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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한·일 함께 ‘과거 상처’ 치유해야/김창록 부산대 법학 교수

    한국 정부가 한·일협정 관련문서의 일부를 공개했다. 협정 체결 40주년을 맞는 해에 이루어진 일이니, 실로 ‘때늦은 고백’인 셈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일제 강점 피해자들이 정부측을 상대로 문서의 공개를 요구한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하지만, 문서 공개에 당연히 뒤따르게 될 여러 가지 파장을 생각하면,‘이제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는 정부측의 판단도 작용한 결과로 보이며, 그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조치라고 할 것이다. 이번의 문서 공개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쟁점은, 한국인 피해자 개인의 권리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라는 것이다. 공개된 문서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 보유자에게 보상의무를 지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부분이다. 한국 정부는 한국인 개인의 권리에 대해 “일본으로부터의 보상 금액 중에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상조치를 강구해 주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한국 정부의 이러한 인식은 주로 저축이나 보험 등 협정상의 ‘재산, 권리 및 이익’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것이었으며, 현재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등과 관련된 협정상의 ‘청구권’에 해당하는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하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 정부가 개인 보상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거의 분명해졌다. 한편 일본 정부는, 청구권 자금의 명목을 오로지 ‘경제협력’에 묶어두려는 입장을 시종 고수했으며, 한국 정부의 청구권자금 운용에 관해 세세하게 간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보상의 문제는 거의 완전히 방치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 점에서, 이번에 공개된 문서로 인해 일본 정부가 면책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가 1990년대를 통해 ‘한국인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하면, 일본 정부의 입장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본측의 관련 자료 공개가 필수적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의 한국측 문서 공개를 통해 확인되는 것은, 한국인 피해자의 귄리 구제에 대해 한·일 양국 정부 모두가 책임이 있으며, 한국 정부의 책임이 보다 무겁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피해자들의 소송이 잇따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진행 중인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승소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소송은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원래 그다지 크지 않다.60년 가까운 긴 세월이 지난 과거의 문제인 까닭에, 피해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고, 소멸시효 등의 법적 장벽도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일 양국 정부가 ‘피고’의 입장에서 고령의 피해자들과 다투는 소극적인 모습을 벗어던지고, 반세기 넘게 방치해 온 과거의 아픈 상처를 적극적으로 어루만지는 자세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요청된다. 한·일 양국 정부는, 관련 자료의 전면 공개를 통해 1965년의 ‘애매한 봉합’의 전모를 밝히고, 피해자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살아있는 동안에 ‘지체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우선 피해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한·일협정의 개정 혹은 재체결과 북·일교섭의 바람직한 방향까지 시야에 넣어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과거사’ 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과거의 공개’는 단지 과거의 잘못을 드러내는 데 머물지 않고, 바람직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창록 부산대 법학 교수
  • [사설] 협정공개, 韓·日정부가 할 일

    정부가 한·일협정 외교문서를 일부 공개한 데 따른 논란은 두 원칙에 의해 풀어야 한다. 첫째, 한국 정부는 개발연대에 대외관계에서도 국민 기본권을 소홀히 했음을 인정하고 일제치하 피해자 보상책을 법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둘째, 일본 정부는 협정 문구에 매달리는 편협한 자세를 버리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차원에서 보상문제에 함께 나서야 한다. ●일제 피해자 보상 특별법 마련해야 어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협상 당시 일본측은 일제강점 기간 한국민의 피해를 배상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경제협력자금이라는 형식을 통해 과거사를 비켜가려는 의도가 곳곳에 나타나 있다. 한국측은 청구권 금액을 조금이라도 늘려볼 욕심에 일제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앞장서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한국 정부는 노동자, 군인, 군속으로 강제동원됐던 피해자를 103만 2684명으로 산정해 총 3억 6400만달러의 포괄적 피해보상을 일본측에 요구했으나 숫자 집계가 주먹구구였으며,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절차가 없었다. 결국 일본이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를 제공하는 선에서 청구권 문제를 매듭짓는 협정을 체결했지만, 박정희 정부는 이중 10%만을 피해자 보상에 썼다. 그것도 성의 없이 신고를 받아 사망자 및 재산피해에 국한된 보상을 했다. 한국인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무시했고, 정확한 피해규모가 전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일협정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군위안부 등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으므로 상황변경의 논리에 의해 신협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한·일협정 폐기를 선언하거나, 전면 재협상을 추진하기에는 외교적 어려움이 많다. 한·일 국교정상화라는 협정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일제 치하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실질적 보상조치를 추진하는 게 현실적이다. 정부는 봇물을 이룰 소송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특별법 제정을 통한 합리적 보상을 추진해야 한다.‘태평양전쟁희생자 생활안정지원법’이 의원입법으로 계류되어 있지만, 그 법으론 불충분하다. 피해자 단체를 포함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종합특별법안이 필요하다. 박정희 정부때 보상에서 제외됐던 징용 피해와 함께 생존자·부상자 보상도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강제징용자 노역 미불임금 부분은 일본측에서 해결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피해자 보상 및 명예회복조치에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리라 예상된다. 예산확보가 우선 필요하지만 다른 방안도 찾아야 한다. 일본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은 포철을 비롯한 국가기간산업과 고속도로 건설에 쓰였다. 피해자들의 피땀이 밴 돈으로 발전을 이룩한 공기업 등이 앞장서 이익의 일정 부분을 보상기금으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이와 함께 관련 문서를 전면공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청구권 협상 당시 한·일간에 정치자금 거래가 있었는지와 함께 독도 문제를 불분명하게 처리한 배경도 석명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개인배상 계속한 독일예 본받아라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 자체를 무효화하자는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스스로 변해야 할 것이다. 나치 피해자들에게 개인 배상을 계속해온 독일의 예를 본받아야 한다. 독일은 유엔을 통해 개인 배상을 하면서, 배상액의 일부를 폴크스바겐 등 기업들이 냈다고 한다. 침략전쟁의 혜택으로 성장한 일부 일본 대기업들에 모범이 될 만하며 국가사회 전체에서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보상하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북·일 수교 문제도 풀린다. 십수명의 납북 일본인 문제를 갖고 그렇듯 떠들썩하면서 수백만명에 달하는 일제 피해자들을 몇억달러 경협자금 제공만으로 모른 척한다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등 대국이 될 수 없다. 올해는 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체결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번 문서공개를 계기로 한·일 정부가 옛 정권, 지난 시대의 일이라 하더라도 무한책임을 진다는 자세를 가질 때 진정한 과거청산이 되고, 양국 관계의 미래도 밝아진다.
  • [열린세상] 광복 60주년,사할린 동포의 꿈/이영호 인하대 역사학 교수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그날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반응으로서 꿈을 꾸기보다 6∼7일 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시 꿈꾸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지연된 꿈’은 특정 사건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한 반응이라고 해석된다. 올해는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지 한 주갑 60년이 되는 해, 우리는 6∼7일 전이 아니라 60년 전 못다 이룬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오늘도 꿈꾸고 있다. 한사람의 일생에 해당하는 세월을 꿈꾸고도 못 이룬 일들이 올해는 하나씩 해결되기를 새해벽두에 기원해 본다. 지난달 30일, 국무총리 소속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진상규명을 위한 첫 단계로, 피해신고와 진상조사 신청을 올해 2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접수한다고 밝혔다. 대상은 일제강점기인 만주사변(1931년)부터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군인·군속·노무자·군위안부 등을 강요당한 사람들이다. 일제에 의하여 강제 동원된 한인들은 일본 각지와 동남아 일본 점령지로 강제 이주되어 가혹한 노역에 종사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역과정에서 희생당하였고, 일제 패망 직후 일본군에 의해 살해되기도 하고,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징용된 한인 가운데는 전범으로 처벌된 사람도 있다. 광복 후 500여만명에 이르는 한인 디아스포라가 귀환을 꾀하였지만 아예 귀환할 수 없는 조건에 놓인 사람들도 있었다. 사할린 동포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제는 1930년대 이후 산업개발과 전쟁수행을 위한 사할린 탄광개발에 한인들을 강제 동원하였다. 그들의 수는 수만명에서 십수만명까지, 그 수효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사할린 동포를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나라를 잃고 일제의 열등국민이 되어 국가적 폭력의 직접적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와 한국정부 모두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진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이후 소련의 영토가 된 사할린에서, 일본정부는 자국민은 물론이려니와 일본인과 결혼한 한인까지도 자국민으로 삼아 귀환시켰지만 ‘일본제국의 신민’이었던 한인은 외면하였다. 더구나 전후처리의 결과 한인이 일본국적을 상실함에 따라 일본정부는 귀환의 법적 책임도 벗어버렸다. 남한 출신이 많았던 사할린의 한인은 소련 통치하에서도 억압과 차별을 면할 수 없었다. 1990년 한·러수교 이후 고향방문을 시작으로 영주귀국사업이 추진되어 지금까지 1600명 가까운 사할린 1세대 동포가 귀국하였다. 일본정부가 아파트 건설비를 제공하고 한국정부가 아파트 부지와 생활비를 부담하는 공동사업에 의하여, 안산의 ‘고향마을’ 등지에 그들의 보금자리가 마련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에 의한 40여만원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힘겨운 삶이지만, 그나마 그들은 60여년 만에 꿈을 이룬 경우다. 사할린에 남아 있는 3000여명의 1세대 동포들은 언제 귀국할지 기약할 수 없다. 수용시설의 부족 때문에 영주귀국한 ‘한 가구’가 모두 세상을 떠나야 새로운 가구를 받아들이는 어처구니없는 원칙의 제약을 받고 있다.‘진정한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려는 사할린의 1세대 동포들은 먼저 귀국한 동포의 죽음을 기다리는 기막힌 상황에 놓여 있다. 광복 60주년,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의 사각지대에 사할린 동포들이 있다.60년 동안 꾸어온 그들의 꿈을 조국의 우리들은 언제 한번 우리의 꿈목록에 넣어준 적이 있는지 가슴 아프게 돌아본다.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에 의하여 사할린 한인들의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이 규명되고, 조국의 땅에 몸을 누이기를 원하는 그들의 간절한 염원이 실현되어 ‘지연된 광복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이영호 인하대 역사학 교수
  • 출판사 ‘창비’ 장편소설 공모

    내년 봄호로 계간 ‘창작과 비평’이 창간 40주년을 맞는 것을 기념해 출판사 창비가 장편소설을 공모한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1200장 안팎이며 신인과 기성을 가리지 않고 응모할 수 있다. 당선자에게는 상금 5000만원을 주고, 단행본으로 펴내 추가인세가 나오면 이를 지급할 예정.11월30일까지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도시 513-11 창비 장편소설 공모 담당자 앞.(031)955-3367.
  • 태평양유족회 무더기 소송

    광복 60주년, 한일회담 40주년을 맞은 올해 태평양전쟁 때 일본에 강제 징용당한 한인들과 그 유족들이 일본과 우리 정부를 상대로 무더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전망이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임원희 사무국장은 12일 “오는 17일 한일회담 6차 회의록 공개를 통해 일본과 우리 정부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실관계 및 근거 확보가 확실시되는 만큼 변호사 선임 등 소송준비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보건복지부, 행정자치부 등으로 태스크포스팀을 꾸렸지만 아직까지 관련자에 대한 보상 등 가시적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 또한 지난해 6월 여야 의원 117명이 서명하고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이 대표발의한 ‘태평양전쟁희생자 생활안정지원법’을 해당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에 상정조차 하지 않은 채 해를 넘긴 상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사고] 2005년 서울신문 주요사업

    새 감각 바른언론을 지향하는 서울신문이 2005년을 맞아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겠습니다. 지난해 역사적인 창간 100주년 기념사업 등에 이어 올해는 더욱 다양한 공익 문화사업을 통해 독자 여러분과 만나게 됩니다. ● 공무원·자격시험 강연회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현실 속에서 공무원 시험, 공인중개사, 교원임용시험 등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다양한 고급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강연회를 연중 개최합니다. ● 옴부즈만 대상 전국 일선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고충민원 처리 운영실태가 탁월한 기관을 매년 발굴, 시상하는 ‘옴부즈만 대상’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공동으로 개최합니다. 시·군·구 및 교육청, 특별지방행정기관, 정부투자기관을 대상으로 제도개선 및 특수시책, 집단·사이버 민원처리 실태 등을 심사하며 수상기관에 대해서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의 표창과 상패가 수여됩니다. ● 아이치 EXPO 참관단 모집 ‘한·일공동방문의 해’와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양국간의 우호를 증진시키고 양국국민들이 서로를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오는 3월부터 9월까지 일본 아이치현 EXPO 참관단을 모집합니다. ● 서울신문 하프마라톤대회 마라톤의 진흥과 발전을 위해 공직자와 시민이 함께하는 마라톤 축제를 오는 5월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개최합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아 국내 대형 마라톤대회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하프·10km·5km 3개코스로 열립니다. ● 교정대상 재소자의 교정교화 업무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교정공무원 및 사회일반인을 발굴 표창함으로써 그들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한 제23회 교정대상 시상식이 5월에 개최됩니다. ● 국군모범용사 초대 1964년부터 42년째 매년 6·25를 전후하여 우리 국토의 전후방에서 조국수호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육·해·공군 중에서 선발된 모범용사 60명과 그 배우자를 초청하여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언론사 최고의 행사입니다. ● 청소년 음악회 여름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과 음악체험을 통한 현장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적인 음악회입니다. ● 국토사랑 글짓기 대회 우리의 미래를 가꿔나갈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인 국토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한 글짓기 대회를 국토연구원과 공동으로 10월에 개최합니다. ● 가을밤콘서트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더해가는 가을밤콘서트가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가족음악회로서 클래식과 팝이 조화를 이루어 깊어가는 가을밤의 추억을 선사할 것입니다. ● 서울현대도예공모전 한국 현대도예의 모색과 탐구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최고 권위의 도예 단일공모전인 제25회 서울현대도예공모전을 가을에 개최합니다. ● 농어촌 청소년 대상 제25회 농어촌청소년대상은 우리 농어촌 미래의 젊은 역군을 발굴, 후계자로서의 긍지와 사명감을 북돋워주고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마련된 농어민 최고 권위의 상입니다.
  • [서울광장] 새 韓日시대의 원년/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새 韓日시대의 원년/이용원 논설위원

    2005년에는 우리사회에 일본이 여느 해보다 뜨거운 이슈로 계속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달력을 한장씩 넘기다 보면 곳곳에서 일본이라는 존재와 마주친다.6월22일은, 광복후 20년만에 한·일 협정을 체결한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8월15일은 광복 60주년 기념일이요, 보름 뒤인 8월29일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지 95년째 되는 날이다. 이는 11월18일 을사늑약(勒約) 100주년으로 이어진다. 그뿐이 아니다. 오는 17일이면 한·일협정 문건 5종이 공개되는 데다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이 조만간 가동해 대상자 개개인의 친일 행적을 파헤치게 된다. 일본 쪽에서도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고위층의 망언 등 외풍은 계속 불어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일본이라는 늪에서 허우적대다 올 한해를 마감할지 모른다. 해마다 기념일은 돌아오지만 올해 유난히 일본과의 과거사가 두드러지는 까닭은 ‘광복 60년’‘국교재개 40년’‘을사늑약 100년’처럼 숫자가 부여하는 상징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사회는 이 숫자의 상징성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소화해 민족정신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광복이 되고 국교를 재개하고도 일본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기피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국민의 인기를 모은 가요라도 일단 ‘왜색’이라 낙인 찍히면 하루아침에 공개장소에서 사라졌다. 또 ‘일본은 없다’라고 깎아내리는가 하면 일본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 ‘극일(克日)’을 소리 높여 외쳤다. 이 모든 현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는 오랜 기간 ‘일본 콤플렉스’라는 망령에 시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 글머리에 밝힌 것처럼 올해 광복 60주년을 맞는다. 인생으로 치자면 환갑을 치르는 것이다. 환갑의 의미를 국가관계에 견강부회할 생각은 없지만 그 세월의 무게를 한번쯤 저울질할 필요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의 해에 태어나 한글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일본에서는 전후 1세대가 각각 60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제강점기 양국간에 벌어진 가해와 피해의 행위를 여전히 반추하며 목청을 높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할까. 이제 광복이전의 한·일 관계는 역사의 영역으로 넘겨야 한다고 본다. 일방적으로 용서하고 잊어버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현실에서 이를 일상적인 이슈로 삼지는 말자는 뜻이다. 이는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제언이다. 언제까지나 일본과의 과거사 풀기에 집착하며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 현재 국내에서 이슈가 된 사안들을, 일본을 연계시키지 않은 채 우리 스스로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한·일협정 문서 공개에 따른 피해보상 문제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자체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한·일협정을 체결한 박정희 정부가 비록 국민의 뜻에 반해 그릇되게 처리했더라도 이는 우리 내부의 문제일 뿐, 이를 빌미로 일본에 개정 요구를 하는 것은 국가간 신뢰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 여러해 지났지만 한·일관계는 아직도 ‘20세기적’이다. 우리는 여태 과거사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반면 일본은 사과·보상이 끝났다고 반박한다. 앞으로도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해소하려면 우리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제가 가한 패악을 잊지 말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되 이 시대에 더이상은 일본에 대해 목청을 높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를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바뀌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씨줄날줄]日 왕세자/이목희 논설위원

    일왕(日王)의 인간화(人間化)는 동북아에서 역사적 상징성을 가진다. 왕(천황)을 신으로 모시고 침략전쟁에 나섰던 일본의 역사 때문이다.2차대전 직후 맥아더가 히로히토 일왕을 초라한 모습으로 곁에 세워놓고 찍은 사진을 공개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히로히토보다는 현재의 아키히토 일왕이 좀더 인간적으로 비친다. 그럼에도 한국에 일왕은 아직도 서먹한 존재다. 아키히토가 중국·미국 등 50여개국을 방문했지만 이웃나라 한국은 찾지 못했다. 과거사를 둘러싼 양국간 골은 근본적으로 메워지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아 올가을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의 한국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나루히토는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을 다녀왔다. 왕위 계승자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1993년에는 5개국어에 능통한 직업외교관 출신 마사코 왕세자비와 결혼했다. 평민 출신의 마사코는 한때 왕세자와의 결혼을 주저했으나 나루히토는 삼고초려 끝에 사랑을 얻었다. 나루히토 부부는 결혼후 8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다.2001년 어렵게 임신했으나 딸을 낳았다.2차대전 후 만들어진 왕실전범에 따르면 아들만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어 있다. 나루히토 부부는 왕위 계승자를 생산하지 못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마사코는 2003년 12월 대상포진으로 입원하기도 했다. 궁내청은 그녀가 적응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발표했다. 나루히토의 인간적 면모는 이때 ‘폭발’했다.“왕세자비의 커리어와 인격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충격발언’을 했고, 고부갈등설이 불거졌다. 이 때문인지 일본 왕실과 정부내에서는 여성도 왕위계승자가 될 수 있도록 법규를 고치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마사코는 새해초 1년1개월만에 공식행사에 나타났다. 찰스 왕세자와 고인이 된 다이애나비는 너무 인간적이어서 스캔들도 굉장하지만 영국은 물론 세계인들은 그들을 사랑한다. 나루히토 왕세자도 스스럼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한국을 방문하길 바란다. 아키히토 일왕이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 방일때 언급한 ‘통석(痛惜)의 염(念)’은 과거사를 깨끗이 사과 못하는 일본의 자세를 대표하는 말이 되어 있다.‘인간’ 나루히토가 한국을 찾아 화끈하게 과거사를 정리하기를 기대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기고] ‘욘사마 열풍’과 일본 바로 보기/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일본 국영방송 NHK의 회장이 지난 연말에 배용준을 ‘홍백가합전’에 출연시키기 위해 공개적인 섭외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나 거절당했다. 그 누구라도 연예인 치고 일본의 연말 연예프로그램의 꽃이라고 불리는 ‘홍백가합전’ 출연을 거부한 적이 없는데 이례적인 일이다. 일전엔 미국의 유일한 전국지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일본 내의 ‘욘사마 열풍’에 주목,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일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보도했다. 참으로 ‘욘사마 열풍’의 기세는 대단하다. 국내의 분위기도 ‘욘사마 열풍’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음에 틀림없으리라. 월드컵 경기를 치를 때 국내에서도 일본을 응원하겠다는 일본 축구팬들이 생기는가 싶더니, 얼마 전엔 일반시민들이 일본 니가타현 지진 피해자들에게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과 합세하여 모금운동을 벌여서 그 모금액을 일본 측에 건넸다는 훈훈한 얘기도 들렸다. 돌이켜보면 일본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사이고 다카모리 같은 인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침략을 본격적으로 비판했음은 물론, 일본의 ‘천황’제와 일본정부의 군국주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동아시아의 연대를 모색한 고토쿠 슈스이 같은 인물도 있었다. 그는 중국의 장태염(章太炎)과 함께 도쿄에서 1907년 아주화친회(亞洲和親會)를 결성하여 반제국주의를 목표로 개인의 자유주의를 말살하고 ‘천황’중심의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정부정책에 항거하며 투쟁했다. 민족독립과 민족해방 문제를 중요한 과업으로 삼아 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했으며 아시아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했던 것이다. 이 정신이 민족주의자 신채호 등에게 영향을 끼침은 물론, 우리 독립투사들의 민족해방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형성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듯 일본 내의 양심적인 세력도 있었으나 일본제국주의는 그들의 의지를 무참히도 짓밟았다.19세기 서구열강들이 패권다툼을 위해 동아시아를 침범하여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로 전락해갈 때, 일본은 시대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며 근대국가의 발판을 마련했다. 오랜 봉건제도와 쇄국의 고리를 풀고 대담하게 서구의 문물을 수용하자는 목표 하에 문화혁명인 메이지유신을 단행한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내세웠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를 실시하였으며 문화적으로는 오로지 서구를 모델로 근대화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메이지 신정부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천황’중심의 국가주의와 부국강병의 기치를 내걸고 군사적 팽창주의를 지향하며 아시아 침략전쟁을 통한 제국주의 정책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또한 정신적으로는 아시아를 배타시하고 서구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중적 구조를 잉태했다. 일찍이 일본근대의 문호인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근대는 서구적 근대의 맹종과 답습이 아니라 고유한 역사와 문화, 전통과 사유를 토대로 구축될 때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서구의 물질문명이 일본을 정신적으로 식민지화하는 상황을 경고하였는데, 이는 얼마나 당시 일본이 서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였는지를 증명해준다. 이 메이지유신의 정신이 아직도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뇌리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욘사마 열풍’은 일본 내 중장년 여성층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반가운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현상에 입각하여 일본의 실상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욘사마 열풍’이 아무리 일본을 달구더라도 한편으론 헌법을 손질하여 자위대의 무력행사를 승인하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고집하며 왜곡된 교과서를 인증함은 물론, 더욱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그들의 또 다른 일면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일수교 40주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일본을 바로 보는 눈이 절실한 시점이라 하겠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 [2005 문화코드] ②세계로 뻗는 韓流

    [2005 문화코드] ②세계로 뻗는 韓流

    1990년대 후반 중국·타이완에서 불씨를 지핀 ‘한류’는 지난해 일본을 강타한 ‘욘사마’ 신드롬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바야흐로 한류의 전방위적인 확산 프로젝트인 ‘신(新)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다. 드라마·영화·가요 등 대중문화에서 한국문화 전반으로, 동아시아 중심에서 유럽·미국 등 세계 무대로, 장르와 시장의 다각화 노력이 한창이다. 외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한류’가 ‘신한류 프로젝트’로 거듭날 수 있을지, 아니면 동아시아에 국한된 ‘찻잔속 태풍’에 안주할 것인지 올 한해가 그 경계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지난해 타이완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로 ‘천국의 계단’과 ‘대장금’이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한국관광공사 해외홍보팀 유진호 과장은 “타이완은 중국·홍콩·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지역 한류의 풍향을 가늠하는 잣대라는 점에서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징조”라고 말했다.‘겨울연가’의 여진이 여전히 거센 일본은 ‘파리의 연인’에 이어 권상우와 김희선이 출연하는 ‘슬픈 연가’를 48억원에 입도선매했다. 동남아와 일본을 점령한 드라마는 이제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로, 또 중남미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MBC는 최근 드라마 ‘불새’를 아프리카 가나에 판매했다.‘겨울연가’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방송되는 두 번째 한국 드라마다. 멕시코는 지난 2002년 드라마 ‘별은 내가슴에’와 ‘이브의 모든 것’을 방영한 이후 한류 붐이 크게 일어난 곳. 이후 명문 국립자치대학에 한국어과가 신설되기도 했다. 미국 한인방송에서 방영된 ‘대장금’은 한인은 물론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았고, 드라마 ‘올인’은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등지에까지 방영됐다. 이에 힘입어 올해는 ‘불새’‘천국의 계단’ 등이 아르헨티나·페루 등지에 진출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4회 국제방송영상견본시(BCWW 2004)에 일본 말고도 중국·타이완·베트남·미국·영국 등 외국 방송 관계자 800여명이 몰려들어 1300만달러어치의 한국 영상물 구매 계약을 맺은 것은 ‘한류’의 세계화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오는 4월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미디어전시회 ‘MIPTV’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것도 고무적이다. 행사협의를 위해 방한했던 주관사 리드 미뎀의 테드 바라코 이사가 “한류 열풍이 아직은 아시아에 국한된 현상이지만 충분히 조명할 가치가 있다.”고 지적한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는 제작 풍토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유리화’‘슬픈연가’ 등 의도된 ‘한류 기획상품’들이 세계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되는 한 해다. ●문화현상에서 사회현상으로 지난 연말 중국 출판계는 ‘한국소설 붐’을 10대 뉴스의 하나로 꼽았다.‘귀여니’ 이윤세의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70만부)와 ‘늑대의 유혹’(60만부)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덕이다. 그런가 하면 국산 팬터지 동화인 ‘고양이학교’(문학동네어린이)는 프랑스·타이완·중국과의 판권계약에 이어 최근 영문판을 출간했다. 올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국제도서전의 ‘한국의 해’ 행사는 문학·출판은 물론 공연·미술·학술까지 한국문화를 총체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김자성 차장은 “드라마·영화뿐만 아니라 여타 장르의 콘텐츠로까지 한류가 번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외국인과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한 한국어능력시험 지원자는 1997년 2274명에서 지난해 1만 7531명으로 8배 늘었고, 세계 각국의 한국학 개설강좌는 95년 143개 대학에서 2004년 335개 대학으로 늘었다. 지난해 초 중국 베이징에 한·중 합작 뷰티전문병원인 ‘아이캉병원’이 문을 연 이후 국내 병원들이 속속 중국으로 몰려 현재 베이징·상하이 등지에서 40∼50여곳의 병원이 성업 중이다. 한류열풍은 전통음식인 김치의 수출확대에까지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김치 수출액은 일본으로의 물량이 대폭 늘어 사상 처음으로 수출액 1억달러를 돌파했고, 인삼과 고추장 등의 수출도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新한류 성공조건은 전문가들은 한류가 아시아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더 나아가 세계로 확산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한다. 자칫 머뭇거리다간 우리보다 앞서 동남아를 휩쓸다 자취없이 사라진 일류(日流)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한류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는 드라마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비슷한 유형의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면서 타이완·베트남 등지에서는 “한국 드마라 주인공은 왜 다 죽느냐.”는 식의 비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 김영덕 연구원은 “드라마의 질적 수준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들의 몸값 상승이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콘텐츠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이 약세를 보이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일본 드라마의 경우 높은 가격 때문에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방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제작 인프라의 확충과 연예 산업의 선진화, 그리고 드라마와 기업광고의 연계 등 다양한 마케팅 기법들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또한 드라마 관련 관광위주에서 한류와 우리 고유문화를 연계한 고부가가치 관광상품의 개발이 절실하다. 대장금의 수라상을 음식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한의학과 관련된 의료관광상품으로까지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관광정책연구원 채지영 연구원은 “‘겨울연가’의 사례에서 보듯 드라마 한 편이 가져다 주는 파급효과가 엄청나지만, 그에 비해 지역에서의 대비책은 아직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한류를 일방적인 문화전파가 아니라 상호 문화교류의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시각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적 논리의 팽배, 획일적인 콘텐츠, 미국 문화의 퓨전 등 한류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경제적 효과 지난 1일 인천공항에 입국한 일본 관광객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최근 일본 NHK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대장금’의 출연진이 공항에서 이들을 반갑게 맞아준 것. 한국관광공사가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과 ‘2005한·일공동방문의 해’를 맞아 마련한 행사였다. 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일본·타이완·홍콩 등 한류 국가로 분류되는 8개국의 관광객이 전년보다 34.3% 증가했다. 이는 다른 나라의 관광객 증가율 9%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관광공사는 올해 한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일본인 관광객 300만명과 중국 등 중화권 관광객 200만명 등 외래 관광객 70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한류의 경제적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배용준이다. 일본 다이이치(第一)생명경제연구소는 배용준이 한·일 양국에 파급시킨 경제적 효과를 2조 3000억원대로 추정했다. ‘겨울연가’ 촬영지인 강원도 남이섬과 중도 등은 연간 최소 160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관광공사는 한류열풍으로 약 8400억원의 추가 관광수입과 330억원에 이르는 국가 홍보 효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의 한류 마케팅도 뜨겁다. 삼성전자는 올해 아시아권 최대 음악축제인 ‘2005 MTV 아시아어워드’에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동남아 젊은 층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을 활용, 이 지역에서의 매출 3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평양화학은 전지현을 모델로 내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해 매년 두 배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99년 베트남에 진출한 LG생활건강은 김남주의 인기에 힘입어 베트남 화장품 시장의 70%를 점유한 상태다. 정부도 한류를 문화상품에서 본격적인 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다. 올 상반기중 홍콩·베트남·타이완 등 아시아권 5개국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차례 더 벌인뒤 이를 바탕으로 한류 국가를 공략하기 위한 문화산업 관련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MBC ‘거울속의 한·일’ 특집

    MBC ‘거울속의 한·일’ 특집

    MBC가 을사조약 체결 100주년, 한·일 수교 40주년인 2005년을 맞아 한·일 관계를 재조명하는 특집 기획 다큐를 마련했다. 9일 오후 10시35분부터 2편 연속 방송하는 신년 특집 다큐 ‘거울 속의 한·일’(연출 배대윤, 정관웅)은 한·일 양국에 의미있는 해인 2005년을 맞아 양국의 문화적·정서적 거리감을 살펴보고, 그 간극을 좁힐 공존의 길 등을 모색해본다. 제1편 ‘오바리언의 반란’은 지난해 일본 열도를 휩쓴 ‘욘사마’ 열풍을 중심으로 일본 속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한국을 살펴본다.‘오바리언’은 일부 일본 보수 언론이 아줌마(오바상)와 외계인(에일리언)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 겨울연가 관련 캐릭터 상품을 사모으고, 남편을 홀로 내버려둔 채 한국까지 촬영지 답사 여행을 나서는 열광적인 중년 여성 팬들을 비꼬는 용어다. 취재팀은 이런 ‘오바리언’들을 직접 만나 이들이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파생 효과와 그 의미를 짚어봤다. 배대윤 프로듀서는 “최근 일본 내 한류를 단순한 일부 중년 여성들의 과잉반응으로 축소해석해서는 안 된다. 일본내 한인교포 사회 위상도 덩달아 높아지는 등 파생효과와 의미가 크다.”면서 “이를 계기로 한·일간 대중문화 교류 활성화를 통해 양국이 시너지 효과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2편 ‘화투와 단무지’는 한국 문화에 이미 광범위하게 파고든 일본 문화를 통해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을 살펴본다. 또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한국,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그간 한·일 관계의 변화도 짚어본다. 정관웅 프로듀서는 “일본 문화를 생활 속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들 내부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일본에 대한 미움’을 다양하게 풀어보겠다.”고 말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사고] 서울신문과 희망의 새해를 2005년 10대기획 독자와 함께 합니다

    서울신문이 을유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정치불신과 경제적 자신감 상실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희망과 활력이 넘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 서울신문은 ‘뉴 프런티어십(개척·도전·창조정신)을 찾자’를 신년 구호로 정했습니다. 광복 60주년과 한·일수교 40주년,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대립과 갈등, 분열과 정체의 낡은 시대를 마감하고 발전의 새로운 원동력을 발굴해 국민통합의 시대를 열어 나가자는 취지입니다.‘광복 60년 국민의식조사’와 ‘이젠 사람입국이다’,‘한일수교 40년-일본을 다시 본다’ 등의 기획보도물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상을 새롭게 제시할 것입니다. 환경·인권·노인·복지 등의 문제를 다룬 다양하고 알찬 기획물도 선보일 것입니다. 새해 서울신문이 펼쳐보일 ‘2005 10대 기획’에 독자들의 아낌 없는 사랑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광복 60년-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에 의뢰해 광복 60년을 맞은 오늘의 한반도 현주소와,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바람직한 미래상을 알아봅니다. 국민의 통일의식과 한·미동맹, 경제난 타개와 새로운 영역(뉴 프런티어)의 개척, 정치개혁과 민주화의 방향 등을 조망합니다. ● 인권 선진국으로 가자 장애인, 여성, 난민,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 현장을 찾아갑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발족 2돌을 맞아 인권 선진국의 사례를 알아보고 인권이 보호되고 소중히 여겨지는 사회가 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정감록은 한국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예언서이자, 민초들의 희망이 담긴 밥그릇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와 문화, 역사, 철학에 담긴 비밀을 백승종(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푸른역사연구소장의 대중적인 필치로 엮어 냅니다. ● 2005 문화코드 노래와 춤, 영화와 연극, 미술과 음악 등 유행의 이면에 숨겨진 대중문화의 키워드와, 고급문화에 담긴 한국사회의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와 그 변화 방향을 점검합니다. 대중문화를 리드하는 예술인, 문화인들의 신사고를 통해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짚어 봅니다. ● 클릭 이슈 그때그때의 쟁점 사안과 작지만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이야기의 이면을 추적합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쓰고 있지만 실은 잘 모르는 얘기, 뒤늦게 확인된 사안의 실체와 경위, 통계 숫자의 허실 등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 드립니다. ● 이젠 사람입국이다 2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한 경쟁력의 새로운 원천을 발굴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입니다. 현대 경영학의 거두 피터 드러커 교수와의 대담을 시작으로 우리보다 한발 앞서 평생학습 시스템을 구축한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2만달러 시대로 가는 열쇠를 제시합니다. ● 한일수교 40년-일본을 다시 본다 10년의 침체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선 일본의 저력을 심층 해부합니다. 거품과 부실 처리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노력이 다시 일어선 일본의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를 조명합니다. 일본 재도약의 비결을 현지 취재를 통해 샅샅이 살펴볼 것입니다. ● 2005 재계인맥 대해부 한국기업을 이끄는 새로운 리더군을 조명합니다. 개별기업의 단편적인 인맥 소개를 넘어 기업집단의 학맥, 혼맥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전문경영인의 면면도 상세히 소개합니다. 주 I회씩 총 50여회에 이르는 방대한 연중 기획물이 될 것입니다. ● 일하는 노년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문제의 현황과 대책을 제시합니다. 노인의 건강, 취업활동, 여가, 사회복지서비스, 의료정책 등을 집중 점검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찾아온 인구 고령화 시대의 문제점을 해부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 DMZ의 사계절 지난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연재한 ‘DMZ 51년-그 빛과 그림자’에 이어 그 후속편인 ‘DMZ의 사계절’을 포토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합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DMZ 생태계의 신비를 생생하게 지면에 옮겨 담을 것입니다.
  • 日, 왕세자 부부 방한 추진

    |도쿄 이춘규특파원|나루히토 일본 왕세자 부부가 올 가을 이후 한국을 방문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일 보도했다. 신문은 일본 정부가 한ㆍ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는 올해 양국 우호증진을 위해 왕세자 부처의 방한을 검토 중이며 한국 정부와도 비공식 협의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방한하면 왕세자가 일제에 의한 식민지 지배를 사과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taei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마라도 등대지기 김석천 항로표지관리소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마라도 등대지기 김석천 항로표지관리소장

    지난 풍진(風塵)세상의 먼지를 털고 새 옷을 입어 보자. 어디로 갈까. 산사(山寺), 바다, 아니면? 파도가 거칠고 바람이 몹시 부는 곳이면 어떨까. 처음 시작되는 이름이 ‘마(麻)’에서 ‘마(馬)’로 바뀐 곳, 최남단이 좋겠다. 맞다, 그 섬이구나.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제주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간다.(∼)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 20년 동안 제주에서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김영갑씨의 ‘그섬에 내가 있었네’가 문득 생각난다. 또다름의 풍진세계가 다가온다. 올해는 아픈 역사를 되새길 일도 유난히 많다. 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40주년…. 굵직한 화두다. 어이해야 하나. 생각의 나침반을 우선 저 멀리 돌려 보자. 국토의 한 점밖에 안되는 낮은 그 곳으로. 마라도는 우리 땅의 막내이자 맨끝.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줄을 잘못 서서 홀대를 받아왔다. ●90년째 국토 시작의 불 밝힌 마라도 등대 마라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반도의 허리가 삭둑 잘린 상황에서, 마라도는 반도 시작의 불을 밝히는 곳이다. 그렇다, 마라도의 등대. 온갖 선박의 항로를 밝혀주는 생명의 길잡이가 있는 곳이다. 거친 파도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90년째 묵묵히 걸어왔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지금은 세계 각국의 해도(海圖)에 어김없이 표기될 정도로 창대해졌다. 마라도 등대는 을사조약 체결 10년 뒤인 1915년 3월 첫불을 밝혔다.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을 염두에 두고 주위 작은 섬들과 교신하기 위해 군사통신기지를 설치하면서 시작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난달 말.50여명을 태운 마라도행 유람선이 제주 남제주군 송악산 선착장을 막 출발했다. 겨울바다여서 그런지 파도가 꽤 높았다. 유람선 오른편 창가너머로 얼굴을 돌렸다. 바다와 맞닿은 송악산 절벽자락에 뻥 뚫린 동굴들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들어왔다. 유람선 안내원이 선내 방송을 통해 “보다시피 송악산 해안가에는 모두 25개의 인조동굴이 있다.”면서 “저 동굴은 일본군이 연합군 함대가 인근을 지날 때 어뢰공격이나 가미카제식 공격을 하기 위해 어선을 숨겨 놓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일제는 10m 간격으로 해안을 돌며 동굴을 파놨으며 공사에는 인근 주민들이 강제 동원됐다.”고 덧붙였다. 20여분후 저 멀리 마라도 등대가 보였다. 마라도의 전체 둘레는 4.2㎞,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0m. 그 위에 마라도 등대탑이 16m 올라가 있었다. 한폭의 풍경화 같았다. 외부인의 침입(?)에 대한 경고일까, 아니면 홀대받아온 막내의 ‘몽니’일까. 배가 마라도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잠시후 배는 가까스로 접안했고 관광객들은 ‘와’하는 탄성을 지르며 발을 내디뎠다.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풍진의 먼지를 털어내려는 듯 사방팔방에서 바람이 세차게 몸을 감았다. ●등대 대표로 보신각 ‘화합의 종’ 울려 등대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제주지방해양수산청 마라도항로표지관리소’라는 문패가 있었다. 좌우로 살폈다. 아무리 둘러봐도 발 아래에는 망망대해뿐. 뒤로는 한라산, 동으로 대마도와 일본열도 구나카이현, 서쪽으로는 중국 남쪽 상하이와 마주하는 북태평양이 펼쳐진다. 아, 이곳이 시작이구나. 누가 국토의 끝이라 했던가. “마라도 등대는 올해부터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됩니다. 최근 이곳에 해양문화공간을 완공했거든요. 이는 곧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 해양문화의 시발점을 상징합니다.” 김석천(43) 항로표지관리소장. 등대근무 경력만 20여년째의 베테랑. 그는 섬(우도)에서 자라 고교를 졸업한 뒤 곧장 등대원의 길을 걸었다. 우도에 3년, 추자도에서 5년 등 주로 제주의 섬 등대에서 근무했다. 마라도에는 1년여 전에 부임했다. 등대원들은 옛날과 달리 공무원 신분으로 2년마다 순환근무를 하게 된다. 을유년(乙酉年) 새해를 맞는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우선 31일 서울 보신각 ‘화합의 종’ 제야 타종 인사 16명 가운데 한명으로 선정됐다. 개인적으로는 등대원 생활 20년 만에 처음이지만 전국 유인등대 43개소 가운데 대표로 발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159평 해양문화공간 최근 완공 또 있다. 다름아닌 타종식이 있던 날 마라도 등대시설에 새로운 해양문화 공간이 들어선 것. 그는 “마라도가 결코 국토의 끝이 아닌 광복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장소가 될 것”이라고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 공간에는 대지 159평에다 100여평의 전시실 외에도 휴게공간 ▲사진촬영 코너 ▲거꾸로 보는 세계 지도 ▲광파의 시초인 장작불 모형의 조형물, 특히 마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꿈을 보관할 수 있는 타임캡슐까지 만들어 먼훗날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등대 탄생 90년 만에 동방의 새로운 불을 밝히는 국토사랑의 장소로 탈바꿈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10초마다 한번씩 깜박이는 마라도 등대의 불빛은 최장 40㎞까지 뻗어 나간다. 등대에는 태양과 풍력 에너지로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기가 끊겨도 불빛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것. 최근에는 위성항법 장치까지 설치돼 마라도 주위를 항해하는 모든 선박에 기상 상태 등을 실시간 제공해 주고 있어 한차원높은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새해 소망요? 마라도는 1년내내 아무리 많은 파도가 쳐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불이 한번도 꺼지지 않는 곳입니다.2004년의 괴롭고 어두웠던 풍랑은 이미 지나갔지요. 올해는 다들 힘든 일이 있어도 등대처럼 어두운 길에 불을 밝혀주는 그런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또 “관광객들 중에는 마라도를 어떤 낙도의 외딴섬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면서 “마라도를 국토사랑의 순례지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아울러 피력했다. 김 소장과 함께 일하는 등대원 고성봉(39)씨는 “이곳 30여가구의 주민들이 마라도에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희망을 안겨주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횟집을 운영하는 김춘광(34)씨는 “경제난의 여파가 마라도에도 불어닥쳤다.”면서 마라도를 떠나는 주민이 생겨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의미있는 지적을 했다. 전교 학생수가 3명이 고작인 마라분교의 김혜지(4학년)양은 “요리사가 꿈”이라면서 “컴퓨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올해 소망을 얘기했다.3학년의 김영일군과 2학년의 김은영양은 열심히 공부해서 장차 선생님과 변호사가 되겠다며 활짝 웃었다. 마라도 김문기자 km@seoul.co.kr ■ 마라도 등대에 얽힌 사연 ‘군인집’으로 불렸던 마라도 등대는 한때 파괴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 마라도 주민들에 따르면 1948년 4·3사건 때 서북청년단들이 쳐들어와 등대를 부수려고 했다는 것. 그러나 당시 나봉필이라는 주민이 서북청년단들을 겨우 설득시켜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그후 나씨는 자진해서 등대지기가 됐고, 또 마을 주민들과 조를 짜서 밤마다 등대에 올라가 손으로 직접 불을 밝혔다고 한다. 나씨는 정부수립때까지 무료봉사로 등대를 관리했으며 정부수립 후에 밀가루와 구호물자 등으로 3년 동안의 보수를 한꺼번에 받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후 등대운영은 정부측으로 넘겨졌다. 한편 ‘마라’란 명칭은,1702년(조선 숙종 28년) 제작된 ‘탐라순력도’에 ‘麻羅島’로 표기돼 있다. 칡넝쿨이 우거진 섬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그 이후 언제부터인가 ‘馬羅島’로 표기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어부들 사이에는 남쪽에서 부는 바람인 ‘마파람’에서 유래됐다는 해석도 있다.
  • [사설] 친일청산 이번엔 확실히 하자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때늦기는 했지만, 우리사회가 해묵은 과제인 친일 청산을 완수할 법적·사회적 기준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중차대하다. 여야가 합의해 법을 마련함으로써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에 우리는 친일 행적의 실상을 밝히고 그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몇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에 친일 문제를 완전히 털고가야 한다는 점이다. 해가 바뀌면 2005년, 곧 광복 60주년에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두 세대가 지나도록 친일 문제를 청산하지 못한 채 사회 내부에서 고질병으로 앓아 왔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더이상 시빗거리가 남지 않게끔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 그 결과를 역사의 장(場)으로 넘겨야 한다. 우리가 친일 문제를 청산하려는 뜻이, 이제 몇명 남지도 않은 친일 당사자를 응징하거나 친일파 후손을 욕보이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친일 행적 조사는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냉정하고 엄격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대상인물 또는 그 후손이 현 사회에 영향력 있는 인사라고 눈감아 주어서도 안 되지만 이를 공격의 빌미로 삼아서도 아니된다. 정치·개인적 이유로 친일 문제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개입한다면 가차 없는 국민의 지탄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친일파의 행적이 드러나면 당사자에 대해 평가는 당연히 새로 내려질 것이다. 당사자와 그 후손들은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 ‘발로 뛰는 영사상’ 받아

    재외동포신문이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발로 뛰는 영사상’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오성환(41) 영사가 선정됐다. 재외동포신문 김제완 편집국장은 28일 “동포단체장이 복수로 추천했고 공익성과 전문성 등을 종합평가해 오 영사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오 영사는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행사를 러시아 정부가 지원하도록 했으며, 고려인연합회와 ‘러시아에서의 140년간(한인 이주사)’, 재러 독립유공자후손협회와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등을 번역, 출간했다. 오 영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더욱 소신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국악인 박범훈씨 종합대 총장에

    한평생을 우리 가락의 현대화, 대중화에 매달려 온 ‘신 국악인 박범훈’이 중앙대 총장 자리에 올랐다. 국내 종합대학에서 국악인 출신 총장이 탄생하기는 처음이다. 중앙대 법인 이사회는 24일 직선제 투표에서 1위 후보로 올라온 박범훈(56) 국악대학원 창작음악학과 교수를 제12대 총장으로 뽑았다. 그는 고향인 경기 양평의 중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다가 17세 때 동네에 찾아온 남사당패에 매료돼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가락과 인연을 맺은 그는 국악예고에 들어가려고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오면서 국악을 향한 도전의 길에 들어섰다. 인간문화재 지영희 선생에게서 피리를 배운 그는 예고 졸업 후 중앙대 음악학과(작곡)를 거쳐 일본 무사시노 음대에서 석사, 동국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도전을 즐기는 박 신임총장은 국악의 대중화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한영애, 송창식, 김수철 등 대중가수와 함께 국악 공연을 시도하고, 도올 김용옥의 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86아시안게임,88올림픽,2002한·일월드컵, 대구유니버시아드 등 굵직한 행사의 개막식 음악 작곡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MBC 마당놀이 ‘허생전’,‘홍길동전’ 등도 그의 작품. 그에게는 ‘첫’이라는 말이 늘 따라다닌다.93년 처음으로 아시아민족악단 창단식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12현 가야금을 현대적으로 개량한 25현 가야금을 선보였다. 민간으로는 국내 최초인 중앙국악관현악단도 만들었다. 교육행정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해 10년 남짓 서울국악예고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한국 최초로 서울국악유치원, 국악중학교, 국악대학, 국악교육대학원을 잇따라 설립했다. 발도 넓어 지난 11월11일 열린 그의 ‘음악인생 40주년 기념공연’에는 정·관계, 문화계 인사 1500명이 참가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런 그가 총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자 음악계 선후배들이 “작곡이나 지휘는 누가 하느냐.”며 말리기도 했다는 후문. 그는 “4년 동안 부총장직을 맡아 중앙대의 행정이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고민했다.”면서 “그래도 막상 총장이 돼 발전기금을 모금하러 다닐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껄껄 웃었다. 박 신임총장은 내년 초 40장의 CD로 구성된 ‘박범훈 소리연(緣)’전집을 내고 잠시 창작활동을 쉴 작정이다.“예술이 노래하고 춤추는 딴따라만이 아닌, 행정과 정치가 모두 담겨져 있는 분야”라는 그의 예술철학이 어떻게 대학 운영으로 나타날지 자못 궁금해진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日역사교과서 왜곡 실체와 해법은-기고] 꼭, 그러나 세련되게

    2005년은 ‘역사의 해’가 될 전망이다. 을사조약 100주년, 해방 60주년, 한·일협정 40주년의 해이기 때문이다. 이 기념 이벤트들은 지난날 한·일관계의 산물이다. 그런데 2005년에는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검정 결과도 발표된다. 이와 관련하여 2001년에도 커다란 파동이 일어난 것을 독자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파동의 중심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만든 교과서가 있었다. 만드는 모임측의 교과서는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식민지 지배를 긍정하고 있다. 이들은 2001년에 채택률 10%를 목표로 했지만 터무니없이 낮은 0.039%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그러나 반성하기는 커녕 곧바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4년 후에 ‘복수’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만드는 모임측은 2003년 총회에서도 목표치를 10%로 설정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10%는 향후 10년 내에 자신들의 교과서가 다수파로 될 수 있는 발판이자 진지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대중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중앙의 정치인만이 아니라 지방의회의 의원까지도 지원에 나서고 있다. 만드는 모임이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선도하는 중심축인 것이다. 이들의 배타적인 역사관은 결국 한반도의 통일까지 방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견되는 파동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선 채택률 10%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다양한 전망을 구체적인 현실속에서 찾아야 한다. 2001년에 왜곡 교과서의 움직임은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운동과 한국 등의 적극적인 지원 때문에 좌절되었다.2005년에도 이러한 접근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제는 불채택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다는 대안까지 보여주는 운동이어야 한다. 일본사회에 반대만 하는 집단으로 보여서는 호소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적 활동만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 정부도 이전과 달리 비판의 전면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겉으로 볼 때 역사왜곡의 전면에 나서는 곳은 일본정부가 아니라 만드는 모임이며, 교과서 채택 자체를 중앙정부에서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에 대해 우익 정치인만이 아니라 보통사람들도 내정간섭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보수화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기존의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욘사마열풍’으로 상징되듯이 이제는 한·일 양국민의 상호방문이 연간 400만 명을 넘어섰다. 활발한 상호방문 속에서 두 나라 시민단체와 자지단체간의 교류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2005년에도 역사왜곡 파동이 일어나면 정부는 선두에 나서지 말고 국내 여론을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한일간의 교류에 든든한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2001년도처럼 주일대사를 소환하는 등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혀서도 안된다.2005년을 ‘한·일 우정의 해’로 합의한 명분 때문에 일본의 시민단체와 직접 접촉하여 되지도 않을 축제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유치한 행동은 말아야 한다. 교과서의 문제점은 정부가 아니라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지적해야 한다. 이때도 ‘이것을 언제까지 고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형식이어서는 안 된다.2001년처럼 자매결연을 중단해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사실의 왜곡을 지적하기는 하되, 두 나라의 ‘상생을 위한 역사의식과 행동’을 촉구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일본의 교과서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일본인이지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언행보다 원칙적이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대응이어야 한다. 일본인도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끌어안고 갈 필요가 있다. 신주백 서울대 社科硏 책임연구원
  • 본사 방문 후쿠무라 日 기쿠치 시장

    본사 방문 후쿠무라 日 기쿠치 시장

    “한국인 무비자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한·일 민간 교류에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20일 서울신문사를 방문한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菊池)시의 후쿠무라 미쓰오(64) 시장은 채수삼 사장과 만나 “일본 정부의 항구적 비자 면제를 위해 제2단계 노력을 펼칠 계획”이라며 그동안 서울신문의 보도 등으로 무비자 운동이 큰 진전을 본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기쿠치시는 한국인 무비자 운동을 시작한 발상지라고 할 만큼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 지난 7월 한·일 제주 정상회담에서 아이치 만국박람회 기간인 내년 3∼9월 한시적 무비자 실시에 합의한 데 이어, 지난 17∼18일 가고시마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그는 “2년 전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하루 600통의 항의 메일이 쏟아지고, 경찰이 신변보호를 해주겠다고 할 만큼 반대 여론이 거셌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러나 지난 3월 한국인 학생 무비자가 시행됐을 때는 전혀 항의가 없을 정도로 불과 1년 사이 양국간 교류가 이렇게 깊어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본 정부가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올라 57%가 우호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이는 정치가가 이룬 결실이 아니라, 양국 국민이 한류 붐 등 비슷한 정서를 나누고자 한 결과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후쿠무라 시장은 “하나의 촛불 같은 우리들의 미약한 운동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서울신문을 비롯한 한국인들의 계속적인 도움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채 사장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언론사로서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는 내년에 우리가 해야 할 역할에 사명감을 갖고 있다.”면서 “서울신문과 기쿠치시가 협력해 욘사마 이상의 민간 교류 효과를 거두도록 무비자 운동을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韓·日정상 역사관

    |가고시마 박정현특파원|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17일 서로의 역사관을 드러냈다. 두 정상은 이날 숙소인 가고시마현의 이부스키 시내 하쿠이스칸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4개의 질문을 받았다. 납북자 가짜 유골 문제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질문이 정상별로 2개씩이었다. 노 대통령은 내년의 국교 정상화 40주년을 앞두고 역사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을 받고 “거참, 분위기 좋은 날 말하기 어려운 주제”라면서 “그러나 답변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한국은 감정적이면서 미래 지향적 차원에서 일본이 역사문제를 흔쾌히 해결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면서 일본의 지도자들이 여러 차례 매우 전향적인 입장 표명을 했다고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또다시 사과를 요구할 경우 한·일간 우호친선에 도움이 될지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일본에 오면서 일본 국민들이 감정적으로 나쁘게 반응할 만한 일은 제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왔다.”고 털어놨다. 지난 7월 제주정상회담에서도 노 대통령은 과거사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일본 국민들이 결단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동북아에서 강대국이고 앞으로 세계 질서에서 강대국인 일본 국민이 좀더 겸손한 자세와 관용·양보의 태도를 보이라는 주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약한 나라의 관용은 비굴로 비칠 수 있지만 역량이 있는 강대국의 관용은 겸손으로 비칠 수 있다.”면서 일본의 위상에 걸맞은 자세를 촉구했다. 이어 고이즈미 총리에게 한국 기자가 아소 다로 일본 정조회장이 ‘내년을 한·일협약 100주년’이라고 한 데 대해 ‘망언’‘전범’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질문하자 고이즈미 총리의 표정은 굳어지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한국 분들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는 것도 있었을지 모른다.”면서 “앞으로 장래의 우호협력 관계를 살리는 그런 시각이 필요하다.”고 편치 않은 심기를 드러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어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과거 고난의 길을 걸었고,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선인들에게 경의와 감사의 뜻으로 신사참배를 하고 있다.”면서 “결코 군국주의가 되자거나 그런 준비를 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신사참배를 중단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jh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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