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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정치 대변혁 예고한 하루”/전씨 구속­해외 반응

    ◎민주주의 다지기 위한 또하나의 진통­아사히/광주학살 관련 사건일지 곁들여 소개­로이터/“앞으로도 일련의 사태 벌어질것” 전망­LAT ▷미국◁ 미국 언론들은 2일(현지시간) 12·12및 5·18사건과 관련,전두환 전 대통령이 긴급 구속수감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케이블뉴스 전문방송인 CNN과 라디오뉴스 방송인 WIN은 뉴스시간마다 전전대통령이 지난 79년 12·12쿠데타 및 5·18광주학살사건등에 관련된 혐의로 이날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구속영장이 집행됐다고 주요 뉴스로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지도 3일 법원이 검찰의 출두요구를 거부한 전전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일 해설기사에서 과거 군사쿠데타에 비견되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한국은 앞으로도 정치적 대변혁가능성을 예고하는 일련의 사건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일본 언론들은 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구속수감 사실을 긴급 및 주요뉴스로 보도했다.일본 NHK방송은 이날 한국정부가 12·12사태와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전대통령을 구속,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고 긴급 보도했다. NHK방송은 전전대통령의 혐의사실과 「구속은 당연하다」는 내용의 시민반응,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모습등을 차례로 방영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에 이어 김영삼 정권이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는데 본격 착수했다고 전했다. 교도통신은 전전대통령의 구속으로 한국의 정계개편은 불가피하게 됐다고 분석하면서 김대중,김종필 두 야당총재에 대해서도 정치자금을 둘러싼 김영삼 정권의 공세가 뒤따를 것으로 내다봤다. 아사히신문은 여당안의 갈등표면화,야당의 공세등 정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정국은 혼미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러나 「2일은 민주주의의 정착을 향해 또 하나의 진통을 맞이한 한국을 상징하는 하루였다」고 평가했다. ▷유럽◁ 영국 BBC,벨기에의 RTBF방송,독일의 DPA통신등 유럽의 주요 언론들은 3일 한국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격적인 구속사실을 외신 주요뉴스로 보도하면서 한국의 정국에 큰 관심을 보였다. 유럽의 방송 등 언론들은 일요일인 이날 한국의 검찰수사본부가 소환조사에 불응하고 합천 고향으로 내려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현지에서 안양교도소로 연행,수감한 사실을 자세히 다루었다. 언론들은 12·12사태,80년 광주사태 등 그의 주도로 이뤄진 과거사를 소개하면서 정부·여당의 5·18특별법 제정과 병행돼 향후 정계개편 등 한국 정국흐름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주요 통신◁ AFP,로이터,AP 등 주요 국제통신사들은 3일 전두환전대통령의 구속수감 사실을 일제히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특히 AFP통신은 전씨의 인물을 별도의 기사로 다루면서 『전(전)독재자 전두환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유혈적인 역사의 장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로이터통신도 전두환씨의 구속수감 보도와 함께 지난 80년 광주학살과 관련된 당시의 주요 사건일지를 보도했다. AP통신은 전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19일만에 두번째로 구속된 전직대통령이 됐다면서 전씨의 구속수감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 준엄한 단죄의 시작(사설)

    검찰이 전두환씨를 12·12사건의 반란수괴등 혐의로 전격 구속수감한 것은 이 사건의 철저한 진실규명을 위해 당연한 조치다.검찰이 전씨를 구속함으로써 이 사건수사가 신속히 이루어지게 된 것을 환영하며 12·12군사반란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신군부의 정권찬탈과 학살관련자들에 대한 처벌도 신속히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전씨의 전격 구속수감은 전날 그가 대국민 성명을 통해 잘못을 참회하기 보다는 변명에 급급하고 현정권에 정면도전하며 검찰수사에 일체 협조하지 않겠다고 강변함으로써 국민적인 분노를 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전씨의 구속수감은 검찰이 지난 7월 12·12사건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반란수괴혐의를 밝혀내고 기소유예처분을 한 만큼 언제라도 재소환조사와 기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보복이라는 강변은 후안무치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광주학살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없이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며 그 주범인 전씨를 단죄하기 위해서는 구속수사가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더욱이 5·18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전씨 사법처리와 관련한 재야와 학생권의 격렬행동등으로 조속한 사실규명과 처벌이 불가피한 실정이었던 만큼 그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우리는 이 기회에 12·12군사반란 모의과정과 정승화 당시 육참총장연행등 하극상범죄,최규하전대통령에 대한 압력,신군부측의 병력동원과 아울러 광주학살의 진실이 철저히 규명되길 촉구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최전대통령과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조사 및 사법처리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검찰수사와 함께 5·18특별법도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만들어 전씨와 노태우씨등 군사쿠데타 수괴자들을 준엄하게 단죄함으로써 국민대화합과 발전의 계기가 앞당겨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5·18문제 해결의 홍역은 어차피 우리사회가 한번 치러야 할 과정이라면 검찰은 이번 기회에 철저한 수사를 해 다시는 이 문제로 우리사회가 갈등에 휩싸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것이다.
  • “역사의 죄인이 국민 우롱”/「전씨 검찰소환 불응성명」시민 반응

    ◎용서못할 행동… 즉각 구속 마땅/죄과 뉘우침 없는 궤변에 분노/“좌파 논리 운운에 할말잃어”­광주·전남 전두환 전대통령이 2일 현정부를 비난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데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법과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TV를 통해 전씨의 성명발표가 중계된 직후 검찰과 언론사 등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다』『아직도 착각에 빠져 정신을 못차렸다』『철저한 응징만이 해결책이다』라는 등 흥분한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시민들은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전씨를 구속시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인걸(서울대 국사학과교수)=전씨는 12·12사건과 5·18사건의 진상규명과 역사의 심판을 요구하는 국민의 뜻을 무시했다.검찰의 소환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면 검찰에 당당하게 출두해 사실과 소신을 밝혀야 할 것이다. ▲기동민(전국연합 부대변인)씨=전씨는 역사의 용서를 받기 위해 검찰소환에 즉각 응하고 진상을 스스로밝혀야 한다.검찰은 국민의 이름으로 전씨를 강제소환해야 한다. ▲김일수(고려대 법학과교수)=전씨는 자신의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현정부를 비난하는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법과 정의의 집행은 정치,상황논리보다 엄중해야 한다. ▲신대균(경실련 부정부패추방본부 운영위원장)=국민은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전씨를 포함한 5·18세력들은 비자금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정과 부패로 일관해 왔다. ▲정태흥(한총련 의장)=5월 영령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용서를 구해야 마땅할 전씨가 또다시 국민을 능멸했다.현정부는 정치적 고려나 법리적 해석 이전에 국민의 이름으로 전씨를 즉각 구속하라. ▲이용재(고교교사)=괴변으로 자신의 죄를 모면하려는 전씨의 뻔뻔함에 분노한다.전씨가 현정부를 비난하고 있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5·18학살의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 ▲안상수(변호사)=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지만 확정효력은 없어 언제라도 재수사가 가능하다.5·18관련자 처벌을 원하는 대다수의 국민을 좌익으로 몰아붙이면서 죄를 피하려는 것은 비열한 행위다. ▲김경록(29·회사원)=전씨 자신의 개인적 생각을 밝힌데 불과하다.그러나 노태우씨와 다른 모습을 보여 그의 임물됨을 가늠케 했다. ▲장철운(40·공무원)=전씨가 5·18사건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을 변론하는 태도가 당당해 보였다.감추고 숨긴다고 끝날 애기가 아니므로 당당하게 검찰의 수사에 응하는게 좋겠다. ◎학살자 사법처리를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와 전남 지역 주민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담화가 너무 뻔뻔하다고 분개했다.5·18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었던 이곳의 주민들은 전씨 등 학살자들을 하루 빨리 사법처리하라고 요구했다. 전남도 의회 최성호(53·국민회의) 의원은 『담화의 내용이나 태도가 너무나 떳떳해 5·18에 대한 반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서갑성(조선대 교수협의회 의장·47)씨는 『총칼로 수많은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자가 반성은커녕 「좌파의 논리」니 「정치적으로 끝난 문제」이니 운운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며 흥분했다. 조비오 신부(60·광주 봉선동 성당)는 『나라와 국민과 역사를 무시하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분노를 느낀다』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가 따르고 사죄하는 자에게는 자비가 따르나,그처럼 자신의 죄를 은폐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발언을 일삼는 자는 법을 이용해 강제로 무릎을 꿇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광주·전남 대학총학생회연합 이몽석(25)군은 『이제껏 피흘리며 쓰러져간 민주인사와 민주화 투쟁을 좌파세력의 주장이라는 데는 할 말이 없다.당장 구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씨 사법처리 속전속결” 신호/검찰 「오늘 출두요구」의 배경

    ◎“피의자” 규정… 조사뒤 즉각 구속 가능성/“관련자 재소환 조사 물꼬트기” 분석도 검찰이 12·12 및 5·18 전면재수사에 착수한지 이틀만인 1일 전두환 전대통령을 2일 소환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속전속결식」수사의지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특히 내일 소환되는 전전대통령의 신분에 대해 「피의자」라고 규정,소환조사 즉시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아 주목된다. 이종찬 수사본부장은 구속가능성도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말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그러나 『조사할 분량이 상당히 많다』고 부연설명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밤샘조사를 받을 것임을 시사했다. 노태우 전대통령이 검찰에 불려 나왔을 때도 소환 첫날 구속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최소한 3차례 정도의 소환조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2번째 소환에서 노씨가 구속되자 놀라워 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검찰이 올해안으로 전씨를 어떤 방식으로든 조사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소환통보를 한 이상 구속으로 향하는 「사법처리일정」이 더욱 단축될 가능성이 크다.다만 노씨의 예에 비춰 전씨도 최소한 2차례 이상의 소환조사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을 뿐이다. 이와 함께 전씨에 대한 전격소환은 노씨를 구속수사한 경험이 검찰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때문이라는 분석과 함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거칠 것이 없다는 검찰의 수사의지도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씨가 검찰소환에 불응할 경우다.『불응하면 진행상황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 경우에 대비한 대책도 이미 충분히 세워 놓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강제구인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검찰은 지난 12·12사건 당시의 수사기록을 상당히 검토했으며 전씨의 진술이 고소·고발인 및 피해자들의 진술과 상치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어 이같은 가능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검찰은 처음부터 전씨를 조사해야 모든 꼬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전씨 조사를 통해 32명의 12·12관련자의 재소환 조사 및 사법처리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전씨가 소환을 거부할 경우 관련자들을 우선 소환해 방증자료를 더 수집하는 방안도 있으나 현재의 검찰분위기와 검찰수뇌부의 이번 사건에 대한 의지에 비추어 채택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날 이본부장은 전·노 두전직대통령이외에 나머지 핵심관련자들의 사법처리를 가름하는 5·18 재수사착수여부와 관련,『수사기법상의 문제이며 다음에 말하겠다』고 답변을 피해 검찰이 「공소시효의 벽」에 부딪혀 고민하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현행법상 사법처리는 12·12쿠데타가 완료된 79년 12월 13일이 공소시효의 기산점으로 적용되지만 대통령재임기간의 공소시효 중단으로 15년의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사람은 전·노 두전대통령 뿐이다.그러나 두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12·12사건 공범 32명의 공소시효는 이미 종료됐다는 내부결론이 검찰을 괴롭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2·12­5·18 재수사 쟁점/정승화 육참총장 강제연행 규명­12·12/보안사 집권 시나리오 실체 추궁­5·18 검찰이 전두환 전대통령을 상대로 조사하게 될 12·12와 5·18사건을 쟁점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2·12◁ ◇우발적 또는 계획적인가 여부=경복궁 30경비단에 집결한 장성들은 지휘부를 형성해 집단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요구할 것을 결정했다.쿠데타를 반대할 우려가 있는 주요 지휘관들을 연희동 요정으로 유인,그들의 병력 동원을 저지시켰다.12월13일 새벽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하기 전에 이미 이희성 중앙정보부장서리에게 육군 참모총장직을 제의하고 합동수사본부측 장성들을 군 요직에 중용하는 인사안을 제시한 것은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목적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강제연행=전두환 전대통령측은 거사 당일 하오 7시10분쯤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등 보안사 수사관 7명과 수경사 33헌병대 병력 60여명을 한남동 총장공관으로 보내정총장에게 동행을 요청,거부당하자 정총장을 M16소총으로 위협하며 강제 연행했다.군사법경찰관이 수사권을 발동할 때는 형사절차법상 필요한 절차를 밟는 것은 물론 군통수권과 정상적인 군 지휘계통을 문란시키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동시에 취해야 한다.따라서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의 사전 재가 또는 승인 없이 비상계엄하에서 사실상 최고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계엄사령관인 정총장을 강제 연행한 것은 직속 상관에 대한 하극상임은 물론 군 통수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 ▷5·18◁ ◇보안사 집권시나리오의 실체=80년 3월부터 세간에 나돌기 시작한 보안사의 집권 시나리오 실체여부는 신군부측의 집권의도와 내란혐의 규명을 위한 중요한 단서이나 신군부측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직=80년 3월 전씨의 중정부장 겸직은 최규하 전대통령의 인사발령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국내외 정보와 중앙정보부의 예산을 장악,신군부의 영향력을 정계에까지 미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배제한 채 전씨가 직무상 관련이 없는 보안사 참모들에게 지시해 입안하게 한 다음,이를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군 지휘관들이 결의하는 형식으로 추진했다. ◇정치인 및 재야 인사들의 활동 금지조치=기성 정치인들과 재야인사들을 체포·연행·구금한 조치는 향후 정국운용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사전에 제거,경쟁자없이 권좌에 오르게 된 기반이 됐다. ◇임시국회 무산=국회의 계엄해제 결의를 차단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의 기획 및 설치=대통령이나 국방장관,계엄사령관이 배제된 채 보안사 참모들이 기획해 전씨 주도로 설치됐다.전씨는 국보위 상임위원장에 취임,사실상 내각을 조정,통제하는 권한을 행사했다.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최 전대통령이 자의로 사퇴한 것으로 발표됐으나 최씨의 전술거부와 신군부측의 강압 부인 등으로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계엄상황을 이용,정국을 주도하고자 한 신군부측이 학생·시민들의 계엄해제 등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단호한 진압만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판단,강경진압과 증원으로 사태를 수습함으로써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사전 계획된 증거는 없으나 상당한 정치적 판단에 따라 단행됐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 자민련의 「특별법」 속앓이/양승현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자민련에는 최근 민자당에서 입당한 박준병 부총재 같은 5·18 관련인사들이 적잖이 있다.박부총재는 5·18 당시 20사단장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주모급 인사로 지목된다.5·18 특별법이 제정되고,그 뒤 관련자 처벌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면 직접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될 판이다. 자칫하면 그 바람은 당의 상층부까지 뒤흔들지도 모른다.국회 바로 옆 사무실의 민주당에서는 벌써부터 때를 만난듯 박철언·정석모 부총재와 한영수 총무를 신군부에 협력했던 공직자로 비난하고 나섰다. 그런데도 한영수 총무는 『좀 더 지켜보자』고만 말한다.김종필 총재도 5·18관련 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하지 않고 애써 비켜가는 모습이다. 당의 입인 구창림 대변인은 『법안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특정인을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아직은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자세이지만,어쩐지 궁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자민련이 이날 『5·18과 대선자금 사건은 동전의 앞뒷면』이라며 유난스레 대선자금 공개 공세를 강화하고 나선 것도 묘한 느낌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속담에 비유하면 요즈음 자민련의 분위기는 마치 「시집갈 날짜를 받아놓은 처녀가 등창이 난 형국」인 것 같다.5·18 관련자 처벌을 놓고 강하게 나가자니 신경쓰이는 당내인사가 한 둘이 아니다.그렇다고 적당히 얼버무리며 가자니 『그러면 그렇지.5·16주체가…』라는 여론의 빈축을 사기 십상이다. 어찌보면 이게 오늘 자민련이 처해있는 위상이며,극복해야 할 한계라는 생각이다.일반 국민들 사이에 오늘의 5·18 정국의 「근원적 책임」이 자민련에도 어느 정도 있다는 시각이 엄존하기때문이다.더러는 「구시대의 표적」으로 자민련을 지목하는데 서슴지 않는 실정이다. 실제 자민련에는 5·18 정국이 위기일 수 있다.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로 통한다.소수의 보호와 구제를 위해 대의를 버리고 정치적 절충을 모색하기 보다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국민여론을 옳바로 읽어야 할것이다.그럴 경우 「기회」가 되는 것이다.자민련이 내건 「건강한 보수」는 구정치인의 결집은 아니기 때문이다.
  • 「5·18 주동자」 반란죄 우선 적용

    ◎대검 “내란죄 시효만료” 헌재 내부결정 따라/박준병씨 등 10여명 출금검토 대검 공안부(최병국 검사장)는 28일 12·12사건과 5·18사건이 제5공화국 정권창출을 위한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판단,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 등 핵심 관련자들에 대해 군형법상 반란혐의를 우선 적용해 사법처리키로 했다. 이같은 방침은 헌법재판소가 검찰의 5·18 헌법소원사건 불기소 처분에 대해 『내란죄의 경우 공소시효의 기산점을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시점인 지난80년 8월 16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내란죄의 공소시효 15년이 이미 만료됐다』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진데 따른 것이다. 검찰의 고위관계자는 이날 『헌재의 선고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심리과정에서 5·18사건의 내란혐의부분 공소시효는 최전대통령의 하야시점으로 봐야 한다는데 재판관들의 의견이 모아진 것같다』며 『이 경우 내란혐의는 공소시효만료로 현행법상 사법처리가 불가능하므로 재임중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반란혐의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따라 재수사의 초점을 ▲전·노 두전직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측의 집권시나리오에 따라 군사반란을 기도했는지 여부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첫 발포를 하게된 구체적인 경위와 발포명령자 ▲최전대통령의 강제하야 경위 등에 맞출 방침이다. 검찰은 재수사도중 5·18특별법이 제정되면 입법취지를 수사에 반영키로 했다. 검찰은 특히 재수사를 통해 최전대통령의 하야경위 등 당시 미진했던 부분을 밝히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아래 이 사건의 중요참고인인 최전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검찰은 최전대통령이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면 강제구인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키로 했다. 한편 최공안부장은 이날 『재수사에 착수한뒤 필요한 범위내에서 박준병·정호용씨 등 5·18 및 12·12사건 관련자 10여명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정치권,「5개 쟁점」 법리논쟁 치열

    ◎5·18특별법 국회통과까지 진통클듯/특검제­야 “꼭 필요” 여 “부작용 우려” 반대/피해 배상­처벌범위도 시각차 드러내 민자당이 27일 「5·18특별법」 기초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법안 마련작업을 본격화함에 따라 관련자 기소를 위한 정치권과 법조계의 움직임이 빨라질 전망이다. 그러나 각론을 둘러싸고 민자당의 구상과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는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의 관련법안이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다 법조계·학계의 의견,전두환·노태우씨측의 위헌주장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국회통과까지는 법리논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특별법의 위헌성 여부=특별법 자체가 특정사안에 대한 처벌을 전제로 하는 만큼 헌법상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전·노씨측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학계 일부에서는 특별법이 위헌은 아니지만 헌법재판소가 검찰의 불기소처분등을 파기하면 그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자당은 공소시효등에 관한 해석을 입법으로 확인하는데 그치므로 소급입법이 아니라는 논리다.야당도 같은 견해다. ▲공소시효규정=12·12 하극상에 따른 군사반란죄와 5·17비상계엄확대에 따른 내란죄,5·18광주학살에 따른 내란목적 살인죄등을 언제까지 기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특별법의 핵심이다.이는 다시 공소시효의 기산점에 대한 해석과 전·노씨 재임기간의 시효중단여부로 나뉜다. 시효의 기산점은 해당범죄행위가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검찰은 지금까지 최규하 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8월16일설을 취해 왔고 이에 따라 공소시효 15년인 신군부의 내란죄등은 95년8월16일로 기소기간이 끝났다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민자당은 계엄군이 철수한 81년1월24일,전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81년3월3일,국보위와 입법회의가 해체된 81년4월10일등을 실질적인 내란행위 종료시점으로 보아 적어도 96년1∼4월까지는 기소가 가능하다는 시각에서 특별법 기초작업을 벌이고 있다.재야법조계와 야당측의 주장을 전향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시효중단론=전·노씨가 집권하고 있는 동안은 그 기초가 된 내란행위에 대한 기소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특별법 전문 또는 본문조항에 삽입,시효만료를 7년 또는 12년 연장할 수 있다는 국민회의 주장이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2002년까지 기소가 가능하다.민주당에서는 캐나다처럼 「헌정파괴사범등에 대한 시효배제원칙」등을 규정,5·18 주역들에 대한 기소가 언제까지나 가능하게 하자는 주장도 있다. ▲피해자 배상및 명예회복조치=5·18의 와중에서 부상·연행·처벌을 받은 사람이나 재산상 불이익을 당한 사람의 원상회복에 대해 민자당은 이미 부상자및 유족보상,사면·복권등 조치를 취했고 기업·언론통폐합등에 대해서는 개별소송에 의해 해결할 문제라는 태도다.삼청교육대문제도 국회에 진상규명및 관련자처벌,피해자배상등을 요구하는 당사자들의 입법청원이 제출돼 있으나 민자당은 이같은 입법을 수용하면 당시의 모든 입법·행정조치들을 무효로 하는 혼란이 야기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그래서 신군부 처벌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필요한 행정조치들을 강구하는 선에서 해결책을 모색중이다.그러나 5·18단체및 국민회의는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심의위원회 설치등 구체적 절차를 5·18특별법 또는 별도 입법으로 규정,완전한 원상회복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사주체=국민회의와 민주당은 불기소결정을 내렸던 검찰에 다시 수사및 기소를 맡겨서는 철저한 재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별검사제를 요구하고 있다.자민련도 뒤늦게 이에 가세했다.그러나 민자당은 기소독점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법체계와 특검제도입에 따른 검찰의 신뢰추락등 부작용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처벌범위및 형량=민자당은 범죄및 형의 종류,즉 처벌대상및 처벌내용을 특별법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당시의 형법에 맡기고 특별법에서는 기소절차를 규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상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국민회의등은 5·18학살 관련자 전원을 처벌대상으로 하고 이같은 원칙을 특별법에 선언적으로라도 명시함으로써 처벌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맞서 있다.
  • 5·18특별법 중지 모으자(사설)

    김영삼 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한 것은 신군부의 쿠데타로 얼룩진 잘못된 구시대를 청산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데 목적이 있다.따라서 「12·12쿠데타」에서 「5·17계엄령확대」,「5·18광주사태」로 이어지는 일련의 국권찬탈 음모와 민주화운동 학살자들을 규명하고 주동자들을 처벌함으로써 군부쿠데타로 야기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국민과 더불어 기대한다. 그러나 입법과정에서 몇가지 문제점을 대국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우선 「5·18」이 15년의 공소시효가 끝난 것인지의 여부가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인 만큼 소급입법에 대한 법적 시비의 소지를 해소해야 한다.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결단이 위헌시비를 일으켜 본질이 흐려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헌재는 특별법의 처벌대상자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공소시효가 정지되는지를 곧 결정할 예정이어서 우선 그 결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 특별검사제도 도입문제가 특별법 제정과정에서 큰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이지만 야권이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해서는 본말이 전도될 우려가 있다.특히 재야인사의 특별검사 기용은 국가 검찰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훼손이며 정부·여당이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월권적 요구다. 5·18특별법 제정의 취지는 신군부의 쿠데타와 그 과정에서의 광주민주화운동을 사법적으로 올바르게 정리함으로써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데 있다.특별법 제정으로 사실을 규명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나 정쟁으로 뒤틀려서는 안된다.오히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며 법이 지배하는 민주사회로 발돋움해나도록 협력해야 한다. 이번 특별법 제정과정에서는 각계각층의 의견이 폭넓게 받아들여짐으로써 국가발전의 참다운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과거의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법률적 문제를 최소화하는 게 이번 특별법 제정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현안이지만 이를 위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차질없이 추진할 것을 우리는 당부한다.
  • 문민정부의 「5·18」 자리매김

    ◎김 대통령 취임직후 “자료 정리” 지시/「주도 장성」 예편·묘역 성역화·피해 보상 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방침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김대통령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부터 5·18관련 자료들을 충분히 챙겨 놓도록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에 지시해왔다고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취임직후에는 「12·12」 혹은 「5·17」을 주도했던 군장성들을 과감하게 예편시켰다.이어 특별담화를 통해 「5·18광주항쟁」을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김대통령이 취임 첫 해인 지난 93년5월13일 발표한 특별담화에는 「5·18」을 보는 김대통령의 시각이 담겨져 있다. 김대통령은 『80년 5월 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으며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민주정부』라고 규정했다.5·6공이 광주항쟁을 「탄압」함으로써 출범한 군사정부인 것에 비해 새정부는 「5·18」쪽에 서서 탄생했다는 「차별화」를 일찍부터 시도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망월동 묘역의 성역화 ▲기념공원 조성및 기념탑 건립 ▲상무대 시민공원조성및 기념일 제정 ▲사망자·행방불명자·부상자에 대한 추가신고 접수 ▲연행구금·유죄판결을 받아 사면복권된 자에 대한 전과기록 말소 등을 약속했다. 망월동 묘역의 성역화를 위해 모두 1백14억원을 들여 지난해 11월 공사가 착수됐다. 사업이 끝나면 5·18관련 사망자 1백31명과 시국관련 사망자 31명 등 총1백61기가 이장된다.묘역은 진입·참배·묘역·체험공간 등으로 구성돼 「민주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5·18항쟁의 주무대였던 광주시 동구 광산동 전남도청 자리 4천11평에는 오는 98년까지 2백50억원이 투입돼 기념공원과 기념탑이 들어선다. 또 옛 상무대 자리 5만평에는 5·18시민공원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 1월 기반조성공사가 시작됐다.상무대 시민공원에는 당시 시민이 끌려가 고초를 당한 군영창과 군사법원이 옮겨져 원형 그대로 보존될 예정이다. 피해자 추가보상은 총 2천7백50명이 신청해 재심을 통해 상당수가 보상의 혜택을 받았다.명예회복 차원의 전과기록 말소도 관련 구속자 6백79명에 대한 조치가 이미 완료됐다. 광주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관한 조례안」은 계류중이다.광주만을 대상으로 기념일을 제정할때 5·18이 자칫 「지역화」될 것을 우려,심의를 늦추고 있다. 한편 검찰은 작년 12월부터 지난 7월까지 「5·17쿠데타」와 「5·18진압」관련 인사 58명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검찰은 그때 5·17주동자의 기소는 유예했지만 5·18 당시 시위전개 상황과 게엄군의 진압과정은 상당부분 밝혀내 공표했다.
  • “쿠데타 세력 처벌 5·18특별법 제정”/외신 긴급 보도

    【서울 외신 종합】 로이터·AFP 등 세계 주요외신들은 24일 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 결단을 긴급뉴스로 일제히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민자당 강삼재 사무총장의 발언을 인용,김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등 5·18 쿠데타 세력을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당에 지시했다고 전했다. 또 AFP통신은 이번 특별법 제정으로 지난 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관계된 모든 주동자들이 처벌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동남아도 큰 관심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언론들은 24일 김영삼대통령이 5·18 특별법 제정을 민자당에 지시했다는 사실을 서울발 주요기사로 일제히 보도하는 등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일본 NHK방송은 이날 하오 7시 이후 뉴스에서 5·18특별법 제정 지시를 주요기사로 다루면서 전두환전대통령 등 군인들이 특별법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태국과 싱가포르·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의 주요방송들은 이날 5·18 특별법을 제정키로 한 한국정부의 결정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 “불기소 처분과 상치 안된다”/5·18특별법­강 총장 문답

    ◎국가 미래 설계에 걸림돌 없애기/소급입법 문제점 실무팀서 검토 민자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은 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5·18특별법을 제정키로 한 배경등을 설명했다. ­이번 조치의 배경은. ▲김대통령은 12·12사태와 5·17쿠데타 당시 야당 총재로 정보가 없어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지 못했다.김대통령은 지난 83년 광주 민주화운동 3주년때 23일 동안 단식투쟁했고 취임후에도 12·12,5·17,5·18문제의 진실규명 작업을 계속했다.정부내 관련자료가 모두 파기돼 하나도 없는 상태여서 관련 인물을 통해 진실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따라서 진실규명 작업이 어려웠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김대통령은 또 검찰수사이후 계속 관심을 갖고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이제 관련 당사자들을 의법처리함으로써 이 문제를 마무리짓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이다. ­5·18특별법 제정에 따른 처벌 대상자는. ▲김대통령이 직접 표현은 안했다.그러나 「쿠데타를 일으켜 국민에게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 당사자들」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전두환전대통령을 비롯해 노태우 전대통령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박준병 의원도 포함될 것이다. 당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당내 5·18관련자들의 처리는. ▲5·6공에서 역할을 맡은 분 모두를 대상으로 할 수는 없지만 법률적으로 죄가 있으면 처리할 것이다. ­관련자의 기소와 처벌을 전제로 한 것인가. ▲관련자는 의법처리될 것이다. ­소급입법의 문제점은. ▲법률적인 문제와 각론은 당내 율사출신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실무팀에서 검토할 것이다. ­검찰의 불기소처분과 상치되는 것 아닌가. ▲특별법이니 상관없을 것이다. ­야당이 이미 제안한 법률안은 어떻게 되나. ▲특별법 처리과정에서 이미 법안을 내놓은 야당측과 협의할 수 있지만 독자적인 안을 만들겠다. ­헌재의 위헌여부 결정뒤에 방침을 결정하기로 했지 않느냐. ▲광주특별법 문제는 반드시 헤쳐나가야 할 사안으로 개혁을 추진하는데 5·18문제가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5·6공과의 단절인가. ▲확대해석을 말아 달라. ­왜대표대신 청와대에 들어갔나. ▲오해가 없길 바란다.오늘 오찬 약속은 그저께 미리 돼 있었다.고위당직자준비를 해놓고 청와대에 들어오라는 말씀이 있었다. ­김대중총재를 의식한 조치라는 지적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야당을 의식한 조치는 결코 아니다. ­이번 결정의 의미는. ▲김대통령은 노씨사건 이후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다,강력한 의지로 개혁을 추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 세우고자 하셨다.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자세로 5·18문제의 매듭을 풀겠다는 것이다.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내일을 설계하는데 걸림돌을 적극적으로 정리하자는 취지이다.더이상 5·18문제로 국력을 낭비해서는 안된다.이런 뜻에서 5·18의 해법과 기본원칙을 정한 것이다.
  • 「5·18」 「12·12」 수사 경과와 전망

    ◎「공소권 없음」에 불씨 내연/전·노씨 등 58명 이미 피소/헌재 위헌 결정땐 재수사 정부 여당이 25일 5·18특별법을 제정키로 함에 따라 5·18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불가피해졌다.또 5·18의 사전 정지 작업이랄 수 있는 12·12에 대한 「공소권 없음」 결정도 뒤집어질 가능성이 크다. 5·18에 대한 수사는 94년 5월 정동년 「광주민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등 6백16명이 지난해 5월13일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35명을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고발하면서 시작됐다.5·18에 대한 고소·고발은 그 이후에도 잇달아 지난 4월3일까지 모두 70건에 58명이 고소·고발됐다. 검찰은 정동년씨의 고발이 있자 곧바로 서울지검 장륜석공안1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수사팀을 구성,관련 자료를 검토한 끝에 지난해 7월13일 피고소·고발인 가운데 현역군인 11명은 국방부에서 조사하도록 의뢰했다. 고소·고발인인 정씨 등 4명이 검찰의 첫 조사를 받은 것은 6개월여만인 11월23일.검찰은 이후 12월13일 소준렬 전 전교사사령관 등 피고소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지난 7월4일까지 피고소·고발인,참고인 등 모두 2백69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이 가운데 전·노전대통령과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서면 조사로 대신했다. 검찰은 이어 본격적인 법률검토에 착수,지난 7월18일 『5·18 등 일련의 행위는 헌법 질서를 바꾸는 고도의 정치행위로서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공소권이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피고소·고발인들이 서울고검과 국방부에 즉각 항고한데 이어 대검에 재항고했으나 불기소 결정이 뒤집어지지 않자 헌법소원까지 제기,현재는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에 계류돼 있다. 또한 대한변협 등 재야 법조계,학계 등 대학교수,시민 등도 검찰의 불기소 결정이 내려지자 곧바로 5·18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연대서명 운동을 펼치는 등 계속해서 불씨가 내연해왔다. 12·12 문제는 지난 1월20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1차 결론이 나 있는 상태다.헌재는 당시 내란죄는 94년 12월11일로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군형법상 반란죄는 대통령 재임기간동안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결정을 내렸다.헌법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원용한 것이었다.즉 내란죄의 성립 여부에 상관 없이 내란죄 자체가 대통령 재임기간동안에도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하지만 반란죄는 전두환전대통령에게 재임기간인 7년5개월24일,노태우전대통령에게는 5년동안 추가로 적용된다는 것이 헌재의 최종결론이었다.한마디로 12·12와 관련,전·노 두 전직대통령을 반란죄로는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헌재는 그러나 검찰이 12·12 관련자들에 대해 기소유예 조치를 내린데 대해 『헌법재판소가 관여할 정도로 자의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 등 12·12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12·12 건은 정전총장 등 22명이 지난 93년 7월 전·노 전대통령 등 38명을 군형법상 반란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재차 법적 절차를 밟게 됐으나 검찰은 지난해 11월2일 피고소인 전원을 기소유예조치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한뒤 김영삼대통령은 12·12에 대해「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5·18에 대해서는 「문민정부는 광주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면서 5·18의 반역사적,반민주적 성격을 적극 부각시켰다.다만 이에 대한 최종결론은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제 시대의 흐름은 12·12와 5·18에 대한 분명한 진상규명과 관계자들에 대한 법적 제재쪽으로 기울고 있다.「역사적 판단」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5·18 관련일지 ▲80년 5·18 신군부 등장 및 비상계엄 확대에 분노한 광주시민들,민주화 항쟁 시작. ▲5·27 신군부 무력으로 광주시민 진압,국무회의 국보위 설치 의결. ▲8·16 최규하 대통령 하야 발표. ▲8·18 전두환 보안사령관 집권. ▲87년 12·29 민정당 광주사태치유 특별법제정 방침발표,민화위 출범. ▲88년 4·1 정부 광주사태 유감표명. ▲91년 5·11 광주사태 보상지급 완료. ▲93년 5·13 김영삼 대통령 광주문제관련 담화. ▲94년 5·13 정동년씨 등 전·노전대통령및 군지휘관 35명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로 고소·고발. ▲11·23 서울지검 수사착수. ▲95년 4·29 전·노전대통령에 질의서,최전대통령 방문조사 결정. ▲7·18 검찰 수사결과 발표(불기소처분). ▲7·24 5·18고소인 3백22명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제출. ▲10·26 서울지검 5·18관련자 국회위증고발 「공소권없음」 결정.
  • 대통령의 「5·18특별법」 결단(사설)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에 「5·18특별법」을 제정해 신군부에 의해 유혈진압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키로 한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을 국민대화합의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환영한다.광주사태의 진상규명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지역성이 해소되지 않음은 물론 국민대화합을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여당은 용기 있는 자세로 아픈 역사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데 특별법 제정의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비롯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피고소·고발인에 대해 검찰은 지난 7월 80년 비상계엄확대에서 전두환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과정은 일종의 통치행위로 유무죄를 가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고 검찰의 이같은 결정이 위헌이라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이다. 「5·18」은 강압으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국헌문란행위였다.김대통령이 특별법을 제정키로 해 진실을 규명키로 결단을 내린 것은 「5·18」의 진상규명없이는 우리 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기하기 어려우며 역사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의지의 표시라고 하겠다. 특별법 제정은 사법적으로 공소권 없다는 결단에 대해 「5·18」을 정치적으로 규명하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정부가 검찰이 일단 불기소처분한 사건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키로 결단을 내리게 되기까지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과거 국헌문란과정의 진실규명,문민정부의 5·6공과의 단절,망국적인 지역적 갈등의 해소라고 할 수 있다. 「5·18」특별법 제정은 지난날 치욕적인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국민역량을 결집하고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다.이제 정치권은 국민의 불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부정부패의 정치적 폐습을 척결하고 우리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해온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중지를 모아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5·18」규명은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목적일진대 정파의 이해가 개입돼서는 안된다.
  • 공소시효 새규정 마련해야/5·18특별법­입법 절차는

    ◎헌법이 금지한 소급입법 성격은 피할듯/특별검사제 도입 등 싸고 여야 논란 예상 「5·18특별법」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또 법이 마련된 뒤에는 어떤 절차에 따라 5·18 사건을 처리할까. 특별법안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공소시효 문제다. 검찰은 지난 7월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리면서 직접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지를 폈다.또 『5·18 사건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80년 전국에 비상계엄이 확대되면서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하야했던 8월16일이며,따라서 15년 뒤인 95년 8월14일로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5·18을 둘러싼 더이상의 논란에 쐐기를 박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이제 「5·18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한만큼 공소시효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법조계 일각과 야당에서는 그동안 「권력찬탈범죄 행위자 등에 대해서는 수사와 소추가 불가능했던 집권기간 동안 공소시효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따라서 특별법에는 헌법의 기본정신에 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같은 주장을 수용,5·18 사건을 재수사할 수 있도록 공소시효에 관한 새로운 규정을 두게 될 것으로 보인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에서는 『형벌 불소급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내란죄 등의 범죄에는 공소시효 제도를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해 왔다. 또 하나 핵심적인 사항은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는 문제다.물론 특별검사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검찰에서 재수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국민회의 등에서는 검찰 등 현재의 소추기관으로는 5·18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만큼,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확실시돼 국회 심의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5·18사건과 관련,사망 또는 부상 등의 피해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지휘자 등에게 포괄적으로 책임을 묻을 수 있는 「결과 책임론」과 같은 조항을 둘 것인지도 관심사다.그러나 그같은 조항은 위헌의 소지가 적지않다는 분석들이다.다만 특별법은 절차적으로는 여야가 합의,국회에서 통과시킨 대통령의 공포 등의 과정을 거치면 효력을 갖게된다.또 조항 자체도 10여개면 충분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따라서 여야가 합의하기만 하면 법안이 발효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특별검사제가 도입되거나,아니면 검찰이 다시 수사를 맡든 5·18 사건을 전면적으로 재수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검찰이 기왕에 거의 완벽하게 수사를 끝낸만큼 기존 자료를 토대로 어떻게 판단을 내릴 지가 핵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5·18 사건 불기소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제6차 평의를 열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오는 27일 7차 평의를 갖기로 했다.법조계에서는 이와 관련,위헌의 소지가 있는 소급입법 형식의 특별법안을 제정하기 보다 헌법재판소가 보다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검찰의 공소 시효 산정과 불기소 처분이 헌법에 배치된다는 결정을 내려 검찰이 재수사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있다. ◎야당 제출 5·18관련 특별법안 내용/광주에 「민주화 희생자 심의위」 설치­국민회의 안/「12·12」 「5·18」 처리위한 특별검사 도입­민주당 안 ▷국민회의 법안◁ ◇헌법파괴범죄 등의 공소시효에 관한 법률=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해 그 배경과 경과,희생자 등에 대한 탄압과 군부 일부의 권력찬탈 과정 등에 관한 진상규명과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소추는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특별검사가 이를 수행토록 함.광주민주화운동의 탄압과 권력찬탈에 관련한 범죄에 대해 국가의 소추권 행사에 「법률상 장애사유」와 「사실상 장애사유」가 존재하는 기간에는 그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는 것을 규정함.◇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등에 관한 법률=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해 그 배경과 경과,희생자등에 대한 탄압과 군부 일부의 권력찬탈 과정 등에 관한 진상규명과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소추는 특별검사가 이행 한다.◇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국회는 고발사건 또는 조사요청을 한 사건 중에서 범죄수사나조사,공소제기 등에 관해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된 독립적 지위에 있는 검사가 특별히 요청되는 사건에 대해 대통령에게 특별검사의 임명을 요구할 수 있음.특별검사 임명요청은 국회본회의의 의결을 거쳐 서면으로 해야 함.특별검사는 다른 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해 그 직무를 수행함.특별검사는 그 직무수행상 필요한 경우에는 약간명의 특별수사관을 임명해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행하게 할 수 있음. ▷민주당 법안◁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사건의 처리를 위해 국회는 대법원장에게 7명 이내의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할 수 있다.국회의 요청이 있을 경우,대법원장은 5일이내에 특별검사 후보의 추천을 대한변협에 의뢰하고 대한변협은 10일 이내에 2배수의 후보를 추천한다.▲대법원장은 다시 5일 이내로 특별검사를 임명,정부와 국회에 통보한다.특별검사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다른 기관의 간섭을 받지않고 필요한 경우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등 관계공무원에게 수사협조를 요청할 수 있으며 관계기관의 장은 이 요청을 거절할 수 없다.
  • 김동진 합참의장 등 장성만 8명/「5·18」 현역군인은 누구

    ◎이종규 소장·김길수 대령도 재직 민자당이 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5·18특별법」을 올 정기국회에서 제정키로 결정함에 따라 5·18 관련 현역군인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5·18때 출동했던 장교가운데 현역으로 남아있는 군인은 장성 8명,대령 1명 등 9명.이들 가운데 최고위직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제20사단 61연대장(대령)으로 작전에 참가한 김동진합참의장(대장)이다. 또 당시 제7공수여단 33대대장(육군 중령)이었던 권승만 준장은 특공여단장을 지낸 뒤 국방대학원 연수를 하고 있으며,3공수여단 11대대장(〃)이었던 임수원 준장은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장으로,제20사단 1대대장(〃) 정영진 소장은 육본 정보작전참모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제20사단 60연대 1대대장(중령)이었던 길영철 소장은 2군단 부군단장,역시 20사단 62연대 3대대장(〃)이었던 이종규 소장은 보병학교장,20사단 62연대 2대대장(〃) 유효일 소장은 국방부 동원국장,20사단 61연대 2대대장(〃) 김형곤 준장은 102여단장으로 재직중이다.이밖에 제3공수여단16대대장(중령) 김길수 대령은 제72사단 부사단장으로 있다. 당시 김동진 연대장의 61연대는 최근 검찰수사에서 80년 5월21일과 22일 광주∼목포간 도로를 차단하기 위해 효천역 근처에 배치돼있다가 민간인 차량에 총격을 가해 민간인 2명을 숨지게 하고 5명을 부상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김의장이 군 개혁을 단행한 문민정부에서도 군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회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대안」으로 여겨져 발탁된 뒤 견제대상없이 출세가도를 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당시 진압군 지휘관들의 대부분은 하나회 출신이라는 점 등 때문에 한직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이다.
  •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남긴 것

    ◎165만명 관람… 「세계속 예향」 도약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며 한국 남도의 대표적인 도시 광주의 이미지를 새롭게 한 광주비엔날레가 2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세계적인 미술행사로,또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과연 제 모습을 갖추고 성과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당초의 우려와 달리 광주비엔날레는 두달동안 무려 1백65만명이 넘는 엄청난 관객동원으로 예상을 뒤엎는 외형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0일 하오4시부터 광주에서는 비엔날레의 성공을 자축하는 화려한 축하공연과 함께 폐막식이 거행됐다.이날 하오5시30분부터 비엔날레의 본거지였던 중외공원내 야외공연장에서 베풀어진 폐막식에는 비엔날레 관계자들과 광주시민,전국의 문화예술계 안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번 비엔날레의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며 아쉬움속에 폐막식을 가졌다. 명실공히 국제미술제로서 그 면모를 과시한 국내 초유의 광주비엔날레.미술제로서 이번 비엔날레의 순수예술적인 측면과 광주라는 국내 한 지방도시에서 치러진 국제행사로서의 그 의의를 결산해 본다. ◎미술적 평가/대중화 성공 불구 품격시비 “흠”/역량있는 작가 유치 과제 남겨 미술적인 측면에서 『관람객 숫자만으로 본질을 평가할 수 없다』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주최측은 「성공적 미술축제」라는 자체평가를 주저하지 않고 내후년 제2회 행사를 위한 청사진 그리기에 한껏 부풀어 있다. 이번 행사는 국내 관객동원 숫자에 비해 외국인 관람객이 기껏 2만4천여명에 그쳤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그러나 주최측은 낙후된 한국의 관광여건을 본질적 이유로 들며 오히려 프랑스 「르 몽드」지나 일본 「NHK」방송의 대대적 보도등을 내세워 해외매스컴의 관심 또한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아시아 최초로 치러지는 국내 초유의 국제미술행사이면서도 급하게 준비한 1백82억원의 예산을 들여 1년도 못되는 촉박한 일정에 막을 올렸다.부진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상흔」으로 얼룩진 광주의 아픈 이미지를 밝고 활기찬 현대예술의 도시로 탈바꿈시키는데 성공했다. 전시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장르중에서도일반인과의 교감이 거의 없는 미술을 새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는 점은 큰 성과가 된다. 그러나 미술적인 측면에서 이번 비엔날레 기본품격은 크게 부족한 편이었다.주최측 한 고위관계자는 『일부 지식인들의 비판』이라고 하지만 말많은 국내 미술계로부터는 『국제행사 좋아하는 국내 몇몇 인물들의 잔치에다 본 전시의 출품작들도 수준미달이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비엔날레조직위 내에서도 각 지역별 커미셔너들의 실력과 자세에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본 전시인 「국제현대미술전」의 커미셔너들이 세계 각 지역의 실력있는 작가들을 유치할만한 역량의 인물들인가에서 시작된 회의는 결국 「30세 전후의 제3세계 작가들이 벌여놓은 희귀한 설치비엔날레」가 되고 말았다는 비판을 낳았다.「경계를 넘어서」 오늘의 앞서가는 현대미술을 보인 것까지는 좋았지만 80%가 설치미술이며 엉성한 작품진열에 해설도 제대로 돼있지 않은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본 전시외에 「광주 오월정신전」이나 「인포아트전」등 의미있는 특별전이 이 행사를 빛낸 점도 있지만 비엔날레가 향토축제 벌이듯 지나치게 많은 부대행사를 기획한 점도 부정적인 측면에 속한다.한 관계자는 『그렇게 해서라도 손님을 끌어야 했다』지만 이 또한 순수미술 행사로서 비엔날레를 평가할때 소란스럽고 지저분한 환경속에 미술품을 호젓하게 감상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낳은 셈이다. 어쨌든 관객은 운집했다.그리고 적자도 보지 않았다.그만한 큰 행사를 잘 치러낸 주최측의 노고도 대단하다. 하지만 전시에 대한 평가는 『뭔가 잘 모르겠다』는 일반관객들이나 『실망했다』는 미술전문 관계자들에서 볼때 결국 부정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한번의 행사로 그 성격을 단언할 수 없듯이 앞으로의 광주비엔날레가 조직적이고 탄탄한 운영기반을 갖춰 명실공히 「동양 최고의 국제미술경연」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행사평가/지자체 첫 국제행사 흑자운영/「한의 도시」 이미지 쇄신 성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만들어낸 「축제 광주」의 모습을 과시한 이번 비엔날레기간 내내 이곳에는 란즈베르기스 전 리투아니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국내외 인사들이 찾았다. 남종화의 산실인 이곳의 예술적 토양을 바탕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예술행사로 승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만족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지방도시에서 치러낸 첫 국제행사라는 의미도 크다. 본 전시등 미술전에 세계 58개국에서 5백여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30개국 1만2천여명의 예술가가 참가해 음악·무용·패션·민속공연등 다채로운 행사를 폈으며 하루평균 2만6천여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지자제 실시와 함께 새로 출범한 주최측인 광주광역시는 1백82억원의 전체 예산중 행사개최비 77억원에 비해 입장료수입과 수익사업등에서 94억7백만원을 올려 행사운영 측면에서도 흑자를 내며 여타 도시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점도 곳곳에서 노출돼 대부분 관객이 비좁은 공간속에서 떼밀리다시피 전시관을 돌며 작품을 감상해야 했다.여러 곳에서 작품훼손이 잇따랐고 일부작품은 위작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세월동안 외부에 「한」의 도시라는 어두운 이미지로 비춰진 광주에서 거둔 이번 행사의 성공은 시민들에게 자긍심과 큰 활력을 선사했다. 거리마다 나부끼는 애드벌룬과 행사장 주변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지 인파는 광주를 살아 꿈틀거리는 도시로 바꿨다. 각종 전시에서 선보인 설치미술품과 행위예술은 평면그림 위주로 미술을 인식해온 일반 시민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맛보게도 했다. 광주시는 이를 계기로 인본예술과 첨단산업이 어우러진 활기찬 도시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는 97년 2회 행사때는 국제규모의 영화제와 첨단과학산업단지를 기반으로 한 산업디자인도 함께 개최하기로 했다. 주최측인 광주광역시에는 이번 축제무드를 지역발전과 지방의 국제화 전략에 어떻게 접목시켜 나가느냐가 숙제로 남아 있다. ◎비엔날레 전문위원겸 전시부장 정준모씨/“전문 인력 적어 진행 큰 어려움 겪어 이번 경험살려 지금부터 「2차」 준비” 국내 제1호 독립 큐레이터로 미술계에 잘 알려진 정준모씨(39).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전문위원겸 대변인,전시부장을 맡아 자타가 공인하는 비엔날레 살림꾼으로 가장 진땀을 뺀 인물이다. ­이번 비엔날레의 실제적인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온 사람으로 감회도 남다를텐데. 『모든 일이라면 어폐가 있구요 전시파트 전반을 이끌면서 홍보와 전시환경,작품운송,보험,도록제작등 전시실무를 전담했습니다.미술관에서 일하면서 익숙해진 일들이지만 짧은 시간과 많은 양의 작품속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단 광주 시민들 특유의 애향심과 언론의 지대한 관심이 큰 힘이 됐습니다』 ­보람도 많았겠지만 어려움도 많았을텐데요. 『많은 경험을 단기간에 한 보람이 있구요 외국의 많은 친구를 사귄게 재산같습니다.단군이래 최대 문화행사에 경험부족과 미술행정,아트메니지먼트에 관련한 전문인력이 거의 전무하다는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직 뚝심과 열정으로 부딪친 전시본부 스태프들의 노력이 빛났습니다』 ­기간중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한번은 24시간동안에 서울을 3번이나 다녀와야 했습니다.개막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는데 작품설치에 필요한 전자장비를 구하기 위해 항공으로 1회,봉고버스로 2회를 오갔습니다. ­선험자로 볼때 차기비엔날레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폐막과 함께 2차 대회를 준비해야 됩니다.또 현대미술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섭외력,어학실력,통솔력을 갖춘 총 큐레이터와 팀웍이 맞는 실무진이 절대 필요하지요』
  • 암울의 시대/80년 배경 드라마 봇물

    ◎SBS 「옥이이모」 운동권 대학생 구속/MBC 「연애의 기초」 언론통폐합을 다뤄/「제4공화국」·「코리아 게이트」선 광주항쟁 등장 5·18 광주민주화운동,언론통폐합 등 80년 신군부및 전두환정권에서 비롯된 암울한 시대배경이 최근 방송 드라마 배경으로 앞다투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는 MBC「제4공화국」과 SBS의 「코리아게이트」.「유신정국」을 그린다는 것이 두 드라마의 애초 목표였으나 방송사간의 시청률경쟁과 때맞춰 불거져 나온 6공비자금 파문으로 드라마 내용이 변질됐다.현실정치와 연관있는 5·6공 세력의 권력찬탈 과정이 드라마의 주요내용을 이루어 「유신」이 실종하고 5·6공 정치세력의 탄생 과정및 억압정치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60년대 시골을 배경으로 한 아역탤런트들의 천연덕스런 연기,풋풋한 추억거리 등으로 관심을 끈 SBS인기드라마 「옥이이모」도 이달 초 17년이란 세월을 건너뛰면서 80년 상황으로 들어갔다.유언비어유포를 감시하는 형사,수배돼 도망중인 대학생,언론통폐합등의 무거운 소재가 이 드라마의무대인 경남의 한 시골마을에 짙게 드리운 것. 특히 지난주 53·54회 방영분은 상구삼촌(주현 분)의 대학생 아들 택모가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서울로 잡혀가는 상황을 다루어 눈길을 끌었다.주현은 『나는 내 아들한테 이승만·박정희때도 맞춰 살았으이까네 전두환때도 맞춰살라고 빌었다.그렇지만 그기 아인기라』며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연기를 보여주었다.또한 80년 11월 언론통폐합 당시 아나운서였던 황인용씨의 마지막 방송 내용을 담은 녹음 테이프를 극중에 삽입하기도 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고개숙인 남자」등 화제작들로 유명한 황인뢰 PD가 연출을 맡아 지난 6일부터 방송하고 있는 MBC 월화 미니시리즈 「연애의 기초」도 제2부(20·21일)부터 80년 말 상황이 배경으로 등장한다.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국 조연출로 일하는 창현(김창완 분)의 방송국에 헌병이 깔리고 해직 기자·PD 명단이 벽보에 붙는 살벌한 상황이 배경이다. 이처럼 80년 정치상황이 드라마의 주요소재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방송가에서는 그동안 「타의반 자의반」으로 묘사할 수 없었던 「소재의 금기」가 깨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그러나 한편에선 「모래시계」흥행이후 민감한 정치적인 사건,특히 80년 상황을 배경으로 쓸 때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얄팍한 상업주의가 최근 연출가나 작가들 사이에 은연중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 고함·욕설 난무…여­야 치열한 공방/비자금 정국…국회본회의 중계

    ◎DJ 6공서 거액 수수설 해명 요구­민자/“이젠 92년 대선자금 밝힐 차례” 공세/3야 16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은 「4분 자유발언」을 통해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92년 대선자금을 둘러싸고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특히 민자당과 국민회의는 각각 5명과 6명의 소속의원들을 단상에 내세워 상대측을 맹렬히 공격,욕설과 고함이 난무하는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선공은 민자당이 폈다.황명수 의원은 『야당지도자가 입만 열면 노태우씨를 광주학살의 원흉이라고 하는데 그에게 돈받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공격했다.황의원은 『지난 87년 대선때 김대중씨는 국민들의 후보단일화 여망을 저버리고 평민당을 창당,노씨가 정권을 잡게 함으로써 오늘날 전직대통령이 구속되는 비극적 사태를 잉태했다』고 비난했다.황의원은 이어 『김총재는 당시 평민당을 창당하면서 여권으로부터 3백억원을 받았으며 6공 때인 90년3월에는 중간평가를 유보하는 조건으로 노씨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다』면서 이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박주천 의원은 『국민회의가 검은 돈을 받았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민족의 사표인 김구 선생을 팔고 있다』고 비난했다.박의원은 『김총재가 받았다는 20억원은 중소기업인들도 쉽게 만질 수 없는 거금』이라면서 『노씨 사건을 정치권 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국민회의를 압박했다.박의원은 이어 『김총재는 고해성사를 했다면서 마치 모든 것을 사면받은 듯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어느 국민이 이를 믿겠느냐』고 힐난하고 『국민회의측이 정치공세로 일관하는 것은 비자금정국을 호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명환 의원은 국민회의 한화갑 의원을 겨냥,『민족의 사표인 김구선생을 욕되게 한 데 대해 즉각 사죄하라』고 촉구했다.이어 『노씨의 전재산을 몰수,이른바 「민주화운동재단」을 만들어 5·18희생자 위로사업과 복지사업에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자당이 김대중 총재에게 직격탄을 쏘아대자 국민회의측은 김영삼 대통령을 집중공격하고 나섰다.황명수의원의 뒤를 이어 등단한 김영진 의원은 『노씨의 부정축재는 3당야합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고 반박했다.이어 『김총재가 20억원을 받은 사실을 밝힌 것은 자신의 명예보다 역사와 국민이 소중했기 때문』이라면서 『이제 김대통령이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힐 차례』라고 주장했다. 장영달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김대통령은 노씨와 공범관계에 있으면서 야당동지 살해공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맹비난 했다. 이윤수 의원은 『한 푼도 안받았다는 김대통령의 말은 소와 개가 웃을 일』이라고 비꼬았다.이의원은 『이번 수사를 노씨 개인의 부정축재로 몰기 위해 재벌들을 줄줄이 소환,짜맞추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을 중단한 것이나 서석재전장관의 발언파문을 막은 것은 모두 청와대의 지시』라며 『김대통령은 지금이라도 3당야합 자금과 대선자금,정권인수자금을 공개하고 국민앞에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정상용 의원은 여권의 김대중 총재 퇴진요구에 대해 『김대통령이 비자금 정국을 악용,정치술수를 부리려 하고 있다』면서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 국민적 저항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자당과 국민회의의 원색적인 비난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들 양측을 싸잡아 비난하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격도 거세게 터져나왔다.민주당의 박석무 의원은 『민자당과 국민회의가 검은 돈을 받은 것은 제쳐두고 많이 받고 덜 받고의 문제로 이전투구를 계속하고 있어 가치관의 혼란과 국가기강의 붕괴위기가 초래되고 있다』고 질타했다.박의원은 이어 『이제라도 검찰은 김옥숙씨와 이원조·박철언씨등 노씨의 친인척들에 대해 수사해 진실을 밝혀야 하며 김대통령은 즉각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정기호 의원도 『민자당과 국민회의가 전부 남의 탓만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노씨 비자금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정의원은 또 『노씨가 파렴치범인 것이 드러났으니 전직대통령으로서의 공헌을 참작했다는 검찰의 12·12사건 불기소처분 논리는 이유가 없게 됐다』면서 즉각 12·12사건 관련자 기소문제를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의 김진영 의원은 일본 각료의 잇따른 망언이 현정권의 도덕성 실추로 국가기강이 추락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김의원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일본 각료의 망언이 6차례나 거듭됐으며 강택민 중국주석도 방한동안 우리나라를 반도로 표현했다』면서 『이처럼 주변국들이 최근 우리나라를 얕잡아보는 언동이 계속되는 것은 현정권의 도덕성이 실추된 때문』이라고 말했다.
  •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광주시,제정안 입법예고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시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관한 조례안」을 15일 입법예고했다.시는 80년 5월18일을 전후해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그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5월18일을 국가 기념일 제정에 앞서 시 기념일로 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례안은 기념식 및 추모제와 민주화운동 관련 문화행사,민주시민상 시상,기타 민주화운동을 기념할 수 있는 행사 등의 경비를 시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돼 있다.
  • 5·18 민주화운동 시 기념일로 제정/광주시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시는 24일 연내에 광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5월18일을 시 기념일로 제정하고 97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제정할 것을 건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이달중에 5·18 기념일 제정에 따른 의견을 수렴,조례 입법예고를 하고 11월중 시정 조정의원회심의·시의회 조례안 승인신청을 거쳐 조례를 제정한 뒤 16주년 기념행사부터 시 주관으로 치를 계획이다. 시는 5·18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해 5·18묘역 성역화사업이 끝나는대로 국립묘지승격을 추진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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