금으로부터 7000년전 전후로 추정되는 이 유적 문화층에는 벼와 벼껍질,볏집이 40∼50㎝ 두께로 깔려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것이다. 이 유적에서 나온 벼품종은 지금까지 여러나라의 농업연구기관에서 과학적 분석을 거친 결과,일본에 까지 건너간 품종으로 밝혀냈다고 보고했다.그는 이어 장강이 흘러들어온 항주만에 가까운 주산군도 신석기유적에서 출토된 5000년전 숯쌀(탄화미)에도 관심을 보였다.이 숯쌀이 하모도에서 주산군도를 거쳐 해류를 따라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파된 벼농사의 흔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민속학적으로 벼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새 그림 무늬의 유물과 농기구가 하모도유적에서 대량으로 출토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한국쪽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온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 안승모실장은 한국원시농경 연구성과를 다시 들추어냈다.전남 나주군 가흥리 영산강유역 습지대의 벼꽃가루 분석과 경기도 강화 은도 조개더미 볍씨자국 토기 등에 대한 연구성과를 회고하면서 최근 한강유역에서 발굴된 원시 벼농사유적에 초점을 맞추었다.그는 특히 한강하류 하구유역인 경기도 김포와 일산지역 진흙숯바닥에서 나온 볍씨를 비중있게 소개했다. 그는 특히 일산 가와지유적 진흙숯바닥(이탄층)의 연대가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지금으로부터 4330년 전후라는 점에서 이 유적에서 나온 볍씨를 연구과제로 떠올렸다.이는 한국의 벼농사가 민무늬토기문화(청동기문화)와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종래의 학설을 부정할 자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 캐나다의 컴퓨터 개표시스템/투표종료 1시간이면 결과 나온다

    ◎특수 펜으로 기표한뒤 자동계산기에 투입/잘못된 용지가려 재투표 유도… 무효표 예방/기계 1대 2백60만원… 엄청난 인력·시간 절감 4대지방선거를 한달남짓 앞두고 투표결과를 빠른 시간안에 자동으로 집계할 수 있는 선거용 컴퓨터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우리의 현실로는 선거때마다 그랬듯 손으로 일일이 투표용지를 점검하는 방식이 고작이어서 선거사상 유례가 없는 4대지방자치 동시선거를 마무리하려면 2∼3일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전망이다.게다가 수많은 교사와 공무원 등이 개표요원으로 동원되어 그만큼 학사업무와 행정업무에 지장을 줄것 또한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당장 최첨단시설의 개표장비를 갖추기는 어렵다하더라도 가능한대로 선진국에서 활용하고 있는 개표시스템을 도입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이런 관점에서 캐나다의 앞선 개표시스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컴퓨터화된 자동투표계산기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컴퓨터시스템은 간단하고 정확하게 개표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다.선거인이 투표장에 마련된 컴퓨터용 특수볼펜으로 컴퓨터용 투표용지에 정해진 막대(또는 화살표)표시로 지지후보를 표시해 자동투표계산기에 집어넣으면 투표가 마무리된다.투표가 끝난뒤 한시간 남짓만에 투표결과가 자동으로 시청등에 마련된 중앙계표센터에 보내진다.이곳에서는 전체적인 투표결과가 자동으로 집계된다.관리요원도 투표소별로 10명 안쪽이면 충분하다.이같은 방식은 수작업으로 밤을 새면서 개표를 할때 예상되는 엄청난 인력과 시간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데다 계산의 정확도도 99%이상이어서 거의 완벽하다. 지난 88년 미국의 달라스시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뒤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밴쿠버 등 주로 선진 자치도시 20여곳에서 선거용으로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캐나다에서는 위니펙시도 오는 10월 지방선거에서 이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이용지역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또한 각 투표소의 자동투표계산기가 공투표용지나 잘못 기입한 투표용지,손상된 투표용지,규정이상 기입된 투표용지 등을 즉석에서 가려내 재투표를하도록 유도하게 되어 있어 사표나 무효표를 없앨 수 있고 정전에 대비해 자체건전지도 보유하고 있다. 높이 20㎝·너비 50㎝정도로 휴대및 이동에도 편리한 이 기계는 한대에 2백60만원정도.1백50대를 보유하고 있는 밴쿠버시는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10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88년 이 시스템을 도입,지금까지 3차례의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위니펙시청에 근무하는 투표자동화전문가 마크 르모인씨는 『개표과정에서 불필요한 인력과 시간의 손실을 막고 투·개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오는 10월선거부터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4대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러야 하는 한국에도 이 시스템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 물류시설용 부동산 취득/10대 그룹 자구 의무 면제

    ◎유통단지 건설촉진 대책/토지수용 요건 완화/생산녹지내 공산품 창고 허용/유통단지 개발·입주업체 세금 감면 다음 달부터 10대 그룹들은 집배송 단지나 창고,화물터미널 부지 등 물류시설용 부동산을 자유롭게 취득할 수 있다.내년부터는 논·밭 등 생산녹지에도 공산품창고의 건설이 허용된다.물류시설 지원에 2000년까지 2조4천억원이 투입되며,유통단지 개발사업자와 단지 입주업체에 대한 세제지원도 대폭 강화된다. 청와대 국가경쟁력 강화기획단과 재정경제원,통상산업부,건설교통부는 15일 물류난 완화를 위해 이같은 내용의 「유통단지 건설촉진을 위한 종합대책」을 확정,발표했다. 대책은 6월 중 여신관리 시행세칙을 고쳐 10대 그룹 소속기업이 유통단지 건설을 위해 부동산을 살 때 「취득분 만큼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 등의 자구노력」 의무를 면제하고 농축수산물에 한해 허용하던 생산녹지에서의 창고건설을 공산품까지 확대했다.유통단지 개발사업자와 입주업체에 대해 공업단지 수준으로 지원,▲유통단지 개발사업자에는 취득세와 등록세의전액 면제 및 재산세와 종합토지세의 50% 감면 ▲입주업체에는 취득세와 등록세의 전액 감면 및 재산세와 종합토지세의 5년간 50% 감면혜택을 주기로 했다. 유통단지의 토지수용 조건도 완화,사업대상 토지의 「3분의 2이상」 매입하면 수용권을 발동할 수 있게 했다.지금은 이 조건 외에 수용대상 토지소유자의 절반 및 건물소유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유통단지 개발사업자가 단지를 분양할 때 양도세 성격의 특별부가세를 50% 감면하고 유통단지의 토지에 대한 종합토지세 과세방법을 「종합합산」에서 특수용도의 토지를 모아 합산하는 「별도 합산」으로 완화했다.물류자동화와 표준화 설비투자를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고 새로 조성하는 공단내의 화물터미널 등 유통시설 부지를 공장용지 분양가 수준으로 공급한다. 중소기업의 공동 유통시설용 토지에 대한 농지 전용부담금의 감면을 검토하고 유통단지에도 영업용 보세구역을 설치한다.유통단지를 관할하는 내륙지역 세관을 특정물품의 통관지세관으로 지정하고,유통단지 내에 동물검역 시행장도 지정한다.정부 당국자는 『이 대책으로 2003년까지 집배송단지 21개(4개 건설 중)를 비롯,복합화물터미널 10개(2개 건설 중),일반화물터미널 50개,중소기업 공동 유통시설 40개가 추가로 건설되고 기업의 물류비 절감과 함께 화물운송 교통량이 지금보다 3분의 1로 줄어 교통난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배송단지 새달 첫 개방/용인에 4만평 규모 유통업계 공동설립/입고서 출고까지 자동화… 물류 혁신 기대 각종 화물을 공동으로 보관·수송하는 첨단 물류체계인 대규모 집배송 단지가 국내 처음으로 다음 달 초순 수도권에 개장된다.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경부고속도로 옆에 위치한 이 집배송단지는 4만 2천평 규모의 대형창고로 입고·보관·선별·출고의 모든 과정이 부가가지통신망(VAN)에 의해 자동 처리된다.식품·음료·잡화류 등 3천여종의 품목을 취급하며,가로·세로·높이 50㎝짜리 박스 20만개의 동시 보관·처리 능력을 갖췄다. 현재 우리나라의 유통체계는 각 제조업체와 대리점,도·산매상,수입상이 각각 트럭과차고를 갖추고 자기 화물을 스스로 처리하는 화물자가처리 시스템이다.공동처리 시스템인 집배송단지가 개장되면 제조·유통업체는 보관·운송설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사회 전체적으로도 대량운송과 화물 적재효율의 향상을 통해 차량 운행 횟수를 지금의 3분의 1로 줄일 수 있어 물류 혁신과 교통난 해소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이 단지는 대형 백화점과 유통 전문업체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주)한국물류가 운영을 맡게 되며,모두 9백68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 인공강우 내주실험

    기상청은 18일 인공강우를 위한 장비 제작에 성공,이달안에 본격적인 실험에 착수하기로 했다. 미국 사막연구소(DRI)로부터 설계도면을 제공받아 기상청이 자체 제작한 높이 1m50㎝ 가량의 인공 강우기는 버너와 가압탱크로 구성돼 있으며,지난 15일 성능실험을 마쳤다.
  • 원주민 한티족/원추형 움막「춤」서 수렵생활(시베리아 대탐방:5)

    ◎북부 시베리아에 1백 75가구 8백93명 거주/순록 몰고 다니며 물고기·곰·북극여우 등 사냥 상오 10시. 튜멘주 수르구트시에서 북쪽으로 1백30㎞ 떨어진 루스킨스카야마을 중심가.어른키가 1백50㎝쯤 되고 이마가 불쑥 튀어나온 한티족 원주민들이 눈에 들어왔다.중심가에는 이웃 유전개발에 힘입은 탓인지 러시아의 현대식 주택들이 한참 건설중이었다. 취재팀은 이 마을 행정책임자 프로살로브 블라디미르로비치씨(36·동장격)와 함께 원주민 거주지역들을 방문하기 위해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다.사무실 테이블위에는 행정전화와 가정전화등 모두 4대의 전화가 가설돼 있었고 러시아연방기가 꽂혀 있었다.비디오를 겸한 텔레비전도 눈에 들어왔다.그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30분쯤 뒤 헬리콥터 한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무실 이웃 공터에 도착했다.20명이 족히 탈 수 있는 화물운송용 헬기(MI­8)였다.루스킨스카야 중심가에서 2백㎞까지 떨어진 원주민마을(1백75가구 8백93명)에 생필품을 전달해주는 수단이었다.원주민가옥들은 서로 수십㎞씩 떨어져 있어 이웃간 교통수단은 한달에 두번 뜨는 헬리콥터에 의존하고 있었다.한달에 두번이라는 것은 시정부가 헬기를 지원,원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날이라는 것이 동장의 설명이었다. ○취재팀에 헬기제공 그는 『당신들의 취재를 위해 예정 배급일을 사흘 앞당겨 헬기를 불렀다』며 으쓱거렸다.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취재진은 모터썰매를 타고 수십㎞씩 살을 에는 찬바람을 맞아야만 원주민 취재가 가능했을 터였다. 헬기가 도착하자 헬기장쪽으로 30대와 50대쯤으로 보이는 한티족여인 두사람이 모였다.원주민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주기 위한 간호원이라는 설명이었다.결핵예방약등 각종 약품가방을 들고 그녀들이 헬기에 올랐다.동장과 취재진들도 함께 탑승했다.곧 헬기는 북쪽으로 1백50㎞쯤 떨어진 첫 「춤」(한티족이 사는 움막이름)을 향해 이륙했다.공중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하얀색의 눈과 검은 갈색의 숲뿐이었다.이따금씩 강으로 보이는 S자형의 굴곡만이 나타날 뿐,말로만 듣던 시베리아벌판이 계속 이어졌다. 40분쯤 비행하자 「춤」 두채가 나타났다.헬기는 이곳 첫마을 상공에서 착륙하지 않고 밀가루 13부대를 던져 떨어뜨렸다.약 70㎏ 정도 되는 빵 제조용이었다.블라디미르로비치씨는 『이곳에 떨어뜨려 놓으면 며칠안에 주위에서 원주민이 모여들어 서로 나눠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헬기가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그는 『헬기의 연료때문에 원주민 마을을 일일이 방문할 수 없다』면서 『전체 1백75가구를 일곱지역으로 나눠 헬기가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직경 5m 넓은 공간 다시 15분쯤이 지난 낮 12시 40분.헬기는 두번째 마을에 완전 착륙했다.마을이라야 원추형 「춤」 두채가 고작이다.헬기에서 내려 그곳 주인 포카초브 니콜라예비치씨(20)의 안내를 받아 움막에 도착했다.헬기가 착륙한 곳에서 움막까지 거리는 2백m 정도.눈 깊이는 1.5m 이상 됐다.바깥기온 영하38도.바람만 조금 불면 면돗날 조각이 얼굴에 와 박히는 것 같았다.취재팀은 거의 나아가지 못했다.하지만 니콜라예비치씨는 눈을 가슴에 안고 기는 자세로 잘도 빠져나갔다.그를 따라 비슷한 자세를 취하니 의외로 움직이기가 쉬웠다.움막안은 무척 따뜻했다.장작을 피우고 있었는데 온도계의 온도는 2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바깥기온과의 차가 무려 63도나 되는 셈이었다. 여러가지 짐승가죽을 이어 만든 천막은 원추형이었고 직경은 약 5m.실내는 무척 넓어보였다.이런 움막에서 4∼10명의 가족들이 함께 지낸다는 것이다.니콜라예비치씨 가족은 모두 5명.할머니(50)와 부인,아이 둘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움막안의 현대식시설은 연통이 달린 페치카와 재봉틀이 전부였다.천장에는 사슴등 짐승가죽이 걸려있었고 침실로 보이는 나무바닥도 여러가지 짐승가죽을 꿰매놓은 것이 깔려 있었다.차 대접을 받고 선물로 보드카 한상자와 초콜릿등을 놓고 나왔다.가족들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간호원들이 2살,5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을 붙잡아 결핵예방주사를 놓았다.아이들은 주사를 맞지않으려고 도망다녔고 할머니가 아이들을 붙잡아 주자 간호원들은 간신히 주사를 마쳤다.얘기를 더 하려하자 조종사들이 『시간이 없다』고 갈길을 재촉했다. 니콜라예비치씨가 움막 주위에 세워져 있던 현대식 모터썰매로 헬기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줬다. ○생필품과 가죽 교환 낮 12시 55분.첫번째 마을에서 40㎞쯤 떨어진 두번째 「춤」에 도착했다.역시 두 채가 있었다.헬기에서 내려 움막으로 들어갔다.집주인 포카초브 알렉세예비치씨(70)는 보드카에 취해 있었다.그는 『아들이 순록을 몰고 사냥하러 나갔다』며 가족들을 소개했다.그의 말에 의하면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고 살며 여름철인 6∼9월까지는 곰·북극여우·족제비·고슴도치·거위등을 잡는다고 했다.수렵생활이 전부였다.이들은 짐승가죽을 루스킨스카야 중심가에 가지고 가 생필품과 교환하거나 판매를 한다는 것이 알렉세예비치씨의 설명이었다.알렉세예비치씨는 『귀한 손님이 왔다』며 「라바스」로 불리는 창고쪽에서 사슴고기를 꺼내 요리했다.그는 그릇을 들고 천막 밖으로 나가 주위의 눈을 담아 들어왔다.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양념없이 끓는 물에 푹 삶아낸 사슴고기는 쇠고기처럼 맛있고 연했다.별미였다.간호원들은 이곳에서 역시 아이들을 붙잡아 예방주사를 놓았다.할아버지는 『사는 것이 재미있느냐』고 묻자 『만족한다.우리는 물과 먹을 음식만 있으면 살 수 있다』며 흡족해했다.자신은 보드카에 연일 취해 있다고 했고 우리들의 보드카선물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순록 수를 묻자 『우리는 그 수를 세지 않는다.수를 세면 순록수가 줄어든다』며 대강 1백70마리정도 된다고 했다.알렉세예비치씨가 다시 음식창고 옆의 또다른 창고로 갔다.연장창고였는데 거기서 칼집에 들어있는 사냥칼을 갖고 움막으로 들어왔다.취재진이 깜짝 놀라자 『선물로 칼집을 주겠다』며 칼을 빼들었다.그리고는 가죽으로 된 칼집만 손에 쥐어주었다.사냥용 칼을 줄 수 없느냐며 웃어보이자 『생활수단…』이라며 멈칫거렸다.차대접까지 받고 다음 「춤」으로 향했다. 이런식으로 7개마을을 방문하고 난 시간이 하오 4시.날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한티족/서시베리아 북북 우고르­핀계 종족/성인 키 150㎝정도… 고집 센 소수민족 청동기시대부터 러시아 서시베리아 북부 이루튀시 강변에 거주하던 우고르­핀계의 종족.어른 키가 1백50㎝정도.검거나 푸른 눈동자를 하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회색이 대부분이다.일부는 한티­만시스크시 등에서 개화된 도시생활을 하고 있으며 다른 일부는 시베리아 북극 근처에서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비율은 8:2정도.수줍음을 잘 타고 고집이 센 소수민족이다. 16 37년 이반 3세가 당시 한티족 공작이던 「사마라」가 살고 있는 지역을 평정,동방으로 진출하기 위한 마차역을 세운 곳이 지금의 한티­만시스크시다.마차역은 모피상인들이 오가면서 부유한 상인마을 「사마로보」를 탄생시켰고 이 마을은 19 30년부터 「한티­만시스크 자치구」로 개칭돼 인구 30만명의 도시로 발전했다.
  • “일제가 끊어놓는 민족정기 잇자”/쇠말뚝 제거운동 확산

    ◎「혈」 차단하려 전국 62곳에 박아/민관 합심,지금까지 35곳 뽑아 광복50주년을 맞아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전국 곳곳의 명산에 박아놓은 철주를 뽑아내는 운동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반도의 지세와 경락을 끊기 위해 혈맥에 쇠말뚝을 박아놓은 한반도의 풍수침략 사례는 모두 1백54건.이 가운데 일제가 한반도 명산의 혈을 찾아 철심을 박은 곳은 62건에 달한다. 45건은 임진왜란때 명나라 이여송이 저질렀고 그 나머지는 불명이다. 서경대 서길수교수는 그러나 실제 건수가 5배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0년동안 2곳에서 30개의 철심을 뽑은 「우리를 생각하는 모임」(회장 구윤서·58)은 쇠말뚝뽑기작업을 올해 최대 역점사업으로 정했다. 회원들은 처음 자료수집에 나서 경기 이천군 설봉산,강원 인제군 미시령,속리산 문장대,마산 무학산,전남 영암군 월출산 천황봉 등 남한지역과 개성 송악산 등에 일제가 쇠말뚝을 박아놓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이때부터 쇠말뚝제거작업에 나서 85년4월초부터 86년7월까지 1년여동안 백운대 정수리 바위에서 직경 3㎝,길이 40㎝쯤의 쇠말뚝 22개를 뽑은 것을 비롯,93년9월에는 속리산 문장대에서 길이 30㎝의 철주 8개를 제거했다. 마산산악회회원들도 86년8월 마산 무학산 학봉 정수리부근에서 철심 1개를 제거한뒤 올초 다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양구사랑회」(회장 박상구)는 현재 양구읍 중리 제일봉 정상을 비롯해 고등골 계곡,방산면 뒷산 등 5∼6곳에도 일제가 심은 쇠막대가 있다는 주민제보에 따라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 민간차원의 운동에 힘입어 정부의 철심제거작업도 활발해 행정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경북도청이 지난 14일 청도군 화양읍 소사리 주구산의 쇠말뚝을 뽑아냈으며 이어 관내 9개소에 쇠말뚝이 있다는 주민제보에 따라 조만간 이들 모두를 뽑기로 했다. 포항시도 20일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두리 해발 4백m의 속칭 용산에서 길이 1m50㎝,직경 1.5㎝의 쇠말뚝 2개를 뽑아냈다. 구미시는 23일 해발 9백76m의 금오산 정상부근 바위에서 쇠말뚝 1개를 제거했다.
  • 경주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상토기(한국인의 얼굴:17)

    ◎미적감각 뛰어나고 이목구비 뚜렷/마상의 인물·말·말갖춤 기묘하게 조화/말탄 종붙여 사후 편안한 저승길 배려 우리나라 고대 기마인물상 토기 중에서 미적 감각이 뛰어난 걸작은 아무래도 경북 경주시 노동동 금령총 출토품일 것이다.그래서 일찍 국보(제91호)지정을 받았다.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이 유물은 주인과 종이 한쌍을 이루고 있다. 국보답게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신라 조형예술품이다.마상의 인물과 말,말갖춤이 기묘하게 조화되었다.고개를 들어 머리를 뒤로 약간 젖힌 주인공은 의젓한 자세다.관이 앞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미리 막을 요량으로 머리를 젖혔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관이 살짝 얹혀있다.관은 앞뒤가 뾰족한 보관인데,끈을 달아 턱에 매달았다. 머리를 젖힌 탓에 눈은 내리깔린 모습이다.눈이 기다란 것으로 미루어 치떴더라면 꽤나 큰 눈이었을 것이다.코는 굵고 높게 표현되었다.입은 아주 작지만 또렷하다.그러고 보면 이목구비가 분명한 인물상이라 할 수 있다.입은 옷은 확실치 않으나 가로 세로로 띠를 둘러 말을 타는데 필요한 복장을 제대로 갖춘 듯 싶다.가죽신발을 신은 발을 발거리(자)를 살짝 걸쳤다. 말은 통통하고 작지만 말갖춤은 화려하다.장식이 붙은 가슴걸이,띠드리개가 달린 말치끈,재갈멈치,깃대꽂이(기생),말방울 등이 그것이다.가리개가 뚜렷한 안장을 언치 위에 얹고 다래(장니)를 늘어뜨렸으니,대단한 말치장이다.말발굽에 다는 신발까지 신겼다.이 기마인물상이 신라 기마풍속과 마구연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을 알고보면 이같은 말갖춤에 있다. 이 기마인물상토기가 나온 무덤은 고신라시대 고유의 무덤 형태인 AD 5세기쯤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1924년 우메하라(매원말치)라는 일본인 학자가 발굴한 무덤이다.이 때에 기마인물상토기 한쌍 말고도 구슬을 박은 금방울 드리개(수하식)가 달린 금관이 발견되어 금령총(금방울무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말과 관련한 유물로는 금동안장틀,발걸이 등이 출토되었고 배모양토기(주형토기)한쌍도 나왔다. 금관과 관드리개·관모·금제귀고리·목걸이·금제허리띠와 띠드리개·금제팔찌·금동고리칼(김동환두대도)등은 주인공이 몸에 지니고 묻힌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밖에 철제무기류·금동제 합·청동거울을 거두었다.무덤 자체는 규모가 작았는 데도 이처럼 많은 유물이 나와 무덤에 묻힌 주인공은 나이가 어린 지배자의 후예로 여겨왔다.널의 크기(세로 1백50㎝,가로 60㎝)도 역시 작아 이를 뒷받침 했다.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상토기는 일찍 이승을 하직한 무덤의 주인공을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다시 말하면 무덤의 주인공을 말에 태워 저승길로 편히 보내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는 이야기다.거기다 말을 탄 종 한사람을 붙여주어 더욱 편한 저승길이 되도록 배려했다.무덤에서 나온 배모양토기도 똑같은 의미를 지닌 유물이다.배 또한 사람을 태울 수 있으니까….이 토기의 배고물(선미)에는 성기를 내민 알몸의 뱃사공이 노젓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라 신화에 등장하는 말은 하늘과 교통하는 영물이다.초자연의 세계와 감응하거나,또 승천할 수 있다고 믿었다.말은 「삼국유사」박혁거세 신화에서 찾아지는 동물이기도 하다.
  • 「돈의문」 편액글씨 주인공은 누구

    ◎기존 「조일회작품」아닌 「조윤덕글씨」 반론 제기/조윤덕 9대손인 연수씨 족보 등 새증거 제시/조일회/전남 영암서 출생 영암서 사망/조윤덕/서울생,족보에 “편액썼다” 옛 서울도성 4대문의 하나인 돈의문.일제가 19 15년에 헐어버린 서대문의 본래 이름이다.80년이 지난 지금 그 실물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그런 판에 간판격인 편액을 누가 알랴만,편액글씨의 주인공을 놓고 논란이 일어 화제가 되고있다. 이 편액은(세로 1백10,가로 2백50㎝) 다행히도 창덕궁이 보관하고 있는 유물.문화재관리국이 지난 86년에 펴낸 「궁중유물도록」해설편에 따르면 글씨를 쓴 사람은 조일회로 되어있다.서울대 규장각 소장 필사본 「동국여지비고」 기록을 근거로 그를 편액글씨의 주인공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또 다른 자료인 「조선시대사찬읍지」(사천읍지·한국인문과학원)도 필사본 「동국여지비고」내용을 빌려 같은 사람의 글씨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힘찬 해서체의 돈의문 편액글씨가 조일회의 작품이 아니고 조윤덕(1677∼1740년)의글씨라는 반론이 나왔다.조윤덕은 조일회의 재종손으로 남남도 아닌 가까운 친족.이같은 반론은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에 사는 조윤덕의 9대손 연수(51)씨가 제기하고 나섰다.조윤덕을 제치고 조일회가 등장한 동기는 규장각이 필사본 「동국여지비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조연수씨의 주장이다. 규장각이 지난 1955년 「동국여지비고」필사본을 옮길 때 사용한 원본은 고종시대 (1864∼1907년)에 편찬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 원본 「동국여지비고」에는 조일회가 썼다는 기록은 물론 조윤덕의 작품이라는 설명도 없다.그렇다면 필사본에 조일회가 적혀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이는 규장각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원본을 가지고 필사본을 만들 당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조일회의 이름을 써넣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돈의문 편액이 조윤덕의 글씨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다른 몇몇 자료가 전해내려오고 있다.1767년(영조 43년)에 제작한 「창령조씨정해대동보」와 1779년(정조 3년) 조석중이 지은 「창령조씨지선록」이 그것이다.조상의 내력과 명망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지은 지선록은 조윤덕에 대해 「그 글씨가 세상에 이름이 높아 돈의문 편액을 썼다」고 기록했다.반면 이들 두 자료에는 돈의문과 관련한 조일회의 이야기는 들어있지 않다. 그리고 「창녕조씨정해대동보」(족보)에 따르면 조일회는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영암에 묻혔으나,조윤덕은 서울 태생으로 묘소가 분당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이는 조윤덕이 서울에 살았다는 증거인 동시에 돈의문 편액을 그의 작품으로 보는데 큰 도움을 주는 자료라는 것이다.조윤덕은 벼슬을 마다하고 풍류와 서도를 즐긴 인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연을 추적한 후손 조연수씨는 『두 어른이 다 문중의 조상이지만,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의 정도라는 관점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가리려했다』고 말했다.
  • 「공연예술의 메카」나윤도특파원 현장리포트(브로드웨이“새바람”:4)

    ◎맨해튼을 거닐며/트라이베카선 드니로 등 명우쉽게 만나/역사의 인물 헤일·그릴리·프랭클린동상 우뚝/구정때면 차이나타운에 용춤 행렬 장관/프랭클린가엔 테디 시어터 등 소극장 많아 『태양은 모든 것을 향해 밝게 빛난다(The Sun it shines for all)』 브로드웨이 280번지,챔버 스트리트와 교차 지점에 있는 시청 부속건물의 외벽 모퉁이에서 브로드웨이 쪽으로 돌출해 있는 작은 시계 「선 클록」(Sun Clock)에 새겨진 이 글귀는 브로드웨이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한면이 50㎝ 정도에 불과한 정육면체의 청동주조물에 8각의 로마숫자판으로 된 이 시계는 스스로 태양이고 싶은 뉴요커들의 심정을 은연중에 대변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래 이 글귀는 19세기 중반 창간돼 1917년에 이 건물로 옮겨왔던 신문 선(The Sun)의 모토였다.뉴욕시청 바로 뒤에 떡 버티고 서서 격동기 미국 현대사의 감시자 역을 맡았던 선은 뉴욕 최초의 페니 페이퍼(한 부 값을 1센트 정도로 정해 누구나 쉽게 사 볼 수 있게 한 신문)로 모든 뉴요커들에게 따뜻한태양 역할을 자청했던 신문이다. 그후 1952년 이 신문이 폐간되고 한동안 선 클록도 멈춰 있었으나 이 시계를 사랑했던 부근의 시청 직원들과 각회사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보수해 놓았다.결국 선은 없어졌어도 선 클록은 뉴요커들의 희망의 목소리로 그자리에 남아 있다. ○남북 6개블럭 연결 남쪽으로 세인트 폴 교회가 있는 풀턴 스트리트로부터 북쪽으로 챔버 스트리트까지 여섯 블록에 이어지는 브로드웨이의 맞은편은 시빅 센터(Civic Center)라 불리는 곳으로 넓은 시티 홀 파크 공원을 중심으로 시청과 각종 부속건물,시경,각급 법원 및 연방사무소 등 뉴욕의 모든 관공서들이 모여있어 뉴욕의 심장부를 형성하고 있다.1870년 최초로 이 공원을 따라 머레이 스트리트에서 워렌 스트리트간 약1백m에 뉴욕의 첫 지하철이 튜브식 공법으로 시험 건설되었다. 이 지역의 브로드웨이는 2백여년 동안 수많은 영웅들을 위한 환영의 거리,축제의 거리이자 데모의 거리,상업의 거리로 발전해왔으며 자연적으로 미국 자유언론의 전통을 탄생시킨 신문의 거리를형성해 왔다. 특히 1811년 완공된 시티홀 앞 광장은 식민지 시절 뉴욕을 방문하는 영국왕을 위한 환영퍼레이드를 벌이던 전통에서 최근에는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홈팀 선수들의 환영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축제가 벌어져 왔다.그뿐만 아니라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후 이틀 동안 시신이 안치됐을 때는 6만여 뉴요커들이 조문을 위해 장사진을 치기도 했던 곳이다. 오늘날 이 거리의 역사는 세사람의 동상이 대변해주고 있다.워싱턴 장군의 부하였던 네이선 헤일(1755∼76)과 언론인 호러스 그릴리(1811∼72),그리고 벤저민 프랭클린(1706∼90)이 그들이다. ○19개 신문가 옮겨가 시청 서쪽의 헤일 대위는 예일대 출신 교사로 독립전쟁이 벌어지자 워싱턴 장군의 군대에 합류,맹활약하다 1776년 9월 영국군에 잡혀 바로 다음날 교수형을 당했다.그가 죽기 전 『내가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나의 목숨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하고 남긴 말이 영원히 기념되고 있다. 동쪽 브루클린 다리를 향해 서있는 뉴욕 트리뷴창간자 그릴리는 남북전쟁 시대의 개혁가로 노예제도를 공격하고 여성의 참정권 허용, 노동조합 장려 등을 강력히 주장했다.그는 특히 서부 공략을 주장한 『서부로 가라,젊은이들이여(Go West,Young men)』라는 글이 유명하다. 공원 옆 페이스 대학 앞에 있는 미국 정치가의 대부이자 언론인,과학자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새정부 수립시 펜실베이니아 대표로 참석,각 주간 이해 대립 조정자로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으며 자신이 창간한 신문 펜실베이니아 거제트를 한손에 들고 서있다.그 동상 옆에는 헝가리 태생의 조셉 퓰리처가 신문왕국의 발판으로 삼았던 뉴욕 월드 옛사옥이 있다. 이렇듯 시티 홀 파크를 사이에 두고 브로드웨이와 파크로 거리 일대에는 19세기 말 19개의 신문사가 밀집해 있을 정도로 번성한 신문의 거리를 이뤘다.이들은 이 지역에서 1733년 뉴욕 위클리 저널을 창간,영국의 식민통치에 과감히 투쟁하던 존 피터 젱거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언론의 전통을 세워나갔다.그러나 오늘날 상당수는 없어지거나 더 북쪽으로 이전해 신문의 거리는역사적 이름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 거리에는 또 근대 상업의 발상지인 브로드웨이 233번지에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있는 울워스(Wool worth)빌딩이 있다.1879년 이 지역에 새로운 형태의 소매점포를 차린 세일즈맨 프랭크 울워스는 5센트·10센트 균일점이라는 다양한 물품을 박리다매로 판매하는 형태로 운영했다. 순수한 소매업만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울워스는 1913년 당시 높이 2백40m,60층의 사옥을 완공시켜 세계 최고의 높이뿐 아니라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더욱이 그는 공사비 1천5백만달러를 은행빚 하나없이 현금으로 지불해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이 건물은 17년간 세계최고의 기록을 보유했으며 아직도 울워스사의 본부로 쓰이고 있다. 이 지역을 지나 챔버 스트리트 북쪽으로 올라가면 브로드웨이의 스카이라인은 마천루 숲을 이루던 남쪽과는 큰 대비를 이룬다.5∼6층 정도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여기저기 중국어 간판이 눈에 들어오면서 브로드웨이는 북쪽의 커낼 스트리트까지 차이나타운의 한부분을 이룬다. 브로드웨이를 서쪽 끝으로 하여 이스트 리버의 맨해튼 브리지까지 넓게 펼쳐진 차이나타운은 구정을 맞아 연일 각종 민속행사가 한창이다.부리부리한 눈에 형형각색의 꽃술이 달린 커다란 두마리의 용이 가게마다 찾아다니며 폭죽을 터뜨리며 1년 동안의 복을 비는 신비한 중국인들의 민속행사들도 브로드웨이의 한부분이 돼 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와의 만남보다도 민속과의 만남보다도 예술과의 만남에 있다.동쪽으로 시빅 센터와 차이나타운을 이끌어온 브로드웨이의 서쪽 일대를 차지하고 있는 트라이베커는 사실상 브로드웨이 예술기행의 출발점이다. ○예술의 감칠맛 더해 「운하 아래 삼각형 모양의 땅」이라는 뜻의 이곳은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들의 창고지역으로 얼핏 보기에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광맥을 찾듯 빨려들어가게 하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내놓고 보여주기보다는 더듬고 들여다보고 찾아야 가까스로 조금 보여주는 절제된 아름다움은 브로드웨이 예술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요소가되기도 한다. 브로드웨이 예술의 또하나의 매력은 화제 인물의 체취를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어빙 벌린이 성장한 맨해튼 로어 이스트사이드에서 듣는 노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다르듯이 트라이베커에서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나는 것은 뉴욕에 대한 새로운 입문이 된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염세주의적인 월남전 공훈 택시 운전사로 만난 니로와 「뉴욕,뉴욕」에서 사랑에 성공한 색소폰 연주자로서의 니로와 이곳 그리니치 스트리트 375번지 트라이베커 필름센터에서 만나는 니로는 사람도 다르고 뉴욕도 다른 뉴욕이다. 이곳에서 두 블록 떨어진 허드슨 스트리트 110번지의 아파트에 살고 있어 트라이베커의 터줏대감인 니로는 옛 커피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 필름센터를 스티븐 스필버그,론 하워드,퀸시 존스 등과 함께 사무실겸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밑에는 트라이베커 그릴이라는 찻집도 공동운영,영화예술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화이트 스트리트 38번지에는 네온 미술가 루디 스턴의작업장이자 갤러리인 「네온이 있게 하라」(Let there be Neon)가 있고 웨스트 브로드웨이와 프랭클린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는 자유의 여신상 크라운을 쓰고 있는 테디 시어터,원 드림 시어터 소극장 등 구석구석 창조의 공간들로 채워져 있다. 『자유여,상큼한 자유여(Oh,Liberty,Sweet Liberty)』 프랭클린 스트리트의 한벽면을 장식한 이 글은 브로드웨이의 영원한 모토이기도 하다.
  • 서울 도심 세안빌딩/진도 7에도 끄떡없다

    ◎일 최신 내진설계·기술로 지어/재일교포 박종한씨 집념의 결실/내부실설도 인공지능으로 제어 일본 간사이(관서)지방 대지진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도심 한복판에 진도7의 강진에도 거뜬히 견딜 수 있는 「철통빌딩」이 세워져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187의1 도심재개발지역에 세워진 세안빌딩.연면적 1만3천평규모에 지상20층 지하6층짜리의 겉보기에는 다른 건물과 큰 차이가 없는 평범한 업무용건물이다.그러나 특이한 내부설계와 공사시행자의 독특한 내진공법을 자랑하고 있다. 이 빌딩은 『일본에서도 최고수준으로 치는 기념비적 빌딩을 조국에 남기고 싶다』는 재일교포 건축가이자 세안개발회장인 박종한(70)씨의 집념으로 일본 최신의 내진설계와 기술을 도입,92년1월 착공됐다.가장 큰 특징은 강한 철판을 4면으로 이어붙여 철골로 사용한 4면 박스 철골구조공법으로 수평하중을 견디는 능력을 강화한 부분이다. 이때문에 국내 일반빌딩보다 철골과 철근이 3.5배가량 더 사용됐고 공사비도 3배이상 들었다. 철판은 포항제철에서 특수주문했으며 철골구조의 기본설계와 제작도는 일본의 전문회사인 YMT에서 들여왔다.그 도면에 따라 현대중공업이 철골제작과 현장조립을 맡았다. 특히 일반건물이 지하층의 기초를 통상 50㎝두께의 철근콘크리트로 다지는 것과 달리 이 빌딩은 두께 1m짜리 철근콘크리트를 2.2m 간격으로 두겹씩 쌓았다. 철크리트와 철근을 같이 붙인 PC패널을 건물철골구조에 붙이는 외벽작업도 내진공법에 의해 설계·시공됐으며 내부구조 역시 방범기능과 냉·난방엘리베이터등 관련시설을 인공지능으로 제어하는 첨단자동화시스템을 도입했다. 박회장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하는 이같은 건축공법을 고집한 이유는 「건축물은 공공재산인 동시에 후세에 남겨줄 문화유산」이라는 나름의 건축철학에서 비롯됐다. 처음 공사를 막 시작할때 철골구조공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재작업을 지시하는등 4년여의 정성을 들여 이제 준공검사만을 남겨놓고 있는 박회장은 『건축가는 후대를 두려워할줄 아는 겸손함이 있어야 1백년,2백년이 지나도후손에 부끄럼없는 작품을 남길 수 있다』며 성수대교붕괴라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의 말도 잊지 않았다. ◎88년이전 건축물 “무방비”/우리나라는 안전한가/교량도 93년에애 내진설계 의무화/5층이하·일반주택등 대비책 시급 일본 간사이지방을 강타한 진도 6의 강진이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같은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우려된다.특히 일본은 잦은 지진 발생에 대비,모든 건물과 교량등을 내진설계해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피해를 낸 것으로 미뤄 내진설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건축물등은 순식간에 주저앉아 잿더미로 변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내진설계는 건물이나 교량 건설시 차량이나 사람등의 하중이외에 지진발생에 따른 하중까지 고려한 것.현행 건축법시행령 제32조 구조등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6층이나 연면적 10만㎡이상 건물과 종합병원·방송국·극장·백화점등 다중이 모이는 시설은 그 규모이하에서도 내진설계토록 의무화하고 있다.그러나 건축법상 내진설계는 건축물의 경우 지난 88년 1월,교량은 93년 1월부터 시행토록 명시돼 그 이전에 건설된 대부분의 대형 건물이나 교량등은 지진에는 사실상 무방비상태라고 볼수밖에 없다.일본과 미국에서는 지진 발생위험지역에 따라 1∼7등급으로 세분해 내진설계 기준을 삼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강원·전남·제주도는 1등급(진도 6이하),나머지 지역은 2등급(진도 7이상)으로 단순화,지역에 따른 보다 구체적인 기준설정이 미비한 상태다.게다가 내진설계를 하려면 그렇지 않은 건물보다 건축물의 두께가 더 두꺼워야 하고 철근이 더 들어가야 하며 기초가 더 보강돼야 한다.이에따라 공사비는 일반 건축물보다 10∼20%까지 인상요인이 발생,건축비를 줄이기 위한 부실시공의 가능성을 짐작케한다.이런 탓에 88년 건설부가 내진 구조 기준을 정할 때 주택업체들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방명석(38)구조실장은 『6층이상 건물등은 건설 전문가와 대형업체가 시공하기 때문에 지진에도 어느 정도 안정성을줄 수 있으나 실제로는 영세업자들이 주로 짓는 5층이하 건물이나 일반 주택등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그는 이어 『당국은 이번 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고층건물·백화점·극장·공공시설물등 대규모 피해가 우려되는 과거 구조물에 대한 점검과 차제에 감리에 대한 제도적 보완및 지진 보강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공사중 한강바닥서 대형포탄 발견(조약돌)

    ○…2일 상오 11시쯤 서울 성동구 성수2가 4동 청담대교 신축공사장 아래 강바닥에서 대형 폭발물 1개가 인부에 의해 발견돼 군·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이 폭발물은 길이 1백44㎝ 둘레1백50㎝ 크기로 공사를 맡은 동부건설 소속 유용배씨(55)가 다리 북단에서 6번째 교각밑 강바닥의 모래를 포클레인으로 파내다 발견했다. 경찰로부터 조사의뢰를 받은 공군 제15비행단 폭발물 처리반이 이날 현장에 출동,감식한 결과 이 폭발물은 6·25때 미공군에서 쓰던 전폭기용 AM­M65A1 탄종으로서 당시 투하된뒤 불발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공군측 폭발물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폭탄은 폭발때 위력이 반경 8백m까지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경찰은 폭탄이 물속에서 오랜기간 부식돼 운반과정에서 폭발할 우려가 있어 4일 상오 발견현장에서 바로 신관해체작업을 펼 계획이다.
  • 백제시대 대형목곽 발굴/대전 월평동/사방 5m… 거의 원형보존

    문화재관리국은 28일 대전시 서구 월평동 산 25의 1일대 월평산성유적지 조사결과 대형목곽 1기와 목책열(목책열) 70m,환호(환호) 55m,주거지 9동,타원형구덩이 3기,원형구덩이 40기를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발굴된 목곽시설안에서는 각종 나무도구·그릇과 말안장·곡물·구슬이 나왔고 또 다른 유구에서 백제후기의 토기와 철기·기와등 50여상자의 유물이 수습됐다. 충남대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이 발굴한 월평동 유적지 목곽은 1차광이 동서 9백70㎝,남북 1천20㎝,깊이 1백70㎝,2차광이 동서 7백35㎝,남북 7백50㎝,깊이 3백30㎝,목곽이 동서·남북 모두 5백20㎝,깊이 1백20㎝의 규모다. 이날 공개된 월평동 목곽시설은 전체가 점토로 밀폐되어 있어 목질의 보존상태가 거의 원형에 가까워 백제시대 목조구조물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산수화 6백여점 모아 개인전 이원좌씨(인터뷰)

    ◎“심산유곡 그리며 세월 잊어요”/길이 47m 청량대운도 눈길… 2백일 걸려 완성 『한장의 스케치를 얻기 위해 인적 끊긴 심산유곡 바위틈에 끼어 앉아 너댓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내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그러나 스케치를 화선지에 옮겨 작품이 익어갈 때의 즐거움에 취해 세월 잊고 살아왔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전국 산천을 주유하며 그린 산수화를 모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29일까지)를 열고있는 야송 이원좌씨(57)­.천년여 이어져 온 전통 수묵산수화가 서구의 거센 물결에 밀려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전통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뜻에서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야송의 전시는 개인전으로서는 전시작품의 수나 규모에서 거의 파격적이어서 화제다.화선지를 이용한 그림은 물론 나무와 돌,항아리 등 다양한 재료의 산수화 6백여점을 내놓은 것.이 가운데에는 47m×6m50㎝ 크기의 「청량대운도」가 포함,눈길을 끌고있다.화선지 전지 4백장 크기인 이 작품은 경북 봉화읍에 소재하고 있는 청량산을 화폭에 옮긴초대작으로 제작 기간만도 꼬박 2백여일이 걸렸다고 한다. 야송은 지난 61년 홍대 미대에서 동양화에 뜻을 둔 이래 지금까지 줄곧 실경수묵산수화에만 전념해온 작가.그동안 명산대천을 찾아 화폭에 옮긴 작품수가 천여점을 훨씬 넘는다.이 모든 작품이 몸으로 부딪치고 마음으로 느끼며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실사작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주위로부터 『미친듯이 뛰어다니고,미친듯이 붓을 휘두르는 작가』소리를 듣는 것도 이같은 실사작업 때문이라는 야송은 남은 삶도 그렇게 지내겠다는 다짐이다.
  • 종암동 또 육교사고/청소차에 받혀 철거

    14일 상오 3시10분쯤 서울 성북구 종암동 종암2파출소 앞에서 성북구청소속 서울 7나 7789호 8.5t 청소차(운전자 양경선·42)가 육교 상판을 들이받았다. 이날 사고는 운전자 양씨가 육교의 통과제한 높이 4m를 무시하고 청소차 화물적재함의 견인용 철제고리를 위로 올린 상태에서 통과하다 철제고리가 상판을 들이받으면서 일어났다. 이 사고로 육교상판에 금이 가고 50㎝크기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면서 철근이 드러나는 등 붕괴위험성이 높아 보행인 통행이 전면 금지됐다. 경찰은 이날 하오 11시부터 7시간동안 월곡사거리에서 남종사거리사이 종암로 양방향의 교통을 전면 통제하고 사고 육교와 안전진단결과 철거 결정이 난 부근 숭내파출소앞 육교 등 육교 2개를 철거했다.
  • 삼국시대 마애불상군 발견/암벽에 불상12개·연꽃 새겨

    ◎경주 남산서/5층목탑… 보리수나무도 그려져 【경주=남윤호기자】 경북 경주시 배반동 경주 남산 동북쪽 불곡과 탑곡 사이 산기슭에서 수많은 불상과 목탑이 새겨진 마애불상군이 12일 발견됐다. 이 불상군은 높이 4m,가로 8.4m,세로 3.6m의 거대한 바위 두면에 높이 50㎝내외의 불상 12구와 5층목탑,보리수나무및 연꽃이 새겨져 있다. 서북쪽면이 산기슭에 파묻힌 이 바위에는 동쪽면에 천개를 쓴 불상을 비롯,9구의 불상을 조각하고 가운데 5층목탑을 새겼다. 또 높이 1.3m,너비 3·6m인 남쪽면에는 상반신이 잘린 3구의 불상 하반신이 확인됐다. 이처럼 대규모 불상군이 조성된 곳은 남산의 경우 탑곡 불상군을 제외하고는 이번이 처음 발견된 것으로 조성경위및 당시 신앙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불상의 뺨이 두툼하고 밝은 미소가 숨겨져 있는 이들 불상의 조각솜씨로 미뤄 이들 조각은 삼국시대인 6세기말∼7세기초 작품으로 보여 남산의 불상 가운데 감실불상과 함께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군은 경북산림환경연구소에 근무하는 최병문씨(49·경주시 배반동 1025)가 발견,이날 경주신라문화동인회및 문화재관리국의 현지조사로 불상조각이 확인됐다.
  • 조명차 3대동원… 철야 발굴작업/현장검증 이모저모

    ◎지하수 퍼내며 밤새 악전고투/지하현장 시설물 비교적 온전/땅속 소화기 폭발… 또 대피소동 ○…9일 상오 현장검증에 들어간 검찰과 경찰 합동수사부는 붕괴된 가스공급기지의 상판 콘크리트 덩어리를 제거하는데 힘썼지만 저녁때까지 40% 정도밖에 제거하지 못하자 조명차 3대를 동원,철야작업에 돌입. 이에 따라 본격적인 현장검증은 콘크리트 덩어리를 들어내는 작업이 완료될 10일 상오쯤에야 이뤄질 전망. 수사본부장인 황성진 서울지검형사3부장은 『당초에는 2∼3시간이면 현장검증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었으나 콘크리트 두께가 30∼50㎝나 되고 안에 철선이 많아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며 『10일 상오쯤 본격적인 현장검증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 더구나 상판 콘크리트를 뜯어낸 지하에서 물이 많이 나와 모터를 동원해 물을 퍼내면서 작업하는 등 악전고투. 그러나 상판 콘크리트 덩어리가 사고현장 중심의 일부 시설물 말고는 의외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눈길. 합정과 군자기지에서 들어오는 유입관등 2개의 가스관이 각각 약 5㎝정도 틈이갈라져 있고 다른 가스관 하나도 이음새 부분이 20여㎝ 정도 절단돼 있었으며 전동모터와 밸브등이 일부 찌그러진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멀쩡한 상태. 검증작업에 참가한 가스기공의 한 직원은 『이 가스기지 시설은 웬만한 폭격에도 견딜 수 있는 방폭용』이라고 그 까닭을 설명. ○…하오 7시쯤 사고대책본부가 마련된 아현3동사무소에는 실종자로 분류됐던 김인양씨(27·여·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언니등 가족들이 나와 사망자로 분류돼 이제까지 조수옥씨(38·여)라고 알려진 사망자가 김씨라고 주장하고 나서 대책본부측은 난감한 모습. 대책본부측은 손과 얼굴 모양 등 시신의 전반적인 윤곽이 김씨와 비슷하다는 가족들의 설명이 일부 타당성이 있다고 보고 세림간호병원에 김씨의 빈소를 따로 마련해주는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시신확인 작업을 의뢰키로 결정. ○…현장검증에서는 실종자 가족들이 흥분,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우려한 경찰측이 실종자가족 가운데 한사람만을 대표로 입장시키고 다른 가족들의 접근을 봉쇄,한동안 실랑이. 이때문에 실종자가족 20여명은 『가족들이 현장을 지켜봐야 시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아니냐』고 오열하며 이를 막는 경찰과 한때 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포클레인으로 현장을 파내려가던 하오2시20분쯤 갑자기 폭발음과 함께 흰 연기가 치솟아 감식반원들과 주변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을 연출. 그러나 이 폭발음은 가스폭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흙속에 묻혀 있던 소화기가 포클레인에 찍혀 터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 ◎재구성 해본 사고순간/하오1시/점검반 도착→밸브차단→잔류가스배출/하오2시/주민 냄새신고→누출조사→“쉬”… “꽝” 아현동 가스폭발사고를 현장검증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9일 『이번 사고는 관내 압력이 9.5㎏/㎠에 이르는 고압가스가 갑자기 대량으로 누출돼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혀 작업팀이 기기를 점검하다 갑자기 가스가 누출되면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현장검증에서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사고 순간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가스기공 직원 박상수씨등 7명의 작업팀이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도시가스정압기지에 도착한 것은 7일 하오 1시쯤. 아현가스기지의 밸브내부에서 가스가 유출된다는 사실을 한국가스기술공업으로부터 통보받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아현1동606 도로공원안 가스기지 출입구주변에 모여 우선 작업도구를 점검했다. 주변에는 어린 아들과 함께 김인향씨(27·여)등 주민 10여명이 초겨울의 햇볕을 즐기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1시간50여분후 대형참사가 빚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작업반원들은 출입구 철문를 열고 계단을 통해 지하 5m에 설치된 가스기지로 내려갔다.이들은 가스관의 양쪽 밸브를 신속하게 차단하고 가운데 부분에 칸막이(블라인드 플레이트)를 설치했다. 밸브는 가스유입부분이 수동식,반대부분이 전동식으로 돼 있었다. 이어 이들은 파이프 위쪽에 위치한 직경 5㎜의 가스유출콕을 틀어 밸브내부의 가스를 통풍구를 통해 빼내기 시작했다. 가스를 보다 빨리 빼내기 위해 지하실 입구에 설치된 대형 환풍장치를 계속 돌렸다. 지하실입구로통하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작업을 서두르던 이들은 하오 2시쯤 가스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호소하는 주민 박영명씨(54)에게 『지하실에서 가스를 빼내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밀했다. 작업진척도로 봐서는 별 문제 없이 작업을 완료할 것 같아 보였다. 하오 2시5분쯤 양쪽으로 차단된 가스관내부에서 가스를 빼냈다.곧바로 차단된 부분 바깥에서 가스량과 가스압력을 측정하기위해 소형계량기와 압력측정기(프레셔게이지)를 이용,차단된 부분에서 가스가 새어나오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6분쯤뒤 갑자기 「쉿」하며 고압으로 가스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순간 이들은 뭔가 잘못됐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수동식 밸브로 완전히 차단돼 있는줄 알았던 가스관쪽에서 엄청난 양의 가스가 유출되고 있었다. 이들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면서 우왕좌왕했고 하오 2시52분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지하실이 불바다로 변하며 천장 슬라브가 무너져내렸다.
  • 백제 초기 대형제철로 첫 발굴/길이 2백50㎝·너비 50㎝

    ◎충북진천군서/3세기말∼4세기초 제조 추정 백제초기의 제철기술을 실증하는 대형제철로와 동아시아 최고의 것으로 보이는 사철 제련로가 국내 최초로 발굴되었다. 제철로는 한반도에서 처음 출토된 것이어서 이일대가 고대 철의 주생산지였음이 밝혀지게 됐다. 국립청주박물관 발굴조사단(단장 이영훈)은 지난달 5일부터 조사한 충북 진천군 덕산면 석장리 381번지의 밭 3백여평 일대에서 백제시대의 제철로 4개와 아직 성격이 확인되지 않은 웅덩이 2개를 비롯,삼국시대의 바닥이 둥글고 목이 짧은 형태의 토기와 토기편 등을 대량으로 찾아냈다고 15일 밝혔다. 특히 노안의 길이가 2백50㎝,너비 50㎝규모인 대형제철로 제4­1호 노와 제철다음의 단계에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는 노안의 길이 1백10㎝,너비 50㎝규모의 제4­2호 노는 길이 6백40㎝,너비 600㎝정도의 방형에 가까운 구덩이에서 함께 발견되었다. 평면 세장 방형 상형로 추정되는 제4­1호는 현재 약 20㎝ 높이의 노벽과 슬래그를 배출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약 1백50㎝ 길이의 배재구가확인되었고 또 노주변의 구덩이 바닥에서는 철광석도 함께 출토되었다. 이와 함께 길이 4백㎝,너비 3백80㎝,길이 40∼10㎝의 구덩이에서 확인된 평면타원형의 사철제련로는 거의 파괴된채 가로 40㎝,세로 50㎝정도의 바닥부문만 남아 있었다. 구덩이의 북서쪽 일부에서 사철을 쌓아 둔 것이 확인되었고 또 벽면에서는 제련로의 벽체편,송풍관편 등이 발견되었다. 또 가로 1백㎝,세로 2백㎝ 범위에서 아직 평면형태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제철로와 노의 안지름이 1백15∼1백20㎝정도의 원형로 등이 함께 나왔다. 발굴조사단은 『제4­1호 제철로는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초대형 고대제철로의 실례로서 형태상 일본의 고대 제철로인 상형로의 조형으로 추정되어 백제의 제철기술이 일본으로 전해졌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이번에 확인된 사철제련로는 동아시아지역에서 발굴된 최고의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번 유적의 연대는 주변에서 나온 토기 등으로 보아 대체로 3세기말에서 4세기초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영동 이틀째 폭설/미시령 적설량 60㎝/대관령 등 곳곳 통행제한

    【춘천=조한종기자】 이틀째 내린 폭설로 강원도 영동지방에는 항공기가 결항되고 고속도로 국도등의 통행이 제한되는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14일 하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15일 하오4시 현재 미시령이 최고 60㎝의 적설량을 보인것을 비롯,설악산 대청봉 50㎝,대관령 30㎝,진부령 21㎝,진고개 28.9㎝,백봉령 20㎝를 기록,올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이틀째 내린 눈으로 인제군 용대리∼고성군 원암리를 잇는 466번 미시령의 차량통행이 전면 통제되고 있으며 영동고속도로 대관령구간과 인제군 한계리∼양양을 잇는 한계령도로등에서는 8t이상의 화물차량과 체인등 월동장구를 갖추지 않은 차량의 통행이 제한되고 있다. 특히 대관령구간에서는 차량들이 뒤엉켜 화물차량 수십여대가 중턱에서 이동하지 못하고 서 있는등 혼잡을 빚었다. 또 15일 상오1시10분쯤 인제에서 미시령정상으로 오르던 대구5바 2122호 대구문화관광버스등 관광버스 3대가 눈속에 고립돼 관광객 91명이 9시간동안 추위에 떨기도 했다. 항공편도 서울∼속초를 오가는 하루왕복7편의 여객기운항이 이틀째 중단됐으며 서울∼강릉,강릉∼부산을 오가는 항공기도 14일 하오부터 끊겨 설악산과 동해안을 찾은 1천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묶였다.
  • 부산 동삼동 신석기인의 조개탈(한국인의 얼굴:5)

    ◎가리비조개 껍질로 만든 「신앙 가면」/지도자의 위엄 과시… 무서운 얼굴 강조/실제론 퀭한 눈·벌린 입의 우스운 모습 우리나라 해안에는 선사시대의 쓰레기 매립장이 여러 곳에 분포한다.속살을 발라 먹고 내다버린 조개껍질 따위를 한군데다 차곡차곡 쌓아 제법 큰 동산들을 이루고 있다.이는 신석기시대 문화상을 밝히는데 더 없이 귀중한 자료들이 묻힌 조개더미(패총)유적이다.타임캡슐의 보고 구실을 한 쓰레기 더미라고나 할까….그러나 이들 유적은 무공해 쓰레기로 채워졌다. 한반도 남단의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바닷가 조개더미도 바로 이런 유적이다.이 유적에서는 얼굴을 가리는데 실제 사용되었을 법한 조개탈이 나왔다.길이가 11.5㎝나 되는 조개껍질에 두 눈과 입을 뚫어 사람얼굴모양을 나타냈다.탈은 신앙가면의 일종이다.원시사회에서는 집단생활을 위해 비인간적으로 가장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다.위엄을 갖춘 권력자로 군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신석기인들은 지극히 비인간적인 무서운 모습의 형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상상력에한계가 있었던 이들은 신령이나 악귀·요귀를 표현하는데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결국은 동삼동 탈이 보여주는 것처럼 신석기인 자신들을 닮은 얼굴을 만들어낼 도리 밖에 없었다.퀭한 눈과 딱 벌린 입이 무섭기 보다는 우습다. 동삼동 신석기인들이 만든 탈의 소재는 가리비과에 속하는 조개.개흙질이 적은 남해안 일대에 서식하고 있다.1963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조개더미를 발굴했을 때 31종의 조개류와 고래뼈·사슴뼈 등이 조사되었다.고래뼈는 동삼동 사람들이 먼 바다에 나가 잡은 포경 활동의 산물인지,아니면 연안해변에 들어온 것을 막대기로 때려잡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그러나 동삼동 사람들의 해양활동이 대단했다는 정황은 얼마든지 있다. 이들의 해양활동은 일본 규슈(구주)로 연결되었다.동삼동 사람들이 만든 빗살문(즐문)토기가 일본 신석기문화의 대표유물 소바타(증전)토기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소바타토기가 쏟아져 나온 일본 나가사키(장기)이웃 아기리키(이목력)유적에서는 일본에는 없고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광엽수종(광엽수종)의 통나무배(길이6백50㎝,너비76㎝)가 발굴되었다.이 배는 과학적 방법의 연대측정에서 지금으로부터 5천6백여년전에 만들어진 유물로 밝혀졌다.그러니까 이 배는 소바타토기가 만들어진 서기(BC3500∼3000년)보다 약간 앞서 해류와 노에 의존해 일본 큐슈지방에 당도,토기문화를 전파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다. 동삼동 사람들은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흑요석을 싣고 귀항했다.조개더미에서 나오는 흑요석 석기들의 원산지가 일본 규슈지역 고시다케(요악)라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그래서 동삼동 조개더미는 대단한 신석기유적으로 평가된다.모두 5기의 층위를 가진 이 유적은 지금으로부터 7천년전에서 1천년전에 이르는 시기에 버린 조개껍질 토기조각 등으로 이루어졌다. 조개더미 맨 아래층에서는 강원도 양양 오산리유적 출토품과 같은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덧무늬(융기선문)토기가 나오다가 위로 올라가면서는 빗살문토기가 집중 출토되었다.그리고 뼈낚시바늘과 함께 연해주쪽과 규슈 쪽의 신석기토기가 쌀의 뉘처럼 이따금씩 끼어나왔다.영토개념은 없었던 시대라 할지라도 출토유물은 가히 국제적이다.당시 동삼동은 오늘의 홍콩과 같은 원시 중개무역항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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