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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약대생 시신 실종 2개월 만에 주검으로 발견

    일본 약대생 시신 실종 2개월 만에 주검으로 발견

    실종 사실이 알려진 후 일본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됐던 여대생이 2개월여 만에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 일본 경찰은 지난달 31일 이바라키현의 한 공터에서 약 50㎝ 깊이에 묻혀 있던 일본약과대학 1학년생(18)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 학생을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무직인 35세 용의자를 체포했다. 용의자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피해자와 자신의 차 안에서 시비를 벌이다가 죽인 뒤 자신의 집에서 13㎞가량 떨어진 공터에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용의자는 이전에도 SNS로 알게 된 여고생에게 현금을 주고 음란 행위를 한 혐의로 체포돼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피해자는 지난해 4월 고향에서 약사의 꿈을 안고 도쿄로 상경했다. 지난 11월 20일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칸스시의 편의점 앞에서 용의자를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피해자의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를 특정한 뒤 체포해 자백을 받아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침 뱉고, 화분 던지고, 사다리 걷어차고…공소장 속 이명희 ‘갑질폭행’

    침 뱉고, 화분 던지고, 사다리 걷어차고…공소장 속 이명희 ‘갑질폭행’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70)씨의 ‘특기’는 물건 집어던지기였다. 물컵, 책, 삼각자, 밀대, 꽃, 철제 전지가위, 열쇠 뭉치 등등 다양했다. 고성과 욕설은 기본이었다. 자택에서 3m 높이 사다리에 올라 작업 중인 직원이 일을 빨리 하지 못한다며 사다리를 걷어차 이 직원이 사다리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신응석 부장)가 지난달 말 이명희씨를 상습특수상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대한 법률 위반(운전자 폭행 등),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할 때 낸 공소장에는 그간 이명희씨가 ‘갑질’을 자행할 당시의 녹취 파일과 피해자·목격자들의 증언, SNS 폭로 등을 통해 알려진 폭언·폭행 사례가 범죄 사실로 정리돼 있다. 이씨는 2011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운전기사 등 직원 9명에게 욕설을 하고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명희씨의 폭행은 지근거리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운전기사가 큰 피해를 입었으며, 자택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수시로 ‘갑질 폭행’을 당했다. 이명희씨는 약속 시간에 늦게 된 운전기사의 얼굴에 침을 뱉은 뒤 “우측에 차 세워”라며 욕설과 함께 고성을 질렀다. 빨리 가자는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이 담긴 플라스틱 컵을 운전기사의 머리를 향해 집어 던지기도 했다. 운전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에는 “누굴 죽이려고!”라며 욕설과 함께 운전석 시트를 발로 찼다. 식재료(생강)를 충분히 사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원을 문지방에 무릎 꿇게 한 뒤 책을 집어던져 왼쪽 눈 분위를 맞췄다. 걸레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플라스틱 삼각자를 던져 턱에 맞추기도 했다. 40∼50㎝ 길이의 밀대를 이마에 집어 던지기도 했다. 녹음파일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됐던 것처럼 찢어지는 듯한 고성과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도 항상 뒤따랐다. 자택에 있는 나무 신발장을 청소하며 기름을 많이 묻혔다는 등의 이유로 직원 허벅지를 찬 사례도 세 차례 등장했다. 화초의 줄 간격을 맞추지 못했다며 “너는 초등학교도 안 나와서 줄도 못 맞추냐”라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고, 꽃 포기를 뽑아 집어던져 직원 눈에 흙이 들어간 일도 있었다. 화를 내며 던진 난 화분이 깨지지 않자 다시 집어오라고 한 뒤 직원을 향해 던져 깨뜨린 정황도 있었다. 이 밖에도 필리핀 여성을 대한항공 직원으로 속여 입국시킨 뒤 가사도우미로 불법 고용한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로도 기소된 상태다. 지난달에는 해외에서 구매한 명품 등을 밀수입한 혐의(관세법 위반)로 인천본부세관이 이명희씨와 두 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를 검찰에 송치해 이명희씨가 받을 재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온 ‘중랑 관광’

    용마산·중랑천 등 지역관광명소 ‘가득’ 주민센터·구청 배치… 영어판 계획도 서울 중랑구의 각종 볼거리와 편의시설을 한눈에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서울 중랑구는 지역 내 명소에 대한 최신 정보를 수록한 ‘중랑구 관광지도’를 제작했다고 16일 밝혔다. 중랑구 관광지도는 가로 70㎝, 세로 50㎝ 크기의 3단 8접 형태로 휴대성이 좋고, 도로명주소 위치정보(DB)를 기반으로 디자인해 중랑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도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했다. 용마산, 망우산, 봉화산과 중랑천 등 주변 자연경관과 함께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인물 50여명이 잠들어 있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을 비롯해 아차산 봉수대터, 13도 창의군탑, 숙선옹주묘, 경동제일교회 등 문화유적지, 다양한 둘레길 등을 모두 담았다. 장미터널이 이어지는 ‘서울장미길 코스’, 역사적인 인물들의 명언을 읽으며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인문학길 사잇길 코스’, 봉화산 주변 역사유적지와 함께 옹기테마공원 체험까지 즐길 수 있는 ‘봉화산 코스’ 등 8개 관광코스 정보도 포함했다. 이 밖에 지하철 역사, 시장, 공공기관 등을 함께 표기해 구민들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동주민센터나 구청 부동산정보과에 있다. 서울장미축제가 입소문을 타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향후 관광지도를 영어로도 제작한다는 방침이다. 김항수 부동산정보과장은 “이번 관광지도를 시작으로 경제, 복지, 안전, 의료 등 테마별 지도를 한 권에 모은 책자형 지도, 글로벌 지도 등을 순차적으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만지면 복 받는 섬진강 황금 두꺼비 조형물

    만지면 복 받는 섬진강 황금 두꺼비 조형물

    경남 하동군 섬진강 다리 앞에 액운을 물리치고 복과 행운을 부르는 황금 두꺼비 조형물이 설치됐다.하동군은 13일 하동청년회의소(JCI)가 영·호남을 잇는 최초의 다리인 옛 섬진교 앞에 섬진강 황금두꺼비 조형물을 설치해 오는 19일 제막식을 한다고 밝혔다. 두꺼비 조형물은 오는 19일 창립 50주년을 맞는 하동청년회의소가 전설로 전해지는 섬진강 황금두꺼비의 희생정신을 통해 청년정신을 되새기고, 지역 역사성을 알리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설치했다. 한자로 ‘두꺼비 섬(蟾)’자를 쓰는 섬진강 명칭은 두꺼비와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1385년(우왕 11) 왜구가 강 하구를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도망쳐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으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하동청년회의소와 스토리텔러, 조각가, 향토연구가 등은 633년전 섬진강 두꺼비의 기적과 행운이 다시 발원돼 하동 100년 미래가 번창하고 도약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황금두꺼비 조형물을 제작했다. 황금두꺼비 조형물은 봄이되면 섬진강변을 뒤덮는 벚꽃문양을 형상화한 화강암 받침석에 섬진강변 만지마을 배밭에서 출토된 매화석으로 조각한 크고 작은 두꺼비 5마리가 앉아 있는 모양이다. 폭 1.2m, 높이 1m 크기 큰 두꺼비(복두) 1마리와 폭 30∼50㎝, 높이 25∼30㎝ 크기 작은 두꺼비 4마리로 행운을 불러다주는 복두, 불운과 액을 막아주는 업두, 자식에 대한 소원을 이뤄주는 떡두, 사랑을 이뤄주고 유지시켜주는 짝두, 100년을 바라보는 혜안과 지식을 얻게 해주는 덕두 등 다섯 마리다. 군은 섬진강 황금 두꺼비 조형물에 있는 다섯 마리 두꺼비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나 소원이 이뤄진다는 행운의 스토리 텔링을 섬진강 두꺼비 전설을 토대로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함께 살아가기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함께 살아가기

    한파가 맹위를 떨치는 나날입니다. 밖에서 놀던 고양이들 들어오기 바쁜 날들이지요. 집고양이들뿐만 아니라 길고양이까지 새끼 데리고 몰래 들어와 밥 먹고 가기 바쁜 날들입니다. 고양이들만 들어오면 좋으련만 새도 사냥해서 들어오고, 쥐도 물고 들어오고 얼마 전까지 뱀과 도마뱀까지 데리고 들어오곤 했습니다.기겁할 노릇이지요. 보통 이런 경우 보은했다고, 은혜 갑으려고 한다고도 하는데 자주 보다보니 과연 그런가 싶습니다. 살아있으면 계속 가지고 놀다가 죽으면 본체만체 다시 밖으로 나가버리고 맙니다. 덩그러니 놓여진 죽은 녀석들. 보는 것도 싫은데 처리하려니 처음엔 어찌나 끔찍하던지 집게로 집는데 그 촉감이 쇠붙이를 통해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이 혐오감은 고양이들이 던져주는 숙제가 되었습니다. 혐오감이란 대부분 학습된 것으로 대상을 잘 모르기에 두려움이 커진다 했습니다. 그래 우선 잡아오는 녀석들 이름과 생태를 알아가기로 했습니다. 집 주위엔 밤나무가 꽤 많은 편인데 밤나무가 많으면 뱀이 많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밤과 도토리가 많으니 쥐뿐만 아니라 다람쥐 청설모 등 설치류가 많아지고 자연스레 그를 쫓는 족제비, 너구리, 뱀도 흔하다 합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잘 이루어져 있는 장소인 셈입니다. 이해는 되지만 혐오감을 줄이기는 쉽지 않은데 여전히 쥐를 보면 때려잡기 바빴고 빗자루를 길게 잡고 쓸어 담으면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쉽게 무뎌지지 않던 혐오감은 멀리 있는 걸 집기 위해 사 놓은 1m 되는 만능집게를 사용하며 사라졌습니다. 참 별스럽지요. 여전히 싫기는 해도 진저리 나거나 소름 돋는 일 없이 쥐를 잡아 들어 치우고 뱀도 척척 집어 들어 산으로 풀어주며 이제 고양이에게 잡히지 말고 어서 도망가라 합니다.왜 이렇게 바뀌게 되었을까요? 대상을 치우는 도구가 50㎝에서 1m로 좀 길어진 것뿐인데 마음이 이리 달라진 것이 참 신기합니다. 적정거리라는 게 있는 것일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함께 살아가는 것을 결정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 묻게 됩니다. 주인이 따로 없고 함께 어우러져 가는 것이 자연일텐데 그저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혐오한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없앨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존재를 허락받는 건 아니지요. 혐오는 혐오하는 사람의 것일 뿐. 그렇기에 어떻게 함께 살지 고민하는 것이 사람의 몫 아닐까요. 우리가 쉬이 혐오하는 대상이라 해서 존재 이유가 없는 건 아닙니다.
  • 현실판 옥자?…거대 근육 가진 소 ‘벨지안 블루’ 사진 논란

    현실판 옥자?…거대 근육 가진 소 ‘벨지안 블루’ 사진 논란

    최근 덩치가 너무 커 살아남은 호주 최대 소의 사연이 알려진 후 이와 유사한 소의 사진이 공개됐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 등 해외언론은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는 거대한 소의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되고있다고 보도했다. 한 눈에 봐도 믿기지않을 만큼 거대한 근육을 자랑하는 이 소는 ‘벨지안 블루'(Belgian Blue)라는 이름의 품종이다. 어찌보면 근육량 때문에 무척 건강해보이지만 이면에 숨은 진실은 씁쓸하다. 벨지안 블루는 19세기 육종업자들이 교배를 통해 우연히 만들어낸 품종이다.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일반 소보다 근육량이 2배나 많은 슈퍼 근육이 탄생한 것으로 육질이 좋고 단백질이 많아 인기가 높다. 마치 영화 '옥자'에 등장하는 슈퍼 돼지의 소 판인 셈이다.     이번에 온라인 상에 논쟁을 일으킨 이 소는 벨지안 블루라는 것 외에 어디서 사는 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근육이 너무 많아 주인이 스테로이드를 주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있다. 국제 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측은 "농장에서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같은 유전자 변이 동물이 생겨난다"면서 "벨지안 블루는 임신, 출산은 물론 건강 상의 심각한 문제를 갖고있다"고 밝혔다. 실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벨지안 블루는 특이한 유전형질 때문에 심장과 뼈, 관절 등 여러 합병증으로 조기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이에앞서 호주 ABC뉴스는 지난달 28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州) 남서부 레이크 프레스턴에 있는 한 농장에서 살고 있는 호주 최대 소 ‘니커스’를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 7살 된 니커스는 젖소의 일종인 홀스타인종 수소로, 원래 비육우용으로 키워졌다. 이는 질 좋은 고기를 많이 내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살이 찌게 기르는 소를 말한다. 니커스의 현재 키는 194㎝, 몸무게는 1.4t에 달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홀스타인 수소보다 키는 약 50㎝, 몸무게는 2배 정도 큰 것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덩치가 너무 커 살아남은 호주 최대 소의 사연

    덩치가 너무 커 살아남은 호주 최대 소의 사연

    수소로 태어나 원래 도축될 운명이었던 소 한 마리가 키와 몸이 너무 커 살아남게 된 사연이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호주 ABC뉴스 등 현지언론은 28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州) 남서부 레이크 프레스턴에 있는 한 농장에서 살고 있는 호주 최대 소 ‘니커스’를 소개했다.올해 7살 된 니커스는 젖소의 일종인 홀스타인종 수소로, 원래 비육우용으로 키워졌다. 이는 질 좋은 고기를 많이 내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살이 찌게 기르는 소를 말한다. 니커스의 주인이자 농장주인 제프 피어슨은 원래 이 소를 생후 20개월 때 수출용 도축 공장으로 보냈었다. 하지만 니커스의 몸이 너무 커 자동화된 공장 라인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 피어슨은 “이미 매출량이 매우 높아 니커스는 운 좋게도 농장에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니커스는 농장에서 두 번째 삶을 얻게 됐다. 니커스는 현재 이 농장에 있는 소들 가운데 서열이 가장 높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머지 소들 역시 그를 따라 이동한다는 것.그후 니커스는 점점 더 성장해 현재 키는 194㎝, 몸무게는 1.4t에 달한다. 이는 일반적인 홀스타인 수소보다 키는 약 50㎝, 몸무게는 2배 정도 큰 것이다. 여기서 키는 앞발 발굽부터 어깨까지의 높이를 말한다. 현지 수의사 루퍼트 모슬은 "소의 건강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큰 수소는 본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사실 홀스타인종이 평균보다 크게 자라는 경우는 드문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30~40년간 소의 평균 크기가 상당히 커졌다”면서 “우리는 품종이 좋은 소를 선택하고 있으므로 소들은 더 크게 자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니커스는 현재 호주에서 가장 큰 소로 알려졌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소는 아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살아있는 소는 이탈리아에 사는 ‘벨리노’라는 이름의 수소다. 키아니나종인 벨리노는 지난 2010년 로마에서 진행된 공식 측정 행사에서 키 2.027m를 기록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플라스틱의 경고-아귀 배에서 생수병 통째로 발견돼

    플라스틱의 경고-아귀 배에서 생수병 통째로 발견돼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잡힌 아귀 뱃속에서 20㎝ 크기 플라스틱 생수병이 발견돼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환경 오염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23일 전북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지난 19일 부안 앞바다에서 꽃게잡이를 하던 어민 황모(48)씨는 그물에 걸린 몸길이 50㎝ 아귀를 건져올렸다. 황씨는 항구로 돌아와 아귀를 손질하던 중 뱃속에서 플라스틱 생수병(500㎖)을 발견하고, 환경운동연합 회원인 이인규(53)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씨는 “보통 아귀는 물고기를 한 번에 삼키는 경우가 많아 오징어 같은 다른 생물이 있을 줄 알고 배를 갈랐는데 플라스틱 생수병이 있어서 어민이 놀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귀 뱃속에서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나 볼펜 등이 발견된 적은 있지만, 생수병이 통째로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환경운동연합은 바다 무법자인 아귀 뱃속에서 대형 플라스틱이 발견된 것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며, 근본적인 쓰레기 수거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눈에 보이는 연안 쓰레기는 어민들의 노력으로 개선이 가능하지만, 바다를 떠도는 플라스틱은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일상에서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정부 차원의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독도 인근서 한·일 어선 충돌… 우리 선원 전원구조

    독도 인근서 한·일 어선 충돌… 우리 선원 전원구조

    독도 인근 대화퇴 해역에서 한·일 어선 2척이 충돌해 우리 측 어선이 침수됐으나 승선원 13명은 모두 구조됐다. 15일 오전 9시 38분쯤 독도 북동쪽 333㎞(180해리) 인근 해상에서 48t급 연승어선 문창호(통영 선적)와 일본 국적의 어선 등 2척이 충돌했다. 사고로 문창호는 선미 50㎝가량이 침수한 상태로 이날 오후 현재 자체 배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문창호에는 13명이 타고 있었으나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민간 어선 2척에 의해 40여분 만에 전원 구조됐다. 해경과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피해 어선 선원 13명 전원이 구조 완료됐으며 인명 피해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사고를 당한 문창호는 지난 10일 울산 방어진에서 출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충돌한 일본 선박은 164t급 세이토쿠마루호로 8명이 타고 있었으며 역시 인명 피해 없이 사고 해역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소식을 접한 우리 측은 이날 오후 1시 12분쯤 경비함 2척과 관공선(무궁화 32호) 1척을 사고 현장에 급파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보다 이른 오전 10시 26분쯤 함정 1척을 현지에 급파했다. 동해해경은 선원들을 상대로 사고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해경 관계자는 “아직 선원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 정확한 사고원인을 알 수 없다”며 “사고 현장에서 복귀하면 충돌 원인 등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해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라돈 논란’ 생리대, 안전기준 적합”…라돈 마스크·침구 추가 발견

    “‘라돈 논란’ 생리대, 안전기준 적합”…라돈 마스크·침구 추가 발견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폐암을 유발하는 방사성물질 라돈이 검출됐다는 논란이 일었던 ‘오늘습관’ 생리대에 대해 안전기준에 적합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원안위는 2일 “‘오늘습관’ 생리대 및 여성용 기능성 속옷라이너 ‘미카누’를 평가한 결과 두 제품 모두 생활방사선 안전관리법상 안전기준을 초과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50㎝ 떨어진 곳에서 두 제품의 라돈과 토론 농도를 측정했지만 이 물질들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원안위에 따르면 생리대를 피부에 밀착해 매달 10일씩 1년간 총 2880시간을 사용했다고 가정해도 법에서 정한 가공제품 안전기준인 연간 피폭선량 1mSv 이하인 0.016mSv인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생리대 제조업체 동해다이퍼를 조사한 결과 신고되지 않은 패치를 사용한 것이 확인돼 ‘오늘습관 순면중형생리대’ 등 4개 제품을 약사법에 따라 회수 조치한다고 밝혔다. 회수 대상은 ‘오늘습관 순면중형 생리대’(유통량 7만 8078팩), ‘오늘습관 순면대형 생리대’(유통량 3만 7978팩), ‘힐링큐브 생리대 중형’(유통량 6726팩), ‘힐링큐브 생리대 대형’(유통량 4660팩) 등이다. 한편 원안위는 이날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된 미용 마스크와 침구 등 3개 제품에 대해 수거 명령을 내렸다. 원안위는 “지이토마린의 미용 마스크 ‘채르메’, 앤지글로벌사가 수입한 ‘천연라텍스 매트리스 슈퍼싱글 5㎝’, 홈케어가 수입한 ‘에버조이 잠드림’ 메모리폼 베개 등 3개 제품에 대해 행정조치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3개 제품 모두 피폭선량이 안전기준(연간 1mSv)을 초과했다. 미용 마스크의 경우 1년에 754시간을 쓰면 연간 피폭선량이 최대 11.422mSv인 것으로 분석됐다. 업체에 따르면 이 마스크는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생산·판매됐고 2013년 이후 총 2287개가 생산돼 1403개가 팔렸다. 라텍스와 베개의 경우 매일 10시간씩 1년에 3650시간을 썼을 때 연간 피폭선량은 각각 최대 5.283mSv, 8.951mSv으로 나타났다. 수거 수량은 매트리스 33개, 베개 696개로 추정된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단독]국내 최대 크기의 조선시대 달항아리가 확인됐다...높이 55㎝

    [단독]국내 최대 크기의 조선시대 달항아리가 확인됐다...높이 55㎝

    서울 안암동 한 카페에 전시···“최고의 명품은 아냐”“18세기 광주 관요서 제작된 듯···정밀 감정 필요”달항아리. 보름달처럼 둥글면서도 높이가 40㎝ 이상 되는 유백색의 조선시대 항아리(백자대호)를 말한다. ‘도자기 강국’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양식으로, 한국미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는 우리 고유의 도자기다. 17세기에서 18세기 제작돼 남아 있는 달항아리는 채 20점이 못 되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 문화재다. 이런 달항아리 가운데 국내 최대 크기의 기록을 새로 썼다.이번에 새로 확인된 달항아리는 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 55.0㎝였다. 이는 그동안 국내 최대 크기로 알려진 국보 262호 백자 달항아리(우학문화재단 소장)의 높이 49.0㎝보다 무려 6.0㎝가 더 큰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이 달항아리는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옆 개운사 뒷쪽의 카페 봄에 전시돼 있다. 카페 이용객은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다.서울의 한 개인 수집가가 소장한 이 달항아리는 입지름 20.0cm, 밑지름 16.0cm로 확인됐다. 이름 공개를 강하게 거부한 한 전문가(65)는 “제조 기법을 감안할 때 18세기 중엽, 경기도 광주 금사리나 분원리의 관요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확한 가치 평가를 위해 정밀 감정이 필요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달항아리 소장가(53)는 “이 달항아리의 몸체 둘레나 지름 크기는 정확히 재보지 않았지만 높이와 몸체 지름이 비슷해 보인다”고 말했다.이 달항아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표면에 ‘말림’ 현상이 많이 보인다. 말림 현상은 유약이 고르게 칠해지지 않고 얇게 칠해진 부분이 가마에서 굽히는 동안 말라 들으면서 생긴 흔적이다. 이와 관련해 미술사학자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최고의 명품 대열이 낄 것같지는 않지만 큰 형태를 멋내려 하지 않고 꾸민없는 대로 좋다”고 평했다.달항아리는 보통의 도자기와는 빚는 방법이 다르다. 높이 50㎝의 달항아리는 그동안 제조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자기를 빚을 때, 도공이 물레에 앉아서 작업하기에 크기에 제한이 따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달항아리는 항아리 위쪽과 아래쪽을 따로따로 빚어 중간 부분을 엮어붙인다. 사실상 가마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크기다. 도자기는 가마에서 구우면 수분이 빠지면서 크기가 상당히 줄어든다. 무엇보다도 별도로 만든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무게가 맞지 않거나 가마의 열이 큰 항아리에 골고루 전달되지 않아 무너져내리는 경우가 많다. 도예가 신한균씨는 “장작 가마에선 달항아리는 수십 개를 구워야 한 점 건질까 말까 할 정도로 힘들고 귀한 작업”이라고 말했다.이런 이유로 달항아리는 그 크기에 따라 가치가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러면 달항아리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 “한국 미의 본바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달항아리가 우리 것이니깐 이렇게 상찬했던 것일까.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소장한 달항아리(높이 45.0cm)에서 그 가치를 엿볼 수 있다. 1995년 7월 4일 일본 나라시에 있는 사찰 도다이지(東大寺)에서 소장하던 이 도자기를 훔치러 남성 도둑이 들었다. 경비원들이 뒤쫓아가자 절도범은 이 달항아리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무참히 깨어졌다. 경비원들이 이를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도둑은 달아났고, 이를 애지중지했던 주지 스님은 작은 가루까지 솔로 쓸어 봉투에 고스란히 담았다. 셀 수 있는 파편만 300여개가 넘었다. 오사카미술관의 요청에 따라 파편은 기증됐고, 미술관은 2년의 검토 끝에 달항아리를 복원하기로 했다. 수리·복원 전문가는 “파손된 흔적을 알 수 없도록 할 것이냐, 아니면 자세히 보면 복원 수리한 흔적을 알 수 있도록 할 것이냐”를 놓고 고르라고 하자 미술관은 수리 흔적을 알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을 선택했다.동양 사람만 좋아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백자 달항아리는 한국만의 미적·기술적 결정체”라고 했고, 영국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1887~1979)가 1935년 한국에서 달항아리를 구입해 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구매한 달항아리는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정남진 장흥에서 오는 14일 전국 바다낚시대회 개최

    정남진 장흥에서 오는 14일 전국 바다낚시대회 개최

    “감성돔의 짜릿한 손맛 보자” 바다 낚시인들의 심장을 뛰게 할 ‘2018 장흥군수배 정남진 전국 바다낚시대회’가 오는 14일 장흥군 회진면 앞바다에서 열린다. 회진면 앞바다는 40~50㎝ 크기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 감성돔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장흥군과 장흥군체육회, 한국낚시방송사에서 공동 개최한다. 이번 바다낚시대회에는 전국 200여명의 강태공과 중국 베이징에서 10여명의 낚시꾼들이 참여한다. 1억 2000만명의 중국 낚시인들이 즐겨보는 사해 TV에서도 이번 대회를 촬영해 방송할 예정이다.순위는 감성돔 최대어 2마리를 합산해 결정한다. 1위부터 10위까지는 푸짐한 시상금과 상품이 주어진다. 참가자에게는 행운권 추첨을 통해 장흥군 지역특산품을 증정한다. 조식과 중식·기념품도 제공한다. 정종순 장흥군수는 “회진 바다낚시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매년 전국 규모의 낚시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며 “국내는 물론 중국 낚시 인구 유입을 통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흥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성경 20장 필사 않는다고 딸 때린 40대 엄마에 징역형

    성경 20장 필사 않는다고 딸 때린 40대 엄마에 징역형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딸을 때리고 성경 필사를 강요한 40대 어머니가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4단독 정원석 판사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A(45·여)씨와 미국인 선교사 B(53·여)씨에게 각각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또 A씨와 B씨에게 각각 40시간의 아동학대 재발 방지 프로그램 수강을 명령했다. A씨는 2016년 3∼7월 인천시 연수구 B씨 자택 등지에서 안마봉과 드럼 스틱으로 딸 C(16)양의 엉덩이와 팔 등을 수십차례 때려 학대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는 같은 해 8∼11월 성경 필사를 하라고 딸에게 강요한 뒤 하루에 20장을 다 써내지 못한 날에는 또 안마봉으로 마구 때렸다. A씨는 허락을 받지 않고 대안학교 친구에게 연락했다거나 말대꾸를 한다며 딸을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대에 가담한 B씨도 쇠로 된 50㎝ 길이의 피리로 C양의 온몸을 수십 차례 때린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인 선교사로 활동한 B씨는 2015년 7월 같은 종교를 믿으며 알게 된 A씨로부터 부탁을 받고 그의 딸을 함께 교육했다. C양은 이들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지난해 2월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그는 학대 신고를 한 뒤에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던 중 비웃었다는 이유로 뺨을 맞기도 했다. 정 판사는 “피고인들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일종의 의식에 가까운 징벌을 했다”며 “경미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일탈을 가혹하게 응징했고 정당한 훈육의 테두리를 벗어난 신체적 폭력을 행사했다”고 전제했다. 이어 “어린 시절 부모 등으로부터 빈번하게 학대받은 경험은 성장과 발달에 직접 악영향을 끼치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아에 고착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며 “피고인들에게 재산형에 그치는 처벌을 하면 형벌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정 판사는 “피고인들이 초범이고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해 재범 억제에 필요한 성찰의 시간을 가진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발달장애 아들 둔 허강원씨의 삶그날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가명)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불혹의 나이에 키가 150㎝에서 멈춰버린 큰 아들은 질뚝거렸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렸다.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들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한씨는 2015년 4월 15일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당시 41)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지난 7월 31일, 허씨를 서울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세상과 등진 그의 삶이 달라진 건 크게 없어 보였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잖아. 노력도 많이 했고…. 지나간 일이니까”라며 애써 태연했다. 긴 설득 끝에 그의 집 앞에서 지난 삶에 대해 들었다. 아내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 청소일을 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어 때마침 그는 혼자였다. 허씨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여지는 남겼다. 노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때 예감했어. 차라리 죽었어야 했어.” 큰아들은 아내가 임신한 지 9개월째 되는 날 태어났다. 수술할 돈이 없어 산파에게 부탁했다. 어렵사리 아이는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왔지만,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산파는 도망갔고, 아내가 급한 맘에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렸다. 기적처럼 큰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렵게 살아났지만 아이는 약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섯 살이 됐지만 서지 못했다.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1급이라고 했다. “요즘 눈으로 생각해 보면 장애를 둔 아이를 키우는 게 짜증 날 일도 아니잖아. 근데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허씨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다. 25살 경기 동두천 내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전역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28살 아내와 혼인해 다음해 큰아들을 가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중랑구 근처 면도칼 공장에서 일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가진 기술이 없으니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큰아들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인천 부평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을 포기하던 때다. 10개월쯤 지나서였을까. 특수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밥을 대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야속했다. “나아지는 것 없다”는 말에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없는 살림에 매달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러 가며 학교를 보냈지만,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발달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머리는 알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잘하는 건 집에서 텔레비전 보기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텔레비전을 틀어 주면 온종일 봤다. 말은 대충 알아들었고, 간신히 걸어 똥오줌은 가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흘린 김칫국물을 닦고, 국물이 묻은 옷을 벗기고, 발버둥 치는 몸을 씻기는 일은 40여년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큰아들이 어렸을 땐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이웃도,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또래들이 태권도복 입고 태권도장 가는 모습을 보잖아요. 우리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찔찔찔 하는데, 사람 눈 뒤집히지. 행복할 수가 있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비관했다. 남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언제나 단정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남들은 늘 추하게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큰아들 밥 차려 주고 거두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냥 큰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얘기의 끝은 늘 아들, 딸, 며느리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소심해졌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에게도 형은 굴레였다.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했다. 부모의 마음은 미어졌다. “부모들 모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이었다. 결국 돌보는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를 센터에 보내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씨 내외는 경제적으로 늘 허덕였다. 맞벌이를 해 봐야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빌딩 청소일을 해 왔고, 허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2교대 근무 탓에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금방 그만뒀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딱 떨어뜨렸어.”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 허씨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식사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더니 뇌경색이 발견됐다. 이미 고혈압과 협심증, 류머티즘 관절염, 척추 디스크,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뇌출혈은 느낌이 달랐다. 곧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큰아들은 누가 돌봐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걷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팽팽하던 긴장의 사슬은 톡 끊어졌다. “아들을 망치로 내리쳤소. 규남이는 내가 데리고 갑니다. 정선희 당신을 만나 한평생 잘 지냈소. 규남이에겐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소이다.”(유서 전문)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쯤, 아내가 일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망치로 아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회한이 몰아치기 전에 유서를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알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파트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중간쯤 갔을까. 허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질긴 목숨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허씨는 3일간 혼수상태를 오갔지만, 끝내 깨어났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허씨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수십년간 정성 들여 보살펴 온 점을 인정했다. 고령이고 지병이 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 맏아들을 살해했다는 점 등도 참작했다. 그는 돈 때문에 큰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월 1만~2만원씩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그런 애들 불쌍하잖아….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이나마 못 하겠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불혹의 장애아들 돌보던 뇌경색 부친 “가자, 같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불혹의 장애아들 돌보던 뇌경색 부친 “가자, 같이”

    ●발달장애 자식에게 둔기 든 애끊는 父情 그날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가명)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불혹의 나이에 키가 150㎝에서 멈춰버린 큰 아들은 질뚝거렸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렸다.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들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한씨는 2015년 4월 15일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당시 41)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지난 7월 31일, 허씨를 서울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세상과 등진 그의 삶이 달라진 건 크게 없어 보였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잖아. 노력도 많이 했고…. 지나간 일이니까”라며 애써 태연했다. 긴 설득 끝에 그의 집 앞에서 지난 삶에 대해 들었다. 아내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 청소일을 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어 때마침 그는 혼자였다. 허씨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여지는 남겼다. 노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때 예감했어. 차라리 죽었어야 했어.” 큰아들은 아내가 임신한 지 9개월째 되는 날 태어났다. 수술할 돈이 없어 산파에게 부탁했다. 어렵사리 아이는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왔지만,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산파는 도망갔고, 아내가 급한 맘에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렸다. 기적처럼 큰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렵게 살아났지만 아이는 약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섯 살이 됐지만 서지 못했다.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1급이라고 했다. “요즘 눈으로 생각해 보면 장애를 둔 아이를 키우는 게 짜증 날 일도 아니잖아. 근데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허씨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다. 25살 경기 동두천 내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전역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28살 아내와 혼인해 다음해 큰아들을 가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중랑구 근처 면도칼 공장에서 일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가진 기술이 없으니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큰아들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인천 부평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을 포기하던 때다. 10개월쯤 지나서였을까. 특수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밥을 대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야속했다. “나아지는 것 없다”는 말에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없는 살림에 매달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러 가며 학교를 보냈지만,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발달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머리는 알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잘하는 건 집에서 텔레비전 보기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텔레비전을 틀어 주면 온종일 봤다. 말은 대충 알아들었고, 간신히 걸어 똥오줌은 가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흘린 김칫국물을 닦고, 국물이 묻은 옷을 벗기고, 발버둥 치는 몸을 씻기는 일은 40여년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큰아들이 어렸을 땐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이웃도,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또래들이 태권도복 입고 태권도장 가는 모습을 보잖아요. 우리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찔찔찔 하는데, 사람 눈 뒤집히지. 행복할 수가 있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비관했다. 남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언제나 단정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남들은 늘 추하게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큰아들 밥 차려 주고 거두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냥 큰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얘기의 끝은 늘 아들, 딸, 며느리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소심해졌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에게도 형은 굴레였다.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했다. 부모의 마음은 미어졌다. “부모들 모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이었다. 결국 돌보는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를 센터에 보내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씨 내외는 경제적으로 늘 허덕였다. 맞벌이를 해 봐야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빌딩 청소일을 해 왔고, 허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2교대 근무 탓에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금방 그만뒀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딱 떨어뜨렸어.”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 허씨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식사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더니 뇌경색이 발견됐다. 이미 고혈압과 협심증, 류머티즘 관절염, 척추 디스크,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뇌출혈은 느낌이 달랐다. 곧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큰아들은 누가 돌봐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걷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팽팽하던 긴장의 사슬은 톡 끊어졌다. “아들을 망치로 내리쳤소. 규남이는 내가 데리고 갑니다. 정선희 당신을 만나 한평생 잘 지냈소. 규남이에겐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소이다.”(유서 전문)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쯤, 아내가 일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망치로 아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회한이 몰아치기 전에 유서를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알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파트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중간쯤 갔을까. 허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질긴 목숨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허씨는 3일간 혼수상태를 오갔지만, 끝내 깨어났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허씨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수십년간 정성 들여 보살펴 온 점을 인정했다. 고령이고 지병이 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 맏아들을 살해했다는 점 등도 참작했다. 그는 돈 때문에 큰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월 1만~2만원씩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그런 애들 불쌍하잖아….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이나마 못 하겠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인공섬에 세워진 간사이공항, 태풍으로 초토화

    인공섬에 세워진 간사이공항, 태풍으로 초토화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로 가는 관문인 간사이국제공항이 제21호 태풍 ‘제비’의 직격탄을 맞았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는 물에 잠겼고, 공항이 건설된 인공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는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일부가 끊겨 버렸다. 승객 3000여명은 공항에 발이 묶였다. 공항을 통해 중국과 대만 등지로 수출하던 일본 반도체 업계의 피해도 우려된다. 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1994년 개항한 간사이공항은 오사카 남부 해상의 인공섬에 건설됐다. 바다 위의 공항이라는 특성상 이번처럼 강력한 태풍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항 정상화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내다봤다. 지난 4일까지 간사이공항은 일부 항공편을 예정대로 운항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3000여명의 승객이 공항에 대기했지만 예상보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자 정오쯤 2개의 활주로가 폐쇄됐다. 활주로에 물이 50㎝ 높이까지 차올랐고 제1터미널 지하와 주기장, 전기설비가 있는 기계실도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공항과 육지를 잇는 길이 3.8㎞의 다리도 통행이 금지됐다. 이런 가운데 간사이공항과 육지를 잇는 다리 주변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길이 89m·2591t)이 강풍에 휩쓸려 충돌하면서 다리는 크게 파손됐다.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간사이공항 같은 해상공항 주변을 보호하는 호안 시설의 높이에 관한 규정은 없으며 해당 해역 상황에 따라 설계를 한다. 교도통신은 항공기 이착륙에 필요한 통신설비 등이 물에 잠기면서 복구작업 장기화에 따라 일본을 찾은 관광객이 감소하는 등 경제적 피해를 걱정했다.간사이공항을 통해 반도체 부품을 수출하던 업계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오사카 세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간사이공항을 통해 수출된 화물의 금액은 약 5조 6000억엔(약 56조 2000억원)에 달한다. 도쿄 나리타국제공항 다음으로 많다. 도시바 반도체 등 일본의 부품제조 업체들은 간사이공항을 통해 중국과 대만 등 아시아권으로 수출을 해왔다. 일본 정부는 간사이공항의 복구 시점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공항 정상화가 늦어질수록 수출업체들의 납기 지연 등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고장 신고 1년 후에야 수리”… 빛바랜 ‘가판대 태양광’

    “고장 신고 1년 후에야 수리”… 빛바랜 ‘가판대 태양광’

    가로수 아래 설치로 ‘무용지물’ 되기도 용량 부족에 전기요금 절약 효과도 적어 市 “자치구에 위임”… 구청은 “관리 안 해”서울시가 ‘태양의 도시’를 만들겠다며 추진한 ‘태양광 미니발전소’ 사업이 아무런 실익도 거두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시가 전시 행정에 급급하다 예산만 축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2015년 중구·종로구에 있는 10곳의 가로판매대 지붕에 250W 태양광 미니발전소(패널)를 설치하고 시범 운영했다. 2016년에는 서대문구 일대 가판대 14곳에 확대 설치했다. 한 달에 생산되는 약 24(하루 3.2시간 기준)의 ‘친환경’ 전력으로 가판대의 냉장고와 선풍기 등 전기 시설을 가동한다는 취지였다. 패널 하나당 가격은 64만원으로, 전액 서울시가 지원했다. ‘베란다, 옥상 등 작은 공간만 있으면 누구나 설치할 수 있어요. 여러분 집에서도 지원받아 설치하세요’라는 홍보 문구가 가판대에 걸렸고, 각종 ‘인증샷’ 이벤트도 진행됐다. 하지만 도심 속 태양광 시설은 금세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고장이 나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했고, 시청에 수리를 요청해도 민원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구 종묘 공원 인근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박향양(60)씨는 “고장 났다고 신고한 지 1년 만에 겨우 수리를 받았다”고 말했다. 종각역 부근 가판대 점주 김의한(69)씨는 “수리를 받았는데도 천장에서 계속 소리가 난다”면서 “시청에 전화하면 담당자는 없고, 전화만 계속 돌리다 끊겨 버려 그냥 내버려뒀다”고 말했다. 태양광 패널이 빛이 들지 않는 가로수 아래에 설치된 곳도 있었다. 양오봉 한국태양광발전학회 회장은 “패널에 그늘이 지거나 먼지가 쌓이면 발전력이 크게 떨어진다”면서 “전기 생산량이 50~7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태양광 발전 시설의 용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로 150㎝, 세로 90㎝ 크기의 패널 한 장으로는 소형 에어컨 하나조차 가동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태양광 설비를 설치함으로써 절약되는 전기료도 2500~8000원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동대문역 인근의 가판대 점주인 이우연(66)씨는 “패널이 두 장은 돼야 한다”면서 “패널이 한 장이다 보니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고 과열만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구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 녹색에너지과 관계자는 “각 자치구의 가로 환경 관리 부서에 해당 사업의 유지·보수 업무가 위임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로구청과 중구청은 “구에서 따로 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글·사진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살인적인 폭염… 2027년까지 계속?

    살인적인 폭염… 2027년까지 계속?

    이달 초 미국 기상학회(AMS)는 ‘2017년 기후보고서’라는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는 역사상 세 번째로 더웠던 해로 나타났다. 가장 더웠던 해는 2016년, 그다음은 2015년으로 최근 3년이 기후 관측 이후 가장 더웠던 해 1~3위를 차지한 것이다.미국 해양대기관리청(NOAA)은 1~6월 기온을 바탕으로 올해가 역대 네 번째로 더운 해가 될 것으로 예측했지만 7월부터 북반구 전체를 강타하고 있는 살인적 폭염 기록을 보면 올해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럽의 기후학자들이 최악의 경우 2027년까지 매년 올해 같은 폭염이 나타날 수 있으며 폭염이 지속되는 날도 1년 중 네 달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스위스 베른대 기후·환경물리학연구소, 기후변화연구센터, 취리히연방공과대(ETH) 대기·기후과학연구소, 생물지구화학·오염역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8월 16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온난화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는 ‘해양폭염’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광범위한 지역에서 자주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해수면 온도 상승은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열대성 폭풍을 지금보다 자주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고온 다습한 날씨를 더 많이 만들어 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육지의 온도 상승까지 겹쳐 고온 건조한 공기가 더해지면 매년 여름 ‘불가마더위’가 반복될 수밖에 없게 된다. 연구팀은 기후 해석 모델 12가지를 활용해 1982년부터 2016년까지 일일 지구 해수면 온도 데이터를 비롯해 다양한 날씨 데이터를 입력, 계산한 결과 해양폭염은 최근 30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지구 평균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할 경우 해양폭염은 북극해는 물론 남극해에까지 영향을 미쳐 해빙 감소를 가속화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다른 여러 요인들과 맞물려 21세기 말 여름철 폭염의 발생 지속 일수는 평균 112일(92~129일)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놨다. 만약 지구 평균 기온 2도 상승을 막으려는 노력이 실패해 21세기 말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3.5도 상승할 경우 해양폭염은 산업화 이전보다 41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육지의 폭염 강도와 일수는 예측이 어려울 만큼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해양물리학연구소, 영국 사우샘프턴대 해양·지구과학과, 네덜란드 왕립기상연구소 공동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8월 14일자를 통해 현재와 같은 지구온난화가 계속 진행될 경우 짧게는 2022년까지, 길게는 2027년까지도 올여름과 같은 살인적 폭염이 지속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1880년부터 2016년까지 지구 표면 평균온도(GMT)와 해수면 평균온도(SST)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존에 활용되던 10개의 기후 예측 모델을 합해 미래 기후 예측을 좀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1년, 5년, 10년 단위로 기존 기후를 분석한 뒤 2018년 이후를 예측한 결과 최소 2022년, 최악의 경우 2027년까지도 올해와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비정상적 여름이 계속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플로리앙 세벨레크 CNRS 박사는 “앞으로 최소 5년 동안은 지표면과 함께 해수면 온도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겨울철 혹한 발생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면서 “폭염과 함께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같은 강한 열대성 폭풍 발생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싱가포르 난양공대, 대만 국립대, 미국 버지니아공대 공동연구팀은 8월 16일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현재와 같은 지구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2060년에는 해수면이 50㎝, 2100년에는 100㎝ 상승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연구팀은 이 같은 상황이 되면 해안 지역 도시들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켰던 규모의 쓰나미 위험을 항상 떠안고 살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냉방 극장에서 명작을!”

    [그때의 사회면] “냉방 극장에서 명작을!”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기사에 따르면 1958년 서울에서 에어컨 시설이 된 곳은 몇 개의 극장, 국회의사당, 반도호텔(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호텔), 미국 대사관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는 선풍기조차도 귀했다. 서울 서소문에 있는 서울지검 별관에는 20개의 검사실이 있었는데 선풍기가 한 대도 없었다고 한다. 검사들도 러닝셔츠 바람으로 한증막 같은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해야 했다(경향신문 1957년 8월 18일자). 밀폐된 극장 안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일은 여간한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에어컨을 설치한 최초의 개봉관은 서울 명동 중앙극장으로 1956년인 것 같다. “약진 중앙의 개가! 국내 유일의 냉동기 시설에 의한 완전냉방 성공!” 중앙극장의 두 해 뒤 광고다(경향신문 1958년 7월 11일자). 1958년 국제극장도 “근대 시설을 완비한 냉방 극장에서 이 명작을!”이란 광고를 냈다. 그해 4월 개관한 대한극장도 냉방장치를 갖추는 등 대부분의 개봉관은 에어컨을 설치했다. 여름에는 ‘냉방 완비’라는 광고가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국회의사당(현재의 서울시의회) 의원 휴게실에 냉방장치를 설치한 것은 1956년 7월 16일이었는데 단 9일 후인 7월 25일 밤 큰 사고가 났다. 암모니아 탱크를 쓰는 냉방장치는 24시간 압력을 감시해야 했는데 관리인들이 조는 사이에 탱크가 폭발해 두께 50㎝의 벽이 부서지고 관리인 두 사람이 성공회 마당까지 날아가 중상을 입었다(동아일보 1956년 7월 27일자).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는 에어컨이 없어 대형 선풍기와 빙산(얼음 덩어리)으로 더위를 견뎌야 했다. 여의도로 옮긴 새 국회의사당에는 냉방장치가 있었지만, 에어컨 가동 비용이 1976년 당시 돈으로 하루 40만원(현재 가치로 수천만원 이상)이 들어 꺼두는 바람에 의원들이 비지땀을 흘려야 했다(경향신문 1976년 7월 20일자). 1960년대 이후 완공된 신축 건물에는 냉방 장치가 처음부터 설치됐다. 1961년 준공된 명동 성모병원(현 가톨릭회관)과 구 정부청사, 1963년 완공된 장충체육관 등이다. 가정용 에어컨도 보급돼 1960년 무렵부터 백화점이나 전기상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싸 ‘그림의 떡’이었다. 1960년 당시 에어컨 값은 큰 게 65만환(현재 가치로 1000만원 내외) 정도였다. 1963년 냉방 장치를 갖춘 일제 노면 전차가 도입된 적이 있다. 그러나 서울 지하철역사와 전동차 안에 에어컨이 설치돼 찜통 전철의 오명을 면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50㎝도 안 돼…큰 개 만한 미니말 화제 ‘세계 기록 세울듯’

    50㎝도 안 돼…큰 개 만한 미니말 화제 ‘세계 기록 세울듯’

    체고가 49㎝밖에 안 되는 한살배기 미니말이 등장했다. 체고는 동물의 몸 높이로 바닥부터 어깨뼈(견갑골)까지 측정한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9일 이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를 시작한 제20회 히포스피어 국제 승마전시회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 미니말 ‘걸리버’를 소개했다. 유명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 이름을 따온 이 미니말은 아메리칸 미니어처 품종으로, 지난해 6월 러시아 북서부에 있는 이달고 조랑말농원에서 태어났다. 이날 걸리버를 데리고 나온 마주 엘레나 크리스야코바는 걸리버가 태어났을 때는 체고가 30㎝, 체중은 3㎏밖에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크리스야코바는 “걸리버는 다 자란 고양이 만큼 작았다”면서 “걸리버가 무사히 태어난 것은 기적으로 난 너무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걸리버는 대부분 아메리칸 미니어처 품종의 평균 체고인 86.4㎝의 절반 수준이다. 이날 크리스야코바가 데리고 나온 반려견과 비교하면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특히 걸리버는 현존하는 수말 중에서 가장 작은 체고로 알려졌고 완전히 성장하면 기네스 세계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작은 암말은 2001년 5월 미국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썸벨리나(엄지공주)다. 걸리버와 같은 품종인 이 갈색 말은 2006년부터 체고 44.5㎝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말이자 암말로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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