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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살에 7급으로 승진…고졸에 나이 어리다고 차별 없었어요”

    “24살에 7급으로 승진…고졸에 나이 어리다고 차별 없었어요”

    공직사회에 ‘젊은 피’를 채우기 위한 전형이 있다. 바로 ‘지역인재 9급 수습직원 전형’이다. 이 제도는 공직사회에 다양성을 불어넣기 위해 도입됐다. 전국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전문대 인력을 선발한다. 이 전형은 ‘고등학교 졸업자’가 전체 선발 대상의 91.4%를 차지하고, 특히 행정직은 고등학교 졸업자만 뽑아 ‘고등학교 졸업생 전형’으로 불린다. 서울신문은 20일 지역인재 9급 전형에 합격해 인사혁신처에서 일하는 이회림(24·행정 7급)씨,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악원 박수정(19·행정 9급)씨, 고용노동부 서울북부고용센터 한주원(20·행정 9급)씨를 만났다.●기회는 사실상 단 한 번뿐… 내부 경쟁 치열 지역인재 9급 수습직원 전형은 그해 졸업 예정자거나 직전 연도 졸업자가 대상이다. 여러 차례 응시할 수 있는 다른 공무원 전형과 다르다. 박씨는 “제도상으로 두 번의 기회가 있지만 지원 때 학교장 추천이 필요해 사실상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진다고 보면 된다”면서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필사적으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시험 응시자로 선정되려면 치열한 내부 경쟁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학교별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숫자를 제한하고 있어서다. 응시하려면 학교 평균 석차가 상위 30% 안에 들어야 하고 학교장의 추천장도 받아야 한다. 게다가 한 학교에서 지원할 수 있는 학생 수가 최대 7명으로 정해져 있다. 졸업생 몫으로 제공할 추천장이 사실상 없다 보니 재학생 때 시험에 떨어지면 다시 지원하기가 어렵다. 조건이 까다롭다 보니 매년 경쟁률도 6대1 정도를 맴돈다. 공시와 대학 입시를 함께 준비하는 수험생이 많다. ●“1년이란 제한된 시간에 숨 돌릴 틈 없죠” 필기(국어·영어·한국사) 시험과 서류 전형, 면접시험의 세 단계 전형을 거친다. 준비생들은 보통 학교에서 마련해주는 ‘9급 공무원 전형반’에 들어가 시험을 준비한다. 2013년 처음 해당 전형을 시작한 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대부분 특성화고에서 9급 공무원 전형반을 운영한다. 박씨는 “고3 때 5명으로 구성된 공무원 전형반에 들어가 시험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시골에 있는 학교라서 학생 수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공무원 전형반은 있었다고 한다. 다만 한씨는 “도시에선 학교를 마치고 공무원시험 학원에 가는 고등학생도 많다고 들었는데, 나는 근처에 학원이 없어 인터넷 강의에 의존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한 반에서 같이 준비한 다섯 명 중 세 명이 합격했으니 성과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특성화고에 다녀서 공시 준비에 도움이 되는 점도 있다고 소개했다. 고교에서 곧바로 취업을 준비하는 특성화고 성격상 ‘면접 준비 과정’이 잘 마련돼 있어서다. 한씨는 “사실 필기보다 면접이 더 힘들었다”면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모의 면접을 도와줘 나도 모르게 실력이 좋아진 것 같다”고 웃었다. 이어 “준비 당시에 예상 질문으로 학창시절 봉사활동 경험을 말해 보라고 한 것이 있었는데 실제 면접에서도 그 질문이 나와 자신 있게 답했다”고 말했다. ●24살인데 7급…어려서 겪는 고초도 지역인재 9급 수습직원으로 뽑히면 인사혁신처 수습직원으로 등록해 3주간 기본교육을 받고 정부부처에 수습직원으로 배치된다. 이후 6개월간 수습 근무를 거쳐 정식 업무를 시작하는데 이때가 만 20세다. 앞으로 40년간 공직에서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사혁신처에서 일하는 이씨는 2013년 지역인재 9급 국가직 수습직원 전형에 합격해 현재 7급이다. 이씨의 동기들도 함께 7급으로 승진했다. 고졸 출신으로 7급 국가직 전형에 도전하는 이가 많지 않다 보니 ‘최연소’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씨는 “5년 만에 승진을 두 번이나 했다. 나이가 어리다거나 고졸 출신이라고 해서 인사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느낌은 없다”고 강조했다. 입직 뒤 대학 진학 등 학업을 이어 가는 길이 열려 있다는 점도 지역인재 9급 국가직 수습직원 전형의 강점이다. 해당 전형으로 들어온 이들에게 국가가 대학등록금을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이씨는 “현재 업무와 연관성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 학비를 지원해 준다”면서 “대학도 학비 부담 없이 다닐 수 있고 유연 근무를 택해 오후 5시에 퇴근한 뒤 야간대학을 다니면 돼 학업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이 전형을 택한 장점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동생들이 밖에서 친구들에게 ‘우리 누나 이제 25살인데 7급 공무원이다’라고 자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뿌듯해진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어린 나이 때문에 겪는 어려운 점이 없지는 않다고 한다. 바로 악성 민원인에게서 겪는 고초다. 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부서에 배정되면 종종 원치 않는 상황과 마주치는데, 고졸 뒤 입직한 공무원들을 유독 괴롭히는 민원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씨는 “고용부를 찾아오는 분 가운데 좋은 이유로 오는 분들은 거의 없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경영이 어려워져서 오는 분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나이 어린 공무원이 뭘 알겠느냐’고 무시할 때는 서럽다”고 토로했다.●“주변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내 계획대로” 합격자들은 고등학교 3학년 단 한 차례만 볼 수 있는 시험공부이기에 주의할 점이 많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씨는 “혼자 공부를 하다 보면 주변 친구들이 벌써 취업해 일터에 나가는 것이 부러웠다”면서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많은데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자기만의 계획을 세워 묵묵히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생활을 전혀 경험해보지 않고 입직하는 것도 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직하는 분들은 학창시절 아르바이트라도 해보지만 우리는 그런 것도 접해보지 못하고 정부부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서 “일을 하면서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는 점을 느꼈고 우왕좌왕할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고교 시절 방학 등을 활용해 짧은 시간이라도 아르바이트나 인턴 같은 것을 해볼 것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공무원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의식을 뚜렷이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문한다. 한씨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목표의식이 없으면 길고 긴 공직생활을 이어 가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면서 “사업주에게 착취나 갑질을 당하는 분들을 도와드리고 여기서 보람을 찾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문체부에 있다 보니 문화 정책에 관심이 많아졌다”면서 “문화 소외지역 같은 곳에 작은 영화관이나 도서관을 세워 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문화 콘텐츠를 전파하고 싶은 게 소망”이라고 밝혔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11초 만에 20차례 뒤공중돌기 한 5살 소녀 화제 (영상)

    11초 만에 20차례 뒤공중돌기 한 5살 소녀 화제 (영상)

    중국의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가 11초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는 놀라운 뒤공중돌기 솜씨로 인터넷에서 화제를 몰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중국의 한 체조 수업 시간에 선생님 도움을 받아 엄청난 속도로 뒤공중돌기를 하는 다섯 살 여아의 묘기를 공개했다. 공개된 짧은 영상에는 매트 위에 서 있는 자그마한 아이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이는 허리에 빨간 띠를 매고 있었고, 그 옆에 선 선생님은 제자가 안정된 공중돌기를 할 수 있도록 허리띠를 잡아 주었다. 그리고 바닥에 손을 짚은 소녀는 연속해서 뒤로 몸을 젖히며 수차례 공중에 날아올랐다. 힘과 추진력, 굉장한 속도로 매트 끝에서 끝까지 빠르게 이동했고, 뒤공중돌기를 하는 동안 조금도 쉬지 않았다. 아이는 단 11초 만에 총 20번의 뒤공중돌기를 선보였다. 어린 여아의 신상에 대해서 알려진 게 없지만, 지난 17일 인스타그램(Yushan_Airtracks)에 게재된 해당 영상은 3일 만에 8만 6000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아이의 체조 솜씨에 인상을 받은 사람들은 “놀랍다, 재능 있는 아이에게 축복이 있기를…”, “솔직히 사람 맞나요? 인간의 탈을 쓴 거 아닌가요? 라는 반응을 보인 반면 “아이가 유연할지도 모르지만 등에는 좋지 않았을 거 같다”,“현기증 나겠다. 아이 척추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며 안전을 우려하기도 했다. https://www.instagram.com/p/BqQx7wpHLyg/?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 사진=인스타그램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송소희 “학교서 ‘관종’이라 소문..단아 이미지와 달라”

    송소희 “학교서 ‘관종’이라 소문..단아 이미지와 달라”

    국악 신동에서 어엿한 숙녀로 성장해 흐른 세월만큼이나 더욱 짙어진 목소리로 깊은 울림을 전하는 국악인 송소희와 bnt가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비앤티 꼴레지오네(bnt collezione), 한복린, 위드란(WITHLAN), 클라쎄14 등으로 구성된 네 가지 콘셉트로 진행된 이번 화보 촬영에서 그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이미지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송소희는 호피 드레스에 핑크 퍼 코트를 입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가 하면 블랙 미니 드레스에 블랙 베레모를 쓰고 시크한 무드를 보여줬다. 이어 슈트 스타일링으로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보여준 그는 마지막으로 단아한 한복 콘셉트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국악 여신의 면모를 보여줬다. 촬영 후 이어진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전한 그는 “올해 ‘모던민요’ 앨범 발매 후 활동하면서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며 “대학생 신분이라 막 중간고사가 끝나 다음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국악인이자 풋풋한 대학생 송소희의 모습을 보여줬다. 소리는 5살, 민요는 8살에 시작한 송소희. 어린 나이부터 국악을 하며 고된 시간도 많았을 것 같다는 물음에 “현재까지 삶 중에서 굳이 슬럼프를 꼽자면 현재가 가장 큰 굴곡을 맞이하고 있는 구간”이라고 입을 뗀 그는 “음악적으로 큰 변곡점을 맞이하고 싶은 순간”이라며 “이 지점에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도 고민이 많이 되고, 소리라는 분야에 대해 알면 알수록 부족한 게 너무 많이 보이니까 스스로 답답한 마음도 크다. 후회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지금까지 왔던 길에 대한 살짝 회의감도 들고 그래서 고민이 많은 시기라고 생각된다”고 진중한 답변을 전했다. 지금의 송소희라는 인물이 있기까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전한 그는 “예술에 꿈을 가진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그 길로 인도해줬다”며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송소희를 알린 ‘전국노래자랑’ 출연 계기 역시 어머니라고 답한 그는 “‘전국노래자랑’은 현재 모든 음악적 고민의 원천이자 민요를 제대로 시작하게 해준 동력”이라고. 전통에 대해 크게 갈망하고 공부하면서도 한국음악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영역을 벗어나 좀 더 넓은 영역에서 국악을 알리고자 하는 그는 “작년부터 기획한 기진맥진 프로젝트라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통해 국악의 소신은 지키며 새로운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국악이 아닌 다른 장르를 가진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며 음악적 간극으로 인해 어려움도 있었을 터. “서로 음악적인 색을 지키며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조율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국악에 대한 낮은 관심과 외면받는 현실에 국악인으로서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고 전하자 “젊은 국악인들에게 주어진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며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강요하지 않고 열심히 할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보였다. 국악인이면서 22살 풋풋한 대학생인 그에게 대학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경험을 묻자 조별과제라던 그는 “그게 뭐라고 많은 사람들이 골머리를 썩이며 싫어하는지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알겠더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요즘에는 날씨가 추워서 타지 못하지만, 평소 학교 다닐 때 킥보드를 애용한다는 그는 “관종이라고도 하더라”며 “나에 대해 고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는데, 옷도 다양한 스타일로 입고 이어폰 꽂고 노래 들으면서 신나게 킥보드 타고 다니니까 사람들 눈에는 신선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음악을 배우면서 한국의 유교 사상도 자연스럽게 접한 그는 “친구들은 진지충이라고 한다”며 “서로의 고민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친구들은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좋아한다. 괴리감은 있지만 함께하면 늘 즐겁다”고 전했다. 스무 살 때 술이라는 신세계를 접했다며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 그는 “1학년 때 정말 무섭게 술을 마셨다”며 “주량으로 지기 싫어서 정신력으로 버텨가며 마시기도 했다. 이제는 쳐다보기도 싫을 지경”이라고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대중에겐 한복 입은 모습이 익숙하지만, 평소 다양한 사복 스타일을 즐긴다는 그는 “한가지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고 다양하게 입고 싶은 걸 입는 편”이라며 “한복은 250여 벌 정도 소유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걸음걸이 교정을 위해 아이돌 댄스를 배웠다고 전한 그는 “흥미는 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며 “내적으로 이렇게 과격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파워풀하게 췄지만, 안무 선생님은 조금 더 넓게 사용하라고 했다”고 답해 폭소케 했다. 도량이 넓은 사람이 이상형이라던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둥글게 대할 줄 알고 유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좋다”며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 부분인 것 같다”고 성숙한 답변을 내놓기도. 국악 신동에서 국악 소녀, 국악 여신까지 다양한 수식어를 보유하고 있는 그이지만 어떤 수식어보다 누가 봐도 한국음악을 하는 소리꾼, 국악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송소희는 “스스로 당당하게 ‘국악인 송소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싶다고 깊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가온 2019년 목표에 대해 “음악적으로 굵직한 작업을 많이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며 “대학 생활을 마침표를 찍는 해이기 때문에, 그 마침표를 정말 멋있게 찍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를 전한 그는 “음악적으로 큰 변곡점을 맞이하고 이 순간이 내게는 소중하고 크게 와 닿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모든 과정을 믿고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남다른 애정을 표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독립운동 뒷바라지도 독립운동···여성 독립운동 예우받길“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독립운동 뒷바라지도 독립운동···여성 독립운동 예우받길“

    임정 비서장 차이석 부인 홍매영 서훈 신청 8년만에 인정받아 백범 선생 중매로 32살차 차이석과 결혼 독립당 당원으로 광복군 임정 활동·인정 아들 영조씨 “묘소 현충원 이장이 남은 일” “2010년 2월에 어머니(홍매영 여사)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는데 8년이나 기다렸습니다. 그간 정권이 바뀌고 여성 독립운동가도 인정받는 세상이 왔네요. 평생의 큰 소원을 이뤘습니다.” 차이석 선생(임시정부 비서장)과 홍매영 여사의 아들인 차영조(74)씨는 1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남기신 한국독립당(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김구·차이석 선생 등이 창립한 독립운동단체) 당원증으로는 독립유공자 인정이 안 된다고 수차례 들어서 기대도 안 했는데 이번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에 드디어 인정받게 돼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의 명패도 추후 전달할 계획이다. 홍 여사는 1942년 중국 충칭에서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광복군의 생활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한책임한국광복군군관소비합작사 사원으로 재직했고 이곳에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을 지원한 공이 인정됐다. 평안북도 의주에 살던 홍 여사는 남편의 제안으로 임정으로 가기 위해 나무배로 압록강을 건너던 중 남편이 중국 국경인 단둥에서 일본 경찰에게 발각돼 연행됐다. 홍 여사는 첫 중국행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5살·2살인 두 아이를 데리고 중국 시안의 광복군 진지에 도착했다. 차씨는 “어머니는 광복군으로서 훈련을 받았고 1942년 그곳에 들렀던 백범 김구 선생의 중매로 32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도 또 다른 독립운동’이라고 했었다고 어릴 때 어머니께 들었다”고 덧붙였다. 1944년 차씨가 태어났고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광복이 됐지만 차이석 선생은 귀국 준비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 9월 9일에 숨을 거뒀다. 세 아이를 데리고 1946년 귀국한 홍 여사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마련한 숙소(서울 충무로 1가 한미호텔)에서 거주하며 노상에서 불법 담배장사를 했다. 차씨는 “마약 단속하듯 단속반이 발로 차고 지나가기 일쑤였고 중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며 “오히려 취업 때 불이익을 받을까 광복군 경력을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가족은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충남 부여로 피난을 갔다. 차씨는 “형편이 힘드니 형과 누나는 고아원으로 갔고 김구 선생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나를 차(車)씨가 아닌 신(申)씨로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며 “6학년 때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졌고 학교를 관두고 아이스크림 행상이나 술집 심부름을 하며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홍 여사는 1979년 운명했고 부여의 작은 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다. 차씨는 “독립유공자가 됐으니 현충원으로 모시는 게 남은 일”이라며 “독립운동에 나섰던 남편을 돕고 남편 없이 자식을 키우고, 남모르게 독립투사를 위해 밥을 하고 옷을 기워준 여성도 합당한 예우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독립운동 뒷바라지도 독립운동… 어머니가 인정받는 날 왔네요”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독립운동 뒷바라지도 독립운동… 어머니가 인정받는 날 왔네요”

    “2010년 2월에 어머니(홍매영 여사)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는데 8년이나 기다렸습니다. 그간 정권이 바뀌고 여성 독립운동가도 인정받는 세상이 왔네요. 평생의 큰 소원을 이뤘습니다.”차이석(임시정부 비서장) 선생과 홍매영 여사의 아들인 차영조(74)씨는 1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남기신 한국독립당(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김구·차이석 선생 등이 창립한 독립운동단체) 당원증으로는 독립유공자 인정이 안 된다고 수차례 들어서 기대도 안 했는데 이번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에 드디어 인정받게 돼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의 명패도 추후 전달할 계획이다.홍 여사는 1942년 중국 충칭에서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광복군의 생활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한책임한국광복군군관소비합작사 사원으로 재직했고 이곳에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을 지원한 공이 인정됐다. 평안북도 의주에 살던 홍 여사는 남편의 제안으로 임정으로 가기 위해 나무배로 압록강을 건너던 중 남편이 중국 국경인 단둥에서 일본 경찰에게 발각돼 연행됐다. 홍 여사는 첫 중국행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5살·2살인 두 아이를 데리고 중국 시안의 광복군 진지에 도착했다. 차씨는 “어머니는 광복군으로서 훈련을 받았고 1942년 그곳에 들렀던 백범 김구 선생의 중매로 32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도 또 다른 독립운동’이라고 했었다고 어릴 때 어머니께 들었다”고 덧붙였다.1944년 차씨가 태어났고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광복이 됐지만 차이석 선생은 귀국 준비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 9월 9일에 숨을 거뒀다. 세 아이를 데리고 1946년 귀국한 홍 여사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마련한 숙소(서울 충무로 1가 한미호텔)에서 거주하며 노상에서 불법 담배 장사를 했다. 차씨는 “마약 단속하듯 단속반이 발로 차고 지나가기 일쑤였고 중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며 “오히려 취업 때 불이익을 받을까 광복군 경력을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가족은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충남 부여로 피난을 갔다. 차씨는 “형편이 힘드니 형과 누나는 고아원으로 갔고 김구 선생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나를 차(車)씨가 아닌 신(申)씨로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며 “6학년 때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졌고 학교를 관두고 아이스크림 행상이나 술집 심부름을 하며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홍 여사는 1979년 운명했고 부여의 작은 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다. 차씨는 “독립유공자가 됐으니 현충원으로 모시는 게 남은 일”이라며 “독립운동에 나섰던 남편을 돕고 남편 없이 자식을 키우고, 남모르게 독립투사를 위해 밥을 하고 옷을 기워 준 여성도 합당한 예우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혜박 득녀 “엄마 아빠 닮아 길게 태어난 딸” 사진 공개

    혜박 득녀 “엄마 아빠 닮아 길게 태어난 딸” 사진 공개

    모델 혜박의 득녀 소식이 전해져 화제다. 19일 혜박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53시간 만에 만난 우리 럭키. Born 2018.11.17 3:53AM”이라며 득녀 소식을 전했다. 혜박은 이어 “모두 놀란 우리 럭키 키. 엄마 아빠 닮아서 무척이나 길게 태어났다는. 엄마가 처음이라 고생한 우리 럭키. 엄마가 많이 고맙고 사랑해”라며 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혜박은 지난 2008년 5월 5살 연상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4월 결혼 10년 만에 임신 소식을 전한 혜박은 지난 17일 득녀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월드피플+] “엄마, 미안해”…5살 소년이 세상 떠나기 전 남긴 말

    [월드피플+] “엄마, 미안해”…5살 소년이 세상 떠나기 전 남긴 말

    “엄마, 아파서 미안해.” 다섯 살 소년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고생한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사과의 말을 전한 후, 엄마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지난 10일 밤, 희귀 간암으로 결국 세상을 떠난 찰리 프록터(5)의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했다. 2016년 찰리는 소아암인 간모세포종(hepatoblastoma)진단을 받은 후 씩씩하게 투병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달 의사는 찰리가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2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전했다. 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의 병원에서 간 이식을 받는 방법뿐이었다. 찰리의 엄마 앰버(24)는 아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였다. 페이스북 페이지 ‘찰리의 챕터’를 만들어 도움을 호소했고, 딱한 사연을 접한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그 결과, 가족이 필요로 했던 85만 5580파운드(약 12억 5000만원)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큰 돈을 모았지만 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 사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찰리의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통통했던 아이는 뼈마디가 다 보일정도로 말라갔다.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한 찰리는 지난 주말, 엄마의 품에 기댄 채 숨이 찬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영영 깨어나지 않았다.엄마 앰버는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밤 11시 14분, 세상의 전부였던 찰리가 숨을 거뒀다. 아들은 편안한 얼굴로 엄마 아빠 팔에 꼭 붙어 잠들었다”면서 “사진 속 모습 외에 아들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없게 됐다”며 사망소식을 알렸다. 이어 “찰리, 넌 내게 엄마가 될 기회를 주었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어.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단다”, “용감하게 싸운 우리 아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영원히 널 기억할게, 좋은 꿈꿔”라며 아들을 향해 애틋한 글을 남겼다. 사진=페이스북(찰리의 챕터)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김조한 “25살에 결혼, 올해 16살 된 딸 있다” 고백

    김조한 “25살에 결혼, 올해 16살 된 딸 있다” 고백

    김조한이 이미 결혼했으며 16살이 된 딸이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지난 12일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가수 김조한과 휘성이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MC 김성주는 “김조한 씨가 결혼을 안 한 걸로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김조한은 “딸이 있다. 16살이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김조한은 “워낙 오래 됐다. 25살에 결혼했다. 5년 전에 (결혼했다)”고 농담을 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JTBC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단 2마리 남은 북부흰코뿔소, 멸종 막을 방법 찾았다 (연구)

    단 2마리 남은 북부흰코뿔소, 멸종 막을 방법 찾았다 (연구)

    전 세계에 암컷 두 마리만 남아 새끼가 태어날 수 없는 ‘기능적 멸종’을 맞은 북부흰코뿔소를 멸종 위기에서 구해낼 방법, 찾을 수 있을까. 북부흰코뿔소의 유일한 수컷이었던 ‘수단’은 지난 3월 자신이 살던 케냐의 한 국립공원 동물보호구역에서 안락사했다. 일반적으로 코뿔소는 최대 50살까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45살이었던 수단은 고령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지구상에 단 두 마리 남은 북부흰코뿔소는 수단의 딸과 손녀딸이다. 영국 일간지 BBC의 7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영국 카디프대학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벤다대학 공동 연구진은 사실상 멸종을 맞은 북부흰코뿔소의 멸종을 막기 위한 열쇠를 찾기 위해 코뿔소 232마리의 유전자 샘플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촌 관계로 알려져 있던 남부흰코뿔소와 북부흰코뿔소가 1만 4000여 년 전에는 서로 교배해 새끼를 낳았었다는 증거를 찾았다. 학계에서는 이전까지 두 종의 코뿔소가 100만 여 년 전에 갈라진 뒤 유전자가 섞인 적이 없었다는 학설이 유력했다. 때문에 남부흰코뿔소의 난자에 주입해 만든 혼합배아로 새끼가 태어나도 이를 완전한 북부흰코뿔소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두 종의 코뿔소 사이에는 유전적 연대를 내포하는 역사가 있으며, 남부-북부흰코뿔소의 혼합 배아가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인 결과 즉 북부흰코뿔소의 멸종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진은 “우리는 이번 연구에서 북부코뿔소와 남부코뿔소 사이에 유전적 접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이는 매우 의미있는 발견이다. 이를 통해 북부흰코뿔소를 복원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비록 흰코뿔소 종이 100만 년 전 유전적으로 나뉘어졌다 하더라도, 마지막 빙하기정도에 다시 이들 사이에 유전적인 연결고리가 생겼다는 것이 입증됐다”면서 “최근에 유전자가 섞였다면 지금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왕립학회보 B’(journal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7일자에 실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루브르 박물관 입장 거부당한 호주 여성, 그 이유가?

    루브르 박물관 입장 거부당한 호주 여성, 그 이유가?

    호주의 한 여성이 매쉬 드레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파리 유명 박물관 입장을 거부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8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최근 호주 출신의 25살 뉴샤 시예(Newsha Syeh)가 노출 복장으로 인해 루브르 박물관의 입장을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인스타그램에서 23만여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뉴샤는 지난 7일 파리를 여행하며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다. 깊게 파인 가슴골과 하체 부분이 메쉬 소재로 이뤄진 검정 매쉬 드레스를 입은 뉴샤가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경비원들은 그녀의 입장을 막아섰다. 루브르 박물관 측은 “복장 규정을 지켜라”며 뉴샤의 입장을 거부했던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파리를 찾은 뉴사는 박물관 입장을 거부당하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들은 가장 혐오스럽고 끔찍한 몸짓과 표정을 지었고, 나에게 신체를 가리라고 욕했으며 증오에 찬 눈으로 나의 입장을 막았다. 루브르 박물관의 낡은 규정 시행으로 난 상처 받았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런 규정은 없었다”는 글을 남겼다. 실제로 루브르 박물과 웹사이트에는 “입장 시 정해진 복장 규정은 없으며 당신은 루브르 박물관에 당신이 원하는대로 입을 수 있다. 단지 많이 걸어야 하는 것만 기억하세요. 편한 신방을 가져오세요. 양파처럼 겹겹이 옷을 입으세요”란 안내글만 적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뉴샤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은 그녀의 글에 동감하며 루브르 박물관 방문 당시의 자신들의 복장에 대한 댓글을 달며 루브르 박물관 측의 태도에 대해 비난했다. 한 여성은 “몇 년 전 여동생과 함께 루브르 박물관에 방문했을 때, 겨울옷과 부츠를 신었는데 약식 복장이라며 입장을 거부당했다. 그들은 너무 무례했으며 당황한 우리가 박물관을 나설 때까지 욕을 했다”며 “뉴샤의 옷은 아름답다”고 전했다. 그리고 또 다른 팔로워는 “경비원들의 반응이 구식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말문이 막혔다. 사실 거기에 들어갈 때 입을 수 있는 규정들은 없다”면서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여러분이 무엇을 입고 그것을 입는 방식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 제가 말 주변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한편 루브르 박물관 웹사이트에는 입장 시 정해진 복장 규정은 따로 없지만 방문자 규정 1조 2항에는 수영복 착용이나 누드 또는 맨발이나 가슴 노출 등을 금지한다고 되어 있다. 사진= 뉴샤 시예 인스타그램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난 아직 젊어”…69세 남성, 20세 나이 줄이기 위해 법적 소송

    “난 아직 젊어”…69세 남성, 20세 나이 줄이기 위해 법적 소송

    네덜란드에서 60대 남성이 실제 나이를 20세까지 줄이기 위해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네덜란드 겔더란트주 아른헴시에 사는 남성 에밀 라텔밴드(69)의 사연을 소개했다. 사연에 따르면, 네덜란드 매스컴의 인기 스타이자 연설가인 라텔밴드는 공식 문서 상에 자신의 나이를 고칠 수 있도록 청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를 거부당하자 지방 정부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1949년 3월 11일에 태어난 라텔밴드는 “실제 나이보다 적어도 20살 정도 더 젊게 느낀다”면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생물학적 나이가 45살이었다. 의사들도 내가 45살의 신체 나이를 가지고 있다 말했다”며 자신의 생년월일을 1969년 3월 11일로 바꾸길 원했다. 그는 “내가 69살이면, 제한을 받지만 49살이면 새집을 사거나 다른 자동차를 몰 수 있다. 더 많은 여성을 만나거나 더 많은 일도 할 수 있다”며 “매일 나이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는다. 기업들도 연금을 받는 노인을 컨설턴트로 고용하길 꺼린다”고 토로했다. 이어 “트랜스젠더들이 출생증명서에 적힌 그들의 성별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나이 전환도 가능하도록 바뀌어야 한다”며 “난 다시 은퇴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연금도 포기할 것이다. 그러면 정부에게도 좋은 소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판사는 “당신 부모님은 그 무렵에 누구를 보살폈는가? 당시 그 작은 소년은 누구였는가”라며 1949년부터 1969년까지 라텔밴드의 유년시절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그의 의견에 다소 공감은 하나 사람들이 출생 날짜를 바꾸도록 허용하는데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삶의 일부를 지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각하했다. 법원은 4주 이내에 그에게 서면 판결을 전달할 예정이다. 사진=데일리메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SNS ‘사이버 불링’에… 15살 내 딸은 삶을 포기했다

    SNS ‘사이버 불링’에… 15살 내 딸은 삶을 포기했다

    헤어진 남친 욕 했다고 SNS서 비난유가족 측 “의도한 괴롭힘이다”가해 학생 “의도하지 않았다” 설문 조사 24%가 “재미있어서” 응답 “장난 아닌 폭력이라는 점 인식시켜야”지난 9월 12일 인천에서 중학교 3학년 A(15)양이 자신이 사는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헤어진 남자친구 C군에 대해 또래 친구 B양과 모바일 메신저상에서 나눈 험담 내용이 나중에 B양을 통해 C군에게 전달되고, C군이 이 내용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게 발단이 됐다. 인근 학교 학생들까지 볼 수 있는 이 SNS에서는 A양에 대한 ‘사이버 불링’이 가해졌다. 결국 A양은 심리적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B양과 C군은 현재 모욕·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또 댓글을 단 학생 중 비난 수위가 센 학생 일부도 같은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다만 이들 학생은 경찰에 “SNS에 갑자기 글이 올라와 댓글 한 줄 달았던 것뿐이고 의도적으로 괴롭힌 것은 아니다”라며 변호사를 통해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A양의 유가족 측은 “SNS 상에 달린 댓글 중에는 성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성적 모욕, 협박, 신상 공개의 글들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사이버 폭력’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일부 피해 학생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가정까지 파괴되고 있다. 장난삼아 툭 던지는 욕설이 피해 학생에게는 비수로 꽂힐 수 있다는 것을 가해 학생들이 제대로 인식하기만 해도 사이버 폭력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7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모욕, 명예훼손, 협박, 반복적 불안감 조성 등 사이버 폭력으로 검거된 청소년(만 14세 이상~만 19세 미만)은 2156명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범죄를 저질러 검거된 전체 청소년 5만 5814명 중 3.9%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비중은 2015년 3.3%(2612명)를 기록한 이후 매년 증가 추세다. 더 심각한 것은 청소년들이 장난삼아 사이버 폭력에 가담한다는 점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7년 사이버 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가해 학생 기준) 730명 중 23.8%가 재미나서 또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사이버 폭력을 행사했다고 답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가담했다는 학생도 12.3%나 됐다. 최희영 푸른나무 청예단 유스랩 센터장은 “과거에는 주로 주변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면 이제는 SNS상에서 유포되고 확산되면서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는 사실에 더 큰 불안감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지난 7월 인천의 한 여고생은 한 연예인의 SNS ‘팬방’에서 심한 욕설을 듣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 9월에도 두 명의 학생이 삶을 포기했다. 이승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해 학생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사이버 폭력에 대한 예방 교육도 처벌 조항에 대한 안내보다는 어떤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민도희 “‘응답하라 1994’ 평생 잊지 못할 작품”

    민도희 “‘응답하라 1994’ 평생 잊지 못할 작품”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오현정 역을 맡아 배우로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민도희. 연기자로 변신한 지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든 배우 민도희와 bnt가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비앤티 꼴레지오네(bnt collezione), 해프닝, 로맨시크 등으로 구성된 세 가지 콘셉트로 진행된 이번 화보 촬영에서 그는 화이트 셔츠 원피스를 입고 청순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가 하면 파이톤 프린트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매치해 여성스러운 무드를 선보였다. 마지막 콘셉트에서는 프린지 디테일의 롱스커트와 쇼트 재킷으로 한층 성숙해진 매력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촬영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민도희는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팀과 포상 휴가를 다녀온 여행 소감을 전했다. “배우들과 스태프들 모두 재미있게 잘 쉬다 와서 감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번 여행 이후로 이렇게 모이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25살 배우 민도희, 내년이면 26살이 되는 그는 드라마 속 역할들로 몇 년 동안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고. “대학 생활을 누려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매번 대학생 역을 맡을 때면 간접 경험을 하는 것 같아서 기쁜 마음도 들고 재미있기도 하다” 극 중 맡은 오현정 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민도희는 “짝사랑하는 상대가 절친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현정이가 불쌍하기도 했다”며 “내심 이뤄지기도 바랐는데, 이뤄지지 않아서 진심으로 아쉽고 짠한 마음이 들더라”고 전했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속 짝사랑했던 상대역 곽동연과 남자 주인공 차은우 중 실제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그는 “두 분 모두 이성적인 감정이 들 수 없을 만큼 친해졌다”며 “두 분보다 오희준 배우가 더 멋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힙합 지망생인 오현정 역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 그는 “실제 래퍼 분이 캐스팅될 뻔했다”며 “오히려 연기에 대한 걱정보다 랩 비중에 대한 걱정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SNS를 통해 현장 사진을 자주 공개하며 남다른 팀워크를 보여준 것에 대해 “곽동연, 차은우, 임수향 언니 모두 장난도 많이 치고 편하게 대해줬다”며 “특히 분위기 메이커 곽동연 덕분에 촬영장에 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설명했다. 5년 차 배우로 접어든 민도희. 연기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어느덧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며 “나이에 맞는 역할이나 해보지 않았던 역할을 도전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종영한 지 5년이 지났지만 민도희 하면 첫 연기 도전 작품인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그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남은 작품일 터. “나에게 ‘응사’는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다. ‘응사’를 통해 좋은 분들도 많이 얻었고, 정말 가족 같은 팀”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응사’를 통해 김성균과 첫 키스신을 찍기도 한 그는 “원래 뱃멀미가 심한데 참고 참다가 키스신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바로 토를 했다”며 “멀미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된 건데 타이밍이 키스신 직후였다”고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주인공의 절친 역을 주로 맡은 그에게 주연 배역에 대한 욕심은 없는지 물었다. “주인공의 절친 역으로 주연분들을 항상 최측근에서 지켜보면서 존경심도 들고 정말 쉽지 않은 자리라는 것을 느꼈다”며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자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보고 배워서 두려움 있지만 언젠가 내게 주인공 역할이 주어진다면 더 감사한 마음으로 임할 것 같다”고 진중한 답변을 전했다. 배우이기 전에 가수로 먼저 데뷔했던 그. 배우 민도희가 아닌 가수 도희의 모습을 기대해도 되는지 묻자 “아직은 연기 활동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배우로서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린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음악을 하고 싶은 바람은 있다”고 답했다. 함께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배우가 있냐는 질문에 단번에 조정석이라고 답한 그는 “남매 역할을 꼭 해보고 싶다”며 “옆에서 연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크고 정말 팬이다”이라고 밝혔다.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에 대한 물음에 “권소현, 펜타곤 홍석, 배우 여회현과 네 명이 94년생 모임을 한다”고 답한 그는 “연예계 일을 하면서 친구를 많이 못 만났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마음이 통했던 것 같다. 서로 응원도 많이 하고 언제나 힘이 되는 친구들이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응사’에서 시니컬한 츤데레 스타일,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풋풋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역을 선보인 그에게 실제 연애 스타일을 묻자 “두 가지가 딱 섞인 것 같다”며 “연애 초기에는 소극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데, 서로 알아가면서 편해지다 보면 좀 더 리드하면서 만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롤모델로 줄곧 하지원을 언급한 그는 “하지원 선배님이 걸어오신 길을 보면 정말 다양한 역으로 분하셨다”며 “다양한 작품에 들어가도 녹아들 수 있는 그런 배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차기작 JTBC 드라마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 그는 “주인공 김유정 양의 오래된 친구 역을 하게 됐다”며 “그동안 보여드리지 못한 조금 더 성숙한 민도희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스무 살 김유정의 친구 역할에 대해 부담감은 없었는지 묻자 “촬영 전에는 선배라서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과 언니로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유정이가 성격이 좋아서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며 색다른 케미를 예고했다.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까지 JTBC에서만 총 네 작품을 참여하며, JTBC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생긴 것에 대해 “기분 좋은 수식어”라고 소감을 밝힌 그는 “올 한해도 연속으로 두 작품을 찍게 됐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다”이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를 전한 그는 “항상 감사하고 힘을 얻게 되는 존재”라며 아직 한 번도 팬미팅을 못했는데, 내 꿈은 정말 열심히 해서 꼭 한번 팬미팅을 하고 싶다. 팬분들과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꼭 갖고 싶다”고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정재용♥아이시어 선아 결혼 ‘아재쇼2’ 방송 보니 ‘화끈 입담’

    정재용♥아이시어 선아 결혼 ‘아재쇼2’ 방송 보니 ‘화끈 입담’

    DJ D.O.C. 정재용과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걸그룹 아이시어 선아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방송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1일 DJ DOC 정재용 소속사 슈퍼잼레코드는 정재용이 오는 12월 1일 결혼식을 올리고 유부남이 된다고 전했다. 특히 정재용의 예비신부는 19살 연하 여자친구로 과거 연예계에 종사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후 정재용 예비신부는 아이시어 선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두 사람은 지난 2016년 성인오락채널 비키의 ‘아재쇼 시즌2’에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선아는 기존 MC들을 당황케 할 정도의 수위 높은 발언을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해당 방송에서 “뭘 잘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그녀는 “세우는 거”라고 거침없이 답했고 MC들은 “방청객들을 일으켜 세우는 걸 잘하느냐”라고 수습했다. 이에 선아는 “맞다. 아이시어 무대를 보면 다들 발딱발딱 서시더라”고 받아쳤다. 선아는 현재는 아이시어를 탈퇴하고 타 직종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만 45살인 정재용과 19살 차이나는 커플이다. 정재용 소속사 측은 “결혼식 날짜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이라면서 “예비신부는 현재 임신 중으로 정재용은 내년에 아빠가 된다”는 소식도 알렸다. 한편 정재용과 선아는 김포한강신도시에 신혼집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윤지연 결혼, 러블리 웨딩화보 공개 ‘행복한 미소’

    윤지연 결혼, 러블리 웨딩화보 공개 ‘행복한 미소’

    윤지연 아나운서의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31일 웨딩컨설팅 (주)와이즈웨딩 측은 KBS 연예가중계 리포터이자 토크멘터리 전쟁史 진행을 맡고 있는 윤지연 아나운서의 웨딩 화보를 공개했다. 윤지연 아나운서의 예비 신랑은 5살 연상 이비인후과 의사로 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로 만나 1년 동안 사랑을 키워오다 오는 12월 그 결실을 보게 된다. 와이즈웨딩 측은 “지혜롭고 세련된 신부의 이미지가 돋보일 수 있는 헤리티크 뉴욕 웨딩드레스를 선택했다. 상체는 시어한 소재에 레이스와 비즈를 레이어드하여 세련되게, 스커트는 몸에 내려앉는 사뿐한 실크 소재로 신부님의 아름다운 보디라인을 강조했다. 웨딩메이크업의 경우, 미소가 아름다운 신부를 잘 표현하기 위해 사랑스러운 컬러감과 부드러운 헤어라인을 강조하였다. 이에 맞게 신랑님은 블랙& 화이트에 모던하고 클래식함으로 훈훈함을 더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웨딩촬영 내내 현장 스텝들을 챙기는 배려심 많은 신랑님과 사랑스러운 애교와 밝은 에너지의 신부님 덕분에 현장 분위기는 따듯한 기운이 가득했다. 지인들도 끊임없이 방문해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하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두 사람의 결혼식은 오는 12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다. 사진제공 = 그가 사랑하는 순간 스튜디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아름다운 D라인 공개한 혜박 “럭키야, 곧 만나자♥”

    아름다운 D라인 공개한 혜박 “럭키야, 곧 만나자♥”

    모델 혜박이 만삭 근황을 공개했다. 31일 혜박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D-7♡ 럭키야, 이제 럭키 만날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럭키가 생긴 걸 알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우리 럭키는 무럭무럭 자라서 이렇게 나올 준비를 하고있다니. 행운처럼 와준 우리 럭키, 곧 만나자 .By 럭키아빠”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출산을 앞둔 혜박의 모습이 담겼다. 아름다운 D라인을 공개한 혜박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편, 혜박은 지난 2008년 5월 5살 연상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지난 4월 결혼 10년 만에 임신 소식을 전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컬투쇼’ 이상엽 “김새론 선배 포스 있어..90도 폴더 인사 했다”

    ‘컬투쇼’ 이상엽 “김새론 선배 포스 있어..90도 폴더 인사 했다”

    배우 이상엽이 김새론에 대해 “선배다운 포스가 있다”고 언급했다. 31일 방송된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이하 ‘컬투쇼’)에서는 배우 이상엽과 김새론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영화 ‘아저씨’ 속 그 아이로 소개된 김새론은 “5살 때부터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7살에 영화 ‘여행자’로 영화 첫 주연을 맡았다”고 말해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다. 이상엽은 “김새론을 보면 딱 연기 선배 느낌이 든다. 처음 봤을 때 90도 폴더 인사를 했다”라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스페셜 DJ로 출연한 윤도현 역시 “아까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이상엽과 김새론이 출연하는 영화 ‘동네사람들’은 여고생이 실종 됐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의문의 마을에 새로 부임한 체육교사 기철(마동석 분)이 사건의 실마리를 쫓으면서 밝혀지는 비밀을 담은 작품이다. 11월 7일 개봉 예정이다. 사진=SBS 파워FM ‘컬투쇼’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월드피플+] 5살 자폐증 소녀와 신데렐라가 된 새 신부의 사연

    [월드피플+] 5살 자폐증 소녀와 신데렐라가 된 새 신부의 사연

    새 신부를 동화 속 신데렐라로 오해한 한 자폐 소녀의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2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CBS 등 외신에 따르면, 뉴욕에 사는 라일라 레스터(5)는 평소 디즈니 만화영화의 열렬한 팬이었고, 공주 놀이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지난 13일 라일라는 엄마 제시카와 함께 애크런 폴즈 공원을 산책하던 중, 눈 앞에서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바로 드레스 차림의 신부 올리비아 스파크가 결혼 피로연장으로 이동하는 중 공원에 들려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었다. 라일라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실제로 나타나자 기쁜 마음에 “신데렐라야, 신데렐라!”라고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신데렐라가 확실하다고 믿은 라일라는 그녀에게 급히 달려가 반가움을 표현했다. 엄마는 “라일라, 귀찮게 굴면 안돼. 사진 촬영 중이야”라고 말했지만 딸은 이미 신데렐라에게 푹 빠져 있었다. 다행히 올리비아도 라일라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반갑게 맞아주었고, 잠깐 동안 신데렐라가 되어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뒤 피로연장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오자 그녀는 라일라에게 “이제 무도회로 돌아가야 해”라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동화는 끝이 아니었다. 이후 올리비아는 자신을 공주처럼 좋아해주는 라일라와 계속 연락을 해왔고, 라일라와 만나게 된 사연과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해당 사연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고, 라일라를 ‘디즈니랜드에 보내주자’는 온라인 모금 운동으로 이어졌다.실제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에는 라일라를 위한 페이지가 만들어졌고, 모금 운동을 시작한지 단 8일 만에 목표 금액이었던 1만 1200달러(약 1275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이제 라일라가 디즈니랜드에 갈 일만 남았다. 라일라의 엄마는 “올리비아가 없었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올리비아는 너무도 친절했고, 라일라를 좋아해주었다. 라일라도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 편인데 올리비아와는 잘 통했다”고 전했다. 이에 올리비아는 “라일라를 위해 신데렐라가 될 수 있어 나 또한 행복했다”고 답했다. 사진=페이스북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6회] “인천 제자들을 이끈 신봉순 선생님…호국정신의 혼 영원히 기억”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6회] “인천 제자들을 이끈 신봉순 선생님…호국정신의 혼 영원히 기억”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故 신봉순 ▲공립인천상업중학교 교사 ▲부산육군통신학교 교육대장 “고 신봉순 대장… 6·25 참전 인천 학생들과 남하 여학생들의 영원한 스승” 1922년 12월 1일 : 경기 부천 소사읍 송내 출생 1947년 7월 : 동경전자 통신대학 졸업 1947년 9월 : 공립인천상업중학교 교사 발령 1949년 1월 : 공립인천상업중학교 교사 사직 1949년 3월 : 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 소위 임관 1951년 1월 : 부산 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장 1965년 3월 : 육군 중령으로 예편 1998년 10월 10일 0시 04분 : 작고고 신봉순 선생님을 추모하며… 20년 전 1998년 10월 10일은 6·25 참전 인천 학생들과 남하 여학생들의 영원한 스승님이신 부산육군통신학교 신봉순 교육대장님이 돌아가신 날입니다. 이제는 저의 아버지도 85살로 신봉순 선생님을 추모하는 글을 새로 쓰시기는 어렵습니다. 20년 전 1998년 11월 3일 날, 신봉순 선생님을 추모하며 저의 아버지께서 쓰셨던 “고 신봉순 선생님을 추모하며…”라는 글을 신봉순 선생님 20주기 추모사로 게재합니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추모사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에 홀연히 돌아가신 신봉순(申鳳淳) 선생님의 영전에 이 한편의 글을 올립니다. 캄캄한 밤의 횃불이셨던 선생님 1996년 7월 15일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인천학생 6·25 참전 역사 찾기를 하기 위하여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를 구성 출범해 놓고,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하고 고심하고 있을 때 선생님을 만난 것은 저희 2부자에게는 크나큰 행운이었으며 그 후 이어진 선생님의 가르침은 저희에게는 캄캄한 밤의 횃불이셨습니다. 뜻한 바 있어 군인 되신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6·25 사변이 나기 전에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인천고교와 상인천중의 전신)에서 학생들에게 물상을 가르치시던 중 뜻한 바 있으셔서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하시어 임관 후에는 6·25에 참전하셨습니다. 인천 제자들을 통신병으로 이끌어 1951년 1월 초에 인천에서 부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온 인천 학생들을 통신병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인천에서 가르친 제자들이 지휘관 옆에서 근무하는 통신병이 되는 것이 좀 더 나은 군 생활이 될 거라 생각하시며 통신학교로 입교하게 인도하셨습니다.남하한 여학생들을 돌봐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 120여명이 남학생들과 똑같이 부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남하하였습니다. 남하 여학생들이 갈 곳이 없어서 고민을 할 때 선생님께서는 선뜻 부산육군통신학교 행정 보조 업무를 맡김으로써 갈 곳 없었던 여학생들을 몇 달간 데리고 있다가 인천이 수복되자 돌려보내 준 일도 하셨습니다. 첫 인터뷰·녹음해주신 선생님 선생님과 저와의 첫 만남은 1997년 5월 31일 부평중앙회관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께서는 제 손을 꼭 잡으시고 “다시 한번 꼭 만나자!”며 크나큰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후 1997년 6월 4일 첫 번째 인터뷰녹음을 하기 위해 부천시 송내동에 있는 선생님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날 선생님께서 하신 강조의 말씀은 “6·25 때 제자들이었던 인천 학생들과 남하한 여학생들과의 부산에서 만남을 통하여 확인된 나라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인천학도의용대의 나라 사랑 정신은 반드시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여야 할 유산이다!”라고 하시며 일러주신 말씀을 바탕으로 역사 기록을 찾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선생님께서는 틈만 나면 “6·25 참전 역사 편찬의 진전이 어떤가?” 하시며 걱정해 주셨으며 육군본부와 통신학교 등으로부터 자료를 알아보시고 알려주시기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 이렇게 저희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의 등불이셨던 선생님께서 금년 1998년 봄에 “자꾸 몸의 기력이 빠진다”고 걱정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후 금년 1998년 10월 9일 갑자기 선생님께서는 부천중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급히 찾아가 보니까 선생님께서는 야윈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계셨습니다. 선생님께 마지막 이별 인사를 저는 선생님 곁으로 다가가며 속으로 “6·25 인천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저렇게 누워 계시면 안 되는데…” 하면서 선생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인자하신 선생님 손길은 온기가 하나도 없으셨습니다. 그때 선생님께 “선생님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라고 물으니 선생님께서는 제 얼굴을 보시더니 고개를 끄떡이시며 손짓으로 글씨를 쓰시는 시늉을 하셨습니다. 그때 얼른 볼펜하고 종이를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종이 위에 “학도의용대”라고 써주셨습니다. 학도의용대라는 마지막 글을 남기시고 그로부터 몇 시간 후 1998년 10월 10일 0시 4분에 선생님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셨습니다.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쓴 ‘학도의용대’ 지금 생각해 보니까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써주신 글씨 ‘학도의용대’는 인천학도의용대 역사편찬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 지으라는 말씀으로 지금도 생생히 들리고 있습니다. 1998년 10월 11일에는 편찬위원장과 함께 선생님 영전을 찾아뵙고 선생님 명복을 빌면서 하직 인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편찬사업을 끝까지 잘 마무리 지을 것도 맹세하였습니다. 1998년 10월 12일 선생님께서는 부평화장장에 가셨습니다. 저는 그날 선생님을 따라가서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드렸습니다. “인천학도의용대 혼이 살아있었구나!” 이제는 선생님과 이별하여 점점 세월이 무심히 흘러갈 뿐입니다. 그러나 처음 만나던 날 선생님께서 해주신 그 한 말씀 “아~ 역시 인천학도의용대 호국 정신! 그 혼이 살아 있었구나!”라며 제 손을 꼭 잡아주시던 따스한 손길은 저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부평에서 소림사로 가시어 잠시 머무르시던 선생님은 1998년 10월 30일 이제는 영원히 누워 계실 국립대전 현충원(묘역 7-2768)에 안장되셨습니다. 제가 갈 길과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이제는 모든 시름 다 잊으시고 편히 주무십시오. 그리고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이끌어주신 인천학생 6·25 참전 역사 편찬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지켜주시는 수호신이 되어주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기리며 이 가을 푸른 하늘을 눈이 시리도록 쳐다봅니다. 1998년 11월 3일 인천상업중학교 제자 이경종이 삼가 추모의 글을 올립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알리는 말씀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는 저의 아버지(6·25 참전 학생 이경종)께서 1997년 6월 4일 날 6·25 참전 스승 신봉순(부산육군통신학교 교육대장)님과의 인터뷰녹음을 처음 시작한 후 199명의 6·25 참전 학생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녹음을 하고, 집에서 녹음기를 틀어 종이에 글로 옮긴 다음에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배워 직접 한글자씩 타이핑해 한글 파일로 만든 것을 제가 고유명사가 틀린 것만을 교정하였기 때문에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많습니다. 독자께서는 이 점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추모사에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있어도 많은 이해를 바랍니다.” 이규원(이경종 큰아들)
  • 납치·성폭행으로 낳은 아이를 국가에 빼앗긴 여성

    납치·성폭행으로 낳은 아이를 국가에 빼앗긴 여성

    조직폭력단에게 납치돼 12년간 성 노예로 살다 자유를 되찾은 여성이 공개적으로 국가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비난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지 메트로의 28일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 사는 사라(가명)라는 이름의 20대 여성은 12년 전, 당시 15살의 나이에 무슬림 성매매 조직폭력단인 ‘그루밍 갱’(grooming gang)에 납치돼 감금 생활을 해야 했다.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납치를 당한 그녀는 그들의 소굴에서 12년간 성 노예로 살아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3번의 강제 무슬림식 결혼과 8번의 낙태를 겪은 후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를 출산했다. 자신이 낳은 딸과 아들을 데리고 그들의 소굴에서 도망쳐 간신히 자유를 되찾았을 때, 그녀를 또 한 번 무너져 내리게 한 것은 그녀에게 적용된 사회복지 시스템이었다. 그녀가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자, 현지의 사회복지 관련 기관은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딸과 아들의 거주지를 보호센터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또 아들은 일주일에 단 4시간 만 만날 수 있으며, 딸은 입양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양육권과 친권 등을 둘러싼 재판이 열리자, 현지 법원은 그녀를 납치하고 성폭행한 뒤 아이를 낳게 한 남성에게 아이와 만날 수 있는 접근권을 허가했다. 그가 아이의 복지와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라는 영국 일간지 메트로와 한 인터뷰에서 “그들(경찰과 사회복지시설 관계자)이 아이들을 내게서 떼어놓았을 때, 나는 나를 납치한 갱단으로부터 받은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느껴야 했다”면서 “나는 더 이상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갈 기회가 없어진 것 같다”고 절망했다. 영국 사회가 피해자인 사라에게 가혹한 이유는 그루밍 갱을 둘러싼 오랜 사회적 갈등과 연관이 있다. 수 십 년 전부터 영국에서 만행을 저질러 온 그루밍 갱의 90% 이상은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 남성이며, 피해자의 90% 이상은 백인 10대 소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어린 소녀들을 회유하거나 납치해 자신들의 성 노리개로 삼거나 성매매를 강요한다. 하지만 경찰과 사회복지사, 언론 등은 무슬림에 대한 혐오 정서 및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두려워 한 나머지, 그루밍 갱을 ‘아시아 인’이라는 큰 범주로 묶어 둔갑시키고, 이들에 대한 처벌에도 관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 역시 지난달 영국 상원의 한 무소속 의원에 의해 공론화 됐지만, 아직까지 가해자에 대한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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