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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민노당의 희망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민노당의 희망

    마이너리그의 희망을 봤다. 프로야구가 아니라 민주노동당 얘기다. 대통령후보 선출 게임에서 민주노동당은 아무래도 한나라당이나 대통합민주신당에 비해 마이너리그다. 당 지지도나 국민들의 관심도, 예비후보들의 지지율 등을 종합적으로 봐도 그렇다. 3부 리그라는 촌평까지 듣는 민노당이지만 의미있는 변화의 몸부림은 일고 있었다. 당내 최대 정파인 자주파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은 권영길 후보의 손쉬운 승리로 막을 내릴 것 같았던 대선 후보 경선이 권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결선투표로 최종 승자가 가려지게 된 것은 그런 변화의 움직임을 방증한다.‘대세론’으로 밀어붙인 권 후보가 무난하게 1차에서 승리, 대선전에 내리 세 번 출마하는 진기록을 세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권 후보는 과반 확보에 실패했고, 확실한 3등으로 여겼던 심 후보가 막판 대단한 뒷심으로 2위까지 치고 올라가 권 후보와 결승전을 치르게 된 것. 심 후보의 말대로 ‘심바람’이 권 후보의 대세론을 막은 셈이다. 최종 승자가 누가 되든, 민노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2차 투표까지 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가 아닐까. 창당 이래 첫 경선이란 점도 그렇다. 민노당의 결선 투표는 양김(김영삼·김대중)이 처음 맞붙은 1970년 신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연상케 한다. 그 때도 1차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어 2차 결선투표를 했었다. 김대중 후보가 1차 2위를 딛고 결선투표에서 1차 1위였던 김영삼 후보를 제치고 뒤집기 드라마를 연출했는데, 민노당의 결선 투표 역시 그런 극적 승부를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권 후보가 대세론을 더욱 밀어붙여 1주일 늦춰진 월계관을 찾아갈 것인지, 또 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그의 득표율은 얼마가 될 것인지 관심은 커져가고 있다. 이런 관심 자체가 민노당으로선 고무적인 일이다. 민노당은 정체성이 가장 뛰어난 정당이다. 민노당의 당원들에게는 ‘골수’ ‘진성’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들어 대중의 지지나 관심이 점차 엷어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른바 민심과의 괴리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이를 철학과 과학으로 설명한다. 김 교수는 “민노당은 제 정당 가운데 철학만큼은 투철하다. 그러나 과학적 접근은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 민노당으로선 실용적 자세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의 ‘정체성’은 뛰어나지만, 민심을 꿰뚫어 보는 능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당이 정체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당이 지나치게 민주노총화(化)돼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노당은 2004년 총선 때 13%를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계속 하락세다. 요즘은 당 지지율이 10%를 넘기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민노당이 실용주의 모드를 적극 수용한다면 보수 정당의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고, 정국 운영의 캐스팅 보트 역할도 가능하다. 마의 20% 지지율도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다. ‘심바람’ 현상은 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아직 강풍은 아니지만. 정체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고인 물’이 돼서는 안 된다. 바깥에서 입출입이 자유로우면서도 정체성을 지켜 나갈 때 당의 생명력은 더 커질 것이다. 정체성을 승화 발전시키면서 그동안 왜 민심과 따로 놀았는지, 그런 민심을 끌어올 방안은 무엇인지 민노당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다.15일 결선투표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jthan@seoul.co.kr
  • [재테크 칼럼] 아파트 증여가액 산정 기준은

    경기도 분당과 서울 광장동 등에 주택을 가지고 있던 A씨는 늘어나는 보유세와 처분시 2주택 중과세율을 피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주택을 장남에게 증여할 예정이다. 시세는 7억원을 넘나들지만 주택공시가격은 5억 3000만원 정도로 돼 있어 증여 신고를 할 때 시세로 신고해야 하는지, 공시가격으로 기준을 삼아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세금은 일정한 경제행위에 따른 소득이나 자산의 크기에 소정의 세율을 적용해 정해진다. 현금을 증여한다면 액면금액 자체를 증여재산의 크기로 볼 수 있어 고민할 필요는 없지만 부동산을 증여하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재산가액은 달라진다. 세법에서는 상속·증여재산이 부동산이면 평가의 기준은 증여 당시의 시가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시가란 불특정 다수인 사이에 자유로이 거래된다고 인정되는 금액을 말한다. 대가를 주고 받지 않는 증여 때 ‘시가’ 산정은 양도처럼 소유권 이전에 대한 계약금액이 없기 때문에 계산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 법에서는 아파트의 경우 건교부 장관이 결정 공시한 공동주택가격, 토지의 경우 개별공시지가, 일반 건물의 경우엔 매년 국세청장이 고시하는 방법을 통해 시가를 대신한다. 그런데 개별 공시지가나 국세청의 기준시가는 시가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어려워 통상 시가보다 20∼40% 낮게 고시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부동산으로 증여할 때는 실질가치에 미달하는 평가가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담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지난 2004년 포괄주의제도가 도입되면서 증여일로부터 3개월을 전후하여 증여부동산과 용도·위치·평형 등이 유사한 부동산의 거래가 있으면 그 거래가액(매매사례가격)을 증여가액으로 볼 수 있도록 변경됐다. 물론 이러한 원칙을 도로접면과 위치·형상이 제각각인 상가나 토지에는 적용하기가 어렵지만 동일평형 동일향 동일구조로 대량으로 공급되는 아파트는 인근지역 거래시세 파악이 쉽고, 그 가액을 증여가액으로 적용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다. 매매사례가액도 수급상황과 급매물 유무에 따라 시세가 일정하지 않지만 증여시점 3개월 전후로 매매 사례가 있는 아파트를 증여한다면 체결 가격이나 적어도 시세 하한가 이상을 기준으로 신고하는 것이 적절하다. 사례의 경우에서 아파트 증여 때 매매사례가액을 무시하고 기준시가로 신고한다면 지난해까지는 신고불성실 가산세를 감면해 주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각 세법에 산재된 가산세 규정이 국세기본법에 통합 규정되면서 가산세 면제규정이 없어졌다. 매매사례가액을 무시한 기준시가로 신고하면 자칫 일반과소신고 가산세(10%)를 추가 부담할 수 있다. 이신규 하나은행 가계영업본부 전문가팀장·세무사
  • [여성&남성] ‘불륜의 덫’에 빠진 그남자 그여자

    [여성&남성] ‘불륜의 덫’에 빠진 그남자 그여자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유부남을 사랑하는 미혼녀’라는 글에 대한 설전이 벌어졌다.“어떻게 임자 있는 남자한테 꼬리를 치느냐.”는 기혼 여성들의 항의에 미혼 여성들은 “남편 바람난 게 자랑이냐.”는 식으로 응수했다.‘사이버 전쟁’의 이면에는 유부남과의 연애에 당당한 미혼 여성이 늘고 있는 세태가 자리잡고 있다.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직장 상사와 연애하는 미혼 여성이나 유부녀와 만나는 미혼 남성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만 해도 수십개에 달한다.‘금지된 사랑’을 찾는 남성과 여성의 마음 속에는 어떤 심리가 자리잡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유부녀’일 뿐 회사원 박모(28)씨는 두 아이의 엄마인 동갑내기 A씨와 만나고 있다.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이던 이들은 박씨의 군입대로 헤어졌다 지난해 과 동기모임을 계기로 다시 연락이 닿았다. 미남형의 외모와 깔끔한 매너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박씨지만 지금까지 A씨를 완전히 잊지 못했다. 올 초 학교 후배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A씨와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결국 결별하고 말았다. 역술가인 A씨의 남편은 늘 “기운을 받아야 한다.”며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기 일쑤여서 A씨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고. 심지어 주말에 A씨의 집에 찾아가 아이들과 놀아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남들 사생활을 족집게처럼 맞히는 역술가들도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모르나봐요. 남들이 저에게 어떤 비난을 쏟아부을지 모르겠지만 전 사실 유부녀라서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유부녀일 뿐이죠.”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모(29)씨는 박사과정 선배인 두 살 연상의 누나 B씨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올 초 대학원 술자리에서 “둘이 잘 어울린다.”는 주변의 농담을 재미삼아 응대하다 몇 달 만에 실제 ‘연애’로까지 발전했다고. 문제는 B씨는 이미 남편뿐 아니라 두살배기 아이까지 있다는 것. 김씨는 철저히 자신이 원할 때만 만나주는 B씨를 보며 이기적이라고 느끼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친구들은 “B씨는 조건을 보고 결혼해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다 보니 대리 만족을 위해 널 만나는 것”이라며 말리지만 ‘콩깍지’가 씐 김씨로서는 그런 경고가 귀에 안 들어온다. “저도 양심은 있어서인지 가끔 B씨를 데리러 오는 남편과 눈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어떠한 변명이나 면죄부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은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또래에게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 지난해 말 지방 지점으로 발령이 난 회사원 정모(30)씨는 주말마다 회사 근처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다 얼마 전 여중생 딸을 둔 열두살 연상의 ‘띠동갑’ C씨를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방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볼 요량으로 가끔 전화 연락이나 하며 지냈다. 하지만 재미삼아 한두 번 만나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30대에 접어든 자신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마치 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콕 집어 조언해주는 C씨의 진지한 태도에 차츰 빠져들기 시작했다. “처음 만날 때부터 C씨와 불륜관계로 나아가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또래 사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배려나 포용성 같은 감정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정’에 굶주려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어요. 지방으로 발령나자 ‘시골에서는 못 산다.’며 떠나간 옛 여자친구와 많이 비교되기도 했고요.” 회사원 조모(33)씨는 7살 연상 직장 상사인 기혼녀 D씨와 2년째 은밀한 관계를 지속 중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씨는 D씨로부터 엄마에게 받지 못한 포근함을 느껴 첫눈에 반했다.‘이건 안 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D씨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회식 뒤 술에 취한 D씨를 집에 바래다 주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D씨는 남편과 이혼한 뒤 딸아이와 살고 있다. “가끔 D씨가 ‘우리나라를 떠나서 남들 눈치 안 보고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저 역시도 지금 제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D씨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은 말할 수 있어요.” ●책임감 없이 만날 수 있으니까 학원강사 박모(35)씨는 직장에 다니던 5년 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동갑내기 여성 E씨와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 만날 당시만 해도 E씨는 갓 결혼한 새색시였지만 지금은 이혼한 뒤 지방에 혼자 살고 있다. 예전에는 지방 출장 겸 만나곤 했지만 지금은 E씨를 만나기 위해 KTX를 타고 갈 만큼 만남에 열의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박씨는 한 번도 E씨와 결혼할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E씨는 아이가 있는 사람이고 나이도 많아서인지 나에게 뭔가를 바라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나를 편하게 만들기도 하고요.E씨는 정말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긴 해도 만약 결혼을 전제로 만났으면 이미 내가 먼저 도망쳐 나왔겠죠. 나 때문에 이혼한 것도 아닌 만큼 E씨의 현 상태에 죄책감 같은 것도 솔직히 느끼지는 않고요.” ●그 사람 말고는 아무 것도 안 보여 회사원 김모(26·여)씨는 지난해 결혼한 회사 동기 H씨를 짝사랑하고 있다.1년쯤 전부터 회식자리에서 늘 김씨의 옆에 앉아 챙겨주던 H씨의 자상함에 반하면서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H씨의 신혼 집들이에 갔던 김씨는 의외로 평범한 외모인 H씨의 아내를 보고는 ‘내가 외모나 능력 어느 것 하나 저 여자에게 달리지 않는데….’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고. 최근 H씨가 이직을 하자 김씨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H씨에게 고백을 했다가 완곡하게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저한테 그 남자의 아내는 존재감이 없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예요. 오직 그 남자 하나만 보인다고 할까요. 그 남자 이혼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밥 한 번씩 먹고 영화나 볼 수 있는 관계만 돼도 좋을 것 같은데. 유부남이라 그것도 안 될까요. 그래서 가슴이 더 저려요.” 최모(30·여)씨는 4년 전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I씨를 만났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돈도 별로 많지 않던 열다섯 살 연상의 I씨가 최씨에게 선물공세를 펼 때만 해도 ‘정신 나간 사람’쯤으로 생각했지만 당시 이별의 아픔을 겪던 그에게 I씨의 배려는 큰 힘이 됐다고. 결국 최씨는 ‘기러기아빠’였던 I씨와 동거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I씨는 외박이 잦아지고 변하기 시작했다. 최씨는 I씨가 자신을 폭행하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일이 잦아지자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I씨는 곧바로 집을 나갔고 연락 한 번 없다. 지금 최씨에게는 4년을 함께 산 I씨에 대한 그리움뿐이라고. “늘 곁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니 세상이 온통 빈 느낌뿐이에요. 제가 전화하면 그대로 전화를 꺼버려요. 제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니 늘 행복했으면 하지만 저를 이렇게까지 마음 아프게 했으니 평생 불행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교차해요.” ●유부남 사랑하는 내 마음 나도 몰라 3년 전 취직한 회사원 정모(27·여)씨는 입사 당시 ‘사수’(일을 직접 가르치는 선임자)였던 상사 F씨와 얼마 전 만남을 시작했다. 처음 입사할 당시 “일 못하는 빵점짜리”라며 혼도 많이 내던 F씨였지만 3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고. F씨는 정씨에게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불러내서는 고가의 목걸이나 반지 등을 선물하며 애정 공세를 시작했고 정씨 역시 그런 F씨가 싫지만은 않았다.‘내가 원하면 언제든 관계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정씨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다른 남자가 생기면 언제든 떠나겠다.’며 F씨에게 자신있게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회사에서 저 좋다는 남자들이 아무리 덤벼도 안 끌렸어요. 다른 남자가 좋아지려고 해도 F씨가 ‘그와 만나지 말라.’고 말하면 자연스레 헤어지게 됐어요.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돼 버린 내 자신이 너무 황당하고 이상해요.” 외국 유학 중인 이모(29·여)씨는 해외 지사 근무 중이던 기혼남 G씨를 알게 됐다. 아침마다 모닝콜을 해주고 먼 거리라도 언제든 이씨의 집으로 달려와주는 G씨에게 남자다운 매력을 느꼈다. 몇 달 뒤 G씨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고 공항에서 그를 바래다주며 ‘이것으로 G씨와의 인연은 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G씨가 돌아간 뒤 이씨가 먼저 연락하게 됐고 지금까지 인터넷 화상채팅 등을 통해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G씨는 이혼할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럼에도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너무도 싫어해요. 쉽게 말해서 ‘난 가정을 지킬 테니 넌 결혼하지 말아라.’라는 심보죠. 하지만 이상한 것은 제가 그런 남자를 사랑한다는 거예요.G씨가 나와 결혼해주길 원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내가 너무 이상해요.” ●서로 좋아하는 현재가 제일 중요하니까 얼마 전 결혼한 김모(27·여)씨는 최근까지 10살 연상의 직장 상사 J씨와 소위 말하는 ‘불륜’관계를 맺었다. 당시 김씨는 미혼이었고 헌칠한 외모의 J씨에게 반해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고. 그제서야 J씨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보통 연인들과 똑같이 데이트도 하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J씨의 부인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앞으로 둘 간의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J씨와 사랑하고 있는 현재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지요. 철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나이에는 그저 누구든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J씨의 집에 집들이 갔다가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서로 좋아하던 거니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어요.” ■심리학으로 본 불륜 진화 심리학에서는 외도가 오랜 기간에 걸친 인류의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인류에게 ‘1부1처제’가 정착된 지 수천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십만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1부다처’ 혹은 ‘1처다부’의 전통이 아직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 쉽게 말해 인간 유전자에 아직 ‘바람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윤리·규범 등을 통해 이를 잘 억제해 왔지만 최근 이러한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외도나 불륜이 다시금 사회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외도나 불륜에는 어떤 심리학적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랑에 장애가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대를 더 깊이 사랑한다고 지각하게 되는데 이를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 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불륜 커플의 사랑이 유독 열정적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불륜은 극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인 만큼 들키지 말아야 한다. 조마조마해서 가슴이 뛰게 만드는 상황은 두 사람의 사랑을 실제보다 더욱 큰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콘돔 판매량과 호텔 예약률이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불안이 사랑을 더욱 크게 느끼게 만드는 요인임을 잘 보여준다. ‘남들 다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사회 분위기 또한 외도나 불륜을 조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데 이를 ‘사회규범이론’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처럼 TV나 영화 등 미디어가 외도나 불륜을 미화해 방영할 경우 대중들 또한 이에 관대한 사회적 태도를 갖게 된다.‘남들 다 하는 것인데 나도 하면 안 되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한때 기혼남녀 사이에 불었던 ‘애인만들기’ 열풍 또한 외도나 불륜이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 된 우리 사회의 윤리적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 도움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 [별난 일 별난 사람들] (8) ‘LG전자’ 소리디자이너 박도영·최수환·강민훈 연구원

    [별난 일 별난 사람들] (8) ‘LG전자’ 소리디자이너 박도영·최수환·강민훈 연구원

    휴대전화를 열면 ‘부르릉’ 시동켜는 소리가 들린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니 ‘빵빵’ 경적이 울린다. 차문 여닫는 소리도 숨어있다.2005년 LG전자가 히트시킨 일명 ‘포르쉐폰’이다. 유명 스포츠카 포르쉐의 소리와 모양을 그대로 담았다. 휴대전화에 소리를 입히는 사람들. 바로 LG전자의 사운드랩실 소리 디자이너 박도영(32)·최수환(33)·강민훈(29) 연구원이다. 포르쉐폰에 이어 트로트 음악을 넣은 ‘어머나폰’, 벨소리에서부터 버튼음까지 모든 효과음을 인간의 육성으로만 낸 세계 최초의 ‘아카펠라폰’ 등 대박상품을 잇따라 히트시킨 주인공들이다. “보이는 것만 디자인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들리는 것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들은 소리를 “만든다.”고 하지 않는다.“디자인한다.”고 말한다. 버튼음 하나에도 사람이 듣기에 가장 좋은 주파수가 있고, 사용하기 편리한 소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박 연구원은 “나라별로도 좋아하는 소리가 다르다.”가 소개했다. 예컨대 아시아권은 유행에 앞서가는 사운드, 유럽권은 장식을 뺀 보수적 사운드, 미주권은 힙합이나 라틴풍의 전통적 사운드를 선호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세 사람의 업무 분장도 지역이 기준이다. 박 연구원은 아시아권, 최 연구원은 유럽·러시아, 강 연구원은 미주 담당이다. 이들은 일년에 몇차례씩 출장 조사를 나간다. 서류로 나타난 유행과 현지 감성이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이력서도 흥미롭다. 박 연구원은 클래식(경원대 작곡과)을 전공했다.2002년 LG전자의 협력업체에서 휴대전화 음원을 만들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2004년 아예 LG로 옮겼다. 그가 스웨덴의 유명 아카펠라그룹 ‘리얼’(The Real)과 저작권 문제를 직접 해결한 덕분에 아카펠라폰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운드랩실의 ‘창업공신’이다. 최 연구원은 회사안에서 ‘인디계의 무한궤도’로 통한다. 그는 “변절한 과거”라며 들추기를 거부하지만, 대학(서울대 재료공학부)때 언더그라운드 밴드 ‘옐로우 키친’에서 활동했다. 이후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음악테크놀로지를 전공,2005년 사운드랩실에 합류했다.“소리의 특성을 파악해 정확히 짚어내는 귀가 최고 무기”라고 박·강 연구원이 치켜세운다. 막내인 강 연구원은 대학원 전공(국민대 멀티미디어 디자인)을 살려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소리에 눈을 떠” 전공을 바꿨다. 요즘 유행인 프라다폰이나 아이폰 같은 터치폰(버튼을 누르지 않고 터치하는 방식)은 조작이 익숙해지면 짧은 순간 터치가 이뤄지는 만큼 소리가 길어서는 안 된다고 강 연구원은 귀띔했다. 휴대전화에 그렇게 많은 소리의 비밀과 고민이 담겨있는지 몰랐다고 하자 이들은 “또 하나의 비밀을 담는 중”이라고 했다. 지역이나 연령층에 따라 소리를 다르게 디자인하되, 언제 어디서나 ‘LG폰’임을 알 수 있게 공통된 소리를 입히는 작업이다. 업계의 화두인 사운드 동일성(아이덴티티)이다. 세 사람은 “티나지 않게 제품에 녹여야 한다.”며 수북이 쌓인 휴대전화로 시선을 옮겼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2007 증시 ‘진화하는 개인투자자’ 사례 연구

    2007 증시 ‘진화하는 개인투자자’ 사례 연구

    사례 1. 지난 5월 회사를 옮긴 A씨. 퇴직금으로 8000만원을 받았고 이를 주식에 투자하기로 했다. 저녁 자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자동차 업종을 추천했다. 다른 친구는 “기껏해야 10∼20% 먹는데 지금 작전 들어간 주가 있다.”며 특정 종목에 투자를 권유했다.A씨는 퇴직금 전부를 투자했고 계속 수익률이 하락, 현재 원금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사례 2. 중소기업 사장 B씨.4년전 증권투자를 시작했다. 철강·금융업종이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 업종에서 유망한 주식 4종목을 골랐다.B씨는 주가가 오르면 일부를 팔고 주가가 떨어지면 좀 더 사는 방식으로 주식에 투자된 돈을 똑같이 유지시켰다. 투자원금은 회수한 지 오래고 그의 투자수익률은 400%를 넘는다. 사례 3.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에 달하기 전 주위에서 선물에 투자해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들은 C씨. 결국 은행 적금을 깨 4000만원을 선물에 투자했다. 시점은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를 치던 다음 날. 파생상품이라 주가의 변동폭도 컸고 손실도 컸다. 사례 4. 코스피지수가 하루에 100포인트 이상 빠졌던 지난달.D씨는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신용대출을 이용, 정보기술(IT)주를 갖고 있다가 반대매매가 두려워 4000주를 하한가에 내놓았다. 투자손실은 55%다(팍스넷에서). 신용대출을 할 경우 주가가 떨어져 주식담보비율이 증권사에서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증권사가 반대매매를 한다. 사례 5. 세 종목에 5000만원을 투자한 E씨. 지난달 주가가 폭락할 때 주식을 팔까 고민했다. 이 경우 투자손실이 25%다.D씨는 기다리기로 했다. 당장 급한 돈이 아니었고, 투자한 종목은 기업실적이 개선될 것이라 기대되는 금융과 건설업종이었다. 그는 건설종목은 더 사들이기까지 했다. 현재 그의 수익률은 반전,6%의 수익을 거뒀다. 왜 주식시장에서 매매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수익을 얻는 확률이 낮을까. 전문가들은 회사에 대한 분석도 없이 소문에 휩쓸려서 단기투자를 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뒤집으면 투자할 회사를 분석해서 좋은 회사에 장기 투자한다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6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투자주체별로 봤을 때 개미들의 매매비중이 높으면 상장주식회전율이 높게 나타난다. 지난해 개미들의 매매비중은 51.25%다. 절반을 넘지만 2000년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상장주식회전율도 286.23%로 2000년 이후 가장 낮다. 상장주식회전율이란 상장주식이 일정 기간 동안 몇회전했는가, 다시 말해 주인이 몇번 바뀌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2000년 이후 개미들이 유일하게 순매수를 했던 2002년 상장주식회전율은 881.01%나 된다. 주인이 1년 사이에 8.8번 바뀐 셈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를 운영중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개인들의 주식보유기간은 1개월 정도”라고 추정했다. 노희진 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가계 금융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대부분 기관투자가들을 통한 간접투자라서 투자주체중 개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고 밝혔다. ●알아야 번다 사례 1의 A씨가 투자한 회사에 대해 아는 것은 회사이름과 작전세력이 개입한 주라는 점. 몇달 사이에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사업목적을 추가시켜 어떤 것이 주력업종인지도 가물가물하다. 사례 2의 B씨는 주식은 잘 모른다. 단지 그 기업이 좋다는 것 하나만으로 투자를 했다. 사례 3의 C씨는 증권사 직원에게 투자를 맡겼기 때문에 선물을 샀는지 팠는지도 모른다. ●여유와 결단력 주식은 반드시 여윳돈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 홍은미 한화증권 갤러리아PB지점장은 “개미들에 비해 고액자산가들은 주가가 빠져도 버틸 수 있는 여유가 훨씬 많다.”고 전했다. 일단 우량주 위주로 구성, 손해는 보지 않고 판다는 것이 첫번째 원칙이다. 그러나 투자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시점에는 손해를 입고서도 과감하게 판다. 홍 지점장은 “결단력이 손실 규모를 줄인다.”고 전했다. ●적립식 펀드에서 배우자 이익을 본 사례 2의 B씨와 사례 5의 E씨의 투자기법은 적립식 펀드와 유사하다. 장기투자를 했고 한 종목에만 투자하는 이른바 ‘몰빵’투자를 하지 않았다. 나눠서 사고 나눠서 파는 분할매수 분할매도 전략을 취했다. 그리고 여윳돈으로 했다. 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은 “20년간 깨진 경험과 적립식펀드의 성공을 보면서 일부 개미들의 투자패턴이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전히 개미들의 직접투자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많다. 김범석 한국투자신탁운용 부회장은 “개인이 직접투자해서 수익을 내기는 너무 힘들다.”면서 “꼭 하고 싶다면 대형 우량주를 사두고 잊어버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성진 현대증권 포트폴리오분석부장은 “기업 실적을 보고 하는 가치투자에 장기투자, 그리고 밸류에이션(주식의 가치) 투자 세가지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굿모닝신한증권 정 부장은 적립식펀드를 투자의 중심에 놓고 자산의 20∼30%만 투자할 것을 충고했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선임 연구원은 “주식에 대한 통찰력은 물론 주식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일반인이 과연 그럴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씨줄날줄] 퍼스트 래디/육철수 논설위원

    역술이란 세월이 지나면 대개 별것 아니지만 예언 당시에는 그럴듯한 게 많다. 몇달 전 어느 역술인은 한국에서 몇해 안에 여성 대통령의 탄생 가능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근거는 지금이 음기가 충천하는 하원갑자(下元甲子,1984∼2043년)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여성이 나라를 다스려야 혼란스러워진 음기를 잘 다독이고, 정치·경제·사회가 안정돼 나라가 번성한다는 얘기다. 역술에 의하면 음양기의 순환에 따라 상원갑자(1864∼1923년)를 남성상위시대, 중원갑자(1924∼1983년)를 남녀평등시대, 하원갑자를 여성상위시대로 나눈다고 한다. 상원갑자 시기에 여성이 남성에게 대들다가 혼쭐났듯이, 하원갑자 시기엔 남성이 여성을 이기려다간 큰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나, 세계에 여성 대통령 6명과 여성 총리 4명이 배출된 데다, 국내외 각계에 여풍(女風)이 거세지는 현실로 미루어 하원갑자의 음기론을 도외시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바다 건너 미국에도 뻗쳤다. 퍼스트 레이디를 지낸 힐러리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해지면서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을 어떻게 부를지 벌써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의 남편에 대한 호칭은 이미 클린턴 부부가 묘안을 내놓긴 했다. 힐러리는 4년전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남편을 ‘퍼스트 메이트’(First Mate)로 부르라고 했다. 며칠 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클린턴은 ‘퍼스트 래디’(First Laddie)란 새 호칭을 추천했다. 래디는 스코틀랜드 구어로 ‘젊은이’라는 뜻이니, 음운상 퍼스트 레이디와 잘 어울리는 대칭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가하는 여성 정상들의 남편을 ‘퍼스트 젠틀맨’으로 부른다니까, 이 세 가지 호칭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될 것 같다. 우리도 여성 대통령의 탄생에 대비해 ‘부군’(夫君)이나 ‘영부군’(令夫君) 같은 고유 존칭을 준비해 두는 게 좋겠다. 시대가 변하고 남녀의 입장이 바뀌면 새로운 호칭이 생기게 마련이다. 여성 대통령의 배우자 호칭은 우먼파워 시대를 알리는 또 하나의 증거인 셈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평창 효석문화제… “뭘 볼까 고민되네”

    평창 효석문화제… “뭘 볼까 고민되네”

    “가을의 문턱, 메밀꽃과 문학의 정취에 빠져 봅시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인 강원 평창 효석문화제가 7일부터 열흘 동안 봉평면 일대에서 펼쳐진다. 가산공원과 흥정천 등지에서 열리는 이번 효석문화제는 이효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전통의 향수와 문학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봉평면 주민들은 효석문화마을 170만여㎡에 메밀을 심고 꽃밭을 조성했다. 물레방앗간과 이효석 생가터 주변 모두가 제철을 맞은 메밀꽃으로 뒤덮여 있다. 축제 기간 이효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문학 관련 이벤트가 열린다. 봉평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전통·민속행사도 이어진다. 전국 유명 문인 3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문학인 대회’를 비롯해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에서 문학의 밤, 문학 콘서트 등이 펼쳐진다. 마을앞 흥정천을 가로지른 나무다리와 돌다리, 섶다리 등을 건너며 소설 속의 시대를 체험할 수도 있다. 송어 맨손잡기나 봉숭아 꽃물들이기 등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농사놀이 체험이나 우마차 타기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즐길거리다. 관광객들은 제기차기와 고무신끌기, 투호놀이, 굴렁쇠놀이 등 전통 민속놀이는 물론 지게지기와 도리깨질 등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체험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먹거리도 많다. 주민들이 직접 재현한 1930년대 재래장터에서는 메밀전과 메밀국수, 올챙이국수, 동동주 등 전통 음식을 맛보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대장장이와 짚신장수, 채소·곡물장수들이 연신 소리를 질러대며 와글와글한 시골장터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진다. 효석문화제의 백미는 봉평 달빛극장 페스티벌. 봉평면의 폐교된 덕거초등학교를 개조해 연극배우 유인촌이 공연장을 만들고 2004년부터 매년 효석문화제 기간에 맞춰 공연해오고 있다. 올해는 클래식 연주회와 연극이 어우러지는 프로그램으로 짜졌고, 기간도 종전 1주일에서 3주일로 늘었다. 축제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마을의 물레방앗간을 돌아 오솔길로 접어들면 산 중턱에 있는 이효석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문학관 안의 메밀자료 전시관에는 메밀의 역사·성분·효능 등을 살필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된다. 바로 아래는 이효석의 생가터가 자리한다. 생가터 오른쪽으로는 폐교를 개조해 만든 ‘평창무이 예술관’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드넓던 운동장에는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마치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자아낸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도예전과 서예전을 감상하며 직접 도자기도 구워 볼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30분거리에 있는 강릉을 찾아 철 지난 여름바다와 함께 회를 맛보는 것도 좋겠다. 효석문화제는 올해 고객 중심의 기획·운영 프로세스를 구축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제표준화기구로부터 ISO9001(품질경영시스템) 인증을 획득했다. 권혁승 평창군수는 “평창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 가을의 시원한 바람과 함께 문학의 향기가 배어나는 고장이다.”면서 “1930년대의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봉평면으로 초대한다.”고 말했다. 평창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7일> ·전국 효석백일장 대회(문화마을 일대)·쏙버덩소리공연(주 행사장) <8일> ·황병산사냥놀이(주행사장)·문학의 밤(〃) <9일> ·무지개다리(국악공연·주행사장)·소래국악공연(주 행사장) <10일> ·민속놀이(주행사장)·영상물전(〃) <11일> ·평창 아라리공연(주행사장)·민속놀이(〃) <12일> ·평창 주부 사물놀이(주행사장)·민속놀이(〃) <13일> ·취타대 공연(주행사장)·민속놀이(〃) <14일> ·목도소리(주행사장)·문학콘서트(〃) <15일> ·가장행렬(주행사장)·연극공연(〃) <16일> ·사물놀이(주행사장)·농악(〃)
  • [데스크시각] 오사카 뛰어넘기/임병선 체육부 차장

    지난 2일 아침 묵고 있던 일본 오사카의 한 호텔에서 눈을 뜨자마자 텔레비전을 켰다. 여자 마라톤 레이스가 궁금해서였다. 지난 밤 12시가 넘어 경기장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든 터였다. 거리에서 일본인들의 응원 열기를 지켜보겠다는 결심을 지키지 못하고 텔레비전 시청으로 대신해야 했다. 뜨거운 거리 응원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 열기는 상상을 휠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아침을 들고 호텔 밖으로 잠깐 나갔다가 기겁을 했다. 오전 8시인데도 더위가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들이 마지막 금메달에 대한 희망으로 똘똘 뭉쳐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비밀병기’ 사도 레이코는 38㎞ 지점에서 중국 선수에게 추월당했다가 응원 열기에 자극받았는지 따라잡고 3위로 골인, 개최국 일본에 첫 메달을 안겼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선수들이 레이스 도중 마시는 음료통 손잡이였다. 지칠대로 지친 선수들이 황망간에 집어드는 통 손잡이에 꽃이 꽂혀 있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스며든 정성이 흠뻑 전해졌다. 나가이 스타디움의 미디어센터 안에서 각국 취재진이 물이나 음료를 찾으면 자원봉사자들은 반드시 수건으로 병이나 캔의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뒤 건넸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스타디움 안 취재석까지 이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의 환영 인사를 들어야 했는지 모른다. 2일 막을 내린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을 지켜본 우리에겐 크게 세 가지 방향의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4년 뒤 대구가 훨씬 더 완벽한 대회 운영을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다른 이들은 돈은 적게 들이고 자원봉사와 미소로 ‘수지를 맞춘 대회’라는 식으로 폄하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대회 운영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개최국의 경기력이라며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전략종목을 발굴, 스타를 길러내야 한다고 단단히 별렀다. 사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대목들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무얼까. 스타 부재와 개최국 국민의 무관심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이 아닐까. 귀국길 간사이공항에서 만난 성봉주 체육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솔직히 수준이 안 되는 선수라도 일본 텔레비전 등은 반복적으로 소개하며 관중 동원에 열심이더라.”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오후 경기 시작을 2시간 앞둔 오후 5시만 되면 방송들은 어김없이 그날 출전하는 일본 선수들의 각오와 그동안의 훈련방법, 경기 전망 등을 요란스럽게 내보냈다. 전력비교의 대상으로 이번 대회 3관왕을 차지한 앨리슨 펠릭스(미국) 같은 선수가 오르내릴 정도였느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기자 역시 그런 장면에 싸늘한 비웃음을 날린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자꾸 되풀이되자 ‘아, 저런 건 정말 우리가 따라할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번외종목인 남자 마라톤 단체전 3위를 차지하고 세단뛰기의 김덕현(조선대)이 8년 만에 결승에 진출한 것 외에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를 둘러싸고도 한쪽에선 가능성을 보인 대회라 하고, 다른 한쪽에선 4년 뒤 뭐가 달라질까 의심하는 시선이 엄존한다. 일본은 10년의 중점투자 전략을 통해 여자 마라톤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국에는 전혀 없는 육상전문 잡지들이 서점에서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육상은 이제야 궤도 수정을 통해 훨씬 짧은 4년 동안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가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급한 만큼 서두르다 생기는 부작용도 만만찮을 것이다. 육상 기반을 망칠 수 있다는 걱정과 우려도 껴안고 나가야 한다.‘안되는 상품’을 어떻게 포장해 ‘시장’에 내놓을지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임병선 체육부 차장 bsnim@seoul.co.kr
  • 운동회/요시미 순야 외 지음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에 청색이며 백색 머리띠를 한 채 발을 디디면 가슴이 터질 듯 부푼다. 한달 가까이 땀흘려 연습한 매스게임이나 에어로빅을 혹시 비 때문에 부모님께 못 보여드리면 어쩌나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모래먼지가 들어간 김밥을 먹으면서도 즐거웠던 것은 어머니나 선생님과 2인3각 달리기를 하는 운동회가 손꼽히는 가족나들이자 동네잔치 기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운동회가 전쟁과 함께 성장한 일본이 ‘제국의 건강한 국민’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을 알면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운동회(요시미 순야 외 지음·이태문 옮김·논현 펴냄)’는 백화점, 만국박람회, 운동회, 철도와 여행 등의 주제로 근대 일본을 모색하는 ‘일본 근대 스펙트럼’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이다. 출판사측은 “일본 근대의 이해를 통해 우리 근대 사회의 일상을 조명할 수 있는 기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최초의 운동회는 1874년 도쿄 쓰키지 해군학교 기숙사에서 열린 ‘경투유희회’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 교사의 지도 아래 150야드 경주, 높이뛰기,3단뛰기, 공던지기 등의 경기를 치렀다. 곧이어 성행한 소학교 운동회는 깃발뺏기, 줄다리기, 맨손체조 등의 경기를 중심으로 군대식 체조의 정신이 최대한 강조됐다.1880년대부터 일본 전역의 학교로 퍼져 나간 운동회는 주변 마을 사람들을 끌어들여 ‘근대 마쓰리(축제)’로 발전해 갔다. 일본에서 운동회의 전국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문부대신 모리 아리노리는 “일본인의 몸은 너무 연약해 한숨이 나올 정도인데, 다다미 위에 무릎을 꿇고 앉거나 웅크리며 쉬는 나태한 습관이 들어 움직이는 걸 싫어하고 허리는 꼽추처럼 굽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각지의 학교를 순시하며, 아동 개개인을 ‘근대 국민국가의 주체=신민(臣民)’으로 키우려 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이후에는 승리를 축하하는 대규모 운동회가 군대식 체조와 행진으로 화려하게 연출됐다. 깃발뺏기, 총검술 시범 등 군사연습형 운동회도 많았다. 1900년대가 되자 일본 당국도 운동회가 지나치게 화려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훈시와 통달을 내린다. 하지만 이미 마을축제로 정착한 운동회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최근에는 자기 아이 차례가 되면 부모가 앞다퉈 비디오카메라를 들이대는 유치원 운동회를 두고 지은이의 한 사람인 가미스키 마사코는 “유치원에 운동회는 필요없다.”며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창가의 소녀 토토짱’에는 1등 상품으로 학용품대신 배추나 무를 나눠주는 대안적 운동회가 나온다. 가족들은 야채로 저녁을 해먹으며 그날의 운동회 이야기로 밥상에서 정을 쌓는다. 일본에서도 이제 보여주기식이 아닌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이상적인 운동회에 대한 모색이 활발하다. 곧 운동회철이다. 우리 아이들의 운동장을 어떤 새로운 형태로 채울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어떻게 지내십니까] 부천署 성고문 피해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

    [어떻게 지내십니까] 부천署 성고문 피해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

    “소개팅 시켜드릴까요?” 권인숙 명지대 교수의 거침없는 활달함에 엉뚱한 질문을 던져봤다.“좋지요. 그런데 남자들이 나를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을까요.” 막히지 않고 바로 응답이 있기에 다시 물었다.“어떤 타입이 자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인기를 모은 TV드라마에서 남장 여자로 나왔던 윤은혜 같이 작고 예쁜 남자가 좋다고 했다. 예전에는 홍콩배우 장국영의 팬이었다면서…. ●부천서 사건, 이젠 담담하다 권 교수에게서 이제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아픔, 투사적 이미지는 느껴지지 않았다.169㎝의 후리후리한 키와 얼굴 전체에서 피어나는 함박웃음. 그리고 학문의 열정이 넘쳤다.TV드라마를 즐기고, 소주보다는 와인이 입에 맞는다는 당당한 이혼녀다.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의학자 보리스 시릴뤼크는 불행에 맞서는 인간의 치유능력을 분석했다.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약간 뒤로 물러서 객관적인 연극처럼 대하면 곧 견딜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그의 연구결과. 권 교수의 분위기가 그랬다.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 부천서 사건을 그녀는 타인의 경험인 듯 담담하게 얘기했다.“(과거의 아픔을)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학생·노동운동이) 당시에는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했고, 그 사건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가해자 문귀동에 대해 용서하고 말고, 그런 차원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다시 학생운동하면 남성과는 안 하겠다 권 교수는 20년 전의 운동권 활동 역시 ‘학자적’으로 객관화시켰다. 그녀의 현재 전공 분야는 여성학. 그녀는 “여성학 공부는 20대 이후 내가 내린 선택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이라고 했다.“운동권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마 남성들과 같이 안 했을 겁니다. 다른 방법으로 했겠지요. 서구에서도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했다가 3∼4년 지난 뒤 반발하거나 독립적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90년대 중반 연세대 성(性)정치문화제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타나더군요.” 80년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운동권 토양이 그녀는 영 못마땅한 듯싶었다. 여성을 남성화시키면서도 남성의 보조로 여겼던 풍토. 화장 안 한 맨얼굴, 치마는 안 되고 청바지, 남녀 구분 없는 형 호칭, 욕과 담배·술…. 권 교수는 “그때도 저는 담배는 안 피웠어요.”라며 웃었다. “이기주의보다 개인주의가 나쁘다는 게 당시 운동권의 분위기였습니다.1960,70년대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위계적·서열적 집단문화가 형성되었고, 폭력을 효율적 수단으로 본 것이죠.” 폭력적 수단의 장단점을 따지지 않은 게 80년대 운동권의 실수라고 지적했다.“평화적 수단을 찾는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죠. 일본은 핵무기에 의해 전쟁에 졌지만 우리는 그것 때문에 이겼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평화적 수단의 힘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절대 정치 안 한다 자연스레 화제는 386 남성 정치인들로 넘어갔다.“정치 디테일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아요. 기본호흡이 너무 달라서….” 권 교수는 일단 발을 빼려 했다. 집요한 질문에 “저 사람들이 왜 그럴까, 그런 생각은 합니다.”고 운을 떼었다.“386들이 잘 해보려고 했는데 상상력과 콘텐츠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사회 전반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성찰이 있어야 했습니다.” 80년대 운동권 가운데 여성 비율은 20∼30%. 남성 386들의 활발한 정계진출에 비해 여성 386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존재감이 없다. 권 교수에게 민주화의 공로자로서 명성을 업고 정치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학문의 영역을 넘어 실천의 영역에서 여성 권익 신장에 앞장서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고 살짝 긁어 보았다. 그러나 “없어요.”라고 짧고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김대중 정권 시절 전국구 의원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사양했다고 했다. 그리고 권씨 종친회에서도 국회의원 출마 얘기가 있었지만 한 귀로 흘렸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부담스럽게 살고 싶지 않아요.” 교수로서 가르치고, 책·논문 쓰는 일에만 몰두하겠다고 강조했다.“정치뿐 아니라 다른 사회활동, 시민단체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걸요. 중학생 딸과 집에 있는 게 좋아요.” 권씨는 1998년 이혼했다. 운동권 동료와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가부장적이더라고 했다.“전 남편 얘기는 더 하고 싶지 않네요.” 현재 대선주자 가운데는 한명숙 전 총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 1명, 여성 총리 1명보다는 국회의원, 장관, 행정직 안의 비율이 늘어나 여성이 정치세력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차별적 집단문화 탐색 하겠다 권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군사주의가 만연하면서 여성이나 소수자의 인권이 억압되는 과정을 집중 탐구하고 있다. 자전적 에세이집 ‘선택’에 이어 2005년에는 ‘대한민국은 군대다’를 통해 군사주의 타파를 역설했다. 얼마전 펴낸 ‘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는 한국출판인회의에 의해 ‘8월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한국사회에서 가부장적 문화, 군사주의 문화가 횡행하는 주요 요인으로 징병제를 꼽았다.“부국강병을 중시하는 전통과 70,80년대 군인들이 근대화, 현대화를 주도했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군대 복무 경험의 영향이 큽니다. 여성이 남성들의 군대 문화에 따라가지 말고, 독자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징병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여성 학자로서 목소리를 낼겁니다.” 성차별적인 집단문화와 함께 진정한 남자다움은 무엇인지를 탐색해보겠다고 했다. 이목희 논설위원 사진 도준석기자 mhlee@seoul.co.kr
  • ‘내 생애 최악의 남자’서 첫 주연 탁재훈

    ‘내 생애 최악의 남자’서 첫 주연 탁재훈

    TV 오락프로그램의 방청객 혹은 출연자가 된 기분이다. 탁재훈과의 인터뷰 내내 그런 느낌이었다. 거의 10초마다 한번씩 폭소가 터지지 않았을까 싶다. 고운 목청은 어머니에게서 왔고,“바람끼를 포함한 모든 끼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익살을 떤다. 유머 감각은 외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체득한 것이라고 한다. ‘컨츄리 꼬꼬’란 간판을 걸고 8개월째 빈둥거리다 출연한 오락프로그램에서 사생결단하고 입담을 펼쳤다. 뭘 하든 개그맨보다 더 웃긴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 꼬리표는 언젠가부터 ‘부적’이 됐다. 그리고 이제 그는 어디에 갖다 놔도 평균 이상은 하는 만능 연예인으로 각인됐다. 카메오로 출발,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해 사람들의 눈에 든 영화만 7개. 마침내 불혹의 나이에 당당하게 주인공 자리까지 올랐다. 그의 첫 주연작은 30일 개봉하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술김에 치른 ‘거사’로 10년 우정을 깨고 대학 동창과 결혼하는 소심남 성태 역이다. 영화는 결혼 직후 완벽한 이상형을 만난 뒤 흔들리는 커플의 이야기다. ●1998년 영화계 첫발… 가수로 데뷔했지만 다시 영화품으로 사실 그는 영화에 먼저 몸담았다.1988년 ‘마님’이라는 작품에서 연출부로 일했다. 군대 제대 후 93년 다시 충무로로 돌아온 끼 넘치는 그에게 주변에선 배우를 권했고,‘혼자 뜨는 달’로 데뷔했다. 하지만 인연은 여기까지였다.4년을 놀다가 31살에 가수로 새출발했다. 가슴 한 구석에 미련은 늘 있었고, 한참을 돌아 원점에 섰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이제야 기회가 오는구나.”했다. 그에 앞서 고마움도 느꼈다고 했다.“나를 택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그래서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연기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만든 작품은 코미디 ‘가문의 위기’다.“이 영화로 청룡영화제 신인상 후보까지 올랐어요. 그런데 0표를 받았어요. 이건 저한테 약을 친 거예요.(웃음)한 세 표 정도 나왔으면 이쯤에서 됐다 했겠는데 자극이 확 되더라고요.” ●“시나리오 제목만 봐도 감이 팍팍” 지금까지 그가 맡은 배역들은 TV에 나온 코믹한 이미지를 차용한 것들이다. 이번 영화도 그럴까. 뚜껑을 열어보니 망가지는 건 오히려 상대 배우 염정아다.“얼마큼 자연스럽게 가느냐가 관건”이었다는 말처럼 탁재훈은 너무나 멀쩡하다. 그가 아주 많이 웃겨줄 거라고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탁재훈이 망가지지 않으면 무슨 재미? 하지만 현재 촬영 막바지에 있는 그의 또 다른 주연작 ‘어린왕자’를 놓고서는 입을 다물지 못할 듯하다. 여기서 그는 깊은 상처를 간직한 음향효과 기술자로 나온다. 감독은 그의 슬픈 눈을 보고 낙점했단다.“맨날 울어서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에요.(웃음)” 시나리오 선택의 제1요건은 ‘제목’이란다. 실컷 웃었는데 그는 사뭇 진지하다.“진짜로 저는 제목을 보면 감이 와요.” 폼 잡지 않는 것 또한 그의 매력이 아닐까. 다음 작품은 역시 제목에 ‘필’이 꽂혀 선택한 로맨틱 코미디 ‘어젯밤에 생긴 일’이다.“노래는 생계가 아니라 생활”이라는 그는 당분간 영화에 ‘올인’할 작정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서울광장] 양질의 일자리와 비공식 경제/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양질의 일자리와 비공식 경제/우득정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20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다. 매년 40만개씩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4년에만 목표치를 넘겼을 뿐,2005년엔 29만 9000개,2006년엔 29만개에 불과했다. 올해에도 마찬가지다. 서비스 분야에서 134만개가 생겨났으나 제조업에서 7만 4000개가 사라졌다. 기업의 투자 위축과 신규 채용 기피,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 등으로 성장잠재력과 고용계수가 크게 떨어진 탓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Decent Job)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질의 일자리란 주당 근로시간이 18∼50시간이고, 평균임금의 1.5배 이상을 받는 정규직을 지칭한다.2002년 71만 4000개에서 2005년에는 63만 2000개로 8만 2000개나 줄었다. 전체 실업률의 2배를 웃도는 청년실업률은 양질의 일자리 감소와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참여정부 들어 생겨난 서비스업 일자리의 78.6%가 평균임금에 못 미치는 일자리다. 신규 서비스 일자리 5개 중 4개가 삶의 질을 평균 이하로 떨어뜨리는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 근로자 중 평균임금의 66% 이하를 받는 ‘저임금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26.8%나 된다. 덴마크(8.6%), 프랑스(15.6%), 독일(15.7%), 네덜란드(16.6%) 등 유럽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을 뿐 아니라 양극화가 가장 심하다는 미국(24.9%)보다 높다. 규제 완화와 기업의 투자의욕 고취 등 정공법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기보다는 일자리 숫자 늘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공공근로정책에 재정을 쏟아부어 임시직을 양산한 결과다. 지난주 광복절을 전후해 중국 베이징에서는 ‘양질의 일자리와 비공식 경제’를 주제로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고용포럼이 열렸다. 아시아권 국가들의 과도한 비공식 경제 비중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다는 고민에서 비롯됐다.‘지하경제’로도 불리는 비공식 경제는 마약이나 암시장과 같은 ‘불법 경제’, 조세 면탈을 노린 ‘신고하지 않은 경제’, 가사분야와 같은 ‘기록되지 않은 경제’, 법과 행정의 규제 및 보호대상에서 제외된 ‘비공식 분야’를 포함한다. 우리나라는 금융실명제 도입과 외환위기 이후 투명성이 강조되면서 비공식 경제 규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2∼2003년 기준으로 비공식 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8.8%에 이른다. 미국(8.8%), 일본(10.8%), 영국(12.2%), 프랑스(14.5%), 독일(16.8%) 등 선진국에 비해 2∼3배 높다. 비공식 경제는 소비 증가에 기여할지는 모르지만 자원의 생산적 활용을 저해하고 인력시장과 공식경제의 자금순환을 왜곡시킨다. 또 노출되지 않는 세원과 불로소득은 공식 경제활동 주체들의 세금 부담을 늘리고 비공식 경제로의 참여 유혹을 부추긴다. 그만큼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든다. 올 연말 대선에서 승천하려는 후보들이 앞다퉈 일자리 공약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최대 500만개에서 최소 2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인지, 몇개월짜리 임시직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어차피 뻥튀기 수치이니 후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수치 이면에 가려진 ‘그늘’을 엄중하게 추궁해야 한다. 베이징 ILO 아시아고용포럼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 같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내가 바로 공무원] 성동구청 공원녹지과 박순직씨

    [내가 바로 공무원] 성동구청 공원녹지과 박순직씨

    자전거를 타고 중랑천변 둔치 성동구 구간을 지나다보면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화려한 꽃길과 만난다. 먼발치의 들풀과 어우러진 꽃길을 보노라면 누군가 정성을 많이 들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성동구청 공원녹지과에 근무 중인 박순직(기능직 9급·56)씨가 주인공이다. 청계천과 중랑천 합류지점인 장안철교 아래에서 군자교까지 이어지는 자전거길과 나란한 2㎞의 꽃길 어디에나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직접 꽃씨 얻어다 심어 이 곳은 2003년까지는 가시덤불로 우거진 황무지였다. 반면, 다른 구청이 관리하는 곳은 이미 꽃길이 조성돼 있었다. 성동구도 뒤늦게 꽃길 조성에 나섰고 박씨에게 임무가 맡겨졌다. “처음엔 막막했어요. 잡초만 무성한데 어떻게 꽃길을 내나 고민하다가 당시 박영민(남산관리사업소 근무)계장과 우선 칸나를 심었어요.” 일단 칸나를 심어서 꽃길의 흉내를 냈지만 너무 단순한 모습이 못마땅했다. 지방에 가서 ‘붉은 코스모스’의 씨를 받아와 심었다. 같은 코스모스라도 붉은 코스모스는 개화 기간이 길고, 잘 자라기 때문이다. 재미(?)를 본 그는 칸나, 코스모스에 이어 해바라기와 맨드라미까지 가져다 심어 꽃길을 완성했다. 박씨는 “늦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가장 앞섰다.”고 자랑했다. 전주농고를 졸업,1978년 임시직으로 성동구청과 인연을 맺었다. 기능직 9급으로 정식 채용된 것은 20년이 흐른 1997년이다. 농고를 나온 그에게 꽃길 조성은 적성에 맞았다. 게다가 학교(농과) 다닐 때 어깨너머로 원예과 공부를 한 것이 보탬이 됐다. ●해바라기 이모작도 성공 하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화훼업자들에게 매달렸다. 과거의 지식이 하나둘씩 떠오르고, 새로운 지식이 쌓이면서 그만의 노하우도 쌓여갔다. 대표적인 것이 해바라기. 처음 중랑천에 해바라기를 심을 때는 1000원에 한 포기씩 구입했다. 궁리 끝에 직접 해바라기의 씨를 받아서 파종한다.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4월과 8월 해바라기를 두 번 파종하는 이모작으로 1년에 두 차례씩 해바라기 꽃을 피우는 방법을 체득했다. 맨드라미는 처음엔 50판을 사서 심었다가 꽃이 피자 직접 씨를 받아서 무려 1만개의 포트를 만들어서 꽃길에 심어 예산을 절감했다. 박씨는 또 장안철교 밑에 억새군락을 만들었다. 이 곳은 자생 버드나무가 물길을 막아 침수되던 곳이었다. 그는 치수과의 협조를 얻어 버드나무를 베어내고 억새를 심었다. 홍수도 사라지고 억새밭이 조성돼 지금은 명소가 됐다.1억 4700만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들었다. 박씨는 지난 2000년에는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제를 도입한 공로로,2004년엔 꽃길 조성 등으로 성동구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20&30] 결혼 빠르거나 늦거나

    [20&30] 결혼 빠르거나 늦거나

    최근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20대 초반 여성 연예인들이 잇따라 결혼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가인, 이요원, 홍은희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장신영·한채영까지 ‘어린 아줌마’ 대열에 합세했다.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던 현 결혼적령기를 거스르는 이들을 20&30세대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일반적인 결혼 적령기보다 앞당겨 결혼하는 ‘조혼’과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만혼’에 대한 20&30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 봤다. 강국진 류지영기자 betulo@seoul.co.kr ■ ‘조혼’ 이래서 좋다 ●“일찍 결혼하면 노후가 편안해” 다음달이면 결혼 10주년을 맞는 경찰관 권모(37)씨는 지금도 결혼에 대해 후회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좀 더 일찍 결혼하지 못한 아쉬움이 그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의 아내와 ‘캠퍼스 커플’이 된 권씨는 군복무와 시험준비 끝에 경찰이 돼 1997년 결혼할 때까지 3년이나 자신을 기다려준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남자 나이 25살 정도에 결혼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고시나 박사 학위 등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대학생들은 졸업 뒤 ‘월급쟁이’로 살게 되잖아요. 어차피 요즘 세태로 보면 50세 이전에 생업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데 50세 전후로 자식들 결혼시키고 사랑하는 아내와 마음 편히 여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경제적·정서적으로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요?일찍 결혼한다는 것은 아내와 단 둘이 있을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안정된 기반이 사회적 성공 앞당겨” 결혼 7년차인 회사원 이모(34)씨는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7대3 정도의 비율로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이씨는 “외환위기 직후 결혼해 국가경제가 어려웠지만 맞벌이를 해서 그런지 우리 부부는 오히려 풍요로웠다.”고 회상한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사귀었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이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총각 시절 겪는 여러 가지 방황들을 겪지 않았다.”면서 “결혼은 나에게 안정된 기반 위에서 오직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다.”고 만족해했다. “일찍 결혼한 덕분인지 전 이미 외모부터 말투까지 명실상부한 ‘아저씨’가 됐지만요. 그래도 세월의 연륜으로 여기며 만족하고 있어요. 아직도 총각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직도 그들이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나는 자식들 밥 굶기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한푼이라도 아껴가며 살아가는데 결혼 안 한 친구들이 문화 생활이나 데이트, 해외 여행 얘기만 들먹이는 걸 듣다 보면 솔직히 괴리감이 들죠.” ●“조건 구애없는 순수한 사랑 가능해” 방송국 PD 김모(31)씨는 조혼 예찬론자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취직 뒤 곧바로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입장이다. 평생 순수한 사랑을 간직할 수 있어서라고. 그 역시 취직하자마자 대학 때부터 만났던 여자친구와 결혼해 5살배기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남녀 모두 어느 정도 ‘때’가 묻게 마련이잖아요. 결혼 상대방이 집을 마련해 올 수는 있는지, 월급은 충분한지, 학벌은 좋은지 등등을 따지다 보면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아직 ‘세상물정’ 모를 때 결혼하면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히 상대방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늘 아내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고 싸워도 곧바로 화해할 수 있어요. 살다 보면 반드시 인생의 어려움이 닥치기 마련인데 조건을 보고 결혼했다면 힘든 시기에 그런 조건이 없어졌을 경우 결혼생활이 어떨까요? 이런 의미에서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순수한 사랑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인생의 ‘축복’이라고 봅니다.” ■ ‘만혼’ 이래서 좋다 ●준비 안 된 결혼은 오히려 버거워 회사원 장모(36)씨는 큰 아들이 11살인 ‘조혼남’이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늦게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20대 초반부터 책임과 희생을 짊어지며 살아온 게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듯 남편과 아빠 또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장씨의 지론이다. “결혼을 언제 했는지도 가물 가물하네요.24살에 했으니까 남자치곤 상당히 빨리 했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을 돌볼 여자가 필요했거든요.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너무 일찍 한 것은 아닌가 아쉬울 때는 있어요. 당장 아이 교육비만 해도 30대 중반인 제 월급으로는 버거운 게 사실이거든요. 최근 결혼해 아직도 신혼생활의 달콤함에 젖어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교육비·집값 등 경제적 부담으로 고민하고 있는 제 처지가 딱하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아이를 일찍 키워 놓으면 노후가 편하다고들 하지만 남들 40대에 고민해야 할 문제를 10년이나 앞서 매달리다 보니 ‘조로(早老)’한다는 느낌도 들어요.” ●결혼 뒤 후회 말고 많이 만나 보시길 아직 미혼인 회사원 송모(36)씨는 “남자라면 군대를 갔다 온 뒤 직장생활을 3∼4년 정도 한 30대 초반이 결혼 적령기”라면서 “결혼이란 서로 다른 경험을 해 온 두 사람이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인 만큼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는 수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몇 년 전 결혼까지 생각하던 여성이 있었지만 당시 완벽한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어 헤어졌다는 송씨는 “좀 더 노력해 1∼2년 안에 준비된 결혼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방탕한 생활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고요. 결혼 전 가급적 많은 상대방을 만나 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요. 수능시험을 보는데도 모의고사를 많이 보면 그만큼 자신있게 대처할 수 있잖아요. 하물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혼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그렇다고 결혼 전 만나는 사람을 ‘연습용’으로 생각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요. 만날 때마다 늘 ‘나’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최선을 다하되 시행착오를 줄여 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만나다 보면 진짜 내 ‘짝’이라 느끼는 사람을 만나게 돼도 실수없이 잘 해 나갈 수 있겠죠.” ●결혼은 인생의 무덤…가급적 천천히 동시통역사를 준비중인 최모(27·여)씨는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전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꿈을 펼치고 싶은 그에게 결혼은 꿈을 구속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최씨는 30대 중반은 돼야 결혼을 생각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남자들은 ‘결혼하면 물에 손 한번 안 담그게 다 해주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잘 알아요.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손에 물이 묻냐 안 묻냐가 아니라 남편이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주느냐 하는 것이죠. 주위에 결혼을 위해 자신의 꿈을 버리는 여성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들도 아내가 애 낳고 키우다 제 풀에 꺾여 꿈을 포기하길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아요. 결혼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전 하고 싶은 일들을 어느 정도 이룬 뒤 생각해 볼래요.”
  • [20&30] 결혼 빠르거나 늦거나

    [20&30] 결혼 빠르거나 늦거나

    최근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20대 초반 여성 연예인들의 잇따라 결혼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가인, 이요원, 홍은희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장신영·한채영까지 ‘어린 아줌마’ 대열에 합세했다.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던 현 결혼적령기를 거스르는 이들을 20&30세대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일반적인 결혼 적령기보다 앞당겨 결혼하는 ‘조혼’과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만혼’에 대한 20&30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 봤다. 강국진 류지영기자 betulo@seoul.co.kr ■ ‘조혼’ 이래서 좋다 ●일찍 결혼하면 노후가 편안해 다음달이면 결혼 10주년을 맞는 경찰관 권모(37)씨는 지금도 결혼에 대해 후회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좀 더 일찍 결혼하지 못한 아쉬움이 그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의 아내와 ‘캠퍼스 커플’이 된 권씨는 제대하고 3년간 시험준비 끝에 경찰이 돼 1997년 결혼했다. “남자 나이 25살 정도에 결혼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고시나 박사 학위 등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대학생들은 졸업 뒤 ‘월급쟁이’로 살게 되잖아요. 어차피 요즘 세태로 보면 50세 이전에 생업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데 50세 전후로 자식들 결혼시키고 사랑하는 아내와 마음 편히 여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경제적·정서적으로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요? 일찍 결혼한다는 것은 아내와 단 둘이 있을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안정된 기반이 사회적 성공 앞당겨 결혼 7년차인 회사원 이모(34)씨는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7대 3 정도의 비율로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이씨는 “외환위기 직후 결혼해 국가경제가 어려웠지만 맞벌이를 해서 그런지 우리 부부는 오히려 풍요로웠다.”고 회상한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사귀었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이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총각 시절 겪는 여러가지 방황들을 겪지 않았다.”면서 “결혼은 나에게 안정된 기반 위에서 오직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다.”고 만족해했다. “일찍 결혼한 덕분인지 전 이미 외모부터 말투까지 명실상부한 ‘아저씨’가 됐지만요. 그래도 세월의 연륜으로 여기며 만족하고 있어요. 아직도 총각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직도 그들이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나는 자식들 밥 굶기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한푼이라도 아껴가며 살아가는데 결혼 안 한 친구들이 ‘유럽식 자본주의’니 뭐니를 들먹이며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솔직히 괴리감이 들죠.” ●조건 구애없는 순수한 사랑 가능해 방송국 PD 김모(31)씨는 조혼 예찬론자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취직뒤 곧바로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입장이다. 평생 순수한 사랑을 간직할 수 있어서라고. 그 역시 취직하자마자 대학 때부터 만났던 여자친구와 결혼해 5살배기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남녀 모두 어느 정도 ‘때’가 묻게 마련이잖아요. 결혼 상대방이 집을 마련해 올 수는 있는지, 월급은 충분한지, 학벌은 좋은지 등등을 따지다 보면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아직 ‘세상물정’ 모를 때 결혼하면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히 상대방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늘 아내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고 싸워도 곧바로 화해할 수 있어요. 살다 보면 반드시 인생의 어려움이 닥치기 마련인데 조건을 보고 결혼했다면 힘든 시기에 그런 조건이 없어졌을 경우 결혼생활이 어떨까요?이런 의미에서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순수한 사랑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인생이 ‘축복’이라고 봅니다.” ■ ‘만혼’ 이래서 좋다 ●준비 안 된 결혼은 오히려 버거워 회사원 장모(36)씨는 큰 아들이 11살인 ‘조혼남’이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늦게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20대 초반부터 책임과 희생을 짊어지며 살아온 게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듯 남편과 아빠 또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장씨의 지론이다. “결혼을 언제 했는지도 가물 가물하네요.24살에 했으니까 남자치곤 상당히 빨리 했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을 돌볼 여자가 필요했거든요.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너무 일찍 한 것은 아닌가 아쉬울 때는 있어요. 당장 아이 교육비만 해도 30대 중반인 제 월급으로는 버거운 게 사실이거든요. 최근 결혼해 아직도 신혼생활의 달콤함에 젖어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교육비·집값 등 경제적 부담으로 고민하고 있는 제 처지가 딱하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아이를 일찍 키워 놓으면 노후가 편하다고들 하지만 남들 40대에 고민해야 할 문제를 10년이나 앞서 매달리다 보니 ‘조로(早老)’한다는 느낌도 들어요.” ●결혼 뒤 후회 말고 많이 만나 보시길 아직 미혼인 회사원 송모(36)씨는 “남자라면 군대를 갔다 온 뒤 직장생활을 3∼4년 정도 한 30대 초반이 결혼 적령기”라면서 “결혼이란 서로 다른 경험을 해 온 두 사람이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인 만큼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는 수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몇 년 전 결혼까지 생각하던 여성이 있었지만 당시 완벽한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어 헤어졌다는 송씨는 “좀 더 노력해 1∼2년 안에 준비된 결혼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방탕한 생활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고요. 결혼 전 가급적 많은 상대방을 만나 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요. 수능시험을 보는데도 모의고사를 많이 보면 그만큼 자신있게 대처할 수 있잖아요. 하물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혼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그렇다고 결혼 전 만나는 사람을 ‘연습용’으로 생각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요. 만날 때마다 늘 ‘나’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최선을 다하되 시행착오를 줄여 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만나다 보면 진짜 내 ‘짝’이라 느끼는 사람을 만나게 돼도 실수없이 잘 해 나갈 수 있겠죠.” ●결혼은 인생의 무덤…가급적 천천히 동시통역사를 준비중인 최모(27·여)씨는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전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꿈을 펼치고 싶은 그에게 결혼은 꿈을 구속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최씨는 30대 중반은 돼야 결혼을 생각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남자들은 ‘결혼하면 물에 손 한번 안 담그게 다 해주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잘 알아요.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손에 물이 묻냐 안 묻냐가 아니라 남편이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주느냐 하는 것이죠. 주위에 결혼을 위해 자신의 꿈을 버리는 여성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들도 아내가 애 낳고 키우다 제 풀에 꺾여 꿈을 포기하길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아요. 결혼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전 하고 싶은 일들을 어느 정도 이룬 뒤 생각해 볼래요.”
  • 폭락… 폭등… 롤러코스터 증시

    투자심리가 급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무관한 변동성 장세라며 신중한 판단을 주문하고 있다. 시장은 주가 반등 장세에서 종목별 차별화가 진행될 것이라 보고 우량주를 골라내는 작업에 들어갔다.●폭락, 폭등…, 어지러운 주식시장 20일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코스피200선물 9월물이 5.08% 이상 상승,1분간 지속됨에 따라 사이드카(sidecar)가 발동됐다. 올 들어 3번째지만 급등으로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는 2004년 이후 처음이다. 코스닥시장에서도 스타선물 9월물이 6.47% 상승함에 따라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역시 올 들어 세번째다. 유가증권·코스닥시장 모두 사이드카가 7월30일 이후 발동, 최근 들어 증시의 변동성이 커졌음을 증명했다. 민상일 한화증권 연구원은 “지난 주말까지 16일간 진행된 조정은 하락폭도 다른 시기에 비해 컸던 만큼 반등 강도도 여전히 강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심재엽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이 위험 회피 수단으로 신흥시장, 그중에서도 선물시장이 발달한 한국을 주요 매매 대상으로 삼고 있어 당분간 변동성 장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외국인들의 순매도세는 다소 완화돼 매도금액은 3691억원이었다.●FRB의 2% 부족한 선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재할인율을 인하, 불안심리 진화에 나서면서 지난 주말 미국 증시가 안정세로 돌아섰다. 미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82% 오르면서 1만 3000선을 회복했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시장은 금리인하를 기대하고 있고 FRB는 금리인하에서 파생될지 모르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고 있다.”며 FRB의 이번 결정을 ‘고민이 묻어있는 결정’이라고 판단했다.FRB가 금리를 내리면, 투기자들에게 그들이 입게 될 손실이 제한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아직은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에서 나타난 금융시장 불안이 해소됐다고 보기는 이르다고 진단한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서브프라임모기지에 투자한) 대형 금융기관의 책임분담과 금리인하가 줄다리기를 하면서 증시는 1800선 전후에서 급등락을 반복하는 양상이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경제팀장도 “FRB의 이번 조치로 냉각된 투자심리가 급격히 호전되기보다 점차 회복될 것”이라고 진단했다.●반등을 준비하는 증권사 이상재 현대증권 경제분석부장은 최근 급락 장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떨어졌던 조선, 철강, 기계, 보험업종에 대한 관심을 주문했다. 증권사들은 실적에 비해 지나치게 떨어진 종목 외에도 외국인들이 8월 들어 5조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하면서도 순매수하고 있는 주식을 고르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화증권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우리금융,LG카드, 대구은행,KTF,SK케미칼, 삼성카드, 대한전선 등은 순매수했다.●사이드카(sidecar) 선물시장이 급변, 현물(주식)시장에 영향을 주는 것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프로그램 매매호가 관리제도로 선물가격이 전 거래일보다 5%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해 1분간 지속될 때 발동된다. 프로그램 매매호가의 효력이 5분간 정지된다. 하루에 한번만 발동된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동작구립합창단 서울어머니합창대회 연습 현장

    동작구립합창단 서울어머니합창대회 연습 현장

    20일 동작구청 대강당.30여명의 합창단원들이 지휘자 박정수(32)씨의 섬세한 손짓 하나하나에 화음을 맞춰나갔다. 그래도 지휘자는 성에 차지 않는 듯 “소리를 좀 더 풍부하게 가져주세요.”라고 주문했다. ‘서울시 최강’을 자부하는 동작구립합창단이 오는 10월에 열릴 ‘서울어머니 합창대회’를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에게 불볕 더위는 남의 일이다. “노래를 안 부르면 시간이 안 간다.”고 할 정도로 ‘노래 삼매경’에 빠져 있다. 일부 단원은 여름 휴가도 잊었다. 이들은 매주 월·목요일마다 2시간씩 연습한다. 합창대회를 앞둔 최근에는 금요일에도 모여 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원은 모두 44명. 이 가운데 42명이 기혼자다.21년째 합창단원인 최고참 주병희(58)씨는 올해가 합창단 정년이다. 실제 나이와 주민등록의 나이가 달라 3년 더 합창단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번 서울어머니 합창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각오다. 그는 “딸들이 합창대회에서 꽃다발을 안겨줄 때가 가장 보람된 순간”이라고 말했다. 시부모님을 모시는 주부 강영기(48)씨는 합창단에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 반대가 적지 않았지만 “첫 출전한 합창대회에서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회고했다. 합창단 젊은 어머니들의 고민은 육아문제. 대부분 30대 주부여서 연습 시간 동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놀이방이나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이 손을 잡고 연습장에 오는 어머니도 있다. 일부 나이드신 단원들은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아이들을)방목한다.”고 웃는다. 구립합창단원은 무보수다. 사실상 자원봉사나 다름없다. 이들의 ‘노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동작구가 운영비와 단복 제작, 대회 참가비 등을 지원하지만 그리 넉넉지 않다. 합창단은 올 초에 ‘숨은 고수’들을 대거 보강했다. 박정수씨는 지휘자 공개 모집에서 16명의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뽑힌 실력자다. 신규 단원도 공개 오디션을 거쳐 송채영씨 등 9명을 선발했다 “합창단에서 두 번째로 어리다.”는 지휘자 박씨는 “아마추어지만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프로에 못지않다.”면서 “여름에 흘린 땀방울들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합창단은 1984년 ‘동작어머니합창단’으로 출발,1999년 ‘동작구립합창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 ‘제3회 휘센합창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박찬구 기자의 정국 View] 한반도 프레임과 대선 지형

    “확실히 정상회담은 어려워.” 18일 남북정상회담이 연기된 직후 청와대 관계자의 첫 반응이다.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으로 정상회담이 무산되고,2000년 6월 첫 회담이 대북송금 지연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전례를 언급했다. 회담 연기의 배경을 놓고 각 정파와 전문가는 미묘한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다. 시각의 편차가 객관적인 정보와 합리적인 분석에 따른 것이라면 사회 공론(公論)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파적 이해관계나 검증되지 않은 불신감으로 남북 문제를 바라본다면 갈등과 대립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란 난감해 보인다.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를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디딤돌로 여기고 있다. 한 관계자는 “1차 회담이 상징과 선언이었다면, 이번 회담은 실질적인 변화와 실천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반도와 동북아 패권을 노리는 중국과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남북의 생존권을 우리 스스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시각이다. 최근 참모들 사이에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집필 중인 저서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인식에 따른 것이다. 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제성장의 요인이 자립보다는 개방과 수출을 선택한 경제정책에 있으며, 이는 일본지향적인 박 전 대통령이 일본식 경제모델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이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전략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이어 노무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북방경제로 활로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시각은 달랐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올해 남북정상회담은 대선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정상회담이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정상회담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한나라당이 ‘햇볕정책은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북한의 정상회담 의도가 6자회담과 북·미 관계에서 적절히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남한을 병참기지로 활용하려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현 정부와 범여권으로서는 대선 환경이 어려워 분위기 전환을 노리는 것이고, 북한은 자기들과 말이 통하는 세력이 차기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호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이 지난달 초 대선 표심(票心)을 의식,‘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했다가 당내 반발로 폐기하고, 정상회담 성사와 연기 발표 이후 계속 ‘정치적 노림수’를 부각시킨 점은 이 전 총재의 시각과 맥이 닿아 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대북(對北)정책의 궤도 수정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지 않았다. 누가 본선 후보가 되든 이념적 정체성과 지지세 확장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범여권은 남북정상회담의 ‘대선 2개월 전’개최를 호재로 여길 법하다. 하지만 대선 지형은 만만치 않다. 민주당 후보가 10% 안팎의 지지율을 확보한다면, 대통합민주신당은 막판 불가피한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의 ‘50대50’지분 요구에 시달릴 것이다. 민주노동당 후보의 지지율이 정당 지지율을 넘어선다면 반(反)한나라당 세력의 계산은 더욱 복잡해진다. 범여권, 특히 열린우리당 출신 후보들은 정상회담의 수혜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어떤 시각과 비전으로 범여권 통합을 일궈내고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다. ckpark@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2) 모문룡의 작폐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32) 모문룡의 작폐 Ⅱ

    인조반정 이후 조선 조정이 모문룡을 ‘은인’으로 여겨 송덕비까지 세우게 되자 모문룡은 기고만장했다. 그는 조선에 군량을 비롯하여 전마(戰馬), 조총, 병선 등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그 휘하의 장졸(모병:毛兵)과 요민들이 끼치는 민폐였다. 모병과 요민들은 청북으로 밀려들었고, 후금을 자극했다.1627년의 정묘호란은 그 같은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밀려드는 遼民과 毛兵들 조선 조정은 모문룡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두 가지 난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모문룡의 진영에 막대한 양의 군량을 보내주어야 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시로 조선으로 들이닥쳤던 모문룡 휘하의 명군과 요민들에게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모문룡은 수시로 차관을 서울로 보내 양곡을 공급하라고 요구했다. 인조반정 직후 조선 조정은 그의 요구를 거의 들어주었다. 책봉 과정에서 모문룡의 ‘은혜’를 입었던 데다 그가 내세운 ‘요동 수복’이라는 슬로건에 공감했기 때문이다.1623년에만 6만석 이상의 양곡이 가도로 운반되었다. 조선을 길들여 모문룡을 지원하는 배후기지로 삼으려 했던 명 조정의 계산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당시 요동의 한인들은 계속 가도로 몰려들었고, 그곳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철산 등지로 상륙했다.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 청북 지방의 방어가 허술해지자 요민들의 유입은 극에 이르렀다. 요민들 가운데는 가재도구나 청람포(靑藍布) 등을 가져와 조선 사람들과 식량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빈 손으로 무작정 몰려왔다. 조선은 후금을 탈출해온 요민들을 가달(假 )이라 불렀다.‘가짜 달자( 子-오랑캐)’를 줄인 말로 한족 가운데 후금에 귀순하거나 포로로 잡혀가 머리를 깎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고향을 떠나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그들은 거칠고 난폭했다. 1624년 3월 의주부윤(義州府尹) 유비(柳斐)의 보고 내용은 끔찍했다. 당시 날마다 수많은 가달들이 청북 지역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수십명씩 떼를 지어 들녘에 흩어져 봄갈이 한 곡식과 보리 싹을 죄다 캐 먹었다. 마을로 들이닥쳐서는 약탈하거나 밥을 지어달라고 떼를 썼다. 어느 가난한 백성이 음식을 내어주지 못하자 그들은 가달의 시체를 가져다가 그 집에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조선인들이 그를 때려죽였다.’고 한 뒤 온 마을 사람을 죄다 묶어놓은 뒤 재물을 빼앗아 갔다. 유비는 심지어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면 서로 뜯어먹는다.’는 내용도 보고했다. 철산, 가산, 선천, 정주, 곽산 등 청북 지역은 몸살을 앓았다. 가달뿐 아니라 가도에서 상륙한 모문룡 휘하의 장졸들이 끼치는 민폐도 심각했다.1625년 2월, 모병들의 작폐를 참다 못한 의주부윤 이완(李莞)은 실력 행사에 나섰다. 그는 난동을 피운 모문룡의 부하 주발시(朱發時) 등을 붙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모문룡의 부하들은 ‘이완이 상국인을 몰라보고 재조지은을 배신했다.’며 그를 잡아가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다. 조선 조정은 결국 이완의 직급을 한 단계 강등하는 조처를 취했다. ●모문룡의 불장난 모병들은 때로는 청북 지역을 벗어나 함경도 지방까지 몰려들었다.1623년 4월 모문룡은 조선 조정에 사람을 보내 ‘회령(會寧)을 경유하여 오랑캐 지역으로 원정할 것’이라며 군량을 제공해줄 것과 길 안내를 위한 향도(嚮導)를 붙여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회령 너머 두만강 건너편의 여진 부락들은 거의 비어 있었다. 일찍이 누르하치가 조선과의 접경에 살던 여진인들을 포섭하여 내지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두만강을 건너 며칠 동안 깊숙이 들어가야만 여진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문룡이 그럼에도 원정 운운했던 것은 진짜 후금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제스처’이자 ‘쇼’였다. 당시 명 조정에서 조선으로 사신이 올 것이라고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문룡은, 가도에 들를 사신 일행에게 자신이 가만히 앉아 군량만 축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후금 원정’을 내세워 조선으로부터 군량 등을 얻어내려는 목적도 있었다. 조선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 함경도 지역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어 모병들을 접대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행군하는 도중에 민폐를 자행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장만(張晩) 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함경도 행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의 우려에 귀 기울일 그들이 아니었다.4월16일, 이미 모병들이 함흥까지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5월15일에는 군량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함경도 수령들을 포박하고 구타까지 자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날아들었다. 수령들은 그들의 협박에 못 이겨 민간에서 곡물을 징색하고, 승사(僧舍)까지 뒤지는 형편이었다. 조선 조정의 예상대로 모병들은 후금 지역으로 원정은커녕 함경도 각지에서 노략질만 자행했다. 그들이 왕래했던 행군로 주변에 거주하는 조선 백성들은 민폐 때문에 몸서리를 쳤다. 모문룡 휘하들이 보였던 이 같은 행태는 1637년 가도가 청군에게 함락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들은 ‘오랑캐 지역 정탐’ 등을 내세워 수시로 압록강을 건너 후금의 점령 지역까지 출몰했고, 그곳에 살던 요민들을 불러모았다. 더욱이 청북의 곳곳에는 모문룡이 설치한 둔전까지 널려 있었기 때문에 요민들은 계속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조정은 후금의 보복을 우려했지만 모문룡을 견제할 이렇다 할 방도가 없었다. ●‘해외천자(海外天子)’의 사기 행각 모문룡은 ‘요동 수복’을 표방했지만 사실 그는 그럴 능력이나 의지가 없었다. 그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후금으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산해관(山海關)의 울타리’ 역할을 할 뿐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모문룡은 그저 ‘군량을 축내는 존재’,‘밀수 왕초’로 변해갔다. 가도는 척박한 섬이었지만 해상 교통의 요충이었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산동(山東), 절강(浙江) 등지에서 상선들이 몰려들었다. 해로는 험난했지만 명 조정이나 조선 조정의 감시가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이는 밀무역의 이익이 짭짤했기 때문이다. 조선 상인들은 가도에서 은과 인삼으로 비단과 생사(生絲), 청람포 등 중국 물화를 구입했다. 조선 상인들은 그것을 후금 상인들에게 넘기거나, 부산의 왜관으로 가져가 일본 상인들에게 전매하여 이득을 챙겼다. 한족 상인들과 후금과의 사이에 밀무역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문룡은 가도에 세관(稅關)을 설치하여 왕래하는 상인들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했다. 때로는 그 자신이 직접 무역을 벌였다. 모문룡의 창고에는 은을 비롯하여 중국의 비단과 직물, 조선 인삼, 후금의 모피 등 온갖 물화들로 넘쳐났다.1624년 3월, 모문룡은 사람을 보내 이괄의 반란이 평정된 것을 축하했다. 그런데 그가 인조에게 보낸 예물 가운데는 춘의(春意)라 불리는 여인의 나체상도 있었다. 조선은 그것을 도로 반송했지만 당시 가도로 온갖 물건들이 유입되고 있었던 실상을 보여준다. 모문룡은 때마다 환관 위충현(魏忠賢)에게 두둑한 뇌물을 보냈다. 천계(天啓) 연간 명의 실권자나 마찬가지였던 위충현은 그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었다. 기록에 따르면 ‘모문룡은 한 번에 오륙십 가지로 차려진 성찬(盛饌)을 들고, 식사 때마다 여덟 아홉 명의 미희(美姬)들로부터 시중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바다 밖의 천자(海外天子)’였다. 명 조정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었고, 수군을 갖추지 못한 후금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했다. 더욱이 조선은 그를 ‘은인’으로 섬기고 있었으니 그의 ‘현실 안주’는 어쩌면 당연했다. 모문룡은 노회한 인물이었다. 평소 안락을 즐기다가도 명 조정으로부터 ‘모문룡을 감사(監査)해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움직였다. 조선 땅에 상륙하여 후금을 공격하는 시늉을 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에 민폐를 끼쳤고, 궁극에는 후금을 자극했다. 정묘호란 직전, 모문룡은 분명 후금의 침략을 불러들이는 ‘인계철선’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여성&남성] “남자도 때론 울고 싶다”

    ●힘들 때 곁을 지켜주는 건 동성친구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남자들은 강한 척, 잘난 척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여자 앞에서 눈물 흘리는 걸 부끄러운 행동으로 세뇌받고 자란 남자들은 힘이 들 때 차라리 동성친구에게 기대고 싶다. 회사원 하모(35)씨는 “울고 싶을 때는 동성이 더 좋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세상을 살다 보면 여성이건 남성이건 울고 싶을 때가 있다.”면서 “혼자서 소주 한 잔 하면서 울어도 되지만 그건 너무 처량하고, 마음 잘 통하는 친구와 만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눈물 흘리면 개운하다.”고 역설한다.“물론 이성친구라도 좋겠지만 그건 쪽팔려서 안 된다고 어떤 여자 후배가 말하더라고요.” 송모(36)씨는 “남자도 때로는 다른 이들의 어깨에 기대고 싶고, 잘 못하는 걸 억지로 잘하는 척하지 않고 싶다.”고 털어놓는다.“성장과정이나 현재 하는 일에서 어렵고 힘든 점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없을 때, 여자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내색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동성에게는 술 한잔 마시며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잖아요. 넋두리도 하고 어리광도 부리고요.” 여자 앞에서 남자가 ‘맥가이버’가 돼야 한다는 것도 남자들끼리만 통하는 고충이다. 송씨는 “자동차, 컴퓨터, 보일러 등 뭐든 망가지면 여자들은 남자 얼굴만 쳐다보면서 ‘(남자가) 그것도 못해?”라고 말한다.”면서 “해결할 줄 모르니 방법도 없고 사실대로 말하기도 난감하다.”고 밝혔다.“그럴 때 남자들끼리는 편하게 잘 못한다고 말하면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잖아요.” ●평생 친구, 아내 안 부럽다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하는 김모(34)씨는 대학부터 취업까지 14년간 희로애락을 함께한 친구를 ‘인생 최고의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군 복무시절을 제외하곤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 있었으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은 잠만 자고 나오는 고시원 수준이었다. 김씨 인생의 중심엔 언제나 친구들이 있었다. 김씨가 이렇게 동성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 이유는 당시 이공대 여학생 비율이 적었던 이유도 있다. 그는 동성친구가 좋은 이유로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취업 공부는 물론, 좋아하는 운동과 4륜구동차를 이용한 오프로드 여행도 모두 동성친구들과 함께 했다.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김씨는 “뼛속까지 열정으로 가득차 있던 대학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이 누구보다 저를 이해해주기 때문”이라면서 “지금이라도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고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라도 결혼할 생각”이라며 웃었다. ●“여친은 대중탕에서 등을 밀어줄 수가 없잖아요” 회사원 허모(32)씨는 “친구 등에 물을 끼얹어주고 ‘이태리 타월’로 서로 등을 밀어주면서 느끼는 교감을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그럴 땐 정말 이성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고 강조한다. “등을 미는 건 목욕의 하이라이트라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거든요. 그런 경우 이성친구 다 필요 없습니다. 내 등을 시원하게 밀어줄 든든한 동성친구가 백번 낫죠.” 이성보다 동성이 더 좋은 경우로 많은 남성들은 “술 취하고 싶을 때”를 꼽았다. 황모(30)씨는 “나같은 유부남은 이성친구랑 술 마시고 취하면 큰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면서 “특히 술을 과하게 마셔 비틀거릴 때 이성친구가 부축을 해줬다면 큰일”이라고 강조했다.“그런 모습을 ‘마누라님’의 친구나 이웃이 목격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도덕적 정당성을 주장해 봐야 오해는 쉽게 가시지 않을 수 있죠. 같이 취할 때도, 비틀거리는 걸 부축해 줄 때도 동성이 제격이죠.” ●남녀는 언어가 다르다? 장모(37)씨는 남성들과 여성들은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결혼 10년이 지나 아들, 딸 한명씩을 뒀지만 지금도 아내와 얘기할 때 낯선 느낌을 받는다는 것.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죠. 그런데 여자들과 어긋난 관계를 푸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한번 토라지면 며칠씩 말 안하고,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관계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남자라면 술 한잔, 농구 한 게임으로 풀 수도 있을 텐데 여자들의 언어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장씨는 또한 아내가 자신을 길들이려 할 때는 “한마디로 피곤하다.”며 한숨 짓는다.“‘청소해라, 씻어라, 술·담배 하지 말아라’ 등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잔소리의 연속입니다. 차이를 인정해주고 조금씩 이해해주면 안 될까요?”라고 하소연했다. 가족 이야기를 할 때 받는 스트레스도 ‘차라리 남자가 좋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는 “아내와 양가 얘기를 하다 보면 언제나 서먹해집니다. 시댁이나 친정으로 각자의 집을 구분하고 경제적 문제나 부정적인 이야기라도 나올라치면 언제나 언성이 높아집니다.”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강국진 오이석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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