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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어린이 유괴… 살해뒤 수장/부부낀 3인조 검거

    ◎5세남아 목조른뒤 저수지에 던져/중고승용차 구입,1개월전부터 모의/“5천만원 내라”… 협박전화 걸다 잡혀 【수원=김동준기자】 5살난 남자어린이가 20대부부 등 일당 3명에 의해 유괴된지 5일만에 목졸려 숨진 시체로 저수지에서 발견됐다. 경기도 수원경찰서는 9일 수원시 권선구 세류2동 1119의9 이상길씨(31ㆍS전자 회사원)의 둘째아들 완희군(5ㆍH속셈학원생)을 유괴ㆍ살해한 전기철(25ㆍ수원시 장안구 신풍동 231) 김은실(20ㆍ 〃 )부부와 문경한씨(22ㆍ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149) 등 3명을 미성년자 약취유인 및 살인ㆍ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군의 사체는 이날 상오2시10분쯤 수원시 송죽동 물왕저수지에서 자루에 돌과 함께 넣어져 숨져있는채로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전씨 등은 지난4일 하오3시쯤 집앞에서 혼자놀고 있던 이씨의 둘째아들 완희군을 『좋은 곳에 놀러가자』며 경기2 머5903호 포니승용차로 유괴,살해한뒤 다음날인 5일 완희군의 어머니 김홍숙씨(29)에게 전화로 『5천만원을 내면 아이를 돌려주겠다』고 하는등 11차례에 걸쳐 현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승용차로 완희군을 유괴해 가던중 『집에 가겠다』며 울음을 터뜨리자 목을 졸라 실신시켜 트렁크에 싣고 용인군 수지면 고기리 고기저수지까지 간뒤 암장하려다 완희군이 의식을 되찾자 문씨가 5분여동안 다시 목을 졸라 살해,길에서 주운 쌀자루에 이군의 시체를 넣고 수원시 장안구 물왕저수지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시체를 물왕저수지에 버렸다』는 자백을 받고 이날 하오2시10분쯤 수색작업에 나서 완희군의 시체를 찾아 인양했다. 범인들은 가족들이 『돈을 마련할 시간을 달라』며 시간을 끌면서 경찰에 신고,경찰이 전화를 녹음추적한 끝에 지난8일 하오2시30분쯤 수원시 장안구 신풍동 한국약국앞 공중전화에서 협박전화를 걸다가 붙잡혔다. 범인 전씨는 경찰에서 사업자금마련을 위해 1개월전부터 부인 김씨와 후배 문씨 등과 어린이를 유괴하기로 모의,중고 포니승용차를 25만원에 구입,수원주택가 등지를 돌아다니며 범행대상을 물색해왔었다고 말했다. 살해된 완희군은 사건당일 인근 속셈학원에 다녀와 집앞에서 놀다 이같은 변을 당했는데 경찰은 범인들이 완희군을 부자집자녀로 오인,쉽사리 돈을 뜯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있다. 완희군의 가족은 방 2칸짜리 20평규모의 2층독채를 1천만원에 전세를 들어 살고있다.
  • “프로야구선수 정년은 35세”(조약돌)

    ○…서울민사지법 합의33부(재판장 권성부장판사)는 7일 MBC청룡소속 프로야구선수였던 김경표씨(30ㆍ서울 강동구 천호동 217의14) 등 가족 5명이 대성운수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프로야구선수의 정년은 35살까지로 봐야한다』면서 대성운수측에 4천4백여만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김씨는 지난86년 11월3일 하오1시30분쯤 같은 MBC청룡소속 김정수선수가 운전하는 서울3 마7799호 로열승용차를 타고가다 서울 강남구 내곡동에서 대성운수소속 버스와 충돌,김선수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자신은 얼굴 등에 부상을 입고 선수생활을 계속해왔으나 최근 운동을 그만두게 되자 소송을 냈었다.
  • 외교노력 겉도는 페만사태

    ◎“부시 심판하겠다” 이라크,「인민재판소」 구성/동독대사 바그다드로 강제 이송/미 해군 장성,“2주내 전면전” 경고/이라크억류 서방 인질 7백명 고국에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후 1개월가량 인질로 억류돼 있던 7백여명의 서독국가와 일본의 여성및 어린이들이 1ㆍ2일 양일에 걸쳐 이라크를 출국,각각 조국에 도착했다. 지난달 28일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석방하겠다고 약속했던 이라크 정부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서독등 서방인과 일본인 약 7백명에게 2대의 이라크 항공기와 1대의 서독 항공기에 분승시켜 출국시켰다. 이에따라 66명의 서독인을 비롯 ▲60명의 미국인 ▲55명의 스페인인 ▲17명의 영국인등 3백16명의 여성과 어린이를 실은 루프트한자 A­300 에어버스기가 2일 상오 서독의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할 당시 3천명의 미국인을 포함,약 2만1천명의 서방인들이 이들 양국에 체류하고 있었으며 극소수의 일본인 및 미국인 환자를 제외한 남자는 이번 출국에서 제외됐다. ○TV 출연 소년 귀향 ○…지난 23일 사담 후세인이 서방인질을 만나는 장면이 이라크 TV에 방영될 때 후세인이 머리를 쓰다듬던 5살난 영국소년 스튜어트 록우드군이 현재 런던의 집으로 돌아와 「악몽」에서 회복중이라고 그의 고모인 주리 캠벨여사가 2일 발표. 그러나 록우드군의 아버지 데레크씨는 계속 이라크에 잡혀있기 때문에 집안분위기는 여전히 침울하다고 캠벨여사는 전언. 록우드군은 어머니ㆍ형과 함께 이라크서 풀려났다. ○…쿠웨이트 주재 동독대사가 유렵외교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바그다드로 강제 이송됐고 벨기에 외교관들이 2일 말했다. 벨기에 외교관들은 쿠르트 메르켈 대사가 지난 1일 여러날 동안 단전ㆍ단수가 계속되고 있는 동독대사관을 떠나 쿠웨이트 주재 서독 대사관을 떠나 쿠웨이트주재 서독대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도중 체포됐다고 전했다. 한 벨기에 외교관은 『쿠르트 메르켈대사의 이라크 강제 이송은 쿠웨이트주재 외교관들이 자국대사관을 떠날 경우 맞닥뜨리게 될 상황』이라고 말했는데 이라크군에 포위된 상태에 놓여있는 쿠웨이트주재 각국 외교관들은 지난달 24일이래 샤워및 에어컨 시설을 가동하지 못한 채 곤혹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1일 하오 참모회의를 주재했다고 바그다드방송이 보도. 한편 이라크 변호사 협회는 1일 조지 부시 미대통령을 인권위반 사례들과 관련,재판하기 위해 「인민재판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라크 TV가 보도. 이라크 변협의 하미드 알리 아르 라위 회장은 부시 대통령이 취임후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를 지배하고 자신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유엔에 강요하는등 인류에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고 아랍및 국제사법기관및 인권단체들과 협의,국제인권선언 조항에 따라 부시를 재판하기 위한 인민재판소를 구성키로 했다고 소개. ○미군,국경지대 이용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된 미군은 대이라크 방어선을 보강하고 나아가 공격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라크가 점령한 쿠웨이트와 사우디국경을 향해 이동배치되기 시작했다고 미국 관리들이 1일 말했다. 최근까지 미군은 사무디의 대이라크ㆍ쿠웨이트국경 훨씬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병력들이 계속 증파돼 국경 가까이로 이동배치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있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존 홉킨스 해군소장 또한 해군병력이 향후 2주내에 현재의 1만5천명에서 3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홉킨스소장은 『우리는 현재 있을 곳에 와 있는 것』이라며 『이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2주내에 전면전도 벌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또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및 외국인 인질 억류등 이라크의 전쟁범죄 해당 가능 부분에 대한 자료수집을 하고 있는 것으로 31일 전해졌는데 이는 미국이 앞서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대통령에게 사용했던 것처럼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을 붙잡아 재판에 회부하는 방안을 강구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 「범죄의 길」 택한 농아자/서동철 사회부기자(현장)

    ◎사회의 따돌림에 끝내 「날치기」로 아버지가 형사의 질문을 수화로 아들에게 옮기고 수화로 되돌아온 대답을 아버지는 다시 형사에게 말로 옮긴다. 8일 상오 서울 서부경찰서 형사계에서는 은행주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2억2천여만원을 날치기한 혐의로 전날 붙잡혀 온 하기진씨(25) 등 농아자 3명에 대한 조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신문을 받는 하씨는 비교적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5살때 갑작스런 열병을 앓아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83년 농아학교의 고등부를 졸업하고 농아란 따돌림속에서도 운좋게 대구에 있는 한 공장에 프레스공으로 취직이 됐다. 열심히 일했고 정상인인 아내도 만났다. 지난 86년에는 물론 정상인인 예쁜 딸도 얻었다. 그러나 2식구를 부양하기에 20만원의 월급은 너무 적었다. 하씨는 궁리끝에 지난해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인천에 사글세방을 얻은뒤 고속버스터미널과 지하철ㆍ다방 등을 돌아다니며 볼펜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가는 곳마다 불량배들의 텃새와 놀림으로 수입이 신통치않았다. 그러다 지난5월 남대문 근처의 「농아자 휴게실」에서 이번에 수배된 김모씨(23)와 서모씨(23)를 만났다. 가까운 사이가 된 이들은 정상인들의 냉대에 따른 서로의 생활고를 불평하기 시작했고 결국 오토바이 날치기를 하기로 작정,지난 5월부터 6월사이 3차례의 오토바이 날치기를 했다. 그러나 현찰은 2백만원뿐 나머지 2억여원은 모두 수표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날치기한 수표를 바꿀길이 없어 1백만원짜리 1장을 7만원씩에 바꾸려다 붙잡혔다. 얼마전에도 농아인 유모씨(23)가 오토바이를 타고 4차례에 걸쳐 1천5백여만원을 날치기해오다 경찰에 구속됐었다. 장애자들을 돕자는 운동이 점차 확산돼가고 정부에서도 관심을 쏟고 있지만 아직은 장애자들을 위한 우리사회의 관심이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을 이들이 무언으로 항변하고 있는듯 했다.
  • 노인들의 소외감을 덜어주자(사설)

    요즘의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 불만을 갖고 있고 세상의 냉대를 서러워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노인모의국회 난장토론회」에서 토로된 노인들의 하소연을 통해 그 심각한 정도를 다시 확인했다. 이 모임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또 안아야 할 노인문제를 여전히 소홀히하고 있다는 점과 그런데서 대책마련의 시급함을 또 다시 일깨워줬다고 볼 수 있다. 노인들은 한결같이 가정과 사회의 무관심과 무시·냉대로 인한 소외감을 호소하고 있다. 「용돈이 손자의 절반도 안돼요」 「며느리와 딸이 사준 옷은 금방 보면 알 수 있어요」하는 한스럽고 응어리진 불만도 따지고 보면 모두 소외감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은 물론 지금까지 있었던 노인문제심포지엄이나 여론조사·상담결과는 모두 노인들의 소외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노인문제는 몇가지 점에서 공통된 측면을 갖고 있으나 그 중에서 특히 우리는 고령화시대를 맞으면서 사회가 이 추세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노후생활은 자식에게 의존않겠다」는 노인들이 급증추세인 반면에 사회는 이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어 숱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또 사회의 경로운동이 늘 말만에 그칠 뿐 제도화하지 못함으로써 「경로실종」현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분명한 우리 사회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그로인해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고 시간을 활용할 여가방법이 없는 노인들은 고독감에 빠지게 되고 심하게는 사회폐기물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경우까지 있는 실정이다. 노인부부의 잇단 자살사건등은 모두 이 때문이다. 현재 60살이상 된 사람이 3백20만명이나 되고 65살이상은 88년 시점 1백90만명으로 전체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서도 범국가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더욱이 우리의 평균수명이 70살을 넘어섬으로써 고령화시대는 더욱 본격화될 것이고 보면 시급을 요하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몇가지 방안을 대책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그 하나가 고령자취업촉진법의 제정이다. 지금까지 봉투만들기·안내 등과 같은 소극적인 방법을 통해 노인들의 일거리 마련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앞으로는 일정비율의 기업 재취업등과 같은 적극적인 방법으로 취업을 보장하는 법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하나는 이번의 모임에서도 제기된 대로 노인연금제 실시문제이다. 고소득층에 약간의 조세부담을 더 주어 그 자금으로 연금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다. 문제의 소지가 없지 않으나 노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해결해 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검토 있기를 바란다. 이와함께 양로원의 확충문제이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는 전통적인 이유로 양로원 입소를 꺼리고 새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문제를 들어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우리는 숫적으로 너무나 부족한 실정이고 상당수에 달하는 무의탁노인을 위해서도 이것을 확대해야 한다고 여긴다. 노인대책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하고 그것이 이번의 모임을 통해 더욱 확산되고 새롭게 여겨지는 계기가 되기를 당부한다.
  • 5ㆍ16­유신등 헌정 굴곡 한몸에/윤보선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

    ◎군사혁명에 “올 것 왔다” 이듬해 퇴진/대권경쟁 2번 실패… 반 박정희 투쟁 93세의 일기로 타계한 해위 윤보선. 그는 고집의 거목정치인이었다. 그의 일대기는 40년 헌정사의 점철된 굴곡을 그대로 투영해 주고 있다. 이 나라 최후의 구 정치인 1세대의 보루를 지켜온 그는 해방후 손꼽히는 과묵한 선비형 정치가로 입신하다가 조병옥박사를 잃어버린 민주당구파가 그를 보스로 추대하면서부터 무섭도록 고집센 지도자가 되었다. 4ㆍ19혁명후 민주당정권시절 실권은 없지만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지위에 오른 그는 5ㆍ16군사혁명을 만나 고독한 몸부림으로 대처하다가 박정희씨와 두차례나 대권경쟁을 벌여 패했고 만년에 이르러서는 반독재의 강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1961년 5월16일 상오 9시30분 윤대통령은 혁명군지도자 박정희장군과 첫 대좌를 하게되자 그 유명한 『올것이 왔구나』하는 탄식을 지었다. 훗날 해위는 이 대목과 관련,군사쿠데타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온다고 걱정하던 일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구나』하는 탄식조의 말이었다고 해명했다. 그의 생애중 가장 긴 날은 5ㆍ16 새벽부터 17일 밤까지 40여시간이었다. 윤대통령은 매그루더 미8군사령관의 쿠데타군 진압작전의 승인요청에 『적이 집결하고 있는 휴전선을 눈앞에 두고 아군끼리 피를 흘릴 수는 없다』며 거절한 것은 유명한 얘기다. 그는 1897년 8월26일 충남 아산군 음봉면 신정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매우 부유했으며 그의 조부는 육군부장으로서 삼남도포사를 지내는등 무골의 집안이었다. 그는 조부를 따라 서울로 와 소학교를 마친 후 17살때 일본으로 건너가 현 경응대학 전신 중학부에 들어갔다. 20살때 몽양 여운형을 따라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의 실황을 알리는 진단보를 주보로 발간하기도 했다. 22살때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로 유학을 가 3년동안 공부를 하면서 영국과 영국국민성을 배웠다. 그는 언제나 단추 3개가 달린 전통적인 영국식 신사복을 착용하기를 즐겨했는데 이같은 격식도 이때 몸에 익힌 것이라고 한다. 에든버러대를 졸업한 후에도 수년간을 유럽대륙등을 여행하며 세계정세를 살펴본 뒤 35살되던 해인 1932년 여름 16년만에 고국에 돌아왔으며 이때부터 침묵의 칩거생활을 시작했다. 1945년 8ㆍ15해방이 되자 아놀드소장이 군정장관으로 있는 미군정청 농상국고문으로 일했다. 48년 제헌국회의 5ㆍ10선거에 고향인 아산에서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고 이승만박사가 국회의 초대의장으로 당선되자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정부수립이 되고 이승만대통령이 조각을 하면서 서울시장에 그를 임명했는데 이는 그에 대한 이대통령의 각별한 신뢰감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일찍이 19세때 치렀던 민씨와의 혼인은 처음부터 결합이 되지 않았고 민씨에게 딸들이 있었으나 모두 출가시켰기 때문에 서울시장이 된 그로서는 매우 외로웠다. 그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지금의 공덕귀여사(당시 한국여자신학교 교수)와 연분을 맺었다. 서울시장을 6개월여 맡은 그는 다시 임영신장관 후임으로 상공장관으로 전임된다. 6ㆍ25동란중 국민방위군사건이 터지자 당시 대한적십자사 총재였던 그는 이대통령에게 그가 본 처참한 정경을 보고했으나 이대통령은 귀담아 듣지 않고 오히려 역정을 내자 이때부터 이박사와는 인연을 끊고 야당운동에 적극 나섰다. 그는 부산 정치파동을 계기로 야당인 민국당(한민당 후신)에 몸을 담고 54년 5월 제3대 국회의원선거에 입후보하였다. 그는 종로갑구에서 박순천ㆍ주휘한ㆍ장후영ㆍ유석현씨 등 쟁쟁한 인물과 한판 승부를 겨뤄 윤씨이외의 12명 입후보자들의 득표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표를 얻어 압승했다. 56년 5월 정ㆍ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이자 대통령후보였던 신익희씨가 급서하자 민주당은 당을 개편,조병옥박사를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했고 이때 윤보선씨는 당내 구파이면서도 신파의 지지를 얻어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59년 가을 다음해에 있을 정ㆍ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후보자지명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대통령후보에 조병옥박사,부통령후보와 대표최고위원에 장면박사를 선출했고 해위는 신파의 곽상훈ㆍ박순천씨와 함께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그는 구파보스인 조병옥박사가 대통령선거 한달을 앞두고타계하자 조박사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으면서 지금까지의 「과묵한 영국신사」에서 「행동하는 투사」로 변신하게 된다. 4ㆍ19학생의거와 이승만정권의 몰락으로 4대 민의원선거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했고 신ㆍ구파간의 불꽃튀는 협상끝에 그는 60년 8월12일 민ㆍ참의원 양원합동회의에서 제2공화국의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국무총리지명을 하면서 신파의 장면씨 대신에 자신과 같은 구파이 김도연씨를 지명했으나 신파의 벌떼같은 반발로 과반수에서 3표미달로 인준안이 부결되자 하는 수 없이 2차에 장면씨를 지명했다. 그는 5ㆍ16군사혁명 사흘뒤 대통령직 사임을 결심,하야성명까지 발표했으나 이를 번의,이듬해 물러났다. 그는 63년 10월 5대 대통령선거에 민정당후보로 공화당의 박정희후보와 맞서 15만여표로 고배를 마셨으나 스스로를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면서 박정권과의 극한대결에 앞장섰다. 박정권이 65년 타결한 한일협정을 매국이라고 단정,흡사 「아파치족의 추장」처럼 싸웠고 같은해 한일협정 준비파동이 절정에 달할 무렵 의원직 사퇴에 미온적인 민중당 온건파와 손을 끊고 탈당,의원직을 사퇴했다. 67년 4월 6대 대통령선거에서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다시 박정희후보와 숙명의 대결을 벌였으나 1백10여만표차로 패배했다. 그후 그는 정치2선으로 물러났으며 박정권의 유신체제아래서 재야의 거두로서 박정권의 비정을 공격했다. 10ㆍ26으로 박정권이 붕괴되고 5공화국이 출범하자 그는 전직대통령의 위치에서 전두환대통령에게 이따금 조언을 하는등 박정권때와는 다른 우호적 태도를 보였고 노태우대통령의 6공정부에 대해서도 같은 자세를 취해왔다. 해위,그는 60년대 한국정치사에서 대여 극한투쟁의 화신이었다. 굳은 신념에 불퇴전의 강경노선을 견지한 그는 박정권과의 투쟁 당시 이렇게 말했다. 『정책대결이 정당정치의 원형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우리네와 같은 군사독재와 부정부패와 정보정치아래서는 무기력한 대안제시와 무원칙한 타협을 앞세워서야 야당의 사명이 말살되고 만다』 그는 훗날 또 이렇게 말했다. 『싸우는 게 최선이 아니고 싸우는 게 유일한방법일 때 싸워야 한다,정권을 무너뜨리는 게 민주투쟁은 아니다』
  • 북한 9기 인민회의에 비친 권력구조

    ◎「혁명2세대」부상… 김정일체제 구축/세대교체 가속… 50대이하가 55.8%차지/「세습」기반의 핵심… 정책집행 실무 도맡아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층의 55.8%가 50대 이하로 분석돼 김정일후계체제 중심의 점진적인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0일 당국이 지난 5월24일 열린 북한의 제9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구성된 핵심권력층인 로동당 59명,최고인민회의 56명,정무원 88명 등 총 2백3명중 겸직을 제외한 1백47명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연령은 50대 이하가 전체의 55.8%(50대 79명,40대 3명)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60대 51명(34.6%),70대 11명(7.5%),80대 3명(2.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특징을 보면 김일성 오진우(인민무력부장) 박성철(부주석)을 위시한 70대는 권력핵심에 위치,정책 결정분야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허담(외교위원장) 연형묵(총리) 등 주로 테크너크랫 출신인 60대는 정책결정과 행정집행기구의 실질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50대는 김강환(부총참모장) 김용순(당 국제담당비서) 등 친김정일세력이 대부분인 동시 세습체제를 대비한 다음 세대 핵심인물들로 이들의 출신성분이나 경력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출신지역이 알려지지 않은 72명을 제외한 75명에 대한 출신지역별 현황을 보면 북한지역출신(평양 7명,평남 6명,평북 11명,함남 15명,함북 17명,황해 2명,개성 1명)이 모두 59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남한과 인접한 지역출신은 비교적 홀대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남한출신은 양형섭(제주출신ㆍ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의장) 여연구(서울출신ㆍ상설회의 부의장) 등 3명에 불과,그동안 남한출신 인물이 거의 숙청됐거나 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밖에 중국출신 10명,소련출신 3명으로 밝혀졌다. 또 혁명세대별로는 주로 빨치산 출신으로 구성된 65살이상 혁명 1세대가 34명으로 전체의 23.1%를 차지하고 있으며 혁명 2세대(55∼64살) 71명(48.3%) 혁명 3세대(54살이하) 42명(28.6%) 등으로 나타남으로써 혁명 2세대가 거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60년대부터 행정계통에 등장하기 시작한 혁명 2세대는 김일성의 절대체제유지 강화 및 김부자 세습체제를 구축하는 주요기반이며 혁명 3세대는 73년 2월 조직된 「3대혁명소조」를 주축으로 한 신진세대로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아래 세습체제 구축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해방이후 지금까지 북한을 이끌어 온 최고지배층은 김일성중심의 족벌 인맥,항일 빨치산 세대를 포함해 모두 3백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돼 공산국가중 가장 세대교체가 폐쇄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 소비자들 입맛 맞춘 보험상품 쏟아진다(생활경제)

    ◎새로 선보인 인기품목 5종 가이드/한해 걷는 돈 14조ㆍ시장 연 30% 성장/사고횟수 관계없이 보험금을 지급 해외여행/여성가입자 얼굴흉터엔 2배 보상 운전자 복지/회갑때부터 매 5년마다 목돈 배당 장수축하/단체여행ㆍ운동회 전날 150원 내면 최고 1천만원 보장 단체연수 보험가입자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이에 따른 보험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주력상품이던 자동차보험이 적자를 거듭하자 손해보험사는 보장성에 저축성을 겸한 장기상품을 내놓고 판매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손보사는 그동안 계약자가 적은 보험료를 내는 대신 사고때만 보상해주고 사고가 없으면 특성상 보험료를 되돌려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고시 보험금 지급과 함께 만기가 되면 원금에다 이자까지 합쳐 계약자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것이다. 생보사 역시 기존의 저축성 상품에 보장성을 일부 가미함으로써 손보사에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지난해 보험사가 계약자로부터 거둬들인 보험료는 무려 14조원에 달한다. 연 30% 가량 외형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보험사가 이 막대한 현금을 노리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계약자들은 각종 위험을 담보하는 상품의 메리트에 갈수록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휴대품 도난때도 보상 특히 휴가철을 앞두고 국내외 여행시 질병ㆍ사고를 보상해 주고 자가운전자의 위험부담,일상생활에서의 주택관련사고 및 상해,노후설계에 필요한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손보사들이 내놓은 장기저축성 상품에 대해 알아본다. ▷해외여행보험◁ 적은 보험료를 내고 해외여행중 발생한 각종 사고에 대해 보상 받는다. 적립형의 경우 만기때는 보험료에 이자까지 되돌려 받는다. 5년짜리 가입시 월보험료는 3만9천7백원으로 총 2백30만7천5백원을 내고 2백50만원을 되돌려 받는다. 사망ㆍ사고의 경우 최고 1천만원까지 보상해 준다. 계약기간중 사고가 여러번 나도 피해액이 가입금액의 80% 이하이면 매번 보상받을 수 있다. 보험료지급은 여행중 ▲사망 ▲상해ㆍ질병시 치료비 ▲타인의 신체ㆍ재물에 끼친 손해배상금 ▲휴대품의 도난 ▲항공기 납치 등의 특별비용에 대해 현지에서 받을 수있다. 개인뿐 아니라 부부ㆍ가족단위 가입도 가능하며 이 경우 배우자와 가족에 대해 기본보험료를 15% 할인해 준다. 생보사는 기존 가입상품에 해외여행보험 특약을 신설,교통사고 사망이나 불구때 가입금의 2배,기타재해로 사망시 1배,기타재해로 불구시 0.7∼0.1배까지 보상해 준다. S반도체 이봉우씨는 지난 87년 11월 1주간의 일정으로 스위스를 여행중 갑자기 급성맹장염을 앓았으나 1만4천3백21원의 보험료를 내고 3백만원의 치료비를 현지에서 지급받고 수술을 받았다. ▷운전자 복지보험◁ 자동차보험이 보상해 주지 못하는 자손사고 등을 책임져 주고 만기에 환급금도 받는다. 자가운전자가 보상한도 2천만원짜리 5년만기 장기상품 가입시 매달 내는 보험료는 3만4천6백80원. 만기까지 총 2백8만원 가량의 보험료를 내고 2백만원을 돌려 받는다. 계약기간중 사망하면 2천만원의 보상금을 받고 자신의 자동차 사고로 상해를 입거나 구속되면 최고 1백80일 동안 하루 1만5천원씩을 받는다. 또 사고로 벌금을 물게 될 경우 벌금전액을 보상받는다. 영업용 운전사의 경우 보상내용은 같으나 위험부담이 높기 때문에 월보험료는 4만4천9백40원이다. 베스트 드라이버보험의 경우 안전벨트 착용시 사망때는 보험금의 20%를 추가보상해 주고 여성이 사고로 얼굴에 상해를 입어 흉터가 남으면 2배액을 지급하기도 한다. 3년만기 사망보험료 1천만원짜리인 상품은 매달 5만6천원을 내고 각종 위험을 보상받는다. ○2년 지나면 이자 11% ▷21세기 적립종합보험◁ 업계가 지난 6월부터 판매한 보장성과 저축성을 겸한 대표적 상품이다. 따라서 보험료는 상해ㆍ배상책임 위험을 담보하는 보장보험료와 만기환급금의 재원이 되는 보험료로 구성된다. 2년 이상이 지나면 11.25%의 이자까지 합쳐 보험금을 받는다. 3년ㆍ5년짜리가 있는데 사망 후유장해 1천만원,배상책임 1백만원 한도의 3년만기 상품에 가입시 월보험료는 5만1천1백41원. 총 1백84만1천원을 내고 만기시 1백10%에 해당하는 2백21만원을 되돌려 받는다. 보상받는 내용은 상해로 인한 사망 및 후유장해와 자동차 사고,화재로 인한 신체피해,계단에서 넘어져부상당할 때 등 급격하고 우연한 모든 외래사고를 담보해 준다. 배상의 경우는 주택의 소유ㆍ사용 관리에 따른 배상책임이나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에게 신체ㆍ재산상 피해를 입혔을 때의 배상책임 등이 포함된다. ▷단체연수 건강보험◁ 생보사가 팔고 있는 것으로 수학여행ㆍ집단휴가ㆍ스포츠행사ㆍ야유회 등에 발생하는 위험담보 상품이다. 특히 휴가철인 6∼8월과 12∼1월중에 계약자 전체의 80% 가량이 몰리고 있다. 1인당 1백50원의 싼 보험료를 내고 1년동안 사망시 1천만원까지 보상받는다. 가입은 10인이상 단체로 건강진단없이 행사 하루전에 들면 된다. 보상내용은 ▲사망 및 재해장해(1∼3급)시 1천만원 ▲재해질병으로 인한 입원시 하루 1만원,통원시 5천원 ▲장해 4∼6급시 5백∼50만원의 보험금을 받는다. 지난 6월9일 통일전망대로 수학여행을 가던 인천여상 안모양(16)은 차량전복사고로 사망,1백50원의 보험료를 내고 유가족이 1천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봉급생활자에 큰 인기 ▷장수축하연금보험◁ 평균수명이 70살을 넘은 고령화시대에 대비,확정배당금을 생존시 받는 연리에 연계시킨 생보사의 주력상품. 봉급생활자와 중소자영업자에 인기가 높다. 30살 남자가 개인형 가입금액 1천만원짜리에 가입했을때 매달내는 보험료는 3만2천2백원. 25년 만기때까지 생존하면 1백20만원을 받고 64살까지 이 금액에 매년 6만원의 체증된 금액을 받는다. 65살이후 생존시 매년 1백80만원을 받고 60ㆍ65ㆍ70ㆍ75ㆍ80살때는 장수축하금으로 각각 1백만ㆍ1백50만ㆍ2백만ㆍ2백50만ㆍ3백만원을 받는다. 매년 3%의 이자만큼에 해당하는 확정배당금을 생존시 연금에 가산지급받거나 계약이 끝난뒤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다. 한편 55살 이전에 사망ㆍ고도장해시는 매년 2백만원씩의 유족연금이 54살까지 지급되며 암ㆍ재해로 인한 때는 사망금 5백만원을 일시금으로 받는다. 재해로 인한 장해 2∼6급 발생때는 7백만∼1백만원을 받고 질병ㆍ재해로 입원하면 하루 1만원씩을 치료비로 지급받는다.
  • 외언내언

    『돌을 지고 모래를 파니 집이 절로 되고/앞으로 가고 뒤로도 달리는데 발이 많구나/평생을 한 웅큼 샘물 속에서 살아갈 수 있나니/강호에 물이 얼마이건 물어 무엇 하리요』(원문 생략) ◆퇴계 이황이 15살때 게(해)를 보며 지은 시. 그 나이에 이미 철학이 섰음을 알게 한다. 그의 인간적인 생애는 이 시와 같았다고 할 수도 있다. 억지로 내리는 벼슬때문에 평생 네번 서울에 올라갔지만 번번이 낙향해 버리는 사람. 한 웅큼 샘물로 족했으니 강호에 물이 얼마가 됐건 그건 그에게 상관없는 일 아니었던가. 오직 학문의 경지를 깊게 인품의 경지를 높게 하다가 70세 생애를 닫은 성인이었다. ◆이퇴계와 남명 조식과의 이른바 「도의지교」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두 사람은 1501년생으로 동갑. 같은 경상도이지만 퇴계는 좌도에 남명은 우도에 자리잡고 환로에는 뜻이 없는 채 학문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렇건만 죽는 날까지 만나지는 못하고 다섯차례 편지만 주고 받으며 상경한다. 퇴계가 타계하자 슬퍼했던 남명은 2년후 타계한다. 두 스승에게 사사했던 한강 정구는 말한다. 『남명은 천길 절벽같아 길을 찾아들기 어렵고 퇴계는 쪽곧은 길같아 길을 따라들기 쉽다』. ◆길을 따라들기 쉬웠음일까,퇴계의 학문ㆍ사상은 일본학계에 영향을 끼치고 근대의 개화에 기여한다. 우선 일본 유학의 개조라 할 후지와라(등원성와)부터 퇴계의 「천명도설」을 읽고 이기철학을 깨우친다. 그 사상을 이은 야마자키(산기암재),오쓰카(대총퇴야) 등이 명치유신의 사상적 근간을 잡고 그 학통을 잇는 메이지왕의 시강 모토다(본전동부)는 명문으로 유명한 「교육칙어」를 지어 근대교육의 철학을 정립하는 것 아닌가. ◆오는 8월에는 모스크바에서 12회 퇴계학학술회의가 열린다. 지난 11회까지 동양 3국뿐 아니라 미국ㆍ유럽의 수많은 학자가 참석해온 학술회의. 퇴계학은 세계적 학문이다. 다른 선인들의 학문세계도 널리 알려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 영화「아버지」의 가족애/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여행중에 한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아버지(Dad)」. 스티븐 스필버그가 총지휘를 한 미국영화다.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새삼스럽게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능력의 한계가 불가해스러웠기 때문이다. 10년만에 만나보면 옛날에 부부였던 5쌍중에 1쌍도 그대로 부부로 남아 있는 쌍이 없을 지경인 것이 오늘의 미국사회다. 갈기갈기 균열되어버린 그 사회에서 가족애의 기반을 되살려내기 위해 펼치는 그토록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일이 신기하다. 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위선적 환상의 문법을 쓴 것도 아니다. 오늘의 미국거리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흔해빠진 미국인들의 심성 속에서 심해진주를 건져내듯한 수법으로 만들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을 성경대신 삼아 성공만을 지상으로 살아온 장년인 「존」은 아내와는 「물론」 이혼했고 대학생인 아들 「빌리」는 독립해서 떨어져 산다. 증권회사 간부인 존이 눈부시게 활약중인 회사에서 간부회의를 하고 있을 때 누이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80대인 아버지와 단 둘이서 살고 있는 70대후반의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실려갔다는 소식이다. 달려간 존이 노부 제이크 앞에서 깊은 충격을 받는 것은 아버지의 늙음 때문이다. 못본 사이에 조그맣게 오그라들어 쇠잔해 있는 그 노인이 아버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기성이 센 아내에게 자신을 맡기고 스스로 작아져서 그 틀속에 갇혀 눈뜨고 잠들때까지를 보내던 노인은 아내가 쓰러지자 자기를 어떻게 건사할지를 몰라한다. 젊은시절 자동차경주 선수였던 아버지의 패기를 자극하며 갖가지로 노력하여 며칠 사이에 아버지 제이크는 딴 사람처럼 활기를 찾아간다. 아버지 존보다 할아버지 제이크에게서 더많은 사랑을 느끼는 손자 빌리도 마침 찾아오고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할머니도 안정을 되찾아 오랜만에 가족이 모이게 된 자리에서 할아버지 제이크는 순진하게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날밤 제이크는 혈뇨를 보고 겁을 집어먹으며 아들에게 의지한다.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고 암을 적출해 낸다. 아버지가 암을 지독하게 겁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존은 의사에게 그 사실을 제이크에겐 당분간 숨겨주도록 당부하고 집으로 온다. 그러나 「의사로서의 의무」를 앞세운 의사의 통고로,혼자서 암통고를 받은 노부는 그 충격으로 몸을 떨며 발작상태에 빠져 있다. 난폭해질지도 모른다며 훨체어에 손발을 묶고 진정제를 놓아 식물인간처럼 잠을 재우는 것을 보다못한 존은 병원측과 싸워가며 아버지를 싣고 퇴원한다. 그러나 집에 온 제이크는 더 나빠진다.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침대밑에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고 정신이 들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재입원하고 병원장 호의로 의사만을 바꾼다. 식물인간상태가 계속되는 곁에서 존은 사업핑계나 대면서 살아있던 아버지곁을 점점 멀리 떠나버렸던 자신에게 회한을 느낀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도 지켜드리고 그 순간을 가슴에 새기리라』고 다짐한다. 그런 존곁에 돌려보낸줄 알았던 빌도 나타난다. 존이 자리를 비우면 몰래 들어와 할아버지 병상을 지켰음을 알고 존은 빌리를 깊이 포옹한다. 처음 제이크가 암때문에 병원에 왔던날 그는 아들 존에게 수줍게 말한 일이 있다. 『나는 너를 한번도 껴안아 본 적이 없는데…. 한번 안아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늙은 자신보다 두배는 큰 아들을 안으며 짓던 그 수줍음과 신뢰의 느낌을 존은 빌리에게서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몇주간이 지난 어느 아침 아버지 제이크는 깨어난다. 숙면을 하고난 아침처럼 깨어난다. 의사는 자신있게 그것이 「가족의 사랑과 헌신」이었음을 확언하고 박수를 보낸다. 소생한 아버지는 딴사람처럼 되어간다. 명랑하고 활기가 넘치고. 그런 가운데 좀 이상한 짓도 한다. 자기가 마치 딴 가족과 살고 있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의사는 그것을 「성공정신분열증」이라고 밝힌다. 이중인격증상이다. 아내의 내주장에 쥐여있던 제이크는 거기서 해방되어 온순하고 순종적인 아내와 다시 살고 있는 환상 속을 들락날락하는 것이다. 그런 남편의 행동을 한동안 받아주던 늙은 아내 베티는 어느날 분노를 터뜨린다. 『저이는 내 남편이 아니다. 미친 남자말고 내남편을 돌려받고 싶다』고 소리친다. 언성을 높이며 아들과 아내가 다투자 노인은 둘을양팔에 끌어안는다. 그리고 울면서 말한다. 『서로 미워하지 마라. 우리는 소중한 가족이지 않니…』 평온을 되찾고 드디어 암은 재발한다. 마침내 제이크는 『죽는다는 건 죄가 아니다. …살지 않는 것이 죄지…』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경지에서 평화롭게 가족곁을 영원히 떠나간다. 아들에 의해,가족애를 되살린속에서 품위있게 죽은 것이다. 80난 제이크노인역을 맡은 배우가 「잭 레먼」이다. 「뜨거운 것이 좋아」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따위 코미디영화로 올드 팬에게는 아주 친숙한 배우다. 65살난 그의 제이크노인역은 깊고도 원숙해서 코미디배우인 기왕의 이미지를 여러 차원 뛰어넘는다. 노년이 되어서도 총기를 잃지 않고 이렇게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를 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인간의 심해에서 건져올리는 이 가족애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더욱 관객을 위로했다. 너덜너덜 흩어져서 넝마처럼 되어버린듯한 오늘의 미국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구원의 가능성을 실감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나라에서는 근년에 이르러 가족애를 다룬 영화가 부쩍 성행했고 관객도 동원했다. 80년대 벽두에 「강한 미국의 재생」을 기치로 내걸었던 레이건대통령은 그것의 기초가 되는 하나를 가족애의 끈으로 풀이했었다. 현대 미국의 메시지로서 가장 절실한 가족애가 스티븐 스필버그 팀의 손에서 요리되면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높고 그윽한 방법으로 차원높은 메시지를 전하는 이런 영화,우리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 일본뇌염 주의보

    보사부는 최근 경남지역에서 일본뇌염을 옮기는 작은 빨간집 모기가 발견됨에 따라 23일 전국에 일본뇌염주의보를 발표했다. 보사부는 이와함께 감염이 되기 쉬운 3∼15살짜리 어린이와 노약자에게 늦어도 6월말까지 뇌염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모기의 발생ㆍ서식장소인 돼지우리주변,하수구,지하실등의 소독을 철저히 하도록 각 시도에 지시했다.
  • “밀린 방세 내라”집주인이 방화/셋방 5살여아 숨져

    【의정부=김동준기자】 1일 하오10시쯤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2동 436의4 이주범씨(32ㆍ배관공)집에서 이씨가 세들어 사는 공수봉씨(33)에게 『밀린 방세 6만원을 내라』면서 20ℓ들이 프로판 가스통을 틀어놓고 불을 질러 같은 세입자 김생영씨(38)의 딸 미경양(5)이 숨지고 가스통을 빼앗으려던 세입자 임종환씨(32)가 얼굴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으며 1백㎡ 규모의 목조 슬레이트 건물이 모두 불에 탔다. 임씨 등에 따르면 이날 이씨가 부인 김요성씨(26)와 함께 술에 취한채 공씨방에 찾아와 방세를 독촉하며 발로 걷어차는등 행패를 부려 공씨가 집밖으로 나가버리자 장독대의 가스통 호스를 칼로 자른뒤 가스통을 들고와 방문앞에 놓고 밸브를 열어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이씨는 집주인 손기득씨(53)에게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1만원을 주고 세내 공씨등에게 다시 보증금 10만원,월세 6만원에 세를 내주는등 모두 7가구가 살고 있다.
  • 20세기 마지막 남은 「절대군주」/네팔 비렌드라 국왕은 누구

    ◎하버드대 출신… 72년 즉위 후 전권 장악 50일 가까운 민주화 시위로 사면초가에 빠져들고 있는 네팔의 비렌드라 국왕(44)은 세계유일의 힌두교 국가 국왕이자 마지막 남은 절대 군주중 한사람이다. 네팔 최초의 서구식 교육을 받은 통치자 이기도 한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갖가지 소요사태로 시달려 왔으며 지난 2월중순부터 시작된 다당제 민주화 시위는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어서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2차대전 종전직후인 45년 12월28일에 태어난 그는 5살때 국내혁명으로 이웃나라 인도로 피신하는 비운을 맛보았으며 이때 그가 경험한 혼란은 그뒤 그의 인생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55년에 즉위한 그의 부왕 마헨드라의 명으로 59년부터 64년까지 5년 동안 영국 이튼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그뒤 일본의 도쿄대학과 미국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72년1월 부왕인 마헨드라가 사망하자 네팔 「샤」왕조의 10대 국왕으로 즉위,행정ㆍ입법ㆍ사법에 걸친 절대권력을 잡았다. 비렌드라 국왕은 집권이후 그의 부왕이 도입한 「판차야트」체제(전통적인 촌락회의 형태)의 정당성을 강조,『비록 민주주의가 가장 최선의 통치형태이긴 하지만 규제가 없으면 붕괴되기 쉬운 제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후 비렌드라는 지난 79년 7주간에 걸친 학생들의 반왕정폭동으로 집권후 최초의 시련에 봉착했다. 그는 개혁주의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상 최초로 「판차야트」존속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국민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통치권을 부여해 주고 있는 「판차야트」체제에 55%의 찬성표를 던졌다. 독실한 힌두교 신자들로 부터 비슈누신의 화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외부세계에는 경건한 이미지를 심어왔다. 지난 88년 자신의 43회 생일을 맞아 30명의 정치범을 포함한 1백77명의 죄수들을 사면하기도 했던 그는 네팔의 제2인자인 아이수와랴 왕비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그의 가족들은 대규모 사업체를 경영,부유하게 살고있어서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으나 자신은 평범하고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김현철기자〉
  • 동독총선 개표 돌입/사민ㆍ기민당 선두 각축/첫 자유총선 이모저모

    ◎통독열기속 투표율은 80% 웃돌아 【동베를린=김진천특파원】 동서독의 통일문제와 관련,세계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18일 상오 7시(한국시간 하오 3시) 전국 15개 선거구 2만2천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된 동독 최초의 자유총선이 18일 하오 6시(한국시간 19일 상오 2시) 순조롭게 끝나 각 선거구별로 개표에 들어갔다. 이날 동독 총선은 선관위가 근무교대하는 야간 근무자들을 위해 공식투표 시작시간 보다 2시간 앞선 상오 5시 특별기표소를 개방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번 선거에서는 서독의 자매정당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사민당(SPD) 기민당(CDU) 자유민주연합(BFD) 등이 상위 그룹을 형성할 것으로 보이나 선거전날까지도 선택을 망설이고 있던 부동표가 35%나 됐었다는 표본조사 결과로 미루어 이들 부동표의 향방이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망된다. 또한 몰락한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사회당(PDS)도 선거전 종반전에 이르러서는 지지도가 다소 회복되는 분위기로 바뀌어 일정수준의 득표는 가능 할 것으로 점쳐진다.한편 이곳 관측통들은 사민당이 다수당이 될 경우는 자유민주연합이나 노이에스 포룸 또는 녹색당 등을 연정 파트너로 택할 가능성이 높으며 기민당이 제1당이 되면 독일동맹구성 정당인 민주주의자각당(DA) 및 독일사회동맹(DSU) 등과 연정구성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투표현장등 지켜봐 ○…이번 선거에는 지난 75년 체결된 헬싱키협정에 따라 34개 유럽안보협력회의 회원국들이 감시단을 파견,「공정한 선거」 실시여부를 현장감독. 또 미국은 대사관 직원과 6명의 미의회의원으로 구성된 자체감시단을 투입,만의 하나 있을지도 모를 「부정선거」 원천봉쇄에 나서기도. ○…투표 당일인 17일은 기온이 섭씨 20도를 상회하고 쾌청한 날씨가 될 으로 예보됐으며 이번 투표가 강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투표율은 90%에 달할 것으로 한 여론조사는 전망했다. 또한 선거전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독과의 점진적 통일을 바라고 있는 SPD가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3개 보수정당 연합의 독일동맹이 그뒤를 바짝 쫓고 있고 전 공산당이 개명한 민사당(PDS)이 3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호원과 투표장에 ○…한스 모드로브 동독총리도 18일 「한표의 권리」를 행사. 모드로브는 이날 동베를린 시내 한 학교 교실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다른 유권자들속에 섞여 약15분간을 기다린 끝에 투표. 두명의 경호원과 1명의 군보좌관과 함께 투표장에 나타난 모드로브는 『내가 아는 한 이번 선거 캠페인은 공정했다』고 말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난후의 계획을 묻는 기자질문에 『평범한 의원으로 국가에 봉사할 준비가 돼있다』고 담담한 심중을 털어놓기도. 모드로브총리는 또 자신이 속한 민사당(PDSㆍ전공산당)이 많은 당선자를 내 『새 의회에 진출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첨언. ○정당 결정 못해 당황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자유총선을 치르게 된 대부분의 동독유권자들은 투표직전까지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당황해 하는 모습. 공장노동자인 25살의 마누엘라 포커트씨는 『우리에게 이번 선거는 무척 힘든 것이다. 우리는 아직 한번도 자유선거를 치러보지 못했기 때문에나 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도 어느 당을 지지해야할 것인가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 ○과반수 확보는 힘들 듯 ○…무려 24개 단체와 정당이 참가,어느 정당도 이번 선거에서 과반수이상 의석을 얻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통들의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보수정당연맹인 「독일동맹」과 서독 사민당의 지원을 받고있는 동독사민당은 제각기 35%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 ○신중한 한표를 호소 ○…동독일간지인 베를린라이너지는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에게 속지말도록 경고하기도 했는데 이 신문은 『여행사 선전책자 속의 멋진 해변이 자갈밭으로 드러났을 땐 여행사를 고소할 수 있지만 선거전에 남발한 공약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땐 고소할 수 없다』면서 신성한 한표를 신중하게 행사할 것을 당부.
  • 입양딸 친부모 찾아주오/미국인 본사에 편지 보내(조약돌)

    ○…미국인 로버트휠러(48ㆍ여ㆍ워싱턴주 우딘베리시)씨는 17년전에 입양한 딸 셸리정양(정희준ㆍ22)의 친부모를 찾게해 달라는 편지를 11일 서울신문사에 보내왔다. 휠러씨는 이 편지에서 지난73년 1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5살난 희준양을 양딸로 입양시켜 키워왔으나 희준양이 영어를 말할수 있게된 7살때부터 『우리 엄마ㆍ아빠는 어디에 있으나』고 친부모를 애타게 찾기 시작,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시애틀에 있는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면서도 계속 한국에 있을 부모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희준양은 72년 11월20일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언니(당시 6살)와 함께 부모를 따라 집을 나섰다가 혼자 길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휠러씨의 연락처는 Robert Wheeler 15722­161 ST Ave Ne Woodinville,WA 980272 U.S.A.
  • 「근로자의 날」 훈장받는 “다림질 아줌마”박옥분씨

    ◎노사 「불신의 주름살」편다/남편 사별뒤 20여년간 봉제공으로 일해/후배­회사 애로 전달 창구,화합의 감초역 20년을 한결같이 다림질만해온 50대 봉제공 아주머니가 훈장을 탄다. 근로자의 날인 10일 평범한 근로자로는 최고의 영예인 동탑산업훈장을 받게된 평안섬유 서울공장 봉제공 박옥분씨(55). 1백50여명의 이 공장 생산직 근로자들은 9일 상오 박씨의 서훈소식이 전해지자 『코뿔소아줌마 만세!』를 외쳐댔다. 「코뿔소아줌마」란 박씨의 억척스런 생활자세는 물론 코뿔소를 상표로 하고 있는 평안섬유의 대표근로자란 뜻을 지닌 자랑스런 별명이다. 박씨는 그만큼 기구하도록 어려운 역경을 헤쳐냈고 거의 모두 딸같은 동료근로자들의 훌륭한 언니로서의 역할을 해온 것이다. 박씨가 이 회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70년,나이 서른다섯살 때였다. 경기도 강화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박씨는 25살때 결혼했으나 남편은 오랜 투병끝에 결혼 5년만에 어린남매와 빚더미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당장 어린 남매를 키우려니 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박씨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주어질리도 없었다. 할수없이 얼마동안 떠돌이 보따리장사로 연명했다. 그러다보니 어린자식들을 위해 어디든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그래서 취직한 것이 평안섬유의 하루 2백20원짜리 다리미공 자리였다. 쌀 한가마에 6천원하던때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지만 일정한 직장을 구했다는 것만 해도 기적같은 일이었다. 30도이상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철이면 1백도가 넘는 다리미의 열기에 온몸이 녹아 들것 같았지만 박씨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다리미에서 프레스로 기계가 바뀐 이 일을 천직이라 여기며 계속하고 있다. 지금 박씨의 일당은 8천3백원. 보너스에 수당까지 다합쳐 40만원이 조금 넘는 액수지만 「2백20원짜리 시절」의 암담함을 생각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난다고 했다. 두 남매에게 쏟은 박씨의 정성또한 헛되지 않아 코흘리개였던 아들(30)은 공고를 졸업하고 의정부에서 배터리가게를,딸(28)은 여상을 졸업한 뒤 을지로에서 오프셋인쇄사무소를 하고있다. 『남매에게 대학공부를 시켜주지 못한 것이 가슴에 맺히지만 그애들도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어엿한 사장님』이라며 박씨는 활짝 웃었다. 박씨는 특히 미혼여성근로자가 90%에 가까운 공장에서 딸같기만한 근로자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직접 돌보거나 회사측에 건의해 대책을 마련하는 등 상담역을 자청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이성교제나 결혼문제에서 부터 회사에 대한 불만사항 등에 이르기까지 허심탄회한 의논상대가 된다. 지난80년 회사가 부도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때 박씨는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면서 두달동안 밀린 임금을 받지못해 동요하는 어린근로자들을 달래며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한몫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최근 수년사이 유행병처럼 번졌던 노사분규를 우리회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것도 박씨의 숨은 공로』라는 것이 문봉영사장(58)의 말이었다. 그만큼 서로 화합하고 돕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앞장섰던 것이다. 이 회사 노조위원장 김옥희씨(49)도 『코뿔소아줌마의 존재는 우리 근로자들에겐 눈에 안보이는 정신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제2의 퇴직금” 「기업연금」생긴다/6개 생보사… 도입연구 착수

    ◎오른임금 일부 적립… 퇴직후 매년 지급/노사 추가부담 없어… 빠르면 내년실시 기업연금제도의 국내도입이 언제쯤 이뤄질 것인가. 기업연금은 현행 퇴직금제도를 발전시킨 것으로 근로자가 기업체에 근무하는 기간동안 매년 임금인상분 가운데 일부를 떼내 적립했다가 퇴직후 사망시까지 매년 일정액을 지급받는 사회보장제도이다. 근로자들은 퇴직 후에도 사망할 때까지 해마다 회사로부터 꼬박꼬박 연금을 받게 되므로 재직시 회사에 대한 애착이 커지고 퇴직후 소속감도 높아져 회사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의 퇴직금은 기업이 자체자금에서 일정액을 떼내 적립했다가 퇴직시 지급하는 것으로 재원이 종업원의 부담없이 조성된다는 점에서 기업연금과 구별된다. 따라서 노사 어느쪽도 추가적인 부담은 없는 셈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88년부터 국민연금제도를 도입,근로자로부터 연간 소득액의 1.5%,기업으로부터 똑같은 금액을 거둬 적립했다가 퇴직후 근로자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해 주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으로 받는 금액은재직시 평균임금의 40%수준(임금대체율)에 불과한 실정이다. 따라서 기업연금제도가 도입되면 임금대체율이 선진국 수준인 60∼70%로 높아질 수 있다. 이 제도의 도입이 거론되는 것은 최근 과격한 양상을 띤 노사분규를 진정시켜야 할 필요성이 커진데다 국내 경제수준이 지난 62년 기업연금제도를 실시한 일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현재 전체의 5%안팎인 65살 이상의 노령인구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어 노후보장의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연금은 국민연금과 개인보험등 현행 사회보장제도의 미흡함을 보완해주는 중요한 제도라 할 수 있다. 미국ㆍ일본ㆍ영국 등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시행하고 있다.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에 가장 먼저 눈을 뜬 곳은 생명보험회사이다. 보험사들은 이미 도입에 대비,전담팀을 구성하고 상품개발에 나서는등 사전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삼성생명은 업계 최초로 지난해 11월 대리급 5명으로 전담팀을 구성,일본의 제도를 치밀하게 조사 연구하고 있다. 대한생명은 연초부터 기업보험팀에서 이 문제를 전담,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교보ㆍ흥국등 6대 생보사로 꼽히는 나머지 보험사들도 저마다 사전준비로 바쁜 모습이다. 생보사들은 먼저 상품개발을 위해 외국의 제도를 토대로 약관ㆍ사업방법서ㆍ요율산출 및 판매관리시스템 등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진행중. 기업연금상품의 개발은 현재 보험사가 은행측으로부터 업무영역 개방압력을 받고 있는 종업원퇴직보험을 대체키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즉 보험사들은 각 기업이 자체관리하고 있는 1조3천억원 규모의 퇴직금을 유치하고 있는 기득권을 활용,이 제도가 도입돼도 연금의 절반을 확보하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앞으로 기업연금의 절반을 확보하기 위해 적정이윤과 함께 근로자가 사망하면 3백만원의 사망보상금을 따로 지급하는 등의 메리트를 주는 상품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업계는 이 제도의 도입시 그 성패는 가입기업에 대한 세제해택 여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현행 종업원퇴직보험 가입자와 마찬가지로 기업연금납입보험료를 복리후생비로 손비처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기업이 이 제도를 도입하면 한꺼번에 대량감원 사태가 올경우 자금압박을 피할 수 있으며 근로자들의 복지 및 퇴직후 생계보장을 통해 노사분규가 사전에 예방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현행 퇴직금은 기업이 평균 퇴직률을 감안,퇴직금을 쌓기 때문에 대량해고시 그 자금을 조달하기가 불가능하다. 당장 눈앞의 임금인상폭을 놓고 더 달라거니,못 주겠다거니 하는 최근의 노사대립양상도 앞으로는 그 관심이 퇴직후 생계보장쪽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라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은 시간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같은 경향은 특히 노사분규양상이 장기대형화하는 대기업일수록 더하다. 일본의 신일철사가 최근 계속된 불황으로 직원의 대량해고가 불가피하게 되자 5백억엔에 달하는 퇴직금지급 부담때문에 올해 기업연금 제도를 도입한 사실은 국내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는 계열사인 삼성생명의 활발한 연구에 힘입어 삼성그룹이 가장 먼저 이 제도를 도입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또한 현대ㆍ대우ㆍ럭키금성그룹도 이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그룹차원에서 검토를 진행중이다. 반면 근로자대부분은 일반적으로 국내기업의 존립기간이 평균 30년에 지나지 않기때문에 기업에 노후생계를 맡기는 것이 불안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사간에 이 제도도입을 위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신들의 살길을 위해 이 제도도입에 적극적인 생보업계는 빠르면 내년부터 시행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나름대로 낙관적인 전망. 이를 위해 업계는 곧 공동상품을 개발한뒤 하반기쯤 당국에 인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그 이후 제도적보완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늦어도 내년부터는 기업연금제도를 실시하는 기업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무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본은 회사가 종업원의 재직시 업적에 대한 보장을 퇴직후에 해준다는데 근로자와 자율적으로 합의해 일찍부터 시행했다』면서 『우리도 노사간에 임금개념을 일시금과 연금중 어느 것으로 할 것이냐에 대한 컨센서스를 이루는 것이 도입시기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밝혔다.
  • “탈환각”…새삶찾는 비행소년들/서울시 아동상담소「희망교실」을 가다

    ◎한때 본드 마시고 범죄 수렁에/도봉산 오르며 재기의 구슬땀/연극 공연ㆍ토론하며 지난날의 잘못 뉘우쳐 봄기운이 물씬한 주말의 도봉산,가파른 산등성이를 앳된 모습의 소년 여남은명이 비지땀을 흘리며 오르고 잇엇다. 「희망교실」이란 표지판을 앞에 들고 기울기 70도가 넘는 비탈길을 한발짝씩 힘겹게 옮길때마다 『할수 있다』 『할수 있다』고 그들은 소리쳤다. 그 뒤로는 쉰살이 훨씬 넘어 보이는 수녀 한명과 30대중반의 수녀가 따라가며 『잘한다』 『잘한다』라고 소년들의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산밑에서 대열을 지어 출발한지 두어시간 남짓지나 그들은 산꼭대기 만장봉에 올랐다. 그들을 산정에서 『우리는 해내고 말 것입니다』라고 힘차게 외쳤다. 되돌아오는 메아리도 힘차게 들렸다. 그리고 한자리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은뒤 토론에 들어갔다. 국민학교 6학년인 13살때 담배와 술을 배우고 중학교 1,2학년에 본드 등 유사환각제의 유혹에 넘어가 「비행」의 길로 빠져든 소년들이 재기의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시중에서 손쉽게 구할 수있는 본드며 연료용가스 등 유사환각제를 흡입하다 보니 어느틈에 특수강도ㆍ절도ㆍ장물취득ㆍ폭력ㆍ부녀자희롱 등 범죄의 수렁에 빠져 결국은 경찰에 붙들린뒤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명령을 받은 불우한 소년들. 법무부 서울보호관찰소(소장 강지원검사)가 지난주 법원으로부터 수강명령을 받은 10대비행청소년 가운데서 뽑은 본드 등 유사환각제 흡입경험이 있는 14∼18살 소년 16명을 수녀들이 교육을 맡고 있는 서울시립동부아동상담소(원장 조잔뽀리나 수녀ㆍ54)에 보내 교육받도록 했다. 상담소는 이에따라 「희망교실」이라는 특수교육과정을 개설,지난 1주일동안 약물남용의 해독에 대한 강의와 심리검사ㆍ부모상담ㆍ연극공연ㆍ자유토론ㆍ시청각교육 등을 실시했고 등반극기훈련도 시킨 것이다. 때마침 서울 영등포구 대림천에서 고교생 2명이 본드를 마시고 환각상태에서 국민학교 후배인 14살 소년을 마구 때려 실신시킨뒤 모래밭에 생매장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 유사환각제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더욱 높아져 있었다. 지도교사 김안나수녀(33)는 점심시간뒤 교육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 유사환각제와 관련한 자유토론을 갖게 했다. 16명의 평균연령은 15.5살인데 이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성모군(14ㆍM중 1년중퇴)이 맨먼저 나와 스스로를 반성했다. 『지난해 가을 얼떨결에 본드를 마신 뒤로는 모든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어요. 공부해야지 마음먹고 책상앞에 앉으면 담배생각이 나고 또 본드깡통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지요. 그러면 이기지 못하고 친구를 불러 본드깡통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가곤 했어요』 성군 역시 대다수 비행청소년들이 그렇듯이 결손가정의 소년이었다. 어머니가 포장마차를 운영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아버지의 주벽이 워낙 심해 툭하면 매질을 당하곤 했다는 것이다. 88년과 89년 두차례나 경찰에 붙들려 모두 9개월동안 소년원에 수감돼 있다 나온 문모군은 『2년동안 본드를 마셔 아예 폐인이 되는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가누기조차 힘들었던 몸도 좋아졌고 최근에는 기분도 좋다. 완전히 본드의 맛을 아주 잊을때까지 더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으며 조심스레 한때 등졌던 가정과 사회로 새 발걸음을 내 디뎠다. 법무부는 전국에서 수만명의 10대 청소년이 환각약물을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이들에게 적극적인 사회적응 훈련을 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마련한 프로그램이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이같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예정이다.
  •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과 기대/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사상의 한 맥을 주도한 칼 포퍼의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이라는 저서는 그가 히틀러에 의한 오스트리아 침공소식을 처음 접했던 1938년으로부터 1943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 등을 다루면서 『전쟁이나 그밖의 어떤 현대적인 사건들중 어느 것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건들과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문제들 중에는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발생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비판적 합리주의 공감 그러한 문제들의 예로 우리는 전체주의ㆍ권위주의ㆍ인종차별주의ㆍ부족주의 또는 그의 포괄적인 술어를 빌린다면 역사(결정)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에 이어 마르크스를 비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에 따르자면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이 좀더 좋고 좀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보려는 끊임없는 위험스러운 투쟁을 벌이는 사이에 만들어진 실수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엄격한 합리적 비판이 요구된다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그 이론이 지닌 놀라운 도덕적 호소력과 지적 매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작은 지면에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의 집필동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은 차마 함부로 비교될 것은 못되지만 이른바 민중예술에 대한 필자의 심정이 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대학생활은 1962년부터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에서 제대한 1964년 여름부터이다. 이때 대학들은 이른바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또는 6ㆍ3사태로 들끓었고 그 열풍이 지나간 2학기의 캠퍼스는 그야말로 마른 잎들만이 뒹구는 들녘과 같았다. 이 메마른 대지에 다시 싹을 틔우려는 여러가지 노력들중의 하나가 문화운동이었고 그 한가지 표현이 탈춤인 셈이었다. 향토의식 초혼굿이라는 행사가 그 대표적인 활동이었던 바,필자도 예컨대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에서 북곽선생이라는 역을 맡아 다가오는 추위와 맞서보기도 하였다. 1969년 서울신문의 서울문예평론 모집에 당선되었을 때,그 내용이 민속극을 다루는 것이 되었던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마지막 귀절에서 필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을 통한 긍정의 세계관,갈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멋스럽게눙쳐 몸으로 받아치는 실감,모든 잡다한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너ㆍ나의 대립을 초극한 우리만을 있게 해주는 우리 민속극의 활개짓을 「오늘ㆍ여기」에서 펼쳐주는 창작적 민속극의 출현이다』라고 쓴 바 있다. 25살 청년의 치기가 아직도 묻어나지만 이러한 주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가를 풍미한 마당극의 출현을 마치 예감한 듯 싶기도 하다. 필자 스스로는 교회를 거점으로 삼은 창작적 민속극(판소리 포함)에 좀더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그 비슷한 작업들도 비교적 열심히 구경한 셈인데 어느날 그만 벽에 부딪치고 만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그것은 김지하의 「비어」를 읽었을 때였다. 대학시절의 인연도 작용하면서 그의 작품들에서 창작적 민속극의 가능성을 가장 확실하게 읽어내던 필자로서는 대연각 화재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고관」이라는 소품에서 비롯 그것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될 위인들의 죽음일지언정 그 죽음이 한낱 분풀이를 위한 우스개감으로만 다뤄질 때 섬뜩한 느낌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동기의 순수성은 인정 그러면서도 그후 「민중의 소리」가 그의 작품이라고 소문이 났을 때 필자는 아직 만일 그것이 그의 작품이라면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했거나,아니면 그것이 전혀 그의 작품이 아니거나 둘중의 하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1976년 독일에 유학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 「민중의 소리」를 김지하의 작품으로 믿어 의심치 않아 이를 일어ㆍ영어ㆍ독어 등으로 번역하여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는 운동이 열성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필자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단지 위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아니면 필자를 사이비 내지 사쿠라로 매도하기까지 한 일도 있다. 왜 나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것은 결국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밖에서 「피ㆍ피ㆍ피」를 외치는 와중에 명동성당의 한 부속건물에서 이루어진 문학강연에서 김지하 시인이 「살림」론을 차분하게 강연했을 때 필자는 그에게서 여전히 이러한 믿음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인 죽임에 의해 희미해져가는 삶을 되살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문학도 그러한 살림의 일환이다. 그러나 살림은 규모가 있어야 한다』 ○신명과 품위의 조화를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중예술을 주도하던 몇몇 일꾼들이 「현장」을 떠날 때,때마침 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이는 개혁의 물결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그것 봐라』 하는 음성이 제법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기」마저 그릇되었다고 질타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예술과 현실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지만 칼 포퍼의 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바로 그 핵심적인 인물들의 자성에 힘입어 우리가 공허하지 않으면서 신명과 품위가 조화된 본래적인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
  • 룸살롱 남녀종업원등 4명 피살/어제 새벽 구로동

    ◎20대 두 손님,외박 거절하자 온몸 찔러 29일 상오1시5분쯤 서울 구로구 구로2동 808의40 지하 「샛별」룸살롱(주인 오병로ㆍ31)에서 종업원 김창환군(16ㆍY공고 1년ㆍ관악구 신림6동),김은희양(19),강민정양(18)과 이웃 보영당구장 종업원 유영범군(16ㆍY공고 1년ㆍ성동구 성수2동) 등 10대 4명이 예리한 흉기에 온몸을 찔려 숨져 있는 것을 같은 건물 1층 미희카페 여주인 원미자씨(49)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원씨는 『자정쯤 영업을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아래층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20분쯤 뒤에 내려가보니 김양은 지하출입문 밖에,유군은 홀 안에,김군은 내실에서 각각 숨져 있었고 강양은 홀안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이 일어난 술집에는 계단입구에서부터 피가 흥건히 괴어 있었고 홀 출입문 앞쪽과 벽면 곳곳에도 핏방울이 묻어 있었다. 숨진 김양은 왼쪽 어깨와 배 등에 14군데나 칼자국이 나있는데다 왼쪽 귀가 떨어져 나갔으며 유군은 목이 절반쯤 잘려 있었고 여종업원 2명은 옷이 모두 벗겨져 있었다. 중상을입은 강양은 출동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다 숨졌다. 경찰은 28일 하오9시쯤 스포츠머리를 한 25살가량의 청년 2명이 들어와 숨진 강양과 함께 한시간동안 양주 1병과 맥주 2병을 마신뒤 밖으로 나갔다가 하오11시40분쯤 다시 찾아와 강양에게 외박을 요구했었다는 주인 오씨의 말에 따라 이들이 범인일 것으로 보고 뒤를 쫓고있다. 경찰은 강양에게 외박을 강요했던 청년들이 지난해 연말과 지난 21ㆍ25일에도 이 술집에 찾아와 술을 마셨고 이웃 고목카페에도 자주 들렀다는 오씨의 말에 따라 이 청년들이 오씨가 나간뒤 다시 찾아와 종업원들과 시비를 벌이다 살인극을 벌인 것으로 보고 구로경찰서 오봉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설치,1m75㎝정도의 키에 호남지방 말씨를 쓰는 두 청년을 찾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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