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40주년
    2026-06-08
    검색기록 지우기
  • 해법
    2026-06-08
    검색기록 지우기
  • 넥센
    2026-06-08
    검색기록 지우기
  • 방류
    2026-06-08
    검색기록 지우기
  • 몸살
    2026-06-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12
  • [23일 TV 하이라이트]

    ●사이언스+(YTN 오후 1시35분) 인천 국제공항이 지난 3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제 2회 공항 품질 서비스 국제회의에서 최우수 항공상을 수상했다. 세계는 지금 인천 공항의 운영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느라 야단이다. 인천 국제공항은 ISO 9001품질 인증에 걸맞은 첨단 편의시설과 서비스 품질 기준을 엄격하게 지켜가고 있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폴리머 클레이는 폴리염화비닐(PVC)을 주원료로 하는 인조 플라스틱. 대중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폴리머 클레이 개발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홍희정 폴리머 클레이 아티스트. 그녀에게 폴리머 클레이의 기본 패턴인 트위스트, 모양 칼을 이용한 무늬 만들기, 그라데이션을 배워본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8시55분) 주민들은 집 값이 폭락할 것을 염려해 심각한 중간소음 문제를 기밀에 부치기로 했다. 얼마 후, 소음문제를 숨긴 채 집을 내놓은 여자. 주민 모두의 공동작전으로 계약을 성사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사 첫날부터 들려오는 생활소음으로 참다못해 부녀회장을 찾아간 새 입주자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되는데….   ●있을때 잘해(MBC 오전 7시50분) 순애와 진우는 멀리서 동규와 영조가 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서로 껴안으며 행복한 모습으로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순애와 진우의 다정한 모습을 본 동규는 속으로는 화가 나지만 영조 때문에 내색은 못한다. 한편, 홈쇼핑 로비에서 은수와 마주친 영조는 유미엄마한테 몸조심하라며 협박조로 얘기한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국내 대표적인 창작뮤지컬로 인정받고 있는 뮤지컬 ‘명성황후’의 제작자이자 연출가인 윤호진 교수. 한국뮤지컬 40주년을 맞아 한국 창작 뮤지컬의 대부로 통하는 그를 만난다. 한국뮤지컬 40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한국 뮤지컬이 되기 위한 과제와 한국 창작 뮤지컬의 현주소를 들어본다.   ●열아홉 순정(KBS1 오후 8시25분) 명혜는 윤정이 빼간 자신의 보석을 치렁치렁 달고 있는 옥금, 홍영감과 나란히 앉아있는 혜숙을 보고는 놀란다. 설상가상으로 우경과 윤정을 데리고 살겠다는 옥금의 말에 기가 막힌다. 한편, 윤후는 자존심을 팽개친채 친구로부터 빌린 3000만원을 손에 들고 국화와 함께 동국과 명혜를 찾아간다.
  • [열린세상] 자주와 지식정보화 사회/양필승 건국대 교수·차이나타운 건립위원장

    올해로 개시 40주년, 종료 30주년을 맞이한 중국의 문화혁명을 통해, 우리의 386세대나 대통령이 ‘자주’라는 망령에 시달리고 있는 원인은 물론 그 결과마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금년으로 죽은 지 30년 되는 마오쩌둥과 그의 작품인 홍위병은 밖으로 중국이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안으로 인민대중 역시 지식인 엘리트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반(反)엘리트주의와 폐쇄적 민족주의는 ‘자주’라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안으로의 ‘자주’는 ‘다자이로부터 배우기 운동’에서 선명히 드러났다. 다자이는 중국 서북부 산간 벽지에 위치한 인민공사의 생산대대 명칭으로, 소규모의 생산대가 아닌 대규모의 생산대대를 회계단위로 삼음으로써 자급자족인 농촌공동체를 만들려는 대중운동이었다. 도시인의 삶에도 자주의 망령이 지배했다. 노동과 경영 사이, 육체 노동과 지적 노동 사이의 지위와 기능의 격차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자주의 망령이 더욱 힘을 발휘한 곳은 대학이었다. 한마디로, 대학에는 학생이 없었다. 안으로의 자주를 실천하기 위해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학습하는 ‘하방’에 따라 농촌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력갱생의 노력은 ‘맨발의 의사’에서 절정에 달했다. 마오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명의인 “화타가 언제 의대에 다녔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어깨에 약 상자를 둘러메고 맨발로 다니며 치료하는 맨발의 의사를 탄생시켰다. 그 수가 1970년대 중반 무려 100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화타와 달리 단기간 훈련으로 양산된 맨발의 의사는 멀쩡한 사람도 죽이는 돌팔이에 가까웠다. 이렇게 문혁은 고등교육과 전문성을 무시하고, 기술 인텔리겐치아의 사기를 황폐화시켰다. 한편 밖으로의 ‘자주’는 중국으로 하여금 겉으로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표명하면서 실제로는 철저한 자국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이중성을 낳았다. 미국과의 대립은 물론 소련과도 매사에 으르렁댔다. 경제적으로는 외국의 원조나 차관 대신 자력갱생으로 부족 자본을 조달했다. 당연히 외국의 문화나 기술도 거부했다. 왜 문혁의 주역들은 ‘자주’의 망령에 사로잡혔을까? 마오나 홍위병은 과거의 틀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도, 미래를 올바르게 전망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 발전이란 끊임없는 전문화와 분업화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반외세와 반봉건 투쟁이라는 과거의 짐에 여전히 억눌려 있었다. 자주의 망령은 ‘밖으로의 자주’로 인한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철저한 내부 격차 해소를 지향하는 ‘안으로의 자주’로까지 발전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문혁은 입증했다. 만약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자주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세계화 시대에서의 탈락뿐 아니라 지식정보화 사회로의 진입 포기를 자초하는 결과가 올 것이 틀림없다. 밖으로 자주하면서, 안으로 고도의 전문지식을 강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핵 자주나 우리의 작전권 자주는 역사를 후진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 오히려 적극적 대외협력을 통해 자주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는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결국 마오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주의 양면성이 지닌 위험성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그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계기를 국제관계의 획기적 전환으로부터 찾았다. 역사적인 핑퐁외교(19 71년)와 닉슨 대통령의 방중(1972년)으로 문혁이 추구하던 외적 자주는 물론 내적 자주마저도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따라서 문혁으로 야기된 ‘동란’의 10년은 1976년 마오의 죽음으로 끝났지만, 실제로 중국이 스스로 대외적 고립을 포기함으로써 문혁은 훨씬 이전에 실질적인 종지부를 찍었다. 이미 ‘다자이식 농업’도,‘맨발의 의사’도,‘노동관계의 자주’도 시들해져 버렸던 것이다. 양필승 건국대 교수·차이나타운 건립위원장
  • 신일고 40돌 예술제

    신일고등학교 총동문회(회장 유선구 한미산업개발 대표)는 모교 개교 40주년을 맞아 12일 오후 7시30분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신일 예술제’를 개최한다. 연극인 장두이 교수를 총감독으로, 김관동·강창주 연세대 음대 교수, 문화평론가 김종휘, 배우 선우재덕·정진영·허준호, 가수 봄여름가을겨울, 야구인 조인성·김재현·김광산·강혁, 농구인 김진·박건연,MC 지석진, 개그맨 유상무 등 문화·예술·체육계 동문들이 출연한다.이상조 전북대교수, 이철수 판화가 등 동문 미술인들의 전시회도 10∼24일 서울 소격동 빛갤러리에서 열린다.(02)588-8206.
  • 연해주서 한국의 춤·소리 대향연

    ‘연해주에 울리는 한가위 풍류’ 추석을 맞아 우리 전통문화를 해외에 알리고 동포들의 민족 정체성 회복 및 동질감 형성을 위한 해외공연이 펼쳐진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가 4∼7일 연해주에서 개최하는 ‘천지감동, 한국의 춤과 소리 대향연’이 연해주 우수리스크 군인극장과 한인재생기금강당, 러시아한인이주140주년기념관 등에서 열린다. 이번 해외공연단은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 이애주를 비롯, 한국의집 무용단, 이리농악보존회, 경기민요 이수자 등 모두 31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부채춤과 경기민요, 장고춤, 아리랑 연주, 강강술래, 연해주 살풀이, 농악·세시놀이 등을 중심으로,4일 연해주 군인극장에서 2시간 동안 대향연을 펼친다. 추석날인 6일에는 오후 2시부터 풍년을 기원하는 길놀이와 전통무용, 부채춤, 아리랑 등 민요 연주로 이뤄지는 전통공연 한마당 ‘한가위 보름달 큰잔치’와, 재외동포들의 한글 사랑을 키우기 위한 각자·금속활자 시연, 추석을 기념해 한민족간 음식으로 정을 나눌 수 있는 음식체험 행사도 마련한다. 약과와 떡, 약식 외에 불고기와 김치 등 한국의 전통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 준비돼 연해주 동포들에게 훈훈한 한가위 분위기를 연출할 계획이다. 이어 7일에는 러시아한인이주140주년기념관에서 기념관 소속 풍물놀이팀과 이리농악보존회 출연팀이 현지 한인들을 대상으로 장구와 징, 꽹과리, 북 등 악기를 기증하고, 다양한 풍물강습도 펼칠 예정이다. 문화재보호재단 관계자는 “이번 공연으로 한인들은 물론, 연해주 현지인들에게도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이를 통한 국가이미지도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보호재단은 5∼7일 서울 필동 한국의집에서 40여가지의 한가위 음식 및 차례상 전시, 한가위 공연 및 기원행사 등으로 이뤄진 ‘한가위 소원 달!남산 위에 떴네!’행사를 진행한다.(02)2266-6938.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자유공론’ 창간 40주년 행사

    한국자유총연맹(총재 권정달)은 21일 오후 6시30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에서 이한동 전 국무총리와 박세일 서울대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사 이념 교양지 월간 자유공론 창간 40돌 축하회를 갖는다.
  • ‘수학의 정석’ 40년 홍성대 저자가 들려준 공부비법

    ‘수학의 정석’ 40년 홍성대 저자가 들려준 공부비법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참고서로 이용했음직한 수학교재가 ‘수학의 정석’이다. 이 수학의 정석이 31일로 발행 40주년을 맞는다. 저자는 자립형 사립고인 전북 전주의 상산고등학교 설립자인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 서울대 수학과 재학시절 그는 등록금, 책값, 하숙비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과외였다. ●3700만권 팔려… 에베레스트산 높이의 125배 기존 참고서로 과외하다 이왕이면 학생들에게 좋은 문제를 제공하자는 생각에서 서울 광화문 일대 외국서적 판매점을 뒤졌고 일본과 미국, 프랑스의 수학관련 자료도 모았다. 모은 자료가 늘면서 그냥 두기에 아까워 낸 책이 수학의 정석이다. 출간 첫 해 3만 5000여권이 팔리는 등 매년 판매 부수가 급증하면서 현재까지 최소한 3700만권이 팔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두께가 3㎝인 책을 한 권씩 눕혀서 쌓아올리면 에베레스트산의 125배 높이가 된다. ●출제 예상문제 망라… 높은 적중률 보여 성지출판사 김재호 전무는 수학의 정석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로 ▲ 수학의 기본과 원리를 논리성있게 알기 쉽고 친절히 설명했고 ▲ 출제 가능한 모든 유형의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어떤 출제경향에도 높은 적중률을 보였으며 ▲ 일정 수준 이상의 학생이면 혼자서도 능히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홍 이사장은 이날 “큰 손자가 고교생인데 ‘할아버지가 만든 책만 봐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고 했다.”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홍 이사장은 수학 공부 잘하는 비결도 들려줬다. 눈으로만 읽지 말고 종이에 직접 써보고 문제를 풀 때마다 혼자의 힘으로 풀어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며 예습 중심으로 학습을 할 것 등을 꼽았다. 특히 예습하고 나서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는다면 수학이 훨씬 흥미로워지고 기억에도 오래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학습방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도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교육당국이 서울에 국제중을 설립하는 것에 부정적인데 당연히 인가해줘야 한다.”고도 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창비, 한국소설 대표작 50권 완간

    창비판 한국문학전집이 완간됐다. 계간 ‘창작과 비평’40주년 기념사업으로 기획돼 지난해 7월 1차분 22권,11월 2차분 14권을 내놓았던 창비의 ‘20세기 한국소설’(편집위원 최원식 임규찬 진정석 백지연)이 마지막 14권을 보태 전 50권으로 마무리됐다. 전집에는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등 근대문학 요람기인 1910년대 작가들부터 김영하 배수아 하성란 등 젊은 작가들의 2000년대초 작품들까지 204명의 중·단편 374편이 실렸다. 기존의 ‘대표작’들에 휘둘리지 않고, 작가의 특성과 변모를 보여주는 문제작과 사회상을 반영한 수작들에 골고루 눈을 돌렸다. 최다 수록 작가는 6편이 실린 이태준. 이어 현진건 채만식 김유정 박태원 김승옥 황석영 박완서의 작품이 각각 5편씩 실렸다. 반면 최인훈과 백민석은 본인의 거절로 빠졌다. 수록 문인들 중에는 혈연으로 묶인 경우도 있다. 임화·지하련, 김동리·손소희 등은 부부 사이고, 최정희·김채원은 모녀간, 한승원·한강은 부녀간이다. 또 박화성·천승세는 모자간, 김원일·김원우는 형제간, 한무숙·한말숙은 자매지간이다. 일선 국어교사가 독자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박사급 연구진이 이에 대답하는 이메일 형식의 인터뷰는 이 전집의 또다른 자랑이다. 부록으로 나온 ‘20세기 한국소설 길라잡이’와 ‘우리소설지도’도 두고두고 쓸 만하다. 창비측은 “2차분까지 22만권이 팔렸고, 이번 완간을 계기로 본격적인 판매량 증가가 예상된다.”고 기대했다. 낱권 7000∼8000원. 전집세트 36만 40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전세계 한국인 과학자 1000여명 한자리에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과학자 1000여명이 한국에 모인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는 6일 세계한민족과학기술자대회를 오는 19∼22일 서울, 강원, 전북, 충남 등 전국 각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 행사는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과학자들간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국내 과학연구의 질적인 향상을 꾀하기 위해 지난 74년부터 시작됐으며, 올해로 16번째를 맞았다.참가하는 유명 해외 과학자로는 최근 여성자궁경부암 백신 개발에 관한 핵심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김신제 미국 루이빌대 교수, 미국 루슨트테크놀로지 벨연구소 김종훈 사장,28살의 나이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에 임용돼 한국인 최연소 기록을 세운 함돈희 교수 등이 있다. 과총 창립 40주년 기념식과 함께 개막되는 이번 행사는 플레너리 세션, 제너럴 세션, 과학기술 포스터 세션, 과총과학기술국제학술회의(KCIST) 등 4개 세션으로 나눠 진행된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세계적 그림책 작가 버닝햄 한국서 40주년 특별전

    세계적 그림책 작가 버닝햄 한국서 40주년 특별전

    영국 출신의 세계적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69)이 자신의 40년 이력을 정리하는 기념전시회를 앞두고 내한,5일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7일부터 9월3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열릴 ‘나의 그림책 이야기’는 작가적 영감을 얻은 유년시절 에피소드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작품세계 전반을 펼쳐보이는 회고전. 전시회에 맞춰 지난 이력을 사진과 그림, 작품 뒷이야기, 짧은 회고담 등으로 요약한 책 ‘존 버닝행-나의 그림책 이야기’(엄혜숙 옮김, 비룡소 펴냄)도 함께 출간했다.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로 꼽히는 부인 헬렌 옥슨버리와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한 버닝햄은 “40년 동안 해온 일인데다 새로 그림을 안 그려도 되니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무척 힘든 작업이었다.”며 새 자서전 이야기를 꺼냈다.“그림작가이지만 글과 그림의 중요성은 똑같다고 늘 생각해왔다.”는 그는 “다섯살에 정신연령이 멈춰버린 덕분에 오랫동안 아이들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이를 잊고 꾸준히 창작물을 내놓은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생활 속의 다양한 관계들에서 소재를 착상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대표작 ‘우리 할아버지’는 자신의 막내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최근작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는 열달 동안 꼬마아이를 관찰해 얻은 결과물이었다고 귀띔했다. “컴퓨터, 비디오 게임과 동화책이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고 지적하고 “내 그림책은 만국공통어이지만, 한국 아이들의 감수성에 아주 잘 맞을 새 책도 쓸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처녀작 ‘깃털없는 기러기 보르카’에서부터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까지 국내에 번역·소개된 작품은 무려 34권. 작가는 7일(성곡미술관),8일(교보문고) 오후 2시부터 팬사인회를 갖는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저우춘야·류웨이 전 7월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트사이드. 중국의 ‘블루칩 작가군’에 속하는 두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저우춘야는 사람들의 욕망과 행복감을 표현한 ‘초록개’ 및 ‘복숭아밭’ 연작을, 류웨이는 물질화속에서 중국인들이 겪는 소외와 고독을 담아낸 ‘꽃’ 연작을 선보인다.(02)725-1020. ■ 벽-그 너머의 이야기 전 7월30일까지 서울 서교동 갤러리 잔다리. 전시장을 둘러싼 벽과 공간을 소재로 ‘흰 벽의 텅 빈 공간’‘갑작스레 나타나는 문’‘좁은 골목길’ 등을 연출함으로써 흥미로운 공간 이야기를 풀어놓는 전시다. 김미형 김민정 김현지 박성연 등 9명의 작가들이 참여한다.(02)323-4155. ■ 전뢰진 개인전 7월4일까지 서울관훈동 인사갤러리. 원로조각가 전뢰진의 40여년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전시.1962년 제작된 작가 소장품부터 2006년 근작까지 석조각 중 시기별 작품 15점과 틈틈이 일기 쓰듯 작은 종이에 메모한 스케치, 작품 구상에 쓰인 에스키스 등 드로잉 100여점을 선보인다.(02)735-2655. ●어린이 ■ 러시아 인형극, 채마단의 듀엣 7월9일까지 화∼금 2시·4시30분, 토·일 1시·3시30분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냄비, 국자 등 일상의 소재로 절묘하게 만든 인형과 익살스런 마임극의 조화.2만원.(02)382-5477. ■ 목각인형 콘서트 7월15일까지 월∼목 11시, 금 11시·4시, 토 11시·2시·4시 북촌 창우극장. 정통 유럽 마리오네트 인형극.1만 5000원.(02)926-2050. ●클래식 ■ 이성요 피아노 독주회 7월6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슈만·드뷔시·프로코피에프 등 연주.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바흐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7월 19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브란덴부르크협주곡 전곡(1번∼6번 BWV 1046∼1051) 연주. ●연극 ■ 따라지의 향연 7월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나폴리를 배경으로 신분 차이를 초월한 청춘남녀의 순수한 사랑과 귀족사회의 허위의식을 풍자한 코미디극. 극단 자유의 창단 40주년 기념무대로 김금지 박인환 박웅 박정자 등 연륜 있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다. 스칼페타 작·김정옥 연출. 월∼금 8시, 토·일 3시·7시 3만∼5만원.1588-7890. ■ 강신일의 진술 7월9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4시 정보소극장. 살인 사건을 둘러싼 한 남자의 진술을 미스터리 기법으로 따라가는 모노드라마. 소설가 하일지의 원작을 무대화했다. 박광정 연출.1만 5000∼2만 5000원.(02)743-7710 ■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7월2일까지 화∼금 7시30분, 토 3시·7시, 일 3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뒤틀린 성적 욕망의 상처를 안고 사는 남녀의 파격적인 일탈을 통해 인간 내면에 깃든 욕망의 실체를 파헤친다. 손기호 작·연출, 한경미 홍성춘 등 출연.1만 5000∼2만원.(02)762-9190. ■ 나생문 7월2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4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영화 ‘라쇼온’으로 널리 알려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 구태환 연출, 최광일 장영남 등 출연.2만∼3만원.(02)741-3934. ●뮤지컬 ■ 브루클린 8월13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브루클린 뒷골목의 거리 연주자가 들려주는 따뜻한 사랑이야기. 펑크, 하드록, 팝, 가스펠, 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의 향연이 무대와 객석을 콘서트 현장처럼 뜨겁게 달군다. 브로드웨이 차세대 뮤지컬로 호평받은 최신작. 이나라 연출, 김소현 문혜영 등 출연. 화∼금 8시, 토 3시·7시, 일 2시·6시 3만 5000∼5만 5000원.1544-1555. ■ 밴디트 7월17일까지 화∼금 8시, 토·일 4시·7시30분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여성 탈옥수 4명으로 구성된 록밴드 밴디트의 무법질주. 동명의 독일 영화가 원작인 창작뮤지컬. 김은미 작·성천모 연출, 강효성 이영미 등 출연.3만 3000∼5만 5000원.(02)545-7302.
  • 극단 자유 창단40주년 기념 ‘따라지 향연’

    창단 40주년을 맞은 극단 자유(대표 이병복)가 28일부터 7월9일까지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대표 레퍼토리 ‘따라지의 향연’(연출 김정옥)을 공연한다.1966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창단작으로 선보인 ‘따라지의 향연’은 완고한 귀족문화에 대항하는 나폴리 젊은이들의 사랑을 해학적으로 그린 이탈리아 작가 스칼페타의 코미디극으로, 초연 이후 다섯번째 공연이다. 무대미술가 이병복과 연출가 김정옥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극단 자유는 창단 이래 지금까지 대표와 연출이 단 한번도 바뀌지 않을 정도로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한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김금지, 박인환, 박웅, 박정자 등 30∼40년을 자유와 함께 해온 배우가 수두룩하다.‘따라지의 향연’역대 공연에 서너차례씩 출연했던 이들이 이번 40주년 공연에서 주요 배역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또 가수 최희준, 탤런트 최불암·김혜자, 뮤지컬 배우 남경주 등이 카메오로 가세한다.3만∼5만원.(02)3141-1345.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4일 장면박사 추모미사 집전

    김수환 추기경은 제2공화국 국무총리를 지낸 운석 장면 박사 서거 40주년을 맞아 오는 4일 오전 10시30분 운석기념회(이사장 고흥길 국회의원)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구내성당에서 주최하는 추모미사를 집전한다.(02)784-5081.
  • 김수환 추기경 주교수품 40주년

    김수환 추기경이 31일로 주교 수품 40주년을 맞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날 “오늘은 김추기경이 주교로 수품된 지 40년이 되는 날”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40주년과 관련한 공식행사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 추기경 주교 수품 40주년 축하연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김 추기경이 고사해 별다른 행사 없이 종로구 혜화동 주교관에서 조촐한 모임만 갖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많이 울었지만 조국 발전에 한몫”

    |프랑크푸르트 심재억 특파원|“외로움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파독(派獨) 간호 40주년을 맞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20일(현지시간)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송재간(70)씨는 고단했던 지난 40년의 세월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외화벌이의 일환으로 독일에 간호사를 파견한 지 만 40년이 되는 해다. 1966년 4월29일 독일에 파견된 송씨는 파독 간호사 1세대다. 그해 1월에 이어 두 번째로 파견된 간호사 280여명 중 한 명이었다. 미국 알래스카를 거쳐 20시간 넘게 전세 비행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던 그녀는 그날 새벽 자욱했던 안개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맞아주는 사람도 없고, 힘겨운 투쟁의 첫 시작이었죠.” 낯선 땅에서의 힘든 생활이었지만, 한국 간호사들은 독일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송씨는 “한국 간호사들이 부지런한 데다 눈치가 빨라 일감을 스스로 찾아서 잘했다. 독일 신문들이 업무능력을 칭찬하는 기사를 내보낼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송씨는 프랑크푸르트 훼스트병원에서 영아실 부간호사를 지내고, 비스바덴에 있는 아우캄 병원에 수간호사를 지내는 등 독일에서 24년간 간호사 생활을 하다 1996년 퇴직했다. 독일로 간 지 7년 만에 독일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정착해 살고 있지만, 한시도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퇴직 후에도 비스바덴 한인회 회장, 재독한인연합회 부회장 등을 지내면서 교포사회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송씨는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 1만여명 가운데 5000명 정도가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다.”면서 “다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한몫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을 순방중인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날 재독 한인간호협회가 주최한 기념행사에 참석해 “한인간호사들이 한국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문화교류 협력에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김춘자(63)씨 등 12명이 국위를 선양한 공로로 장관 표창을 받았다.jeshim@seoul.co.kr
  • [열린세상] 문혁 40년과 우리의 숙제/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난 지도 벌써 40년이 된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전국에서 문화혁명을 시작한다는 이른바 ‘5·16 통지’를 채택한 것이 1966년 5월16일의 일이었다. 이날 이후 지난 40년 동안 중국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문화혁명이 계속되는 동안 중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혼란과 무질서와 파괴를 경험했고 이런 상황은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하고 4인방이 타도될 때까지 사실상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문화혁명은 권력에 대한 마오의 욕심에서 시작됐다.60년대 초 대약진과 인민공사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중국은 류사오치(劉少奇)와 덩샤오핑(鄧小平)이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마오는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다. 마오 자신의 말대로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도 않았고 그를 고물상의 물건처럼 쳐다만 볼 뿐 만져보지도 않았다. 권력에 대한 집념이 유난했던 마오를 부추긴 것이 4인방의 극좌 세력이었고 그가 동원한 수단이 어린 홍위병들이었다. 마오가 내세운 명분은 실종된 사회주의 혁명의 구원이었지만 실상은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는 것이었다. 중국의 인민들이 바라는 것은 혁명의 완성이 아니라 부강한 국가의 건설이었지만 마오는 이를 외면했다. 뛰어난 혁명가였지 유능한 행정가는 아니었던 마오가 자신의 어설픈 이상을 앞세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모조리 때려 부쉈다. 파괴가 없이는 건설이 없다(不破不立)고 외쳤지만 건설은 없었고 오직 파괴만 있었다.10년의 공백은 10년의 파괴였다. 대외 관계에서도 자주 자립을 내세워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됐다. 한 사람의 오도된 집념이 낳은 무서운 결과였다. 덩샤오핑의 업적은 개혁 개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은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대치하고 닫혔던 문호를 활짝 열어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서 중국이 경제대국의 반열에 진입할 수 있게 했다. 그의 보다 더 큰 업적은 부서진 중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희생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문혁 기간 중 파괴에 앞장섰던 사람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었고 경제건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인재들을 골고루 기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했다. 이념의 장벽을 넘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적 국제협력체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리고 인치를 법치로 바꾸고 과거 정치 불안의 원인이었던 지도층의 교체를 제도화했다. 천안문 사태에 대한 그의 책임은 언젠가는 역사적 평가를 받겠지만 덩샤오핑이 없었더라면 중국이 동구를 휩쓴 사회주의 몰락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없었을 것이고 오늘과 같은 강대국 중국의 부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의 성공적 부상을 위협하는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역과 계층 간의 불균형, 피폐해진 농촌의 재건, 에너지와 환경 문제, 공산당의 권력 독점에 대한 정치적 불만의 축적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는 중국의 꿈이 실현되기 어렵다. 이들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앞으로 10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때까지는 중국은 미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미·중협력이 적어도 10년 동안은 유지될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관리하고 유도하느냐 하는 것이 21세기 국제사회, 특히 동북아와 한반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의 부상에서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중국을 한국의 미래 대안으로 보려는 인식을 다시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바로 문화혁명 40주년을 맞아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 할 수 있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中 문화대혁명 40주년] 사회부조리가 부른 마오의 부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당신의 검색어는 관련 법률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라는 단어에 대한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百度)의 반응이다. 문혁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히 법률로 제한돼 있다는 얘기다. 아예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안내어가 뜨는 곳도 많다. 신화사 등 주요 언론사 홈페이지나 다른 포털 사이트도 마찬가지다.16일로 발발 40주년을 맞는, 문화대혁명의 현주소다. ●16일 40주년… 기념식·정치행사 없어 올해 문혁과 관련, 국가차원의 특별한 기념식이나 정치행사가 준비된 것은 없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도 올 초 전국인민대표대회 등에서 공산당의 역사를 말하면서도 문혁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물론 어떤 움직임조차 없는 건 아니다. 문혁을 재조명하자는 주장도, 간헐적이나마 끊임이 없다. 대문호 바진(巴金)을 비롯,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비서를 지낸 리루이(李銳) 전 공산당 조직부 부부장 등이 대표적이다.“마오는 위대했으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해 문혁과 같은 참상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게 주장의 실질적 핵심이다. 이같은 ‘전통적인’ 문혁 재조명론 외에 양극화 문제 등 일련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제2의 문혁론’ 등 문혁 재조명론의 이유도 양분돼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한 주요인사는 최근 한 사석에서 “저마다 나름대로의 잣대가 있다.”는 표현으로 공식적인 문혁의 재조명 가능성을 일축했다. 평가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시각이 있지만, 그것과 재조명과는 별개의 일이란 얘기다. 그는 “지금 문혁을 드러내놓고 떠들어봐야 중국 사회에 득 될 게 없다는 사실에 지도부와 지식인 사회에서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혁 재조명은 중국이 전면적 발전단계에 진입하는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면서 “경제의 성장 정도가 그 여부를 가름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의 부패·빈부격차에 불만 팽배 이런 가운데 정작 문혁의 주역 마오쩌둥 전 주석은 이미 문혁의 ‘어두운 그림자’을 떨쳐냈다는 데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건국 이후 역사 문제에 관한 약간의 결의’(1981)를 통해 “마오 전 주석이 오류를 저질렀으되, 공과(功過) 비율은 7대3”이라는 ‘체면치레’ 평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와 관련, 중국의 한 전직 언론인은 “90년대 중·후반부터 ‘차라리 그 때가 좋았다.’며 마오를 추억하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당의 부패, 빈부 격차, 사회적 불평등에 따른 불만이 마오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며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외신들은 “급격한 변화에 따른 사회적 역기능이 심화될수록 옛날에 대한 향수와 동경은 더 깊어간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신좌파 지식인’의 문혁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는 이런 분위기와 맞물린 것이다. ●“지도부 실질적 재산공개하라” 베이징의 한 주요 대학에 재직중인 A교수는 마오 신드롬의 한 요인을 ‘솔선수범’에서 찾아냈다.“마오는 전쟁터에 아들을 보냈고 그 아들은 죽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의 지도층의 자제는 모두 외국에 나가 있거나 유학에서 돌아와 떼돈을 벌고 있다. 마오 이후의 당과 지도부는 솔선수범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질적 재산 공개 없이 현 지도부와 당은 결단코 마오 시대와 같은 신망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 지식인도 있었다. 그는 “법에 따라 재산신고를 할 때 어느 성(省)의 성장(省長)은 비서가 월급봉투에 적힌 액수만을 적어낼 뿐 예금이나 부동산 등은 숨기고 있다.”고 지적하면서,“그나마 국가 최고 지도자급은 그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어떤 이들은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4세대 지도부가 반부패를 강조하고 ‘팔영팔치(八榮八恥)’ 등을 선전하는 배경을 이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중국 사회가 다시 문혁을 들춰낼 기미는,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마오에게만 조용히 손짓만 하고 있을 뿐이다.‘사회 부조리’는 마오를 부르는 주문(呪文)인 셈이다. jj@seoul.co.kr ■ 성장이냐 분배냐 中 지도부 딜레마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가난이 걱정이 아니고 균등치 못한 게 근심이다.’(不患貧而患不均) 중국에서 평등 의식을 제고시키며 마오쩌둥을 불러내고 있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동시에 인터넷 토론방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중국 사회 전체에 ‘효율과 균형(또는 공평)’, 즉 ‘성장과 분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나아가 ‘물질재부가 적은 게 두려운 게 아니고 분배가 고르지 못한 게 두렵다.’(不物質材富少,而是分配不均)는 말은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사회 문제를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네티즌들의 사회 진단은 ‘분배 불공평’(分配不公平)으로 집약되고 있다. 이같은 사회 분위기를 감안, 일각에서는 “후진타오 정권은 분배를 선택한 마오쩌둥의 정책 노선을 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2006∼2010 5개년 경제규획 등에서 성장 일변도 경제 정책을 조정한 데 대해 “중국이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며 좌파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곁들인다. ●‘부의 획득 단계, 우파 논리 그대로’ 그러나 당의 동향에 밝은 전문가들은 이런 분석을 일축한다. 이들은 “현 정권은 마오쩌둥식 분배 정책을 실현할 수도 없을 뿐더러, 절대 그런 식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권력 핵심부 및 싱크탱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효율과 균형’ 논의는 사회 일반에서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균형, 즉 분배에 관한 논의가 사회 일반에서는 뭉뚱그려져 있으나, 당 내부에서는 세분화돼 있다. 즉 ‘생산과정 또는 부의 획득 과정’에서는 여전히 효율이 중시돼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분배 여력 많지 않아’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남은 ‘균형(분배)’은 교육, 의료 등에 있어 기회의 평등이다. 나아가 엄청난 부를 축적중인 기업 등의 사회기부나 각종 기금 조성, 공적부조를 통한 분배도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당 또는 정부가 균형, 분배에 역량을 쏟더라도 실질적인 분배 효과를 내기에는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농민·저소득층의 제반 문제를 ‘혜택’으로 해결하기에는 재정이 감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기부나 각종 기금 등이 보조 역할을 해야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의식이 현저하게 낮은 중국에서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혹 부의 획득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면 ‘부패 및 각종 경제범죄 척결’을 통한 간접적인 ‘기회 조정’ 방식 정도가 꼽힌다. 그러나 이마저도 뿌리깊은 관행을 뽑아내기엔 갈 길이 멀다. 중국 싱크탱크 집단의 한 전문가는 “지금의 사회 갈등과 문제점들은, 교육·의료·양로 등 모두 국가가 책임져 오던 것들이 시장경제 도입 이후 개인 부담으로 전가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면서 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고충을 토로했다. 시대가 마오를 찾으나 마오로도 시대를 아우르기 쉽지 않은, 문혁 40주년 중국의 현실이다. jj@seoul.co.kr ■ 아직도 금지단어?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츠부바오(吃不飽).´ ‘그 시절´에 대한 물음에 돌아오는 가장 일반적인 답변은,“배부르게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립적이되 다소의 ‘판단´이 가미된 이 표현은, 중국 사회가 문혁에 대해 암묵적으로 내리고 있는 대체적인 ‘평가’다. 지식인, 예술인 그룹을 중심으로는 “전통이 사라졌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답변이다.“한국은 전통을 잘 유지했다….”는 부러움도 종종 접할 수 있다.“한류(韓流)의 배경에는 ‘전통’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고 평하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다. 중년의 교수부터 유력 언론사의 중견 간부, 택시기사에까지 어려서라도 그 시절을 경험한 이들의 답변은 의외로 담담해 보인다. 답변도 길지 않다. 물론 ‘문혁’은 묻지도 못하고,‘어려웠던 당시’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물었을 때의 얘기다. 가까운 사이에서라면 간혹, 억눌린 시절에 대한 울분을 들을 수도 있다.“문혁은 정치 투쟁의 산물일 뿐이며 당과 국가에 의해 명백히 과오로 인정된 일 아니냐.”는 단정적인 반응도 접하게 된다. 젊은이들에게서라면 확실히 국수적인 태도를 확인할 때가 많다. 베이징 모 대학의 한 4학년생은 “결과적으로 당과 사회의 모순을 한번에 들춰내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는 순작용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한껏 긍정론을 폈다. 칭화대(淸華大)의 한 중견교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같은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많다.”며 또 다른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유력 방송사의 30대 초반의 PD는 사회 금기에 대한 외국기자의 호기심이 못마땅한 듯,“도대체 뭘 알고 싶은 게냐, 서점에 가면 책도 많은데…”라는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한 3학년 여대생의 대답 역시 젊은 부류의 또 다른 반응이다. 한편 많은 중국인들은 문혁이란 단어가 인터넷 사이트에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아직도 금지 단어냐?”는 반응인 셈이다. jj@seoul.co.kr
  • 서울광장서 국세청 40주년 사진전

    국세청은 17일부터 일주일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학생 세금 문예작품 및 개청 40주년 사진전’을 연다. 전시 작품은 국세청 공모를 통해 입상한 초·중·고교생 문예작품 80점과 지난 1966년 개청 이후 지금까지의 국세청 역사를 담은 사진 102점이다. 국세청은 서울전시에 이어 5월 중 대전(서대전공원 1∼7일), 부산(부산역광장 9∼15일), 대구(동대구역광장 17∼23일), 광주(광천버스터미널 25∼31일)에서 순회전시를 계속한다.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한때 18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30대 재벌그룹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외환위기(IMF)와 함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인희, 동양물산 등 5개만 남은 미니그룹으로 축소된 게 오늘날의 벽산이다. 출자전환된 채권단의 주식을 되사들여 창업주 가문이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벽산의 주력사는 벽산건설이다. 전체 매출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때문에 벽산 사람들은 그룹이라는 표현 대신 건설 전문업체라는 표현을 쓴다.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GS가문·박정희 대통령 등과 혼맥 형성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 2녀중 장남 김희철(69) 벽산건설 회장은 경기고 3학년이던 16세 때 미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15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한 달에 2∼3통씩 집으로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인 고 김인득 창업주는 틀린 한자를 교정해 보내주는 등 자식 교육에 애착을 보였다. 김희철 회장도 기대에 부응해 미국 퍼듀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학 석사·MIT대와 퍼듀대에서 각각 원자력공학 석·박사학위를 땄다. 이어 미주리주 롤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1969년 정부의 해외우수인재 유치 계획에 따라 과학기술처 1급 연구관으로 초빙돼 귀국했다. 김희철 회장은 1965년 김인득 창업주의 3남이자 김 회장의 동생인 김희근(60)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과 김 명예회장의 경기고 동창인 허광수(60)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제의로 삼양통상 고 허정구 회장의 장녀 허영자(66)씨를 만났다. 허광수씨의 누나인 영자씨는 이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미 노스웨스턴대 불문학과 석사 과정을 밟다 다음해 시카고에서 김 회장과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은 1971년 건축자재 생산업체였던 ㈜벽산의 전신인 제일스레트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벽산 경영에 참여했고,1982년 그룹 부회장으로 오르면서 사실상 경영을 도맡았다. 하지만 김인득 창업주가 세상을 뜬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IMF 위기를 맞아 선친이 키운 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벽산은 3세 경영 체제에 안착했다. 김희철 회장의 장남인 김성식(39) ㈜벽산 대표이사 사장은 ㈜벽산페인트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 마케팅 학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보스턴 컨설팅에서 일하다 2001년 1월 ㈜벽산 전무로 입사했다. 지금은 부도로 쓰러졌지만 80년대 말 주택사업을 활발히 펼쳤던 ㈜동신 박승훈 회장의 장녀 박성희(36)씨를 학교 선배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의 차남 김찬식(37)씨는 주력사인 ㈜벽산건설에서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다. 경영지원실장(전무)으로 내부 살림을 챙기고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에서 MBA를 땄다. 한 살 아래인 장현주(36)씨를 대학(이대 동양학과)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연애 결혼했다. 장씨의 아버지 장경환(74)씨는 포항제철 전무이사, 삼성중공업 사장 등을 거쳐 포항제철(현 포스코) 경영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장녀 김은식(35)씨는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나온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77) 전 재불 한국문화원장의 차남인 첼리스트 양성원(39·연세대 기악과 조교수)씨와 결혼, 음악가 집안을 꾸렸다. 이들의 결혼은 양가 어머니들의 오랜 친분으로 맺어졌다. 김인득 창업주의 차남인 김희용(64) 동양물산 회장은 미 인디애나주립대 출신으로 1987년부터 그룹의 모태이자 농기계전문업체인 동양물산 사장으로 취임,2001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고 박상희씨의 딸 설자(61)씨와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설자씨는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처제이기도 하다. 이로써 벽산가 혼맥은 경제계 뿐 아니라 고위 정치권과 닿는 계기가 됐다. 장남 김희철 회장가와 차남 김희용 회장은 2004년 주식 교환을 통해 사실상 독립경영 체제를 갖췄다. 김희철 회장 집안이 벽산건설과 ㈜벽산 등을, 김희용 회장 집안이 동양물산 지분을 갖는 것으로 구도를 정리했다. 김희용 회장의 장남 김태식(33)씨는 동양물산 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딸 김소원(28)씨도 동양물산에 몸을 담고 있다. 셋째 아들인 김희근(60) 회장은 지금은 정리된 벽산건설의 해외부문을 담당하는 등 줄곧 건설을 책임지며 벽산건설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미 마이애미대 출신으로 IMF 위기를 맞아 건설에서 손을 뗐고 지금은 계열분리된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 직함만 갖고 있다. 벽산건설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한 사기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미 LA에 살고 있지만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귀국해 수사를 받고 있다. 김희근 명예회장측은 당시 대출은 만기연장이 대부분이어서 사기 혐의는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 이윤우 전 그린파크 회장의 4녀인 이소형(58)씨와 결혼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녀인 김숙희(66)씨는 피혁전문 무역업체인 천마를 운영하는 정영현(72) 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막내 딸 김연숙(57)씨는 원영종(59) 화인계기주식회사 대표이사와 사이에 치성(28)·치열(26) 두 형제를 두고 있다. ●고 김인득 창업주…소문난 근검절약가 고 김인득 창업주는 경남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었지만 계절에 따라 포목상 일을 겸해 형편은 어렵지 않았다. 고향에서 보통학교(칠서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3수 끝에 열 네살이 되던 해에 마산상고에 입학했다. 성적이 좋아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농구·탁구·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운동도 잘했다. 남선주산대회에서 1등을 했고 서화전시회에 출품하면 항상 상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첫 직장은 1934년 봄 입사한 마산금융조합. 예금 권유부터 연체 독촉까지 항상 1등이란 팻말이 따라다녔다.‘남과 같이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철학은 이때부터 생겼다. 당시 월급 28원을 받던 그는 10년동안 1만원(현재 1억원)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워 9년간 8900원을 모았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숙직을 자청, 숙직비를 모았고 출장 갈 때면 새벽에 일어나 목적지까지 걸어가면서 출장비를 아꼈다. 투철한 절약정신만큼 가족 사랑도 깊었다.“1932년 1월11일 양가 부모와 일가친척의 축복 속에서 17세 신랑과 18세 신부는 결혼을 했어요. 신랑이 장남이라 결혼시켜 어린 5남매와 큰 살림을 맡기실 작정을 하신 모양이었어요.17세 신랑은 키도 크고 헌칠했어요. 결혼후 남편은 3년을 학생 신랑으로 지내고 저는 신랑 없는 시집살이를 했어요.” 고 김인득 창업주의 부인 고 윤현의 여사는 김 창업주의 첫 인상을 ‘벽산 김인득 선생 회갑 기념-남보다 앞서는 사람이 되리라’란 책을 통해 이같이 회고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동생인 고 김재동씨도 같은 책에서 창업주를 두고 애처가 중의 애처가라고 평했다. 평상시에도 “부인이 무슨 낙이 있겠어. 내가 아내의 종이 돼야지…”라고 말하며 부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 김인득 창업주는 일제 치하였던 만큼 기술자나 사업가가 아니면 한국인은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43년 진주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긴다.1949년 무역업을 하기 위해 상경했는데, 당시 외국 무역이나 한다는 사람들은 으레 호텔에 머물며 식사도 고급으로 하는 등 허세를 부리기 일쑤였지만 김인득 창업주는 삼류여관에 머물며 국밥 외엔 다른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택시는 타지 않았고 걷거나 전차·버스를 이용했다. 모두가 멋쟁이 양복을 빼고 다녔지만 농구화나 군화를 신고 다녔으며 그나마 구두 뒷굽이 빨리 닳는다며 바닥에 말발굽 ‘징’을 박아 신고 다녔다. 호주머니에 쓸데없이 돈을 넣고 다니지 않았으며 필요한 돈만 명함꽂이에 넣어 다닐 만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극장의 제왕’서 건자재·건설업으로 비약 부산 동아극장 지배인으로 일하다 6·25가 발발한 1950년 피란갔던 부산에서 오늘날 벽산의 효시인 동양흥산(현 동양물산주식회사)을 창업한다. 외국영화를 수입해 전국 영화관에 공급하는 일과 수입·무역업이 주종이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당시 오락시설로는 극장이 전부인 시절이었고 동양물산은 외화의 60%를 수입했다. 중앙극장, 단성사 등 서울 주요 극장을 비롯해 부산 대전 대구 진주 등 전국에 100여개에 달하는 극장 체인을 형성, 극장 재벌로 부상하며 50년대 말 흥행업 왕좌에 올랐다. 산업의 본질은 생산업이라 여긴 김인득 창업주는 60년대 들어 ‘사업보국’을 내걸며 흥행업에서 점차 손을 떼고 제조업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단성사와 반도극장(현 피카디리) 등을 판 돈으로 1962년 9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현재 ㈜벽산)를 인수한 것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회사는 일제 당시 일본 아사노 스레트의 서울 공장으로 1929년 출범했지만 당시 부실화되어 개점 휴업상태인 회사였다. 인수 직전 9개월까지 실적이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주인이 바뀐 뒤 3개월간 6000만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어 60∼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시작된 전국적인 농어촌개량작업으로 슬레이트 사업은 번창일로를 맞는다. 이후 건자재 생산업체인 오늘날의 ㈜벽산으로 자라났다. 1964년 1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에 건설사업부를 발족하면서 건설업을 본격화했다.1968년 시공능력 33위에서 1971년에는 11위에 오를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서 같은 해 1월 한국건업주식회사로 떨어져 나와 지금의 벽산건설로 성장했다. 그룹의 모태인 동양물산은 고구마 절단기 등 농기계 생산업체인 ‘한국이기공업주식회사’(1964년)와 한국경금속(1968년)을 인수하면서 새 전기를 맞는다. 동양물산은 지금도 경운기 등 농기계와 스푼 등 양식기를 만들면서 과거 명맥을 잇고 있다. 1973년 스레트공업사 내 페인트공장을 신규 착공하면서 시작한 페인트 사업도 그대로 있다.1999년 구조조정과 함께 벽산화학㈜에 합병됐다 2001년 벽산페인트로 거듭났다. 이로써 벽산그룹은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 동양물산,㈜인희 등 5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IMF때 대대적인 구조조정 그룹명 벽산은 고 김인득 창업주의 아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60년대말부터 회사를 끊임없이 인수·합병하는 등 사세를 키워카며 통일성을 위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유통 금융 방송 지하자원개발 등 전체 18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IMF이후 구조조정을 겪으며 현재 5개로 줄었다. 1976년 설립한 건축내외장제 제조사 벽산산업개발㈜은 1998년 그룹 경영합리화 계획에 따라 ㈜인희에 합병됐다.㈜인희는 영화산업에 애착을 가졌던 김인득 창업주가 1952년 중앙극장을 세우면서 설립했던 회사. 영상산업회사로 키우기 위해 비서실내에 신규 영상 사업팀까지 두고 챙겼었지만 지금은 발코니 확장과 일부 건자재만 만들며 ㈜벽산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1985년 벽산쇼핑㈜을 통해 유통업에 진출했지만 1999년 3월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매각했고,1989년 인수한 정우개발㈜,㈜동부해양도시가스 등 정우 계열사들 역시 1999년 정리했다.1991년 유신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업도 본격화했지만 1998년 대출금 마련을 위해 팔았고,㈜한국케이블TV 전남동부방송을 설립해 종합유선방송(SO)사업도 손을 댔지만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했다. 대부분의 그룹 사옥도 처분했다. 그룹 40주년 출범과 함께 서울역 앞에 지었던 시가 1100억원 연건평 900평 규모의 그룹 사옥인 ‘벽산 125빌딩’을 포함해 퇴계로 ‘인희빌딩’ 등이 모두 넘어갔다. 벽산 125빌딩은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씨의 마지막 작픔으로 유명하다. 전주 백화점, 안양 벽산쇼핑, 부산 남포동 복합상가빌딩 등 유통 사업 관련 부동산도 함께 정리했다. ●3대를 잇는 기독교 사랑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2녀중 막내딸 가족을 제외하면 지금도 매주 일요일 오전 고 김인득 창업주 때부터 다니던 인사동 승동교회에 나가 예배를 들이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김인득 창업주가 6·25때부터 승동교회에 나갔고 장남 김희철 회장도 같은 교회 장로를 지낸 바 있다.3세인 김성식 ㈜벽산 대표이사 사장도 술·담배를 일절하지 않고, 매사 성경이 판단의 기준이 될 만큼 신앙이 깊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벽산의 기독교 사랑은 가족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무식은 물론 창립기념식 등 모든 공식행사가 예배로 시작되는 ‘기독교문화’ 회사다. 국내 처음으로 직장예배를 도입한 기업으로 창립 초창기인 1956년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첫 직장예배 이후 매주 금요일 아침 8시30분(일부 계열사는 다름)부터 1시간은 본사와 각 공장, 지점, 현장별로 직장예배를 보고 있다. 기독교를 통해 임직원을 통합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평이다. 벽산건설이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가 무분규로 일관, 회사 살리기에 힘을 합했던 것도 기독교 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jhj@seoul.co.kr ■ 오뚝이 정신으로 일군 ‘벽산 56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33절)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손자인 김성식 사장이 맡고 있는 ㈜벽산은 최근 수년간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이며 끊임없이 M&A 위협을 해온 창투사 아이베스트와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아이베스트가 구주 매출을 통해 벽산 주식 100만주를 주당 1만 5000원에에 팔고 나간 뒤 주가가 1만 1000원대까지 빠지면서 아이베스트는 시세 차익을 얻은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를 입어 벽산에 대한 개미들의 원성이 높았다. 특히 벽산은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아이베스트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는 등 양측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립해왔다. 이처럼 수년간 벽산을 괴롭혀온 아이베스트가 최근 대주주의 우호 지분을 자청하면서 두 회사간 구원(仇怨)관계가 일단 봉합된 상태다. 벽산그룹은 56년을 헤쳐오면서 고난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내실을 다져온 기업이다. 1998년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간 분규없이 한마음으로 대처했던 혼연일체는 지금도 업계의 귀감으로 회자된다. 벽산건설의 경우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과 맺은 목표보다 50%가량 많은 244명이 명퇴했다. 자진해 나간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남은 직원들은 상여를 전액 반납해 떠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대주주도 4대1 감자를 단행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덕택에 2000년 회사가 흑자로 전환됐고 2002년 말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은 풋백옵션을 행사, 출자전환된 채권단 주식을 2004년 되사면서 회사를 되찾았다. 이에 앞선 지난 1992년 7월. 당시 재계 25위이던 벽산건설은 자사가 시공한 신행주대교가 준공 4개월을 앞두고 붕괴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규명되면서 대대적인 이미지 실추와 함께 영업정지, 단자사 여신 동결 등 악재가 뒤따랐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인명 사고가 없어 복구공사비 200여억원 등을 전액 부담, 재공사를 맡아 결자해지로 매듭지었다. 여전히 우환은 끊이지 않는다. 벽산건설 임원 2명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각각 회사돈 수십억원을 빼돌려 부동산 구입과 주식투자 등에 쓴 혐의로 조사를 받는 등 집안 단속 문제가 붉어져 조사 중이다. 벽산건설 관계자는 “주택 사업 이외에 토목공사 등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면서 “무엇보다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위축됐던 직원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다.”고 말했다. 벽산그룹 5개 계열사의 2005년 기준 총 매출은 1조 2500억원이며, 이중 벽산건설의 매출이 전체의 61%를 차지한다. jhj@seoul.co.kr ■ 벽산을 만든 전문 경영인들 벽산그룹은 올해로 56년을 헤쳐오면서 가장 훌륭한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사 부회장을 지낸 정종득(65) 목포 시장을 꼽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의 일등 공신으로 지목되는 정 사장은 서울대, 산업은행, 쌍용을 거쳐 1983년 벽산건설에 이사로 입사 1994년 사장이 되면서 워크아웃의 시작과 끝을 지키는 등 벽산과 고락을 함께해온 인물. 특유의 인화력과 결단력으로 조직을 이끌며 대주주인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과 호흡을 맞췄다는 평이다.2005년 5월 시장 출마를 위해 부회장으로 위촉된 뒤 당선과 함께 회사를 떠나 지금은 공직자로 일하고 있다. 김재우(62) 아주그룹 부회장은 1997년 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기에 앞서 ㈜벽산 사장에 취임해 3년 만에 경영을 정상화시킨 능력을 인정받아 아주그룹에 스카웃된 인물. 삼성물산 출신으로 2005년까지 ㈜벽산 부회장 등을 지내며 ‘누가 우리회사 망한다고!!’‘거봐!안 망한다고 했지!!’ 등 벽산 구조조정 성공사례들을 책으로 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광주고·건국대 출신의 신광웅(63) 신동아건설 사장도 벽산건설 출신이다. 한신공영을 거쳐 지난 1995년부터 2004년 6월까지 벽산에 적을 둔 바 있다. 벽산건설 부사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한편 지난 2004년 뇌물수수죄 재판중 또다시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 감옥에서 자살했던 고 안상영 전 부산시장도 벽산건설에서 부회장직을 수행한 바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국세청 개청 40주년 기념식

    국세청은 3일 개청 40주년을 맞아 역대 국세청장 등 국세동우회원 2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갖는다.3일이 `납세자의 날´인 점을 감안해 감우성 김선아 류시원 명세빈 등 유명연예인 30여명을 일일 민원봉사실장으로 초청, 세정현장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 한글→영문 이니셜→아이콘으로 진화하는 CI

    한글→영문 이니셜→아이콘으로 진화하는 CI

    회사의 이미지를 표시하는 CI(Corporate Identity)도 진화한다. 한글 나열에 불과하던 기업명이 글로벌 경쟁시대가 시작된 1990년대에 영문 첫글자로 바뀌더니 최근에는 그래픽을 이용한 심벌마크인 ‘아이콘(icon)’ 중심으로 가고 있다. 지난 20일 발표된 LIG손해보험(LG화재)의 ‘희망구름’, 이달초 선보인 금호아시아나의 ‘꺾쇠’, 지난해 10월 발표된 SK의 ‘행복날개’ 등이 그 예다. 국민은행의 ‘별’, 하나로텔레콤의 ‘벌새’ 등도 있다.2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경쟁시대가 되면서 아이콘의 힘이 커지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광고나 제품을 통해 접근, 정보가 넘쳐나는 와중에서도 소비자의 눈에 띄어야 하고 잠깐 노출시켜도 기억에 남는 CI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LIG손해보험의 CI를 담당한 디자인파크의 손근민 실장은 “세계화 시대에 회사들이 도입했던 영문 이니셜은 세련미와 신뢰감은 있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기에는 미흡하다.”면서 “강력한 기업 이미지 전달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글자마크보다 한 단계 진화한 도형 모양의 아이콘이 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이콘의 또 다른 매력은 소비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이다.LIG손해보험은 아이콘을 ‘희망구름’이라고 명명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운동기구인 아령이나 꽈배기가 될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심사에 따라 기억되지만 기본 개념인 ‘부드러움’은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LIG손해보험 관계자는 “이번에 교체한 CI는 여러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는 점도 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아이콘이 들어오면서 색깔도 다양해졌다. 지난해 그룹 CI를 발표한 GS그룹의 심벌마크는 오렌지색, 청색, 녹색이 기본이다.LIG손해보험도 같다. 이 세 가지의 색은 일상적인 색깔로 소비자들과 친숙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SK,CJ 등에도 오렌지색이 쓰였다. 아이콘의 등장에는 법적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쓰는 영문 알파벳 두 글자만으로는 ‘간단하고 흔한 표장’이라는 이유로 상표등록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CI를 내부적으로 정해놓고도 국내외에 이미 등록된 상표와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발표가 몇달씩 늦어지기도 한다. 소비자들이 잘 기억할 수 있는 아이콘을 미리 자사 상표로 등록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셈이다. 앞으로도 몇몇 그룹이 새로운 CI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아이콘이 더욱 많이 등장할 전망이다. 올해 창사 110주년을 맞는 두산그룹,40주년이 되는 효성그룹,30주년의 현대상선 등이 CI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화그룹도 기존 CI를 교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새로운 CI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경영진의 감성과 의지다. 특히 기업 소유주의 의중이 절대적이어서 실제 작업에서 복수의 후보군을 마련하곤 한다.CI교체에 들어갈 수백억원도 경영진의 의지를 시험하게 한다.SK의 경우 이번 CI교체에 1200억원이 쓰일 것이라 보고 있다. 사후관리도 중요하다. 메리츠화재(구 동양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 관계자는 “CI 감시를 조금 게을리하면 색깔이나 도형의 크기가 변하거나 심지어 변형도 일어난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에 대한 시각적 일관성이 중요한 만큼 끊임없는 유지·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