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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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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기념일 지정 의미… 피해 진상 규명·보상 위해 더 노력”

    “국가기념일 지정 의미… 피해 진상 규명·보상 위해 더 노력”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10·16)로 지정됐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유신 독재에 맞서 부산과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학생들이 시작하고 시민들이 참여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이끌었지만, 전두환 정권이 이어지면서 독재의 사슬을 끊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동아대 2학년 학생이던 당시 부마민주항쟁의 불씨를 지핀 주역 중 한 명으로 수년 전부터 꾸준히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온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지난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감격스럽지만 한편으론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마민주항쟁 이듬해인 1980년 5월 검거돼 모진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40년이 지난 지금도 한쪽 무릎이 불편하다는 유 구청장은 “우리가 아픈 과거를 제대로 규명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힘줘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이 어떤 의의를 갖나.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종식을 가져온 민중항쟁으로, 그동안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 전두환 신군부에 항거한 5·18광주민주화운동,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 집권을 끝낸 6·10민주항쟁에 비해 소외돼 그 역사적 가치에 준하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이를 딛고 공식적으로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게 된 신호탄인 셈이다.” -오는 16일 첫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에 특별한 계획이 있나. “창원에서 열리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나서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진행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당시 민주항쟁에 함께했던 동지들과도 만날 계획이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기에 평소에는 만나기 쉽지 않지만 이날만큼은 다 같이 모여 회포를 풀기로 했다.” -동료들과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 소식을 듣고 어떤 얘기를 했나. “당시 부산대 학생이었던 신재식, 김종세, 정광민과 동아대 학생이었던 강명규, 이동관, 김백수 등과 가끔 안부를 묻는다. 지난달 17일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이 이뤄지면서 모처럼 연락을 나눴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젊은 날을 회상하며 그 시절 겪었던 아픔, 상처 등을 서로 위로했다. 남은 과제인 피해 진상규명과 적절한 피해자 보상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가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여전히 진상규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2010년 5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부마민주항쟁 당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했지만 전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은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13년 5월에 ‘부마항쟁보상법’(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고, 2014년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후 조사단이 내게도 여러번 찾아와 관련 내용을 조사했으나 안타깝게도 당시의 수형기록 등 관련 자료가 보존돼 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이후 조사위에서 해당 군부대를 찾아가서 가까스로 일부 자료를 찾아냈다고 들었지만 항쟁 전 과정에 대한 재조명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앞으로의 과제는.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기간이 올해 말 종료를 앞두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지난달에 ‘부마항쟁보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개정안은 부마민주항쟁의 정의를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을 전후해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항쟁 참여자의 폭도 넓혔다.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기간을 연장하고 조사권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하루빨리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이유다. 또 국가로부터 인권을 침해받고도 외려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등의 합당한 보상도 진행돼야 한다. 이 밖에도 부마민주항쟁의 위상에 걸맞은 기념관도 건립해 우리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부마민주항쟁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바로 세워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향후 헌법 개정 시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이 다른 민주화운동들과 함께 헌법 전문에 담길 수 있도록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희생정신이 후대에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5·18 진압 명령 거부한 이준규 경찰서장, 39년 만의 재심서 무죄

    5·18 진압 명령 거부한 이준규 경찰서장, 39년 만의 재심서 무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한 이유로 파면을 당하고 유죄를 선고받은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2단독 양효미 부장판사는 포고령 위반,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1980년 8월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선고유예한다는 처분을 받은 고인의 재심에서 11일 무죄를 선고했다. 고인은 1980년 5월 21일과 22일 시민 120여명이 총기와 각목 등을 들고 경찰서에 들어왔음에도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병력을 철수시킨 혐의로 당시 계엄사령부 산하 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에 회부됐다. 고인은 사상자 발생을 막기 위해 경찰 총기를 군부대에 반납하라는 당시 안병하 전남도 경찰국장의 명령에 따라 경찰서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고 총기의 방아쇠를 분리해 배에 실어 가까운 섬인 고하도로 향했다. 이후 목포로 다시 돌아왔다. 이준규 서장은 당시 경찰서 안에서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말라는 구내방송을 하고 무기를 반환하도록 설득하는 등 시민군과의 충돌을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준규 서장은 시위를 통제하지 못하고 자위권 행사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파면되고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90일 동안 구금·고문을 당한 뒤 군사재판에도 회부됐다. 당시 안병하 국장은 직위해제됐고 지시를 따른 다른 경찰 간부 11명도 의원 면직됐다. 군사재판 당시 목포시민들이 이준규 서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은 고문으로 건강이 나빠져 5년 간 투병하다가 1985년 암으로 사망했다. 고인의 사위 윤성식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와 딸 이향진 여사가 국가기록원 등에서 기록을 수집해 지난해 5·18 유공자와 특별재심을 각각 신청했다. 이준규 서장은 지난해 7월 5·18 민주 유공자가 됐다. 재판부는 “이준규 서장 행위의 시기와 동기, 사용수단, 결과 등을 볼 때 헌정 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찰청도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이준규 서장의 징계를 취소하는 절차를 검토 중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지만원씨, 5월 단체에 또 억대 배상금 물어줘

    지만원씨, 5월 단체에 또 억대 배상금 물어줘

    5·18민주화운동 관련 왜곡된 내용의 출판물을 펴낸 지만원(75)씨가 5월 단체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5·18기념재단은 대법원이 최근 5월 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5·18재단, 5·18유공자들이 지씨를 상대로 제기한 5·18 왜곡·폄훼 도서 출판물 발행, 판매·배포 관련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앞서 5월 단체 등은 지난 2017년 2월 지씨가 도서 ‘5·18영상고발’을 만들어 판매하자, 같은해 6월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화보집 형식으로 제작된 해당 도서(16쪽 분량)는 5·18을 북한군 특수부대가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심과 항소심은 지씨가 9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지씨는 이의를 제기하며 상고했다. 이번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5월 단체 등은 지난 1일 이자를 포함한 1억1400만원의 배상금을 지씨로부터 받았다. 소송을 시작한 지 2년 3개월 만이다. 지난해 12월에도 대법원은 5월 단체가 지씨를 상대로 제기한 ‘뉴스타운 호외 1·2·3호’ 출판물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려, 올해 5월 지씨는 이자 포함 1억8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했다.고소인들은 이번 배상금의 일부 또는 전액을 시민사회단체 등에게 공익 기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40년 만에 불러보는 ‘그날의 함성’

    40년 만에 불러보는 ‘그날의 함성’

    ‘소위 유신헌법을 보라. 그것은 법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무모한 정치욕을 충족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1979년 10월 16일 오전 9시 40분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생 정광민(현 10·16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은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 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뿌려 부산대 시위를 촉발했다. 이른바 부마민주항쟁의 처음이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는 마산으로 번졌고 학생과 시민이 합세한 민주화 운동은 마침내 유신정권의 종말을 가져왔다. 서슬 퍼런 유신 독재정권 몰락의 결정적인 단초였던 부마민주항쟁은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우리 현대사를 장식한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국가기념일에서 제외됐다가 항쟁 40년 만인 지난달에야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오는 16일 경남 창원시에선 ‘부마 1979, 위대한 민주여정의 시작’을 주제로 정부 주관의 첫 공식 기념식이 열린다. ‘다시 시월 1979’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과 공식 국가기념일 지정을 맞아 항쟁 주역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과 증언집으로 눈길을 끈다. 닷새 동안 진행됐던 당시 항쟁의 실상과 의미, 과제까지를 꼼꼼히 수록했다. 부마항쟁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여 당시 사건과 진실을 밝히는 최초의 출간물인 셈이다. 정광민 이사장을 포함해 당시 항쟁을 이끈 주역들은 인터뷰를 통해 항쟁 발발부터 닷새간의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특히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정권에 맞섰던 10명은 당시 항쟁이 자발적 학생들의 저항운동에 도시빈민과 노동자, 자영업자 등 민중이 자연스럽게 동참해 범시민운동으로 발전했다고 강조한다. 당시 부산대 국어교육과 77학번 학생이었던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부마항쟁은 어떠한 지도부가 있거나 조직이나 단일한 주체가 뒷받침한 항쟁으로 보기 어렵다.” 책에선 시위 전개 과정이 명확하지 않은 이 항쟁의 증언들에 더해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불거진 소멸 시효도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5월 부산지법 민사6부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체포된 뒤 경찰의 가혹한 수사로 피해를 당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항쟁 관련자 6명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90년 전 中인력거 청년의 절망, 지금의 한국 청년 삶과 닮았다

    90년 전 中인력거 청년의 절망, 지금의 한국 청년 삶과 닮았다

    中 소설 각색… “절망 끝 희망 갖게 될 것” 5·18 배경 작품으로 朴정부 블랙리스트 “정리되지 못한 역사 ‘광장의 대결’ 불러”“굶다가 세상을 떠난 탈북민 모자에겐 고춧가루뿐이었고, 지금도 누군가는 이력서를 수없이 내고 떨어지죠. 집 장만하겠다고 10년 동안 아등바등 돈을 모으면 집값은 또 뛰어 있고…. 소설 속 절망의 시대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공연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로 꼽히는 고선웅(51) 연출이 또 하나의 문제적 작품으로 돌아왔다. 중국 근대문학사의 대표 작가 라오서(老舍)의 소설 ‘뤄퉈샹즈’(1937)를 각색한 연극 ‘낙타상자’다. 제19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오는 17~20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지난 8일 서울 성북구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고 연출은 한 청년의 삶을 그린 작품을 설명하면서 “끝도 보이지 않는 절망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193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원작을 선택한 이유로 그는 ‘시의성’을 꼽았다. 고 연출은 ‘안정된 삶’이라는 소박하고도 원대한 꿈을 품고, 튼튼한 두 다리로 인력거를 끄는 청년 ‘상자’(祥子·샹즈)의 삶이 2019년 한국 청년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고전은 현대를 만날 때 울림이 있어야 하고 관계 맺기가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시의성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고, 연극으로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상자는 3년간 고생해 번 돈으로 새 인력거를 장만하지만 전쟁 통에 빼앗긴다. 병사들에게 끌려다니다 깊은 밤 털 빠진 낙타 3마리를 훔쳐 달아난다. 이후 다시 인력거를 마련해 매일 희망을 향해 달리지만 사랑하는 연인은 아버지 노름빚에 사창가로 팔려가 자살하고, 삶은 발버둥 칠수록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고 연출은 “절망의 끝이 없는 작품”이라면서 “하지만 관객들은 작품을 다 본 뒤 ‘그래도 절망의 끝엔 희망이 있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연극 ‘푸르른 날에’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초동으로 나뉜 ‘이념 대결’에 대한 그의 시각이 궁금했다. 그는 “어느 쪽을 편들기보다는, 우리 사회 갈등의 근원은 해방 이후 한 번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역사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비정상적인 현실에 눈감고 싶어 연극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고 에둘러 대답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文비하 글 올린 ‘좌익효수’, 국정원법 위반 무죄 확정

    인터넷 방송 진행자 모욕 혐의 유죄 인정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좌익효수’라는 필명으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를 비하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국가정보원 직원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가 무죄로 확정됐다. 항소심 판결이 나온 지 3년 만이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국정원 직원 A(45)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대법원은 모욕 혐의에 대해서도 원심이 선고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확정했다. A씨는 국정원 근무 때인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후보를 비하하는 글을 반복적으로 인터넷에 올려 상대 후보의 선거운동을 한 혐의(국정원법 위반)로 기소됐다. A씨 글 중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표현하는 등 호남을 비하하는 내용도 있었다. A씨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인 ‘망치부인’ 이경선씨 부부와 딸을 비방하는 글도 반복적으로 올려 모욕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1·2심은 “특정 후보의 낙선 도모를 위해 댓글을 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서도 “A씨의 글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보다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야권 출신 정치인에 대한 반복적인 모욕적 표현 또는 부정적 감정의 표출에 불과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가 선거철이 아닐 때도 여러 정치인을 비방해 왔고 댓글 수가 많지 않은 점 등이 판단 근거가 됐다. 다만 1·2심은 이씨 가족에 대한 모욕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 판결은 2016년 8월에 나왔는데 대법원은 3년 만에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부마항쟁 40주년 기념문화제...9일 민주공원 개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문화제와 제28회 민주시민상 시상식이 9일 오후 민주공원 가리사리마당(앞마당)에서 열린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민주공원이 주관한다. 이번 기념문화제에서는 시민의 손으로 유신독재를 몰아낸 부마민주항쟁을 기리며,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을 기념·계승하는 전국 유일의 상인 민주시민상의 제28회 시상식도 함께 열린다. 올해 민주시민상 수상 단체는 ‘감만동8부두 미군부대 세균무기실험실 철거를 위한 남구지역 대책위’가 선정됐다. 행사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특별 뮤지컬 극단 예감의 ‘지워진 이름 부마’ 갈라쇼와 민주시민상 수상자와 함께하는 토크쇼, 버스트오케스트라의 축하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특별음악회인 ‘부마에서 광주로’도 열린다. 음악회에서는 클래식으로 재탄생한 ‘님을 위한 행진곡’, ‘님을 위한 서곡(序曲)-빛이 있는 마을’(황호준 작곡)을 들을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곡을 클래식으로 편곡했다. 이밖에 지난 4일부터 민주공원 잡은펼쳐보임방(기획전시실)에서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전시 ‘부마 1979 ·유신의 심장을 쏘다!’ 전이 열리고 있다. 전국 순회 전시로 서울, 청주, 광주, 창원에 이어 이달 31일까지 부산에서 열린다. 사진, 항쟁 지도 등 부마민주항쟁의 사료는 물론 부마민주항쟁에 영감을 받은 8점의 대형 그림을 전시한다. 부마민주항쟁은 지난 달 24일 공포된 대통령령 제30091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에 따라 10월 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16일에는 창원 경남대학교 대운동장에서 행정안전부의 주최로 첫 부마민주항쟁의 국가 기념일이 개최될 예정이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좌익효수’ 국정원 전 직원 불법 선거운동 무죄 확정

    ‘좌익효수’ 국정원 전 직원 불법 선거운동 무죄 확정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좌익효수’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특정 후보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에게 불법 선거운동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는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45)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다만 모욕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A씨는 2012년 12월 대선 전후로 인터넷에 선거운동으로 여겨지는 글을 10차례 올린 혐의(국정원법 위반)로 기소됐다.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를 비하하는 글을 반복적으로 올렸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표현하는 등 호남을 비하하는 글도 올렸다. 또 인터넷 방송 진행자인 ‘망치부인’ 이경선씨 부부와 딸을 비방하는 글을 반복적으로 올린 혐의(모욕)도 받았다. 국정원법은 국정원 직원이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찬양 또는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을 유포하는 행위,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징역 7년 이하와 자격정지 7년 이하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국정원은 2016년 6월 A씨를 해임했다. 앞서 1·2심은 “A씨의 글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보다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야권 출신 정치인에 대한 반복적인 모욕적 표현 또는 부정적 감정의 표출에 불과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무죄라고 판단했다. 다만 이씨 가족에 대한 모욕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A씨의 행위가 국정원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전두환씨 재판에서 조비오신부와 헬기사격 목격했다

    5·18 민주화운동 기간 고 조비오 신부와 함께 헬기 사격을 목격한 천주교 평신도가 처음으로 법정에 섰다. 평신도인 이광중(72)씨는 전두환(88)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분명히 헬기 사격을 봤다”고 증언했다. 7일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은 6번째 증인신문으로, 천주교 신도인 이광중(72) 씨와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65) 씨, 항쟁 마지막 날까지 옛 전남도청에 남았던 김인환(60) 씨 등 3명이 법정에 섰다. 이씨는 당시 사도회 총무로 활동하며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이후 광주 호남동 성당에서 조비오 신부와 함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그날 6∼7명의 신부님들이 성당에 모였다가 나가셨고 조비오 신부님은 낮 12시 넘어서 오셨다. 제가 플래카드를 써서 글씨가 말랐는지 보고 있는데 갑자기 ‘탕탕탕탕’ 소리가 났다”고 회고했다. 이어 “조 신부님이 ‘보스코 총무, 이리 와보소’라고 해서 정문 쪽으로 가니 불로동 다리에서 공원을 향해 헬기가 있었다. 공원 하천에서 ‘탕탕탕탕’ 2번 나면서 불빛이 ‘번쩍’ 했다”고 말했다. 조 신부는 1989년 방송에 출연해 처음으로 헬기 사격 목격을 증언하고 같은 해 열린 국회 광주 진상조사특위, 1995년 검찰 조사에서도 같은 증언을 했으나 함께 목격한 사람은 밝히지 않았다. 이씨는 “신부님께서 나를 보호하려 한 것 같다. 5·18 당시 집사람이 서울에서 첫 아이를 출산하게 돼 내가 가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오해와 상처를 받아 5·18을 잊고 싶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박남선 씨와 김인환 씨는 1980년 5월 27일 옛 전남도청 인근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박씨는 “27일 새벽 4∼5시 도청 앞에서 전일빌딩을 향해 헬기가 사격했다. 헬기는 전일빌딩과 비슷한 높이에 있었고 드르르륵 소리가 나고 불빛이 보였다. 헬기 사격 후 5∼10분이 지나고 공수부대가 도청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대학생이었던 김씨는 “27일 새벽 4시께 군인이 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유리창이 다 깨졌고 헬기에서도 총을 쐈다. 어느 총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항복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우리를 향해 총을 쐈다”고 밝혔다. 다음 재판은 다음 달 11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열리며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한 5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문대통령 “부마항쟁, 유신독재 무너뜨린 위대한 역사”

    문대통령 “부마항쟁, 유신독재 무너뜨린 위대한 역사”

    지난해 3월 발의한 개헌안 전문에 부마항쟁 담아정부가 17일 부산·창원·경남 시민들이 유신체제에 맞선 부마민주항쟁(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것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힘으로 유신독재를 무너뜨린 위대한 역사를 마침내 모두 함께 기릴 수 있게 돼 매우 뜻 깊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민이 걸어온 민주주의의 길을 기리고 국민이 세운 민주공화국의 이정표를 올바로 기념하는 일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책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의 힘으로 이뤄낸 민주주의”라며 “오늘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인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그리고 부마민주항쟁 모두 국가기념일이 됐다”고 설명했다.이어 “정부는 40년 전 민주주의를 향한 부산·창원·경남의 함성이 국민 모두의 가슴에 생생한 울림으로 되살아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부산과 창원, 경남의 시민들은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자부심으로 하나가 돼 국가기념일 제정 서명운동을 펼쳤고 60만명의 국민이 함께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을 비롯해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애써온 시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비록 무산되긴 했으나 지난해 3월 발의한 개헌안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부마민주항쟁, 6·10 민주항쟁(6월 항쟁)을 담은 바 있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개헌안을 발표하면서 “민주주의 역사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취지”라고 설명했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5·18 광주 데자뷔’ 홍콩의 택시운전사, BBC 기자에 “우리의 싸움 전해달라”

    ‘5·18 광주 데자뷔’ 홍콩의 택시운전사, BBC 기자에 “우리의 싸움 전해달라”

    BBC 중국 특파원 트위터 올려택시기사, 요금 안 받겠다 사양“‘홍콩은 포기 안 해’ 전해달라”‘홍콩판 택시운전사’ SNS 화제 ‘임을 위한 행진곡’ 홍콩 울리기도6월 시작된 홍콩 시위 석 달째미 의회, ‘홍콩 민주주의법’ 추진시위대 이끄는 조슈아 웡, 독일행“기자 양반, 요금은 안 받겠소. 고마운 건 내쪽이오. 부디 세상에 전해주시오. 홍콩 사람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자유를 위해 계속 싸울 거라고.” 영국 BBC방송의 중국 특파원인 스티븐 맥도넬은 지난 9일 홍콩 국제공항에서 가슴 뭉클한 일을 겪었다. 공항까지 자신을 태워준 택시기사가 한사코 요금을 사양한 것이다. 이름 모를 택시기사는 외신 매체가 있어 정말 고맙다면서 맥도넬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러면서 자유를 쟁취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홍콩 시위대의 싸움을 세상에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맥도넬은 이 일을 트위터(@StephenMcDonell)에 즉시 올렸다. 그의 글은 5000번 이상 리트윗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맥도넬은 “홍콩의 정치적 위기로 이 택시운전사의 생계는 곤란해졌을 것”이라면서 “시위대 때문에 장사에 피해를 본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물론 만났지만, 시위대를 지지하는 자영업자가 이처럼 많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고 적었다.홍콩 및 중국 재외국민을 비롯한 트위터리안은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댓글을 1000건 이상 남겼다. 이 가운데는 맥도넬의 사연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한국 영화 ‘택시운전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중국어, 영어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방탄소년단을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한 트위터리안은 “훌륭한 한국 영화 한편이 생각난다”고 적었다. “택시운전사의 홍콩버전”이라는 평도 있었다. 또다른 이용자는 이 영화의 상세한 줄거리를 언급하며 “언젠가 홍콩 시위도 더 많은 영화와 TV작품으로 볼 수 있길 바란다”며 적었다. 그러자 맥도넬은 택시운전사의 포스터를 첨부하면서 “정말 좋은 영화다. 실화를 담은 놀라운 이야기다. 강력 추천”이라고 화답했다.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광주까지 태워준 택시기사 김사복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총 관객수 1219만명을 기록한 이 영화에서 배우 송강호씨는 신군부의 무자비한 살상을 목도하고,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려 한 힌츠페터를 적극적으로 돕는 택시운전사를 연기했다. 영화는 같은 해 9월 홍콩과 대만에서도 개봉됐다. 영화를 본 현지 시민들은 당시 SNS에 “우리는 언제쯤 역사를 직면할 수 있을까”, “스크린에 당신들의 이야기를 옮길 수 있다니 부럽다”, “객석이 울음바다였다”, “비슷한 어떤 사건(텐안먼 사태)이 자꾸 생각난다”는 등의 감상평을 남기며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했다. 지난 6월 9일 시작돼 3개월간 이어진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홍콩 시민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촛불집회 등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거울 삼기도 했다. 시위 초기 통기타를 든 한 참가자는 “구글에서 ‘광주의 노래’를 검색해보라. 한국영화 3편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을 봤다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라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소개했다.이 참가자가 중국어 가사를 붙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부르는 영상은 SNS에서 화제가 됐다.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에 대한 자국 언론의 보도를 통제하는 가운데 홍콩 시민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해줄 국제 언론에 크게 의존하는 형편이다. 그래서인지 시위대는 현장을 취재하는 외신 기자들이 다치지 않게 적극적으로 보호하기도 한다.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진압에 나서자 현장을 중계하는 외국인 기자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안전모를 쓰게 하는 시위대의 모습이 취재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홍콩 시위는 3개월 째 접어들었다. 시위대는 송환법의 완전한 철회와 시위대에 대한 폭도 지정 철회 및 홍콩 경찰의 무력진압에 대한 정식 사과, 체포된 시위대의 전면 석방,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하지만 중국 정부는 시위대를 범죄집단으로 규정하고 “모든 범죄행위는 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는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의 특별지위를 지속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내용과 함께 홍콩의 기본 자유를 억압한 책임이 있는 자들의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한편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의 주역이자 송환법 반대 시위를 이끌고 있는 조슈아 웡은 9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해 “홍콩은 새로운 냉전시대의 베를린”이라며 “자유 세계가 중국의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는 우리와 함께하길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5월단체,옛 광주적십자병원 보존방안 마련 촉구

    5월단체가 5·18 사적지 제11호인 광주 동구 불로동 옛 광주적십자병원이 민간에 매각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5·18 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30일 공동 성명을 통해 “옛 광주적십자병원 소유권을 갖고 있는 서남학원재단이 청산 절차를 진행하면서 병원을 공개 매각키로 결정했다”며 “광주시는 5·18의 핵심 장소인 적십자병원 매입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병원이 개인에게 넘어간다면, 5·18사적지로서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게 된다”며 “옛 적십자병원은 1980년 5월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에 따른 사상자 수천 명이 치료를 받았던 역사적인 장소인 만큼 원형 보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광주시는 지난 1998년 이 병원을 사적지 제11호로 지정했다. 이 병원 소유주인 서남학원 측은 1995년 동구 불로동 광주천변 지상 3층 규모의 옛 광주적십자병원(대지 2843㎡, 건물 3777㎡)을 인수해 서남대병원으로 운영하다 적자가 발생하면서 2014년부터 폐쇄했다. 이후 서남학원에서 설립자 비리와 학사파행 등의 문제가 불거지자 교육부가 해산명령을 내렸다. 임금체불 등 1350억원의 채무를 안고 있는 서남학원은 교육부로부터 재산매각 승인을 받아 옛 광주적십자병원에 대한 공개 매각을 결정했다.서남학원 측은 다음달 초쯤 옛 광주적십자병원에 대한 공개 입찰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와 동구는 옛 적십자병원 매입 방안을 검토했으나 100억원대로 추정되는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시 관계자는 “5·18 사적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시기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내년에 5·18 사적지에 대한 관리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광주지역에는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29곳이 지정돼 있으며 이 중 10곳이 개인 사유지여서 관리와 보존 방안이 필요한 실정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민주사랑방’ 故 홍남순 변호사 사택 원형 복원한다

    ‘민주사랑방’ 故 홍남순 변호사 사택 원형 복원한다

    민주항쟁 대책회의 장소로 이용됐던 곳 화순 생가터 복원과 연계 기념사업도‘민주·인권의 대부’로 통하는 고 홍남순 변호사의 광주 동구 궁동 주택에 대한 보존과 기념사업이 추진된다. 궁동 주택은 2017년 12월 5·18사적지 제29호로 지정됐다. 광주시는 29일 홍 변호사의 자택에 대한 보존 및 활용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궁동 가옥은 1950년대 중반 홍 변호사가 광주지법 판사로 근무하면서 살았던 곳이다. 5·18민주화운동 때는 재야인사들이 모여 항쟁과 수습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는 장소로 이용됐다. 박정희 정권 때도 독재정권 타도 투쟁을 주도한 곳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06년 10월까지 전국의 민주인사와 시민·학생 등이 쉼터로 이용하면서 ‘민주 사랑방’으로 불렸다. 광주시는 10억원을 확보해 내년 4월 보존에 착공, 2022년 상반기 완료할 예정이다. 이번 용역을 통해 5·18 당시 수습대책위원회 활동과 이후 명예 회복 및 진실 규명을 위해 헌신한 홍 변호사를 재조명하고, 가옥의 보존·관리·공간 활용 계획 등을 마련한다. 홍 변호사가 실천한 민주·인권·평화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념사업과 각종 사료도 발굴한다. 시는 전남 화순군이 추진하는 도곡면 효산리 홍 변호사 생가터 복원사업과 연계하는 기념사업도 검토한다. 생가는 목조 초가 형태로 오는 10월 완공된다. 홍 변호사는 군사정권 시절 긴급조치법 위반 사건의 변론과 양심수들을 위한 무료 변론을 맡는 등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꼽힌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학살에 항의하며 ‘죽음의 행진’에 나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년 7개월간 복역했다. 광주5·18구속자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5·18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에도 앞장섰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이해찬·나경원도 ‘18원’ 후원금 받았다

    이해찬·나경원도 ‘18원’ 후원금 받았다

    부동산 투기 의혹 손혜원 상반기 1위 나경원엔 응원 의미 ‘1004원’도 입금 특정 욕설을 연상시키는 ‘18원’ 후원금이 올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원들에게 입금된 것으로 나타났다. 18원 후원금은 유권자들이 의원들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다. 2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19년 상반기 국회의원 후원금 모집현황’에 따르면 올해 1~6월 후원금 1위인 무소속 손혜원 의원은 1월에만 2500여건의 18원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는 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시기로 당시 손 의원과 설전을 벌였던 목포 지역구의 박지원 의원도 18원 후원금을 10여 차례 받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망언을 한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에게도 18원 후원금이 쏟아졌다. 김진태 의원은 18원·36원·54원 등 18의 배수로 된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 김순례·이종명 의원도 각각 18원 후원금이 30건가량 입금됐다. 딸 부정채용 의혹을 받는 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18원 22건, 28원 2건을 받았다. 여야 지도부도 18원 후원금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8원 7건, 이인영 원내대표는 18원 14건, 홍영표 전 원내대표는 18원 9건이 각각 입금됐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18원 9건, 이재정 대변인은 18원 76건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18원 6건, 28원 2건을 받았다. 나 원내대표에게는 응원의 의미를 담은 ‘1004원’ 후원금도 3건 들어왔다. 김현아 원내대변인은 18원 15건을 받았다. 현역 의원이기도 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3기 신도시 지정으로 지역 내 비판을 받으면서 18원 6건을 받았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사설] 5·18 대리 사죄한 노태우, 발포 진상도 밝혀야

    [사설] 5·18 대리 사죄한 노태우, 발포 진상도 밝혀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지난 23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 사실이 그제 뒤늦게 알려졌다. 재헌씨는 희생자 묘역에 무릎을 꿇고 헌화했으며, 방명록에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들께 사죄드리며,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적었다. 그의 참배는 투병과 고령으로 칩거 중인 노 전 대통령의 평소 뜻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신군부 핵심 인사가 5·18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재헌씨는 “기회가 되면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사죄하고 싶다”고도 했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과와 반성은커녕 자신은 5·18과 무관하다며 뻔뻔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회고록에선 자신이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며 적반하장격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지난 3월 광주 재판 출석 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가 있었지만 되레 호통치는 모습으로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오랜 세월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온 희생자 유족과 광주 시민들을 생각한다면 노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 광주시민에게 발포를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진실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등 당시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은폐한 진상을 밝혀내는 데 일조해야 한다. 그래야 사죄의 진정성이 한층 빛날 것이다. 지난해 2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이 38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가가 주체가 돼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것인데, 1년 반이 넘도록 위원회를 꾸리지 못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5·18 북한군 개입설을 다룬 극우 유튜브 채널 대표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야당 몫 비상임위원으로 추천하는 등 정쟁 수단으로 활용하는 탓이다. 참담한 일이다. 노 전 대통령 아들의 이번 사죄가 5·18 진상 규명에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 노태우 아들은 ‘사죄’…전두환 아들은 고깃집 창업

    노태우 아들은 ‘사죄’…전두환 아들은 고깃집 창업

    노태우 씨의 아들인 노재헌 씨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에게 사죄했다. 국립 5·18민주묘지 관리소에 따르면 노재헌 씨는 23일 오전 11시 광주 북구 운정동 묘지를 찾아 1시간가량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의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5·18 피고인’으로 처벌받은 전두환·노태우 씨의 직계가족 가운데 광주를 찾아 오월 영령에게 사죄한 이는 노재헌 씨가 처음이다. 노태우 씨는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씨는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고 16년 만인 2013년 추징금을 완납했다. 반면 전두환 씨 같은 경우는 선고된 추징금이 2200억 원이었지만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며 1020억 원 정도를 납부하지 않았다. 지난 2013년 전두환 씨의 장남 전재국 씨는 “온 가족이 돈을 모아 부친(전두환)의 추징금을 완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두환 측은 최근 추징금 미납으로 공매로 넘어간 연희동 자택에 대해, 공매 처분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26일 “전두환 일가가 내야 할 추징금은 1000억 원 이상이지만 2016년 초 차명으로 무한리필 프랜차이즈 고깃집을 창업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전두환 씨의 장남인 전재국 씨 가족은 ‘나르는 돼지’라는 상호의 프랜차이즈 고깃집 운영사인 ‘실버밸리’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실버밸리는 ‘나르는 돼지’라는 상호의 고깃집을 서울 1곳, 경기 2곳, 전북 1곳 열었고 현재는 일산 탄현점과 전주점 2곳을 운영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5·18 희생자·유족께 사죄”…노태우 대신 사과한 아들

    “5·18 희생자·유족께 사죄”…노태우 대신 사과한 아들

    유족 측 “의미 있지만 당사자가 나서야”“5·18 희생자와 유족께 사죄드립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54)씨가 최근 아버지를 대신해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에게 사죄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26일 국립 5·18민주묘지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재헌씨는 지난 23일 오전 11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를 찾아 1시간가량 참배했다. 재헌씨는 당일 오전 9시쯤 전화로 방문 의사를 알렸으며 수행원으로 추정되는 일행 4명이 동행했다고 묘지 관리사무소 측은 설명했다. 재헌씨는 묘지 들머리인 민주의 문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참배단으로 이동해 헌화와 분향을 했다. 방명록에는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의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항쟁추모탑 뒤편 윤상원·박관현 열사 등이 잠든 묘역과 추모관, 유영보관소를 돌아봤다. 재헌씨는 1997년 국립 5·18민주묘지가 조성되기 전 항쟁 희생자가 안장됐던 망월동 옛 묘역도 들른 것으로 전해졌다. ‘5·18 피고인’으로 처벌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직계가족 가운데 광주를 찾아 오월 영령에게 사죄한 이는 재헌씨가 처음이다. 노 전 대통령은 오랜 투병과 노화 등으로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주로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5·18 유족들은 참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당사자의 직접적인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 5·18민주묘지를 찾아 사죄하고 참배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12·12와 5·18 핵심 인물인 노 전 대통령이 당사자 입장에서 당시 상황을 고백하고 5·18진상을 직접 얘기해야만 사죄의 진정성이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통해 5·18 희생자에 사죄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통해 5·18 희생자에 사죄

    전두환·노태우 직계 중 5·18 사죄 처음노태우, 건강 특별히 이상 없어 자택 생활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54)씨가 26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며 희생자들에 사죄했다. 재헌씨의 참배는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국립 5·18 민주묘지 관리소에 따르면 재헌씨는 23일 오전 11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묘지를 찾아 1시간가량 참배했다. 당일 전화로 방문 의사를 알린 재헌씨는 수행원으로 보이는 일행 4명과 함께 묘지 들머리인 민주의 문에서 방명록을 작성했다. 방명록에는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의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추모탑 뒤편 윤상원, 박관현 열사 등이 잠든 묘역에서 무릎 꿇고 항쟁 희생자를 기렸다.참배를 마치고 나서는 추모관과 유영보관소 등 5·18 민주묘지 내 추모 시설을 돌아봤다. 재헌 씨는 1997년 국립 5·18 민주묘지가 조성되기 전 항쟁 희생자가 안장됐던 망월동 옛 묘역도 들른 것으로 전해졌다. ‘5·18 피고인’으로 처벌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직계가족 가운데 광주를 찾아 오월 영령에게 사죄한 이는 재헌 씨가 처음이다. 재헌 씨의 5·18묘지 참배는 아버지 노 전 대통령 뜻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만 77세인 노 전 대통령은 현재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오랜 투병 생활을 했고 고령으로 인한 노화도 있지만, 건강에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5·18묘지 참배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54)씨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에게 사죄했던 것으로 뒤늦게 일려졌다. 26일 국립 5·18민주묘지 관리소에 따르면 재헌씨는 지난 23일 오전 11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를 찾아 1시간가량 참배했다. 재헌씨는 당일 오전 9시쯤 전화로 방문 의사를 알렸으며 수행원으로 추정되는 일행 4명이 동행했다고 묘지 관리소 측은 설명했다. 재헌씨는 묘지 들머리인 민주의 문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참배단으로 이동해 헌화와 분향을 했다. 방명록에는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의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항쟁추모탑 뒤편 윤상원, 박관현 열사 등이 잠든 묘역과 추모관, 유영보관소를 돌아봤다. 재헌씨는 1997년 국립 5·18민주묘지가 조성되기 전 항쟁 희생자가 안장됐던 망월동 옛 묘역도 들른 것으로 전해졌다. ‘5·18 피고인’으로 처벌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직계가족 가운데 광주를 찾아 오월 영령에게 사죄한 이는 재헌씨가 처음이다. 노 전 대통령은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오랜 투병 생활을 했고 고령으로 인한 노화도 있지만, 건강에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몰랐던 日식민지 상처… 이젠 가슴 벅찬 광복의 의미 느껴요”

    “몰랐던 日식민지 상처… 이젠 가슴 벅찬 광복의 의미 느껴요”

    “한국에 있는 일본 식민지배의 상처를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느껴보려고만 했을 뿐인데도 너무나 많은 한국 분들이 고마움을 표시해 주셨어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한국인들이 저희 일본인들에게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일본 대학생 미야자키 히나코(23)에게 올 8월 15일은 여느 해의 그날보다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일본에서 기념하는 ‘종전일’을 넘어서 한국인들에게 ‘광복절’로서 8·15가 갖는 의미를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와세다대 문화구상학부에서 문예·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는 미야자키는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와 있던 올 초 한국 내 식민역사 현장 탐방 모임인 ‘민카이’를 조직했다. 민카이라는 이름은 ‘모두 함께 가보자’라는 뜻의 일본어 문장 ‘민나데잇테미요’에서 따온 것이다. 민카이는 일본 식민지 역사의 상흔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는 곳들을 직접 찾아가 둘러본 뒤 그로 인해 얻은 생각이나 느낌을 공유하는 한일 젊은이들의 모임이다. 전체 회원은 27명으로 상당수는 미야자키가 자신의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뜻을 같이 하자고 부른 사람들이다. 절반인 14명이 일본인이다. 미야자키는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도 모임 창립자로서 후배들과 함께 활동을 이끌고 있다. 민카이를 만든 계기는 올 3·1절 100주년이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의 언니들과 만나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흔들었는데, 저와 달리 옆에 있던 다른 일본인 친구는 ‘이런 분위기가 무섭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됐죠. 과거 식민지배의 역사를 모르니까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그렇다 보니 과거에 대해 알기를 더욱 꺼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미야자키는 일본인 혼자서는 선뜻 직접 가볼 엄두를 내기 어려운 장소에 여럿이 함께 손잡고 가보기로 했다. 현장을 봐야 비로소 의미 있는 사고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쉽게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칫 민감해질 수 있는 토론의 형식은 배제했다. 현장 탐방은 그동안 서대문형무소를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역사 관련 물품을 소장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위안부 피해자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집,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가 안치돼 있는 경기 파주시의 서울시립묘지 등에서 차례로 이뤄졌다. 탐방이 진행되고 이를 사진 등으로 알리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연락을 해 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앞으로는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 문제 수요집회 등에도 가볼 예정이다. 미야자키는 2015년 대학에 입학한 후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게 되면서 한국의 문화, 역사 등에 푹 빠져들게 됐다. “사실 고등학교 때 장근석이나 씨엔블루 같은 연예인들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대해 별로 좋은 인식은 없었어요. 그저 ‘일본을 싫어하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었죠.” 미야자키는 한국의 식민역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활동들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교수님 등 학자들의 발표 중심으로 이뤄지는 학술행사 같은 것은 너무 어려워서 쉽게 다가가기가 힘듭니다.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자리가 흥미롭거나 즐거울 리가 전혀 없죠. 쉽고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역사 커뮤니티 같은 것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미야자키는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기였던 올 5월 18일에는 광주 망월동 민주묘지에도 참배를 하고 왔다. 그는 “한국에는 아픈 현대사를 후대에 증언해줄 분들이 많으셔서 다행”이라면서 “일본에는 과거 전쟁의 참화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실 어르신들이 자꾸 세상을 떠나고 계셔서 안타깝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은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한국에 대한 반감이 거의 종교적인 수준인 사람들이 일본에 많지는 않아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가감 없이 사실을 담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려고 합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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