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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장관급회담/ 청와대 가는 北대표단

    30일의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심도 있게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북측 대표단은 31일에는 청와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한다. ◆서울 답방 우리측 대표이자 대변인인 김순규(金順珪)문화관광부 차관은 30일 낮 1차회의를 마친 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오후 회의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해 주요 의제로 다루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오후 회의에서 우리측은 김 위원장의 답방에 대해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이루어지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우리측은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한 답방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남북 화해를한층 굳건히 하는 뜻이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 북측도 김 위원장 답방 원칙을 확인하면서도 시기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이에 따라 최소한 장관급회담이 1∼2차례더 열리고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구체적인 시기가 도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방문 북측 대표단은 서울 방문 마지막날인 31일 청와대를 예방한다.서울을 찾은 북측 대표단 대부분이 청와대를 찾았지만 이번의 경우 의미가각별하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첫 ‘북한 고위급 손님’이기 때문이다.김 위원장이 김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금진 북측 단장을 통해 할 수 있으며 김 대통령도 마찬가지여서 정상간의 ‘간접 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또 의례적인 예방이 아닌 6·15선언의 후속 조치를 마련하러 서울에 온 북측 대표단의 예방인 만큼 김 대통령의 언급과 격려에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가 실릴것으로 보인다. 황성기기자 marry01@
  • 한나라 정창화총무 ‘교섭단체’ 돌출발언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총무의 심경이 복잡하다. 정총무는 당료 출신으로 5선 의원을 거치는 동안 36년간 정치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현실 정치에 익숙한 정총무는 자민련 17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소신을 의원총회 등 공개석상에서 이미 밝혔다.“국회가 날치기와 파행운영이라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하고,정치 현실로서 받아들일 것은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공식 당론은 그의 현실론을 계속 매몰차게 박대하고 있다.국회법개정안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정총무가 연이틀 설화(舌禍)를 겪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27일 당 3역회의 등에서는 정총무 인책설까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국회교섭단체 문제와 관련,이회창(李會昌)총재와 사전교감을 가졌다”는 전날 기자간담회 발언 내용이 문제가 됐다. 정총무는 이날 “당론과 다른 사견을 얘기해 당과 총재에게 누를 끼쳤다”며 두번째 사의를 표명했다.이에 이총재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매듭을 풀라”고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내에서는 정총무의 잇따른 돌출발언이 말 못할사정에 의한 계산된 발언이 아니냐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
  • 동남아 통화 급락 ‘제2환란’우려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태국 바트화,필리핀 페소화 등 동남아 주요국의 통화가 한꺼번에 급락,약세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면서 ‘제2의 아시아 환란(換亂)’악몽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3년전 아시아 경제 위기때와 외견상으론 비슷한 모습.외환유동성,거시지표등에서 당시와는 양태가 다르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아시아 시장의 우려감은 계속되고 있다. ◆통화 급락=26일 필리핀 페소화가 심리적 지지선인 달러당 45페소를 돌파,45.070페소에 폐장됐다.30개월만의 최저치.전날 태국 바트화 가치가 10개월만에 가장 낮은 달러당 41.365를 기록한데 따른 심리적인 영향. 동남아 금융시장이 불안한 조짐을 보인 것은 지난 5월부터다.첫 스타트를끊은 것은 루피아화.연초 와히드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로 달러당 7,055선을 유지했던 루피아는 5월2일 8,000을 돌파했고 7월17일에는 9,510까지 상승했다.5월이후 16%,연초대비 26% 하락한 수치. 18일부터 중앙정부가 적극 개입,안정을 보이고 있다.27일엔 8,915선에서 거래됐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바트화는 97년 말 아시아 환란의 진원.바트화 방어를 태국 정부가 포기하면서 아시아 각국 통화가치가 도미노처럼 급락했다.27일엔 41.365로 거래됐는데 5월이후 10%,연초 대비 11.5% 하락한 수치다. 싱가포르 달러가치도 풍부한 외한보유고를 기반으로 안정을 유지했으나 루피아와 바트 등의 영향으로 17일 1.7489까지 하락했다.27일엔 1.7428에서 거래됐다. ◆원인=경제 자체보다는 각국의 정치불안이 주요인이란 점이 97년 위기때와다른점이다.인도네시아의 경우 종족 분규속에 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과의회의 대립이 극을 달하고 있다. 8월 중순 국민협의회(MPR)에서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이 높은 점도 환율 안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소.루피아는 1만선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태국은 야당의원들의 집단 사퇴 등에 따른 의회 해산 압력으로,필리핀도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 팽배및 반군 테러만연 등으로 정정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전망=이번 동남아 환율 하락이 동남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수는 있으나 97년의 재발 가능성은 동남아 각국의 외환유동성,안정적인 경제성장률 등으로 극히 낮다는 게 외국및 국내 전문기관의 견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남북외무장관 상대 각국언론 취재 경쟁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최대 뉴스 메이커는 단연 남북 외무장관들이다.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장관과 북한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을 상대로하는 취재열기는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뜨겁다. 26일 남북외무장관 회담이 열린 쉐라톤 호텔 내 회의장엔 100명 가까운 각국의 취재진들이 몰려왔다.쉴새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기자들의질문 공세는 남북 화해 시대를 맞는 세계적 관심사를 반영했다.최근 ‘동북아 뇌관’으로 떠오른 북한 미사일 문제부터 남북경제협력,북미 관계정상화까지 다양한 메뉴들을 질문 리스트에 올렸다.남북회담장인 쉐라톤 호텔에서만난 북한 대사관 관계자는 “북남 외무장관회담은 6·15선언 이후 조선반도에 화해와 협력이 움튼 뒤 처음 이뤄진 남북간 만남이어서인지 정신을 차릴수 없을 정도로 문의 전화가 많다”고 밝혔다. 한국 대사관측도 “대사관 개설 이후 태국 언론은 물론 각국 기자들로부터이렇게 연락을 많이 받아 본적이 없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남북 외무장관들도 국제적 관심에 부응하듯 이날 회담을 통해 “동족끼리힘을 합쳐 6·15 정신을 구현하자”며 남북화해 시대의 개막을 전세계에 선언했다. 방콕 오일만특파원
  • 남북 장관급 서울회담 전망

    6·15 남북 공동선언의 이행 방안을 본격 논의할 남북 장관급회담이 나흘앞으로 다가왔다. 총괄적 성격의 이번 장관급회담을 기점으로 경제,군사,문화·스포츠 등 분야별 남북간 실무회담이 예정돼 있어 당분간은 남북 관계 뉴스가 쉴새없이쏟아질 전망이다. 특히 이번 회담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다는 점에서국민들의 남북 화해 분위기 ‘체감도’가 부쩍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회담 성격 서울과 평양을 번갈아 오가며 열릴 장관급회담은 6·15선언의향후 이행상황을 총괄적으로 점검·감독하는 ‘머리’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서울 회담에서는 특히 선언의 구체적 실천,즉 ‘팔과 다리’역할을 할추진체계에 관한 합의 도출이 주요 과제다.다시 말해 분야별 실무회담은 어떻게 진행할지(위원회 가동 등),의제는 어떻게 구성할지 등을 논의하게 된다. 실무회담은 크게 경협,군사,사회·문화 등 3개 분야로 분리·운영될 전망이다. 경협의 경우 경의선 연결과 임진강 수방대책,교역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등이,군사의 경우 군사 직통전화 개설과 연락사무소 기능 정상화 등이,사회·문화는 국제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 등이 주된 의제다. ■서울 회담 어떻게 진행되나 북측 대표단 35명은 29일 육로로 판문점을 거쳐 서울에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남북 대표 각 5명씩 참가하는 회담은 북측 대표단 숙소인 서울 신라호텔로결정됐다. 정부는 호텔 2층에 회담장을,3층엔 내외신 취재진을 위한 프레스센터를 개설키로 했다. 회담은 2박3일 동안 2∼3차례 열릴 전망이다.도착 당일인 29일엔 북측이 휴식과 함께 회담전략을 짜고,실제 회담은 둘째날과 셋째날 열릴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 틈틈이 수석대표 단독 접촉 등을 통해 실마리를 풀어갈 것으로보인다. 공식 만찬은 초청자인 남측과 방문자인 북측이 번갈아 가면서 주최하는 게관례.우리 측에서는 이한동(李漢東)총리나 수석대표인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고건(高建)서울시장 가운데 한 사람이,북측에서는 단장이 주최한다. 회담 이외의 일정으로 북측 대표단은 관광이나 산업 시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또 회담 마지막 날인 31일쯤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상연기자 carlos@
  • [新 김정일 연구](13.끝)정상회담 이후의 자세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북한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신이 약속을 지키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로 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지 35일이 지난 20일 현재까지 북측의 변화는 매우 고무적이다.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북한 언론매체와 휴전선에서 대남비방이 없어진 점이다.서해상에선 기관고장으로 월경한 우리의 까나리잡이 어선을 되돌려보냈고 6·25행사도 치르지 않았다. 공동선언 이행도 아직까지는 순조롭다.우선 8월15일부터 4일간 남과 북 100명씩의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9월에 이산가족면회소 설치문제를 논의하기로합의한 데 이어 지난 16일 양측이 방문단 후보명단을 교환함으로써 이젠 상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재미 언론인 문명자씨와 가진 인터뷰에서 주한미군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이는 그동안 북측이 민감한 반응을보여온 미군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이 현실적인 인식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대목이어서 주목된다.김위원장은 또 언론사 사장단을 내달 5일 방북토록 함으로써 구두약속을 이행하고 있다. 이와같은 대남 유화자세와 이산가족상봉 성사 등은 모두 김 위원장의 지시와 지침을 받아 이행되고 있다.김 위원장은 지난번 정상회담에서 부정적인태도를 보여온 일부 사안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끈질긴 설득이 있자‘통크게 하자’며 합의에 이르렀고 ‘내가 서명했으니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로 미루어 그의 서울 답방도 시기가 문제이지 성사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북측은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선언에서 언급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면서 언론매체를 통해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기들 통일노선의 정당성만을 계속 부각시키고 있다.또 김영삼 전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해 인신공격성 비방을 퍼붓고 일부 언론을 매도함으로써 남측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이는 양측의 정치제도를 인정하고 평화공존의 바탕위에 화해와 통일을이뤄나가기로 한 6·15선언의 기본정신과도 어긋난다.또 남측의 이념갈등과 정쟁을 부추겨 김 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다.그런만큼 김위원장은 김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대통령에 대해 자상한 배려를하면서 통크게 협상에 임했던 것처럼 남북관계를 크게 해치는 이같은 비방을즉각 중지토록 해야 한다. 앞으로 김 위원장의 움직임 가운데 지켜볼 것은 그의 서울 답방 등 공동선언 이행 여부와 김 위원장이 은밀히 약속했다는 노동당규약 개정 여부,그리고 특정인사와 언론에 대한 비방중단 여부 등이다. 김 위원장은 서울 방문을 그의 이미지를 재격상시키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활용할 공산이 크다.이와 함께 김 대통령을 정상회담의 한 파트너로 상대하면서 한반도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분석되고 있다.그의 서울 방문과 앞으로의 행보는 평양에서 보인 그의 언행이 얼마나 진실된 것이었는지,그가 진정으로 남북화해와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지,김 위원장이 정말로 ‘통큰 지도자’인지,김 위원장의 신뢰도가 어느정도인지,그리고 앞으로 공동선언문의 이행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가늠케 해줄 것이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국회파행 수습 鄭均桓·鄭昌和총무라인

    4·13총선 부정시비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으로 촉발된 국회의 파행이 20일극적으로 수습됐다.한때 물리적 충돌 우려마저 낳았던 대치정국이 이처럼 방향을 튼 데는 민주당 정균환(鄭均桓)·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 두 원내총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묘한 여야 관계/ 16대 국회는 개원 전부터 여야 모두 과반수에 못미치는의석비 때문에 빡빡한 운영이 예견됐었다.하지만 두 정총무가 원내사령탑을맡으면서 16대 국회는 이런 ‘태생적 한계’를 어느 정도는 극복하고 있다는평가다. 법정 개원일인 6월5일에 맞춰 개원했을 뿐 아니라 뒤이은 상임위원장 배분과 두 차례의 인사청문회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굴러갔다. 이른바 ‘정(鄭)-정(鄭) 라인’으로 불리는 여야의 대화창구가 그나마 정국에 숨통을 트고 있다는 것이다.민주당의 한 부총무는 20일 “정-정 양 총무가 아니었으면 16대 국회는 아직 개원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특한 협상비법/ 이번 여야의 대치에서도 두 총무는 예의 ‘협상력’을 한껏 발휘했다.그렇다면 두 총무는 둘만 마주 앉은 회담장에서 어떻게 얘기를풀어갈까. 민주당 정 총무는 얼마전 “눈치 봐가며 하나씩 내줄 게 뭐 있느냐.서로 다터놓고 얘기한다”고 ‘협상비법’을 밝혔다. “한나라당 정 총무를 믿는다”고도 했다.주변에서는 “총재나 대표에게도 하지 못할 말까지 주고 받는다”는 얘기도 나온다.결국 대화정치에 대한 의지와 상대에 대한 신뢰가 두 사람의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탄탄한 당내 입지도 이들의 대화정치에 힘이 되고 있다. 민주당 정 총무는사무총장과 총재특보단장을 지낸 4선의 범동교동계 실세다.한나라당 정 총무역시 5선에 이르는 동안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런 입지를 바탕으로 이들은 당내의 강경파들을 달래고 설득하는 데 진력해왔다.민주당 정 총무는 최근 의원총회에서 강경대응을 외치는 의원들의 주문을 “내게 맡겨달라”고 일축했다. ■‘정-정 라인’의 과제/ 첨예한 대립 속에서도 활발히 가동되는 ‘정-정 라인’은 일단 16대 국회 전반의 기상도를 밝게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정국이 순항하리라고 낙관하기는 힘들다. 남북정상회담 후속대책을 놓고 여야가 부딪칠 공산이 높고,보다 멀게는 2년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겨냥해 여야가 곳곳에서 충돌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익과 민생을 위해 여야 지도부를 비롯한 정치권 전체가 보다 대화와 타협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진경호기자 jade@. *여야 총무접촉 이모저모. ‘4·13총선 부정선거’ 시비에 얽혀들어 파행으로 치닫던 국회가 20일 가까스로 본궤도에 들어섰다.여야 모두 국회 파행에 따른 비난 여론에 쫓겨 한발씩 물러났다. ■총무회담 국회 정상화의 물꼬는 이날 오후 2시50분쯤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열린 민주당 정균환(鄭均桓)·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총무간 회담에서마련됐다.회담 직후 양당 총무는 “상생의 정치를 위해 국회를 더이상 공전시키지 말고,국민 불안을 덜기 위해 서로 한발씩 물러나야 한다는 데 의견을모았다”고 말했다. 회담은 오후들어 한나라당이 수정안을 마련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타결 전망을 밝게 했다.이에 따라 여야는 각각 총무회담 직후 회담 결과를 놓고 인준 절차를 밟기 위해 미리 의원총회도 소집했다. 특히 민주당 천정배(千正培)·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수석부총무는 최종합의안 마련을 위한 별도의 실무 접촉을 가진 뒤 오후 3시40분 총무회담에합류,최종 협상에 가속을 붙였다. ■합의 안팎 한나라당은 당초 국정조사 실시와 검찰총장 출석을 요구하던 강경안에서 한발 물러섰다.대신 오는 24일부터 사흘 동안 법사위와 행자위의연석회의를 열어 부정선거 문제를 일반 안건으로 논의하되,안건의 명칭에는14,15대 총선 직후의 전례를 들어 ‘부정선거’ 대신 ‘공정성 시비’로 표현하자는 내용이었다. 한나라당 정 총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검찰총장을 출석시킨 적이 없다”고 말해 검찰총장 출석 요구에 매달리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검찰총장 출석 요구를 사실상 철회했고,4·13총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한나라당의 수정안을 받아들였다. 특히 민주당 정 총무는이날 한나라당 정 총무와 회담을 갖기에 앞서 자민련 오장섭(吳長燮)총무와 만나 국회 정상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의 상정을 당분간 미룰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박찬구 주현진기자 ckpark@
  • 남북 장관급회담 전망

    6·15 남북공동선언 후속조치를 협의하기 위해 오는 27일 열릴 것으로 보이는 남북 장관급회담 형식이 대체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19일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이번 회담은 경협,사회·문화,긴장완화,통일방안 논의 등 각 분야 실무회담에 앞선 총괄 성격의 회담이다.즉 앞으로 남북이 어떤 과제들을,어떤 방식으로 협의해 나갈지를 전체적으로 설정하는 자리가 된다. [실용적 과제 집중 협의] 이번에 남북이 가장 중점적으로 논의할 의제는 6·15선언 제4항에서 천명한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분야 등의 교류협력방안이다. 이 부분은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쌍방에 구체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없이 손댈 수 있는 과제다. 선언 2항의 통일방안 논의(남측의 연합제,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장기적인 협의과제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먼저 양측이 교류협력 활성화를 통해 화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 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밖에 선언 1항의 자주적인 통일문제 해결 조항은 서로 견지해야 할 입장이지 논의 대상은 아니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3항의 이산가족과 비전향장기수 문제도 적십자회담에서의 논의 과제로 분류된다. 선언문 끝 부분에 명기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는 심도 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이번 회담이 서울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김위원장은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고위급 1∼2명을 먼저 서울에파견한 뒤 내가 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후속 실무회담은] 이번 장관급회담에서의 합의사항을 실천할 분야별 실천체계가 어떤 식으로 운영될지도 관심이다.일단 92년 남북이 설치를 합의했던분야별 공동위원회를 가동하는 방식이 가장 유력하다.일각에서는 별도의 실천체계 없이 상설화에 가까운 정례적인 장관급회담 개최로 공동선언을 이행해 나갈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남북 장관급회담 수석대표 누가 맡나. 오는 27일부터 열리는 남북 장관급회담에 남북 양측은 수석대표를 포함,각5명씩의 대표단을 내세운다.우리측 제안을 북측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전제에서다.북측이 양측 대표수를 3명으로 하자는 역제안을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우리측 대표단과 관련,정부 당국자는 “경제,사회·문화등 전반적인 대북정책 부처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혀 재정경제부와 문화관광부,국방부,통일부등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수석대표는 남북간 현안을 총괄적으로 다루는 회담인 만큼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에서 맡게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남북관계 주무부처인통일부 박재규(朴在圭)장관이 유력하다. 일각에서는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을사실상 입안해 추진하고 있으면서 남북정상회담의 산파역을 맡았던 임동원(林東源)국가정보원장도 거론된다. 수석대표가 장관급인 만큼 나머지 대표들은 차관급이나 차관보급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엄낙용(嚴洛鎔)재경부차관과 김순규(金順珪)문화부차관,박용옥(朴庸玉)국방부차관,김보현(金保鉉) 국정원 3차장 등이 거론된다. 남측은 대북 제안의 공식성을 높이기 위해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가 홍성남(洪成南)내각총리 앞으로 서한을 보냈다.그러나 실제 북측 대표에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멤버가 다수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수석대표로는아태평화위 김용순 위원장이 유력하며,송호경 부위원장도 거론된다.대표로는이종혁,전금철 부위원장 등이 오르내린다. 김상연기자 carlos@
  • [김삼웅 칼럼] “하늘 안 무섭나”

    “대한매일신보는 한말 국가의 운명이 위급한 지경에 처했던 시기에 구국의필봉으로 일본의 침략에 저항했던 민족언론의 본산이었다. 대한매일은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04년 7월18일에 창간되어 한일합방이 강제로 체결되던 때까지 일본의 침략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항일민족언론의 사명을 다하였다.”(이광린외 ‘대한매일신보연구’) “대한매일신보는 대형4면,국한문 혼용의 신문으로서 처음부터 대표적인 ‘배일지’로서 이채를 띠었다.이 신문이 일제 침략자들과 그 앞잡이 매국도배들을 반대 배격하는 데서 비교적 예리했던 것은 무엇보다 우리 인민의 반일애국투쟁이 더욱 앙양되고 있었던 역사적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발간된 사정과 관련되어 있다.”(이용필 ‘조선신문 100년사’) 오늘(18일)은 대한매일신보가 태어난 지 96주년이다.현재 한국언론사로서는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다.앞서 남북 두 언론학자가 지적했듯이 한말 국가의 운명이 위급할 때 구국의 필봉으로 일제침략에 저항했던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반면에 그보다 훨씬 긴 세월의 부끄러운 전력도 갖고 있다. 오래전 신문학자 곽복산씨는 “신문기자는 민중이 신뢰할 수 있는 진실성을견지하여야 하는 까닭에 기자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는 말을남겼다. 어찌 기자뿐이겠는가.‘진실성’을 견지하는 직업인이 아니라도 먼저 인간이 돼야 하는 것은 사람의 당위다. 새삼스런 말을 인용한 것은 엄청나게 변하는 남북관계에서 오늘 언론(인)의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피기 위해서다. 6·15선언 이후 우리 언론은 휴전선 이북까지 인식의 지평을 넓히게 됐다. 따라서 분단시대 언론에서 통일시대 언론으로 시각을 교정하고,냉전논리에서화해협력시대로 인식을 전환하고,내부의 이해다툼에서 민족문제로 시야를 높여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남북한은 그동안 주변 4강의 종속변수 위치에서 주체적 상수로 한반도 문제를 스스로 주도하게 됐다.해방 이후 처음으로 민족문제의 ‘당사자 해결’원칙이라는 주체적 변화를 조성해낸 것이다.이것은 실로 대단한 변화다.민족의 자긍심이기도 하다.문제는 내부적으로 얼마만큼 강고한 통합력으로 북한과 대화를 통해 6·15 합의사항을 실천하고 평화공존을 이루느냐다.우리 사회의 다양성 때문에 북한과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고 분열상을 보일 수도 있다.특히 수구 언론의 변화를 거부하는 냉전논리는 자칫 남북관계를 대결구도로 회귀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한민족에게 평화공존 이상의 과제는 다시 없다.언론이 이같은 민족사적 과제를 뒤엎고 여론을 왜곡하면서 화해와 협력의 경계선을 허문다면 그것은 직업인 이전에 인간으로서도 못할 짓이다.여기서 기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는 가르침의 유효성을찾게 된다. 언론이 비판보도 기능을 넘어 권력화의 기능을 하고,그 종사자들이 언론귀족으로 자리잡고,맹목적 적대감으로 남북화해를 훼방하고,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용지를 오로지 ‘광고유치’ 목적으로 무한정 찍어서 곧바로 폐지장으로 보내는 따위의 폐습을 시정하지 않고는 건전한 언론자율도,여론형성과 수렴도,남북 평화공존도 불가능하다. 국가의 운명이 위급할 때 선각 언론인들이 나서 구국의 필봉을 날렸듯이 남북이 화해와 평화공존으로 가는 중차대한 시기에 언론(인)의 책임과 사명은실로 막중하다.그 선상에서 대한매일의 책임과 사명 역시 막중하다. 대한매일은 98년 11월11일 공익정론과 민족화합을 앞당기는 언론으로 거듭나면서 포효하는 호랑이를 심벌로 내세웠다.균형 있는 비판과 대안제시로 공익언론의 참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고 제도언론이 기피해온 일련의 기획 연재를 통해 정체성 회복에 노력했다. 옛글에 ‘화호불성반위구’(畵虎不成反爲狗)란 말이 있다.“호랑이를 그리려다 잘못하여 개를 그리게 된다”는 뜻이다.대한매일은 짧은 기간의 개혁과정에서 미처 호랑이를 그리지 못한 부분은 독립언론으로 새로 나면서 ‘화호점정’(畵虎點睛)하게 될 것이다. 박경리 여사가 소설 ‘토지’에서 토해낸 “하늘 안 무섭나”란 말을 남북화해를 해코지하려는 언론(인)에는 ‘훈계’로,독립언론으로 가는 대한매일은 ‘계훈’으로 삼으면 어떨까. [김삼웅 주필 kimsu@]
  • 北, 한총련 입국 거부 안팎

    북한이 한총련 소속 대학생 2명에 대한 입국을 불허하고 있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화해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정상이 합의서명한 6·15공동선언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려는 조치라는것이다. 당초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간 반목과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냉전구도의 상징으로 지목됐던 범민족대회를 올해에는 개최하지 않기로 선언,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힘을 실어줬다.그러나 과연 이것이 실현될 것인가에 많은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졌다. 북한이 한총련 학생들의 입북을 불허한 것은 이산가족상봉과 비전향장기수송환 등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자칫 이들을 받아들일 경우 파생될 마찰을 피하기 위한 정책적인 고려로 풀이된다. 북한의 이런 조치는 지난 반세기동안 냉전적 남북관계가 정상회담이후 화해·협력관계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특히 북한은 앞으로 통일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정부 당국자간의 직접적인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로도해석돼 입국불허 조치는 여러가지 함축하는바가 크다. 서울지검의 한 공안검사는 “남북 정상회담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등을 이룬마당에 한총련 대표를 받아들여 남쪽 당국과 마찰을 일으킬 소지를 남겨놓지 않으려는 의지의 일환으로 해석된다”면서 “북한이 6·15선언을 지켜 다시는 긴장과 대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행동의 표출로 봐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아무튼 이번 조치는 한총련으로 대변되는 운동권들에게 향후활동방향 및 입지설정 등에 있어 적지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종락기자 jrlee@. *범민족대회, 南·北·해외 '3者연대' 개최. 범민족대회는 지난 90년 8월이후 10년동안 해마다 개최된 북한의 대표적 정치행사다.남-북-해외 3자 연대 방식으로 남(서울)과 북(평양),해외(주로 독일 베를린) 등 세곳에서 동시에 열리며 친북·반한 인사들이 나와 연방제 통일방안 지지,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 등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에 지지를 보낸다. 범민족대회는 88년 문익환(文益煥) 목사,89년 임수경씨와 문규현신부의 방북 등으로 촉발됐는데 전대협,한총련 등 대학운동권은 제3국을 통해 대표를파견,정부와 마찰을 빚어왔다.범민족대회 남측본부가 지금까지 북한으로 보낸 학생은 박성희·성용승(91년),최정남(94년),정민주·이혜정(95년),류세홍·도종화(96년),황선(98년),황혜로씨(99년) 등이다.범민족대회 남측본부는지난달 25일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대회 추진본부(의장 이종림)를 결성했으나 한총련이 이견을 표출,대회는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범민련은 8월13∼15일까지 한양대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00년 통일대축전 11차 범민족대회’를,한총련은 ‘남북공동선언 관철 및 민족의 대단합과 조국통일 실현을 위한 2000 통일 대축전’을 각각 개최할 예정이다. 이종락기자
  • [시론] 남북화해 무드와 냉전적 對北인식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재미 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와 원산에서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가진 외신회견에서 김위원장은 남북공동선언에 관한 평가와 전망을 비롯,미·일관계 등 주요현안에 대한 견해를 비교적 소상히 피력했다.특히 김위원장은 정상회담은민족 자력으로 성사시킨 통일의 첫 걸음인 만큼 어떤 경우에도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실천의지를 강하게 내보였다. 그동안 분단사에서 남북관계가 전향적으로 풀렸다가 다시 대결구도로 후퇴하는 악순환을 경험했던 전례에서 보면 김위원장이 6·15선언에 대한 실천의지를 강하게 다짐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또 김위원장의 이같은실천의지는 정상회담 이후 실제로 1개월동안 괄목할 만한 북한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휴전선에서 대남체제 비판과 비방방송을 일제히 중단했으며,지난해 교전이벌어졌던 서해상에서 북한어선이 한 척도 북방한계선(NLL)을 넘지 않았다.8·15 이산가족 교환방문단 문제를 협의했던 금강산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보여준북측의 자세도 과거의 부정적 협상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그리고 북한TV,라디오,신문 등 언론매체들이 남측에 대해 과거의 비난일색에서 우호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변화를 가장 잘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같은 북한의 실질적 변화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실천의지에서 나타난 결과로 인식된다.또한 이번 인터뷰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김위원장의 전향적 시각을 확인했다는 점이다.미국은 분단에 책임이 있는만큼 통일에도 책임이 있다는 전제하에 주한미군 문제는 우리민족의 통일을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에서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북한이 6·25한국전쟁 이후 대남 통일전략전술 차원에서 일관되게 요구해왔던 주한미군 철수주장론에서 보면 획기적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주한미군의 존재이유가 전쟁억지력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한반도 평화정착 의지를 엿보게 하는 전략변화로도 이해되며 주한미군이 동북아 안보환경에서‘균형자’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설득이 주효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이밖에도 김위원장의 중국방문을 통해 개방확대가 예상되며 현대그룹과의 금강산 경제특구 설정을 통한 남북경협의 활성화도 기대된다.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가시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한반도 해빙무드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남북간에 화해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냉전적 반북(反北) 논란이 일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북한은 최근 남한 모언론사의 보도태도가 반통일적이라며 강한 불만과 함께 해당언론사 기자의 북한입국 금지조치를 취하고 있고,야당총재에 대한 강도높은 비난도 있었다.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개방’이라는 모험을 수용하고 획기적 남북관계 개선에나서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남한의 반북기류 조성에 대한 반발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감정적 대응은 내정간섭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다원화된 남한사회에서는 언론의 비판이나 정당의 주장은 국민적 권리다.북한은 이같은 다양성을 인식하고 부당한 언행을자제해야 마땅하다.이와함께 일부의 냉전적 대북 적대인식도 불식돼야 한다. 남북화해 분위기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야기되는 대북 냉전인식을 둘러싼 논란이 어렵게 마련된 정상회담 성과를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민족분단반세기 동안 만들어진 이념의 프리즘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냉전적 적대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비생산적인 냉전논쟁을 지양하고 북한과 북한주민을 함께 살아갈 반쪽의 동족으로 이해하고 분단사를 종식시키는 실천의지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張 淸 洙 논설위원]csj@
  • [사설] 북한의 6·15선언 실천의지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재미 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와 단독회견에서 남북정상간 6·15공동선언에 대한 실천의지를 거듭 내비쳤다.대한매일의 12일자 첫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가진 회견에서 그는 “(김대중대통령과의)회담에서 합의한 5개 공동선언은 민족의 통일 대헌장이라고 할 정도의 의의를 가진다”고 전제,“실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김위원장의 이같은 언급을 남북관계의 장래에 비추어 퍽 다행스럽고반가운 일로 받아들인다. 5개항 공동선언은 남북간 전방위적 교류협력을 다짐하고 있지만,엄밀히 말해 구체적 실천의지가 뒷받침되어야만 열매를 맺을수 있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자세에 주목한다. 즉“그동안 미군에 대해 나가달라고 말해 왔으나, 당장 나가겠는가”라며유연한 언급을 한 대목이다. 물론 역사적인 정상회담 이후에도 우리 내부에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진의를 의심하는 시각이 엄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12일 열린 국회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도 그러한 기류가 읽혀졌다.일부 의원들이 북한의 개혁 의지에 의구심을 나타내면서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양보한 게 아니냐는 식으로 공세를 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소리의 적실성은 제쳐 두더라도 이제는 우리 사회 또한 ‘북한은절대로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도그마를 버려야 할 때라고 본다.그런 틀에 박힌 사고야말로 간헐적인 북한의 도발적 대남 자세와 함께 대북 압박정책이라는 우리 쪽의 냉전적 대응이 서로 맞물릴 때 남북관계 개선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의 정부 이전만 해도 김위원장에 대한 평가가 부정 일변도였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사생활과 관련한 호사가적 관심이나 호전적인 이미지를강조하는 등 폄하 일색이었다.그러나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상황이 급반전되고 있는 것 같다.유연하고 ‘통 큰’ 사고나 유교적인 예의 등 김위원장에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새롭게 자리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체제의 개혁 가능성을 점치는 일이나 김위원장에 대한 극단적인폄하나 상찬, 양쪽 모두가 성급하고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김위원장이 점진적이나마남북협력과 대외 개방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점이다.문씨와의 회견에서도 그러한 의사가 재확인된 셈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북한의 그러한 건설적 태도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확대재생산하는 일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북한의 ‘과거’에 대한 무익한 논쟁보다는 남측이 앞장서 정상회담 후속조치 마련에 적극성을 보이라는 뜻이다.
  • 美 對韓정책에 대한 ‘쓴소리’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또한 국내적으로는 남북정상간의 합의를 담은 ‘6·15선언문’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특히 선언문 1항의 ‘자주’와 2항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해석과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가장 큰 관심사는 향후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역할과 미군의 지위에 관한 입장 차이일 것이다. 최근 출간된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마틴 하트-랜즈버그 지음,신기섭옮김)는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의 대한반도 외교정책을 역사적으로 개괄한 책이다.저자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루이스 앤드 클라크대 경제학과 교수.저자는 분단의 주요 책임이 미국에 있으며,미국 정부는 자국의 외교목적을위해 분단을 적극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한국의 역사를 미국이라는 외세에 전적으로 의존한 역사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그는 구한말 의병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민중의 투쟁,특히 일제시대 좌파의등장부터 80∼90년대까지 이어진 사회변혁투쟁에 주목한다.바로 이 투쟁의 역사에서 통일의 희망을 찾는다.도서출판 당대,1만원.
  • [김삼웅 칼럼] 7·4성명과 6·15남북공동성명

    “실은 평양에 다녀왔습니다.” 28년전 오늘(4일) 오전 10시,중대 방송이 예고된 가운데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느닷없이 평양엘 다녀왔다고 밝혔다.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해도 평양에 다녀왔다면,간첩이 아니라면 황천(黃泉)을 다녀온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그것도 중앙정보부장이 다녀왔다는 데는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이부장은 72년 5월2일부터 5월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김영주 조직부장과 회담하고,박성철 제2부수상이 서울을 방문하여 회담을 가졌다는 사실을 공개했다.평양에서 김일성 수상과 회담을 가졌고 박성철도 서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면담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렇게 하여 발표된 7·4선언은 ①통일원칙으로서 ▲외세 의존과 간섭을 배제한 자주적 해결 ▲무력행사가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 도모 ②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고무력도발과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 ③남북 사이의 다방면적 교류 실시 ④남북적십자회담의 성사에 적극 협조 ⑤군사사고 방지와 남북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 가설 ⑥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운영⑦이 합의사상의 성실한 이행을 민족 앞에 약속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은 흥분했다.초당적인 지지가 나타나고 박대통령과 ‘이념적’ 적대관계이던 장준하씨까지도 이를 지지했다.그러나 ‘성실한 이행’을 민족앞에약속한 7·4공동성명은 얼마후 한낱 휴지로 변하고 말았다. ■7·4성명 양측 체제강화에 악용 7·4공동성명이 휴지로 변한 데는 몇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남북정상이직접 서명하지 않고 대리인을 통한 것 ▲공개적인 접촉이 아닌 밀실에서 이루어져 양측 주민의 합의절차 생략 ▲남북 두 권력자가 영구집권체제를 만드는 데 악용 ▲동서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미·소 등 주변강대국의 방해 등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기화로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체제를 만들고,김일성수상 역시 주석제로 헌법을 바꾸어 주석에 취임했다.양측 권력자가 ‘적대적공조’ 관계에서7·4공동선언을 짓밟고 자신들의 권력강화에 악용한 것이다.민족사에 씻지 못할 죄악을 범했다.그로부터 28년이 지난 올 6월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하면서 5개항에 합의했다. 합의사항은 ①통일의 자주적 해결 ②연합-연방제 공통성 인정 ③친척방문단교환 ④경제협력 확대 ⑤당국대화 재개 등이다.원칙이나 큰 틀에서는 7·4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내용)과 맥을 같이한다. 차이라면 ▲전자의 주도층이 분단·냉전세력인 데 비해 후자는 통일지향 세력인 점 ▲7·4성명이 밀실에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6·15선언은 대명천지공개리에 합의한 점 ▲양측의 최고권력자가 직접 5개항을 도출한 것 ▲ 주변4강이 속셈과는 상관없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6·15남북공동선언의 후속조치도 착실하게 진척되고 있다.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이산가족의 8·15 상호방문,면회소 설치 9월초 회담에서 확정,장기수 9월초 희망자 전원 북송 등 3개항에 합의했다.또한 남북군대는 즉각적으로 상호비방과 적대용어 사용을 철폐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한편 금강산 일대를경제특구로 개발하기로 현대가 북한과 합의하는 등 경제교류와 협력체제도착실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다.스포츠 분야에서도 시드니 올림픽 동시입장과축구·탁구의 단일팀 구성,2002년 월드컵 분산개최,경평(京平)축구 부활,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 등이 성사될 전망이다. ■맹목적 반북세력이 문제 비전향장기수 북송과 관련,맹목적 반북세력이 국민감정을 자극하려들지 모른다.우리가 먼저 아량을 베풀면 북한도 국군포로·납북어부 송환 등 좋은성과가 나타날 것이다.북한의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내가 필요하다.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이루지 못한 겨레의 소망이 이번에는 기필코 성사되도록,냉전세력이 남북화해의 물꼬를 교란시키지 못하도록,깨어있는 국민이 이를 지켜내야 한다. 김삼웅 주필.
  • 남북 적십자회담/ 6·15선언 위력‘민족잇기’ 신호탄

    30일 남북적십자 대표단이 이산가족 상봉 합의서를 성공적으로 타결지음으로써 남북 정상간 만남의 ‘위력’이 처음으로 실체화 됐다. 양측이 비전향장기수 송환과 면회소 설치 등 서로 껄끄러운 문제에서 한걸음씩 물러나 정해진 기간 안에 회담을 마무리한 것은 정상간 합의 정신을 함부로 거스를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공동선언의 첫 실천/ 6·15 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이 합의한 내용 중 하나를 처음으로 매끄럽게 이행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출발이 순조로움에 따라 그동안 공동선언의 이행 전망을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도 “역시 정상끼리 만나니 다르네…”라는 생각과 함께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보다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점도 뜻 깊다. 85년 9월 50명의 이산가족 교환방문 이후 15년 만에 다시 교환방문이 이뤄짐으로써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없다.광복절인 8·15에 상봉이 이뤄져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남북화해의 기념비/ 무엇보다 상봉 제도화의 관건이랄 수 있는 상시면회소 설치의 필요성에 양측이 의견일치를 본 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바야흐로 남북의 모든 이산가족이 ‘죽기 전에’ 흩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합의한 것도 남북 화해의 도정에 기념비가 될 만하다. 북측의 수십년 숙원(?)을 우리가 ‘통 크게’ 해결해 줌으로써 북측으로서는 체제 단속의 기회를 잡은 것은 물론,국민들에게 본격적인 남북 화해·교류의 명분을 과시할 수 있게 됐다. ●향후 회담전망 밝아/ 북측은 회담과정에서 합의서 문구 그대로의 이행을 강조,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명’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앞으로 경협·군사·문화 등 분야별 당국간 회담이나 김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나머지 6·15 남북공동선언의 합의내용도 순조롭게 이뤄질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문제점은/ 전체적으로는 예상보다 진일보한 타협안이지만 맘에 걸리는 부분도 없진 않다. 우선 면회소 설치와 관련,구체적인 장소와 시기가 명기되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이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양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역시 합의서상에는 거론되지 않아 향후 해결방법이 양측의 ‘숙제’로 남게 됐다. 김상연기자 carlos@
  • 7월증시 대세상승 분기점 될까

    7월에는 화려한 상승장이 펼쳐질까. 최근 주가가 800선을 상향돌파하면서 본격적인 상승국면 진입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그동안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아왔던 악재들이 이미 주가에 반영돼 힘을 잃어가고 있는데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안정 대책에 힘입어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전문가들도 “7월은 상반기(1∼6월)의 약세장에서 벗어나 하반기 상승장으로 가는 대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신·대우·삼성·현대,LG증권 등 5대 증권사의 투자분석팀으로부터 ‘7월의 장세 전망’을 들어 봤다. ■예상 지수대 증시 전문가들은 7월의 종합주가지수를 평균적으로 850∼900선,코스닥은 160∼200선으로 전망했다.지난 6월의 종합주가지수는 738.49(1일)를 최저점으로 845.81(12일)까지 치솟은 뒤 800선을 사이에 두고 바닥 다지기를 거듭해 왔다.코스닥도 145∼165선 사이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현대증권 박영철(朴永喆)투자전략팀장은 “7월 한달사이에 큰 폭의 상승은기대하기 어렵지만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하고 거래소의지수 최저점을 800선,최고점을 900선으로 제시했다.특히 지수는 10일 전후까지 꾸준하게 상승한 뒤 후반들어 소폭 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호재와 악재 7월엔 악재가 해소되고 호재가 부각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공통된 의견이다.이들은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반도체업종의 호황이 지속되는데다 시장을 짓눌러온 금융권 부실문제와 금융불안문제 등 상반기 증시를침체의 늪에 빠뜨린 ‘악재’들에 대한 우려가 점차 해소되고 있다는 점을낙관적인 전망의 근거로 들었다.또 자금시장 불안요인의 제거로 기관의 선취매성 매수세가 유입되는데다 미국 증시의 안정으로 인한 외국인의 매수세 유입 등을 꼽았다. 하지만 경제성장 둔화와 무역수지 흑자축소,시중자금경색,국제 원유가 상승,공공요금 인상 등의 악재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무리한 추격매수보다는 시장의 흐름에 따른 대응 전략을 펴야할 것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추천 종목 전문가들은 7월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등 반도체관련주와 주택·국민은행등 우량 은행주,LG증권과 삼성증권 등 우량 증권주,메디슨,대성전자 등 인수·합병(M&A)관련주 등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전망했다. 또 차세대이동통신사업(IMT-2000)관련주,소외됐던 저평가 우량주 등도 대상으로 꼽혔다. 코스닥에서는 우선 그동안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낙폭과대 우량주와 새롬과 다음 등 지수관련 대형주,핵심 닷컴주,통신서비스주를 추천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남북적십자회담 쟁점

    이산가족 상봉 논의를 위한 금강산 남북적십자회담이 초반 ‘빡빡하게’ 진행되고 있다.남북 양측의 이산가족 문제 해법에 대한 입장 차가 예상보다 큰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그러나 양측 모두 한편으로는 “두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큰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어떻게든 이번 회담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비전향장기수 송환 비전향장기수 59명 북송에 대한 우리측 입장은 8·15이산가족 교환방문이 먼저 이뤄진 뒤에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그런데 북측은 27일 1차회담에서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이전에 송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우리측을 당황케 했다.우리측은 최악의 경우 북측이 8·15교환방문과 동시에 송환을 주장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으나,그 이전으로는 예상치못했다. 송환시기가 문제되는 것은 양측의 ‘명분’때문이다.북측은 비전향장기수를먼저 데려옴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남북교류의 명분을 과시하려는 것 같다.반면 우리 정부는 국군포로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이산가족교환방문이성공적으로 진행된 뒤 송환해야 일부 보수세력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중간점인 8·15교환방문때 송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편이다. 북측이 송환시기를 8·15이전으로 ‘세게’ 치고나온 것도 이같은 타협점을염두에 둔 고도의 전략이란 지적이다.우리로서도 어차피 송환할 바에야 시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들어 대승적으로 북의 처지를 배려할 가능성이 있다.대신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의 약속을 이끌어 냄으로써 실리를 챙기는게 나을 수도 있다. ■상봉 정례화 우리측은 이번 회담에서 8·15교환방문 뿐 아니라,생사·주소확인,서신교환소·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상봉의 제도화까지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북측은 27일 “이번 회담은 6·15선언에 명기된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일 뿐 나머지는 후속회담에서나 다룰 문제”라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우리측이 비전향장기수 송환시기를일부 양보할 경우 북측이 이 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8·15교환방문단 규모양측이 각각 이산가족 100명과 지원인력 30명을 파견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취재진의 경우 우리는 30명을,북측은 20명을 주장하고 있다.취재기자 수의 경우 그동안 북측 뜻이 대부분 반영된 점으로 미뤄,이번에도 북측 주장이 수용될 가능성이 크다. 김상연기자 carlos@
  •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 문제 논의

    ‘6·15 남북공동선언’의 첫 후속조치인 이산가족 교환방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이 27일 북한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호텔에서시작됐다. 박기륜(朴基崙) 남측 수석대표와 최승철 북측 단장(수석대표) 등 양측 대표단은 회담후 “회담에서 공동선언의 이행방식에 관한 견해차이가 있었다”고밝혔다.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를 어떤 순서로 이행할지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 남측은 방문단이남과 북의 고향을 방문해 상봉을 진행시키자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또 판문점에 이산가족 면회소를 설치,상봉을 정례화할 것도 제의했다.모든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과 서신교환도 조속한 시일내에 실시할 것도 함께 제의했다. 반면 북측은 ‘8·15 친척방문단’은 금강산지역에서 상봉할 것과 비전향장기수의 송환 문제도 이번 방문단 협의와 함께 진행시켜야 할 것임을 강조한것으로 알려졌다. 2차 회담은 28일 하루를 쉰 뒤 29일에 같은 장소에서 속개하기로 했다. 북측 최 단장은 회담에앞서 “6·15선언에 포함된 이산가족 방문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 등을 잘 타결해야 한다”고 언급,이산가족 교환방문뿐 아니라 비전향장기수 문제에도 합의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한편 남측 공동취재단에 포함돼 현대 금강호편으로 27일 오전 북한 장전항에 도착한 조선일보 김인구(43)기자가 북한 당국의 입북 거부로 하선하지 못하고 정박한 배 안에 계속 체류하고 있다. 북측은 26일부터 ‘조선일보가 평소 북측에 비우호적인 논조를 보여왔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취재단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우리 정부에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리측은 조선일보 기자가 아니라 공동취재단의 자격으로 방북한 만큼 김 기자의 입북 허용을 북측에 계속 촉구하고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김상연 기자
  • 일부 보수언론 ‘통일 발목잡기’

    남북정상회담이 열린지 보름도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일부 보수언론들이다시 반통일·분단고착화로 상징되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긴장완화와 통일분위기 조성으로 위기감과 함께 정체성 분열을 겪은 이 신문들은 연일 자사 지면을 통해 ‘통일 발목잡기’에 나서고 있다.이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신문은 조선일보. 정상회담 개최 5일전인 지난 8일 조선일보는 ‘남북문제는 냉엄한 비즈니스다’라는 사설을 통해 현 정부를 마치 ‘정교한 두뇌력’도 없고 감성만 과잉돼 있는 듯이 묘사했다가 다음날 한국일보 칼럼에서 호된 비판을 받았다. 또 12일자 사설에서는 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된 것을 두고 마치 ‘그러면 그렇지 잘 될 턱이 있나’하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정상회담 연기가 남측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한 북측의 불만 때문이라는 당국의 설명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정보를 흘려주지 않고서야 어떻게 예측보도를 할 수 있었겠느냐”며 책임을 정부당국으로 돌렸다. 남북정상이 처음 만난 당일에도 조선일보는 엉뚱한 ‘오보’로 딴죽을 걸었다.13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북한 군악대가 연주한 ‘용진가’는 독립군이부르던 노래인데도 제국주의를 쳐부수는 노래라고 당일 두 곳에서나 거듭 보도했다. 오는 8·15를 전후해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질 예정인 가운데 조선일보는 ‘이산문제의 함정’(20일자)이라는 사설을 통해 지난 85년 이후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계속되지 못한 것과 연관지어 “자칫하면 (이번 교환방문이) 본질을 간과한 채 ‘전시적 행사’로 끝날 우려가 있다”며 매사를 실패한선례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노동당 규약개정이나 주적(主敵)논쟁과 관련해서는 ‘색깔’을 확실히 드러냈다.23일자 ‘노동당 규약과 보안법’ 제하의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북한이 아무리 1인지배 국가이지만 김 위원장이 ‘공감’했다고 해서 노동당 규약이 당장 바뀌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보안법 개폐문제를 북한의 노동당 규약개정과 연계시켰다.이와 관련,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정상회담 이후 보안법 개폐에 대한 반대논리가 궁색해지자 ‘노동당 규약 개정 선약’을 통해 보안법 개폐 저지를 위한 명분쌓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했다.‘주적 논쟁’ 역시 이미 90년대중반에 한번 제기됐던 것임에도 ‘안보’를 이유로 논의 자체를 가로막고 나섰다.조선일보는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일관된 ‘반통일’적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편 ‘북측의 노동당 규약 개정 약속’사실을 첫 보도해 청와대의 출입금지 조치를 당한 중앙일보는 “국민의 ‘알권리’와 6·15선언에 대한 국민적합의 뒷받침을 위한 보도였다”고 연일 주장했다. 청와대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약속’을 비보도를 전제로 언론사 사장들에게 설명했으나 중앙일보에 기사가 실리자,‘비보도 약속’을 어긴 것으로 간주해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그러나 박인규 경향신문 매거진X부장은 26일자 칼럼에서 “두 지도자간의 잠정적 합의를 섣불리 공개함으로써 분단 55년만에 어렵사리 이룩한 남북간의 신뢰를 깰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셈”이라며 중앙일보의 처사를비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김삼웅칼럼] 언론의 알권리와 역사의식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몇차례 절망적인 ‘고비’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일이 남한의 언론보도였다고 한다. 지구상의 유일한 ‘냉전의 섬’인 한반도가 화해와 협력시대로 탈바꿈하려는 남북정상회담의 걸림돌이 남한의 군대나 경찰, 정보기관이나 법제가 아니라 동족간의 화해와통일을 선도해야 하는 언론때문이었다는 것에 한없는 비애와 자괴감을 갖는다. 그런데도 정상회담은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역사적 만남을 통해 5개항의 합의를 도출하여 국민 90%이상이 지지하는 큰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일부 언론의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 언제 다시 악재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북한의 남한언론관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언론의 기능과 인식에 너무 큰 차이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도로 결코 일부 언론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다시 비틀어지거나 해빙무드가 결빙되어서는안된다는 대명제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우리의 민족적 대사에는 반드시 훼방꾼들이 준동했다. 예컨대 기미년3·1항쟁때 이완용 무리는 수차례에 걸쳐 이른바 ‘경고문’을 발표했다. 온 민족이 생명을 내걸고 나선 항쟁을 가리켜 “지각없는 동배(童輩)가 망동하고 다음에는 각 지방인이 문풍역동(聞風亦動)하여 끝이 없다. 일인은 강경책을 쓰게되니, 되지도 않을 독립은 고사하고 동도의 사상을면하기 위하여 진정할 것을 경고한다”고 시위민중을 협박했다. 친일파들에의한 이런 류의 협박이 연일 신문지면을 도배질했다. 망국10년만에 궐기한 3·1항쟁은 외세에 좌초되었지만 분단 55년만에 온겨레가 힘을 모아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키고 화해협력으로 가는 통일운동은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러한 민족적 대사에 훼방을 놓거나 딴죽을 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유취만년(遺臭萬年)의 ‘반통일’로 기록돼 마땅하다. 통일국가 언론(인)의 ‘국익과 알권리 대립’따위는 어느 측면 행복한 갈등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단국가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화해협력과 통일에 저해되는 기사(논평)는 가급적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권리와 역사의식의 갈등이 따른다. 언론인으로서의 고뇌와 내부의 압력도 물리치기 쉽지않을 것이다. 최근 ‘김정일신드롬’이 확산되는 데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않다. 그동안 김정일위원장의 ‘허상’만 보도하다가 ‘실체’가 드러나면서나타난 현상아닌가. 그러나 올 6월12일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주적의 괴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6·15선언 이후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대화협력,평화공존 그리고 통일과정에 함께 가야할 동반자요 반쪽 동포를 대표하는 ‘정상’이기 때문이다. 분단시대 서독언론인들은 동독에 파견되어 무엇보다 ‘동족의식’의 대전제에서 언론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중국과 대만의 어선이 공해나 영해상에서 충돌하게 되면 중국언론은 가급적 수습이 된 이후에 이를 보도한다고 한다. 국민간의 적대감정을 줄이려는 배려인 것이다. 언론의 ‘알권리’는 소중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 언론(인)이 ‘알권리’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의문이다. 군부독재의 헌정파괴나 양민학살에 대해 ‘알권리’의 책임을 다했는가. 사주들의 비행이나 언론내부의 비리를 ‘알권리’차원에서 제대로 알렸는가. 정작 알리고 밝혀야 할 때는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반쪽 동포와 화해협력의 과제는 시시콜콜 파헤치고 어깃장을 놓는 것이 과연 바른 언론(인)의 자세일까. 사자 소리에 벌벌 떨다가 사자시체에는 가장 먼저 덤비는 하이에나가 초원의 청소부 역할에는 충실할지 몰라도 대접받는 짐승축에 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건 관료들의 행태가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관리들은 취득한 국가정보를 지키는 것이 본분이고 언론은이를 알리는 것이 책임이다. 문제는 이 대칭점의 어디쯤에서 접점을 찾느냐이다. 분단국가 언론(인)의고뇌이고 갈등이다. ‘6·15남북선언’이후 한때 대세에 편승하던 수구언론이 다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골수에 젖은 냉전의식의 발로이거나 DJ가 잘하는 꼴은 못보겠다는 ‘놀부 심보’다. 냉전의식이 변해야 하고 놀부심보를 버려야 한다. 그런 연후에 ‘알권리’를 내세우면 설득력을 갖게된다. 통일시대 언론(인)의 역사의식이 아쉽다. 김삼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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