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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추기경(외언내언)

    1951년 9월15일.대구 계산동 성당의 종소리가 유난히 밝게 울려 퍼졌다.이날 29살의 청년 김수환은 69살의 어머니가 맨앞자리 마룻바닥에 꿇어앉은채 자애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사제서품을 받았다.한때 「장가가 가고 싶어」신부되기를 망설이기도 했지만 홀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뿌리치지 못해 신부가 됐고 이날이후 성직자로서의 멀고 험한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대구에서 가난한 옹기장수의 8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서울의 동성상업학교와 일본의 상지대,독일의 뮌스터대를 졸업했고 66년 주교에 오르면서 마산교구장,68년에는 대주교로 서품되면서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다.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에 임명된 것은 69년 3월28일.이땅에 가톨릭이 전래된지 1백92년만의 경사였고 47세 추기경으로 세계 가톨릭사상 「최연소추기경」이란 영예도 함께 얻었다.그리고 지금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정신적 지도자로 우뚝 서 있다. 그가 오늘의 자리에 이른 것은 추기경이란 신분때문만은 아니다.올곧은 양심의 대변자로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간성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김추기경은 교회의 건전한 현실참여를 주도하고 있지만 해방신학같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는 단호히 거부한다.그것이 「존경받는 성직자」로서의 품위를 지켜주고 있다. 그는 청빈한 사제의 본보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으나 권위는 내세우지 않는다.오히려 지극히 소박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친근감을 갖게한다.지난해 9월11일 부천 가톨릭대학에서 열린 KBS의 「열린음악회」때 대중가요인 「애모」를 열창한 것도 그의 성품을 드러낸 한 단면일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2일 교회법에 따라 만75세가 되는 97년 5월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퇴임은 전적으로 교황의 판단에 달려있다.교황이 그것을 거부하면 교구장직을 떠날 수 없게 된다.김추기경이 앞으로 어떤 자리에 있게 되든 존경받는 성직자로서,또 사회원로의 한분으로 계속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 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 「이수성 내각」실무형 색채 뚜렷/「12·20」개각­새 각료 분석

    ◎군출신 1명… 명실상부한 문민정부로/PK 한명 늘어 6명·서울대 출신 16명 20일 단행된 개각으로 면모를 드러낸 「이수성 내각」에서는 외형적인 변화를 최소화하고 내실을 기하려는 듯이 느껴진다.이런 가운데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출마가 예상되는 각료들이 물러남에 따라 실무형의 색채가 강해진 것은 눈 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새로운 내각의 출신별 직능분포를 보면 정치인 출신은 김우석내무부장관과 정종택 환경부장관 등 4명으로 줄어들었다.그것도 서울대교수 출신으로 4선의원을 지낸 나웅배 경제부총리와 약사출신으로 2선의원을 지낸 김장숙 정무2장관을 정치인으로 분류한 숫자다. 바로전 내각에서는 전·현직 국회의원인 김용태 내무·김중위 환경·서상목 보건복지·김영구 정무1·김장숙 정무2장관에 신한국당 나주지구당위원장인 최인기 농림수산부장관을 포함,6명이 정치인 출신이었다.정부 출범 초기 황인성 국무총리를 포함,모두 7명이었던 만큼 갈수록 정치색이 엷어지고 있는 셈이다. 관계는 8명의 각료를 배출해 여전히 최다수를차지했다.이밖에 학계가 이총리 등 4명,언론계와 법조계가 각 3명씩으로 강세를 보였다. 군 출신은 오명장관의 퇴진으로 이양호 국방부장관 한사람으로 줄어들어 명실상부한 문민정부의 면모를 보여주게 됐다. ○…새 내각 각료들의 평균나이는 56·6세로 바로전 내각의 56·2세와 큰 변화가 없다.정부 출범 당시 55·7세였으므로 오히려 완만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58세인 이총리에 이어 56세인 김광일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탁으로 세대교체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풍기고 있다. 새 내각에서는 권오기 통일부총리와 공로명 외무부장관이 32년생으로 동갑이나,생일이 10달 빠른 공장관이 나이가 가장 많은 각료가 됐다. 또 강운태 농림수산부장관이 47세로 최연소각료가 됐다. 나이별 분포를 보면 51∼55세가 5명,56∼60세가 11명을 차지하는 등 역시 50대가 내각의 주력임을 입증했다. ○…출신지역별 분포는 서울과 이른바 PK(부산·경남)의 강세가 여전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부산·경남은 경남 함양 출신의 김영구 전정무1장관이 빠지고,경남 진해 출신의 김내무부장관과 부산 출신의 추경석 건설교통부장관이 입각,바로전 내각의 5명에 비해 1명이 늘었다. 반면 서울은 6명에서 이홍구전총리와 오전건교부장관이 빠지고 안교육부장관이 들어가 5명으로 1명이 줄었다.홍재형 전경제부총리와 서상목 전보건복지부장관이 물러나고 정환경부장관이 들어간 대전,충·남북도 5명에서 4명으로 줄었다. 박영식 전교육부장관 대신 강농림수산부장관이 들어간 광주,전·남북과 이석채 정보통신부장관이 기용되고 김전내무부장관이 물러난 이른바 TK(대구·경북)는 각각 3명씩으로 바로전 내각과 변화가 없다. 이밖에 이북은 함북 명천 출신인 공외무부장관으로,인천은 김영수 문화체육부장관으로 1명씩 각료를 냈으나 경기도와 강원도·제주도는 입각한 사람이 없다. ○…민정수석 출신 김문화체육부장관과 농림수산수석 출신 김양배 농림수산부장관을 새로 기용,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후반기 정국운영구상과 맞물려 주목할만 하다. ○…출신대학을보면 서울대가 이총리와 나·권 두 부총리 등 16명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서울대는 특히 이번 개각에서 법과대학 14회가 이총리를 낸데 이어 11회가 권통일부총리와 정환경부장관을 배출했다.11회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 이회창·이홍구 총리 등 2명의 재상을 연거푸 내기도 했다.권부총리도 5공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낸 정인용씨에 이어 11회 졸업생 가운데 두번째 부총리다. 이밖에 고려대가 김총무처장관과 황창평 보훈처장 등 2명·안교육부장관의 연세대·추건교부장관의 성균관대·문민정부 촤장수 장관인 오인환 공보처장관의 외대·김내무부장관의 동아대·이양호 국방부장관의 공군사관학교가 각 1명씩이었다. 각료들 가운데는 또 이총리 등 7명이 박사학위 소지자다.이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경영학박사인 나부총리 등 5명은 해외 박사다.
  • 꿈과 도전의 21세기… 50인을 주목하라(서울신문 50돌 특집)

    꿈과 도전의 시대인 21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21세기의 주역으로 기대되고 있는 각계의 유망주 50인을 서울신문이 뽑아 소개한다. ▷정계◁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 43세.부인과 1남1녀.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신문기자를 거쳐 12대부터 내리 당선한 3선의원.문민개혁 완성을 위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97년 대선에서 민자당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포부. ◎손학규 민자당 대변인 49세.부인과 2녀.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강대교수를 지낸 초선의원.선진정치 문화를 이룩하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첨병이 되는 것이 포부. ◎이인제 경기도지사 46세.부인과 2녀.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전지법 판사를 지냈다.13·14대 재선의원을 거쳐 6·27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충실한 지방살림꾼으로 지방자치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 포부. ◎강재섭 민자당 국회의원 48세.부인과 1남1녀.서울법대를 나와 서울고검 검사,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재선의원.만성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법치가우선하는 정치문화 정착이 포부. ◎박종웅 민자당 국회의원 42세.부인과 1남1녀.서울대 법대를 나와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초선의원.건전한 청소년문화 정착과 환경보존에 힘써 통일조국 기반조성에 기여하는 것이 포부. ◎이철 민주당 원내총무 47세.부인과 2녀.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3선개헌반대투쟁 전국학생대표를 지냈으며 민청학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3선의원.변화와 개혁으로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 ◎이석현 국민회의 국회의원 46세.미혼.서울법대를 나와 전국 카톨릭학생총연합회장과 평민당부대변인을 지낸 초선의원.계층,지역간 차별을 해소하는 조세제도로 경제정의를의 실현하고 정치권의 자정을 이루겟다는 것이 포부. ◎신계륜 국민회의 국회의원 41세.부인과 2남.고려대 법대 재학시 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전민련 민중1위원장을 지낸 초선의원.세대간,지역간,계층간 대립을 극복하는 「열린 정치」와 「통합정치」를 이루겠다는게 포부. ◎허대만 포항시의원 26세로 지방의회에 진출한 경북도 최연소의원.포항지방자치연구소의 정책실장을 맡아 지방의회발전방향 연구.포항 대동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졸.경실련의 서울대 대표및 포항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 ▷관계◁ ◎유재웅 공보처 방송행정과장 38세.고려대 신문방송학과졸.정부안에서 방송실무에 관한한 최고 전문가.지난해 지역민방 선정과 통합방송법 제정의 산파역을 했다.방송선진화에 미력이나마 다하겠다는 것이 포부. ◎김영목 경수로기획단국제협력부장 43세.서울대 불문과 졸.73년 외무부에 들어왔다.외시 10회.경수로 건설 사업과정에서 미국·북한과의 협상 업무를 맡고 있다.신포에 한국형 경수로를 완공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사항. ◎조현 외무부 통상기구과장 38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57년부터 외무부에 몸을 담았다.외시 13회.WTO출범 과정에서부터 우리 통상외교를 맡고 있는 실무 주역.WTO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나가는 것이 포부. ◎송영무 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과장 47세.부인과 2녀.대령·해사 27기로 해군작전사령부 작전기획과장과 해군본부 작전상황실장·호위함 함장등을지낸 작전통.통일 이후 영국이나 일본에 못지않은 해양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이바지 하는 것이 포부. ◎추경호 재정경제원 사무관 35세.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행시 25회.재정경제원 종합정책과에 근무.신경제5개년계획의 추진 및 각종 경제운용 계획 수립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경제정의를 바탕으로 한 활력 넘치는 경제사회 실현이 꿈. ◎정승일 통상산업부 행정사무관 31세.서울대 경영대를 나와 미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행시 33회.통산부 미주통상과에서 근무하고 있다.자율화 시대에 부합되는 새로운 정책개발이 포부. ◎맹병렬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 27세.충남 천안출신으로 경찰대학 7기.법학은 물론 사격·운동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전교 5등으로 졸업.경찰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과 가까운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차세대경찰의 기대주. ▷사회◁ ◎김진학 사회복지전문요원 37세.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보건복지부 공채 1기.사회복지전문요원 동우회회장.현인원은 3천명.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걸맞는 사회복지수준을 일구겠다는 포부. ◎최예용 환경운동연합정책실장 30세.서울공대 산업공학과 졸.91년 페놀사건,지난해 낙동강 식수오염사태 조사활동.그린피스와 시베리아 산림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답사.지방자치와 통일시대에 걸맞는 환경정책 개발과 시민운동이 꿈. ◎박찬운 변호사 35세.인권변호사.서울변협의 당직변호사제도 운영규칙 입안주도.대한변협 기획실장 및 성폭력상담소·소비자보호원 법률자문위원.「알기 쉬운 인권지침」 「국제인권원칙과 한국의 행형」등 저서 다수. ◎정유성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사무국장 39세.교육운동가·공동육아연구회운영위원·연세대강사·독일 뮌헨대학 교육학박사.학부모와 학생이 주도하는 민간교육운동을 이끌어갈 인물.학부모 프로그램인 「학부모 아카데미」 개설. ◎이정식 한국노총조사부장 35세.서울대 경제학과 졸.86년부터 노총 정책연구위원으로 활동.노동문제나 임금문제에 정통한 노동계의 이론통이자 행동가.학계·법조계·언론계를 망라한 21세기 노사관계연구회 주도. ◎최헌규JC대전지구회장 36세.한남대 지역개발대학원졸.7년째 청년운동을 이끌고 있다.변화와 개혁을 제시하며 지역감정을 없애고 국민대화합을 실천하는 데 앞장.지방의 청년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포부. ◎김경호 경실련 부정부패추진위간사 29세.91년 연세대 법학과 졸.시민의 민원과 고발,진정사항을 검토하고 정부기관에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경실련의 포괄적인 시민운동을 보다 전문화·구체화시키겠다는 포부. ▷학계◁ ◎성영철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부교수 39세.분자생물학자.연세대 생화학과를 거쳐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이학박사,하버드 의과대등에서 연구.만성 간질환의 주요원인인 C형 간염 유전자 백신 개발에 이어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구중.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과 조교수 38세.한국 과학계의 자존심인 이론물리학 연구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소장 학자.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연구.인간 뇌의 물리학에 도전중. ◎이성환 고려대 전산학과 조교수 33세.인공지능 연구자.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공학박사.종이 위에 휘갈겨 쓴 글씨를 읽을수 있는 필기체 인식 컴퓨터 개발이 전공.사람 닮은 똑똑한 로봇을 만들겠다는게 꿈.▷경제계◁ ◎김병기 삼성전자 소프트웨어팀 과장 32세.서강대 전자계산학과 졸.85년 입사,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과 신규 프로젝트 기획 등을 맡아왔다.유망 분야중 하나로 꼽히는 멀티미디어 CD롬 타이틀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차인규 현대자동차 연구개발팀 과장 36세.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졸.베스트셀러카인 쏘나타Ⅱ의 외장 부품을 설계했고 엘란트라 프로젝트를 관리.벤츠와 도요타 등 유명한 자동차 업체의 엔지니어를 능가하는 것이 꿈. 나인용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33세.홍익대 대학원 제품디자인과 졸업.크레도스와 프레지오 디자인을 맡았다.앞으로는 강한 개성을 추구하는 스포츠 쿠페의 디자인을 맡고싶어 한다.교통난을 해결할 차세대 교통기기 개발의 꿈. ◎김석규 한국투자신탁 펀드매니저 35세.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졸.미국 오리건주립대 경영학석사.13개 펀드 운용.연간 운용 총자산규모 3천8백억원으로 국내 펀드매니저중 최상급.국제적 펀드매니저로 이 분야의 명저서를 남기는 것이 꿈. ◎김두별 대우 기계부품부 사원 26세.고려대 경제학과 졸.21세기 무역거래의 새로운 패턴으로 자리잡을 3국간 거래 전문가로 활약 중.3국간 거래가 활발한 중동지역을 집중 연구,중동 전문가로 활약이 기대됨. ◎전진한 포항제철 기획조정실 26세.한양대 정외과 졸.포철의 심장부 투자기획파트에서 활약.사내 어학연수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어학에 발군의 실력.포철의 해외영업파트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희망. ◎조윤제 한국과학기술원선임연구원 31세. 암 정복에 도전하고 있는 구조생물학자. 서울대 식품공학과 졸. 코넬대에서 박사학위. 30세때 코넬대 의대 부속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쓴 논문이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지에 표지에 소개. ◎최흥섭 대한항공 선임연구원 33세.연세대 대학원 기계공학과 졸·공학박사.항공기의 중요부품을 가볍고 강한 복합재료로 바꾸는 세계적인 추세에맞춰 이 분야의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국산 항공기가 세계 하늘을 누비는 것이 희망. ◎이지희 오리콤크리에이티브 디렉터 34세.84년 한양대 신방과를 졸.(주)오리콤 입사.중앙일보 광고상 공모부분 대상,한국일보 신인부 대상 수상(84년).오리콤의 유일한 여성 CD.기억에 남을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게 꿈. ◎오충렬 외환은 외화자금부대리 33세.연세대 경영학과 졸.88년 외환은행에 입행,2년8개월동안 일선 은행업무를 익힌후 4년2개월동안 외환딜러로 근무.3개월간 미국 시카고 금융선물중개회사에서 연수.한국 제1의 데리버티브(파생금융상품)딜러가 꿈. ▷문화예술◁ ◎이병헌 연기자 25세.한양대 불문과졸.91년 KBS 탤런트 14기로 데뷔.드라마 「사랑의 향기」 「아스팔트의 사나이」 「해뜰 날」등에 출연.신선한 감각에 연기력도 우수하다는 평.차세대스타로 가장 유망. ◎신경숙 소설가 32세.85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소설집 「겨울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출간.삶의 속내를 들추는 우수젖은 문체의 미학 보여줌. ◎이미경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45세.이화여대 영문과와 대학원 정외과를 나왔다.87년 여성단체연합 태동때부터 살림을 도맡아왔다.가정·일터에서의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해결,여성도 당당히 주체가 되는 사회를 일구겠다고. ◎최용훈 극단 「작은 신화」대표 32세.서강대 철학과를 나온 연극연출가.「황구도」 「매직 아이스크림」 「쿠데타」등 연출.창작극 활성화와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우리연극만들기」운동주도.우리연극의 모델을 정립하는 게 꿈. ◎조덕현 서양화가 38세.서울대 회화과와 대학원 서양화과졸.이화대 미대 교수.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89년)·동아미술전 대상(90)을 수상.90년대 이후 미국화단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국제무대에 알려진 젊은 작가. ◎백혜선 피아니스트 30세.예원중 재학중 도미,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아티스트 디플롬과정 졸업.94년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1위 없는 3위로 입상,올해 서울대 교수로 발탁.국내 음악계의 기대주. ◎박호빈 무용가 29세.서울예술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을 전수받았다.94년 젊은 무용가을 대상으로 하는 「신세대 신작무대」대회에서 현대무용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 ◎박은주 김영사대표 38세.미혼.이화여대 수학과를 나와 83년 김영사에 입사.편집장 때 뛰어난 기획능력을 보여 베스트셀러를 많이 냄.89년 출판사 대표취임.전문지식의 대중화,대중의 고급화를 이루는 게 꿈. ◎이광모 영화사 「백두대간」대표 34세.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미 UCLA에서 영화연출 전공.한국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객원교수로 재직.예술영화 보기운동을 통해 상업영화에 물든 우리 영상문화를 바로잡는 것이 포부. ▷체육계◁ ◎현주엽 고려대 농구선수 20살.키 195㎝와 체중 103㎏.고무공같은 탄력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호쾌한 덩크슛에 경기의 흐름을 읽는 감각까지 탁월.지난 5월 「청소년 월드올스타」로 뽑혔다.세계적인 농구지도자가 되는게 꿈. ◎박세리 공주금성여고 골프선수 18살.여자 프로골프계 「천하통일」을 노리는 신예.올시즌 아마추어 3개대회와 프로대회 4개대회 우승.1라운드 평균타수 71·1타.내년 2월 여고 졸업과 함께 프로 진출을 결심,삼성물산과 후원계약을 맺었다. ◎전미라 군산 영광여고 테니스선수 17살.94년 윔블던 주니어테니스대회에서 「황색돌풍」을 일으키며 준우승한 「무서운 샛별」.내년 여고를 졸업하고 현대해상 테니스팀에 입단 예정.세계 50위권내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에 차있다. ◎주형광 프로야구 롯데 투수 19살.프로 최연소 완봉 및 완투 신기록을 보유한 고졸 2년생.배짱과 마운드 운용이 뛰어난 10대 투수 가운데 선두주자.한·일 슈퍼게임에 최연소 대표로 선발됐다.최고 왼손투수가 되는 게 꿈. ◎이경출 상무 양궁선수 25살.경남 복산국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양궁과 인연을 맺은 뒤 15년째인 올해 세계선수권 2관왕에 오른 늦깎이 남자 양궁 희망주.승부욕이 뛰어나다.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는 게 꿈.
  • 정치인의 나이/황병선 정치부장(서울논단)

    민자당에 불혹을 갓 넘긴 사무총장이 탄생하면서 정치판에서뿐 아니라 너나 할것없이 나이에 대한 관심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43세에 총장이라니.더구나 총선을 반년 남짓 앞둔 시점의 집권당 총장이 그게 보통자린가.난 이미 너무 늙어 버린것은 아닌가』하는 탄식을 자주 듣게 된다.50대의 별로 늙지도 않은 사람들로부터. 유권자 가운데 20∼30대가 60%를 차지하게 된것이 어제 오늘의 일인가.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서울신문사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9%가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또 이들의 61%는 세대교체가 선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정작 물갈이의 표적이 되고있는 정치권의 기류는 다른것 같다.하기야 그래서 「여론」은 선거라는 힘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 게다. 70세(김대중)와 69세(김종필)에 2년반 후의 대권경쟁에 대비,새 정당을 만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두금씨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 무궁한 스태미나에 감탄치 않을 수 없게 된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김영삼대통령과 함께 이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방법으로 세대교체 바람을 몰고왔던 「젊은 스타」들이었다. 김종필씨는 35세에 5·16을 주도,중앙정보부장을 맡았고 37세엔 공화당의장,45세에는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87년 61세로 대선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같은 시대 박정희소장은 44세때 대통령에 취임해 18년 집권후 62세에 시해당했으니 5·16은 엄청난 힘으로 세대교체를 강요했던 셈이다.당시 윤보선대통령은 63세,장면총리는 61세였다.더 거슬러 올라가면 48년 취임시 이승만대통령은 73세였고 85세때 4·19로 하야,별세했으며 이시영 부통령은 80세에 취임했었다.이같은 고령은 일제에 오랫동안 투쟁을 해온 지도자들이 정부의 요직을 맡은데서 온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47세에 제1야당 총재에 선출된 김영삼대통령과 함께 야당에서 40대 기수론을 펼쳤던 김대중씨는 『젖비린내 난다(구상류취)』는 선배들의 비난을 뚫고 71년 46세로 신민당 대선후보가 됐었다.그후 굴곡의 세월을 보낸뒤 62,67세에 각각 대권에 재도전했었고 72세가 되는 97년의 「대권 4수」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40대 기수론을 전후한 시기 신민당의 유진산 당수는 65세,김홍일당수는 73세에 각각 취임했었으니 김대중후보는 김영삼총재와 함께 대단한 정치권의 물갈이를 달성했던 셈이다. 이 5·16의 30대 젊은 주역,그리고 야당 40대기수론의 선두주자 중 한사람이 고희의 70에 여전히 대권수업을 하며 이번엔 세대교체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으니 우리 정치사의 아픈 대목이 아닐수 없다. 사회적 정년은 55세에서 65세가 보통이다.몸을 쓰는 직업은 55세,경륜과 두뇌가 요구되는 교수같은 자리는 65세로 돼 있다. 다만 정치에는 정년이 없다.청년의 패기와 장년의 세련미,노년의 완숙한 지혜,이 노·장·청 3박자가 조화를 이뤄 국가를 이끌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에겐 각기 시대적 역할이 주어져 있게 마련이다.이승만 대통령의 건국,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같은 줄기에서 이를 이어받아 세대교체를 이룬 5·6공,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를 각기 그 시대정신이랄 수 있다. 두김씨의 시대적 역할은 60년대와 70년대의 세대교체 촉발과 「투쟁」으로 끝났거나 그렇지 않으면 앞에 제시한 지도자들의 역할을 되풀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역사를 정체시킬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오직 불혹이다 고희다 하며 나이만을 따지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화·전문화 등 다가오는 21세기 한국의 시대정신에 맞는 자질과 사고력을 갖춘 「지도세력」을 찾아내고 키워나가자는 것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세대교체의 핵심일 것이다.
  • 경제협력(21세기 한­일 새 지평:3)

    ◎수평 분업으로 공생체제 구축을/바람직한 한·일의 경제관계/경제블록화 대응,보완관계 필요/무역장벽 제거… 기술 등 공유해야 8·15광복 50주년을 맞는 지금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시대에 진입해있다.공산체제 붕괴이후 이념 전쟁대신 경제전쟁이 각국의 운명을 거는 싸움이 되었다.유럽국가들은 EU통합을 통해 국제경쟁의 우위확보에 초국가적인 대응체제를 구축했다.미국은 범미주의를 회복하고 세계경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으로 북미자유무역연합(NAFTA)을 출범시켰다.NAFTA는 미국의 기술과 자본,캐나다의 풍부한 자원 그리고 멕시코의 저렴한 노동력을 결합시키는 강력한 경제블록으로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동맹군의 성격을 띤다.이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대형공업국가들의 희생이 따르고 있다. ○충격흡수력 잃어 실제로 일본과 한국은 통화절상과 시장개방 압력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일본의 경우 8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의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플라자 협약에 의거,달러에 대한 엔화의 가치가 두배로 절상됐다.일본은고도의 기술축적에 힘입어 당시 통화절상의 충격을 힘겹게 이겨냈다.그러나 최근 들어 엔화절상압력이 다시 가해졌다.금년초 엔화는 달러에 비해 15%이상 절상됐다.여기에 미국이 슈퍼301조라는 초법적 무기를 통해 자동차등 주요 일본상품에 무자비한 무역보복조치를 취하고 있다.그러자 일본경제는 더 이상의 충격흡수 능력을 잃고 구조적 침체현상을 겪고 있다.그리고 엔화는 무력증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본경제가 퇴조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경제는 일단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자동차·철강·조선·반도체 등 주력 상품들이 일본수출시장을 잠식하면서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그러나 이것은 단기적 과도 현상일뿐 내면적으로 심각한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우선 이미 고개를 들기 시작한 원고가 수출증가를 반전시키고 있다.외세에 의한 이득을 외세에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그러나 이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산업기반의 대일 의존도가 커서 일본경제의 위기가 이전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 수출산업의 근간인 자본재와 원료·중간부품의 일본의존도가 30%나 된다.이러한 구조하에서 일본 엔화절상으로 인해 국내 물가가 오르고 산업전반에 걸쳐 고비용구조화하고 있다.결국 일본과 한국 두나라 경제가 함께 위기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 반사이익 그러면 광복 50주년을 맞아 향후 바람직한 한·일 경제관계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양국 경제는 근본적으로 적대적 경쟁관계가 아니라 우호적 보완관계를 가져야 한다.국제 시장을 지배하는 유일한 논리는 힘의 논리이다.따라서 양국이 공동 대응능력을 기르는데 국경을 초월하여 힘을 모아야 한다.이런 견지에서 한·일간의 수평분업을 통해 공생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양국 경제가 수직적으로 연결될 때 한 나라가 위험을 맞으면 다른 나라도 같이 위험을 맞는다.그러나 수평적으로 연결될 때 한 나라 경제가 위험을 맞으면 다른 나라가 이를 상당부분 상쇄하면서 위험제거효과를 가져온다.양국경제는 역사적으로도 대륙으로부터의 문물을 전수해가며 협조한 경험이 있다. ○시너지효과 기대 일본경제는 무역흑자때문에화를 입고 있다.일본의 연간 무역흑자는 1천3백억달러나 된다.지나친 흑자유입은 내부적으로 경제를 고물가체제로 만든다.또한 외부적으로 외국으로부터 통상압력을 거세게 받는다.무역흑자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난관을 자초한 것이다. 반면에 한국 경제는 만성적인 무역적자구조를 면치못하고 있다.경제발전이 기술개발에 의한 부가가치 창출보다는 단순조립을 통한 수출실적증대 위주였다.따라서 경제가 외형은 크나 내실이 없다. 이런 구조하에서 한·일 양국은 무역장벽을 제거하여 기술·자본·인력등 모든 생산요소에 대해서 공유체제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금세기초 식민지배 관계라는 앙금을 씻고 다가오는 2000년대의 한일 신시대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양국경제의 협조는 필수적이다.그러면 양국경제는 수출과 수입에 있어 불균형구조를 개선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경우 양국 경제는 국제시장에서 어떠한 위협도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것이다. 이박에 한·일 양국은 상호보완 차원에서 북한 경제를 함계 도와 궁극적오로 북한도 공동번영체의 한 구성원으로 만드는 노력도 해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47세) ▲서울대 공대졸 ▲미 컬럼비아대 경영학 박사 ◎기업제휴 늘려 경제국경 낮춰야/한·일경제의 새로운 전개/한국 규모 커져 파트너로 재인식/반도체 교역급증… 역조개선 징후 올해는 제2차대전 종료 50주년이다.또 동시에 한일국교 정상화 30주년이기도 하다.전자는 「광복 50주년」으로서 한국인에게 선뜻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후자는 한국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내에 여러가지 견해가 있을 것이다.필자는 이것을 「개발 30주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한일국교정상화가 한국의 경제발전의 커다란 실마리가 됐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 실마리 한일국교정상화 추진이 미국의 대소련 포위망정책의 일환,즉 냉전의 산물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권력기반이 아직 다져지지 않았던 60년대 초반에 박정희정권이 국교정상화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해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교섭의 타결을추진한 점이다.『조국을 근대화하는데 최초로 필요한 재원과 기술을 얻기 위해 한일관계는 타결되지 않으면 안됐기 때문이다』(김종필).이 선택이 올발랐던 것은 국민이 경제발전을 추진한 박대통령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 등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30년동안 한일경제관계를 간단히 돌이켜 보자.우선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양국의 무역관계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크게 변화했다는 점이다.한국의 대일무역은 65년 2억1천60만달러 규모에서 94년 3백89억1천3백만달러로 1백84배나 늘었다.연평균 19.7%의 신장률을 보였다.이러한 급격한 양적 변화는 당연히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그것은 일본의 한국으로부터의 수입품목의 구성변화에 명확히 나타난다.65년에 16.9%밖에 안되던 공업제품비율은 93년에는 80%에 달하고 있다.이 사실은 같은 해 일본의 수입전체에서 공업제품의 비율이 52%였던 점을 생각한다면 한일관계가 일본과 제3국과의 관계보다 경제적으로 긴밀화(수평분업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미·일 의존 낮아져 두번째로는 한국의 무역에서 점하는 일본의 셰어의 저하다.미국의 셰어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저하하고 있어 이것은 한국에 있어서의 시장의 다각화,특히 미일경제에의 의존의 저하로서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한국경제는 미일의 바운더리를 넘어서 세계에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양국인의 왕래의 활발화이다.한국을 찾는 일본인 여행자수와 일본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94년에는 각각 1백64만4천명,1백5만2천명에 달했다.한국인의 일본 방문자수가 엔고하에서도 급증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상 세가지 점은 한일경제관계의 긍정적 측면으로 말할 수 있다.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역시 짙어진다.한일간에는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이 존재하고 있다.이 원인은 기본적으로는 한국이 수출촉진을 통해 고도성장을 꾀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는 자본재산업의 육성을 뒤로 돌렸다는 점에 있다.자본재 공급은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해 왔다.이것은 한국경제의 상황에서 본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그렇지만 이러한 정책은 결과로서 수입유발적인 산업구조를 형성시켜 거액의 대일적자를 한국에 초래시켰다. ○역조 성장정책 탓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양국경제관계를 생각해보고 싶다.지난해이후 엔고는 다시 한국의 대일무역적자를 급증시키고 있다.그러나 지금까지 없던 현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양국간에 가져오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먼저 반도체등 부가가치가 높은 공업제품의 대일수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반도체 수출의 급증은 대일무역 적자축소의 돌파구역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두번째로는 한국기업에 의한 일본기업의 매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한국기업은 대일시장공략의 거점만이 아니고 기술 및 인재 등을 확보해 국제화 추진상 유리한 발판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셋째 삼성그룹과 닛산과의 승용차생산 제휴다.승용차생산은 전후방 연계가 넓다.그 승용차산업의 공장이 부산에 설치된다는 사실은 한국남부와 규슈지방의 경제적 교류를 한층 활발하게 만들어 한일경제의 보더리스(borderless)화를 진전시켜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일 기업 매수 늘어 이상 세가지 측면에서 양국경제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한국경제의 실력향상은 양국간의 경쟁을 심화시킬 뿐만이 아니라 상호 파트너로서 재인식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10년후 한일국교 정상화 40주년은 한국에 있어 보다 긍정적으로 맞이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노조에 신이치 ▲일 아세아대 교수(53세) ▲와세다대 경제학과졸 ▲아 경제연 국제교류 실장
  • “갱목 껍질·지하수로/16일간이나 버텼다”

    ◎광산에 매몰 구조 양창선씨를 통해본 「한계」/외부와 연락 가능했던게 가장 큰 힘/정신적 의지가 생명 연장여부 관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에 대한 구조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지난 67년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에 매몰됐다 16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양창선(64·충남 부여읍)씨가 세인들의 기억에 되살아나고 있다. 이제부터는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한계 상황을 극복하는 사람만이 생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최후의 한사람까지도 구조작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양씨의 사례가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구봉광산 배수부에서 막장의 물을 퍼내는 일을 했던 양씨는 67년 8월22일 하오9시 지하 1백25m 갱안에 갇혔다. 막장 안을 받치던 갱목이 너무 오래돼 썩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갱안에 갇힌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6·25때 해병으로 참전해 통신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 플래시의 건전지,망가져 뒹굴던 군용 전화기 등을 이용해 불을 밝히고 갱밖으로 연락을 취하는 것이었다. 외부와의 연락이 가능했던 것이 생명을 부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다른 매몰 사고의 예를 보더라도 「살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더라면 16일을 견뎌낸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는 천장 벽으로 흘러내리는 물을 헬멧으로 받아마시고 작업복에 스며있는 풀과 갱목의 껍질을 빨아먹으며 연명했다. 매몰 사고 당시 1백75㎝,62㎏이었던 그는 결국 45㎏이라는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구출됐다. 6·25때 한쪽 눈을 잃어 원호대상자이기도 한 그는 전투를 하면서 1주일 이상 굶은 경험이 생환에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또 82년 9월3일에는 강원도 태백시 태백탄광에서 채탄작업을 하던 전재운(당시 47세)씨 등 4명의 광원이 매몰 사고 발생 14일만에 극적으로 생환했다. 93년 8월17일에는 강원도 태백시 연화동 한보에너지 통보광업소의 여종업(당시 32세)씨가 지하 2천1백88m에 매몰됐다가 사고발생 91시간만에 구출되기도 했다. 양씨 등은 당시 한결같이 『같은 상황이라면 육체적인 어려움보다 꼭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명력의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 멕시코여당 지방선거 참패/할리스코주 12일투표/반정시위 확산 조짐

    【과달라하라·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멕시코)AP AFP 로이터 연합】 멕시코 야당인 국민행동당(PAN)은 13일 멕시코 중서부 할리스코주 선거에서 집권 제도혁명당(PRI)을 누르고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PAN은 21.24%의 개표율을 보인 현재 PAN이 59.4%를 획득,37.5%에 득표에 그친 PRI를 앞서고 있다고 밝혔다. PAN측은 또 할리스코주의 주도인 과달라하라를 비롯한 몇몇 도시에서 PRI를 2배 이상의 표차로 압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앞서 12일 투표가 끝난 직후 행해진 출구 여론조사에서 중도 우파인 PAN이 54.3%,PRI가 35.1% 지지로 나타나 PAN측의 승리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이번 할리스코주 선거에는 주지사 후보로 10개 정당이 나서고 있지만 PRI 후보인 에우헤니오 루이스 상원의원(47세)과 엔지니어출신인 PAN의 알베르토 카르데나스(36세)가 경합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또 지방의회 의원과 1백24명의 시장도 선출하게 된다. 한편 이날 멕시코시의 대대적인 시위에 참가한 군중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집회지도자들은 『항의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면서 정부의 군사개입을 중지하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토록 압력을 계속 행사할 것을 다짐했다. ◎「정권위기 탈출」 카드 악수로/내전으로 치닫는 멕시코/군부강경파 반군소탕작전에 여론 악화/경제위기 해소국면 “찬물”… 혼란 가중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를 중심으로 한 정부군과 반군간의 전투가 점차 장기화되면서 멕시코 정국이 일대 혼란에 빠지고 있다. 지난해 1월에도 내전을 통해 양측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바 있는 정부군과 치아파스주 농민반군의 이번 충돌은 특히 최근의 페소화 폭락사태에 이어 터져 나왔다는 점에서 정국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일어난 내전은 정부의 원주민 차별대우 정책으로 인한 치아파스주 농민들의 상대적 빈곤감과 소외감이 폭발한 것이었다.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발효에 따른 경제적 박탈감과 원주민에 대한 정부의 교육·의료혜택 차별이 무장봉기를 일으킨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13개월만에 재연된 이번 내전은 발생 원인에서부터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표면적 원인은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이 지난주 수도 멕시코시티와 베라크루즈주 등에서 반군인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전선(EZLN)의 무기은닉처가 발견된데 따라 반군소탕령을 내린데서 시작됐다. 정부측은 「마르코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반군지도자 라파엘 세바스찬 기옌 등 반군지도부를 검거함으로써 내전이 전면전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 치아파스 주민들의 생활도 정상화시킨다는 것을 구실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겉으로 드러난 명분과는 달리 멕시코 정부와 군부내 강경파간의 알력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이는 페소화 가치폭락으로 국가경제 마비 직전까지 갔다가 미국의 긴급지원으로 겨우 한숨을 돌린 정부가 돌연 반군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라는 의혹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와 관련,멕시코시티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엘 피난시오레」는 12일 군부지도자들이 세디요 대통령에게 반군진압을 강요했다고 보도해 관심을 끌고 있다.즉 군부지도자들이 세디요 대통령에게 반군 진압과 대통령직 포기 가운데 하나를 택하도록 협박한 뒤 대통령의 공격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멕시코정부는 페소화 폭락으로 인한 경제위기와 군부내 강경파의 위협에 따른 정권위기를 반군진압으로 모면하려 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내전이 진행되면서 정부측의 의도는 빗나가고 있다.정부군과 반군의 전투가 시작되자 멕시코시티에서는 11일 10만여명이 도심에 집결,정부의 강압 정책을 비난하고 사파티스타 반군을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떨어진 인기를 만회하기는 커녕 여론만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12일 멕시코 중부 할리스코주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제도혁명당(PRI)이 집권 66년 사상 최대의 패배를 당할 것이란 전망이 이같은 집권 여당의 어려움과 멕시코의 정국혼란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이홍구 내각」인물 분포도(12·23 개각)

    ◎완숙한 돋보이는 “실무진용”/평균연령 56세… 박사만 8명/서울출신 6명… TK4명으로 약진 23일 단행된 전면개각으로 새 모습을 갖춘 「이홍구내각」은 학력및 출신직업분포에서는 직전 내각과 비슷하다.그러나 지역분포는 상당히 달라졌으며 평균나이도 다소 높아졌다. ○…이번 개각은 대대적 정부조직개편이후 단행된 것이어서 전체 각료 숫자가 25명에서 23명으로 줄었다. 신임 각료들의 출신 지역별 분포를 볼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구·경북(TK)세의 약진과 부산·경남(PK)세의 퇴조이다. 이영덕전총리내각에서의 각료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은 이병대전국방·권영자전정무2장관등 2명에 불과했다.이병대전장관은 부산의 경남고를 졸업,엄밀한 의미에서 「TK」출신이 아니었으므로 「TK」세는 거의 없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이번 내각에서는 「TK」출신이 4명이나 입각했다.비율로 보면 5명의 「TK」출신이 포진했던 새정부의 제1기 황인성전총리 내각으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그것도 민자당의 중진인 김윤환·김용태의원이 각각정무1장관과 내무부장관에 기용됨으로써 정치적 무게가 한층 실린 셈이다.환경부장관이 된 김중위의원도 지역구는 서울이지만 고향은 경북 봉화이다. 「PK」출신은 6명에서 4명으로 줄었다.서석재총무처장관을 제외하면 정치적 비중도 크지 않은 인사들이 「PK」출신 각료로 배치되었다. 서울출신도 5명에서 6명으로 늘어 전체의 26%를 차지하면서 최다 각료를 배출했다.대전·충남 출신도 4명선을 유지했다.충북,광주·전남과 이북출신은 1∼2명으로 역시 비슷한 분포를 이루었다. 전북과 제주는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1명의 각료도 배출하지 못했으며 각각 1명씩 있었던 경기·강원 출신이 하나도 없는 것도 눈길을 끈다. ○…신임 각료들의 평균 연령은 1살 이상 높아졌다.65세를 넘는 고령층이 한 명도 없는 반면 50대 후반의 노련한 인사들이 상당수 등용되었다.55∼60세 사이의 연령을 가진 각료는 모두 15명으로 전체의 65%나 되었다. 새 내각의 평균연령은 56.2세.이영덕전총리 내각의 각료들의 평균 연령은 55세였다. 공로명외무부장관과 김윤환정무1장관이 62세로 가장 나이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가장 젊은 각료는 지난번 내각에서도 역시 최연소였던 서상목보사부장관(47세)이다. ○…출신대학별 분포는 이전 내각과 비슷하다.서울대 출신이 전체 각료 23명 가운데 13명을 차지,과반수를 넘어섰다.지난 내각에서는 25명중 14명이었다. 해외유학파는 이총리를 비롯,2명이었고 고려대 출신도 2명이다.육사출신이 2명에서 1명으로 준 대신 공군사관학교 출신의 이양호합참의장이 국방부장관에 올랐다. 이어 이화여대,외국어대,동아대,경북대 출신들이 각각 1명씩 장관자리를 차지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인사들의 숫자는 조금 줄었으나 상당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지난 내각에서 경기고 출신은 8명에 이르렀으며 이번 내각에서도 7명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했다.서울대 법대 출신은 지난번보다 2명이 준 6명이다. ○…출신직업도 유사한 분포를 나타내고 있다.「이영덕 내각」에서는 관료및 군출신 11명,의원등 정치권출신 6명,학계출신 6명,언론계등 기타출신 2명이었다.이번에는 관료 10명,정계 6명,학계 5명,언론 2명 등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순수한 외부영입은 한명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게 이번 개각의 큰 특징중의 하나이다.학자출신이라고 하더라도 한번 이상 공직을 거쳤기 때문에 공직자 재산공개 등으로 구설수에 오를 여지가 별로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새 내각이 「시험내각」이 아니라 「완숙한」 실무진용을 갖췄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사학위를 소지한 국무위원은 미국의 예일대 정치학박사인 이총리를 비롯한 학자출신을 중심으로 모두 7명이다.세계화를 지향하는 내각으로서 지적인 수준은 합격점으로 평가된다. 경상현정보통신부장관은 연구활동도 하면서 관료 경험도 있어 학자·관계 어디에도 분류될 수 있는 인사로서 미국 MIT대학 공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 유산에 시신까지 학교 기증/교통사고로 숨진 한양대 공응대교수

    ◎남김없이 주고 떠난 참스승/절제된 독신생활… 묵묵히 사도 실천/남몰래 제자사랑… 10여명 학비지원 평생 독신으로 살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한 대학교수의 시신과 유산이 고인의 뜻대로 후학들을 위해 자신이 봉직한 대학에 기증됐다. 지난 14일 제자들과 함께 실습을 다녀오다 숨진 한양대 안산캠퍼스 체육학과 공응대(60)교수. 유족들은 공교수의 시신을 해부용으로 써달라는 기증서를 이날 이 학교 의대 해부학실장인 정호삼교수에게 전달하고 퇴직금을 포함한 재산 2억여원도 장학기금으로 전했다. 공교수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지난 14일 하오2시쯤.용평에서 있은 체육학과 동계스포츠 교육프로그램인 스키캠프에 참여했다가 귀경길에 오르던 중이었다.공교수는 다음날 있을 서울대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서둘러 출발했다.제자가 모는 승용차에 몸을 싣고 용평콘도에서 횡계방향으로 5분정도 지날 무렵이었다.마침 전날부터 내린 눈으로 빙판을 이룬 왕복2차선의 커브길이 나타났다.아차하는 순간 차가 미끄러졌고 곧바로깊이 3m의 저수지에 추락했다.주위사람들이 사고를 목격하고 현장에 뛰어갔을때 공교수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전문산악인이자 체육학계의 존경을 받아온 원로학자였던 그의 생애는 모범적이면서도 화제로 가득찼다. 개성에서 기독교집안의 6남매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17살되던 51년 1·4후퇴때 부모님들을 남겨두고 형제자매와 함께 월남길에 올랐다. 대구에서 정착한 그는 고아원생활속에서도 병원에서 일하는 누나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학업을 계속,서울대 생물학과에 진학했다.서울대 문리대 산악반에서 산사람으로서의 생활이 시작됐다.우리나라 산은 안가본 곳이 없다. 대학의 일반직원으로 생활하다 71년 뒤늦게 미국 유학길을 올랐고 81년 47세의 나이로 대학강단에 서기 시작한 것도 산사나이로서의 보인 불굴의 신념의 단면이다. 산악인으로서의 경력도 화려하다.80년 46세의 나이로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봉(해발6천9백60m·아르헨티나소재)을 국내 산악인으로 처음으로 등정했다.또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는 서울대 문리대 OB산악회가 주최,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산맥을 따라 주요산을 오르는 백두대간 종주등반에 참여해 예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총연장 6백55㎞의 전구간을 종주,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학문적으로도 체육학계에 기여한 공로도 적지 않다. 그동안 운동생리등에 대한 1백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는등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쳤다.85년엔 대한민국 체육상 연구부문을 수상했다. 그는 자기관리에도 혹독하리만큼 엄격했다.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술,담배도 하지 않는등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왔다.교수쯤 되면 있을법한 자가용도 없이 평생을 지냈다.매일 학교버스로 출·퇴근하는 절제와 검소의 생활을 실천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제자사랑의 실천에는 더없이 따뜻한 면을 보였다.경제적 여력이 없어 학업을 잇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어릴때부터 숱하게 보아온 그는 남몰래 10여명의 학생들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흔쾌히 사비를 털어왔다. 공교수의 영결식은 18일 상오 한양대병원에서 거행된다.
  • 차기대선 출마 예정/퀘일전부통령 입원

    【인디애나폴리스 AP 연합】 댄 퀘일 전미 부통령이 28일밤(현지시간) 생명을 위협할수도 있는 폐내 혈액 응고증세로 인디애나 대학병원에 입원했으나 안정을 되찾았다고 병원측이 밝혔다. 올해 47세의 퀘일 전부통령은 이날밤 호흡 곤란을 일으킨후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는 수주일후 차기 미대통령 선거전 출마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 감원한파 “이젠 끝”/어깨펴는 미 블루칼라들(현장 세계경제)

    ◎경기활황에 일자리 늘고 임금 올라/향후 10년간 1천2백만 고용 증가 예상… 67%는 고임 직종 10년 넘게 해고와 소득감소의 한풍에 시달려왔던 미국의 블루칼라층에게 드디어 고용급증과 임금상승의 훈풍이 불고 있다.이는 물론 80년대 내리막길을 달렸던 미국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경기가 활황세로 돌아선 덕분이다. 그러나 경기호전 못지않게 80년대에 해고되지 않고 살아남은 블루칼라들이 나이가 들어 대거 퇴직을 앞두게 됨에 따라 갑자기 대대적인 고용충원의 필요성이 대두된 행운의 여파이기도 하다. 이처럼 고용구조의 내재적 요인이 가세한 결과 미국 생산직 근로자를 향한 훈풍은 일시적인 바람에 그치지 않고 10년 정도는 족히 계속될 것이라고 비즈니스위크지는 최신호에서 전망했다. 비근한 실례를 들어보면 스티브 볼이라는 26세난 청년은 올 봄만 해도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연봉 1만2천달러의 저임 잡급직에 만족해야 했으나 지금은 크라이슬러사 디트로이트 공장에서 3만달러 보수의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다.오버타임 수당까지 합하면 연수입이 5만달러에 달하는데 그가 일하는 공장의 근로자 평균연령은 54세에 이른다. 10여년 전 미국의 제조업이 세계시장에서 줄줄이 밀려나자 블루칼라 감원 한풍이 불어닥쳤으며 신규충원도 규모가 바짝 줄어들었다.그런데 지금은 수백만명의 미국 공장근로자들이 퇴직준비 대열을 이루고 있다. 미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제조업 생산직근로자는 총 노동인구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3천만명인데 2005년까지 10년동안 잘해야 4백만명의 블루칼라 일자리가 추가될 전망이다.그러나 같은 기간동안 8백만명의 「선배」블루칼라가 퇴직,추가창출의 배나 되는 교체보충 일자리의 기회를 젊은 후배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이다. ○근로자 평균54세 더구나 젊은 사람들에게 열릴 이 고용창출·보충의 1천2백만명 일자리 중 8백만명 이상이 주급 4백9달러(약33만원)이상의 비교적 고임 블루칼라직으로 추산된다. 블루칼라 훈풍은 중산계층이 마냥 축소되는 미국의 현 추세에 대한 저지력을 발휘할 것이다.미국 생산직근로자들은 지난 79년부터 올해 사이에 인플레를 감안한 실질임금이 15%나 하락,중산층 상승의 길로부터 한층 멀어졌다.그러나 앞으로는 보충해야 될 고임 블루칼라직이 대량 양산될 전망임에 따라 중산층진입의 꿈을 이룰 블루칼라들이 훨씬 늘어날 것이다. 『지금 나이든 미국의 블루칼라들은 별다른 유산이 없다해도 자식이나 후배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란 상속물을 물려줄 것』이라고 MIT대의 한 경제학교수는 말한다. 물론 근로자 은퇴로 빈 일자리가 모두 충원된다는 보장은 없다.자동차산업의 빅스리는 향후 10년동안 퇴직·공백이 될 24만명의 일자리를 거의 빠짐없이 충원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제너럴 일렉트릭이나 보잉사 등 많은 대기업들은 완전보충을 대신할 방편을 찾고 있다. ○중산층 진입 늘듯 그렇더라도 미국 제조업은 현재 지난 10년간의 조직재편에 의해 충분히 「날씬한」 고용체계를 갖췄으며 경쟁력도 높아져 더 이상 해외수입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포드·GM·크라이슬러 등 빅스리는 현재 44만명의 노조가입 근로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80년대의 알퍅한 신규고용층 탓에 이들은 평균 경력 23년에 평균연령이 47세에 달한다.근로자 대다수가 50대 중반에 퇴직할 예상임에 따라 10년동안 반수 이상의 근로자가 회사를 떠날 것이다. 수많은 대형 제조업체의 사정도 대동소이해 45세이상 근로자 비중이 40%에서 50%에 걸쳐있다.GM 52%,제너럴 일렉트릭 50%이고 제조업중 기계분야 노조근로자의 평균연령이 42세로 나타나는 등 서비스업을 총망라한 미국 근로자 전체 평균치인 30세보다 매우 고령화되어 있다. ○생산직 학력 상승 또한 제조업체는 민간산업 중 다른 분야에 비해 퇴직연금 체제가 양호하게 정비되어 있어 퇴직을 「고대하는」 고령근로자가 많다.하층 출신의 젊은이들에게 화이트칼라는 아니지만 「좋은」 블루칼라 일자리 문호가 어느때보다 활짝 열린 셈이다. 그렇더라도 기업들이 기술숙련 여부를 갈수록 중하게 챙김에 따라 블루칼라의 학력이 높아지고 있다.포드의 경우 10만2천여명의 현 생산직 근로자 가운데 19%가 고교중퇴 학력을 가지고 있으나 91년이후 입사자 중에는 단 3%에 불과하다.반면 현재 18%에 머문 대졸 학력자가 3분의 1이나 됐다. 미국 인구동태상 젊은이의 비중과 숫자는 줄어드는 추세인데 이처럼 퇴직자의 공백을 보충하려는 공장의 구인 광고는 급증할 전망이므로 저임 서비스직에서 괜찮은 생산직으로 직업을 전환하는 젊은이가 속출할 것이며 나아가 서비스직의 저임 현상도 바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 “핵타결은 김정일 영도 덕분”/일신문,평양시민 반응 전화조사

    ◎환영 대세속 미와 관계개선엔 신중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 합의문에 서명을 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이번 합의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1일 평양에 무작위로 전화 취재,평양 주민들의 이번 합의에 대한 반응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평양 주민들은 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합의를 이룬데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체적으로 합의에 이르는 경과 및 구체적인 내용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으로 상세히 보도된 듯한 인상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후계지도자로 확실시되고 있는 김정일에게 공을 돌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 덕분에」라고 말하는 주민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미국과의 관계가 곧 좋아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신중한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평양시내에서 꽃병 등을 만드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올해 44세의 회사원은 『우리들의 운명을 전부 맡기고 있는 김정일동지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다』면서 김정일의 역할을 강조. 이 주민은 『조선인민은 모든 합의가 김정일서기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무역회사 사장이라는 올해 47세의 주민은 미국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에게 몇번이나 전쟁을 걸려했던 미국에 대해 불신감이 있다』면서도 『핵문제가 해결돼 동북아시아에 진정한 평화가 오게 될 것 같다』고 말해 평화에의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 다른 회사원(37)은 『미국의 정치가들 가운데는 우리 나라와 관계개선을 바라지 않는 자가 있다』면서 미국에 대해 뿌리깊은 불신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기도 했다.
  • 숨진 서울교대 여학생 시신 기증

    ◎이승영양 어머니,평소 딸 뜻다라 고대병원에/“하늘나라서 선생님 꿈 이뤄라” 친구들 오열 『승영이도 생전에 못다한 사회봉사의 꿈을 이루게 되어 기뻐할 것입니다』 16번 시내버스를 타고가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숨진 이승영양(20·서울교대 국어교육과 3년)의 유가족이 평소 이양의 뜻에따라 오는 24일 발인 직후에 고려대 의료원에 시신을 해부실습용으로 기증한다. 이양은 지난 17일부터 동대문구 장안동 안평국민학교에서 교생실습을 시작,불과 닷새만인 21일 만원버스를 타고 어린이들이 기다리는 교단으로 향하다 꽃다운 나이에 변을 당했다. 22일 상오 이양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성동구 화양동 건대부속 민중병원 영안실에는 어머니 김영순씨(46·서초구 반포본동 한신상가아파트)등 유가족과 교인·친지 등 1백여명이 찾아와 이양의 못다한 뜻을 기렸다. 남편의 1주기를 불과 20여일 앞두고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딸을 잃은 김씨는 밤새 이양의 영정을 끌어안고 울어지친 모습이었다. 김씨는 『승영이가 아빠를 무척 따랐어요.돌아가신 뒤로는오히려 줄곧 저를 위로하느라 「아버지가 계신 곳은 어떤 곳일까」를 되묻곤 했는데…』라며 말끝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이양의 아버지인 고 이정식대령(당시 47세·육사 26기)은 육군 군수사령부 작전처장으로 근무하던중 지난해 11월14일 과로로 순직,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이양은 1남1녀중 맏딸로 아버지가 혼자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방학이나 주말이면 어김없이 부산에 내려가 밀린 빨래를 하고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드리는 등 효심이 지극했다. 때문에 아버지가 갑자기 숨졌을때는 식음을 전폐하고 몸져 눕기도 했으나 곧 슬픔을 가누고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하며 평소 소망인 교사가 되어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꿈을 키워나갔다. 또 틈만 나면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와 동생 상엽군(19·경문고 3년)에게 『만일 내가 죽을 경우 시신기증을 통해 마지막 사회봉사의 길을 걷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해왔다. 영안실 한쪽 귀퉁이에 수습된 빛바랜 헝겊가방과 필통,5학년2학기용 사회·자연 교과서와 교생지도안들이 한 예비교사의 이루지못한 꿈을 보는듯 쓸쓸하게만 느껴졌다.그러나 죽어서 봉사의 길을 걸은 이양의 영정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아리스티드 15일 귀국/세드라 어제퇴임/군통수권 「뒤페르발」 인계

    ◎미국 식량·직업훈련 제공 계획 【워싱턴 AFP 로이터 연합】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아이티 대통령 당선자의 귀환이 15일로 확정되었으며,귀국길에는 미국 고위관리가 동반할 것이라고 디 디 마이어스 백악관 대변인이 10일 밝혔다. 3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아리스티드 대통령 당선자는 자신의 귀국시 미국 고위관리의 동반을 요청했으며,현재 중동에 나가있는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아리스티드와 함께 아이티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백악관 대변인이 말했다. 【포르토프랭스·워싱턴 AP 연합】 지난 3년간 아이티를 철권통치해온 라울 세드라중장이 10일 사임한 뒤 출국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미국에 망명중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당선자의 귀환길을 열어주었다. 세드라장군은 이날 최고사령부 앞에서 벌어진 간략한 퇴임식에서 아이티군의통수권을 군부 제2인자인 장 클로드 뒤페르발 소장에게 인계했다. 한편 아리스티드 대통령당선자가 귀국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기타 원조국들은 아이티에 대한 대규모 구호노력을 기울였다. 미국은 식량과 내년초까지 아이티인 5만명을 고용할 직업훈련 계획에 필요한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미국은 당분간 아이티인 상당수에 대한 식량제공을 계속할 예정이다.이와 함께 미국 기술자 수십명이 수일내로 아이티로 가서 정권 인수과정을 도울 예정이다. ◎아이티 새 군사령관 뒤페르발/세드라와 육사동기… 3개국어 능통/“겸손한 합리주의자”평… 이혼 시련 10일 사임한 아이티 군부의 실력자 라울 세드라 중장의 후임자인 장 클라우드 뒤페르발 소장은 올해 47세로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강경파들이 포진한 군부내에서도 비교적 합리적인 군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망명중이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당선자에 의해 세드라장군의 후임자로 임명됐으며 이 결정은 『아이티 군부실세들을 분할 통치하려는 아리스티드 대통령당선자의 기도』라는 평가를 받았다.뒤페르발은 쿠데타로 집권했던 아브릴중장의 통치하인 89년3월 마약단속부대 사령관을 맡았다가 이듬해 경찰사령관으로 영전했으며 또 당시 아리스티드 대통령에 의해 경찰총수직을 맡은지 1년여만에 소장으로 진급,육군사령부로 전속됐다. 뒤페르발장군은 스포트라이트받는 것을 꺼려하는 정통군인으로 저녁시간도 가급적이면 시내 중심가의 화려한 연회장보다는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길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오랜 친구는 『뒤페르발 장군은 상류사회 사람들하고나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며 성격 또한 겸손하고 공손한 편이다』고 평했다. 칠레에서 수학한 그는 세드라장군과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스페인어,불어,아이티토착어인 크리올어에 능통하며 남미출신의 부인과 이혼한 상태로 딸 하나를 두고 있다.
  • 남정임 2주기 추모영화제/새달2일 대표작 「초연」 무료상영

    미녀배우 고 남정임의 2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영화제가 9월2일 씨네하우스에서 열린다. 지난 60∼70년대 윤정희,문희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남정임은 92년 9월2일 47세의 나이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추모 영화제에서 상영될 영화는 그의 대표작인 「초연」(1966년작,정진우 감독). 이 작품은 부자집 아들로 모든 것을 갖춘 신성일과 그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는 가난한 여대생 남정임,그리고 신성일의 친구이자 가난한 화가인 이순재와의 삼각관계를 그린 멜러영화.남정임은 이 영화에서 천사와 창녀의 얼굴을 동시에 지닌 경아역으로 열연해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 영화제에는 함께 출연했던 신성일,감독 정진우를 비롯한 영화인들이 자리를 같이해 고인을 추모하고 고인이 출연한 영화의 포스터와 사진도 전시한다. 남정임은 지난 63년 「유정」으로 데뷔한 뒤 청춘 남녀들의 심금을 울리는 순정파 여인의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다.한해에 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는등 인기를 모으던 그녀는 71년 결혼과 함께 활동을중지했다가 76년 이혼과 함께 영화계에 복귀했지만 이전의 명성을 찾지 못했다.78년 김수용감독의 「웃음소리」를 끝으로 은막을 떠났으며 89년 암에 걸려 투병생활로 말년을 보냈다. 하오 4시와 7시30분 두차례 씨네하우스 10층에서 상영한다.일반인도 입장할 수 있으며 요금은 따로 받지 않는다.
  • 30대그룹 전문경영인 서울대·영남출신 최다/총수는 유학파 많아

    ◎월간 현대경영 분석 30대그룹의 전문경영인이 되려면 영남출신에 서울대를 졸업해야 한다.창업주가 그룹총수인 그룹은 9개뿐이며 장남이 대부분 그룹을 승계했다. 경영전문지 월간 현대경영이 30대그룹총수와 최근 청와대오찬에 참석한 전문경영인의 특성을 조사한 결과 전문경영인중 21명이 서울대를 나왔고 12명이 영남출신이다.총수중에서는 14명이 이른바 일류고를 나왔지만 서울대출신은 6명뿐이며 해외유학파가 13명으로 더 많다.역시 영남출신이 11명으로 가장 많고 서울출신이 8명이다. 평균 나이는 전문경영인이 56세로 총수의 59세보다 3살이 적다.최연소는 김승연한화회장과 장진호진로회장으로 42세이며 최고령은 최주호우성건설회장으로 80세이다.최연소 전문경영인은 윤대근동부제강사장으로 47세,최고령은 윤량중금호그룹 상담역으로 63세이다. 창업주가 회장인 그룹은 대우,한진,롯데,한라,고려합섬,우성건설,동부,극동건설,한보 등 9개이며 장남이 회장에 오른 그룹은 럭키금성,쌍용,한화 등 15개이다.총수가 장남이 아닌 그룹은 현대,삼성,선경,기아,동국제강,동양,진로 등 7개이다.
  • 민자 부대변인에 김형오·송업교씨/손학규씨는 유임

    민자당은 9일 신임 부대변인에 김형오의원(부산 영도)과 원외인 송업교 정책조정실부실장을 임명하고 손학규부대변인을 유임시켰다. 민자당 총재인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지난 7일 임명된 박범진대변인과 두 신임 부대변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김부대변인 약력▲경남 고성출신(47세)▲서울대 외교학과졸▲동아일보 기자▲국무총리 정무비서관▲청와대 정무비서관 ◇송부대변인 약력▲광주출신(53세)▲서울대 정치학과졸▲민주공화당 사무처 공채3기▲한국국민당 정책연구실차장▲신민주공화당 정책연구실차장
  • 카뮈 유작 「최초의 남자」 햇빛

    ◎60년 교통사고 현장서 수습한 원고 딸이 34년만에 출판/알제리에서의 유년기 담은 자전소설/전재의 폐해·보조리에 대한 관념 토로 알베르 카뮈의 알려지지 않은 미완의 유고작이 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60년 카뮈가 47세의 나이로 교통사고로 숨진지 34년만에 빛을 보게 된 작품은 「최초의 남자(LEPREMIER HOMME)」.교통사고 현장에서 수습한 1백44페이지의 핏자국 어린 원고를 딸 카트린 카뮈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에 3백35페이지의 책으로 펴 냈다. 이 작품이 주목되는 것은 카뮈의 문학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자전소설 「최초의 남자」에서 카뮈는 처음으로 자신의 유년기에 대해 털어놓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아버지,어머니,할머니,자신이 다니던 국민학교와 알제리의 고등학교,유년시절 쓰던 방등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믿을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진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 당시 알제리의 부조리한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카뮈는 1953년 세인트 브리유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어머니 카트린셍테는 그해 어느날 40세이던 카뮈를 세인트 브리유에 있는 그의 아버지 무덤에 데려 간다.29세로 생을 마감한 그의 아버지의 묘비에 씌어진「1885∼1914」를 보는 순간 카뮈는 아버지의 일을 알고 싶어진다.카뮈는 제2장에서 이 소설을 쓰게된 배경을 이같이 밝히면서 『어머니는 더이상 아버지에 애착이 없는 듯 보였다』고 회고했다. 카뮈는 곧바로 부모가 생활했던 알제리로 가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1913년 젊은 부부가 작은 이륜마차에 가재도구 몇개만 줄로 엮어 매달고 알제리 사막의 한 마을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된다.만삭인 젊은 부인이 도착 하자마자 낳은 아이가 바로 알베르 카뮈다. 아버지 루시앙 카뮈는 알베르 카뮈가 태어난뒤 얼마 되지 않아 전쟁터로 나간다.카뮈는 모로코 전선등에 투입된 아버지를 통해 전쟁의 공포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하게 된다.비참하게 숨진 병사를 목격하고 악몽에 시달리던 아버지의 체험은 소설 「이방인」에서 나타난다. 그의 아버지는 마른 전투에서 숨졌다.너무 어렸던 카뮈는 아버지에 대해 단편적인 순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데다가 어머니는 언어장애로 거의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카뮈는 이런 침묵의 상황을 작품속에서 매우 강하게 얘기하고 있다. 『젊은 어머니는 청춘의 병을 앓고 있었고 그것때문에 들리지도 않아 언어장애를 앓게 됐다.당시 할머니는 어머니가 장티푸스를 앓고 있다고 했다.잃어버린 시간들을 잘 간직하기 위해서는 더이상 기억해내려 하지 말아야 한다』 카뮈는 어머니가 알제리의 한 셋집에서 날이 어둑어둑 해 졌는데도 램프를 켜지 않은채 의자에 앉아있던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다. 「최초의 남자」 문장마다에서 그는 어머니에 대해 독자를 강하게 감동시키고 있다.어머니가 살던집이 폭격을 받았을때의 상황에 대해 카뮈는 『맹목적인 테러도,어머니를 마구 두들겨 패는 것도 모두 싫다.정의도 좋아하지만 어머니도 좋아한다』고 묘사하면서 부당함과 부조리에 대한 관념을 밝히고 있다. 이 작품에서 카뮈는 앞에는 망망대해가 펼처져 있고 뒤에는 끝없는 산이 놓인 가운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 뇌세포 첫 이식수술/파킨슨병 등 치료에 전기/서울대교수팀

    태아의 뇌세포를 이용한 뇌세포이식수술이 국내 의료진에 의해 처음 시행됐다. 서울대의대 신경과 전범석교수와 신경외과 김현집교수팀은 23일 하오1시부터 6시까지 5시간에 걸친 수술끝에 파킨슨병환자에게 뇌세포이식수술을 시행했다고 밝혔다.이번 수술의 성공여부는 하루뒤인 24일 하오1시쯤에 판명되는데 이번 수술이 성공하게 되면 파킨슨병등 난치성 뇌질환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수술팀에 따르면 환자는 47세의 남자로 12년간 뇌질환인 파킨슨병을 앓아 2년전까지 약물치료에 의존해왔으나 증상이 악화돼 정상생활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수술팀은 유산된 태아의 뇌세포를 배양,이를 환자의 뇌부분인 뇌기저핵부위에 이식했다고 말했다.수술팀장인 전교수는 『그동안 파킨슨병등 뇌질환에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애를 먹었다』고 말하고 『이번 수술이 성공하면 많은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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