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40대
    2026-06-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368
  • 하루 12시간 근무, 월급 250만원 받자고 도박조직 가담한 20대 여성

    하루 12시간 근무, 월급 250만원 받자고 도박조직 가담한 20대 여성

    지난해 9월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불법 사이버도박 조직 총책이 검거됐다. 별명은 ‘마이사’. 그의 정체는 한국인 40대 남성 김모씨였다. 김씨는 1조원이 넘는 필리핀 최대 규모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필리핀 코리안데스크와 경찰청 외사국, 국가정보원은 2년간 공조한 끝에 김씨를 포함해 130여명의 조직원을 검거하는 쾌거를 이뤘다. 일망타진된 조직원 중에는 현지에서 말단으로 활동한 황모(30)씨도 포함돼 있었다.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던 황씨는 2018년 5월 친구가 제안한 일자리를 받아들이면서 범죄의 길로 들어섰다. 경기 평택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친구는 “필리핀에서 컴퓨터 모니터링을 하는 일을 해보라”고 제안했다. 황씨는 한 달 뒤 필리핀으로 떠났고 2020년 3월까지 김씨의 조직에 몸담았다. 해당 조직은 2017년 2월 국내 도박사이트 운영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김씨가 필리핀으로 도피하면서 새롭게 꾸려졌다. 마닐라 소재 호텔 카지노에서 진행된 바카라·블랙잭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참가자가 돈을 걸면 승부 결과에 따라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2018년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회원들로부터 153만회에 걸쳐 입금받은 돈은 1조 3418억원에 달했다.총책인 김씨는 바카라팀과 스포츠토토팀, 사이트 관리팀, 홍보팀, 운영팀을 두고 조직적으로 운영됐다. 바카라팀에 소속된 황씨는 사이트 모니터링과 도박자금 입출금을 담당했다. 그는 현지에서 다른 조직원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하며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했다. 그 대가로 받는 기본급은 월 250만원. 실적에 따라 추가 수당을 받기도 했지만 경쟁이 치열했다. 팀장급은 월급 1000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 1월 황씨를 도박공간 개설 및 범죄단체가입·활동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황씨는 재판 과정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일주일에 1~2번씩 모두 9차례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강민호 판사는 지난 18일 황씨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황씨가 1년 9개월 동안 조직에서 범죄의 대가로 받은 보수에 대해 추징 명령도 내렸다. 그 금액은 5125만원이었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강기정 광주시장 예비후보, ‘강추캠프’ 선거사무소 개소

    강기정 광주시장 예비후보, ‘강추캠프’ 선거사무소 개소

    미래비전 실현 위한 열린 공간…“당당하고 빠르게 광주 밀린 숙제 해결” 강기정 더불어민주당 광주시장 예비후보가 26일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나섰다 강 예비후보는 이날 광주 서구 S타워컨벤션에서 ‘강추캠프’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가졌다. 강추캠프는 ‘강한 추진력, 강기정을 추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강추캠프 개소식에는 우원식·이원욱·이개호·김승남·신정훈·김원이·김회재·서동용·민형배·윤영덕·이용빈·조오섭·양향자·김경만·양정숙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 원혜영 전 국회의원, 양형일 전 대사, 김학민 전 경기문화재단 이사장, 노동일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최병근·임선숙 전 광주지방변호사회장, 김영집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외부총장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정세균 전 총리를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전직 국무위원들과 노영민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들은 축전을 보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이날 개소식은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워킹스루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세균 전 총리는 축전을 통해 “오랜 기간 지켜본 강기정은 언제나 자신의 닉네임을 ‘광주 강기정’이라고 쓸 정도로 광주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며 “국회의원 재임 시절 지역 예산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예산을 확보했고 청와대 정무수석 재임 시에는 소통과 협치를 통해 탁월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강 예비후보는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며 “당당하고 빠른 추진력으로 지역의 밀린 숙제를 해결하고 광주신경제지도로 새로운 광주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강추캠프는 50대 후보와 40대 참모를 주축으로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 집단지성으로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며 “강추캠프는 지역의 미래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부담 없이 찾아주시고 활발히 소통해 달라. 개소식에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강기정 예비후보는 지난 23일 광주상공회의소에서 출마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광주시대를 열기 위해 5개 신경제지구와 5개 신활력특구를 기반으로 ‘광주新경제지도’를 그려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제는 됩니다?광주에 없는 20가지’ 공약을 통해 시민들의 삶을 보듬고 광주를‘삶의 모델 도시’로 바꿔나가겠다고 선언했다.
  • [속보] 박근혜 전 대통령 향해 소주병 던진 40대男 구속

    [속보] 박근혜 전 대통령 향해 소주병 던진 40대男 구속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소주병을 던진 40대 남성이 구속됐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차윤재 판사는 26일 A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지난 24일 낮 12시 18분쯤 박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유가읍 사저에 도착해 인사말을 할 때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소주병 하나를 던졌다. 당시 소주병이 박 전 대통령과 약 3m 떨어진 바닥에 떨어지며 깨졌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특수상해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범행 직후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A씨는 ‘인민혁명당에 가입해달라’, ‘사법살인진실규명연대’ 등의 문구를 가슴에 붙이고 있었다. A씨는 이날 오전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면서도 인혁당 사건 피해자 8인의 얼굴이 인쇄된 종이를 비닐과 테이프 등으로 엮어 왕관처럼 머리에 쓰고 나타났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 희생자 추모 기관인 4·9통일평화재단은 사건 당일 보도자료를 내고 A씨가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 서울 동대문구 25층짜리 아파트서 불…주민 1명 숨져

    서울 동대문구 25층짜리 아파트서 불…주민 1명 숨져

    7층서 화재 발생…원인 조사 중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25층짜리 아파트에서 불이 나 주민 1명이 숨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은 26일 낮 12시 34분쯤 아파트 7층에서 발생했으며, 주민 12명이 구조되고 60여명은 자력으로 대피했다. 구조된 주민 중 4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숨진 주민은 불이 시작된 7층 아파트 세대에 거주하던 40대 여성으로, 화재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은 화재 발생 약 1시간 14분 만인 이날 오후 1시 48분쯤 초진(불길을 통제할 수 있고 연소 확대 우려가 없는 단계)을 완료하고 오후 2시 28분쯤 불을 완전히 껐다. 불은 주방 겸 거실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해당 세대는 전소됐다. 옆 세대와 윗 세대로도 불이 번져 일부가 탔으며 소방은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소방과 합동 감식을 통해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한편 일부 주민들로부터 화재경보기가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주민은 “(불이 난 직후)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았다”며 “‘불이야’라는 소리에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경보기 작동 상황은 현재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 동대문구 25층 아파트 7층서 화재…1명 사망

    동대문구 25층 아파트 7층서 화재…1명 사망

    26일 낮 12시 34분께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주민 1명이 숨졌다. 불은 25층짜리 아파트 7층에서 발생했으며 주민 12명이 구조되고 60여명은 자력으로 대피했다. 구조된 주민 중 4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숨진 주민은 불이 시작된 7층 아파트 세대에 거주하던 40대 여성으로, 화재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은 인력 72명과 장비 20대를 동원해 화재 발생 약 1시간 14분 만인 이날 오후 1시 48분께 초진(불길을 통제할 수 있고 연소 확대 우려가 없는 단계)을 완료하고 오후 2시 28분께 불을 완전히 껐다. 불은 주방 겸 거실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해당 세대는 전소됐다. 옆 세대와 윗 세대로도 불이 번져 일부가 탔으며 소방은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 중이다.
  • 소주병 투척남, ‘인혁당 피해자 인쇄물’ 머리에 쓰고 등장

    소주병 투척남, ‘인혁당 피해자 인쇄물’ 머리에 쓰고 등장

    지난 24일 대구 달성군 사저 앞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소주병을 던진 40대 남성 A씨가 26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면서 인혁당 사건 피해자 8인의 얼굴이 인쇄된 종이를 비닐과 테이프 등으로 엮어 왕관처럼 머리에 쓰고 나타났다. 이날 오전 10시38분쯤 대구지법 서부지원에 모습을 드러낸 A씨는 “인혁당과 연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네”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병 안에 든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소주”라고 짧게 답한 뒤 법정으로 들어갔다. 경찰관 권유에도 인쇄물을 벗지 않았던 A씨는 “법정 안에서 머리에 쓴 것을 벗으라”는 법원 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인쇄물을 벗어 손에 쥔 채 심문에 참여했으며, 인혁당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 달성경찰서는 전날 특수상해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허경환 회사서 ‘27억 횡령’ 동업자…2심서 법정구속

    허경환 회사서 ‘27억 횡령’ 동업자…2심서 법정구속

    개그맨 허경환이 운영하던 회사에서 20억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린 40대가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지만 법정구속됐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8부(배형원 이의영 배상원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42)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씨의 혐의 대부분을 1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양씨가 횡령 금액 일부를 반환하고 법원에 3억원을 공탁한 점을 고려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죄질이 좋지 않고 사기 범행에 관해서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실형을 면할 수 없다”며 불구속 재판을 받던 양씨를 이날 법정에서 구속했다. 양씨는 지난 2010∼2014년 허씨가 대표를 맡은 식품 유통업체 ‘허닭’(옛 얼떨결)의 회사자금 총 27억3000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회사에서 감사 직책을 맡았던 양씨는 회사를 경영하며 법인 통장과 인감도장, 허씨의 인감도장을 보관하면서 자금 집행을 좌우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자신이 운영 중이던 별도 회사에 돈이 필요할 때 허닭의 자금을 수시로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확인된 계좌 이제 횟수가 총 약 600차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씨는 허씨의 이름을 허위 기재해 주류 공급계약서를 위조하거나, 세금을 납부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허씨로부터 1억원을 빌리고 돌려주지 않은 혐의도 받는다. 그는 2020년 3월에는 혈중알코올농도 0.211%의 만취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양씨는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항소하지 않았다.
  • 이웃집 60대 여성 성폭행하고 살해한 40대 징역 30년

    이웃집 60대 여성 성폭행하고 살해한 40대 징역 30년

    이웃집 60대 여성을 감금하고 성폭행한 뒤 살해한 40대 남성에게 징역 30년 형이 선고됐다. 광주지법 형사11부(박현수 부장판사)는 25일 강도강간,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A(40대)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7년간 신상정보 공개, 10년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 제한,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11일 오전 10시 30분 쯤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이웃집에 침입해 집주인 B(60대)씨를 성폭행하고 같은 날 오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돈을 요구하며 피해자를 폭행한 뒤 몸을 묶고 감금했다. 범행 도중 피해자 의 현금 4만원을 챙겨 편의점에서 김밥과 술을 사다 마시고 잠을 자는 등 장시간 피해자를 가두고 가혹 행위를 했다. 그는 B씨를 협박해 알아낸 통장 비밀번호로 수십만원을 인출한 뒤 돌아와 질식사시켰다. A씨는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무사한 것처럼 연락을 취하기도 했으나 이상함을 느낀 가족들의 신고로 범행 6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재판부는 “A씨는 술값이 부족하다며 이웃집에 침입해 범행하고 발각될 것을 우려해 피해자를 살해했다”며 “피해자는 극심한 공포와 고통을 느꼈을 것이고 유족들도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를 입었으나 아무런 피해 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형사처벌 전력상 폭력성과 공격성이 심각해 보이고 알코올 사용 장애 선별검사(AUDIT)에서도 ‘알코올 남용’ 결과가 나온 점, 재범 위험성이 ‘높음’으로 평가된 점을 감안할 때 재범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 우크라이나군의 반격…러 대형 상륙함 격침

    우크라이나군의 반격…러 대형 상륙함 격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달째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를 수세에 몰아넣는 군사작전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크라이나 해군은 수백 명의 병력과 전차 수십 대를 보급할 예정이었던 러시아의 대형 상륙함을 격침했고, 수도 키이우 주변 도시를 탈환하며 러시아군을 밀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남부 아조우해의 항구도시 베르단스크 인근에 정박한 러시아 상륙함 ‘오르스크’를 격파했다고 24일(현지시간) 페이스북을 통해 주장했다. 미국과 영국 국방부도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확인했다. 러시아는 베르단스크항을 통해 전투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아군에 무기와 탄약을 보급할 예정이었다. 앞서 러시아 국영 매체 RT 등은 오르스크함이 베르단스크에 도착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수백 명의 병력과 최대 전차 20대, 장갑차 40대를 실을 수 있다고 전한 바 있다.소셜미디어 영상 등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군함들이 정박한 부두에 연쇄 폭발로 인한 큰 불이 났다. 오르스크함이 침몰하면서 선박 2척이 추가로 파손되고 3000t급 연료탱크도 파괴돼 주변 탄약고로 불이 옮겨 붙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외신 보도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터키 바이락타르사가 개발한 중고도 전술 무인기(드론) TB2와 토치카 탄도 미사일 등을 공격에 사용했다고 전했다. ISW는 이번 공격이 마리우폴과 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남부 해역에서 군사 작전을 강화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군은 이번 공격에 대해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CNN과 AP 통신에 따르면 수도 키이우에서는 연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수도 동북쪽을 탈환한 우크라이나군은 도심에서 25km까지 근접했던 러시아군을 35~70km 밖으로 몰아냈다고 밝혔다. 이르핀과 부카, 호스토멜 등 키이우 주변 도시에서도 양쪽 군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렉산드르 마르쿠신 이르핀 시장은 “이르핀의 80%가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는 로켓포 공격으로 맞서고 있다. 이날 러시아군은 남부 마리우폴의 중심부에 진입했다. 서방 매체들은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주민 6000여명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려 한다고 보도했다.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협상에서 우크라이나 측 대표단을 이끈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러시아는 전쟁을 장기 국면으로 끌고 갈 방법을 찾고 있다”며 “전력 손실이 너무 크고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전술을 바꿔 사상자 수를 줄이기 위한 방어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 수뇌부가 현재 우크라이나에 투입한 병력과 장비로는 임시적인 점령 상태를 유지하기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분석했다.
  • 우리 군 F35A 스텔스기 28대 활주로에, 대북 무력시위 이틀째

    우리 군 F35A 스텔스기 28대 활주로에, 대북 무력시위 이틀째

     우리 군이 25일 오후 2시 35분쯤 F35A 스텔스 전투기 28대가 한꺼번에 활주로에 도열하는, 이른바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을 실시했다. 전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에 이틀 연속 무력 시위에 나선 것이다.  국방부는 25일 서욱 국방부 장관이 모 공군 기지를 방문해 F35A의 엘리펀트 워크 훈련을 현장 지휘하고, 군사 대비태세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엘리펀트 워크는 여러 대의 전투기가 최대 무장을 장착하고 활주로에서 밀집 대형으로 이륙 직전 단계까지 지상 활주를 하는 훈련이다. 전면전이나 유사시를 대비해 최대 무장을 갖춘 전투·폭격기들이 신속하게 출격하는 연습을 한 것이다.  군이 엘리펀트 워크와 같은 대규모 무력 시위에 나선 것은 이번 정부 들어 처음이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2012년 전투기 60여대를 동원해 ‘엘리펀트 워크’ 훈련을 진행한 일이 있다. 한국 군의 공중전력을 동원하는 엘리펀트 워크 훈련은 현 정부에서 실시된 적이 없다.    국방부는 “서 장관이 지난 1월 31일 육군 미사일사령부에 이어 전략적 타격체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스텔스 전투기 운용부대를 방문함으로써 우리 군의 확고한 미사일 대응 태세와 능력을 점검하는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의 F35A를 차세대 전투기 기종으로 선정해 2018년 3월 1호기를 시작으로 지난 1월 마지막 4대가 인도돼 40대를 도입 완료했다. F35A 도입에는 7조 7700억원 가량의 예산이 투입됐다.  F35A는 항공기에 탑재된 모든 센서의 정보가 하나로 융합 처리돼 조종사에게 최상의 정보를 제공하는 첨단 전투기다. 스텔스 성능과 전자전 능력 등 통합항전 시스템을 갖췄고, 최대 속도는 마하 1.6이며, 전투행동반경은 1093㎞에 이른다.  특히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기능으로 적지에 은밀히 침투해 핵과 미사일 기지, 전쟁 지휘 시설 등 핵심 표적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어 북한이 도입 초반부터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한국과 미국 군은 한 발 나아가 북한이 ICBM을 추가 발사하면 미군의 태평양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시킬 계획이다. 국방부는 지난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이를 골자로 한 대응 계획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 들어 중단된 한미 외교·국방(2+2)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통해 미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배치·전개를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미군 태평양공군사령부는 지난달 B52H ‘스트래토포트리스’를 괌의 앤더슨 기지에 배치한 바 있다. B1B ‘랜서’, B2 ‘스피릿’ 등 폭격기와 함께 유사시 북한 내 전략목표와 군사시설을 초토화할 수 있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략자산이다. 한국과 일본 자위대 항공기가 미군 전략자산을 호위하게 되는데 ‘블루 라이트닝’ 훈련으로 불린다.  이 밖에 미 해군이 운용하는 항공모함과 강습상륙함이 한반도 인근 해상에 집결해 압박 수위를 높일 수도 있다. 현재 서태평양엔 2척의 미 해군 항모와 1척의 강습상륙함이 배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지난 7일부터 서해 일대에 대한 감시·정찰활동 및 탄도미사일 방어태세를 격상한 상태다.  군은 전날 북한이 신형 ICBM을 발사한 지 1시간 51분 만인 오후 4시 25분쯤 강원 강릉에서 현무-2 탄도미사일 1발과 전술용 단거리미사일인 에이태킴스 1발을 발사했다. 이어 F15K 전투기가 이륙해 공대지미사일인 합동직격탄(JDAM) 2발을 발사했고, 이지스함에선 함대지미사일 해성-2 1발이 북한의 도발 원점을 가정한 동해상의 표적을 향해 발사됐다. 2017년 11월 북한의 ICBM ‘화성 15형’ 발사 당시 군이 합동 타격훈련에 나섰을 때보다 미사일 수량도 늘고 전반적인 성능도 향상됐다.
  • ‘흉기난동 부실 대응‘ 경관들 해임불복 소청 기각

    지난해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당시 부실 대응했다가 해임된 전직 경찰관들이 징계 결과에 불복해 소청 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25일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 등에 따르면 인사혁신처 산하 소청심사위원회는 지난해 인천경찰청에서 해임된 A 전 순경과 B 전 경위의 소청 심사를 최근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개인정보여서 심사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심사를 한 뒤 통보도 했다”고 말했다. 소청심사위는 당시 경찰의 징계가 적절하다고 판단해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전 순경과 B 전 경위는 지난해 11월 15일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 때 현장에 출동한 전직 경찰관들이다. 이들은 빌라 4층에 살던 C(49)씨가 3층 4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두를 당시 범행을 제지하지 않거나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한 의혹을 받았다. 40대 여성은 C씨가 휘두른 흉기에 목을 찔려 의식을 잃었고 뇌경색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최근까지도 의식을 찾지 못했다. 그의 남편과 딸도 얼굴과 손 등을 다쳤다. A 전 순경은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해 4개월간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배치된 ‘시보’ 경찰관이었고, B 경위는 2002년 경찰에 입문해 19년간 근무했다. 앞서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A 전 순경 등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피해를 줬다며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 [베스트셀러] ‘불편한 편의점’ 6주째 1위… 복잡한 시기 마음 챙김·인문학 서적도 인기

    [베스트셀러] ‘불편한 편의점’ 6주째 1위… 복잡한 시기 마음 챙김·인문학 서적도 인기

    김호연 작가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 6주째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지켰다. 교보문고의 3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목록에 따르면 ‘불편한 편의점’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지난주와 같이 상위권을 유지했다. 이 밖에도 ‘오십에 읽는 논어’, ‘공간의 미래’ 등 인문 분야 도서들이 종합 베스트셀러에 다수 올랐다. 심리학 서적 ‘마음의 법칙’은 지난주보다 18계단 상승한 종합 8위를 차지했다. 교보문고 측은 “마음의 여유를 찾기 어려운 시기에 책으로 위안을 얻는 독자들의 마음이 엿보인다”면서 “마음 챙김에 대한 이슈가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특히 40대 여성(20.3%)과 30대 여성(16.7%), 40대 남성(13.6%), 50대 남성(11.6%)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3월 셋째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 1. 불편한 편의점 40만부 기념 벚꽃 에디션(김호연/나무옆의자) 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열림원) 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곰출판) 4.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황보름/클레이하우스) 5. 웰씽킹 10만부 기념 한정판 골드 에디션(켈리 최/다산북스) 6. 나에게 고맙다 30만부 기념 전면 개정판(전승환/북로망스) 7. 세븐 테크(김미경/웅진지식하우스) 8. 마음의 법칙(폴커 키츠/포레스트북스) 9. 돈의 심리학 10만부 돌파 기념 골드 에디션(모건 하우절/인플루엔셜) 10.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1. 20주년 특별 기념판 (로버트 기요사키/민음사)
  • ‘흉기난동 부실대응’ 경찰관 2명 해임불복 소청 기각

    지난해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했다가 부실대응으로 인명피해를 초래해 해임됐던 전직 인천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이 징계 결과에 불복해 소청 심사를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25일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 등에 따르면 인사혁신처 산하 소청심사위원회는 A 전 경위와 B 전 순경의 소청 심사를 최근 기각했다. 소청심사위는 “통상 소청심사 결과는 소청인과 피소청인에게만 통보하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이번 사건의 경우 관심이 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설명한다”고 김 의원실에 알렸다. 이어 “당시 (경찰) 징계위 판단이 타당했다고 보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며 “그 외 (구체적인 기각 사유 등) 다른 내용은 관련법상 공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두 전직 경찰관은 지난해 11월 15일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 때 현장에 출동했다. 이들은 빌라 4층에 살던 C(49)씨가 3층 4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두를 당시 범행을 제지하지 않거나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한 의혹을 받았다. C씨가 휘두른 흉기에 목이 찔린 피해 여성은 뇌경색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최근까지도 의식을 찾지 못했다. 그의 남편과 딸도 얼굴과 손 등을 다쳤다. 피해자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18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2002년 경찰에 입문해 19년간 근무했고, B씨는 2020년 12월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해 4개월간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배치된 ‘시보’ 경찰관이었다. 이들은 최근 경찰 조사에서 직무유기 혐의를 부인했다. A씨는 “통상 빌라에 출동을 나가보면 건물 안에서는 무전이 잘 터지지 않는다”며 “(증원 요청을 하려면) 무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왔다”고 진술했다. B씨는 “당시 (피해자가 흉기에 찔린 뒤) 솟구치는 피를 보고 ‘블랙아웃’ 상태가 됐다”며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밝혔다.
  • [달콤한 사이언스] 나이들어 치매 안 걸리려면 중성지방 낮춰라

    [달콤한 사이언스] 나이들어 치매 안 걸리려면 중성지방 낮춰라

    기대 수명이 늘면서 건강한 노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는 암 같은 질병이 노년을 괴롭히는 주요 질병이었지만 최근에는 알츠하이머, 치매가 노인들을 힘겹게 만든다. 과거에는 치매는 나이들면서 나타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30~40대 젊은 층에서도 치매 환자들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조기 진단하고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보스턴대 의대와 공중보건대 소속 의학과, 생리학·생물리학과, 해부학·신경생물학과, 생물통계학과, 신경과, 정신의학과, 역학과, 알츠하이머연구센터 연구진들은 35세 때 혈액 속 고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HDL) 수치와 중성지방 수치가 수 십년 후 알츠하이머 치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나이들어 치매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HDL을 늘리고 중성지방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알츠하이머 및 치매’ 3월 23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1971년부터 시작된 ‘프래이밍햄 심장 연구’(FHS) 참가자 4932명을 대상으로 약 38년 동안 진행된 추적 조사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4년 간격으로 9번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 중 혈당, 혈압, 체지방지수(BMI), 혈액 내 콜레스테롤 수치, 흡연여부 등 요소와 나이들어 알츠하이머 발병과 상관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HDL이 15㎎/㎗ 증가할 때마다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 위험이 초기 중장년기인 35~50세에는 15.4%, 후기 중장년기인 51~60세에는 17.8%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성지방이 15㎎/㎗ 늘 때마다 치매 위험은 35~50세 때는 33%, 51~60세에는 15%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중장년기 혈당과 혈압도 노년기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 위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나쁜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LDL, 총콜레스테롤, BMI는 노년기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과 직접 관련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린제이 파레 보스턴대 의대 교수는 “HDL은 그동안 심혈관 위험인자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30대 때부터 알츠하이머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알츠하이머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는 만큼 중장기적인 건강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 하루 최대 1000명 사망 위기… 치료제 급한데 언제 오나요

    하루 최대 1000명 사망 위기… 치료제 급한데 언제 오나요

    코로나19 사망자가 24일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위중증 환자 역시 보름 넘게 1000명 이상 나오고 있다. 기존 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이 1.5배 강한 스텔스 오미크론(BA.2) 영향으로 신규 확진자 감소세가 상당히 완만할 가능성이 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위중증·사망 발생이 높은 수준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땐 먹는 치료제를 빨리 처방해 중환자를 줄여야 하지만 제때 들여오지 못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사망자는 470명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며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앞으로 1~2주에 일정기간 500~600명대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 영국처럼 갑자기 한 번에 많은 분이 돌아가시면 사망자가 최대 1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망 위험이 큰 위중증 환자 역시 이날 기준 1081명으로, 17일째 네 자릿수다. 통상 위중증·사망자는 확진자 증가 시점으로부터 약 2주 시차를 두고 발생한다. 따라서 지금 코로나19 사망자는 이달 초 하루 20만명대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감염된 이들이다. 30만~40만명대 확진자가 발생하는 현 상황이 반영되면 이달 말쯤 지금의 배에 가까운 위중증·사망자가 쏟아질 수 있다. 방역 당국은 이달 말쯤 위중증 환자가 2000명 내외로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고, 전문가들은 이보다 많은 2500~2700명까지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신규확진자는 39만 5598명으로, 전날보다 줄어 40만명 아래로 떨어졌지만 본격적인 감소세로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국내에 남은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는 6만 1000명분으로, 25일 도착할 추가 도입물량(4만 4000명분)을 더하면 10만 5000명분이다. 이달 셋째 주(13~19일)처럼 하루 평균 5600명분씩 쓰인다고 가정하면 18~19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더 많은 치료제가 필요하지만 각국이 물량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어 추가 도입 일정은 불투명하다. 엄 교수는 “전체 확진자 중 고위험군인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10~12%에 그칠 것으로 보고 한두 달 견딜 치료제 물량을 1차 도입했는데 지금 60세 이상 확진자만 하루에 5만~6만명씩 생기고 있으니 턱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예측 실패,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조차 고려하지 않은 거리두기 완화가 지금의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부터 처방될 라게브리오는 입원·사망 감소 효과가 30%대로 낮은 데다 기형·암 유발 우려가 있어 수용성이 낮을 수 있다. 당국은 ‘60세 이상, 면역저하자, 40대 이상 기저질환자’ 가운데 간·콩팥 질환이 있거나 병용 금기 약물을 복용할 수 없어 팍스로비드를 투여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이 약을 우선 처방할 계획이다.
  • 5년 만에 공개석상 선 박근혜… “좋은 인재 도울 것” 향후 역할 암시

    5년 만에 공개석상 선 박근혜… “좋은 인재 도울 것” 향후 역할 암시

    지난 연말 특별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지병 치료를 끝내고 대구 달성군 자택에 입주하면서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국정농단 수사 악연’으로 얽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언급과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지는 않았지만, 향후 ‘역할’을 암시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32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앞에서 5년 만에 카메라 앞에서 입을 열었다. 건강 상태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많이 회복됐다”며 의료진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2017년 3월 31일 구속 수감된 이후 그의 육성 발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특별사면 배경으로 건강 문제가 언급됐었지만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고, 트레이드마크인 ‘올림머리’와 비슷한 형태로 단정히 빗어 올린 헤어스타일에, 옅은 화장도 한 모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남색 코트를 입고 나왔는데, 2017년 3월 12일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갈 때,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될 때도 같은 차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1분가량 짧은 인사말을 마치고 대기 중이던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거취나 계획이 정해진 것이 있는가’, ‘대구 자택에만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함구했다. 현장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조윤선 전 정무수석, 국무총리를 지낸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 등 옛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이 집결했다. 200여명의 지지자도 모였다.박 전 대통령은 낮 12시 15분쯤 대구 자택에 도착, 남자 어린이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포옹한 뒤 마이크 앞에 섰다. 인사말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40대 후반의 남성이 박 전 대통령 쪽을 향해 소주병을 투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내 경호원들이 박 전 대통령을 에워쌌고 소주병은 박 전 대통령 2m 앞 도로에 떨어져 1m 앞까지 파편이 튀었지만 박 전 대통령이 다치지는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상황이 정리되자 인사말을 이어 갔다. 이 남성은 ‘인혁당 관련 사법살인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택 주변에는 경찰이 통제하는 가운데 5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박 전 대통령의 행보와 관련, 당분간 정치적 행보는 삼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과의 관계 설정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대구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분간 건강 회복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향후 지지 세력을 규합하며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구 자택에 도착해 “좋은 인재들이 저의 고향 대구의 도약을 이루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저의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의 대구 자택에 서일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실장을 보내 자택 방문 의사를 전했다. 윤 당선인은 서 실장을 통해 퇴원 축하 난을 전달하며 “퇴원하시고 사저에 오시길 기다리며 대구·경북 방문을 연기해 왔는데, 건강이 하락하신다면 다음주라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축하 난을 대신 수령한 유 변호사를 통해 “건강을 잘 챙기시길 바란다”는 말을 전해 왔다고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이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2일 삼성서울병원에 김한규 정무비서관을 보내 ‘늘 건강하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난을 보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 수백개 화환·주변 숙박업소 만실… 5000명 열렬한 환영

    수백개 화환·주변 숙박업소 만실… 5000명 열렬한 환영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퇴원 후 대구 달성군 자택에 도착해 지지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자택 주변에는 경찰이 통제하는 가운데 5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손에 풍선과 태극기를 들고 박 전 대통령이 도착하자 열렬히 환영했다. 전국 곳곳에서 전날 도착한 지지자들도 많아 주변 숙박업소들의 방이 꽉 차기도 했다. 환영 화환 수백개가 자택 담벼락과 진입로 입구 등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대형 태극기도 자택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민들과 지지자들은 환영하면서 건강회복을 기원했다. 인근 아파트에 산다는 김모(64)씨는 “이곳에서 머물기로 결정해 줘서 고맙다. 대환영이다. 그동안 많이 외롭고 고생도 했을 덴데 도움이 된다면 살뜰히 보살피겠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왔다는 정모씨는 “친구들과 함께 어제 와 하룻밤을 인근에서 묵었다. 멀리서나마 볼 수 있어서 기쁘다.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자택 앞에는 정치인과 자치단체장 등 중량급 지역 보수인사들이 총출동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강은희 대구시교육감, 김문오 달성군수,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 등이 눈에 띄었다. 자택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남자 어린이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마이크 앞에 서 인사말을 했다. 인사말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40대 후반의 남성이 박 전 대통령 쪽을 향해 소주병을 투척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내 경호원들이 박 전 대통령을 에워쌌고 소주병은 박 전 대통령 2m 앞 도로에 떨어져 1m 앞까지 파편이 튀었다. 이 남성은 ‘인혁당 관련 사법살인’을 당해 소주병을 투척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특수상해 미수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은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대신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자택으로 들어간 뒤 다시 나와 각 언론사를 대표한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대표 기자들의 숫자도 8명에서 5명으로 줄였다.
  • 소주병 날아든 돌발상황…‘손번쩍’ 경호원의 순발력

    소주병 날아든 돌발상황…‘손번쩍’ 경호원의 순발력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대구 달성군 사저에 도착해 대국민 인사말을 시작한지 1분여만에 소주병이 날아드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액체가 들어 있던 소주병은 박 전 대통령 왼쪽 앞 3m 지점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당시 소주병 파편이 박 전 대통령앞 1m까지 튀었으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10여명의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박 전 대통령을 에워쌌으며 소주병을 던진 40대 남성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박 전 대통령 지킨 경호원의 ‘순발력’ 자칫 끔찍한 사태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경호처 경호원들의 빠른 대처가 돋보이던 순간이었다. 특히 경호원 A씨의 발빠른 대처가 눈길을 끌었다.이날 오후, 온라인상에는 한 지지자가 올린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 공유됐다. 영상을 보면 소주병이 날아오기 직전, 전면에 서있던 A경호원이 팔을 번쩍 들어 위험 신호를 보낸다. 그러자 다른 경호원들이 즉각 움직이고, 이때 A경호원은 소주병이 깨져 파편이 튀는 것을 발로 막는다. 이후 곧바로 추가 위험을 막기 위해 몸으로 박 전 대통령을 감싸는 모습이다. 해당 장면을 접한 시민들은 “대단하다”, “순발력 칭찬해”, “엄지척”, “경호원의 센스가 더 큰 사고를 막았다”등 반응을 보였다. 약 2분간 놀란 가슴을 추스린 박 전 대통령은 다시 발언을 이어간 뒤 인사하고 사저로 들어갔다. 소주병을 던진 B씨는 박 전 대통령이 사저에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 경찰들이 설치해둔 취재진 대기구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박근혜 사저 소주병 투척자, 인혁당 사건과 무관” 경찰 조사에서 B씨는 자신이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 희생자 추모기관인 4·9통일평화재단은 B씨에 대해 “사건 피해자들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날 4·9재단은 “1975년 4월 8일에 형이 확정된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는 사형수 8인을 비롯해 총 25명”이라며 “당사자들 또는 당사자의 배우자들은 현재 모두 70세를 넘긴 고령이고 자녀·손자녀들 중에도 B씨와 같은 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B씨가 활동하고 있다는 ‘HR_인민혁명당’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과는 전혀 무관한 곳”이라고 밝혔다.
  • [속보]“박근혜 사저 소주병 투척자, 인혁당 사건과 무관”

    [속보]“박근혜 사저 소주병 투척자, 인혁당 사건과 무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인혁당 사건) 희생자 추모기관인 4·9통일평화재단은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소주병을 투척한 40대 남성 A씨에 대해 “사건 피해자들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인혁당 사건은 북한 지령을 받아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민청학련을 조종하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8명이 사형을 당하고 17명이 실형을 선고받은 대표적 공안 조작 사건이다.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족들은 2002년 법원에 재심 신청을 하고 2007∼2008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4·9재단은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의 유가족 등이 출연한 기금으로 2008년 설립됐다. 이날 4·9재단은 “1975년 4월 8일에 형이 확정된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는 사형수 8인을 비롯해 총 25명”이라며 “당사자들 또는 당사자의 배우자들은 현재 모두 70세를 넘긴 고령이고 자녀·손자녀들 중에도 A씨와 같은 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A씨가 활동하고 있다는 ‘HR_인민혁명당’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선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과는 전혀 무관한 곳”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족들의 동의 없이 인혁당 사형수 8인의 사진을 게시해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이에 대한 시정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A씨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사저에 도착해 대국민 인사말을 시작한 지 1분여 만에 소주병을 던져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인혁당 사건 피해자라고 주장했고 ‘인민혁명당에 가입해달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박근혜 전 대통령 “5년 만에 인사…국민 덕에 건강회복”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삼성 서울병원에서 퇴원하면서 “국민께 5년 만에 인사를 드리게 됐다. 염려해 주셔서 건강이 많이 회복됐다”고 밝혔다. 이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 묘역을 참배한 후 대구 사저로 향했다. 그는 오후 12시20분쯤 대구 달성군 유가읍 사저 앞에 도착해 “오랜만에 여러분께 인사를 드린다. 힘들 때마다 저의 정치적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인 달성군으로 돌아갈 날만을 생각하며 견뎌냈다”고 전했다. 이어 “제가 많이 부족했고 실망을 드렸음에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서 따뜻하게 저를 맞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한편 이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에게 퇴원 축하 난을 전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님의 건강이 회복되시길 바란다. 퇴원하시고 사저에 오시길 기다리며 대구 경북 방문을 연기해 왔는데, 건강이 허락하신다면 다음 주라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박 전 대통령에게 ‘늘 건강하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퇴원 축하 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