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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 올 북한대표의 얼굴

    ◎기술관료 출신… 북한 권력서열 6위/연형묵 정무원총리 연형묵총리는 분단이후 최초로 한국을 공식 방문하게 되는 북한의 최고위급인사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25년생으로 올해 65세인 그는 현재 북한내 권력서열 6위의 인물. 70대 고령의 혁명1세대인 오진우(73ㆍ3위ㆍ인민무력부장) 이종옥(79ㆍ4위ㆍ부주석) 박성철(76ㆍ5위ㆍ부주석)에 이어 김영남(65ㆍ7위ㆍ외교부장) 허담(65ㆍ11위ㆍ최고인민위원회 외교위원장) 등과 함께 북한의 권력핵심을 이루고 있는 60대중반의 혁명 2세대이다. 연형묵은 김일성대학과 소련우랄공대에서 금속ㆍ전기ㆍ전자 등을 공부한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로서 북한의 행정부인 정무원의 총책임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당정치국원ㆍ당중앙위원 등을 겸직,노동당의 정책결정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1985년 정무원 제1부총리 겸 금속기계공업위원장을 맡아 정무원에 첫 진술한후 88년 12월 이근모의 후임으로 총리에 선임됐다. 83년과 84년 김일성을 수행,중국ㆍ소련ㆍ동구권 등을 방문하는 등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우며 러시아어와 불어ㆍ일어에도 능통,국제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형묵은 지난 5월24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정무원총리에 재선됨으로써 김일성부자의 신임을 다시 확인했는데 경제실무에 밝으며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기술관료출신으로 고위급회담에서 어떠한 자세를 보일지 주목된다. ◎빨치산경력 군원로 비롯,경제엘리트도 연형묵총리와 함께 서울에 오게 될 북측 대표중 김광진 대장(77)은 오진우 김철만 김광 등과 함께 현직에 남아있는 김일성의 몇 안되는 빨치산동료의 한사람이다. 인민무력부 부부장 인민군 총참모 부부총참모장 등을 겸직하고 있는 그는 1913년 만주에서 태어나 소련군에 입대,소련 포병학교를 나온 포병장교 출신이다. 인민군 창설에 직접 참여한 군원로로 특히 포병화력 증강과 현대화에 기여한 공로가 커 김일성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다고 한다. 6ㆍ25당시 민족보위성 후방총국참모장직을 맡았던 김광진은 군을 대표해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또다른 대표인 최우진(외교부순회대사ㆍ군축및 평화연구소부소장) 김영철(소장) 등과 함께 이번 회의의 주요의제가 될 남북한 군축문제와 관련,북한측의 입장을 대변할 것으로 보인다. 군대표 2인중 한사람인 김영철은 인민군 8사단장을 거쳐 인민무력부 부국장ㆍ구분대장을 맡고 있는 인물로 지난해 2월부터 남북 고위급회담예비접촉 북측 대표로 일해왔다. 가나주재대사를 역임한 최우진(57)은 군축문제와 관련,북한측 최고의 이론가이자 실무책임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7월5일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있었던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관한 학술회의」에 북한측 대표단장으로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남북 고위급회담준비관계로 불참하고 대신 이형철(평화군축연구소 연구실장)을 내보냈었다. 안병수(61)는 특히 조평통서기국장 명의로 종종 대남성명을 내놓고 있는데 지난 5월7일에는 홍성철통일원장관앞으로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제의한 남북 정치협상회담을 재삼 촉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내기도 했다. 정무원 참사실장 백남준(61)은 지난 73년 5월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 자격(당시 직업동맹부위원장)으로 서울에서 열렸던 남북적십자 제6차회의에 참석했던 낯익은 인물. 김정우(48)는 71년 김일성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80년부터 대외경제사업부부부장을 맡아오고 있는 신진 엘리트. 80년대 중반이후 북한의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소련ㆍ헝가리ㆍ이탈리아ㆍ스위스 등을 방문하는 등 북한경제의 현대화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통일행보」 너무 서두르지 말자/황석현 북한부장(데스크메모)

    해방 45주년을 맞아 노태우 대통령이 제의한 「민족대교류」는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민족대교류가 물거품이 되면서 남북한 공동개최의 「범민족대회」도 무산됐다.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로 시한이 정해져 있었기는 하지만 민족대교류와 범민족대회가 성사되었다면 한반도통일을 위한 하나의 굳건한 초석이 자리잡았을 것이다. 아쉬운 일이다. 지금에 와서 「물거품이 되고 무산돼버린」 책임을 따져 잘 잘못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은 애초부터 어긋나게 돼 있었다. 일이 안되게 돼 있었던 것은 물론 북쪽의 억지때문이지만 우리정부의 실수도 적지 않았다. 다 아는 얘기지만 북쪽의 통일정책은 책임있는 당국간의 대화나 협의보다는 광범한 민간차원의 통일전선구축에 핵심을 두고 있다. ○애초부터 빗나간 “교류” 김일성은 지난 5월24일 제9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발표한 시정연설을 통해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의 형성」을 거듭 제창했다. 남북에 걸쳐있는 현안을 협의하기 위해서는 당국간의 회담을 제의하거나 응하겠지만 통일운동에는 당국의 개입이나 간섭을 배제하고 각계각층의 「인민」들이 광범하게 접촉하면서 통일역량을 성숙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속에는 음흉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 함정은 대남적화통일이다. 김일성이 북녘땅에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이후 40여년간 단 한번도 수정돼본 적이 없는 일관된 통일전략이다. 북쪽에 순수한 의미의 민간단체가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쪽에도 조평통ㆍ사로청 등 많은 단체가 있지만 모두가 김일성에게 충성을 바치는 글자그대로의 어용집단들이다. 따라서 이들 단체와 북한당국은 구별할 수 없는 일심동체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남조선」당국의 개입이나 간섭은 배제하겠다는 것은 어떤 의도이겠는가. 남쪽의 반체제세력과 손을 잡고 이땅에 그들이 노리는 통일전선의 기지를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남조선해방」의 통일역량을 성숙시켜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이른바 「판문점 범민족대회」이다. 우리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속셈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민족대교류를제의한 것은 예상되는 위험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인도적인 차원에서였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정치적인 계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감도 좋고 인도적인 배려도 훌륭했다. 또 정치적인 계산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민족대교류를 제의하고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이나마 혼선이 빚어졌고 절차상에도 하자가 있었다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실현이 안될줄 뻔히 알면서도 방북신청을 받고,임진각에 환전소와 우체통까지 설치한 것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란 비난도 있었다. 제1야당의 총재라는 분은 『국민을 우롱했다』고 질책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비난이나 질책을 감수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지금 북한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거기에다 자유와 개방의 독소가 「인민」들속에 침투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실정에서 그들의 「인민」들보다 훨씬 세련되고 부유해 보이는 「남조선」사람들이 북으로 북으로 꾸역꾸역 밀려오는 것을 어떻게 보고만 있겠는가. 그런데도 북녘땅을 밟는 것이곧 실현될 것처럼 국민을 속였다면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방북을 신청한 사람이 6만명을 넘지만 그들중 대부분은 북녘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통일을 염원하는 소박한 심정에서,그 심정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으로 「방북신청」을 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통일염원” 악용 말아야 남북한이 민족대교류와 범민족대회를 둘러싸고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가장 섭섭하고 걱정스러웠던 점은 북쪽의 태도보다는 남쪽 재야단체들의 무분별한 자세였다. 그들에게 균형감각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르지만,북쪽의 주장은 모두 옳고 남쪽의 주장은 모두 글렀다는 식의 편협된 아집은 민망할 정도였다. 『우리가 언제 북쪽편만 들었단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북쪽의 태도에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남쪽당국의 개입과 간섭때문에 모든 것이 무산됐다는 식의비난은 「편협된 아집」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경이다. 재야단체들도 민족대교류와 범민족 대회가 어째서 무산됐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 북쪽의 조평통이나 대학생위원회가 어떤 성격의 단체인지도 모른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남쪽 당국의 개입과 간섭때문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고 우기는 것은 지나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전민련의 한 간부는 『우리가 범민족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것은 통일염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반정부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라고 실토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다면 「통일」이라는 가면을 쓰지 말도록 권고하고 싶다. ○경험삼아 유연히 대처 재야단체 일부가 이땅에서 통일논의를 주도해왔다고 자부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반정부운동을 위해 통일을 방패로 이용한다는 것은 늑대가 양의 탈을 쓴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쩌다보니 민족대교류와 범민족대회의 무산을 놓고 두루두루 비판이나 한꼴이 되고 말았지만 이런일들이 이번에 성사가 안됐다고 해서 실망할 것은 없다. 이번에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 실패를 좋은 경험으로 살려야 한다. 통일이란 멀고도 험한 길이다. 한발 한발 신중하게 내디뎌야 한다. 이번 뿐만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의 쓴잔을 들게 되겠지만 끈기로 두드려야 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북쪽도 문을 열 것이고 우리도 보다 유연한 자세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꿈같은 얘기지만 이 꿈이 현실로 다가올 날이 있을 것이란 신념만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 블루진 인기 “하강세”(세계의 사회면)

    ◎미 젊은층 외면,매출 격감/업체 조업단축ㆍ폐쇄 늘어/소ㆍ동구ㆍ극동지역선 오히려 유행 미국 젊은이들 복장의 상징인 블루진이 미국 패션계에서 점차 인기를 잃어 가고 있다. 서구는 물론 일본 등 자유진영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소련ㆍ동구권 국가들에까지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상징으로 확산돼온 청바지의 유행이 정작 본고장인 미국에서 차츰 퇴조해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베이비붐 세대가 점차 중년층으로 고령화하고 있기 때문이란게 이곳 패션계의 분석이다. 하체 곡선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꽉 조이는 청바지를 즐겨입는 세대는 주로 14.5∼24.5세 사이의 젊은 남녀들이나 그동안 청바지 유행을 선도해온 베이비붐 세대들이 이 연령계층에서 빠져나감으로써 생긴 빈자리를 메울 새 젊은층이 모자라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미국 패션업계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81년에 5억2백만장이었던 청바지의 미국내 소화물량이 89년에는 3억8천7백만장으로 약 26%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청바지 제조업체들이 조업을 단축하거나 다른 상품의 개발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LEE」와 「WRANGLER」라는 상표로 미국내 청바지시장의 약 25%를 점유해온 VF사의 경우 오는 9월말까지 청바지공장 4개를 폐쇄할 것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한편 또다른 불루진 메이커인 「리바이스」(LEVIS)사는 「DOCKERS」란 상표의 면제품 바지를 새로 선보여 활로를 찾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청바지의 국내수요가 급격한 감소추세를 보이자 대부분의 청바지 제조업체들은 수출을 늘리는 쪽으로 경영방침을 서둘러 바꾸고 있다. 미국내에서는 차츰 외면당하고 있는데 비해 소련ㆍ동구ㆍ극동지역에서는 오히려 인기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패션계에서는 청소년층이 여전히 청바지를 즐겨 입고 있기 때문에 「청바지 물결의 퇴조」가 아직은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낙관론을 펴고 있기도 하다.
  • 15국서,1,200명 참가… 최대의 「한반도학술회의」

    ◎오늘 개막되는 「일 오사카 국제토론회」안팎/남북한 학술교류 기회… 11개분야 논의/서울 대거 참여하자 평양,규모 축소/대남선전장 기도 어긋나고 개방화 부담 안자 외면 남북분단 이후 최초의 본격적인 남북한 학술교류의 기회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관심을 끌어온 오사카(대판) 「조선학국제토론회」가 3일 개막된다. 세계 15개국 1천2백여명의 한국관계학자등이 참석하는 이번 대회는 한국관계에 관한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이다. 토론 내용도 언어 문학 역사 경제 정치 법률 사회 교육 철학 종교 문화 예술 체육 의료 과학 기술 등 11개분야로서 거의 전부문을 망라하고 있다. ○북녘선 겨우 11명 보내 당초 이 토론회에 북한측은 1백50명의 관계자를 참가시킨다고 통보했었으나 지난 20일을 전후해 참석인원을 대폭 축소,불과 11명만을 보낸다고 알려와 다시 한번 내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이 학술대회 성격 자체의 해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번 조선학 국제학술토론회는 3번째 대회이다. 1,2차는 지난 86년과 88년 중국 북경에서 개최됐다. 1차 토론회는 북경대학과 중국 조선어학회ㆍ중국 조선문화연구회 주최로 북한ㆍ중국 등 5개국 1백84명이 참가,인문과학 2개분과에 걸쳐 40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2차 토론회 역시 북경대 조선문화연구소ㆍ대판경법대 아세아연구소 주최로 북경에서 열렸다. 여기에는 북한ㆍ중국 등 10개국 학자 3백여명이 모여 인문ㆍ사회과학 등 6개분과에서 1백32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당초 이번 3차 오사카대회에서는 11개분과에서 5백5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북한측 대표단 규모 축소로 줄어들게 됐다. 이번 학술대회의 성격문제를 놓고 국내 학계에서는 다소 논란이 있었다. 제일 우려했던 것은 이번 대회가 국제학술회의의 형식만 빌렸을 뿐 실상은 북한측의 「판벌임」에 한국 학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모임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반면 어차피 학술토론회의 명칭을 내걸고 있는 이상 정정당당한 학술토론을 벌여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라는 견해도 없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제3국에서 개최되는 학술대회를 통해 남북한 학자들이 직접 교류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다는 측면에서 희망자 모두에게 참가를 허용키로 방침을 세웠다. 주최측 발표에 따르면 이 대회에는 세계 17개국에서 8백79명이 초청되었고 11개 분과에서 5백7명의 학자가 주제발표를 할 것이며 북한은 학자를 포함,1백60여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알려졌었다. 또 북한 참가자중 남한출신임이 밝혀진 17명의 북한 학자들이 이산가족 상봉을 할 것으로 예상돼 더욱 관심이 집중됐었다. 나아가 북경대 최응구,모스크바대 미하일 박,하버드대 강희웅,토론토대 백응진,대판경법대 오청달교수 등에 의한 조선학 세계학회가 결성될 것으로 보여 관심을 고조시켰다. ○세계 조선학회도 추진 이 대회가 「조선학 국제토론회」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학술대회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다. 우선 이 대회를 주최하는 대판경법대는 조총련 자금으로 운영되는 학생수 1천6백명의 무명대학이다. 이 대학 상무이사 오청달교수는 지난 70년대 간첩사건으로 당국에 검거됐던 일이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대회의 준비도 지난 88년부터 한국의 민주화 바람을 이용,치밀하게 추진되어 왔다. ○전금철등 요인은 불참 따라서 이번 대회는 『민족의 넋을 찾아야 한다』는 지난 5월24일의 김일성 시정연설을 뒷받침하고 8ㆍ15 범민족대회의 성사무드 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족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 국내정치 선전용이라는 의심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한측이 참석인원을 대폭 줄인 점도 납득이 가능하다. 당초 이 대회에는 전금철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병수 서기국장 등 「요인」들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모두 오지 않았다. 그것은 북한측이 당초 의도했던 만큼의 성과를 이번 대회에서 올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이 대회에 학자들의 참석을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북한측은 좀 더 선전효과를 올릴 수 있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학술대회조차 참석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은 통일의 의지가 없는 것이다』라는 선전이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선전장 변질 우려 그러나 한국정부가 참가 희망자 모두에게 이 대회를 개방함으로써 이러한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북한측에서 많은 학자들을 참가시킬 경우 그에 따른 개방화의 위험부담만 안는 꼴이 됐다. 이것을 북한측은 두려워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토론을 위해 북한측이 제출한 발표논문 제목을 보더라도 이점은 확연해 진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은 조선통일의 합리적이고 현실적 방도」(안병수) 「인민정권 건설경험」(한석봉ㆍ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의 근본특징」(조근경ㆍ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공화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인민적 시책」(심형일)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북한측은 이 대회를 자신의 선정장으로 만들 셈이었다. 이같은 상황을 알면서도 한국 정부는 학자들의 참가를 허용했다. 기탄없이 이론적 논쟁을 벌임으로써 우리측의 대응능력을 배양하자는 방침의 소산이다. 이번 대회에 북한측은 학자라고는 간주할 수 없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자들을 대거 참석시키려 했었다. 물론 이번 대회에 순수 학문적측면의 플러스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옛날의 겨레ㆍ나라ㆍ수도의 이름을 통하여 본 우리민족의 단일성­예맥과 졸본,소부리,서라벌(류렬ㆍ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조선민족표준어의 법전화」(레베니 콜스키ㆍ소련과학원 동방학 연구소)등에서 볼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대회가 어떻게 「변질」될 것이며 어떤 성과를 올릴 것인가는 앞으로 사흘간에 달려 있는 것이다.〈오사카=강수웅특파원〉
  • 폭염파동/정전ㆍ단수 속출/「가마솥 더위」 4일째… 사용량 급증

    ◎전국서 정전사고 3백61건/고지대 급수난 겹쳐 2중고/얼음ㆍ가정용에어컨 “불티”… 품귀까지 30일로 4일째 계속되고 있는 불볕더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전기와 물,얼음사용량 등이 엄청나게 늘어 곳곳에서 물파동ㆍ정전소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각종 사건ㆍ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또 냉방용품의 수요가 급증,품귀현상을 빚고 있으며 일부 생산현장에서는 휴가자가 너무 많아 아예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요일인 29일 하룻동안 전국적으로 33명이 수영미숙 등으로 물에 빠져 숨졌다. 서울시내 수돗물의 사용량만해도 무더위가 시작된 지난27일부터 급증,평소 4백80만t미만이던 것이 5백11만6천t을 기록한데 이어 28일 5백21만9천t,29일 5백24만3천t에 이르러 하루 최대 생산량인 5백22만t을 넘어섰다. 이에따라 도봉구ㆍ성북구 등 북부수도사업소 관내 고지대의 급수난이 매우 심각한 상태다. 특히 도봉구 미아동 796,1267일대 2천5백여가구는 고지대인데다 차도마저 없어 급수차량도 못들어가 수돗물공급이 아예 끊어진 상태다. 최근의 전력소비량도 연일 최고치를 경신,장마속 무더위를 보인 지난26일 하오3시 순간 전력수요가 1천6백91만2천㎾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일요일인 29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떠난 뒤인데도 순간 최대 전력소비량이 1천2백95만6천㎾로 일요일의 전력소비로는 최고기록을 남겼다. 이는 여름철 일요일의 평균 전력사용량 9백41만2천㎾보다 3백54만4천㎾나 늘어난 것이다. 이에앞서 토요일인 28일 하오3시의 순간 최대 전력사용량도 1천6백66만7천㎾로 평일 전력소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처럼 갑자기 전력사용량이 늘어나자 곳곳에서 변압기가 터지고 전선이 녹아내려 정전사고가 잇따랐다. 한전집계에 따르면 29일 하룻동안 일어난 정전사고는 서울의 경우 99건을 비롯,전국에서 모두 3백61건이었다. 특히 아파트촌이 밀집해있는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 전력소비가 갑자기 늘어 일어난 정전사고가 모두 29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고를 기록했다. 가정용에어컨의 경우 삼성전자가 작년의 2배수준인 11만대를,금성사가 50%늘어난 90만대를 출고하는 등 공급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시중의 대리점에서는 거의 품절상태다. 가전제품수리점인 서초구 방배동 금성사당서비스센터에는 냉장고ㆍ에어컨ㆍ선풍기 등 고장난 가전제품을 수리하거나 부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난 6월말부터 휴가를 실시해온 서울 구로동 한국 수출산업공단에서는 이번 무더위가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다음달 1일부터 5일까지 6백54개 입주가동업체 가운데 62.5%인 4백3개업체가 공장가동을 중단하고 6만여명의 근로자들에게 집단휴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안 한국냉장 노량진 얼음판매소에는 최근 계속되는 무더위로 얼음을 사려는 상인ㆍ일반시민 등으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 회사의 한 직원은 『최근 생선판매상인 등 하루 평균 7백∼8백여명이 찾아오고 있으며 하루 판매량은 1천5백∼6백장에 이르고 있다』고 밝히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하루평균 5백여명이 찾아와 1천여장을 사갔다』고 말했다.
  • “「민족대교류」 정신을 살리자”/정종욱 서울대교수(세평)

    ◎통일문제엔 정부­재야 공동보조 바람직 끝내 무산되고 만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우리 모두를 이렇게 실망과 허탈감에 빠지게 하는 것은 그것이 7·20 민족 대교류 제의에 이은 민간차원의 첫 교류시도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 글자 그대로 자유왕래를 허용하겠다는 노태우대통령의 제의는 북측의 반응과 관계없는 우리측의 일방적 자유왕래의 실현의지를 담고 있었기에 대단히 신선한 것이었다. 특히 이번 대회를 주관한 단체가 전민련이였기에 우리는 정말 이제는 뭔가 되겠구나 하고 잔뜩 기대했었다. 전민련이 정부와는 다른 입장에서 통일문제를 접근해왔다는 점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북한측이 내세우는 전민족적 통일전선에서 남쪽의 핵심세력이 전민련과 같은 재야단체라는 사실도 부인할 필요가 없다. 그런 조직이 정부와 합의해서 우익단체들까지 포용하여 범민족대회를 준비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우익은 고향방문단에나 끼이고 반정부 인사들은 정부 몰래 평양축전이나 참가하는 비극이 이제는 되풀이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흐뭇해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세한 사정을 잘 모르는 국민들에게는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 때문에 분단의 벽을 뚫어놓을 역사적 기회를 놓쳐버렸으니 통탄할 수밖에 없다. 정부측에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북측의 웬만한 트집은 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7·20제의의 기본정신이였다고 보면 정부의 태도는 국민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북측 대표가 우리측의 안내를 받아야한다는 점은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는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주최자인 전민련에게 모든 절차의 주도적 역할을 맡겨야 했었다. 북측 대표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요청한 총리간의 서신을 얘기하지만 이것이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우리를 실망하게 만든 것은 숙소와 회담장소문제이다. 주최측에서 아카데미하우스를 정했으면 정부가 이에 협조하면 그만일터인데 굳이 현대식 호텔인 인터콘티넨탈로 고집한 것은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북측 사람들을 1류 호텔에 투숙시켜 우리의 앞선 경제를 보여주겠다는 계산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이는 큰 잘못이다. 우리의 장점은 잘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빈부의 격차가 공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북에게 공개와 개방을 요구하는 마당에 우리 스스로는 반쪽의 공개만 고집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카데미하우스는 전민련이 주관하는 행사에는 적합한 장소이다. 경호상 문제가 있다고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당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정부가 갖고 있지 않는가. 이번 일에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정부와 민간간의 긴밀한 협조체제의 정립문제이다. 5명이 오건 백명이 오건 북한측 대표가 남한을 방문하는 일은 절차상 많은 문제들을 제기한다. 차량문제가 그렇고 숙소문제가 그렇고 경호문제가 그렇다. 이번 일은 전민련과 같은 단체가 혼자서 이런 엄청난 일들을 도맡아 준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결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앞장서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지원을 어떻게 해주느냐는 것이다.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해당 민간조직들간에 충분한 협의가 사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에도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해결의 방안은 정부와 민간사이에 협의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서로 책임을 미루지 말고 미리 미리 서로 상의하고 협조하는 상설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둘째,북의 대남전략에 관한 문제이다. 이번 일에서 북한의 통일문제에 대한 기본 시각이 다시한번 확인되었다. 북은 지난 5월24일 김일성의 시정연설에서 분명히 밝힌 것처럼 남북대화를 정부차원과 민간차원에서 동시에 추진하려 하고 있다. 고위급 회담을 통해 정치군사문제를 다루면서도 범민족대회와 같은 민간모임을 통해 민족문제를 논의하려는 이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른바 전민족적 통일전선의 구축을 노리고 있으며 동시에 정부주도라는 남쪽의 입장을 약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남한의 다원적 체제성격을 역이용하려는 낡은 전략이다. 이에대한 남쪽의 대응은 정면돌파밖에 다른 길이 없다. 북측의 계산이 눈에 보인다고 해서 정부차원의 대화를 중단시켜서도 안될 것이며 민간차원의 교류를 막아서도 안될 것이다. 그들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원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원적 접근이라해서 정부와 민간조직이 서로 평행선을 긋거나 불협화음을 내는 병존관계가 아니라 협조하고 협의하는 유기적 공존관계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북이 단기적 안목에서 전략적 접근을 하더라도 우리는 거시적 안목에서 원리적 접근을 해야 한다. 원리원칙을 고집하는 경직된 자세가 아니라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의식하는 가운데 전민족의 자유와 복지를 위해서라면 사소한 일에는 구애받지 않는 의연함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번의 범민대 예비회담의 무산에서 느끼는 점은 하루빨리 정부가 앞장서서 전민련과 같은 재야단체들과 협력관계를 다시 회복하라는 것이다. 이번 일에서 우리가 입은 가장 큰 손실은 모처럼 성사된 통일문제에 관한 정부와 전민련의 협조관계가 불신과 비난으로 점철된 지난날의 불행한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성과이다. 통일문제에서 정부와 재야가 갈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지난 오랜 역경과 시련을 거쳐 정부와 재야사이에 통일문제에 관한 한 불신과 반목의 요소가 차츰 사라지고 신뢰와 협조의 새로운 관계가 싹트고 있는 것을 대단히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 보았다. 이 점이 바로 6공이 이룩한 최대의 업적이랄 수 있다. 북방외교와 7·20제의가 안과 밖의 단기차액을 노린 국내 정치용이라는 비난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6공의 통일정책을 지지해 왔던 게 사실이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함몰되어 가는 재야와의 신뢰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통일문제에서 여와 야가 갈라지고 정부와 재야가 나뉘면 민주화도 없고 한반도평화도 없고 21세기의 청사진도 허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깊이 인식하고 보다 과감한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본사 논평위원〉
  • 북한 9기 인민회의에 비친 권력구조

    ◎「혁명2세대」부상… 김정일체제 구축/세대교체 가속… 50대이하가 55.8%차지/「세습」기반의 핵심… 정책집행 실무 도맡아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층의 55.8%가 50대 이하로 분석돼 김정일후계체제 중심의 점진적인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0일 당국이 지난 5월24일 열린 북한의 제9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구성된 핵심권력층인 로동당 59명,최고인민회의 56명,정무원 88명 등 총 2백3명중 겸직을 제외한 1백47명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연령은 50대 이하가 전체의 55.8%(50대 79명,40대 3명)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60대 51명(34.6%),70대 11명(7.5%),80대 3명(2.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특징을 보면 김일성 오진우(인민무력부장) 박성철(부주석)을 위시한 70대는 권력핵심에 위치,정책 결정분야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허담(외교위원장) 연형묵(총리) 등 주로 테크너크랫 출신인 60대는 정책결정과 행정집행기구의 실질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50대는 김강환(부총참모장) 김용순(당 국제담당비서) 등 친김정일세력이 대부분인 동시 세습체제를 대비한 다음 세대 핵심인물들로 이들의 출신성분이나 경력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출신지역이 알려지지 않은 72명을 제외한 75명에 대한 출신지역별 현황을 보면 북한지역출신(평양 7명,평남 6명,평북 11명,함남 15명,함북 17명,황해 2명,개성 1명)이 모두 59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남한과 인접한 지역출신은 비교적 홀대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남한출신은 양형섭(제주출신ㆍ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의장) 여연구(서울출신ㆍ상설회의 부의장) 등 3명에 불과,그동안 남한출신 인물이 거의 숙청됐거나 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밖에 중국출신 10명,소련출신 3명으로 밝혀졌다. 또 혁명세대별로는 주로 빨치산 출신으로 구성된 65살이상 혁명 1세대가 34명으로 전체의 23.1%를 차지하고 있으며 혁명 2세대(55∼64살) 71명(48.3%) 혁명 3세대(54살이하) 42명(28.6%) 등으로 나타남으로써 혁명 2세대가 거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60년대부터 행정계통에 등장하기 시작한 혁명 2세대는 김일성의 절대체제유지 강화 및 김부자 세습체제를 구축하는 주요기반이며 혁명 3세대는 73년 2월 조직된 「3대혁명소조」를 주축으로 한 신진세대로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아래 세습체제 구축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해방이후 지금까지 북한을 이끌어 온 최고지배층은 김일성중심의 족벌 인맥,항일 빨치산 세대를 포함해 모두 3백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돼 공산국가중 가장 세대교체가 폐쇄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 개방바람 차단위한「역설적 개방」/북한의「판문점 개방」발표를 듣고

    ◎“통일주도” 인상심어 체제결속 겨냥 북한은 지난 5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성명을 통해 남북접촉과 왕래를 성과있게 보장하기 위해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내 북측지역을 오는 8월15일부터 일방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히고 한국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 성명은 남북간의 접촉과 왕래를 적극 추진시켜 나가는데 대한 원칙적 입장을 밝히고,남북간의 접촉과 왕래는 ①통일문제 해결과 직결되어야 하고 ②정당ㆍ단체 각계층 인민들이 동등하게 참여해야 하며 ③법률적 사회적 조건에 의한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는 등 3개항을 제시했다. 이어 북한은 『한국과 해외의 정당ㆍ단체 각계각층 인민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며 『북한을 방문하는 한국인과 해외동포들의 신변안전,그리고 모든 편의를 보장해 줄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같이 북한이 판문점개방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은 얼핏 매우,그리고 획기적인 조치로 생각될는지 모르나 따지고 보면 김일성이 올해의 신년사와 지난 5월24일 「평화통일 5개방침」에서밝힌 「자유왕래ㆍ전면개방」과 「콘크리트장벽」제거 주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개방하겠다고 선언한 지역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북한측 지역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사회의 일부를 개방하는 것으로잘못 또는 확대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북한을 방문하는 한국주민과 해외 동포들의 신변안전과 편의를 제공한다는 문제도 한국주민들과 해외동포들을 자유왕래 할수 있도록 받아 주겠다는 의미와는 다른 문제임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무슨 조치를 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자세가 바뀌고 있는가 하는데 있다. 아무리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 하더라도 북한의 대남전략에 실제적인 변화가 없다면 그 조치는 선전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지난 3일 개최된 7차 남북고위급 예비회담에서 우리측은 북한측의 주장인 「정치ㆍ군사」를 먼저 표기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였고,북한측도 회담외적인 문제로 회담자체를 공전시켜온 종래의 상투적인 태도를 삼가함으로써 8월중 양측 총리를 단장으로 한 고위급회담 본회담의 서울개최를 기대해볼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인 7월4일 북한은 전날 태도와는 달리 정부ㆍ정당ㆍ단체대표 등의 명의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한반도통일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남북한당국과 정당 단체 대표들이 참석하는 「민족통일협상회의」를 소집할 것을 주장했다. 이 성명에서 북한은 ①3대원칙의 재확인 ②두개한국정책 포기 ③팀스피리트 훈련중지 ④국가보안법 철폐 ⑤「민주인사」들의 석방등을 요구하고 『이러한 초보적인 태도표시 없이 분열노선을 그대로 들고 나선다면 최고위급회담에서도 해결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변,남북고위급회담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갖게 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판문점개방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북한의 계산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북한주민의 결속강화를 위한 대내 선전용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최근 극심한 경제난과 사상교육 및 통제강화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있고 외부세계와의 직ㆍ간접적인 접촉의 확대로 체제와 이념에 대한 불신이 두터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은「평화통일 5개방침」에서 제시한 남북간의 전면개방과 대화의 발전을 주도함으로써 주민들의 신뢰를 증대시켜 대내결속을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해방 45주년을 기념하는 8ㆍ15「범민족대회」를 오는 8월13일부터 사흘동안 판문점에서 열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북쪽 지역뿐만 아니라 남쪽지역까지 판문점 전지역을 완전히 개방시켜 한국의 일부 급진단체들이 참석할수 있도록 사전 정리작업을 하자는 것이다. 둘째 이 시기를 「인민민주주의」혁명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지난 5월24일 김일성이 시정 연설에서 밝힌 「전민족적 통일전선」형성 분위기를 조성시켜보자는 것이다. 북한은 아직도 한국사회가 학생소요ㆍ노사분규ㆍ치안부재ㆍ강력범죄ㆍ부정부패 등으로 매우 불안하고 유동적이며 대다수의 국민이 정부를 일탈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정부ㆍ제정당ㆍ사회단체가 참석하는 「통일협상회의」를 개최하여 급진단체들이 반정부운동을 부추켜보자는 계산일 수도 있다. 셋째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한국의단독 유엔가입을 저지시키고 주한미군의 조기 철수를 가속화시키려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남북한 당사자들이 해결할 문제로 제3국들이 간섭할 것이 아님을 내세워 남북대화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면서 9월 유엔총회기간을 넘겨보자는 생각일 수도 있다. 넷째 남북한관계개선을 앞세워 중소 등 주변국가들로부터 개방의 압력을 완화시키고 한소접근을 늦추는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의 접근으로 경제활성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대북한 접근의 전제조건으로 남북한 관계개선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대미접근을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는 실정이다.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내 북쪽 지역을 상징적으로 개방하면서 한국측지역 개방촉구,콘크리트장벽제거문제를 들고나오면서 8ㆍ15「범민족대회」의 성공적인 성사를 위해 적극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는 점차「남조선혁명」과 같은 이념문제보다는 경제문제 해결에 역점을 둘 것이며 체면과 자존심이 손상되지 않는한 한국과의 경제교류도 적극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북한사회의 개방에 앞서 분단현실을 인정하면서 체제유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계속 주장할 것이며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요구를 통제하기 위하여 북한주민들의 사상교육을 보다 강화시키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부심할 것이다.
  • “개방외압”에 형식적 「유연대응」/북의 돌연한 대화제의의 배경

    ◎한반도 새 정세로 “폐쇄보다는 유리” 판단/북방정책 대응,남북관계 주도 속셈/대미ㆍ일 관계개선의 디딤돌도 노려 북한이 20일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과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을 오는 28일과 7월12일 재개하자고 제의해옴으로써 지난 1월말 이후 중단됐던 남북한의 대화의 물꼬가 일단 트일 것 같다. 그런데 북한의 이번 제의는 바로 1주일전인 지난 13일 우리측이 주차 제의한 남북정상회담을 거부하고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 등 기존의 대화도 빠른 시일내에 재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던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하고 있다. 이에대해 통일원당국자와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소연방최고회의의장 겸 정치국원이 지난 19일 소련공산당기관지인 프라우다와의 회견에서 소련은 남북한의 대화증진을 위해 힘쓸 준비가 돼있다고 천명했으며 중국의 최고실권자 등소평의 둘째아들인 등질방이 지난 5월 비밀리에 한국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는 등 중소의 대한접근과 북한에 대한 개방ㆍ개혁의 압력이 보다 가시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따라서 북한은 이같은 국제적인 압력에 대응,남북간의 대화를 중단시키는 것보다는 형식적이고 선전적이나마 대화에 나서는 것이 현재의 난관을 타개하는데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다. 또 대화중단이 외부의 압력을 유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판단과 더불어 대외정책상 유연한 입장을 보임으로써 대미ㆍ대일관계개선의 디딤돌로 삼고자하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신정현교수(경희대)는 『한소 정상회담으로 충격을 받은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기본입장을 정립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 결과 일관성이 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북한은 주체적 사회주의 노선을 고집하는 대내정책과는 달리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고르바초프의 개방압력에 끝까지 대항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 제의가 비록 형식적이고 선전적 차원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멀지 않은 장래에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 군축협상 등 남북대화 진전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정부측 입장은 북한의 이번 제의가 대개 15일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두고 대화를 제의해 왔던 상례에 비춰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28일)의 경우 시일이 촉박하고 1주일만에 서로 다른 제의를 해오는 등 북한의 입장이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있으나 대화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회담에 응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제의가 그들이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기해 개최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8ㆍ15범민족대회」의 성사를 위한 명분축적과 우리정부에서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유엔동시가입 노력을 저지하기 위한 대외적 선전공세라는 점,그리고 북한을 지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한국내 일부 동조세력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 등으로 분석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한결같은 시각이다. 도흥렬교수(충북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직면해 변화의 자세를 갖추고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 필요성을 절감하지도 못하고 있는 북한은 우리의 북방정책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주체적」인 노력에 의해 남북관계를 주도해 보겠다는 입장에서 대화를 거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때문에 이번 제의는 남북한간의 관계개선을 기대하는 국제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평화공세적 제스처이거나 한소 정상회담이후 『북한을 고립시키지 않겠다. 북한을 돕겠다』는 자세를 천명해온 우리측의 진의를 타진해 보겠다는 뜻으로도 분석된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원 당국자는 지난 5월24일 열렸던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김일성이 시정연설을 통해 이른바 「조국통일 5대방침」이라는 통일방안을 제시한 이후 각 정당ㆍ사회단체의 명의로 지지 담화를 잇달아 발표하는가 하면 같은달 31일 중앙인민위,최고인민회의상설회의,정부원연합회의를 개최해 4개항의 군축안을 제의했고 이어 민족통일준비위원회의 결성을 주장하는 등 후속조치를 잇달아 제의해 왔음을 지적하면서 북한이 한소 정상회담으로 인한 불쾌감 때문에 남북한간의 대화를 거부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감정적 반응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은 실질적인 성과와는 별개로 김일성의 통일방안을 뒷받침하기 위한갖가지 구체적인 제의를 내놓음으로써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번 대화제의를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선전공세를 펼 것이라고 전망했다.
  • “남북대화 거부” 북한의 속사정

    ◎북방정책에 위기감… 한ㆍ소ㆍ중 접근 견제/남북 긴장감 조성,내부단속 겨냥/상식이하 용어로 한ㆍ소회담 노골적 비난/대화재개엔 북경태도가 변수로 한소 정상회담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북한이 또 다시 남북대화를 거부하고 나섰다. 북한은 13일 남북 국회회담준비접촉과 고위급예비회담의 우리측 수석대표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앞으로 상당기간 남북회담에 불응할 뜻을 내비췄다. 북한은 특히 이날 전통문에서 노태우대통령을 「귀측 당국자」라는 상식이하의 표현을 사용하고 한소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우리의 내부문제를 밖으로 들고 다니며 청탁,구걸하는 식으로 분별없이 처신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북한은 지금까지 노대통령을 지칭할 때 「최고 당국자」 또는 「최고위급」이라는 표현을 사용,어느정도 우리측 집권자를 예우해 왔었다. 북한의 원색적 비난은 이밖에도 전통문의 여러 군데에서 나타난다. 『민족 내부 문제를 남에게 의존하여 어느 한쪽으로만 끌고 가려는 것은참으로 민족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는 사대행위이며 동족간의 대화를 안중에 두지 않는 반민족적 분열행위』라고 한소 정상회담을 비난한 데 이어 유엔가입문제에 대해서도 『유엔 단독가입이나 동시가입은 현 분열상태를 합법화ㆍ고정화하여 두개의 조선을 만들기 위한 책동』이라고 강변했다. 북한은 이와관련,지난 5월24일 김일성의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제기시 「남북 유엔단일의석 공동가입안」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사고의 편협성을 보였다. 결국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직접적으로 기존의 남북회담을 거부하고 간접적으로는 한소,한중간 관계개선에 제동을 걸려는 다목적용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테면 북한은 정상회담까지 갖는등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는 한소관계 발전속도에 커다란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한중 관계개선을 자신들이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생각,이를 견제한다는 차원에서 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가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제도라는 환상에서 「우리식대로 살자」는 폐쇄정책을 고집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이날 전통문에서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필요한 사회개혁을 성과적으로,그것도 철저히 수행해 우리사회를 개방했으며 지금도 우리식대로 사회를 계속 개조하며 완성해나가고 있다』고 거듭 밝혔는데 바로 이 대목이 북한측의 경화된 자세를 대변한다고 분석된다. 북한은 또 남북대화를 거부함으로써 한소 정상회담이후 우리내부에서 일고 있는 「대북개혁ㆍ개방유도정책」 「남북 정상회담실현」 「유엔가입추진」 등 후속조치 마련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동시에 이를 희석시키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이 국가보안법철폐및 콘크리트장벽철거 등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데서 연유한다. 즉,북한은 국가보안법철폐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남한내 반정부세력에게 투쟁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통일원측은 분석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대남강경노선을 견지,남북간 긴장감을 조성함으로써 사상투쟁을 강화하고 내부결속을 꾀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통일원의 한당국자는 설명한다. 한마디로 북한이 김일성시정연설의 다음 단계로 구체적인 대남제의를 연달아 발표하던 예년과는 달리 대화거부를 들고 나온 것은 예상치 못한 한소 정상회담의 여파로 대남전략궤도를 수정한 것으로 읽혀진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로 볼 때 당분간 남북대화의 재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련의 정치ㆍ경제적 대북압력과 오는 9월 북경아시안게임을 전후한 한중 관계개선등으로 인해 북한의 폐쇄정책이 장기간 지속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남북대화의 활성화는 북경아시안게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남북문제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리고 소련은 대한관계정상화를 공식선언한 만큼 이제는 한중 관계개선에 임하는 중국측의 태도가 남북 대화재개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리란 전망이다. 결국 남북대화재개 및 이에따른 한반도 긴장완화는 북한의 마지막 이념적 동지인 중국과 우리와의 관계개선 정도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관측된다.
  • “인재의 산실”… 고도성장에 기여/“불혹” 맞은 한은

    ◎통화가치 안정ㆍ중립성확보가 과제 한국은행이 12일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50년 중앙은행으로 태동한지 40성상이 흘러 불혹의 나이로 접어 들었다. 창립당시만해도 조선은행법등 일제시대의 금융법령이 잔존,그대로 통용되고 있던데다 미군정과 신정부에 의해 발효된 행정명령과 통첩까지 혼재돼 금융질서가 극도로 문란했던 상황이어서 자주적 금융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설립이 절실히 요청되던 때였다. 당시 구용서 초대한은총재가 한은창업사에서 『한국은행은 그 기본구상이 경제적 민주주의와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지향하는 헌법의 기본정신을 창달하는데 있다. 한은은 국가의 기관이면서도 어떠한 정치적 압력으로부터도 초연할 수 있는 참된 국민의 기관으로 경제안정에 획기적 공헌을 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한 것은 한은의 창립정신을 잘 말해주고 있다. 40년이 지난 지금 한은은 이같은 초기창업정신에 얼마만큼 부응하고 있는가. 한은이 통화가치의 안정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온 점은 일단부인키 어려운 사실로 평가될만하다. 창립 10여일만에 6ㆍ25동란을 맞아 전시인플레수습에 나서야 했고 전후에는 경제재건을 위한 자금의 효율적 지원에 힘썼다. 60년대들어 정부가 경제개발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경제정책의 최우선순위가 성장과 고용확대에 두어짐에 따라 성장에 필요한 자금동원과 배분의 효율화에 금융정책의 역점을 두었다. 70년대에는 석유파동이후 내외경제여건의 급격한 변동에 대처하기위한 선별금융지원과 더불어 수출산업과 중화학공업등 성장주도부문에 자금이 공급될 수 있도록 수출지원금융등 각종 정책금융을 도입ㆍ운용함으로써 연평균 8%를 상회하는 고도성장을 달성하는데 견인차역할을 하기도 했다. 80년대 들어서도 고도성장과정에서 누적된 부작용을 극복하고 시장기능을 존중하는 민간주도의 경제운용으로 정책기조가 바뀌면서 한은의 정책은 이에 부응,물가안정에 최우선의 목표를 두고 통화안정등 경제안정화시책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앙은행으로서 정치적 중립내지는 독립성확보문제가 불혹의 나이를 맞는 오늘에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그것은 중앙은행으로서의 한은이 내외의 간섭과 압력없이 통화신용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에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거슬러 갈것 없이 지난해 12ㆍ12증시부양조치때 발권주체인 한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려 2조8천억원의 돈이 증시에 지원됨으로써 올들어서도 두고두고 통화정책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한은의 독자성과 중립성문제는 지난해 국회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있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채 기약없이 개정이 유보되고 말았다. 중앙은행으로서 한은은 그 초기 입법정신과 다르게 지난 62년 군사정권하에서 결정적으로 권한이 축소되고 기능이 약화됐다. 62년 5월24일 한은법 1차개정에서 금융통화위원회가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 개칭되고 기능도 통화신용 및 외환정책의 수립에서 통화신용의 운영관리에 대한 정책수립으로 권한이 대폭 축소되고 금통운위의 결정사항에 대한 재무부장관의 재의요구권이 신설되는등 금융정책에 대한 최종결정권이정부로 귀속됐다. 이후 82년12월까지 4차례개정이 더 있었지만 골격은 그대로 존속돼 왔다. 한은은 그러나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 뿐아니라 인재의 산실로도 국가경제에 이바지 했다. 그동안 한은을 거쳐간 사람은 4천여명으로 배출인재 가운데 금융계ㆍ경제계ㆍ관계ㆍ정계에까지 진출한 인사가 많았다. 6대 총재를 지낸 유창순씨,12대 신병현씨,13대 김준성씨가 부총리를 역임했고 15대 최창락씨는 동자부장관을 지냈다. 장기영씨가 50년대 부총재를 거쳤고 정춘택은행연합회장,정인용 전재무부장관이 은행감독원장 출신이다. 이밖에 김재윤 신한은행장,송병순 광주은행장ㆍ황창기 외환은행장ㆍ전영수 주택은행장ㆍ이상근 한미은행장 등이 한은출신이다. 나웅배 전부총리ㆍ이경식 전대우자동차사장(현 금통운위원)ㆍ이만기 한양증권사장 등은 57년 공채1기로 입행동기이다. 그간 한은총재로는 초대 구용서,2대 김유택,3대 김진형,4대 배의환,5대 전예용,6대 유창순,7대 민병도,8대 이정환,9대 김세련,10대 서진수,11대 김성환,12대 신병현,13대 김준성,14대 하영기,15대 최창락, 16대 박성상씨 등이 거쳐갔고 17대 김건 총재가 임기 4년중 2년을 맞고 있다. 창립 당시 4부6국1실,7개 국내지점 및 1개 해외지점에서 현재 17부3실11국에 국내지점과 사무소 27개,해외사무소 8개로 기구가 확대됐고 임원 6명,직원 1천1백22명에서 임원 13명,직원 4천84명으로 늘어났다. 조직이 커지고 하는 일도 많아졌지만 중앙은행의 본업이랄 수 있는 통화신용정책의 결정권한은 오히려 축소되는 역설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한은의 오늘이다.
  • 유엔 단독가입 추진 유보/정부 북한설득,「남북한 동시」 모색

    정부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과의 다각적인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그동안 추진해 왔던 유엔단독가입을 일단 유보하고 남북한 유엔대표부간의 접촉을 활성화,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유엔가입문제를 협의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최근 한소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국교정상화및 경협확대에 합의함에 따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주변여건이 크게 호전된 만큼 종래와 같이 북한이 남북한유엔동시가입에 반대할 경우 우리만의 단독가입을 추진,북한측을 자극하기 보다는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원만히 타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이 지난 5월24일 시정연설에서 제의한 「단일의석 유엔공동가입」 주장은 남북한의 상이한 대외정책노선은 물론 유엔헌장에 따른 권리및 의무의 행사등 법적인 측면에서도 수용불가능한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남북한 동시가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북한측과의 교섭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관련,최호중외무부장관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의 유엔가입은 국제적으로 축복받는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제,『앞으로 북한측과 이 문제를 진지하게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장관은 특히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문제와 관련,『북한측이 우리의 실체를 인정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때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정부는 이같은 입장에서 북한측과 유엔가입문제를 적극 논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정상회담 성사배경과 전망(한ㆍ소 새 시대:1)

    ◎한반도 냉전종식의 역사적 전기/북방ㆍ개혁정책 일치… 양국수교 “초읽기”/통일여건 조성에 큰 파급효과 예상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6월4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은 한소 수교임박이라는 양국관계에 뿐 아니라 냉전체제의 종식이라는 세계사적 시각에서 그 의의가 엄청나게 크다. 노ㆍ고르비회담은 우선 한소 수교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한소 양국간에는 지난해 4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무역사무소가 교환설치된 이래 1년도 채 못돼 금년 2월과 4월에 주모스크바 한국영사처,주서울 소련영사처가 설치되었으며 이번에 한소 정상회담이 예상을 뒤엎고 전격적으로 성사됨으로써 양국수교는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ㆍ고르비회담에서는 한소 관계정상화가 핵심적인 의제로 등장될 것이 틀림없으며 미수교국간의 정상이 회담을 갖는 사실 자체가 이미 수교에 대한 기분적인 인식이 일치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 「조속한 시일내에 한소 관계를 정상화 한다」는 수교원칙에 합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수교원칙을 토대로 양국 수교교섭단이나 양국 외무장관이 빠르면 7월중에 1∼2차에 서울과 모스크바 및 유엔본부 등을 오가며 수교에 따른 구체적인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소 수교는 9월이전에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한소간의 관계긴밀화 발전속도에 따라서는 노대통령의 연말 방소,2차 한소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않다. 한소 정상회담의 전격 성사배경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장래를 경제적 번영으로 귀결시키려는 소련측의 실질적 욕구와 남북관계개선 방법을 「서울­모스크바­평양」이라는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구사해야겠다는 우리의 입장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련으로서는 신흥공업국인 한국의 건설ㆍ제조업분야 등을 유치,자국의 시베리아개발,일반국민들의 생필품수급확대 등 경제번영의 촉매가 되게하고 또한 한국경제의 소련진입이 경제대국 일본으로 하여금 소련경제부흥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듯하다. 한국으로서는 남북관계진전,나아가 민족공동체로서 남북 통일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해야하나 북한이 한사코 폐쇄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을 개방쪽으로 움직이게할 필요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방외교의 관건인 「모스크바」를 평양으로 가는 우회징검다리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 바로 이번 노ㆍ고르비회담 추진의 결정적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소 정상회담의 또 하나의 의의는 남북한 관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소련의 개혁ㆍ개방물결이 베를린장벽을 허물고 동구에 자유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킴으로써 2차대전후 지속되어온 냉전체제의 급속한 붕괴가 이뤄진 최근의 세계적 화해 무드가 「분단 한반도」에 까지 불어닥친 것이다. 냉전체제의 최후의 산물인 남북한 분단의 해소없이는 진정한 데탕트가 이뤄질 수 없다는 인식이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차 있었다면 소련과의 관계정상화 없이는 방북외교의 완결을 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노대통령에게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노ㆍ고르비회담은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남북통일 여건조성이란 면에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을 절대 고립시키지 않으며 그들의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노대통령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메시지를 확인한 뒤 이를 북한측에 전달하면서 남북대화재개 등을 종용하고 북한도 개방의 길을 걷도록 권고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산이 소련의 충고를 끝내 거부할 경우에 구사할 수 있는 대북압력카드는 매우 다양할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폐쇄노선을 고수하면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핵 개발관련 기술지원의 중단을 들 수 있다. 이미 소련은 북한의 핵개발을 공식비판한데 이어 소련핵기술팀을 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북한의 고도무기체계가 소련무기체계로 이뤄져있는 점을 감안할때 군사적 압력이 용이하고 석유공급도 압력수단으로 구사할 수 있으며 북한외채의 80%가 소련채무인점도 충분한 영향력 행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비록 사회주의가 어렵더라도 자본주의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포기는 물론 사회주의가 얻은 전리품도 포기하는 것』(5ㆍ24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이라는 폐쇄노선을 다짐했지만 결국은 소련의 압력을 점진적으로 수용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단된 남북대화나 인적ㆍ물적교류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으로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남북 관계진전은 통일시대 개막의 여건을 성숙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소 관계발전이 가속화될 경우 시베리아개발에 한국의 자본ㆍ기술이 지금도 현지에 나가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때 그같은 「결합」은 남북한 관계진전에 새 전기를 제공할 것이다. 한편 한소 정상회담→양국 관계정상화로 이어질 북방외교성취는 집권후반기를 맞고 있는 노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위상제고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되며 내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외치로 보상하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은 분단시대를 열게 했던 주역과 관계정상화를 통해 분단을 해소하고 청산해간다는 의미에서 북방외교의 완결이자 분단시대의 종식을 앞당기는 결정적 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한ㆍ소 최근 접촉 일지 ▲78년 4월=KAL기 소 무르만스크 남쪽 2백마일 빙판에 강제착륙 ▲〃 9월=한국각료로는 처음으로 신현확보사장관 세게보건기구총회참석자 소련입국 ▲79년 4월=한소 국제전화 개설 ▲83년 9월=KAL기 사할린부근 상공서 소전투기에 피격 ▲88년 1월=소련,서울올림픽참가 공식발표 ▲〃 8월=박철언대통령정책보좌관 극비방소,수교교섭 개시 ▲89년 3월=최호중외무부장관,방콕에서 아태 경제사회위원회 총회에 참석한 리가초프 소 외무차관과 접촉 ▲〃 4월=소 연방상공회의소 서울사무소 개설,대한무역진흥공사 모스크바사무소 개설 ▲〃 6월=김영삼민주당총재 방소 ▲〃 11월=한소 영사처 상호교환 개설 합의 ▲90년 2월=주모스크바영사처 개설 최호중외무장관 한소 외무장관회담제의 ▲〃 3월=공로명 초대 주소 영사처장부임,주한 소련영사처 개설,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일행 방한 ◎한ㆍ소관계 7백50년 약사/1884년한ㆍ노 수교조약… 공식외교 개시/무역사무소 작년 개설,양국관계 급진전 한국과 소련 양국은 서기 1246년 당시 고려 왕자인 왕준ㆍ왕전형제가 몽고 수도 카라코룸에서 몽고왕 정종즉위식을 계기로 러시아 수스달 공국의 제로슬라브대공과 솔란게스왕자와 첫 접촉을 가진 이래 이번 노태우대통령ㆍ고르바초프 소대통령간 정상회담성사까지 7백50여년간 공식ㆍ비공식관계를 유지해왔다. 한소 양국이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861년 중로 북경조약체결로 연해주땅이 러시아영토가 됨에 따라 한로 국경이 두만강을 경계로 접하면서부터. 이후 부동함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남진정책으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며 1884년에는 한보 수교통상조약이 체결돼 양국간 공식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한국전쟁이후 한소 양국간 적대관계가 지속됐으나 70년대 들어 한국정부는 6ㆍ23선언등을 통해 소련을 포함한 비적성 공산국가와의 교류및 관계개선용의를 표명했다. 6공들어 한국정부의 적극적 북방정책추진과 함께 한소간 인적 교류가 증대되었으며 88년 8월 박철언 당시 대통령정책보좌관이 극비 방소,양국 수교교섭을 시작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에 소련선수단이 참가함으로써 양국관계진전에 결정적 전기가 됐으며 한소 양국은 지난해 4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무역사무소를 교환개설했다. 이어 11월 공식관계의 시초라고 할 영사처교환설치에 합의,양국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에따라 지난 2월 주소 영사처가 개설되고 공노명대사가 초대 주소 영사처장으로 부임했으며 소련측도 3월 중순 시로추크를 영사처장대리로 임명,영사처업무를 정식개시했다. 이에앞서 지난해 6월 당시 김영삼민주당총재가 소련과학원산하 세계경제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했으며 3월에는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과 박철언 당시 정무1장관 등 당정고위인사들이 소련을 또다시 방문,고르바초프등 소련측 고위인사들과 만나 한소 관계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어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간에 이를 뒷바침하는 친서가 교환됨으로써 양국은 1904년 국교단절이래 86년만에 다시 공식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평을 열었다.
  • 증안기금 6천억원 주식매입 동원가능

    증시안정기금이 6천억원의 자금력과 함께 보다 활발하게 장세개입에 나서게 된다. 지난 8일 증권사 기본출자금 1차분 2천5백억원으로 처음 주식매입에 나섰던 안정기금은 18일 은행이 1차출연금 2천5백억원을 납입한데 이어 19일 증권사 2차분 2천5백억원이 모아져 21일 현재 7천5백억원이 조성됐다. 이 가운데 19일까지의 주식매입 실적이 1천5백24억원으로 집계됨에 따라 모두 5천9백76억원이 당장 동원가능하게 됐다.
  • “외교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종합”/한영구 외교안보연 교수

    ◎한일관계의 마찰음을 듣고… 5월24일에서 26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는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일왕의 사과발언문제를 둘러싼 찬반양론의 여론속에서 그 필요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지 25년이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일 양국은 65년 국교정상화 당시로 되돌아간 인상을 짙게 하고 있다. 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4개의 협정(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 ㆍ문화재반환협정ㆍ어업협정ㆍ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한일병합에 이르는 모든 조약 및 협정은 무효임을 선언하고 양국간 국교를 정상화 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이라는 의미에서 청구권 자금이 설정되고 문화재 반환에 합의했다. 그리고 당시 한일간의 현안이었던 어업문제,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문제 등에 있어 정부간 협의에 의한 해결방식이 도입되었으며 양국간 경제협력관계가 공식화되었다. 이러한 기본적 틀의 설정하에 한일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일본의 안전에도 긴요하다는 기본인식하에서 우호,협력 관계를 추구하여 왔으며 무역역조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긴밀한 경제 협력관계를 모색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에 있어서 상호이해와 신뢰관계가 의문시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인한 국민감정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25년간의 한일협력관계가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그 우호관계의 긴밀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일관계에 있어서는 과거의 역사적 관계에 근거를 두는 대일 불신의 태도가 뿌리깊게 작용하는 관계로 실제의 협력관계 조차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대일 불신의 태도는 일본측의 사과발언이 어떤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 그동안 일본정부가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을 명백히 구체화하지 못한 측면이 강했던 점에 보다 근본적인 유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측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4협정의 체결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은 일단 끝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적인 측면에서 65년의 조약과 협정의 체결로 한일간 과거의 역사적 관계가 해결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나,한일간의 관계는 법적인 것 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특수한 상황하에 있다. 그런 점에서 법적인 측면에서의 기본관계의 설정은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제반후속조치가 동반될 것이 요청된다. 일본측은 이러한 후속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결국은 그 후속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색한 태도를 보여 왔으며 게다가 일본정부 각료 또는 고위관료에 의한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 정당화발언이 심심찮게 나옴으로써 일본의 의도가 의문시되어 왔으며 이러한 점들이 한국민의 대일 불신태도를 증폭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 국가간의 관계는 과거의 역사적 문제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관계를 명백히 규정하지 않고 현실을 뛰어넘을 수도 없다. 현재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파생된 문제로서 아직도 미해결상태로 남아 있는 문제도 많다. 재일한국인의 거주권문제ㆍ사할린교포 귀환문제ㆍ원폭피해자에 대한 치료 및 보상문제 등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일왕의 사과발언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왕은 일본의 상징적 존재로서 일왕의 발언은 상징적 의미를 띠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겠으나 이와함께 실질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점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동시에 실질적인 사죄의 방법으로서 앞의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또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 협조관계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협력문제ㆍ과학기술이전문제 등 현안의 해결도 시급하며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공동의 번영과 계속적인 발전을 위한 동반자관계의 구축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외교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금번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이 명분 또는 실리 그 어느 것에만 중점을 두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명분없는 실리는 굴욕적이 될 가능성이 크며 실리없는 명분은 공허한 것이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19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의 방일시 일왕은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 발언은 분명히 미흡한 것이었으나 이번에 그 이상의 발언을 하느냐 안하느냐는 일본측이 결정할 문제이며 국제국가를 지향하는 일본정부의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오히려 과거의 침략행위를 시인하고 역사의 책임을 통감하는 일본국회의 결의를 촉구하고 일본정부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인하여 발생한 미해결의 문제를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려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함께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도래에 대비하는 한일간의 진정한 선린우호관계의 정립에 대해서도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노대통령의 방일이 명분이나 실리 어느 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포괄적 차원에서 한일관계를 주시하는 냉정한 시각이 형성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일,「지문폐지」에 부정적/3세「면제」아닌 절충안 제시할듯

    ◎오늘 실무회의서 한국에 양해구할 계획 【도쿄=강수웅특파원】 일본 정부는 25일 한일양국간의 최대현안인 재일 한국인 「협정3세」의 법적지위 및 사회적 처우를 둘러싼 문제가운데 한국측이 강력히 철폐를 요구하고 있는 지문날인제도에 대해 3세에 대해서는 적용을 재고한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을 비롯한 일본 신문들이 이날 석간에서 보도했다. 이같은 방침은 오는 30일의 한일외무장관 정기회담을 앞두고 사전절충을 위해 25일밤 급거 서울로 떠난 일본외무성의 다니노 사쿠타로(곡야작태랑)아시아국장이 26일의 비공식 고위실무자회의에서 한국측에 제시하고 양해를 받을 심산이라는 것이다. 이 「수정안」으로 제시된 내용은 3세가 지문을 찍지 않으면 안되는 연령(16세)에 도달할 때까지는 3세에 대해 지문날인 의무의 당위성을 재검토한다는 것으로 되어있다. 즉 일본 정부는 이번 「수정안」에서는 「면제」라는 명확한 방침은 피한 채 앞으로의 교섭에 따라서는 「면제」를 포함할 가능성도 남기고 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이 문제를 협정속에 포함시킬 것인가,또는 법률개정을 통한 해결,아니면 3세이후 세대의 취급 및 대체수단의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은 오는 5월24일로 예정되어 있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때까지는 사무차원의 협의에서 결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신문들은 지적했다. 이같은 일본 정부의 방침에 대해 재일한국인들과 외교소식통들은 『종래의 주장에서 조금도 진전이 없는,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 이유로서는 우선 ▲「면제」가 아닌 앞으로 십수년 내에 협의를 계속할 수 있다는 내용에 불과하기 때문에 장래성을 보장할 수 없으며 ▲대체수단의 개발에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 ▲재고의 대상도 「3세이후」가 아닌 「3세」에 국한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 술취한 행인 흉기 폭행/80차례 7천만원 갈취/「똘이파」2명 영장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5일 술취한 행인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른뒤 금품을 빼앗아온 「똘이파」 노일균씨(35·서울강서구방화1동608의10)와 신현준씨(26·경기도광주군실촌면삼리24)등 2명을 범죄단체조직 및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유병춘씨(28)와 이기헌씨(27)등 2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들은 지난달 20일 영등포동5가24 금마차카바레 앞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이 카바레 경리부장 이재의씨(49·경기도안양시안양동향림아파트5동405)의 머리를 길이 1.5m가량의 쇠파이프로 뒤에서 내리치고 얼굴을 때려 실신시킨뒤 현금과 자기앞수표등 1백59만원을 빼앗은 것을 비롯,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80여차례에 걸쳐 7천여만원어치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있다.
  • 한일관계 「새레일」 놓을까/다케시타 전총리의 「서울나들이」

    ◎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 다져/일의 대북한정책 변화 설명할듯 다케시다 노보루(죽하등)전일본총리가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오늘 서울을 방문한다. 그의 표면상 방한목적은 한ㆍ일의원 연맹의 일본측 회장으로 선출된데 따른 「신임인사차」라고 알려져 있으나 서울에 머무는 동안 노태우대통령과 회담을 갖는등 한국의 정계요인들과 만날 계획이어서 일본정계에서는 그의 이번 방한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오는 5월24일로 예정되어 있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 및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보장ㆍ처우개선등 현안이 걸려있는 상황에서의 일본 전직 총리의 한국방문은 남다른 뜻이 있는 것으로 정계에서는 분석한다. 지난 3월9일 개최된 한ㆍ일의원연맹 간부회의에서 후쿠다 다케오(복전부부)전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회장에 선출된 다케시타 전총리는 3월13일 방미중 워싱턴에서 방한의사를 밝혔는데 일본정계에서는 그의 한국방문발언이 미국체재중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다케시타 전총리가 미국의 부시정권과 충분한 협의끝에 한국방문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은 앞으로의 일본의 한반도정책에 중요한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정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다음 3가지 사항이다. 첫째,다케시타 전총리의 방한은 한국과의 관계를 보다 확고히 다진 뒤에 앞으로 21세기에 이르기까지의 한ㆍ일관계의 레일을 부설하기 위한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시 노부스케(안신개)ㆍ후쿠다 다케오 전총리 등으로 대표되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한ㆍ일관계는 전통적으로 아베(안배)파의 인물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나 이제부터는 집권 자민당내 최대 파벌영수인 다케시타 전총리가 직접 맡고 나섰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고 일본정계에서는 분석한다. 다케시타 전총리도 회장취임 인사말을통해 『중대한 시기여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한ㆍ일관계에 공헌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다케시타 회장은 총리시절인 지난 88년 노대통령 취임식과 서울올림픽 개막식 등 2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노대통령과 회담을 가짐으로써 개인적 우호ㆍ신뢰관계를 돈독히 쌓아 왔다. 두번째는 이같은 한ㆍ일관계를 발판으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일본측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세번째는 일본의 한반도정책은 한국에 대해서는 물론 북한에 대해서도 다케시타파가 중심이 되어 대처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는 점이다. 위와같은 3가지 관점 어느 것이나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이며 이에따라 다케시타 전총리의 방한발언이 미국체재중에 나올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또다른 견해로는 1990년이라는 해는 한ㆍ일관계에 있어서 여러가지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연대라는 지적이다. 올해는 한ㆍ일합병조약이 체결된지 80년을 맞는해이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지 45년째에 해당한다. 나아가 한ㆍ일국교 정상화 25주년이 되는 해여서 한국측으로 볼때는 한ㆍ일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의미가 있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케시타 회장의 방한이 「전총리」라는 직함 외에 「자민당 최대의 실력자」로서특히 노대통령 방일을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국측 체면을 충분히 살려줄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다. 더구나 노-다케시타 회담내용도 노-가이후(해부)총리 회담을 능가하는 중요성을 가질 수 있어 앞으로의 한ㆍ일관계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서 다케시타 전 총리의 방한은 단순히 한-일의원연맹 회장의 한국방문이라는 이상의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고 본다. 나아가 다케시타 전총리의 방한이 한ㆍ일관계 안정화에 기여하게 된다면 다음 단계는 자동적으로 대북한관계 개선을 향하게 된다고 보고 있으며 북한측으로서도 다케시타파에 대해 접근해 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다케시타 전총리의 방한이 갖는 의미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일본정가에서는 받아들이고 있다.
  • 노대통령 방일/5월24∼26일/일 매스컴 보도

    【도쿄 연합】 노태우대통령은 오는 5월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일본을 공식방문할 것이라고 일본 매스컴이 양국 정부소식통의 말을 인용,25일 보도했다. 이곳 언론들은 한일 양국이 노대통령의 방문일정에 합의,동시발표를 앞두고 마지막 세부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다면서 그동안 연기되어온 양국 각료회담이 노대통령의 방일전에 서울에서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본측은 국회사정등을 감안,6월초 방일을 원했으나 한국측은 5월하순 캐나다ㆍ미국ㆍ멕시코등 3개국 순방을 전후해서 일본에 가는 것을 바라 결국 이 선에서 낙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 회계사시험 일정 확정

    재무부는 20일 90년도 「공인회계사시험 시행계획」을 마련,오는 4월29일 1차 시험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 1차시험에 대한 합격자 발표는 5월24일,2차시험은 7월13일부터 2일동안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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