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5·18 기념식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혼인신고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통합 신당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리처드 닉슨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시리아 폭격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7
  • 5·18 40주년 기념식,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다

    올 5·18 40주년 기념식은 예년과 달리 장소도 바뀌고 행사도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국가보훈처는 5일 “올 기념식은 국립 5·18민주묘지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놓고 5월 3단체(5·18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와 시민들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현재 옛 전남도청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5·18기념식이 2003년 정부 행사로 승격된 이후 국립 5·18민주묘지를 벗어난 적은 없었다. 정춘식 5·18유족회장은 “옛 전남도청에서 정부기념식이 열리는 것은 새로운 5·18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념식 규모와 방식, 예산 등도 크게 달라진다. 광주시에 따르면 올 기념행사 예산은 90여억원이 배정됐다. 예년 20여억원의 5배가량에 이른다. 40주년 기념식과 전시회·인권평화포럼 등 각종 문화행사와 콘텐츠 제작 등이 포함됐다. 특히 올 기념행사는 서울시와 함께한다. 광주시는 서울시와 ‘5·18민주화운동 전국화·세계화를 위한 우호교류 협약’을 준비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5·18 40주년 행사 아이디어 접수

    올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은 국민들이 직접 제안한 아이디어가 반영된다.제40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2월 13일~27일 40주년 기념행사 관련 아이디어를 공모한다고 31일 밝혔다. 5·18 기념식에 국민 아이디어가 반영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모를 거쳐 선정된 수상작은 40주년 5·18기념행사로 추진된다.행사위는 제안자가 선정된 사업을 직접 실행할 수 있게 지원키로 했다.공모 주제는 ▲5월 공동체의 대동정신 함양 ▲청년을 주체로 세우는 행사 전개 ▲전 국민과 세계인의 관심과 참여 확대 ▲5·18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공감대 확산 등이다. 공모 참여를 원하는 개인·모임·단체는 행사위 홈페이지에서 관련 서식을 내려받아 이메일로 접수하면 된다. 기념행사 추진안은 서면과 인터뷰 심의를, 국민 아이디어 공모는 서류 심사와 결과 발표를 거쳐 수상자를 결정한다. 행사 공모는 40여개 단체를 선정해 최대 1000만 원에서 200만 원까지 차등 지원한다. 국민 아이디어 공모는 1인당 2건까지 제출 가능하다. 장려상부터 대상까지 20만원~100만원의 상금을 준다. 자세한 사항은 행사위 사무처(062-352-0518)에 문의하거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40년 만에 인정받은 ‘잊혀진 항쟁’… 기념관 꼭 건립해야”

    “40년 만에 인정받은 ‘잊혀진 항쟁’… 기념관 꼭 건립해야”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등지에서 벌어진 대학생과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인 부마민주항쟁은 그동안 ‘잊혀진 항쟁’이었다. 오랜 독재 기간에 벌어졌던 다른 여러 민주화 운동에 비해 뒤늦게 그 가치를 인정받은 탓이다. 정부는 올해 40년 만에 처음으로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고, 정부 주최 기념식도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식에 참석해 부마민주항쟁을 “역사상 가장 길고, 엄혹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유신독재를 무너뜨려 민주주의 새벽을 연 위대한 항쟁”으로 표현했다. 피해자들에게는 정부를 대신해 사과의 뜻도 전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18일 부마민주항쟁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정광민(61) 10·16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정 이사장은 부마민주항쟁의 신호탄이 된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 시위를 주도했다. 그는 부산대 경제학과 78학번으로 당시 대학교 2학년생이었다.-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정부행사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감회가 어떤가요. “고무적인 일이죠. 국가 폭력을 대통령이 직접 사과한 건 의미가 큽니다. 대통령의 사과 한마디가 관련자들을 충분히 위로했다고 생각합니다. 40년간 역사의 그늘에 있던 부마민주항쟁을 민주주의의 자산으로서 함께 지켜 나가자는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요.”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 시위를 주도하셨지요. “그렇죠. 전날 오전 부산대 도서관에 (다른 학우들이 만든) 유인물이 한 차례 뿌려졌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어요. 그때 상과대학 게시판에도 ‘민주선언문’이 붙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유인물을 뿌렸던 학생들도 사라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했어요. ‘부산대는 안 된다’는 자조적인 패배감이 퍼지던 차였어요. 그 이야기를 당시 경영학과 2학년이던 친구 박준식에게 들었어요. ‘아, 이래서는 안 된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다시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들과 의기투합했어요. 평소 써 뒀던 글귀를 토대로 선언문을 쓰고, 등사기를 몰래 구해 밤새 선언문 300장을 찍어 새벽에 학교로 갔어요.” 정 이사장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 인문사회관 306호 강의실 강단에 서서 화폐금융론 수업을 기다리던 학우들에게 “이제 투쟁할 때가 왔습니다. 나가서 싸웁시다”라고 외쳤다. 선언문도 배포했다. “우리 조국이 심술궂은 독재자에 의해 고문받고 있는데도 과연 좌시할 수 있겠는가”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선언문은 유신헌법 철폐, 국민에 대한 정치적 보복 중지 등을 포함한 7가지의 ‘폐정 개혁안’으로 끝난다. 잠시 후 학생 70여명이 부산대 상과대학 건물 앞에 섰고, 대열을 맞춰 구호를 외치며 도서관 앞까지 행진했다. 학생들은 현수막 대신 선언문 종이 뒤에 ‘자유’란 글자를 써 손에 들었다. 시위는 마산까지 번져 나갔고, 대가는 혹독했다. -엄혹한 시대였는데, 두렵지 않았나요. “무서웠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잡혀 가는 건 뻔한 거고, 선언문을 들고 교문을 통과할 수나 있을까부터 걱정했던 때니까. 다만 ‘이제 싸울 때가 왔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학우들 반응도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어요. -시위를 주도했다고 고문까지 받았다고요. “동래경찰서로 끌려가 물고문을 당했어요. 철봉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타월을 입과 코에 걸쳐 놓았어요. 그리고 그 위에 물을 뿌리는데, 숨보다 물이 더 빠르게 들어와 발작을 했어요. 그들은 집요하게 배후를 묻더군요. ‘너희 아버지가 간첩이지’라는 식으로요. 제가 배후가 어딨겠습니까? 부산대 학우들이 전부였는데요. 고문의 기억은 너무 고통스러워요. 같은 시기, 비슷한 고문을 받은 분은 자살 시도까지 하셨어요.” -당시 받은 고문 피해로 지난해 정신적 상이를 인정받으셨죠. “네. 그 과정도 쉽지 않았어요. 정신적 상이를 인정받기 전에 고문으로 받은 피해에 대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거든요. 그런데 패소했어요. ‘당신이 고문받았다는 것도 당신만의 주장이지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는 게 이유였죠. 너무 억울했죠. 제가 고문받고 실려간 응급실 간호사라도 데려와서 입증해야 하는 거냐고 맞섰지만 쉽지 않았어요. 이번에 트라우마 피해를 인정받았으니, 고문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라고 생각해서 재심을 청구했어요. 조만간 2차 기일인데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죠.” 정 이사장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20대 초반에 두 번이나 수감됐다. 기간으로 따지면 1년여간 감옥에 있었다. 한 번은 1979년 10월 말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복역하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으로 50일 만에 풀려났다. 또 다른 한 번은 5·18 민주항쟁 때다. 정 이사장은 “두 번째는 주도한 것도 아닌데 신군부의 일제검속에 걸렸다”면서 “부마민주항쟁을 주도해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부마민주항쟁은 다른 민주화 운동에 비해 오랜 시간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맞아요. 지난 40년 동안 아쉽고, 안타까웠고, 괴로웠어요. 물론 보상받거나 평가받으려고 목숨 걸고 싸운 건 아니에요. 다만 잊혀진 항쟁이 됐다는 건 서글프죠.”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부마민주항쟁 열흘 뒤에 10·26사태(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 사건)가 벌어져요. 독재자를 우리 힘으로 끌어내리려는 찰나에 운동의 대상이 갑자기 사라진 셈이죠. 저희도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혼란스러웠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권에서도 무관심했고,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화된 부산의 분위기도 배경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난 40년간 꾸준히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셨지요. “저와 학우들의 노력이 잊히지 않길 바랐어요. 85년도에 복학하자마자 후배들과 부마민주항쟁 세미나를 열었어요. 그때만 해도 시위를 주도했던 학우들이 뿔뿔이 흩어졌었거든요. 친목회를 만들자는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엄혹했던 시대였고, ‘살아서 나왔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때라 그랬어요. 일단 부마민주항쟁을 정의해 보자는 마음으로 세미나를 열고 우리끼리 자료집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죠. 이후로 10주년 때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만들었고요. 계속된 노력 끝에 2013년에는 부마항쟁 보상법도 제정했고, 올해 드디어 국가기념일로 인정받았네요.” -남은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희생자들에 대해 제대로 확인되거나 조사된 게 없어요. 지금까지 부마민주항쟁 사망자로 인정받은 분은 유치준씨 한 분이에요(유씨는 부마민주항쟁 당시 도로에서 심한 외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40년 만인 올해 관련 사망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당시 유씨의 나이는 51세였다). 우리가 확인하지 못한 진실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10·16 관련 조례를 부산시 차원에서 제정해야 하고요. 범시민적인 기념시설인 기념관도 꼭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부마민주항쟁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부마민주항쟁은 독재 정권에서 ‘어떤 사회가 정말 좋은 사회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봐요. 누군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정권하에서 경제 개발이 됐다. 그만한 발전 모델은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기본적 권리를 누리고 평등하게 사는 것, 자유로운 꿈을 꾸는 인간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부마민주항쟁이 그 가치를 일깨워 준 항쟁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글 사진 부산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사설] 유신 독재 무너뜨린 ‘부마민주항쟁’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경남 창원시 경남대에서 개최된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번 기념식은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처음 열리는 기념식이다. 이로써 10·16 부마민주항쟁은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4대 민주항쟁으로 재평가됐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체제에 저항해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부산대를 중심으로 16일 “유신철폐 독재타도”의 첫 시위가 시작됐고, 10월 18일 마산으로 확산해 경남대 학생과 시민들이 가세했다. 부마항쟁은 유신체제에 대항해 벌인 최초의 대규모 시민항쟁으로 시위 기간은 짧았지만, 박정희 정권의 18년 장기집권을 끝내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랬음에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받지 못해 애태우던 부산·창원(마산) 시민은 부마민주항쟁이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40년 전 민주화를 위해 싸운 피해자, 관계자들에게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부마민주항쟁은 유신 독재를 무너뜨리고 6월 민주항쟁까지 이어지게 한 위대한 시민항쟁”이라고 평가했다.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지난달 5일 열린 회의에서 부마민주항쟁 때 숨진 유치준(당시 51세)씨를 40년 만에 국가 폭력에 의한 사망자로 공식 인정했다. 1979년 일어난 이 사건과 관련해 희생된 분들 가운데 국가 책임을 거론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긴 세월 동안 남모를 고통 속에 살아왔을 유족을 생각하면 진작 이뤄졌어야 했다.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재평가와 함께 진상규명,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등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현재 진상규명위에 접수된 피해 사실만 해도 300여건이다. 지난 연말 개정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부마항쟁보상법)도 여전히 손볼 곳이 많다. 부마민주항쟁이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시민항쟁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부마민주항쟁은 민심이 정권이란 배를 순항시키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민심을 세심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국가기념일로 다시 태어난 40돌 부마민주화항쟁이 부산과 창원 지역의 미래를 열어 가는 새 동력이 되길 바란다.
  • “정부 주관행사 더욱 의미” 참석자들 눈시울… 부산·창원 시민 “민주정신 계승되길”

    “정부 주관행사 더욱 의미” 참석자들 눈시울… 부산·창원 시민 “민주정신 계승되길”

    기념재단 “피해자들 보상 등 대책을”부산과 경남 창원 시민들은 10·16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40주년 기념식이 정부 주관 행사로 열리면서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4대 민주항쟁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반겼다. 이날 창원 경남대 대운동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당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진행되는 동안 참석자들은 국가기념 행사 감회에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도 보였다. 행사장에 입장하지 못한 시민·학생들은 행사장 외곽에서 기념식을 지켜보기도 했다. 부마민주항쟁 유일한 사망자로 공식 인정된 고 유치준씨 아들 성국(59)씨는 “40년간 고통스러웠을 아버님 영혼에 국가의 공식 사과를 전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시민 이춘기(55)씨는 “유신독재에 항거한 대규모 시민민주항쟁으로 유신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새벽을 열게 한 위대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이 첫 정부 행사로 열려 더욱 의미가 있다”고 환영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경남대 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한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는 “앞으로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관련 피해자 상처 회복 및 치유, 보상 등의 대책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기 부산 민주공원 관장도 “올해 연말로 부마항쟁 특례법이 끝나는데 아직 조사와 발굴을 비롯해 피해자 보상 관련 등 여러 과제가 남아 있어 시효 연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현재 민주화 운동 보상법에는 구금 일수가 30일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당시 부마항쟁 피해자들은 대부분 10·26 사태로 15일 정도에 풀려나 보상법에서 제외된다”며 “구금일수를 15일 이하로 줄이는 등 법 적용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항쟁이 일어난 지역에서조차도 부마민주항쟁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정부 주관 기념행사 개최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부마민주항쟁이 기억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은진 경남대 명예교수는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것은 부마민주항쟁이 대한민국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는 것을 넘어서, 현 시점에서 파편화되고 이기화된 사회적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창원시민 이종영(57)씨는 “늦었지만 국가기념일 지정을 계기로 부마민주항쟁 역사와 참뜻을 알리는 활동이 활발히 이어져 부마항쟁 정신과 가치가 계승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文 “강력한 검찰 자정 방안 직접 보고하라”

    文 “강력한 검찰 자정 방안 직접 보고하라”

    “권력기관 국민 위해서 존재 명심해야” 부마항쟁 기념식서도 검찰개혁 강조 오늘 경제장관회의 주재… 올해 처음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법무부 김오수 차관과 이성윤 검찰국장을 청와대로 불러 검찰개혁 상황을 직접 보고해 달라고 전격 지시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지만 검찰개혁을 직접 챙겨 흔들림 없이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검의 감찰 방안, 법무부의 2차적인 감찰 방안이 실효적으로 작동하고 활성화돼 검찰 내에 아주 강력한 자기 정화 기능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며 “준비가 되면 저에게 직접 보고를 해 달라”고 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48분간 이어진 면담에서 문 대통령은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지금도 대검 자체 감찰 기능이 있고, 법무부에도 2차적인 감찰 기능이 있는데 크게 실효성 있게 작동돼 왔던 것 같지 않다”고 말한 뒤 “이미 발표된 개혁 방안 외에도 추가적으로 개혁을 취하겠다는 방안들이 있다면, 또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도 추가 방안을 제시할 테고, 검찰도 이런저런 개혁 방안을 스스로 내놓을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있다면 직접 보고도 해 달라”고 했다. 이어 “후임 장관을 인선하는 데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는 반면 검찰개혁은 아주 시급한 과제”라며 “흔들림 없이 잘 관리한다는 차원을 넘어 장관 대행으로서 장관 부재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역할을 다해 달라”고 말해 후임 인선을 서두르는 대신 검찰개혁을 챙길 것을 시사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남 창원 경남대에서 열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도 “모든 권력기관은 조직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민주주의 상식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또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2016년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민주항쟁의 위대한 역사가 있는 한 어떤 권력도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17일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경제·고용 동향, 정책 방향을 보고받는다. 문 대통령이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전문] 문 대통령, 부마항쟁 기념식서 “유신독재 피해자에 사과”

    [전문] 문 대통령, 부마항쟁 기념식서 “유신독재 피해자에 사과”

    경남 창원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참석“피해자 명예회복·보상…가해자 책임소재 규명““이제 와 문책하자는 게 아닌 역사정의 세울 것”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해 “유신독재 피해자에 대통령으로서 사과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남 창원의 경남대학교에서 개최된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부마항쟁 국가폭력 가해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와서 문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2016년 촛불혁명까지 우리에게 민주항쟁의 위대한 역사가 있는 한 어떤 권력도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다음은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창원과 부산, 경남 시민 여러분, 지난 9월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오늘 처음으로 정부주관 기념식이 열립니다.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국가기념일로 기리게 되어 국민들께서도, 시민들께서도 더욱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마산 민주항쟁의 발원지였던 바로 이곳 경남대학교 교정에서 창원과 부산, 경남 모두의 마음을 모은 통합 기념식을 치르게 되어 더욱 뜻깊습니다. 지난 10월, 고 유치준 님이 40년이 지나서야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로 공식 인정되었습니다.그동안 국가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돌보지 못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유신독재의 가혹한 폭력으로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 모두에게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가가 부마민주항쟁을 기리지 못하는 동안에도 부산, 창원 시민들은 줄기차게 항쟁기념일을 지켜왔습니다. 저 자신도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회에서 활동했고, 이곳 경남대 교정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고,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기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의 민주주의는 쉬지 않고 발전되어왔고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을 때 국민들은 행동으로 민주주의를 살려냈고, 정치적 민주주의로 시작된 거대한 흐름은 직장과 가정, 생활 속 민주주의로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은 우리 역사상 가장 길고, 엄혹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유신독재를 무너뜨림으로써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위대한 항쟁이었습니다. 비록 신군부의 등장으로 어둠이 다시 짙어졌지만 이번엔 광주 시민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치열한 항쟁을 펼쳤고, 마침내 국민들은 87년 6월 항쟁에 이르러 민주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이루었습니다.부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입니다. 3·15 의거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곳도, 87년 6월 항쟁의 열기가 주춤해졌을 때 항쟁의 불꽃을 되살려 끝내 승리로 이끈 곳도 이곳 부마입니다. 이제 민주주의의 하늘에는 부산의 아들 박종철과 광주의 아들 이한열이 함께 빛나고 우리는 국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통해 많은 국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목소리를 분출하며 민주주의는 더 다양해지고, 자신의 목소리가 중요한 만큼 다른 이들의 목소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천하는 가운데 확장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어제의 노력이 더 발전된 민주주의로 확장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언제나 행동으로 민주주의를 살려온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가 양보하고 나누며 상생하고 통합하는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하길 희망합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창원과 부산, 경남 시민 여러분, 정부는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보상에 더욱 힘을 쏟을 것입니다. 숫자로만 남아있는 항쟁의 주역들과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찾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할 것이며 국가폭력 가해자들의 책임 소재도 철저히 규명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문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작년 설립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잘 뿌리 내려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이 꽃필 수 있도록 돕고 ‘부산 민주공원 기록관’과 ‘창원 민주주의 전당’을 통해 더 많은 국민들이 일상에서 항쟁의 역사를 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지난해 발의한 개헌안에서 헌법전문에 4·19 혁명에 이어 부마민주항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항쟁의 민주이념 계승을 담고자 했습니다. 비록 개헌은 좌절되었지만 그 뜻은 계속 살려 나갈 것입니다. 또한 국회에 계류 중인 부마민주항쟁의 진상조사 기간 연장과 관련자 예우에 대한 법률 제·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서도 노력하겠습니다.창원, 부산, 경남의 시민들은 그동안 정치적 민주화의 열망뿐 아니라 독재정권의 가혹한 노동통제와 저임금에 기반한 불평등 성장정책, 재벌중심의 특권적 경제구조를 바꾸고자 하는 데에도 가장 앞장서 왔습니다. 지난 40여년간 창원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선도하고 견인해왔습니다. 2006년 ‘환경수도 창원’을 선언한 창원시는 지금 산업과 환경이 공존하는 미래형 도시로 발전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전국 최초로 수소산업 특별시를 선포하고, 수소버스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성지 창원시가 추진하는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거는 기대가 아주 큽니다. 이윤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함께 생각하는 ‘사회적경제 혁신타운’ 조성을 적극 지원해 지역주민의 일자리를 늘리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을 다지는 좋은 사례를 창원시와 함께 만들어내겠습니다. 부산은 ‘동북아 해양수도’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되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물류, 관광, 금융산업의 육성과 생활 밀착형 블록체인 산업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난 10월 ‘제2차 규제자유특구 심의 대상’으로 선정된 경남의 ‘무인선박 규제자유특구’도 경남의 풍부한 조선산업 인프라를 활용하고 되살리며 더욱 발전시킬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40일 앞으로 다가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범정부 차원의 ‘2030년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전담조직을 조속히 구성해 세계를 향한 창원과 부산, 경남의 도약을 힘껏 돕겠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의 자부심으로 시민들께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2016년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민주항쟁의 위대한 역사가 있는 한, 어떤 권력도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습니다. 지금 국민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좋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력기관은 조직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민주주의의 상식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100년 전,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선조들이 꿈꿨던 진정한 민주공화국, 평범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적 성취가 국민의 생활로 완성되는 민주주의를 향해 국민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오늘 마침내 모두의 역사로 되살아나 우리 곁에 와있는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이 국민 모두에게 굳건한 힘과 용기가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부마민주항쟁 상징 ‘1016번’ 시내버스 운행

    부마민주항쟁 상징 ‘1016번’ 시내버스 운행

    부마민주항쟁 참뜻을 되새기고 널리 알리기 위해 부마민주항쟁 기념일 10월 16일을 상징하는 ‘1016번’ 시내버스가 경남 창원시 지역에 운행된다. 경남도는 14일 창원시내 직행좌석버스 8대를 부마민주항쟁 상징버스로 지정해 16일 부터 3개월간 시범운행한다고 밝혔다. 도는 이날 오후 2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에 위치한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부마민주항쟁 상징버스 운행을 알리는 제막식을 개최했다.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에서 시작돼 이틀 뒤인 18일 마산으로 번진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유신독재가 무너진 계기가 됐다. 그동안 각계각층 노력에 힘입어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은 올해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16일 경남대학교에서 국가지정 기념식 행사가 열린다. 도는 부마민주항쟁의 참뜻과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계승하기 위한 상징물을 검토한 끝에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버스를 활용한 상징버스를 운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에 따르면 현재 광주광역시에서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상징버스, 대구광역시에서는 2·28민주화운동 기념일 상징버스를 운행한다. 도는 창원시 및 버스업체와 여러차례 협의를 거쳐 801번 직행좌석 버스 8대를 부마민주항쟁 상징버스로 운행하기로 했다. 부마민주항쟁 상징버스는 경남대를 거쳐 3·15의거 기념탑, 경남도청을 경유해 운행한다. 상징버스 안팎에는 부마민주화재단 협조를 얻어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홍보 로고를 부착한다. 상징버스는 16일부터 2020년 1월 15일까지 3개월간 시범 운행한다. 창원시는 2021년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면 노선단일화를 추진해 기존 801번 노선을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인 10월 16일을 상징하는 1016번 버스로 영구 운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제막식 행사에는 문승욱 경남도 경제부지사를 비롯해 이현규 창원시 제2부시장, 이명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상임이사, 도·시의원 등이 참석했다. 문승욱 경제부지사는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뜻깊은 해에 대중교통을 활용한 상징버스 운행이 부마민주항쟁을 미래세대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국가기념일 지정 의미… 피해 진상 규명·보상 위해 더 노력”

    “국가기념일 지정 의미… 피해 진상 규명·보상 위해 더 노력”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10·16)로 지정됐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유신 독재에 맞서 부산과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학생들이 시작하고 시민들이 참여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이끌었지만, 전두환 정권이 이어지면서 독재의 사슬을 끊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동아대 2학년 학생이던 당시 부마민주항쟁의 불씨를 지핀 주역 중 한 명으로 수년 전부터 꾸준히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온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지난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감격스럽지만 한편으론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마민주항쟁 이듬해인 1980년 5월 검거돼 모진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40년이 지난 지금도 한쪽 무릎이 불편하다는 유 구청장은 “우리가 아픈 과거를 제대로 규명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힘줘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이 어떤 의의를 갖나.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종식을 가져온 민중항쟁으로, 그동안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 전두환 신군부에 항거한 5·18광주민주화운동,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 집권을 끝낸 6·10민주항쟁에 비해 소외돼 그 역사적 가치에 준하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이를 딛고 공식적으로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게 된 신호탄인 셈이다.” -오는 16일 첫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에 특별한 계획이 있나. “창원에서 열리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나서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진행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당시 민주항쟁에 함께했던 동지들과도 만날 계획이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기에 평소에는 만나기 쉽지 않지만 이날만큼은 다 같이 모여 회포를 풀기로 했다.” -동료들과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 소식을 듣고 어떤 얘기를 했나. “당시 부산대 학생이었던 신재식, 김종세, 정광민과 동아대 학생이었던 강명규, 이동관, 김백수 등과 가끔 안부를 묻는다. 지난달 17일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이 이뤄지면서 모처럼 연락을 나눴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젊은 날을 회상하며 그 시절 겪었던 아픔, 상처 등을 서로 위로했다. 남은 과제인 피해 진상규명과 적절한 피해자 보상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가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여전히 진상규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2010년 5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부마민주항쟁 당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했지만 전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은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13년 5월에 ‘부마항쟁보상법’(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고, 2014년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후 조사단이 내게도 여러번 찾아와 관련 내용을 조사했으나 안타깝게도 당시의 수형기록 등 관련 자료가 보존돼 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이후 조사위에서 해당 군부대를 찾아가서 가까스로 일부 자료를 찾아냈다고 들었지만 항쟁 전 과정에 대한 재조명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앞으로의 과제는.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기간이 올해 말 종료를 앞두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지난달에 ‘부마항쟁보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개정안은 부마민주항쟁의 정의를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을 전후해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항쟁 참여자의 폭도 넓혔다.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기간을 연장하고 조사권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하루빨리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이유다. 또 국가로부터 인권을 침해받고도 외려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등의 합당한 보상도 진행돼야 한다. 이 밖에도 부마민주항쟁의 위상에 걸맞은 기념관도 건립해 우리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부마민주항쟁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바로 세워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향후 헌법 개정 시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이 다른 민주화운동들과 함께 헌법 전문에 담길 수 있도록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희생정신이 후대에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40년 만에 불러보는 ‘그날의 함성’

    40년 만에 불러보는 ‘그날의 함성’

    ‘소위 유신헌법을 보라. 그것은 법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무모한 정치욕을 충족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1979년 10월 16일 오전 9시 40분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생 정광민(현 10·16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은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 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뿌려 부산대 시위를 촉발했다. 이른바 부마민주항쟁의 처음이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는 마산으로 번졌고 학생과 시민이 합세한 민주화 운동은 마침내 유신정권의 종말을 가져왔다. 서슬 퍼런 유신 독재정권 몰락의 결정적인 단초였던 부마민주항쟁은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우리 현대사를 장식한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국가기념일에서 제외됐다가 항쟁 40년 만인 지난달에야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오는 16일 경남 창원시에선 ‘부마 1979, 위대한 민주여정의 시작’을 주제로 정부 주관의 첫 공식 기념식이 열린다. ‘다시 시월 1979’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과 공식 국가기념일 지정을 맞아 항쟁 주역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과 증언집으로 눈길을 끈다. 닷새 동안 진행됐던 당시 항쟁의 실상과 의미, 과제까지를 꼼꼼히 수록했다. 부마항쟁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여 당시 사건과 진실을 밝히는 최초의 출간물인 셈이다. 정광민 이사장을 포함해 당시 항쟁을 이끈 주역들은 인터뷰를 통해 항쟁 발발부터 닷새간의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특히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정권에 맞섰던 10명은 당시 항쟁이 자발적 학생들의 저항운동에 도시빈민과 노동자, 자영업자 등 민중이 자연스럽게 동참해 범시민운동으로 발전했다고 강조한다. 당시 부산대 국어교육과 77학번 학생이었던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부마항쟁은 어떠한 지도부가 있거나 조직이나 단일한 주체가 뒷받침한 항쟁으로 보기 어렵다.” 책에선 시위 전개 과정이 명확하지 않은 이 항쟁의 증언들에 더해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불거진 소멸 시효도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5월 부산지법 민사6부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체포된 뒤 경찰의 가혹한 수사로 피해를 당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항쟁 관련자 6명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영록 전남지사, 세계호남향우회에 블루이코노미 협조 요청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3일 세계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지도자 320명과 만찬을 같이 하면서 전남의 블루 이코노미를 홍보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김영윤(미국 뉴욕) 세계호남향우회연합회장을 비롯 미주, 유럽, 아시아 지역과 오세아니아, 중남미 등 19개국 53개 지역 호남향우회 지도자들은 오는 4일 열리는 ‘제7회 세계호남인의 날’ 기념식을 위해 이날 고향을 방문했다. 5일까지 3일간 머문다. 김 지사는 먼 이국땅에서 호남의 긍지를 지키며 고향 발전을 위해 애쓰는 김 회장을 비롯한 호남향우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 지사는 “200만 도민과 함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세계 각지의 향우들이 호남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고향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전남은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전남의 새로운 천년을 이끌어 갈 ‘청정 전남, 블루 이코노미’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면서 “섬과 바다, 황금 들녘, 천연 자원 등 전남의 풍부한 청정자원을 바탕으로 에너지, 해양관광, 바이오, 운송기기, 농수산, 스마트 시티 등 6가지 블루 프로젝트를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블루 이코노미 6가지 프로젝트를 착실히 추진해 전남도가 평화의 신한반도 시대를 이끌어가는 평화경제의 출발점이 되겠다”고 밝히고 호남향우회 지도자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김 회장은 “‘호남인은 하나다’라는 마음으로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고향의 더 큰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자”고 화답했다. 고향 방문 둘째 날인 4일에는 목포에서 ‘2019 세계호남인의 날’ 기념대회가 열린다. 이들은 행사장에서 세계호남향우회와 한인사회 발전에 기여한 윤수학 인도네시아 호남향우회장을 비롯한 광주·전남·전북 출신 지도자 8명에게 ‘자랑스러운 호남인 상’을 수여한다. 광주·전남·전북의 모범 학생 42명에게 장학금 4200만원도 전달한다. 세계호남향우회총연합회는 2017년부터 지역 학생들이 호남인의 긍지를 갖고 나라를 이끌 지도자로 성장해주길 바라는 뜻에서 매년 ‘고향사랑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고향 방문 행사는 5일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를 함께 관람하고 광주 5·18 민주묘역에 참배하는 일정으로 마무리한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부마민주항쟁’ 10월16일 40년 만에 국가기념일 지정

    ‘부마민주항쟁’ 10월16일 40년 만에 국가기념일 지정

    1979년 10월 부산과 창원 일대 시민들이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던 부마 민주항쟁 발생일이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행정안전부는 17일 국무회의에서 부마 민주항쟁이 시작된 1979년 10월16일을 기리고자 10월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안’을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0·16 민주항쟁 기념일은 51번째 국가기념일이 됐다. 행안부는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기념하고자 최초 발생일인 10월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40주년을 맞은 올해부터 정부 주관으로 기념행사를 진행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부산과 창원 지역의 부마항쟁 기념사업 관련 단체들이 따로 기념식을 열었다. 국가기념일로 처음 치르는 올해 기념식은 10월16일 경남 창원시에서 ‘부마1979, 위대한 민주여정의 시작’을 주제로 열린다. 구체적인 장소는 이달 안으로 확정된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에 저항해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10월16일 부산에서 5000여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시민들이 합세해 유신헌법과 긴급 발동 등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다.10월18일에는 마산, 창원, 진주 지역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했다. 당시 정부는 계엄령과 위수령을 내려 1천560여명을 연행하고 120여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이후 부마항쟁 발생 열흘 만인 10월26일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부마사태의 수습책을 둘러싸고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심한 언쟁을 벌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차 실장을 총으로 숨지게 함으로써 유신체제는 막을 내리게 됐다. 시위 기간은 짧았지만 군사정권 철권통치 18년을 끝내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민주화운동 가운데 하나로 불리고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광주 찾은 김정숙 여사…세계수영선수권 1박 2일 응원전

    광주 찾은 김정숙 여사…세계수영선수권 1박 2일 응원전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22일 오후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응원을 위해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를 찾았다. 김 여사의 광주행은 지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이후 두 달여 만이다. 김 여사는 이날 저녁 광주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을 찾아 여자 개인혼영 200m 결승에 출전하는 한국 수영 간판 김서영 선수를 청와대 젊은 직원 50여명과 함께 응원했다. 김 여사는 저녁 7시 40분부터 밤 10시까지 자리를 지켰다. 김 선수가 저녁 9시 30분쯤 끝난 200m 결승에서 6위로 들어오자 관중들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전광판에 “여기가 끝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김 선수의 모습이 나오자 김 여사는 환하게 미소짓기도 했다. 김 여사는 이어 로비로 이동해 김 선수와 만나 포옹을 나누었고, 여러 선수들과 사진을 찍었다. 오지희 여자수구대표팀 주장은 김 여사에게 “여자 수구가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 여사가 1박 2일 응원 이벤트를 마련한 것은 이 대회가 동·하계올림픽, 월드컵(축구), 세계육상선수권과 더불어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임에도 수영이 비인기 종목인 탓에 예상외로 흥행이 저조하자 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의 현장 응원을 독려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광주를 찾아 직접 개회 선언을 했다. 김 여사는 지난해 3월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열린 패럴림픽 때도 “필요하면 뭐라도 하겠다”며 대회 기간 공식 행사 4회, 관람 6회에 세 차례나 현지에서 숙박하며 문 대통령의 몫까지 응원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김 여사는 이날 광주에서 하루를 묵은 뒤 23일 오전 경영 종목 가운데 한국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를 한 차례 더 관람하고 응원할 예정이다. 김연명 사회수석 등 다른 참모들도 수석실별로 주중 시간이 나는 대로 광주행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도 광주를 찾을 예정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황교안, 열흘 전 광주 5·18민주묘지 비공개 참배

    황교안, 열흘 전 광주 5·18민주묘지 비공개 참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12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뒤늦게 참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 측 관계자는 2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황 대표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당시 시민들의 반발로 묘역을 참배하지 못했는데 지난 12일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회식 참석을 위해 광주를 찾았을 때 수행원과 함께 조용히 묘역에 다녀왔다”고 했다. 황 대표는 이날 5·18 당시 도청 앞 집회를 주도한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 박관현 열사와 시민군 대변인이자 항쟁 지도부 홍보부장을 맡은 윤상원 열사의 묘역을 참배했다. 앞서 황 대표는 지난 5월 18일 민주화운동기념식에 참석했지만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로 참배는 하지 못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5·18망언’ 김순례 복귀에 한국당 뺀 4당 집중포화

    ‘5·18망언’ 김순례 복귀에 한국당 뺀 4당 집중포화

    5·18민주화운동 망언으로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김순례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19일 당 지도부로 복귀하는 데 대해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 일제히 비판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8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민의의 전당에서 5·18 역사를 부정하고 거짓 선동한 사람에게 지도부 자리를 돌려준다니 기가 막히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광주시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상무위원회에서 “5·18 망언 관련자의 징계를 회피한 것은 5·18 운동을 인정하지 않고 극우세력에 구애하고 싶었던 한국당 지도부의 속내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화 역사를 폄훼하고 모독하는 한국당에는 국민의 강력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정숙 민주평화당 5·18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대변인도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는 온데간데없고 망언 당사자의 사과도 없이 5·18 유가족의 상처만 남게 됐다”고 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국민들은 ‘징계 쇼’를 보는 것 같다”며 “5·18 기념식에 참석했던 황교안 대표의 진정성에 대한 국민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 내에서도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신상진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5·18 유공자 전체를 괴물집단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며 “좀더 센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최고위 복귀는 개인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했다. 앞서 한국당 박맹우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김 최고위원의 복귀에 대해 “당원권 정지 3개월이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직을 박탈할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모든 법조인의 해석이었다”고 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내 세금을 축낸다”고 말해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5·18 망언’ 김순례 복귀에 한국당 뺀 4당 집중포화

    ‘5·18 망언’ 김순례 복귀에 한국당 뺀 4당 집중포화

    5·18민주화운동 망언으로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김순례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19일 당 지도부로 복귀하는 데 대해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 일제히 비판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8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민의의 전당에서 5·18 역사를 부정하고 거짓 선동한 사람에게 지도부 자리를 돌려준다니 기가 막히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광주시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상무위원회에서 “5·18 망언 관련자의 징계를 회피한 것은 5·18 운동을 인정하지 않고 극우세력에 구애하고 싶었던 한국당 지도부의 속내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화 역사를 폄훼하고 모독하는 한국당에는 국민의 강력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정숙 민주평화당 5·18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대변인도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는 온데간데없고 망언 당사자의 사과도 없이 5·18 유가족의 상처만 남게 됐다”고 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국민들은 ‘징계 쇼’를 보는 것 같다”며 “5·18 기념식에 참석했던 황교안 대표의 진정성에 대한 국민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 내에서도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신상진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5·18 유공자 전체를 괴물집단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며 “좀더 센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최고위 복귀는 개인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했다. 앞서 한국당 박맹우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김 최고위원의 복귀에 대해 “당원권 정지 3개월이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직을 박탈할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모든 법조인의 해석이었다”고 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내 세금을 축낸다”고 말해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우국충정도시 정읍 없었다면 조선왕조실록·민주화도 없었죠”

    “우국충정도시 정읍 없었다면 조선왕조실록·민주화도 없었죠”

    “정읍이 없었다면 조선왕조실록도, 민주주의 뿌리가 된 동학농민혁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분연히 일어설 줄 아는 ‘정읍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역사입니다.” 유진섭 전북 정읍시장은 지난 1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읍은 국운이 위태로울 때마다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희생하고 기꺼이 목숨을 바친 역사의 고장”이라며 약무정읍 시무실록(若無井邑 是無實錄), 약무정읍 시무민주(若無井邑 是無民主)를 강조했다. 정읍 사람들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 냈고 역사의 물길을 바꾼 동학농민혁명 역시 정읍에서 봉기해 이 땅에 민주주의를 완성한 씨앗이 됐다는 의미다. “정읍은 백제가요 정읍사, 정극인의 상춘곡, 호남우도농악의 발상지입니다. 최근에는 전북 유일의 서원인 무성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그는 “정읍만의 독창적이고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를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관광자원으로 가치를 극대화시키겠다”며 ‘문화도시’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문화재지킴이의 날(6월 22일) 행사를 개최했다. 의미는. “1592년 6월 22일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을 왜란을 피해 정읍 내장산으로 옮긴 것을 기념해 지난해 처음 만들었다. 첫 번째 기념식이 역사 현장인 정읍 내장산에서 열리게 돼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이를 계기로 정읍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실록과 어진을 지켜 낸 의의가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 문화재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민족의 자존감과 자긍심을 높이는 변곡점이 되길 바란다.” -조선왕조실록을 지켜 낸 고장으로서 의의는. “약무정읍 시무실록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정읍이 없었다면 조선왕조실록은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 200년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당시 정읍 선비 안의와 손홍록이 사재를 털고 목숨을 걸면서 내장산으로 옮겼기에 화를 면했다. 이들은 전주사고에 보관된 805권의 실록을 60여개 궤짝에 담아 말에 싣고 60㎞ 떨어진 내장산 은봉암까지 옮겼다. 7월 1일에는 태조 어진을 용굴암으로 이안했고 7월 14일에는 실록을 은봉암에서 비래암으로, 어진은 9월 28일 비래암으로 재이안했다. 실록 보호는 희묵대사가 이끄는 승군과 사당패, 노비 등 많은 정읍 사람들이 힘을 모았기에 가능했다. 소중한 유산을 정읍 사람들이 지켜 냈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낀다. 이 같은 자긍심이 정읍 발전, 나아가 국가 발전의 큰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외세와 부패한 권력에 맞선 동학농민혁명도 정읍에서 시작됐다. “1894년 정읍 고부에서 봉기하지 않았다면, 황토현 전투에서 농민군이 관군을 대파하지 못했다면 우리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 4·19혁명, 6·10 민주화운동, 2017년 시민촛불혁명으로 이어지며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약무정읍 시무민주, 정읍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도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동학농민혁명이 정읍에서 일어난 것은 기개 넘치는 선조들이 있었고 그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있어서다. 정읍인들의 도도한 기상과 역사적 사명감에 대한 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정읍인들이 앞장서 희생한 배경은. “뿌리 깊은 ‘정읍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정읍정신은 인문학적·문화적 환경의 영향으로 형성됐다.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지켜 낸 배경에는 정읍의 실천 유학자였던 일재 이항 선생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호남 성리학의 종조인 일재는 통일신라시대 사상가 고운 최치원의 ‘풍류도’ 사상을 유학 입장에서 자주적으로 재창조했다. 그의 생애와 학문은 호남 선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나선 제자가 김천일 장군 등 54명에 이른다. 조선왕조실록을 지켜 낸 안의와 손홍록 역시 일재의 제자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수운 최재우,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으로 이어져 정읍정신의 뿌리가 됐다. 대한민국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선조들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정읍은 역사·문화의 도시로 알려졌다. “정읍은 문화와 역사 자원의 보고다. 역사와 문화, 예술의 향기가 끊임없이 솟아나는 고장이다. 공식 지정된 유무형 문화재만 116건이다. 외세와 폭정에 대항한 동학농민혁명, 을사늑약에 항거해 일어난 무성창의, 호남지역 독립만세운동의 불씨를 댕긴 태인독립만세운동은 정읍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뤄졌다. 정읍은 신종교의 성지라 불릴 만큼 다양한 종교의 발상지다. 동학에 뿌리를 둔 민족종교인 증산교, 보천교의 본향이다. 이 종교는 암울한 시기 이 땅의 백성에게 희망을 줬고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어렵게 제정됐다. 이를 지역발전 원동력으로 승화시킬 방안은.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은 정읍시가 제안한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로 제정됐다. 이 같은 역사적 의의를 살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연계해 정읍을 세계적인 민주화 성지로 키워 나갈 계획이다. 동학농민혁명과 유적들을 역사 관광자원으로 콘텐츠화해서 정읍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겠다. 15년 산고 끝에 제정된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기념공원 조성,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 역사 탐방 드라이브길 조성, 혁명 기록물 세계유산 등재 등도 추진하겠다.”-정읍 민주화 성지 육성계획의 당위성은. “동학농민혁명은 인도 ‘세포이 항쟁’, 중국 ‘태평천국운동’과 함께 아시아 3대 혁명으로 꼽힌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뿌리이자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기반이다. 125년 전 이미 반상의 차별과 서얼, 적서의 구별에 반대하고 노비제 폐지는 물론 여성과 어린이 해방까지 내세웠다. 당시 세계 어느 나라도 내세우지 못했던 인간 모두의 평등성과 존엄성을 담은 혁명적 민주주의 사상이었고 국가의 자주적 이념을 표방했다. 민주화 성지로서 손색없는 역사적 배경이다.” -문화도시로 비상을 꿈꾼다. “문화가 경제인 시대다. 지역경제, 나아가 국가발전에서 문화적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정읍이 보유한 독창적이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문화유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겠다. 이를 위해 법정문화도시 지정을 추진한다. 문화유산의 관광 자원화를 통한 수익 창출로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지역 곳곳에 산재한 구슬 같은 자원을 모으고 꿰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보배로 만들겠다.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시민 주도로 추진하겠다. 소소한 재미가 있는 골목길 조성, 용산호 복합 힐링 레저공간 조성, 문화자원의 고부가 가치화 등으로 시민에게 소득을 주고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문화도시를 만들겠다. 책과 역사에만 존재하는 문화가 아니라 시민들이 즐기고 삶을 여유롭게 하는 문화로서 힘을 키우겠다.” -문화도시로 발돋움하려면 시민들의 참여가 필수조건이다. “정읍은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역경제는 장기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구는 계속 준다. 문화자원의 고부가 가치화에 성공하지 못했고 사계절 관광지화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정읍은 발전 잠재력이 크다. 이제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문화자원의 고품질 콘텐츠화로 관광을 부흥시키고 기업 유치와 원도심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힘이 중요하다. 민관이 협력해야 상생하는 정읍을 만들 수 있다. 문화도시 조성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지위와 혜택을 누리는 시장이 아니라 정읍정신으로 희생하면서 솔선수범하는 시장이 되겠다. 정읍 발전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관심과 사랑으로 협조하고 참여해 주길 호소한다.” 정읍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문 대통령, 전남 미래 전략 ‘블루 이코노미’ 선포식 참석

    5·18 기념식 후 두 달 만에 호남 찾은 문 대통령, 에너지 신산업·메디컬 허브 등 새 성장동력 격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전라남도 무안에 있는 전남도청을 찾아 전라남도가 새로 추진하는 미래경제 비전인 ‘블루 이코노미’ 보고회에 참석했다. ‘블루 이코노미’는 에너지·관광·의료·운송·은퇴 도시 등 5대 분야에서 성장동력을 발굴해 혁신성장을 견인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전라남도의 미래 전략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고 지역 균형발전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진행 중인 ‘전국경제투어’ 중 열 번째 행사다. 앞서 지난해 10월 30일 전북을 시작으로, 경북·경남·울산·대전·부산·대구·강원·충북 등에서 차례로 경제투어 일정이 진행됐다. 문 대통령이 호남을 방문한 것은 지난 5월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 후 약 2달 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블루 이코노미 전략에 대한 보고를 받고, 전남이 새로운 경제발전의 발판을 마련할 것을 독려했다. 특히 전남이 중점 육성하려는 글로벌 에너지 신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보고회에서 5대 프로젝트를 통해 전남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5대 프로젝트는 글로벌 에너지 신산업 (Blue Energy)·남해안 신성장 관광벨트(Blue Tour)·바이오 메디컬 허브(Blue Bio)·미래형 운송 기기 산업(Blue Transport)·은퇴 없는 스마트 블루시티(Blue City) 등으로, 이 분야 산업을 집중 육성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 전남도의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보고회에서 5대 비전별로 만들어진 5개의 홍보 부스를 방문해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들여다봤다. 행사에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종식 목포시장, 김산 무안군수,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 김범년 한전KPS 사장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전남과학고 학생 등이 도민대포로 참석했고, 청와대에서는 강기정 정무수석, 이호승 경제수석 등이 참석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유신 반대’ 부마 민주항쟁 10월 16일, 올해부터 국가기념일

    ‘유신 반대’ 부마 민주항쟁 10월 16일, 올해부터 국가기념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에 맞선 부마 민주항쟁이 40주년을 맞는 가운데 항쟁이 처음 시작된 1979년 10월 16일이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된다. 행정안전부는 1일 부마 민주항쟁이 시작된 날을 기리고자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기 위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개정 취지에 대해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기념하고자 부마민주항쟁 최초 발생일인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새로 지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마 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에 저항해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시위 기간은 짧았지만 군사정권 철권통치 18년을 끝내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마 민주항쟁은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민주화운동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행안부는 8월 5일까지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10월 16일 이전에 개정 절차가 완료되면 부마 민주항쟁 40주년을 맞는 올해부터 정부 주관으로 기념행사를 진행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부산과 창원 지역의 부마항쟁 기념사업 관련 단체들이 따로 기념식을 열었다. 행안부는 “관련 단체·기관들이 의견을 조율한 상태여서 큰 반대의견이 없으면 올해 기념일 이전에 개정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계획대로 개정이 이뤄지면 올해부터 정부에서 기념식을 주도하고 부마항쟁의 의미를 새기는 다양한 행사도 전국적인 규모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황교안, 대학생들에게 “내가 꼰대처럼 생겼느냐” 물어

    황교안, 대학생들에게 “내가 꼰대처럼 생겼느냐” 물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숙명여대를 방문해 “우리를 ‘꼰대’라고 하는 분들을 찾아가 당의 진면목을 보여드리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정치외교학 전공을 희망하는 숙명여대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한국당의 이념이나 가치에 대해 생태적으로 부정적인 분들도 있다”면서 “그런 분들에게 더 찾아가고 스며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생각이 다르더라도 찾아가거나 그분들이 생각하는 것을 찾아 내가 반추할 것은 없나 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황 대표는 학생들에게 “청년들은 한국당이라고 하면 뭔가 ‘꼰대 정당’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꼰대처럼 생겼느냐”고 묻기도 했다. 황 대표는 지난달 광주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 과정에서 일부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일에 대해 “지역에서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 공적인 기념식이고 공당 대표이니 반대하더라도 가는 게 마땅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황 대표는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불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황 대표는 또 “더불어민주당은 홍보를 너무 잘한다. 행사하면 막 감동이 된다”면서 “대학도서관에 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민주당이 어떻게 홍보를 하는지 자료를 뒤져 메모를 했더니 30여개를 적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앞서 황 대표는 “외국인에게 (내국인과) 산술적으로 똑같이 임금 수준을 유지해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기여해온 것이 없다”는 등의 문제의 발언으로 논란을 초래했다. 이 발언은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혐오 발언이면서 ‘사용자는 노동자에 대해 성별,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 규정에 어긋나고,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에도 위배되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황 대표는 “제 얘기의 본질은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자는 게 아니라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바로잡자는 것”이라면서 이런 비판들이 “터무니없다”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