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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3)정감록과 혹세무민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3)정감록과 혹세무민

    ‘정감록’ 때문에 민중이 울었다. 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감록을 이용해 자기 한 몸의 안락과 치부(致富)를 꾀하는 못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정감록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지배층의 평가는 늘 부정적이었다.‘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지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잣대로 삼은 것이었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상당수 민중이 정감록 때문에 재산을 잃거나 심지어 목숨을 앗기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백백교(白白敎)의 아전인수(我田引水) 일제시대 백백교 사건은 그야말로 혹세무민의 대표적인 사례다.1937년 백백교 간부 150여명이 집단살인사건으로 검거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조사 결과 핵심 간부 18명이 최소한 신도 314명을 살해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이경득은 61회에 걸쳐 166명을 살해했고, 문봉조도 129명이나 되는 교인을 죽여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백백교는 교단 이름부터 ‘정감록’을 빌렸다. 정감록에 보면 말세에 사람이 다 죽은 뒤 “사람의 종자를 양백(兩白)에서 구한다.”고 했다.‘양백’은 곧 백백(白白)으로 풀이된다. 백백교에서는 이 구절을 끌어다 구원을 받을 사람들은 오직 백백교도뿐이라고 내세웠다. 또 한 가지. 정감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라도운봉두류산(全羅道雲峰頭流山) 성인출어함양림중(聖人出於咸陽林中)”이란 대목이 있다. 글자 그대로는 “전라도 운봉에 두류산 즉, 지리산이요, 성인은 함양 땅 수풀 속에서 나온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백백교에선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앞부분은 “전(全)씨가 도(道)를 열(라)고 운(運)을 만(逢)난다.”고 보았다. 뒷부분은 성인이 출현하기로 예정된 ‘함양림’이란 장소를 백백교가 창시된 함(咸)경도 운림(林)면 마양(陽)리로 풀이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이쯤 되고 보면 정말 기발한 해석이었다.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억지 춘향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많은 한국 사람들은 백백교 식의 정감록 해석을 환영했다. 그들은 도리어 기상천외한 해석에서 비결의 힘과 매력을 발견했다. 그만큼 순리대로 살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백백’이란 “한 가지 흰 것으로 천하를 희게 만들자(一之白將欲白之於 天下地).”는 구호를 요약한 것이기도 했다.‘흰 것’은 정감록에서 말하는 “계룡산 바위가 희어진다.”는 구절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흰 바위란 전통적으로 미륵을 상징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 가지 흰 것”은 정씨 진인이 출현할 시기이자 미륵부처나 다름없는 백백교의 교주를 가리켰다. 요컨대, 새 종교 백백교와 더불어 이 세상이 완전히 바뀐다는 선동적 믿음이 구호에 담겨 있었다. 백백교의 남자 신도들은 “백백백의의의적적적”이라는 주문을 줄곧 외워댔다. 그러면 무병장수하고 말세에 살아남는다고 했다. 그들은 말세에 서양은 불로 망하고, 동양은 물로 망한다고 했다. 불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본래 기독교 성경에 나와 있다. 그런 이유로 기독교의 본고장 서양은 불로 망한다고 보았다. 동쪽은 서쪽의 반대라 물에 약하다고 풀이했다. 중요한 점은 백백교를 믿는 사람만이 무사히 살아 남는다는 주장이었다. 교단 측은 신도들에게 일단 한국의 53개 성지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다 말세의 심판이 닥치면 곧바로 금강산으로 들어가라 했다. 금강산엔 ‘피수궁’(물의 재난을 피하는 궁궐)이 있고 거기서 잠시 기다리면 백백교의 교주 대원님이 하강해 신도들을 이상향으로 인도한다는 것이었다. 백백교의 이상향은 동해의 섬이었다. 동해 바다 한 가운데 3000리나 되는 영주란 섬이 있다고 했다. 그 섬엔 봉황과 기린이 살고 불로초도 있다. 신선처럼 살고 싶은 백백교 신도는 누구나 그리로 인도된다. 그러나 만일 부귀영화를 한껏 누려보고 싶은 이라면 계룡산으로 안내된다. 백백교의 수장인 대원님이 새 세상의 왕이 되어 교단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신도들에게 관직을 준다고 했다. 교단에 재산을 많이 헌납한 사람은 당연히 큰 벼슬을 받게 된다. 이런 감언이설로 백백교 지도층은 세상 삶에 지친 민중을 유혹했다. 백백교를 세운 이는 가난한 농부 전정운(全廷雲)이었다. 본래 동학교도였던 그는 1900년 평안남도 영변군 근산면 화현동에서 백도교(白道敎)란 간판을 걸었다. 얼마 뒤 그는 앞에서 설명한 이유로 교명을 백백교로 바꿨다. 그는 1904년 6월 사상 초유의 대홍수가 한국을 휩쓸어 말세가 된다면서 이상향에서 살고 싶으면 무조건 백백교에 입교하라고 선동했다. 물론 전정운의 예언은 빗나갔다. 그럼에도,1905년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는 등 세상은 무척 어수선해졌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백백교의 거짓 예언을 뿌리치지 못했다. 교주 전정운이 늙어 죽자 아들 전해룡이 뒤를 이었다. 전해룡은 1923년 경기도 가평에 궁궐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교당을 지었다. 교단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높이려는 술책이었다. 그는 평소 단식을 잘했다.20일 동안 단식한 뒤에도 평소와 같은 기력을 과시해 신도들 사이에 신비감을 조장했다. 이 역시 28수라는 그의 허다한 고등 사기수법의 하나였다. 전해룡은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해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했다. 그뿐 아니었다. 만일 신도들의 자녀 가운데 아직 미혼인 여성이 있으면 성적 노예로 삼아 착취했다. 유부녀라 해도 용모가 아름다우면 마음껏 유린했다. 전해룡은 변태성욕자가 분명해 자기의 정사(情事) 장면을 숱한 여신도들이 지켜보게 했다. 그는 이를 신(神)의 행사라고 불렀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신도가 있으면 이상향에 보낸다며 산으로 끌고 가 남몰래 살해했다. 살인을 담당한 간부들은 벽력사(霹靂使)라는 명칭으로 부를 만큼 백백교 지도층은 집단광란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살인극은 무려 14년간 지속됐다. 만일 교주 전해룡의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교단을 배신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이는 경우는 물론 간부나 첩이라도 태도가 변한 기색이 보이면 즉시 살해되었다. 또한 신도들은 재산을 전액 헌금하게 돼 있었는데, 이를 조금이라도 어길 경우 생매장 당했다. 엄청난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백백교는 무사했다. 교단 간부들이 해마다 거액을 상납했기 때문에 일제 경찰은 눈을 감아준 것이었다. 그러다 1937년 우연한 일로 백백교의 비리가 세상에 폭로된다. 백백교 사건의 충격과 파장은 컸다. 소설가 박태원은 ‘금은탑(金銀塔)’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소설화해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시기 한국의 민중은 정치에 실의하고 생활에 궁핍했다. 근대 한국 민중의 불안한 사회심리를 이용해 우후죽순 격으로 뻗어난 것이 바로 백백교 따위의 악질적인 사이비 종교단체였다.1930년 6월 현재 정체불명의 그런 사이비 단체가 55개, 신도 수는 10여만명을 헤아렸다(동아일보 1930년 6월16일자 사설). 백백교 같은 사이비 종교단체는 암울한 시대배경 속에서 자라난 독버섯이었다. ●정감록을 이용한 재물 뺏기 ‘정감록’을 이용한 사기행각은 식민지 시기 사회 전반에 꽤 널리 퍼진 병리현상이었다.1930년께 김창하라는 사람은 ‘천병만마’(千兵萬馬·무수한 군대)를 격퇴할 해인(海印)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병통치약이라며 가짜 약을 판매하다가 검거됐다. 비슷한 무렵 경상북도 봉화군 내성면에 살던 경호창과 최성기는 태백산 기슭의 벽촌을 돌아다니면서 곧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보천교도 외에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입교하라고 강요했다. 물론 입교 시에는 소정의 돈을 납입하게 돼 있었다. 경호창 등은 유언비어를 살포한 죄로 20일의 구류처분을 받았다(중앙일보 1932년 3월16일자). 이런 일은 식민지 사회에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비슷한 사건은 조선 후기에도 많았다.1826년(순조 26) 충청도 청주에서 정상채라는 사람이 붙들려 처벌을 받았다. 그는 여러 고장을 들락거리며 나이와 이름을 멋대로 속였다고 했다. 도술을 부린다고 거짓을 늘어놓고 ‘환묘문(幻妙門)’과 같은 도술 책을 친구에게 주어 타인의 물건을 빼앗게 했다. 마침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그것은 전주곡에 불과하며 진짜 난리는 얼마 뒤에 일어난다며 민심을 선동했다. 그러면서 정상채는 진인이 이미 섬에 와 있다고 황당한 말을 꾸미는 한편 진인의 당에 가입하려면 이름을 직접 서명하라고 사람들을 졸라댔다. 뿐만 아니라 섬에 있는 진인의 군대에 군복을 지어 입힌다며 군자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모은 돈을 그가 착복했음은 물론이다. 정상채의 동료 박형서도 비슷한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받았다. 주된 죄목은 남의 재물을 속여서 빼앗고 ‘흉언(凶言)’ 즉 거짓 소문과 예언을 지어내 인심을 소란케 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전쟁이 박두했다는 둥, 해도(海島)에 진인이 있다는 둥 거짓 예언을 퍼뜨리며 자기가 살길을 아노라 했다(실록·순조 26년 10월27일 을해). 비슷한 예는 정말 많았다. 박형서나 정상채 같은 사람들을 변호하는 입장에서는 그들은 조선왕조를 전복시키기 위해 군자금을 마련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변호인들은 왕조사회의 한계와 모순을 지적하면서 ‘범인들’이야말로 실은 ‘혁명아’였다고 강변하겠지만, 과연 그랬을까? 남의 호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군자금을 생활비와 용돈으로 소비한 사람들이 과연 혁명아일지 의문이다. 그들이 말한 진인은 결국 환상적인 존재였을 뿐이다. 그들에게 금품을 건네준 사람들의 기대는 처음부터 어긋났다. 한마디로 그들은 사기꾼이었다. ●홍경래의 난 그런데 어떤 경우엔 도무지 이것이 ‘혹세무민’인지, 사기행각인지 또는 진정한 의미로 민중의 투쟁이었는지를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결코 백백교와 동렬에 놓일 성질은 아니지만 경계 짓기의 어려움을 확인하기 위해 홍경래의 난을 예로 들어 보겠다. 결코 홍경래 난을 매도하려는 뜻은 아니란 점을 다시 강조한다. 홍경래 난은 1811년(순조 11) 12월18일 시작됐다. 반란군은 순식간에 청천강 이북을 장악했다. 그러나 전열을 재정비한 관군의 반격을 받고 곧 정주성에 갇혀 버렸다. 정주성 싸움은 이듬해 4월19일까지 제법 오래 계속됐지만, 결국 관군의 승리로 끝났다. 장기간 싸움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란군 측은 여러 차례 격문을 내걸었다. 격문엔 정감록이 예언한 정진인(鄭眞人)도 언급됐다. 서북 사람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철폐하라, 세도정권의 가렴주구는 악행이라는 등 그 시대 서북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도 모습을 드러냈다. 참고로 정감록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하면 대개 이런 식이었다. “지금 나이 어린 국왕과 주위의 간악한 무리들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 그런데 다행히도 세상을 건질 성인이 청북 선천 검산 일월봉 아래 군왕포 위 가야동 홍의도에서 탄생하셨다. 성인은 나서부터 비범하신데 평안도 지역은 성인의 고향이라 직접 손을 대지 못하시고 우리들에게 명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하셨다.” 정감록이 예언한 새 왕조의 창건자가 이미 홍경래의 곁에 와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로써 반란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인식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격문을 짓게 한 홍경래 자신은 각종 병서(兵書)와 술서(術書), 특히 ‘정감록’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는 풍수지리에도 능통해 전국을 유람했다고도 전한다. 홍경래 일당은 정감록에 의지하는 바가 컸다. 그런 까닭이겠지만 난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에도 사람들은 정감록과 해도 진인에 대해 더욱더 이야기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홍경래가 아직 살아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홍경래 난은 무려 10년 동안 사전에 준비됐다고 했다. 조직적인 반란이었던 셈이다. 풍수 전문가 홍경래를 비롯해 우군칙, 김사용, 김창시 등 유랑지식인 또는 몰락 양반들이 반란군의 지도부를 구성했다. 그들은 중국과 무역을 통해 벼락부자가 된 이희저의 가산 다복동의 사저를 거점으로 삼아 평안도 각지의 부자들과 연합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운산에 광산을 열어 빈농과 유이민 등을 모아 훗날 군사로 동원했다. 이 당시는 청나라와 국경무역이 활발했을 때라 평안도 출신 가운데는 이희저의 경우처럼 대상인이 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수요에 맞춰 평안도엔 유기(鍮器) 등 수공업이 발달했으며 광산 개발도 상당히 활발한 편이었다. 홍경래 일파는 이런 시대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이 기회에 서북지역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서울로 진격해 일거에 정권을 장악하려 했다.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홍경래를 지지한 계층은 민중이라기보다는 평안도 각지의 부호들이었다. 좌수와 별감을 비롯한 향임(鄕任·행정보조집단)과 별장(別將)과 천총 등 무임(武任·군사 및 치안담당자) 가운데 재산이 넉넉한 사람들이 홍경래를 후원했다. 민중의 지지는 정주성을 지킬 때 엿보이는 정도였다고 한다. 본래 유랑지식인이었던 홍경래나 자칭 제갈공명이라 불렀던 우군칙은 반란을 모의하는 과정에서부터 갖은 방법으로 부자인 이희저를 포섭하는 데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이희저는 반란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책임지게 됐으며, 비슷한 처지에 있던 평안도 유지들을 후원자로 끌어들인다. 그런 점에서 홍경래 난은 일부 유랑지식인과 상층부 인사들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홍경래 등은 서북지방의 숙원이던 지역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했고, 그 점에 있어 해당지역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만했다. 하지만 일반 민중과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평안도의 부호들이 반군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점으로 보아 실상은 평안도 지배층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하는 반란이었다. 실제로도 격문을 분석해 보면 소농과 빈농 등 하층민의 요구를 반영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1894년의 동학농민운동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만일 이 점을 확대 해석한다면 홍경래의 난은 평안도 지배층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이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홍경래 등이 자주 거론한 ‘정진인의 출현’은 민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민중을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홍경래 난은 두말할 나위 없이 ‘혹세무민’이었다. 왕조의 입장은 그렇다 해도 반란이 실패로 끝난 뒤 한때 홍경래 일파를 적극 지지했던 평안도의 부자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한마디로 판단하기는 참 어려운 문제다.‘사물은 하나지만 해석은 구구하다.’라 했던 어느 역사가의 주장이 문득 뇌리에 떠오른다. 홍경래의 난은 복잡했다 해두자. 어쨌거나 틀림없는 한 가지 사실은 때로 정감록은 민중에게 고난과 아픔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시대가 어려울 때일수록 그런 경향이 심했다. 이 점을 인식한 듯 근세의 종교지도자 소태산은 이렇게 말했다.“근래의 인심을 보면 사술(邪術)로 대도를 조롱하는 무리와 모략으로 정의를 비방하는 무리들이 세상에 가득하여, 각기 제가 무슨 큰 능력이나 있는 듯이 야단을 치고 다니나니, 이것이 이른바 낮도깨비니라. 그러나 시대가 더욱 밝아짐을 따라 이러한 무리는 발 붙일 곳을 얻지 못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국방부 첫 민간 법무관리관 박동수 변호사

    “마지막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각오로 일할 작정입니다.” 국방부가 사상 처음으로 민간에 문호를 개방한 법무관리관에 임용된 박동수(56·법무 2기) 변호사는 10일 임용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국방부는 그동안 현역 장성이 보임돼 오던 법무관리관 직위를 개방형으로 전환하고 지난 4월 공채공고를 냈으며, 응모한 3명의 변호사 중 중앙인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박 변호사를 최종 선발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으로 법무법인 일신에서 일하고 있는 박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대를 나와 군 법무관시험에 합격 수도군단사령부 검찰관과 37사단 법무참모, 육군 법무감실 송무장교 등을 역임한 뒤 소령으로 예편했다. 군을 떠난 뒤엔 부산·마산지방법원 판사를 지냈으며, 사법연수원에서 군 법무관시험 합격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해 왔다. 그동안 국방부는 법무관리관 직위를 개방형으로 바꾸기로 한 뒤 예우문제로 적잖은 고민을 해왔다. 억대 연봉을 받는 변호사들에게 고액의 연봉을 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연봉 6000만∼7000만원을 받는 국방부의 다른 국장들보다 약간 많은 액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군 사법 업무에 종사한 지 24년이 흘렀고, 제도와 환경이 많이 변한 것 같다.”면서 젊은 법무관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업무를 수행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법무관리관 직위와 함께 개방형으로 전환된 국방부 인사국장에는 최운(54·육사 30기) 예비역 준장이 임용됐다. 현역 소장이 보임되던 인사국장에 민간인이 임용된 것도 처음이다. 지난 98년 국방부 인사국을 떠난 뒤 7년여 만에 민간인 신분으로 국방부에 돌아온 그는 “군 진급제도 개선과 효율적인 인사 관리, 군 양성 교육제도 개선 등에 힘쓰겠다.”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지구촌 한핏줄 봉사하며 느꼈죠”

    “지구촌 한핏줄 봉사하며 느꼈죠”

    지난해 아프리카 베넹공화국의 코토누에서 봉사활동을 한 김주희(27·여·부산대 유아교육과 졸업)씨는 전갈에 물렸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청소를 하다 감전이라도 된 듯한 고통을 느껴 정신을 잃었었죠. 새끼 전갈이라 다행히 독은 없었지만, 인간이 작은 곤충 하나에도 힘없이 죽을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정성민(22·한국외대 아프리어학과 3년)씨는 2003년 3월부터 열달 동안 아프리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있었다. 그는 이민국 직원의 뇌물 요구를 거절했다가 쫓겨나서 버스를 타고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인생에 영원히 남을 보물같은 경험들이다. 세계 각국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학생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알리고 공유하는 만남의 장이 펼쳐진다. 국제청소년연합은 10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2005 세계 문화체험 박람회’를 연다. 청소년 선도와 문화교류사업을 벌이는 국제청소년연합은 매년 각국에 나가 1년간 봉사활동을 하는 현장체험 기회를 대학생들에게 제공해 왔다.2002년 13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81명이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올해에는 234명이 40여개국에 파견돼 있다. 박람회에서는 학생들이 현지에서 겪은 생생한 체험담이 소개된다.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아프리카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친 오은애(24·여·충북대 불문과 4년)씨는 남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던 ‘아이샤’라는 동갑내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오씨는 “불쌍한 아이샤가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나게 됐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성경을 읽어주자 이슬람 교도이면서도 마음을 풀더라.”면서 “언어와 종교는 달라도 사람을 대하는 진실된 마음은 언제나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부터 11개월 동안 옛 소련 키르기스스탄 브시켁에 다녀온 김태형(24·순천대 중어중문 3년)씨는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을 만나 그들의 깊은 한을 느꼈다.”면서 “외국인이지만 우리와 한 핏줄인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다. 이번 행사는 50개국의 주한외국대사관과 문화관광부, 교육인적자원부, 청소년위원회가 후원하고 있으며 38개국 대사가 참석할 예정이다. 국제청소년연합은 내년에는 350여명을 파견할 계획이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서울이야기] 쓰레기종량제 10돌

    [서울이야기] 쓰레기종량제 10돌

    ●쓰레기종량제의 탄생 누구든 쓰레기를 버리고자 할 때는 쓰레기 배출방법, 수거하는 사람 그리고 연락처가 찍힌 규격봉투를 사용하고 있다. 이 봉투를 사용하더라도 반드시 지정된 장소와 시간에 쓰레기를 내놓아야 한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생활 속의 한 단면이지만, 사실 이러한 모습은 불과 10년 전에 탄생했다. 정확하게 1995년 1월1일, 우리나라 쓰레기 청소 분야는 쓰레기종량제라는 새로운 사업에 돌입했던 것이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어서 가정, 사무실, 학교, 관공서, 심지어 구멍가게까지도 구청에서 제작한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담아야만 버릴 수가 있었다. 가정에서는 흰색, 사업장에서는 오렌지색, 관공서에서는 엷은 청색 등 건물의 이용형태에 따라 다른 색깔의 봉투를 사용토록 하였다. 쓰레기 봉투는 담배처럼 지정된 장소에서만 판매했으며, 시민들은 봉투를 미리 사두고 한장씩 꺼내 썼다. 규격봉투는 쓰레기 처리비를 포함하고 있어서 시중에서 사용되던 일반봉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쌌다. 바야흐로 시민들은 운임을 주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거나, 물건값을 지불하고 가게에서 생필품을 구입하듯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가격을 지불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멀리 가거나 많이 사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 같은 원리로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면 할수록 그만큼 봉투 사용량과 봉투를 사는 데 드는 비용이 늘어났다. 냉장고, 장롱 같은 규격봉투에 담기 어려운 품목은 개별로 처리비용이 책정되었다. 같은 품목이라도 크기가 클수록 버릴 때 많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이 방법이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당시의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달라진 것은 규격봉투의 크기와 색상, 강도와 같이 시민들이 불편하다고 해 수정한 부분과 처리비용의 상승을 반영하여 조정된 봉투가격 정도이다. 서울에서는 연간 2억 7000만 개 정도의 규격봉투가 팔린다고 하니 시민 1인당 20∼30개의 봉투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규격봉투는 동마다 27개소로 약 1만 4000개소에 이르는 지정판매소를 통하여 공급되고 있다. 지나온 시간이 말해주듯, 이제 쓰레기종량제는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 ●왜 쓰레기종량제를 선택했는가 쓰레기종량제를 시행하지 않는 국가들도 많다. 쓰레기가 함부로 버려지거나 규격봉투의 구매, 배출방식의 규제 등으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경우도 시행하기까지의 과정이 간단치 않았다. 시행 3년 전부터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였고, 특히 시민들이 이 제도를 받아들여줄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시행하고 무엇이 필요한가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최종적으로 1994년 4월부터 8개월 동안 서울을 비롯한 몇몇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해본 뒤,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시행이 결정되었다. 시범사업에서는 시민들의 참여도, 봉투 자체와 공급경로의 문제점, 적정 수수료, 쓰레기의 양·질적 변화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었다. 시범사업 기간에 200여건, 시행원년인 1995년 600여건의 관련 언론보도는 당시 종량제가 어느 정도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사회적 관심사였던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듯 쉽지 않은 쓰레기종량제를 왜 선택하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쓰레기 처리할 곳을 찾기가 어려워서였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특히 심각했다.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서울은 88 서울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 청소를 담당하던 공무원들은 쓰레기를 치울 공간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지금은 월드컵공원으로 변한 난지도매립지가 포화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과가 없었다. 대안으로 소각시설의 건설을 추진했으나 이 역시 별 소득이 없었고, 그 상태로 88 서울올림픽도 지나갔다. 이 때 중앙정부가 수도권 도시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매립지 부지를 당시 경기도 김포군의 드넓은 간척지에 마련하였다. 바로 오늘날의 수도권매립지이다. 공사과정에서 정부는 주변주민들과 많은 갈등을 겪었고, 다시는 이와 같은 대형매립지를 만들 자신이 없어질 정도로 갈등은 심각했다. 서울시도 나름대로 소각시설의 확보에 주력하였으나, 재활용품까지 소각하려 한다, 유해물질이 발생한다 등의 반대 목소리와 맞물려 성과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한편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재활용품 분리함이 등장했다. 이 사업은 기대 이상으로 참여가 좋았기에 단독주택이나 소형사업장으로까지 확대할 방안이 필요했다. 이 때 제기된 연결고리가 바로 쓰레기종량제였다. 쓰레기 발생량 자체도 줄일 수 있다는 논리적 분석결과는 종량제를 더 매력적인 방법으로 비춰지게 했다. 이상과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쓰레기종량제는 선택되었다기보다 어쩌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제도였고,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쓰레기종량제,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종량제 전에도 시민들은 쓰레기처리비용을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구청에 납부했다. 그러나 규격봉투를 사용하는 종량제와는 다르게 집이 크거나 소득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냈다.잘사는 사람이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는 가정 때문이었다. 쓰레기종량제는 그러한 통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더욱이 적게 배출하는 사람도 더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재활용품으로 분리하면 그 부분은 쓰레기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정책적 의지까지 결합되었다. 종량제의 성과는 시행 원년에 즉각 나타났다. 재활용품으로 분리되는 양이 늘고 상대적으로 소각이나 매립방법으로 처리할 양은 줄었다. 서울에서는 소위 고물상들이 돈 되는 것만 수거할 때 20.5%이던 재활용 실적이 종량제 1년 만에 29.3%로 상승했다.1일 1만 5000t을 초과하던 쓰레기 양도 8.4% 정도 줄었다. 당시 자치구들의 평균 배출량이 600t 정도임을 감안하면 2개 구청지역에서 아예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은 효과와 맞먹는 양이 줄어든 것이다. 종량제 이전의 수수료 방식에서는 자치구별 가구당 부담액이 월 1156∼2102원으로 차이가 컸다. 그러나 종량제 실시 이후 2224∼2288원으로 차이가 대폭 줄었다. 종량제를 실시해보니 생활수준이 달라도 가정에서 기본적으로 배출하는 쓰레기양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쓰레기종량제는 소득과 쓰레기 양은 비례한다는 기존 수수료체계의 모순을 개선하여 실제 배출량에 따라 수수료를 부과하는 형평성을 확보하는 계기도 마련하게 되었다. 타이완이 서울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였으며,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대한민국의 폐기물관리체계가 선진국 수준이라고 칭찬한 것도 바로 이 종량제와 그 운영방식 때문이었다. 종량제 실시 이후에 폐기물관리는 다변화되었다. 우선 음식물쓰레기의 매립이 금지되었다. 재활용품이 빠져나가면서 음식물을 다량으로 버리는 우리 식생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종량제만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확인하고 일회용품 사용과 상품 포장을 억제하는 정책이 도입되었다. 시민들이 재활용품으로 분리해도 활용할 곳이 마땅치 않은 폐제품에 대해서는 생산자가 책임지고 재활용하는 체계도 마련되었다. 혹자는 이상과 같은 제도의 출현을 종량제의 성과가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쓰레기가 줄어든 것은 종량제 때문이 아니라 연탄재가 줄고 위에서 열거한 부작용 대책들의 효과라고도 주장한다. 일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재활용품의 분리배출이 생활 속에 자리잡고 수수료 부담에 대한 형평성이 확보된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종량제의 확고한 성과임이 분명하다. ●보완과 이해가 필요한 부분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담아 버리면서 자신이 종량제를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거에 세금처럼 납부하던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한마디로 쓰레기종량제는 이제 제도가 아니라 관습이 되었다. 근래에 ‘인터넷종량제’나 ‘종량제사무실’과 같은 신종용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쓰레기종량제가 착실하게 정착되었고 사회적 인식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징후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미흡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은 ‘자치구간에 봉투가격의 차이가 크다’ ‘비싸다’ ‘봉투가 쉽게 찢어진다’ 등의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근거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해를 필요로 하는 부분도 있다. 봉투가격은 수거처리수수료·봉투제작비·판매이윤 등으로 구성되며, 서울에서 사용되는 20ℓ 봉투가격 중 85%는 수거처리수수료이다. 자치구별 봉투가격의 차이는 바로 수거수수료에서 발생하는데, 지역별로 청소여건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가 많고 도로여건이 좋은 K구는 쓰레기 1t의 수거에 4만 2000원 정도가 들지만, 단독주택에 경사진 골목길이 많은 S구는 K구보다 50%이상 더 소요된다.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가로를 청소하는 등의 비용은 자치구가 부담한다는 사실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봉투가격이 비싸다고 하지만, 실제로 월 부담액은 가구당 3000원 이내이다. 커피 한잔, 담배 한 갑 값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자치구들은 실태를 정확히 알려서 시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연간 6000여 t의 쓰레기가 규격봉투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무한정 튼튼한 봉투를 제작하기 어렵다는 점도 알려야 한다. 정부 측도 시민들에게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법투기, 골목길 청소 기피, 무단배출 등의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만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종량제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자 익히 예상했던 바다. 관건은 근절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것, 청소를 위해 시민들을 골목길로 불러내는 것이다. 규격봉투 안에 1회용 봉투가 많은 것도 정부로서는 불만이다. 그러나 많은 가정들이 화장실, 안방, 공부방, 부엌 등 집안 곳곳에 실내 쓰레기통을 두고 있다. 진공청소기 먼지, 화장실 청소 찌꺼기, 화분 정리 후의 잔재물 등은 별도의 봉투에 담는 것이 위생적이면서 편리하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1회용 봉투가 일정 부분 섞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쓰레기종량제는 하나의 수수료제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해당지역의 청소체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에 가보면, 종량제봉투의 제거가 가장 어렵고 일손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분리도 잘 안 되고 이물질도 많이 섞여 들어온다. 그런데도 규격봉투를 사용하는 것은 음식물쓰레기에도 반드시 종량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집착 때문이다. 소각하고 매립할 쓰레기에 대해서는 규격봉투가 별 지장을 주지 않지만, 내용물을 다시 꺼내야 할 때는 문제를 유발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별도 용기를 사용하고 스티커를 판매하거나 예전처럼 고지서로 수수료를 징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또 다른 10년이 지나가면 쓰레기종량제 20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제도가 어떻게 변모하고 평가받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유기영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환경연구부 연구위원
  • [20&30] ‘인생 U턴’ 새 인생 설계하는 늦깎이 05학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고 읊어 봤음직한 어느 광고 문구다. 하지만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해 보이기는 쉽지 않다. 남들이 매기는 사회적 나이를 뛰어 넘는 행동이 ‘용기’이기보다는 ‘무모함’으로 비쳐질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나이의 편견을 깨고 자신의 꿈을 찾아 다시 공부를 시작한 2030들이 있다.“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결정 아니냐.”는 비난을 감수하며 새로운 인생항로에 나선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한창 일해야 하는 시기에 다시 수학능력시험을 치고 대학에 뛰어든 05학번 2030들을 만나봤다. ●“하고 싶었던 공부, 이제서야 할 수 있어 행복” 대구한의대 한의예과 1학년 김대영(27)씨는 요즘 스무살 친구들과 함께 대학생활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서강대 전자공학과 98학번으로 대학생활 내내 상위권을 유지한 ‘모범생’이자 장래가 기대되는 공학도였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해 1월 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제대 후 복학을 해 학교를 1년6개월이나 더 다닌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김씨는 대학생활 내내 ‘과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었다고 한다. 중·고교 시절에는 대입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시절에는 취업을 목표로 착실하게 생활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정작 단 한번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야 할 스물여섯 나이에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한다는 아들을 한사코 만류했다. 하지만 한의사가 되고 싶었던 김씨의 뜻은 누구도 꺾지 못했다. 7년 만에 다시 시작한 수능 공부는 결코 쉽지 않았다. 독한 마음으로 매일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공부만 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부끄러워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인간관계도 모두 접어야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기에 부모님 뵐 면목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과 더 이상은 물러 날 곳이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1년을 보냈다. 그 결과는 한의대 합격이라는 열매였다. 김씨는 “남들보다 6∼7년 정도 늦게 사회에 나서겠지만 후회는 없다.”면서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이렇게 즐겁고 기뻤던 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새내기 대학생과 아기아빠 1인2역 문제 없어요” 예비 아빠 정우철(35)씨는 대림대 음향미디어과 1학년이다.5개월 뒤 예쁜 아기가 태어날 것을 생각하면 마음부터 설렌다. 한창 사회 활동을 해야할 나이에 대학에 입학한 정씨는 아기 아빠가 된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공부를 마치고 다시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씨는 대학생으로서,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 하나만큼은 대단하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잡았던 기타 덕분에 서른다섯 늦은 나이에 음향 전문가의 길을 가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다섯살 터울의 형이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마냥 멋있게만 보였다. 형 어깨 너머로 배웠던 기타가 정씨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셈. 고등학교 시절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모여 작은 그룹 활동도 했다. 스물세살 때는 공군 군악대에 자원해 갈 정도로 음악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정씨는 제대 후 기타 하나만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했다. 2001년 결혼과 동시에 음악을 접고 외국계 회사 직원으로 취직을 했다. 물리치료사인 아내와 아기자기하게 결혼생활을 즐기며 3년간은 잘 버텼다. 하지만 도통 마음 속에서 음악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정씨는 지난해 수능시험 도전을 결심했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공부했다.EBS 수능방송을 챙겨보며 집 앞 도서관에서 살았다.16년 만에 다시 시작한 공부는 더디고 어려웠지만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정씨는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래서 마음 고생도 덜했고 오히려 행복했다. 음향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된 지금 정씨는 비로소 숙원을 풀었다. “건물의 설계와 음향의 관계를 연구하는 이 분야가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하기 때문에 앞으로 개척할 곳이 많지요.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면 공부하는 것이 이렇게 신날 수 없습니다.” ●“배우지 못한 설움, 당당하게 딛고 일어나 사회봉사할 것” 충남 예산에서 4남6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이남수(37·여)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온전히 졸업하지 못했다. 스무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와 식당이며 인형공장에서 갖은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이씨는 언젠가 반드시 공부를 다시 하겠다는 절실한 마음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이씨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94년에 결혼하고 9년 만에 다시 고교 공부를 시작했다.2년제 고등학교인 일성여고를 다니며 꼭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각오로 수능시험을 준비했다. 잠잘 때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꿈을 꾸었을 만큼 간절하게 하고 싶었던 공부였기 때문에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 이씨는 지난해 명지전문대 사회복지학과 수시모집에 당당히 합격, 어엿한 05학번 새내기가 됐다.15∼17살이나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게 걱정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같은 학번 친구들과 언니·동생 하며 잘 지내고 있다. 이씨의 꿈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가난 때문에 공부하지 못했던 설움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씨가 대학 생활을 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됐던 사람은 바로 아들 김민수(11·초등학교 5년)군. 엄마 옆에 나란히 앉아 책과 공책을 펼치는 아들을 보면 공부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씨는 “대학에 처음 등교했던 그날의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조금씩 개척해 나가는 당당한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옴부즈맨칼럼] 청년실업과 미디어의 역할/박상건 서울여대 겸임교수

    청년실업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청년의 좌절과 사회적 단절은 공동체 문화의 피폐이며 국가 허브의 흔들림을 의미한다. 조국의 미래인 그들, 전국 대학생의 거의 절반인 56만 9000명이 휴학 중에 있다. 학기가 끝나면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지난해 6.7%였던 청년실업률은 8.6%로 뛰어올랐다. 지난 4월 한 대학신문의 조사에 의하면 대학생의 51.4%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같은 달 한강에서 자살한 한 휴학생의 유서에는 취직 고민이 배어 있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위험 수위를 알리는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와 조정과 통합의 공공저널리즘으로 사회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10개 종합일간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지난 1년간(2004년 6월4일∼2005년 6월4일) ‘취업’관련 보도는 총 978건이었다. 이 중 ‘대학생 취업’관련 보도는 590건이었다. 심각성에 비해 매우 적은 보도였다. 매체별로 보면 서울신문, 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 국민이 60건 이상, 나머지 신문은 48∼54건이었다. 이들 보도프레임을 분석한 결과 청년실업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설정)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이 대학내부의 경쟁력, 새로운 취업 백태와 풍속도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학생활 ‘취업을 위한 조건갖추기’로 변질” “순수 인문학 갈수록 도태” “졸업연기 ‘둥지족’는다” “고시촌 젊은이들 한탕에 물드는 모습 아쉬워” “대학생 87%, 현재 다니는 대학 불만” “도서관은 독서실이 아닙니다” “자기계발 하는 대학생 11.3%에 불과” 등 본질을 도외시한 부정적 접근의 기사도 적지 않았다. 반면에 문제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경우도 있었다.“대학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 “정부, 취업난 해결에 힘쓰길” “‘주먹구구’ 청년실업대책” “실업률 4년 만에 최고…절반이 청년실업” “‘백수’ 천지에 실업률은 3.5%?”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40개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분석” 같은 기사는 청년실업의 문제를 직접 찾아나서는 탐사보도의 모델을 보여줬다. 서울신문의 “‘25세 캔디소녀 서승주씨의 인생개척기’(2004년 11월20일),“구직 여성들 이색·틈새직업 노려라-미술심리치료사·마술사·헤리티지공예…”(2004년 11월24일),“천안 목천 여대생 100명 ‘취업전략 캠프’ 힘찬 함성”(2004년 8월28일) 등은 청년실업 극복기와 실질적인 취업정보를 전하는 공공저널리즘의 전형이었다. 이와 함께 “여름방학 잡으면 취업이 보인다”(2004년 6월14일)“취업난, 온라인 창업으로 극복”(2004년 7월14일) “중소기업 그곳에도 길이 있다”(2004년 9월23일) “여름방학 인턴·연수로 취업 터닦기”(2005년 5월9일) “대학생에 대한 편견 버리기를”(2005년 5월20일) “청년창업 성공의 기초는 자신감”(2005년 1월26자) “공모전’은 취업 지름길”(2005년 5월4일) 등의 기사도 미디어의 사회적 책무를 다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구호보다 구체적 대안이 필요한 때이다.60여개에 이르는 정부 부처와 위원회, 그 산하기관 그리고 유관기관과 단체가 업무특성에 맞는 범위 안에서 월, 연 단위 일자리 창출 목표를 세워 그 수치를 체크하며 국민의 지팡이 역할을 다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문제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취업부분, 산자부는 산업분야, 문화부는 문화예술인 자녀를 대상으로 일자리를 창출해나간다면 그 효과는 만만찮을 것이다. 각 자치단체도 실업률 낮추기 계획을 세워 동참하고 각 정당의 정치공약 공모전과 모니터단 확대는 물론 한국학술진흥재단, 한국언론재단, 한국문예진흥원 등이 대학·대학생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해 집중 지원하는 묘안을 짜낸다면, 한 방울이 강물이 되고 바다를 이룰 것이다. 이런 일은 미디어가 그 방향타와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지면에 사회와 사회를 잇는 별도 섹션을 마련하여 프로모션은 물론 국내외 취업 타개관련 탐사보도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배고픈 자의 희망은 빵이다. 지금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은 가능성에 대한 정열”이라는 사실을 실감시켜 주는 일이다. 박상건 서울여대 겸임교수
  • SEOUL iN 창간 1주년 뒷얘기

    SEOUL iN 창간 1주년 뒷얘기

    6월1일이면 서울신문의 수도권 섹션인 ‘서울인(Seoul in)’이 태어난 지 꼭 1년 된다. 종합 일간지가 지역을 특화한 섹션을 만든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인은 매주 화·금요일 수도권·쇼핑·교육·부동산 부문으로 나눠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법한 이야기들을 실었다. ■게재 기사로 본 ‘서울 인’ 1년 서울인은 3대째 서울에 살고 있는 ‘5%의 자부심 서울 토박이’,100년의 역사를 지닌 ‘광진구 능동의 청·장년회’ 등을 통해 서울 시민의 정체성을 짚어봤다. 또 ‘서울에도 집성촌이?’(중랑구 신내동·망우동 등),‘서울에도 농부가?’(강서구 가양동 등) 등 서울이라는 도심 이미지와 걸맞지 않은 이색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종합일간지서 소외된 ‘장외 뉴스’ 상세히 그런가 하면 도봉구 지하차도 건설, 마포구 지역 방송국 개설, 지하철역에 생긴 사찰, 구로구·금천구의 영토분쟁, 안양의 농촌 동편마을 등 동네에서 흔히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도 담았다. 이 덕분에 지역 밀착적인 기사들로 기존의 종합일간지에서 다루기에는 뉴스 가치가 적었던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 ‘지금 그곳은’이라는 코너는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범죄 장소였던 신촌의 원룸, 동인천의 호프집 화재참사 현장, 박정희 시해장소였던 궁정동 안가 등을 찾아다니면서 독자들의 뇌리에서 벗어난 장소가 어떻게 변했는지 점검, 서울인의 간판코너로 자리매김했다. ●서울 즐기기·소자본 창업 큰 도움 서울인은 ‘가족과 함께하는 성곽여행’,‘도심서 즐기는 숲속 봄나들이’,‘지하철 따라 외국문화 즐겨요’,‘노란버스 타고 남산을 즐겨요’ 등을 통해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서울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안내했다. 지난해 9월 3일자부터 지난 4월까지 연재됐던 소설가 송기원의 ‘뒷골목 맛세상’은 종로 피맛골, 성남 모란시장, 인천 차이나타운 등을 순례하며 지역의 저렴하고 이름난 맛집뿐만 아니라 지역에 얽힌 사연·소설 구절 등을 맛깔스럽게 소개했다. 또 소자본 창업희망자를 위해 만들어진 ‘성공시대’ 코너는 ‘우리 동네에서 손님이 들끓는 가게·노점에는 어떤 영업 노하우가 있을까?’라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천원의 행복’(온리원) 등은 방송을 타면서 매출이 급증하기도 했다. 또 ‘마니아’ 코너에 소개된 ‘삼겹살에 미친 그들’,‘청국장 냄새가 싫다고요?’,‘소주파·맥주파 술 마니아’ 등 이색 동호회가 인기를 끌었다. ●“의회·마니아면 독보적” 평가 일간지로서는 유일하게 서울인에서만 다루는 기사들도 있다. 시의회·구의회 활동을 정기적으로 소개하는 의회면과 각 구청 3만여명의 생활체육(마니아)면에 실리는 기사들이다. 이들은 각각 종합 일간지의 정치면과 스포츠면에 해당되는 셈이다. 의회면에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그대로 보여줄 뿐 아니라 서울시 택시요금·상수도 요금 인상 등을 다른 신문보다 앞서 내보내기도 했다. 또 구청의 꽃 4000여포기를 훔친 노원구의회 꽃도둑 의원은 화제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생활체육은 철저한 아마추어 스포츠를 다루면서 프로 스포츠의 기반을 다지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다.‘누드 브리핑’이라는 코너는 서울시청, 인천시청, 경기도 등 관가의 뒷얘기들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지방자치뉴스부 ■막내기자의 ‘서울 인’ 1년 꼭 백번째 만남입니다. 지난해 6월1일 첫선을 보인 서울인이 만 1년간 꼭 백번 독자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마치 여자친구와의 백일째 만남을 준비하는 느낌입니다. 첫번째 서울인을 내기 위해 준비를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누구에게도 생소했던 길이었습니다. 무엇을 취재해야 할지, 어떻게 지면을 꾸며나갈지 모두들 혼란스러웠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막내기자로 서울인을 맡게 된 저로서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취재가 꼼꼼하지 못하고 표나 지도를 빨리 구하지 못해 선배기자로부터 눈물 찔끔 흘리도록 혼났던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활 주변에는 생각보다 취재거리가 많았습니다. 지난해 여름 밤늦게 집 근처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며 가로등 관리실태에 대한 기사를 생각했습니다. 버스 타고 다니며 무심히 지나쳤던 옛 나산백화점 건물에는 숨겨진 뒷이야기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독자를 대신해 직접 체험해봐야 한다는 일념에 제 몸을 혹사시키기도 했습니다. 지압보도는 직접 걸어보니 정말 발바닥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T_T. 하지만 온몸에 퍼지는 마사지 효과만은 최고더군요 . 지난달 청계천 공사현장을 살펴본 뒤 황사와 공사장 먼지 때문에 며칠간 마른 기침을 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아직 서울인은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생활밀착형 기사를 지향하면서도 취재 여건상 회사와 출입처 부근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고민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모든 언론사가 정치·사회 등 거대담론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언론현실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서울인이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벌써 일년. 아직 갈 길이 먼 서울인입니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열리는 조기축구대회라도, 시골 5일장 누추한 반찬가게 이야기라도 소중하게 담는 서울인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서울 인’에 바란다 쇠도 칠수록 단단해 지는 법.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은 ‘한살배기’ 서울인이 꿋꿋이 자라날 수 있도록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시 출입 기자, 장학사 등 전문가 집단은 서울인이 좀 더 세련된 ‘차림세’를 갖출 것을 당부했다. 전 서울시 출입 기자로 1년 동안 서울인을 지켜봤던 연합뉴스 이율 기자는 “한국에서 타블로이드판에 대한 신뢰도는 대판에 비해 여전히 떨어진다.”면서 “이 때문에 풍성한 서울인의 콘텐츠가 독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다가가는 게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또 “‘택시 T-머니 인식기 설치’,‘한강 주변 개발’ 등 단독 기사들이 잡지의 성격인 서울인에 실리면서 속보성이 떨어지곤 했다.”면서 “늦게 싣더라도 좀 더 풍성하게 쓰거나 본지에 실렸으면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서울시 교육청 심영면 장학사는 “서울인을 좀 더 화려하게 만든다면 일선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장점이 더욱 살아날 것”이라면서 “또 일선 학교에서도 쉽게 서울인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내용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지역지’답게 생활밀착형 기사를 더 비중있게 실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시 한문철 언론담당관은 “주5일제가 시행됐지만 주머니가 얄팍한 서민들이나 공무원들은 딱히 갈 곳이 없다.”면서 “인터넷에 중구난방식으로 있는 지역 정보를 문화, 체육, 복지 등 주제별로 정리해서 소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J홈쇼핑 홍보담당 전성곤 주임은 “젊은 계층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유통을 더욱 선호한다.”면서 “백화점, 할인점, 재래시장 등 오프라인 시장 위주로 나가고 있는 유통면에서도 온라인 부문에 관심을 기울이면 가독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반 시민들도 더 재미있으면서도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서울인을 주문했다. 주부 권오열(57·오금동)씨는 “만화나 소설 등을 싣는다면 전체적으로 더 흥미로운 지면이 될 것”이라면서 “딱딱하고 어려운 행정이나 의회 기사를 쉬우면서도 심층적으로 보도해달라.”고 말했다. 대학생 박미리(23·여·고려대 컴퓨터학과 4년)씨도 “주말매거진 ‘We’에 비해 기사가 많고 지면이 빡빡하다는 느낌”이라면서 “시원한 편집으로 내용을 다루면 독자의 눈에 더욱 잘 띌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대학 명물거리’ 등 대학가를 다룬 기사나 각종 아르바이트, 취업 정보 등도 소개해달라.”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시민기자로 활동해보니… 서울신문과 시민기자로 연을 맺은 지 1년. 전업주부로만 지내온 내겐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나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첫 기사로 ‘우리동네 이야기’에 상계1동을 소개했다. 집값은 싼 편이지만 수락산을 정원처럼 끼고 있어 마음이 넉넉하고 정감 넘치는 동네라는 취지였다. 주민들이 좋아할 거라 기대했는데 집값 싸다는 말은 뭐하러 했느냐는 빈축을 샀었다. ‘수락 파크빌’ 아파트가 원래 이름을 바꿔 집값이 급등했다는 기사를 쓴 뒤였다. 한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서 내가 쓴 기사 내용과 똑같은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내가 쓴 기사가 ‘특종’을 한 것 같은 기꺼움에 젖었던 기억이 새롭다. 도봉구 창4동과 창5동을 잇는 지하차도 공사설명회를 취재했을 때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발로 설명회장이 성토장으로 변하고 중재에 나선 구의원도 쫓겨나는 마당에 취재하는 게 발각되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민기자만이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내 사진도 찍고 메모도 한 뒤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보낸 글이 실리지 않거나 많이 수정돼 실렸을 때는 허탈하기도 했다. 다시는 쓰지 않겠노라 다짐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새 습관이 됐는지 조금만 색다른 일만 보아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북한산 아이파크 아파트만의 작은 행사인 ‘마을사랑’이 기사로 나간 뒤의 반향도 잊을 수 없다. 마을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 온 것이다. 정중히 사양했지만 그 흐뭇함만은 오래도록 고마웠다. 수필을 써오던 터라 글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사회생활이 적어서인지 처음 보는 사람과의 인터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명함도 없이 말로만 서울신문 시민기자라고 소개하자니 언론을 빙자해 허세부리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든 적도 있었다. 원고료도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탄탄한 ‘언로’를 가지고 있다는 자긍심에 다시 힘을 내곤 했다. 세상에는 크고 굵은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낙숫물에 바위 뚫린다는 말처럼 큰 사건 뒤 가려진 생활속 작은 희로애락이 서민의 삶에는 더 큰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서울신문사가 ‘서울인’을 통해 그런 작은 삶에 눈과 귀를 열어준 것에 고맙고 나도 한몫 거들었다는 자부심으로 지난 1년을 되돌아본다. 이병숙 시민기자 주부·수필가 ■지역신문 전문가가 본 ‘서울 인’ 우리나라를 ‘서울공화국’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이기 때문이다. 신문도 그렇다. 서울에서 10개가 넘는 종합일간지가 발행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 때문에 지역 언론이 고사했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면 서울 시민들은 행복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서울 시민들도 자기가 사는 지역 소식을 얻기 힘들다. 지난 선거에서 뽑았던 국회의원, 구청장, 구의회 의원들이 무슨 활동을 하고 있나. 동네 앞에 파헤쳐진 공사판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언제까지 진행될 예정인가. 집에서 멀지 않는 곳에 내가 주말을 이용해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이 발달돼 정보가 넘쳐난다고 한다. 정보는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중요한 것을 골라 주어야 한다. 구청마다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민원 안내나 홍보성 정보를 빼면, 실생활과 관련된 지역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전국’이 강조되면서 ‘지역’이 소외되고 있다. 그것은 서울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서울신문의 수도권 섹션 ‘서울 인’은 아주 좋은 시도였다. 단순한 섹션이 아니라 타블로이드 판의 독립된 신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서울 인’이 제공하는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쇼핑, 문화행사, 나들이 등에 관한 정보로 서울 시민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가 더 풍부해진 것은 사실이다. 서울을 더 잘 알 수 있는 다양한 정보와 서울과 수도권의 시정(市政)에 대한 뉴스와 논평도 유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서울 인’은 한 단계 도약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 나는 ‘서울 인’이 서울신문의 한 섹션이 아니라, 서울 시민을 위한 독립적인 주간지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립적인 제작진이 바람직하다. 현재 ‘서울 인’의 내용은 일반 신문의 문화, 부동산 섹션 등이 다루는 내용 중에서 서울과 수도권과 관련되는 것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하고 있어, 서울 시민의 서울 지역에 대한 정보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나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신문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역성에 있다고 본다. 지역 정보와 지역에 기반한 광고가 아니고는 다른 미디어와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신문이 이러한 전환을 시도해나가는 데 있어 ‘서울 인’이 좋은 모델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 “아기업고 등교 하세요”

    “아기업고 등교 하세요”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강미란(30)씨는 임신부다. 임신 8개월의 몸으로 학교에 다니는 강씨는 결혼 4년 만에 생긴 귀한 아이에게 항상 미안하다. 보통 새벽 2∼3시까지 과제를 작성해야 하고 극도의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리다보니 만에 하나 태아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걱정이다. 하지만 강씨가 더욱 염려하는 것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이를 맡겨둘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강씨는 “공부하는 여성들을 학자 지망생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자기만족이나 학위 욕심을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공부만 해도 버거운데 임신·출산·육아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석사과정 강혜원(28)씨는 한 살난 딸을 둔 아기 엄마다.2002년 대학원에 입학해 이듬해 결혼, 지난해 딸을 낳았다. 임신과 출산으로 보통 4,5학기만에 마치는 석사 과정을 7학기째 다니고 있다. 강씨는 지도교수의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휴학도 할 수 없었다. 작년 6월 딸이 태어난 뒤 방학을 이용해 산후조리는 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석사논문을 쓰고 있다.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할 때가 많아 딸에게 제때 모유를 먹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매일 아침 불어난 젖을 짜내 냉동시켜 놓고 먹이고 있는 강씨는 “공부하는 엄마 만난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공부하는 여성들의 육아문제 해결에 대학들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세대는 이르면 내년부터 학교 안에 보육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올해 초 구성된 연세대 여성특별위원회가 8월까지 직장 보육시설 설립안을 마무리하고 실질적인 설립 업무를 시작한다. 지난해 1학기 대학원 재학생 수는 6127명. 이 중 36.7%인 2249명이 여성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학원생들의 6세 미만 자녀 수는 모두 189명. 대학이 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앞서 지난해 9월 연세대 여성인력개발연구원은 ‘엄마학생’들을 위해 모유를 짜서 냉장고에 보관할 수 있는 2평 크기의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임신·육아가 일부가 아닌 전체 대학원생의 문제인 이화여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 재학생 수는 2276명. 이화여대는 지난해 10월 아이 둔 학생들을 위한 ‘이화 어린이집’ 착공식을 가졌다.740여평 규모로 이르면 올해 말 완공된다.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탈바꿈하려는 서울대는 1998년부터 재학생과 교직원을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해 왔다.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어린이집은 6세 미만 어린이 213명을 돌보고 있다. 이 중 52.1%에 해당하는 111명이 대학원 재학생 자녀다. 하지만 서울대 전체 대학원 재학생 1만 455명 중 40.7%(4258명)가 여성인 것을 감안하면 어린이 보육시설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보육문제 해결에 대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도 아니다. 고려대 대학원총학생회 곽이경(27·사회학과 석사과정) 부회장은 “대학원생을 위한 영·유아 보육시설을 만들어달라고 10년째 학교측에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측은 요지부동”이라면서 “아이 키우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학교측의 무성의에 보육시설에 대한 기대는 거의 접었다.”고 말했다. 전국여교수연합회는 공부하는 여성들을 위한 대학내 보육시설 활성화에 관한 세미나를 다음달 3일 개최한다. 이경희(경희대) 회장은 “여교수 비율이 늘고 교수의 평균연령이 낮아지면서 출산과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교수, 강사, 대학원생들이 많다.”면서 “대학내 보육시설 설치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위기의 전문대] (상) 무엇이 문제인가

    지방 전문대인 K대는 지난해 지방대학혁신역량강화(누리·NURI)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올해 학생 충원율이 교육부와 약속한 86%에 미치지 못해 지원금이 깎이게 됐다. 주변에 대규모 공업단지가 많아 취업이 잘 되는 편이지만 지원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탓이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학생들을 물건 사듯 유치해야 하는 우리들은 교수라고 할 수도 없다.”면서 “교수와 교직원까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밖으로 내몰려 자긍심은 잃어버린 지 오래”라고 하소연했다. 또 “지난 25일 열린 전문대 교육혁신 결의대회에 나온 교육부 간부들조차 현실을 잘 모르고 있더라.”면서 “어제 교수들에게 돌을 맞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S보건대 임상병리과 3학년 김기정(24)씨는 요즘 4년제 대학 편입학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임상병리 전공자가 넘쳐나 취업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자격증을 따서 취직한다고 해도 4년제 대학 출신자들과 봉급과 대우에서 큰 차이가 나는 탓이다. 김씨는 편입에 실패하면 방송통신대에 편입해 학사학위만은 꼭 받을 생각이다. 전공은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같은 전공자들이 4년제 대학에서도 쏟아져 나와 낭비인 줄 알면서도 학사학위는 꼭 따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대가 3중고를 겪고 있다.4년제 대학이 늘면서 전문대 지원자가 크게 줄어든데다 4년제 대학이 전문대가 개발해 놓은 인기학과를 ‘도용’하는 탓에 취업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다. 어렵게 유치한 학생들조차 4년제 대학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빠져 나가고 있다. 이같은 현실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교육부가 최근 15개 안팎의 연구중심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4년제 대학은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중심대학으로 키운다는 대학 구조개혁 방안을 내놓으면서 전문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놓였다. 그나마 유지해오던 4년제 대학과 차별성마저 잃어버릴 위기에 빠진 것이다. 최근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가 밝힌 직업교육혁신 방안도 실업고 위주의 대책만 포함돼 전문대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학생 충원율이 점점 떨어지는 것은 가장 큰 고민이다. 지방의 D대는 해마다 곤두박질치는 충원율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이 대학 교학처장은 “5년 전만 해도 90%대를 유지했지만 올해는 70%대로 떨어졌다.”면서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 같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지방의 또다른 K대 교무주임은 “이공계열의 경우 충원율이 50∼60%도 안된다.”고 털어놓았다. 전문대 지원자는 최근 5년 동안 크게 줄었다. 지난 2001학년도 1.56%에 불과했던 전문대 미충원율은 2003년 17.61%로 급증한 뒤 2005학년도 17.66%로 꾸준히 늘고 있다.4년제 대학의 미충원율이 같은 기간 5.38%에서 10.10%로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취업률도 걱정이다.2001년 81.0%를 기록한 취업률이 매년 조금씩 줄어 지난해에는 77.2%까지 떨어졌다. 전문대 관계자들은 4년제 대학에서 전문대 인기학과와 비슷한 학과를 앞다퉈 개설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4년제 대학이 개설한 전문대 관련 학과는 27개 대학 21개에 이른다. 안경광학과, 방사선과, 치위생과, 귀금속세공과 등 전문대의 전통적 인기학과들이 4년제 대학에 속속 개설됐다. 그러나 전문대가 이에 맞서 교육 과정을 늘릴 수는 없다. 수업 연한이 고등교육법에 따라 2∼3년으로 묶여 있는 탓이다. 이같은 현실에서 전문대 졸업생들은 편입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학사학위도 받지 못하고 돈만 들어가는 전문대 3년제 과정을 마치느니 사회적 대우를 받는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거나 대입 시험을 다시 치르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다. 지방의 K대 관계자는 “4년제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그만두는 학생이 정원의 10% 정도에 이른다.”고 밝혔다. 서울보건대 문희주 부학장은 “전문대 재학·졸업생의 편입학 비율은 30% 이상이며, 특히 4년제에 중복학과가 많은 간호·보건계열은 70% 이상이 편입학을 택한다.”면서 “같은 학점을 이수하고 자격증까지 똑같이 따도 취업현장에서는 학사를 선호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편입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천 이효용기자 patrick@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0) 현대판 정본 정감록의 배후를 찾아라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0) 현대판 정본 정감록의 배후를 찾아라

    일본인 호소이 하지메의 손끝에서 이른바 현대판 ‘정본(正本) 정감록’이 탄생했다(연재 19호 참조).1923년 이후 출판된 정감록은 예외 없이 호소이의 동경판 정감록에 실린 25종의 비결을 사실상 그대로 옮겨 싣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호소이는 과연 어디서 무얼 보았기에 감히 정감록의 정본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까? ●정본 정감록의 대본은 규장각에 1980년대 중반 이민수는 정감록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에는 정감록의 원본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좀더 정확히 말해,‘감결(鑑訣)’‘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東國歷代氣數本宮陰陽訣)’‘역대왕도본궁수(歷代王都本宮數)’‘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記)’ 등 네 편의 비기가 규장각에 있다고 했다. 나는 동경판 정감록의 대본을 찾기 위해 규장각으로 달려갔다. 그 때가 1997년 8월이었다. 필사본 ‘정감록’이 도서번호 12371번으로 분류돼 있었는데 이민수가 말한 바로 그 책으로 보였다. 그의 말대로 방금 말한 4종의 비결이 한 권으로 묶여 있었다. 그 내용을 자세히 비교해 보았다. 호소이의 동경판과 거의 일치했다. 나는 규장각의 필사본 정감록이 동경판의 대본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슬며시 일어난다. 이 필사본은 언제 어떤 경로를 거쳐 규장각에 들어왔을까? 알다시피 규장각은 명군으로 알려진 정조가 대궐 안에 세웠다. 그것도 즉위하던 1776년에 말이다. 다른 기능도 가지고 있었지만 규장각은 일차적으로 왕립도서관의 구실을 했다. 만일 문제의 필사본이 처음부터 규장각에 비치된 문서였다면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 된다. 조선후기 왕실이 정감록을 소장했다는 뜻이 되고 그러면 정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들도 읽었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조바심을 억누르며 필사본 정감록의 겉장을 들추었다. 첫 장 윗부분에 큼직한 도장 하나가 찍혀 있다.‘조선총독부도서지인(朝鮮總督府圖書之印)’이라고 했다. 잠시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 상황을 미루어 짐작했다. 이 필사본은 본래 식민지시대 조선총독부가 소장했단 뜻이 틀림없지 싶다. 필사본 정감록은 일단 조선후기 왕립도서관 규장각과는 직접 인연이 없는 것으로 단정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총독부 도서가 어떻게 해서 규장각 도서로 변신했을까? 필사본 첫 장 왼쪽 머리 부분에 또 다른 인장 자욱 두 개가 선명한데 거기 답이 있다.‘경성제국대학도서장(京城帝國大學圖書章)’과 ‘서울대학교도서(大學校圖書)’라는 인장 말이다. 연달아 찍혀 있는 도장의 내용으로 미루어 이 필사본의 역사는 대강 이러했다. 처음엔 조선총독부의 도서로 등록됐다. 호소이가 동경판 정감록을 출판한 것은 1923년, 그 때만 해도 이들 필사본은 조선총독부의 소장 도서였다. 그 뒤 1926년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었고 필사본은 어느 해엔가 대학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그리곤 1945년 해방을 맞아 경성제대의 후신인 서울대학교로 주인이 바뀌었다. 현재 규장각 도서를 자세히 살펴 보면 호소이가 참고한 또 다른 비결들이 있다. 이민수가 언급한 4종의 필사본 외에도 나는 또 다른 4종의 비결들을 찾을 수 있었다.‘남사고비결(南師古訣)’‘도선비결(道宣訣)’‘무학비기(無學記)’및 ‘북창비결(北窓訣)’이 그것이다. 물론 모두 필사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용이 호소이의 동경판 정감록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규장각에 보관되기까지 경위도 이미 앞에서 말한 필사본 정감록과 똑같다. 이런 식으로 이른바 정본 정감록 25종 가운데 8종의 정체는 확인된 셈이다. 요컨대 1923년 동경판 정감록을 출간할 당시 호소이는 조선총독부에 소장되어 있던 필사본을 대본으로 사용했다고 봐야 한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런 일은 총독부와 긴밀한 협의가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본다. 그럼 규장각에 남아 있는 8종의 비결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머지 17개의 비결은 또 어떤 유래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호소이의 동경판 정감록의 원고를 찾아서 호소이가 참고했을 법한 비결 책들을 찾느라 나는 한 동안 규장각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마침내 그러던 어느 날 중요한 문건이 또 하나 발견됐다. 호소이의 동경판과 표지 제목이 똑같은 ‘비결집록’이란 필사본이었다. 전통적인 책자 형태로 장정된 이 필사본은 본래 경성제국대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었다. 거기엔 비결 25편이 수록되어 있었다.‘감결’‘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역대왕도본궁수’‘삼한산림비기’‘무학전’‘오백논사’‘오백논사비기’‘도선비결’‘정북창비결’‘남사고비결’‘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서산대사비결’‘두사총비결’‘피장처’‘화악노정기’‘북두류노정기’‘구궁변수법’‘옥룡자기’‘경주이선생가장결’‘삼도봉시’‘무제’‘서계이선생가장결’‘토정가장결’‘이토정비결’및 ‘갑오하곡시’가 차례로 나와 있다. 나는 이 필사본을 한 장씩 넘겨 보다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이 필사본은 제목도 편집 순서도 그리고 내용까지도 호소이가 펴낸 동경판 정감록과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전 일치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필사본에 무슨 글자를 썼다가 나중에 고친 부분들이 간행본에는 고쳐 쓴 모습 그대로 인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도 있는가? 혹시 이 필사본은 동경판 정감록의 원고라도 되었단 말인가? 동경서 나온 정감록의 원고가 어떻게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에 보관됐을까? 미스터리의 연속이다. 여러 날 나는 이 문제로 골치를 썩였지만 끝내 의문을 다 풀지 못 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해 보였다. 이 필사본은 호소이의 원고일 가능성이 무척 크단 점이다. 이미 지난 호에서 알아본 대로 1923년 호소이는 동경에서 정감록을 간행했다. 그 당시 한국 유일의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이 그 책을 구입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동경판을 베껴 필사본으로 간수해야 될 어떤 이유도 나는 발견하지 못한다. 뿐인가. 필사본엔 원고를 수정한 흔적이 역력하고 수정된 사항이 인쇄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 기막힌 일이다. 그래도 아직 단정을 내리기엔 이르다. 이 필사본엔 동경판에 부록으로 실린 10편의 비결들이 하나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정감록에 대한 호소이의 비판이 빠져 있다. 그러면 이 원고는 역시 동경판 정감록의 발췌본이란 이야긴가? 그렇게 보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제국대학 도서관이 왜 하필 본문만 애써 옮겨 쓴 필사본을 소장한단 말인가? 아직 호소이가 부록과 서문을 작성하기 전에 편집한 본문 원고로 보면 문제는 풀린다. 나의 이런 짐작이 옳다면 위에 열거한 25편의 비결은 무엇인가 공통점이 많아야 한다. 본문이 부록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비결의 내용이 문제일 수도 있다. 비결의 수집 또는 편집 주체를 기준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총독부가 소유한 텍스트는 본문, 그렇지 않고 개인이 소장한 비결은 부록이란 구분도 있을 법하다. 나의 짐작은 맞았다. 뒤에 보듯 본문에 실린 25개의 비결은 모두 총독부가 관리하던 것이었다. 알고 보면 호소이의 동경판은 아유가이의 원고를 베낀 것이다 그렇다 해도 두어 가지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조선총독부가 25종의 비결을 입수하게 된 것은 과연 언제였으며, 이 비결들을 편집 또는 변형시킨 장본인은 누구인가?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만 비로소 동경판 정감록의 비밀이 드러났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 끝에 나는 우리나라 주요 도시에 있는 도서관들을 순방하기로 했다. 천안, 대전, 대구, 부산, 전주, 광주를 둘러 보았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 다시 서울의 도서관들을 뒤졌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뜻밖의 문서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또 하나의 필사본 ‘정감록’이 발견된 것이다. 그 첫머리에는 호소이의 정감록 비판은 오간 데 없었고, 대신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란 일본인의 해제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 일본 사람이 해제를 쓴 것은 1913년(大正2년) 2월. 호소이가 동경에서 정감록을 간행하기 10년 전 또 다른 일본사람이 정감록을 편집했던 것이다. 일제 초기부터 한 일본인이 서울에서 정감록을 연구하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아유가이 후사노신은 누구인가? 그는 러일전쟁(1904∼1905)이 끝나자 공로가 인정되어 훈장을 받은 일본제국의 ‘애국자’였다. 이미 1884년 동경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학’을 공부했고 학교를 마치자 바로 한국에 건너왔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했으니 우리 입장에서 보면 ‘원수 같은 왜놈’이다. 그런 아유가이는 경부철도부설 등에 종사해 벼락부자가 됐고, 그 돈으로 한국의 고미술품과 서적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일찌감치 1902년 오오에 타쿠(大江卓), 마에마 교우사쿠(前間恭作) 등과 더불어 학회를 조직하여 한국문화를 ‘연구’했다.‘어리석은 한국인을 지도 계몽’할 목적이었다. 아유가이는 조선총독부가 사적을 조사할 때 위원이 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여러 주제에 대해 글도 많이 썼다. 일본의 대표적인 어용학자 아유가이가 정감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럼 언제였을까? “내가 메이지 초년(明治 1868∼1911)에 한국으로 건너왔을 당시부터 이미 여러 차례 귀에 익숙하게 예언설(讖言)이 들렸다.”고 하였다.1880년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아유가이는 정감록에 주목했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는 각종 예언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다.“성세(聖歲, 경술년 1910년)에 한양(조선왕조를 상징)의 운수를 보니 옮겨서 붉은 해(紅日, 일본) 아래로 간다(일본에 망한다는 뜻).”는 예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1913년 아유가이가 편집한 정감록은 ‘감결’‘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역대왕도본궁수’‘삼한산림비기’‘무학전’‘오백론사’‘오백론사비기’ 등으로 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그가 편집한 정감록은 필사본 ‘비결집록’과 순서도 똑같고 내용도 같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두 필사본의 편집 형태마저 동일하단 점이다. 각기 맨 앞에 실린 ‘감록’을 보면 한 쪽이 10줄로 구성돼 있고 줄마다 20자씩으로 되어 있다. 두 필사본은 모든 글자의 위치가 완전히 일치한다. 이러한 몇 가지 사실로 미루어 호소이의 동경판 정감록은 총독부가 소장했던 비결을 대본으로 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10년 전에 편집된 아유가이의 원고를 베끼다시피 했다고 본다. 아유가이는 왜 호소이에게 출판을 양보했을지 의문이다. 당시 아유가이는 학자로서 이름이 꽤 난 편이었다.‘고명하신’ 학자께선 정감록 따위의 잡서에 관한 일로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좀더 ‘싸구려’인 언론인 출신의 호소이에게 양보했다? 자세히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현대판 ‘정감록’은 아유가이로부터 시작되었다? 혹시 아유가이야말로 당시 조선총독부가 소장했던 여러 종류의 비결을 수집 정리한 사람이 아닐까? 아유가이의 필사본 27쪽 왼쪽 가장자리에 이런 메모가 있다.“(총독부) 학무과 분실에 있는 ‘정감록’에는 정말 이렇게 기록돼 있다.”고 되어 있다. 그 다음 쪽 오른편 가장자리에도 “학무과 분실에 있는 무학기에는 (이하 대여섯 자 해독불가) 무학전, 오백론사, 오백논사비기의 세 책이 포함돼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이 명백해진다. 첫째,1910년대 초반 총독부 학무과에는 아유가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노력을 통해 이미 많은 비결이 수집 정리돼 있었다. 둘째, 이것을 토대로 아유가이는 현대판 정감록을 편집했다. 정리하면 본래 총독부 도서였다가 우여곡절 끝에 현재 규장각으로 이관돼 있는 비결들은 아유가이가 참조했던 문서들이었다. 아유가이가 이용한 총독부 소장본 가운데 뒷날 ‘감결(鑑訣)’로 알려진 비결이 실은 1910년대 초반까지는 ‘정감록’으로 불렸다. 이런 사실은 현재 남아 있는 연대 미상의 한글 필사본 비결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한글판 비결의 제목은 정감록이라 돼 있는데 내용과 구성 면에서 보면 한문본 ‘감결’과 대강 같다. 따지고 보면 아유가이가 총독부 소장문서를 참조해 ‘정감록’을 편찬하던 당시에는 ‘감결’이란 이름이 아직 없었다. 감결이란 명칭은 아유가이의 창안품이었다. 그는 총독부가 소장한 다양한 비결을 하나로 묶으면서 ‘정감록’이라고 했다. 그 때 한국의 예언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이었기 때문이다. 책 이름을 이렇게 정하고 나자 여러 종류의 다른 비결들과 본래의 정감록을 구분할 필요가 생겨났다. 아유가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감의 비결’이라는 의미로 ‘감결’이란 새로운 제목을 만들었다. 그러면 아유가이는 무슨 이유로 정감록을 편찬했는가? 항상 그가 군국주의 일본제국의 입장에 서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그러면 대답은 명료해진다. 일제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은 정치 사회적 혼란의 진원지였다. 그들은 정감록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나아가 정감록의 파괴력을 소멸시킬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일본제국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아유가이가 그 일에 앞장섰다. 그는 이미 총독부 학무과가 수집, 정리 그리고 변조해 놓은 여러 종류의 비결을 재정리했다. 그가 필사본 가장자리에 남겨 놓은 메모를 보더라도 증명되는 사실이다. 그의 메모를 자세히 살펴 보면 20세기 아유가이가 편집한 현대판 정감록의 특징이 뚜렷이 드러난다.1910년대 초반까지 ‘정감록’은 아유가이가 ‘감결’이라 명명하게 되는 바로 그 비결이 본체에 해당했다. 거기에 세편의 부록이 추가됐다.‘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역대왕도본궁수’및 ‘삼한산림비기’가 덧붙여진 것이었다. 당시엔 중요한 비결이라면 본문과 몇 개의 부록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무학비결도 그런 경우였다. 유명한 비결은 본문과 부록으로 편성되게 마련이었다는 점은 1923년 호소이가 내놓은 동경판에서도 증명된다. 호소이는 정작 서문에서 그 점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목차를 보면 본문과 부록의 차이가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예컨대 ‘무학전’이라는 비결 제목에 이어 좀더 자잘한 활자로 한 칸 낮추어 ‘오백론사’와 ‘오백론사비기’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 식이다. 이처럼 비결들 상호간에는 주종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부록과 본문을 구별하는 태도는 김용주가 편찬한 한성판부터 점차 애매해진다. 김용주는 총 51편의 비결을 7편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는데 본문과 부록의 구별이 없었다.1930∼1940년대에 출간된 경성판에 이르러서는 전체를 몇 개의 편으로 나누는 관행조차 사라졌다. 이 책에 수록된 모든 비결은 정감록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경성판에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현병주의 입장은 해방 이후 출간된 모든 정감록 번역서들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한 마디로 요약해서, 정감록에 대한 인식은 일제시기인 1910년대부터 달라졌다. 그 변화는 총독부의 비호와 사주 아래 어용학자인 아유가이가 주도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가 ‘정감록’이라 하면 아유가이나 호소이의 정감록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일제는 정감록을 독립운동을 비롯한 ‘사회 혼란’의 기폭제로 경원시했던 것인데 알게 모르게 그 잔재가 여태 남아 있다. 문득 씁쓸한 생각이 든다.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운동장조회…조개탄난로…교육 100년 사진전

    운동장조회…조개탄난로…교육 100년 사진전

    ‘하얀 저고리, 검정 치마의 순박한 여학생, 개구쟁이 학생들의 운동회, 길게만 느껴졌던 운동장 조회….’ 어렴풋이 추억 속에 담아놓았던 지난 학창시절이 그리운가요. 그럼 경기도 고양시에 들러 보세요. 한국 교육의 지난 100년을 돌아볼 수 있는 ‘한국교육 100년 사진전’이 다음달 1일부터 14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서 열린다. 서울신문사와 교육인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교육개발원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2005 교육·인적자원혁신박람회’의 하나로, 우리나라 교육 100년의 역사 자료 수집을 위해 마련됐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공모한 700여점 가운데 1900년대 이후 교육 현장의 생생한 순간을 담은 귀한 사진 100여점을 선보인다. 대상에는 이주춘씨의 ‘시험치는 날’(1975년)이 선정됐다. 짝꿍 사이에 커닝을 못하도록 책가방을 세로로 놓고 문제를 푸느라 끙끙거리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았을 듯한 기억으로 시험 부정에 대한 고민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서울여상의 ‘즐거운 점심시간’(1930년)과 서울 삼육초등학교의 ‘운동회 조회’(1923년)는 우수상으로 뽑혔다.‘즐거운 점심시간’은 길게 머리를 땋아내린 여학생들이 밥 소쿠리를 가운데 놓고 얌전히 식사하는 장면을 담았다. 당시 사진들이 대부분 기념사진 형태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 여학생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사진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운동장 조회’는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치마저고리, 교복과 비슷한 옷 등 당시 초등학생들의 다양한 옷차림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눈길을 모은다. 장려상에는 김정희씨의 ‘미술시간’(1956년)을 비롯해 정지연씨의 ‘난로가 있는 정겨운 교실풍경’(1960년), 서울여상의 ‘주산 수업시간’(1981년), 김태우씨의 ‘벌’(2004년), 서울 계성초등학교의 ‘계성만세’(1925년) 등 5점이 선정됐다. 입선작으로는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은 경남 진주 중안초등학교의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학교 졸업생’을 비롯한 31점이 뽑혔다. 사진전을 포함한 2005 교육·인적자원혁신박람회에 대해 궁금한 사항은 박람회 홈페이지(www.eduexpo2005.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독자의 소리] 원자력발전 활성화해야/박희철

    원유 값이 오를 때마다 정유회사들은 자동차에 넣는 휘발유와 경유 값을 올려 받고 있으며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만약 원유 값이 오를 때마다 전기요금을 올려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정책당국자들은 빗발치는 수용가의 비난에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전은 ‘2015년 중장기전략경영계획’에서 원가연동 요금체제를 도입하여 유연탄·석유 등 발전연료가격이 상승하면 전기요금을 따라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는 지난해 유연탄 수입비용이 전년대비 약 66%나 상승하였기 때문이다. 매장량이 유한한 화석연료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며,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온실가스 발생의 부담도 경시할 수 없다. 따라서 그간 막연한 불안감과 혐오의 대상이 돼 온 저비용·친환경 원자력발전의 가치가 뒤늦게나마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1997년에 합의한 이후 7년 만에 교토의정서가 발효된다. 교토의정서는 폭서, 가뭄, 태풍, 홍수 등 기후 재앙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기 위한 협약이다. 온실가스의 대부분은 이산화탄소로서 주로 화석연료의 연소시 배출된다. 우리나라는 2013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8년 전(1995년)의 95%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2013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올해 배출량의 70% 수준이 되도록 맞춰야 하고 이 경우 한전은 우리나라 6대 도시가 한 해 동안 소비하는 만큼의 화력 발전을 줄여야 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산자부와 전력회사들은 신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풍력, 조력, 태양력 등 대체에너지들은 아직 전기 생산원가 면에서 실용적이지 못하다.2004년 말 기준으로 풍력은 원자력발전 원가의 3배, 태양광은 21배에 달한다. 이것은 장래에 화석연료를 대신하여 신 재생에너지를 쓸 경우 훨씬 많은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정을 볼 때 사실상 택할 수 있는 대안은 원자력발전의 활성화가 아닌가 한다. 원자력발전은 온실가스의 배출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안보에도 유리한 준 국산에너지원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2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으나 필수시설인 수거물 관리센터 건립에 있어서는 소모적인 논란만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원유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환경규제는 우리의 목을 옥죄고 있는데 국내의 몇 안 되는 환경론자들은 원자력발전 폐지를 주장하고 있어 안타깝다. 다행히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수거물 관리센터 유치를 위해 뛰고 있다는 보도를 보니 우리나라 에너지 현실을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운 생각이 든다. 부디 지역적, 국민적 합의를 거쳐 지역과 국가가 공생, 발전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희철
  • [서울광장] 지금 가계대출에 무슨일이…/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지금 가계대출에 무슨일이…/우득정 논설위원

    요즘 금융권의 화두는 ‘블루 오션(푸른 바다·Blue Ocean)’이다. 물고기 한 마리가 평화롭게 놀고 있는 블루 오션에 물고기떼가 몰려와 한정된 먹이를 먹어치우면 그 바다는 금방 ‘레드 오션(붉은 바다·Red Ocean)’으로 바뀐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블루 오션에는 한국씨티은행 출범과 더불어 촉발된 은행권의 무한경쟁으로 개인대출시장이 레드 오션으로 바뀌면서 안정된 수익원을 바라는 은행권의 염원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블루 오션이 없다.”는 말로 은행권의 과당경쟁을 경고한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중 85%가 시장금리에 따라 이자가 바뀌는 변동금리형인 탓에 가계대출 과당경쟁은 금융불안을 불러올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케네스 강 국제통화기금(IMF) 서울사무소장은 지난 18일 열린 유로머니 콘퍼런스에서 한국 경제가 회복하려면 내수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가계부채 조정이 경제회복의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신용불량자 구제대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늘어난 소득이 소비로 연결되는 선순환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경쟁을 부실위험 징후로 파악하는 반면 IMF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소비 회복의 필요조건인 것처럼 해석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 가계대출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이처럼 상반된 처방이 내려지고 있는 것일까?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친 가계신용 잔액은 카드사의 길거리 모집 등에 힘입어 2000∼2002년 연평균 24.7∼28.5% 급증했다. 외상 버블은 신용불량자 양산과 내수 침체로 이어졌다. 당국의 개입으로 가계 채무조정에 들어가면서 가계신용 증가세는 2003년 1.9%,2004년 6.1%로 급락했다. 그러나 올 들어 은행권이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하면서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18개월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하는 등 과열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대출 증가가 서울 강남의 재건축단지에 대한 대규모 대출에 기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4∼5년 전처럼 대출이 집값 상승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붙들어 매고 있는 저금리 기조가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유동성 과잉 공급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집값을 잡기 위해 세정(稅政)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는 당국으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경고음 발령이라고 볼 수 있다. 금리나 통화가 이미 경기조절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이상,‘행정지도’라는 전가의 보도를 빼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이자 부담에 대한 국민의 감각이 무뎌진 것도 감안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경제 회복의 관건인 내수를 살리려면 대출의 물꼬를 마냥 죌 수도 없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정부가 돈줄 역할을 하기에는 벌써 추경 편성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벌여놓은 사업이 많다. 가계대출 증가를 소비 회복의 신호로 반기면서 동시에 금융위기의 변주곡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먼저 공급측면에서 옥죄고 있는 정책 접근방식을 수요쪽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초저금리라 하지만 대출이자를 뛰어넘는 집값과 땅값 상승이 기대되기 때문에 돈을 빌리는 것으로 봐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이 최근의 은행권 대출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수요 충족을 통해 집값, 땅값 상승 기대심리를 잠재울 수 있다면 비소비성 가계대출 증가세는 쉽게 제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판교신도시 공급 물량을 줄이면서 분양가를 붙들어매려는 정책은 잘못됐다. 거듭 강조하지만 정부의 역할은 경제의 혈류를 정상화하고 감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주전 선수는 민간이지 정부가 아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톡톡튀는 아이디어 세상을 바꾼다

    톡톡튀는 아이디어 세상을 바꾼다

    ‘발명’이라면 누구나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주변을 되돌아보면 발명 소재들이 많이 있다.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을 해소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 아이디어를 찾아 세상을 바꾸는 발명이 탄생하기도 한다. 미래의 발명왕을 꿈꾸며 작은 호기심을 발명으로 이끌어 낸 학생들이 있다.25일까지 서울 봉천동 서울특별시과학전시관에서 열리는 ‘서울시 학생과학 발명품 경진대회’를 찾았다. “어른들은 불편을 느끼지만 학생들은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찾는군요.” 지난 18일 오후 서울 봉천동 서울특별시과학전시관.‘서울특별시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수상작 전시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다. 이번 행사는 올해로 27번째로 대상과 특상 수상자들은 다음달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학생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평소 어른들이 불편을 느끼면서도 그냥 지나칠 법한 것을 놓치지 않고 발명의 소재로 삼은 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주부들이 힘들어하는 부분 간단히 해결 주부 박수영(40)씨는 ‘탈부착이 가능한 물막음장치’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 작품은 기존 물막이 봉의 아랫부분에 촘촘한 솔을 달아 머리카락 등 이물질을 미리 걸러내는 장치다. 박씨는 “애들이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하수구에 잔뜩 걸려 물이 내려가지 않아 매번 혼이 났다.”고 말했다. 이 작품을 고안한 서울 진명여고 1학년 남은선(16)양은 “평소 하수구에 불편을 많이 느끼다 코털이 폐 속에 큰 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특히 주부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가 많았다. 학부모 정희숙(43·여)씨는 손잡이가 접히는 프라이팬에 관심을 보였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손잡이를 프라이팬 안 쪽으로 접어서 보관할 수 있는 간단한 아이디어다.“평소 싱크대 찬장이 좁아 프라이팬을 넣을 곳이 없었는데 이것을 보니까 마음까지 후련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작품을 발명한 광남중학교 2학년 이상효(14)군은 “부엌에서 일하시는 어머니가 불편해하시는 것을 보고 고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친환경 컵라면용기’는 라면 그릇에 이물질을 거를 수 있는 거름망을 붙여 국물만 따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편리한 기능의 고무장갑’은 플라스틱 페트병을 잘라 수건으로 감싼 것을 고무장갑 입구에 연결시켜 물일을 할 때 옷이 젖지 않도록 한 것이다. 주부들은 한 목소리로 “평소 주부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었는데 간단히 해결했다.”며 감탄했다. ●애정어린 관심으로 장애인용 기구 개선 주변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이 발명 동기가 되기도 했다.‘장애인용 침대’를 출품한 삼각중학교 1학년 박홍림(13)군은 현재 파킨스씨병으로 화장실 가는 것조차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할머니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그는 “할머니가 힘들이지 않고 위생적으로 일을 볼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박군이 만든 장치는 잠금쇠를 잡아당기면 엉덩이가 닿는 부분과 다리를 걸치는 부분의 뚜껑이 열려 자연스럽게 엉덩이가 용기 구멍과 연결돼 편하게 일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대일고등학교 1학년 강건희(16)군은 지난 겨울방학 때 장애인학교에서 뇌성마비 장애인을 도운 경험이 발명으로 이어졌다. 강군은 “봉사활동 중 친해진 장애인 친구가 휠체어를 타고 360도를 돌아 방향을 바꾸는데 근육 힘이 약해 오랜 시간 끙끙거리더라.”라며 동기를 설명했다. 장애인 친구를 도울 방법을 찾다가 장애인용 휠체어까지 개발한 것이다. 이 장치는 바퀴를 손으로 360도 돌려야 하는 기존의 휠체어 대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힘이 약해도 간단한 조작으로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일부 작품 실생활에 바로 응용 가능 ‘굴 분필’을 만든 서초고등학교 1학년 황성민(16)군은 “선생님들이 분필가루를 많이 마셔 목소리가 변하는 것이 안타까워 굴 분필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지난여름 바닷가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굴껍질에 석회석이 많이 함유돼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해 사람에게 해가 없는 분필을 만들 생각을 했다. 교사들은 이를 직접 사용해 보며 다른 분필과 차이점은 없는지 큰 관심을 보였다. 남창열 심사위원장은 “일부 작품은 실생활에서 바로 응용할 수 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발명 마인드를 기르려면 평소에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특별시 과학전시관 김영준 관장은 “학생 작품인 만큼 미진한 부분도 있지만 실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교수와 전문가 등을 참여시켜 완성도를 높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대상 영예 배재고 양수영군 “교통사고 경험이 저를 발명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번 행사 생활과학Ⅱ부문에서 ‘안전한 동영상 신호등’으로 대상을 받은 배재고등학교 2학년 양수영(17)군은 교통사고로 함께 고생했던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2년 전. 당시 양군은 학원 차에서 횡단보도 근처에 막 내리던 참이었다. 파란 신호등이 깜빡거렸고 주위 사람을 따라 횡단보도를 같이 건너는데 순식간에 빨간불로 바뀌면서 승용차에 치었다. 양군은 이 사고로 병원에 6주 동안이나 입원해야 했다. 무릎과 다리를 심하게 다치고 갈비뼈도 두 개나 부러지는 중상이었지만 이는 신호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그는 다른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퇴원 후 고민을 계속했다. 마침 집 근처의 백화점 앞에 설치된 보조신호등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다. “보조신호등의 장점은 파란불일 때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빨간불일 때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 단점이지요.” 양군이 만든 신호등은 이를 개선한 것이다. 빨간불일 때도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보조신호등을 달았다. 또 가만히 있기 싫어하는 어린이들이 집중하도록 파란불일 때 남자가 뛰고 빨간불일 때는 여자가 두리번거리는 동영상을 신호등에 담았다. 그는 “어린이들이 만화를 볼 때 집중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그의 우연한 경험이 발명으로까지 이어지기까지에는 어머니 김인숙씨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됐다. 김씨는 양군에게 ‘평소 불편한 것을 개선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호기심을 갖고 세밀하게 관찰하라.’고 당부해 왔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양군은 중학교 2학년 때인 2002년 전국자연자원탐구대회에서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을 받는 등 과학 분야에 유난히 재능을 보였다. 양군은 “신호등의 전력이 끊기면 기능을 못해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신호등을 건전지로도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또 “대체에너지로 이용하는 친환경적인 신호등도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3년연속 특상 서라벌고 노영상군 이번 행사에는 3년 연속 특상을 수상한 ‘발명꾼’도 있었다. 서라벌고등학교 2학년 노영상(17)군이 주인공. 그는 지난 2003년과 2004년 각각 양방향 환풍기와 멀티어댑터형 콘센트로 특상을 받았다. 멀티어댑터형 콘센트는 콘센트 구멍이 여러 개인 멀티탭과 여러 개의 어댑터를 하나로 합쳐 컴퓨터 주변의 복잡한 전선 꾸러미를 하나의 케이블 형태로 매끄럽게 만든 것이다. 양방향 환풍기는 실내공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기존 환풍기를 개선, 실내의 탁한 공기가 밖으로 나가는 동시에 신선한 바깥 공기가 실내에 들어오도록 한 장치다. 이런 노군이 이번에는 ‘에너지 절약형 분전반(두꺼비집)’을 선보였다. 이 장치는 한 가정에 들어오는 분전반을 방과 거실, 화장실 등으로 구분해 필요에 따라 전원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노군은 “28평 아파트의 경우 이 분전반을 설치하면 한달에 0.7㎾의 전기를 아낄 수 있다.”면서 “전기값이 많이 나온다는 부모님 말씀을 듣고 고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발명의 비결에 대해 “고정관념을 깨고 호기심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는 퀵보드를 예로 들었다.“퀵보드는 발로 땅을 쳐서 나가지만 좀더 호기심을 내면 위에서 아래로 펌프질을 해서 가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지요.” 그는 평소 혼자서 고정관념을 깨는 삐뚤어진 상상이나 잡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노군이 발명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중학교 기술교사인 아버지 노인채(48)씨의 영향이 컸다. 노씨는 아들의 사고력을 높이는 데 과학이 좋다고 판단, 다양한 과학캠프에 참여해 보라고 권유했다. 노군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4년 동안 방학 때마다 엑스포 과학소년단에 참여,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노군의 장래희망은 변리사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발명품 특허출원을 하면서 변리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면서 “다른 사람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접해 지식과 생각의 폭을 넓히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발명의 매력에 대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것을 되게 할 때 생기는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프랑스영화, 이래도 지루하다고?

    프랑스영화, 이래도 지루하다고?

    제5회 프랑스영화제가 26일부터 새달 12일까지 서울·부산·광주 등 3개 도시의 CGV극장에서 잇따라 열린다. CJ CGV와 프랑스 문화원이 공동주최하는 영화제에는 올해 15편의 다양한 프랑스 영화들이 선보인다.“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프랑스 최근작들을 골랐다.”고 프랑스 문화원 측이 설명하듯 이번에 나온 작품들은 ‘프랑스 영화는 지루하다’는 통념을 깬다.1편 빼고는 아시아 최초로 상영되는데다 코미디, 로맨틱 드라마 등 경쾌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뤘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임마뉘엘 무레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베뉘스와 플뢰르’.26일 CGV용산 5관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될 작품으로, 모든 게 딴판인데 남자에 대한 취향만큼은 같은 두 여자가 빚어내는 유쾌한 로맨스이다. 이밖에 2005년 선댄스 영화제 출품작인 코미디 ‘릴라 마침내 말하다’,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개막작 ‘살인의 도구’, 제61회 베니스 영화제 상영작 ‘신부 들러리’,2004년 부천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아알트라’를 비롯해 8편의 에로틱 단편을 모은 ‘육체에서 육체로’,10편의 공포영화를 모은 ‘살육’ 등이 상영된다. 특히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다면 ‘왕들과 왕비’‘동물계의 종말’을, 프랑스 스릴러의 진수를 확인하겠다면 ‘신부 들러리’‘살인의 도구’를 ‘찜’해 두면 좋을 것 같다. 서울 CGV용산에서 26∼30일, 부산 CGV서면에서 6월3∼6일,CGV광주에서 6월10∼12일까지 마라톤 상영될 예정이다. 관람료는 한편에 6000원.CGV 멤버십 및 VIP회원, 서울·광주·부산 알리앙스 학생증과 프랑스 문화원 회원증을 지참하면 1000원 할인.www.cgv.co.kr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그 영화 어때?]새영화 ‘추방된 사람들’

    프랑스 토니 갓리프 감독의 ‘추방된 사람들(Exiles)’은 2004년 칸국제영화제가 감독상을 안긴 작품이다.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두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형식은 로드무비. 그러나 섹스와 마약에 적당히 시행착오하며 술렁거릴 영화일 거란 편견은 틀렸다. 길을 떠난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목적지는 아프리카의 알제리. 알제리의 정치상황이나 그곳을 등진 망명자들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영화는, 그 ‘현실 발언’이 다분히 정치적이기까지 하다. 자노(로맹 뒤리스)와 나이마(루브나 아자벨)는 사귄 지 얼마 안 된 연인. 부모들이 모두 알제리 출신의 망명자란 사실에서 강한 동류의식을 느낀 두 사람은 ‘뿌리’를 찾아 무작정 길을 떠난다.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을 가로질러 알제리에 이르는 여정에는 끊임없이 정체성을 뒤흔드는 고민과 방황으로 얼룩져 있다. 영화는 알제리의 역사적 상처를 남녀의 뿌리찾기를 통해 짐짓 드러내보이고자 했다.130여년간 프랑스 식민통치 끝에 1962년 독립했으나 다시 내분으로 인구의 절반이 망명자로 전락한 알제리의 현실 앞에서 영화의 시선은 갈수록 더 진지해진다. 남녀는 파리를 벗어나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알제리를 벗어나 ‘이방인’이 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자유의지와 야생의 삶에 젖어 있던 나이마가 알제리에 도착해 겪는 혼돈은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사실적으로 묘사됐다.“어딜 가나 이방인이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라고 허탈해하던 나이마가 알제리 수피교의 씻김굿 의식에 동참해 환희에 젖는 마지막 15분여의 롱테이크가 압권. 씨네큐브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춤추고 소리를 질러도 된다. 감독은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
  • [Love & Wedding] 주범진(32·주현정보통신 대표) 이현주(32·학원강사)

    [Love & Wedding] 주범진(32·주현정보통신 대표) 이현주(32·학원강사)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2004년 9월24일. 명절 날만 돌아오면 결혼문제로 시달려온 나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아 왔다.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꾸지람에 밥이 귀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불편한 밥상을 끝나게 해줄 나만의 그 사람을 만난 것이다. 아는 선배 소개로 만난 그녀. 처음 만났는데도 어디서 한번쯤은 만났던 것 같은 단아한 모습.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단정하고 참하다는 단어가 생각나는 첫인상을 가진 그녀였다. ‘저 사람이다….’ 나의 사랑하는 반쪽을 았다는 설레임에 추석연휴가 이렇게 지루한 적은 없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는 마지막날 우리는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선물을 주고 싶은데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뭘 좋아할까 고민하다 나는 결정했다.‘떡’으로. 다소 생뚱맞은 선물이었지만 그녀가 좋아할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남의 하이라이트는 노래방. 저녁식사와 시원한 맥주를 마신후 마지막 코스로 노래방에 갔다. 그녀가 박신양의 ‘사랑해도 될까요?’의 마지막 구절인 ‘내가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를 부를 때 나도 모르게 “네! 당연하죠.”라는 우렁찬 기합소리가 나왔다. 첫 데이트 치고는 성공적이라는 생각에 나는 집에 오면서 ‘오늘 즐거웠습니다. 내일 전화해도 될까요?’ 라고 문자를 보냈다.1분후에 온 답장은 ‘아뇨. 내일 전화하면 안되는데요.’ ‘아∼ 끝났다.’라며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또 한번의 메시지.‘지금 전화하면 봐줄게요. ’ 처음엔 내가 사업을 하다보니 사업을 해보신 장인·장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이제는 제일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다. 특히 나를 너무 사랑했던 그녀의 라이벌 5살짜리 조카도 유치원에서 새로 생긴 남자 친구때문에 나를 곱게 이모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이제껏 출장때문에 못만난 2일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우린 만났고, 드디어 6월12일 낮 12시 목동 현대 41타워 컨벤션 웨딩홀에서 나의 반쪽임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맹세할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가 만나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우리 앞날에 언제나 축복만이 가득하기만을 바란다.
  • [박은영의 DVD 레서피]씹으면 씹을수록 비리네

    [박은영의 DVD 레서피]씹으면 씹을수록 비리네

    남해 청정해역에서 잡아 말린 삼천포 쥐포는 붉고 두툼하며 결에 따라 쉽게 찢어진다. 석쇠 위에 놓고 녹녹하게 구우면 말랑하고 쫄깃한 육질에서 씹을 때마다 달콤하고 깊은 맛의 육즙이 흘러나온다. 질긴 어육을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오징어와 달리, 쥐포는 씹는 감이 좋아서 오래 씹어도 달고 부드럽다. 씹는 일만큼 익숙한 일도 없다. 음식은 물론 정치인들, 탈세를 일삼는 부자들, 양심 없이 행동하는 이들은 씹히게 마련이다. ‘공공의 적’은 강철중이라는 인물을 통해 통쾌함을 안겨줬다. 돈만 알고 도덕을 모르는 인간을 잘근잘근 씹는 과정을 보여줬달까.‘공공의 적 2’는 전편에 비해 씹는 강도가 덜하다.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강철중은 날렵한 턱선과 비상한 기억력을 자랑하는 강력계 검사다.“형이 오늘은 기분이 나쁘지 않거든∼.” 하며 17대 1의 개싸움을 벌이던 질기고 쌩쌩한 강철중의 디테일은 모호해졌다. 대신 거대 사학재단의 비리 이사장부터 부패 국회의원까지 싸잡아 수갑을 채우는 시원한 결말이 있다. 정치인들의 비리가 문제인 것은 우리만은 아닌 모양이다. 시리즈물 ‘웨스트 윙’은 미국 백악관을 조명한다.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음모, 비리, 사건들을 참모진이 헤쳐 나가는 과정이 전개된다. 성조기가 휘날리며 시작하는 인트로는 정치 드라마의 매력을 느끼기도 전에 들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지만 전반적인 짜임이 탄탄하고 곱씹는 맛도 그럴듯하다. ●공공의 적 2 속편을 기획하면서 감독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누가 공공의 적인가?”라는 문제였다고 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기 위해서 좀 더 힘 있는 자를 악당으로 점찍었고 그에 따라 강철중의 지위도 승격되었다. 기본 구도는 전편과 유사한데, 좀 더 고급스러운 배경이라는 것이 2편의 다른 점이다. DVD는 1편보다 한결 매끄럽게 출시되었다. 영화가 어떻게 기획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촬영되었는지를 단계별로 친절하게 설명하는 부가영상은 심도 있으며 화질과 사운드도 좋은 편이다. 별도로 수록된 김상진·장윤현 감독의 부분 연출 장면 제작과정도 흥미롭다. ●웨스트 윙 시즌 4 ‘웨스트 윙’은 백악관 비서실의 간부들이 근무하는 곳을 일컫는 용어다. 제목이 말하듯 이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대통령이 아니라 지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참모들이다. 이번 시즌에선 대통령의 재선 과정이 전개된다. 대통령과 참모진의 관계가 수직이 아닌 수평적으로 표현되며, 자유롭게 의견과 농담이 오가는 모습이 이상적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보는 시리즈로 유명세를 탔으며, 탄핵되었을 때 인용했던 ‘California 47th’ 에피소드가 이번 시즌에 있다.‘The Letter of the World’에서는 4년간 엘 고어 수석 연설문 작가로 있었던 엘리 애티의 음성해설도 있다.
  • 둘째 아이 가질 확률 높다

    둘째 아이 가질 확률 높다

    “일이냐 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분법적 선택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 기혼 직장여성들의 현실이다. 게다가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일부에서는 ‘저출산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원인’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직장에 간 엄마들이 모두 가정으로 돌아와 살림만 한다면 출산율이 높아질까. 최근 여성계에서는 육아와 가사노동의 분담 등 가족 내 성평등(Gender Equality)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학설이 발표됐다. 한국여성개발원 박수미 연구위원은 최근 보건복지포럼을 통해 가정내 성평등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을 밝혔다. 쉽게 말해 남편이 가사를 도와주는 집일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개도국에서는 성평등 수준이 낮을수록 출산율이 높게 나타나지만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에서는 성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게 나타난다.”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전반적인 출산율을 낮추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일부만 보는 단편적인 사고”라고 말했다. 박 위원이 설명한 학설은 소위 ‘페미니스트 역설(feminist paradox)’이란 이론이다.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확산되면 일정기간 동안 출산율이 떨어지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면 다시 출산율이 상승하는 U자형 곡선을 그린다는 것이다. ●한국 저출산 성평등의 과도기가 원인 성평등과 출산율의 상관관계는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개념이지만 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연구 대상이 돼 왔다. 이론상으로 우리나라는 성평등 수준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어중간한 단계로 일시적으로 출산율이 극히 낮아진 과도기로 해석할 수 있다. 비슷한 결과는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2004년 발표된 미국의 한 논문(Torr&Short 2004)에 따르면 부부의 가사노동 분담과 둘째 아이의 출산율은 앞서 말한 페미니스트 역설과 같은 U자 곡선을 그렸다. 미국에 거주하는 맞벌이 부부의 가정을 조사해 발표한 이 논문은 부부의 가사분담률에 따라 가정을 ‘전통적 가정’‘중간 가정’‘현대 가정’으로 구분했다. 이중 가장 높은 출산율을 보인 가정은 여성 가사 부담이 54% 이하인 ‘현대 가정’으로 81%가 둘째 아이를 가졌다. 여성의 가사 부담이 84% 이상인 ‘전통적 가정’도 74%의 출산율을 보였지만 현대 가정 보다는 출산율이 낮았다.‘중간 가정’은 55%만이 둘째 아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의 인식변화 사회보다 늦어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회적 변화에 가족 제도의 변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지체 현상에서 기인한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사회적 변화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지만 가정 내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가사 분담은 고스란히 여성에게 남게 돼 여성들이 출산을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실제 남성의 가사 참여율이 높은 프랑스, 스웨덴, 영국 등의 출산율이 1.5∼1.9를 유지하는 반면 남성의 가사 참여가 극히 저조한 스페인, 이탈리아, 한국, 일본 등의 출산율은 1.35미만으로 극저출산국으로 분류된다. 박 위원은 “이상적인 출산은 부부가 원하는 만큼 자녀를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부부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면서 “출산과 양육에 대해 부부와 사회가 함께 고민할 때 저출산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정복자의 시선/에드위 플레넬 지음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인식은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양 극단을 달릴 수 있다. 한쪽에선 국경을 넘어 전 지구인의 호혜평등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다른 한쪽에선 가진 나라와 기업이 못가진 나라와 기업을 정복, 지배해 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진보적 좌파 지식인 에드위 플레넬의 저작 ‘정복자의 시선’(김병욱 옮김, 마음산책 펴냄)은 이 중 후자의 입장에서 15세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의 궤적을 좇아가며 오늘의 세계를 바라본 책이다. ●콜럼버스 정복궤적 쫓아 18개국 심층취재 지은이는 프랑스의 권위지 ‘르몽드’에서 탐사 저널리즘으로 두각을 나타낸 뒤 1996년 편집국장에 취임해 2004년까지 데스크를 지킨 유명 저널리스트다.‘르몽드’(Le Monde)는 ‘세계’라는 뜻의 제호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왔으며 ‘세계를 보는 눈’을 제공하는 것을 기본방침으로 삼아 왔다. 외신보다는 직접 특파원을 파견, 생생한 르포 기사를 제공하는 차별화된 강점을 갖고 있다.‘정복자의 시선’은 이러한 전통을 기반으로 탄생한 야심찬 르포르타주다. 1,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0년 간격으로 나온 두 책을 시간의 역순으로 묶은 것이다.2부 ‘콜럼버스와의 여행’은 1991년 ‘아버지 부시’의 ‘사막의 폭풍작전’이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굴복시켰을 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여정을 따라 두 달간 18개 나라를 직접 발로 뛰며 각국의 역사와 현 정세를 심층 취재한 결과물이다. 이 글들은 당시 르몽드에 연재되었다가 그 해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10년 후,2001년 온 세계가 9·11테러의 충격에 휩싸였을 때 10년 전의 여정을 떠올리며 사유의 자취들을 쫓고자 한 것이 이 책의 1부인 ‘혼합인’이다. 시간적 현실감을 주기 위해 나중에 나온 ‘혼합인’을 앞으로 돌린 듯 하지만, 실은 2부‘콜럼버스와의 여행’을 먼저 읽고 나서 1부를 읽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콜럼버스와의 여행’은 저자의 표현대로 ‘과거의 빛에 현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과도 같은 여행이다. 콜럼버스가 태어난 이탈리아 제노바를 출발해 멕시코에서 끝나는 18개국 순방의 이 도정은 망각과 추억을 가로지르는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전쟁은 서방세계 편견의 반복 여정의 단계마다 옛 인물에 대한 회고와 현재 인물과의 인터뷰를 교차시키면서 과거와 오늘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울림과 메아리들을 펼친다. 미지의 땅,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손톱만큼이라도 이해하려는 의지도 없이 ‘나’혹은 ‘우리’와 다른 ‘타자’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진 무자비한 만행의 흔적과 상처들을 현재적 관점에서 더듬어 나간다. 1부 ‘혼합인’에서 지은이는 5세기 전의 정복과 충돌의 시간을 현재로 돌려 놓는다. 미국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중국, 반유대주의, 테러, 전쟁 등의 소재는 500여년 전의 정복과 지배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 정점은 이 책의 모티프인 ‘사막의 폭풍’, 그리고 ‘충격과 공포’다. 이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극명하게 표면화된 문화충격과 문명 충돌의 시대에 지은이는 동·서양이라는 이항대립의 함정에서 빠져 나와 ‘동양의 서양인’이 되고,‘서양의 동양인’이 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부시 부자의 두 전쟁을 두고 지은이는 ‘우리 모두는 자신의 관행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 부른다.’는 몽테뉴의 금언을 끌어온다. 저자가 보기에 ‘진보’와 ‘자유’를 빙자한 두 차례의 전쟁은 동양(야만), 서양(문명)이라는 오래된 서방세계의 편견을 반복, 재생산하는 폭력이자 비이성이다. 이같은 자가당착적 위기는 물론 미국뿐만 아니라 저자의 나라인 프랑스도 마찬가지. 극우파 르펜이 급격히 부상했던 ‘르펜현상’ 등을 예로 들며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는 ‘양식’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국민 우선주의가 세계에 대한 사유 자체를 가로막고 있으며,‘타자’에 대한 경제적·문화적 울타리들은 정치를 실종시키고 있다고 꼬집는다. 아울러 문화 및 인종적 우월감이 내포하고 있는 대재앙의 싹이 여전히 엄존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세계주의적 휴머니즘 개념인 ‘혼혈’ 지향 긴 여정과 치열한 사유를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이 바로 1부 타이틀인 ‘혼합인’이다. 서방세계에 만연된, 인종우월주의에 바탕을 둔 오리엔탈리즘을 폭로하는 한편 ‘타자에 대한 이해’, 나아가 적극적인 섞임을 추구하는 ‘혼혈’을 지향한다.‘세계주의적 휴머니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개념은 동서나 흑백 같은 단순대립을 넘어 ‘타자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적극적, 포괄적인 문제를 제시한다.“혼혈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전략이다. 승자 앞에서 살아남고 약자를 구제하는 생존과 구제의 한 방식이다.”란 저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 한나 아렌트, 롤랑 바르트 등 ‘타자’의 문제에 고민했던 선배와 동료들을 불러낸다.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 ‘군도(群島)의 사상’을 쫓고자 한 저자의 의지는 그의 문체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체계적 분석과 단언보다는 암시와 역설을 위주로 한 그의 파편적 글쓰기는,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수많은 ‘타자’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것 같아 오히려 미덕으로 읽혀진다.2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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