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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나의 3월’ 출연진 “3.15정신 배우는 계기 됐다”

    ‘누나의 3월’ 출연진 “3.15정신 배우는 계기 됐다”

    3.15의거 50주년 기념드라마 ‘누나의 3월’ 출연 배우들이 ‘3.15’를 더 알아가는 뜻 깊은 자리를 열었다.‘3.15의거’를 다룬 최초의 드라마 ‘누나의 3월(기획 김용근 제작 허성진 연출 전우석 촬영 김민성)’은 이주영, 안홍준 국회의원 주최로 1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시사회를 가졌다.전우석 감독은 “뜻 깊은 3.15의거를 위해 마산지역MBC에서도 이런 드라마를 제작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배우들과 작가, 전 스텝들이 의기투합해 힘을 모아줘서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이어 뮤지컬 배우로 알려진 김지현은 “동생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누나로 허양미역을 맡았다.”며 “배우로 연기하면서 오히려 더 배웠고 ‘세상을 더 잘 챙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으며 배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연기자 손현주도 “친일 헌병출신 정보계형사로 발포명령자이기도 하다.”면서 “이번에 처음으로 악역을 맡았는데 시사회를 통해 보니 이렇게까지 나쁜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해 주위를 폭소케 했다. 제작진은 “‘누나의 3월’은 극본에 ‘한지붕 세가족’ ‘서울의 달’(이상 MBC) ‘서울뚝배기’ ‘파랑새는 있다‘(이상 KBS) ‘옥이이모’ ‘도둑의 딸’(이상 SBS) 등을 집필한 김운경 작가가 참여해 재미와 완성도를 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또 “그동안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드라마물이 제작된 적 있는 반면 ‘3·15 의거’를 다룬 드라마 ‘누나의 3월’이 처음이며 3.15의거’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다는 사실은 모른다.”며 드라마를 통해 뜻을 알리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했다한편 ‘누나의 3월’은 70분물 2부작으로 오는 26일 1, 2부가 마산 MBC를 통해 자체 방송하며 전국방송은 3.15기념을 준해 방송 할지 4.19혁명 50주년 특집으로 편성 할지는 아직 MBC편성 관계자와 협의 중에 있다.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가을철 ‘3色 비엔날레’ 관객 유혹

    가을철 ‘3色 비엔날레’ 관객 유혹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람회인 비엔날레가 올해 서울, 부산, 광주에서 9월에 일제히 개막한다. 비엔날레에 참여할 작가를 선정하고 주제를 정하는 등 총지휘를 담당한 전시감독들이 전시 주제를 발표하면서 비엔날레 성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지난 19일 발표한 전시 주제는 ‘삶 속의 진화’. 부산 시립미술관 등에서 9월11~11월20일 열리는 제6회 부산비엔날레를 기획하는 감독은 일본의 독립 큐레이터 아주마야 다카시(42)다. 2005~2007년 오사카 산토리 미술관에서 시작해 도쿄 로열미술관에서까지 전시하며 인기를 얻었던 ‘건담-제너레이팅 퓨처’전을 기획했다. 아주마야 감독은 25일 “바다는 진화의 모태이며 부산비엔날레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며 “생물학적 의미의 진화뿐 아니라 지적·문화적 측면에서 인류 및 도시의 진화, 그리고 진화 속에서의 ‘개인의 존재’에 대해 고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광주 감독 외국인… 차별화 경쟁 그동안 ‘현대미술전’, ‘바다미술제’, ‘부산조각프로젝트’ 등 3개 전시로 나누어 진행하던 부산비엔날레는 올해는 하나의 주제 아래 밀도 있게 이루어진다. 기존 200~300여명이던 참여작가 숫자도 올해는 75명으로 줄였다. 작품 수도 135점으로 축소했다. 전시장소인 수영 요트경기장 전시장과 광안리 해수욕장은 바다와 인접한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살피는 작품들로 꾸며진다. 이미 선정된 참가 작가로는 차기율(한국)과 자독 벤 데이비드(이스라엘), 알래스테어 데스몬드 매키(영국), 장-뤽 모에르만(벨기에), 인지 에비네르(터키), 딘 큐 레(베트남), 야노베 겐지(일본) 등이다. 모두 아주마야 감독과 친분이 있거나 한번이라도 그가 직접 작품을 본 적이 있는 작가들이다. 아주마야 감독은 외국인이지만 2008년 부산비엔날레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했고, 한국 작가들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아시아 최고의 미술 행사로 자리 잡은 광주비엔날레는 8회째에 접어들었다. 9월3일 개막해 11월7일 막을 내린다. 광주비엔날레 예술 총감독도 외국인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37)다. 그는 최근 “비엔날레 주제를 고은 시인의 연작시 제목인 ‘만인보’(10000 Lives)로 결정했다.”면서 “올해는 5·18 광주민중항쟁 30주년이 되는 해이고, 5·18 정신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광주비엔날레의 정체성과 역사성에 비추어 만인보를 주제로 했다.”고 밝혔다. ●기간 비슷해 ‘비엔날레 투어’ 특수 기대 김선정(45)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가 전시감독을 맡은 제6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미디어시티 서울 2010’을 주제로 9월8~11월17일 열린다. 최첨단 미디어아트 경연장으로서의 서울을 재조명할 계획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외동딸인 김 감독은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입지를 굳혔다. 세 개의 비엔날레 기간이 비슷해 전시를 잇따라 찾는 ‘비엔날레 투어’ 관람객도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전시감독들의 고민은 커지게 됐다. 차별화에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마야 감독은 “비엔날레는 전시감독의 생각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갖는 개성과 특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면서 “각 비엔날레는 열리는 장소가 다른 만큼 각자 다른 개성과 성격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시론]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시론]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다시 3·1절을 맞는다. 어김없이 오전 10시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1분간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을 올릴 것이다. 그리고 세련된 기념사와 우아한 독립유공자 포상, 장엄한 ‘기미독립선언문’ 낭독 등이 끝나면 “이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으로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는 ‘삼일절 노래’를 부르고는 만세 삼창을 끝으로 뿔뿔이 제 갈 길로 흩어질 것이다. 묵념의 순간만이라도 순국선열들의 고통과 염원을 상기했던가. 식민통치 압제 아래서 2000여회에 이르는, 그리고 세계 최대의 평화적인 만세 시위운동 참가자 200여만명의 함성에 귀 기울였던가. 3·1운동 후 1년간 피살 7500여, 부상 4만여, 피체 5만여, 가옥 소각 700여, 교회 소각 60여, 학교 소각 3, 헌병 즉결 태형 1만여, 약식 태형 1500여….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일제 침략자들의 각종 고문들, 대나무 바늘로 손톱 밑 찌르기, 시신과 함께 잠재우기, 철사를 달구어 남자 성기나 여자 음문·유방 난자, 발가벗겨 담뱃불과 다리미로 지지기, 기름종이를 국부에 삽입하여 불붙이기 등등…. 그런데도 신문은 일본인 순사가 시위 군중에게 음경 절단을 당했다는 등 허위 기사로 ‘불법 폭력 시위’라 우겼고 일부 비뚤어진 동포는 거기에 동조하기도 했다. 아니, 그런 비뚤어진 동포가 그때만 있었고 오늘에는 없을까. 그런 만행에도 식민통치의 경제 개발로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아졌다는 논리에 따르면 3·1운동은 ‘불법 난동’일 뿐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헌법전문처럼 ‘삼일정신’은 근대 민족혁명사의 모태이다. ‘기미독립선언문’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천명하면서 “인류 평등의 대의”와 “전 인류 공존동생권(同生權)”을 위한 세계평화를 주창한다. 이어 “침략주의, 강권주의”를 구시대의 유물로 타매(唾罵)하고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威力)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내(來) 하도다.”고 절규한다. ‘기미독립선언문’은 세계사적 관점으로 보면 한 나라가 남의 나라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될 당위성을 밝힌 미국의 ‘독립선언문’(1774)이나, 현대 인권사상의 교본인 프랑스의 ‘인권선언문’(1789)에 뒤지지 않는 명문이다. 약간 번잡스러운 앞의 글이나, 너무 간결한 법률 조항인 뒤의 글이 지닌 아쉬움을 극복하고 유려 장엄한 문체로 인권과 독립정신 이념에다 민주화와 도덕의식 강조, 세계평화사상을 동시에 접합시킨 게 ‘기미독립선언문’이다. 글쓴이와 민족대표 33인 중 3명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옥에 티로 거슬리지만 그 정신은 고전적인 ‘홍익사상’을 제치고 근대 국민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그것은 상하이 임시정부와 국내외의 여러 항일투쟁 세력들이 삼일정신을 면면히 승계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를 가차없이 비판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헌법전문은 삼일정신을 이어받은 유일한 적통으로 ‘4·19 민주이념’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은 이미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6월 민주화운동’ 역시 삼일정신과 4·19 민주이념의 계승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런 찬연한 민족 민주주의 이념의 모태인 3·1운동을 기리는 ‘3·1문화상’ 역대 수상자 가운데 13명의 친일파가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많은 친일파 명의의 기념사업이나 포상제도 역시 헌법전문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라는 삼일절 노래 가사는 선열들에게 이 나라를 봐달라고 할 만큼 우리가 떳떳하지 못함을 자책하는 표현일까. 아니면 살아 있는 우리 힘으로는 헝클어진 이 나라를 어쩔 수 없으니 돌아가신 당신들께서 다시 민족을 굽어 살펴달라는 애원일까. 아무래도 우리는 아직까지 “이 날을 길이 빛내자.”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 [문화계 블로그] 5·18 30주년 기념 말러의 ‘부활’ 서울공연 퇴짜 ‘유감’

    “나 높이 날아 오르리라. 사랑 날개 타고 나 높이 날아 오르리라. 살기 위해 죽으리. 살기 위해 죽으리….” 구자범 광주시립교향악단(광주시향) 상임지휘자가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와 번역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의 합창 부분이다. 구 지휘자와 김 교수는 광주의 한 카페에서 작품을 번역하면서 두 시간이나 펑펑 울었다고 했다. 가사의 마지막 부분이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던 까닭에서다. 두 사람은 올해 광주 민주화 항쟁 30주년을 맞아 5·18 기념 공연으로 말러의 ‘부활’을 선택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구 지휘자는 “가사를 보라.”고 짧게 답했다. “부활교향곡 합창의 가사가 당시 광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번역 과정에서 종교적 색채를 뺐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마침 올해는 말러 서거 100주년이어서 ‘30주년 광주’의 의미에 힘을 더 보탰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합창 부분을 시민들의 목소리로 채운 점이다. ‘아마추어’인 시민들이 우리말로 번역된 가사를 부르며 5·18 정신을 되새기자는 취지에서다. 광주 시민이 아니더라도 5·18 정신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오디션 지원(2월3일 마감)이 가능하다. 시민과 함께하는 ‘부활’은 5월17일 전야공연과 5월18일 본 공연으로 구성된다. 18일 공연은 시민군과 진압군 사이의 접전이 가장 치열했던 전남도청 앞에서 할 예정이다. 애초 서울 공연도 추진했다. 하지만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대관 심사에서 잇따라 퇴짜를 맞았다. 해외공연단과의 경합에서 밀린 것이다. 지방단체 공연이 외국 공연에 밀린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고 공연계는 자조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구 지휘자는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386세대’로 80년 광주를 직접 경험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광주시향이 상임지휘자 자리를 제안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 구 지휘자는 “5·18은 광주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다. 서울에서 그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해웅 예술의전당 사업본부장은 “외부인사 5명으로 구성된 심의위원들이 공연 의도와 교향악단의 실력 등을 철저히 검증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서 “대관 심사에서 탈락한 것은 요건(과반 찬성)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大法 ‘5·18 진압軍 정신질환’ 유공자 인정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 투입됐다가 정신질환을 앓은 진압군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1, 2심과 같이 나왔다. 대법원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군이었던 김동관(51)씨가 수원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요건 비해당결정 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에 동원됐고, 이런 자기모순이 가져온 극도의 갈등이 정신세계를 파괴했다.”는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제3공수특전여단 소속 전령병이던 김씨는 진압군으로 투입됐다가 81년 11월 전역하고서 4개월만에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김씨가 광주에서 겪었던 정신적 압박이 발병의 원인이고, 이후 부대 동료들과 상관과의 갈등이 증세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진단했다. 김씨는 2006년 7월 “5·18 민주화운동 진압작전 당시 부대 상관들로부터 받은 정신적 압박과 육체적 가혹행위로 말미암아 정신분열증을 앓게 됐다.”며 국가유공자등록을 신청했지만, 수원보훈지청은 “김씨의 정신분열증이 군 복무 중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거절하자 소송을 냈고, 1, 2심 재판부 모두 김씨 손을 들어줬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현장&이슈]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1년째 표류

    [현장&이슈]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1년째 표류

    “별관 철거냐 보존이냐.” 정부와 광주 지역사회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부지내 ‘옛 전남도청 별관’ 문제를 놓고 1년 넘게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획재정부는 최근 내년도 문화전당 건립 예산 중 71%인 500억원을 삭감했다. ‘5월 단체’ 등의 장기 농성으로 공사가 진척되지 못하면서 지난해와 올해 쓰지 못한 예산 460여억원이 이월됐기 때문이다. ●‘5월 단체’ 반대로 공사 중단 17만여㎡ 규모의 아시아문화전당은 이미 ‘랜드마크 논란’과 ‘별관 문제’ 등으로 개관이 당초 내년에서 2012년으로 늦춰졌다. 현재로선 어느 시점이 될지 불투명한 상태다. 이 때문에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지 않을까라는 우려마저 일고 있다. 정부가 별관 철거와 관련, ‘설계 원안’을 최종 입장으로 발표하면 또 한차례 홍역을 치러야 할 판이다. 문화전당은 지난해 6월 기공식을 하고 공사에 들어갔지만 5월 단체들의 점거 농성으로 1년여 동안 주요 공사가 중단됐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과 시민단체 등은 이 사태와 관련, 방송 토론회,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신청, 여론조사, 기자회견 등을 통해 210여차례 성명 공방전을 펴왔다. 지역사회의 분열과 혼란만 커졌다. 박광태 시장은 지난 7월 ‘10인대책위’ 대표자격으로 유인촌 문화부장관을 만나 ‘별관 3분의1 존치안’과 ‘게이트 설치안’을 요구했다. 유 장관은 “지역사회가 바라면 별관 완전 보존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재미교포 설계자인 우규승씨에게 자문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문화부는 이달 말쯤 최종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 도시 조성위원회는 지난달 31일 회의에서 ‘설계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원안 존중’이 51.2%로 ‘재설계(설계변경)’44.8%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발표, 정부안에 무게를 실어줬다. 10인대책위와 시민단체 등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이는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여론 조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조성위가 최근 한국갤럽을 통해 한 여론조사의 설문 항목과 내용이 보존보다는 철거를 유도했다.”고 지적했다. ●정부 내년 건립 예산 700억 삭감 학계·시민단체 등간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시·도민대책위’는 최근 옛 도청 보존에 동의하는 5만 1800명의 서명을 조성위에 전달했다. 앞서 전남대 등 3개 대학 교수 290여명은 “이 사업이 원안대로 재개돼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지원 광주·전남 문화연대 사무국장은 “이 사업이 5·18의 유산과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만큼 건물 보존 등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게 과연 옳은가라는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갈등으로 사업이 축소 또는 장기 표류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솔직히 현 정부가 ‘지역사회 의견 분열’을 이유로 이 사업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 해법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어정쩡한 태도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사업은 참여정부 시절 지역균형 발전과 국가의 문화적 위상을 높인다는 취지로 결정됐다. 2004~23년 국비 2조 8000억원 등 모두 5조 3000억원을 투입해 미래형 문화도시로 리모델링한다는 것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그 분을 영원히 떠나 보내야 하니 마음이 아프고, 만감이 교차합니다.”‘김대중 전 대통령 광주·전남추모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 지선 스님(백양사 주지)은 20일 “그가 평생 추구해온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 등의 정신을 이어 받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며 “장례일까지 매일 저녁 그를 기리는 추모문화제를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겠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산승(山僧)’에서 ‘투사’로 변신해 20여년 동안 광주지역 재야운동을 이끈 지선 스님은 DJ와 불가에서 말하는 ‘억겁의 세월’을 거친 ‘인연’을 맺는다. 지선 스님은 1980년대 이후 ‘반독재 투쟁’이란 기치 아래 대학생들과 섞여 매일 거리 최루탄 공방전의 선봉에 섰고, 이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던 그는 이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으나 6·29 선언 다음달인 7월 초 석방된다. “석방되던 날 DJ와 YS가 교도소 앞에 찾아와 처음으로 두 거물 정치인을 동시에 만났다.”며 “이후 두 분 사이를 오가며 후보 단일화를 강력히 촉구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두 분으로부터 선거 전까지는 꼭 단일화될 거란 말을 들은 뒤 각 대학에서 강연이 있을 때마다 ‘민주진영의 후보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진다.’고 역설했으나 그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가장 가슴 아팠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광주에서 재야활동에 열중이던 지선 스님은 DJ가 1987년 대선 패배 이후 평민당을 이끌던 때도 여러번 부딪쳤다. “DJ는 당시 ‘비 폭력, 비 반미, 비 용공’이란 3대 원칙을 끝까지 강조하며 우리 재야운동가와는 일정 거리를 두려 했던 현실 정치가였다.”며 “이런 점 때문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 자주 빚어졌다.”고 말했다. 지선 스님은 1989년 ‘조선대생 이철규 변사 사건’을 한 예로 들었다. 그는 지역 재야인사인 고 조아라 선생 등과 함께 동교동을 방문했다. 보기에도 흉측한 모습이었던 이철규씨 사진의 일간지 게재를 건의하기 위해서였다. DJ는 당시 “공안 당국에 탄압의 빌미만 제공할 뿐”이라며 일거에 거절했다. 지선 스님은 “5·18 이후 수많은 대학생과 열사들의 죽음을 외면하려면 정치를 그만 두라.”고 맞섰다. DJ역시 “법복을 입고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든 대학생을 선동하면 되느냐.”며 질책했다. DJ와 지선 스님은 이 때부터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DJ가 집권한 이후부터 그는 10여년 동안 ‘산방’에서 지냈고, 최근 3개월 간 하안거를 마친 뒤 DJ추모행사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어른은 가셨지만 우리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계실 그 분을 되새기고, 그의 정신을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지선 스님에겐 애증의 20여년이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부고]명예회복 못하고… ‘근로정신대’ 김혜옥 할머니 별세

    어릴 때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근로정신대 할머니가 명예회복을 하지 못한 채 끝내 노환으로 별세했다. 26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근로정신대 출신 김혜옥(78) 할머니가 25일 낮 12시30분쯤 광주시 전남대학교병원에서 별세했다. 지난 1944년 전남 나주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 할머니는 중학교에 진학시켜 주겠다는 일본인 교사의 말에 속아 친구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의 미쓰비시 중공업 항공기 제작회사에 배치돼 하루 10시간이 넘는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그는 지난 1999년 3월 다른 근로정신대 출신 할머니, 유족 등 7명과 함께 일본 시민단체 등의 도움으로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도쿄 최고재판소는 지난해 11월 이를 기각했다. 김 할머니는 그러나 노구를 이끌고 명예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최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연금 반환신청을 하던 중 지난해 11월 병세가 악화돼 투병생활을 해왔다. 빈소는 화순 현대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지는 5·18묘지. 광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동호독서당 다시 글소리 난다”

    “동호독서당 다시 글소리 난다”

    성동구가 우리 선조들의 향학열을 느낄 수 있는 ‘동호독서당 터’를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지난 12일 20년째 방치됐던 동호독서당 터의 표지석을 깨끗하게 정비한 것은 물론 내·외국인을 위한 안내판, 꽃과 나무, 잔디 등을 심는 ‘동호독서당 터 살리기 사업’을 마무리했다. 이번 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옛 독서당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이뤄졌다. 이호조 구청장은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사가독서제의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동호독서당은 성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자랑”이라면서 “앞으로 ‘독서당계회도’처럼 다시 독서당이 세워지고 그곳에서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문학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시를 낭송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1515년에 독서공간으로 건립 17일 성동구에 따르면 동호독서당은 사가독서(賜暇讀書)제를 위해 만들어졌다. 조선 세종 8년인 1426년 총명한 젊은 인재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인재양성책의 하나가 사가독서제이다. 지금의 안식년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집과 산사를 오가며 자유롭게 학문을 연구하는 인재들이 점차 산사에서 독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중종10년인 1515년 동호 월송암 서쪽 기슭에 독서당을 지어 완공했고 이를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 했다. 따라서 성동구의 독서당 살리기 사업은 그동안 잊혀지고 묻혀졌던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되살린 것이다. 구는 지난 5월18일부터 6월12일까지 옥수동 428 옥수극동아파트 내에 가로 27.3m 세로 32.7m 공간을 마련했다. 그곳에 동호독서당의 기념표지석을 설치했다. 주변에 잔디와 소나무 등을 심어 옛 정취가 느껴지도록 꾸몄다. 또 울타리를 회향목과 사철나무 맥문동 등으로 대신했다. 주민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자연석 계단도 새로 만들었다. 안내 표지판은 외국인들을 위해 한글과 영어로 만들었다. 구는 독서당 터가 옛 선조들의 정신을 알리는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학습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디자인 거리와 연계, 새 지역 명소로 성동구는 ‘독서당 길,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 사업과 동호독서당 터를 연계, ‘독서당 벨트’를 만들기로 했다. 이 벨트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이야기 정거장’이 들어선다. 응봉동에서 금호동4가에 이르는 650m의 독서당길 디자인 거리, 독서를 주제로 한 가칭 독서당공원(응봉동·오는 8월 개장 예정), 무쇠 대장간이 있었던 무쇠막터(금호동4거리), 독서당터(옥수동) 등을 만들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특히 독서당길은 동호독서당 터와 함께 응봉산과 8150㎡ 크기의 독서당공원을 연결할 뿐 아니라 금호지구 재개발 공사가 마무리되면 전통과 현대,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 대표 거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광주의 정신’ 마지막까지 실천한 일꾼 이야기

    ‘아아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여’를 쓴 ‘광주의 시인’ 김준태가 모처럼 책을 펴냈다. 시집일 줄 알았더니 인물 평전이다. 바로 2000년 숨진, 교육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 민주화운동가이며 목회자, 그리고 오월 광주의 아들이었던, 명노근을 다뤘다. ‘명노근 평전-하느님의 작은 아들, 광주의 작은 다윗’(심미안 펴냄)은 심장마비로 숨지던 마지막 순간까지 광주의 정신을 담고 살았던 ‘명노근’이라는 인물의 평전이면서, 치열했던 1980년 5월 광주의 열흘을 포함한 광주의 오월 정신에 대한 엄정한 보고 문학이기도 하다. 김준태는 “명노근 선생은 암울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참으로 아름답게 자신과 이웃을 지킨 사람이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지워준 무게를 흔쾌히 짊어지고 뚜벅뚜벅 걸어간 사람이다.”라고 술회했다. 명노근은 1965년부터 98년까지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전국국립대교수협의회회장단 의장을 지냈다. 또한 YMCA전국연맹 이사장을 역임했다. 덕분에 78년, 79년 잇따라 투옥됐고 80년 5·18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 장로로서 광주기독계의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했다. 이렇듯 그에 대한 추억은 모두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평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공통되는 평가는 ‘명노근은 행동하는 실천가’라는 사실이다. 김준태는 정부 문서보관소를 뒤져 확보한 민주화운동 시절 명노근의 자필 진술서와 국회 5공 청문회 속기록 등을 바탕으로 200자 원고지 1800장 분량을 집필했다. 평전은 철저하게 사료 취재에 근거해 ▲교육자로서의 삶 ▲YMCA 활동가로서의 삶 ▲민주화운동가로서의 삶 등 3부로 나눠 명노근의 치열한 삶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광주정신 권력·상품화 안돼”

    “광주정신 권력·상품화 안돼”

    판화가 홍성담(54)씨는 ‘5월 광주’를 대표하는 판화가이자 당시 문화선전요원으로 활동했던 시민군이었다. 홍씨는 5월 광주를 겪는 동안 법원 앞에 있던 화실의 커튼을 뜯고 종이를 있는 대로 모아 시민군들과 함께 활동했다. 홍씨가 기억하는 광주 정신은 ‘대동세상’이었다. 홍씨는 광주민주화운동 29돌을 하루 앞둔 17일 “당시 시민군에게 6000여점의 총이 지급됐지만 단 한 건의 총기사고도 없었다.”면서 “높은 도덕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먹을 것을 내줬고 차량들은 시민군을 태우기 위한 공용차량이었다. 서로를 지키면서 한편으로 뭉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홍씨의 광주 관련작 50여점 가운데 ‘대동세상’ ‘횃불행진’, ‘사시사철-봄’ ‘깃발’ 등만 봐도 총칼이 난무하거나 핏빛으로 얼룩진 그림은 거의 없다. 홍씨는 “광주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겐 악몽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행복한 기억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광주가 믿음과 연대의 마당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런 홍씨에게 최근 전남도청 별관 철거를 둘러싼 충돌은 안타까운 일로 다가온다. 그는 “정부가 가장 큰 국가 폭력의 비극인 ‘80년 광주’의 교훈을 잊은 듯 행동한다.”면서 “5·18이라는 숭고한 역사적 사건을 권력화해 상품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단체들의 행동도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5월 판화’ 연작으로 광주를 세계에 알리고 민족해방운동사 그림사건으로 고문과 옥고를 치른 뒤 홍씨는 광주를 떠나 1997년 서울로 올라온 뒤 현재는 경기도 안산에 자리를 잡았다. 5월 광주를 둘러싸고 분파가 생기고 계보가 생기는 등 점점 변질되는 과정이 그에겐 기득권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국가 폭력이 낳은 비극의 현대사를 형상화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2007년 11월부터 일본 도쿄와 제환 등을 순회하며 ‘안티 야스쿠니전’을 벌여왔다. 오는 8월15일 서울 인사동 평화박물관 전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이제 내년이면 30대 청년으로 접어드는 5월 광주.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지향적인 사고 탓에 구성원간 믿음이 무너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5·18이 남긴 용기와 신뢰, 연대의 의미를 되살려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서민들은 연대를 통해 불합리한 현실을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5·18 코앞인데…

    5·18 코앞인데…

    5·18 민주화운동 29돌 기념일을 일주여일 앞둔 11일 현재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를 둘러싸고 5월 단체간 대립과 갈등이 도를 넘어서면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 단체들의 갈등은 5·18이 지향했던 ‘대동 세상’이나 화합과는 정반대로 치달으면서 5월 정신마저 퇴색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5월 3개 단체 가운데 하나인 5·18구속부상자회 회원 200여명은 10일 유족회와 부상자회가 11개월째 농성 중인 옛 전남 도청 별관 앞에 몰려가 농성장 철거를 요구하는 등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연출됐다. 구속부상자회는 이날 농성장 진입에 앞서 “농성이 장기화되면서 아시아문화전당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법원도 최근 농성장 철거를 명령했는 데도 2개 단체는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며 “농성장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족회와 부상자회는 “이의신청을 통해 법원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으려고 하는데 농성장 철거에 대한 어떤 권한도 없는 구속부상자회가 철거 운운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항의했다. 유족회와 부상자회는 또 “구속부상자회의 농성장 난입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과 사전에 공모한 것으로 보인다.”며 “추진단이 특정 단체를 선동해 공사를 강행하려 하는 것에 경고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단체간 갈등은 5·18기념재단 이사장 선출과 통합 공법단체 출범, 29돌 기념식 등 현안 해결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5·18기념재단은 5월 단체들의 반발로 4개월 넘게 새 이사장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기념행사도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도청별관 보존을 주장하는 5월 단체 중 유족회와 부상자회가 17일 추모제를 국립5·18민주묘지가 아닌 도청별관에서 따로 치를 계획이다. 또 내년 5·18 30주년을 앞두고 어렵게 합의한 공법단체 구성마저 불투명하게 됐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5월 단체의 갈등이 5월 정신을 흠집나게 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뒤숭숭한 광주’ 5·18을 기념하다

    ‘뒤숭숭한 광주’ 5·18을 기념하다

    5·18민주화운동 29돌 기념행사가 광주·전남 일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옛 전남 도청 별관 철거 문제로 단체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4일 5·18민중항쟁 29주년 기념행사위원회(이하 행사위)에 따르면 이날부터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5·18 어린이학교 개교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사에 들어갔다. 행사위는 앞서 이번 기념행사의 슬로건을 ‘민중의 뜻대로!다시 오월이다’로, 주제어는 ‘공감’과 ‘저항’으로 결정했다. 전교조 광주지부의 어린이 학교가 4일 광주 방림초교와 광산구 운남동 근린공원, 전남 담양 등지에서 열려 5월 행사의 서막을 알렸다. 작은 운동회와 각종 체험활동이 펼쳐진다. 9~24일 열리는 5·18역사기행은 버스를 타고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외지 참배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올해도 계속된다. 항쟁의 현장을 돌며 계엄군에 맞서는 시민군 역할과 상무대 감옥 체험 등을 통해 당시 피해자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 행사위 관계자는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현대사의 비극인 5월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5월 정신계승에 앞장서야 할 5월 단체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설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 문제를 놓고 사분오열이다. 시민들은 행사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5·18 유족회 등은 매년 5·18묘지에서 치렀던 추모제(17일)를 올해는 농성 중인 옛 전남도청 안 천막 앞에서 치르기로 했다. 18일 열릴 29주년 기념행사는 전국적인 행사인 만큼 참석하기로 했다. 안성례 행사위원장은 “5·18 기념행사 중 가장 의미 있는 행사인 추모제 장소를 놓고 유족회 대표 등과 몇차례 만나 설득했으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며 “29주년 행사가 옛 도청 별관 철거문제로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주민 곁으로” 옛청사 재활용 붐

    “주민 곁으로” 옛청사 재활용 붐

    청사를 새로 이전하고 남은 옛 청사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전국의 시·도·구청은 물론 주민센터에 불어온 ‘청사 재활용 바람’은 비워진 공간을 지역민에게 돌려주는 알뜰 풍속도로 자리잡고 있다. ●철거 대신에 주민 편의시설로 지난달 말 새 청사로 이전을 시작한 서울 성북구는 최근 옛 청사를 철거하기로 한 당초 계획을 바꿨다. 삼선동 5가에 위치한 옛 청사(7323㎡)는 지상 3층의 철골구조물. 철거계획을 번복한 것은 지역경제 침체를 우려한 탓이다. 구는 다음달 이곳 1층에 취업정보은행을 입주시키고, 구인구직 만남의 장소·인력시장·취업박람회장을 마련한다. 2~3층의 사무실 30여개는 임대하거나 공동작업장, 법률·노무 관련 상담실로 개방할 예정이다. 1㎡당 월 임대료는 1100원선이다. 지역중소기업이 주로 입주할 26.2㎡ 사무실의 월 임대료는 3만원에 불과하다. 가장 큰 208.3㎡를 빌리더라도 월 23만원만 지불하면 된다. 지난 6일 접수를 마감한 결과 지역 내 32개 업체가 입주를 신청했다. 대부분 잡화, 제조, 도·소매 등 영세업체들이다. 지난해 10월 이사한 금천구는 옛 보건소 청사를 주민을 위한 치매지원·정신보건센터로 운영한다. 금천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 13년간 임대청사 생활을 해왔다. 구청사가 없는 대신 종합행정타운을 조성하며 이전하는 보건소 청사를 활용하기로 했다. 올 8월 문을 여는 센터는 대학병원과 위탁약정을 맺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지난해 11월 성산동 신청사로 이전한 마포구는 최근까지 옛 청사를 비워둬 민원이 이어졌다. 주변 상권이 주저앉은 데다 주변 치안 문제 등이 불거졌다.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던 마포구는 최근 부지활용계획이 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서 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포구는 이곳 1만 3434㎡를 2종에서 3종 주거단지로 용도를 바꿔 노인복지시설과 도서관 등 주민편의시설을 절반 이상 지을 계획이다. ●기관끼리 청사 맞교환도 강남구의 경우 구청사는 아니지만 지난 3월 8개동 통폐합을 단행하면서 남은 4개 주민센터를 주민에게 되돌려줬다. 개포2동 주민센터는 어린이집과 도서관, 대치2동은 독서실과 공부방카페 등으로 운영하는 식이다. 이들 시설은 올 7월까지 리모델링을 마친다. 앞서 구는 지역주민에게 동 주민센터 활용방안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지방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옛 청사 활용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전남도. 도청의 경우 2005년 10월 광주시에서 전남 남악 신청사로 이전했다. 광주시의 옛 청사에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설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부 주관으로 도청 본관, 도청 민원실 등 5·18민주화운동 기념물을 보존한 채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일각에서는 기관끼리 청사를 맞교환하는 사례도 있었다. 2005년 전남 여수시(2청사)와 여수 항만청은 이런 빅딜을 이뤄냈지만 최근 주민 논란이 불거져 도마에 올랐다. 앞서 전북도(2005년 7월), 경기 용인시(2005년 8월), 강원 원주시(2008년 11월)·강릉시(2001년 12월) 등도 청사를 이전했지만 옛 부지는 대부분 재개발의 길로 들어섰다. 지역 관계자들은 “흉물스럽게 방치되던 옛 청사들의 리모델링 바람이 불면서 주민들은 도시미관과 생활개선이란 1석2조의 효과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5·18단체들 끝없는 분란 ‘눈총’

    5·18 단체들이 최근 옛 전남도청 철거 문제 등으로 단체간의 갈등이 그치지 않으면서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18일 5월단체에 따르면 전날 5·18구속부상자회는 아시아문화전당 설계안을 존중해 별관 철거에 동의하고, 8개월째 진행 중이던 농성장을 철수했다. 그러나 5·18유족회와 5·18부상자회는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유족회 등은 이날 문화체육관광부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이달 말부터 공사 재개를 알리는 기자회견장을 점거해 몸싸움을 벌이는 등 갈등을 빚었다. 또 5·18기념재단 이사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5·18기념재단은 최근 이사장 선출을 위해 이사회를 열었으나 5월 관련 단체들의 항의에 부딪혀 선출이 또다시 무산됐다. 이들 단체는 “후보 재공모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사장 선출을 끝까지 막겠다.”고 밝혀 재단의 파행 운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5·18과 관련된 각종 현안 사업 추진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당장 1년 앞으로 다가온 5·18 30주년 행사 준비와 몇년째 끌어온 5월 단체 통합 등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5·18구속부상자회와 5·18부상자회, 5·18유족회 등 3개 단체는 지난해 말 ‘5·18 정신 계승의 실질적인 주체로 새롭게 출발하겠다.’며 통합을 위한 공법단체 추진을 선언한 바 있다. 이런 갈등과 내분이 끊이지 않으면서 5월 단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한 시민은 “5월 단체가 현안마다 내부 갈등을 빚으면서 지역의 이미지마저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5월 단체의 한 관계자는 “단체간 이견은 있으나 30주년 기념행사와 단체통합은 별개의 문제인 만큼 향후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5월정신 학교교육으로 ‘전국화’

    5월정신 학교교육으로 ‘전국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지역적 문제로 폄하되기 일쑤였다.5월 정신의 전국화가 그만큼 멀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광주시교육청이 인정한 5·18 교과서가 3월 새학기부터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학교 교육에 활용된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5·18 교과서가 점차 전국 청소년들의 역사교육 현장으로 확대될 때 5월 정신의 보편적 가치 전파는 빨라질 수 있다. 새 학기부터 학생들이 배우고 익힐 5·18 교과서는 초등학생용과 중·고등학생용 2권이다. 초등학생용은 5·18 민주화운동 전개과정,5·18 민주화운동 속에 담긴 정신,함께하는 5·18 등 3개 단원으로 이뤄졌다.내용은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졌다. 단원 아래 2~3개의 소주제와 5~7개의 세부 내용이 만화와 사진 등과 함께 소개돼 있다.소주제는 공부할 내용과 관련된 ‘도입글’ 등 ‘생각열기’와 학습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탐구하는 ‘살펴보기’, 단원별 학습내용을 정리하는 ‘활동하기’ ‘정리하기’ 등으로 꾸며져 있다. ‘함께하는 5·18´에서는 5·18 사적지,국립묘지 찾아가기,연극,노래 해보기 등 주변에서 5·18 정신을 되새기고 체험할 수 있는 손쉽고 다양한 방법 등을 제시했다. 책 표지는 5·18민중항쟁추모탑을 향해 달려가는 해맑은 어린이 모습에서 광주시민이 이루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꿈을 나타냈다고 집필진은 설명했다. 중·고등학생용 교과서는 ‘나와 5·18’, 5·18 민주화운동,5·18과 문화,5·18 정신 이어받기,아시아의 광주,세계 속의 5·18 등 5개 단원으로 이뤄져 있다. 사건 자체의 단순 기술보다는 사건이 가진 의미에 초점을 맞춰 학생들이 그에 맞는 탐구활동 등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5·18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과 서울의 봄,5·18 전개과정,민주화운동으로 되기까지 등을 기술했으며 5월 관련 문학·음악·미술 등 5·18이 문화·예술활동에 끼친 영향 등을 살펴봤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민주·인권·평화·공동체의 5·18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른길을 찾는 것이 이 책을 낸 궁극적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중단 위기

     전남도청 별관의 ‘철거 논란’(서울신문 11월25일자 11면 보도)이 장기화하면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사업이 파행 위기를 맞고 있다.  광주 문화중심도시추진단은 “오는 4~5일쯤 기자회견을 갖고 ‘5월 단체’가 요구해 온 ‘별관 존치를 전제로 한 설계변경’에 대한 입장을 시민들에게 알릴 것”이라면서 “사업의 추진 과정과 설계변경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한 이후에도 해법이 나오지 않으면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1일 밝혔다.  추진단 관계자는 “옛 도청 별관 보존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의 주 목적이라면 220억원이 투입된 문화전당 설계를 백지화해서라도 5월 단체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 사업은 큰 틀에서 5·18 정신을 모태로 추진되고 있는 만큼 부분적 사업인 ‘별관 보존 문제’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추진단은 최근 시민토론회에서 ▲해체 후 건물 파편을 전국에 분산 보존 ▲랜드마크에 해체된 별관의 역사성 표현 ▲본관 내부에 별관 축소모형 전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었다.그러나 사업 주체와 5월 단체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올해 안에 예정된 공사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당장 옛 도청 본관,상무관,도청 민원실,경찰청 회의실 등 7개 보존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 설계비 등 100억원이 넘는 예산이 사장될 위기에 놓였다.이런 가운데 ‘옛 전남도청 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원형보존을 전제로 한 문화전당 설계변경 입장’을 재확인했다.공대위 관계자는 “문화전당 건립 공사 기간과 비용에 변화가 있더라도 5·18의 상징적 건물의 일부인 별관을 철거해서는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지역의 최대 현안사업이 6개월째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데도 지금껏 입장을 밝힌 기관이나 시민단체는 없다.한 시민은 “문화전당 사업의 콘텐츠와 운영을 통해 5·18정신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만큼 합리적 태도변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옛 전남도청 일대에는 2012년 5월까지 국비 7984억원이 투입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설 예정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옛 전남도청 별관 해법없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부지에 포함된 광주시 동구 옛 전남도청 별관의 철거 여부를 놓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5월 단체는 “1980년 당시 ‘시민군’의 마지막 항전지였던 별관을 존치해야 한다.”며 6개월째 현장 농성 중이다.‘문화전당’ 건립 주체인 문화관광체육부의 ‘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은 “설계대로 전당을 짓고,5·18사적지 보존은 다른 방법을 통해 찾아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광주시는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강건너 불구경’하는 식이다.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은 최근시민대토론회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이에 따라 2012년 예정인 문화전당 개관은 차질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광주시·시민단체 어정쩡… 개관 일정 차질 불가피  5월 단체 등으로 구성된 ‘전남도청 원형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문화전당 착공 직후인 지난 6월 말부터 현장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공대위’는 “별관을 철거하면 도청 앞쪽 건물의 대부분이 사라져 역사성·상징성·장소성이 훼손된다.”며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원형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들은 별관의 벽돌 한 장이라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추진단이 공사를 강행할 경우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고 말했다.문화부는 문화전당 설계 때부터 5월 단체들의 동의를 받았는데 뒤늦게 발목을 잡는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중심도시 추진단 관계자는 “18개월 동안 220억원을 들인 설계안을 바꾸려면 이와 맞먹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며 “설계 변경에 따른 미관 훼손과 공기 차질,예산낭비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추진단은 최근 열린 시민토론회에서 ▲해체 뒤 건물 파편을 전국에 분산 보존 ▲랜드마크에 해체된 별관의 역사성 표현 ▲본관 내부에 별관 축소모형 전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문화부,축소 모형 등 대안 제시 건축가인 정기용씨는 “건물의 보존보다는 향후 문화전당의 운영을 통해 5·18정신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며 “별관을 철거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Gate) 개념으로 만드는 것도 창조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광주시는 조만간 새로 구성될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통령 소속인 위원회 새 위원이 위촉될 경우 광주시민들의 입장을 모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도 지금껏 5월 단체들에 지지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부담스러운 사안인 만큼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관망하는 분위기이다.  한편 옛 전남도청 일대에는 2012년 5월까지 국비 7984억원이 투입돼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 들어설 예정이다.지난 6월 착공식에 이어 터 다지기 공사가 한창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헌법재판소 창립 20돌] 위헌 결정 500건… 국민기본권 지킴이로

    [헌법재판소 창립 20돌] 위헌 결정 500건… 국민기본권 지킴이로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가 1일로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헌재는 현대사의 질곡을 겪은 끝에 탄생했다.5·16 군사 쿠데타가 없었다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헌재가 일찌감치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1960년 4월 첫 제정된 헌재법은 한달 만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로 사장됐다. 비상설기구인 헌법위원회나 대법원이 위헌법률 심판 등을 맡기도 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1987년 민주화 물결로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며 헌재 설치가 다시 추진됐고, 이듬해 9월1일 헌재법 공포로 마침내 헌재가 문을 열었다. 한편 헌재는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를 연다. 미국·영국·독일·일본·스페인·몽골 등 30개국과 베니스위원회·유럽헌법재판소회의 등 지역협의체 6곳이 참여해 헌법재판과 입법·행정·사법권,21세기 헌법재판의 새로운 도전 등을 논의한다. 한 교수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책을 쓰며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헌재의 역할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구절이다. 헌재는 그동안 1만 5663건의 사건을 심판해 500건에 대해 위헌 결정(헌법불합치·한정위헌·한정합헌 포함)을 내렸다. 그만큼 헌재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991년 언론의 강제사죄광고 위헌 결정 한 연예인이 1988년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과 사죄광고를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언론사는 “사죄광고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1991년 4월 헌재는 “양심의 자유는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는 자유까지 포괄한다.”며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1992년 1월 신체구속된 사람이 수사관 개입 없이 변호인과 자유롭게 접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결수용자의 변호인 접견에 교도관이 참여하도록 한 행형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 이는 인신보호를 위한 무죄추정 원칙과 진술거부권 및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에 대해 직접적 효력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국내 인권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한때 우리 영화계는 흥행보다 검열을 먼저 걱정해야 했다.1989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오! 꿈의 나라’와 해직교사 문제를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를 사전심의 없이 상영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제작자들이 헌소를 냈다.1996년 10월 헌재는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해서는 검열을 수단으로 한 제한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영화계의 손을 들어줬다. ●1997년 동성동본 금혼법 불합치 결정 1997년 7월 헌재는 동성동본 혼인을 금지한 민법 조항에 대해 유림이 주장하는 유전학적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음을 근거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앞서 한시적인 특례법으로 4만 4800여쌍의 동성동본 부부가 법률적인 부부가 되며 구제받았지만, 여전히 혼인 생활이나 자녀 교육에서 고통받는 동성동본 부부가 많았다. 헌재 결정으로 20만쌍의 동성동본 커플이 오랜 관습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1999년 12월 헌재는 공무원 공채시험 때 제대군인에게 과목별로 만점의 5∼3%를 가산토록 한 제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여성과 신체장애를 가진 남성 등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는 폐지됐지만, 현재까지 정치적인 쟁점이 될 정도로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2005년 2월 헌재는 호주제도에 대해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6대3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림단체의 반발과 여성단체의 환호가 엇갈리는 가운데 양성평등이 진일보하는 분기점이 됐다. 그 여파로 올 1월부터 호주제 대신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됐다. ●2007년 재외국민 참정권 제한 불합치 결정 2007년 7월 헌재는 나라 밖 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선거권 또는 국민투표권을 행사할 때 주민등록 등 국내거주 요건을 요구해 대한민국 국적의 해외 영주권자가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법률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2004년 5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여부를 판단하기도 했다. 헌재는 이를 기각함으로써 당시 사회 분열과 갈등을 봉합했지만, 결정문에서 재판관들이 개별의견을 표시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회는 여론에 힘입어 개별의견 공개대상 사건을 ‘탄핵심판을 포함한 모든 사건’으로 확대하도록 헌재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국회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재판관들의 부담을 늘렸다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한편 올 1월부터 모든 고소 사건에 대해 관할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헌재의 심판사건 접수 건수가 크게 줄었다. 재정신청을 거친 불기소처분에 대해서는 그 이전부터 헌법소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홍지민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지방시대]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한테서 배우자/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지방시대]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한테서 배우자/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전남도청 신관을 헐지 말라!” “5·18항쟁의 마지막 유적지, 영구 보존하라!” 80일 가까이 옛 전남도청-아시아문화전당 공사 현장에서는 농성이 계속되고 있다.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한 ‘기동타격대’를 중심으로 유족회·부상자·구속자들이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 문화전당 관계당국과 사업단측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도청 본관과 함께 신관(별관)은 5월 항쟁 최대 격전지이며 특히 1980년 5월27일 새벽,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싸운 최후의 항쟁지로 역사의 증거와 교훈으로 세워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5월 단체와 시민들은 설계를 변경하더라도 ‘신관’을 고스란히 살려두어야 하지, 그러지 않으면 ‘5·18의 1번지’가 반쪽이 돼 버린다고 성토한다.‘아시아문화전당’ 사업 현장에 이런 문제가 생겨서 더욱 떠오르는 역사적 교훈이 있다. 그것은 프랑스의 위대한 조각가 ‘로댕’이 만든 브론즈 조각작품 ‘칼레의 시민’에 관련된 이야기다. 작품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1337∼1453년)의 한 사건을 담고 있다. 이 전쟁은 무려 116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영국군이 프랑스의 거의 모든 지역을 손안에 넣었지만 ‘칼레’라는 도시는 그리 쉽지 않았다. 프랑스왕 필립6세도 방어를 포기한 도시 칼레를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끊임없이 포위 공격을 가했다. 칼레로 들어가는 식량 루트를 완전히 봉쇄하고 시민들을 모두 말려 죽이려는 작전을 펼쳤다. 결국 칼레 시는 항복하고, 영국왕은 완강한 저항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시민들 가운데 ‘여섯 명’만을 처형하겠다고 통보해 온다. 그에 응하지 않으면 패배한 칼레 시에 대해 대량 학살을 단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 스스로 목숨을 걸고 나간 사람들이 있었으니 칼레 시에서 가장 재력가인 외스타슈, 법률가 데르, 칼레 시에서 도덕적 명망이 높은 비상, 또 한 사람의 비상, 피네, 당드르가 그들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목에 오랏줄을 묶고 맨발로 영국왕 앞으로 걸어갔다. 칼레 시민들에 가해질 대학살극을 막고자 희생양이 돼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그러자 영국왕도 감동한 나머지, 이들 여섯 명의 시민을 놓아주고 칼레 시를 봉쇄작전으로부터 풀어준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1884년 칼레 시는 조각가 ‘로댕’에게 예의 여섯 사람의 모습을 담은 ‘칼레의 시민’이란 브론즈 조각 작품을 만들게 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11년만에 완성된 로댕의 조각 작품(1895년 작)에 대한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백년전쟁 훨씬 뒤에 만들어진 이 조각작품을 어디에다 세워야 하느냐를 놓고 시민들끼리 오랜 논란을 벌인다. 독일의 시인이며 로댕의 비서였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로댕론’을 통해 이렇게 적고 있다. 칼레의 시민들은 여섯 명의 전신상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을 도시의 어디에 세우느냐를 놓고 격론을 벌이다가 마침내 백년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칼레 시 바닷가에 세우게 된다. 전문가들보다 먼저 칼레 시민들의 의견을 넓게 수렴한 결과이다. 그렇다. 역사적 조각 작품 하나를 세우는 일에도 이렇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프랑스의 북쪽 도시 칼레의 시민들한테서, 오늘 우리는 큰 교훈을 본받아야 한다.1980년 5월27일 새벽, 최후의 순간까지 광주와 민주주의를 사수한 ‘전남도청’은 그런 의미에서 완벽하게 보존돼야 할 것이다. 벽돌 한 장, 나무 하나라도 똑바로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이야말로 ‘광주정신’을 영원토록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남도청 신관(별관)은 결단코 허물어선 안 될 것이다. 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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