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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기념식
    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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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묘역’ 전국서 2만명 참배

    - 어제 서울·광주서 기념식, 유족·시민등 6천명 참석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19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 5·18묘지에서 김종필(金鍾泌)총리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와 유족,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기념식은 5월 영령에 대한 묵념과 각계 대표의 헌화,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헌시,기념사 순으로 30분 남짓 진행됐다. 5·18묘지에는 이날 하루동안 전국에서 2만여명의 참배객의 발길이 이어져5월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서울에서는 5·18 민중항쟁연합중앙회(회장 金好成) 주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고건(高建)서울시장과 서울·경기지역의 5·18관련단체 회원,정당및 사회단체 대표 등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모식을 가졌다.5·18추모식이 서울시가 후원하는 공식행사로 치러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추모식이 끝난 뒤 보라매공원에서는 광주 망월동 묘역에 세워진 40m높이의 대형 추모탑을 5분의 1 크기로 축소한 추모탑 제막식이 열렸다.
  • 정치권 ‘5·17’‘5·18’재조명 열기

    80년대 민주화의 열기가 17일 여의도에서 재현됐다. 당시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투쟁에 몸바친 동교동과 상도동계 인사들이 이날 오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이름아래 한자리에 모였다.지난 80년‘5·17 김대중(金大中)내란 음모사건’의 당사자와 가족도 이날 저녁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민주화 정신을 되새겼다. 민추협 기념식 민추협기념사업회는 민추협 창립 15주년을 맞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심포지엄 및 기념식을 가졌다. 김상현(金相賢·전민추협 공동의장 권한대행) 김명윤(金命潤·전민추협 부의장)의원은 기념사에서 “민추 승리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하나로 뭉쳤다는데 있다”며 “이는 앞으로도 우리의 값진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두김의원은 특히 “길을 달리하고 있더라도 모든 동지가 민추시절 처럼 뜨거운 동지애로 하나가 된다면 민추협은 과거와 현재에 이어 앞으로도 민주발전과 민족통일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정신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민주세력의결집을 호소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축하 메시지를 통해 “민추협은 지난 84년 자유와인권이 억압당하던 암울했던 시절에 김영삼,김대중이 앞장선 가운데 군사독재체제에 맞서 민주화의 등불을 밝혀들어 85년 2·12총선 선거혁명과 87년 6월 국민 대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다”고 회고했다. 고려대 강만길(姜萬吉)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심포지엄에서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민추협 정신의 계승과 현 정치상황의 극복 과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2부 기념식에서는 일부 고인이 된 민추협 출신 인사 유가족에게 민주화 공로패가 수여됐다. 행사에는 동교동과 상도동계 인사를 포함,모두 500여명이 참석했다.현역의원으로는 국민회의 안동선(安東善) 한광옥(韓光玉) 한화갑(韓和甲) 이협(李協) 김옥두(金玉斗) 남궁진(南宮鎭) 이윤수(李允洙)의원과 한나라당 신상우(辛相佑) 김덕룡(金德龍) 박관용(朴寬用) 서청원(徐淸源) 김무성(金武星) 박종웅(朴鍾雄)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김대통령은 직접 참석하지 않는 대신 축하 메시지를 전해왔다. ‘5·17 내란음모사건’ 재조명 지난 80년‘김대중(金大中)내란음모사건’의 연루자와 그 가족 30여명은 이날 모임에서 내년 사건발생 20주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는 사건 관련자의 회고록이나 민주화 운동 관련 사진을 모은 사진집을 출간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한 참석자는 모임 직후 “국민의 정부를 맞아 내란음모사건은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할 과제”라면서 “사건발생 20주년을 맞아 내란음모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건의 경위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정부 구조조정 내주초까지 매듭

    정부는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른 각 부처의 새로운 직제안을 오는 18일쯤 국무회의에서 처리하여 20일쯤 공포하는 등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한다는계획이다. 공직사회는 50여국·실,100여과를 감축하여 6,800여명의 공무원을 줄인다는 정부 방침에 크게 긴장하고 있다.나아가 개방형임용제 등의 도입으로 공직이 더 이상 평생직장이 되지못한다는 ‘혁명적’ 변화에 동요하고 있다.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4일 공직사회의 이같은 불안감을 의식한 듯 “각 부처 직제 제·개정안이 정부조직법과 함께 공포되어 공직사회를 조속히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라”고 직제안을 최대한 빨리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 직제개편의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의 김범일(金範鎰)기획관리실장은 “직제안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라면서 “정례 국무회의는 매주 화요일에 열리나 오는 18일은 5·18민주화운동기념식이 예정되어 있는 만큼 17일이나 19일 국무회의를 열어 직제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공직사회의 불안감은 지난해 1차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폐지가 거론된 국·과의 직원들 사이에서 짙게 드러나고 있다.기획예산위나 행자부로 부터 직접·간접으로 감축규모를 전해들은 부처들은 마지노선을 정해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공직사회의 조기안정화 대책의 하나로 그동안 중단됐던 승진인사를직제개편 과정에서 대규모로 단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승진을 동결한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한 지난해와는상황이 다르다”면서 “대폭적인 승진인사로 직제개편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공직사회의 사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직제 개편과 인원감축이 마무리되면 공무원의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정부 부처의 과장급 가운데는 이미 이런 움직임에 대비하여 석·박사학위과정에 들어가고 외국어 공부를 하는 등 자구노력이 시작됐다.대충 보고 쌓아놓던 자료를 펴놓고 열심히 연구하는 사무관들도 늘어나고 있다.
  • 5·18단체-특전사 ‘화해의 악수’

    “이제 광주의 아픔을 씻고 국민 대화합의 디딤돌을 놓읍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단체 회원들이 80년 당시 광주지역에 투입됐던군부대를 찾아 화해의 악수를 나눈다. 사단법인 5·18 광주민주화운동 부상자회 등 5·18 관련 7개 단체 회원 280여명은 30일부터 5월 1일까지 1박2일동안 특전사 소속 3·7·11공수여단과 20사단을 잇따라 방문,80년 당시 광주지역에 투입됐던 현역 장병을 비롯,부대 관계자들과 어울려 19년 동안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던 사연들을 털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만남의 행사를 갖는다. 이들 부대는 80년 5월17∼29일 12일동안 전남도청과 광주역,금남로,전남대,YWCA,광주공원 등에 배치됐었다.당시 광주지역에 투입됐던 하사관 가운데 특전사에는 60명이,20사단에는 23명이 현재 준위와 원사로 복무하고 있다. 회원들은 30일 오전 전남도청 앞에서 버스 7대에 분승,11(전남 담양 소재)·7(전북 익산)·3(서울 송파구 거여동)공수여단을 차례로 방문해 부대소개를 받고 태권무 및 사물놀이,고공시범 등을 관람하며 방문기념패 교환과 기념식수를 하게 된다. 특히 80년 이후 19년만에 이뤄지는 이번 ‘아름다운 화해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11·7공수여단과 20사단에 각각 19년생 구상나무와 소나무,주목을 식수한다. 회원들은 또 3공수여단 내무반에서 광주진압에 직접 참가했던 현역 장병 20여명과 함께 잠을 자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계획이다. 한편 특전사와 5·18 관련 단체들은 80년 당시 희생자들이 안장된 망월동묘역과 국립묘지를 상호 참배하는 문제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 光州시민 박수받은 JP/“현정부는 5월 정신 존중” 연설

    ◎묘역 순례뒤 광장에 기념식수 金鍾泌 국무총리서리가 18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열린 5·18 18주년 기념식에 주빈으로 참석했다.金총리서리는 기념식에서 정부를 대표한 기념사를 마친 뒤 묘역을 순례하고 잔디광장에 기념식수도 했다. 金총리의 이날 광주행은 金大中 대통령을 대신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광주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는 金대통령도 행사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그러나 현재의 경제·정치 상황은 金대통령의 광주행을 쉽게 허락하지 않은 것 같다. 金총리서리가 5·18 묘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87년 신민주공화당총재 시절 처음 망월동에 참배했으며,이후 자민련총재 시절을 포함해 다섯차례 더 5·18 묘역을 찾았다고 한다.총리실 관계자는 “金총리서리도 5·18의 큰 피해자”라고 주장했다.80년 5·18을 전후해 신군부 세력에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린뒤 연금당하는 등 심한 고초를 겪었다는 것이다. 한국현대사에서 유난히도 정치적 사건이 많은 달이 5월이다.‘풍운아’라는 金총리서리의 느낌은 또 남다를 것이다.金총리서리는 이날 기념사를 통해 ‘국민의 정부’가 5월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규정했다.金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토대로 보좌진이 작성해온 연설문안을 金총리가 ‘좋다’고 받아들인 것이다.그런 金총리서리의 연설에 광주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 어제 ‘5·18’ 18돌 추모행사 1만여명 참가

    ◎민주의 꽃으로 핀 5월의 넋이여…/망월동 묘역서 씻김굿 등 진혼의식 엄숙히/독일 목사 등 7명 방한 국제적 위상 확인도 【광주=崔治峰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18주년 기념식이 18일 상오 10시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묘지 참배광장에서 金鍾泌 국무총리서리와 유가족 시민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기념식에는 金鍾泌 국무총리서리를 비롯,金正吉 행정자치부 장관 朴相千 법무장관 등 정부인사와 趙世衡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鄭水萬 5·18유족회장 등이 참석했다. 金 총리서리는 묘지순례 및 유영봉안소 추모분향을 마치고 추념문 잔디광장에서 기념식수를 했다. 5·18묘지에서는 기독교 대학총학생회연합의 추모예배가 열렸으며 광주공원에서도 5·18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씻김굿 등이 펼쳐졌다. ○…기념식장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헤센나사오 개신교회 바그너 노 회장과 목사,평신도 등 7명이 참석해 시종 행사광경을 지켜보며 달라진 5·18기념행사와 한국의 민주주의 위상에 대해 관심을 표명. 하오 광주 한빛교회에서열린 5·18기념 예배에 참석한 바그너 노 회장 일행은 “그동안 2∼3차례에 걸쳐 5·18 연합예배에 참석하고 5·18묘지를 방문했으나 이처럼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치러진 기념식은 처음”이라고 밝히고 “이는 국민의 정부 탄생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선도한 5·18관련자의 희생대가 때문”이라고 평가. ○…추모광장 입구에는 조선대 구속자가족들이 ‘모든 양심수를 어머니의 품으로’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구속학생 9명의 조속한 석방을 눈물로 호소. 97년 총학생회 부회장 강성일씨의 어머니 박명자씨(55)와 97년 동아리연합회장 정재형씨의 어머니 기흥순씨(59) 등은 “全斗煥 盧泰愚씨도 사면하는 마당에 죄없는 아들들을 차디찬 교도소에 가둬 두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의 멍예를 씌어 2∼3년씩 실형을 선고한 아들들을 학교와 가족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밝히고 “金大中 대통령이 약속한 5·18양심수 사면에 이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 ○…묘역앞에서는 씻김굿 무형문화재인 李상조씨가 초혼가를 시작으로 지전춤·넋올림·씻김·고풀이·길닦음 등으로 5·18 영령들의 영혼을 달래는 의식을 진행했다. ○…행사장 주변에는 동광주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비상진료팀으로 나와 봉사했으며 광주 전남 적십자사 무선봉사자들이 햄(HAM)으로 기념식 상황을 해외에 생중계하고 참배객을 안내했다.
  • 光州 2만명 숙연한 전야제/망월동 참배객 추모의 열기

    ◎5월 정신으로 우리 하나 되리라 【광주=南基昌 기자】 ‘광주의 아픔을 전 국민과 함께…’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제 18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전남 도청 앞에서 전야제가 열리고 5·18 묘역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 등 추모 열기가 높았다. 하오 7시30분부터 2만여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야제는 ‘민주를 위한 투쟁’ ‘오월 민주정신으로 살아’ ‘우리 하나 되리라’ ‘생명,희망의 나라로’ 등 4부로 나눠 3시간 남짓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손에 손을 잡고 5월의 노래와 민요·가요를 불렀으며 김자연무용단의 넋풀이 공연을 관람했다. 이어 5·18단체 대표와 어린이의 5월 횃불 점등식과 당시 도청 앞 차량시위,6·10항쟁 모습 등을 담은 영상물을 지켜보았다.또 노래패와 인기가수 공연이 계속됐으며,인권과 화합·평화를 주제로 한 희망의 메시지가 낭독되고 시민 학생들의 5월의 노래 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아들 손을 잡고 도청 앞에 나온 文碩虎씨(36·광주시 북구 운암동 운암아파트 42동 101호)는 “5·18 당시 고교 3학년이었는데 50년만에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 전야제 행사에 참석하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상오 5·18 묘역에서는 희생자 유가족들의 오열 속에 5·18 민중항쟁 유족회 주관으로 추모제가 열려 가신 님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宋彦鍾 광주시장은 추모사에서 “불의에 항거해 민주주의를 외치다 스러져 간 영령들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5·18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고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 현재의 국가위기를 극복하자”고 말했다.한편 18일 상오 10시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 묘역에서는 金鍾泌 국무총리서리를 비롯해 정부 주요 인사와 유족회원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린다.
  • 망월동 르포­5·18 光州민중항쟁 18주년

    ◎차분한 추모행렬 “恨 잊을수 있나요”/망월동에만 플래카드 걸려/금남로선 지하철공사 소음 광주는 조용했다.50년만의 정권교체,金大中 대통령의 집권후 첫 5·18을 맞은 광주의 모습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예상과 달랐다.망월동 묘역을 빼고는 5·18 관련 플래카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5·18 18주년을 앞두고 하루 수천명의 추모 인파가 줄을 잇는 망월동 신·구묘역.그곳에서 만난 郭성환씨(45·자영업).“그동안 5·18만 되면 광주가시끄러웠던 것은 과거 정권탓이지요.가장 큰 피해자인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했으니 시끄러울 이유가 있나요” 계엄군과 시민·학생 사이에 유혈공방이 벌어졌던 금남로,전남도청,전남대 교정도 5·18의 긴장된 느낌은 없었다.금남로에는 지하철공사가 한창이었다.전남대 등 광주지역 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과 조선대 교수협의회는 5·18 기간중 폭력화할 수 있는 한총련 집회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18년전의 피맺힌 한이 어찌 쉽게 잊혀질까.전주에서 교회 신자들과 함께 처음 망월동 참배를 왔다는 金희선씨(여·43)는 묘비를 살피며 눈시울을 붉혔다.‘어머니,조국이 나를 부릅니다.민주 정의 자유를 위해 앞서 갑니다’,‘여보,당신은 천사였오,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애끓는 묘비명들에는 아직도 못다한 사연들이 절절이 배어있다.金씨는 “어린 생명까지 이토록 잔인하게 죽이다니…”라며 말을 잇지못했다. ‘5·18 연구소’ 朴秉基 상임연구원은 ‘광주의 차분함’은 ‘망각’이 아니라고 풀이했다.한 단계 승화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그는 “이제는 5·18이 지닌 보편적 가치,즉 민주주의·인류애를 실증적 연구를 통해 확산시키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18의 전국화’를 바라는 광주시민의 염원이 담긴 것이 바로 망월동 구묘역의 돌탑과 신묘역의 헌수탑.전국 각지의 참배객이 작은 돌 하나씩 들고와 쌓은 탑이 이제 1m 높이에 이르렀다.묘역 헌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명단도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5·18 묘역 입구 표지석은 광주시민들이 정부에 가진 바램을 대변한다.길이 6.8m,높이 4m,무게 33t의 화강암으로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5·18 묘지’라고 씌여진 표지석의 왼쪽 부분은 비어있다.‘국립’이라는 명칭을 써넣기 위함이다.5·18기념행사위 李基洪 위원장은 “묘역의 국립묘지 승격,5·18정신의 교과서 수록,국가차원의 전국적 기념식 거행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올해 5·18 기념사업은 사상 처음으로 통합추진되고 있다.기념재단이 주축이 된 행사위원회를 만들었다.차분하고 내실있는 행사추진이 가능한 연유다. ◎곳곳에 남겨진 상흔/1천여명 부상·고무 후유증 시달려/金來香양 18년째 ‘휠체어 신세’… 올 대입 도전 “약사가 돼 나처럼 고통받는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5·18 당시 두차례 척추 관통상을 입고 휠체어에 18년째 몸을 의지하고 있는 金來香양(22)은 영문도 모른채 불구자로 운명지어체적 진실이 하루빨리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학속의 5·18/대하소설 봄날 “절규가 희망으로”/대부분 詩로 분노 표출… 제도 폭력 허위 고발 광주민주화항쟁은 여전히 진실규명이 미흡한채 세월과 함께 과거의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문학속에서도 광주의비극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해왔다.그러나 임철우씨의 장편소설 ‘봄날’에서 마침내 ‘광주의 진실’이 총체적으로 형상화되어 한국인의 보편적 역사 흐름의 한 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봄날’은 왜곡된 정치형태 탓에 ‘광주정서’라는 감정적 모습으로 호도된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장편소설이다.임철우(한신대교수)씨는 당시 전남대 휴학생으로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대하소설 봄날이 지난 2월,5권으로 완성되기 전에도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은 많이 발표됐다.상징과 은유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시는 정치적 금기의 상징이었던 광주를 다루는데 소설보다 자유로웠다.광주항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던 80년 6월 김준태의 장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발표됐다.그후 광주 비극에 분노하는 시가 쏟아져나왔다.광주의 5월을 다룬 첫 소설로는 윤정모씨의 단편 ‘밤길’이 85년 발표됐다.그 2년후 ‘80년 5월 광주항쟁 소설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일어서는 땅’이 출간됐다.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사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못하고 역사적 진실을 우회하는 형식을 취하는 한계성을 드러냈다.판도라의 상자격이었던 광주 진상에 대한 통제 때문이었다.‘봄날’은 그러나 참담한 살육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광주항쟁 열흘동안의 처절하고 비극적인 모습을 장대한 한편의 드라마로 만들었다.시민들의 항쟁을 체계적으로 논리화하는 등장인물 윤상현은 현실에서 패배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한다.대학생으로 나오는 명기도 “인간과 삶을 향한 소망을 배워가리라” 다짐한다.그래서 이 소설은 ‘눈부시게 맑은,늦은 봄날의 아침’으로 끝난다.작가가 고발하고자 하는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이 사라지고 의식의 허위성이 제거된다면 광주의 5월은 찬란한 ‘봄날’로 빛날 것이다. ◎宋基淑 5·18 연구소장/“진실 밝히고 올바른 평가 내려야”/발포명령자 규명­군기록 보존 중요 광주문제라면 말도 꺼내기 힘들었던 5공시절부터 5·18이 제대로 평가받는데 앞장섰던 宋基淑 전남대 교수(5·18 연구소장)는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밝히고,그 진실을 바탕으로 5·18을 정치사회적으로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이라며 ‘5·18의 학문적 객관화’를 강조했다. ­5·18 18돌을 맞는 의미는. ▲지금까지는 정부주도의 배상논의가 주를 이뤘습니다.또 기념사업,망월동 묘역 단장도 기대만큼 이뤄졌다고 봅니다.5·18을 역사의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려면 관련 자료를 챙겨 정리하는게 중요합니다.진실의 핵심은 발포명령자를 가리는 것인데 아직 전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80년 당시 군기록중 소멸시킨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현재 있는 것이라도 솔직히 공개하고,군사비밀로 분류되어 있다면 존재만이라도 확인해 두었다가 10∼20년뒤라도 공개해야 할겁니다. ­5·18의 전국화,세계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그렇습니다.5·18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때문에 5·18을 4·19,제주 4·3항쟁 등 국내의 다른 민중항쟁뿐 아니라 중국의 천안문사태,대만의 고웅사태 등과 비교연구하는게 필요합니다.나아가 아르헨티나 칠레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 중남미국가들과의 비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일부 남미국가들이 민중혁명에 실패,군사정권이 재등장하는 과정을 반추해보면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막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金大中 대통령정부에 바라는 것은. ▲金대통령에게는 큰 부담을 주지않으려는게 이곳(광주·전남)의 정서인것 같습니다.金泳三 전 대통령때는 큰 소리쳤었는데….(웃음)사회단체들에서는 5·18 묘역의 국립묘지 지정,5·18관련 교과서 내용 재정리를 요구하고 있고,앞으로 정부도 이것들을 추진하리라 생각합니다. ◎5·18 광주민중항쟁 이란 5·18 광주민중항쟁은 1979년 유신독재를 자행해온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로 초래된 권력공백기에 불법적으로 집권을 꾀하려는 신군부세력을 거부하며 민주화를 요구,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계속된 광주시민들의 봉기를 가리킨다.현재 정부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공식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나 5·18단체들을 비롯한 다수 학자들은 시민·학생들의 자발적 미주화 투쟁을 부각시키는 뜻에서 ‘5·18 광주민중항쟁’으로 부록 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부장(반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전국팀=金守煥·崔治峰 기자
  • 국민의 정부 첫 5·18 의미­5·18 光州민중항쟁 18주년

    ◎“아시아민주화운동 도화선” 재평가/亞 인권선언대회 주체 계기/기념식 국제행사로 발돋움 “5·18은 아직도 광주에 갇혀 있는가” 국민의 정부 출범후 처음 맞는 5·18의 화두(話頭)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지난해부터 5월18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는 등 여러 여건은 4·19에 맞먹는 민중항쟁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그럼에도 광주·전남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도 기념행사 조차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5·18 민중항쟁 제18주년 기념행사위원회(위원장 李基洪)’는 올해 행사의 목표를 ‘5·18정신의 전국화·세계화추진,그리고 광주와 5·18의 향후 방향성 제시’로 세웠다.5·18을 시공(時空)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어 전국적,나아가 세계 인류 모두에게 제대로 인식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번 5·18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50년만에 정권이 교체되었다는 사실이다.또 유엔 세계인권선언 채택 5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다.광주에서는 15일부터 17일까지 ‘아시아인권헌장’선언대회가 열리고 있다.아시아지역 2백여개의 비정부민간조직의 쟁쟁한 인권운동가들이 모여 21세기를 맞아 아시아민중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추구해야할 기초적인 권리를 담은 헌장을 채택하는 행사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5·18은 아시아 민주화의 도화선이 된 국제적 민중운동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광주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 국민 전체의 역사로 기록됨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 시간의 관점에서 5·18의 근·현대사적 위상 재고찰이 필요하다.5·18 묘역에 설치된 체험공간 일곱마당 부조물은 ‘임진왜란 의병­동학혁명­광주학생운동­3·1운동­4·19의거­5·18광주민중항쟁­통일’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일곱마당에는 빠졌지만 4·3제주항쟁도 같은 맥락에서 부각되어야 한다는게 5·18연구학자들의 주장이다. 공간적으로는 다른 나라 민중항쟁과의 비교 검토가 요구된다.중국의 천안문사태,대만의 2·28사태 및 고웅사태 등이 비교대상이 될 수 있다.일부 학자들은 버마 8888항쟁,태국 5·18 항쟁과 최근 인도네시아의 반(反)수하르토봉기 등 80년대 후반 이후 아시아권의민중항쟁들을 ‘민주화 갈망’이라는측면에서 같이 묶어보려는 노력을 진행중이다. 결국 5·18이 역사에서 제 위치를 차지하려면 명확한 진상규명이 전제되어야 한다.발포명령자,사망자 숫자 등이 확실히 규명되어야 한다.집단암매장 여부,행방불명자 추적,헬기기총소사 등의 참혹행위 여부도 밝혀져야할 대목이다. ◎광주 민중항쟁 일지 ▲80.5.17=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5.18=전남대생 600여명 학교정문 앞 계엄군과 첫 충돌.광주민주화운동 발발 ▲5.27=신군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9.1=전두환 11대 대통령 취임 ▲9.17=김대중 내란음모죄 1심 사형선고 ▲10.25=계엄군법회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175명 선고공판사형5명,무기7명 등) ▲12.9=광주 미문화원 방화 ▲81.4.3=실형 관련자 특사,감형 실시 ▲82.3.18=부산 미문화원 방화 ▲84.11.18=민정당사 점거 시위 ▲85.5.23=서울 미문화원 점거 ▲6.7=국방부‘광주사태 전모’발표.사망자 191명(민간인 164,군인 23,경찰 4명) ▲86.11.1=광주 직할시 승격 ▲88.4.26=13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민정당 완패.국회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정국 형성 ▲88.11.18∼89.2.24=국회 광주 특위 및 청문회 가동 ▲89.3.10=노태우­김대중 회담,상무대 공원화등 일부 치유책 합의 ▲91.5.11=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보상 지급 완료 ▲93.5.13=김영삼 대통령 광주문제 관련 담화 발표 ▲94.5.13=정동년 5·18 광주항쟁 연합 상임회장,두 전직 대통령 및 군지휘관 35명을 내란 목적 살인 등 혐의로 고발 ▲95.7.14=5·18 관련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 구성 ▲7.18=검찰 5·18 관련자들에 대한 공소권 포기 발표 ▲7.19=5·18 유족 부상자 등 150여명 명동성당 농성 ▲11.25=5·18 특별법 제정 ▲96.1.23=두 전직대통령 등 5·18 관련자 8명 내란혐의 기소 ▲97.4.17=대법원 전두환 무기,노태우 17년형 확정 ▲5.9=국무회의 5·18 국가기념일 제정 ▲12.22=두 전직대통령을 포함한 5.18 관련자 사면,복권
  • 달라진 金 대통령의 지방 나들이

    ◎행사 있을때 시·도 들러 업무 파악/오늘 대구시·경북도 처음 방문/선거철 부작용 우려 ‘조심 행보’ 金大中 대통령이 29일 서울시를 시작으로 시·도 순시에 나선다.30일에는 대구시청과 경북도청을 방문,업무현황을 보고 받은 뒤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기공식에 참석한다.대구·경북지역 방문은 취임후 첫 지방나들이다. 金대통령의 지방 순시는 중앙부처 업무보고때와 같이 순차적으로 사전에 일정이 짜여진 것은 아니다.지방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임을 감안,대통령이 꼭 참석해야 할 행사가 있을 때 겸사겸사 시·도도 들려 지역민원을 듣고 현지 실상을 파악한다는 복안이다.이러한 순시계획은 金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金대통령은 이날 서울시청 방문에서 李海瓚 교육부장관까지 배석시킨 가운데 서울시가 안고 있는 청소년 대책 등 각종 현안에 대해 관심을 표시하고 새정부의 개혁의지와 지방공무원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朴智元 청와대대변인도 이를 의식,“지방에서 열리는 특별한 행사에 대통령이참석하면서 지방자치단체를 방문하는 것일 뿐”이라며 “서울시 공무원들에게도 외자유치를 위한 노력을 당부하지 않았느냐”고 반문,정치쟁점으로 비화하는 것을 우려했다. 따라서 30일 대구·경북지역 방문 일정 이후에는 현재 확정된 계획이 없다.다만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맞춰 광주를 방문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중이다.지역 여론은 金대통령이 참석해 주길 바라고 있고,광주일보 창간기념일에도 밝혔듯이 金대통령도 개인적으로는 희망하는 편이나 정치적인 파장이 만만치 않아 가볍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분위기다.또 5월30일에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해양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는 길에 부산시청을 방문하는 문제도 검토중이나 여전히 가변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金대통령이 첫 방문지로 대구를 택했다는 점이다.金重權 비서실장을 현지에 보내 지역현안을 파악한 데다 이날은 지구당개편대회 참석차 들린 것이지만,朴泰俊 자민련총재도 대구지역을 찾았다.朴총재는 30일 고속도로 기공식에도 함께 간다. 이는 金대통령의 의지가 실려있는 대목이어서 지방나들이가 국민대통합을 위한 단초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 용서·화해로 국민대화합을”/5·18 정부주관 첫 기념행사

    ◎각계인사 3천여명 그날의 뜻 기려 「5·18 광주민주화운동」 17주년 기념식이 18일 상오 10시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묘지 참배광장에서 각계 인사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후 처음 치러진 이날 행사에는 고건 총리를 비롯,오세응 국회부의장·강운태 내무부 장관·손학규 보건복지부장관·박찬종 신한국당 고문·송언종 광주시장·허경만 전남지사 등 정부와 정당 인사들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순국선열및 5·18희생영령에 대한 묵념·헌화·경과보고·기념사 순으로 30여분 동안 진행됐다. 고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이제 5·18은 원한의 시발점이 아니라 수많은 민주시민이 이 땅의 민주화에 온몸으로 기여한 역사적 사실을 기리는 축복의 시작이 돼야 한다』며 『용서·관용·화해를 통해 국민 대화합을 이루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5·18정신을 계승하고 민주 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날 관련행사도 잇따라 이어지면서 추모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하오 1시쯤 5·18 묘지에서는 광주불교사암연합회 주관으로 5월 영령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추모법회가 열렸으며 광주한빛 교회에서는 추모예배가 이어졌다.하오 4시쯤부터 전남도청앞 5·18민주광장에서 기념대회가 열려 그날의 참뜻을 기렸다. 2년6개월간의 공사끝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5·18묘지는 잘 꾸며진 외형과는 달리 편의시설들이 부족해 참배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5만여평에 달하는 묘지 곳곳에는 참배객들을 위한 음료수대가 마련돼 있지 않거나 화장실,공중전화부스가 크게 부족했다.시민들은 주차장밖에 설치된 이동식 화장실이나 전화국 등에서 제공한 무료전화에만 의존했다. 한편 광주시는 기념식에 각계인사 550여명을 초청했으나 참석인사는 50여명에도 미치지 못해 국가기념일제정에도 불구하고 지역행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따랐다. 광주지역은 광주시와 전남도를 비롯한 각 기관·단체와 주요 건물은 물론 대부분의 아파트와 주택가 등에는 국기가 게양돼 기념일 지정을 경축했다. 시민들은 『국기게양은 지난 95년에는 광주시청,96년 광주시청 및 전남도청에만 내걸렸다』며 『하지만 이날 집집마다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니 5·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이 실감난다』고 말했다. ○금남로일대 격렬 시위 이날 광주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던 학생 1천500여명은 하오 7시10분쯤 동구 금남로 전남도청앞에 모여 고 유재을군(20·조선대 행정 2)의 장례보장 등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져 금남로 일대는 밤늦게까지 최루탄과 화염병 공방이 이어졌다.
  • 함께 되새긴 「5·18」(사설)

    5·18 광주 민주화운동 17주년 기념식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뒤 처음으로 성역화된 광주 운정동 5·18신묘역에서 엄수됐다.고건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등 정부측인사와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그리고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과 시민·학생 등 2천여명이 참석해 그 날의 정신을 되새기고 민주화의 영령들을 위로했다.실로 17년만에 맞는 뜻깊은 행사가 아닐수 없다. 이번 행사는 지난 16일 새로 단장한 5·18묘역 성역화 사업 준공식을 시작으로 17일 추모제와 전야제,18일의 첫 정부 주관 기념식과 시민단체들의 각종 집회,문화·체육행사 등으로 이어졌다.전야제와 기념식 도중 일부 학생들의 가벼운 소란이 있긴 했으나 대체로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치러져 새로운 출발로서의 「광주 5월」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고건 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궐기이며 항쟁』이라고 선언하고 『이 운동은 광주라는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 범국민적인 보편가치로 승화되어 관용하고 화해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총리의 5·18에 대한 규정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발언을 우리는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보고자 한다. 우리는 그동안 「5·18」에 대한 멍에때문에 많은 댓가를 치렀다.「광주의 한」과 「상처치유」에 매달려 좀처럼 앞으로 내딪지는 못했다.그러나 5·18 운동의 국가 법정기념일 지정과 5·18 묘역의 성역화로 화해와 화합의 마당이 크게 넓혀졌다고 본다. 이제는 민족 전체가 대동단결해 21세기를 향해 나아갈 때다.5·18묘역에 잠든 민주투사들이 열망했던 조국의 민주화와 발전,그리고 민족의 화해를 생각해야한다.진정 용서하고 관용하는 화해의 정신을 발휘해 모두가 새롭게 출발해야할 것이다.
  • 5·18 영령이여 편히 쉬소서/신묘지 준공/내일 첫 국가기념행사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5·18 제17주년 기념행사가 고건 국무총리를 비롯한 3부 요인과 정계·법조계·종교계 등 각계 인사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8일 상오 10시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지」에서 거행된다.기념식은 헌화·분향·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기념사 등의 순으로 1시간여 동안 진행된다. 전날인 17일 상오 10시 5·18묘지 참배공간에서는 유족회 주관으로 추모제가,하오에는 전남도청앞 5·18민주광장과 금남로 일원에서는 전야제가 각각 열린다. 광주시는 이에 앞서 16일 하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이홍구 신한국당 고문 등 정계인사와 송언종 광주시장·허경만 전남지사·5월단체 회원등 각계인사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로 조성한 「5·18묘지」준공식을 가졌다.송언종 시장은 식사를 통해 『계엄군앞에 무참히 쓰러진 5월 영령들의 넋은 민주주의의 활화산으로 부활하고 있다』며 『다시는 이땅에 그같은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여야 대선주자 광주로 몰린다

    ◎「5·18」 기념일제정 행사 참석·여론청취 정부가 5월 18일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제정한 것을 계기로 여야 대표를 비롯한 차기 대선주자들의 광주행이 러시를 이룰 전망이다.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위원은 오는 17일과 18일 이틀간 일정으로 광주를 방문,망월동 묘역에서 열리는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다.묘역참배를 전후해 호남지역 지구당위원장과 당직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광주현지의 민심과 애로사항도 수렴한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5월19일 전당대회 일정때문에 22일부터 사흘동안 광주를 찾기로 했다.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아직 방문 계획이 없다. 여권내 차기주자들도 잇따라 망월동을 찾을 계획이다. 지난달 30일 이수성 상임고문에 이어 오는 16일에는 이홍구 고문이 1박2일 일정으로 광주에 내려가 5·18묘역 참배와 함께 「광주포럼」특강을 실시한다.박찬종 고문과 이인제 경기지사도 묘역참배를 원칙으로 구체적인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 5월18 5·18기념 10월2일 노인의날 등/3개 기념일 제정

    ◎11월17일 선열의날 정부는 29일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5월18일을 「5.18 민주화운동기념일」,10월2일을 「노인의 날」,11월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각각 제정하는 내용의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개정안을 의결했다.〈관련기사 6면〉 이에 따라 올해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정부주관으로 치러지게 된다.
  • 서울신물 선정 1996년 10대 뉴스­국내

    ○OECD 가입 확정 정부는 지난 12일 국회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비준서를 프랑스 정부에 기탁,이 기구의 가입을 확정지었다.선진국의 국제경제,공공정책 협의기구의 성격을 갖는 OECD의 29번째 회원국이 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결정하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됐으나,금융 자본 서비스 분야에서의 개방확대로 선진국과의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들어가게 됐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 9월18일 새벽 강릉시 안인진리 해안에서 좌초된 북한 잠수함이 발견됐다.동해안 군사시설 정찰임무를 띤 이 잠수함에는 26명이 타고 있었으며 좌초직후 전원 강릉 일대로 침투했다.군 당국은 2개월간 공비소탕작전을 벌여 1명 생포,24명 사살의 전과를 올렸다.우리측도 민간인 4명을 포함,11명이 사망했으며 국내외에 북한의 침략성을 다시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일가족 17명 대탈북 10월26일 북한을 탈출한 김경호씨((61) 일가 16명과 이들의 탈북을 도운 북한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씨(30)가 죽음을 무릅쓴 44일간의 대탈주 끝에 12월 9일 서울에 도착했다.함북 회령에서 중국,홍콩을 거쳐 망명한 이들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망명한 최대규모로 기록됐으며 식량난,경제난 등으로 위기에 봉착한 북한체제의 이완현상이 심각함을 보여주었다. ○2002년 월드컵 유치 지난 5월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에서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권을 따내 한국은 또 한번 국제 스포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조직위구성 및 유치활동 등 모든 면에서 경쟁국 일본보다 뒤늦게 뛰어들어 사실상 가능성이 희박했으나 막판 응집력으로 공동개최를 이끌어내 한국스포츠의 저력을 발휘했다.특히 월드컵 공동개최는 국제사회에서의 한·일 공조분위기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총련 연세대 시위 한국 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지난 8월12일 정부의 불허 방침에도 아랑곳없이 「8·15 조국통일 범민족 청년학생 통일축전」을 개최하기 위해 연세대를 불법 점거,9일동안 폭력시위를 벌였다.이 사태로 구속기소된 학생만도 444명이나 돼 사법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점거농성의 중심지로 건물의 절반 이상이 불에 탄 연세대 종합관은 기념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전·노씨 세기의 재판 12·12 및 5·18사건과 비자금 사건으로 법정에 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항소심이 끝나고 대법원의 최종 심판만 남겨두고 있다.1·2심 포함,피고인은 5·6공의 핵심인사와 재벌총수 등 모두 34명.법정에 불려나온 증인만도 최규하 전 대통령 등 70여명으로 「세기적 재판」이라고도 불렸다.1심에서 사형과 징역 22년6월을 선고받았던 전·노 피고인은 2심에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됐다. ○옛 총독부 건물 철거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준공된지 70년만에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 침탈의 본거지로 세운 조선총독부 건물은 일제 패망후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일제의 상징물로 남아있다가 경복궁 복원과 민족정기 회복차원에서 철거작업에 들어가 지난해 광복50주년 기념식때 중앙돔 첨탑이 해체된지 1년 4개월만에 완전히 철거됐다. ○노동법 개정 파문 지난 4월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신노사관계 구상 발표로 시작된 노동법 개정작업은 노사 및 공익대표로 구성된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의 7개월에 걸친 절충에도 불구하고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합의도출에 실패했다.정부는 노개위의 공익위안을 토대로 정부안을 마련,12월초 국회로 넘겼지만 여야의 의견 대립으로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했고,이어 열린 임시국회에서도 여야가 대치중이다. ○15대 총선 여당 승리 15대 국회의원을 뽑은 4·11총선은 야당분열에 따른 비판여론과 세대교체 바람에 힙입어 신한국당의 승리로 끝났다.지역구 253석 가운데 121석을 얻어 전국구 18석을 포함,전체 299석 중 139석을 확보했다.특히 서울에서 첫 여당 승리라는 대이변을 기록했다.또 역대 어느 선거보다 신진기예들의 진출이 두드러져 46·5%가 초선의원인 점도 특징중 하나였다. ○안두희씨 피습 살해 역사의 진실은 끝내 묻히는가.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인 안두희씨(79)가 지난 10월23일 상오 인천시 중구 신흥동 3가 동영아파트 502호 자택서 박기서씨(46·버스운전사)의 피습을 받고 살해됐다.박씨는 범행에「정의봉」이라고 새겨진 몽둥이를 사용했으며 경찰에서는 『평소 백범선생을 존경해와 안두희를 죽였다』고 진술했다.현재 각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박씨에 대한 구명운동이 한창이다.
  • 오늘 「5·18」 16돌/광주 진혼제 등 그날의 뜻 기려

    【광주=최치봉 기자】 5·18민주화운동 제16주년을 맞아 추모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17일 전남도청 앞 전야제행사와 5·18민주영령 진혼제 등 갖가지 행사가 광주지역 곳곳에서 치러졌다. 이날 하오 7시 금남로일대에서 열린 전야제행사는 가수와 어린이합창단 등 1천명으로 구성된 대합창단의 노래로 막을 열고 추모시낭송·노래공연·시민대동한마당 등 광주의 아픔을 흥겨운 축제로 승화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 또 하오 2시 금남로3가 가톨릭센터 7층 대강당에서 영·호남종교인이 주관하는 「영·호남종교인 5·18민주영령 진혼제」가 엄숙하게 치러졌다.광주의 상처를 두 지역 종교인이 함께 어루만지는 뜻깊은 행사로 관심을 끌었다. 18일 상오10시 망월동 5·18묘역에서 「5·18민중항쟁 제16주년 추념식」이 열리며 하오 4시 전남도청앞 광장에서는 「5·18민중항쟁 제16주년 기념식 및 5·18문제 완전해결을 위한 국민대회」가 개최된다. 이날 망월동 추념식장에서는 5·18유족회(회장 정수만)가 선정한 황인성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집행위원장과 서양화가 강련균씨,정웅태변호사 등 3명이 제6회 「5월 시민상」을 수상한다.
  • 특별법 제정으로 예년과 입장 달라(정가초점)

    ◎5·18 특별법/여 “적극” 야 “차분”/“「역사 바로세우기」 성공”… 후속조치 착수­여/특별한 의식 없이 조촐하게 치르기­야 여야는 지난해 「5·18특별법」제정 등 「역사 바로세우기」 이후 처음 맞는 5·18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신한국당◁ 17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도 5·18입법을 주도한 여당이 실질적인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회의에서는 일단 18일 광주 망월동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에는 김용호 광주시지부위원장이 참석하고 이홍구 대표위원은 조화만 보내기로 했다.손학규 제1정책조정실장은 개인자격으로 참석한다.당초 고위 당직자가 참석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행사 주최측이 정치색을 배제하고 지역대표의 참석을 원했기 때문에 요란한 제스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은 지난해 특별법제정 전 여야합의대로 15대국회가 개원되면 가시적인 후속조치를 취해나갈 생각이다. 현재 광주 망월동묘역 주변의 도로가 확장되고 기념관공사가 계속중이지만 구체적인 망월동 묘역의 성역화사업에도 힘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이다.여야가 합의했던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 제정」문제도 당정협의와 여야대화를 통해 적극 추진키로 했다. 또 총선과정에서 공약과 5·18관련단체들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검토작업에 착수 했다.이를테면 총선공약에서는 명예회복 차원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5·18피해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는 방안등이 거론 됐다.5·18관련 시민단체들의 요구사항에는 망월동 묘역의 국립묘지 승격,광주 진압과 관련해 훈·포장을 받은 서훈자들의 서훈취소와 훈장박탈등이 있다.신한국당은 이같은 모든 문제들도 역사바로세우기 연장 선상에서 정치권의 합의를 이끌어 낼 생각이다.〈김경홍 기자〉 ▷야권◁ 국민회의·자민련·민주당 등 야3당의 분위기는 일단 조촐하게 치른다는 분위기이다.당 차원의 기념식이나 성명 말고는 눈에 띄는 행사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야 3당 가운데 국민회의가 가장 적극적이다.김대중 총재를 비롯,김상현·이해찬·한화갑의원,김옥두당선자등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된 인사들이 모여 있어 직접적인이해당사자라는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18일 중앙당사에서 김총재와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갖고 망월동 묘역참배에는 유재건 부총재를 단장으로 한 방문단을 광주에 내려보내기로 했다.김총재는 총선 직후 이미 망월동을 방문,이번에는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국민회의는 그러나 성명등을 통해 여야 합의사항인 5·18 기념일 제정등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패배에 따른 후유증으로 예전과 달리 행사를 계획할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다만 이부영 최고위원을 대표자격으로 광주로 보내 5·18기념행사에 참석토록 하고 5·18기념일 제정을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자민련은 지난해 5·18특별법 제정과정에서 유일하게 반대입장에 섰던 만큼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양승현 기자〉
  • 「12·12」「5·18」 공판­역사적 현황

    ◎“쿠테타 아닌 구국행위” 궤변/수의입은 전·노씨 뉘우침 없이 당당/“당신들이 스타냐” 항변에 한때 술렁/“불행한 현대사 심판”… 방청객 착잡한 표정 17년 전 무력으로 국권을 장악했던 쿠데타의 주역 16명이 마침내 모두 한 법정에 섰다.두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다.현대사의 획을 긋는 역사적 재판으로,전 세계의 이목도 집중됐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을 비롯,국권탈취 주역들의 표정에서는 뉘우침을 읽을 수 없었다. 11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재판부의 호명에 따라 전두환 피고인이 먼저 법정에 들어섰다.이어 노태우 피고인이 입정해 전피고인 바로 옆에 섰다. 노씨 비자금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 해 10월7일 육사 교정에서 11기 임관 4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이후 6개월여만의 기구한 만남이었다. 두사람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노피고인은 쿠데타의 좌장이자 옛 동지인 전피고인의 오른 손을 왼손 안쪽으로 잡았다. 이어 유학성·황영시 피고인 등 나머지 피고인들도 차례로 법정에 들어섰다. 피고인들은 12·12 쿠데타로 군권을 장악한 뒤 보안사에서 당당하게 기념 촬영을 했고 이듬해인 80년 5월 국보위를 출범시켰다.이를 바탕으로 5∼6공의 대통령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이 날은 피고인석에서 뒷모습을 「단체촬영」당하며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했다.그럼에도 이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장의 인정신문에 이어 김상희 부장검사의 공소요지 낭독이 끝난 상오 10시25분부터 시작된 변호인의 공소요지 반박은 정오까지 진행됐다. 하오 2시30분에 속개된 재판에서도 계속됐다. 『민주화 운동이란 이름으로 10여년간의 진실을 호도했다』며 시작된 전상석 변호사의 반박요지는 5공화국의 정통성과 검찰기서의 부당성을 강변하는 것이었다. 노태우 피고인은 검찰의 직접 신문에서도 자신의 행위가 국가를 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숨겨진 진실을 공개해 참다운 정의를 구현하는 계기가 되고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재판』이라는 검찰의 모두진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재판 내내 역사의 심판을 벗어나려는 쿠데타 주역들의 강변이 계속됐다.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상오 재판이 끝나고 피고인들이 악수를 나누자 방청석에 있던 고 강경대 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5)가 『너희들이 스타냐』라고 고함쳤다. 그 순간 강씨의 주변에 있던 20여명의 전·노피고인의 측근들이 일제히 일어나 『조용히 해』라며 달려들어 한동안 소란이 빚어졌다. 방청객들의 표정도 모두 착잡했다.
  • 5·18 국가 기념일로 3월이전 조기 지정/광주시 건의

    【광주=최치봉기자】 광주시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16주기 기념식 및 추모제를 국가보훈처가 공식 주관할 수 있도록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줄 것을 10일 정부에 건의했다. 시는 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의 하나로 5·18 특별법을 제정했고,1백30만 시민들이 기념일 지정을 열망하는 만큼 3월 이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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