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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 성장이 멈추지 않는 40대 女의 눈물

    가슴 성장이 멈추지 않는 40대 女의 눈물

    여성이라면 대부분 작은 사이즈 보다는 큰 사이즈의 가슴을 원하겠지만, 이 여성의 경우 정 반대다. 미국의 한 여성은 가슴 성장이 멈추지 않는 희귀한 증상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 뉴욕데일리뉴스의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텍사스에 사는 케리샤 마크(40)는 지나치게 큰 가슴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왔다. 그녀의 가슴 사이즈는 36NNN, 한국 사이즈로는 G컵 이상에 해당한다. 가슴 한쪽의 무게만 6.8㎏에 달하다 보니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을 받는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않고 중심이 앞쪽으로 쏠리다보니 목과 허리에 심한 통증이 발생하는 것. 이는 선천성 질환으로 알려진 ‘거대유방증’(Gigantomastia, 유방비대증)의 증상이다. 유선과 지방 조직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걸어다니기 힘들정도로 가슴이 커지는 거대유방증은 호르몬 이상 분비와 연관이 있으며, 이는 목과 다리, 허리 등의 통증뿐만 아니라 피부 갈라짐 등의 증상도 유발한다. 케이샤의 경우 30대 후반까지 가슴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결국 그녀는 가슴 축소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의료진이 빨리 수술을 받지 않으면 척추측만증 등 추가적인 증상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 그녀는 “평소 뛰는 것은 물론이고 걷는 것조차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이 제한돼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녀의 수술을 집도한 휴스턴의 한 병원 관계자는 “케이샤는 ‘놀랍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가슴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녀의 삶을 매우 힘들게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케이샤의 가슴축소수술은 약 4시간가량 진행됐으며, 케이샤는 “가장 먼저 아름다운 속옷과 드레스를 사 입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의정 포커스] 영등포 민원해결사 비결은 ‘두바퀴 의정’

    [의정 포커스] 영등포 민원해결사 비결은 ‘두바퀴 의정’

    “4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지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녔죠. 주차 걱정도 없고 주민을 만나면 언제든 대화할 수 있거든요.” 10일 집무실서 만난 김용범(58) 서울 영등포구의회 의원은 이렇게 운을 뗐다. 김 의원은 자전거를 타고 구민들을 만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민원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올해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여당 불모지인 호남에서 당선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의 자전거 선거운동을 본 주민들이 ‘김 의원한테 배운 것 아니냐’고 농담하더라”며 껄껄 웃었다. 생활정치를 강조하는 김 의원은 지난 6대 의회에서도 공무원 때 경험을 살려 굵직한 민원을 숱하게 해결했다. 그는 “한창 활동하던 2012년 8월쯤 임대주택 신청 시기를 놓친 한 40대 여성이 억울하다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구청 도시계획과를 설득해 임대주택 입주를 시켜줬던 기억이 난다”고 돌아봤다. 김 의원은 “구청에서 열리는 민원분쟁조정회의 자리를 직접 7~8차례 만들어 구와 민원인의 오해를 잠재우는 역할도 했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구의원을 하면서 민원을 해결하는 일이 가장 보람찼다.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꾸준히 돕고 싶다”고 밝혔다. 7대 의회에서 2년간 행정위원장을 맡은 김 의원은 구의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집행부(구청) 견제’를 꼽았다. 김 의원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행정사무 감사를 통해 4년간 76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행정의 달인인 공무원들을 상대하려면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가장 밑바닥에서 주민 실생활의 어려움을 찾아주고, 집행부와 주민들의 교량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료 의원들에게도 “구의원은 생활정치인이다. 주민들이 나를 대변해주고 어려운 일을 해결해줄 수 있다는 신뢰감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구의원으로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늘 자료를 검토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2시간 기다려야 타는 장애인콜택시

    인천지역 지체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장애인콜택시의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 장애인들의 불만이 높다. 장애인콜택시 증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인천시는 법정보유 대수만큼 콜택시를 확보한 만큼 증차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10일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달 장애인콜택시 5대를 확보하면서 모두 140대를 보유,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상 장애인콜택시 법정보유 대수 비율 100%를 달성했다. 관련법상 장애인콜택시의 법정보유 대수 비율은 1, 2급 장애인(지체장애인 포함) 200명당 1대꼴이다. 현재 인천지역에 등록된 1, 2급 장애인은 2만 8000여명으로 이들은 장애인콜택시 140대와 시에서 지정한 장애인전용 개인택시 28대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택시를 이용하려는 지역 장애인들은 하루 평균 1000여명이다. 때문에 지체 장애인들은 장애인콜택시를 타기 위해 30분에서 2시간 이상 기다리는 일이 허다하다. 부평구 십정동에 사는 조은영(33·여·지체장애 2급)씨는 “대중교통 이용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장애인콜택시를 부르는데 2시간 내에 타본 적이 거의 없다”며 “병원·복지시설에 많이 가는 월요일은 접수량이 많아 이동이 불가능한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조씨는 자구책을 마련하던 중 한 달 전 장애인콜택시 예약사이트를 알게 돼 하루 전 미리 예약을 하고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노인 등은 예약사이트를 이용하지도 못한다. 송기환(64·지체장애 1급)씨는 “인터넷을 사용할 줄도 모르는데 인터넷 예약을 어떻게 하겠냐”며 “치과를 한번 가려고 해도 (장애인콜택시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예약시간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기 일쑤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실상 보행이 어려워 장애인콜택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조씨는 “대중교통 이용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장애인콜택시를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콜택시가 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 관계자는 “장애인콜택시 법정대수를 맞췄기 때문에 당분간 증차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애엄마 치어리더, 15살 소년과 ‘야동’처럼…아찔

    애엄마 치어리더, 15살 소년과 ‘야동’처럼…아찔

    전직 유명 치어리더이자 아이엄마이기도 한 40대 여성이 아직 미성년자인 15살 소년과 부적절한 육체관계를 맺은 혐의로 입건돼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NBC계열 메릴랜드 볼티모어 지역 방송매체 WBAL-TV는 전직 NFL(미국 미식축구리그) 볼티모어 레이븐스 치어리더 몰리 셔턱(47)이 15살 소년을 성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셔턱은 온라인 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만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15살 소년과 그녀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승용차 안에서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지난 노동절 휴일동안 해당 소년을 불러 맥주 등의 알코올음료를 함께 마신 뒤 메릴랜드 델라웨어 주(州) 해변으로 이동, 최소 2번의 변태적 구강성교를 맺은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 해변에 그녀의 아이들도 동행했다는 점이다. 몰리 셔턱은 NFL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치어리더로 활동했던 유명 인사이자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경찰에 따르면, 셔턱은 현재 3급 미성년자 강간혐의, 불법 성 접촉 혐의, 미성년자에 음주를 권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韓의료팀 ‘에볼라 최악’ 시에라리온 간다

    韓의료팀 ‘에볼라 최악’ 시에라리온 간다

    서아프리카로 파견돼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게 될 한국 의료팀에 모두 145명이 자원했다. 의료팀 파견지는 에볼라 확산 속도가 가장 빠른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으로 결정됐다. 보건복지부는 서아프리카에 파견할 보건인력을 모집한 결과 의사 35명, 간호사 57명, 임상병리사 23명, 현장안전관리자 30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9일 밝혔다. 정부는 이 가운데 40여명(의사 10명, 간호사 20명, 기타 10명)을 뽑아 후보군으로 선정하고 이 중에서 20여명을 선발, 최종 파견대를 구성하기로 했다. 후보군에 들어가는 것만 평균 3.6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당초 자원자가 적을까 봐 염려했던 보건 당국은 의료계의 폭발적인 호응에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복지부에 따르면 한 자원자는 “재난 현장에 참여하는 것은 전문의의 도리”라면서 “에볼라 확산 방지를 위한 활동에 동참해 해외 전염병 감시 업무를 경험하고 싶다”고 동기를 밝혔다. 자원자 중에는 30대가 51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 32명, 40대 31명, 50대 25명, 60대 6명 순이었다. 특히 20~30대 젊은 간호사(44명)가 많았다. 성별을 보면 여성이 57명으로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의사 중에는 감염내과가 8명이었으며, 해외 의료 지원 경험이 있는 사람은 10명이었다. 국방부도 민간 보건인력과 함께 떠날 군 인력을 모집하고 있다. 지금까지 36명이 지원했다. 최종 선발된 인원은 국내에서 감염 예방을 위한 안전 교육 및 현지 적응 훈련을 마치고 현지 의료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활동 종료 후에는 에볼라의 최장 잠복 기간인 21일간 국외나 국내의 안전지역에 머물 계획이다. 파견 시기는 오는 13일 파견지 현황 점검차 시에라리온으로 떠나는 선발대가 현지 조사를 마치고 21일 돌아온 뒤 결정하기로 했다. 교육에 필요한 시간 등을 감안하면 이달 말이나 12월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의 의료 활동은 시에라리온 내 에볼라 대응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 정부가 지원한다. 만약 파견자가 에볼라에 감염되면 현지 의료시설에서 치료한 뒤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는 민간 항공기를 이용해 국내 또는 제3국으로 후송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오영주 외교부 개발협력국장은 “미국과 협정을 체결했고 금주 내 서명할 예정”이라며 “본대 파견 전 안전 대책을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학사모 쓴 부처 앞… 간절한 두 손

    학사모 쓴 부처 앞… 간절한 두 손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늘 붐비는 장소가 있다. 팔공산 갓바위다.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입소문으로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의 참배가 줄을 잇고 있는 곳이다. 매년 수능이 다가오면 전국에서 찾아온 학부모들로 갓바위 앞 공간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다. 수능을 일주일 앞둔 지난 6일 갓바위를 취재하기 위해 대구공항을 지나 팔공산 순환도로로 진입했다. 팔공산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어서인지 도로에는 평일인데도 차량이 꽤 많았다. 팔공산 단풍축제가 열린 지난 주말에는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갓바위를 찾는 데는 3개 등산길이 있다. 대구 도심에서 가까운 능성동 집단시설지구에서 관암사를 거쳐 오르는 길과 팔공산 동쪽의 약사암 길, 갓바위 관리를 맡고 있는 북쪽의 선본사 길 등이다. 선본사와 약사암에서는 30분 정도 걸리지만 능성동 집단시설지구에서 오르면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더구나 능성동 집단시설지구에서 갓바위까지는 약 2.1㎞. 가파른 경사의 돌계단으로 이뤄져 오르기도 만만찮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대구시가 지난해 5억 8000만원을 들여 관암사~갓바위 0.9㎞ 구간을 정비했다. 높다는 지적을 받아 온 돌계단은 보행에 편하도록 낮추고, 계단 폭은 넓혔다. 겨울철 차갑고 미관상 효과가 없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등산로 계단 난간은 목재 난간으로 새로 설치했다. 오르는 길이 평이하고 시간도 적게 걸리는 선본사 등산길로 가기로 했다. 경산 와촌에서 선본사 등산길로 접어들자 갓바위에 더 가까운 1, 2주차장은 이미 차량으로 꽉 차 있었다. 3주차장에 주차하고 갓바위로 출발했다. 지난주까지 완연한 가을 날씨였던 날씨가 해발이 높아서인지, 수능 시샘 한파 때문이지 꽤 쌀쌀했다. 버스 통행 길을 따라 10분쯤 올라가자 관음휴게소가 나왔다. 이곳에서 갓바위까지는 20여분이면 충분하다. 올라가는 길 곳곳에서 좌판이 눈에 띄었다. 수능일이 다가오면서 좌판 풍경도 달라졌다. 더덕이나 산나물, 과일을 팔던 좌판에 ‘갓바위 합격엿‘이 등장했다. 엿 1개가 5000원으로 만만찮은 가격이었지만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이 사고 있었다. 수험생 부모이거나 친지 중에 수험생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부는 갓바위에서 자녀의 합격을 염원하며 엿을 붙인다고도 한다. 오르는 중에 난간을 잡고 힘들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를 만났다. 대구 수성구에서 왔다며 자신을 김씨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3개월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불편하단다. “아내 몰래 혼자 왔다. 같이 가자고 하면 분명히 말릴 게 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고 3 아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갓바위에서 불공을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를 뒤로하고 선본사를 거쳐 갓바위가 있는 해발 850m 정상에 도달했다. 갓바위 부처로 알려진 4m 높이의 관봉석조여래좌상이 눈에 들어왔다. 갓바위 부처님 바로 앞 260여㎡의 널찍한 공간은 절을 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기도와 염불은 그칠 줄 모른다. 대부분 손에 염주를 꼭 쥐고 기도문이나 불경을 앞에 놓고 있었다. 일부 학부모 앞에는 교복을 입은 앳된 모습의 자녀 사진도 보였다. ‘도대체 자식이 뭐기에’라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평일에는 4000~5000명, 주말엔 1만 5000~2만명 정도가 갓바위를 찾고 있다. 이같이 수능을 앞두고 갓바위를 찾는 발길이 이어진 것은 30여년 전부터다. 한 가지 소원 성취라는 갓바위 부처의 영험함은 물론이고 머리 위 판석이 꼭 학사모처럼 보인다고 해서 수험생 학부모가 많이 찾고 있는 것이다. 경북 칠곡에서 왔다는 학부모(48)는 ”딸이 수능을 잘 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해 달라고 기원했다”며 연이어 절을 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다른 학부모(51)는 “아들의 수능을 앞두고 정성껏 기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12년 동안 공부한 아들이 실력을 다 발휘하고 돌아오길 빌었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왔다는 학부모 전현숙(50·여)씨는 “우리 아이가 가장 원하는 곳에 갔으면 해서 이곳에 왔다. 차분히 기도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갓바위에는 한 달 전부터 매일 찾아와 기도를 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100일 전부터 빠짐없이 찾아와 자식의 수능 대박을 비는 사람도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김씨도 선본사에서 준비해 둔 매트리스 위에 앉아 자식의 수능 행운을 빌었다. 김씨는 “어렵게 올라온 만큼 오래오래 기도를 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갓바위 부처 앞에는 학부모들이 밝힌 촛불 수백개가 줄지어 빛을 냈고 기도와 절뿐 아니라 주위 석벽에 소원을 담아 동전을 박아 두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동전이 떨어지지 않도록 꼭 붙여 놓고 자리를 떴다. 갓바위 부처 옆에 기도 소원지를 접수하는 곳에도 학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40대 후반의 남성도 자식이 수능을 잘 볼 수 있도록 기원하는 문구를 적은 기도문을 접수했다. 기도문을 접수하는 50대 중반의 종무소 여직원은 하루 수십명이 기도문을 낸다고 했다. 기도문은 ‘수능을 잘 치게 해 달라’, ‘대학에 꼭 합격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자식이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지원하는 학부모는 구체적으로 대학명을 명시한다고 한다. 접수된 기도문을 보고 스님이 직접 기도를 해 준다고 종무소 여직원이 귀띔했다. 선본사 종무소 관계자는 “수능을 앞두고 평소보다 2~3배 많은 인파가 찾고 있다”며 갓바위의 분위기를 전했다. 밤과 새벽에 갓바위에 올라와 기도를 하는 사람만도 200~300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자식이 단순히 원하는 대학에 붙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다. 좀 더 큰 인물이 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물 431호인 갓바위 부처는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 관봉 정상에 있다. 불상 머리에는 두께 15㎝, 지름 180㎝의 판석이 올려져 있어 마치 갓을 쓴 듯한 모습이라 갓바위라고 불린다. 선본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7년(638년) 원광법사의 수제자인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것이다. 산 정상에 있는 암봉을 그대로 다듬어 불상과 좌대가 한 덩어리가 되도록 했다는 것. 갓은 만들 당시의 것이 아닌 걸로 추정된다. 불상과 석질은 같지만 조각술이나 전체 균형 등으로 미뤄 부처상 위에 판석을 올리는 양식이 유명했던 고려시대의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영험이 있는 다른 부처상과 마찬가지로 왼손 바닥에 작은 약호를 받쳐 둔 약사여래불이다. 그래서 갓바위 부처 주변에는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5시. 3시간여 동안 정상에 머물던 김씨가 산에서 내려가면서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기도를 하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대구테크노폴리스 도심번화가 ‘하이젠스타’ 분양

    대구테크노폴리스 도심번화가 ‘하이젠스타’ 분양

    정부가 연이은 부동산 정책 발표로 주택경기가 살아나자 덩달아 상가,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특히 초저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수익형 부동산의 몸값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예금 금리 추가 인하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이자 소득 기대치는 갈수록 줄어드는 데 비해, 수익형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높은 고정 수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분기 상업용 부동산임대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7월~올해 6월 상가의 연간 투자수익률은 약 5.65%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정기예금 금리(2.60%)보다 약 2배 가량 높은 수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구 테크노폴리스 도심번화가에 알짜 상가 ‘하이젠스타 상가’가 분양에 나선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구 테크노폴리스 중심상권의 대로변 코너에 위치해 고객 접근성이 탁월하고 가시성이 우수하다. 기본적으로 탄탄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다량의 인구가 유입 돼 풍부한 고정수요와 주변 배후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 대구테크노폴리스는 유망한 투자처로 꼽힌다. 대구테크노폴리스 지역은 상업지 비율이 낮아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테크노폴리스산업단지, 대구국가산업단지 등과 인접한 산업단지의 배후주거지로 약 20만명의 배후수요를 확보했다. 교통망개선과 굵직한 개발호재들도 속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 상가는 대지면적 2,567.10㎡에 지하 2층~지상 10층 규모의 총 138개 점포로 구성된다. 초고층 랜드마크 단지의 상가로서 탁월한 가시성으로 많은 유동고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 20만 배후수요를 등에 업은 랜드마크 상가하이젠스타 상가는 대구 테크노폴리스 중심상권에 메인 스트리트 코너변에 위치한 프리미엄 입지다. 상가 앞에는 버스정류장이 위치해 있어 유동인구 유입이 용이하다. 상가 인근에는 경북대캠퍼스, 계명대캠퍼스, 공공청사, 근린공원 등이 인접해 있어 학생과 공무원 수요뿐 아니라 주말에는 근린공원을 찾는 가족 나들이객 수요도 확보할 수 있다. 배후수요도 탄탄하다. 하이젠스타 상가가 위치한 대구 테크노폴리스는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유가면 일대 726만 9,123㎡ 규모로 조성되는 첨단과학도시다. 대구테크노폴리스는 R&D특구로 지정돼 연구기관, 대학, 기업을 중심으로 주거, 상업, 교육, 문화 등이 조화된 첨단과학도시 대구테크노폴리스 개발이 완료되면 상주인구는 5만명 까지, 유동인구는 20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차로 3분 거리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대경권연구센터(6만 6,000㎡), 국립대구과학관(11만 7,000㎡), 한국기계연구원 대구센터(3만 3,000㎡), 한국생산기술원 대구센터(3만 3,000㎡) 등의 5개 국책기관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34만 1,118㎡)도 인접해 있어 이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 - 교통망 개선으로 가까워지는 테크노폴리스교통여건도 뛰어나다.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IC가 차량으로 5분이면 진입이 가능하며, 2014년 10월 27일에 개통된 테크노폴리스 진입도로도 호재거리다. 이 도로는 대구테크노폴리스~대구수목원 간의 이동시간을 기존 40분에서 10분 이내로 단축시키게 된다. 지하철 1호선 연장사업도 활발하다. 현재 지하철 1호선연장사업은 국토교통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목록에 포함돼 있는 상태다. 오는 2016년 하반기 개통되면, 테크노폴리스의 대중교통여건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을 고정적으로 유입할수 있는 ‘하이젠스타’ 상가의 MD구성하이젠스타 상가는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을 고정적으로 유입할 수 있는 MD구성으로 24시간 풀타임 상가운영이 가능하다. 상가의 지상 1층은 편의점, 약국, 이동통신, 금융기관등 생활밀착형 업종이, 지상 2~3층은 패밀리레스토랑, 당구장, 세계맥주전문점 등 20~40대 고객을 위한 각종 프랜차이즈와 문화시설 등이 권장업이다. 또 4~5층에는 병원, 6~9층에는 학원과 키즈카페, 10층에는 스카이라운지, 휘트니스센터 등 가족단위 방문객과 직장인 대상으로 한 시설이 추천 업종이다. 지하 공간에 마련한 넓은 주차공간도 장점이다. 100% 자주식 주차를 가능하게 해 상가 이용고객의 편의를 배려했다. 상가 분양홍보관은 대구 달서구 화암로 323 건영빌딩 4층 (대구테크노폴리스 아파트 모델하우스 부지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분양문의:053-633-4100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금리 2%로 하락, ‘스트리트 상가’로 안정적 투자 노릴 때

    금리 2%로 하락, ‘스트리트 상가’로 안정적 투자 노릴 때

    한국은행이 최근 기준 금리를 2.0%까지 낮추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은행 금리에 기대를 접은 투자자들의 시선이 수익형 부동산, 그 중에서도 상가 시장으로 쏠리고 있다. 다른 수익형 부동산 상품과는 달리 상가의 경우, 고정적인 선호 계층이 있는데다 한동안은 공급 과잉에 따르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트리트형 상가는 전망이 좋다. 다른 수익형 부동산에 비해 공급 과잉에서 오는 리스크가 적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춤과 동시에 장점을 부각시키는 한편 개방감을 더해 많은 양의 수요자를 끌어들인다. 신사동 가로수길과 세로수길 등이 대표적인 스트리트형 상가다. 실제로 가로수길은 3.3㎡(평)당 매매가가 3년 만에 25% 이상 상승했고, 세로수길은 불과 2년 만에 25% 상승했다. 이 외에도 일산의 라페스타는 최초분양가 대비 평당 약 2000만원이 상승했으며, 웨스턴돔 역시 최초분양가 대비 평당 2000만원 이상 매매가 상승이 있었다. 위례신도시에 조성 중인 한 스트리트 상가의 경우 벌써 웃돈이 최대 1억원까지 형성되기도 하는 등 스트리트 상가는 업계에서 가장 관심이 뜨거운 상품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에 따르면 “최근 상가 상품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떠오르면서 상가 분양에 대한 문의를 자주하고 있다”며 “특히 가로수길, 쌈지길 등에서 이미 그 가치를 입증한 스트리트형 상가에 대한 투자가 가장 핫이슈다”라고 말했다. 한편 ㈜알토란이 천안에 공급하는 ‘천안 마치 에비뉴’는 대지면적 약 1만평의 초대형 규모의 스트리트 상가로 지어질 예정이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 1057에 분양하는 ‘천안 마치 에비뉴’ 상가는 대지면적 총 3만1479㎡(약 1만 평)의 4개 필지에 지하 1층 ~ 지상 2층으로 지어진다. 이 상가는 서울 합정동의 메세나폴리스와 판교의 아브뉴프랑, 일산의 웨스턴돔을 뛰어넘는 대규모 상업시설로 조성될 계획이다. ‘천안 마치 에비뉴’는 최근 상가 시장의 트렌드를 반영해 스트리트 구조로 지어진다. 스트리트형상가는 기존 박스형태의 몰(mall)형 상가보다 유동인구의 유입이 용이하며, 쇼핑뿐 아니라 가족과 연인들이 문화•여가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천안은 음식과 유흥, 소매 위주로 상권이 형성돼 있어 ‘천안 마치 에비뉴’는 가족과 연인을 대거 끌어모으며 향후 천안을 대표할 랜드마크 상가로 자리매김 할 전망이다. 또 풍부한 배후수요까지 갖춰 투자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다. 이 상가는 반경 2km 내에 약 10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소비활동이 활발한 10대~40대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여기에 인근 성성지구, 부성지구, 불당지구 등 약 2만6000가구가 입주를 앞두고 있으며, 인근에 삼성SDI와 천안 산업단지 등이 가까워 이 곳 5만여 명의 종사자까지 배후수요로 품게 된다. 또 이마트와 바로 인접해 있어 이마트 이용객들의 유입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가격 경쟁력도 주목할 만 하다. ‘천안 마치 에비뉴’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약 1850만원으로 책정돼 평균 3000만원에 달하는 천안시 상가의 분양가와 비교해 매우 경쟁력이 높다. 여기에 초기 1년 간 6%의 수익률을 보장해 투자 접근성을 높였다 ‘천안 마치 에비뉴’의 분양 홍보관은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 1056에 위치해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성형, 어디까지 해봤니…‘베르사체’ 변천사 충격

    성형, 어디까지 해봤니…‘베르사체’ 변천사 충격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의 대표이자 디자이너인 도나텔라 베르사체(60)의 ‘충격적인’ 모습이 공개됐다. 완벽한 블론드 헤어와 구릿빛 피부, 검고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 그리고 두툼한 입술로 유명한 그녀는 지나친 성형수술과 시술에 집착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그녀가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얼굴 변천사를 자세히 소개했다. 1993년, 당시 37세였던 도나텔라는 평범한 유럽 여성과 다르지 않은 외모를 가졌었다. 금발에 깊게 패인 눈, 그리고 도톰한 입술과 빼어난 패션 감각으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4년 후인 1997년, 친오빠이자 베르사체 브랜드를 세운 지아니 베르사체가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당시에도 그녀는 40대에 맞는 매우 자연스러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짙은 메이크업과 보톡스 시술로 ‘달라진 얼굴’을 선보인 그녀는 이후 눈에 띄게 잦은 수술로 얼굴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본격적인 성형중독 및 부작용을 앓은 것으로 추측된다. 입술은 갈수록 두터워졌고, 코와 눈은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형태가 됐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동일인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한 성형전문의는 “피부는 보톡스와 레이저 시술을 매우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턱 아래쪽을 깎은 것으로 추정되며 아마도 수 개의 임플란트를 심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한편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독보적인 디자이너로서 전 세계 셀러브리티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현재 베르사체 브랜드의 지분 20%를 소유하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카메라 절도’ 日수영대표 “안 훔쳤다” 돌연 혐의 부인

    ‘카메라 절도’ 日수영대표 “안 훔쳤다” 돌연 혐의 부인

    2014 인천아시안게임 때 한국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훔친 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을 낸 일본 수영선수 도미타 나오야(25)가 “도둑질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절도 행위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했던 인천 남부경찰서는 “도미타의 혐의 부인은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도미타는 6일 나고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0세가량의 동양인 남성이 내 팔을 움켜쥐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 카메라를 내 가방 안에 넣었다”면서 “한국에서 재심 청구도 검토 중”이라고 주장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한국 경찰에 혐의를 인정한 것에 대해 “혐의를 받아들이면 형이 가벼워지고, 문제가 심각해 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9월 25일 문학 박태환수영경기장에 동료 응원차 갔다가 한국 모 언론사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훔친 혐의로 붙잡힌 뒤 약식 기소돼 벌금 100만원을 냈다. 당시 그는 한국 경찰에서 혐의를 시인했을 뿐 아니라 아오키 쓰요시 일본선수단장도 기자회견을 열어 “폐쇄회로(CC)TV 화면을 통해 도미타가 카메라를 가방에 넣는 모습을 확인했다”며 사죄했다. 지난달 7일 일본수영연맹은 2016년 3월 31일까지 선수 등록을 정지하는 징계안을 결정했고, 스포츠 의류 브랜드 데상트는 “심각한 취업 규칙 위반”이라며 그를 해고했다. 도미타가 혐의를 부인한 것과 관련해 인천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CCTV 동영상에 체육복을 입은 한 남성이 카메라를 분리해서 자기 가방에 넣는 장면이 있고, 일본올림픽위원회 임원인 야나기야 나오야가 동영상 속 인물이 도미타라고 바로 특정했다”면서 “야나기야가 도미타를 복도로 불러내 ‘카메라를 가져갔느냐’고 물었더니 도미타는 바로 ‘그렇다’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도미타가 경찰 조사에서 ‘카메라를 본 순간 욕심이 났다’는 말을 분명히 했다”면서 “처음부터 경찰 진술이 끝날 때까지 동행했던 야나기야가 입을 열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전문기자 bsnim@seoul.co.kr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21세기에 아직도 마녀화형식?’ 충격

    ‘21세기에 아직도 마녀화형식?’ 충격

    40대 여자가 마녀로 몰려 끔찍한 죽임을 당했다. 남미 파라과이의 움비아 부족이 마녀로 의심된다며 45세 여자를 화형에 처했다. 사건은 수도 아순시온에서 290km가량 떨어진 타에히 원주민공동체 지역에서 최근 발생했다. 공동체에서 함께 어울려 살던 아돌피나 오깜포스(45)라는 여자가 마녀로 몰려 심판대에 올랐다. 공동체 리더인 부족장이 처형을 명령하자 원주민 9명이 형을 집행했다. 9명은 마녀로 지목된 여자를 몽둥이로 마구 때리고 활을 쐈다.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는 여자를 화형대에 올린 뒤에는 급기야 불을 질렀다.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검찰은 부랴부랴 수사에 나서 화형을 집행한 9명을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원주민공동체가 관습법을 지키는 점은 이해하지만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기소된 9명 전원을 엄중히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라과이에서 원주민부족이 스스로 사법정의(?)를 구현한다며 사형을 집행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가톨릭 관계자는 "파라과이에 20개 부족이 있지만 평화롭게 어울려 살고 있다."며 "부족사회에서 이런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 통신원 voniss@naver.com
  • ‘미생’, ‘사회 공감형’ 드라마로 뜬 이유는?

    ‘미생’, ‘사회 공감형’ 드라마로 뜬 이유는?

    한 종합상사를 배경으로 샐러리맨들의 애환을 그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tvN 금토드라마 ‘미생’. 눈에 띄는 톱스타도, 그 흔한 러브라인도 하나 없지만 요즘 젊은층은 물론 30, 40대가 모인 자리에서 이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5회 만에 최고 시청률 4.6%를 기록했지만 수치를 넘어 사회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바둑을 인생사에 빗대 풀어내 직장인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드라마의 세트장이 있는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만난 배우들도 작품에 공감하면서 촬영하고 있었다. 오상식 과장 역의 이성민은 “배우들도 대본을 보면서 극중 캐릭터가 안쓰럽다고 느낀 적이 많다. 특정 직업이라기보다 직장 내 사람들의 이야기, 즉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컴퓨터 타자 자판도 제대로 치지 못한다는 그는 대기업 중역인 친척의 조언을 얻어 가며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임시완은 극중 장그래가 오 과장의 친구인 변 부장을 접대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직장인의 애환을 공감했다. 그는 “그는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과 함께 예전에 술에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김대리 역할의 김대명은 “직장과 인생이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고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거기에서 오는 깨달음 자체가 나에겐 감동”이라고 말했다. 전작인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신데렐라 언니’ 등에서 섬세한 연출력을 뽐냈던 김원석 감독은 ‘미생’을 다큐멘터리처럼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드라마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나 의학 드라마, 사극 등이 주류를 이루는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소시민의 삶을 생생하게 다룬 미니시리즈를 하고 싶었다”면서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나 예능을 보고 울면서도 언젠가부터 드라마를 보고 울지 않는 시대가 됐다. 아주 작은 감동과 소중한 순간이 빛나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김 PD는 지난 8월 촬영을 시작하면서 제작진에게 “‘미생’은 장그래와 오 과장을 주인공으로 한 ‘버디물’”이라고 강조했다. 러브라인은 없지만 두 남자의 동료애를 통해 그에 버금가는 감정의 쌓임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재문 기획 PD는 “아버지가 없는 고졸 출신의 장그래와 그를 아들처럼 챙겨 주는 권위주의적이지 않는 상사 오 과장은 멘토와 멘티로서 유사 부자 관계다. 웹툰 원작을 썼던 윤태호 작가도 그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 ‘미생’의 기획 포인트는 ‘웃기면서 슬픈 공감’이었는데 이 지점에서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했다. 지난해 웹툰이 공개됐을 때보다 사회 전반이 더 우울해진 것 같고 직장인들의 분노까지 느껴졌다. 우리네 살림살이가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1명의 메인 작가와 고등학교 교사, 대기업 직원, 방송사 PD 출신의 보조 작가 3명이 완성한 대본은 소품 하나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PD의 손을 거쳐 ‘미생’의 공감대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 실제로 5일 공개된 촬영장에는 깨알같이 적힌 각종 서류부터 모니터에 붙은 메모지까지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이는 모두 ‘상사맨’들의 고증을 통해 완성됐다. 이 PD는 “옛날 상사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답답한 스튜디오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야외 장면을 늘렸고 음악이 몰입을 방해하지 않도록 반 템포 느리게 들어갔다. 조명부터 촬영, 컴퓨터그래픽(CG) 등 후반 작업까지 영화 스태프들도 대거 가세해 영화 못지않은 리얼리티를 살린 것도 직장인들의 공감대를 높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가벼운 관절통증, 사소하게 여기다가 만성화”

     크고 작은 관절통증 환자의 절반 이상이 병원을 찾기까지 평균 100일 이상이 걸리며, 이들 중 상당수가 자가치료나 소염진통제만 사용하다가 만성화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자생의료재단이 올 10월 1~15일 사이에 관절질환으로 울산자생한방병원을 찾은 환자 25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한 결과, 관절통증이 발생했을 때 ‘병원을 찾아 치료한다’고 응답한 환자는 10명 중 1.5명(14%)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가정에서 스스로 파스를 붙이거나 진통제를 먹는 자가치료를 한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약 6명(56.8%)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 통증 발생 후 병원을 찾기까지 걸리는 기간에 대해서는 불과 8%만이 2주 안에 병원치료를 선택했고, 절반 이상인 56%가 100일 이후에 병원을 방문했다고 응답해 발병 후 내원까지 3달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을 찾기까지 100일 이상 걸렸다고 한 응답자들에게 병원 치료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물은 결과, 대부분 ‘자가치료로 호전돼 치료의 필요성 느끼지 못했다’(41.4%)거나 ‘통증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30.7%)고 응답했다. 병원 관계자는 “관절염에 대한 정보와 지식 부족, 진통제의 맹신 등이 관절염 악화의 원인이라는 의미”라면서 “관절염의 통증원인인 프로스타그란딘은 붙이거나 먹는 소염진통제에 포함된 피록시캄에 의해 억제되지만 그 동안에도 관절은 계속 손상되기 때문에 오히려 피록시캄의 통증 완화 효과가 관절염 악화 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상돈 울산자생한방병원은 “통증이 심할 때는 내성이 우려되는 진통제보다 부작용이 없고 가정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소금으로 찜질을 하는 것이 좋다”면서 “관절이 붓고 열이 날 때에는 굵은 소금 2kg을 중불로 프라이팬에 15분간 골고루 볶은 다음 신문이나 한지로 몇 겹을 싸고 다시 수건에 싸서 1일 2회, 1회에 30분 정도 관절을 찜질해주면 좋다”고 말했다.  김상돈 병원장은 “식단 조절과 적절한 운동은 관절 주위의 근육 강화, 관절 경직 예방, 뼈와 연골조직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므로 관절염 예방 및 관리를 위해서는 꾸준한 운동이 필수적”이라며 “관절에 부담이 적은 수영, 자전거 타기, 평지걷기 등을 무리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주3회 이상 30분 정도로 가볍게 하거나 등산, 계단 오르내리기, 테니스, 줄넘기 등 관절에 부담을 주는 운동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류마티스학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류마티스관절염 진단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선진국의 3~5배에 이르며, 나이가 어릴수록 더 늦게 진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20세 미만 40.7개월 ▲20대 31.6개월 ▲30대 24.6개월 ▲40대 18.9개월 ▲50대 14.1개월 ▲60대 11.8개월 ▲70대 이상 8.8개월 등이다.  그러나 류마티스 관절염은 발병 후 2년이 지나면 관절 손상이 진행되기 때문에 초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의들은 “관절질환은 증세가 악화되면 초기에 비해 치료 비용과 시간이 크게 늘어난다”면서 “따라서 통증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거나, 통증이 반복된다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제대로 놀아야 아이다

    제대로 놀아야 아이다

    “학교폭력, 왕따…. 요즘 아이들의 병리 현상 원인 중 하나는 제대로 놀지 못한다는 거다. 그 단적인 예가 놀이터가 텅텅 비었다는 거다.” 작가 고정욱(54)의 문제의식은 예리하다. 치유의 힘도 크다. 어린이·청소년 문제의 핵심을 파고든다. 초·중·고 현장에서 연간 300회의 강연을 하며 아이들과 영혼으로 대화해온 덕분이다. 새 청소년 소설 ‘공짜로 놀아주마’(웅진지식하우스)에선 ‘잘 노는 것’과 ‘소명 의식’을 다뤘다. 작품 속 고교 2학년인 ‘원길’은 하루아침에 ‘뺑소니 사고’로 어머니를 잃는다. 그 충격으로 삶의 중심을 잃고 방황한다. 학교도 그만둔다. ‘슬픔을 지우기 위해 한없이 잠만 자고 싶었다. 잠은 또 다른 작은 죽음이었다. 원길은 차츰 얼이 빠진 사람처럼 변해갔다. 이성적으로는 지금 공부를 해야 하고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몸과 마음이 따라주질 않았다. 어머니가 없다는 공허함은 원길의 영혼을 사정없이 후벼 파는 독벌레와 같았다.’(25~26쪽) 원길은 어느 날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야겠다고 결심한다. 무작정 걸으며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다. 근육에 쥐가 나고 발에 염증이 생겨 천안에서 도보 여행을 포기하고 상경한다. 올라오는 길에 영혼상담가 ‘반헨렐’을 만난다. 그는 원길에게 유년 시절 못 해본 게 무엇인지 묻는다. 원길은 공부하느라 실컷 놀아보지 못했다고 답한다. 순간 원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실마리를 찾는다. 동네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 의해 ‘프로그래밍’돼 있는 삶을 산다. 학교든 학원이든 집이든 공부하라는 말만 듣고 산다. 숨통이 막힐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놀아야 창의성, 모험성이 발현된다.” 작가도 사정은 다르지만 어린 시절 전혀 놀지 못했다. 어릴 적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했고, 교실이나 복도에선 기어 다녔다. 운동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애 탓에 의사의 꿈도 접었다. 의대에선 장애인을 뽑지 않아서였다. 문과로 전향해 국문과에 입학했다. 책벌레였기에 작가가 되고자 했다. 20여년이 흘러 장애를 완전히 극복하고 소명 의식도 자각했다. “‘나는 왜 장애인으로 태어났나, 사람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깔보고 차별과 편견으로 대하는데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나는 ’루저‘(패자) 아닌가’ 어릴 때부터 고민과 방황이 컸다. 하지만 장애가 있기에 장애인을 차별과 편견으로 대하지 말라고 말과 글로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내가 장애인이 됐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40대 초반이었다. 삶의 소중함과 내가 유용한 인간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원길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며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게 된다. “재밌어 게임하고 노는 게”처럼 어순을 뒤바꿔 말하는 장애도 극복하게 된다. “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반드시 있다. 그걸 소명이라고 한다. 그 소명을 찾아야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소명을 깨달은 이후 매일 매일이 기적이고 즐겁다.” 작가는 원길처럼 저마다 말 못 할 아픔을 간직하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말한다. “아픔엔 다 이유가 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아픔을 납득할 날이 온다. 아픔은 삶의 축복이다. 영혼이 깃든 소중한 존재이고 삶은 한 번뿐이라는 사실도 자각했으면 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코성형은 첫 번째 수술이 중요, 과도한 수술은 코재수술 불러올 수도

    코성형은 첫 번째 수술이 중요, 과도한 수술은 코재수술 불러올 수도

    11월이다. 곧 수능이 끝나고,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겨울은 성형수술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많이들 알고 있다.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방학을 통해 예뻐지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아 다니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수많은 성형광고, 이벤트로 현혹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서 ‘수능 후에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여학생들이 ‘성형’이라고 말할 만큼 눈, 코의 성형이 대중화가 된지 오래다. 가장 많이 선호하는 부위로 첫 번째는 눈, 그 다음으로 코이며, 이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많이 선호하는 추세다. 코재수술로 알려져 있는 디자이너성형외과의 성형외과전문의 서인수 원장에 따르면 30, 40대들은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예뻐지는 코를 원하지만, 20대의 경우 자신의 얼굴과의 조화를 생각하기보다는 무조건 높고 예쁜 코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 여자 연예인 코처럼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많으며, 잡지 사진을 오려오기도 한다. 심지어는 외국인 사진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 원장은 과도한 수술은 옳지 않으며, 본인의 얼굴과도 조화되지 않아서 어색할 뿐만 아니라, 전체 인상과 균형을 깨버릴 수가 있다고 조언한다. 뿐만 아니라 재수술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재수술의 경우에도 이전 수술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며, 어려운 수술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형수술은 첫 번째가 매우 중요하며, 특히 코는 얼굴의 다른 골격과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하며 그 선이 잘 이어지고 어우러져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런 코가 될 수 있다. 코는 높이, 너비에서 1mm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코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섬세하고 어려운 수술이다. 얼굴은 약간의 각도 차이가 큰 인상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동양인의 경우, 미간 콧대를 너무 높이기보다는 코끝으로 갈수록 점점 높아지도록 수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 코끝을 고치더라도 역시 자신의 얼굴과 어울려야 한다. 서인수 원장은 “피부는 얇은데 코를 과도하게 높일 경우 보형물이 비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코가 짧아지거나 코끝 피부가 얇아지고, 심지어 보형물이 삐져나오기도 한다”면서 “과도한 성형은 재수술을 불러오는 만큼 수능이벤트 등 저렴한 가격이나, 성형 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성형외과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을 거쳐 본인의 얼굴에 맞는 성형을 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같은 브랜드 다른 콘셉트… 맞춤형 외식이 뜬다

    같은 브랜드 다른 콘셉트… 맞춤형 외식이 뜬다

    불황기에는 익숙한 것에 지갑이 더 쉽게 열리기 마련이다. 신규 브랜드 하나 키우는 것보다 인기 브랜드를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전략이 전개되는 곳 중 하나가 외식업계다. 뿌리가 깊은 나무의 가지가 단단하게 뻗어 나가듯 인지도 굳건한 브랜드의 콘셉트를 다각화한 매장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위축된 소비심리를 푸는 한편 세분화된 고객의 욕구를 빠르게 충족시키는 데도 좋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빕스는 지난 4월부터 지역 특성과 고객 연령층에 따른 차별화 매장을 선보이고 있다. 메뉴 구성은 물론 실내 장식도 매장마다 다르게 꾸며 어디서나 똑같은 빕스를 탈피하자는 취지다. 현재 총 90개 빕스 매장 가운데 브런치 매장은 21개, 다이너 매장은 4개다. 20~40대 여성 고객 방문 비율이 높은 서울 명동중앙점,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경기 판교점 등을 브런치 특화 매장으로 변신시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CJ푸드빌 관계자는 “명동중앙점, 판교점, 인천 연수점 등은 브런치 매장 변신 전보다 평일 점심 고객 수가 20%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서울 홍대, 강남역, 종로, 대구 동성로 등 4곳은 젊은 층을 주요 공략 대상으로 삼는 다이너 매장이다. 실내도 더 편안하게 꾸몄으며 핫윙, 미니버거, 폭립 등 캐주얼한 메뉴도 선보이고 있다. 경기 분당 야탑역점은 어린이 특화 매장이다. 가족 단위 고객이 많은 지역 특성에 따라 ‘키즈 전용 쿠킹 클래스 공간’과 ‘키즈 라이브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점은 세계 유명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비어펍으로 꾸몄다. 이랜드에서 운영하는 외식 브랜드 애슐리는 처음부터 매장별 구성 메뉴와 가격대를 다양화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유통점 입점 형태의 애슐리 클래식, 프리미엄급의 애슐리W, 애슐리W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애슐리W+, 해산물 특화 매장인 애슐리 마린 등 4개 콘셉트로 구분해 전국 14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평일 점심 기준으로 가격은 가장 저렴한 9900원부터 시작되며 매장에 따라 메뉴도 80~100종으로 차별화돼 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데스크 시각] ‘김진태號’ 검찰 벌써 일년/박홍환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김진태號’ 검찰 벌써 일년/박홍환 사회부장

    한 달 뒤면 김진태 검찰총장이 취임한 지 1년이 된다. 벌써 절반의 임기를 보낸 셈이다. 어수선했던 ‘채동욱 혼외자 파문’을 뒤로하고 지난해 12월 2일 그가 제40대 검찰총장에 취임했을 때 검찰 안팎에서 각종 주문이 쏟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부에서는 만신창이가 돼 버린 조직을 추슬러 달라는 절박한 SOS를, 외부에서는 검찰의 독립성을 회복해 더이상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지 말라는 추상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키노필름을 돌려보듯 돌이켜 보면 지난해 검찰은 ‘카오스’ 그 자체였던 것 같다. 혼외자 의혹으로 채동욱 전 총장이 사퇴하고,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항명 및 외압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검찰 조직은 만신창이가 됐다. ‘특수통’과 ‘공안통’의 해묵은 갈등이 마침내 폭발했는가 하면 수사하는 사건마다 형평성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만난 한 간부는 “자고 나면 무슨 일이 터질까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두려울 정도”라고 비감하게 토로하기까지 했다. 그런 검찰의 모습은 흡사 ‘보이지 않는 손’의 장난질에 꼭두각시극의 주인공 신세로 전락한 모양새여서 안쓰럽기조차 했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등판한 ‘구원투수’가 김 총장이었던 것이다. 김 총장이 누구인가. 화려한 이력은 지면에 열거할 필요도 없겠다. 자타가 공인하는 검찰 내 최고의 특수통 수사검사로 조직 안팎의 신망까지 두터웠던 그 아닌가. “바르고 당당하면서 겸허한 검찰로 거듭나 국민의 신뢰를 되찾겠다”는 취임사 구절에서는 조직 내부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어떠한 시비도 불식시키겠다”는 말도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벌써 일년, 시중에는 오히려 검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확대돼 있다. 몇 가지 사례만 떠올려 보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수사를 지휘하면서 공안검사들은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증거조작 사실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속았다”는 해명은 오히려 옹색하기까지 하다. 최소한 직무유기가 분명한데도 솜방망이 징계로 제 식구를 감쌌다.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는 쓴웃음을 짓게 하는 한 편의 코미디였다. 이미 백골로 변해 버린 유씨를 찾는다며 역대 최고의 현상금을 내걸고 전국을 뒤졌으니 검찰로서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피살된 재력가의 ‘뇌물장부’에 검사 이름이 적혀 있지 않나, 최고위급 간부인 제주지검장이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를 하다 적발되지 않나. 검사들의 명예와 도덕성마저 땅에 떨어졌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언비어 유포를 근절하겠다”며 온라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사이버 망명’ 사태를 야기하고, 카카오톡 사찰 논란까지 자초하는 등 정치적 시비를 불식하겠다는 약속은 이미 ‘공염불’이 됐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무엇인가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김 총장은 1년 전 취임식 마무리 발언으로 브라질 작가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 구절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진심전력으로 검찰의 염원을 이루자는 당부와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벌써 1년이 흘렀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아직 1년이나 남은 셈이다. 거악 척결 등 검찰의 본래 위치를 회복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온 우주는 당신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김 총장이 ‘연금술사’의 또 다른 구절을 기억해 냈으면 한다. stinger@seoul.co.kr
  • ‘슈퍼스타K6’ 이야기 걷어내니, 음악이 들렸다

    ‘슈퍼스타K6’ 이야기 걷어내니, 음악이 들렸다

    지난달 31일 밤 ‘슈퍼스타K6’(슈스케6)의 네 번째 생방송이 열린 경희대 평화의 전당. 경연 한 시간 전인 밤 10시부터 관객들이 밀물처럼 공연장 안으로 들어왔다. 10대부터 대학생 아들과 함께 온 40대 주부, 삼삼오오 몰려든 30대 남성 직장인 등 관객층은 다양했다. 2~3년 전부터 침체를 거듭하다 이번 시즌에 극적으로 기사회생한 ‘슈퍼스타 K6’. 현장에서 본 ‘슈스케6’ 인기 회복의 일등 공신은 ‘음악으로의 회귀’였다. 공연장에서 만난 주부 현미선(46)씨는 “지난해 ‘슈스케’에 실망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출연자들의 노래 실력이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현장에서 이들의 음악을 직접 들어 보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다. 공연장에서 톱6(우승 후보)는 이미 슈퍼스타였다. 곽진언이 나타나자 객석 여기저기서 “멋있다”는 탄성이 흘러나왔고 곽진언은 “아니에요”라며 손사레를 쳤다. 김필, 송유빈 등이 등장할 때도 웬만한 기성가수 못지않은 뜨거운 반응이 나왔다. 무대에서 심사위원석까지는 불과 약 7m. 위축될 법하지만 이들은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섰다. 무대 양쪽에 두 개로 나뉘어진 슈퍼 밴드는 TV로 봤을 때보다 훨씬 풍부한 음향을 선보였다. 슈퍼위크 때 김필, 임도혁, 곽진언이 컬래버레이션 무대에서 선보여 화제가 됐던 ‘당신만이’를 부르자 심사위원과 객석은 하나가 됐다. 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신형관 CJ E&M 상무는 “‘당신만이’, ‘소격동’, ‘신촌을 못가’ 등 이번 시즌 출연자들이 부른 노래는 제작진은 물론 대중에게도 큰 위로를 준 곡이 많아 온라인 음원차트 1위로 이어진 듯하다”고 말했다. 이번 ‘슈스케6’는 감성에 호소하는 사연 팔이, 악마의 편집 등 슈스케의 기존 인기 요인을 과감히 배제한 것도 특이점이다. 심사위원인 윤종신은 “지금까지는 스토리 텔링이나 편집을 통해 출연자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슈퍼스타K’의 매력이자 구습이었지만 이를 과감히 탈피하면서 프로그램이 빠른 전개와 유연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메인 연출자인 김무현 PD는 시즌 1부터 5년간 조연출을 맡아 ‘슈퍼스타K’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신형관 상무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워낙 자료가 방대하고 촬영과 편집에 대한 노하우가 중요하기 때문에 김무현 PD가 유리했다”면서 “제작진은 ‘슈스케6’가 새로운 시작이거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패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나와서 얼마나 좋은 노래를 불러 주느냐에 따라 달렸다. 슈스케 6는 그동안 찾아가지 않았던 곳을 포함해 역대 최다 도시를 돌며 참가 방법을 다양화해 실력 있는 참가자들을 발굴하는 데 노력했다. 선곡도 주효했다. 이들이 경연에서 부르는 노래는 100~200곡의 후보 중에 음악감독, 작가, PD 등이 함께 심사숙고해 출연자에게 잘 어울리는 곡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출연자 본인의 몫이다. 심사위원 백지영은 “이번에는 슈퍼위크 때부터 올라올 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올라온 것 같다. 그만큼 출연자들의 능력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김범수는 “이번 ‘슈스케6’의 성공 요인은 검증받은 명곡보다 비주류의 음악을 듣게 하는 무대를 만들어 냈다는 데 있다. 나 역시 김필이 부른 ‘얼음요새’의 원곡을 찾아 들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점은 있다. ‘슈퍼스타K’는 유독 여성 참여자에게 인색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이해나, 미카 등 여성들이 줄줄이 탈락했다. 백지영은 “이해나의 무대 퍼포먼스는 당장 SBS ‘인기가요’에 세워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았다”고 호평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이번 시즌에 문자투표의 비중을 줄이고 심사위원 배점을 높이는 등 제도적인 부분을 보완했지만 걸출한 여성 보컬을 배출한 ‘보이스 코리아’와 달리 여성들의 성적이 저조한 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면서 “현장 음향을 안방까지 잘 전달하기 위해 더 많은 전문가와 모니터 요원을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슈스케6’는 3회 방송분만을 남겨 놓고 있다. 우승 상금 5억원의 주인공이 누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김필과 곽진언의 대결 구도가 뚜렷하지만 여성팬들이 많은 송유빈, 남성팬의 지지가 많은 임도혁 등 복병이 존재한다. 윤종신은 “이제는 실력보다 매력이 중요하다. 음정 박자보다 얼마나 대중을 반하게 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면서 “5명이 표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정도로 끝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쳐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범수는 “‘나는 가수다’ 때도 경험했지만 참가자들의 실력은 검증됐고 이제 얼마나 공연 위주로 무대가 잘 만들어지느냐에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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