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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익률 논란’ 변액연금 알고 들어야 혼란 없어요

    ‘수익률 논란’ 변액연금 알고 들어야 혼란 없어요

    회사원 김모(31)씨는 2년 전 가입한 변액연금보험의 수익률을 최근 확인해 보고 충격을 받았다. 누적수익률이 2.23%에 불과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고작 1% 남짓이다. 계약 해지를 고민하던 김씨는 해지환급금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매달 15만원씩 300만원을 부었지만,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원금의 60%인 180만원뿐이었다. 그는 “연 4~8% 수익이 나온다는 보험 설계사 설명만 대충 듣고 가입했던 게 후회된다.”면서 “큰 손해를 보고 해약할 수도 없으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최근 김씨처럼 변액연금 때문에 고민에 빠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이 지난 4일 컨슈머리포트를 통해 발표한 변액연금 실효수익률 때문이다. 금소연은 생명보험사가 파는 60개 변액연금 가운데 54개의 실제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인 3.19%에 못 미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어 변액연금에 가입한 뒤 10년 후 해약하면 46개 상품 중 18개는 원금도 못 찾는다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변액연금은 가장 복잡한 금융상품 중 하나다. 고객이 납입한 보험료를 모아 펀드를 구성하고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 장기간 투자 성과에 따라 보험금 규모가 달라지며 경우에 따라 원금을 잃을 수도 있다. 이자를 많이 주는 적금에 들거나 카드를 만드는 것처럼 간단치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변액연금에 가입할 때 신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입한 후에도 적극적인 투자 관리를 통해 수익률을 지켜야 한다. 생명보험업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변액연금 가입자가 지켜야 할 5계명을 정리했다. 변액연금에 가입하기 전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의 투자성향을 진단하는 것이다. 연금보험에는 시중금리(보통 3년 만기 채권수익률)만큼의 수익을 내는 공시이율형 연금과 주식 및 채권 펀드 투자에 따라 수익을 내는 변액연금이 있다. 원금을 지키고 안정적으로 투자하고 싶다면 공시이율형 연금에 가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변액연금은 원금 손실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기대하는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투자자에게 적합하다. 보험 가입 기간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변액연금은 10년 이상 계약을 유지하지 않고 그전에 해약한다면 원금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각종 초기 비용이 많기 때문이다. 가입 후 10년까지는 보험사가 사업비 명목으로 매월 납입 보험료의 11~13%를 떼 간다. 사망보장금 등의 월 대체보험료도 제외하면 실제 낸 보험료의 80% 정도만 펀드에 투자되는 것이다. 10년 이상 보험료를 꾸준히 내면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다. 연금으로 받거나 계약을 해지해도 이자소득세(15.4%)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때부터는 사업비도 보험료의 6~7% 수준으로 낮아진다. 따라서 장기간 유지할 수 없다면 변액연금에 가입하지 말아야 한다. 20~30대 젊은 직장인이라면 멀리 바라보고 변액연금에 가입하는 게 좋고, 은퇴를 코앞에 둔 장년층이라면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므로 가입을 삼가야 한다. 변액연금이라고 해서 원금 보장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변액보험에는 최저연금적립액보증(GMAB) 기능이 있다. 주가가 폭락해서 변액연금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해도 연금 개시 시점(보통 15년 이상)까지 계약을 유지하면 납입한 보험료, 즉 원금은 보장해준다. 노후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변액연금에 가입했다면 꾸준히 관심을 두고 수익률을 관리해야 한다. 관리가 어렵다고 느껴지면 변액연금의 주요 기능인 펀드 자동재배분 및 이동을 활용하면 된다. 자동재배분 기능은 주식형과 채권형의 비중을 정해두면 6~12개월 단위로 평가금액이 조정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형과 채권형에 각각 50%씩 투자한다고 설정했다면, 주가가 올라서 주식형 펀드의 비중이 60%로 늘어난 경우, 채권형으로 10%를 떼어 옮겨준다. 펀드 이동기능은 수익률을 지키는데 유용하다. 3~4년 동안 쌓은 금액이 많아지면 이를 안전한 채권형으로 옮긴 뒤 새로 적립하는 보험료는 주식형에 넣어 고수익을 노릴 수 있다. 원칙적으로 변액보험은 1년에 12번 펀드 투자 비중을 바꿀 수 있다. 4번까지는 수수료가 없고 이후부터 2000원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변액연금이 장기상품이므로 1년에 수차례 펀드를 이동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주가의 흐름이 크게 움직이는 3~5년 단위로 관리해주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변액연금 계약상황을 정기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최소 6개월마다 수익률과 해지환급률을 체크하도록 한다. 공인인증 절차만 거치면 언제든지 홈페이지에서 계약 현황을 상세하게 조회할 수 있다. 인터넷 사용이 익숙지 않다면 콜센터 또는 가입했던 보험 설계사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글로벌 시대] 프랑스 대선을 바라보며/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프랑스 대선을 바라보며/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프랑스의 대선은 1차 투표를 거쳐 상위 두 후보가 2주 후에 치러지는 2차 결선 투표에서 최종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오는 22일에 1차 투표 그리고 5월 6일에 2차 투표가 진행된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1차 투표에는 연임을 노리는 사르코지와 그의 최종 경쟁자가 될 것으로 확실시되는 사회당의 올랑드 후보는 물론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군소 정당의 후보들이 대거 출마하여 다양한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는 1995년 미테랑의 14년 사회당 집권이 막을 내린 후 시라크와 사르코지로 이어지는 우파의 집권이 17년간 계속되었다. 현재 프랑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1회에 걸쳐 연임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는 당선 유무에 관계없이 마지막 대선을 위한 결전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현재 프랑스의 유권자들은 17년에 걸친 우파 집권에 상당히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사르코지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일한 만큼 더 잘사는” 세상은 5년이 지난 후 여전히 선거 구호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일을 하려 해도 마땅한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재임 중 국제적 위기와 유럽의 위기가 여러 번 닥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현재 프랑스 국민이 지닌 집권당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사르코지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새로운 선거 전략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물질적 풍요를 핵심공약으로 내걸지 않고, ‘노동, 책임, 권위’라는 프랑스의 새로운 가치를 들고 나왔다. 이민과 치안 정책 등 민감한 분야에서 극우의 표를 의식해 강력한 우경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도 주목할 사항이다. 그리고 ‘강한 프랑스’를 대선 슬로건으로 선정했다. 어디서 본 듯한 이 슬로건은 지난날 베를루스코니의 ‘강한 이탈리아’와 흡사해 차라리 씁쓸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나친 우경화로 국민전선의 극우 표를 일부 몰아올 수는 있겠지만, 승리를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사르코지가 1위 혹은 2위로 결선 투표에 나가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문제는 모든 여론조사가 2차 투표에서 6~12% 포인트 차로 사회당 후보에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일부 극우파의 표까지 합친 우파 진영의 표는 거의 결집된 것으로 보인다. 사르코지의 고민이 깊은 이유다. 하여 중도파의 베이루 후보와 결선 투표에서 연합하는 대가로 국무총리 자리를 제안하는 딜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이 분분하다.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강력한 우경화 정책과 온건 중도파의 정책이 어떻게 조율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회당의 올랑드 후보는 특히 금융과 교육 분야에 강력한 개혁을 주장함과 동시에 프랑스의 새로운 가치를 주창하고 있다. 선거에 맞춰 출간된 저서 ‘프랑스에 대한 새로운 생각’에서 그는 무엇보다도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치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는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정직, 공로, 연대’를 주장하며 사르코지의 ‘노동, 책임, 권위’를 맞받아치고 있다. 동시에 이민·치안 정책 등 전통적으로 좌파가 취약한 분야에 대해서도 특별히 전문가들을 영입해 세심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 대선의 가장 새롭고도 걱정스러운 요소는 매우 낮은 예상 투표율이다. 대선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일이 가까워오면서 투표하지 않겠다는 유권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며, 1차 투표를 일주일 정도 앞둔 현재 30%를 넘고 있다. 2007년의 대선에 비해 무려 두 배에 달한다. 프랑스인 두 사람 중 한명은 대의정치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심지어 네명 중 한명은 아예 정치로부터 소외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낮은 투표율이 진보와 보수의 득표에 현실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따지기 전에, 대선에 대해 걱정스러울 정도로 높은 무관심은 무엇보다도 프랑스 사회의 현 상태가 그리 건강하지 않다는 징후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 [저자와 차 한 잔]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소장

    [저자와 차 한 잔]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소장

    논어(論語)를 이리 보고 저리 본 책이 쏟아진다. 왜 논어인가. 사상의 꼭대기에 놓인 공자가 ‘가라사대’ 수많은 명언을 쏟아내시니 이 험한 세상 나침반으로 삼기에 딱이다. ‘논어’의 첫 문장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이다. 평생 공부를 강요하는 이 사회를 이미 2500년 전에 간파했으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으리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51) 소장은 다른 생각이다. 특히 ‘논어’를 처세서로 보는 것이 마뜩하지 않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연구소에서 만난 이 소장은 “공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논어’는 성공한 책이지만, 공자 자신은 처세에 실패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처세서로 나온다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강조하는 ‘공자의 의미’는 끊임없이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던 지식인이라는 데 있다. “공자의 일생을 파악하지 않으면 ‘논어’의 많은 말들은 맥락 없이 엉뚱하게 여겨질 뿐”이라는 그는 “그 말들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알아야 비로소 큰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그가 공자의 일생을 조명하고, 그의 말을 분석한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옥당 펴냄)를 내놓은 이유이다. ‘학이시습’을 놓고 보자. 이 구절만 놓고서는 거부감을 느꼈다고 했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외우기만 하는 주입식 교육에, 무지막지한 폭력이 수반되기도 했던 배움이 즐겁다니,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거죠. 특히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에 반기를 들면 사형을 당하고, 일제강점기에는 왜곡된 역사를 강요당했죠. 그런 역사를 걸어온 우리에게 학(學)이 어찌 즐거울까요.” 그래도 스무 편에 달하는 ‘논어’의 첫 편 첫머리가 ‘학’이라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문이 생겼다. 책을 뒤적거리고 공자의 일생을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공자는 늘 수기(修己)와 제세(濟世), 이인(利人)을 추구했습니다. 안으로는 자신의 몸을 닦고, 밖으로는 세상을 구제하면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죠. 유학자가 평생을 따라야 하는 ‘학’이 이 한마디에 담겨 있는 겁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리를 한 글자로 응축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삶이 어렵고, 권력자의 주변이 시끄러운 이유는 이 한 글자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왜곡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럼 이토록 도의 경지에 오른 공자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 소장은 “전쟁과 권력이 난무한 춘추전국시대에 이상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공자를 현실 군주들이 기용하고 싶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하지만 공자의 삶과 말은 21세기에 부활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난 은자(隱子)들이 많았는데, 공자는 세상에 나가려고 한 사람이었어요. 책에 은자들과의 대화도 많이 썼지만, 그들은 공자에게 ‘안 될 것을 하는 자’라고 조롱했죠. 그 은자들은 다 사라지고 공자는 남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잘못된 천하를 바로잡고,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던, 참지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속수지례(束脩之禮)가 있다. ‘육포 열 조각’이라는 뜻으로, 이것 이상만 가지고 오면 누구든지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과연 공자가 재물을 받아야 가르치겠다는 것이었을까. 하찮은 육포만으로도 가르침과 바꿀 수 있다는, 최초의 ‘반값등록금’ 개념이다. 유교무류(有敎無類)라고, 가르치는 데는 계급이 없다고도 했다. 인불양사(仁不讓師·인에 대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로서, 스승의 잘못도 거리낌없이 비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논했다. 이 소장을 만난 날이 4·11 국회의원 선거 당일이라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나라의 4년을 책임질 국회의원들의 덕목은 무엇인가. 그는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노나라 실권자인 계강자가 “무도한 자를 죽여서 도를 증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대가 착하고자 하면 백성도 착해지리다.”라고 답했다. 한마디로 ‘너나 잘하라.’이다. “백성에게는 더없이 따뜻했고 지배층에는 한없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인물이 공자였다.”는 그는 “공자 같은 인물이 나타나는 세상이 되면 사람들은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공자의 삶과 말을 살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자가 광야에서 방랑한 시기를 설명하면서 신라 말 최고의 지식인 최치원이 관직을 떠나 노년에 은거한 배경을 설명하고, 도를 실천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공자를 소개하면서 고려 말 자신의 개혁프로그램을 실현하기 위해 이성계과 손잡은 정도전을 비교한다. 또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한 공자를 두고, 조선시대 부당한 토지 문제를 고민하면서 ‘한전론’을 주창한 이익을 떠올리기도 한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 광주 어등산 골프장 승인 딜레마

    광주시가 광산구 어등산 관광단지 조성 사업지구 중 골프장 시설 완공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민간 사업자는 골프장을 우선 개장한 뒤 수익금 등으로 테마파크 개발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당초 협약은 두 시설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0일 이 사업을 맡은 ㈜어등산리조트에 따르면 27홀짜리 회원제와 대중 골프장 시설이 조만간 완공된다. 시는 그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테마파크 공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골프장 개장 승인을 할 경우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어서다. 사업자가 돈이 되는 골프장만 개장한 뒤 시민들의 놀이 시설인 테마파크 조성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 당초 사업계획 자체가 흔들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는 600여실 규모의 특급호텔·관광호텔·콘도미니엄과 테마파크, 각종 휴양·놀이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민간 사업자는 모기업이 법정관리 중인 데다 이 같은 규모의 숙박시설을 설치·운영할 능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골프장 회원권 가격 하락과 부동산경기 침체 등도 추가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강운태 시장은 “이 사업이 당초 시민들의 관광·휴양·건강을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와 잦은 사업자 변경 등으로 답보 상태에 놓였다.”며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시민들의 정서, 당초 사업계획, 공사를 맡은 현 시공자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해결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어등산 관광단지는 2005~2015년 광산구 운수동 어등산 일대 273만 2000㎡ 부지에 3400억원을 들여 서남권 관광 거점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시는 수십년간 군 포사격장으로 사용돼 온 이곳 일대를 국방부로부터 매입해 4년간 불발탄 제거 작업을 거친 뒤 관광단지 개발에 나섰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재정난 네 탓” 인천 전·현직 시장 공방

    “재정난 네 탓” 인천 전·현직 시장 공방

    심각한 인천시 재정난을 둘러싸고 전·현직 시장이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현 사태에 대한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 안상수 전 시장이 적극 해명에 나선 반면 송영길 시장은 완곡하게 전임 시장의 동시다발적인 대형 사업 추진을 지적한다. 안 전 시장은 지난 7일 “시 공무원수당 체불은 재정운용의 미숙으로 생긴 일”이라며 “회계연도 초기엔 세수가 적기 때문에 자금배정 등에 유의할 점이 많은데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세수입이 예상 외로 저조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당 체불을 가지고 시 재정이 파탄난 것처럼 소란을 피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일시적 재정운용 실패를 놓고 시 재정에 큰 문제가 있는 듯이 말하는 것은 인천의 발전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송 시장이 재정악화의 주 요인으로 지적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과 인천지하철 2호선 건설에 대해서도 인천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사업이라며 이를 전시행정이나 정치용 사업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안 전 시장은 “.송 시장이 민관합작 사업이었던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을 시 재정사업으로 돌리는 바람에 재정악화의 단초를 제공했지 주경기장 건설비 탓에 시 재정이 어렵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송 시장은 “취임 이후 1년 8개월 동안 100억원이 넘는 토목공사를 추진하지 않았다.”면서 “아시안게임 경기장과 지하철 2호선 건설 등 대형 사업 추진으로 시 재정이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220곳에 이르는 도시재생·재개발 사업과 검단신도시 개발 등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된 대형 사업들이 인천의 재정건전성을 악화시켰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인천타워와 인천세계도시축전, 밀라노디자인시티에 대해서도 인식차가 크다. 안 전 시장은 “송도국제도시에 151층으로 계획된 인천타워는 인천의 미래비전과 가치”라며 원안을 요구한 반면 송 시장은 151층은 사업성이 적다며 102층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 열린 인천세계도시축전을 놓고도 안 전 시장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천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인천의 가치를 높인 성공적인 행사”로 규정한 반면 송 시장은 인천시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킨 전시성 행사로 파악하고 있다. 영종도 밀라노디자인시티를 둘러싸고 안 전 시장이 민자유치를 통해 계속 추진할 것을 주장했으나 송 시장은 사업성이 적다는 이유로 사실상 백지화했다. 안 전 시장은 “인천시장은 지역경제 선순환을 이뤄 내기 위해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한 투자와 준비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전임자의 정책에 대해 심사숙고해 판단해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송 시장이 전임자의 정책과 비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폐기하거나 수정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열린세상] 최선의 동반성장은 장애인 고용/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열린세상] 최선의 동반성장은 장애인 고용/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사퇴했다. ‘동반성장’에 대한 대기업과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라 한다.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살기 힘들다. 대기업은 동반성장에 인색했다.”라는 것이 그의 변이다. 2011년 하반기 한국 사회의 화두는 단연 ‘복지’와 ‘동반성장’이었다. 양극화로 인한 폐해를 막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의 정립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게 동반성장위원회의 주장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한 ‘초과이익공유제’를 어젠다로 던져 정치권이나 재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총선을 겨냥한 여야 정치인과 중소기업인들은 위원회에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사실 ‘동반성장’의 의미가 모호하긴 하다. 1970년대 이후 대기업 위주의 경제 정책으로 대기업 편중주의에 따른 구조적 문제들이 생겨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중소기업 간 구조를 개선해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줌으로써 불균등 해소는 물론 상호 협력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동반성장’이라고 한다. 실제로 대기업과 중소 협력사 간에 ‘동반성장 협약’을 맺어 체결 1년 뒤 이행실적과 협력 만족도 등을 평가해 양호 이상의 등급을 받을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면제 등의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동반성장협약’을 맺은 기업이 100개가 넘었다고 하니 ‘동반성장’의 분위기는 개념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도 대기업을 대상으로 ‘장애인고용증진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장애인고용증진협약’이란 공단과 기업 간의 상호 협조와 노력을 통해 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조기에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일종의 양해각서(MOU)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1990년 도입 당시 300인 이상 상시 근로자를 갖춘 기업은 근로자 수의 2%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법이 이제는 2.5%, 2014년에는 2.7%까지 높이도록 하고 있다. 적용 대상 기업도 100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사실상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고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대기업이라 할 수 있다. 2005년 이후부터 공단은 220여개 대기업과 장애인고용증진협약을 체결하고 기업 친화적 서비스를 제공해 협약 체결 이후 5500여명이 신규 채용되는 성과를 내고 있으나 아직 법정 고용률을 채우기에는 미진한 편이다. 기업 친화적인 협약만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매년 장애인 고용 실적이 저조한 기업 명단을 언론에 발표하기도 한다. 지난해부터는 연 2회로 횟수가 늘어났는데 지난해 말 장애인 고용이 저조한 100명 이상 기업 2312곳의 명단을 발표한 바도 있다. 이 중 우리 국민이 익히 알고 있는 30대 기업집단 계열사 162곳도 명단에 포함돼 있다. 이러한 명단 공표는 느닷없이 갑자기 하는 것은 아니다. 두어 달 전부터 고용저조 기업 후보 대상에 공표 계획을 알리고 공표 전 일정 기간 장애인 고용을 늘리도록 집중 이행지도를 한다. 작년에도 이러한 사전 예고와 집중 이행지도를 통해 600여곳의 기업이 장애인 신규 채용을 서둘러 명단 공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과거의 장애인 고용이 복지적 관점에서 접근한 장애인 중심의 정책이었다면 이제는 전체적인 노동시장의 관점에서 시장의 수요자인 기업 중심으로 장애인 고용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대기업의 상생 노력이 ‘동반성장’뿐 아니라 ‘장애인 고용’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아니 어쩌면 최선의 동반성장은 장애인 고용일지도 모른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그래서 4월은 ‘장애인의 달’이기도 하다. 총선 바람에 묻혀 이러한 날이 있는지도 모르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데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달이 있을 수 없지만,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낮다 보니 이렇게라도 의미를 둔 날이나 달을 정한 것이리라. 짧은 한 달이나마 기업과 정치 모두 소외계층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시간이길 기대한다.
  • 그 시절 각하와 장관님 시구 7일 다문화가정이 넘겨받아

    7일 두산-넥센이 마주치는 잠실 개막전에서는 탤런트 박하선이 시구한다. 문학(SK-KIA)에서의 시구는 다문화가정 야구교육 프로그램 참가자 주미선(13)·재민(11) 오누이가 맡았다. 시타는 부모인 주봉중(48), 로사 마리아(35)씨가 한다. 롯데와 한화가 맞붙는 사직에서는 영화배우 강소라가 시구자로 나선다. 대구(삼성-LG) 시구와 시타자는 칠곡중 2학년 문호세군과 우동기 대구시 교육감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개막전 시구자는 당시 사회상을 반영해온 것이 사실이다.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MBC-삼성의 원년 개막전 시구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이듬해에는 이원경 체육부장관, 1984년 개막전 3경기에는 체육부 차관과 서울시장, 인천시장이 나섰다. 정치인과 관료 등이 단골로 등장해 권위주의 시절임을 드러냈다. 변화의 출발점은 1989년이었다. 4월 8일 해태-빙그레의 광주 개막전에서 당대 최고의 배우 강수연이 연예인으로는 처음 시구했다. 이날 잠실에서는 OB 회원 1호 이국신씨가 시구하는 등 기존의 틀이 깨졌다. 새 주역은 연예인이었고 문민정부의 세태가 반영됐다. 이후 1996년 탤런트 채시라를 필두로 인기스타가 줄지어 개막을 알렸다. 개그맨 이휘재, 탤런트 이나영(2000년), 가수 엄정화(2003년), 가수 비(2004년) 등이 시구에 나섰다. 다른 종목의 스타도 시구 대열에 합류했다.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안상미를 시작으로 2006년 미프로풋볼(NFL) 스타 하인스 워드,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승훈·모태범(2010년) 등도 등장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일반인 시구자도 부쩍 늘었다. 1994년에는 프로야구단 어린이 회원이 개막을 알렸다. 2001년에는 두 다리가 없는 해외 입양아 애덤 킹이 마운드에 올라 가슴을 울렸다. 지난해에는 50대 만학도 부부가 시구·시타를 했고, 올해는 다문화 가정과 학원 문제의 주역인 학생과 교육감이 시구와 시타를 맡아 최근 우리 사회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았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서울광장] 레이건에게서 배워라/주병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레이건에게서 배워라/주병철 논설위원

    1970년대 중반 미국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등으로 경제상황이 엉망이었다. 수년간의 경기침체 탓에 공화당 출신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후임으로 민주당 후보인 지미 카터가 당선됐다. 하지만 카터는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연방예산 적자폭을 줄여 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카터는 1978년부터 내리 3년간 두 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카터 후임자는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당시 레이건의 승리는 카터의 실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만의 비결이 있었다. 그의 선거전략은 국민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주는 데서 시작했다. 재선에 도전한 카터 후보와의 TV토론이 하이라이트였다. “국민 여러분, 지금 생활이 4년 전보다 나아졌습니까.” 진부하지만 낯익은 이 말 한마디에 지치고 힘든 국민들은 위로를 받았다. 국민들은 점차 레이건의 진정성을 알았고, 그와 함께 하면 뭔가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감동 리더십의 효과다. 레이건은 역대 어떤 후보보다 목표와 비전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했다. 지출 삭감, 세금 인하, 긴축 통화, 규제 완화 등의 공약을 왜 내놓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했고 당선 이후에는 이를 차질 없이 실천에 옮겼다. 덕분에 재임기간 중 3%대 후반의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13%대의 물가를 6%대로, 19%의 금리를 8.7%까지 낮추는 등 경제를 살려냈다. 무엇보다 레이건은 철학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존경하고 지지하는 민주당원이었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도입하면서부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자신의 철학과 맞지 않다는 걸 느꼈다. 뉴딜정책의 핵심은 정부 개입이었다. 그는 개인·자유·근면·정직 등 청교도주의에 뿌리를 둔 전통적 가치관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그는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는 국민들이 일할 수 있도록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믿었고, ‘놀고 먹는’ 사람에게 세금을 쓰지 않았다. 지금 우리 경제 여건과 정치 상황 등은 당시 미국과 비슷하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겐 경제를 이끌 추동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수출 둔화와 소비 감소,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3% 초반으로 뚝 떨어질 거라고 한다. 고학력의 청년백수와 전체 인구의 11%를 넘어선 노인 인구의 일자리가 고민거리다. 지난해 연간 가계소득은 월평균 384만 2000원으로 전년 대비 5.8% 증가했지만 소득 5분위배율은 5.73배로 전년도(5.71배)보다 더 악화돼 걱정이다. 국가 지도자들은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들에게 용기를 복돋워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을 유혹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한국판 레이건’ 정신은 아무 데도 보이질 않는다. 국민이 정치 리더들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일자리 고민보다는 이념 논쟁에 더 빠져 있다. 조만간 4·11 총선이 끝나면 대권 잠룡들의 행보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이번 대선에 나가려는 주자들은 무엇보다 훼손되고 헝클어진 한국적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데 고민해야 한다. 평등의 민주주의와 불평등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대충돌이 가져다 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에 대해서 답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총선용으로 급조한 공약들을 재점검해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다시 내놔야 한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세목을 신설하거나 부자들이 돈을 더 내야 한다면 이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리더십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때 미국의 중흥을 일으킨 ‘레이건 대통령’을 한번쯤 연구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시대적 상황이나 이념, 정책기조 등이 다르다고 해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지한 고민, 일관된 정책 집행, 국민 통합 능력 등은 배울 수 있으면 배워야 한다. 그런 게 국민을 위한 거다. bcjoo@seoul.co.kr
  • [생각나눔 NEWS] 대학도서관 ‘외부인에 개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근 주민들에게 도서관을 개방했던 대학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역사회 공헌을 취지로 도서관 이용을 허용했지만 정작 학생들의 자리가 없어지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한국외국어대는 2003년부터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주민들에 한해 도서관 자료실과 열람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좌석 부족 탓에 평소에는 하루 100명 정도만, 중간 및 기말고사 때에는 시험 1주일 전부터 2주간 아예 주민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대학 측은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도서관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학생들이다. 늘 자리가 부족해 불만이 만만찮다. 특히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는 좌석에 앉기는 평소에도 하늘의 별따기다. 게다가 시험 기간 중에도 도서관을 이용하는 외부인이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학부 3학년 김상연(26)씨는 “취업난으로 도서관을 찾은 학생들이 많아 가뜩이나 자리를 잡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외부인들이 온종일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생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끔 외부인들의 부적절한 도서관 이용이나 규정 위반 때문에 실랑이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국제학과 4학년 이모(24·여)씨는 “열람실에서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거나 휴게실에서 음악을 크게 듣는 사람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역시 도서관 개방 문제를 두고 몇 년째 고심하고 있다. 2004년에는 총학생회가 외부인에게 도서관을 개방하는 문제를 두고 투표까지 실시했으나 투표율 미달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후 2007년부터 5개 열람실 중 2곳에 대해서만 외부인의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이후 이용자가 증가하자 대학 측은 올해부터 별도의 출입증을 받은 외부인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외대 인근에 사는 주민 유현선(32)씨는 “대학 도서관이 공공성 차원에서 지역사회에 개방하는 것은 외국에서도 흔한 일”이라면서 “일부 이용자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인 양 말하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도서관 측은 “지역사회와 학생이 납득할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하다.”면서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장나라 “대표 동안요? 저도 주름이 ^.^…노래에 대한 갈증 너무 풀고 싶었죠”

    장나라 “대표 동안요? 저도 주름이 ^.^…노래에 대한 갈증 너무 풀고 싶었죠”

    “아휴, 저도 가까이서 보면 주름이 자글자글해요(웃음).” 국내 대표 동안 연예인 장나라(31). 오죽하면 ‘동안 미녀’라는 제목의 드라마 주인공까지 맡았을까. 최근 서울 마포구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여전히 풋풋하고 솔직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먼저 4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가수로서 국내 활동을 재개한 소감부터 물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섰더니 정말 긴장이 많이 됐어요. 아무래도 공백 기간에 대한 부담감일 수도 있고요.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관객 수는 굉장히 많지만 거리가 멀어서 덜 긴장됐거든요. 한국에서는 객석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더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요.” 신곡 ‘너만 생각나’로 음악 프로그램의 첫 녹화를 했을 때 떨려서 제대로 한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었다는 장나라. 너무 긴장한 탓에 자신의 목소리가 끊어지는 것도 몰랐다고 하니 오랜만의 국내 무대가 상당히 압박감을 준 모양이다. 하지만 음원이 발표된 지난달 26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그녀의 이름과 노래 제목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팬들은 반가운 기색을 표하고 있다. “사실 저 혼자 반가우면 어떡할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 노래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다가갔으면 했거든요. ‘너만 생각나’는 단순한 멜로디의 발라드로 가사도 굉장히 직설적이에요. 연인과 헤어진 분들께 위로가 돼도 좋을 것 같고…. 저도 나이를 먹는지 뭔가 와 닿는 것이 있어서 공감하면서 불렀어요.” 2001년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로 데뷔해 ‘나도 여자랍니다’ ‘4월 이야기’ ‘사랑하기 좋은 날’ 등을 히트시켰던 장나라. 그는 배우로 한국과 중국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가수로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갈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국내에서 가수 활동을 하려고 준비했었는데 작품을 하게 되면서 앨범 발매 시기가 맞지 않았어요. 사실 제가 가수로서 비음도 많고 다른 가수들에 비해 소리도 약한 편이지만 매 앨범마다 장점을 꾸준히 살려가는 게 좋아요. 제가 폭발력 있는 느낌이 없고 목소리가 여려도 감성이 많이 담긴 편이거든요.” 이번 디지털 싱글 앨범에는 가수 알렉스와 함께 부른 ‘바로 너였어’도 수록돼 있다. ‘너만 생각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봄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달달한 곡이다. 장나라는 “두 곡 모두 들으실 때 편안한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를 이야기할 때 중국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장나라는 중국에서 ‘띠아오만 공주’ ‘순백지련’ ‘철면가녀’ 등 총 6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한류 스타로 입지를 굳혔다. 어느새 한국에서 출연한 작품 수와 똑같아졌다. 한류 스타 대부분의 고민처럼 한국에서의 공백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한국과 중국 활동의 분배를 잘하고 싶었는데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하다 보니 (활동이) 좀 치우친 면도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계속 있었다고 안 잊힌다는 보장은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중국 활동을 하면서 감사한 일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아요. 중국에 가기 전에는 세상을 보는 눈이 좀 편협했어요. 작은 어려움이나 불만이 생기면 내가 제일 슬프고 모든 짐을 다 진 것 같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했었죠. 그렇지만 넓은 곳에서 일하면서 성공하기도 하고 큰일을 겪으면서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장나라는 중국에서 울화통이 치밀고 속상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다 만족스럽다면서 웃었다. 그녀는 “처음 중국에 갔을 때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라서 개런티 등의 문제와 관련해 속기도 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내 매니저를 사칭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최근 중국 드라마에 높은 개런티를 받고 출연하는 한국 배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그녀의 표정이 순간 진지해졌다. “개런티 부분은 거품도 많지만 어느 정도 현지 중국 배우들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한국 뉴스가 실시간으로 중국에 전해지기 때문에 한국 배우들이 광고나 드라마에서 거액의 출연료를 받는 것이 그분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거든요. 잘못하면 한류가 일방적인 자국 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어요. 저는 한국, 중국, 일본의 대중문화가 어울림이 없다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반대로 교류가 잘되면 할리우드가 부럽지 않다고 생각해요.” 장나라는 자신 역시 처음 중국에서 드라마를 촬영할 때 팀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배우들도 있었고 악의적인 중국 언론의 보도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 말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이 최고”라며 웃는 장나라는 올해와 내년에 국내 활동에 주력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드라마 ‘동안미녀’의 성공이 발판이 됐다. 이후 시놉시스도 많이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동안 미녀’의 첫 회를 보고 눈물을 터뜨렸어요. 혹시 저 때문에 드라마가 안 될까 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다행히 작품이 잘돼서 감사했고 혼자 하는 연기가 아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연기를 배웠어요. 이후에 ‘동안 미녀’와 비슷한 캐릭터가 많이 들어오긴 해요. 그런데 저는 조금씩만 다르게 한다고 해도 만족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죠. 데뷔 2~3년 차에 진짜 창피한 건 다 해봤기 때문에 이제 두려운 연기도 없고요.” 장나라가 지금까지 연예계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인 연극배우 주호성씨의 공이 컸다. 한때 그녀를 소속사 대표인 아버지에게 기대는 ‘파파걸’로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아버지는 장나라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다른 아버지와 딸처럼 투닥투닥할 때도 있지만 아버지가 없었다면 아마 중국에서 일을 못 했을 거예요. 아버지는 처음에 중국말을 한마디도 못 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해서 이제는 계약도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어요. 참 독하고 똑똑하신 분이죠. 저는 행동력 없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아버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어린 학생들이 “저 누나 처음 보는데, 누구야.” 하는 대화를 듣고는 웃음이 났다는 장나라. 그녀의 30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사실 20대부터 이지적이고 커리어우먼의 상징인 30대가 되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니 현실은 너무나 다르더라고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8춘기까지 겪었죠. 나 자신을 추스르기도 힘든데 연애도 부담스럽고…. 하지만 전 일이 좋고 즐거워요. 조금 더뎌도 앞으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 ‘4월의 빅매치’… 그 주역들을 만나다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 ‘4월의 빅매치’… 그 주역들을 만나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단이다. ‘국립’과 ‘민간’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작품 수준이나 무용수 실력 등 모든 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라이벌’이다. 올해 두 발레단의 행보는 완전히 극과 극이라 더욱 재미있다. 첫 공연에서부터 유니버설발레단은 모던발레로, 국립발레단은 낭만발레로 관객을 찾았다. 두 번째 공연으로 국립발레단은 로마군에 대항한 검투사를 그린 ‘스파르타쿠스’를, 유니버설발레단은 고전발레의 대표작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택했다. ‘스파르타쿠스’는 힘이 넘치고 강렬한 남성미가 전반에 흐르는 반면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백마 탄 왕자님이 부드러운 입맞춤을 하는 아름다운 남성미가 특징이다. 대척점에 있는 남성미, 두 발레단의 주역들은 어떻게 보여줄까. ■‘스파르타쿠스’ 이영철·이동훈 “숨 고를 새도 없이 점프 점프…내면의 남성미까지 끌어낼 것”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 한쪽에 무용수들이 널브러져 있다. 거울 앞 의자에 누워 있다가 힘겹게 일어나더니 무대의상으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손과 팔, 다리에 에너지가 넘친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이영철(34)과 이동훈(26)은 다시 지친 모습이다. “스파르타쿠스가 처음 등장해서 독백하는 장면에서 알렉 라츠콥스키 선생님이 요구하는 에너지양이 엄청나거든요. 호흡을 고를 새도 없이 점프가 이어지면서 모든 것을 다 쏟아부으니 지쳐버리죠.”(영철) “피로감으로 본다면 ‘지젤’ 2막에서 알브레히트가 춤을 추다가 쓰러지는 장면과 강도가 비슷해요. 알브레히트는 쓰러지면 좀 쉬거든요(웃음). 그런데 여기서는 지친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어요. 그만큼 강한 남성이니까요.”(동훈) 심지어 이 장면이 1막 1장이다. 그만큼 ‘스파르타쿠스’는 강렬한 남성 발레다. 2001년에 국립발레단이 국내에서 처음 공연했다. 2007년에 올린 뒤 이번이 5년 만인 데다 최근 몇 년 사이 탄탄한 실력과 높은 완성도로 찬사를 받는 국립발레단이 선보이는 것이라 기대감이 크다. →처음 공연하는 것인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영철:전막은 처음이다. 분량이 워낙 많아서 순서 외우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도 선생님이 ‘정말 노예가 됐다고 생각하라.’고 하시는데 그런 처지를 어떻게 알겠나(웃음).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연구하고….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동훈:카를로스 아코스타(로열발레단)의 DVD를 보면서 이미지를 익히고 있다. 과연 내게서 스파르타쿠스 느낌이 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굉장히 얼굴이 하얗다. 노예 반란 지도자치고는. -동훈:그래서 고민이다. 거친 느낌을 내보려고 수염도 기르고 태닝도 해봤는데…. -영철:대신 동훈에게는 타고난 남성다운 힘이 있다. 점프를 볼 때면 ‘정말 높이 뛴다.’고 감탄한다. -동훈:(영철) 형은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데다 신체 곡선이 우월하다. 거기에 탄력과 힘까지 갖췄으니 부러울 뿐이다. →둘 다 발레하기 전 스트리트 댄스를 했는데 도움이 됐나(이동훈은 중학생 때 비보잉을 했고 이영철은 고교 시절부터 스무살까지 방송 백댄서를 했다). -영철:확실히 뒤늦게 발레를 시작해서 몸 만들기가 어려웠는데 일단 기본을 잡으니 발레뿐만 아니라 현대무용 같은 다른 움직임이 필요할 때 동작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모습은. -영철:스파르타쿠스는 강한 검투사이면서 여인 프리기아를 사랑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단순히 동작에 힘만 싣는 게 아니라 움직임과 얼굴 표정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동훈:돌고 뛰고 부딪히는 동작이 모두 고난도다. 끝까지 지치지 않으려면 체력 안배가 중요해 보인다. 그래야 섬세한 연기도 가능할 듯하다. 그다지 남성적이지 않은 내 스타일에 맞춰 고뇌하는 혁명가의 모습을 더욱 많이 보여주고자 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스파르타쿠스는 아람 하차투리안 작곡, 레오니드 야콥슨의 안무로 1956년 레닌그라드 오페라발레시어터에서 초연 했다. 1968년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이 이어진다. 로마군과 노예 반란군의 대결은 남성 군무의 상징. 4월 13~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000~10만원. (02)587-6181.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이현준·이승현 “걷는 모습·시선 처리까지 신경…새로운 왕자의 모습 보여줄 것” 지난주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을 끝내고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연습에 돌입했다. 오전 10시쯤 연습실에 나와 오후 6시까지 강행군이다.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발레단 사무실에서 만난 두 주역 이현준(27)과 이승현(26)에게는 일분일초가 아쉽다. “콩쿠르에서 비참가자(참가자의 파트너)로 이 작품의 파드되(2인무)를 한 적이 있어요. 첫 전막 공연이라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현준) “공연일이 다가올수록 더 잘 표현해야겠다는 부담이 생겨요. 수석무용수로 승급된 뒤 처음 한국 무대에 주역으로 서는 것이니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고요.”(승현)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유니버설발레단이 1994년 창단 10주년 기념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이번 공연은 2006년 이후 6년 만이다. →둘 다 이 작품에 남다른 의미가 있을 듯하다. -현준: 2006년 관객으로서 공연을 봤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정말 아름다워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결국 5회짜리 공연을 다 봤다. 그런 작품을 하게 되니 행복할 수밖에 없다. -승현: 지금껏 했던 공연이 대부분 내게는 초연이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연습했던 것을 다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과 더 큰 박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지금의 피곤함도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고(웃음). →해외 공연을 끝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강행군이다. -현준: 무대에 많이 서는 건 감사한 일이다. 물론 힘들긴 하다. 이 공연이 끝나고 며칠 뒤 타이완으로 떠난다. 현대발레 ‘디스 이즈 모던 3’ 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이번 공연에 집중하고 있다. →모던발레와 고전발레를 넘나드는데 어려운 점은 . -승현: 모던발레는 움직임이 크고 자유로운데 고전발레는 상체를 마치 상자에 넣은 것처럼 고정하고 통째로 움직여야 해서 무척 어렵다. -현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왕자는 더 상체가 곧다.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드는 활달한 왕자이고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는 자유로운 무사인데 데지레 왕자는 강하지만 그걸 드러내지 않는다. 상체를 꼿꼿하게 세운 채 화살을 던져 나무에 꽂는 식이다(웃음). 무용수로서는 정말 힘든 자세다. -승현: 그런 자세로 춤도 춰야 하니까(웃음). →많이들 아는 이야기를 다르게 풀어내는 것도 숙제일 듯한데. -승현: 춤이나 걷는 모습, 손가락 움직임, 시선 처리까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까지 봤던 작품 속 왕자와 다른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다. -현준: ‘지젤’이나 ‘백조의 호수’나 다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용수들의 연기와 실력 때문이 아닐까. 사실 관객에게는 무용수가 얼마나 연습했고 어떤 부상과 시련을 입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그날의 공연’만이 판단 기준이다. 그렇게 배웠고 또 그렇게 해왔다. 무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와 안무가 마리우스 페티파의 ‘3대 고전발레’ 중 하나로 아카데믹 발레로 불린다. 1890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초연. 웅장한 왕궁, 다양한 캐릭터 등 볼거리가 많다. 4월 5~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만~10만원. (02)399-1114~6.
  • 조계사에 한반도 평화기원 ‘1000일의 등불’ 밝힌다

    조계사에 한반도 평화기원 ‘1000일의 등불’ 밝힌다

    28일은 한국불교 맏형 격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13대 종정 진제 스님 추대식이 있는 날. 이날을 기해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에 ‘꺼지지 않는 생명평화의 등불’이 밝혀진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결사본부·본부장 도법 스님)는 28일 오후 3시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민족화해, 평화통일 한반도 생명평화 공동체 실현을 위한 1000일 정진결사’(1000일 결사)를 시작한다. ‘1000일 결사’는 조계종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수행, 문화, 생명, 평화, 나눔의 5대 결사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자는 행사. ▲생명평화 1000일 정진(1000일 기도) ▲사부대중 야단법석 ▲시민초청 무차대회 등으로 나뉘어 오는 2014년 12월 22일까지 1000일간 계속되는 거대 불사(佛事)이다. ‘1000일 결사’는 진제 스님 추대식 직후 곧바로 시작될 예정이다. 종정 추대식이 끝난 뒤 진제 스님이 조계사 대웅전과 일주문 옆에 마련된 정진단에 1000일 정진등을 켜는 ‘생명평화 1000일 정진’ 입재식으로 1000일 결사는 시작된다. 이 정진등은 1000일 정진을 마치는 날까지 불을 밝히며 자성과 쇄신 결사에 담긴 뜻을 온 사회에 알리는 상징의 불꽃인 셈이다. 결사는 출·재가 종무원과 시민단체 활동가, 신자들과 일반시민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 매일 24시간 릴레이 기도방식으로 진행될 예정. 첫날엔 최근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강정마을 고권일 대책위원장이 첫 번째 기도를 시작해 김정우 쌍용차해고자 대책위원장, 통일운동가 백기완씨가 바통을 이어받아 기도에 참여한다. 개신교 김진해 목사와 천주교 김정일 신부, 원불교 이성심 교무 등 이웃 종교 성직자들과 농민·청년·다문화가족 대표자들도 각각 1시간씩 차례로 정진에 참여한다. ‘1000일 기도’에는 한 사람이 1시간 기도하는 것을 기본으로 몇 사람이 함께 또는 몇 시간 정진하거나, 1주일 또는 한달에 여러 번 참석하는 형식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기도가 끝나는 2014년 12월 22일까지 1000일간 연인원 2만 4000명이 동참할 것으로 결사본부 측은 예산하고 있다. ‘1000일 정진’의 참여를 원하는 개인과 단체는 조계종 결사본부 전화(02-2011-1928)나 이메일(1000day@buddhism.or.kr)로 신청할 수 있다. 릴레이 기도와 함께 이어질 ‘사부대중 야단법석’과 ‘시민초청 무차대회’는 지금 우리 사회와 불교가 안고 있는 주요 문제를 대중들과 함께 고민하고 풀어보는 소통의 자리. 5월 중 처음 여는 ‘사부대중 야단법석’에선 불교에 대한 궁금증이며 사회적 의제에 대해 스님과 시민, 신자들이 한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와 함께 ‘시민초청 무차대회’는 각계각층의 시민을 부처로 모셔 음식을 대접하고 아픔을 공유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결사본부는 “1000일 정진과 야단법석, 무차대회를 통해 한국불교 1번지인 조계사가 시대와 함께 호흡하면서 뭇생명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생명평화의 도량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수현 “내 외모도, 연기 점수도 C+”

    김수현 “내 외모도, 연기 점수도 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로 대한민국 여심을 품은 남자 김수현(24). 그가 데뷔 4년 만에 안방극장에 ‘김수현 신드롬’을 일으켰다. 지난 20일 밤 서울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드라마 종영 후 계속된 강행군에도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극 중 훤처럼 호탕한 웃음과 거침없는 언변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자고 나니 스타가 돼 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것 같다. 높아진 인기를 실감하나. -솔직히 아직 일상을 즐긴다거나 그럴 시간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사인을 해달라는 지인들이 늘어난 정도다. ‘드림하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촬영 현장에 아기를 안고 찾아오신 어머님 팬들이 많이 늘었다. 팬층이 넓어진 것 같아 묘하게 힘이 났다. →‘해품달’로 대한민국 여심을 꽉 잡았는데. -제가 한 게 뭘까 싶다. 감독님과 작품이 워낙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해품달’은 많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연기를 하다가 한계에 많이 부딪혔다. →어떤 점이 아쉬웠나. -저는 왕처럼 사람을 부려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정치하는 왕으로서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극 중에서 심리전, 기싸움 같은 부분을 연기할 때도 그렇고…. 선배들과 부딪치면서 제가 배우로서 가진 에너지의 크기가 낱낱이 드러났다. 다행히 선배들의 리액션 덕분에 잘 흘러간 것 같다. →누가 가장 기억에 남나. -김응수(윤대형 역) 선배다. 제가 한참 어리고 경험도 없는데, 저를 믿어 주셨다. 그것에 굉장히 많이 의지를 했다. 그리고 정은표(형선 역) 선배도 곁에서 늘 다독여 줬다. →소속사 반대에도 본인이 ‘해품달’ 출연을 고집했는데, 처음부터 대박 느낌이 왔나. -기획안을 먼저 보고 원작을 봤는데, 원작이 너무 재미있었다. 관심을 두고 있다가 시놉시스가 나오고 대본도 나오고 하니까 흥분됐다. 말 그대로 너무 ‘땡겼다’. 훤이라는 캐릭터를 내가 연기한다면 내가 가진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카로운 면부터 부드러운 면까지 모두. →데뷔 후 첫 사극이라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다. 가상의 왕인데 참고한 배우나 캐릭터가 있었나. -솔직히 무서웠고, 겁이 났다. 혼자서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는데, 내가 나한테 실망할까 봐 소리를 내는 데까지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다. 그런데 여진구(어린 훤 역)가 연기를 굉장히 잘해줬고, 거기서 힘을 많이 받았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한석규(세종 역) 선배의 연기에 한참을 빠져 있었는데 내가 따라할 수준의 연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창천항로‘(조조의 입장에서 본 삼국지)라는 만화책의 조조를 보면서 훤의 캐릭터를 연구했다. →하지만 시청률은 40%까지 치솟았고 ‘국민전하’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하하하하. 사실 수치에 대한 개념이 없기도 했고 실감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스태프 한 분이 “40%면 우리 국민 중 2000만명 정도가 드라마를 본 거야.”라고 설명하니까 느낌이 왔다. 처음에는 20% 정도도 큰 것으로 생각하고 그 정도를 목표로 잡았다. →훤은 잘생기고 영리하고, 고집도 있다. 본인과 닮은 점이 있다면. -닮으려고 노력했는데, 훤처럼 영리하지 않은 것 같다. 저는 그렇게 정치를 해가면서 한 수, 두 수. 세 수까지 앞을 내다보지는 못할 것 같다. →절대 권력자인 왕은 매력적인 캐릭터다. 훤이 부럽다고 생각된 적은 없었나. -오히려 왕이라서 괴로워 보였다. 물론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정치도 해야 하고 사랑도 해야 하고 밖에도 못 나가니까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왕 역할이라서 좋은 점은 있었다. 촬영이 주로 겨울에 있었는데, 왕이기 때문에 대부분 따뜻한 세트에서 촬영했다. 그래서 좀 미안했다. 또 연기하면서 무릎을 꿇을 일이 없었다. →상대역인 한가인(연우 역)은 유부녀인데, 몰입하기 어렵지 않았나. -가인 누나가 연기할 때 낯을 많이 가리는 스타일이라고 들었다. 처음에는 둘 다 어색해서 말하기 어려웠는데, 함께 고생하면서 자연스럽고 편해졌다. 나중에는 농담도 하게 되고 입맞춤하는 장면 등 민망한 장면도 잘 찍었던 것 같다. →현실에서도 두 번씩이나 같은 여인을 좋아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한 연예 프로그램에서 9명이나 여자친구를 사귀어 봤다고 하던데. -좋은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도…. 그 부분은 해명을 좀 해도 될까. 그때 “나는 여자를 열명 이상 사귀어 봤다.”는 OX 질문을 받았는데, X를 들었다. 그래서 웃길 줄 알고 “그럼 아홉명?”이라고 했던 것인데, 분위기가 그렇게 굳어지는 바람에 나온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과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 -드라마에 주옥같은 대사가 나오지 않나. “좋소. 중전을 위해 내가 옷고름 한번 풀지.” 그 장면은 그냥 현장감을 살려서 찍었다. 아쉬운 부분은 전체 다. 나중에 공부한 뒤 통으로 전체를 다시 찍고 싶다. →이번 작품에서 소년 같으면서도 섹시한 매력을 동시에 선보였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평가가 좋다. 최근에 한 설문 조사에서 ‘가장 섹시한 왕’에 꼽아 주셨는데, 사실 제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그런 점을 잘 보여줄 줄 알았으면 진작에 다 했을 텐데,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방식을 잘 몰라서 못한 것도 많다. →이번 연기에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한참 고민하더니) C+ 정도다. 100점 만점으로 계산하기는 어렵다. 한계에 부딪혔고 좌절했지만, 다행히 잘 마친 것 같아서 준 점수다. 처음에 연기를 시작할 때 배우가 자기 만족을 느끼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기 합리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여기서 만족해 버리면 자기 합리화가 될 것 같다. →소속사 사장이자 선배인 배용준이 어떤 조언을 해줬나. -‘드림하이’ 때 “이제 본격적으로 너를 사랑해 주는 팬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받기만 해서는 안 되고 감사하고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고 격려해 줬다. ‘해품달’ 때는 매회 전화와 모니터를 해주었다. 한번은 “훤은 나이가 어린 친구인데 영리한 것이 너무 티가 나서 좀 징그러워 보일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해주었다. 그것은 김도훈 PD도 지적하신 부분이었다. →본인이 잘생긴 외모라고 생각하나. -애매하다. 사실 하나하나 꼽으면 자신 없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또 다르다. 그것도 C+로 하겠다(웃음). →혹시 콤플렉스가 있다면. -없는 것 같다. 아, 사실은 끝까지 ‘할마마마’라는 발음이 잘 안됐다(웃음). 어릴 적 사람들과 눈도 잘 못 맞출 정도로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김수현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동아리에서 연극을 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그는 “첫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때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는데, 앞이 안 보이고 박수소리만 들렸다. 그때 희열을 느끼고 연기자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김수현. 그의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김용 지명자는 누구

    김용 지명자는 누구

    어머니로부터 퇴계 이황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헌신하는 삶을 꿈꿔온 이민 1.5세대 한국계 미국인이 세계은행 총재에 낙점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5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저개발국 출신 소년이 미국이 독식해 온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개발도상국의 미래를 이끌게 됐다. 아이비리그 200년 역사상 첫 아시아인 총장으로 화제가 된 김용(53·미국명 짐 용 킴) 다트머스대 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총장은 늘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를 앞세우며 세상에 기여할 길을 고민해 왔다. 하버드 의대 교수를 지내던 시절 그는 중남미와 러시아 등 빈민지역에서 결핵 치료를 위한 구호활동을 벌여 큰 성공을 거뒀다.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맡아 저소득 국가의 에이즈, 말라리아 치료 등에 힘썼다. 특히 2005년 300만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3X5 운동’은 스스로를 ‘행동파’라고 일컫는 그만의 추진력과 결단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그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치과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5살 때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아이오와주 머스커틴고등학교에서 총학생회장으로 활약한 그는 학교 미식축구팀에서 쿼터백을 맡는 등 일찌감치 리더십을 발휘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와 조지 맥거번 민주당 후보가 맞붙었던 미 대선 당시 아이오와 맥거번 선거 캠프에서 선거 운동을 도울 정도로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이후 브라운대로 진학한 그는 1982년 하버드대 의대에 입학, 의학·인류학 박사 학위를 차례로 받았다. 하버드 의대 시절 그는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하자’는 인생의 결단을 내렸다. 그는 하버드대 교지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한국에서 봉사하겠다는 생각에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한국보다 더 내 도움이 절실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아이티 방문은 그의 삶을 180도 바꿔 놓았다. 참혹한 가난과 질병,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빈곤국 국민들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길만이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는 고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도 인연이 깊다. 청년 의학도로 페루에서 결핵 퇴치 자원봉사에 나선 그를 이 전 총장의 부인이 남편에게 소개한 것이다. ‘동양인 최초’ ‘최고 지도자’라는 수식어는 늘 그의 차지였다. 2003년 소위 ‘천재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펠로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에서 ‘미국의 최고 지도자 25인’에 선정된 데 이어 2006년엔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혔다. 지난 2009년에는 하버드 의대 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4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 8개 명문대 중 하나인 다트머스대 제17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김 총장의 부친 고(古) 김낙희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치과의사로 일했다. 모친 김옥숙씨는 아이오와대학에서 퇴계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보스턴 아동병원 소아과의사인 부인 임연숙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민중 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 펴낸 시인 김해자

    [저자와 차 한 잔] 민중 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 펴낸 시인 김해자

    해방감이었다. 이들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엄살을 떨고 살았는지, 통절하게 느끼고 돌아왔다. 멋진 이야기도 아닌데, 오히려 비루하고 어렵고 고단한 이야기인데도, 이들이 만든 삶의 무늬와 정서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뒤에는 마음속에 있던 작은 고민이 소멸해 버리는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 푸줏간 주인부터 해녀까지 만나 듣고 또 듣고 최근 민중 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삶이보이는창 펴냄)을 낸 시인 김해자(51)는 책 속에 담긴 많은 사람에게서 받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20일 서울 태평로 서울신문 본사에서 만난 시인은 머리에 초록색 두건을 두르고,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연두색 셔츠를 입은, 자그마한 여인이다. 그런데 등에 멘 가방이 영 묵직해 보인다. “(전북)전주에 있다 보니까 서울에 한 번 오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아요. 이번에는 그분들께 이 책을 전해드리려고요.” 시인이 말한 ‘그분’은 서울 마장동 우시장에서 고기를 파는 일흔다섯 윤주심씨이고, 34년째 서울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김인수씨이자 한국에서 새로운 꿈을 만들어 가는 외국인 노동자 레자·몰라·부따·나랜드라 등이다. 예전엔 스러진 해녀 고 김석봉씨이기도, 시인의 친구이자 노동운동가 고 최명아씨이기도 할 터다. 시인에게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 준 그 사람들이다. “첫 시집 ‘무화과는 없다’를 내기 직전인 2001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늘 곁에 계실 줄 알았는데, 천지 어디에서도 그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거예요. 이게 낫 놓고 기역자 정도 아는 우리 어르신들 모습이더라고요. 자식들은 동영상으로 남기고, 지나치는 꽃들을 사진으로 찍어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영원히 사실 것처럼 남기지 않는….” 시인은 그때부터 녹음기를 들고 다녔다. 사람들과 만나고, 때론 술 한 잔 기울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다소 비린내 나고 씁쓰름하면서 텁텁하기도 한 대화를 날것 그대로 책에 풀어냈다. ‘피들피들 바닷바람에 말려 구워 먹는 오징어 피데기는 참 맛이 좋다게. 남편이 한참 뱃일할 때난 그물에 걸린 대게를 떼어내는 일도 했다게.(중략) 돌문어 다리 볶아서 아이들 도시락 반찬 해주곡, 생선 말려서 하르방 밥상에 올리곡, 식구들 아프면 전복죽 끓여 먹이고, 바당은 반찬거리 천지주.’(김석봉傳) ‘나가 고향서부텀 소문난 효자요. 자식 줄줄이 달고 청상이 되어부렀으니 내 맘으로다 엄니가 얼마나 안쓰러웠겄소?(중략) 한복 저고리에다 여름엔 모시 적삼에다가 그렇게 늘 깨깟허니 꼿꼿허니 앉어계신디, 그 뒤치다꺼리를 누가 했겄소?(중략) 이 자리서 나가 처음 하는 말인디, 이 사람한테 정말 미안허요.’(김인수傳) # 사사로운 육성에서 위로 받고 희망 찾아 애써 윤색하지 않았고, 전라도·충청도·제주도 사투리도 다 살렸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눌한 한국말도 그대로 담았다. “말은 그 사람의 정서거든요. 우리가 하는 말은 어머니의 말이고, 자연의 말이잖아요. 설령 엄마가 ‘미친 년, 너나 아프지 마라’고 한들, 이걸 욕으로 듣지는 않죠. 자식 걱정하는 짠한 마음을 느낄 뿐이죠. 그것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고된 삶을 계속 접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로해질 법도 할 텐데, 시인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고 했다. “못 배우고 못 살고, 그렇게만 아는 민중의 온몸에는 실다운 삶이 관통하고 있어요. 요즘 우리는 사랑이니, 민중이니 하는 말을 얼마나 오염시키고, 학자적·정치적 개념으로만 쓰고 있습니까. 나와 타자의 경계가 무너진 삶을 산 사람, 이들 자체가 구원인 거죠. 그래서 전 이분들께 거룩함마저 느꼈습니다.” 그가 민중에게 느끼는 경외감이 묻어난다. 그의 인생 역정 또한 그랬던 탓일 것이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시인은 동네에 현수막이 걸릴 만한 명문대에 진학했다. 운동을 하다가 졸업을 못한 채 인천으로 흘러갔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10여년을 보냈다. 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나눈 일상을 글로 풀어냈다. 공장에서 함께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 친구 최명아씨를 그린 소설 ‘최명아’로 1998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았고, 두 번째 시집 ‘축제’로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은 앞으로도 죽 민중에 집중할 계획이다. 아마 두 번째 ‘민중열전’은 전주 남부시장 사람들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았고, 머리에 철심은 박은 상태라 오래 글을 쓰기 어려워 당장은 아니란다.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 머리가 지릿지릿 저려요. 수술 후에는 과거 몇 년 치 기억이 없어진 듯 기억이 잘 나질 않아요. 그런데 참 이상한 거는요,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거예요. 글 한 자 쓸 줄 모르는 어르신들이 옛일을 날짜, 시간까지 정확히 말해 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글 속 윤주심씨의 말을 빌리자면 “우찌게 돈을 맹글어 죽어라고 달려가서 이문동 은행에 갖다 냈어. 11시드라. 기억력이 좋다고? 그라냐? (중략)자식들이 나한테 ‘되새김의 여왕’이라고 부르잖여.”라고나 할까. 시인이 전하는 것은 사사로운 민중의 모습이지만, 독자가 받는 것은 위로이고 희망이다. ‘지금 지가 아파도유, 보글보글 된장찌개도 끓이고 고실고실 밥도 하고 하늘도 보고, 오늘 하루도 삶의 수리차를 돌리겠유. 휘청휘청 걷다 보면 저기 어디선가 소금 빛이 반짝반짝할 것이니께.’(이영철傳) 이렇게 말이다. 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상업사진 중단 후 ‘한국의 재발견’ 나선 사진가 김중만

    [김문이 만난사람] 상업사진 중단 후 ‘한국의 재발견’ 나선 사진가 김중만

    아주 먼 공간을 현재로 확 끌어당긴다. 좁혔다 늘였다, 모든 것이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변한다. 과학과 예술, 그리고 영혼이 버무려진 걸작이 탄생하기도 한다. 뭘까. 바로 사진이다. 하여 누구나 사진을 감상하고 싶어 한다. 이 시대의 대표적 사진작가 김중만(58)씨. 요즘에는 어떤 앵글로 감동을 만들어 가고 있을까. 5년 전, 더 이상 상업사진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새로운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기에 카메라를 든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우선 최근의 몇 가지 사례부터 들여다보자. 첫 번째, 서울대병원 본관 1층에 가면 ‘우리 모두에겐 희망에 대한 절대적 소망이 있다’는 주제의 흔치 않은 사진전을 감상할 수 있다. 김씨가 직접 병원 곳곳을 누비며 삶에 도전하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진료 현장을 뛰는 의료진의 숨김 없는 모습을 담은 사진 30점이 전시되고 있다. 김씨가 꼬박 3일 동안 병원에 기거하며 찍은 작품들이다. 이 전시는 ‘희망 기부, 나눔의 문화’에서 출발했으며 23일까지 계속된다. 두 번째, 병영문화 월간잡지 ‘HIM’을 통해 ‘그대들이 지키는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는 제목으로 병사들을 위한 헌정 사진전을 시작했다. 그가 직접 몸으로 찍은 아름다운 국토강산의 사진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최근호에는 ‘강원도 영월 요선암’ 등 새로운 사진 8점이 포토 에세이 형식으로 지상 전시되고 있다. 세 번째, 지난 20일 동북아역사재단 등과 협약을 맺고 다음 달 1일부터 1년 동안 독도 전역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을 시작한다. 생활과 동식물 등 기록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사진을 총망라하게 돼 또 다른 차원의 독도 수호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가 터치하는 독도의 사계는 어떤 모습일까. ●레게 머리 알아볼까봐 헤어스타일 바꿔 지난 19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김씨를 만났다. 바쁜 촬영 일정 때문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잠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김씨 특유의 레게머리 스타일이 아니어서 의외였다. 헤어스타일을 왜 바꿨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하면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아서요.”라며 웃는다. 먼저 병원 전시 얘기를 꺼냈다. “아시다시피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은 희망을 가져야 하거든요. 또 병원에는 좋은 의사들이 많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건강한 삶, 건강한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자는 취지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환자들, 나눔을 통해 값진 삶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했습니다.” 병사들을 위한 헌정 사진전도 이 같은 ‘나눔’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아는 분의 권유도 있었지만 나라를 지키는 60만 병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고 했지요. 그들에게 ‘아름다운 강산’, ‘국토사랑’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너희들이 있어 편하게 살고 있으니 뭔가 해 줘야 한다는 ‘나눔의 생각’에서 말입니다.” 이어 독도 얘기를 꺼냈다. “사실 제가 ‘한국의 재발견’이라는 이미지 작업을 한 지 5년 차가 됩니다. 첫 번째는 관광공사와, 두 번째는 문화재청과 협약을 맺어 한국적인 것을 찾는 작업을 했지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독도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독도는 그동안 개인적으로 두 번 정도 다녀왔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요. 좋은 작업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사진작가들은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보물 같은 곳이지요” 그는 또한 “우리의 땅 독도에서 우리의 정서를 반영한 작품을 만들어 독도를 세계에 알리고, 미래세대를 위한 영유권의 근거를 기록물로 남길 것”이라면서 “그들(일본)이 뭐라고 하든 말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꾸준히 준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독도 프로젝트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진 관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도 다음은 어디냐는 질문에 “제주도로 향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를 위해 틈틈이 제주도에 다녀온다고 귀띔했다. ●한국 전통·깊이 간과했던 지난날 반성 “그동안 한국의 전통과 한국적 깊이를 간과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작업을 하면서 반성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상업사진을 하면서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지요. 뒤늦게나마 우리나라 이미지에 빠지면서 정체성을 생각했고 ‘너는 누구냐’ 하는 물음에 조금 (답을)찾아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진가가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상업사진 시절에 대한 반성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1988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그는 패션작가로 유명 연예인들과 사진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전도연, 비, 원빈, 정우성, 배용준, 이병헌, 강수연, 손예진 등 1000여명에 이르는 스타와 패션사진, 광고, 영화, 포스터 등 다양한 분야의 사진을 찍었다. 연간 17억원을 벌어들일 정도였다. 그러던 2007년 11월 어느 날 둑길을 걸으면서 문득 자신에 대해 물음표를 던졌고 상업 사진을 확 접었다. 연간 수입이 80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좀 더 일찍 고민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안의 영혼과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어떤 절실함이 다가왔습니다. 중랑천 둑길을 걷다가 문득 수양버들을 보고 ‘너를 찍어도 되겠니’라고 몇 번 물었고 비로소 대답을 들었을 때 방향전환을 하게 됐지요.” ●阿 봉사한 부친 유언 따라 26곳에 골대 세워 이후 수양버들을 찍으면서 둑길에 있는 나무들과 친구가 됐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을 법한 외로운 나무들과도 가까워졌다. 어쩌면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찍은 둑길 사진만 무려 4만 5000여 장이다. “저는 사진작가로 생각 안 합니다. 그저 사진가일 뿐입니다. 사진가의 인생으로 반절 정도 왔습니다. 앞으로 5년 차의 사진가로서 우리나라를 정성으로 담아내려 합니다.” 화제를 아프리카로 돌렸다. 지난달에도 아프리카에 다녀왔다고 하면서 “그동안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린 아이 등 불우한 아이들과도 자주 만났는데 이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해 줄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해 왔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종단 축구 골대 세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과 요하네스버그, 보츠와나, 나미비아, 잠비아, 짐바브웨, 케냐, 에티오피아 등 희망의 축구 골대로 아프리카의 남부에서 북부로 올라가는 것이지요.” 이 사업의 일환으로 현재 26개의 축구 골대를 세웠다. 이는 아버지가 생전에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정신과 맥락을 같이한다. 1960년대 말 가족을 이끌고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로 이주해 평생을 진료에 바친 의사 아버지는 생전에 “아프리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아들에게 자주 강조했고 ‘아프리카 사진’ 또한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찍기 시작했다. 그가 목숨 걸고 찍은 아프리카 사진들은 현재 제주도에 있는 아프리카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사진 인생 37년… 75만장 찍어내 1975년 개인전을 통해 데뷔했으니 그의 사진 인생은 올해로 37년째. 그동안 찍은 사진만 무려 75만장이다. 내친김에 100만장까지는 찍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런 그에게 사진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전쟁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치열한 전선으로 뛰어들어가 이기는 것입니다. 200년 사진 역사에 한국인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 것이 좋은데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열정과 한국의 혼을 가진 후배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앞으로 그 전쟁터는 더 치열해질 테니까요. 우리나라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1위 국가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사진가다운 DNA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아름다운 것을 열망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는 그는 “일반 국민들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찍고 사진가인 저는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찍어나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김중만 1954년 철원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로 이주했다.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던 중 사진작가로 방향을 틀었다. 1975년 니스 ‘장피에르 소아르니’에서 데뷔 개인전을 가지면서 본격적인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77년 프랑스 ‘아를 국제 사진 페스티벌’에서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3살 때 프랑스 ‘오늘의 사진작가 80인’에 최연소 작가로 선정됐다. 1988년 한국으로 귀화한 뒤 패션작가와 유명 연예인들 사진 작업을 하던 중 2007년 상업사진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기아와 질병으로 고생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후원하면서 세계 오지와 극지를 오가며 예술 사진을 찍었다. 최근에는 ‘한국의 재발견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저서와 사진집으로는 ‘동물의 왕국(1999), ‘아프리카 여정’(2005), ‘김중만 사진집’(2005), ‘섹슈얼리 이노선트’(2006) 등이 있다. 아울러 패션사진가상(2000), 모델라인 2002 베스트 드레서 백조상(2002), 제5회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2010) 등을 수상했다. 현재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 대표로 있다.
  • [사설] 막 내린 공천 레이스 국민 고민만 더 늘었다

    4·11 국회의원 총선에 출마할 여야 각 당의 후보자 공천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22~23일 후보 등록이 끝나면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된다. 여야는 일찌감치 ‘쇄신 공천’과 ‘모바일 공천’ 등을 내세우며 정치개혁을 약속했지만 막상 드러난 공천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비리 의혹이 있는 후보를 공천했다가 철회하고, 돌려막기 공천으로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공천을 하면서 친박근혜, 친노무현 인사들에게 공천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새누리당의 지역구 현역의원 교체율은 41%에 이른다. 수치상으로는 역대 가장 큰 폭의 물갈이다. 그러나 공천자 가운데 친박이 42%여서 의미가 퇴색했다. 4년 전 친이명박계에 당한 ‘공천 학살’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민주당도 지역구 공천자 가운데 친노가 45%에 이른다. 민주당은 지역구 의원의 교체율도 27%에 지나지 않았다. 호남에서 중진 의원 몇 명이 물러난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인적 교체가 보이지 않았다. 친박과 친노 중심의 공천은 새로운 인물의 수혈이 어려웠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됐다. 여성과 청년의 정치 참여 확대는 여야 모두의 약속이었지만 공천 결과로 실현되지 못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여성 지역구 후보 공천비율은 각각 6.9%, 9.6%에 머물렀다. 20대와 30대의 지역구 공천 비율은 두 당 모두 1%대에 그쳤다. 여성과 청년의 정치 참여 확대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선거가 끝난 뒤 정치권이 구조적인 해결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야는 그나마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서 지역구 공천에서 보여주지 못한 다양성과 전문성을 일부 보충했다. 여성, 장애인, 탈북자, 이주민, 과학자, 문화예술인, 체육인 등이 포함됐다. 여야는 어쨌든 우여곡절을 거쳐 국민에게 선택지를 제시했다. 당마다 이념과 정책, 인적 네트워크 등이 다르기 때문에 국민이 100% 만족하는 선택지는 내놓을 수 없다. 결국 남은 것은 유권자들의 선택이다. 여야의 공천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어느 당, 어느 후보가 국가와 지역을 위해 봉사할 일꾼인가를 꼼꼼히 살펴 최선이나 차선이 아니면 차악의 투표라도 해야 할 것이다.
  • “성직자도 국민… 예외 없다” VS “종교활동은 근로 아닌 봉사”

    ‘원칙적으론 찬성, 현실적으론 난색.’ 정부가 20일 밝힌 ‘종교인 과세’ 추진을 놓고 종교계는 찬반 양론의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찬성하는 측은 ‘국민개세주의’ 원칙에서 종교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반대 측은 ‘종교활동은 근로가 아닌 봉사로 봐야 한다.’며 근로소득세를 낼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소득·지출 등 불투명해 난제 이런 엇갈린 반응에도 종교계는 과세 쪽으로 급속히 기우는 게 사실이다. 종전 과세에 부정적인 입장을 지켜온 개신교에서 특히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보수교단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 목사 가운데 자진 납부하는 목회자가 늘고 있다.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목사들의 자발적 납세를 공론화한 데 이어 구체적인 납부 방식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천주교는 모든 사제들이 1994년부터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예외 없이 소득세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 최근 개신교계에서 과세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경향은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바 크다고 볼 수 있다. NCCK 황필규 목사는 “기독교 성직자는 목회자이면서 민주 사회의 시민 구성원인 만큼 소득 발생 때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 과세 찬성의 목소리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시행엔 고개를 갸우뚱하는 종교인이 적지 않다. 종교단체와 종교인의 수입·지출 내역이 투명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실제로 개신교는 목회자별로 소득 차가 큰 데다 전체 목회자의 80% 정도는 생활이 어려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불교도 대부분 스님의 소득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과세 기준을 천편일률적으로 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불교 조계종 총무부장 영담 스님은 “사찰과 스님을 포함해 불교계 입장에선 기본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러나 과세를 할 경우 과세 기준에 해당하는 불교단체나 개인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할지는 종단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세기준·체계정비 진통예상 결국 ‘종교인 과세’는 종교단체·종교인의 회계체계 정비와 과세에 대한 행정절차 정비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그런 여건 마련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면 종교계의 반발을 살 여지가 많다. 실제로 2006년 국세청이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 ‘종교인에게도 과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해 촉발된 과세 논란 때도 종교계의 반발이 거셌다. 한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머니투데이방송 MTN에 출연해 “종교인 과세 문제를 미뤄 놓는 것은 맞지 않는다. 올해 세법 개정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프로야구] 모자 바꿔 써도 로페즈는 에이스

    [프로야구] 모자 바꿔 써도 로페즈는 에이스

    구관이 명관이었다. 20일 프로야구 시범경기에서 국내 무대 4년차의 아퀼리노 로페즈를 선발로 앞세운 SK는 웃었고, 새로 영입한 외국인 투수 브라이언 배스를 내세운 한화는 휘청댔다. 로페즈는 이날 문학구장에서 열린 삼성전에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홈런 1개에 안타를 3개 허용했지만 1실점으로 틀어막아 9-1 대승을 이끌었다. 지난 시즌까지 3년간 KIA에서 ‘이닝이터’로 활약한 로페즈는 SK로 이적한 뒤에도 건재함을 뽐냈다. 이날 뿌린 공 80개 중 최고 구속은 145㎞였고 직구 외에도 슬라이더, 포크, 싱커 등 다양한 구종으로 상대 타자를 요리했다. 이승엽에게 2루타, 채상병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전체적인 마운드 운영에서 이만수 감독의 합격점을 받을 만했다. 최형우가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는 등 삼성 타선은 침묵했지만 SK는 6회 중간계투 이우선을 상대로 5안타와 실책 등으로 대거 5득점,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반면 한화는 초반부터 흔들린 배스 탓에 롯데에 2-9로 무릎을 꿇었다. 시범경기에 처음 나온 배스는 2이닝 동안 8안타를 허용하며 6실점(5자책), 한화 마운드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구원투수로 나선 지난 14일 SK와의 연습경기에서도 2와3분의1이닝 동안 6피안타로 고전한 배스는 이날도 선발로 나서 집중타를 맞으며 흔들렸다. 최고 구속은 144㎞를 찍은 가운데 직구 제구에 어려움을 겪어 변화구 위주로 뿌렸다. 63개의 공 가운데 직구는 32개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으로 버텼다. 당초 배스를 2선발감으로 고려했던 한화는 선발 로테이션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목동에서는 선발 서재응의 호투에 힘입어 KIA가 넥센을 3-0으로 제압했다. 시범경기 2연승이다. 서재응은 4이닝을 4안타 2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2회에 볼넷 2개와 안타 하나를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3회 들어 이택근, 박병호, 조중근으로 이어지는 넥센 클린업트리오를 삼진 3개로 요리하는 노련미를 과시했다. 잠실에서는 LG와 두산이 10회 연장 끝에 1-1로 비겨 시범경기 첫 연장전과 무승부를 기록했다. 평일임에도 이날 4개 구장에는 1만 6916명의 관중이 찾아 프로야구 초반 열기가 만만치 않음을 증명했다. 휴일이었던 지난 18일 관중 수는 5만 7508명이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새 음반]

    ●사운드 프럼 노웨어스빌(Sounds From Nowheresville) 2006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2인조 혼성 일렉트로닉 듀오 팅팅스(케이티 화이트·줄스 드 마티노)가 4년 만에 새앨범을 내놓았다. 간결한 연주와 멜로디에 그루브감을 싣는 여성보컬 화이트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그들의 대표 히트곡 ‘샷 업 앤드 렛 미 고’(Shut Up And Let Me Go)를 떠올리게 하는 ‘행 잇 업’(Hang It Up)과 ‘솔 킬링’(Soul Killing) 같은 곡이 그렇다. 음악적 폭을 넓히려는 고민도 보인다. 어쿠스틱 사운드에 스트링을 섞은 편곡이 돋보이는 ‘데이 투 데이’(Day To Day), 기타 아르페지오(화음을 이루는 각 음들을 한꺼번에 소리 내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또는 오르내리는 꼴로 내도록 한 주법)와 첼로 활용이 눈에 띄는 ‘인 유어 라이프’(In Your Life)가 그렇다. 지난해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과 단독공연에서 나사 풀린 듯 몽롱한 매력을 어필했던 팅팅스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기회다. 소니뮤직.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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