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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vs 세븐 빅뱅콘서트

    비 vs 세븐 빅뱅콘서트

    외모,노래,춤에서 인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가수가 막바지로 치닫는 여름,휴가 못간 ‘피 끓는’ 청춘들을 앞다투어 부르고 있다.이들과 함께 마음 속에 가둬 둔 열기를 한 번 제대로 분출시켜 볼 수 있는 기회다. 27·28일 이틀에 걸쳐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8월의 마지막 휴가’라는 제목의 콘서트가 열린다. ‘BABY,Come On!’이라는 부제에서 느껴지듯 화끈하고 화려한 무대가 준비돼 있다.드라마 ‘풀하우스’로 안방극장까지 접수한 가수 비가 모처럼 라이브 무대에서 팬들을 만난다.자유분방한 공연으로 항상 청중들을 매료시켜온 DJ DOC와 부드러운 발라드의 성시경이 한자리에 오르는 것도 팬들을 설레게 만드는 요소.기획사측은 공연장을 테마파크처럼 만들어 관람객이 가수의 노래를 즐기며 마치 푸켓,지중해 등지로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꿈 잘 꾼 관람객들은 진짜 크루즈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상품권도 받을 수 있다.(02)2166-2640. 28·29일 서울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이 떠들썩해진다.가요계 외모지상주의에 쐐기를 박은 빅마마,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세븐과 휘성,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거미가 다시 뭉쳤다.올해는 ‘솔트레인 2004’란 이름으로 관객들을 찾아간다.‘YG&M-Boat’ 소속인 이들은 정기적으로 한 무대에 서서 뛰어난 라이브 실력만큼이나 끈끈한 우정을 과시해왔다.R&B,솔,블루스,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한꺼번에 맛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공연이다.이번 공연에선 특히 휘성,빅마마,거미가 신곡을 발표한다고 하니 팬들의 구미가 더욱 당길 듯하다.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부산(9월11일) 수원(10월16일) 대구(10월23일) 등에서 열창의 무대를 이어간다.1544-1555.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세븐을 들어야만 하는 이유 힐리스(바퀴 달린 운동화)를 타고 마술을 하던 미소년에서 진정한 가수로.아이들(idol) 스타 세븐의 1년 새 변화를 말하자면 이렇다.지난해 1집 ‘Just Listen’으로 가요팬들에게 수줍게 말을 걸던 그가 2집 ‘Must Listen’으로 당당하게 돌아왔다.한층 세련된 음악에 성숙해진 보컬.게다가 더욱 화려해진 춤솜씨까지.‘꼭 들어보라’며 업그레이드돼 돌아온 지 한달 남짓.하루 많게는 7∼8개 스케줄을 소화할 정도로 바쁘다.“힘들고 피곤해도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에너지가 솟구친다.”고 말하는 그에게 가수는 ‘천직’이다. ●1집과 2집의 차이를 느끼나. -물론이다.음악이 달라졌다.곡,사운드,녹음 면에서 1집보다 월등하다.1집 때 활동하던 내 모습을 보면 뭔가 어색하고 부족하고 어려보인다.그렇다고 지금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눈이 높아졌다.그게 발전이다.눈이 높아지면 하는 게 달라지지 않나. ●이제 힐리스 안 타나. -안탄다.힐리스 덕도 많이 봤지만 잃은 것도 있다.어린 짓 하니까 10대만 좋아하는 음악만 한다는 편견이 생겨서 좀 억울했다.그래서 이번 2집에선 고급스럽고 성숙한 음악을 해보자고 했고 1집 때 마이너스된 부분을 좀 끌어올렸다. ●무대 체질은 타고 났나. -2살 때부터 어른들 앞에서 춤췄다고 한다.내가 기억나는 건 5살때부터다.집에 있던 원탁을 무대 삼아 공연을 많이 했었다.(웃음)가수가 되고 싶다고 결심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다.여느 아이들처럼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과 노래를 보고 한마디로 ‘감전’됐다.중3 때 YG엔터테이먼트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다.가수가 꿈이셨던 아버지는 “무조건 밀어주겠다.”고 하셔서 행복했다. ●미국 가수 어셔를 따라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타이틀 곡 ‘열정’ 때문일 거다.같다면 힙합에 신시사이저를 이용했다는 거다.이런 어번(Urban) 힙합은 어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 세계에서 유행 중인 음악이다.다만 어셔가 한국에 와서 ‘Yeah’를 부르면서 이 생소한 장르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내 노래가 어셔와 똑같다면 피아노를 사용한 발라드 음악은 다 똑같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컬이 많이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는다.연습을 많이 하나. -연습 시간은 따로 갖지 않는다.일상생활이 다 연습이다.노래를 부르기보다 듣는 걸 더 많이 한다.들은 노래를 항상 흥얼거리며 다닌다.장난 같지만 도움이 많이 된다.입에 달고 사니까. ●가수의 탤런트 진출이 유행이다.연기해 볼 생각은 없나. -연기하자는 제의가 심심찮게 들어온다.하지만 일단 최고의 가수가 되는 게 내 꿈이다.잘 하는 가수,실력있는 가수 소리 듣고 싶다.그러고 나서 연기도 할 수 있고 개그맨도 할 수 있다.지금은 노래에만 전념하고 싶다.(기자가 그를 가리켜 연예인이라고 말 하면 “가수”라고 꼬박꼬박 정정했다.) ●손가락이 참 긴데 악기를 잘 다루나. -초등학교 합주부에서 트럼펫을 불었다.그 때 친구들의 악기를 이것저것 연주해 봐서 웬만한 걸로 ‘학교종이 땡땡땡’ 정도는 할 수 있다.그런데 제대로 하는 건 하나도 없다.이게 최대 단점 같다.(웃음)기타도 배웠는데 요즘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 ●세븐 하면 ‘착하다’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어떻게 아시는지….(웃음)아마 라디오나 토크쇼 등에서 가수 세븐이 아닌 최동욱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여져서 그런 것 같다.난 말할 때나 행동할 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한다.그래서 잘 봐주시는 게 아닐까.(웃음)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흑… 흑… 흑… “원래 성격은 활발하고 까불까불해요.” 그런데 마주 앉은 세븐은 쫙 빼입은 검은 옷 때문인지 전혀 달라 보였다.조용하고 진지함이 지나쳐 때때로 어두워 보이기까지 했다.무리한 일정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가? 그는 이날 2시간밖에 못 잤다고 털어놨다.인터뷰 도중 딱 한 번 환하게 웃었던 세븐.악기 연주에 대해서 말할 때다. 그렇게 빡빡하게 사니까 사고도 나고 그러지 않느냐고,그룹 ‘원티드’의 얘기를 슬쩍 꺼냈다.“안타깝죠.”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더니 말하기 싫다는 듯 힘없이 내뱉는다.말하는 투로 봐서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원티드’의 멤버 서재호와 별로 친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가 무대 위로 올라가기 위해 검은 색 재킷을 입는 순간 눈에 띈 흰색 리본.리본에 대해 묻는 말에도 입은 좀체 움직이지 않았다.하지만 굳어지는 얼굴색으로 알 수 있었다.그가 몹시 우울해하고 있음을.세븐을 만난 날은 지난 13일.이날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서재호의 영결식이 있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2004 아테네 올림픽] 女개인혼영 400m 남유선 한국新세우며 첫 8강

    [2004 아테네 올림픽] 女개인혼영 400m 남유선 한국新세우며 첫 8강

    |아테네 특별취재단|“전광판을 보고 제 기록이 아닌 줄 알았어요.” 한국여자 수영의 기대주 남유선(19·서울대)은 연습에서는 최강이지만 실전에서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 징크스를 지니고 있었다.그러나 이 징크스는 14일 밤(한국시간) 아테네올림픽 여자 개인혼영 400m 예선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지난 1999년 아산배대회에서 조희연이 세운 이 종목 한국신기록(4분47초74)을 무려 2.58초나 줄인 4분45초16으로 결승선을 끊은 것.평소 연습 최고기록인 4분48초대에 견줘도 엄청난 기록이다. 5년 묵은 기록을 갈아치운 남유선의 ‘역영’은 그러나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8명이 겨루는 올림픽 결선에 진출한 데 이어 7위를 차지함으로써 한국 수영의 오랜 숙제를 풀었다는 점에서 더욱 빛났다.한국 수영은 64년 도쿄올림픽 때 처음으로 출전한 이후 조오련·최윤희·지상준 등 역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들조차도 올림픽 본선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은 2000년 시드니대회 때 여자 평영 200m에서 구효진이 달성한 11위가 고작. 남유선은 비록 결선에서는 대회 2연패에 성공한 야나 클로츠코바(우크라이나·4분38초36)와 큰 차로 7위에 그치긴 했지만 ‘금보다 값진 희망’을 목에 건 셈이다. 10살 때 수영을 시작,15살의 나이로 지난 시드니대회 때 국가대표로 전격 발탁됐지만 개인 혼영 200m에서 26위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친 뒤 400m로 주종목을 바꾼 남유선은 사이판 전지훈련 등 4년간의 혹독한 체력 훈련을 거듭,결국 두번째 올림픽무대에서 ‘금메달에 버금가는 7위’를 일궈냈다. window2@seoul.co.kr
  • 삼성동 그림책 미술관 ‘씽크씽크’

    삼성동 그림책 미술관 ‘씽크씽크’

    이번 주는 아이의 손을 잡고 서울 삼성동 어린이 그림책 전문 미술관으로 가보자. 지난 6월에 문을 연 씽크씽크에서는 오는 29일까지 ‘세계,어린이 생각’을 열고 있다.지하 1층에 전시되고 있는 그림들은 유치원생들이 시각적인 자극에 대해 반응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선생님과 대화를 통해 둥근 원을 우주로,악어의 눈으로 그리기도 하는 독특한 상상력을 이끌어내 그림을 그렸다. 2층에는 다양한 미술체험 공간들이 있다.하지만 이곳은 여느 체험공간과 다르다.부모님은 1층에 있어야 하고 아이들만 선생님의 손을 잡고 들어간다.들어서자마자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하는 선생님과 수업이 진행된다.커다란 유리창에 그려져 있는 물방울을 보며 상상력을 자극한다.“저기 있는 것이 무엇 같니.”하는 물음에 “나뭇잎 같아요.”,“강아지가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에요”,“갯벌에 사는 고동 같아요.”하며 눈동자를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아이들은 자기의 느낌을 그림으로 그린다.누구의 간섭도 없다.하고 싶은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된다. 빔 프로젝트를 이용한 행위예술로 ‘구름’을 이용해 그림자 놀이를 하기도 하고,여러가지 모양의 병을 만지면서 촉각·후각 놀이,바닥에 깔린 돌을 밟아 보는 놀이 등 다양한 놀이에 시간 가는지를 모른다. 하이라이트는 ‘우산만들기’.투명한 비닐우산에 다양한 유성매직과 색상지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여러 모양을 오리고 붙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우산을 만든다.“아빠도 그리고 머리가 긴 엄마도,참 자동차도 오려붙여야지.”하며 열중하는 창준이(7).완성된 우산을 들고 구슬을 늘여뜨려 놓은 구술비를 맞으며 뛰어다닌다.체험지도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에 정신이 없다. “이건 나뭇잎이 떨어지는 거야.여긴 엄마가 줍고 있는 거야,나랑.”하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그림은 어른이 이해하기는 힘들다.“그래 정말 멋있구나.최고야”칭찬 한 마디에 아이는 비오는 날을 기다린다. 전시는 5살부터 10살까지 어린이가 주 대상층.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월요일은 휴관.입장료는 체험비를 포함에 아이 5000원,어른 3000원이다.주차는 도로 앞의 유료주차장에 세워야 한다.선릉역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한다.미리 전화로 확인하고 이용하면 된다.www.thinkthink.net,(02)562-9611.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연출가 이윤택의 서커스악극 ‘곡예사의 첫사랑’

    전국이 폭염에 휩싸인 지난 23일,경남 밀양의 수은주는 38도까지 치솟았다.제4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한창인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밀양연극촌도 예외는 아니었다.개막일인 17일 한차례 비가 쏟아진 것을 제외하곤 연일 뙤약볕이었다.폐교를 개조해 만든 연극촌은 일부 숙소와 실내 극장에만 에어컨 시설이 있을 뿐 대부분 찜통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오후 늦게 소방차가 와서 운동장에 물을 뿌렸지만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이 더위에 누가 여기까지 공연을 보러 올까 내심 걱정이 됐다.하지만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둘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한 관객들은 연희단거리패의 서커스 악극 ‘곡예사의 첫사랑’이 시작되는 밤 10시쯤 절정에 달했다. 공연장인 ‘숲의 극장’입구에선 동춘서커스 단원들이 각종 묘기를 선보이며 관객의 흥을 돋웠다.발길 닿는 대로 전국을 떠돌며 재담과 장기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랬던 옛날 유랑 곡마단의 모습이 저러했겠지 싶다. 아이 손을 잡고 구경을 나온 동네 주민들과 서울·부산·마산 등에서 일부러 찾아온 열성 관객까지,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야외극장은 어느새 700여명의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곡예사의 첫사랑’은 국립극단 예술감독인 이윤택 연출가가 1960년대 이전 서민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유랑 서커스단의 서커스 악극을 현대의 대중극으로 되살리려는 취지에서 만든 작품이다. 현재 유일하게 서커스 명맥을 잇고 있는 동춘곡예예술단(동춘서커스단)과 연희단거리패,국립극장,경기도 문화의전당이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다.이날 공연은 8월10∼29일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있을 본공연에 앞서 시연회 형식으로 치러진 것. 옛 유고슬라비아의 작가 류보미르 시보미치의 ‘유랑극단’을 원작으로 한 ‘곡예사의 첫사랑’은,1960년 4월17∼19일 서울 용산 시장 언덕배기에 천막을 친 유랑극단 ‘삼천리곡마단’의 운명을 따라간다.반공예술단 엄하수의 훼방으로 공연을 할 수 없게 된 곡마단은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젊은 곡예사 영진을 대구학생폭동 주모자로 의심하는 군 정보원의 감찰대상이 된다.이 와중에 곡마단 여주인공 춘심과 엄하수의 애증,단장 딸 선주와 영진의 애틋한 로맨스도 끼어든다. ‘곡예사의 첫사랑’은 과거 유랑 서커스단의 공연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베테랑 악극 배우 김태랑(61)과 연희단거리패 배우 정동숙이 만담을 펼치는 첫 장면부터 관객들은 배꼽을 잡았다.마술,코미디,차력,곡예,트로트 가요,춤 등 한편의 버라이어티쇼처럼 쉴 새 없이 펼쳐지는 화려한 공연에 박수 장단을 맞추며 즐거워했다.특히 백조가극단 출신 원로 가수 원희옥(68)씨가 낭랑한 목소리로 ‘도라지 맘보’‘샌프란시스코’ 등을 부를 때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인근 주민 설희수(70)씨는 “15살 때 마을에 왔던 유랑극단 공연을 본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옛날 그대로야.”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밤 10시에 시작된 공연은 자정을 30분이나 넘겨서 끝났지만 대다수 관객들은 아쉬움으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김태랑씨는 “친정에 다시 온 기분”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원희옥씨도 “한창 때 활동하던 일이 떠올라 감개무량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눈물의 여왕’ 등 현대적 대중극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아온 이윤택 연출가는 “작품이 기대 이상으로 잘 나온 것 같다.”면서 “서커스 악극은 지식층만을 위해 ‘잘난 척’하는 연극이 아니라 아이부터 팔순 관객까지 골고루 재밌게 볼 수 있는 한국적 대중극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출신 연극연출가 타데우스 칸토르는 “21세기에도 연극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유랑극단의 모습일 것”이라고 했다.밀양에서 처음 선보인 ‘곡예사의 첫사랑’은 한국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첫 작업이 될 것이다. 서울 공연에선 마지막 악극 스타로 알려진 코미디언 남철·남성남 콤비가 특별출연할 예정이다.9월8일부터 29일까지 경기도 문화의전당에서도 공연된다.(02)2280-4115. 밀양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5살 김시환, US주니어 골프 선수권 우승

    재미교포 김시환(15)이 2004US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다. ‘천재 소녀’ 미셸 위(15)에 버금가는 골프 신동으로 주목받는 김시환은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올림픽골프장(파70·6790야드)에서 18홀 매치플레이로 열린 데이비드 청(14·미국)과의 결승에서 마지막 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1홀차 승리를 거뒀다. 15세7개월20일인 김시환은 이로써 역대 두번째 어린 나이로 이 대회 우승컵을 안았다.가장 어린 나이 우승자는 지난 91년 김시환보다 22일 빠른 15세6개월28일의 나이로 정상에 오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183㎝,100㎏으로 캘리포니아주 라마다고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김시환은 “우승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마지막 홀에서 파 퍼팅을 할 때는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다.”고 말했다. 첫 홀에서 버디를 낚은 데이비드 청에게 패한 뒤 곧바로 반격에 나서 2번홀을 따내며 타이를 이룬 김시환은 6번홀을 이기면서 앞서나가기 시작해 끝까지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김시환은 9번홀도 이겨 2홀차로 리드를 지키다가 14번홀에서 버디를 잡은 데이비드 청에게 1홀차로 쫓겼으나 더 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청은 17번홀에서 3.4m 거리의 파퍼팅을 어렵사리 성공시키면서 마지막홀인 18번홀에서 연장전을 노렸으나 2m 남짓한 거리의 버디 퍼팅을 넣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한편 같은 날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미라비스골프장에서 열린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결승에서는 재미교포 제인 박(17)이 연장 2번째홀에서 파라과이의 훌리에타 그라나다(17)에 아쉽게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제인 박은 중반까지 1홀차 리드를 당했으나 12번홀에서 타이를 이룬 뒤 1홀씩을 주고받다가 연장에 돌입했다. 제인 박은 연장 2번째홀(파4)에서 티샷을 러프로 보내고 세 번째 샷을 홀과 4.5m 떨어진 그린에 올린 뒤 퍼팅을 성공시키지 못한 채 두 번째 샷을 그린 3.6m 옆에 올려놓은 그라나다에 컨시드를 주면서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다. 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김영희 이혼클리닉] 빚 남기고 연락두절된 남편

    남편이 경영하던 가구점이 빚으로 넘어가고,남편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사업이 그 지경까지 왔는 줄 전혀 몰랐어요.신용카드사와 채권자들이 몰려와 빚을 갚으라고 아우성입니다.친정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전세 7500만원인 아파트는 제 이름으로 계약했는데도 채권자들이 전세금을 압류하겠다고 난리예요.제가 빚을 갚아야 하나요.살길이 막막해 5살,7살배기 딸을 데리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가려 합니다.일을 내팽개치고 사라진 남편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껴 이혼을 생각합니다. -황순미- 황순미씨, 요즈음 경제가 불황이다 보니 기업들도,개인사업자들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실직자들이 날로 늘고 있습니다.생활이 어려워 빚을 쓰다 보니 신용카드대금,은행대출금,사채까지….눈덩이같이 쌓여만 가는 빚을 갚을 수 없게 돼 신용불량자가 많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가 38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경영하던 가구점이 빚으로 넘어가고 사태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도 남편이 당신에게 의논 한마디 없었다면 많이 잘못됐던 것 같습니다.더구나 그 큰일을 수습하지 아니하고 행방불명되어 버리면 채권자들로부터 가족들이 시달림 받을 것을 생각해 보았는지….답답하네요.하지만 남편은 지금 걷잡을 수 없는 충격으로 앞뒤를 가릴 수 있는 판단력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순미씨, 남편이 사업하다 진 빚을 아내가 갚아야 되느냐고 물어왔는데 당신이 갚아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채권자들이 친정 부모님이 돈을 보태줘 당신 이름으로 전세 계약된 7500만원에다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협박을 한다는데,법적으로 부부재산은 별개입니다.채무 또한 별개로서 원칙적으로 남편 빚을 떠맡을 의무가 없습니다.설령 채권자들이 강제집행을 한다 해도 무효가 될 터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주의할 것은 채권자들에게 빚 갚을 시간을 달라거나,대신 갚겠다는 말을 절대로 해선 안 됩니다.‘나는 모르는 일이니 남편에게서 받으라.’고 단호하게 거절 하십시오.자칫 말실수를 하게 되면 남편의 채무를 떠맡을 수도 있습니다.어려울 때일수록 지혜롭게 난관을 극복해 나가길 바랍니다.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습니다. 사업이 그 지경될 때까지도 남편이 당신에게 말을 안했던 것은 충격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일부 사업하는 남편들 중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신경질과 짜증을 부리고 아내에게 돈을 구해 오라고 들볶으며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있답니다.하지만 남편은 사업이 그렇게 어려웠는데도 내색조차 안했던 것을 보면 무척 과묵한 성격을 지닌 분 같습니다.아내에게 괴로움 주지 않고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결과적으론 더 큰 고통을 주고 말았습니다. 순미씨, 부부는 사랑도,기쁨도,슬픔도,어려움도 함께하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입니다.긴 인생여정을 가다 보면 항상 평탄하지만 않아서 험난한 산도,굽이치는 강물도 만나게 됩니다.살다가 위기를 만날 때면 앞에서 끌어주고,뒤에서 밀어주며,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격려와 용기’로 부부가 한마음이 된다면 어떠한 위기와 시련도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힘들다 해서 마주잡은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이 부부입니다.남편은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을 잃고,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고통을 준 죄책감으로 지금쯤 어디선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겁니다. 순미씨, 아이들과 함께 하루속히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 마음의 안정을 찾으십시오.마음이 안정되고 나면 남편을 이해할 수도,살아갈 길도 보일 것입니다.실패는 극복 할 수만 있다면,한평생 살아가는 데 훌륭한 스승이 됩니다.순미씨.하나를 잃고 둘,셋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젊음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습니다.가진 것을 다 잃었다 좌절하지 말고,새로운 것을 갖기 위해 다시 시작 하십시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김영희 이혼클리닉] 빚 남기고 연락두절된 남편

    남편이 경영하던 가구점이 빚으로 넘어가고,남편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사업이 그 지경까지 왔는 줄 전혀 몰랐어요.신용카드사와 채권자들이 몰려와 빚을 갚으라고 아우성입니다.친정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전세 7500만원인 아파트는 제 이름으로 계약했는데도 채권자들이 전세금을 압류하겠다고 난리예요.제가 빚을 갚아야 하나요.살길이 막막해 5살,7살배기 딸을 데리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가려 합니다.일을 내팽개치고 사라진 남편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껴 이혼을 생각합니다. -황순미- 황순미씨, 요즈음 경제가 불황이다 보니 기업들도,개인사업자들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실직자들이 날로 늘고 있습니다.생활이 어려워 빚을 쓰다 보니 신용카드대금,은행대출금,사채까지….눈덩이같이 쌓여만 가는 빚을 갚을 수 없게 돼 신용불량자가 많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가 38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경영하던 가구점이 빚으로 넘어가고 사태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도 남편이 당신에게 의논 한마디 없었다면 많이 잘못됐던 것 같습니다.더구나 그 큰일을 수습하지 아니하고 행방불명되어 버리면 채권자들로부터 가족들이 시달림 받을 것을 생각해 보았는지….답답하네요.하지만 남편은 지금 걷잡을 수 없는 충격으로 앞뒤를 가릴 수 있는 판단력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순미씨, 남편이 사업하다 진 빚을 아내가 갚아야 되느냐고 물어왔는데 당신이 갚아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채권자들이 친정 부모님이 돈을 보태줘 당신 이름으로 전세 계약된 7500만원에다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협박을 한다는데,법적으로 부부재산은 별개입니다.채무 또한 별개로서 원칙적으로 남편 빚을 떠맡을 의무가 없습니다.설령 채권자들이 강제집행을 한다 해도 무효가 될 터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주의할 것은 채권자들에게 빚 갚을 시간을 달라거나,대신 갚겠다는 말을 절대로 해선 안 됩니다.‘나는 모르는 일이니 남편에게서 받으라.’고 단호하게 거절 하십시오.자칫 말실수를 하게 되면 남편의 채무를 떠맡을 수도 있습니다.어려울 때일수록 지혜롭게 난관을 극복해 나가길 바랍니다.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습니다. 사업이 그 지경될 때까지도 남편이 당신에게 말을 안했던 것은 충격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일부 사업하는 남편들 중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신경질과 짜증을 부리고 아내에게 돈을 구해 오라고 들볶으며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있답니다.하지만 남편은 사업이 그렇게 어려웠는데도 내색조차 안했던 것을 보면 무척 과묵한 성격을 지닌 분 같습니다.아내에게 괴로움 주지 않고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결과적으론 더 큰 고통을 주고 말았습니다. 순미씨, 부부는 사랑도,기쁨도,슬픔도,어려움도 함께하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입니다.긴 인생여정을 가다 보면 항상 평탄하지만 않아서 험난한 산도,굽이치는 강물도 만나게 됩니다.살다가 위기를 만날 때면 앞에서 끌어주고,뒤에서 밀어주며,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격려와 용기’로 부부가 한마음이 된다면 어떠한 위기와 시련도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힘들다 해서 마주잡은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이 부부입니다.남편은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을 잃고,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고통을 준 죄책감으로 지금쯤 어디선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겁니다. 순미씨, 아이들과 함께 하루속히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 마음의 안정을 찾으십시오.마음이 안정되고 나면 남편을 이해할 수도,살아갈 길도 보일 것입니다.실패는 극복 할 수만 있다면,한평생 살아가는 데 훌륭한 스승이 됩니다.순미씨.하나를 잃고 둘,셋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젊음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습니다.가진 것을 다 잃었다 좌절하지 말고,새로운 것을 갖기 위해 다시 시작 하십시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서울광장] 비뚤어진 사회, 비뚤어진 범죄/손성진 논설위원

    강도치사죄로 복역중 탈옥했다가 붙잡혔던 신창원을 로이터통신이 로빈훗이라고 표현해 경찰이 발끈한 일이 있었다.도피중에 일지매처럼 신출귀몰하며 연쇄 강도를 저지른 신창원은 사람들이 착시를 일으킬 만한 ‘의적’ 흉내를 낸 적이 사실 있다.돈을 털어 장애인 시설에 성금을 보내거나 가출소녀에게 수백만원을 쥐어주며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서울 강남 부유층의 호화주택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줬다는 점에 현혹된 외신이 과장된 기사를 타전한 것이다.부유층과 권력층에 대한 증오심에 동조하는 그릇된 생각이 당시 가짜 의적을 만든 셈이다. 맹목적인 적개심 때문에 떠올리기도 싫은 잔인한 수법으로 부유층과 여성만 골라 연쇄살인을 저지른 유영철의 범죄행각은 섬뜩하다.범인을 미화하는 인터넷 카페가 생겼다고 하는데 정말 위험천만한 짓이다.범인 못지않게 불량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 아니할 수 없다.또 다른 유영철이 잉태될 수 있는 공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잔혹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에 못지않은 잔인함이 유영철의 엽기살인이다.어떤 이유에서건 이런 천인공노할 범죄를 용납할 생각이 있다면 범인과 동급 인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잔혹하고 엽기적인 범죄의 싹이 자랄 수 있는 음침한 구석을 내포하고 있다.신과 유,두사람의 범죄인생도 곰팡내나는 내버려진 환경이 키워낸 것이다.사회에서 버림받은 두 사람의 밝은 세상에 대한 무턱댄 증오감은 종양처럼 몸속에서 자라 살인과 강도라는 범죄로 분출된 것이다.엽기범죄의 뿌리를 캐면 어두운 세상의 실상과 사회 구조적인 병폐가 드러날 것이다.두 사람이 죽어 마땅한 죄를 진 흉악한 범죄자이긴 하지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되돌아보고 범죄의 원인균을 배양하는 사회병리의 치료를 생각해 볼 계기를 제공한 점은 분명하다 하겠다. 자신을 미화할 목적이 다분히 있었다고 볼 신창원의 일기에 따르면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돈만 가져오라.’는 초등학교 선생님 때문에 학교가 죽기보다 싫었다고 한다.계모와 아버지의 매질에 못이겨 15살 때 가출한 그를 기다린 건 범죄뿐이었다.가정과 사회에 대한 분노심만 커갔고 ‘이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겠다.’고 스스로 적고 있다.그것이 부유층과 권력자들에 대한 증오심,그들에 대한 범죄로 비화된다.구체적인 지적에도 불구하고,당연한 일이겠지만,막 붙잡힌 탈옥수의 말을 귀담아 듣는 정책 담당자들이 아무도 없었다.유영철 역시 신창원과 성장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청소년기에 범죄의 길에 빠져든 유는 다시는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신창원과 유영철도 언젠가 사회에 동화될 준비를 하고 있었거나 기대. 욕구 같은 것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신창원이 검거 당시 ‘창작과 비평’을 갖고 있었다거나 유영철이 그림도 그리고 시도 썼다는 것은 저쪽 너머에 있는 세상에 대한 동경심 때문이었을 게다.두 사람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 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사회는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기엔 너무나 냉혹했고 반항심으로 일그러진 그들을 잔혹한 범죄 속으로 밀어넣은 게 아닌가 싶다. 범죄에는 영웅이 없다.범죄의 과정에 어떤 동정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인륜에 반하는 범죄의 결과는 정당화될 수 없다.의적 논란을 전해들은 신창원도 “나는 사회의 해충”이라고 자인했다.연쇄살인마 유영철은 해충보다 더한,독충일 뿐이다.다만 그런 독충이 자란 터전이 된 나쁜 환경과 잘못된 사회구조를 찾아내서 고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 (2) 초대사장 배설

    100년전 ‘제2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의로운 항일 독립투쟁을 펼친 ‘대영남자(大英男子)’배설 선생의 족적은 영국·일본·중국 등 그가 머무른 곳곳에서 발견됐다.36살이라는,짧지만 맹렬한 삶을 산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영국 런던과 브리스톨,일본 고베,중국 상하이를 찾은 특별취재팀은 마치 그와 동시대를 사는 듯한 느낌속에 역사추적 여행을 시작했다. ●런던에서 만난 혈육 토머스 남매 취재팀은 선생이 나서 자란 영국 남서부의 항구도시 브리스톨에서 생가(生家)를 찾는 데 실패했지만 런던에서 후손들을 만나 100년 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다.런던 북부의 에지웨어 하트랜드 클로즈 3번지에 사는 손자 토머스(46)와 손녀 수전(49) 남매를 만난 것이다.그들은 한국정부가 추서한 건국훈장과 추서장,그리고 낡은 사진첩과 서류 뭉치 등 선생의 유품을 거실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토머스는 사진을 통해 익숙해진 배설 선생의 모습을 빼닮았다. 두 사람은 베델가의 길지 않은 역사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깊이 우려했다.수전은 결혼 후 베델의 성 대신 블랙(Black)이라는 성을 갖게 됐고,토머스는 루신다라는 9살난 딸만 두고 있다.루신다가 결혼하고 나면 베델 성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는 설명이다. 할아버지의 사진과 출생·사망기록 등 유품을 고이 간직해 온 수전은 “유품은 우리 베델 가족의 귀중한 역사이지만 한국인들에게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면서 “한국인들이 이를 볼 수 있도록 전시공간이 마련된다면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고베에서 발굴한 사진 한장 일본 서남부의 항구도시 고베에도 선생이 남긴 족적이 빛바랜 몇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특히 고베지역 외국인사회에서 가장 전통 깊은 고베 레가타 어슬레틱클럽(KRAC)에서 뚜렷했다. 취재팀은 이곳에 보관된 낡은 사진첩 3권을 샅샅이 뒤진 끝에 고베선발 축구선수 유니폼을 입은 선생의 25살때 사진 1장을 새롭게 발굴하는 소득을 올렸다.고베는 선생이 15살 때인 1888년 가족과 함께 건너가 1904년 한국행에 오르기 전까지 16년 동안 산 곳이다. 선생이 가족과 함께 산 고베외국인거류단지 42번지와,선생이 운영한 회사가 위치했던 69번지는 고베의 대표적인 상업중심지로 변해 있었다.42번지에는 다이마루백화점 고베점이 들어서 있고 69번지에는 12층짜리 다이이치세메이 빌딩이 서 있다.빌딩 북쪽에 쇼우간지(商館址)라는 비석이 서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폭동 교사’ 괴상한 죄목 선생이 1908년 6월18일부터 3주간 옥고를 치른 중국 상하이 영국조계 안 형무소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선생은 당시 신문을 통해 폭동을 교사한 혐의로 3개월의 금고형 및 6개월 근신형을 선고받고 이곳에서 복역했다. 선생을 대한매일신보에서 손 떼게 하려는 일본의 흉계와 외교적 술책의 결과였다.선생은 복역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듬해 5월 세상을 등졌다.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상하이)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 [기네스코너]

    ●5살에 입대한 군인 루이 알베스트 리마 실바는 브라질의 군사 영웅이며 정치가이다.그는 다섯살에 1808년 보병에 입대해 1824년 대위로 진급했으며,1869년 공작이 되었다. 볼리비아의 한 공군 소령은 볼리비아가 파라과이와 전쟁중이던 1935년 다섯 살난 아들 헤르난도 인차우스테 몬탈보를 생일날 전선으로 데려 갔다.그 꼬마는 그곳에서 군대 규율에 복종하면서 군사훈련을 받았다.그 전쟁은 1932년부터 1935년까지 계속되었다. ●24.4m 장대 10.75초만에 올라 1999년 7월28일 영국의 햄프셔카운티 박람회에서 장대 오르기 세계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우승자인 영국의 제레미 베렐은 24.4m높이의 장대를 10.75초 만에 올라 갔다.이것은 정확히 1년전 같은 경기에서 자신이 기록한 11.36초를 갱신한 것이다. ●카드 던지기 61.26m 기록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노스 케터소크아에 사는 짐 캐롤은 카드 던지기에서 61.26m를 기록해 우승했다.이 대회는 1992년 10월1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마운트 아이다 칼리지에서 열렸다. ●외발자전거로 6238㎞ 1985년 6월30일부터 8월20일까지 한스 피터 벡(호주)은 외발 자전거를 타고 호주대륙을 횡단했다.횡단거리는 서부 헤드랜드 포트에서 빅토리아 멜버른까지 6238㎞였다. ●승객 4000명 수장된 여객선 사고 1987년 12월21일 새벽 필리핀 타클로반을 출발해 마닐라에 도착 예정인 도나파즈호가 유조선 빅터호와 충돌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두척의 배는 사고가 발생한지 몇분 안돼 모두 침몰했으며 승객 4000명은 바다 한 가운데 수장되고 말았다.여객선의 승선 가능 인원은 총 1500명이었으나 그 지역에서 두 세배 초과해 승선하는 일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시위자 1만 5617명 전원 구속 1만 5617명의 시위자 전원 구속이라는 이례적인 결정이 1988년 7월11일 한국 경찰에 의해 단행됐다.이 수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구속된 최대인원이다.한국 경찰은 서울 88올림픽대회의 안전한 개최를 위하여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가장 큰 선물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여신상(공식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은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 100주년 기념으로 미국에 준 거대한 선물이다.아우구스 바톨리가 조각하고 건축공학의 세부작업은 구스타프 에펠이 맡았다.1886년 완성된 조각상의 크기는 46.5m였고 무게는 225t에 달한다. ●8502弗 존 레논 크리스마스 카드 최고가 크리스마스 카드는 2000년 4월27일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8502달러에 거래된 존 레넌의 카드이다.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비틀스의 멤버인 그가 직접 그려서 당시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보낸 이 카드에는 펜으로 그린 두마리의 에뮤(타조와 비슷한 호주의 날개없는 새)가 만화처럼 그려져 있다.˝
  • [기네스코너]

    ●5살에 입대한 군인 루이 알베스트 리마 실바는 브라질의 군사 영웅이며 정치가이다.그는 다섯살에 1808년 보병에 입대해 1824년 대위로 진급했으며,1869년 공작이 되었다. 볼리비아의 한 공군 소령은 볼리비아가 파라과이와 전쟁중이던 1935년 다섯 살난 아들 헤르난도 인차우스테 몬탈보를 생일날 전선으로 데려 갔다.그 꼬마는 그곳에서 군대 규율에 복종하면서 군사훈련을 받았다.그 전쟁은 1932년부터 1935년까지 계속되었다. ●24.4m 장대 10.75초만에 올라 1999년 7월28일 영국의 햄프셔카운티 박람회에서 장대 오르기 세계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우승자인 영국의 제레미 베렐은 24.4m높이의 장대를 10.75초 만에 올라 갔다.이것은 정확히 1년전 같은 경기에서 자신이 기록한 11.36초를 갱신한 것이다. ●카드 던지기 61.26m 기록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노스 케터소크아에 사는 짐 캐롤은 카드 던지기에서 61.26m를 기록해 우승했다.이 대회는 1992년 10월1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마운트 아이다 칼리지에서 열렸다. ●외발자전거로 6238㎞ 1985년 6월30일부터 8월20일까지 한스 피터 벡(호주)은 외발 자전거를 타고 호주대륙을 횡단했다.횡단거리는 서부 헤드랜드 포트에서 빅토리아 멜버른까지 6238㎞였다. ●승객 4000명 수장된 여객선 사고 1987년 12월21일 새벽 필리핀 타클로반을 출발해 마닐라에 도착 예정인 도나파즈호가 유조선 빅터호와 충돌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두척의 배는 사고가 발생한지 몇분 안돼 모두 침몰했으며 승객 4000명은 바다 한 가운데 수장되고 말았다.여객선의 승선 가능 인원은 총 1500명이었으나 그 지역에서 두 세배 초과해 승선하는 일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시위자 1만 5617명 전원 구속 1만 5617명의 시위자 전원 구속이라는 이례적인 결정이 1988년 7월11일 한국 경찰에 의해 단행됐다.이 수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구속된 최대인원이다.한국 경찰은 서울 88올림픽대회의 안전한 개최를 위하여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가장 큰 선물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여신상(공식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은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 100주년 기념으로 미국에 준 거대한 선물이다.아우구스 바톨리가 조각하고 건축공학의 세부작업은 구스타프 에펠이 맡았다.1886년 완성된 조각상의 크기는 46.5m였고 무게는 225t에 달한다. ●8502弗 존 레논 크리스마스 카드 최고가 크리스마스 카드는 2000년 4월27일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8502달러에 거래된 존 레넌의 카드이다.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비틀스의 멤버인 그가 직접 그려서 당시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보낸 이 카드에는 펜으로 그린 두마리의 에뮤(타조와 비슷한 호주의 날개없는 새)가 만화처럼 그려져 있다.
  • [서울신문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 전문가 칼럼

    지난해 늦가을 고진동 계곡 철책 앞에 서서 산양 암수 한 쌍이 짝짓기 놀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쫓기면서도 싫은 기색이 별로 없던 암컷과,죽어라 쫓아가던 수컷의 모습이 떠오른다.올 봄에 태어난 새끼는 지금쯤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그 녀석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산양속(屬)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히말라야 지역에서부터 미얀마,태국,중국을 거쳐 러시아 극동지방에 걸쳐 살고 있다.이 곳의 종(種)의 학명은 Naemorhedus caudatus로 4아종을 포함하는데,우리나라와 중국 두만강유역,연해주에 살고 있는 아종은 Naemorhedus caudatus raddeanus다.영명은 Amur goral.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있는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의 부속서Ⅰ에 올라있는 멸종 위기종이다.나라 안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17호로,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해 1968년부터 보호하고 있다.강원도의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지역,그리고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가면서 향로봉·매봉,설악산·오대산,삼척 가곡지역,경북 울진 지역에 걸쳐 600∼700마리쯤 살아가는 것으로 보고된 매우 드문 짐승이다. 산양이 살아가는 곳은 삶터의 바탕이랄 수 있는 바위절벽과 풀밭이 함께 있는 곳이며 여름철에는 그늘진 숲속이나 바위 아래에서 지내고,겨울철엔 쉽게 눈이 녹아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바위 비탈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살아간다.계절에 따라 옮겨다니며 봄철에서 가을철까지는 주로 초본류를 먹이로 삼고 겨울철에는 목본류를 주로 먹는다.산양은 야생에서 평균수명이 15살쯤이며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며 10∼11월에 짝짓기를 하고 이듬해 5∼6월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태어난 새끼는 1년 반에서 2년쯤 어미를 따라 다니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2살쯤 되면 어미 곁을 떠나 독립해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가장 많은 수가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곳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간섭이 없는 비무장지대와 간섭이 덜한 민통선 지역이다.그러나 백두대간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다른 산양의 무리들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천적으로는 호랑이,표범,반달곰,늑대,담비,삵이지만 이 종들은 멸종되었거나 매우 드문 종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가장 큰 천적이다.어린 산양의 눈에 비친 세상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기를 꿈꾼다.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 산양부부의 사투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 산양부부의 사투

    ‘비무장지대(DMZ)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서울신문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이런 물음을 던졌다.휴전선 155마일을 경계로 남북을 각각 2㎞씩 뒤로 물린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에 따라 포성이 멈추고 DMZ가 생겨났다.그로부터 51년.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DMZ일대에 자연의 생명력은 힘차게 꽃피어 올랐다.남과 북이 세운 철책선은 곧 DMZ 생태계의 삶의 울타리였다.그러나 민족의 환경유산,생태계의 보고(寶庫)란 수식어가 미래의 DMZ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서울신문 탐사대는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인 남방한계선 일대를 각계 전문가와 함께 보름여동안 샅샅이 훑었다.총 20회의 연재를 통해 펄떡이며 살아숨쉬는 DMZ 생태계의 풍경과 보전대책,바람직한 미래상을 그려본다. (편집자 주) ‘목이 탄다.철책 아래 흘러내리는 물을 들이켜도 갈증은 더해만 간다.자유의 목마름….아내도 지친듯 힘없이 몸을 기대온다.물로 허기를 달랜지 오늘로 나흘째.깊은 밤,네온 불빛에 홀려 이중철책 안으로 뛰어든 것이 실수였다.철망은 물어뜯어도,몸을 부딪쳐도 도무지 끄떡없다.그래,이제는 알겠다.남과 북을 가르는 저 철책의 단단함을,넘지못할 그 높이를….’ ●살아있는 화석,산양을 찾아서 6월 14일 강원도 고성 고진동 계곡.12일간의 탐사활동이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면서 탐사대의 조바심도 점점 고조됐다.‘끝내 산양을 촬영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건 아닐까….’ 200만년을 내리 살아오면서 여전히 태고적 모습을 간직한 녀석.‘살아있는 고대동물’ ‘화석(化石)동물’이란 별칭이 붙은 건 그런 연유에서다.서울신문 100주년 탐사의 중요 ‘표적’이 아니될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사흘 전 양구군 백암산 자락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어린 산양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4륜구동 취재차로 덜컹대며 전방부대 비포장길 커브를 돌자 화들짝 놀라면서 쏜살같이 내빼던 산양….80도는 족히 됨직한 경사진 바위 비탈을 너무도 가뿐하게 뛰어올랐다.놀라기론 탐사대도 못지않았다.취재차에서 내려 부랴부랴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토실토실 살찐 녀석의 모습을 담진 못했다.비명을 지르는 새소리 같은 험악한 울음으로 탐사대를 을러댄 뒤 서둘러 숲속으로 몸을 숨겼기 때문이다. 아쉬운 기억을 떠올리며 육군 ○○사단 ‘율곡부대’에 절박한 취재협조 요청을 냈다.하지만 정훈공보참모 박영희 중령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이 시기는 힘듭니다.(눈에 쉽게 띄는)겨울철이면 몰라도….” 맞는 말이다.그동안 여러 기관의 수많은 탐사·조사에도 불구하고 ‘여름 산양’의 자태가 제대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지난 5월 고진동 골짜기에서 산양 10여 마리를 봤다.”는 인근 주민들의 목격담도 힘이 됐다.6월 14일,그런 실낱같은 기대를 안고 고진동 남방한계선을 찾았다. ●철책 안의 산양,운명같은 조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철책선 수문보강공사 중인 고진동 ‘라맨교’ 옆 GOP 초소.전방을 주시하던 초병에게 “요새 산양을 본 적 있느냐.”고 묻는데 웬일인지 눈길을 피한다.갑자기 바로 옆 이중철책 안에서 ‘두두두’ 땅이 울린다. ●철책 너머엔 어린 산양 한마리가 무언가가 획∼하니 번개처럼 지나간다.산양이었다.이중철책 사이 폭 2m 정도의 좁은 통로를 산양 2마리가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다.전혀 뜻밖이었다.어떻게 철책 안에 갇혔을까.의문부호와 함께 녀석을 살폈다.잿빛 단단한 몸에 80㎝ 정도의 키다.검은 갈기가 등을 달리고 꼬리와 발굽 털은 새하얗다.‘뿔 나이테’로 추정되는 나이는 4살.암수 한쌍이다. “오늘로 사흘째입니다.어디를 어떻게 통해선지 철책 안으로 들어왔지만 나가는 구멍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양의 불운은 탐사대엔 행운이었다.초병의 설명을 귓전으로 들으며 카메라 렌즈는 연신 녀석의 얼굴과 꽁무니를 좇았다.이중철책 안은 경계를 위해 제초작업을 해 둔 곳이다.그러니 녀석은 꼬박 사흘동안 굶으며 자기 모습을 노출시킨 셈이다.카메라 렌즈에 들어온 산양의 큼직한 두 눈엔 좌절과 당혹감이 묻어났다. 철책 북쪽 너머론 막 돌을 넘겼음직한 어린 산양 1마리가 서 있었다.탐사대와 동행한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가 옆에서 연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아무래도 어린 새끼인 듯합니다.산양은 가족끼리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거든요.” 초병들도 그제야 “새끼 산양이 사흘째 철책 안의 산양들과 보조를 맞추며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고 귀띔했다.그렇다면 녀석들은 또 하나의 이산가족인 셈이다.사람의 간섭을 막는 생명의 울타리였을 철책선이 이제는 분단의 빗장이 되어버렸다. ●나흘간의 사투 그리고 탈출 6월 15일 탐사대는 다시 고진동 현장을 찾았다.철책 안의 산양은 이제 달리기를 멈췄다.며칠동안 통로를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수백번 오르내리며 탈출구를 찾았단다.철책을 사이에 두고 2m 앞까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던져주는 풀을 받아먹지도 않는다.때때로 멍한 눈길로 철책 너머 새끼를 바라보곤 한다. 십여년 남짓 설악산 속에서 살다시피 하며 산양보호운동을 펼쳐 온 박 대표가 한숨을 섞어가며 뒷말을 이었다. “이 산양들의 처지가 DMZ 생태계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지금처럼 DMZ 안의 야생동물들이 남과 북의 철책을 넘지 못하고 계속 근친교배를 반복하면 열성 유전이 심화돼 멸종의 위험도 점점 높아집니다.특히 산양처럼 개체수가 적은 동물일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죠.남과 북 사이의 야생동물 이동통로 마련 등 실질적인 해결책 고민이 시급합니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산양가족의 애처로움이 수문공사 인부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산양 부부는 감금 나흘째인 15일 오전 ‘우연히’ 생겨난 수중철책 사이의 틈새를 발견하곤,그 사이로 큼직한 몸채를 밀어넣었다.철책 너머 기다리던 새끼와 합류한 이들은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곧장 가까운 산림 속으로 훌훌 사라져 버렸다.나흘동안 가둔 철책을 온전히 남북한 사람들의 숙제로 남기고…. 고성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특별탐사대 명단 ●전문가 김귀곤 서울대 농생대 교수(탐사대장),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심재환 광주서강정보대 교수,최승호 전북대 생물다양성연구소 연구교수,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박희정 환경부 자연정책과장 ●기자 염주영 편집부국장,한만교 수도권부 차장,이종원 사진부 차장,손원천 사진부 기자,조한종·채수범 사회교육부 기자,박은호 공공정책부 기자 ■전문가 칼럼 지난해 늦가을 고진동 계곡 철책 앞에 서서 산양 암수 한 쌍이 짝짓기 놀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쫓기면서도 싫은 기색이 별로 없던 암컷과,죽어라 쫓아가던 수컷의 모습이 떠오른다.올 봄에 태어난 새끼는 지금쯤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그 녀석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산양속(屬)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히말라야 지역에서부터 미얀마,태국,중국을 거쳐 러시아 극동지방에 걸쳐 살고 있다.이 곳의 종(種)의 학명은 Naemorhedus caudatus로 4아종을 포함하는데,우리나라와 중국 두만강유역,연해주에 살고 있는 아종은 Naemorhedus caudatus raddeanus다.영명은 Amur goral.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있는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의 부속서Ⅰ에 올라있는 멸종 위기종이다.나라 안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17호로,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해 1968년부터 보호하고 있다.강원도의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지역,그리고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가면서 향로봉·매봉,설악산·오대산,삼척 가곡지역,경북 울진 지역에 걸쳐 600∼700마리쯤 살아가는 것으로 보고된 매우 드문 짐승이다. 산양이 살아가는 곳은 삶터의 바탕이랄 수 있는 바위절벽과 풀밭이 함께 있는 곳이며 여름철에는 그늘진 숲속이나 바위 아래에서 지내고,겨울철엔 쉽게 눈이 녹아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바위 비탈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살아간다.계절에 따라 옮겨다니며 봄철에서 가을철까지는 주로 초본류를 먹이로 삼고 겨울철에는 목본류를 주로 먹는다.산양은 야생에서 평균수명이 15살쯤이며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며 10∼11월에 짝짓기를 하고 이듬해 5∼6월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태어난 새끼는 1년 반에서 2년쯤 어미를 따라 다니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2살쯤 되면 어미 곁을 떠나 독립해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가장 많은 수가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곳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간섭이 없는 비무장지대와 간섭이 덜한 민통선 지역이다.그러나 백두대간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다른 산양의 무리들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천적으로는 호랑이,표범,반달곰,늑대,담비,삵이지만 이 종들은 멸종되었거나 매우 드문 종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가장 큰 천적이다.어린 산양의 눈에 비친 세상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기를 꿈꾼다.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 섬으로 유인한 어린이 40년간 ‘노예생활’

    어린이를 섬으로 유인해 수십년간 일을 시키면서 폭행을 일삼은 현대판 ‘노예지주’가 경찰에 붙잡혔다.전남 목포경찰서는 27일 섬으로 유인한 어린이에게 40여년간 일을 시키며 자주 폭행한 장모(65·농업·신안군 안좌면)씨를 폭력행위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44년 전인 1960년 목포역에서 당시 5살이던 김모(49)씨에게 “밥을 사준다.”며 신안군 안좌면 자기 집으로 데려온 뒤 최근까지 임금을 주지 않고 농사일 등을 시키며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다.장씨는 자신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김씨가 인근 마을로 도망칠 때마다 “재산을 모두 주겠으니 열심히 일만 하라.”며 일을 시켜왔다. 김씨는 30년간 주민등록도 안된 상태로 노동력 착취를 당해오다 1991년에야 1955년생으로 주민등록 신고를 했다.김씨는 어릴 때부터 장씨의 모진 폭력 때문에 탈출하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아오다 최근 주민들의 신고로 빛을 보게 됐다. 경찰 조사결과 장씨는 수십년 동안 전기와 난방시설이 없는 폐가에 김씨를 지내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44년이라는 세월 동안 노예처럼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장씨를 볼 때마다 움츠리는 김씨를 보고서야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며 “섬이라는 폐쇄적인 환경도 비극의 원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깔깔깔]

    ●기억력 좋은 노인 특이한 것이 있다는 소리만 들으면 그것을 직접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가 있었다. 어느날 그 남자는 서울역 앞에 기억력이 출중한 70대 노인이 구걸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노인을 찾아가서 물었다. “노인장,15살 때 생일날 점심은 무얼 드셨습니까?” 노인은 즉시 말했다. “계란.”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남자는 과연 노인이 대단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그 자리를 떴다. 세월이 한 10년쯤 지나 이 남자가 다시 서울역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노인이 아직도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자는 반가워 그 노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어떻게…?” 그러자 기억력이 출중한 그 노인은 남자를 한 번 쓱 올려다보더니 동전통을 바라보면서 한마디했다. “삶아서.”˝
  • 광고공사 ‘여성국장 1호’ 오현숙 공익사업국장

    “우리 사회의 개혁 분야를 찾아내 국민들이 공감하고,사랑하는 공익광고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23년 역사에서 ‘여성국장 1호’로 기록된 오현숙(55) 공익사업국장의 당찬 포부다.그는 구체적인 ‘개혁 분야’를 묻자 “여론을 수렴해 우선 순위를 정하겠다.”며 신중히 결정할 것임을 내비쳤다. 오 국장은 이어 “공익광고 노출매체를 확대,다변화하겠다.”면서 “한국과 일본이 함께 제작해 두 나라에서 동시에 방영되는 공익공고가 올 하반기에 선보일 것”이라고 소개했다.특히 한·일 공동 공익광고 제작은 일본공공광고기구(JAC)와 7월쯤 실행위원회를 구성,양국의 공동 의제를 선정해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오 국장은 (여성으로서의) 조직관리 노하우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우선 진실되게 대하고,여성의 장점을 살려 때로는 친구·누나·엄마 같은 역할로 조직을 융합해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또한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성이라는 생각 때문에 위축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오 국장은 그러나 “여성으로서 어려운 점이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그는 “과거에는 여자가 결혼을 하면 직장을 떠나는 것이 다반사였다.”면서 “결혼을 하고도 계속해서 회사를 다녀 눈총을 많이 받았다.”고 소개했다.또 “현재 공사내 최고참 여직원보다 (자신의 나이가) 15살가량이나 많다.”는 말로 그동안의 어려움을 대신했다.그는 이어 “1983년부터 직원을 공채로 뽑으면서 회사 내에서도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차별도 점차 없어졌다.”면서 “참고 견딘 결과 참여정부의 여성 중용정책의 수혜자가 됐다.”고 겸손해했다. 오 국장은 ‘여성 1호 국장’이 된 소감에 대해 “여직원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맛볼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자긍심을 느낀다.”며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노력 하겠다.”고 다짐했다. 오 국장은 1981년 한국방송광고공사 창사 멤버로 입사,23년 만인 지난 4일 국장의 자리에 올랐다.처음 문화방송 광고분야에서 일하다 방송광고파트가 코바코로 통합되면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최근 9년 동안 전주와 대전에서 광고영업파트 일을 했다. 공익사업국은 ‘한국방송광고공사’라는 이름으로 TV와 신문용 공익광고를 제작,공급하는 곳이다.최근 TV에 방영되는 ‘환경보전(재활용) 병들의 합창’편은 인기광고 순위 최상위에 랭크돼 있다. 강동형기자 yunbin@seoul.co.kr˝
  • 美가수 레이 찰스 10일 타계

    미국 사회에서 억눌린 흑인의 슬픈 영혼을 음악으로 승화시켜온 ‘솔뮤직의 대부’ 레이 찰스가 10일(현지시간) 오전 11시35분 캘리포니아 베버리힐스의 자택에서 7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I Can’t Stop Loving You’나 ‘Unchain My Heart’ 같은 노래로 한국 음악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레이 찰스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대중음악상인 그래미상을 13차례나 수상한 천부적 가수이자 작곡자,연주자,밴드리더,프로듀서였다.그는 이날 자택에서 가족과 친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간질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탁월한 감성의 표현자 레이 찰스는 1950년대 이후 발표한 60여장의 앨범을 통해 로큰롤과 컨트리,재즈 등 거의 모든 장르의 미국 대중음악에 흑인음악인 솔의 정수를 불어넣은 음악가로 평가된다.그는 기쁨을 애절하게,슬픔을 감미롭게 노래할 줄 아는 탁월한 감성의 표현자였다. 그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선언한 가수 가운데는 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블루스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그래미상 최다수상자 스티비 원더와 뉴욕 대중음악의 기수 빌리 조엘 등이 포함돼 있다. 조지아주는 1979년 그의 노래 ‘Georgia on My Mind’를 주가(州歌)로 선정했으며,1993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에게 예술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레이 찰스는 1980년 블루스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그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레이 찰스 스토리’가 최근 테일러 핵포드 감독에 의해 만들어져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시력보다는 흑백차별에 고뇌 레이 찰스 로빈슨이 본명인 그는 1930년 9월23일 조지아주의 알바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세살 때 동네 카페에서 피아노를 처음 치는 등 음악적 재능을 발휘했지만 다섯살 때부터 녹내장을 앓기 시작해 일곱살에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는 시각 및 청각 장애자를 위해 설립한 성 오거스틴 학교를 다니며 피아노와 클라리넷,알토 색소폰,트럼펫,오르간 등 다양한 악기를 배웠다.15살이 되던 해 모친이 사망하자 학교를 그만 둔 레이 찰스는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1949년부터 시애틀에서 밴드 활동을 시작한 레이 찰스는 1953년 애틀랜틱 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은 이후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59년 ABC파라마운트와 계약한 뒤 공전의 히트곡들을 발매하게 된다. 레이 찰스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시각장애가 음악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시력이 있었다.”면서 “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삶에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백인이 흑인에게 요리와 청소를 시키면서도 이유없이 미워하는 것만은 평생 이해할 수 없었다.”며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겪는 차별을 가슴 아파했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DNA검사로 15세 소년 10년만에 엄마품에

    “건아.엄마야.엄마가 왔어.엄마 얼굴 몰라보겠니.” 11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 1층 미아찾기센터.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강건(15)군에게는 10년 전 헤어진 어머니 김희종(55)씨의 얼굴을 기억하는 게 무리였나보다.다시 찾은 아들을 한번이라도 꼭 보듬어 안아주고 싶은 모정(母情)을 아는지 모르는지,건이는 어색한 듯 연신 얼굴을 돌려대고 손길을 뿌리쳤다. 10년 동안 아들을 홀로 남겨둔 어머니는 마음이 무너지는 듯 안쓰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연신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안해.엄마가 늦게 왔어.미안해.”라는 말만 되뇌었다. 건이가 5살 때인 1994년 10월.어머니가 정신질환을 치료받기 위해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한 병원에 입원하면서 비극은 발생했다.노원구 상계동 집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아버지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염색체 이상으로 정신지체 증상을 보이는 건이를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친척이 없어 건이는 이웃 주민들에 의해 서초구 내곡동 시립아동병원으로 보내졌다.아버지는 4년뒤 숨을 거뒀다. 정신질환 치료를 받던 어머니는 2003년 5월 상태가 호전되자 구청과 동사무소 등으로 아들을 백방으로 찾아 나섰다.하지만 쉽지 않았다.가스폭발 당시 동네에 살던 이웃들은 거의 모두 이사를 가 버렸고,‘무연고 아동’으로 신고된 아들의 행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1년 동안 손발이 닳도록 아들을 찾아 헤맨 어머니는 우연히 경찰청 미아찾기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 8일 경찰청사를 찾았다.어머니는 경찰의 도움을 얻어 경찰 전산망에 입력된 이름과 나이 등 신상 자료를 검색한 끝에 도봉구 쉼터요양원에서 아들로 보이는 ‘소년’을 찾아냈다.그 길로 요양원으로 달려간 어머니는 ‘소년’의 손톱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아들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소년’은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에 비해 유난히 뭉툭하고 넓었던 건이의 손톱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하지만 어머니의 ‘직감’만으로 법적인 친자식이 될 수는 없었다.경찰은 9일 친자 확인을 위해 어머니의 DNA를 채취,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미아찾기센터의 시설보호아동 DB에 보관중인 건이의 DNA와 대조 작업을 벌였다. 지난 10년보다 더 길고 가슴 졸인 만 하루가 흐른 뒤 어머니는 비로소 아들을 되찾았다.“이제 다시는 아들을 놓지 않을 겁니다.”어머니는 뿌연 눈길로 아들의 온몸을 어루만졌다. 지난 달 27일 문을 연 경찰청 미아찾기센터는 전국 보호시설의 무연고아동 및 정신지체장애인 8815명과 자녀가 실종된 부모 109명의 DNA를 보관하고 있다.건이와 어머니의 상봉은 센터 개소 이후 첫 케이스다.이금형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전국적인 시설보호아동 DB가 좀더 빨리 갖춰졌다면,모자 상봉을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천방지축 명랑소녀 똑순이 됐어요”

    ‘천방지축 명랑걸’ 장나라(23)가 야무진 ‘또순이’로 변신,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다.MBC 드라마 ‘내사랑 팥쥐’ 이후 2년만이다. ‘장미의 전쟁’ 후속으로 12일 첫 전파를 타는 26부작 MBC 새 주말드라마 ‘사랑을 할 거야’(극본 박지현·연출 이주환)에서 외모와 공부,싸움 등 모든 면에서 똑부러지는 여고 3년생 ‘짱녀’ 진보라 역.역시 모든 면에서 다재다능한 동갑내기 연하늘(연정훈)과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이혼한 어머니(김미숙)와 이혼남인 연하늘의 아버지(강석우)가 재혼하기로 결심하면서 세대간의 애정 갈등을 빚는다.지난 2일 드라마 촬영이 한창인 강원도 고성 화진포의 한 콘도에서 그녀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첫 이미지 변신 설레요.” 그동안 TV화면에 비쳐왔던 장나라의 이미지는 상큼한 웃음과 톡톡 튀는 성격의 ‘명랑소녀’일 뿐,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특징이 없었던 것이 사실.지난 2001년 가수로 데뷔한 뒤 순식간에 스타반열에 오르게 한 드라마 SBS ‘명랑소녀 성공기’와 MBC ‘내사랑 팥쥐’ 등을 통해 발랄한 이미지만 부각시켰기 때문.그래서 갑작스러운 이미지 변신이 꽤 부담이 될 듯도 하다.“그동안 ‘어리버리’하고 ‘오버’하는 역할만 맡아서 성격조차 그렇게 변해가는 느낌이에요.실제 성격은 극중 보라처럼 현실적이고 야무진 면이 많거든요.첫 이미지 변신에 긴장은 되지만 제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여서 기대가 커요.” 기존의 이미지를 일부러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연기자로서 성장하기 위해 신중하게 출연을 결정했단다. 그녀는 제 나이보다 5살이나 어린 여고생을 연기한다.꼬리표처럼 붙은 ‘소녀’이미지를 이제 벗어버리고 싶을 것도 같은데….“나이는 느는데 배역은 점점 어려지네요.(웃음)시간이 지나면 원치 않아도 성숙한 역할이 주어질 것으로 생각해 조급해하지 않아요.” ●‘악녀’가 되고픈 ‘양순이’ 그녀는 자신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겉모습 때문인지 ‘명랑소녀 성공기’의 양순이 같은 역할로만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죠.하지만 기회가 되면 영화 ‘미저리’와 사극 ‘장희빈’ 속 주인공처럼 ‘악녀’역할을 해보고 싶어요.실은 저도 독한 면이 있거든요.비련의 여인도 좋아요.” 드라마 속에서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게 냉철하고 조숙하다.어머니의 철없는(?) 행동을 콕콕 짚어내며 직언도 서슴지 않는다.현실에서도 그럴까.“실제 저라도 어머니의 사랑을 위해 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할 것 같아요.중년세대의 ‘마지막 사랑’도 중요하지만,어린 세대의 ‘첫사랑’도 가치가 있지 않나요?” ●“올해는 나의 해!” 올해는 그녀 자신에게 있어서 재도약의 시기가 될 것 같다.가수로서,영화배우로서,특히 ‘한류 스타’로서 또 다른 입지를 마련하겠단다.“그동안 쉬면서 음악공부는 물론,약점인 ‘새는’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소리내어 책도 많이 읽었어요.노래와 연기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거든요.” 드라마가 막을 내리는 올 9월쯤 중국으로 건너가 한·중 합작 드라마 촬영과 함께 콘서트도 가질 계획이다.귀국 후엔 4집음반을 내고 스크린에서도 활동할 계획이다.“내년쯤엔 아빠(주호성)와 함께 꼭 연극무대에 오르고 싶어요.아빠의 ‘회갑잔치’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빨리 평소의 꿈을 이뤄보려고요.(웃음)” 결혼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일까.“불과 1∼2년 전만 해도 지금 나이쯤엔 결혼해 있을 거라 생각했죠.지금은 26살이나 29살 정도?아뇨.그냥 아빠랑 같이 오순도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화진포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우리 결혼해요]아빠 닮은 사람이에요

    사랑하는 아빠. 아빠의 예쁜 딸이 이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사뿐사뿐 걸음을 내딛어요.옆에 낀 아빠의 팔의 온기가 살포시 느껴질 때 눈시울이 뜨거워 질거 같은데,그 때 아빠,제 팔에 얹은 손에 힘을 쥐어 주시겠어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아빠의 목에 매달려 하늘을 향해 더 뛰어오르고 싶었던 5살 꼬마 적부터,머리 싸매고 고민하던 수학문제도 척척 풀어내시는 아버지가 신기하던 중학교 그 때,갑자기 아빠의 뒷모습이 많이 늙어보이던 고등학교 그 어느 날,아빠보다는 남자 친구들이 더 재미있었던 철없던 대학시절,그리고 맨날 힘들다고 투정부리던 회사 생활.20여년의 시간이 하나 하나 떠올라서,행여 떨리는 가슴에 제가 눈물 흘리기 전에,아빠 먼저 눈물 보이지 마세요. 갈수록 늘어가는 선택의 기로에서 세상과의 타협에서 억울할 적도 더러 있었고,지켜웠던 꿈이 어지러워지는 것 같아서 슬픈 적도 있었는데,아빠는 이미 알고 계셨던 걸 이제야 알 거 같아요.말없이 책상 위에 올려놓으시던 아빠의 쪽지들,제 방문을 열어 보시고 별 의미 없이 씨익 지어주시던 아빠의 미소가 그런 의미였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지금 제 곁에 함께 할 그 사람에서도 아빠의 마음같은 그런 예쁜 의미들을 볼 수 있거든요.힘들 때 말없이 힘이 돼주고,세상의 논리와 다른 내 마음의 논리로 나를 알아주는 그런 마음이 아빠와 똑같아요. 5년전 교회 성가대에서 만나서 허물없이 오빠,동생하던 3년의 친한 사이에서,어느 날의 깜짝스런 오빠의 고백,갑작기 어색한 사이가 싫어서 장문의 편지로 대신했던 한 번의 거절,그리고 다시 오빠의 기다림과 노력이 천천히 제 마음을 열게 했네요.2년 행복하게 연애하고 결혼합니다. 아빠. 오빠의 말을 빌면 오빠와 저는 자석같은 사이래요.3년동안 서로 끌어당겨서 붙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인연이었대요.우스갯소리 같지만 정말 듬직하지 않으세요? 사업하는 사람이라고 불안해 하시면 어쩌나,혹시나 맏딸로 직접 공부지도 해주시면서 열심히 공부시켜 좋은 직장 다닐 수 있도록 해 주신,20여년의 아낌없는 지원이 결혼으로 물거품이 되리라 단정하시면 어쩌나,걱정하고 또 걱정하면서 오빠를 처음 데려왔을 때,아빠는 오빠에게 제 걱정의 물음들은 하나도 하지 않으셨고,제 선택에 환한 웃음을 보내주셨지요? 아빠 닮고 싶은 혜연이.항상 아빠처럼 마음에 아름다운 보석을 담고,세상의 힘든 논리들에 빛을 잃지 않도록 겸손하게 살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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