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5.18
    2026-07-22
    검색기록 지우기
  • 416
    2026-07-22
    검색기록 지우기
  • T 1
    2026-07-22
    검색기록 지우기
  • A
    2026-07-22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7-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770
  • 전씨 지나친 안보논리에 눈살/「5·17」 첫 반대신문 이모저모

    ◎“당시 북한남침 막았기에 이런 재판도 열린것”/허화평씨,국회선서 할수있게 구속정지 간청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관한 첫 반대신문이 열린 3일의 11차 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은 시종일관 「안보논리」로 5·17조치의 정당성을 역설했다.12·12사건 반대신문은 이 날 상오 공판에서 모두 끝났다. ○…전피고인은 5·17사건 첫 반대신문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이건영 3군사령관 등 정승화계열의 장성들이 합수부의 조사과정에서 『정총장의 연행배경을 오해하고 12·12때 병력을 동원했다』고 진술해 관용을 베풀었다고 주장. 전피고인은 또 검찰측이 사용하는 「신군부」라는 용어는 지난 88년 5공 청산문제가 대두되면서 정치권이 만들어 낸 신조어라며 『신군부 세력이 12·12사건 이후에 군주도권을 장악한 뒤 내란을 주도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 ○…이양우 변호사는 극심한 학원소요 등으로 80년 5월의 시국상황은 「무정부 상태」로 치달았다고 설명하면서 『당시 정국과 사회가 안정돼 있었다』는 검찰측의 주장을반박. ○…전피고인은 80년 5월의 시국수습 방안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 안보논리를 지나치게 강조,오버 페이스 했다는 지적이 일기도. 전피고인은 『당시 북괴의 남침을 막았기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고 말해,자신이 법정에 선 것과 자신의 과거 업적을 연결시키는 논리적인 비약도 전개. ○…피고인 중 유일하게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허화평피고인은 『오는 5일 국회개원식에서 선서를 할 수 있도록 2∼3일만이라도 풀어달라』고 재판부에 구속집행 정지를 간청. 허피고인의 변호인인 김재철 변호사도 『수십만의 지역주민들에 의해 선량으로 뽑혔는데 실제로 의정활동을 못하더라도 선서만큼은 하게 해 달라』고 거듭 요청. ○…장세동피고인은 반대신문에서 당시 직속상관이던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총장을 원색적인 용어로 싸잡아 비난. 장수경사령관의 경복궁 포격지시와 관련,『반란행위 이상의 정신이상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다』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정총장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기회주의자」,『총장의 직분에 걸맞지 않은 추한 모습을 보였다』고 극언. 장피고인은 특히 정총장을 겨냥해 『12·12사건의 원인제공자이며 검찰의 이중잣대와 헌재의 이중판결,5·18특별법의 소급입법 등 나라의 어리석은 꼴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맹공. 그러나 자신이 5공 청산과정과 신민당 창당방해 사건 등으로 세번 구속된 사실과 관련해서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느냐.결과적으로 역사의 발전과정으로 생각한다』고 변명. ○…이양우 변호사는 『5·17사건과 관련해 전피고인에 대한 신문항목은 8백∼9백여개』라며 4백여 항목이었던 12·12사건보다 곱절이 넘는다고 소개. ○…12·12 및 5·18사건 재판에 대한 관심이 공판횟수가 늘어날 수록 현격히 줄어드는 추세. 이날 상오 방청권을 배포한 서울지법 정문에는 5·18관련 재야단체 관계자 20여명만이 눈에 띄는 등 썰렁한 분위기.〈박은호·김성수·김상연 기자〉
  • DJ 80년2월 복권 전씨가 건의/정부 일부 관계자 반대속 관철

    ◎「5·18」 사태후 「내란죄」로 구속시켜 전두환 피고인이 지난 80년 2월 당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던 김대중씨(현 국민회의 총재)를 복권시키자고 강력히 건의한 사연은 무엇일까. 80년 2월29일 민주화 조치의 일환으로 시국사범에 대한 복권조치를 앞두고 정부의 일부 관계자들은 DJ의 복권은 안된다는 견해를 폈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민주화의 의지를 보여주려면 DJ를 꼭 복권시켜야 한다고 건의,관철시켰고 이른 바 「서울의 봄」이 왔다는 것이다. 전씨는 당시 정치상황을 서울의 봄이라고 말하게 된 것은 박정희대통령 체제하의 정치규제가 풀려간다는 뜻이지,정치·사회상황이 안정을 찾았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씨는 복권 조치 전에 DJ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DJ를 직접 만나려 했다고 밝혔다. 시국안정과 정치발전에 협조해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이다. 전씨의 지시에 따라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 면담을 주선했고 면담 일자가 결정됐다. 하지만 당시 관심의 대상이던 「3김씨」 가운데 DJ만을 만나면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자 전씨는 권 정보처장과 이학봉 수사국장을 대신 보내 만나도록 했다. DJ를 만난 권처장과 이국장은 정부의 복권조치 배경을 설명하고 시국안정에 협조해 달라는 전씨의 뜻을 전했다.서약서를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서 DJ는 내란죄로 구속됐다. 이후 DJ의 구명을 전씨에게 건의하고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생명을 구해낸 사람은 신군부의 2인자였던 노태우씨였다. 피고인측의 주장대로라면 80년 정치적 격변기에서 DJ는 전·노씨에 의해 생사의 기로를 오간 셈이다.〈박상렬 기자〉
  • “「5·17」최대통령 독자적 결단 국헌문란 내란행위아니다”/전씨

    ◎「12·12­5·18」 사건 11차공판 전두환 피고인은 지난 80년 5월17일 상오 10시 최규하대통령에게 보안사의 「시국수습 6개 방안」을 건의,최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승인했으나 국회해산은 보류토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5·17은 당시 시국상황을 인식한 최대통령이 독자적 결단에 따라 행한 정당한 국가행위라며 검찰이 주장한 국헌문란의 내란행위가 아니라고 반박했다.〈관련기사 20·21면〉 전피고인은 3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2·12 및 5·18사건 11차 공판에서 이같이 진술했다. 전피고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권정달피고인에게 시국수습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사실은 시인했으나,5·17 계엄확대는 당일 상오 최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을 얻었으며 국무회의에서 통과될 때까지 혼자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당일 낮 지휘관회의의 의결을 거쳐 저녁 신현확 총리와 주영복 국방부장관,이희성 참모총장이 최대통령에게 건의,승인을 얻은뒤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시행됐다고 덧붙였다. 국보위 설치와 관련,79년 5월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시 행정과 사법업무를 함께 처리할 수 있는 비상기구의 설치를 이미 내락받았으며,5·17 이후 이에 따라 국보위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전피고인은 『79년 12월13일 육참총장에 이희성 대장이 임명된 것은 평소 깐깐한 성품을 아는 최대통령이 13일 새벽 정승화 총장의 연행을 재가하며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지시해 이뤄졌다』며 자신의 인사개입설을 부인했다. 이 날 재판에서는 12·12 사건과 관련,최세창·허화평·장세동·허삼수·신윤희·박종규피고인 등 6명에 대한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있었으나,이들 모두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오는 10일 상오 10시 5·17사건에 대한 12차 공판을 열기로 했다. 이어 13일에는 12·12사건에 관련된 13명의 피고인에 대한 증거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박선화 기자〉
  • 「12·12」 「5·18」 11차공판/변호인 반대신문 지상중계

    ◆DB편집자주:본문생략 HRM­960604­20­01 참조
  • 「12·12」 「5·18」 오늘 11차 공판

    12·12 및 5·18 사건 11차 공판이 3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린다. 공판에서는 12·12 사건 피고인 13명 가운데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반대 신문을 마친 7명 외에 최세창 장세동 허삼수 허화평 박종규 신윤희 피고인 등 6명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진행된다.12·12 사건에 대한 신문이 끝나면 전피고인 등을 상대로 5·17 부문에 대한 반대신문이 시작된다.〈박은호 기자〉
  • 전씨 구속기간 연장/서울지법 별건 영장 발부… 최장 6개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12·12 및 5·18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29일 1심 구속시한이 다음 달 2일로 다가온 전두환피고인에 대해 직권으로 별건구속영장을 발부,구속기간을 최장 6개월 연장했다. 전피고인은 지난 해 12월3일 군형법의 반란수괴 혐의로 구속됐으나 이 날 뇌물수수 및 내란혐의 등이 추가로 적용돼 구속기간이 연장됐다. 재판부는 『전피고인이 풀려나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므로 재판부 직권으로 구속기간을 연장한다』고 밝혔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검찰이 구속된 피의자에 대해 다른 혐의를 추가해 기소하면 재판부가 직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지난 9일 노태우·이현우피고인에 대해서도 별건 영장을 발부했었다. 한편 재판부는 허화평피고인이 지난 18일 냈던 보석신청에 대해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박은호 기자〉
  • 허화평 피고인 보석신청 기각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29일 12·12 및 5·18 사건과 관련,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허화평피고인이 낸 보석신청을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박상렬 기자〉
  • 14대 의회 10대 사건/문민정부 출범서 사정·과거청산까지

    ◎5·18 특별법­정치개혁 3대입법 성과/정당 해체·신당창당 잇따라 격변 반증 29일로 파란만장한 4년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질 14대 국회의 하이라이트는 9선의원출신의 민자당 김영삼 대표가 대통령으로 당선,문민정부를 출범시킨 일이다. 문민정부 초기 서슬퍼런 개혁드라이브의 첫 신호탄은 역시 의원 재산공개였다.93년 4월 민자당 1백61명의 재산공개로 촉발된 이 파문으로 박준규 국회의장을 비롯,유학성·김재순의원 등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의원직 사퇴가 줄을 이었다. 95년 정기국회에서 민주당 박계동의원이 폭로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과거청산 정국을 개화시키는 촉매제였다.이어진 5·18 특별법 제정은 「역사바로세우기」의 법적 토대를 다졌다는 점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94년 4월3일 1년여의 협상끝에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지방자치법 등 3대 개혁입법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깨끗한 정치의 기초를 마련한 것도 몇 안되는 주요한 성과로 꼽힌다. 정당의 해체나 창당도 유독 많았다.14대대선에 실패한 김대중 당시 민주당총재와 정주영 국민당총재 등이 잇따라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의원직을 내놓은것이 신호탄이었다.국민당이 공중분해됐고 민자당을 탈당한 김종필 총재는 자민련을 만들었다.또 통합민주당이 갈라지고 김대중 총재의 국민회의가 새롭게 탄생됐다.민자당은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꿔 정치 격변기의 모습을 대변했다. 날치기 통과와 항의농성,의장공관 점거 등의 구정치의 행태도 사라지지 않았다.민주당의 12·12기소 촉구 장외집회를 비롯,이춘구 국회부의장의 지방기자실에서의 94년 예산안 통과 강행,지방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 문제를 둘러싼 야당의 의장공관 점거사태 등은 새국회에서는 사라져야할 사건들이다. 정보위가 국회 상임위에 정식으로 설치된 것도 14대 국회가 남긴 기록으로 꼽을 수 있다.〈오일만 기자〉
  • 오늘 임기만료… 14대 국회 성적표

    ◎656개 법률 제정·개정… 의원발의 17%뿐/본회의 연 42일꼴… 법안통과에 58시간 걸려/법안발의 김병오·발언횟수 조순환 의원 1위/국정조사권 5차례 발동… 백37명 당적 옮겨 14대 국회의 회기는 지난 92년 5월30일 시작돼 29일 끝난다.2백99명 의원중 임기를 끝까지 채운 의원은 2백48명이다.51명이 구속이나 사망 등으로 중도하차했다. 국회는 4년 회기중 6백56건의 법률을 새로 만들거나 고쳤다.제출된 법률안 9백2건의 73%이다.그러나 15%인 1백39건은 회기만료로 심의를 마치지 못한 채 폐기처분됐다. 통과된 법률안 가운데 의원 발의안은 1백96건으로 정부 발의안 5백67건의 3분의 1 수준이다.국회 본연의 임무인 입법활동을 정부가 주도한 셈이다.임시국회때보다 정기국회때 79%의 법률안을 처리,정기국회의 중요 활동인 예산·결산안 심의가 불충분했다는 분석이다. 법률 1건이 통과되는 시간도 역대 국회의 평균 62시간보다 4시간이 적은 58시간이다.「졸속」입법의 가능성도 있을 법하다.법률을 심의·처리하는 본회의의 개의 날짜는 총 1백67일로 1년에 42일간 열렸다. 삼임위가 열린 일수는 한 곳의 상임위가 열린 것까지 포함,총 1천3백26일로 1년에 3백32일간 열렸다.그러나 실제 법률안을 심의한 날짜는 총 3백80일로 1년으로 치면 95일뿐이다.각종 법률안이 거쳐가는 법사위가 1백13일로 가장 많이 열렸고 농림수산위 84일,내무위 82일,재정경제위 75일 등이다.반면 정보위는 13일만 열려 가장 한가했다. 4년동안 의원 1명에게 지급된 세비와 수당은 총 3억4천4만8천원으로 의원들은 월평균 7백8만4천원씩 받았다.그러나 본회의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한 「개근의원」은 32명이며 국회법에 따라 결석계를 제출한 사람은 단 3명뿐이다.나머지 2백65명 의원들은 최소한 한번 이상씩 「무단결근」한 셈이다.출석률이 60% 미만인 의원도 8명이나 됐다. 의원활동을 평가하는 잣대인 법률안 발의는 국민회의 김병오의원이 52건으로 가장 많았고 같은 소속의 박상천의원과 강철선의원이 46건과 34건으로 뒤를 이었다.여권에선 신한국당 이동근의원이 27건으로 6위에 랭크됐다.여권은 주로 당·정협의를 거쳐 정부안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1백69회 국회때부터 도입된 4분 발언은 1백31명이 신청,1백26명이 발언을 했다.자민련 조순환의원이 9번 신청에 8번 발언으로 가장 많았고 민주당 김원웅의원이 7번,신한국당에 입당한 서훈의원이 7번 신청에 5번,민주당 장기욱의원이 4번 발언을 했다. 국정조사권은 모두 5차례 발동됐다.첫번째는 지난 93년 7월 「12·12사건 및 율곡비리」와 「평화의 댐 건설 진상조사」로 동시에 진행됐으며 94년 4월에는 상무대비리 사건이 민자당 단독으로 실시됐다.같은 해 12월에는 공직자 세금부정사건이 다뤄졌고 지난 해 7월에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한편 14대 국회에서는 의원들의 당적 변경이 여느 때보다 잦았다.2백99명 가운데 1백37명이 당을 옮겨 「철새정치인」 시비를 일으켰다.회기중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창당됐고 통일국민당이 신민당,자민련과 잇따라 합당했기 때문이다. 당적을 가장 많이 바꾼 의원은 임춘원의원으로 무소속에서 민자당,통일국민당,신민당,자민련,신정당,무정파전국연합 등무려 6개의 정당을 거쳐 다시 무소속으로 돌아갔다.박규식의원도 민주당,민자당,통일국민당,신민당,자민련등 당적을 5차례나 바꿨다. 첫 당적 변경자는 북제주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92년 6월25일 민자당에 입당한 양정규의원이다.또 서울 노원을에서 민자당으로 당선됐던 김용채씨는 투표함 재검결과 당선무효 판결을 받아 임기 시작 90일만에 의원직을 내놓는 불운을 겪었으며 당시 민주당 임채정의원은 당선 재결정으로 기사회생했다. 재임중 의원직을 사퇴한 의원은 총 49명이다.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총재 정주영씨 등이 92년 대선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임했으며 14대 첫 국회의장이었던 박준규씨와 김재순 전 국회의장,박태준씨 등이 재산공개 파동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슬롯머신 사건과 동화은행 뇌물사건으로 박철언씨와 김종인씨가 각각 물러났으며 유학성,김문기,이원조씨 등도 사정한파도중 의원직을 사퇴했다.정석모,노재봉,조용직,박재홍,장재식,구천서,박정훈,박지원씨 등 전국구의원들은 당적을 바꾸는 바람에 의원직을 잃었다.최병렬,박관용,문정수,허경만,박찬종,장경우,임사빈,강우혁씨 등은 입각과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임했으며 이해찬씨는 지방선거 이후 서울시부시장직을 맡아 물러났다. 또 보궐선거로 여의도행 티켓을 거머졌던 의원은 강경식,박종웅,손학규,최욱철,이용삼,반형식,서훈,유종수,김기수,이상두씨와 박철언씨의 부인 현경자씨 등 11명이다.재임중 사망한 의원도 김재광,윤항렬,손승덕,서수종,심명보,조윤형,구자춘씨 등 7명이다. 구속된 의원도 11명이나 된다.지난 93년 4월6일 당시 민자당 이동근의원이 「옵저버지 광고」 관련으로 첫 구속자가 됐으며 이어 박철언,김종인,김인곤(정치자금 수수),최락도(알선수재),박은태(공갈),허삼수·허화평·정호용·박준병(12·12 및 5·18관련),박규식(금품 및 향응제공)등이 구속됐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서 징계요구를 당한 의원도 3명이 있다.반형식(국회발언 방해행위),이부영(반형식의원의 명예훼손),김말룡(한국자동차보험 금품수수 관련 국회노동위의 명예훼손)의원 등이지만 실제 징계를 받지는 않았다. 한편국회에서 연설한 외빈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헬무트 콜 독일총리,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고 미테랑 프랑스대통령,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강택민 중국 총리 등 6명이다.김영삼 대통령도 2차례 연설했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도 14대 국회 개회식에서 1차례 연설했다. 의원방문 외교는 국회의장 4차례를 포함,총 77차례로 3백23명의 의원이 외국을 다녀왔다.반면 국제의회연맹인 IPU회의 등 국제회의에 참석한 횟수는 31차례로 1백31명의 의원만이 의원외교 활동에 참여했다. 한편 4년동안 국회를 둘러본 참관인은 54만3천여명이며 외국인이 7천5백명,해외교포가 1천9백명이다.〈백문일 기자〉
  • “김재규 6개월전 거사계획”/이학봉피고인/「12·12」10차공판

    ◎“정 총장 「10·26」 협조… 병력 출동령” 12·12 당시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제출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문서는 전씨의 지시에 따라 12월11일 이학봉 합수부 수사국장이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관련기사 19·20·21면〉 27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10차 공판에서 이학봉피고인은 이같이 진술하고 『정총장이 10·26 당일 김재규와 함께 육본으로 온 뒤 김재규의 요청에 따라 1,3군에 비상을 발령하고 20사단과 9공수여단에 출동명령을 내리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재규는 10·26을 79년 4월에 모의했으며,거사가 성공할 경우 계엄사령부를 「혁명위원회」로 바꿔 자신이 의장,최규하 총리를 부의장,노재현 국방장관이나 정승화 육참총장을 위원장에 앉히려 했다』고 진술했다. 유학성·황영시피고인은 『12·12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육본측이 선제공격을 기도하는 등 반란행위를 주도함에 따라 정당한 대응조치로 신군부측 병력을 출동시켰다』고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이날 공판에서는 유학성·황영시·거규헌·이학봉·박준병·최세창피고인 등 6명에 대한 반대신문이 진행됐다.전두환·노태우피고인은 9차 공판에서 반대신문을 마쳤다. 나머지 장세동·허화평·허삼수·박종규·신윤희피고인 등에 대한 11차 공판은 다음달 3일 상오 10시에 열린다.〈박선화 기자〉
  • 「12·12」 「5·18」 10차공판­변호인 반대신문 지상중계

    ◆DB편집자주:본문생략 HRM­960528­20­01∼02 참조
  • 「사전모의」 규명 치열한 공방/「12·12사건」 사실심리 결산

    ◎검찰­신군부측의 군사반란 입증에 주력/변호인­“우발적 충돌”… 구체증거는 제시못해 27일의 10차 공판으로 12·12 사건 주요 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끝났다.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신문도 다음 공판으로 끝난다. 검찰의 보충신문과 증인신문이 남았지만 사건의 전모와 양측의 해석은 거의 모습을 마무리 셈이다. 이 날까지 12·12 문제로만 모두 6차례의 공판이 열렸다.피고인들의 군사반란과 내란 혐의를 증명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의 대결도 치열했다. 쟁점은 사전 모의 여부,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성격,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 목적과 합법성 여부,최규하대통령 재가의 적법성,병력동원의 경위 등이었다. 검찰은 12·12 사건은 10·26 이후 군부내 입지에 위협을 느낀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하나회 중심의 소장 군부세력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측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군 주도권을 장악한 군사반란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이 과정에서 당시 우국일 보안사 참모장 등의 증언,「5공 전사」등 방증자료 등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며 피고인들을 궁지로 몰았다. 변호인단은 사실자료 제시보다는 정황증거로 맞섰다. 12·12 사건은 10·26 당시 김재규에게 동조한 혐의가 뚜렷한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조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충돌이라고 주장했다.또 정총장측 장성들이 먼저 병력을 동원했기 때문에 「반란」을 제압하는 차원에서 병력을 동원했다고 강변했다. 쟁점 자체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정총장의 연루 여부,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의 병력동원의 적법성 등 2∼3가지로 단순화하려고 애썼다.12·12가 사전각본에 따라 일어났다는 공소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거의 제시하지 못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을 종합하면 앞으로 증인신문 등에서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검찰의 논거가 훨씬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12·12 사건에 대한 변호인단의 논거로 미루어,앞으로 5·17,5·18 사건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의 방향과 수위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다. 12·12 사건에서 정총장의 혐의와 육본측의 대응을 집중 공략했듯이 5·17 사건에서는 대학생 시위와 정치권 및 재야의 움직임이 혼란한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강변할 전망이다.5·18사건에서는 사태의 책임을 일부 시민들의 「과격한」행동으로 미룰 것으로 보인다.〈박상렬 기자〉
  • 이학봉/김재규 “정총장 끝까지 믿고 행동”진술/공판 이모저모

    ◎변호인 “수사기록 읽을 시간도 없다” 불평 27일의 12·12 및 5·18 사건 10차 공판에서도 피고인들은 12·12가 정당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학봉 피고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김재규는 10·26 사건 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끝까지 협조해 줄 것으로 믿고 행동했다』고 주장. 합수부 수사국장이었던 이피고인은 『김재규는 수사과정에서 정승화총장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협조할 것으로 믿었으며 협조하지 않으면 쏴 죽였을 것이라고 진술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재규는 또 정승화총장이 10·26 사건 후 병력출동 상황에 대해 당일 육본 벙커에서 만난 노재현국방부장관에게 당연히 보고해야 하는데도 보고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정총장이 국방부장관도 안중에 두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말했었다』고 덧붙였다. ○…유학성 피고인은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 서너차례 『내가 (당시 계급이) 중장인데…』라는 표현을 쓰며 혐의 내용을 강력히 부인. 유피고인은 12·12 당시 30경비단으로 전화를 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통화하면서 『다 알면서 왜 그래.그러지 말고 이리로 와』라고 회유했다는 장태완씨의 검찰 진술에 대해 『나는 중장,장태완은 소장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런 얘기를 했겠느냐』고 반문. 이른바 「신촌모임」에 참석한 우국일 보안사참모장과 12·12 다음 날 아침식사를 하면서 『우장군,어젯밤 술을 잔뜩 먹여 정신을 못차리게 하지 왜 팔팔 뛰게 만들었나』라고 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예의 「중장 논리」를 내세우며 『나는 아침식사를 어디서 하든 부담을 주는 말은 하지 않는다』며 부인. ○…황영시 피고인은 『술에 취한 장태완이 30경비단으로 전화를 걸어 폭언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이를 막기 위해 병력을 동원했다』며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돌출적인 언동이 결과적으로 12·12를 불러왔다고 주장.이어 『신군부측 장성들 사이에는 장태완이 두명의 대통령을 배출시켰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부연. 황피고인은 또 김재규와 정승화 육참총장이 동기생들보다 진급이 늦었다고 지적,『늦게나마 진급시켜 준 박정희대통령을 배신한 변절자』라며 원색적으로 비난. ○…전두환 피고인의 이양우 변호사는 공판이 열리기 전 기자들에게 『수사기록 한 번 제대로 읽을 시간 여유도 없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며 재판부와 검찰에 불만을 토로. 이변호사는 『18만쪽이나 되는 기록을 제대로 한 번 읽는데만도 2개월 이상이 걸린다』며 공판이 시작되자마자 『5·18 신문 사항을 정리하러 가야겠다』며 황급히 퇴정. ○…재판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퇴색하면서 방청객들의 숫자도 줄어 드는 추세. 전두환 피고인의 이양우·전상석 변호사와 노태우 피고인의 한영석 변호사 등 5∼6명의 변호인을 제외한 나머지 변호인들은 다른 재판 참석 등을 이유로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박은호·고영훈 기자〉
  • 별건 영장발부 헌법소원 신청/전씨 변호인단

    전상석 변호사 등 12·12 및 5·18사건 변호인단은 27일 「법원이 전두환 피고인등에 대해 직권으로 별건 영장을 발부,구속기한을 연장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변호인단이 낸 같은 내용의 위헌제청 신청을 기각했었다.
  • 오늘 「12·12」 10차공판

    12·12 및 5·18 사건 10차 공판이 27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서울지법 형사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 공판에서는 유학성·차규헌·황영시·박준병·최세창·장세동·허화평·허삼수·이학봉·박종규·신윤희 등 12·12사건 관련 피고인 11명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진행된다.〈박상렬 기자〉
  • 한총련 도로점거 시위/2천여명/서울 도심서…휴일 나들이 큰 불편

    26일 하오 1시30분쯤 서울 중구 명동 신세계 백화점 앞 도로에서 한총련 소속 대학생 2천여명이 5·18 학살자 처벌과 대선자금공개 등을 요구하며 40여분 동안 차도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상오 10시 연세대에서 열린 「5·18 미국개입규탄과 공개사과 촉구를 위한 백만학도 결의대회」를 마친 뒤 신세계 백화점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시키자 종로2가 쪽으로 흩어져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명동과 종로 일대 도심 교통이 막혀 휴일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박준석 기자〉
  • 변호인 “진행 협조”… 재판부에 유화 제스처/공판 이모저모

    ◎전씨 “12·12상황 다시 벌어져도 정 총장 연행”/노씨 “87년 대선때 「12·12」 국민심판 받았다” 12·12 및 5·18사건의 공판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주중에 열린 제9차 공판은 예상과 달리 순조롭게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진행됐다. ○…지난 20일 8차 공판에서 야간재판을 거부,퇴장하는 등 재판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던 변호인단은 이 날 『원만한 진행에 협조하겠다』며 재판부에 유화 제스처. 이양우 변호사는 신문에 앞서 『변론권의 적절한 행사와 피고인의 인권옹호 측면을 감안해 가급적 주 1회 공판을 지켜주시고 야간신문을 자제해 달라』고 공손하게 말한 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등 한결 부드러워졌다. ○…변호인측의 한 관계자는 『어제 재판부와 만나 재판진행 방식에 대한 서로의 오해를 충분히 풀었다』며 『재판이 물 흐르듯 잘 진행될 것』이라고 언급. 특히 이 변호사는 상오 재판에서 1백23문항을 신문,8차공판 상오에 진행된 53문항보다 두배 이상의 속도를 냈다. ○…평소 「칼같은」 재판진행을 자랑하는 김영일 재판장은 피고인들의 입정 때 순서를 바꾸어 호명하는 등 두어차례 실수.박종규 피고인의 입정을 명하면서 박준병 피고인이라고 잘못 부른데 이어 입정순서가 4번째인 황영시피고인의 이름을 맨 나중에 호명. 김부장판사는 피고인 대기실에 황피고인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 법정경위가 이를 알려주자 멋적은 웃음을 띠며 황피고인의 입정을 지시. ○…변호인단은 김재규의 내란사건에 정승화 육참총장이 연루됐음을 주장하면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고대 로마의 「시저 암살사건」에 비유.시해 직후 군부에서는 김재규를,시저를 암살한 부르터스에 비유하며 천하의 패륜아·반역자로 지칭했다고. ○…변호인측은 공판에 앞서 8차 공판당시 배포했던 전두환 피고인의 반대신문 내용의 문구를 일부 고친 수정본을 배포.그러나 기존의 문항수(4백28문항)보다 15문항이나 늘어나자 일각에서는 『또 다른 재판지연책』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수정본은 내용의 추가나 변경은 전혀 없이 기존의 신문을 2∼3문항으로 쪼개거나 여러 신문사항을 묶어 다시 되묻는형식으로 고쳐진 정도다. ○…신군부측이 기술한 「5공전사」가 검찰의 수사 참고자료로 이용돼 피고인들의 발목을 잡은 것처럼 변호인단은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의 「12·12쿠데타와 나」라는 자서전을 인용해 장 수경사령관 등이 반란군이었음을 주장. 이변호사는 당시 윤성민 육참차장이 30경비단에 대한 공격명령을 제지하자 『나보고 가만히 앉아있으란 말이냐.이제 당신들(윤차장 등 육본측 장성)마음대로 하라』는 등의 문구를 들며 이러한 행위는 명백한 하극상이며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전피고인도 『자서전을 읽어보았다』고 진술. ○…전피고인은 변호인의 신문에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거나 군사적인 지식을 활용해 상황을 설명하는 등 적극적인 변론.특히 장 수경사령관의 『총장공관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살하라』는 공격명령과 관련,이 지역에는 국방·외무장관과 합참의장·육참총장·해병대 사령관의 공관이 있어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은 위법한 조치라고 주장. ○…노태우피고인은 하오 5시를 넘어 시작된 반대신문에서 12·12 당시9사단 29연대가 전방을 이탈했지만 1개 예비연대가 후방으로 빠지더라도 방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그는 『결과적으로도 휴전선 경비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1개 연대병력이 이탈했다고 해서 북한이 남침할 정도로 국방태세가 취약하지는 않다』며 12·12당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전피고인은 『12·12와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을 받고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하겠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대답.그러나 『다만 12·12사건 과정에서 불행을 당한 분들에 대해서는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부연. ○…노피고인은 반대신문 말미에 『지난 87년 대선때 12·12사건이 선거이슈로 다뤄져 국민의 심판을 받고 대통령에 당선됐었다』며 『그런데도 다시 이 자리에서 같은 문제가 거론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 노피고인은 12·12사건 당시 30경비단을 떠나 부대로 복귀하는 최세창 여단장 등과 헤어질때 『(육본측에)잡혀죽을 지도 모르니 사별하는 심정이었다』고 했던 검찰 직접신문때의 진술은 착각으로 잘못 답변한 것이라고 정정. ○…김부장판사는 지난 8차공판때 야간재판을 열어 변호인단이 퇴정하는 등 파행을 빚은 것과 관련,『앞으로 저녁식사후의 야간재판은 열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주2회 공판이 적절하다고 판단할때는 열 수 있다』고 설명. 이는 변호인 반대신문 분량이 많거나 신문을 느리게 진행돼 재판의 효율성이 침해될때는 언제든지 2회공판을 강행하겠다는 경고성발언이라는 평.
  • 「12·12」「5·18」9차공판/전·노씨 변호인반대신문 지상중계

    ◆DB편집자주:본문생략 HRM 960524­20­01∼02 참조
  • 「12·12」「5·18」 9차공판/검찰­변호인단 「히든카드」있나

    ◎「대선자금 공개 촉구메모」설 흘려 여론탐색/어느한쪽 일방적으로 몰릴땐 돌출 가능성 변호인단이 야간재판을 거부하며 퇴정,파란이 일었던 지난 20일의 8차 공판과 달리 23일의 9차 공판은 순조로웠다. 변호인단은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전날인 22일에는 재판부를 찾아가 8차 공판에서의 불상사를 사과하고 원만한 재판운영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재판부의 심기를 자극할 지연책을 쓰지 않겠다는 자세다. 전두환 피고인의 이양우 변호사는 재판이 시작되면서 공손한 어조로 『순조로운 재판진행에 협조할 것』이라고 다짐한 뒤 『노령인 피고인과 변호인들의 처지를 감안해 주 2회 재판과 야간재판은 지양해 달라』고 부탁했다. 재판부도 누그러졌다.적어도 변호인 반대신문 과정에서는 주 2회 재판을 지양할 듯한 분위기다. 주 2회 재판은 당초 예정에 없던 것이다.변호인이 신문사항을 준비한 상태에서 재판지연으로 신문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채택했다는 설명이다. 변호인단이 준비를 못했다면 불가능하다.재판부로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하지만 변호인단이 재판의 장기화를 암중모색할 것은 분명하다.검찰의 일방적인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검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각종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재판부는 중립을 지키려고 애쓰면서도 신속한 재판이라는 당초 방침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표면화되지는 않더라도 재판부 검찰 변호인단 등 3자간의 물밑 대립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주요 변호인 10여명 가운데 이양우·한영석 변호사를 제외한 나머지 변호사들이 이 날 불참한 것을 무언의 시위로 바라보는 견해도 있다. 전두환 피고인이 92년의 대선자금 공개 등을 촉구하는 메모를 노태우 피고인에게 전달하려다 적발됐다는 설이 갑자기 나돈 것도 검찰과 변호인단의 대결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다.이른바 「언론플레이」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할 수 없다(NCND)』면서도 『90% 이상은 틀린다』고 말했다.법무부 관계자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여운을 남겼다.사실은 아니지만「할 말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변호인단도 메모설에 대해 애매한 말로 얼버무린다.불리할 것만은 없다고 판단하는 듯한 기색이다. 소문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도덕적으로 전피고인이 비난받을 소지가 크다. 반성의 기색이 없이 꼬투리만 잡으려는 것 자체가 구차하다는 측면에서다. 하지만 대선자금에 초점이 모아지면 양상은 달라진다.아직도 일부에서는 이 대목을 전·노 피고인의 「비장의 카드」로 여기고 있다. 현재로서는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몰리는 양상으로 재판이 전개되면 「히든카드」는 적당한 선에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박상렬 기자〉
  • 조계사 경내에 전씨연등 걸려(조약돌)

    ○…부처님 오신날을 하루 앞둔 23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 비자금과 12·12 및 5·18 사건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등이 내걸렸다. 조계사 입구쪽에 달린 전씨의 연등은 일반 신도들이 다는 8개 종류의 연등 가운데 가장 큰 장엄등으로,특히 5만원과 10만원 등 2종의 장엄등 중에서도 10만원짜리인 대장엄등. 파란색 테두리를 한 전씨의 연등에 붙은 부전에는 「서대문구 연희동,신미생(66) 전두환」이라고 한글로 또렷하게 적혀 있고,수많은 행인들이 전씨의 연등꼬리를 만져 보는 바람에 꼬리 부분은 이미 훼손된 상태. 전씨측은 『연등보시를 한적이 없다』며 전전대통령의 덕을 본 사람이 불탄일을 맞아 감옥에 있는 전전대통령의 앞날을 빌어주기 위해 대신 보시한 것 같다』고 언급.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