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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전국법관회의 사법부 미래의 초석 돼야

    대법원이 다음달 중 전국법관회의를 열기로 했다. 2003년 4차 사법파동 이후 6년 만이다. 신영철 대법관이 불러일으킨 촛불사건 재판 개입 논란 이후의 위기 의식과 함께 사법부가 거듭나야 한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평가한다. 전국법관회의 참석 인사는 80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법원도 밝혔듯이 법관회의는 각급 법원을 대표하는 판사들이 참석해 사법부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다. 법원별로 대표성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가감 없이 법원의 의견을 전달하되 국민의 뜻도 제대로 헤아려야 할 것이다.법관회의의 논의의 핵심사항은 기왕에도 지적되었지만 법관의 독립과 법원 조직의 지나친 관료화 해소일 것이다. 신 대법관이 중앙지법원장 시절에 재판에 관여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법원을 관료 조직처럼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사법행정권을 내세워 촛불사건을 몰아주기 식으로 배당하고 재판 진행을 독촉하는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판사들은 인사를 앞둔 시점에서 근무성적평정권을 갖고 있는 법원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법원이 신 대법관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하면서 밝혔지만, 앞으로 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은 법관의 독립을 위해 제한적으로 행사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신 대법관의 거취에 대해서도 다시 의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이제 신 대법관으로 촉발된 재판 개입 의혹이 마무리되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일선 판사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고 일부 국민 역시 불신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사법부 독립과 신뢰 회복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진솔한 자성과 개혁으로 사법부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져야 한다.
  • [서울광장] 지금은 고용의 질보다 양이다/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지금은 고용의 질보다 양이다/우득정 논설위원

    일자리에 비상이 걸렸다.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하루 15개 기업이 문을 닫는다.기업의 투자 위축과 보수적인 인력운용으로 신규 채용 여력은 크게 줄어들었다.내년 상반기에는 전례없는 ‘고용빙하기’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한국은행은 지난 10월과 11월 10만개 이하로 떨어진 일자리 창출 규모가 내년 상반기에는 마이너스 4만개로 곤두박질할 것으로 추정한다.정부가 ‘신빈곤층’ 양산을 막기 위해 고용유지 지원금과 근로시간 단축지원금,대체인력채용 장려금 등을 대폭 확대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비관적인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경기침체의 충격은 영세 자영업자와 임시·일용직 등 저소득층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몬다.1년새 자영업주와 무급가족종사자 16만 4000명,임시·일용직 15만 9000명이 일자리를 잃은 데서 확인된다.경기침체 골이 깊어지면 중소사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 정규직도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한다.그래서 정부와 재계는 고통분담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고용위기를 타개하려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의 조찬회동에서 “금융기관과 공기업에서 고임금을 받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삭감토록 해 그 여유분으로 일자리를 잃은 분들,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을 위해 일자리를 나누는 정책을 시도할 것”이라면서 과도한 근로보장,여러 불필요한 조건들에 대한 개혁의 고삐를 죌 때라고 강조했다.정부가 그제 발표한 ‘4차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에서 69개 공공기관 총 정원의 13%에 해당하는 1만 9000명의 감원계획을 제시하면서 “임금을 줄여 일자리를 유지하면 구조조정한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에 앞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경기가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서는 안 된다.”면서 “그래야 나중에 성장의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삼성그룹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고,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경제위기 상황이 끝났을 때에 대비해 경영계획을 짜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외환위기 때 감원으로 대응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고용한파로 신빈곤층이 쏟아져 기존의 빈곤층과 합세하면 ‘촛불정국’ 못지않은 사회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감지된다.이 대통령이 신빈곤층 대책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외환위기 때에도 실업자가 170만명을 웃돌자 ‘200만명을 넘어서면 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10조원에 가까운 실업대책 재원을 쏟아부은 바 있다.인력 구조조정은 살아남은 자에게도 씻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는 ‘학습효과’도 작용한 듯하다. 청년 인턴 10만명 채용이나 대규모 토건사업,비정규직 사용기간 확대 등을 ‘비정규직 양산’‘고용조건 후퇴’라고 비판한다.소중한 자원을 성장잠재력 확충과 공급능력 확대 등 경제체질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맞는 말이다.하지만 지금은 비상국면이다.고용의 질을 따지기엔 일자리 증발속도가 너무 가파르다.사실상 ‘백수’가 317만명이나 된다.게다가 일자리를 만들어낼 정책수단도 마땅치 않다.따라서 불황의 터널을 건널 때까지는 원칙을 벗어난 대응도 용인해야 한다.주요 선진국들도 위기 타개를 위해 시장 룰을 뛰어넘고 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금속노조 산별교섭 ‘절반의 실패’

    금속노조의 핵심인 현대차 지부가 금속노조의 방침에서 이탈하면서 4개월 동안 끌어온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절반의 성공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금속노조 측은 현대차지부가 11일부터 지부교섭(임금협상)에 돌입하기로 한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현대차 지부가 금속노조로부터 중앙교섭안 승인을 받지 않고 지부교섭에 나서는 것은 ‘중앙 교섭 타결 없이는 지부교섭 타결도 없다.’는 금속노조의 방침을 어기는 것이다. 현대차 지부의 지부교섭은 조만간 타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시작돼 사실상 막바지 단계에 있는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금속산업 최저임금 월 95만원과 통상시급 4080원 가운데 높은 금액을 적용키로 하고, 노동시간 단축과 교대제 개선 등에 합의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막판 현대차지부 노조원들의 반발로 노노갈등 우려와 함께 산하 최대규모의 조직이자 주력 부대인 현대차노조원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금속노조 측은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의 갈등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으나 실제 노조원들은 금속노조 홈페이지 등에 중앙교섭을 비난하는 현대차 지부 노조원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노동계 관계자는 “금속노조는 올해가 현대차지부 등 완성차 4사가 모두 참여한 첫번째 산별교섭이었음에도 이들을 협상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실패, 대각선 교섭이라는 변형된 형태에 그쳤다.”고 진단했다. 금속노조 지도부는 산별교섭 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불거지자 4차례에 걸친 부분 파업을 했다. 근로조건과 관련 없는 불법파업으로 간주돼 정갑득 위원장 등 지도부 6명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노동계 관계자는 “산별교섭이 장기화하면서 사업장 노조원들로부터 중앙교섭이 외면받는 형국이 됐다.”면서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현장 노조원들과 사측을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고 말했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양심선언’ 이길준 이경 구속

    서울 북부지방법원은 7일 촛불집회 진압이 양심에 반한다는 이유로 근무지를 이탈한 채 전·의경 제도 폐지를 촉구하며 신월동 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던 중랑경찰서 소속 이길준 이경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이 이경이 부대에 복귀한 뒤에도 시위진압 출동 명령을 4차례 거부한 점 등으로 미뤄 재범과 도주 우려가 있어 구속영장을 발부한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지난 6월29일 촛불집회에서 20대 여성이 전경에게 폭행당한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를 징계하고 감독자에게는 지휘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7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A수경이 피해 여성을 발로 밟은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영창 5일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촛불 100일 (中) ] 진화하는 집회 문화

    [촛불 100일 (中) ] 진화하는 집회 문화

    촛불집회는 인터넷이 사회적 네트워크의 중요한 플랫폼으로서 우리 일상에서 역동적인 소통공간이 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인터넷을 통해 개인과 집단간의 소통이 빨라지고 다양해졌으며, 이는 시민 참여 방식 자체를 크게 바꿔 놓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새로운 집회 문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IT(정보통신) 기술을 꼽았다. 집회 현장의 시민들은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노트북, 와이브로(wibro)와 같은 무선 인터넷 기술로 중무장했다. 이로 인해 국내의 집회 상황이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해외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리는 계기가 됐다. ●‘e-민주주의’ 가능성 열어 촛불집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직접 여론을 형성하고 확산시켰다. 촛불집회를 통해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시민들이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보도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공동기획취재팀이 조사한 결과, 촛불이 점차 거세진 5월25일∼6월10일 개인방송 인터넷 사이트인 ‘아프리카’에서 생중계된 촛불집회의 누적 방송 개수가 1만 7222개, 누적 시청자 수는 775만명이었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명이라고 보면 15.5%에 달하는 숫자다. ‘아프리카’에서 촛불을 주제로 생방송을 했던 BJ(인터넷방송 진행자)들도 425명이었다. 포털사이트 생중계나 블로그,UCC 등에 문자가 게시글로 중계되는 것까지 합치면 대략 수천명의 시민 기자들이 집회 현장을 뛰어다닌 셈이다. 이들은 동영상, 댓글을 통해 인터넷 여론을 형성하는 데 앞장섰다.6월1일 ‘여대생 군홧발 동영상’은 촛불을 재점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아프리카’ 시청자 수는 127만명을 기록했다.6월7일 72시간 연속집회,10일의 100만 대행진도 각각 56만명,70만명이 시청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IT기술의 발전을 발판삼아 기존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이 반영돼 나타난 것”이라면서 “그러나 전문화된 기자가 아닌 탓에 편향적 시각, 감성적 이슈 주력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트리트 저널리즘 편향적 시각등 부작용 낳아 사이버 커뮤니티는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생산한 정보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인 ‘마이클럽’과 ‘DVD 프라임’ 등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 집회 참석을 이끌어낸 사이버 커뮤니티는 총 20여곳에 달한다. 마이클럽의 ‘종알종알 연예계’ 게시판은 연예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지만 27일 현재 이곳에서 ‘촛불’이란 단어로 검색을 하면 1만 2740개의 글이,‘광우병’으로는 6949개의 글이 검색된다. 요리 커뮤니티인 ‘82cook.com’사이트의 자유게시판 방문자 수를 보면 4월에 평균 2만∼3만명에 불과했던 것이 5월과 6월을 거치며 최대 22만명으로 급증한다.5월부터 게재되는 글의 90% 이상은 광우병과 촛불집회와 관련돼 있다. 또 회원들은 6월22일 커뮤니티 단독으로 100여명이 거리행진을 하면서 언론사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인터넷 통해 전세계 교민·유학생으로 확산 촛불집회는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전세계 교민과 유학생들로 퍼져나갔다.6월1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텍사스대학 교정에서 촛불집회가 열린 데 이어 6월7일 뉴욕,6월11∼12일 미시간주 미시간 대학에서 촛불이 등장했다. 또 프랑스 파리(6월1일), 독일 베를린(6월1일·7일)·프랑크푸르트(6월7일), 호주 시드니(6월7일), 영국 런던(6월7일), 뉴질랜드 오클랜드(6월1일)에서 각각 촛불집회가 열렸다. 재미교포들은 성금을 모아 국내 일간지에 지지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조희정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이번에 나타난 촛불 네트워크의 연계성과 확산성은 기존 미디어와는 다른 속도의 차이를 확인해줬다.”면서 “이런 속도와 촘촘한 네트워크가 촛불 집회의 실질적인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원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촛불집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뛰어넘는 컨버전스(융합) 시대의 새로운 시민참여 사례”라고 말했다. 류석진 서강대 교수는 “약한 연대에 바탕을 둔 네트워크형 사이버 커뮤니티의 등장은 향후 새로운 직접 ‘e-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공동기획취재팀 ■ 네이버와 다음 어떻게 달랐나 21일 시청… 31일 3시 경복궁… ‘다음’ 시간관련 검색어 자주 등장 촛불집회 기간동안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이용자와 다음 이용자 는 미묘한 차이를 드러냈다. 촛불집회와 관련된 검색어 총량에 있어서는 네이버가 많았지만 특정 검색어에 대한 검색 기간은 다음이 길게 나타났다. 무엇보다 네이버 검색어가 단어 중심인데 반해 다음은 문장 중심이어서 네이버보다 검색어 길이가 길었다. 다음에서 ‘주저앉은 소’,‘공영방송 힘내세요.’,‘세종로 모래 부족’ ‘폭력 경찰 물러가라’ 등 문장 중심의 검색어들이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또 다음에는 시간 관련 검색어가 많이 등장했다.‘21일 시청’ ‘22일 촛불시위’ 뿐 아니라 ‘3시 경복궁’ ‘오늘 3시 경복궁’ 등 시간 관련 검색어가 매우 자주 나타났다. 이는 실시간 집회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의 정보를 이용하는 경향을 반영한다. 검색어의 총량과 분포를 보더라도 네이버는 주요 촛불집회를 전후로 매우 높게 집중적으로 검색어가 분포돼 있는 반면, 다음은 꾸준히 관련 검색어가 랭크돼 있고 기간도 네이버보다 15일 정도 길다. 검색어 순위 가운데 촛불집회 관련 검색어가 1위를 한 경우를 조사한 결과, 네이버는 ‘김밥할머니 폭행’ ‘여고생 실명’ ‘여중생 폭행’ ‘서강대녀’ ‘광우병 시위’ ‘김지하’ 등이 1위를 한 적이 있는 검색어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다음은 ‘어느 의경의 눈물’ ‘정선희 사퇴’ ‘서강대녀’ ‘82쿡 닷컴’ 등이 1위를 했다. 특히 ‘서강대녀’가 두 곳에서 모두 1위를 한 검색어라는 점이 특이하고 촛불집회에서 압도적으로 인기를 받은 ‘고려대녀’의 순위는 모두 낮게 나타났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공동기획취재팀 ■ 문자·인터넷 등 네트워크형 운동 업그레이드 시대마다 달라진 촛불 1980년대가 민주화운동의 시대라면 2000년대는 촛불운동의 시대다. 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는 2002년 효순·미선 촛불집회와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과거 촛불집회가 진보단체와 대학생들에 의해 주도된 반면 광우병 촛불집회의 선도세력은 중·고생이었다는 점이다. 2002년 촛불집회에서는 ‘지도부’가 집회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깃발이 시위대 중앙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8년에 이르러 촛불은 과거 경험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다. 촛불집회는 온라인 발전과 연동하면서 진화를 거듭했다.2002년 촛불집회는 당시로서는 과연 얼마나 모일지도 의문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인 실험이었지만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까지 이끌어냈다. 2004년 촛불집회는 전형적인 정치운동에서 출발했다. 인터넷 게시판 토론과 퍼나르기 등 네트워크 확산형 운동이 등장했다. 인터넷 패러디가 인기를 끌면서 유희적인 정치참여문화도 나타났다. 2008년 촛불집회는 한층 복합적이다. 초기에 쇠고기 수입반대와 재협상이라는 정책반대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정권반대운동 성격도 갖게 됐다.2008년 촛불집회는 지도부의 역할이 제한적인 수평적인 네트워크 운동이다. 인터넷 토론으로 방향을 정하고 집회현장은 축제 분위기로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1980년대 쇠파이프와 화염병,‘지랄탄’으로 뒤덮였던 ‘거리’를 대체했다는 것과 비장함이 지배하던 엄숙한 집회를 축제의 장으로 바꿨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촛불 참가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능동적인 존재”라면서 “집회를 축제와 소통의 공간, 민주주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바로 이 대목이 촛불의 진화가 어떻게 계속될지, 그리고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주목해야 할 이유”라고 덧붙였다. 공동기획취재팀 ■ 최다 클릭인물 1위 이명박 대통령 2위 진중권 교수·3위 정선희씨 4위 정운천·나경원·김밥 할머니 촛불집회는 각종 사건 사고와 무수한 말들로 넘쳐났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를 통해 촛불집회 기간 동안 주목을 받았던 인물들과 사건을 알아봤다. 공동기획취재팀이 5월1일∼6월22일 53일간 인터넷 포털사이트 종합검색어 순위 30개 가운데 촛불집회와 관련된 검색어만 추출해 조사한 결과, 인물 검색어 순위는 이명박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53일간 검색어 순위에 총 24차례 등장했다. 이는 4월6일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대통령 탄핵 청원,6월6일 ‘촛불집회 배후’ 발언 논란,6월19일 특별기자회견 등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여론의 추이를 움직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위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로 총 5차례 등장했다. 진 교수는 진보신당의 인터넷 생중계 ‘칼라TV’의 진행을 맡아 현장을 누비면서 누리꾼들의 주목을 받았다. 집회 현장에서 보수단체 회원에게 뭇매를 맞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3위는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촛불집회 관련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라 자진 하차까지 했던 개그우먼 정선희씨가,4위는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과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집회현장에서 노점상 단속직원에게 폭행을 당한 ‘김밥할머니’가 동시에 올랐다. 5위는 ‘촛불집회는 천민민주주의’, 출국금지당한 누리꾼은 조폭이나 횡령배’등의 발언을 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차지했다. 이 외에도 아내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진이 인터넷에 퍼진 탤런트 김뢰하씨,MBC ‘100분토론’에 출연해 화제가 된 ‘서강대녀’,‘고대녀’ 등의 인물이 5위를 차지했다. 최다 검색어 순위를 보면 1위는 이명박 대통령으로 관련 검색어가 24건에 달해 가장 많았다. 이 대통령은 전체 검색어의 21%를 차지했다.2위는 촛불 관련 검색어(16건)로, 구체적으로는 ‘촛불집회’,‘촛불집회 생중계’,‘아프리카 TV’,‘여중생 폭행’ 등이었다. 또 3위는 ‘광우병 증상’ 등 광우병 관련 검색어(10건)였다.4위는 ‘100분 토론’(7건)이 차지했다.100분 토론은 촛불집회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검색된 것이 특이했다.5위는 ‘진중권’(5건)이었다. 조희정 상임연구원은 “온라인에서는 주로 대규모 오프라인 집회기간에 맞춰 누리꾼들의 관심도가 높아졌고, 일상적인 관심보다는 언론 보도가 있거나 주요 사건이 일어난 경우에만 관심도가 급상승했다.”고 덧붙였다. 공동기획취재팀
  • [李대통령 특별회견] 단순 사과보다 진정성 전달 노력

    [李대통령 특별회견] 단순 사과보다 진정성 전달 노력

    19일 한 달만에 다시 국민 앞에 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국민 담화 때보다 한층 겸손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의 표정에는 절박함이 묻어났고 목소리에서는 힘을 뺀 게 느껴졌다. 대국민 담화 때에는 웅변하는 듯한 톤이었다면, 이번에는 천천히 호소하듯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국민과 소통하려 브리핑룸서 회견 이날 기자회견은 원래 영빈관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원탁에서 기자 6명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아침 대국민 담화 대신 특별기자회견으로 이름을 바꾸고 장소도 춘추관 브리핑룸으로 옮겨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받고 같이 소통하고자 하는 뜻에서 특별기자회견으로 이름을 바꿨다.”면서 “보다 열린 공간에서 소통하기 위해 장소도 브리핑룸으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견문의 내용에서도 논리로 설득하기보다는 감성적으로 접근한 흔적이 엿보였다. 회견문은 기자 출신인 김두우 정무2비서관이 초안을 잡고 이 대통령과 대통령실장, 정무수석, 대변인 등이 감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대통령이 ‘아침이슬’ 노래를 언급하며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 행렬을 바라보며…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는 부분은 이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아침이슬’은 평소 이 대통령이 애창곡으로 꼽는 노래다. 기자회견문은 기자회견 약 30분 전에 전직 총리를 비롯한 사회지도층과 한국노총, 민주노총,7대 종단 지도자, 경제5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에 직접 전달됐다. ●“쇠고기 협상과 무관”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된 원고에는 ‘사과’ 대신 ‘뼈저린 반성’이라는 표현만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단순히 사과한다는 표현보다는 좀 더 진정성을 담아 국민들에게 뜻을 전달하기에는 ‘뼈저린 반성’이 깊이와 무게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이 대통령이 읽은 원고에는 ‘사과’라는 표현도 있었다. 즉석에서 이 대통령이 넣은 것이다. 당초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면 이 대통령이 직접 협상 결과를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요청하는 형식의 기자회견이 될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이날 쇠고기 4차 협상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났지만 기자회견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협상이 막바지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진솔하게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협상 결과와 연동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인터넷 독” 발언 해명 이 대통령은 최근 정부의 인터넷 통제 논란을 불러일으킨 “신뢰 없는 인터넷은 독”이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해명을 했다. 이 대통령은 “인터넷 선진국가로서 ‘사이버 시대에 신뢰가 없으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신뢰 구축을 위해 국가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말”이라면서 “어떤 경우에도 부당하게 인터넷을 통제한다든가 하는 구시대적 발상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서는 “차주들의 ‘생계형 투쟁’으로 이해한다.”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반적인 물류체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물류대란 ‘비상’]컨테이너 4·5층으로…10일뒤면 마비

    [물류대란 ‘비상’]컨테이너 4·5층으로…10일뒤면 마비

    “컨테이너 야적장이 포화 상태여서 최대 열흘 정도 버티겠지만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5년전과 같은 물류대란까진 가지 말아야 하는데….”(부산 감만부두 간부) 화물연대 부산지부가 13일 오후 2시 감만동 신선대부두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가진 부산항에는 하루종일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파업 첫날이기 때문인지 과격한 행위 등 우려되는 움직임은 없었다. 쌓여있는 육중한 컨테이너 모습만이 향후 파업과정에서의 ‘험난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산항은 전국 컨테이너 물동량의 75%를 처리하는 곳이어서 파업이 장기화하면 가장 먼저 피해가 예상돼 파업 향배가 주목되는 곳이다. 지난 2003년 화물연대 파업때는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파업 출정식은 조합원들이 “유가 인하”,“운송료 인상”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작됐다. 오전부터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사이 도로에는 컨테이너 차량 100여대가 시위하듯 늘어서 파업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부두의 주요 도로인 남구 우암로 4차선 도로에는 화물차량도 눈에 띄지 않았다. 부산항을 오가는 컨테이너 차량은 3081대로 이 가운데 화물연대 가입차량은 3분의1가량인 960여대로 파악되고 있다. 전창갑 화물연대 부산지부장은 “전 근대적인 물류체계를 개혁하고 화물운송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마지막까지 대화를 통한 해결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협상 결렬로 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출정식을 마친 이들은 신선대·감만부두 주변에서 가두시위를 한 뒤 오후 7시 서면 쥬디스 태화백화점 옆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예상대로 자발적 참가자와 비조합원이 많았다. 비조합원인 김모(58)씨는 “2003년 첫 파업때에는 동참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여서 적극적으로 파업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산항 부두 운영선사들은 파업이 시작되자 “올 것이 왔다.”며 화물연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이번 파업은 2003년과 2006년 때의 파업과 달리 노조원들의 조직적 파업에다 비노조원이 가세하는 생계형 파업이어서 피해 규모와 파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부산항 관계자들은 “부산항 마비 등 전국적 물류대란은 예전의 ‘7∼10일’에서 ‘3일’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를 반영하듯 부산항에는 평소보다 반입·반출 물량이 크게 줄었고 야적장에 설치돼 있는 대형 트랜스퍼 크레인(컨테이너를 적정 위치에 놓아주는 크레인) 가동률도 10%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이날도 부두마다 빈공간(야적장)을 확보하려고 반출 물량을 늘리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현재 부산 북항 13개 부두(컨테이너 전용터미널 5개, 일반부두 8개)의 장치율은 평소의 60∼90%로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더 이상 컨테이너를 쌓아둘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부두 야적장에는 컨테이너 화물이 최고치인 4단까지 켜켜이 쌓였다. 하루 6000∼7000개의 수출입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감만부두는 파업에 대비해 지난 10일부터 평소보다 10∼20% 반출 물량을 높였으나 이날은 거의 정지된 상태였다. 감만부두 강현구 소장은 “현재 컨테이너 야적장이 포화상태에 가까운 60%로 적정 수준인 50%를 넘어섰다.(파업으로 화물이 반출되지 않을 경우) 최대 열흘 정도 버틸 수 있으나 그 이상은 무리”라며 물류대란을 걱정했다. 부산시 등은 이번 총파업으로 컨테이너 화물의 하루평균 수송 차질은 평상시의 20%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산시 관계자는 “파업이 장기화되고 비조합원들의 참여가 늘어나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독일의 정상회담 과정·성과

    [2007 남북정상회담] 독일의 정상회담 과정·성과

    |파리 이종수특파원|‘6차례 정상회담 하고 나니 통일이 이뤄졌다?´ 독일 통일 전 6차례 이뤄진 옛 동·서독의 정상회담은 통일의 물꼬를 트고 마무리를 지은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신동방 정책’으로 촉발된 화해의 움직임은 1970년 두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관계 정상화의 토대를 놓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전환기적 사건 이후 통일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두 차례 정상회담을 열면서 동·서독은 통일로 나아갔다. 이런 공식적 정상 회담 외에도 동·서독 정상들은 80년대 3차례의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장례식 참석을 징검다리로 해서 비공식 접촉을 이어가면서 ‘통일 염원’의 터를 다져나갔다. ●1차 입장차 확인·2차 공동성명 없이 막내려 1969년 10월 브란트 총리는 취임 연설에서 “동·서독 관계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동독측에 협상을 제안했다. 콘라드 아데나워 전 총리의 ‘단일 국가’ 원칙에서 벗어나 한층 유연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발터 울브리히트 동독 평의회장이 정상 회담을 제안하고 브란트는 수락의사를 표명했다. 이어 양측은 4차례의 실무회담을 거쳐 입장을 조율했다. 1970년 3월 첫 만남은 양측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쳤다. 두 정상은 3개월 뒤 서독 카셀에서 2차회담을 갖기로 하고 간단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2차 정상회담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서독은 여전히 동독을 국제법상 국가로는 인정하지 않았다.2차회담은 공동성명 없이 막을 내렸다. 베르너 페니히 전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빌리 스토프 총리가 실질적 권한이 없었기에 상징적 정상회담이었다.”며 “엄밀한 의미에서 실질적 권한을 지닌 정상간 회담은 4차 정상회담 한번뿐이었다.”고 설명했다. ●3차 협력 합의·4차 경협 강화 한번 트인 물꼬는 3·4차 회담을 통해 다져졌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폴란드 노조 사태 등으로 신냉전 기운이 고조됐다. 안보 위협을 느낀 동·서독은 양자 관계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서독의 슈미트 콜·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총리는 1981년 12월 동베를린 인근 도엘렌세에서 3차 정상회담을 갖고 긴장완화 및 유럽평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장관급 회담을 통해 ▲청소년·체육·학술·문화·언론 분야 교류 ▲여행·방문 조건 완화 ▲무역·경제·기술 협력 확대 ▲각료급 상호방문 등 실질적인 관계 개선의 터전을 닦았다. 4차 회담은 1987년 9월에 열렸다. 서독 여행자의 동독 검문소 고문 치사 사건과 공산권의 맹주인 소련의 견제 정책 등으로 동·서 관계는 한동안 멀어졌다. 그러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등장으로 화해 분위기가 높아졌다. 콘스탄틴 체르넨코 소련 공산당 서기장 장례식장에서 비공식적으로 만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한 동·서독 정상은 4차 정상 회담에서 ‘원자력안전을 위한 정보·경험 교환협정’ 등 3개 협정에 서명했다.4차 회담으로 경협 강화와 인적교류 확대, 정치적 접촉 강화 등 양측 관계는 실질적으로 밀접해졌다는 평가다. ●5·6차 통일문제 공식 논의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동·서독의 통일 분위기는 고조됐다.5·6차 정상회담은 공식적으로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두 차례 회담에서 양측은 ▲경제·환경·교통·통신분야 공동협력 ▲여행 자유화 ▲경제공동체 형성 등에 합의했다. 이어 화폐 통합과 경제공동체 구성을 위한 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 페니히 전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유럽에서 독일 통일은 힘들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 이었다.”면서 “주요 전환점은 미·소 관계 등 국제정세 변화와 동독 라이프치히 촛불 시위 등 평화혁명 등이었다.”고 지적했다.5·6차 정상회담은 이런 상황속에서 마침표를 찍는 작업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vielee@seoul.co.kr
  • 反FTA 또 도로점거 교통마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경찰의 집회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6일 ‘FTA반대 제3차 총궐기 대회’를 강행했다. 큰 충돌이나 폭력사태는 빚어지지 않았지만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들로 이날 서울 도심 퇴근길은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범국본의 집회는 이날 오후 3시30분부터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앞에서 열렸다. 앞서 열린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법 통과 규탄대회’가 끝나자 곧바로 이어졌다. 민노당의 집회는 경찰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민노당원은 물론 범국본 시위 참가자들도 경찰의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마로니에 공원 앞 4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FTA협상이 망국적이고 굴욕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미국의 협박이 상식을 넘어선 지금 협상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20분쯤 대학로 집회를 마치고 지하철 등을 이용해 각각 흩어졌다. 개별적으로 해산한 시위대는 오후 5시가 지나 을지로와 충무로, 퇴계로 등에 각각 1000여명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모두 명동성당 방면으로 행진하면서 진행방향 도로를 완전 점거했다. 도로 점거는 퇴근 시간대까지 이어지면서 서울 도심의 교통은 극심한 정체현상을 보였다. 시위대는 명동역 앞에서 경찰과 20∼30분 대치한 뒤 모두 명동성당으로 이동해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촛불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명동역 앞 대치과정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가한 28명을 연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퇴근 시간 도심 도로를 불법 점거하도록 한 범국본 지도부에 대해 법적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농민들의 상경 집회 등을 막기 위해 전국 고속도로 13곳과 주요 간선도로 등 1070곳에 경찰 177개 중대 2만여명을 배치했다. 이 과정에 불법시위용품 13종 316점을 회수했고,2100여명의 상경을 저지했다고 밝혔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FTA 반대” 뜨거운 제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4차 협상은 대규모 한·미 FTA 반대 시위가 예고돼 있는 가운데 제주 서귀포시 중문단지 내 제주신라호텔에서 철통 같은 경비 속에 23일 개막됐다. 한·미 양국 협상단은 협상이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협상에 임했다.●충돌현장 큰 불상사는 없어한·미 FTA 4차 협상이 시작된 이날 제주에서는 FTA 반대 시위대와 경찰이 곳곳에서 충돌을 빚었지만 큰 불상사는 없었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입구에서 농민 등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한때 협상장인 제주 신라호텔 진입을 시도,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는 돌멩이를 던지거나 도로표지판 등을 휘둘렀고, 경찰도 방패와 곤봉으로 맞섰으나 큰 불상사는 없었다. 또 제주도내 어민들은 어선 40여척을 동원해 중문관광단지 앞 바다에서 해상시위를 벌였고,FTA반대 시위대는 밤 늦도록 제주컨벤션센터 부근 등에서 촛불집회를 가졌다. 경찰이 폭력시위 방지 등을 위해 중문관광단지를 봉쇄하면서 제주의 최대관광지인 중문관광단지는 이날부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경찰은 협상장인 중문관광단지 입구에 방파제 축조용 삼발이까지 동원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관광객은 물론 일반인 차량을 전면 통제했다. 한편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를 만나 제주 감귤산업의 영세성 등을 설명하고 오렌지 등 감귤류를 한·미 FTA 협상품목에서 제외해줄 것을 건의했다. 커틀러 수석대표는 김 지사의 말을 통역을 거쳐 전해들으면서 간혹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나 특별한 대답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양국 적극적 내용 수정안 못내놔한국과 미국 협상단은 협상이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12월 협상 전까지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했으나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협상 개막과 함께 오전 9시쯤 10여분간 공개된 전체회의 포토세션에서 양측 수석대표는 “이번 협상을 통해 협상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짤막한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소감과는 달리 첫날 협상을 마치고 나온 우리측 협상 대표들은 하나같이 “어렵다.”는 말로 협상에 별 진척이 없음을 시사했다. 양측이 모두 기대에 못미치는 수정안을 제시한 것은 4차 협상을 앞두고 터진 북한 핵 실험과 다음달 미국 중간선거 등으로 양국 협상단 모두 적극적인 내용의 수정안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서귀포 김균미·황경근기자kmkim@seoul.co.kr
  • 점점 거세지는 ‘등투’

    등록금 인상 문제를 둘러싼 대학과 학생들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물리력을 동원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건국대 총학생회는 23일 오후 7시 서울 자양동 캠퍼스 본관 앞에서 10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한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날 오전 열린 4차 등록금협의회에서 대학측이 제시한 6.4%의 인상률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건대 최종훈(26·경영정보학과 4년) 총학생회장은 “지난해 물가인상률 3.0%의 두배가 넘는 수치”라면서 “설 연휴가 지난 뒤 매주 한 차례 촛불집회를 열어 동결 수준의 인상안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한양대측은 20일 3차 등록금협의회에서 총학생회에 등록금 9.3% 인상안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총학생회측은 지난해 5.09% 인상에 비해 높은 수준인 데다 2005년 결산안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측이 무리하게 인상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양대 신재웅(23·정치외교학과 3년) 총학생회장은 “학교측에서 재단전입금을 늘리는 데는 소극적이면서 학생들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면서 “협상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야겠지만 물가인상률을 마지노선으로 정해두고 필요하면 실력 저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7일까지 3차 등록금협의회를 가지며 6.8% 인상안을 밝힌 이화여대에서도 학교측과 학생들이 충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지난해 1년 평균 등록금이 800만원대로 이대로 두면 곧 1000만원대까지 치솟을 것”이라면서 “학생들의 분노 상태로 봐서는 실력 저지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4일 등록금협의회에서 학교측이 각각 8.29%와 12.0% 인상안을 밝히면서 20일 동안 협상이 결렬되고 있는 서강대와 연세대도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 서강대 총학생회측은 24일 낮 12시 학교 본관 앞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운동에 나선다. 서강대 조수경(23·정치외교학과 4년) 총학생회장은 “4.36%까지 물러서서 학교측에 협상을 제시했지만 묵묵부답이라 동결을 요구하는 투쟁을 진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세대 학생회도 23일 현재 2600여명의 학생들에게 ‘인상 반대’ 서명을 받으며 본격적인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연세대 이성호(22·사회학과 4년) 총학생회장은 “2월 중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촛불집회 형식으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경찰 폭력추방’ 150곳서 촛불시위

    농민집회에서 2명이 사망한 것과 관련해 농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범국민대책위원회는 20일 경북과 경남, 광주 등 각 시·도 경찰청과 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갖고 오후 7시부터 전국 150여곳에서 경찰폭력 추방을 촉구하는 촛불시위를 했다. 범대위 소속 회원 10여명은 경찰청사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청사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이 에워싸자 한때 심하게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범대위는 “노무현 대통령은 경찰 폭력진압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허준영 경찰청장을 파면하라.”면서 “시위현장 책임자 구속수사와 농민대책 마련, 서울경찰청 1기동대 해체 등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촛불집회를 매일 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는 홍덕표씨 사망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전용철씨에 대해서는 숨진지 한달이 흘렀는데도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전씨가 경찰폭력 때문에 숨진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범대위는 22∼24일 청와대 앞에서 철야농성,30일에는 제4차 범국민대회를 소집해 대규모 집회를 할 예정이다.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 전북 부안과 전원시인 신석정

    [문학이 머문 풍경] 전북 부안과 전원시인 신석정

    “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 다니는/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중략)” 한국 최초의 전원시인 신석정(辛夕汀·1907∼74). 시인은 일제치하의 암울한 시기에 잃어버린 조국을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시를 통해 간절히 찾아가고 싶은 이상향으로 노래했다.시작생활 50여년 동안 우리의 산과 자연 그 자체를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켜 여느 시인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시인이 태어났던 전북 부안군은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 불릴 만큼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성하고 경관이 빼어난 지역이다.지평선까지 펼쳐지는 황금벌판,낙락장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등성이,일몰이 장관인 격포와 해창 앞바다…. 그가 목가시인,자연시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자양분은 곧 고향의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부안읍 선은리 ‘신석정 고택 청구원(靑丘園)’은 시인이 외로움 속에 첫시집 ‘촛불’과 두번째 시집 ‘슬픈 목가’를 펴낸 산실이다.1934년부터 전주로 이사했던 54년까지 20년 동안 시작활동을 했던 이곳은 당시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석정은 처녀시집 ‘촛불’을 펴내면서 “청구원 주변의 산과 구릉,멀리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이 볼을 문지르고 지날갈 때 얻은 꿈 조각들”이라고 전했다.청구원은 앞은 논과 밭들이 이어져 시원하게 툭 터져 있고 멀리 상소산이 보이는 정남향의 아담한 초가삼간이었다.마당이 넓어 시인이 직접 심고 가꾼 나무와 꽃들이 가득했다. 청구원에서 출생해 중학교 시절까지 이곳에서 자란 시인의 셋째아들 광연(68·전 동아일보기자)씨는 “아버님은 틈이 날 때마다 마을 뒷산에 올라 커다란 버드나무 밑에서 시상에 잠기셨다.”고 회고했다.또 집앞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상소산에서 멀리 서해로 이어지는 평야지대와 바다를 응시하며 시상을 떠올렸다고 전한다. 하지만 최근 찾은 청구원은 양옥집과 창고에 가려져 초라한 모습이었고,주변 경관도 완전히 변했다.그림처럼 아름답던 전형적인 시골마을은 4차선 도로건설과 주택개량사업으로 도시화되고 있다.지난 91년 시비가 세워진 변산면 해창 해변공원 앞바다는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새만금간척사업이 한창이다. 1907년 부안읍 동중리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집안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8살때 남의 빚보증을 잘못 서 가세가 크게 기울면서 인근 선은동으로 이사했다. 선은동은 석정이 꿈많은 소년시절을 보낸 곳이다.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우다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하고,농사를 지으며 독학으로 문학의 길을 닦아갔다.18세이던 1924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고향의 자연에서 얻은 시편들을 발표했다. 1930년 서울로 올라가 중앙불교전문강원(동국대 전신)에서 1년간 불전을 공부하면서 문예작품 회람지 원선(圓線)을 만들었다.1931년 시문학 3호에 ‘선물’을 발표하며 시문학 동인이 된 시인은 당시 시단의 거두였던 정지용,이광수,한용운,주요한,김기림 등의 문인을 만나게 된다. 그해 어머니 상을 당한 석정은 김기림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향,물려받은 가난과 싸우며 문학의 길을 계속 걸었다.낙향 3년 만에 조촐한 집을 장만해 청구원이라 이름 붙였다. ●시인은 키가 크고 술을 즐긴 멋쟁이 해방 이후 1947년에는 일제 말기 숨막혔던 상황속에서 악몽 같은 세월을 견디며 쓴 32편을 묶어 ‘슬픈 목가’를 펴냈다.이 무렵 석정은 김제 죽산중,부안중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72년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내 무덤에 태산목을 심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자연에 귀의했다. 허소라(68·군산대 명예교수)씨는 “고인은 키가 훤칠하고 이국적인 얼굴에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술을 즐겼던 멋쟁이였다.”면서 “목가시인이기 전에 항상 역사의 현장에 입회인이 되고자 했던 올곧은 선비였다.”고 말했다. 석정 작고 10주기인 1984년 후학들이 ‘석정문학회’를 결성해 동인지를 발행하고 있다.올해는 시인 작고 30주기를 맞아 추모문학제가 열렸다.지난 3일부터 오늘까지 시인의 친필 시화와 서예,유품,유영이 전시되고 시세계를 재조명하는 문학특강과 세미나가 개최됐다.청구원과 해창시비를 순회하는 문학기행 행사도 가졌다.30주기 추모 기념우표도 발행됐다.같은 시기에 부안문화원에서는 ‘석정 변산시인학교’와 기념백일장,석정시 낭송회,추모 문학강연이 열려 그를 추모했다. 부안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폭염속 파병반대 집회 계속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이 임박한 가운데 시민사회단체와 대학가의 파병반대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2일 자이툰 부대가 훈련을 받고 있는 경기도 모처를 찾아 파병반대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앞서 이들은 주말인 31일 오후 회원과 시민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광화문 교보소공원 앞에서 차도 4차로를 가로막고 ‘파병저지 촛불대행진’을 열었다. 또 범청학련·민주노총·한국노총·한총련 소속 회원 700여명으로 이뤄진 ‘2004 통일선봉대’는 1일 출정식을 갖고 오는 15일까지 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 등지를 돌며 파병철회,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요구하는 규탄대회를 이어가기로 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부안 核폐기장협상 결렬위기

    정부가 17일 ‘핵폐기장 백지화 범(汎)부안군민대책위원회’가 제시한 ‘연내 주민투표’ 실시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정부와 대책위간의 대화가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정부의 연내 주민투표 불가 입장을 전달받은 대책위는 “주민투표 시기를 문제삼은 것은 부안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는 것”이라며 앞으로 ‘부안문제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의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내 주민투표 실시에 대해 “주민투표를 통해 부안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법적·행정적·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대책위에 전달했다.고건 국무총리는 이날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와 전라북도,한국수력원자력㈜,한전 등이 마련한 이같은 대책을 보고받았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주민투표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인 데다 정밀 지질조사 이전에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고,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분위기와 연계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연내 주민투표를 받아들이지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속내는 현재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절대 불리하다는 것이다.현재 사업을 추진 중인 한국수력원자력도 ‘연내에 투표하면 백전백패’라며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촛불 시위 등 반대여론이 다소 줄고 원전센터에 대한 홍보가 이뤄진 뒤인 2∼3개월 뒤에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앞서 지난 14일 열린 4차 공동협의회에서 중립적인 인사로 참가한 최병모 변호사의 제의로 ‘연내 주민투표’가 제안됐고,대책위는 지난 16일 상임위원회와 각 읍·면 대책위원회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난상토론 끝에 연내 주민투표 입장을 정리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부안 핵폐기장 주민투표 ‘신경전’

    원전수거물관리시설에 대한 주민투표 문제를 놓고 정부와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 대책위원회’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부안의 민심을 묻는 주민투표는 원전시설 설치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로 양측의 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그동안 주민투표는 정부나 부안대책위 모두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꺼려온 사안으로 ‘부안지역 현안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 3차 회의까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그러나 지난 10일 이형규 전북 행정부지사가 주민투표 문제를 언급한 뒤 지난 13일 고건 국무총리 면담과 14일 4차 회의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주민 총의를 묻는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 등을 논의하기 위해 협의회 내에 소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의했다.소위에서는 ‘주민투표 연내 실시’ 방안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검토키로 했다.앞서 지난 13일 부안대책위가 고 총리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주민투표 문제가 거론됐다.대책위는 정부의 주민투표 제안에 대해 연내 실시할 경우 검토를 하겠다는 조건부 수용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주민투표의 시기와 절차.양측은 여기에 대해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정부는 주민투표를 실시하더라도 촛불시위 등 반대여론이 거센 만큼 2∼3개월 이상의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하자는 입장인 반면,대책위는 주민투표를 하려면 연내에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책위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부안사무소와 산업자원부 사무소 철수, 대국민홍보 중단,국가에너지정책수립 민관공동위원회 구성 등을 정부측에 촉구하고 나섰고,정부는 대책위에 촛불시위 중단 등을 요청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상대방의 요구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특히 대책위는 지난 7일 3차회의가 끝난 뒤 “정부가 원전센터 백지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협의회에서 철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데 이어 이날 회의에서도 “오는 17일까지 정부의 한수원 사무소 철수에 대한 정부측 답변 등을 검토한 뒤 5차 회의 참석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강경 입장을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주민이 선출한 군수가 정부에 원전시설 설치를 요청해 이뤄진 사안인 만큼 아무런 근거가 없는 백지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앞으로 대책위와의 협의를 통해 해결점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사설] 핵심 비켜난 SOFA협상 결과

    지난해 6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협상이 5개월여 만에 일단락됐다.하지만 본질에는 접근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SOFA 합동위원회의 특별회의는 어제 지난해 12월20일 이후 14차례 회의를 거쳐 마련한 SOFA 운영개선안을 발표했다.한·미 양측은 초동단계 수사협조 강화방안 등에 합의했지만 핵심을 비켜간 형식적인 합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촛불시위를 통해 제기된 국민적 요구는 미군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돼있는 형사재판 관할권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었다.한·미 양측은 SOFA 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들어 운용상의 개선 쪽에 비중을 두고 절차상의 문제점만을 개선하는 데 그쳤다.그럼에도 환경 조항 개선 의지는 눈에 두드러져 그나마 다행스럽다.주한미군 기지의 반환 또는 신규로 공여할 때 환경이 오염된 곳은 원상태로 복구한다는 것이다.주한미군 시설의 환경 오염이 자주 거론되면서 가장 큰 민원의 하나였음을 한·미 양측이 인식한 결과다. 물론 이번 SOFA 협상의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협상을 벌이겠지만,가까운 시일내에 재판관할권 등 불평등한 조항에 대한 근본적인 개정이나 개선으로 이어질 것 같지 않아 우려스럽다.여중생 사망 1주기를 앞둔 시점에서 한·미 양측은 SOFA 협상에 대한 공통인식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 금강산 2차상봉/ 난생 처음 불러본 “아버지”

    1일 금강산에서 또 한차례의 혈육 상봉이 이뤄졌다. 제4차 이산가족 상봉 두번째 행사에 참가한 남측 가족 466명은 이날 저녁 금강산 온정각 휴게소에서 북측 가족 100명과 만났다.반세기만에 남편과 아내,자식,형제 등을 만난 남북의 가족들은 4시간여 동안 단체상봉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가족·친지의 안부를 물으며 지난 세월 서로가 헤어져 겪어야 했던 이산의 아픔을 위로했다. 남측 가족들은 2일 북측 가족과 개별상봉,공동 중식,삼일포참관상봉 등 세차례 만난 뒤 3일 오후 속초로 귀환한다. ◆아버지와 첫 대면한 4명의 ‘유복자’들 “아버지…” 오후 5시30분 시작된 단체상봉에서 북측 아버지 송수식(宋守植·81)씨를 만난 딸 정하(貞夏·51)씨는 난생 처음 본 아버지의 넓은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만했다.송씨도 처음 만난 딸에게서 큰 절을 받으며 지난해 저세상 사람이 됐다는 아내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연신 딸의 손과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날 송씨 부녀 외에도 이연윤(李淵潤·72)씨의 딸 의화(義華·52)씨,김두환(金斗煥·73)씨의 딸 외숙(52)씨,이은주(75)씨의 아들 익주(益周·51)씨 등 3명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 애틋한 부녀·부자의 정을 나눴다. ◆아흔 셋 최고령 할머니 남측 가족 가운데 최고령인 안순영(93) 할머니는 둘째아들조경주(71)씨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아들 넷,딸 넷 등 모두 8명의 자식 가운데 아들 셋을 먼저 여읜 안할머니는 마지막 남은 아들인 경주씨의 손을 마주 잡았다.안 할머니는 “순하고,말도 잘 듣었던 아들을 만나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경주씨를 꼭 안았다.함께 간 딸 숙희(59)씨는 “어머니는 오빠가 인민군에 끌려간 뒤 50년 동안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밤 촛불을 켜고 돌아오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설레는 10대 손자 남측 가족 가운데 가장 어린 박승한(13·휘문중 1년)군은말로만 들었던 할아버지(박문근·75)를 만났다.요즘 청소년답게 MP3 플레이어를 챙겨 설봉호에 오른 박군은 할머니(이덕순·74)와 아버지(박용원·50),어머니(김충희·48)가 할아버지와 나누는 감격의재회 장면을 열심히 비디오 카메라에담았다.박군은 “할아버지가 자랑스럽다.”면서 “나도 커서 할아버지와 같은 의사가 되겠다.”고 말했다.박군의 할아버지 박문근씨는 6·25전쟁 전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 의사였으며,할머니·아버지·어머니도 모두 의사다. ◆유명 인사들의 가족상봉 “니들이 내 동생이구나.” 김성하(金成河·77·전 김일성종합대 교수)씨는 상봉장에 들어서는 순간 민하(玟河·68)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비롯,윤하(71·전 축구협회장)·옥화(63·여)·옥려(61·여)씨를 감싸 안았다. 헤어질 때 초등학생이던 옥려씨가 오빠를 안고 오열했고,김 부의장은 “둘째아들 보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다던 어머니가 지난해 4월24일 돌아가셨다.”며 50여년간 보관해온형의 대구중 시절 교복입은 사진을 전했다. ●서울대 의대에 다니다 6·25전쟁 중 헤어진 누나 이명분(69)씨를 만난 대희씨(66·순천향병원 검진센터소장)는 누나의 단짝 친구였던 주양자(朱良子·71)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안부를 전했다.경북중·경북여고와 서울대 의대동창인 두사람은 고교시절 한조를 이뤄 정구 복식경기에 출전하기도했다.주 전 장관은 대희씨에게 특별히 안부를 부탁했다.이씨는 “아,그래 양자가 살아 있니.”라고 물으며 함께 사진을찍은 뒤 “양자에게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 “손에 손잡고 민족통일 기원”/남북 인간사슬 1백리 연출

    ◎「인간띠 잇기대회」 오늘 하오 6시 서울∼임진각서 펼쳐/개신교계 주축,시민 등 6만여명 참가/17개 집결지마다 통일장터 등 행사 다채/통일로주변 1천2백여개 교회 일제히 타종·촛불점화식 온민족이 손에 손잡고 민족통일의 염원을 발현할 남북인간사슬이 서울에서 임진각까지 1백리 통일로 가도에서 펼쳐진다.문민정부 출범이후 첫 광복절을 맞아 개신교계가 주축이 되어 카톨릭 성균관 천도교등 각종교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참가,국민대축제로 치러지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인간띠잇기대회」는 15일 하오6시 1m 간격으로 6만여명의 참가자가 인간사슬을 이루는 장관을 연출하게 된다. 띠잇기대회본부(상임위원장 권호경KNCC총무)는 14일 통일기원기도회와 전야제행사등 준비행사를 모두 마치고 오늘 하오3시부터 시작되는 띠잇기행사의 최종점검에 들어갔다.서울 독립문과 임진각을 잇는 48㎞ 구간에서 진행될 이 행사는 통일로변에 마련된 17개구역 집결지별로 통일가요제,북한영화상영,통일장터등 다양한 행사를 벌이면서 개막된다.또 대회 전구간에서통일기원건강달리기와 8월15일생 「통일둥이」40여명의 이어달리기가 열린다. 하오6시부터 시작되는 본행사는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는 이산가족들의 편지낭독이 있고 통일로 주변 1천2백여개 교회에서는 일제히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타종식및 촛불점화식이 있게된다.이를 신호로 참가자 전원이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일렬로 늘어서면서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이루게 된다. 이어서 평양 봉수교회에서 작성한 공동기도문과 공동예배문으로 통일기원예배를 드리고 통일만세삼창으로 대회를 모두 마무리하게 된다.대회본부측은 기독교방송으로 채널이 고정된 소형라디오를 참가자 전원에게 증정,방송을 통해 이날 모든 행동을 통제할 계획이다. 대회본부측은 14일까지 신청해온 참가자가 개신교 47개교단과 55개 종교·사회단체등 모두 5만5천여명에 달한다고 밝히고 시민들의 즉석참여도 환영하기 때문에 전체 참가인원은 6만명을 훨씬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본부측은 또 원래 이 행사가 남북이 동참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전제하에 지난달 1일 북한조선기독교도연맹(서기장 고기준)측에 개성에서 판문점까지 인간띠를 형성,대회에 동참해줄 것을 제의했으나 지난 9일 북한측이 이 대회를 우리 당국이 불허한 제4차 범민족대회와 연합형식으로 개최할 것을 요구해와 어쩔수 없이 남측 단독으로 치르게 됐다고 밝혔다.이에따라 남측의 띠잇기구간은 계획됐던 전체 61㎞구간에서 임진각∼판문점 13㎞가 제외돼 48㎞로 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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