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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 분단장벽 허무나](5.끝)결산대담

    한국전쟁은 우리 문화예술계에 깊은 파장과 상흔을 남겼다.그 한국전쟁이 50주년 되는 해, 6·15선언으로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최민 영상원장과 인하대 국문과 최원식 교수의 대담을 통해남북분단문화의 극복방안 등을 들어본다. ■최원식교수 6·15선언은 오랜만에 우리 정치가 국민을 기쁘게 해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홍콩과 마카오의 중국 반환이 20세기를 마감하는 빅쇼였다면,한국의 통일과정은 21세기를 여는 대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통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독일식 흡수통일이나 베트남식 무력통일만이 통일이 아닙니다.‘극적인 통일’관에서 벗어나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최민원장 동감입니다.어떤 과정을 통한 어떤 통일이냐가 중요해요.원상복구 차원의 통일은 이제 맞지 않습니다.새로운 통일개념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최교수 먼저 문화예술이 민족의 분단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나아가 분단극복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있습니다.올해는 더욱이 한국전쟁 50돌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최원장 미술의 경우 80년대에 특히 이념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왔지만 장르적 특성상 그림으로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입니다.한국영화 ‘간첩 리철진’은 북의 간첩도 인간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합니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의 내적인 금기가 많이 깨졌습니다. ■최교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서문을 보면 “이 작품이 나올 수 있게해준 어린 공화국에 감사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4·19직후인 당시로선 굉장히 전향적인 발언인 셈이죠. ■최교수 예술활동을 제재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통일을 주제로 뭔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요즘 통일글짓기가 유행이나 6·25가 돌아오면 으레 해오던 반공웅변대회나 글짓기대회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제재론적인 입장에서 통일예술만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예술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예술에는 자기검열이 필요합니다. ■최원장 늘 ‘반쪽의 시선’밖에 가지지 못했다는 게 문제입니다.한 쪽을봉쇄하니까 역지사지가 안되죠.지난 50년동안 남한사회는 정치적·문화적 고도와도 같았습니다.독일은 브란트총리 시절부터 동서독이 왕래하며 대화를시작해 지방과 지방끼리는 거의 하나가 될 정도로 섞였습니다. ■최교수 일찍이 지방자치를 했던 독일의 교류수준은 무척 깊었으나 막상 통일이 되려하자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통일을 반대했습니다.통일에 관한 모든논의들이 휴지조각이 됐다는 게 그들의 일성이었죠.결국 현실이 이념을 뒤집은 셈입니다.우리의 경우 한번 물꼬가 터지면 엄청난 가속도가 붙을 것이 예상되는 만큼 역기능이 우려됩니다. ■최원장 속도조절이 필요합니다.언론 보도에서도 나타났듯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시각이 급전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준비가 없었는가를반증하는 것입니다. ■최교수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그 차이가 쌓였을 때 더 큰 풍요를 낳을 수 있어요.에커먼의‘괴테와의 대화’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대목이 생각납니다.“나는 독일이 통일이 되면 좋지만 지방의 발달한 분권적인 문화가 다 없어지고 베를린 문화 일색으로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최원장 민예총이 주최한 6월 인천 황해예술제에서 ‘불가사리’등 북한영화 5편이 상영됐습니다.이미 낮은 단계의 남북영화교류가 시작된 셈이죠.통일논의가 허공에 뜨지 않기위해서는 서로를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최교수 통일의 힘은 근본적으로 남한에 있다고 봅니다.특히 문화교류의 경우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야 합니다.상호주의를 꼭 1대1의 계량적인 개념으로 봐서는 곤란해요.문화적 햇볕정책이 필요합니다.한일대중문화교류의 경우를 보면 일본이 먼저 한국가수들을 초청해 개방의 단초를 열었고 결국 한국도 빗장을 풀었습니다.남북문화교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큰 틀에서보면 상호주의로 귀결되는 것이죠. ■최원장 남북교류와 함께 중국과의 문화교류도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봅니다.지난달 북경전영학원에서 학술제 형식의 한국영화제가 열렸는데‘아름다운 시절’등 12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돼 호평을 받았습니다.한해 고작 20편의 외국영화를 수입하는 현실에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지요.보다 다각적인 문화개방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교수 문화예술가의 덕목중 으뜸은 역지사지 능력입니다.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자기안의 타자속으로 침투해가는능력이 예술인에게는 있어요.“문학을 하면 여러 삶을 산다”는 말도 있지않습니까.타자에 대한 공감이야말로 문화적 감성의 핵심입니다. ■최원장 현단계에서 남북의 통일문화를 위한 구체적인 처방전을 기대하기는어렵습니다.그때 그때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최교수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국민 각자가 깨어있어야 합니다.이른바신자유주의의 환상속에서 IMF체제를 맞아 나름대로 절실한 경험을 했지만 요즘 다시 도덕적 해이의 조짐이 보입니다.어느 원로시인은 금강산 관광길에버스속에서 춤추고 노는 것을 한탄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일정한 희생을 치르지 않고 통일국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문화적인 저열성을 드러내지 말고 진정한 겸손을 배울 때입니다. ■최교수 90년대 들어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온갖 포스트주의가 창궐했습니다.경배대상이던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해체적 사고가 득세했어요. 신자유주의의 분위기를 거부할 순 없지만 민족주의는 낡은 것이라고 폐기해서는 안되죠.민족주의를 갈무리하면서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지금은 민족예술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실험기입니다. ■최원장 민족주의냐 탈민족주의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민족적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민족이란 게 언젠가는 의미없는 시점이올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봐요. ■최교수 그렇습니다.좋은 세상이란 민족주의가 필요없는 세상입니다. 정리 김종면 황수정기자 jmkim@
  • [문화예술 분단장벽 허무나](4)미술

    지금 우리 사회의 1차적인 관심사는 분단의 극복이다.미술활동 또한 이 명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미술은 과연 분단현실나아가 통일의 문제를 제대로 반영해왔으며 또 반영하고 있는가. 많은 이들은 우리에게 전쟁은 있었지만 전쟁미술은 없다고 말한다.이것은 우리 미술이그만큼 역사의식이 결여돼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미술은 50년대를 제외하곤 거의 전쟁을 다루지 않았다.60∼70년대 ‘민족기록화’의 하나로 간혹 다뤘지만 관변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한국미술이 민족분단의 아픔과 모순을 인식하고 이를 본격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에 들어서다.분단극복 혹은 통일을 지향하는 그림들이 ‘6·25’‘분단전’‘통일전’등 주제전의 형식을 통해 선보였다. 6·25를 다룬 미술작품은 현재 별로 남아 있지 않다.전쟁체험을 형상화하는데 비교적 성공한 작가로는 박고석,이수억,이철이,양달석 등이 꼽힌다. 특히박고석의 ‘범일동 풍경’(1952)은 6·25 당시 피난민 거주지였던 부산 범일동 풍경을표현주의 기법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그러나 50년대 전쟁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한 작가들은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전쟁화가’로서의 집단적 조형이념을 보여주지도,양식적 영역을 확보하지도 못했다.그들의 그림의 모티브는 한정됐다.전쟁으로 인한 비극상을 단순 소박하게 재현했을 뿐, 그 역사성을 깊이 있게 살핀 작품은 드물다.한국전쟁 조형물로 또 다른 관심을 끌 만한 것이 미국 수도 워싱턴 국민광장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기념동상이다.19명 군인들의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표정을 담은 이 상징물은 국내 작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잊혀질 수 없는 전쟁’으로서의 6·25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 준다. 우리 미술은 문학 등 다른 장르에 비해 분단상황에 뒤늦게 주목했다. 문학분야에서는 4·19이후 분단모순과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제기됐고 이어 참여문학이 등장했다.참여문학은 70년대 들어 민족문학으로 발전해갔다.모더니즘을극복하고 민족문학 혹은 민중문학이란 이름 아래 통일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반면 미술 쪽에서는 모더니즘이 제도권에 진입,주류를 이루며 20년 가까이 화단을 지배했다.이는 미술의 장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단상황에 대한 미술가들의 깊은 성찰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우리 미술이분단상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데는 70년대 이후 문학 등 인접예술분야와 사회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80년대 들어 분단극복과 통일 염원을 담은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오윤 ‘통일대원도’,손장섭 ‘역사의 창-통일염원’,최병수 ‘분단인’,김봉준 ‘온 겨레도’ 등이 그것이다.그러나 그 내용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상징적인 것이어서 구체적인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미술에서 분단모순이나 통일문제는 이제 더이상 민족·민중미술 작가들만의 몫이 아니다.보다 많은 미술가들 사이에 통일지향적인 미술이념이 확산될 때 한층 심화된 그림이 나올 수 있다. 한편 6·15선언 이후 분단극복을 위한 남북 미술교류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어 주목된다.한국미술협회는 광복절 ‘33인 판문점 합동전’을 추진하고 있으며,한국고미술협회는 10월중도자기 등 고미술품을 중심으로 한‘남북교류민족전’을 연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또 월북화가 이쾌대의작품전이 최근 그의 고향인 경북 칠곡에서 열렸으며,지난 5월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천재화가 오은별의 개인전이 서울에서 열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진정한 의미의 남북 미술교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제도미술’의 틀에갇혀 있는 북한미술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김종면기자 jm
  • 6·15선언과 金대통령 통일론/(하)청사진과 미래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최근 대한매일이 주최한 국군 모범용사 부부 청와대 초청 다과회에서 “남북문제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거듭 다짐했다.특히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고 쉬운 것부터 벽돌을 쌓듯 하나 하나 추진해 나가면서 다음 대통령이 이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부터/ 김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남은 2년반 동안의 임기중 남북관계 구상을 함축하고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총체적인 바탕은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임을 알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여러차례 “통일은 20∼30년 뒤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남북통일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바랄 뿐,달성까지는 ‘욕심’을 내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다.또 통일은 의도하거나 기획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다 보면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김 대통령의 관측도 이를뒷받침해 주는 언급이다. 김 대통령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남북공동선언 2항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의외의 성과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연합 뿌리내리기/ 그렇다면 김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구체적인 청사진은 무엇일까.가능한 쉬운 것부터 해결하려는 자세여서 종합적인 청사진을 조망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단독회담에서의 논의내용을 감안할 때,그의 ‘3단계 통일론’중 1단계인 남북연합단계의 안정적 운용과 정착화로 볼수 있다.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와 각료회의,국회회담 등을 통해 남북연합단계를 착근(着根)시키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귀국보고에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밝힌 대목은 그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가 평화공존에 대한 남북간 합의에 있음을 천명한 것으로,‘3단계 통일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김 대통령은 남북연합단계의 첫 단추를 ‘평화공존 속의 평화교류’로 보고 있다. ●다양하고 착실한교류/ 앞으로 발빠르게 진행될 남북 경협과 이산가족 상봉 및 재결합,비전향장기수와 납북인사 송환협의,체육·문화·예술분야의 교류 등도 남북연합단계라는 큰 틀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김 대통령은 '남북 평화공존이 합의된 뒤부터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교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그래야만 힘의 논리에 의해 한 체제가다른 체제로 급속히 흡수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평화통일’을 지향할 수있다는 논리에서다. 어쨌든 이런 교류협력 작汰? 정상궤도에 진입하면 김 대통령은 남북연합을위한 구체적인 제도 마련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투자보장 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청산결제 방안 등이 그것이다.또 평화공존을 담보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 및 군비통제,평화체제 유지 공동감시단 가동 등의 수순을 밟게될 것이다.나아가 북한이 미·일과의 수교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국제사회로부터 보장받고 남북이 공동 파트너로 확실히 자리잡는 일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승현기자 yangbak@. *3단계통일론 정착 '이제 첫걸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남북연합-남북연방-완전통일)은 이제 겨우 1단계의 초입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가녀린 싹을 막 틔운 셈이다. 따라서 조심스럽고 지속적인 ‘양육(養育)’이 중요하다. 양육에 필수적인 ‘물’과 ‘양분’은 역시 남북 상호간 교류지속이다.그중에서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산가족 상봉의 연속성,경제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이 기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 국방위원장 답방/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보더라도 정상간의만남은 그 어떤 대화방식보다 효과가 크다.이 때문에 김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70대 노인이 평양에 왔는데 예의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이 서울에 안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까지 해가며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온 힘을쏟았다. 앞으로 1단계(남북연합) 정착에 필수적인 남북연합 정상회의,남북연합 각료회의,남북연합 회의(의회) 등을 구성하려면 정상간 대화는 무엇보다 필수적이다.특히 북한은 우리보다 체제가 일사불란하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태도와 의지 하나하나가 통일 논의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 ●이산가족 교류 정례화/ 정부당국의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가 여론이다. 고위층끼리 아무리 합의를 도출해도 민심이 따라오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될 우려가 있다.따라서 남북 이산가족들이 계속 만나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통일에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이 2차,3차로 계속 이어지면서 통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김 대통령이 그리는 남북연합 단계도 가능한 것이다.따라서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의 지속적인 교환방문은 물론,판문점 등에 면회소와서신교환소를 설치하는 등 이산가족의 교류를 상시화하는 게 중요하다. ●경협의 제도적 장치/ 민간차원이든 정부차원이든 남북간 경제협력을 병행해야 통일 논의가 견고함과 지속성을 띨 수 있다.경협이 깊숙이 진행될수록 뜻밖의 돌발적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거나 통일 논의 자체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적어진다. 남북 양측이 벌여 놓은 장·단기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어느한쪽이 일방적으로 대화를 무효화시키기 어렵게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남북 당국은 경협을 그때 그때 단발성으로 진행시킬 게 아니라,장기플랜을 토대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전문가 제언.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차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지난 91년 김일성(金日成) 주석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천명한 바 있다.소련제국과 동구권이 몰락하고 동서독이 통일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고려연방제라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계속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교와국방을 서로 나눠 갖자고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같은해 7월 북한의 한시해(韓時海) 주 유엔 대표는 ‘미국의 초기 연방제’를 거론했다.미국의 초기 연방제는 바로 대륙회의 즉,국가연합을 말하는 것이다.김 위원장의 연방제는 그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며 우리의 남북연합과 내용상 같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집권후 특별히 새로운 통일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정책은 88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때 만들어진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방안에는 이미 야당 시절부터 김 대통령이 제기해 온 3단계 통일방안이대부분 반영돼 있다.김 대통령은 집권이후 최근까지 경제난 등으로 통일방안을 논의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통일정책을 밝히지 않았다고본다. 남북한의 통일논의가 시작된 시점에서 정부는 민간 전문가 등과의 지속적인토론을 통해 국론을 결집해야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뒤 남북한이 각료회의와 의회 협의회 등을 구축하고 정상회의를 수시로 열 수 있다면 국가연합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이행이 되지는 않았지만,91년 말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됐던 공동위원회가 국가연합의 실행기구 성격이었다. ●정용석(鄭鎔碩) 단국대 정치외교학과교수(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남과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 전혀 다른 체제 속에 살아왔다.장기적인 예비기간을 두고 통일의 단계적 준비가 필요하다.연합-연방-통일이 3단계 통일론의 기본 골간이다.1민족·2국가·2체제·2독립정부 형태인 연합 단계에서는 제반 분야의 교류 협력을 기본으로 삼아야한다.남북 정부의 정상회의,국회 공동회의도 제도화하는 등 민족적 공통점을찾아내야 한다. 특히 북측의 공산주의와 남측의 시장경제 사이의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 가운데 1단계인 공화국 연합제에서도 남측 입장인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북한과의 상이한 체제·이념·제도를 융합할 수 있는 기본틀이 최우선 과제다. 2단계인 연방단계에서는 1민족·1국가·1체제·2자치정부로서 하나의 국호와 외교·국방권을 갖는다.이 단계에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공존하는 ‘제3의 체제’로 발전돼야 한다. 대외통상관계에 있어서도 남측의 개방경제를 택해야 하는지 북측의 유치산업구조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을 관철할 것인지 등의 협의를 이뤄내야 한다. 통일단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서 주장하는 복수정당제·자유선거제·시장경제 등을 북한이 수용할지의 여부가 관건이 된다.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한 그릇에 담을 때 어느쪽으로든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일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 남북 화해시대/ 對北정책 조정회의 뭘 논의할까

    이달 말 열리는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그룹(TCOG) 회의 주제는 단연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다. 3국은 ‘6·15공동선언’이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에 던진 ‘충격파’를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향후 변함없는 3국 공조체제를 재천명할 것이란 관측이유력하다.대북관계 진전 속도를 맞추는 ‘호흡 조절’과 함께 한반도에서의영향 확대를 모색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간접 메시지’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6·15선언에 대한 배경 설명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칫 오해소지가 있는 ‘민족자주의 원칙’이나 남북 통일방안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미·일 양국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민족자주의 원칙은 외세 배격이 아닌 한반도 4강이 지지하는 한반도 당사자 해결원칙”이라며 “이번 회담에서 남북 지도자들의 대화를 가감 없이 전하고 향후 대북 회담에 있어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 이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주한미군 문제도 어떤 형태로든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민족 자주원칙’을 앞세운 북한의 공세에 대비하고 주한미군 문제가 6·15선언 및 향후 이행 과정에서 조화롭게수렴되는 방안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8일 뉴욕 북·미 미사일협상과 조만간 재개될 북·일 수교 10차 본회담도 논의된다. 한국측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관계개선의지를 전달하는 전령사 역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북·미 양국이 미사일발사 유예 재확인과 경제제재 완화 발효를 선언한 만큼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회담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판단이다. 북한의 미사일 수출 금지에 대한 보상문제 등 현안 등과 향후 대북 경제지원 방안 등을 놓고 진지한 협의도 예상된다.북한과의 교섭을 총괄하고 있는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 담당 특사가 미국 대표단에 포함된 것은 바로이런 이유에서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6·15선언과 金대통령 통일론/(상)현주소와 성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은 ‘30년의 뿌리’를 갖고 있다.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도 김 대통령이 오랜 준비 끝에 도출해 낸 ‘인고의승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6·15선언과 김대통령의 통일론을 두차례에 걸쳐심층 조명한다. ◆ 3단계 통일론의 전개. 3단계 통일론은 시대별로 발전해 왔다.‘통일론 구상기’인 70년대에 씨를뿌리고 싹을 틔워 갔고 80년대 ‘통일론 발전기’에서 통일의 현실성을 높이며 제도적 접근을 모색했다.이후 90년대부터 ‘통일론 완성기’로 가장 평화적이고 안전한 통일의 길을 찾으며 6·15 선언에서 열매를 맺은 셈이다. 김대통령의 지난 30년은 냉전 수구세력으로부터의 온갖 박해 속에서 자신의통일론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면서 구체적 실천방안을 찾았던 인내의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험난한 여정을 걸어오면서도 스스로 점진적 평화통일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결실인 것이다. 3단계 통일론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71년 대통령 선거였다.당시 김대통령은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이라는 3단계 통일방안을 ‘4대국평화보장론’과 함께 제시했다. 냉전적 반공논리가 지배하는 냉전의 최전선에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남북대화를 역설한 것”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그후 김대통령에 대한 용공음해 공작과 덧칠된 ‘색깔론’으로 이용되는 등 정치적 수난의 주요 원인이 됐다. ◆ 3비론(非論)과 통일론. 김대통령은 3단계 통일론 가운데 1단계인 ‘남북연합단계’를 가장 중시했다.평화공존에 이어 남북교류가 이뤄지고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게 될 경우 ‘사실상의 통일’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김대통령의 또다른 통일인식의 주요한 기반은 ‘선(先) 민주화,후(後) 통일론’의 개념이다. 이는 그의 3단계 통일론의 주요 철학인 ‘3비론’(三非論) 즉 비폭력(非暴力)·비용공(非容共)·비반미(非反美)와 맞물려 3단계 통일론의 주요 배경이됐다. 그는 역대 독재정권과의 끈질긴 투쟁 속에서 “민주주의만이 공산세력의 침투를 막는 방패”라고 역설,남한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지난 대선에서 50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통일 대통령’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 햇볕정책과 통일론 연결. 3비론은 민주화 과정에서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공산주의 적화통일의 절대 반대, 자주적 민족통일과 주변국들의 협조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이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 북한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북측에 충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3단계 통일론은 햇볕정책 즉 포용정책 없이는 실현될 수 없었다는지적이 많다.포용정책은 30년간 일궈 온 자신의 3단계 통일론과 6·15 선언의 ‘연결 고리’로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남북정상회담장으로이끌어 낸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남북연합·낮은 단계 연방제 비교. 남북한이 통일방안에 합의하기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처음이다.남측의 ‘남북 연합’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유사점을 인정하고 통일에 대한 공동 모색을선언한 것이다.남북 양측이 통일 논의의 접점과 논의의장(場)을 마련했음을 뜻한다. [유사점] ‘남북 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과 북이 별도의 국방·외교권을 보유하며 대등하고 독립된 실체로서 행동한다는 점에서 같다.당장 통일하자는 자세가 아닌 점진적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데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징] 민족이란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두 국가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가정아래 교류를 추진·심화시켜 나가자는 것이 특징.대외적으론 독립된 실체이자 별개의 국가이지만 내부적으로 보통의 외국관계와 다른 ‘민족내부’란특수관계를 갖는다. 경제·사회·문화의 교류활성화로 사실상 통일 단계인 ‘공동체 형성’을목표로 한다.외국과의 무역관계에선 관세를 물지만 남북끼리는 한 국가안의교역으로 취급한다.남북간에는 수출·수입이란 표현 대신 반출·반입이란 말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연합과 연방] 일반적인 연방제는 중앙과 지방정부간의 주종·상하 관계를 뜻한다.남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연합은 국제법상의 연합국가(Confederation),낮은 단계의 연방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Loose form of federation)으로 정리했다.남북연합은 민족이란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두 실체의 대등한 관계를 강조했다는 점이 일반적인 연방제나 국가연합과는 다르다. [차이점과 전망] 남측이 상정하는 국가연합은 교류를 통한 점진적인 기능 통합을 염두에 둔다.평화공존의 전제 아래 교류를 심화시켜 사실상의 통일 단계를 거쳐 제도적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남북연합이란 틀 아래서 정상회의·국회·각료회의 등을 통해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북측의 연방제는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국가통합이 언제든 가능하다. 통일국가 전단계로 남측은 2개 주권의 국가연합 단계를,북측은 단일 주권의연방국가를 거쳐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한민족공동체 통일안과 '대동소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은 역대 정부가 다듬어온 공식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과 명칭이다르다. 그러나 명칭만 다를 뿐 내용상의 함의는 큰 차이가 없다.남북이 신뢰·협력의 폭을 넓히면서 단계적으로 완전통일을 지향한다는 기본 개념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기 때문. 민족공동체 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등 3단계로 통일을 추진하는 시나리오다.이에 비해 3단계 통일론은 국가연합-연방-통일국가 등의 단계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공동체 방안의 남북연합과 3단계 통일론의 국가연합은 사실상 같은개념.공히 정상회담·각료회의·연합의회 등을 두고 있기 때문. 처음엔 양자간 간극이 있었다.하지만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시절 국회 상임위에서 이론적 접목이 이뤄졌다.이홍구(李洪九) 당시 통일부장관이 김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의 원류인 공화국연방제가 정부안과 취지가 별반 다르지않다고 언급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 인사들도 3단계 통일론의 연방제는 북한의 고려연방제와는전혀 다른 통일국가의 초기단계라고 설명,혼선을 정리한 적이 있다. 물론 통일방안은 통일이라는 큰 목표로 가는 가공의 설계도일 따름이다.김대통령이 집권 후 통일방안을 구체적으로 강조한 적은 별로 없다.제도적 통일은 훗날의 일이고 당장엔 화해협력 기조 정착이 급선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구본영기자 kby7@. *金대통령 평양회담 소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햇볕정책을 추진할 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으로 확신했다”고 털어놨다.역사적인 남북 두 정상간 만남을 햇볕정책의 산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 추진과정과 정상회담 협상에 이르는 길에는 숱한 고비와위기가 있었다.지난 98년 6월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과 99년 6월 서해 연평해전은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을 좌초위기로까지 몰고갔다.당시 김대통령은“북한의 태도에 따라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며 홀로 ‘역풍’(逆風)을 막았다. 김대통령은 이번 단독정상회담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두 사건을거론하며 섭섭함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또 “회담도중 여러차례 절망을 느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위원장과의회담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독특한 협상 스타일에 따른 현장 대처가 난제였던 것 같다.김대통령에게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옳다’고 판단되면 즉각 수용하는 합리적인 성품을드러냈으나 그는 거칠 것 없는 북한의 최고지도자였다.김대통령이 얘기하는중간에 가로막고 자기 말만 하는 ‘독선적인 모습’도 간혹 내보여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김대통령은 그래도 김위원장의 말을 묵묵히 듣곤 했다.우리측에선 상상도할 수 없는 일인데도 별로 싫은 기색없이 다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다.‘대선 4수(修)’라는 정치역정에서도 정평이 나 있듯이 탁월한 끈질김과 기회포착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이는 1,000여쪽에 이르는 북한 자료 숙지등 그의 철저한 준비자세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또 한번도 김위원장의 주장에 ‘노’(NO)라고 하며 의제에서 배제한 적이없었다.한 수행원은 “김위원장의 웅변조 얘기하는 소리가 회담장 밖으로 흘러나왔으나 김대통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며 설득에 주력했음을 시사했다.공동선언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문구와 두 정상의 직접 사인,한밤 서명식 등은 김대통령이 일궈낸 작품들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사설] 미국의 대북경제제재 완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 움직임이 빨라지고있다.미국은 19일 지난 50년동안 계속돼온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완화함으로써 북·미간 교류의 문을 열었다.남북 정상간의 ‘6·15선언’으로 급속히가까워진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환영할 일이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조치로 이제 미국과 북한은 무역과 투자,금융거래 및 상업항공기 취항 등이 가능하게 됐다.이번 경제제재 완화조치가 지난해 9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는 대가로 미국이 약속했던 것으로 이미 예정됐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내부절차를 이유로 미루어오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에 이어 공식 발효시켰다는 점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끌어냄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북한의 핵 및 미사일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과 미국의 일관된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으며,앞으로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대북 관계개선 움직임으로 이어질 것이분명하다.이같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 데는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보여준 변화가 크게 작용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번 완화조치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모두 풀린 것은 아니다.아직도 테러지원국이나 적성국으로서의 규제는 그대로 남아 있어 방산물품이나 군사용으로 전환될 수 있는 첨단기술 등의 교역은 금지된다.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등의 북한에 대한 금융지원도 미국은 의무적으로 반대하도록규정돼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경제교류의 길이 열려 미국이나 제3국 기업들의 북한진출이 기대되며 남북간의 경제협력도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북한의 경제난 해소에 큰 힘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은 오는 28일 미사일회담을 갖기로 예정돼 있고 그 결과에 따라 북·미간의 관계정상화를 마무리지을 고위급회담이 잇따라 열릴 것으로 보인다.남북정상회담의 영향으로 일본과의 수교협상도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우리는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도 하루빨리 이루기를 바란다.그것이 남북관계의 발전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북한을 보는 세계의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북한은 변화된 모습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 [사설] 남북화해시대, 相生정치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17일 청와대 여야영수회담은 남북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야당의 지지와 함께 국내 정치에서도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김대통령은 ‘6·15선언’과 관련,야당이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부분에관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나눈 대화내용을 이총재에게 소상히 설명했다.통일방안으로 거론된 남쪽의 ‘연합제’는 노태우(盧泰愚)정권때 남쪽이 주장했던 ‘남북연합’과 같은 것이며,북쪽의 ‘낮은 수준의 연방제’는현체제의 유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주한 미군도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설득했고,충분한 토의가 있었다는 것이다.핵 문제는 제네바협약에 의해 잘 지켜지고 있으며,미사일 문제는 북·미간 협상을 잘 해결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또한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대해서도 북한 노동당의 규약과 형법조항의 폐지와 연계돼 있음을 명확히했다는 것이다.김대통령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나 안보에 대한 의식에 있어서는 여야간에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안들까지 포함해서 김대통령의 소상한 설명을 경청하고 난 이총재는 “야당도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의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야당으로서 미비한 부분을 짚어나가겠다”고 했다.김대통령도 야당이 남북문제에 높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6·15선언’의 후속조치도 야당과 긴밀히 의논해서 추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김대통령과이총재는 또한 ‘8·15 이산가족 상봉’이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김대통령이 시일을 끌지 않고 이총재와 만난 것은 의미심장하다.정상회담후속조치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구하기 위한 측면도 물론 있겠지만 야당에대한 화해의 뜻을 국민 앞에 밝히려는 의도도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대통령은 이총재가 선거법 위반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에서 ‘편파성 의혹’을 제기하자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 ‘공정수사’를재확인했다.앞으로 국내정치 전개에 대해 국민들의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민족문제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당리당략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16대 국회에는 자민련의 교섭단체 문제와 이한동(李漢東)총리서리 인사청문회 등 쟁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럼에도 여야는 4·24 여야 총재회담 이후서로간의 신뢰를 어느정도 쌓아온 것도 사실이다.이제 남북 화해의 시대가열리고 있다.여야는 남북 사이에 이뤄낸 화해를 ‘상생(相生)의 정치’로 발전시켜나가기 바란다.
  • 남북 화해시대/ ‘6·15선언’ 후속회담 새달초 열듯

    남북한은 다음달 초 경협과 통일방법 논의 등 남북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한후속회담을 판문점에서 열 전망이다. 다음달 초 회담은 향후 분야별 회담일정의 윤곽을 전반적으로 정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경제협력,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회담 의제의 폭이 광범위한 만큼 우선 분야별 회담일정과 의제를 미리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국자회담 대표=정상간 합의사항을 실천할 회담인 만큼 양측 대표단은 장관급으로 구성되는 게 격에 맞는다는 지적이다.우리측의 경우 통일 재경 문화 체육 등 각부처 장관이 대표단으로 참여하고,수석대표는 대북 문제 주무장관인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이 맡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다음달초의 총괄 회담은 장관급,이후의 세부적 분야별 회담은 차관급을 단장으로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그러나 총괄적 성격의 장관급회담을 먼저 개최한 다음에 경제 등 분야별 장관급 또는 차관급 회담을 열지,아니면 동시에 진행할지 등의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협의의효율성이나 모양새로는 총괄 장관급 회담 이후에부문별 회담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정부는 선(先)총괄회담을 굳이 고집하지 않고 북측과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문별 회담 준비=일단 정부는 당국간 회담까지는 시간이 있는 만큼 북측과 물밑 협의와 접촉을 거쳐 남북간 협력을 통해 성과를 극대화하고 남북 양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을 모아나갈 방침이다. 이 경우 남북간 협력의 인프라에 해당하는 이중과세방지협정,투자보장협정,청산결제 등 경제부문이 중요하게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부문별 회담이 시작될 경우 경제회담이 우선 개최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실제 이헌재(李憲宰) 재경부장관은 지난 16일 임시국무회의에서 “7월중에 남북 당국자 회의가 열려 경제협력 등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실천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경협 등 경제분야는 사안이 시급하고 분야가 광범위한 점을 들어 다른 분야의 회담과는 완전히 별도로 시작되고 운영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회담이 본격화될 경우 각 부처의 유기적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경제,사회,문화,체육 등 각 관련 부처를 아우르는 협의체 성격의 회담 지원 태스크 포스(TF)를 구성,운영키로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남북 화해시대/ 野 6·15선언 입장정리 싸고 혼선

    한나라당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 총재간 영수회담이 끝난 18일까지도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선을 빚고 있다. 당내에 양극현상이 빚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김 대통령이 북한의 페이스에 말렸다”면서 “이제 남한에는 간첩도 없고 있어도 잡지도 못한다”는강경론자가 대부분이다.그러나 ‘386’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이 총재가과연 통일문제에 대해 김 대통령 정도의 식견을 갖고 있는지 걱정”이라고비판했다. 맹형규(孟亨奎) 기획위원장은 “비전향장기수 문제까지 나왔는데 납북어부와 국군포로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공동선언의 허점을 지적했다. 정형근(鄭亨根) 제1정조위원장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명분과 실리를 다 챙겼는데 우리는 무엇을 챙겼는지 따져봐야 한다”면서 “두 정상간에 이면합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가세했다. 한 당직자도 “앞으로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고 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것이공동선언의 요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비판적 지지 입장인 홍사덕(洪思德) 국회부의장은 “남북문제는 여러 고비를 넘겨야 하는 사안으로 일이 되는 쪽으로 몰아줘야 한다”고 협력의사를 밝힌 뒤 “한나라당이 제기한 주한미군 철수문제 등에 대해 정부측은 북측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386의원은 “한나라당이 방북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은 것은 당지도부가남북정상회담을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봤기 때문”이라면서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 총재가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의 입장을 밝히기로 한 것도 무엇보다당내 혼선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최광숙기자 bo
  • 남북 여성교류도 활기 띨듯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인 6·15선언에서 사회 문화 제반 분야의 남북 협력과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함으로써 여성계의 교류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통일운동에 여성들이 앞장서고 통일정책 입안,제정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여성의 권익을 지킬 수 있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이우정 이사장은 통독과정서 나타난 대량실직,높은자살률 등 사회혼란의 피해자가 주로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며 통일 논의과정에서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한다. 앞으로 남북여성교류에서 가장 먼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종군위안부문제 공동대처와 ‘한민족 여성 한마당대회’개최를 꼽을 수 있다.‘한민족 여성한마당대회’는 이번 정상회담 기간중 7월4일 베이징서 준비접촉모임을 갖기로 합의했다.이 행사는 99년 9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여성관계자들이 방북해 옥수수,옷감,밀가루 등을 지원하면서 논의가 시작했다.남측 제안에 북측이 흔쾌히 응하며 순조롭게 진행돼,당초 지난 4월18일 준비모임을갖기로 했다가 정상회담이 합의됨에 따라 연기됐었다.우리민족서로돕기 여성위원회 상임위원 최영희 내일신문 사장은 “여성한마당대회는 남북한 여성직능대표,사회단체 관계자 등 총200여명이 자유롭게 어울려 마음의 벽을 허무는 화합의 잔치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남북한 공식적 여성교류는 91년∼92년 ‘아시아 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란학술회의가 서울과 평양에서 4차례 열리며 물꼬가 트이는 듯 했으나 94년 김일성 사망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사실상 명맥이 끊긴 상태였다. 이번 정상회담때 여성계 대표로 방북했던 장상 이화여대총장은 “북한여성대표들과 일본정부에 대한 기소장 공동작성 등 정신대 문제 대처방안,통일운동공조 등을 협의했다”며 앞으로 환경보호운동 등 각 분야별 협력이 더욱 다양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허윤주기자
  • 남북화해시대/ 부산 동북아 최대 환적항 될듯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부산항이 명실상부한 동북아지역 최대의 환적항으로,전북 군산항이 대북 경제교류의 중심항으로 부상할전망이다. 16일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은 남북경협에 따라 부산항과 북한의 주요 항만을연결하는 정기항로가 개설되고 북한과의 철도 등 육상운송이 가능해질 경우러시아 화물은 물론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는 유럽∼미주 물동량의 상당부분을 부산항에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일본 서안과 중국 동부의 물동량만으로도 연간 20피트짜리컨테이너 163만여개의 환적화물을 처리하고 있는 부산항의 환적비율은 더욱늘어나게 된다. 러시아 물동량도 지난해의 경우 20피트 컨테이너 4만4,000여개로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5%가량에 그치고 있으나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러시아물동량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연결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는 환적화물의 경우 육상운송을 이용하게 되면 해상운송보다 컨테이너당 1,000달러가량의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어 화주와 선사들의 이용이 크게 증가할것으로 보인다. 부산∼보스토니치∼블라디보스토크 항로를 러시아선사와 공동 운항하고 있는 현대상선 관계자도 “부산에서 북한을 연결,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계되는 철도 등 육상운송 수단이 개설되면 시베리아철도를 이용한 미주∼유럽노선화물의 상당부분이 부산항에서 화물을 옮겨싣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군산시와 군산지방해양수산청은 남북한간의 경제교류가 본격화될 경우 군산항이 남북 경제교류의 중심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인천항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데다 북한의 남포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군산항은 군장국가공단 조성 등으로 발전 잠재력이 풍부하고 전주와 익산,충남권 등의 배후도시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산항의 항만시설은 2만t급 9선석과 1만t급 2선석,5,000t급 1선석등 모두 12선석에 연간 하역능력은 760만t으로 연간 물동량 1,140만t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또한 현재 5부두에 건설중인 2만t급 4선석이 올해 완공되더라도 연간 물동량에 이르지 못한다. 이에 따라 1,100억원을 들여 2003년까지 건설할 예정인 2만t급 2선석과 5만t급 3선석 등 항만증설 사업이 앞당겨 추진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들 5선석이 완공되면 군산항의 연간 하역능력은 1,300만t으로 늘어 명실상부한 국제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으며 대북경제교류의 중심항으로발돋음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이기철·전주 조승진기자 chuli@
  • [사설] 평화선언, 남북지도자를 성원한다

    통일이 이뤄진 한반도에 사는 우리 후세대는 2000년의 6월을 뭐라고 부를까?‘평화’또는 ‘통일’이라고 부를지 모른다.아니면,평화와 통일의 ‘물꼬를 튼 그해 6월’이라고는 부를 것이다.그러나 분단을 안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2000년 6월을 ‘감격’이라고 부르자.남과 북으로 갈린지 55년만에 두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는 ‘기적적인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민족사적으로 한 획을 크게 긋는 이 선언을 우리가 굳이 기적적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우리가 그동안 역사적 또는 민족사적이라는 용어를 함부로 써왔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한 끝에 내놓은 이 ‘6·15선언’은 참으로 ‘역사적’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평양’은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그럼에도 김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의 항공정보기구의 ‘인수’·인계’를 거쳐 평양에 갔다.“민족에 대한뜨거운 사랑과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가지고 평양에 간다”는 김 대통령을 환송하면서 대다수 국민들은 남북 정상이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의미를 두었던 게 사실이다.물론 이러저러한 기대도 있었다.분단 55년인데어찌 그러지 않겠는가.청와대 인근 효자동에서 이북에 고향을 둔 한 노인이김 대통령에게 ‘빛바랜 흑백사진’을 내보이며 “이산가족이 상봉하거나,생사여부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애써 달라”며 울먹이는 광경을 텔리비전을 통해 지켜보았던 국민들 가운데 콧날이 시큰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겠는가.김 대통령의 말 그대로 통일은 우리 남북 동포 모두의 절대명제이자 민족적 숙명이다.김 대통령은 이번 평양회담에서 우리 겨레가 통일로 가는 이정표를세운 것이다. 6·15선언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양쪽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이산가족 8·15 교환방문·경협과 민족경제 균형발전·합의 실천을 위한 당국간대화 조속개최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이번 ‘평양회동’을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서로 의중을 탐색하는것 만으로도 성공으로 기대했던 국민들로서는 남북공동선언은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다.특히 두드러지는 대목은자주적인 통일문제해결을 비롯하여 이산가족의 교환방문과 당국간의 조속한대화개최,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答訪)약속이다.이같은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선언 내용이 과연 실천될것인가’에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남북문제에 있어 ‘역사적 문건’은 한 두개가 아니다.72년 ‘7·4공동선언’도 있고 92년 ‘남북 기본합의서’도 있다.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문건들은 당장은 역사 속에 머물러 있다.그렇게 된 배경에는 남북 대표들이 ‘상부의 명에 의하여’서명했다는 형식상의 문제도 있지만,남북 정권 담당자들이 남북문제를 정권 유지의 방편으로 써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6·15선언’은 다르다.남북 정상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오랜시간 논의를 한 끝에 우리민족과 세계 앞에 내놓은 문건이기 때문이다.정부당국은 선언 내용을 차질 없이 실천하기 위해 정치(精緻)한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통일을 향한 희망의 씨앗을 소중하게 키워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6·15선언’을 두고 민주당과 자민련은 물론 한나라당도 “평화와통일을 위한 남북정상의 분위기 조성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이러한 노력이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냈다. 김 대통령은 평양으로 가기 앞서 “본인의 임기중에 통일을 기대하지 않으며 통일문제에 있어 다음 정권의 몫을 남겨 두겠다”고 확언한 바 있다.‘6·15선언’은 김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의 가시적 성과임이 분명하지만,그 밑바탕에는 오늘날 한반도에 살고 있거나 분단의 한을 품고 이미 세상을 떠난동포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일문제는 남북 모두 정권 차원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며,하물며 당리당략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그럼에도 한나라당은 ‘6·15선언’의 ‘자주적 통일’부분과 관련해서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과 연계된 것은 아닌지 의혹을 제기하고 나왔다.국민들이 보기에 한나라당의 그같은 의혹 제기는 김 대통령의 통일 노력의 발목을 잡는느낌을 준다.국민들은 통일을 향한 노력에 관한 한 초당적인 뒷받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6·15 평화선언’의 기적을 이뤄낸 남북 두지도자의 용기와 민족애에 힘찬 박수와 성원을보낸다.
  • 한나라 부총재단 좌석배치 공개

    5·31 전당대회 이후 새로 구성된 한나라당 부총재단 11명의 ‘서열’이 매겨져 7일 오전 이회창(李會昌)총재 주재로 열린 총재단회의에서 첫 선을 보였다. 원탁 중앙의 이총재를 중심으로 양정규(梁正圭·67·5선·원외)→최병렬(崔秉烈·62·4선)→박근혜(朴槿惠·48·재선)→김진재(金鎭載·57·5선)→강삼재(姜三載·48·5선)→박희태(朴熺太·62·4선)→하순봉(河舜鳳·59·4선)→강재섭(姜在涉·52·4선)→이부영(李富榮·58·3선)→이환의(李桓儀·69·초선·원외)→이연숙(李연淑·65·초선)부총재 순으로 앉았다.당 3역인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과 목요상(睦堯相)정책위의장,정창화(鄭昌和)총무도 자리를함께 했다. 총재실은 “전직과 선수를 우선 고려하되,선수가 같은 경우 연령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총재단 서열에서도 전관예우(前官禮遇)가 적용된 셈이다.이에 따라 직전 부총재였던 양정규부총재가 ‘서열 1위’를 차지하게 됐다.최병렬·박근혜부총재도 같은 케이스다. 7명의 선출직 부총재들과 4명의 지명직 부총재들이 서로 이총재 옆의 ‘상석’에 앉으려고 신경전을 펴 총재실이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이전에는 이총재가 지명한 순서대로 자리를 앉았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여야 상임委長 배정 진통

    *민주당. 운영·법사·재경·행자·정보·통일외교통상·국방·문화관광·건설교통·예결특위 등 10개를 ‘확보 대상’으로 잡아놓고 있다.이 가운데서도 운영위와 예결특위,통일외교통상,문화관광 등 A그룹 4개 상임위는 절대 양보할 수없다는 방침이다.법사·재경·행자·국방 등은 B그룹으로 묶어 한나라당과의 협상카드로 쓴다는 전략이다. A그룹 중 운영위원장은 국회의장을 맡은 당이 차지하기로 한 한나라당과의합의에 따라 정균환(鄭均桓)원내총무로 확정돼 있다.예결특위원장은 당내 경제통인 3선의 장재식(張在植) 김원길(金元吉)의원이 우선순위로 꼽히는 가운데 임채정(林采正·3선)의원도 거론된다.문화관광위원장에는 최재승(崔在昇·3선)의원이 첫손에 꼽히지만 당직 개편이 변수다. B그룹인 행자위원장에는 김충조(金忠兆·4선)의원이 유력한 가운데 김덕규(金德圭·4선)의원도 검토되고 있다.이밖에 정보위원장에는 박상천(朴相千·4선)의원,건교위원장에는 이윤수(李允洙·3선)의원이 1순위에 올랐고,야당과의 협의에 따라 산업자원위를 확보한다면 박광태(朴光泰·3선)의원이 유력하다. *한나라. 상임·특위원장직의 경우 ‘3선 이상 다선’ ‘당3역·전직 위원장 배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벌써부터 중진 의원들의 물밑 ‘감투’경쟁은 치열하다.당 지도부를 향한 ‘로비전’도 감지되고 있다. 상임위 배분과 관련,15대 국회때 한나라당 몫이었던 법사·재경·통일외교·정무·건교·교육·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 등은 이번에도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특히 상설화된 예결특위원장은 국회의장을 민주당이 차지한 만큼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이다.상임위원장 인선의 변수는 총무 경선에서 ‘용퇴’했던 이규택(李揆澤) 박명환(朴明煥) 박주천(朴柱千) 김형오(金炯旿)의원 등 4명에 대한 배려 여부다.재경위원장 후보로는 나오연(羅午淵)이강두(李康斗) 박명환(朴明煥)의원이 기대를 걸고 있다.과기정통위원장에는이상희(李祥羲) 김형오(金炯旿)의원이 탐내고 있다.또 예결위원장과 교육위원장에는 김동욱(金東旭) 김정숙(金貞淑)의원 등이 각각 거론되고 있다. *자민련. 17명의 의원 중 3선 이상이 7명에 불과한 자민련에서 위원장을 맡을 수 있는 중진은 5선의 강창희(姜昌熙)의원과 3선의 조부영(趙富英) 함석재(咸錫宰)의원 3명 정도다. 경제,사회 분야 상위 1석씩을 바라고 있다.국방·건교·윤리위 등 3개 상임위원장 가운데 2석이 자민련 몫으로 주어지면 강 의원과 조 의원이 1순위로거명된다.육사 25기인 강 의원은 국방위원장,주택공사 사장을 지낸 조 의원은 건교위원장,검사 출신인 함 의원은 윤리위원장 후보로 거론된다.그러나강 의원은 올해 안에 소집될 전당대회에서 총재직에 도전한다는 복안을 갖고있어 상임위원장직을 선뜻 받을지는 불투명하다. 황성기 최광숙 진경
  • 16대 국회의장 이만섭씨 당선

    국회는 16대 국회 법정개원일인 5일 오전 임시국회를 열고 전반기 국회의장에 민주당 이만섭(李萬燮·8선·비례대표)의원,2명의 국회부의장에 한나라당홍사덕(洪思德·5선·비례대표), 자민련 김종호(金宗鎬·6선·비례대표)의원을 각각 선출했다. 민주당은 자민련과 공조,의장선거에 이김으로써 ‘DJP’ 공조복원을 가시화하고 앞으로 국회와 정국운영에 따른 부담을 덜게 됐다. 재적의원 273명 전원이 출석해 치러진 의장 경선에서 이만섭의원은 과반수(137명)를 넘는 140표(51.3%)를 얻어 132표(48.3%)에 머문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5선)의원을 8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271명이 투표에 참여한 부의장 경선에서는 민주당과 자민련이 공동 추천한김종호의원과 한나라당이 추천한 홍사덕의원이 과반수를 넘는 187표(69%),238표(87.8%)를 각각 얻어 무난히 선출됐다. 이 신임 의장은 인사말에서 “역사와 국민앞에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며 양심과 정치생명을 걸고공정하고 중립적인 의장이 될 것을 엄숙히 약속한다”고 말하고 “16대 국회는 정치개혁과 경제현안,민족화합과 통일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그 해결을 기다리는 21세기 첫 국회”라며 여야 의원들의 분발을 당부했다. 국회는 이날 ‘국회 상임위에 관한 규칙개정 특위’와 ‘남북정상회담 결의안 작성을 위한 특위’ 구성안도 의결했다.특위는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회차원의 지지결의안을 마련해 7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한편 민주당 정균환(鄭均桓)·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총무,민주당 천정배(千正培)·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수석부총무는 이날도 공식·비공식 접촉을갖고 ▲국회교섭단체 완화 ▲인사청문회법 제정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협의했으나 합의를 보지 못하고 진통을 겪었다.그러나 금명간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7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상임위원장 선출 등 원구성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국회 의장단 전원 비례대표로 구성

    5일 선출된 16대 국회 전반기 의장단은 모두 비례대표 의원들이다.이만섭(李萬燮·8선·민주당)의장이나 홍사덕(洪思德·5선·한나라당) 김종호(金宗鎬·6선·자민련)부의장 모두 지역구가 없다.국회사무처는 “제헌국회 이후의장단 전원이 비례대표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의장단이 비례대표들로 채워진 데 대해 국회 주변에선 “국회 운영에만 전념할 수 있을것”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관운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비아냥이 엇갈린다. 진경호기자 jade@
  • 홍사덕 국회부의장 포부·프로필

    홍사덕(洪思德) 국회부의장은 5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국회가 되기 위해국회 운영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당이 자민련교섭단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날치기 처리를 시도할 경우 단호하게 의회 정신을 수호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홍부의장은 11대 총선에서 민한당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16대 5선이 되기까지 내리 ‘야당’의 길만 걸어왔다.홍부의장의 독특한 고집과 소신 때문이라는 것이 주변인사들의 얘기다. 올 초 개혁신당을 기치로 내걸고 장기표(張琪杓)씨와 함께 ‘무지개 연합’을 구상하기도 했으나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선대위원장으로 ‘변신’,1인보스정치 청산의 종착역이 한나라당이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국을 읽는탁월한 능력에다 원만한 성품으로 여야를 떠나 폭넓은 친분관계를 갖고 있다. 부인 임경미(任敬美·56)씨와 1남 2녀. ▲경북 영주(57) ▲서울대 외교학과 ▲중앙일보 기자 ▲신민당 대변인 ▲정무1장관 ▲한나라당 선대위원장최광숙기자 bori@
  • 제16대 첫 국회 오늘 개원

    제16대 첫 국회인 제212회 임시국회가 5일 열린다. 국회는 이날 오전 본회의를 열어 16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단을 선출하고,오후에는 신임 국회의장 주재로 16대 국회 개원식을 열어 의원 선서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개원연설을 듣는다.7일에는 19개 상임위원장 및 특별위원장단을 선출한다. 김 대통령은 개원연설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정치권의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오는 12일 열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당부할 예정이다. 전체 의원 273명의 무기명 비밀투표로 실시되는 국회의장 경선에는 8선의민주당 이만섭(李萬燮) 상임고문과 5선의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의원이나선다.부의장 후보로는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의원과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총재권한대행이 출사표를 던졌다. 여야는 의장 경선과 관련,4일 소속 의원들에 대한 표단속과 동시에 상대당의원들을 상대로 열띤 득표활동을 벌였다. 이번 임시국회는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임명동의를 위한 인사청문회 개최와 자민련의 원내 진입을 위한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문제를 둘러싼 여야 3당의 대립으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한나라당은 의장 경선결과 및 여권이 추진 중인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문제와 연계해 김 대통령의 개원연설에 불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국회 초반 여야의 대치국면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4일 이회창(李會昌)총재 주재로 당5역회의를 열어 “자민련을 위한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는 국회와 총선 민의를 무시하는 것이며,여야 영수회담에서 인위적 정계개편은 절대 않겠다고 한 것과도 배치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한편 여야는 이날 수석부총무회담을 열어 이들 현안에 대한 절충을 시도했으나 인사청문회 기간과 특위인원 등에 대한 의견차이로 합의도출에 실패했다.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문제도 한나라당이 절대불가 방침을 고수,진전을이루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오는 15일 실시될 예정인 이 총리서리 인사청문회는 관련법 제정없이 특위를 구성,약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진경호기자 jade@
  • 민주 李萬燮·한나라 徐淸源의원 의장경선 격돌

    오는 5일 치러질 국회의장 경선에서는 ‘8선’의 민주당 이만섭(李萬燮·비례대표)상임고문과 ‘5선’의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서울 동작갑)의원이맞붙게 됐다.특히 서의원은 2일 실시된 한나라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6선의 박관용(朴寬用)의원을 73대55로 눌러 ‘이변’을 일으켰다. ◆이의장 후보 지난달 31일 열린 민주당 의총에서 만장일치로 추대됐다.강력한 후보였던 김영배(金令培·6선)상임고문이 양보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이고문은 “입법부 수장으로 선출되면 양심을 걸고 민주적이고 공정하게 국회를 운영하겠다”면서 “일하는 국회,생산적인 국회를 만들어 실추된 국회의권위를 되찾겠다”고 말했다.지난 93년 전반기 국회의장이던 박준규(朴浚圭)씨가 재산파동으로 물러나면서 1년2개월간 잔여임기를 맡은 적이 있어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인 셈이다.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대표서리로 있다가 탈당,이인제(李仁濟)후보의 국민신당에 합류하는 등 ‘소신파’임을 자부하고 있다. ◆서의장 후보 50대 ‘기수론’을 내세워 도전한 끝에 당내 의장후보를 거머쥐었다.당초 범주류인 박관용의원과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큰 표차로 이겼다. 서의원은 “이제 국회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때가 왔다”면서 “입법부 수장이 대통령의 참모화되어온 관행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말했다.98년총재 경선 때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직접 겨뤘으나 지난 4·13 총선과정에서이총재의 선대본부장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여 비주류에서 주류측으로 방향을 튼 게 아니냐는 얘기를 듣고 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鄭昌和의원 한나라 원내총무 당선

    한나라당은 2일 오후 의총을 열고 16대 국회의장·부의장 후보와 원내총무를 각각 선출했다. 국회의장 경선에서는 서청원(徐淸源·5선)의원이 총 투표수 131표중 73표를얻어 55표에 그친 박관용(朴寬用·6선)의원을 누르고 선출됐다. 이어 치러진 국회부의장 경선에서는 홍사덕(洪思德·5선)의원이 2차 투표까지 벌인 끝에 총투표수 130표중 70표를 얻어 59표에 머문 서정화(徐廷和·5선)의원을 따돌렸다.원내총무 경선에서는 5선의 정창화(鄭昌和)의원이 유효투표 123표중 71표를 얻어 각각 33표와 19표를 득표한 이재오(李在五·재선)안택수(安澤秀·재선)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오풍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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