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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춘기 절망에 ‘희망 덩크’… 두 바퀴 위의 170㎝ 거인

    사춘기 절망에 ‘희망 덩크’… 두 바퀴 위의 170㎝ 거인

    장애는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그러나 장애를 이겨 내고 다시 세상에 나서는 건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사춘기 때 당한 사고로 한껏 위축됐던 오동석(34·서울시청)이 장애가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너무 위축되지 말고 세상에 나와 여러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유다. 오동석은 22일 서울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2021 한국휠체어농구연맹(KWBL) 시상식에서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오동석은 지난 17~19일 열린 서울시청과 제주삼다수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3경기 평균 15점 9어시스트 4.7리바운드로 활약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3경기 모두 풀타임을 소화하며 자신의 손으로 만든 값진 우승이었다. 키 170㎝, 몸무게 51㎏으로 왜소하지만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휠체어농구는 선수마다 장애등급을 1~4.5포인트로 매겨 코트에 나선 5명의 선수가 합산해 총 14포인트를 넘으면 안 된다. 숫자가 낮을수록 장애 정도가 심하다는 뜻인데 장애등급 포인트 2.0의 에이스 오동석을 보유한 덕에 서울시청은 다른 팀보다 더 강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우승은 자신의 손으로 일군 3연패라 의미가 남달랐다. 서울시청은 휠체어농구 국가대표팀 주장 조승현(38·장애등급 포인트 4.0)이 이번 시즌 춘천시장애인체육회로 이적하면서 전력 손실이 컸다. 오동석은 이날 “시즌 전에는 우리가 우승 후보로 평가받지 못했는데 그런 인식을 깨고 우승한 게 기쁘다”면서 “조승현 선수의 비중이 커서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우승해서 의미가 크다”고 웃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오동석은 휠체어농구를 통해 인생을 바꿨다. 사춘기 때 남들의 시선에 위축됐던 그는 “휠체어농구를 통해 여러 경험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야구선수를 꿈꿨던 그는 휠체어농구 선수로 2014년 인천 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 아시아인 최초의 월드 베스트5에 선정됐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동메달,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 올해 챔프전 MVP까지 화려한 업적을 남겼다. 앞으로도 계속 우승하는 게 그의 목표다. 오동석은 “올해 올림픽도 있었고, 각종 대회에 쉴 시간이 거의 없어서 힘들었는데 고생한 만큼 좋은 결실을 얻어서 기쁘다”면서 “농구는 팀 스포츠니까 개인 성적보다 팀이 승리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 같은 반 확진 나온 첫째는 ‘줌 수업’ 덩달아 격리된 둘째는 ‘나홀로 학습’

    같은 반 확진 나온 첫째는 ‘줌 수업’ 덩달아 격리된 둘째는 ‘나홀로 학습’

    반 전체 격리 때는 원격수업“음성이라도 중계를” 요구도서울교육청 “실천적 방안 고민”학교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자가격리 대상이 되는 학생이 늘고 있지만 ‘수업 공백’ 사각지대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 접종 대상군이 아닌 ‘11세 이하(초등학교 5학년 이하) 연령층’의 감염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등교중지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보다 정교하게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는 학급 단위로 수업을 듣고 급식을 먹기 때문에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해당 학급 전체는 격리 조치에 들어가고 비대면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한다. 문제는 격리 대상 학생의 형제자매도 덩달아 학교에 못 가는 일이 생기는데 이들에 대해선 학교 여건에 따라 별도 온라인 수업이 제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 아이의 학급에서 확진자가 나와 지난 13~19일 자가격리 대상이 되면서 2학년 둘째 아이까지 함께 자가격리시킨 학부모 손정희(39·가명)씨는 21일 “둘째가 등교하려면 이틀에 한 번씩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아이가 힘들어하고 여건이 안 돼 다 같이 자가격리를 했다”면서 “격리 중에 둘째 아이 담임 선생님에게 ‘대면 수업의 음성만이라도 중계해 주면 안 되느냐’고 물었으나 ‘안 된다’는 답만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업 자료는 받았지만 새로운 걸 배우는 학습 과정을 아이 혼자 집에서 해야 하니 버거워한다”고 답답해했다. 초등학교 방과후 돌봄 교실에서 확진자가 나와 자가격리 대상이 됐을 때도 수업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사례가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A양 부모 김상원(41·가명)씨는 “11월은 정부가 아이의 수업권을 보장한다며 ‘전면등교’를 앞세우던 때였는데 정작 자가격리 대상이 된 우리 아이는 수업을 전혀 못 들었다”면서 “학교도 그저 교육부 방침을 따른다며 수업 공백에 따른 별다른 대책이나 안내가 없었다”고 말했다. A양의 경우 지난달 학급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한 달 동안 학교를 간 날이 4일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나마 학급 전체가 자가격리됐을 때는 원격 수업이라도 진행됐다. 이번 주 대부분 학교는 겨울방학에 들어가지만 봄방학이 없는 학교는 앞으로 2~3주 학기가 남아 있다. 등교중지 학생의 학습권 보장이 시급한 이유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등교중지 학생에 대한 다양한 대체학습을 하고 있지만 초등 수업 특성상 선생님과 학생이 관계 맺는 부분도 있고 학교마다 개별 온라인 수업 중계가 어려운 곳도 있다”면서 “수업권 보장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더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 같은 반 확진 나온 첫째는 ‘줌 수업’ 덩달아 격리된 둘째는 ‘나홀로 학업’

    같은 반 확진 나온 첫째는 ‘줌 수업’ 덩달아 격리된 둘째는 ‘나홀로 학업’

    반 전체 격리 때는 원격수업“음성이라도 중계를” 요구도교육부 “학교 여건 따라 관리”학교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자가격리 대상이 되는 학생이 늘고 있지만 ‘수업 공백’ 사각지대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 접종 대상군이 아닌 ‘11세 이하(초등학교 5학년 이하) 연령층’의 감염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등교중지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보다 정교하게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는 학급 단위로 수업을 듣고 급식을 먹기 때문에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해당 학급 전체는 격리 조치에 들어가고 비대면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한다. 문제는 격리 대상 학생의 형제자매도 덩달아 학교에 못 가는 일이 생기는데 이들에 대해선 학교 여건에 따라 별도 온라인 수업이 제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 아이의 학급에서 확진자가 나와 지난 13~19일 자가격리 대상이 되면서 2학년 둘째 아이까지 함께 자가격리시킨 학부모 손정희(39·가명)씨는 21일 “둘째가 등교하려면 이틀에 한 번씩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아이가 힘들어하고 여건이 안 돼 다 같이 자가격리를 했다”면서 “격리 중에 둘째 아이 담임 선생님에게 ‘대면 수업의 음성만이라도 중계해 주면 안 되느냐’고 물었으나 ‘안 된다’는 답만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업자료는 받았지만 새로운 걸 배우는 학습 과정을 아이 혼자 집에서 해야 하니 버거워한다”고 답답해했다.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 교실에서 확진자가 나와 자가격리 대상이 됐을 때도 수업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사례가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A양 부모 김상원(41·가명)씨는 “11월은 정부가 아이의 수업권을 보장한다며 ‘전면등교’를 앞세우던 때였는데 정작 자가격리 대상이 된 우리 아이는 수업을 전혀 못 들었다”면서 “학교도 그저 교육부 방침을 따른다며 수업 공백에 따른 별다른 대책이나 안내가 없었다”고 말했다. A양의 경우 지난달 학급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한 달 동안 학교를 간 적이 4일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나마 학급 전체가 자가격리됐을 때는 원격 수업이라도 진행됐다. 이번 주 대부분 학교는 겨울방학에 들어가지만 봄방학이 없는 학교는 앞으로 2~3주 학기가 남아 있다. 등교중지 학생의 학습권 보장이 시급한 이유다. 교육부 관계자는 “등교중지 학생의 학습 공백을 막기 위해 대체학습 제공 방안을 마련해 왔다”면서 “각 학교 여건에 맞춰 교실수업 동시 송출 및 녹화본 제공, 교육청·학교 단위 원격수업 콘텐츠 제공, 등교 재개 후 1대 1 집중 관리 등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 괴롭힘 당하는 제자 위해 치마 입은 남자교사들

    괴롭힘 당하는 제자 위해 치마 입은 남자교사들

    남다른 성적 정체성으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제자를 위해 스페인의 남자교사들이 치마를 입고 교단에 서 화제다. 학교장은 "학교는 수학이나 국어 그 이상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며 남자교사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스페인 우엘바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학교에는 성적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5학년 여학생이 있다. 생물학적으론 분명 여자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남자로 느끼는 이 여학생은 성적 정체성 때문에 괴롭힘을 당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단의 여자 친구들은 여학생을 구타하고 여자화장실 사용을 금지했다. 남학생들도 여학생을 괴롭히긴 마찬가지다. "네가 여자지 남자냐?"라며 놀려대고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현지 언론은 "남학생들도 여학생의 화장실 사용을 금지했다"며 "여학생은 등교 후 화장실조차 못가는 신세가 됐다"고 보도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자 학생 보호에 나선 건 교사들이었다. 교사들은 우선 여학생을 괴롭히는 학생들을 불러 차분하게 대화를 나눴다. 학교장 호아킨 페르난데스는 "여학생이 어릴 때부터 성적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어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지만 결국 악행을 당하기까지 이르렀다"며 "더 이상 문제를 방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성적 정체성과 관련된 혼란은 죄가 될 수 없지만 괴롭힘은 나쁜 일이자 죄가 된다는 교사들의 말에 가해자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반성을 했다고 한다. 교사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특히 남자교사들이 여학생 보호와 응원에 적극 나섰다. 남자교사들은 지난 17일(현지시간)부터 치마를 입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네일까지 예쁜 색으로 칠하고 교단에 서는 남자 교사도 있다. 학부모들에겐 통신문을 돌려 양해를 구했다. 교사들은 "성적 정체성을 놓고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있다. 모두가 그 학생을 도와야 하니 이해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다행히 반대 또는 반발하는 학부모는 단 1명도 없었다고 한다. 한 교사는 "성적 정체성 혼란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 여학생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었다"며 "다행히 교사들이 전면에 나선 후 괴롭힘은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겨울왕국’ 일본어 더빙 ‘안나’ 목소리 칸다 사야카 의문사

    ‘겨울왕국’ 일본어 더빙 ‘안나’ 목소리 칸다 사야카 의문사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의 일본어 더빙판에서 안나 역을 소화한 여배우 겸 성우 칸다 사야카(35)가 지난 18일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녀는 1980~90년대를 대표하는 일본의 국민 가수 마츠다 세이코(59)와 인기 가수 칸다 마사키(63)의 딸로도 유명하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칸다 사야카가 지난 18일 오후 1시쯤 홋카이도 삿포로의 한 호텔 16층 옥외공간에서 피를 많이 흘린 채 발견됐다고 20일 뒤늦게 전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밤 9시 40분쯤 결국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경찰은 이 호텔 22층 객실에 머무르던 칸다가 6층 아래로 뛰어내리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자살한 것처럼 꾸미고 살해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놓고 수사하고 있다. 칸다 사야카는 당일 삿포로에서 진행 중이던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공연에 엘리자 두리틀 역으로 나설 계획이었지만 몇 시간을 앞두고 아프다며 불참을 통보했다. 급히 다른 배우가 대신 무대에 올랐다. 워낙 유명한 스타 부부의 딸로 어릴 적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아역배우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그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는 갈라섰다. 그 뒤 배우보다 성우로 활동 영역을 넓혔고, 더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2014년 영화 ‘겨울왕국’에 목소리로 출연해 전성기를 누렸고, 어머니와 함께 ‘홍백가합전’에 출연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1980년대 아이돌로 데뷔해 성공을 거둔 뒤 1985년 결혼과 이듬해 칸다를 출산한 뒤에도 해외에 진출하는 등 결혼 전보다 더 활발히 활동해 전통적인 일본 여성상을 바꾸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칸다 사야카는 2017년 아홉 살 차이가 나는 배우 무라타 미츠와 결혼했지만 자녀 계획에 대한 이견으로 결국 2년 반 만에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녀는 내년 4월 인기 만화 ‘은하철도 999’를 뮤지컬로 옮긴 무대에 마에텔 공주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 초등생 코로나 확진자 2주새 2배로…‘백신접종’ 중·고생은 감염률↓

    초등생 코로나 확진자 2주새 2배로…‘백신접종’ 중·고생은 감염률↓

    최근 10대 코로나19 환자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백신 접종이 한창인 중·고등학생 연령대에서는 감염률이 떨어진 반면, 접종 대상이 아닌 초등학생 연령대에서는 감염률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정익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예방접종관리팀장은 21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7∼12세 코로나19 신규 감염자와 관련해 “(지난 3주간) 매주 약 1800명, 2400명, 3700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지난주에는 4325명까지 늘었다”며 “(2주새)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홍 팀장은 “반면 (접종이 진행 중인) 중학생 그룹에서는 1650명에서 직전주 1500명으로 소폭이지만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확진자가 줄었다”라며 “접종률이 올라가면서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접종률이 높아진 연령대에서는 감염률이 이에 반비례해 떨어지는 등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 1·2차 접종현황을 보면 12∼15세는 전날 기준으로 전체 접종대상자의 52.9%가 1차 접종, 31.5%가 2차 접종을 마쳤다. 이보다 먼저 접종을 시작한 16∼17세의 1차 접종률은 77.6%, 2차 접종률은 69.0%에 달했다. 11세 이하, 즉 현재 초등학교 5학년부터 그 이하 연령층은 아직 접종 대상군이 아니다.
  • 방학 앞두고 다시 전면등교 중단…재택근무 못하는 학부모 발 동동

    방학 앞두고 다시 전면등교 중단…재택근무 못하는 학부모 발 동동

    코로나19 비상대책으로 전면등교 중단휴가·재택근무 어려운 학부모들 “속 타”눈치보며 연차, 조부모에게 부탁도 한계“요즘 월말에 연말이기도 해서 월차 쓰기가 너무 눈치 보이는데 목요일에 하루 원격수업을 한다고 하니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겨우 하루 월차 냈죠.” 초등학교 4학년생 자녀가 있는 직장인 김지현(44·가명)씨는 오는 24일 학교 방학을 앞두고 갑자기 시행된 주4일 등교 지침에 당혹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김씨는 “지난주 내내 아이 학교에서 확진자가 너무 많이 나와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친정어머니에게 아이 돌봄을 부탁했는데 이번주도 부탁할 수 없어 겨우 월차를 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가 코로나19 거리두기 강화 비상대책에 따라 지난 20일부터 수도권 모든 학교에서 등교수업과 원격수업을 병행하는 지침을 내리며 학부모들이 혼란에 빠졌다. 김씨와 같이 자녀의 학사 일정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직장인들은 회사에 가까스로 휴가를 신청하거나 조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등 자구책을 찾아야 하는 형편이다. 교육부의 코로나 비상대책으로 20일부터 수도권 초등 3~6학년은 4분의3 등교를 유지하고 1·2학년은 매일 등교하되 전교생 등교 밀집도를 6분의 5로 관리해야 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전교생의 3분의2까지 등교할 수 있다. 문제는 학부모들의 대책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김씨는 “조부모도 코로나 감염 취약대상인데 매번 아이를 맡기는 것도 죄송스럽고 걱정된다”며 “방학도 다가오는데 청소년 방역패스 적용 등으로 아이들 활동 반경이 점점 좁아져 가는 마당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만 쌓인다”고 말했다. 학교 내 청소년 확진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재택근무가 어려운 부모들은 자녀를 집에 혼자 두는 힘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부부가 각각 의료와 학원업에 종사해 휴가 쓸 여건이 안 되는 주연후(46·가명)씨는 초등학교 5학년 자녀의 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지가 늘어나자 ‘체험학습’ 기간을 신청했다. 주씨는 “아이 할머니가 반찬을 해서 매번 집에 가져다 주신다”며 “아이 홀로 있을 때 안전 등이 걱정돼 집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휴대전화와 패드 등을 여러 대 집에 뒀다”고 말했다. 주씨는 “학교에서 확진자 밀접 접촉자 한 명만 나와도 학급 전체가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요즘 진료소에서 검사받는 것도 1~2시간 기다려야 하고 아이를 데리고 검사받으러 갈 시간도 내기 어렵다”며 “회사에서 뛰쳐나올 수 없어 결국 아이 등교를 스스로 포기하는 부모들이 최근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 초등학생 발로 찬 20대 태권도 사범…자격증도 없었다

    초등학생 발로 찬 20대 태권도 사범…자격증도 없었다

    초등학생 제자를 발로 차고 중학생과 강제로 겨루기를 시킨 혐의로 태권도 사범이 경찰에 입건됐다. 이 사범은 자격증도 소지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 계양경찰서는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20대 태권도 사범을 조사한 결과 아동학대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17일 검찰에 넘기로 했다. A씨는 지난달 12일, 인천 계양구에 위치한 태권도장에서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을 발로 차 쓰러뜨리는 등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초등학생에게 중학생과 겨루기를 시키고, 가위를 들고 신체를 절단하겠다며 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씨는 피해 아동의 학부모에게 “아이가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듣고는 아이를 지도한 것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에서는 “혐의를 인정하며 범행을 반성한다”고 진술했다. 국기원은 4단 이상 유단자 중 이론과 실기, 구술 평가를 통과한 사람에게 사범 자격증을 주고, 5년마다 재교육을 받아야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있다. JTBC에 따르면 A씨는 국기원에서 발급하는 사범 자격증도 없었고, 인천태권도협회에 해야 하는 사범 등록도 돼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 청소년 백신접종 … 경기도민 4명 중 3명 ‘찬성’

    경기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000명 이상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민 4명중 3명은 청소년들의 백신접종을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는 최근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고등학생(16~18세)들에게 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고 17일 밝혔다. 또 75%는 초등학교 6학년 부터 중학교 3학년(12~15세)까지 접종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고, 초등학교 1~5학년(7~11세) 까지는 62%, 5~6세에게는 41%가 각각 찬성하는 등 연령이 낮을 수록 찬성율도 낮았다. 특히 고등학교 학부형들은 90% 이상이 백신 접종에 긍정적이었고, 초등 6학년과 중학교 학부형들의 백신접종 의향율은 78%였다. 류영철 도 보건건강국장은 “이번 조사결과로 청소년 백신 접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인됐다”며 “집중 홍보를 통해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도가 여론조사기관인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1일 만 18세 이상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 했다. 신뢰수준은 95%, 표본오차는 ±3.1% 포인트다.
  • [단독] 외과적 수술비만 수천만원… “죽도록 알바해 불임수술하라는 격”

    [단독] 외과적 수술비만 수천만원… “죽도록 알바해 불임수술하라는 격”

    트랜스젠더에게 법적 성별을 바꾸는 것은 남들처럼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주민등록증을 내밀 때 머뭇거리지 않을 수 있고, 일터에선 ‘왜 이력서의 성별과 모습이 다르냐’는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정을 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원은 여전히 생식능력 제거와 외부성기 수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받아야 하는 호르몬 치료와 수천만원이 드는 외과적 수술에는 아무런 지원도 없다. 학교와 가정 밖으로 내몰린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정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적어도 수년간 숨죽인 채 수술비를 모으는 걸 우리 사회는 그저 방관하고 있다. 여기 이런 현실에 저항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있다.“성확정 수술을 모두 받고 오지 않으면 ‘남성’ 선수로 등록을 해 줄 수 없습니다.” 운동에 재능을 보여 코치로부터 선수 등록을 권유받은 트랜스 남성 박영(18)은 올 초 대한체육회에서 이런 말을 전해듣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수년간의 호르몬 치료와 가슴제거술로 남성의 외관을 갖췄는데도, 체육회는 영이를 향해 변함없이 ‘넌 남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영이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성별불일치로 인한 고통과 학교에서의 괴롭힘으로 영이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관뒀다. 자신을 키워 준 할머니에게도 이때쯤 커밍아웃했다. 할머니는 ‘내 새끼 행복하면 됐지 울고불고하는 것보다 낫다’며 함께 병원에 가 줬다. 평소에도 건장한 체격이던 영이가 호르몬 치료를 받게 되자, 주변에서는 영이를 더욱더 남성으로 인식했다. 영이가 스스로 말을 하기 전까진 법적 성별이 여성이란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 일곱 번째 자리에 있는 ‘4’(2000년대 이후 출생한 여성)라는 숫자가 영이의 발목을 잡았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 모두가 절 남성으로 받아들이고 대하는데 성기가 있고 없고가 무슨 상관인가요. 위험한 것도 있지만 수술비 감당은 어떻게 하고요.” 영이는 생식능력 제거·외부성기 수술을 받지 않은 채 지난 10월 법원에 성별 정정을 신청했다. 성별 정정을 원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나 비싼 수술비 탓에 외과적 수술을 받지 못한 채 성별 불일치감으로 고통받는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많다. 서울신문이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경제적 부담’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절반(45.8%)에 달했다. 같은 이유로 외과적 수술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64.8%나 됐다.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의료적 조치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호르몬 치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에서 운영하는 건강센터를 찾는다. “센터에서는 가장 저렴한 주사를 맞아요. 저렴한 건 안정성이 떨어질 때가 있어서 보통 겔을 선호하는데 한 달치가 8만원 정도라 매달 사기가 쉽지 않죠.” 외과적 수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트랜스 남성이 가슴절제술을 받으려면 400만~500만원이 든다. 출생 시 성별이 남성인 사람이 여성형 유방증(남성의 가슴이 여성의 형태로 발달하는 증세)으로 수술을 받을 땐 보험이 적용돼 100만원 남짓한 돈이 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생식능력 제거·외부성기 수술까지 모두 받으려면 수천만원이 든다. 가슴절제술을 받기 위해 고깃집에서 6개월간 한 달에 하루만 쉬어 가며 일했던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는 “트랜스젠더들 사이에선 수술비 벌려고 고생했던 때를 군대 시절처럼 얘기하기도 한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트랜스 여성 김신엽(22)씨는 2년 전 스웨덴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비로소 숨을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선 누구도 신엽씨를 남자로 대하지 않았다. 성중립화장실이 도처에 있어 화장실에 가는 걸 참을 이유가 없었고, 여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동아리에서도 신엽씨를 환영했다. 한국에선 많은 트랜스젠더가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이 불편해 집 밖에서는 음료나 음식을 먹지 않는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은 지난 7월 트랜스젠더의 공중 화장실과 관련한 스트레스 요인 경험이 우울 증상 유병률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스웨덴에 다녀온 후 신엽씨는 한국의 성별 정정 시스템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 됐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신엽씨를 여성으로 대했고, 후배들도 ‘누나’라고 부르는데 굳이 정정을 위한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 수술을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알게 된 한 변호사는 신엽씨에게 “병역 의무가 있는 상황이라면 난민 신청이 무조건 받아들여진다”며 명함을 건네기도 했다. 지난 9월 법원에 성별 정정 신청을 낸 신엽씨는 아우팅당한 뒤 가정폭력을 겪다 집에서 쫓겨나 성확정 수술을 받을 돈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성별 정정 요건으로 불임 수술을 강제하는 건 개인의 재생산권 등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사는 신엽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예상은 했지만 눈물은 나더라고요.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나 쉽게 단정 짓는 법원에 화가 나죠.” 신엽씨는 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신엽씨처럼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 수술을 전혀 하지 않은 트랜스 여성의 성별 정정 신청이 법원에서 허가된 사례는 아직 보고된 바 없다. 2017년 가슴확대술과 고환적출술을 하고, 외부 성기 재건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여성의 성별 정정 신청을 허가한 사례가 청주지원 영동지원에서 나왔었다. 트랜스 남성의 경우 올 10월 생식능력 제거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남성의 성별 정정 신청이 최초로 수원가정법원에서 허가됐다. 당사자인 송우현(21·가명)씨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기관을 없앨 이유가 없다고 봤다”면서 “나라에서 이를 강제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만 하급심 판결이라 다른 법원도 유사한 사건에 허가 결정을 내놓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서울신문 조사에서 향후 성별 정정을 하고 싶다는 응답자는 트랜스 여성이 97.9%, 트랜스 남성은 83.9%로 높게 나타났다. 그에 비해 외과적 수술을 하겠다는 응답은 각각 85.1%, 82.3%에 그쳤다. ‘논바이너리’ 응답자의 42.6%는 성별 정정을 희망했지만 외과적 수술을 받겠다는 응답은 33.9%로 더 낮았다. 국내 대학병원 1호 젠더클리닉을 설치·운영 중인 이은실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는 “법원이 성별 정정 요건으로 불임 수술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성별 정정을 마친 트랜스젠더 상당수가 수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용어 클릭] ■성 정체성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 ■성별 불일치감 트랜스젠더가 겪는 신체·사회적 불쾌감 등 고통 ■성확정 수술 생식능력 제거 및 외부 성기 재건 등 외과수술 ■논바이너리 남성과 여성 어느 성별로도 정의하지 않는 것 ■트랜지션 성 정체성에 맞춰 외모·신체 특징 등을 변화시키는 과정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 “죽도록 알바해 모은 돈으로 불임수술하라는 격” 성별정정 요건에 저항하는 청소년

    “죽도록 알바해 모은 돈으로 불임수술하라는 격” 성별정정 요건에 저항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법적 성별 정정은 남들처럼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주는 마법은 아니지만 적어도 주민등록증을 내밀 때 머뭇거리지 않을 수 있고, 일터에선 ‘왜 이력서의 성별과 모습이 다르냐’는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성별정정을 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법원의 성별정정 요건을 충족하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적어도 수년간 수술비를 모으는 데 애를 써야한다. 여기 이런 현실에 저항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있다. 그리고 변화의 바람은 조금씩 일고 있는 중이다. 선수 등록 희망했지만…체육회 “수술하고 오라” “성확정 수술을 모두 받고 오지 않으면 ‘남성’ 선수로 등록을 해줄 수 없습니다.” 운동에 재능을 보이며 코치로부터 선수 등록을 권유받은 박영(18·사진)은 대한체육회에서 이런 말을 듣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수년간의 호르몬 치료와 지난 6월 받은 가슴제거수술로 남성의 외관을 갖췄는데도 체육회는 영씨를 향해 변함없이 ‘넌 남자가 아니다’고 말하고 있었다. 영이는 유치원 시절부터 자신이 여자가 아니란 걸 알았다. 트랜스 남성이라고 확실하게 안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성별불일치감과 학교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영이는 중학교 2학년 때 자퇴서를 제출했다. 그러면서 가족에게도 커밍아웃을 했는데 가족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받아들였다. 할머니는 ‘내 새끼 행복하면 됐지 울고불고 하는 것보다 낫다’며 함께 병원에 가줬다. 평소 체력과 운동에 자신이 있던 영이는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더욱더 ‘남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코치도 영씨가 말하기 전까진 법적 성별이 여성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주민등록번호 7번째 자리에 있는 4라는 숫자가 영이의 발목을 잡았다.“가족이나 주변 사람 모두가 절 남성으로 받아들이고 대하는데 성기가 있고 없고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위험한 것도 있지만 수술비 감당은 어떻게 하고요.” 성별 정정을 원하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시작조차 못하고 성별 불일치감으로 고통받는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많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외과적 수술은 엄두도 못낸다. 서울신문이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경제적 부담’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절반(45.8%)에 달했다. 같은 이유로 외과적 수술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64.8%나 됐다. 특히 트랜스 여성의 경우 경제적 부담 때문에 외과적 수술(94.9%)이나 호르몬 치료(71.4%)를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다른 응답자들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스웨덴서는 ‘여성’으로 살았는데…한국선 수술 강요” 김신엽(22·사진)씨는 2년 전 스웨덴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비로소 숨을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선 누구도 신엽씨를 남성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성중립화장실이 도처에 있어 화장실에 가는 걸 참을 이유가 없었고, 여학생들만 가입이 가능한 동아리에서도 신엽씨를 환영했다. 한국에선 많은 트랜스젠더가 남·여로 구분된 화장실이 불편해 집 밖에서는 음료나 음식을 먹지 않는다.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은 지난 7월 트랜스젠더의 공중 화장실과 관련한 스트레스 요인 경험이 우울 증상 유병률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스웨덴에 다녀온 후 신엽씨는 한국의 성별정정 시스템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 됐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신엽씨를 여성으로 대했고, 후배들도 ‘누나’라고 부르는데 굳이 정정을 위한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 수술을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태어난 모습 그대로도 여성으로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알게 된 한 변호사는 신엽씨에게 “병역 의무가 있는 상황이라면 난민 신청이 무조건 받아들여진다”며 명함을 건네기도 했다.지난 9월 성별정정 신청을 낸 신엽씨는 의견서에 2가지를 강조했다. 일단 현실적인 이유를 어필했다. 집에서 쫓겨나 홀로 생계를 책임지느라 성확정 수술을 받을 돈이 없다는 것. 그리고 성별정정 요건으로 불임을 요구하는 건 개인의 재생산권 등에 대한 침해라는 내용이다. 법원의 판단엔 이변이 없었다. 판사는 ‘남성으로서 생식 능력을 제거하지 않았고 여성 신체의 외관을 갖추지 않았다‘며 신엽씨의 성별정정 신청을 기각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눈물은 나더라고요. 빚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채무확인서도 내고, 여러 친구가 ‘이 친구는 여자가 맞다’며 인우보증서를 써주기도 했는데 그런 건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한 사람의 삶을 쉽게 단정지은 거에 대해서는 화가 나죠.” 신엽씨는 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성기 수술을 꼭 해야하나요” 신엽씨처럼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 수술을 전혀 하지 않은 트랜스 여성이 성별정정 허가를 받은 사례는 아직 보고된 바 없다. 2017년 청주지법 영동지원에서 성기 재건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여성에 대한 성별정정 신청을 허가한 사례가 처음 나오긴 했다. 그러나 이후 이와 유사한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트랜스 남성의 경우엔 사정이 조금 다르다. 2013년 서울서부지법에서 외부 성기 재건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남성에 대한 성별정정 허가 결정이 처음 내려졌다. 지난 10월 수원가정법원은 생식 능력 제거 수술을 받지 않은 송우현(21·가명)씨의 성별정정 신청을 허가했다. “생식 기관은 보이지도 않는 거라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라에서 이를 강제하는 건 부당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우현씨가 2심에서 허가 결정을 받긴 했으나 대법원 판결이 아닌 하급심 판결이라 다른 법원도 유사한 사건에 허가 결정을 내놓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영이도 내외부 성기수술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10월 성별정정을 신청했다. 법원은 ‘생식 능력’이 남아있는지, ‘성확정 수술’을 받았는지에 관한 의사의 소견서 등을 제출하라며 보정권고를 보내왔다. 조사에서 향후 성별정정을 하고 싶다는 응답자는 트랜스 여성이 97.9%, 트랜스 남성은 83.9%로 높게 나타났지만 외과적 수술을 하겠다는 응답은 각각 85.1%, 82.3%에 그쳤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51.3%)에 달하는 ‘논바이너리’(자신의 성별을 남녀 어느 쪽으로도 인식하지 않는 사람) 또한 성별정정을 희망한다는 응답은 42.6%로 다른 응답자에 비해 낮았지만, 외과적 수술을 받을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그보다도 낮은 33.9%였다. 국내 대학병원 1호 젠더클리닉을 설치·운영 중인 이은실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는 “성별불일치감 때문에 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지만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수술을 받고싶어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면서 “법원이 성별정정 요건으로 수술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상당수 트랜스젠더들이 수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이사 간 동네 낯설죠? 골목길 따라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보세요!

    이사 간 동네 낯설죠? 골목길 따라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보세요!

    Q. 내년에 서울 영등포에서 경남 진해로 이사를 가요.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몇 번 이사는 다녔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친구를 다시 사귀는 일은 낯설고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이사 가는 새로운 동네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늘 고민이에요. 앞으로도 살면서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일들을 많이 마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어떤 마음과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면 좋을까요. 잘 적응할 수 있는 노하우도 알려 주세요.(이한결·11세·대방초 5학년) A. 한결 동생! 반가워요. 유튜버 마이린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린이에요. 새로운 학교와 친구.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되고 설레네요. 하지만 사실 두려움과 걱정도 클 것 같아요. 저도 늘 그랬거든요. “새로운 반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는 또 어떻게 친해지지?”. 늘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새 학년을 맞았던 것 같아요. 저는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는데요. 1학년 때부터 3년간 알고 지냈던 친구들과 떨어진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커요.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걱정도 되고요. 한결 동생은 사는 곳도 바뀌니 걱정이 더 클 것 같아요. 하지만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늘 고민과 걱정으로 새 학년을 맞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었거든요. 한결 동생은 어떤가요?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처음엔 낯선 곳이었지만 이제는 떠나기에 아쉬운 곳이 됐잖아요. 걱정하기보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친구들과 즐겁게 보내기에도 남은 시간이 부족하잖아요.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저만의 노하우는요. 이사 간 뒤 가장 먼저 이곳저곳 골목을 모두 돌아다녀 보는 거예요. 여행하는 기분으로요. 여행 갈 때 우리는 무서운 것보다는 신나고 설레는 기분이 더 크잖아요. 마찬가지로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이사를 갔다면, 이제는 설렘으로 두려움을 이겨 버리는 거죠. 그러고는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봐요. 내가 계속해서 애정과 사랑을 줄 수 있는 곳을요. 그렇게 계속 마음을 주다 보면 낯선 이곳이 어느 순간 떠나기 싫은 ‘우리 동네’가 될 거예요. 지금 한결 동생이 살고 있는 그곳처럼요. 한결 동생은 이미 많은 경험이 있잖아요. 충분히 잘해 낼 수 있고 결국 해낼 거예요. 지금 하고 있는 걱정이 ‘괜한 걱정이었구나’ 싶을 만큼요. 이사 가기 싫다고 부모님께 투정하기보다는 이사 후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벌써 고민하고 있잖아요? 그것부터가 한결 동생은 이미 강한 친구라는 증거예요. 피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 멋져요. 그러니 자신을 믿고 설렘 가득한 지금 이 시간을 즐겨 봐요. 그럼 다가올 2022년은 올해보다 더 재미있고 신날 테니까요. 저 마이린이 한결 동생의 2022년을 응원할게요. ■어린이,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고민을 듣고 조언해 주는 ‘우리 아이 마음 읽기’ 마지막회입니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의견을 보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 “내 자식이 성소수자일 리 없어”… 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내 자식이 성소수자일 리 없어”… 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성별이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들에게 가혹하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신체는 좌절감을 안긴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기조차 힘든 이들도 있다. 가정과 학교는 혼란에 빠진 이들에게 온전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태어난 대로 살라”고 강요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극심한 성별 불일치감을 겪게 된다. 마음속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쉽게 분노에 휩싸이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걷는다. ●교사들 성 정체성 농담에 ‘마음의 상처’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학교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감옥이다. 남녀 분반, 남녀 학번, 남녀 기숙사, 남녀 교복, 남녀 화장실. 성별 이분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속엔 조급함이 싹튼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하루빨리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을 받아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존전략이다. 또래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이상한 애’라며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한다.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도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전학 간 학교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쟤는 여잔데 왜 저래?”라며 친구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윤씨는 ‘여성’을 연기했다.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도윤씨는 온라인에서 트랜스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구나.” 다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남학생들과 어울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교사는 도윤씨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쇼트커트에 바지 교복을 입은 도윤씨에게 고등학교 선생님은 “너 설마 트랜스젠더 아니지?”라고 추궁했다. 자퇴 후 다니던 꿈드림센터에서 만난 청소년 지도사는 “너 갑자기 커밍아웃하면 안 된다. 선생님, 너무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가까운 친구로부터 성 정체성을 공격받는 일은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도윤씨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뒤 친한 선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난 신경 안 써.” 첫 반응은 덤덤했다. 얼마 후 대뜸 성소수자를 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보내며 “킹왕짱이지 않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얼굴에 수염이 난 도윤씨가 “남자 화장실은 대변기 칸이 적어 가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하자, 선배는 “넌 남성기가 없으니까 여자 화장실을 써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친구한테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런 일들이 쌓이니 쉽지 않아요. 저도 지쳤고요.” 도윤씨는 말했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중·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8.8%나 됐다. 직접 언어적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24.1%였다. 그러나 10명 중 8명은 그저 참았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76.7%)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69.8%) 때문이었다. 대응하면 오히려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67.4%)도 높았다. 동료 학생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32.6%로 교사에 비해 더 많았다. 특히 언어적 폭력(74.0%)이나 아우팅(43.8%) 피해가 컸다.●성소수자 학생 권리구제 신청은 ‘0’ 차별과 혐오를 피해 벽장 속에 숨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진다. 여성과 남성 어느 쪽으로도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 여성 윤슬(21·가명)씨는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의 기억이 흐릿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철저히 남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학교가 싫었다. ‘사춘기’를 명분 삼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나누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숨통이 막힐 때면 머리라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슬씨의 머리가 귀를 덮을 길이가 될 즈음이면 바로 “남자가 그게 뭐냐”며 질책했다.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선생님이 수업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잔다”고 반항했다. 고2 때는 등교 거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퇴 얘기를 꺼내자 “잘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사유조차 묻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슬씨를 자퇴 처리했다.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1.4%는 학업 중단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차별적 대우’(68.6%), ‘성 정체성에 따른 혼란’(54.3%) 등을 꼽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국가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센터 등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버티다 결국 자퇴를 택하는 이유다. 최희원(17·가명)은 올 5월 자퇴 결정을 내리기 전 인권위에 진정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도 언제 권고가 나올지도 모르고 강제성은 없잖아요. 선생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말이 쓰일 수 있다는 걱정도 컸고요.” 희원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 교육청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몇 되지 않는다. 하형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조사관은 “서울은 조례에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지향(성적 끌림)과 성 정체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아우팅 우려 때문에 성소수자 학생이 권리 구제 신청을 한 사례는 아직 없다”고 했다.●트랜스젠더 자녀 회피하는 부모들 “너 손목이 왜 그러니. 당장 말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트랜스 남성 송우현(21·가명)씨의 손목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추궁에 우현씨는 “나는 여자가 아닌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내심 어머니가 도와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여자애들하고 성향이 조금 다르다고 네가 남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를 부정했다. 입버릇처럼 ‘나는 진보’라고 자부하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나도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아니었다.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탐난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은 여성의 자리가 있다.” 우현씨의 우발적 ‘커밍아웃’은 없던 일이 됐다. ●굿판 벌인 아버지… 화내고 때리는 어머니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대부분 일단 회피한다. 자녀를 위협하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성소수자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이런 이유에서 대다수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부모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랑 친밀하게 지내면 죄책감이 들어요. 낳아 준 부모님한테도 솔직하지 못한데 사회에 나가서 이런 존재인 나를, 이런 성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죠.” 무심코 던진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상처를 주는 건 마찬가지다. 도윤씨는 회상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동성애자가 ‘더럽다’고 해서 겁이 났어요. 독립하기 전까지 말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버지가 돈가스를 사 주겠다며 저를 이상한 절에 데려가서 굿을 벌였어요. 저한테 남자 귀신이 붙었다면서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부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어머니의 경우는 46.0%, 아버지는 34.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 15~18세는 더 드물다. 이들 중 어머니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31.8%, 아버지가 아는 건 22.7%에 불과했다. 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들 대부분 모른 체(55.2%)하거나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건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에 달했다. 전환치료(15.5%)를 강요당하거나 경제적 지원이 끊긴 경우(13.8%)도 적지 않다. 12.9%는 신체적 폭력에 노출됐다. 트랜스 여성인 대학생 김신엽(22)씨도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간 그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우연히 ‘김신엽, 여성 인칭대명사(she·her)’라고 쓰인 이름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잠을 자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몸을 더듬는 어머니에게 “이건 성추행”이라며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 몸인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신엽씨는 어린 동생에게 가족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작정 가족을 떠나 동아리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탈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다.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는 가출을 고민했고, 실제 12.2%는 가출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엔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19~24세 응답자 가운데 75.9%는 가출을 고려했고, 41.7%가 집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세의 나이에 자유(65.5%)를 찾았고, 가정폭력(49.1%)과 정체성에 따른 갈등(45.5%)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미 허물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띵동의 정용림 활동가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상담 지원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온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학업·진로 포기한 아이들 저임금 노동이 현실 집을 떠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다. 생계를 이어 나가면서 비급여인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를 받으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거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부담은 더 무겁다. 그래서 불합리한 처우도, 고강도 노동도 이를 악물고 견딘다. 도윤씨는 18살 무렵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문난 ‘악덕 사장’이던 고깃집 주인은 빨리 움직이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 달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6개월을 꼬박 일하자 300만원이 모였다. 가슴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동휘씨는 17살에 자퇴하면서 어머니에게 ‘트랜스 남성’이라고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또래 성소수자 친구와 원룸에서 살았다. 남녀로 구분되는 청소년 쉼터 역시 동휘씨에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 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동휘씨는 당근마켓에 중고 물품 판매자로 위장한 글을 올려 이불을 팔기도 했고, 공장에서 도시락도 만들었다. 고정 알바가 안 구해지면 쿠팡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 ‘일용직’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트랜스 남성 박영(18)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알바를 하다 얼마 전 잘렸다. 대표는 “트랜스젠더여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가슴절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일을 쉰 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 9월 영이가 성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일자리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저는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는데, 산업재해 사고라도 당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의 이름으로 일하다 임금이 떼이면 어떻게 항의하고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모임인 튤립연대의 활동가 A씨는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학업이나 진로를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최훈진·김주연·민나리·최영권 기자 ●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 [단독]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해”… ‘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

    [단독]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해”… ‘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성별이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들에게 가혹하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신체는 좌절감을 안긴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기조차 힘든 이들도 있다. 가정과 학교는 혼란에 빠진 이들에게 온전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태어난 대로 살라”고 강요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극심한 성별 불일치감을 겪게 된다. 마음속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쉽게 분노에 휩싸이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걷는다.●교사들 성 정체성 농담에 ‘마음의 상처’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학교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감옥이다. 남녀 분반, 남녀 학번, 남녀 기숙사, 남녀 교복, 남녀 화장실. 성별 이분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속엔 조급함이 싹튼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하루빨리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을 받아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존전략이다. 또래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이상한 애’라며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한다.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도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전학 간 학교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쟤는 여잔데 왜 저래?”라며 친구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윤씨는 ‘여성’을 연기했다.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도윤씨는 온라인에서 트랜스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구나.” 다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남학생들과 어울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교사는 도윤씨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쇼트커트에 바지 교복을 입은 도윤씨에게 고등학교 선생님은 “너 설마 트랜스젠더 아니지?”라고 추궁했다. 자퇴 후 다니던 꿈드림센터에서 만난 청소년 지도사는 “너 갑자기 커밍아웃하면 안 된다. 선생님, 너무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가까운 친구로부터 성 정체성을 공격받는 일은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도윤씨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뒤 친한 선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난 신경 안 써.” 첫 반응은 덤덤했다. 얼마 후 대뜸 성소수자를 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보내며 “킹왕짱이지 않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얼굴에 수염이 난 도윤씨가 “남자 화장실은 대변기 칸이 적어 가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하자, 선배는 “넌 남성기가 없으니까 여자 화장실을 써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친구한테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런 일들이 쌓이니 쉽지 않아요. 저도 지쳤고요.” 도윤씨는 말했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중·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8.8%나 됐다. 직접 언어적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24.1%였다. 그러나 10명 중 8명은 그저 참았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76.7%)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69.8%) 때문이었다. 대응하면 오히려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67.4%)도 높았다. 동료 학생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32.6%로 교사에 비해 더 많았다. 특히 언어적 폭력(74.0%)이나 아우팅(43.8%) 피해가 컸다.●성소수자 학생 권리구제 신청은 ‘0’ 차별과 혐오를 피해 벽장 속에 숨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진다. 여성과 남성 어느 쪽으로도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 여성 윤슬(21·가명)씨는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의 기억이 흐릿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철저히 남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학교가 싫었다. ‘사춘기’를 명분 삼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나누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숨통이 막힐 때면 머리라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슬씨의 머리가 귀를 덮을 길이가 될 즈음이면 바로 “남자가 그게 뭐냐”며 질책했다.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선생님이 수업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잔다”고 반항했다. 고2 때는 등교 거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퇴 얘기를 꺼내자 “잘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사유조차 묻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슬씨를 자퇴 처리했다.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1.4%는 학업 중단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차별적 대우’(68.6%), ‘성 정체성에 따른 혼란’(54.3%) 등을 꼽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국가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센터 등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버티다 결국 자퇴를 택하는 이유다. 최희원(17·가명)은 올 5월 자퇴 결정을 내리기 전 인권위에 진정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도 언제 권고가 나올지도 모르고 강제성은 없잖아요. 선생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말이 쓰일 수 있다는 걱정도 컸고요.” 희원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 교육청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몇 되지 않는다. 하형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조사관은 “서울은 조례에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지향(성적 끌림)과 성 정체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아우팅 우려 때문에 성소수자 학생이 권리 구제 신청을 한 사례는 아직 없다”고 했다.●트랜스젠더 자녀 회피하는 부모들 “너 손목이 왜 그러니. 당장 말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트랜스 남성 송우현(21·가명)씨의 손목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추궁에 우현씨는 “나는 여자가 아닌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내심 어머니가 도와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여자애들하고 성향이 조금 다르다고 네가 남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를 부정했다. 입버릇처럼 ‘나는 진보’라고 자부하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나도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아니었다.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탐난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은 여성의 자리가 있다.” 우현씨의 우발적 ‘커밍아웃’은 없던 일이 됐다. ●굿판 벌인 아버지… 화내고 때리는 어머니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대부분 일단 회피한다. 자녀를 위협하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성소수자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이런 이유에서 대다수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부모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랑 친밀하게 지내면 죄책감이 들어요. 낳아 준 부모님한테도 솔직하지 못한데 사회에 나가서 이런 존재인 나를, 이런 성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죠.” 무심코 던진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상처를 주는 건 마찬가지다. 도윤씨는 회상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동성애자가 ‘더럽다’고 해서 겁이 났어요. 독립하기 전까지 말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버지가 돈가스를 사 주겠다며 저를 이상한 절에 데려가서 굿을 벌였어요. 저한테 남자 귀신이 붙었다면서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부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어머니의 경우는 46.0%, 아버지는 34.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 15~18세는 더 드물다. 이들 중 어머니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31.8%, 아버지가 아는 건 22.7%에 불과했다. 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들 대부분 모른 체(55.2%)하거나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건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에 달했다. 전환치료(15.5%)를 강요당하거나 경제적 지원이 끊긴 경우(13.8%)도 적지 않다. 12.9%는 신체적 폭력에 노출됐다. 트랜스 여성인 대학생 김신엽(22)씨도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간 그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우연히 ‘김신엽, 여성 인칭대명사(she·her)’라고 쓰인 이름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잠을 자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몸을 더듬는 어머니에게 “이건 성추행”이라며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 몸인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신엽씨는 어린 동생에게 가족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작정 가족을 떠나 동아리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탈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다.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는 가출을 고민했고, 실제 12.2%는 가출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엔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19~24세 응답자 가운데 75.9%는 가출을 고려했고, 41.7%가 집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세의 나이에 자유(65.5%)를 찾았고, 가정폭력(49.1%)과 정체성에 따른 갈등(45.5%)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미 허물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띵동의 정용림 활동가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상담 지원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온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학업·진로 포기한 아이들 저임금 노동이 현실 집을 떠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다. 생계를 이어 나가면서 비급여인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를 받으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거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부담은 더 무겁다. 그래서 불합리한 처우도, 고강도 노동도 이를 악물고 견딘다. 도윤씨는 18살 무렵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문난 ‘악덕 사장’이던 고깃집 주인은 빨리 움직이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 달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6개월을 꼬박 일하자 300만원이 모였다. 가슴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동휘씨는 17살에 자퇴하면서 어머니에게 ‘트랜스 남성’이라고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또래 성소수자 친구와 원룸에서 살았다. 남녀로 구분되는 청소년 쉼터 역시 동휘씨에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 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동휘씨는 당근마켓에 중고 물품 판매자로 위장한 글을 올려 이불을 팔기도 했고, 공장에서 도시락도 만들었다. 고정 알바가 안 구해지면 쿠팡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 ‘일용직’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트랜스 남성 박영(18)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알바를 하다 얼마 전 잘렸다. 대표는 “트랜스젠더여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가슴절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일을 쉰 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 9월 영이가 성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일자리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저는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는데, 산업재해 사고라도 당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의 이름으로 일하다 임금이 떼이면 어떻게 항의하고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모임인 튤립연대의 활동가 A씨는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학업이나 진로를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그래픽 김예원 기자 yean811@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 ‘마음연결’ 02-745-9191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카카오톡 친구 ‘띵동119’)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별기획팀 최훈진·김주연·민나리·최영권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단독]‘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단독]‘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성별(지정 성별)이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들에게 가혹하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신체는 좌절감을 안긴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기조차 힘든 이들도 있다. 가정과 학교는 혼란에 빠진 이들에게 온전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태어난 대로 살라”고 강요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극심한 성별 불일치감을 겪게 된다. 마음 속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쉽게 분노에 휩싸이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걷는다.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학교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학교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감옥이다. 남녀 분반, 남녀 학번, 남녀 기숙사, 남녀 교복, 남녀 화장실. 성별 이분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 속엔 조급함이 싹튼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하루 빨리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을 받아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존전략이다. 또래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이상한 애’라며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한다.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도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전학 간 학교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쟤는 여잔데 왜 저래?”라며 친구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윤씨는 ‘여성’을 연기했다.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도윤씨는 온라인에서 트랜스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구나.” 다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남학생들과 어울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교사는 도윤씨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숏커트에 바지 교복을 입은 도윤씨에게 고등학교 선생님은 “너 설마 트랜스젠더 아니지?”라고 추궁했다. 자퇴 후 다니던 꿈드림 센터에서 만난 청소년 지도사는 “너 갑자기 커밍아웃하면 안 된다. 선생님, 너무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가까운 친구로부터 성 정체성을 공격받는 일은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도윤씨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뒤 친한 선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난 신경 안 써.” 첫 반응은 덤덤했다. 얼마 후 대뜸 성소수자를 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보내며 “킹왕짱이지 않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얼굴에 수염이 난 도윤씨가 “남자 화장실은 대변기 칸이 적어 가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하자, 선배는 “넌 남성기가 없으니까 여자 화장실을 써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이 존중한다는 게 아니라 ‘너가 트랜스젠더인데 뭐 어쩌라고?’라는 뜻이었다. “친구한테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런 일들이 쌓이니 쉽지 않아요. 저도 지쳤고요.” 도윤씨는 말했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중·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8.8%나 됐다. 직접 언어적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24.1%였다. 그러나 10명 중 8명은 그저 참았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76.7%)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69.8%) 때문이었다. 대응하면 오히려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67.4%)도 높았다. 동료 학생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32.6%로 교사에 비해 더 많았다. 특히 언어적 폭력(74.0%)이나 아웃팅(43.8%) 피해가 컸다. 성소수자 학생 권리구제는 ‘0’…기댈곳 없어 학교 스스로 관둬 차별과 혐오를 피해 벽장 속에 숨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진다. 여성과 남성 어느쪽으로도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 여성 윤슬(21·가명)씨는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 기억이 흐릿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철저히 남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학교가 싫었다. ‘사춘기’를 명분 삼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나누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숨통이 막힐 때면 머리라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슬씨의 머리가 귀를 덮을 길이가 될 즈음이면, 바로 “남자가 그게 뭐냐”며 트집을 잡았다.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선생님이 수업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잔다”고 반항했다. 고2 때는 등교 거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퇴 얘기를 꺼내자 “잘 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사유조차 묻지 않고 기다렸다는듯 슬씨를 자퇴 처리했다.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1.4%는 학업 중단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차별적 대우’(68.6%), ‘성 정체성에 따른 혼란’(54.3%) 등을 꼽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국가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센터 등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버티다 결국 자퇴를 택하는 이유다. 최희원(17·가명)씨는 올 5월 자퇴 결정을 내리기 전 인권위에 진정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도 언제 권고가 나올지도 모르고 강제성은 없잖아요. 선생님과 관계가 틀어지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말이 쓰일 수 있다는 걱정도 컸고요.” 희원씨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 교육청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몇 안 된다. 그중에서도 조례 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는 지역은 서울과 경기 정도다. 하형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조사관은 “서울은 다른 지역과 달리 학생인권조례에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지향(성적 끌림)과 성 정체성을 명시했다”면서도 “성소수자 권리구제 신청을 하는 순간 정체성이 원치 않게 공개되기 때문에 여전히 학생들은 상담기관을 찾을 뿐 직접 구제 신청을 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도윤씨는 잘 살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자퇴를 택했지만, 지금도 졸업식에 가는 꿈을 자주 꾼다. ‘검정고시로 졸업했는데 왜 학교에 있지’라고 의구심을 품다가 ‘꿈인데 그럴 수도 있지’라고 납득한다. “남들은 초·중·고는 그냥 졸업하잖아요. 자퇴한 데 아쉬움이 남나봐요.” 등 돌린 부모 “너 손목이 왜 그러니. 당장 말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트랜스 남성 송우현(21·가명)씨의 손목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추궁에 우현씨는 “나는 여자가 아닌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내심 어머니가 도와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여자애들하고 성향이 조금 다르다고 네가 남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를 부정했다. 입버릇처럼 ‘나는 진보’라고 자부하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나도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아니었다.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탐난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은 여성의 자리가 있다.” 우현씨의 우발적 ‘커밍아웃’은 그렇게 없던 일이 됐다. 부모님의 지지를 바랐던 우현씨는 다시 용기를 냈다. “학교에 다니며 성별을 바꾸기 위한 의료적 조치(트랜지션)를 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7살 터울인 동생이 잠든 뒤에야 부모님은 우현씨를 불렀다. 그때 들은 말 대부분을 애써 기억에서 지웠지만, 아버지의 한 마디는 잊을 수 없다. “애초에 너를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말해도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다. 네가 커서 알아서 해라.”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대부분 일단 회피한다. 자녀를 위협하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성소수자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우현씨는 오랫동안 부모를 설득한 끝에 고2 때 학교를 그만두고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 두어달이 지나자 수염도 났다. 신체에 대한 성별 불일치감은 줄었지만 부모님은 멀어졌다. 어머니는 느닷없이 수도원으로 떠났다. “제가 변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던 거 같아요. 한달 뒤에 엄마가 돌아오고 저는 집에서 쫓겨났어요. 집에 전화했는데, 지금 들어가면 맞아죽겠다 싶었죠. 아는 사람 집을 1주일씩 전전하다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인 ‘띵동’에 도와달라고 했죠.” 폭력에 전환치료 시도까지…가출은 이들의 생존법 대다수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부모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랑 친밀하게 지내면 죄책감이 들어요. 그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요. 낳아준 부모님한테도 솔직하지 못한데, 사회에 나가서 이런 존재인 나를, 이런 성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죠.” 무심코 던진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상처를 주는 건 마찬가지다. 도윤씨는 회상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동성애자가 ‘더럽다’고 해서 겁이 났어요. 살려면 독립하기 전에 말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버지가 돈까스를 사주겠다며 저를 이상한 절에 데려가서 굿을 벌였어요. 저한테 남자 귀신이 붙었다면서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부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어머니의 경우는 46.0%, 아버지는 34.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 15~18세는 더 드물다. 이들 중 어머니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31.8%, 아버지가 아는 건 22.7%에 불과했다. 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들 대부분 모른 체(55.2%) 하거나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건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에 달했다. 전환치료(15.5%)를 강요당하거나, 경제적 지원이 끊긴 경우(13.8%)도 적지 않다. 12.9%는 신체적 폭력에 노출됐다. 트랜스 여성인 대학생 김신엽(22)씨도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간 그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우연히 ‘김신엽, 여성 인칭대명사(she/her)’라고 쓰인 이름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잠을 자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몸을 더듬는 어머니에게 “이건 성추행”이라며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 몸인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신엽씨는 어린 동생에게 가족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작정 가족을 떠나 동아리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탈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다.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는 가출을 고민했고, 실제 12.2%는 가출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엔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19~24세 응답자 가운데 75.9%는 가출을 고려했고, 41.7%가 집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살의 나이에 자유(65.5%)를 찾고, 가정 폭력(49.1%)과 정체성에 따른 갈등(45.5%)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미 허물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띵동의 정용림 활동가는 “정신과 상담이나 진단에 대한 부모 동의를 얻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상담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탈가정한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생계형 노동자가 된 아이들 집을 떠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다.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비급여인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를 받으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거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부담은 더 무겁다. 그래서 불합리한 처우도, 고강도 노동도 이를 악물고 견딘다. 도윤씨는 18살 무렵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문난 ‘악덕 사장’이던 고깃집 주인은 빨리 움직이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달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6개월을 꼬박 일하자 300만원이 모였다. 가슴 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동휘씨는 17살에 자퇴하면서 어머니에게 ‘트랜스 남성’이라고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또래 성소수자 친구와 원룸에서 살았다. 남녀로 구분되는 청소년 쉼터 역시 동휘씨에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동휘씨는 당근마켓에 중고 물품 판매자로 위장한 글을 올려 이불을 팔기도 했고, 공장에서 도시락도 만들었다. 고정 알바가 안 구해지면 쿠팡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에서 ‘일용직’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트랜스 남성 박영(18)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알바를 하다 얼마 전 잘렸다. 대표는 “트랜스젠더여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가슴 절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일을 쉰 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 9월 영씨가 성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일자리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저는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는데, 산업재해 사고라도 당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의 이름으로 일하다 임금이 떼이면 어떻게 항의하고요.” 청소년 트렌스젠더 모임인 튤립연대의 활동가 A씨는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학업이나 진로를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들에게 아무런 지원도 없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라’고 말만 하는 건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 ‘마음연결’ 02-745-9191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카카오톡 친구 ‘띵동119’)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최북단 카페 ‘오픈더문’ 남북교류 도움 돼 뿌듯”

    “최북단 카페 ‘오픈더문’ 남북교류 도움 돼 뿌듯”

    英서 사회적기업 배워 韓 사회에 접목 “잘 왔다”며 찾아오는 손님들 있어 보람“국경을 지키는 군인 아저씨 등에 업혀 열 살 때 두만강을 건넜어요. 북한에 대한 그리움은 많은데 아이 때 한국으로 와서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강원 철원군의 북한 노동당사 맞은편에 있는 대한민국 최북단 카페 ‘오픈더문’을 운영하는 김원일(사진·26)씨는 탈북 청년이다. 김씨는 이곳에서 요리까지 맡고 있는데, 영국 유학 시절에 익힌 그곳의 감성을 담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내놓는다. 화려한 황금빛 잔에 담긴 비엔나커피의 크림 맛은 철원이 아니라 공간 이동을 해서 유럽의 야외 카페에 앉아 있는 듯 진하다. 카페 바로 앞에는 소이산이 있는데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야트막한 동산이지만, 정상에서는 드넓은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미군 벙커와 헬기 착륙장이 있다. 60여년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곳으로 2011년부터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 일부 열렸다. 어머니와 함께 탈북한 김씨는 2005년 고비사막을 건너 주몽골 한국대사관을 거쳐 한국에 정착했다. 항상 일하느라 바빴던 어머니 곁을 떠나 김태훈씨가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 탈북청소년 그룹홈에서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교까지 생활했다. 카페를 열게 된 계기도 ‘삼촌’이라 부르는 김씨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는 “삼촌이 공부를 못해도 좋으니 한국 학교에 다니고, 같은 윗동네(북한) 친구만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고 말했다. 삼촌 김씨와 함께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큰 탈북민 사회가 형성된 영국에서 사회적기업을 공부하고자 2015~2016년 유학을 다녀왔다. 영국에서는 지역 발전이 남부보다 상대적으로 더딘 중부와 북부에 사회적기업이 많이 포진했는데, 사회적기업은 대부분 카페를 운영하면서 지역의 특성을 담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것은 “잘 왔다”, “고생했다”며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남북교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장사도 잘 안 되는 외진 곳에서 카페를 한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씨는 “삼촌이 만든 그룹홈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돈 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고 어머니를 설득했다”면서 “카페를 더 알려서 삼촌 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오픈더문’은 그룹홈에서 자란 탈북청년들이 처음으로 도전한 사업이다. 2018년 개업 초기에는 철원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는 듯했으나, 코로나19로 손님이 거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꼬박꼬박 가게 문은 열고 있다.
  • [평화로 나아가는 사람들 8] 최북단 카페 운영하는 영국 유학파 탈북 청년 김원일씨

    [평화로 나아가는 사람들 8] 최북단 카페 운영하는 영국 유학파 탈북 청년 김원일씨

    “국경을 지키는 군인 아저씨 등에 업혀 열 살 때 두만강을 건넜어요. 북한에 대한 그리움은 많은데 아이 때 한국으로 와서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강원 철원군의 북한 노동당사 맞은편에 있는 대한민국 최북단 카페 ‘오픈더문’을 운영하는 김원일(26)씨는 탈북 청년이다. 김씨는 이곳에서 요리까지 맡고 있는데, 영국 유학 시절에 익힌 그곳의 감성을 담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내놓는다. 화려한 황금빛 잔에 담긴 비엔나커피의 크림 맛은 철원이 아니라 공간 이동을 해서 유럽의 야외 카페에 앉아 있는 듯 진하다. 카페 바로 앞에는 소이산이 있는데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야트막한 동산이지만, 정상에서는 드넓은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미군 벙커와 헬기 착륙장이 있다. 60여년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곳으로 2011년부터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 일부 열렸다. 어머니와 함께 탈북한 김씨는 2005년 고비사막을 건너 주몽골 한국대사관을 거쳐 한국에 정착했다. 항상 일하느라 바빴던 어머니 곁을 떠나 김태훈(45)씨가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 탈북청소년 그룹홈에서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교까지 생활했다. 카페를 열게 된 계기도 ‘삼촌’이라 부르는 김씨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는 “삼촌이 공부를 못해도 좋으니 한국 학교에 다니고, 같은 윗동네(북한) 친구만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고 말했다. 삼촌 김씨와 함께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큰 탈북민 사회가 형성된 영국에서 사회적 기업을 공부하고자 2015~2016년 유학을 다녀왔다. 영국에서는 지역 발전이 남부보다 상대적으로 더딘 중부와 북부에 사회적 기업이 많이 포진했는데, 사회적 기업은 대부분 카페를 운영하면서 지역의 특성을 담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것은 “잘 왔다”, “고생했다”며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남북교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장사도 잘 안 되는 외진 곳에서 카페를 한다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김씨는 “삼촌이 만든 그룹홈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돈 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고 어머니를 설득했다”면서 “카페를 더 알려서 삼촌 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오픈더문’은 그룹홈에서 자란 탈북청년들이 처음으로 도전한 사업이다. 2018년 개업 초기에는 철원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는 듯했으나, 코로나19로 손님이 거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꼬박꼬박 가게 문은 열고 있다. 한반도의 배꼽이라 불리는 철원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15곳의 시와 군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이현종 철원군수는 9일 인터뷰를 통해 2011년 제정된 ‘접경지역지원특별법’이 “이름만 특별하지 실질적으로 일반법보다 못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강제 규정이 없어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식이라며, 명시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 분단으로 낙후된 접경지역 발전을 위해 마련된 특별법은 2030년까지 20년간 약 13조원이 접경지역에 투자되도록 했다. 접경지역을 ‘세계적인 생태·평화벨트’로 키우겠다는 우리 정부의 계획은 독일이 ‘철의 장막’으로 불렸던 접경지역을 ‘그뤼네스 반트’(녹색 띠)로 불리는 생태지역으로 육성한 것에서 착안했다. 이 군수는 “독일은 접경지역 시군 자치단체에 국가 특별기관을 하나씩 크게 지원했다”면서 “독일과는 사정이 다르겠지만 우리 지역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독일은 통일 이후 접경지역에 약 30개의 박물관을 만들어 역사 교육의 현장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군수는 ‘통일의 전진기지’인 접경지역 활용법으로 철원에 북한 주민을 위한 의료시설 설치를 제안했다. 의료 수준이 열악한 북한 지역 주민들이 철원에 와서 한국의 우수한 의료자원으로 치료를 받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철원은 이미 2007년 쉬리 마을을 조성해 당시 1만여명이던 탈북민들이 모여 농사를 짓는 마을을 조성하는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정작 철원에 살아야 할 탈북민들은 사업 구상에 참여하지 않았다. 탈북민들의 생각을 전혀 읽지 못한 이 사업은 결국 실패했다. “왜 탈북민은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라며 탁상 행정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태훈(45)씨는 3만명이 넘는 탈북민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가 철원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접경지역 가운데 가장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탈북민 지원사업은 이제 ‘시즌 2’라고 볼 수 있다”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2년 4만 8000여명에서 올해 4만 3000여명으로 점점 인구가 줄어드는 철원군에서는 사람을 불러모으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그는 탈북 청년들과 함께 철원에서 카페를 포함한 여러 사업을 구상 중이다. 우선 ‘한 달 살기’ 열풍을 철원에 불러일으키려 한다.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청년들이 한 달 살기를 통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철원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자 ‘통일캠프’, 3·8선에서 이름을 딴 ‘3분8초 영화제’ 등도 열고 있다. 김씨는 “지자체의 머릿속 구상만으로는 사람을 불러모을 수 없다”면서 “청년이나 탈북민에 대한 설문조사나 활동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녹여 낸 사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신문은 오는 2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접경지역 균형발전 정책 포럼’을 열어 미래를 위한 접경지역 정책을 논의한다.
  • 폐교 직전 시골 학교인데… 서울서 14명 ‘유학’ 왜 왔대?

    폐교 직전 시골 학교인데… 서울서 14명 ‘유학’ 왜 왔대?

    “그렇지! 좀더 발을 쭉 뻗어 보자. 축구하듯이!” 전남 구례군 산동면 중동초등학교 1학년 교실. 풍선을 이용한 실내체육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 3일 방문한 기자가 “학생이 세 명밖에 되질 않는다”고 하자 학교를 안내하던 이호재 교무부장은 고개를 저으며 “학생이 세 명이나 돼 참 다행”이라고 답한다. 이 학교는 1936년 개교한 이래 1972년에는 전교생 789명(13학급)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도시로 점점 빠져나가면서 전교생이 20명으로 줄었다. 급기야 올해는 신입생 ‘0’명까지 내몰렸다. 1학년이 없어지면 교사 정원도 빠지고 교감 자리도 사라질 판이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24명이 올해 전학을 신청해 14명을 추가로 받았다. ‘농산어촌유학마을’ 사업 덕분이었다. 전남농산어촌유학은 초등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학기 단위로 전남과 서울 지역 전학생을 받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반 전학과 달리 학생의 원적을 유지해 학생이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 그대로 수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유학’이라는 표현을 쓴다. 전남농산어촌유학은 학생이 농가에서 생활하는 농가홈스테이형, 일정한 센터에서 기숙하는 센터형, 그리고 가족이 내려와 함께 사는 가족체류형으로 진행된다. 특히 가족체류형은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거주지에 월세 80만원 안팎을 지원한다. ‘유학생’들은 농촌 지역 이점을 활용한 특색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한 학년이 3~7명이라 코로나19가 한창일 때에도 대면수업을 했다. 교과 수업 일대일 지도는 물론이고 전교생이 승마 수업을 받는 것도 이곳에선 가능하다. 1·2학년은 지리산 둘레길 탐방, 3·4학년은 섬진강변 자전거 타기, 5·6학년은 마을 역사를 주제로 프로젝트 수업을 한다.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다혜 교사는 “도시에서 온 전학생들이 수업 끝나면 친구들과 메뚜기 잡고 개구리 잡으러 다닌다”고 소개했다. 서울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이 학교로 온 학부모 이지은씨는 “지난해 서울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고 관심이 생겼고, 주거 지원을 받아 구례예술인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한 반에 30명씩 수업받을 때에 비해 아이의 눈빛이 달라진 점이 큰 변화”라고 말했다. 자녀인 5학년 전학생 김온유양은 “맑은 공기 마시면서 엄마와 산책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져 아주 즐겁다”고 웃었다. 현재 전남 지역 9개 시군에서 10개 마을을 운영 중이다. 초등학생 139명, 중학생 26명 총 165명이 전학을 와 있다. 1학기에 82명이 전학 왔는데 이 가운데 52명이 한 학기 더 연장해 다니고 있다. 2학기에 전국 단위로 유학을 확대하면서 서울에서만 151명이 신청할 정도다. 범미경 전남교육청 혁신교육과장은 “학생뿐 아니라 부모가 함께 내려오거나 주말에 함께 지내면서 지역 경제도 활기를 띤다”면서 “전학생이 있는 서울지역 학교 등과 연계해 농산물 직거래나 공동구매 등 경제 활성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 안전성 ‘불안’ 보상은 ‘불만’… 일방적 백신정책 ‘불신’ 키웠다

    안전성 ‘불안’ 보상은 ‘불만’… 일방적 백신정책 ‘불신’ 키웠다

    내년 2월부터 12세 이상 청소년에게도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를 적용하기로 한 정부 방침을 두고 반발이 계속되는 이유는 ‘불안과 불만’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아이들에게 접종해도 되는지 안전성에 대한 ‘불안’은 해소가 안 됐는데, 정작 백신 부작용이 생겼을 때 보상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백신접종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결국 안전성과 보상체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방역 당국에 따르면 방역패스는 올해 기준으로 초등학교 6학년∼고등학교 3학년인 2003∼2009년생 청소년에게 8주 유예기간을 둔다. 하지만 지금부터 바로 1차 접종을 시작해야 내년 2월 1일 전에 백신 접종을 완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등학교 6학년 이상은 백신접종을 사실상 의무화하는 조치라는 게 반발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거주하는 50대 학부모는 “학생 감염도 늘고 오미크론도 확산하는 추세여서 이 기회에 백신 접종을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교육부가 청소년이 백신을 접종해도 안전하다는 충분한 설명 없이 백신접종만 강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2학년을 둔 40대 학부모는 “백신접종을 무리하게 추진할 정도로 상황을 예상하지도 못하고 교육부가 전면등교를 강행했는데, 이런 오락가락 행보에 학부모들 피로가 극에 달했다”며 “차라리 이쯤에서 조기 방학을 하는 게 낫겠다”고 전했다. 대입 수험생인 양대림(18)군은 이르면 오는 8일 정부를 상대로 방역패스의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양군은 지난 10월 12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정부의 백신 부작용에 대한 인과성 판단 기준을 비판하는 영상을 올린 뒤 집단소송에 동참할 435명(5일 오후 8시 기준)을 모았다. 그는 “방역패스 제도는 사실상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것으로 일반적 행동의 자유, 평등권, 신체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적이고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소년 방역패스에 대한 불만이 수그러들지 않는 바탕에는 백신 안전성에 대한 불안은 커지는 반면 부작용에 대한 피해 보상 체계는 미비한 영향이 크다. 네 자녀를 키우는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글쓴이가 방역패스를 반대한다며 쓴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도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위해 부모라서 백신을 맞았지만, 백신 부작용에 대처하는 정부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특히 백신 부작용에 관한 피해 보상 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아 학생·학부모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며 “과로사나 고엽제후유증에서 보듯 인과관계가 의학적·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지 않아도 국가가 나서서 포괄적으로 피해를 보상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방역패스는 미접종자들이 접종을 안 하셨으니 음성확인서라도 내는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방역패스는 미접종자 보호 전략”이라고 밝혔다.
  • 신입생 ‘0’ 초등학교에 전학생 몰린 이유는

    신입생 ‘0’ 초등학교에 전학생 몰린 이유는

    “그렇지! 좀 더 발을 뻗어 더 세게 차보자. 축구 하듯이!” 전남 구례군 산동면 중동초등학교 1학년 교실. 풍선을 가지고 하는 실내체육 수업에서 학생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기자가 “학생이 3명밖에 되질 않는다”고 가리키자 학교를 안내하던 이호재 교무부장이 고개를 저으며 “학생이 3명이나 돼 참 다행”이라고 답한다. 이 학교는 1936년 중동간이학교로 개교한 이래 1972년에 전교생 789명(13학급)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도시로 점점 빠져나가면서 올해 3월에는 전교생이 20명으로 줄었다. 특히 신입생 ‘0’ 상황에 내몰리면서 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1학년이 없어지면 교사 정원도 빠지고, 교감 자리도 줄어든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올해 24명의 학생이 전학을 신청한 것. 학교는 어쩔 수 없이 14명만 전학을 받았다. 모두가 ‘농산어촌유학마을’ 사업 덕분이었다. 전남농산어촌 유학은 초등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학기 단위로 전남과 서울 지역 전학생을 받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교육청과 협약을 맺어 한 학기나 두 학기까지 다니다 원래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 일반 전학과 달리 학생의 원적을 유지해, 학생이 원래 학교로 돌아가도 다니던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어 ‘유학’이라는 표현을 쓴다.중동초는 한 학년 학생 수가 3~7명에 불과해 코로나19 때에도 대면수업을 진행했고, 좀 더 풍부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교과 수업에서 일대일 지도는 물론이거니와 교육청과 지자체 지원으로 도시 초등학교는 엄두도 못 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전교생이 승마 수업을 하고, 오케스트라 활동도 한다. 1·2학년은 지리산 둘레길 탐방, 3·4학년은 섬진강 길 따라 자전거 타기, 5·6학년은 마을 역사를 주제로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등 농촌 지역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학년 담임을 맡은 김다혜 교사는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야외활동이 불가능했던 도시 학교 전학생들이 이제는 수업 끝나면 가방 던져놓고 친구들과 메뚜기 잡고 개구리 잡으러 놀러다닌다. 할 게 없어서 스마트폰을 잡았던 도시 학생들 눈빛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유학은 학생이 농가에서 생활하는 농가홈스테이형, 일정한 센터를 두고 기숙하는 센터형, 그리고 가족이 내려와 함께 사는 가족체류형으로 진행한다. 단순히 학생을 충원하는 식이 아니라 지자체와 교육청 지원을 받고 마을공동체가 함께 해 학부모들 거주 문제를 해결한 게 특히 효과를 봤다. 예컨대 가족체류형은 학년 제한을 두지 않고, 교육청과 지자체가 거주지 월세로 80만원 안팎을 지원한다. 현재 전남 농산어촌 유학마을 9개 시군에 10개 마을에 1학기 82명이 전학을 왔는데, 이 가운데 52명이 학기를 연장했다. 지금은 모두 초등학생 139명, 중학생 26명의 165명이 와 있다. 1학기는 전남, 2학기에는 전국 단위로 확대했는데 서울에서만 무려 151명이 신청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산동면으로 온 학부모 이지은씨는 지난해 서울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고 관심이 생겼고, 주거 문제가 해결돼 내려온 사례다. 이씨는 “프로그램이 좋다고 아빠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산동면 쪽에 마을이 잘 형성된 예술인마을에 살기로 결정하면서 친구네 가족과 함께 왔다. 이번 학기 아주 만족스럽게 지내 한 학기 더 연장해 지낼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한 반에 30명씩 수업받을 때와 생활 자체가 바뀌었다. 친구들과 관계는 물론, 선생님과 관계가 굉장히 친밀해졌다”고 말했다. 자녀인 5학년 전학생 김온유양은 “서울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만 지냈는데, 여기에서는 밖에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엄마와 산책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져 너무 즐겁다”고 웃었다.학생이 급격히 줄어드는 지방 학교를 살리는 일이지만,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 범미경 전남교육청 혁신교육과장은 “전남 지역은 인구 유출이 심각해 30년 이내 지방소멸 위기에 내몰린 곳이다. 지자체가 관광이나 특산물 등을 비롯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실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학교를 중심으로 인구가 점차 늘어나니 다른 해결책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학생뿐 아니라 부모가 함께 내려오거나 주말에 함께하면서 특산물 소비가 늘고, 학교 주변 경제도 차츰 활기를 띤다는 이야기다. 범 과장은 “전학생이 있는 서울 지역과 연계해 농산물 직거래나 공동구매 등 경제 활성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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