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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20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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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 기억, 서사, 시뮬라시옹/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기억, 서사, 시뮬라시옹/신동호 시인

    진달래가 피었다. 개나리 몽우리가 찬바람에 움츠러든 사이, 급했나 보다, 내 마음을 끌고 참 멀리도 간다. 산기슭의 은사시나무 가지들이 친구들의 메마른 손가락처럼 천천히 나를 부른다. 그랬었지, 사월의 우리는 4·19의 죽음 앞에 진달래보다 붉은 가슴으로 뜨거웠었지. 사월의 우리는 쓰러진 민주주의를 못내 아쉬워하며 자주 하늘을 보았고 또 눈이 부셨지.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어느 봄날, 고만고만한 것들이 잔디밭에 모여 알맹이를 꿈꾸며 신동엽의 시를 읽었다. 지난 일요일 오후 선배가 진달래처럼 찾아왔다. 등산객들로 붐비는 동네 슈퍼마켓 앞에서 불콰해진 얼굴로 그가 말했다, “어찌 사는지 궁금해서….”라고. 사는 이야기를 주워 담더니 불쑥 1980년대로 나를 데리고 간다. 영화 ‘화려한 휴가’로 시작된 넋두리는 이내 오월의 광주 영혼들을 불러들였다. 눈물이 그의 볼로 흘러내렸었던가, 도서관에서 거리로 그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광주항쟁의 부채의식이었노라고. 옆자리의 등산객이 힐끗거렸다. “어뢰다.”, “잠수시간은 십이분이란다.”, “배의 두께가 11.6㎜라는데….” 온통 천안함과 관련된 그들의 대화 속에 낯선 소음처럼 들렸나 보다. “그래도 너는 지금도 잘사는지….” 그의 목소리가 꽃샘추위의 개나리처럼 수줍다. 전교조 사태로 해직됐다가 복직한, 영어교사인 그의 머리칼도 옛 기억처럼 듬성듬성 빠져나갔다. 분명 다시 부채의식을 깨우려고 찾아온 게다. 지나간 기억이 과거에 머물면 추억이 되지만, 현실에서 나를 움직이면 서사(敍事)가 된다. 역사의 분명한 존재자가 되는 것이다. 난데없이 일제의 독립운동으로부터 4·19, 5·18, 6월민주화운동과 6·15공동선언의 긴 물줄기가 출렁이는 듯했다. 먼 항해를 마친, 민주주의라는 서사의 배가 항구에 도착해 승선객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1980년 오월, 광주는 감춰졌다. 시민폭도, 간첩의 배후조종, 미디어는 나치의 괴벨스처럼 거짓선전을 일삼았다. 고단했다. 노동자 김종태, 서울대생 김태훈은 그날 광주를 알리고자 목숨을 던졌고, 고신대생 김은숙, 서울대생 함운경은 폭력적인 광주진압의 배후에 미국이 있음을 알렸다. 영화 ‘작은 연못’은 노근리,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의 기억을 이제 겨우 서사의 책꽂이에 꽂는다. 광주를 감추었던 미디어가 천안함 침몰에는 속속들이, 전문적으로 모든 걸 공개하려 한다. 3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미디어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이제 미디어는 진실에 접근하기는커녕 진실을 ‘생산’한다. 수중압력, 초계함의 배수량과 속도, 내부구조까지, 정보의 바다에서 슬픔의 진실은 뒷전이다. 사실과 진실은 무작위로 재생산된다. 암초, 기뢰, 어뢰, 도발…. 설령 실체적 진실을 밝혀낸다 해도 이 해석과 주장의 현기증이 멈추지 않을까 걱정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simulation)을 통해 상상적인 것에 의한 실재적인 것의 붕괴, 허구에 의한 진실의 붕괴가 온다고 했다. 시뮬라시옹은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위장하는 행위이다. ‘쇠붙이’들의 시뮬라시옹으로 지난 세월 분단으로 발생한 모든 불행이 위협당한다. 그뿐인가, 국토와 생명 파괴의 행위는 4대강 사업으로 위장된다. 미디어를 통해 사건이 이미지가 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문제제기를 멈추고 위조된 현실에 익숙해지면서 시뮬라시옹에 지배당하고 만다. 보드리야르는 이에 절망하지만 절망의 문 밖에는 다시 꽃이 핀다. 실패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오늘 다시 실패를 반복하려는, 미련한. 나는 어찌할 것인가. 이 아침에도 돈을 벌어야 하지 않는가. 지난 일을 그저 추억으로 삼는, 미디어를 즐기는 지독한 범부(凡夫)이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전화(戰禍)가 끝나지 않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는 진행 중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산기슭에 진달래가 피었다.
  • ‘누나의 3월’ 출연진 “3.15정신 배우는 계기 됐다”

    ‘누나의 3월’ 출연진 “3.15정신 배우는 계기 됐다”

    3.15의거 50주년 기념드라마 ‘누나의 3월’ 출연 배우들이 ‘3.15’를 더 알아가는 뜻 깊은 자리를 열었다.‘3.15의거’를 다룬 최초의 드라마 ‘누나의 3월(기획 김용근 제작 허성진 연출 전우석 촬영 김민성)’은 이주영, 안홍준 국회의원 주최로 1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시사회를 가졌다.전우석 감독은 “뜻 깊은 3.15의거를 위해 마산지역MBC에서도 이런 드라마를 제작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배우들과 작가, 전 스텝들이 의기투합해 힘을 모아줘서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이어 뮤지컬 배우로 알려진 김지현은 “동생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누나로 허양미역을 맡았다.”며 “배우로 연기하면서 오히려 더 배웠고 ‘세상을 더 잘 챙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으며 배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연기자 손현주도 “친일 헌병출신 정보계형사로 발포명령자이기도 하다.”면서 “이번에 처음으로 악역을 맡았는데 시사회를 통해 보니 이렇게까지 나쁜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해 주위를 폭소케 했다. 제작진은 “‘누나의 3월’은 극본에 ‘한지붕 세가족’ ‘서울의 달’(이상 MBC) ‘서울뚝배기’ ‘파랑새는 있다‘(이상 KBS) ‘옥이이모’ ‘도둑의 딸’(이상 SBS) 등을 집필한 김운경 작가가 참여해 재미와 완성도를 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또 “그동안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드라마물이 제작된 적 있는 반면 ‘3·15 의거’를 다룬 드라마 ‘누나의 3월’이 처음이며 3.15의거’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다는 사실은 모른다.”며 드라마를 통해 뜻을 알리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했다한편 ‘누나의 3월’은 70분물 2부작으로 오는 26일 1, 2부가 마산 MBC를 통해 자체 방송하며 전국방송은 3.15기념을 준해 방송 할지 4.19혁명 50주년 특집으로 편성 할지는 아직 MBC편성 관계자와 협의 중에 있다.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3.15의거’ 다룬 ‘누나의 3월’ 국회서 이색 시사회

    ‘3.15의거’ 다룬 ‘누나의 3월’ 국회서 이색 시사회

    ’3.15의거’ 50주년 맞아 그 기념드라마의 시사회가 이색적으로 국회에서 열렸다. ‘3.15의거’를 다룬 최초의 드라마 ‘누나의 3월(기획 김용근 제작 허성진 연출 전우석 촬영 김민성)’측은 이주영, 안홍준 국회의원 주최로 1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시사회를 개최했다.그동안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드라마물이 제작된 적은 있었으나 ‘3·15 의거’를 다룬 드라마는 이번 ‘누나의 3월’이 처음이다. 자유당 정권을 붕괴시킨 ‘4.19혁명’은 해마다 기념식을 거행하지만 올해로 50주년이 되는 3.15의거는 4.19혁명에 포함된다며 독자적인 위상을 갖지 못했었다. 1960년 자유당 정권의 대대적인 부정선거로 인해 경남 마산에서 규탄 시위가 일어난 ‘3·15 의거’가 시발점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시사회에 참석한 김형오 국회의장은 “자유민주주의 횃불을 최초로 치켜든 3.15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뜻 깊은 자리를 정성들여 준비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인사말로 행사의 운을 뗐다.이어 그는 “‘3.15의거’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다는 사실은 모른다.”며 “낙화하는 봄꽃처럼 청춘을 희생하여 자유와 정의의 숭고한 이념을 지켜주신 민주열사들의 헌신에 깊은 경의와 존경을 표한다.”고 전했다.제작진 관계자는 “‘누나의 3월’은 극본에 ‘한지붕 세가족’ ‘서울의 달’(이상 MBC) ‘서울뚝배기’ ‘파랑새는 있다‘(이상 KBS) ‘옥이이모’ ‘도둑의 딸’(이상 SBS) 등을 집필한 김운경 작가가 참여해 재미와 완성도를 기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그는 또 “‘누나의 3월’은 70분물 2부작으로 오는 26일 1, 2부가 마산MBC를 통해 자체 방송하며 4.19혁명 50주년 특집으로 전국방송을 하기위해 MBC편성 관계자와 협의 중이다.”고 밝혔다.한편 마산MBC가 제작한 ‘누나의 3월’에는 배우 손현주와 정찬을 비롯해 뮤지컬 배우 김지현, 오지혜, 김애경, 정종준, 이주실 등의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한다. 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시론]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시론]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다시 3·1절을 맞는다. 어김없이 오전 10시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1분간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을 올릴 것이다. 그리고 세련된 기념사와 우아한 독립유공자 포상, 장엄한 ‘기미독립선언문’ 낭독 등이 끝나면 “이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으로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는 ‘삼일절 노래’를 부르고는 만세 삼창을 끝으로 뿔뿔이 제 갈 길로 흩어질 것이다. 묵념의 순간만이라도 순국선열들의 고통과 염원을 상기했던가. 식민통치 압제 아래서 2000여회에 이르는, 그리고 세계 최대의 평화적인 만세 시위운동 참가자 200여만명의 함성에 귀 기울였던가. 3·1운동 후 1년간 피살 7500여, 부상 4만여, 피체 5만여, 가옥 소각 700여, 교회 소각 60여, 학교 소각 3, 헌병 즉결 태형 1만여, 약식 태형 1500여….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일제 침략자들의 각종 고문들, 대나무 바늘로 손톱 밑 찌르기, 시신과 함께 잠재우기, 철사를 달구어 남자 성기나 여자 음문·유방 난자, 발가벗겨 담뱃불과 다리미로 지지기, 기름종이를 국부에 삽입하여 불붙이기 등등…. 그런데도 신문은 일본인 순사가 시위 군중에게 음경 절단을 당했다는 등 허위 기사로 ‘불법 폭력 시위’라 우겼고 일부 비뚤어진 동포는 거기에 동조하기도 했다. 아니, 그런 비뚤어진 동포가 그때만 있었고 오늘에는 없을까. 그런 만행에도 식민통치의 경제 개발로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아졌다는 논리에 따르면 3·1운동은 ‘불법 난동’일 뿐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헌법전문처럼 ‘삼일정신’은 근대 민족혁명사의 모태이다. ‘기미독립선언문’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천명하면서 “인류 평등의 대의”와 “전 인류 공존동생권(同生權)”을 위한 세계평화를 주창한다. 이어 “침략주의, 강권주의”를 구시대의 유물로 타매(唾罵)하고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威力)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내(來) 하도다.”고 절규한다. ‘기미독립선언문’은 세계사적 관점으로 보면 한 나라가 남의 나라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될 당위성을 밝힌 미국의 ‘독립선언문’(1774)이나, 현대 인권사상의 교본인 프랑스의 ‘인권선언문’(1789)에 뒤지지 않는 명문이다. 약간 번잡스러운 앞의 글이나, 너무 간결한 법률 조항인 뒤의 글이 지닌 아쉬움을 극복하고 유려 장엄한 문체로 인권과 독립정신 이념에다 민주화와 도덕의식 강조, 세계평화사상을 동시에 접합시킨 게 ‘기미독립선언문’이다. 글쓴이와 민족대표 33인 중 3명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옥에 티로 거슬리지만 그 정신은 고전적인 ‘홍익사상’을 제치고 근대 국민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그것은 상하이 임시정부와 국내외의 여러 항일투쟁 세력들이 삼일정신을 면면히 승계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를 가차없이 비판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헌법전문은 삼일정신을 이어받은 유일한 적통으로 ‘4·19 민주이념’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은 이미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6월 민주화운동’ 역시 삼일정신과 4·19 민주이념의 계승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런 찬연한 민족 민주주의 이념의 모태인 3·1운동을 기리는 ‘3·1문화상’ 역대 수상자 가운데 13명의 친일파가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많은 친일파 명의의 기념사업이나 포상제도 역시 헌법전문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라는 삼일절 노래 가사는 선열들에게 이 나라를 봐달라고 할 만큼 우리가 떳떳하지 못함을 자책하는 표현일까. 아니면 살아 있는 우리 힘으로는 헝클어진 이 나라를 어쩔 수 없으니 돌아가신 당신들께서 다시 민족을 굽어 살펴달라는 애원일까. 아무래도 우리는 아직까지 “이 날을 길이 빛내자.”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 5·18단체 “30주년이전 통합”

    옛 전남도청 별관 보존 문제 등으로 분열됐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단체들이 올 30주년 기념일에 앞서 통합될 것으로 보인다. 유종회 등 3개 단체로 구성된 5·18 민주유공자단체 통합추진위원회(이하 통추위)는 25일 “각 단체는 최근 열린 통합 설명회에서 30주년 기념일 이전까지 통합단체를 출범시키고, 이를 중심으로 기념행사를 치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통추위는 단체 통합을 마무리한 뒤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5·18 민주유공자 단체설립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의원입법으로 제정, 공법단체로 등록키로 했다. 입법예고 등을 거친 뒤 이르면 10월 말쯤 회원수 3000여명의 공법단체로 출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법단체로 등록되면 정부로부터 보훈단체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에 따른 단체 운영에 대한 일반 경상비와 인건비,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광복회,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등 보훈단체처럼 유공자들의 연금 수령 가능성도 열린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지방시대] 임을 위한 행진곡/김준태 시인

    [지방시대] 임을 위한 행진곡/김준태 시인

    역사가 탄생시킨 노래는 강물과 같다. 대다수 민중들이 즐겨 부를 경우 아무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한강이나 낙동강, 영산강처럼 노래는 그렇게 흐른다. 시공을 넘나들면서 민중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움직임이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가보훈처가 이달 중 전 국민(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를 통해 ‘5·18노래’의 제정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발표가 그것이다. 내년 30주년 5·18기념식부터는 공모 당선작으로 행사를 치르겠다는 성급한 모습까지 보여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공모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이미 24주년 기념식 때부터 공식 추모곡으로 연주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새 노래로 대체하겠다는 발상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특히 1980년대의 역사적 경험이 전무한 20대 젊은이들을 여론조사에 포함시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응답자 표본을 인구수 비례로 구성, 계엄군 언론통제로 오랫동안 광주시민을 ‘폭도’로만 알았던 특정 지역에다 여론조사 대상자의 숫자를 더 많이 설정한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지금까지의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로 누구나가 공감·공인하고 있는 5월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비장미가 넘치는 이 노래는 약강약강이 아닌 강약강약 음보를 유지하면서 우선 노래하는 이들을 홀로 두지 않는다. 우리가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을 들려준다. 세계의 위대한 노래들이 그렇듯이 공동체의식을 눈물겹게 펼쳐 보인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개인을 초개처럼 버린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노래는 무지렁이들이 민주주의란 대의를 부르짖으며 스러져간 ‘5월의 행진곡’이다. 이 행진곡에 발맞춰 역사는 흐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래의 주인공만 바뀔 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껄끄러운 노래가 아니다. 좌절과 패배를 보이는 노래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19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통해 다시 태어났듯이 이 노래는 민주주의를 위한 강한 의지를 내보인다. 그래서 김영삼 문민의 정부→김대중 국민의 정부→노무현 참여정부를 거쳐 오늘의 이명박 정부 역시 이 노래에 정서적으로 빚을 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 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알린 5월의 노래 고전이다. 이미 세계인들의 귀에 익은 노래가 된 것이다. 미국의 워싱턴과 로스앤젤레스, 독일의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남미 아르헨티나, 동남아시아, 그리고 700만 해외동포들이 모여 사는 지구촌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도 이 노래를 ‘민주주의의 노래’로 알고 또 그렇게 따라 부르곤 한다. 그렇다! 이제 노래의 역사성과 시대성,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5월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망각의 탑 속에 넣어 두어서는 안 된다. 이미 글로벌화·세계화된 30년 역사의 이 노래를 아웃시킨다는 것은 바보스러운 행위나 다름없을 것이다. 멘델스존의 말처럼 노래에는 ‘날개’가 달려 있는 것 아닌가. 이 노래는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의 보편성과 영원성을 아름답게, 그리고 줄기차게 지켜줄 것이다. 김준태 시인
  • 大法 ‘5·18 진압軍 정신질환’ 유공자 인정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 투입됐다가 정신질환을 앓은 진압군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1, 2심과 같이 나왔다. 대법원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군이었던 김동관(51)씨가 수원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요건 비해당결정 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에 동원됐고, 이런 자기모순이 가져온 극도의 갈등이 정신세계를 파괴했다.”는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제3공수특전여단 소속 전령병이던 김씨는 진압군으로 투입됐다가 81년 11월 전역하고서 4개월만에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김씨가 광주에서 겪었던 정신적 압박이 발병의 원인이고, 이후 부대 동료들과 상관과의 갈등이 증세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진단했다. 김씨는 2006년 7월 “5·18 민주화운동 진압작전 당시 부대 상관들로부터 받은 정신적 압박과 육체적 가혹행위로 말미암아 정신분열증을 앓게 됐다.”며 국가유공자등록을 신청했지만, 수원보훈지청은 “김씨의 정신분열증이 군 복무 중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거절하자 소송을 냈고, 1, 2심 재판부 모두 김씨 손을 들어줬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임을 위한’ 대체 5·18추모곡 추진 논란

    내년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닌 새로운 추모곡이 만들어질 계획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30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5·18 30돌을 맞아 그 위상에 걸맞은 추모곡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내년 기념행사 이전까지 가칭 ‘5월의 노래’를 제작하기로 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운동권 등 일부 사람들만 즐겨 부른 노래라는 인식이 많은 데다 5월단체도 새 노랫말 심사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이에 동의한 만큼 국민공모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 추모곡은 내년 1월 중 당선작 심사를 마치고, 2월 말까지 작곡을 거쳐 3월 초 음반으로 제작된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 등은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행사에 사용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 노래는 항쟁의 역사성과 민중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며 “굳이 새 노래를 만들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아람회 피해자 37명에 국가 184억 배상하라” 서울지법 판결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 민유숙)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신군부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나누다 ‘아람회’라는 가상의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해전(52)씨 등 6명과 유가족 등 3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위자료 80억원을 물어주라고 원고승소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이자까지 합하면 총 배상액은 184억원에 이른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이 부족해 유죄로 단정할 수 없음에도 법원이 최대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확정하는 등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돼 피고인들과 가족에게 불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위자료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바빠서 극장 못 갔다면 절호의 찬스

    TV 의존도가 높아지는 짧은 연휴, 채널마다 영화가 가득하기에 마음이 놓인다. 각 채널들은 3일간 추석 신작 영화에도 지지 않을 대작들을 모아 편성했다. 우선 ‘추석 영화는 그렇고 그렇다.’는 편견을 깨는 MBC의 ‘적벽대전’ 1, 2와 SBS의 ‘워낭소리’가 눈에 띈다.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적벽대전’은 소설 삼국지의 최대 전투인 적벽대전을 거대한 스케일로 재현한 전쟁 블록버스터다. 량차오웨이(梁朝僞)가 주유를, 진청우(城武)가 제갈량을 맡아 열연했다. 1부는 3일 오전 11시에, 2부는 4일 오후 10시45분에 방송된다. 올해 영화계 최대 이변을 일으켰던 ‘워낭소리’(SBS 4일 오후 11시20분)는 팔순 노인과 마흔 살 소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3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고 각종 상을 휩쓸며 독립영화의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올 추석에도 국산 코미디의 강세는 뚜렷하다. KBS 2TV는 3일 오후 10시15분에 김수로 주연의 ‘울학교 이티’를 방송한다. 김수로의 개그본능과 함께 이민호, 박보영의 풋풋한 모습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 또 정재영 주연의 ‘바르게 살자’(SBS 4일 오전 12시40분)도 융통성 없는 주인공이 모의은행강도 훈련을 하면서 벌이는 소동을 재미있게 그렸다. 그외 1980년 고교야구의 국보 ‘선동열’을 스카우트 하기 위해 광주로 파견된 스카우트(임창정 분)의 이야기 ‘스카우트’(KBS 2TV 4일 오전 12시25분), 아저씨 밴드의 부활를 그린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SBS 5일 오전 12시50분) 등도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전한다. 명작 영화 릴레이는 케이블 채널에서도 만만치 않다. 영화채널CGV는 2일 자정에 강지환·소지섭 주연으로 깡패 같은 배우와 배우 같은 깡패를 그린 ‘영화는 영화다’를 방송한다. 또 상반기 최고 히트작인 김윤석·하정우 주연의 ‘추격자’(4일 자정), 브루스 윌리스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다이하드 4.0’ 등도 편성했다. OCN은 1일 오후 10시부터 4일 밤까지 ‘나는 전설이다’, ‘미인도’, ‘점퍼’, ‘님은 먼곳에’ 등 30여편의 최신 영화와 ‘해리포터 시리즈’를 연속 방송한다. XTM은 2일 오후 9시에 박정아 주연의 ‘날나리 종부전’을, 3일 오후 9시에는 설경구·김태희의 ‘싸움’을, 4일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을 내보낸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전쟁과 그 뒤에 숨은 이야기 하고 싶었다”

    “전쟁과 그 뒤에 숨은 이야기 하고 싶었다”

    돌격용 총검을 그루터기에 꽂아 놓은 뒤 군인은 평화를 기원하듯 어머니 땅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났는지 카키색 군복 뒤로 시리게 새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 군인도 모를 것이다. 그가 입맞춤하는 땅 아래에는 수십, 수백 개의 해골들이 가득 쌓여 있다는 사실을. ●새달 10일까지 청담동 슐츠갤러리서 전시 독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마이클 슐츠 갤러리의 전속작가인 세오(한국명 서수경, Seo·32)가 다음달 10일까지 서울 청담동 슐츠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초대형(250×250㎝) 그림이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소장을 결정한 작품이다. 2007년 서울 현대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당시 세오의 그림은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풍경화였다. 색채가 화려한 전주 한지를 찢어 붙이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바르고, 다시 한지를 찢어 붙이는 작업을 서너 차례 거쳐서 깊이있는 색감을 연출해 냈던 방식은 유화물감보다도 아름다웠다. 그 방식은 여전하지만 이번 전시의 주제는 ‘전쟁에 대항하여’로 무겁다. ●“작품 보며 전쟁에 대한 질문 던졌으면” 16일 독일에서 귀국해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세오는 “신문이나 잡지, TV 등에서 순간적으로 마주치는 전쟁과 그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면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내내 질문을 던졌듯이 관객도 내 작품을 보면서 전쟁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쟁 속 인간의 잔혹함 절감…시리즈 제작 전쟁에 관한 그림 구상은 4년 동안 이뤄진 것이다. 2004년 독일 친구들과 함께 광주 망월동 묘역과 5·18 기념관 등을 둘러보던 작가는 외국인들에게 제3자적인 입장에서 ‘5월 광주’를 설명해야 했다. 1977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였지만, 80년 광주 항쟁은 그에게 먼 이야기였다. 그러나 설명해야 했던 그 순간, 그는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보면서 인간의 잔혹함을 절감하게 됐다.”고 말한다. ●‘5·18광주항쟁’서 모티브… 4년간 구상 학생들의 데모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겹쳐지면서 그는 전쟁 시리즈를 기획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림의 모티브가 됐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백인 군인들과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연상시키는 어린이들의 투석전, 소총더미에 압도되는 가냘픈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등 소재는 전지구적이다. 아쉬운 점은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이 단 4점. 원래 12개의 연작인데 나머지는 미완성이다. 작품이 완성되면 내년 4월 광주 전시를 시작으로, 중국 금일미술관(Today Art Museum)과 독일의 미술관 등에서 순회전을 열 계획이다. (02)546-7955.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광주 미관광장 ‘평화공원’으로 개명

    광주시청 앞 미관광장의 이름이 ‘평화공원’으로 결정됐다. 광주시는 10일 명칭 심의를 통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역사적 현장인 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평화’란 이름을 붙였다. 그동안 미관광장 명칭에 대해 ‘인동초 공원’, ‘인동초 평화공원’ 등 각계의 다양한 의견이 제안됐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연행돼 고초를 당한 역사적인 현장(옛 상무대)이라는 점과 치평(治平)동의 한자 의미도 감안해 결정됐다. 평화공원에는 김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인동초공원’을 별칭으로 사용하고, 고인의 역경의 삶을 상징하는 인동초 1만그루를 심기로 했다. 시는 오는 21일 오후 6시30분 공원 제막식과 문화행사를 갖는다. 시 관계자는 “공원에는 광주를 빛낸 6명의 인물 동상 등을 설치해 숲과 물, 빛이 어우러진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고인이 ‘남긴 꿈’ 이으려… 끝없는 조문

    그들은 꿈을 찾고 있었다, 잃어 버린 혹은 아련한. 꿈과의 이별을 겨워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 꿈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검은 옷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21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국회 본청 앞.조문객들은 늦더위에 땀을 흘리면서도 차분히 순서를 기다렸다. 국회에 빈소가 마련된 지 이틀 만에 근조리본 2만개와 국화 1만여 송이가 쓰였다. 이들은 빈소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그날이 오면’을 들으며 고인이 남긴 꿈을 생각했다. ●방명록에 다짐 적고 또 적고 조문객들은 빈소 한 쪽에 놓여진 방명록에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다. 고인의 뒤에 남겨진, 민주주의와 통일의 과제를 이어 가겠다는 다짐이 이어졌다. “못다 이루신 통일의 염원을 후손들이 이룩하겠습니다.”, “지난 10년 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돌아갑니다. 앞으로도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더욱 더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가 되겠습니다.”, “대통령님 때문에 숨쉬고 살았습니다. 저의 무임승차가 부끄럽습니다.”, “고귀하신 말씀과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겨레와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남북통일을 이루는 날 인사드리겠습니다.” 한 줄 한 줄, 애틋함이 묻어났다. 오전 11시 10분쯤에는 최재성·백원우·서갑원 의원,임종석·오영식 전 의원 등 386출신 정치인이 합동으로 조문했다. 김영춘 전 의원은 “고인이 이룩한 민주화의 길이 다시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애통해했다.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힘이었는데…” 본청 앞 잔디광장에는 민주당과 국회 도서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등에서 내놓은 고인의 사진들이 전시됐다. 조문객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고인의 생전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 서울에 산다는 강대봉(50)씨 부부는 이희호 여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고인 사진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1980년 5월18일 광주 유혈 사태를 현장에서 목격한 뒤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던 강씨 부부는 “살아 계신 것만으로 힘과 위로였던 큰 산이 무너진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부부는 “그분이 평소 가장 힘주어 말씀하셨던 대로 우리 각자가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평화 통일, 민주주의 정착 등 남은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문 행렬이 길어지자 자원봉사자들도 속속 늘어났다. 지난 19일 고인의 쾌유기원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가 서거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를 시작한 정성희(34·여)씨는 빈소를 국회로 옮긴 뒤에도 고인을 따라 왔다. 정씨는 “재임 시절에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느껴졌다.”면서 “그 분이 퇴임하고 보니 그 가치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한 60대 여성은 조문하러 왔다가 식수를 나눠 주는 자원봉사 일손이 모자른 것을 보고 바로 가방을 내려 놓고 ‘자원봉사’ 비표를 달았다. 지난 13일 병문안 했던 어린이 환경운동가 조나단 리(12)도 이날 고인의 영정 앞에 섰다. 국회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정치인이든, 자원봉사자든, 일반 시민이든 하나 같이 ‘꿈과의 재회’를 꿈꾸고 있었다. 허백윤 오달란기자 baikyoon@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그 분을 영원히 떠나 보내야 하니 마음이 아프고, 만감이 교차합니다.”‘김대중 전 대통령 광주·전남추모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 지선 스님(백양사 주지)은 20일 “그가 평생 추구해온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 등의 정신을 이어 받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며 “장례일까지 매일 저녁 그를 기리는 추모문화제를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겠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산승(山僧)’에서 ‘투사’로 변신해 20여년 동안 광주지역 재야운동을 이끈 지선 스님은 DJ와 불가에서 말하는 ‘억겁의 세월’을 거친 ‘인연’을 맺는다. 지선 스님은 1980년대 이후 ‘반독재 투쟁’이란 기치 아래 대학생들과 섞여 매일 거리 최루탄 공방전의 선봉에 섰고, 이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던 그는 이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으나 6·29 선언 다음달인 7월 초 석방된다. “석방되던 날 DJ와 YS가 교도소 앞에 찾아와 처음으로 두 거물 정치인을 동시에 만났다.”며 “이후 두 분 사이를 오가며 후보 단일화를 강력히 촉구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두 분으로부터 선거 전까지는 꼭 단일화될 거란 말을 들은 뒤 각 대학에서 강연이 있을 때마다 ‘민주진영의 후보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진다.’고 역설했으나 그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가장 가슴 아팠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광주에서 재야활동에 열중이던 지선 스님은 DJ가 1987년 대선 패배 이후 평민당을 이끌던 때도 여러번 부딪쳤다. “DJ는 당시 ‘비 폭력, 비 반미, 비 용공’이란 3대 원칙을 끝까지 강조하며 우리 재야운동가와는 일정 거리를 두려 했던 현실 정치가였다.”며 “이런 점 때문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 자주 빚어졌다.”고 말했다. 지선 스님은 1989년 ‘조선대생 이철규 변사 사건’을 한 예로 들었다. 그는 지역 재야인사인 고 조아라 선생 등과 함께 동교동을 방문했다. 보기에도 흉측한 모습이었던 이철규씨 사진의 일간지 게재를 건의하기 위해서였다. DJ는 당시 “공안 당국에 탄압의 빌미만 제공할 뿐”이라며 일거에 거절했다. 지선 스님은 “5·18 이후 수많은 대학생과 열사들의 죽음을 외면하려면 정치를 그만 두라.”고 맞섰다. DJ역시 “법복을 입고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든 대학생을 선동하면 되느냐.”며 질책했다. DJ와 지선 스님은 이 때부터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DJ가 집권한 이후부터 그는 10여년 동안 ‘산방’에서 지냈고, 최근 3개월 간 하안거를 마친 뒤 DJ추모행사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어른은 가셨지만 우리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계실 그 분을 되새기고, 그의 정신을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지선 스님에겐 애증의 20여년이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큰 인물 가셨다” 하의도 눈물바다

    ■ 고향 신안군 후광리 표정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는 18일 온통 슬픔과 안타까움에 젖어들었다. 김 전 대통령이 영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하의도 주민들은 농사일을 중단한 채 마을회관 앞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상제인 듯 비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주민들은 “참말로 큰 인물이 가셨다.”며 소매로 눈물을 훔치곤 했다. ●온 마을이 喪家… 농사 접고 탄식 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주민 김경선(50·웅곡리)씨는 “지난 4월 14년 만에 김 전 대통령께서 하의도를 찾으셨을 때만 해도 건강해 보였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농협 하나로마트 직원 이미영(30·여)씨는 “손님들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묻는 등 모두가 안타까운 심정을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큰형님인 대봉(1972년 작고)씨의 아들인 홍선(48)씨는 “집념이 워낙 강한 분이셔서 이번에도 금세 일어서실 것으로 믿었는데 가슴이 멘다.”고 울먹였다. 생가가 있는 후광리와 친척들 대부분이 모여 사는 대리1구 주민들의 슬픔은 남달랐다. 8촌 동생인 도미(58)씨는 “대통령이 우리 고향은 물론 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분으로 좀 더 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후광리 이장 이형렬(61)씨는 “김 전 대통령의 지난 4월 고향 방문이 생전 마지막 길이었다는 게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 김 전 대통령의 모교인 목포북교초등학교와 전남제일고(옛 목포상고) 정문에는 ‘삼가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생가·관공서 분향소 조문객 줄이어 신안군청 직원들은 관공선 2척을 타고 하의도로 들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후광리)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하의도 주민들은 인근 지역에서 조문객들이 몰려올 것에 대비, 음료와 음식을 마련하는 등 조문객 맞이에 매달렸다. 정연순(46) 하의도 부녀회장은 “마을과 면사무소 등에서 정수기를 가져다 조문객들이 마실 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의도에 들어온 취재진도 슬퍼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목포여객선터미널과 목포역에는 촌로와 시민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어 눈물을 글썽거리거나 줄담배를 피워가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의도 14개 섬마다 추모 플래카드 하의면사무소와 우체국·신안군청·목포시청·전남도청 등 전남지역 주요 관공서에는 일제히 조기가 내걸렸고, 분향소도 마련됐다. 하의도 14개 섬마다 면사무소와 중심가에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글귀를 적은 플래카드가 2개씩 내걸렸다.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의 목포 사무실과 민주당 전남도지부·광주시지부 등에 분향소가 마련돼 조문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박종원(50) 하의면장은 “면사무소 회의실에 분향소를 마련해 인근 지역 주민들이 분향토록 했고 주민자치센터에도 기자실을 만들어 취재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신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정치적 고향 광주 표정 “할 일 태산같은데…” 시민들 눈시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는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체념으로 일순간 적막감에 휩싸인 듯했다. TV 속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영원히 떠나가는 임’의 명복을 빌었다. 사무치는 슬픔을 가슴에 묻었다. 버스터미널에 나온 김영준(65)씨는 “민주화의 거목이 쓰러졌다.”며 “우리는 그분의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신념을 큰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광주는 김 전 대통령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김 전 대통령 자신도 그동안 “광주는 나를 키워주고 밀어주고 한없는 사랑을 줬다. 항상 빚을 짊어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으로 상처받은 시민들에겐 김 전 대통령이 ‘지역의 한’을 풀어줄 유일한 대안이었다. ‘김대중’은 ‘희망’이었다. 5·18유족회원 임근단(78)씨는 “그분이 1980년대 후반 처음으로 5·18묘지를 방문해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이 죽었다.’며 어찌나 서럽게 눈물을 흘리시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고 명노근 전남대 교수의 부인 안성례(70·오월 어머니집 관장)씨는 “그분의 회생을 빌며 새벽마다 기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시민 문현석(48)씨는 “남북통일과 국민화합 등 아직도 할 일이 태산처럼 많으신데…. 너무 안타깝다.”며 말끝을 흐렸다. 광주시청사와 민주당 광주시지부 사무실 등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란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광주시청에 차려질 예정이던 분향소는 접근이 쉬운 광산동 옛 전남도청 건물에 마련됐다. ‘광주시민합동분향소’로 이름 붙여진 분향소는 시와 민주당 광주시당,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문병 온 전두환 “DJ 집권때 제일 행복”

    문병 온 전두환 “DJ 집권때 제일 행복”

    1970, 80년대 신군부의 수장과 민주화의 상징으로 대척점에 섰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해후했다. 전 전 대통령이 1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인 김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면서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12·12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거머쥔 전 전 대통령은 이듬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배후로 김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옥고를 치른 김 전 대통령은 2년 만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고, 2004년 재심에서 24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종교적 용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입원 전까지 준비하던 자서전에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죽음 직전의 고초까지 안겨준 그를 신앙적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 ‘용서는 최대의 용기이고, 관용은 정치의 최대 덕목’이라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은 1996년 12·12 및 5·18과 관련, 사형을 선고받은 전 전 대통령을 위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며 사면을 건의하고, 자신이 집권했을 때 이를 단행했다. 그는 또 국민의 정부시절 전 전 대통령을 수차례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날 병세가 위중한 김 전 대통령 대신 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난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각별한 보살핌을 회고했다. “자꾸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아 휴가 중에 올라왔다.”는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때 전직 (대통령)들이 제일 행복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외국 방문 후 꼭 전직 부부를 청와대에 초청, 방문 성과를 설명해주며 만찬을 성대하게 준비해주고 선물도 섭섭하지 않게 해주셨다.”고 했다. 그는 “연세가 많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틀림없이 완쾌해 즐거운 마음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쾌유를 기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전국플러스] 광주시민 62% “전남도청 보존해야”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건립과 관련, 1년 넘게 끈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 논란에 대해 광주시민들은 보존을 더 선호했다. 13일 광주지역 신문·방송 등 8개 언론사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2%가 “옛 도청 별관 보존”을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32.3%는 “철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보존 응답자 중 66.3%는 5·18 사적지로서의 가치를 들어 원형 보존을 주장했다. 원형 보존은 30대(70.2%)와 40대(68.1%) 등 1980~1990년대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었던 시민들에게서 높았다. 철거 응답자 중 48.3%는 “문화전당의 조속한 완공을 위해”라고 답했고, 32.1%는 “별관 대신 5·18 상징 조형물을 세우는 방안이 더 나아서”라고 답변했다.
  • 유인촌 문화 ‘전남도청 완전철거’ 철회 시사

    유인촌 문화 ‘전남도청 완전철거’ 철회 시사

    박광태 광주시장과 조영택(민주당) 의원 등이 참여한 ‘옛 전남도청 별관문제 해결을 위한 10인 대책위’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면담으로 1년 넘게 끌어온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부지 내 도청 별관 문제 해법이 나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9일 광주시에 따르면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28일 10인 대책위 대표와 가진 면담에서 ‘오월의 문’과 ‘3분의1 존치안’, 당초 설계안, 원형보존안에 대해 설계자의 기술적 자문과 조성위원회의 의견을 들은 뒤 조만간 최종 입장을 결정키로 했다. 문화부가 견지해온 ‘별관 완전 철거’ 입장에서 여러 대안을 고려하겠다는 쪽으로 한발짝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정부와 5·18단체 사이 1년2개월여 동안 팽팽한 대립을 보여온 ‘전남도청 별관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박광태 시장은 “정부가 그동안 ‘별관 완전 철거’ 방침에서 ‘5월의 문’ 또는 ‘완전한 원형보존’ 쪽으로까지 태도 변화를 보였다.”며 “이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화부는 당초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인 내년 5월 문화전당 개관을 목표로 이 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5월 단체의 ‘별관 보존 요구’와 ‘랜드마크 논란’에 막혀 2012년으로 연기했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고은 ‘만인보’ 23년만에 탈고

    한국 시단의 거목 고은(76) 시인이 민족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시집 ‘만인보’를 최근 탈고했다. 2007년 26권까지 출간된 ‘만인보’에는 총 3285편이 실렸고, 27∼30권에 실릴 500여편의 마지막 원고를 지난 2일 탈고했다. 23년 만에 전체 3800편 30권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각권 120여편씩 구성될 27∼30권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살아간 인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특히 30권의 마지막 부분에는 조선시대 비운의 왕 연산군을 통해 권력의 허망함을 노래하고 있다. 만인보는 1980년 여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 생각해 냈으며 우리 민족의 여러 인간상을 시를 통해 형상화하려고 했다. 그러던 1986년 봄, 모두 3500편으로 완결하겠다는 공언과 함께 1∼3권을 펴냈다. 이후 ‘만인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민족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 ‘한국문학사 최대의 연작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등 7개 언어로도 번역되기도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권력에 약한 檢 이제는 고쳐야

    지난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은 12·12사건 관련 피의자들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검찰은 또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피의자 35명에 대해 공소권없음의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도 검찰의 판단에 손을 들어 줬다. 그 유명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연인원 1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진상규명, 학살자 처벌”을 외치는 사이에 내란죄의 공소시효(15년)가 만료됐다. 그러나 김영삼 당시 대통령 주도로 그해 12월 국회에서 5·18 및 헌정파괴범공소시효 특별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이 또한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돼 헌재로 갔고, 헌재는 한정위헌 5와 한정합헌 4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지만 “특단의 사정이 있어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논리였다. 진정소급효를 부정하는 우리 헌법질서에 무리를 가하고서야 쿠데타 주범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특검 피하려 수사본부 급조 헌재 결정과 특별법 제정을 지켜본 뒤 수사를 시작하겠다던 검찰은 1995년 11월 갑자기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고 불기소처분을 내렸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급히 소환했다. 국회의 특별법 논의과정에서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던 때였다. 검찰의 수사 배경에는 검찰수사를 기정사실함으로써 특검제 도입을 막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는 지난 2007년 겨울 삼성특검을 앞둔 검찰의 특본 구성으로 반복된다. 다짜고짜 전 전 대통령을 소환한 검찰은 이른바 ‘골목성명’이라는 반발을 불러온다. 성명발표 후 고향으로 내려간 전 전 대통령에 대해 검찰은 반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해 12월3일 새벽 전격적으로 영장을 집행했다. 법원과 검찰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전 전 대통령이 도주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었고, ‘3당 합당으로 내란세력과 야합한 김영삼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한 데 대한 보복의 성격이 짙었다. 검찰이 처음부터 엄정한 수사의지를 가졌다면 이런 복잡한 과정과 헌법질서에 흠집을 내지 않아도 될 수사였다.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검찰은 “주동자만 처벌하라.”는 김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부분의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법원은 삼성 SDS 사건 유죄 판단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사건 수사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시민단체 및 교수들의 항고·재항고를 포함, 모두 6번의 고소·고발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올해 대법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과 달리 SDS BW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하지만 BW 저가발행에 따른 배임액이 50억원에 이르지 않을 경우 공소시효는 7년에 그친다. 즉 50억원이 넘어야만 공소시효 10년의 적용을 받아 처벌이 가능하다. 대법원이 유죄라고 판단할 사건을 검찰이 6번이나 무시함으로써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檢 출신 인사 정치권 진출 제한해야 검찰의 수사는 선택적이다. 기소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들어오는 모든 고소·고발 사건을 동일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처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검찰은 지난해 촛불정국 이후 조·중·동 광고반대, PD수첩, 미네르바 등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건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반면 경찰의 시위대 폭행사건은 여전히 수사 중이고, 법원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용산참사 주요 수사기록 2500쪽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검찰이 그토록 싫어하는 ‘정치검찰’의 오명을 자주 덮어쓰는 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 정치적이었기 때문이다. 정권은 위기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힘들 때 전가의 보도처럼 ‘검찰카드’를 빼들었다. 검찰 또한 자기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정권을 바라본다. 뿐만 아니라 현직에서 물러난 검찰 선배들은 속속 정치권으로 진출한다. 검찰 출신 인사들의 정치권 진출을 제한하고, 검찰총장 및 각 지검장을 투표로 선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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