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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한총련 입국 거부 안팎

    북한이 한총련 소속 대학생 2명에 대한 입국을 불허하고 있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화해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정상이 합의서명한 6·15공동선언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려는 조치라는것이다. 당초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간 반목과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냉전구도의 상징으로 지목됐던 범민족대회를 올해에는 개최하지 않기로 선언,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힘을 실어줬다.그러나 과연 이것이 실현될 것인가에 많은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졌다. 북한이 한총련 학생들의 입북을 불허한 것은 이산가족상봉과 비전향장기수송환 등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자칫 이들을 받아들일 경우 파생될 마찰을 피하기 위한 정책적인 고려로 풀이된다. 북한의 이런 조치는 지난 반세기동안 냉전적 남북관계가 정상회담이후 화해·협력관계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특히 북한은 앞으로 통일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정부 당국자간의 직접적인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로도해석돼 입국불허 조치는 여러가지 함축하는바가 크다. 서울지검의 한 공안검사는 “남북 정상회담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등을 이룬마당에 한총련 대표를 받아들여 남쪽 당국과 마찰을 일으킬 소지를 남겨놓지 않으려는 의지의 일환으로 해석된다”면서 “북한이 6·15선언을 지켜 다시는 긴장과 대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행동의 표출로 봐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아무튼 이번 조치는 한총련으로 대변되는 운동권들에게 향후활동방향 및 입지설정 등에 있어 적지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종락기자 jrlee@. *범민족대회, 南·北·해외 '3者연대' 개최. 범민족대회는 지난 90년 8월이후 10년동안 해마다 개최된 북한의 대표적 정치행사다.남-북-해외 3자 연대 방식으로 남(서울)과 북(평양),해외(주로 독일 베를린) 등 세곳에서 동시에 열리며 친북·반한 인사들이 나와 연방제 통일방안 지지,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 등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에 지지를 보낸다. 범민족대회는 88년 문익환(文益煥) 목사,89년 임수경씨와 문규현신부의 방북 등으로 촉발됐는데 전대협,한총련 등 대학운동권은 제3국을 통해 대표를파견,정부와 마찰을 빚어왔다.범민족대회 남측본부가 지금까지 북한으로 보낸 학생은 박성희·성용승(91년),최정남(94년),정민주·이혜정(95년),류세홍·도종화(96년),황선(98년),황혜로씨(99년) 등이다.범민족대회 남측본부는지난달 25일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대회 추진본부(의장 이종림)를 결성했으나 한총련이 이견을 표출,대회는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범민련은 8월13∼15일까지 한양대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00년 통일대축전 11차 범민족대회’를,한총련은 ‘남북공동선언 관철 및 민족의 대단합과 조국통일 실현을 위한 2000 통일 대축전’을 각각 개최할 예정이다. 이종락기자
  • [시론] 남북화해 무드와 냉전적 對北인식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재미 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와 원산에서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가진 외신회견에서 김위원장은 남북공동선언에 관한 평가와 전망을 비롯,미·일관계 등 주요현안에 대한 견해를 비교적 소상히 피력했다.특히 김위원장은 정상회담은민족 자력으로 성사시킨 통일의 첫 걸음인 만큼 어떤 경우에도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실천의지를 강하게 내보였다. 그동안 분단사에서 남북관계가 전향적으로 풀렸다가 다시 대결구도로 후퇴하는 악순환을 경험했던 전례에서 보면 김위원장이 6·15선언에 대한 실천의지를 강하게 다짐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또 김위원장의 이같은실천의지는 정상회담 이후 실제로 1개월동안 괄목할 만한 북한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휴전선에서 대남체제 비판과 비방방송을 일제히 중단했으며,지난해 교전이벌어졌던 서해상에서 북한어선이 한 척도 북방한계선(NLL)을 넘지 않았다.8·15 이산가족 교환방문단 문제를 협의했던 금강산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보여준북측의 자세도 과거의 부정적 협상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그리고 북한TV,라디오,신문 등 언론매체들이 남측에 대해 과거의 비난일색에서 우호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변화를 가장 잘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같은 북한의 실질적 변화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실천의지에서 나타난 결과로 인식된다.또한 이번 인터뷰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김위원장의 전향적 시각을 확인했다는 점이다.미국은 분단에 책임이 있는만큼 통일에도 책임이 있다는 전제하에 주한미군 문제는 우리민족의 통일을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에서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북한이 6·25한국전쟁 이후 대남 통일전략전술 차원에서 일관되게 요구해왔던 주한미군 철수주장론에서 보면 획기적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주한미군의 존재이유가 전쟁억지력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한반도 평화정착 의지를 엿보게 하는 전략변화로도 이해되며 주한미군이 동북아 안보환경에서‘균형자’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설득이 주효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이밖에도 김위원장의 중국방문을 통해 개방확대가 예상되며 현대그룹과의 금강산 경제특구 설정을 통한 남북경협의 활성화도 기대된다.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가시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한반도 해빙무드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남북간에 화해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냉전적 반북(反北) 논란이 일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북한은 최근 남한 모언론사의 보도태도가 반통일적이라며 강한 불만과 함께 해당언론사 기자의 북한입국 금지조치를 취하고 있고,야당총재에 대한 강도높은 비난도 있었다.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개방’이라는 모험을 수용하고 획기적 남북관계 개선에나서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남한의 반북기류 조성에 대한 반발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감정적 대응은 내정간섭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다원화된 남한사회에서는 언론의 비판이나 정당의 주장은 국민적 권리다.북한은 이같은 다양성을 인식하고 부당한 언행을자제해야 마땅하다.이와함께 일부의 냉전적 대북 적대인식도 불식돼야 한다. 남북화해 분위기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야기되는 대북 냉전인식을 둘러싼 논란이 어렵게 마련된 정상회담 성과를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민족분단반세기 동안 만들어진 이념의 프리즘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냉전적 적대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비생산적인 냉전논쟁을 지양하고 북한과 북한주민을 함께 살아갈 반쪽의 동족으로 이해하고 분단사를 종식시키는 실천의지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張 淸 洙 논설위원]csj@
  • [사설] 북한의 6·15선언 실천의지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재미 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와 단독회견에서 남북정상간 6·15공동선언에 대한 실천의지를 거듭 내비쳤다.대한매일의 12일자 첫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가진 회견에서 그는 “(김대중대통령과의)회담에서 합의한 5개 공동선언은 민족의 통일 대헌장이라고 할 정도의 의의를 가진다”고 전제,“실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김위원장의 이같은 언급을 남북관계의 장래에 비추어 퍽 다행스럽고반가운 일로 받아들인다. 5개항 공동선언은 남북간 전방위적 교류협력을 다짐하고 있지만,엄밀히 말해 구체적 실천의지가 뒷받침되어야만 열매를 맺을수 있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자세에 주목한다. 즉“그동안 미군에 대해 나가달라고 말해 왔으나, 당장 나가겠는가”라며유연한 언급을 한 대목이다. 물론 역사적인 정상회담 이후에도 우리 내부에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진의를 의심하는 시각이 엄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12일 열린 국회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도 그러한 기류가 읽혀졌다.일부 의원들이 북한의 개혁 의지에 의구심을 나타내면서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양보한 게 아니냐는 식으로 공세를 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소리의 적실성은 제쳐 두더라도 이제는 우리 사회 또한 ‘북한은절대로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도그마를 버려야 할 때라고 본다.그런 틀에 박힌 사고야말로 간헐적인 북한의 도발적 대남 자세와 함께 대북 압박정책이라는 우리 쪽의 냉전적 대응이 서로 맞물릴 때 남북관계 개선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의 정부 이전만 해도 김위원장에 대한 평가가 부정 일변도였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사생활과 관련한 호사가적 관심이나 호전적인 이미지를강조하는 등 폄하 일색이었다.그러나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상황이 급반전되고 있는 것 같다.유연하고 ‘통 큰’ 사고나 유교적인 예의 등 김위원장에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새롭게 자리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체제의 개혁 가능성을 점치는 일이나 김위원장에 대한 극단적인폄하나 상찬, 양쪽 모두가 성급하고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김위원장이 점진적이나마남북협력과 대외 개방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점이다.문씨와의 회견에서도 그러한 의사가 재확인된 셈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북한의 그러한 건설적 태도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확대재생산하는 일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북한의 ‘과거’에 대한 무익한 논쟁보다는 남측이 앞장서 정상회담 후속조치 마련에 적극성을 보이라는 뜻이다.
  • 美 對韓정책에 대한 ‘쓴소리’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또한 국내적으로는 남북정상간의 합의를 담은 ‘6·15선언문’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특히 선언문 1항의 ‘자주’와 2항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해석과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가장 큰 관심사는 향후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역할과 미군의 지위에 관한 입장 차이일 것이다. 최근 출간된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마틴 하트-랜즈버그 지음,신기섭옮김)는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의 대한반도 외교정책을 역사적으로 개괄한 책이다.저자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루이스 앤드 클라크대 경제학과 교수.저자는 분단의 주요 책임이 미국에 있으며,미국 정부는 자국의 외교목적을위해 분단을 적극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한국의 역사를 미국이라는 외세에 전적으로 의존한 역사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그는 구한말 의병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민중의 투쟁,특히 일제시대 좌파의등장부터 80∼90년대까지 이어진 사회변혁투쟁에 주목한다.바로 이 투쟁의 역사에서 통일의 희망을 찾는다.도서출판 당대,1만원.
  • [김삼웅 칼럼] 7·4성명과 6·15남북공동성명

    “실은 평양에 다녀왔습니다.” 28년전 오늘(4일) 오전 10시,중대 방송이 예고된 가운데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느닷없이 평양엘 다녀왔다고 밝혔다.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해도 평양에 다녀왔다면,간첩이 아니라면 황천(黃泉)을 다녀온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그것도 중앙정보부장이 다녀왔다는 데는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이부장은 72년 5월2일부터 5월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김영주 조직부장과 회담하고,박성철 제2부수상이 서울을 방문하여 회담을 가졌다는 사실을 공개했다.평양에서 김일성 수상과 회담을 가졌고 박성철도 서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면담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렇게 하여 발표된 7·4선언은 ①통일원칙으로서 ▲외세 의존과 간섭을 배제한 자주적 해결 ▲무력행사가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 도모 ②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고무력도발과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 ③남북 사이의 다방면적 교류 실시 ④남북적십자회담의 성사에 적극 협조 ⑤군사사고 방지와 남북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 가설 ⑥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운영⑦이 합의사상의 성실한 이행을 민족 앞에 약속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은 흥분했다.초당적인 지지가 나타나고 박대통령과 ‘이념적’ 적대관계이던 장준하씨까지도 이를 지지했다.그러나 ‘성실한 이행’을 민족앞에약속한 7·4공동성명은 얼마후 한낱 휴지로 변하고 말았다. ■7·4성명 양측 체제강화에 악용 7·4공동성명이 휴지로 변한 데는 몇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남북정상이직접 서명하지 않고 대리인을 통한 것 ▲공개적인 접촉이 아닌 밀실에서 이루어져 양측 주민의 합의절차 생략 ▲남북 두 권력자가 영구집권체제를 만드는 데 악용 ▲동서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미·소 등 주변강대국의 방해 등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기화로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체제를 만들고,김일성수상 역시 주석제로 헌법을 바꾸어 주석에 취임했다.양측 권력자가 ‘적대적공조’ 관계에서7·4공동선언을 짓밟고 자신들의 권력강화에 악용한 것이다.민족사에 씻지 못할 죄악을 범했다.그로부터 28년이 지난 올 6월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하면서 5개항에 합의했다. 합의사항은 ①통일의 자주적 해결 ②연합-연방제 공통성 인정 ③친척방문단교환 ④경제협력 확대 ⑤당국대화 재개 등이다.원칙이나 큰 틀에서는 7·4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내용)과 맥을 같이한다. 차이라면 ▲전자의 주도층이 분단·냉전세력인 데 비해 후자는 통일지향 세력인 점 ▲7·4성명이 밀실에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6·15선언은 대명천지공개리에 합의한 점 ▲양측의 최고권력자가 직접 5개항을 도출한 것 ▲ 주변4강이 속셈과는 상관없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6·15남북공동선언의 후속조치도 착실하게 진척되고 있다.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이산가족의 8·15 상호방문,면회소 설치 9월초 회담에서 확정,장기수 9월초 희망자 전원 북송 등 3개항에 합의했다.또한 남북군대는 즉각적으로 상호비방과 적대용어 사용을 철폐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한편 금강산 일대를경제특구로 개발하기로 현대가 북한과 합의하는 등 경제교류와 협력체제도착실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다.스포츠 분야에서도 시드니 올림픽 동시입장과축구·탁구의 단일팀 구성,2002년 월드컵 분산개최,경평(京平)축구 부활,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 등이 성사될 전망이다. ■맹목적 반북세력이 문제 비전향장기수 북송과 관련,맹목적 반북세력이 국민감정을 자극하려들지 모른다.우리가 먼저 아량을 베풀면 북한도 국군포로·납북어부 송환 등 좋은성과가 나타날 것이다.북한의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내가 필요하다.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이루지 못한 겨레의 소망이 이번에는 기필코 성사되도록,냉전세력이 남북화해의 물꼬를 교란시키지 못하도록,깨어있는 국민이 이를 지켜내야 한다. 김삼웅 주필.
  • 남북 적십자회담/ 6·15선언 위력‘민족잇기’ 신호탄

    30일 남북적십자 대표단이 이산가족 상봉 합의서를 성공적으로 타결지음으로써 남북 정상간 만남의 ‘위력’이 처음으로 실체화 됐다. 양측이 비전향장기수 송환과 면회소 설치 등 서로 껄끄러운 문제에서 한걸음씩 물러나 정해진 기간 안에 회담을 마무리한 것은 정상간 합의 정신을 함부로 거스를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공동선언의 첫 실천/ 6·15 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이 합의한 내용 중 하나를 처음으로 매끄럽게 이행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출발이 순조로움에 따라 그동안 공동선언의 이행 전망을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도 “역시 정상끼리 만나니 다르네…”라는 생각과 함께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보다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점도 뜻 깊다. 85년 9월 50명의 이산가족 교환방문 이후 15년 만에 다시 교환방문이 이뤄짐으로써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없다.광복절인 8·15에 상봉이 이뤄져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남북화해의 기념비/ 무엇보다 상봉 제도화의 관건이랄 수 있는 상시면회소 설치의 필요성에 양측이 의견일치를 본 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바야흐로 남북의 모든 이산가족이 ‘죽기 전에’ 흩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합의한 것도 남북 화해의 도정에 기념비가 될 만하다. 북측의 수십년 숙원(?)을 우리가 ‘통 크게’ 해결해 줌으로써 북측으로서는 체제 단속의 기회를 잡은 것은 물론,국민들에게 본격적인 남북 화해·교류의 명분을 과시할 수 있게 됐다. ●향후 회담전망 밝아/ 북측은 회담과정에서 합의서 문구 그대로의 이행을 강조,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명’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앞으로 경협·군사·문화 등 분야별 당국간 회담이나 김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나머지 6·15 남북공동선언의 합의내용도 순조롭게 이뤄질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문제점은/ 전체적으로는 예상보다 진일보한 타협안이지만 맘에 걸리는 부분도 없진 않다. 우선 면회소 설치와 관련,구체적인 장소와 시기가 명기되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이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양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역시 합의서상에는 거론되지 않아 향후 해결방법이 양측의 ‘숙제’로 남게 됐다. 김상연기자 carlos@
  • 7월증시 대세상승 분기점 될까

    7월에는 화려한 상승장이 펼쳐질까. 최근 주가가 800선을 상향돌파하면서 본격적인 상승국면 진입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그동안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아왔던 악재들이 이미 주가에 반영돼 힘을 잃어가고 있는데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안정 대책에 힘입어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전문가들도 “7월은 상반기(1∼6월)의 약세장에서 벗어나 하반기 상승장으로 가는 대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신·대우·삼성·현대,LG증권 등 5대 증권사의 투자분석팀으로부터 ‘7월의 장세 전망’을 들어 봤다. ■예상 지수대 증시 전문가들은 7월의 종합주가지수를 평균적으로 850∼900선,코스닥은 160∼200선으로 전망했다.지난 6월의 종합주가지수는 738.49(1일)를 최저점으로 845.81(12일)까지 치솟은 뒤 800선을 사이에 두고 바닥 다지기를 거듭해 왔다.코스닥도 145∼165선 사이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현대증권 박영철(朴永喆)투자전략팀장은 “7월 한달사이에 큰 폭의 상승은기대하기 어렵지만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하고 거래소의지수 최저점을 800선,최고점을 900선으로 제시했다.특히 지수는 10일 전후까지 꾸준하게 상승한 뒤 후반들어 소폭 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호재와 악재 7월엔 악재가 해소되고 호재가 부각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공통된 의견이다.이들은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반도체업종의 호황이 지속되는데다 시장을 짓눌러온 금융권 부실문제와 금융불안문제 등 상반기 증시를침체의 늪에 빠뜨린 ‘악재’들에 대한 우려가 점차 해소되고 있다는 점을낙관적인 전망의 근거로 들었다.또 자금시장 불안요인의 제거로 기관의 선취매성 매수세가 유입되는데다 미국 증시의 안정으로 인한 외국인의 매수세 유입 등을 꼽았다. 하지만 경제성장 둔화와 무역수지 흑자축소,시중자금경색,국제 원유가 상승,공공요금 인상 등의 악재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무리한 추격매수보다는 시장의 흐름에 따른 대응 전략을 펴야할 것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추천 종목 전문가들은 7월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등 반도체관련주와 주택·국민은행등 우량 은행주,LG증권과 삼성증권 등 우량 증권주,메디슨,대성전자 등 인수·합병(M&A)관련주 등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전망했다. 또 차세대이동통신사업(IMT-2000)관련주,소외됐던 저평가 우량주 등도 대상으로 꼽혔다. 코스닥에서는 우선 그동안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낙폭과대 우량주와 새롬과 다음 등 지수관련 대형주,핵심 닷컴주,통신서비스주를 추천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남북적십자회담 쟁점

    이산가족 상봉 논의를 위한 금강산 남북적십자회담이 초반 ‘빡빡하게’ 진행되고 있다.남북 양측의 이산가족 문제 해법에 대한 입장 차가 예상보다 큰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그러나 양측 모두 한편으로는 “두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큰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어떻게든 이번 회담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비전향장기수 송환 비전향장기수 59명 북송에 대한 우리측 입장은 8·15이산가족 교환방문이 먼저 이뤄진 뒤에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그런데 북측은 27일 1차회담에서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이전에 송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우리측을 당황케 했다.우리측은 최악의 경우 북측이 8·15교환방문과 동시에 송환을 주장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으나,그 이전으로는 예상치못했다. 송환시기가 문제되는 것은 양측의 ‘명분’때문이다.북측은 비전향장기수를먼저 데려옴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남북교류의 명분을 과시하려는 것 같다.반면 우리 정부는 국군포로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이산가족교환방문이성공적으로 진행된 뒤 송환해야 일부 보수세력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중간점인 8·15교환방문때 송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편이다. 북측이 송환시기를 8·15이전으로 ‘세게’ 치고나온 것도 이같은 타협점을염두에 둔 고도의 전략이란 지적이다.우리로서도 어차피 송환할 바에야 시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들어 대승적으로 북의 처지를 배려할 가능성이 있다.대신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의 약속을 이끌어 냄으로써 실리를 챙기는게 나을 수도 있다. ■상봉 정례화 우리측은 이번 회담에서 8·15교환방문 뿐 아니라,생사·주소확인,서신교환소·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상봉의 제도화까지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북측은 27일 “이번 회담은 6·15선언에 명기된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일 뿐 나머지는 후속회담에서나 다룰 문제”라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우리측이 비전향장기수 송환시기를일부 양보할 경우 북측이 이 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8·15교환방문단 규모양측이 각각 이산가족 100명과 지원인력 30명을 파견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취재진의 경우 우리는 30명을,북측은 20명을 주장하고 있다.취재기자 수의 경우 그동안 북측 뜻이 대부분 반영된 점으로 미뤄,이번에도 북측 주장이 수용될 가능성이 크다. 김상연기자 carlos@
  • 일부 보수언론 ‘통일 발목잡기’

    남북정상회담이 열린지 보름도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일부 보수언론들이다시 반통일·분단고착화로 상징되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긴장완화와 통일분위기 조성으로 위기감과 함께 정체성 분열을 겪은 이 신문들은 연일 자사 지면을 통해 ‘통일 발목잡기’에 나서고 있다.이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신문은 조선일보. 정상회담 개최 5일전인 지난 8일 조선일보는 ‘남북문제는 냉엄한 비즈니스다’라는 사설을 통해 현 정부를 마치 ‘정교한 두뇌력’도 없고 감성만 과잉돼 있는 듯이 묘사했다가 다음날 한국일보 칼럼에서 호된 비판을 받았다. 또 12일자 사설에서는 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된 것을 두고 마치 ‘그러면 그렇지 잘 될 턱이 있나’하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정상회담 연기가 남측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한 북측의 불만 때문이라는 당국의 설명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정보를 흘려주지 않고서야 어떻게 예측보도를 할 수 있었겠느냐”며 책임을 정부당국으로 돌렸다. 남북정상이 처음 만난 당일에도 조선일보는 엉뚱한 ‘오보’로 딴죽을 걸었다.13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북한 군악대가 연주한 ‘용진가’는 독립군이부르던 노래인데도 제국주의를 쳐부수는 노래라고 당일 두 곳에서나 거듭 보도했다. 오는 8·15를 전후해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질 예정인 가운데 조선일보는 ‘이산문제의 함정’(20일자)이라는 사설을 통해 지난 85년 이후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계속되지 못한 것과 연관지어 “자칫하면 (이번 교환방문이) 본질을 간과한 채 ‘전시적 행사’로 끝날 우려가 있다”며 매사를 실패한선례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노동당 규약개정이나 주적(主敵)논쟁과 관련해서는 ‘색깔’을 확실히 드러냈다.23일자 ‘노동당 규약과 보안법’ 제하의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북한이 아무리 1인지배 국가이지만 김 위원장이 ‘공감’했다고 해서 노동당 규약이 당장 바뀌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보안법 개폐문제를 북한의 노동당 규약개정과 연계시켰다.이와 관련,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정상회담 이후 보안법 개폐에 대한 반대논리가 궁색해지자 ‘노동당 규약 개정 선약’을 통해 보안법 개폐 저지를 위한 명분쌓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했다.‘주적 논쟁’ 역시 이미 90년대중반에 한번 제기됐던 것임에도 ‘안보’를 이유로 논의 자체를 가로막고 나섰다.조선일보는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일관된 ‘반통일’적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편 ‘북측의 노동당 규약 개정 약속’사실을 첫 보도해 청와대의 출입금지 조치를 당한 중앙일보는 “국민의 ‘알권리’와 6·15선언에 대한 국민적합의 뒷받침을 위한 보도였다”고 연일 주장했다. 청와대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약속’을 비보도를 전제로 언론사 사장들에게 설명했으나 중앙일보에 기사가 실리자,‘비보도 약속’을 어긴 것으로 간주해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그러나 박인규 경향신문 매거진X부장은 26일자 칼럼에서 “두 지도자간의 잠정적 합의를 섣불리 공개함으로써 분단 55년만에 어렵사리 이룩한 남북간의 신뢰를 깰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셈”이라며 중앙일보의 처사를비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 문제 논의

    ‘6·15 남북공동선언’의 첫 후속조치인 이산가족 교환방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이 27일 북한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호텔에서시작됐다. 박기륜(朴基崙) 남측 수석대표와 최승철 북측 단장(수석대표) 등 양측 대표단은 회담후 “회담에서 공동선언의 이행방식에 관한 견해차이가 있었다”고밝혔다.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를 어떤 순서로 이행할지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 남측은 방문단이남과 북의 고향을 방문해 상봉을 진행시키자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또 판문점에 이산가족 면회소를 설치,상봉을 정례화할 것도 제의했다.모든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과 서신교환도 조속한 시일내에 실시할 것도 함께 제의했다. 반면 북측은 ‘8·15 친척방문단’은 금강산지역에서 상봉할 것과 비전향장기수의 송환 문제도 이번 방문단 협의와 함께 진행시켜야 할 것임을 강조한것으로 알려졌다. 2차 회담은 28일 하루를 쉰 뒤 29일에 같은 장소에서 속개하기로 했다. 북측 최 단장은 회담에앞서 “6·15선언에 포함된 이산가족 방문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 등을 잘 타결해야 한다”고 언급,이산가족 교환방문뿐 아니라 비전향장기수 문제에도 합의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한편 남측 공동취재단에 포함돼 현대 금강호편으로 27일 오전 북한 장전항에 도착한 조선일보 김인구(43)기자가 북한 당국의 입북 거부로 하선하지 못하고 정박한 배 안에 계속 체류하고 있다. 북측은 26일부터 ‘조선일보가 평소 북측에 비우호적인 논조를 보여왔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취재단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우리 정부에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리측은 조선일보 기자가 아니라 공동취재단의 자격으로 방북한 만큼 김 기자의 입북 허용을 북측에 계속 촉구하고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김상연 기자
  • [김삼웅칼럼] 언론의 알권리와 역사의식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몇차례 절망적인 ‘고비’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일이 남한의 언론보도였다고 한다. 지구상의 유일한 ‘냉전의 섬’인 한반도가 화해와 협력시대로 탈바꿈하려는 남북정상회담의 걸림돌이 남한의 군대나 경찰, 정보기관이나 법제가 아니라 동족간의 화해와통일을 선도해야 하는 언론때문이었다는 것에 한없는 비애와 자괴감을 갖는다. 그런데도 정상회담은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역사적 만남을 통해 5개항의 합의를 도출하여 국민 90%이상이 지지하는 큰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일부 언론의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 언제 다시 악재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북한의 남한언론관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언론의 기능과 인식에 너무 큰 차이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도로 결코 일부 언론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다시 비틀어지거나 해빙무드가 결빙되어서는안된다는 대명제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우리의 민족적 대사에는 반드시 훼방꾼들이 준동했다. 예컨대 기미년3·1항쟁때 이완용 무리는 수차례에 걸쳐 이른바 ‘경고문’을 발표했다. 온 민족이 생명을 내걸고 나선 항쟁을 가리켜 “지각없는 동배(童輩)가 망동하고 다음에는 각 지방인이 문풍역동(聞風亦動)하여 끝이 없다. 일인은 강경책을 쓰게되니, 되지도 않을 독립은 고사하고 동도의 사상을면하기 위하여 진정할 것을 경고한다”고 시위민중을 협박했다. 친일파들에의한 이런 류의 협박이 연일 신문지면을 도배질했다. 망국10년만에 궐기한 3·1항쟁은 외세에 좌초되었지만 분단 55년만에 온겨레가 힘을 모아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키고 화해협력으로 가는 통일운동은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러한 민족적 대사에 훼방을 놓거나 딴죽을 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유취만년(遺臭萬年)의 ‘반통일’로 기록돼 마땅하다. 통일국가 언론(인)의 ‘국익과 알권리 대립’따위는 어느 측면 행복한 갈등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단국가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화해협력과 통일에 저해되는 기사(논평)는 가급적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권리와 역사의식의 갈등이 따른다. 언론인으로서의 고뇌와 내부의 압력도 물리치기 쉽지않을 것이다. 최근 ‘김정일신드롬’이 확산되는 데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않다. 그동안 김정일위원장의 ‘허상’만 보도하다가 ‘실체’가 드러나면서나타난 현상아닌가. 그러나 올 6월12일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주적의 괴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6·15선언 이후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대화협력,평화공존 그리고 통일과정에 함께 가야할 동반자요 반쪽 동포를 대표하는 ‘정상’이기 때문이다. 분단시대 서독언론인들은 동독에 파견되어 무엇보다 ‘동족의식’의 대전제에서 언론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중국과 대만의 어선이 공해나 영해상에서 충돌하게 되면 중국언론은 가급적 수습이 된 이후에 이를 보도한다고 한다. 국민간의 적대감정을 줄이려는 배려인 것이다. 언론의 ‘알권리’는 소중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 언론(인)이 ‘알권리’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의문이다. 군부독재의 헌정파괴나 양민학살에 대해 ‘알권리’의 책임을 다했는가. 사주들의 비행이나 언론내부의 비리를 ‘알권리’차원에서 제대로 알렸는가. 정작 알리고 밝혀야 할 때는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반쪽 동포와 화해협력의 과제는 시시콜콜 파헤치고 어깃장을 놓는 것이 과연 바른 언론(인)의 자세일까. 사자 소리에 벌벌 떨다가 사자시체에는 가장 먼저 덤비는 하이에나가 초원의 청소부 역할에는 충실할지 몰라도 대접받는 짐승축에 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건 관료들의 행태가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관리들은 취득한 국가정보를 지키는 것이 본분이고 언론은이를 알리는 것이 책임이다. 문제는 이 대칭점의 어디쯤에서 접점을 찾느냐이다. 분단국가 언론(인)의고뇌이고 갈등이다. ‘6·15남북선언’이후 한때 대세에 편승하던 수구언론이 다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골수에 젖은 냉전의식의 발로이거나 DJ가 잘하는 꼴은 못보겠다는 ‘놀부 심보’다. 냉전의식이 변해야 하고 놀부심보를 버려야 한다. 그런 연후에 ‘알권리’를 내세우면 설득력을 갖게된다. 통일시대 언론(인)의 역사의식이 아쉽다. 김삼웅 주필.
  • [문화예술 분단장벽 허무나](5.끝)결산대담

    한국전쟁은 우리 문화예술계에 깊은 파장과 상흔을 남겼다.그 한국전쟁이 50주년 되는 해, 6·15선언으로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최민 영상원장과 인하대 국문과 최원식 교수의 대담을 통해남북분단문화의 극복방안 등을 들어본다. ■최원식교수 6·15선언은 오랜만에 우리 정치가 국민을 기쁘게 해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홍콩과 마카오의 중국 반환이 20세기를 마감하는 빅쇼였다면,한국의 통일과정은 21세기를 여는 대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통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독일식 흡수통일이나 베트남식 무력통일만이 통일이 아닙니다.‘극적인 통일’관에서 벗어나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최민원장 동감입니다.어떤 과정을 통한 어떤 통일이냐가 중요해요.원상복구 차원의 통일은 이제 맞지 않습니다.새로운 통일개념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최교수 먼저 문화예술이 민족의 분단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나아가 분단극복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있습니다.올해는 더욱이 한국전쟁 50돌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최원장 미술의 경우 80년대에 특히 이념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왔지만 장르적 특성상 그림으로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입니다.한국영화 ‘간첩 리철진’은 북의 간첩도 인간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합니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의 내적인 금기가 많이 깨졌습니다. ■최교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서문을 보면 “이 작품이 나올 수 있게해준 어린 공화국에 감사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4·19직후인 당시로선 굉장히 전향적인 발언인 셈이죠. ■최교수 예술활동을 제재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통일을 주제로 뭔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요즘 통일글짓기가 유행이나 6·25가 돌아오면 으레 해오던 반공웅변대회나 글짓기대회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제재론적인 입장에서 통일예술만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예술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예술에는 자기검열이 필요합니다. ■최원장 늘 ‘반쪽의 시선’밖에 가지지 못했다는 게 문제입니다.한 쪽을봉쇄하니까 역지사지가 안되죠.지난 50년동안 남한사회는 정치적·문화적 고도와도 같았습니다.독일은 브란트총리 시절부터 동서독이 왕래하며 대화를시작해 지방과 지방끼리는 거의 하나가 될 정도로 섞였습니다. ■최교수 일찍이 지방자치를 했던 독일의 교류수준은 무척 깊었으나 막상 통일이 되려하자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통일을 반대했습니다.통일에 관한 모든논의들이 휴지조각이 됐다는 게 그들의 일성이었죠.결국 현실이 이념을 뒤집은 셈입니다.우리의 경우 한번 물꼬가 터지면 엄청난 가속도가 붙을 것이 예상되는 만큼 역기능이 우려됩니다. ■최원장 속도조절이 필요합니다.언론 보도에서도 나타났듯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시각이 급전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준비가 없었는가를반증하는 것입니다. ■최교수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그 차이가 쌓였을 때 더 큰 풍요를 낳을 수 있어요.에커먼의‘괴테와의 대화’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대목이 생각납니다.“나는 독일이 통일이 되면 좋지만 지방의 발달한 분권적인 문화가 다 없어지고 베를린 문화 일색으로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최원장 민예총이 주최한 6월 인천 황해예술제에서 ‘불가사리’등 북한영화 5편이 상영됐습니다.이미 낮은 단계의 남북영화교류가 시작된 셈이죠.통일논의가 허공에 뜨지 않기위해서는 서로를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최교수 통일의 힘은 근본적으로 남한에 있다고 봅니다.특히 문화교류의 경우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야 합니다.상호주의를 꼭 1대1의 계량적인 개념으로 봐서는 곤란해요.문화적 햇볕정책이 필요합니다.한일대중문화교류의 경우를 보면 일본이 먼저 한국가수들을 초청해 개방의 단초를 열었고 결국 한국도 빗장을 풀었습니다.남북문화교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큰 틀에서보면 상호주의로 귀결되는 것이죠. ■최원장 남북교류와 함께 중국과의 문화교류도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봅니다.지난달 북경전영학원에서 학술제 형식의 한국영화제가 열렸는데‘아름다운 시절’등 12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돼 호평을 받았습니다.한해 고작 20편의 외국영화를 수입하는 현실에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지요.보다 다각적인 문화개방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교수 문화예술가의 덕목중 으뜸은 역지사지 능력입니다.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자기안의 타자속으로 침투해가는능력이 예술인에게는 있어요.“문학을 하면 여러 삶을 산다”는 말도 있지않습니까.타자에 대한 공감이야말로 문화적 감성의 핵심입니다. ■최원장 현단계에서 남북의 통일문화를 위한 구체적인 처방전을 기대하기는어렵습니다.그때 그때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최교수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국민 각자가 깨어있어야 합니다.이른바신자유주의의 환상속에서 IMF체제를 맞아 나름대로 절실한 경험을 했지만 요즘 다시 도덕적 해이의 조짐이 보입니다.어느 원로시인은 금강산 관광길에버스속에서 춤추고 노는 것을 한탄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일정한 희생을 치르지 않고 통일국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문화적인 저열성을 드러내지 말고 진정한 겸손을 배울 때입니다. ■최교수 90년대 들어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온갖 포스트주의가 창궐했습니다.경배대상이던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해체적 사고가 득세했어요. 신자유주의의 분위기를 거부할 순 없지만 민족주의는 낡은 것이라고 폐기해서는 안되죠.민족주의를 갈무리하면서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지금은 민족예술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실험기입니다. ■최원장 민족주의냐 탈민족주의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민족적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민족이란 게 언젠가는 의미없는 시점이올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봐요. ■최교수 그렇습니다.좋은 세상이란 민족주의가 필요없는 세상입니다. 정리 김종면 황수정기자 jmkim@
  • [문화예술 분단장벽 허무나](4)미술

    지금 우리 사회의 1차적인 관심사는 분단의 극복이다.미술활동 또한 이 명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미술은 과연 분단현실나아가 통일의 문제를 제대로 반영해왔으며 또 반영하고 있는가. 많은 이들은 우리에게 전쟁은 있었지만 전쟁미술은 없다고 말한다.이것은 우리 미술이그만큼 역사의식이 결여돼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미술은 50년대를 제외하곤 거의 전쟁을 다루지 않았다.60∼70년대 ‘민족기록화’의 하나로 간혹 다뤘지만 관변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한국미술이 민족분단의 아픔과 모순을 인식하고 이를 본격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에 들어서다.분단극복 혹은 통일을 지향하는 그림들이 ‘6·25’‘분단전’‘통일전’등 주제전의 형식을 통해 선보였다. 6·25를 다룬 미술작품은 현재 별로 남아 있지 않다.전쟁체험을 형상화하는데 비교적 성공한 작가로는 박고석,이수억,이철이,양달석 등이 꼽힌다. 특히박고석의 ‘범일동 풍경’(1952)은 6·25 당시 피난민 거주지였던 부산 범일동 풍경을표현주의 기법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그러나 50년대 전쟁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한 작가들은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전쟁화가’로서의 집단적 조형이념을 보여주지도,양식적 영역을 확보하지도 못했다.그들의 그림의 모티브는 한정됐다.전쟁으로 인한 비극상을 단순 소박하게 재현했을 뿐, 그 역사성을 깊이 있게 살핀 작품은 드물다.한국전쟁 조형물로 또 다른 관심을 끌 만한 것이 미국 수도 워싱턴 국민광장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기념동상이다.19명 군인들의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표정을 담은 이 상징물은 국내 작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잊혀질 수 없는 전쟁’으로서의 6·25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 준다. 우리 미술은 문학 등 다른 장르에 비해 분단상황에 뒤늦게 주목했다. 문학분야에서는 4·19이후 분단모순과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제기됐고 이어 참여문학이 등장했다.참여문학은 70년대 들어 민족문학으로 발전해갔다.모더니즘을극복하고 민족문학 혹은 민중문학이란 이름 아래 통일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반면 미술 쪽에서는 모더니즘이 제도권에 진입,주류를 이루며 20년 가까이 화단을 지배했다.이는 미술의 장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단상황에 대한 미술가들의 깊은 성찰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우리 미술이분단상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데는 70년대 이후 문학 등 인접예술분야와 사회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80년대 들어 분단극복과 통일 염원을 담은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오윤 ‘통일대원도’,손장섭 ‘역사의 창-통일염원’,최병수 ‘분단인’,김봉준 ‘온 겨레도’ 등이 그것이다.그러나 그 내용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상징적인 것이어서 구체적인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미술에서 분단모순이나 통일문제는 이제 더이상 민족·민중미술 작가들만의 몫이 아니다.보다 많은 미술가들 사이에 통일지향적인 미술이념이 확산될 때 한층 심화된 그림이 나올 수 있다. 한편 6·15선언 이후 분단극복을 위한 남북 미술교류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어 주목된다.한국미술협회는 광복절 ‘33인 판문점 합동전’을 추진하고 있으며,한국고미술협회는 10월중도자기 등 고미술품을 중심으로 한‘남북교류민족전’을 연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또 월북화가 이쾌대의작품전이 최근 그의 고향인 경북 칠곡에서 열렸으며,지난 5월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천재화가 오은별의 개인전이 서울에서 열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진정한 의미의 남북 미술교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제도미술’의 틀에갇혀 있는 북한미술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김종면기자 jm
  • 남북 화해시대/ 對北정책 조정회의 뭘 논의할까

    이달 말 열리는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그룹(TCOG) 회의 주제는 단연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다. 3국은 ‘6·15공동선언’이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에 던진 ‘충격파’를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향후 변함없는 3국 공조체제를 재천명할 것이란 관측이유력하다.대북관계 진전 속도를 맞추는 ‘호흡 조절’과 함께 한반도에서의영향 확대를 모색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간접 메시지’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6·15선언에 대한 배경 설명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칫 오해소지가 있는 ‘민족자주의 원칙’이나 남북 통일방안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미·일 양국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민족자주의 원칙은 외세 배격이 아닌 한반도 4강이 지지하는 한반도 당사자 해결원칙”이라며 “이번 회담에서 남북 지도자들의 대화를 가감 없이 전하고 향후 대북 회담에 있어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 이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주한미군 문제도 어떤 형태로든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민족 자주원칙’을 앞세운 북한의 공세에 대비하고 주한미군 문제가 6·15선언 및 향후 이행 과정에서 조화롭게수렴되는 방안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8일 뉴욕 북·미 미사일협상과 조만간 재개될 북·일 수교 10차 본회담도 논의된다. 한국측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관계개선의지를 전달하는 전령사 역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북·미 양국이 미사일발사 유예 재확인과 경제제재 완화 발효를 선언한 만큼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회담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판단이다. 북한의 미사일 수출 금지에 대한 보상문제 등 현안 등과 향후 대북 경제지원 방안 등을 놓고 진지한 협의도 예상된다.북한과의 교섭을 총괄하고 있는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 담당 특사가 미국 대표단에 포함된 것은 바로이런 이유에서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6·15선언과 金대통령 통일론/(하)청사진과 미래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최근 대한매일이 주최한 국군 모범용사 부부 청와대 초청 다과회에서 “남북문제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거듭 다짐했다.특히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고 쉬운 것부터 벽돌을 쌓듯 하나 하나 추진해 나가면서 다음 대통령이 이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부터/ 김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남은 2년반 동안의 임기중 남북관계 구상을 함축하고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총체적인 바탕은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임을 알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여러차례 “통일은 20∼30년 뒤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남북통일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바랄 뿐,달성까지는 ‘욕심’을 내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다.또 통일은 의도하거나 기획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다 보면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김 대통령의 관측도 이를뒷받침해 주는 언급이다. 김 대통령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남북공동선언 2항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의외의 성과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연합 뿌리내리기/ 그렇다면 김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구체적인 청사진은 무엇일까.가능한 쉬운 것부터 해결하려는 자세여서 종합적인 청사진을 조망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단독회담에서의 논의내용을 감안할 때,그의 ‘3단계 통일론’중 1단계인 남북연합단계의 안정적 운용과 정착화로 볼수 있다.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와 각료회의,국회회담 등을 통해 남북연합단계를 착근(着根)시키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귀국보고에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밝힌 대목은 그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가 평화공존에 대한 남북간 합의에 있음을 천명한 것으로,‘3단계 통일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김 대통령은 남북연합단계의 첫 단추를 ‘평화공존 속의 평화교류’로 보고 있다. ●다양하고 착실한교류/ 앞으로 발빠르게 진행될 남북 경협과 이산가족 상봉 및 재결합,비전향장기수와 납북인사 송환협의,체육·문화·예술분야의 교류 등도 남북연합단계라는 큰 틀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김 대통령은 '남북 평화공존이 합의된 뒤부터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교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그래야만 힘의 논리에 의해 한 체제가다른 체제로 급속히 흡수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평화통일’을 지향할 수있다는 논리에서다. 어쨌든 이런 교류협력 작汰? 정상궤도에 진입하면 김 대통령은 남북연합을위한 구체적인 제도 마련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투자보장 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청산결제 방안 등이 그것이다.또 평화공존을 담보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 및 군비통제,평화체제 유지 공동감시단 가동 등의 수순을 밟게될 것이다.나아가 북한이 미·일과의 수교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국제사회로부터 보장받고 남북이 공동 파트너로 확실히 자리잡는 일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승현기자 yangbak@. *3단계통일론 정착 '이제 첫걸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남북연합-남북연방-완전통일)은 이제 겨우 1단계의 초입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가녀린 싹을 막 틔운 셈이다. 따라서 조심스럽고 지속적인 ‘양육(養育)’이 중요하다. 양육에 필수적인 ‘물’과 ‘양분’은 역시 남북 상호간 교류지속이다.그중에서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산가족 상봉의 연속성,경제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이 기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 국방위원장 답방/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보더라도 정상간의만남은 그 어떤 대화방식보다 효과가 크다.이 때문에 김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70대 노인이 평양에 왔는데 예의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이 서울에 안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까지 해가며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온 힘을쏟았다. 앞으로 1단계(남북연합) 정착에 필수적인 남북연합 정상회의,남북연합 각료회의,남북연합 회의(의회) 등을 구성하려면 정상간 대화는 무엇보다 필수적이다.특히 북한은 우리보다 체제가 일사불란하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태도와 의지 하나하나가 통일 논의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 ●이산가족 교류 정례화/ 정부당국의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가 여론이다. 고위층끼리 아무리 합의를 도출해도 민심이 따라오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될 우려가 있다.따라서 남북 이산가족들이 계속 만나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통일에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이 2차,3차로 계속 이어지면서 통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김 대통령이 그리는 남북연합 단계도 가능한 것이다.따라서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의 지속적인 교환방문은 물론,판문점 등에 면회소와서신교환소를 설치하는 등 이산가족의 교류를 상시화하는 게 중요하다. ●경협의 제도적 장치/ 민간차원이든 정부차원이든 남북간 경제협력을 병행해야 통일 논의가 견고함과 지속성을 띨 수 있다.경협이 깊숙이 진행될수록 뜻밖의 돌발적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거나 통일 논의 자체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적어진다. 남북 양측이 벌여 놓은 장·단기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어느한쪽이 일방적으로 대화를 무효화시키기 어렵게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남북 당국은 경협을 그때 그때 단발성으로 진행시킬 게 아니라,장기플랜을 토대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전문가 제언.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차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지난 91년 김일성(金日成) 주석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천명한 바 있다.소련제국과 동구권이 몰락하고 동서독이 통일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고려연방제라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계속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교와국방을 서로 나눠 갖자고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같은해 7월 북한의 한시해(韓時海) 주 유엔 대표는 ‘미국의 초기 연방제’를 거론했다.미국의 초기 연방제는 바로 대륙회의 즉,국가연합을 말하는 것이다.김 위원장의 연방제는 그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며 우리의 남북연합과 내용상 같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집권후 특별히 새로운 통일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정책은 88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때 만들어진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방안에는 이미 야당 시절부터 김 대통령이 제기해 온 3단계 통일방안이대부분 반영돼 있다.김 대통령은 집권이후 최근까지 경제난 등으로 통일방안을 논의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통일정책을 밝히지 않았다고본다. 남북한의 통일논의가 시작된 시점에서 정부는 민간 전문가 등과의 지속적인토론을 통해 국론을 결집해야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뒤 남북한이 각료회의와 의회 협의회 등을 구축하고 정상회의를 수시로 열 수 있다면 국가연합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이행이 되지는 않았지만,91년 말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됐던 공동위원회가 국가연합의 실행기구 성격이었다. ●정용석(鄭鎔碩) 단국대 정치외교학과교수(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남과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 전혀 다른 체제 속에 살아왔다.장기적인 예비기간을 두고 통일의 단계적 준비가 필요하다.연합-연방-통일이 3단계 통일론의 기본 골간이다.1민족·2국가·2체제·2독립정부 형태인 연합 단계에서는 제반 분야의 교류 협력을 기본으로 삼아야한다.남북 정부의 정상회의,국회 공동회의도 제도화하는 등 민족적 공통점을찾아내야 한다. 특히 북측의 공산주의와 남측의 시장경제 사이의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 가운데 1단계인 공화국 연합제에서도 남측 입장인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북한과의 상이한 체제·이념·제도를 융합할 수 있는 기본틀이 최우선 과제다. 2단계인 연방단계에서는 1민족·1국가·1체제·2자치정부로서 하나의 국호와 외교·국방권을 갖는다.이 단계에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공존하는 ‘제3의 체제’로 발전돼야 한다. 대외통상관계에 있어서도 남측의 개방경제를 택해야 하는지 북측의 유치산업구조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을 관철할 것인지 등의 협의를 이뤄내야 한다. 통일단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서 주장하는 복수정당제·자유선거제·시장경제 등을 북한이 수용할지의 여부가 관건이 된다.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한 그릇에 담을 때 어느쪽으로든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일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 6·15선언과 金대통령 통일론/(상)현주소와 성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은 ‘30년의 뿌리’를 갖고 있다.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도 김 대통령이 오랜 준비 끝에 도출해 낸 ‘인고의승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6·15선언과 김대통령의 통일론을 두차례에 걸쳐심층 조명한다. ◆ 3단계 통일론의 전개. 3단계 통일론은 시대별로 발전해 왔다.‘통일론 구상기’인 70년대에 씨를뿌리고 싹을 틔워 갔고 80년대 ‘통일론 발전기’에서 통일의 현실성을 높이며 제도적 접근을 모색했다.이후 90년대부터 ‘통일론 완성기’로 가장 평화적이고 안전한 통일의 길을 찾으며 6·15 선언에서 열매를 맺은 셈이다. 김대통령의 지난 30년은 냉전 수구세력으로부터의 온갖 박해 속에서 자신의통일론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면서 구체적 실천방안을 찾았던 인내의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험난한 여정을 걸어오면서도 스스로 점진적 평화통일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결실인 것이다. 3단계 통일론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71년 대통령 선거였다.당시 김대통령은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이라는 3단계 통일방안을 ‘4대국평화보장론’과 함께 제시했다. 냉전적 반공논리가 지배하는 냉전의 최전선에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남북대화를 역설한 것”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그후 김대통령에 대한 용공음해 공작과 덧칠된 ‘색깔론’으로 이용되는 등 정치적 수난의 주요 원인이 됐다. ◆ 3비론(非論)과 통일론. 김대통령은 3단계 통일론 가운데 1단계인 ‘남북연합단계’를 가장 중시했다.평화공존에 이어 남북교류가 이뤄지고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게 될 경우 ‘사실상의 통일’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김대통령의 또다른 통일인식의 주요한 기반은 ‘선(先) 민주화,후(後) 통일론’의 개념이다. 이는 그의 3단계 통일론의 주요 철학인 ‘3비론’(三非論) 즉 비폭력(非暴力)·비용공(非容共)·비반미(非反美)와 맞물려 3단계 통일론의 주요 배경이됐다. 그는 역대 독재정권과의 끈질긴 투쟁 속에서 “민주주의만이 공산세력의 침투를 막는 방패”라고 역설,남한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지난 대선에서 50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통일 대통령’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 햇볕정책과 통일론 연결. 3비론은 민주화 과정에서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공산주의 적화통일의 절대 반대, 자주적 민족통일과 주변국들의 협조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이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 북한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북측에 충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3단계 통일론은 햇볕정책 즉 포용정책 없이는 실현될 수 없었다는지적이 많다.포용정책은 30년간 일궈 온 자신의 3단계 통일론과 6·15 선언의 ‘연결 고리’로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남북정상회담장으로이끌어 낸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남북연합·낮은 단계 연방제 비교. 남북한이 통일방안에 합의하기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처음이다.남측의 ‘남북 연합’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유사점을 인정하고 통일에 대한 공동 모색을선언한 것이다.남북 양측이 통일 논의의 접점과 논의의장(場)을 마련했음을 뜻한다. [유사점] ‘남북 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과 북이 별도의 국방·외교권을 보유하며 대등하고 독립된 실체로서 행동한다는 점에서 같다.당장 통일하자는 자세가 아닌 점진적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데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징] 민족이란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두 국가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가정아래 교류를 추진·심화시켜 나가자는 것이 특징.대외적으론 독립된 실체이자 별개의 국가이지만 내부적으로 보통의 외국관계와 다른 ‘민족내부’란특수관계를 갖는다. 경제·사회·문화의 교류활성화로 사실상 통일 단계인 ‘공동체 형성’을목표로 한다.외국과의 무역관계에선 관세를 물지만 남북끼리는 한 국가안의교역으로 취급한다.남북간에는 수출·수입이란 표현 대신 반출·반입이란 말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연합과 연방] 일반적인 연방제는 중앙과 지방정부간의 주종·상하 관계를 뜻한다.남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연합은 국제법상의 연합국가(Confederation),낮은 단계의 연방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Loose form of federation)으로 정리했다.남북연합은 민족이란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두 실체의 대등한 관계를 강조했다는 점이 일반적인 연방제나 국가연합과는 다르다. [차이점과 전망] 남측이 상정하는 국가연합은 교류를 통한 점진적인 기능 통합을 염두에 둔다.평화공존의 전제 아래 교류를 심화시켜 사실상의 통일 단계를 거쳐 제도적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남북연합이란 틀 아래서 정상회의·국회·각료회의 등을 통해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북측의 연방제는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국가통합이 언제든 가능하다. 통일국가 전단계로 남측은 2개 주권의 국가연합 단계를,북측은 단일 주권의연방국가를 거쳐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한민족공동체 통일안과 '대동소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은 역대 정부가 다듬어온 공식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과 명칭이다르다. 그러나 명칭만 다를 뿐 내용상의 함의는 큰 차이가 없다.남북이 신뢰·협력의 폭을 넓히면서 단계적으로 완전통일을 지향한다는 기본 개념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기 때문. 민족공동체 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등 3단계로 통일을 추진하는 시나리오다.이에 비해 3단계 통일론은 국가연합-연방-통일국가 등의 단계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공동체 방안의 남북연합과 3단계 통일론의 국가연합은 사실상 같은개념.공히 정상회담·각료회의·연합의회 등을 두고 있기 때문. 처음엔 양자간 간극이 있었다.하지만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시절 국회 상임위에서 이론적 접목이 이뤄졌다.이홍구(李洪九) 당시 통일부장관이 김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의 원류인 공화국연방제가 정부안과 취지가 별반 다르지않다고 언급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 인사들도 3단계 통일론의 연방제는 북한의 고려연방제와는전혀 다른 통일국가의 초기단계라고 설명,혼선을 정리한 적이 있다. 물론 통일방안은 통일이라는 큰 목표로 가는 가공의 설계도일 따름이다.김대통령이 집권 후 통일방안을 구체적으로 강조한 적은 별로 없다.제도적 통일은 훗날의 일이고 당장엔 화해협력 기조 정착이 급선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구본영기자 kby7@. *金대통령 평양회담 소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햇볕정책을 추진할 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으로 확신했다”고 털어놨다.역사적인 남북 두 정상간 만남을 햇볕정책의 산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 추진과정과 정상회담 협상에 이르는 길에는 숱한 고비와위기가 있었다.지난 98년 6월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과 99년 6월 서해 연평해전은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을 좌초위기로까지 몰고갔다.당시 김대통령은“북한의 태도에 따라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며 홀로 ‘역풍’(逆風)을 막았다. 김대통령은 이번 단독정상회담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두 사건을거론하며 섭섭함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또 “회담도중 여러차례 절망을 느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위원장과의회담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독특한 협상 스타일에 따른 현장 대처가 난제였던 것 같다.김대통령에게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옳다’고 판단되면 즉각 수용하는 합리적인 성품을드러냈으나 그는 거칠 것 없는 북한의 최고지도자였다.김대통령이 얘기하는중간에 가로막고 자기 말만 하는 ‘독선적인 모습’도 간혹 내보여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김대통령은 그래도 김위원장의 말을 묵묵히 듣곤 했다.우리측에선 상상도할 수 없는 일인데도 별로 싫은 기색없이 다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다.‘대선 4수(修)’라는 정치역정에서도 정평이 나 있듯이 탁월한 끈질김과 기회포착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이는 1,000여쪽에 이르는 북한 자료 숙지등 그의 철저한 준비자세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또 한번도 김위원장의 주장에 ‘노’(NO)라고 하며 의제에서 배제한 적이없었다.한 수행원은 “김위원장의 웅변조 얘기하는 소리가 회담장 밖으로 흘러나왔으나 김대통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며 설득에 주력했음을 시사했다.공동선언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문구와 두 정상의 직접 사인,한밤 서명식 등은 김대통령이 일궈낸 작품들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사설] 미국의 대북경제제재 완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 움직임이 빨라지고있다.미국은 19일 지난 50년동안 계속돼온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완화함으로써 북·미간 교류의 문을 열었다.남북 정상간의 ‘6·15선언’으로 급속히가까워진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환영할 일이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조치로 이제 미국과 북한은 무역과 투자,금융거래 및 상업항공기 취항 등이 가능하게 됐다.이번 경제제재 완화조치가 지난해 9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는 대가로 미국이 약속했던 것으로 이미 예정됐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내부절차를 이유로 미루어오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에 이어 공식 발효시켰다는 점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끌어냄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북한의 핵 및 미사일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과 미국의 일관된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으며,앞으로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대북 관계개선 움직임으로 이어질 것이분명하다.이같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 데는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보여준 변화가 크게 작용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번 완화조치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모두 풀린 것은 아니다.아직도 테러지원국이나 적성국으로서의 규제는 그대로 남아 있어 방산물품이나 군사용으로 전환될 수 있는 첨단기술 등의 교역은 금지된다.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등의 북한에 대한 금융지원도 미국은 의무적으로 반대하도록규정돼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경제교류의 길이 열려 미국이나 제3국 기업들의 북한진출이 기대되며 남북간의 경제협력도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북한의 경제난 해소에 큰 힘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은 오는 28일 미사일회담을 갖기로 예정돼 있고 그 결과에 따라 북·미간의 관계정상화를 마무리지을 고위급회담이 잇따라 열릴 것으로 보인다.남북정상회담의 영향으로 일본과의 수교협상도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우리는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도 하루빨리 이루기를 바란다.그것이 남북관계의 발전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북한을 보는 세계의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북한은 변화된 모습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 [사설] 남북화해시대, 相生정치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17일 청와대 여야영수회담은 남북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야당의 지지와 함께 국내 정치에서도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김대통령은 ‘6·15선언’과 관련,야당이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부분에관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나눈 대화내용을 이총재에게 소상히 설명했다.통일방안으로 거론된 남쪽의 ‘연합제’는 노태우(盧泰愚)정권때 남쪽이 주장했던 ‘남북연합’과 같은 것이며,북쪽의 ‘낮은 수준의 연방제’는현체제의 유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주한 미군도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설득했고,충분한 토의가 있었다는 것이다.핵 문제는 제네바협약에 의해 잘 지켜지고 있으며,미사일 문제는 북·미간 협상을 잘 해결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또한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대해서도 북한 노동당의 규약과 형법조항의 폐지와 연계돼 있음을 명확히했다는 것이다.김대통령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나 안보에 대한 의식에 있어서는 여야간에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안들까지 포함해서 김대통령의 소상한 설명을 경청하고 난 이총재는 “야당도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의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야당으로서 미비한 부분을 짚어나가겠다”고 했다.김대통령도 야당이 남북문제에 높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6·15선언’의 후속조치도 야당과 긴밀히 의논해서 추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김대통령과이총재는 또한 ‘8·15 이산가족 상봉’이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김대통령이 시일을 끌지 않고 이총재와 만난 것은 의미심장하다.정상회담후속조치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구하기 위한 측면도 물론 있겠지만 야당에대한 화해의 뜻을 국민 앞에 밝히려는 의도도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대통령은 이총재가 선거법 위반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에서 ‘편파성 의혹’을 제기하자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 ‘공정수사’를재확인했다.앞으로 국내정치 전개에 대해 국민들의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민족문제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당리당략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16대 국회에는 자민련의 교섭단체 문제와 이한동(李漢東)총리서리 인사청문회 등 쟁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럼에도 여야는 4·24 여야 총재회담 이후서로간의 신뢰를 어느정도 쌓아온 것도 사실이다.이제 남북 화해의 시대가열리고 있다.여야는 남북 사이에 이뤄낸 화해를 ‘상생(相生)의 정치’로 발전시켜나가기 바란다.
  • 남북 화해시대/ ‘6·15선언’ 후속회담 새달초 열듯

    남북한은 다음달 초 경협과 통일방법 논의 등 남북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한후속회담을 판문점에서 열 전망이다. 다음달 초 회담은 향후 분야별 회담일정의 윤곽을 전반적으로 정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경제협력,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회담 의제의 폭이 광범위한 만큼 우선 분야별 회담일정과 의제를 미리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국자회담 대표=정상간 합의사항을 실천할 회담인 만큼 양측 대표단은 장관급으로 구성되는 게 격에 맞는다는 지적이다.우리측의 경우 통일 재경 문화 체육 등 각부처 장관이 대표단으로 참여하고,수석대표는 대북 문제 주무장관인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이 맡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다음달초의 총괄 회담은 장관급,이후의 세부적 분야별 회담은 차관급을 단장으로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그러나 총괄적 성격의 장관급회담을 먼저 개최한 다음에 경제 등 분야별 장관급 또는 차관급 회담을 열지,아니면 동시에 진행할지 등의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협의의효율성이나 모양새로는 총괄 장관급 회담 이후에부문별 회담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정부는 선(先)총괄회담을 굳이 고집하지 않고 북측과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문별 회담 준비=일단 정부는 당국간 회담까지는 시간이 있는 만큼 북측과 물밑 협의와 접촉을 거쳐 남북간 협력을 통해 성과를 극대화하고 남북 양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을 모아나갈 방침이다. 이 경우 남북간 협력의 인프라에 해당하는 이중과세방지협정,투자보장협정,청산결제 등 경제부문이 중요하게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부문별 회담이 시작될 경우 경제회담이 우선 개최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실제 이헌재(李憲宰) 재경부장관은 지난 16일 임시국무회의에서 “7월중에 남북 당국자 회의가 열려 경제협력 등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실천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경협 등 경제분야는 사안이 시급하고 분야가 광범위한 점을 들어 다른 분야의 회담과는 완전히 별도로 시작되고 운영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회담이 본격화될 경우 각 부처의 유기적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경제,사회,문화,체육 등 각 관련 부처를 아우르는 협의체 성격의 회담 지원 태스크 포스(TF)를 구성,운영키로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남북 화해시대/ 野 6·15선언 입장정리 싸고 혼선

    한나라당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 총재간 영수회담이 끝난 18일까지도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선을 빚고 있다. 당내에 양극현상이 빚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김 대통령이 북한의 페이스에 말렸다”면서 “이제 남한에는 간첩도 없고 있어도 잡지도 못한다”는강경론자가 대부분이다.그러나 ‘386’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이 총재가과연 통일문제에 대해 김 대통령 정도의 식견을 갖고 있는지 걱정”이라고비판했다. 맹형규(孟亨奎) 기획위원장은 “비전향장기수 문제까지 나왔는데 납북어부와 국군포로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공동선언의 허점을 지적했다. 정형근(鄭亨根) 제1정조위원장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명분과 실리를 다 챙겼는데 우리는 무엇을 챙겼는지 따져봐야 한다”면서 “두 정상간에 이면합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가세했다. 한 당직자도 “앞으로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고 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것이공동선언의 요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비판적 지지 입장인 홍사덕(洪思德) 국회부의장은 “남북문제는 여러 고비를 넘겨야 하는 사안으로 일이 되는 쪽으로 몰아줘야 한다”고 협력의사를 밝힌 뒤 “한나라당이 제기한 주한미군 철수문제 등에 대해 정부측은 북측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386의원은 “한나라당이 방북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은 것은 당지도부가남북정상회담을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봤기 때문”이라면서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 총재가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의 입장을 밝히기로 한 것도 무엇보다당내 혼선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최광숙기자 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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