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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승환, 한신 외국인 최다 세이브

    오승환, 한신 외국인 최다 세이브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마무리 오승환(33)이 또 자신의 구단 새 역사를 썼다. 오승환은 29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홈경기에서 3-1로 앞선 9회초 마운드에 올라 1이닝 동안 볼넷 한 개만 내주고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냈다. 전날 1차전에서도 1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지켰던 오승환은 이로써 이틀 연속 세이브를 올리며 시즌 9세이브째를 신고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사와무라 히로가즈(8세이브)를 제치고 센트럴리그 구원 부문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오승환은 또 일본 통산 48세이브로 제프 윌리엄스(47세이브)를 넘어 한신의 외국인 선수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도 세웠다. 지난해 39세이브로 센트럴리그 구원왕에 올랐던 오승환은 올해 9세이브를 추가해 윌리엄스 기록을 넘어섰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 역시 종전 1.50에서 1.38로 낮췄다. 오승환은 첫 타자 야마다 데쓰토를 시속 151㎞짜리 직구로 압박해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우에다 쓰요시를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가와바타 싱고를 3루 파울 플라이로 잡아내 기세를 올렸다. 관중석으로 넘어가는 싱고의 타구를 사카 가쓰히코가 잡아 내는 호수비를 펼쳤다. 우에다가 2루에 진출했지만 오승환은 ‘신무기’ 시속 134㎞짜리 포크볼로 다카이 유헤이를 투수 땅볼로 유도해 실점 없이 경기를 끝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커버스토리] 萬人之上 오른 총리, 一人之下에서 463일

    [커버스토리] 萬人之上 오른 총리, 一人之下에서 463일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뒤 새로운 총리 후보자가 누가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한 데서 보듯 혹독한 여론 검증과 인사청문회 절차가 버티고 있어 새 총리를 임명하는 게 만만치 않아 보인다. ‘권한 없는 넘버2’의 한계를 벗어나 도덕적 권위와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책임총리의 위상과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1948년 정부수립 이래 명암과 영욕이 교차한 ‘대한민국 총리’를 되돌아본다. ●첫 후보자 이윤영, 네 번 지명받고도 한번 못해봐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첫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자리였다. 1948년 당시 이윤영 총리 지명자는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평북 영변군 출신 개신교 목사이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고초를 당했던 이윤영은 해방 이후 고당 조만식과 함께 활동하다 월남한 뒤 제헌의회 의원이 됐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첫 총리 지명자로 이윤영을 지명했지만 다수당이던 한국민주당의 반대로 인준표결에서 부결됐다. 결국 이 대통령은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던 이범석을 총리로 지명해 국회인준을 받았다. 당초 대한민국 제헌헌법 초안은 의원내각제를 모델로 했고 이에 따르면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그쳤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대통령중심제를 고수하면서 결국 의원내각제 기반 위에 대통령중심제를 덧붙이는 식으로 절충이 됐다. 한민당은 이에 협조하는 대신 한민당 지도자인 김성수를 총리로 지명하라고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윤영은 1950년 4월 다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국회표결에서 찬성 68표, 반대 83표로 부결됐다. 1952년 4월에도 장면 총리가 사퇴하자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지만 이번에도 역시 국회에서 부결됐다. 그해 10월 장택상 총리가 사임하자 이 대통령은 4번째로 이윤영을 총리에 지명하지만 또다시 국회의 벽에 막혔다. 결과적으로 이윤영은 총리에 4번 지명받고도 한번도 국무총리가 되지 못한 유례없는 기록을 갖게 됐다. 제2공화국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개헌을 하면서 국무총리는 사실상 국가원수가 됐지만 5·16쿠데타 이후 다시 임명직 국무총리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무총리는 법적으로는 권한이 막중하지만 실제로는 인사권 자체가 전적으로 대통령 소관이어서 실권을 가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책임총리제를 강조하며 이해찬 전 총리에게 상당한 권한을 주려고 노력한 바 있지만,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총리는 ‘방탄총리’, ‘실권 없는 2인자’라는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대 이범석 나치 연구자… ‘친일 전력’ 총리 3명 이윤영 총리안의 부결로 대한민국 초대 총리는 한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이범석이 맡게 됐다. 15세에 중국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홍범도 장군이 주도한 청산리전투에 참여했고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참모장과 제2지대장 등을 지냈다. 그는 나치를 연구하고 히틀러 사망을 안타까워하는 등 나치를 추종했다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역대 총리 가운데 3명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파에 포함돼 있다. 정일권·김정렬 두 총리는 일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소속 장교로 복무했다. 김정렬 총리는 태평양 전쟁에 조종수로 참전했고, 장면 총리는 종교계 총동원을 논의하는 시국간담회에 천주교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43대 중 재임은 4명… 실제 총리 수 39명 이완구 총리는 43대 총리이지만 이범석 초대 국무총리가 취임한 뒤 현재까지 국무총리로 일했던 사람은 모두 39명이다. 이 가운데 4명이 총리를 두 번 맡았다. 장면은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총리를 지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갈등 끝에 사임했다. 4·19혁명 뒤에는 내각책임제 정부수반인 총리에 선출됐지만 이번에는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총리에서 물러났다. 이 밖에 백두진은 이승만·박정희 정부, 김종필은 박정희·김대중 정부, 고건은 김영삼·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로 일했다. 이완구 총리는 63일 만의 사의표명을 기준으로 하면 총리로서 가장 단명한 총리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 총리를 포함해 역대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은 463.5일로, 1년 3개월 남짓이다. 6대 허정 총리는 외무장관으로 재임하던 도중 4·19혁명이 일어나고 대통령이 사임하는 등의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임시로 맡은 총리였다. 22대 노재봉 총리는 1991년 1월에 취임한 뒤 명지대 1학년이던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에게 구타당해 숨지면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4개월 만에 경질됐다. 총리로서 재직일수가 가장 긴 총리는 9대 정일권 총리이며, 김종필 총리가 두 번째다. 정일권 총리는 재임기간이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으로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례적으로 ‘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김종필 총리는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총리를 지냈지만 정일권 총리가 세운 기록을 깨지는 못했다. 민주화 이후 가장 오랫동안 재임한 사람은 김황식 총리다. 그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약 2년 5개월간 재직했다. ●역대 총리 평균 연령 61.5세… 최고령은 74세 역대 총리 39명의 취임 당시 평균 연령은 61.5세다. 연령별로 보면 70대에 총리가 된 사람이 7명이다. 취임 당시 가장 고령이었던 총리는 24대 현승종 총리와 32대 박태준 총리로, 두 사람 모두 74세에 총리가 됐다. 19대 김정렬 총리와 39대 한승수 총리는 73세였고 34대 김석수 총리는 71세였다. 8대 최두선 총리와 42대 정홍원 총리는 70세였다. 반면 4대 백두진 총리와 11대 김종필 총리는 취임 당시 46세, 9대 정일권 총리는 47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됐다. 고향으로 살펴보면 이북 출신이 꽤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황해도 4명, 평남 5명, 평북 2명, 함남 1명으로 모두 12명이다. 노태우 정부 당시에는 강영훈(평북 창성), 정원식(황해 재령), 현승종(평남 개천) 등 총리 5명 중 3명이 이북 출신이었다. 단일 지역으로는 서울이 7명으로 가장 많다. 충남과 경남이 5명씩이고 경기와 전북이 4명을 배출했다. 정일권 총리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나 유일한 재외동포 출신 총리로 기록됐다. 이 밖에 37대 한명숙 총리부터 38대 한덕수 총리, 39대 한승수 총리까지 세 번 연속 청주 한(韓)씨에서 총리를 배출한 것도 특이한 기록이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배우 박병선, 지병 악화로 31일 별세 ‘연예계 지인들 충격에 빠져..’ 대표 출연작품은?

    배우 박병선, 지병 악화로 31일 별세 ‘연예계 지인들 충격에 빠져..’ 대표 출연작품은?

    배우 박병선, 지병 악화로 31일 별세 ‘대표 출연작품은?’ ‘배우 박병선’ 배우 박병선(47)이 지난달 31일 심장마비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3일 한 매체는 “배우 박병선은 지난달 31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향년 47세로, 배우 박병선 가족을 비롯한 연예계 지인들은 충격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는 정확한 사인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자택에서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라고 전했다. 고인의 발인은 지난 2일 오전 조용히 엄수됐다. 장지는 부평화장장이다. 한편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출신인 박병선은 지난 1995년 SBS 공채 탤런트 5기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 ‘불멸의 이순신’, ‘무인시대’, ‘사랑과 전쟁’ 등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사진=서울신문DB(배우 박병선) 연예팀 seoulen@seoul.co.kr
  • 4월 1일 만우절에 떠난 장국영 12주기… “오늘 추모 특집영화 방영”

    4월 1일 만우절에 떠난 장국영 12주기… “오늘 추모 특집영화 방영”

    4월 1일 만우절에 떠난 장국영 12주기… “오늘 추모 특집영화 방영” 4월 1일 만우절, 장국영 1일 배우 장국영의 사망 12주기를 맞아 거짓말처럼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이 재조명되고 있다. 장국영은 지난 2003년 4월 1일 47세의 나이로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자살했다.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장국영의 사망 소식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만우절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거짓말처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홍콩에서는 장국영의 사망이 알려진 지 9시간 만에 팬 6명이 뒤따라 목숨을 끊기도 했다. 장국영은 1976년 홍콩의 한 음악 콘테스트에서 2위를 차지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영웅본색’,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아비정전’, ‘이도공간’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배우로서의 카리스마와 매력을 뽐냈다. 26년 간 출연한 작품이 40여편이 넘는다. 장국영이 생을 마감한 지 이날로 12년이 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장국영을 추억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매년 4월 1일 SNS 등을 통해 추모 메시지를 보내고, 홍콩은 물론 한국에서도 추모 행사를 벌였다. 추모 10주기였던 2013년에는 장국영의 히트곡과 영상을 담은 앨범이 발매됐고 고인의 삶을 다룬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이 발간됐다. 이날도 장국영 추모 특집 방송이 곳곳에서 진행된다. 한국 케이블 채널 cineF(씨네프)는 저녁 8시부터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 ‘해피 투게더’, ‘이도공간’ 등 3편을 방영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월 1일 만우절이면 떠오르는 ‘장국영’ 오늘 12주기… “추모 특집영화 방영”

    4월 1일 만우절이면 떠오르는 ‘장국영’ 오늘 12주기… “추모 특집영화 방영”

    4월 1일 만우절이면 떠오르는 ‘장국영’ 오늘 12주기… “추모 특집영화 방영” 4월 1일 만우절, 장국영 1일 배우 장국영의 사망 12주기를 맞아 거짓말처럼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이 재조명되고 있다. 장국영은 지난 2003년 4월 1일 47세의 나이로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자살했다.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장국영의 사망 소식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만우절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거짓말처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홍콩에서는 장국영의 사망이 알려진 지 9시간 만에 팬 6명이 뒤따라 목숨을 끊기도 했다. 장국영은 1976년 홍콩의 한 음악 콘테스트에서 2위를 차지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영웅본색’,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아비정전’, ‘이도공간’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배우로서의 카리스마와 매력을 뽐냈다. 26년 간 출연한 작품이 40여편이 넘는다. 장국영이 생을 마감한 지 이날로 12년이 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장국영을 추억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매년 4월 1일 SNS 등을 통해 추모 메시지를 보내고, 홍콩은 물론 한국에서도 추모 행사를 벌였다. 추모 10주기였던 2013년에는 장국영의 히트곡과 영상을 담은 앨범이 발매됐고 고인의 삶을 다룬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이 발간됐다. 이날도 장국영 추모 특집 방송이 곳곳에서 진행된다. 한국 케이블 채널 cineF(씨네프)는 저녁 8시부터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 ‘해피 투게더’, ‘이도공간’ 등 3편을 방영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월 1일 만우절에 떠난 장국영 12주기… “오늘 추모 특집영화 방영”

    4월 1일 만우절에 떠난 장국영 12주기… “오늘 추모 특집영화 방영”

    4월 1일 만우절에 떠난 장국영 12주기… “오늘 추모 특집영화 방영” 4월 1일 만우절, 장국영 1일 배우 장국영의 사망 12주기를 맞아 거짓말처럼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이 재조명되고 있다. 장국영은 지난 2003년 4월 1일 47세의 나이로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자살했다.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장국영의 사망 소식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만우절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거짓말처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홍콩에서는 장국영의 사망이 알려진 지 9시간 만에 팬 6명이 뒤따라 목숨을 끊기도 했다. 장국영은 1976년 홍콩의 한 음악 콘테스트에서 2위를 차지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영웅본색’,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아비정전’, ‘이도공간’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배우로서의 카리스마와 매력을 뽐냈다. 26년 간 출연한 작품이 40여편이 넘는다. 장국영이 생을 마감한 지 이날로 12년이 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장국영을 추억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매년 4월 1일 SNS 등을 통해 추모 메시지를 보내고, 홍콩은 물론 한국에서도 추모 행사를 벌였다. 추모 10주기였던 2013년에는 장국영의 히트곡과 영상을 담은 앨범이 발매됐고 고인의 삶을 다룬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이 발간됐다. 이날도 장국영 추모 특집 방송이 곳곳에서 진행된다. 한국 케이블 채널 cineF(씨네프)는 저녁 8시부터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 ‘해피 투게더’, ‘이도공간’ 등 3편을 방영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 장국영 12주기,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떠나… “추모 특집영화 방영”

    오늘 장국영 12주기,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떠나… “추모 특집영화 방영”

    1일 배우 장국영의 사망 12주기를 맞아 거짓말처럼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이 재조명되고 있다. 장국영은 지난 2003년 4월 1일 47세의 나이로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자살했다.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장국영의 사망 소식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만우절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거짓말처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홍콩에서는 장국영의 사망이 알려진 지 9시간 만에 팬 6명이 뒤따라 목숨을 끊기도 했다. 장국영은 1976년 홍콩의 한 음악 콘테스트에서 2위를 차지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영웅본색’,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아비정전’, ‘이도공간’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배우로서의 카리스마와 매력을 뽐냈다. 26년 간 출연한 작품이 40여편이 넘는다. 장국영이 생을 마감한 지 이날로 12년이 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장국영을 추억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매년 4월 1일 SNS 등을 통해 추모 메시지를 보내고, 홍콩은 물론 한국에서도 추모 행사를 벌였다. 추모 10주기였던 2013년에는 장국영의 히트곡과 영상을 담은 앨범이 발매됐고 고인의 삶을 다룬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이 발간됐다. 이날도 장국영 추모 특집 방송이 곳곳에서 진행된다. 한국 케이블 채널 cineF(씨네프)는 저녁 8시부터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 ‘해피 투게더’, ‘이도공간’ 등 3편을 방영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톨게이트 향해 화물트럭 돌진 ‘아찔’

    美 톨게이트 향해 화물트럭 돌진 ‘아찔’

    미국에서 대형 화물트럭이 무인 요금정산부스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12일 현지 언론과 호주 나인엠에스엔 등 외신들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뉴 햄프셔주(州) 도버에 위치한 톨게이트에 한 화물트럭이 돌진했다. 해당 차량은 무인 요금정산부스와 다른 승용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후 멈췄다. 이날 사고 순간이 기록된 영상을 보면, 빠른 속도로 달리던 화물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그대로 요금정산소를 들이받는다. 이 충돌로 인해 요금정산부스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난다. 이후 트럭은 요금소로 들어서던 다른 차량까지 들이받는다. 사고를 낸 화물트럭 운전자인 47세의 로널드 조이(Roland Joy)씨와 피해자인 승용차 운전자는 69세의 존 월리(John Worley)씨는 사고 직후 모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현재 치료를 받고 있으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윌리씨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며 “화물트럭 운전자 역시 괜찮다니 다행이다.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따뜻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나 만약 그가 음주운전(DUI·Driving in the influence)을 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이 모든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사고 화물트럭 결함여부와 운전자의 음주 여부 등 사고 발생 원인에 대해 조사 중이다. 사진·영상=LiveLeak Channel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출산 연령 평균 32세… ‘노산’ 시대

    출산 연령 평균 32세… ‘노산’ 시대

    지난해 산모의 평균 연령이 32세를 넘었다. 태어난 아이도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적었다.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2014년 출생·사망통계 잠정치’에 따르면 산모의 평균 연령은 32.04세로 전년(31.84세) 대비 0.2세 상승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면서 산모의 평균 연령도 매년 갈아 치우고 있는 것이다. 첫째 아이를 낳는 산모의 평균 연령(30.97세)도 31세에 육박했다. 둘째, 셋째 아이를 낳는 산모의 연령도 각각 32.80세, 34.47세로 1년 전보다 0.18세, 0.11세 올라갔다. 35세 이상 고령 산모의 비율은 21.6%로 1년 전보다 1.4% 포인트 상승했다. ‘노산’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30대 후반(35∼39세)의 여성인구 1000명당 출산율은 43.2명으로 전년보다 3.7명 증가했다. 30대 후반 산모들이 많아지면서 ‘합계 출산율’은 반등했다.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1.21명으로 전년보다 0.02명 늘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8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뒤 2011년 1.24명, 2012년 1.30명으로 회복하다 2013년 ‘초저출산’의 기준선 아래인 1.19명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43만 5300명으로 전년 (43만 6500명)보다 1200명(0.3%) 감소했다. 2005년(43만 5000명)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적다. 출생아 수는 2010∼2012년 증가 추세를 보였다가 2년 연속 감소했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뜻하는 ‘조(粗) 출생률’은 지난해 8.6명으로 전년과 같다. 통계 작성 이래 2년 연속 역대 최저치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감동 뉴스]‘혹부리 영감’ 닮았던 종양 환자, 새 삶 찾다

    [감동 뉴스]‘혹부리 영감’ 닮았던 종양 환자, 새 삶 찾다

    동화 속 ‘혹부리 영감’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외관으로 고통받던 한 남성이 수술 후 새 삶을 되찾았다. 슬로바키아에 사는 47세의 스테판 졸레이크는 10년 전부터 지방종으로 인한 증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지방종은 연부조직에 생기는 종양 중 하나로, 스테판의 경우 양쪽 귀 아래에 지방종이 자라기 시작해 10년 동안 턱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형태로 발전했다. 스테판의 지방종 무게는 6㎏이 훌쩍 넘었으며, 비정상적으로 턱 부위가 발달해 마치 혹이 달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초 현지 의료인들은 스테판의 합병증 가능성이 높아 수술을 거부했지만, 고통을 참지 못한 스테판은 지난 해 6월 수술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목숨을 걸고 5시간이 넘는 수술을 버틴 결과, 그의 얼굴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회복될 수 있었다. 아직 턱과 귀 근처에 남아있는 지방세포 일부를 제거하는 추가 수술이 남아있는 상태지만, 그는 새 삶을 찾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20대 초반에는 그저 남들보다 턱이 좀 클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턱이 점점 자라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면서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지난 해 받은 수술은 내 생애 최고의 일이었다”면서 “이제는 친구들과 호프에 가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않아도 되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수술을 집도한 미국 마틴대학교의 이고르 호모라 박사는 “이번 수술의 환자의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수술 이었다”면서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수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턱 부근에서 자라는 세포를 제거하는 작업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47세 여성, 20살 연하 애인 ‘남성’을...’끔찍’

    47세 여성, 20살 연하 애인 ‘남성’을...’끔찍’

    20년 연상의 여자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20대 남자가 하마터면 남성을 잃을 뻔했다. 아찔한 봉변을 당한 남자는 성기공격 혐의로 여자를 고소했다. 27세 남자와 47세 여자 사이에 벌어진 아찔한 사건이다. 아르헨티나 지방 미시오네스주의 파소데라파트리아라는 곳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은 모두 가정을 가진 기혼자였지만 내연의 관계였다. 두 사람은 주로 남자가 관리인이 있는 별장에서 만나 밀애를 즐기곤 했다. 최근 주말을 앞두고 두 사람은 별장에서 또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여느 때처럼 침대에서 뒤엉켜 사랑을 나눴다. 돌발상황은 사랑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남자의 입에서 새어나온 말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여자를 부른다는 게 그만 엉뚱한 다른 여자의 이름이 입에서 튀어나온 것.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던 여자는 갑자기 불타는 질투심을 느꼈다. 여자는 그런 속마음을 감춘 채 남자에게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남자를 침대에 묶었다. 남자는 이색적인(?) 놀이를 기대했지만 여자가 꺼내든 건 칼이었다. 여자는 당황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성기를 잔인하게 칼로 공격하고 방을 뛰쳐나갔다. 침대에 묶여 있던 남자는 겨우 손을 풀고 경찰에 연락,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관계자는 "불행 중 다행으로 성기가 절단되진 않았지만 하마터면 남자가 남성을 잃을 뻔했다"고 말했다. 남자는 도주한 내연녀를 폭행혐의로 고소했다. 사진=자료사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격동의 한·일 70년] “독립 70년 지나도 유공자 후손은 행복하지 못해”

    [격동의 한·일 70년] “독립 70년 지나도 유공자 후손은 행복하지 못해”

    경기 양평군에서 지역 유지로 풍족하게 살아왔던 양옥모(74) 할머니의 가족이 어려워지게 된 것은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다. 당시 일제강점에 대항해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양 할머니의 조부인 고 양건석씨도 태극기 100여개를 만들어 거리로 뛰쳐나갔다. 이후 건석씨는 주모자 색출을 벌이는 일본 순사를 피해 전답을 헐값에 처분한 뒤 중국 지린(吉林)성으로 떠났다. 건석씨는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에 힘썼다.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뒤 1920년 김좌진 장군 휘하에서 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 건석씨는 이 전투에서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은 후에도 배재고보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들 고 양승만씨까지 만주로 데려와 함께 조국 해방을 위해 힘썼다. 하지만 건석씨는 평생 청산리 전투 총상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병이 악화돼 1937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승만씨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독립운동을 펼쳐 나갔다. 해방이 되고 나서도 승만씨는 만주를 떠나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동포들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와 마찰이 발생해 36일간 구금되기도 했지만 승만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1986년 11월 고국에 돌아와 만난 독립운동 동지가 ‘왜 혼자만 귀국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우리 동포가 모두 귀국한 후에야 귀국하겠다는 결심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승만씨는 투철했다. 양 할머니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2011년이다. 정부에서 지원한 정착금으로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의 한 주택 반지하에 세를 들어 살면서 70대의 몸으로 식당이나 병원을 돌며 일을 했다. 독립유공자 연금도 둘째 언니가 받고 있어 결국 양 할머니는 모아 둔 돈 조금과 매달 나오는 2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이제 양 할머니에게 남은 소원은 중국에 있는 자녀의 식구를 한국에 데려오는 것이다. 자녀의 초기 정착금을 구하기 위해 간간이 돈을 모으고 있다. 양 할머니는 “탈북자의 경우 직업을 구하기 전 자격증을 따거나 공부를 할 수 있게끔 지원해 준다고 들었는데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는 이러한 배려가 다소 부족한 것 같다”며 “자녀가 한국에 와서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담담히 힘들었던 지난날을 털어놓을 때도 동요하지 않았던 눈시울이 자녀들 얘기에는 금세 붉어졌다. 독립 70년이 지난 지금도 독립유공자 후손인 양 할머니는 아직 행복하지 못하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김광수 경제연구소장, 시민공부방 ‘시대의 반란’ 꿈꾼다

    김광수 경제연구소장, 시민공부방 ‘시대의 반란’ 꿈꾼다

    2000년 5월 경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라 하면 정부 또는 대기업이 만든 연구소가 상식이라고 믿어지던 때였다. 정부 또는 재벌의 정당성 및 이해관계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소가 아닌 민간연구소는 낯설기만 했다. 심지어 개인의 이름 석 자를 내건 연구소였다. 다른 나라에야 매킨지, 브루킹스, 딜로이트, 노무라 등 개인 이름을 가진 연구소가 많았지만, 한국적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은 순수 민간 싱크탱크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한결같이 만류했다. 차라리 정부에 들어와서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고위 관료들의 제안도 잇따라 받았다. ●“순수 민간 싱크탱크 필요성 절실했죠”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56) 소장 얘기다. 그는 대학, 대학원에서 재무이론과 투자이론을 공부했고, 노무라경제연구소 연구부장을 지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환란의 발생 원인도 모르고, 수습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과 함께 한국의 브레인 역할을 자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보면서 민간 싱크탱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20일 경기도 고양시의 연구소에서 만난 김 소장은 한국 사회 20~40대 젊은 세대의 역량을 크게 평가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젊은 세대를 ‘2040 자식세대’로 표현했다. “2040 자식세대는 한국 사회의 첫 지식세대로서 정보통신혁명의 주체이며 자기 삶을 결정하고 자기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글로벌화,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한국처럼 젊은 세대의 열정과 역량이 넘치는 사회도 없습니다.” 연구소는 2007년부터 전국적으로 시민공부방모임을 시작했다. 현재 70여곳에서 1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역별로 꾸려진 시민공부방모임에 연구소는 동영상 자료 또는 경제를 중심으로 한 주거, 교육, 복지 등 자료를 제공하고 그를 토대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형식이다. 어렵고 딱딱한 경제학의 대중화, 학문의 생활화를 구현하는 공간이다. 여기 모인 이들 역시 20~40세의 학생, 직장인, 전문인 등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 소장의 말마따나 한국 사회의 희망을 만드는 자식세대들이다. 김 소장은 “이제 죽을 때까지 평생 공부를 해야 살 수 있다”면서 “학교가 아니라도 사회에서 누구나 쉽게,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시민대학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안에 300~500개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면서 “공부의 주제와 범위 역시 앞으로 철학, 역사 등 인문학까지 포괄하며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소의 시민공부방모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해 7월 ‘이순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젊은 세대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기 위한 구체적 조직화의 첫걸음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처럼 기득권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가져올 수 있는 진지(陣地)를 구축하겠다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더이상 기성 정치, 제도 정치에 한국 사회를 맡길 수 없다는 절박한 문제 의식에서 자생적으로 터져 나왔다. 지난 17~18일 대전에서 시민공부방모임 운영진이 ‘이순신 프로젝트’ 1차 워크숍을 갖고 향후 일정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차세대 한국사회 리더 양성 목표” 김 소장은 “시민공부방모임을 유지하면서 차세대 한국 사회의 리더를 선발, 양성해 일본의 마쓰시다정경숙 같은 형태의 정치 아카데미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내년 총선에서 모든 지역에 후보를 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따져 보니 젊은 사람의 정치 참여가 어색하지 않다. 미국에서 빌 클린턴은 만 46세 3개월에, 버락 오바마는 47세에 3개월에 대통령이 됐고,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만 43세에 총리직에 올랐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51세부터 새로운 독일을 이끌고 있다. 역사의 시곗바늘이 30~40년 전으로 되돌려진 ‘한국적인 상황’이 오히려 이례적일 따름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김구라, 女탤런트에 ‘정자은행’ 발언 파문

    김구라, 女탤런트에 ‘정자은행’ 발언 파문

    개그맨 김구라가 성희롱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무례한 발언으로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 3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는 조재현, 황영희, 이광기, 임호 등이 출연한 가운데 ‘예쁜 나이(평균) 47살’ 특집으로 꾸며졌다. 조재현은 이날 “황영희가 나이가 있어서 결혼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올해 목표는 결혼이 아니라 임신’이라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에 황영희는 “맞다. 아이를 좋아한다. 실제로 어머니가 ‘어떻게든 술 한 잔 마시고 자빠져 버려’라고 하신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구라는 “정자은행 같은데 갈 생각도 좀…”이라고 했다. 황영희는 “그것도 돈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무작위로 하는 것은 좀 그렇다”고 받아쳐 대충 상황을 넘겼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미혼 여성에게 ‘정자은행’ 운운하는 것은 무례함을 넘어서 성희롱에 가까운 폭언이라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김구라는 2012년에도 10년 전의 잘못된 말로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등 입 때문에 화를 자초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문제가 된 발언은 2002년 한 인터넷 방송에서 한 것으로, 집창촌 여성들이 경찰 단속에 반발해 전세버스를 타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가 침묵 시위를 벌인 것을 두고 “창녀들이 전세버스 두 대에 나눠 타는 것은 예전에 정신대라든지 참, 오랜만에 보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다. 2012년 잠정 은퇴를 선언할 때 김구라는 “성숙하지 못하고 많이 부족했던 시절에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말했던 내용들이 거의 10여년이 다 돼 가는 지금 다시 한번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입 밖에 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세상의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유의 잘못됐거나 부적절한 입놀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중생40대무죄선고, 47세와 14세의 사랑? 성폭행+임신에도 ‘무죄’

    여중생40대무죄선고, 47세와 14세의 사랑? 성폭행+임신에도 ‘무죄’

    ‘여중생40대무죄선고’ 법원이 여중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에 대해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대법원 3부는 지난 24일 여중생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47살 조 모씨에 대해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조 씨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됐을 당시 여중생이 매일 면회를 오고 사랑을 표현하는 문자메시지 등을 서로 주고받은 점을 감안할 때 성폭행 당했다는 여중생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앞서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던 조 씨는 3년 전 자신보다 27살 어린 여중생을 만나 수차례 성관계를 갖고 동거까지 했다. 앞서 여중생이 조 씨를 상대로 성폭행 당했다고 한 사건에 대해 1심은 징역 12년, 2심은 징역 9년을 각각 선고했다. ‘여중생40대무죄선고’ 소식에 네티즌은 “여중생40대무죄선고, 정말 무죄야?” “여중생 40대 무죄, 형량이 줄어들다니” “여중생40대무죄선고, 무엇이 진실일까” “여중생40대무죄선고..말도 안되는 판결” “여중생40대무죄선고..나도 여중생 사랑해볼까?” “여중생40대무죄선고..어이없는 웃음만”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여중생40대무죄선고) 뉴스팀 chkim@seoul.co.kr
  • [커버스토리] 대기업 ★되기 하늘의 ★따기

    [커버스토리] 대기업 ★되기 하늘의 ★따기

    “회사가 원하는 임원이란 구름 위를 기어오르는 자가 아닌 두 발을 굳게 땅에 딛고서도 별을 볼 수 있는 거인(巨人)이었다.” 회사 생활을 바둑판의 한 수로 풀어낸 만화 ‘미생’의 윤태호 작가는 임원을 거인으로 묘사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임원의 품격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을 괴롭혀 물의를 빚었던 ‘라면 상무’나 직원의 공을 가로채고 책임을 전가하는 임원도 있다. 하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탁월한 리더십으로 부하 직원들을 이끄는 존경받는 거인도 적지 않다. 임원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대기업의 ‘별’로 불리는 임원들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현재 대기업 임원들은 81학번 이후 세대가 많다. 가장 큰 특징은 베이비붐 세대의 선배 임원들이 대리 직급부터 관리자의 역할을 했다면 이들 현역 임원은 관리보다 실무 경험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한 통신사 마케팅 전략 부문 상무 A씨는 “과거에 비해 임원 대부분이 실무자화됐다”며 “속도감 있는 경영이 중요하다 보니 임원도 적극적으로 실무에 관여한다. 회의도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A씨는 회의 때마다 직접 태블릿PC를 가져가 회의 내용을 기록한다. 그는 “과거에 결재나 받고 하는 임원의 모습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변화는 기업의 경영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조직이 변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임원의 성격도 달라졌다는 말이다. 우리 경제가 급성장했던 1980~1990년대만 해도 신입 사원이 부장으로 승진하는 시간이나 부장이 임원 자리에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하지만 조직의 유연성이 강조되면서 과가 팀제로 바뀌는 등 실무 경험이 강조되고 사회 전반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고 글로벌 감각을 갖춘 인재가 급격하게 늘면서 경쟁도 과거보다 치열해졌다. 실제 최근 3년 전과 비교해도 부장과 임원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신입 사원이 부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평균 17.9년, 임원 자리에 오르는 데는 추가로 4.2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조사와 비교해서는 부장과 임원까지 걸리는 시간이 각각 0.6년, 0.9년 늘었다. 신입 사원으로 시작해 첫 별인 상무 자리까지 가려면 약 22년 1개월의 직장 생활을 견뎌야 하는 셈이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처럼 오너 자녀로 27세에 임원 자리에 오른 이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의 임원은 50대 초·중반이 많다. CEO스코어가 30대 그룹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 임원 7628명의 평균 나이는 52.2세였다. 사장은 187명 평균 나이 58.6세, 부사장은 456명 55.9세, 전무는 973명 54.6세, 상무는 4990명 51.2세였다. 다만 기업별로 차이가 있는데 임원 평균 나이가 가장 적은 회사는 미래에셋으로 47세였다. 눈에 띄는 건 상무에서 전무, 전무에서 부사장,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한 단계씩 오르는 일이 첫 별에 진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상무에서 전무가 되려면 약 5대1의 경쟁을 거쳐야 한다. 전무의 절반은 부사장이 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 부사장 역시 사장이 되려면 약 3대1의 경쟁을 거쳐야 한다. 여성 임원은 눈에 띄게 적다. 30대 그룹에 존재하는 여성 임원은 131명으로 전체 7628명 가운데 1.7%에 불과했다. 임원은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계약직이기도 하다. 연말연시 인사철이 다가오면 임원들이 예민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조사의 홍보 전무 B씨는 “임원이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사라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진 게 사실이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성취감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밖에 나가면 임원이 곧 성공의 공식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얘기인데 그는 “임원을 달고 나서부터 친척들과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경제적인 풍요로움도 무시하지 못한다. B씨의 월급은 부장에서 상무로 진급했을 때 2배 이상이 늘었고, 상무에서 전무로 진급할 때 2배 더 올랐다. 방과 접견실이 따로 생겼고 자동차와 전문 비서도 나왔다. 직급에 따라 대우도 확 달라진다. 기업마다 대동소이한데 일단 상무에게는 그랜저나 소나타 하이브리드, K7 등 3000㏄ 수준의 차가 나온다. 전무부터는 제네시스나 K9이, 부사장에겐 에쿠스 등 3800㏄ 수준의 차가 지급된다. 기름값은 물론이고 부문별로 다르지만 대외 업무가 많은 전무 이상 임원에게는 기사도 따라붙는다. 상무는 전문 비서를 두지 않는 곳이 많아졌지만 전무부터는 개인 비서가 따라붙는다. 이 밖에도 해외 출장 시 비즈니스석을 타는 것은 물론 부부 동반 VIP 건강진단권, 골프 회원권 등이 주어진다. 다만 삼성은 상무, 전무급 임원에게는 따로 방을 제공하지 않고 직원들보다 높은 가림막을 세워 주고 있다. 연봉 외에 중장기 성과급도 지급된다. 특히 삼성은 임원들에게 장기 성과급을 제공하는데 연봉과 성과급을 제외하고 별도의 인센티브를 3년에 나눠서 지급하고 있다. 화려하지만 그만큼 어깨도 무겁다. 유통업계 전략 담당 임원 C씨는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어렵다”며 “인사나 승진, 포상 등 직원들을 챙겨 줘야 하는데 생각만큼 못 챙겨 줄 때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무님, 사장님, 대표님 눈치를 보는 건 일반 직원들이랑 똑같다. 우리는 계약직”이라고 덧붙였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스티로폼 잡고 태평양서 이틀간 표류... 극적으로 구조된 남자

    스티로폼 잡고 태평양서 이틀간 표류... 극적으로 구조된 남자

    발포스타이렌수지(스티로폼)에 의지한 채 태평양에서 표류하던 남자가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콜롬비아 해군 경비정이 이틀간 태평양에서 표류하던 47세 남자를 구조했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남자는 "조난을 당하자 바로 죽음이 떠올랐지만 스티로폼이 삶의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콜롬비아의 어촌 로펙스 데 미카이에 살고 있는 남자는 친구와 함께 고기를 낚으러 새벽에 보트를 띄웠다가 봉변을 당했다. 예고없이 몰아친 강한 비바람에 보트가 파손되면서 두 사람은 바다에 빠졌다. 물에 빠진 순간 남자는 죽음을 떠올렸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물에 빠진 그는 "죽음밖에 머리에 떠오르는 건 없었다."고 말했다. 함께 보트에 타고 있던 친구는 이미 주변에 없었다. 그때 기적처럼 그의 손에 무언가가 걸렸다. 고기를 잡으면 넣으려고 가져갔던 아이스박스가 깨지면서 물에 뜬 스티로폼 조각이었다. 남자는 얼른 스티로폼 조각을 힘차게 끌어안았다. 구조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 스티로폼이었다. 하지만 지나는 배는 없었다. 남자는 꼬박 이틀 동안 태평양에 둥둥 떠있었다. 기적을 완성한 건 콜롬비아 해군이었다. 순찰을 돌던 해군 경비정은 바다에 떠 있는 남자를 긴급 구조했다. 남자는 이미 탈진상태였다. 이틀 동안 표류하면서 햇볕에 노출돼 신체 일부엔 화상을 입고 있었다. 해군 관계자는 "남자가 발견된 곳은 해안으로부터 40km 지점이었다."면서 "병원으로 옮겨진 남자가 회복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해군은 남자의 증언에 따라 실종된 친구를 찾고 있지만 수색은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진=베르다드노티시아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골프존] ‘골프도 인생도 18홀 72타’ 김영찬 회장 성공 스토리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골프존] ‘골프도 인생도 18홀 72타’ 김영찬 회장 성공 스토리

    “은퇴 후 소일거리 삼아 만든 회사가 정말 이렇게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겁도 나더군요. 골프존의 성공은 평범한 직원들이 모여 함께 이룬 성과입니다. 우린 여전히 작은 회사일 뿐이고 그 앞에 저 역시 극히 평범한 사람 중 하나일 뿐입니다.” 김영찬(68) 골프존 회장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양 과대 포장되는 것을 극히 꺼린다.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자신을 더 높이려 치밀한 계산에서 흘리는 미사여구(레토릭)가 아닌 듯하다. 적어도 김 회장을 만나본 느낌은 그랬다. 수천억원의 자산을 가진 신흥기업 회장이지만 그의 인상은 좀 촌스러우면서도 푸근한 동네 아저씨다. 골프존은 지난해 3652억원이라는 연매출을 기록한 국내 1위 실내 스크린골프 회사다. 2000년 회사를 설립한 이후 2년간 매출이 0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기적 같은 성장을 이어간 셈이다. 회사가 창업했을 때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였고 2008년 금융위기까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골프존이 이룬 성장은 말 그대로 ‘홀인원’에 가깝다. 김 회장은 1993년 47세의 나이로 삼성전자의 시스템사업부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을 때 앞으로 먹고살 것을 걱정했다. 큰 욕심은 없었다. 단지 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살려면 건강할 때 좀 더 일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주변에서는 “퇴직금으로 식당 같은 것을 하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오히려 더 자신이 없었다. 하찮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잘 아는 분야가 아니어서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음성사서함(VMS)서비스 회사인 ‘영밴’이다. 지금의 자동응답시스템(ARS)과 비슷한 사업이었다. 평생 직장에서 해온 업무가 통신 분야였기에 낯설지도 않았다. 은퇴사업으로 수입은 나쁘지 않았지만 우후죽순으로 경쟁자들이 생기면서 수익성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장 먹고사는 것에 안주하다가는 곧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는 다시 새 사업 아이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와 정보기술(IT)을 융합한 사업이었다. 그는 은퇴하기 3년 전인 1990년 삼성전자 부장 시절 처음 골프를 배웠다. 돈을 아끼려 당시 미국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에게 이른바 ‘US 스펙’ 골프채를 구입했다. 골프는 재미있었지만 어려웠다. 연습장과 실제 골프장은 전혀 다르기에 비싼 돈을 주고 필드에 나가면 공이 잘 맞지 않았다. 그를 포함한 모든 아마추어 골퍼들의 고민에 새 사업의 힌트가 있었다. 문득 머릿속에서 “일반 연습장과 실제 골프장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만한 연습기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 아이템이 골프시뮬레이터다. 당시에도 일류 연습장이나 고급 호텔 피트니스센터 등에는 골프 시뮬레이터가 있었다. 하지만 대당 가격이 1억원을 넘을 정도로 고가인 데다 잔고장도 많고 오류도 커 인기는 낮았다. 기계 가격을 낮추고 정확도를 키우면 사업이 될 듯해 2000년 5월 8일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작은 사무실을 낸 것이 지금 골프존의 시초다. 그를 포함한 직원 수는 5명. 처음부터 대박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전국에는 골프연습장이 3000여곳 정도였는데 이곳에서 1~2대 정도씩 연습기계를 사주면 4000~5000대 정도는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달에 40~50대 정도를 만들어 팔면 직원 월급과 사무실 운영비를 생각해도 꾸준히 10년간은 먹고살 수 있겠다는 게 김 회장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쉬운 것은 없었다. 사무실을 차려 놓기는 했지만 2년간 매출은 0원이었다. 직원 월급이 나가는 날이 돌아오면 종잣돈이 줄어만 갔다. 기술 연구도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3차원(3D) 소프트웨어 벤처 기업 대표와 연이 닿았다. 명문대 출신인 그 사람은 유창한 화술로 “아무 걱정 하지 말라”며 미소 지었다. 사기였다. 6개월 동안 거금을 투자했지만 약속했던 화면은 구현되지 않았고 대표는 잠적했다. 김 회장은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이때 뼈저리게 느낀 것이 핵심 기술은 반드시 자기 힘으로 일궈야 한다는 점이었다. 벤처기업일수록 기술에서 뒤지면 일어날 방법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은 게 문제였다. 이때부터 골프존은 연구·개발(R&D) 인력 확보와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사업이 안정을 찾게 된 골프존은 이후 전체 매출의 5~10%를 R&D에 투자했다. 덕분에 골프존이 현재 보유한 국내외 특허권은 161건, 현재 출원 중 건수도 150여건이 넘는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고생한 끝에 2002년 첫 제품을 출시했다. 경기 안산의 한 연습장에서 첫 제품을 테스트했다. 당시 반응은 뜨거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기술적인 문제가 많았던 초기 버전이기도 하다. 첫해 10억원의 매출은 이듬해 20억원, 다시 1년 후 30억원으로 커졌다. 가장 순탄하고 마음 편한 시기였다. 김 회장은 2005년을 골프존의 변화의 시기로 꼽는다. 위기가 닥쳐서가 아니라 기대 이상으로 회사가 커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는 골프방이라는 이름으로 동네마다 스크린골프장이 들어서던 때였다. 그 무렵 강원 강릉에서 한 스크린골프장 사업주를 만난 것을 김 회장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일행과 저녁을 먹으며 만난 사업주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업이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로 스크린골프장에 투자해 사업을 준비 중이었어요. 솔직히 저 혼자 편히 잘 살아 보겠다고 시작한 사업이 어떤 가정의 전 재산을 좌지우지하는 일로 변해 버린 겁니다. 아찔하더군요. 뒤를 돌아보니 우리 회사 직원도 50명으로 늘어난 상황이었고요.” 이 회장은 더 이상 주먹구구로 사업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잘못하면 남의 인생과 가정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했다. 사업을 하는 의미부터 사업의 영역과 경영철학, 기업이념, 비전과 인재상까지 회사의 대표자로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했다. 조직을 재정비할 수 있는 고급 인재들도 뽑아 회사도 재정비했다. 결과적으로 매출은 창업 6년 만인 2006년 100억원을 넘었고, 다시 2년 뒤인 2008년 1000억원을 돌파했다. 2011년 골프존의 상장과 함께 김 회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늦은 나이에 맨손으로 회사를 키운 자수성가의 아이콘으로 치켜세워졌다. 하지만 상장 후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는 의외였다. “이제 회사를 비싼 값에 팔고 평생 쉬면서 인생 즐길 수 있겠네”라는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주변에서 사업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김 회장은 주변의 이런 반응이 너무나 아쉬웠다. ‘다들 기업가 정신이 이처럼 부족한가’라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마다 김 회장은 “저는 이제 18홀 중 첫 번째 홀의 티샷을 막 했을 뿐”이라고 답하곤 했다. 최근 김 회장은 골프존을 지주사로 전환하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내년 3월 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국내 스크린골프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랐다는 평가에 따라 해외 진출과 함께 골프존의 전문성을 더 키워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스크린골프 이외에 유통과 게임, 오프라인 골프장, 골프 레슨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려면 지주사 체계가 더 맞는다는 계산이다. 이런 경영 판단 덕분인지 골프존 매출은 매년 30% 이상 늘고 있다. 김 회장의 휴대전화 뒤 번호는 1872다. 일흔을 코앞에 둔 나이지만 골프도 인생도 18홀을 72타로 마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밝히는 숫자이기도 하다. 현재 핸디캡은 12(84타). 물론 라이브 베스트 스코어는 75타지만 조만간 안정적인 싱글을 치겠다는 목표도 분명하다. 여전히 라운딩을 돌 때면 18홀을 3홀씩 6개로 나눠 꼼꼼히 분석하는 습관이 있다. 홀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실수가 있을 때는 메꾸겠다는 전략이다. 돈을 많이 번 현재가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는 “행복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돈 때문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좋아하는 골프가 일이니 사업상 평일에도 공을 칠 때가 많습니다. 친구들도 부러워하죠. 게다가 직원 평균 나이가 젊은 직장이다 보니 젊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건강도 좋아요”라며 활짝 웃는다. 김 회장은 이어 “현재 우리 회사는 전반 3번 홀쯤에 와 있다고 봅니다. 좋은 스코어와 행복한 라운딩을 위해선 앞으로도 더 도전적인 샷들을 해야 합니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할로윈데이’ 디카프리오, 8등신 모델과 핼러윈 파티 ‘광란의 밤’

    ‘할로윈데이’ 디카프리오, 8등신 모델과 핼러윈 파티 ‘광란의 밤’

    할로윈데이, 핼러윈 파티를 즐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모습이 포착됐다. 10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연예매체 스플래쉬닷컴은 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근황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디카프리오는 이날 47세 호주 출신 카지노 재벌 제임스 패커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프리 핼러윈 파티를 즐겼다. 디카프리오 친구 제임스 패커는 지난해 미란다 커와 열애설이 난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킹콩 가면을 쓴 디카프리오가 다양한 의상을 입은 모델들과 함께 리무진에 올라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그간 세계적 모델 지젤 번천을 비롯해 여러 명의 금발 모델들과 염문을 뿌렸다. 최근 15세 연하 모델 에린 헤더튼(23)과 약 1년간의 열애 끝에 결별했다. ‘할로윈데이’ 디카프리오 핼러윈 파티 장면을 접한 네티즌은 “디카프리오 핼러윈 파티..역시 바람둥이는 달라”, “디카프리오 핼러윈 파티..부럽다”, “디카프리오 핼러윈 파티..재밌겠다”, “디카프리오 핼러윈 파티..나도 파티가야지”, “디카프리오 핼러윈 파티..핼러윈 데이가 언제지?”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할리우드 스타들의 빠질 수 없는 축제 핼러윈 데이는 ‘모든 성인의 날’ 11월 1일의 바로 전날인 10월 31일을 ‘모든 성인의 날 전야’를 대신 이르는 말로 서양인들은 이날 밤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되살아난다고 믿고 있다. 사진 = TOPIC / SPLASH NEWS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MLB 홀랜드·킴브럴, ‘제1회 올해의 구원투수상’ 수상

    미국프로야구 아메리칸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마무리 투수 그렉 홀랜드(29)와 내셔널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소방수 크레이그 킴브럴(26)이 올해의 구원투수로 각각 선정됐다.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MLB) 차기 커미셔너는 23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커프먼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월드시리즈 2차전을 앞두고 두 선수에게 각각 마리아노 리베라상과 트레버 호프먼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메이저리그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기고 은퇴한 두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를 기리고자 올해 제정됐다. 아메리칸리그 최고 마무리에게는 마리아노 리베라상, 내셔널리그 최고 마무리에게는 트레버 호프먼상이 주어진다. 홀랜드는 올 시즌 65경기에 등판해 62⅓이닝을 던지며 1승 3패 46세이브 평균자책점 1.44를 기록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마무리 투수 페르난도 로드니(48세이브·평균자책점 2.85)에 비해 세이브 개수는 적으나 96%에 달하는 놀라운 세이브 성공률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홀랜드는 포스트 시즌에서도 8경기에 등판, 6세이브 평균자책점 1.13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4년 연속 내셔널리그 구원왕에 오른 킴브럴은 47경기에 출전해 61⅔이닝을 던지며 3패 47세이브 평균자책점 1.61을 기록했다. 세이브 성공률은 92%를 기록했다. 지난해 이후 100이닝 이상을 던진 구원투수 가운데 홀랜드는 평균자책점 1.32위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킴브럴이 1.40으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킴브럴은 이 기간 97세이브를 쌓았고, 홀랜드는 93세이브를 기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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