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등 4명 내란목적살인죄” 검찰
◎「5·18」 핵심 노씨포함 8명 기소/“자위권행사 지시”는 발포명령 간주/광주 일설 지휘관들은 무혐의 처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3일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정에서의 발포명령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희성계엄사령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주영복국방부장관·정호용특전사령관 등 5명에 의해 사실상 하달된 것으로 밝혀냈다.
검찰은 이날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5·18사건 관련자 8명을 기소하면서 수사결과를 발표,이에 따라 국회가 개회중이라 이번 기소대상에서는 빠진 정호용의원(무소속)을 제외한 나머지 4명에게 내란목적 살인죄가 추가적용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 5명은 80년 5월21일 일련의 회의를 통해 광주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하고 사상자가 생기더라도 조속히 진압하기로 결의,이날 하오 7시30분 방송을 통해 이희성계엄사령관이 자위권 행사를 지시했고 이는 일선 지휘관들에게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계엄군들은 전씨 등의지시에 따라 정권찬탈의 의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광주에 투입,「생명이 있는 도구」로 이용됐다고 지적,따라서 계엄군의 일선지휘관들은 무혐의 처리키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어 5·18 사건은 전씨 등 신군부측이 집권시나리오인 이른바 「시국수습방안」에 따라 비상계엄 전국확대,광주민주화운동 과잉진압,국가보위비상대책회의와 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 등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내란이었으며 이에 따라 이 사건의 공소시효 기산점은 5·17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24일로 잡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씨 등 신군부측은 최규하전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국보위를 설치해 내각을 무력화시켰으며 결국 입법·행정·사법권을 총괄하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발족,헌법기관의 기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추가기소된 전·노씨를 비롯,황영시씨,유학성 당시 3군사령관,이학봉보안사대공처장 등 5명을 구속기소하고 이희성씨,주영복씨,차규헌 당시 육군사관학교장 등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이들에게는 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목적살인·반란수괴·불법진퇴·지휘관계엄군지역수소이탈 등 9가지 혐의가 2∼5가지씩 적용됐다.
검찰은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는 대로 정호용·허화평·허삼수·박준병의원 등 4명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발표에서 『광주진압군의 지휘체계가 뚜렷하게 이원화된 것은 아니지만 전두환·정호용씨가 정식 지휘체계에 뛰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지휘체계가 일원화됐다는 전씨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또 전씨 등은 80년 5월17일 임시국무회의가 열린 중앙청 안팎에 무장병력을 배치,위압적인 분위기속에 비상계엄확대를 결의토록 한 사실 등이 확인돼 군사반란죄가 추가됐다고 밝혔다.
전씨는 특히 80년 7월 권한행사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전대통령이 사임을 결심하자 8월10일 노태우씨를 만나 대통령에 취임하는 문제를 논의한 뒤 각 지역 보안부대장들에게 지시,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자신을 지지토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80년 언론통폐합 조치도 전씨 집권계획의 일환으로 자행된 내란의 주요과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