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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 세월을 견디는 90년대 음악/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세월을 견디는 90년대 음악/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첫사랑이 말한다. 훗날, 집을 지어달라고. 그리고 계약금으로 ‘전람회’ 앨범을 한 장 내놓는다. 그녀는 CD플레이어에 꽂힌 이어폰을 첫사랑의 귀에 꽂는다. ‘이젠 버틸 수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기억의 습작’이 흐른다. 올해 3월 개봉해 411만 관객이 찾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이다. 1994년 전람회 1집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는 영화의 중요한 매개체로 존재한다. 최근 케이블채널에서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역시 1990년대 사랑받았던 대중가요가 등장한다. 가수들이 주연한 이 드라마에 삽입된 노래 ‘우리 사랑 이대로’(주영훈·이혜진), ‘올포유’(쿨),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김동률)는 당시 추억을 되새김질하면서 음악 사이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X세대’라 불렸던 30대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당시 10대들은 이제 30대가 되었고, 갓 입학했던 초등학생은 20대 후반으로 성장했다. 어떤 시대에도 복고의 유행은 불문율처럼 존재했다. 2000년대 초반 7080세대의 복고가 유행하더니, 2012년 들어 1990년대가 음악·영화 각 문화 분야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90년대는 라디오 시대의 듣는 음악에서 비주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보는 음악이 고개를 든 시대였다.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의 교차 지점에 접어든 90년대는 그야말로 대중음악 중흥기였다. 양질의 문화 콘텐츠가 대거 생산된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다. 돌이켜보면 그만큼 재조명하고 재해석될, 할 말이 많은 시대였다. 90년대 가요계엔 100만장의 음반 판매량을 돌파하는 가수가 심심찮게 쏟아졌다. 10만장을 판매한 가수들이 다음 앨범을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였을 만큼 음악 수용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존재했다. 또한, 김동률·이적·유희열·윤상 등 자신의 음악 세계를 탁월하게 만들어 가는 싱어송라이터가 대중의 가슴을 관통하며 주목을 받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재진행형의 뮤지션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90년대의 음악이 얼마나 큰 감성의 주축이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단서다. 더불어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아이돌이 서로 경쟁하며 팬클럽 문화가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도 90년대였으니 듣고 볼거리가 많은 시대였다. 그러니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그 이전 세대보다 ‘문화적 추억’이 더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화계 전반에 ‘웰 메이드 상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90년대 콘텐츠’가 시간이 흘러도 결코 낡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힘을 갖고 있었다는 방증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성장기에 영향을 줬던 것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위안과 스스로의 격려는 세월이 흘러도 잔존하게 마련이다. 당시 돈을 타 쓰며 눈치 보던 세대는 이제 콘서트 티켓, CD를 당당히 구매하는 핵심 문화 소비자가 됐다. 90년대의 음악이 세월을 견디는 까닭이다. 과거를 추억하는 문화 코드인 복고는 옛 감정을 되살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 같은 역할을 한다. 복고의 힘은 그 당시 사연들을 간직한 전 세대를 아우르며 큰 울림을 준다. 단순한 추억 곱씹기를 넘어 문화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콘텐츠의 힘이다. 그러나 복고 열풍의 이면에는 새로운 콘텐츠의 고갈이 깔려 있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쏟아지는 디지털 싱글 음원들은 음악을 곱씹어 볼 겨를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뮤지션이 탄생하지 않고 복고가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대중문화 발전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일이다. 편지는 이메일로 대신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선물을 보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년 전 생일 선물로 받은 낡은 테이프. 비록 불법이었지만 한 곡 한 곡 정성스럽게 녹음하고 표지에 노래 제목을 곱게 적어 건네 온 선물은 당시 하도 많이 들어서 재생이 불가능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지지 못하고 책상 앞에 자리하고 이유는 사람의 온기 때문일 것이다.
  • [오늘의 눈] 교도소에서 온 편지/배경헌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교도소에서 온 편지/배경헌 사회부 기자

    “교도소에 있는 제가 이런 글을 보내도 될지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글로 보내오니 부족하지만 끝까지 읽어주십시오.” 얼마 전 편지가 왔다. 발신인은 성범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라는 A씨. 출소를 2개월 앞둔 전자발찌 소급적용 대상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출소 후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전과자들을 사회에 안착시킬 대책은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받은 성교육을 통해 “막연한 반성이 아니라,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으신 피해자분께 진심으로 용서를 빌게 됐다.”는 그는 교정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적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않고 출소하는 성범죄자가 부지기수”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취업 지원 등 기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출소하면 잘 살아갈지, 노력해보고 안 되면 나쁜 짓을 저지르게 되는 건 아닐지 두렵다.”고 덧붙였다. 전자발찌 소급적용 등 강제적인 격리조치에 앞서 사회적응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늘려야 한다는 취지였다. 지난 4년간 보호관찰 대상자 5명 중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보호관찰 대상자 956명 가운데 사망원인이 밝혀진 431명 중 85명(19.7%)이 자살한 경우였다. 교통사고로 97명(22.5%)이 사망한 데 이어 사망원인 중 두번째로 높다. 같은 기간 전자발찌 착용 사망자 7명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원인은 암(27.8%), 뇌혈관질환(9.9%), 심장질환(9.7%) 순이다. 자살은 전체의 6.2%를 차지해 네번째다. 수치로만 보면 전과자의 절망은 비전과자의 절망보다 깊다. 오는 28일은 교정의 날이다. 사전상 교정(矯正)은 ‘틀어지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범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선행돼야겠지만, 우리 사회가 ‘바로잡음’ 대신 배제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닐지 두렵다.”는 A씨의 말이 자꾸 걸린다. baen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대한민국 술박사 1호 정헌배 중앙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대한민국 술박사 1호 정헌배 중앙대 교수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그대가 생각한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곧 그대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얼핏 들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닐까 싶다. 생각을 프랑스 ‘코냑’으로 옮겨본다. 프랑스의 코냐크 지방의 주민은 불과 1만 9000여 명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읍 규모이다. 그런데 여기에 코냑 회사가 3000여 개가 있고 세계 200여개국에 수출한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잘사는 고장으로 소문나 있다. 그럴 것이, 국제공항이 있고 매년 영화제도 열릴 만큼 문화적으로도 풍요롭다. 왜? 단지 ‘코냑’이라는 술이 세계인들의 가슴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술꾼이든 아니든 코냐크 지방은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코냐크 지방의 사람들은 ‘코냑’을 안 마신다. 대신 주변 지역에서 생산하는 값이 싼 포도주를 마신다. ‘코냑’이 세계적인 명품주가 됐기 때문이다. 좀 더 외국인들에게 많이 마시도록 하는 수출전략과 배려의 차원이기도 하다. 코냐크 지방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 대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코냑을 몇 년, 몇십 년씩 오랜 세월 숙성시켜 세계인들에게 그 ‘가치’를 선물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코냑이나, 스카치 위스키, 포도주처럼 오랜 세월 숙성된 ‘빈티지’를 가진 우리의 전통술이 있을까. 결론은 ‘없다’라는 게 대체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없다’를 ‘있다’로 바꾸는 사람이 있다. 국내 유일이자 대한민국 술박사 1호로 알려진 정헌배(57) 중앙대 교수가 그 일에 매진하고 있다. 때마침 2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를 맞아 정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이 축제에서 자문역할을 하며 우리술을 세계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가을비가 쏟아지는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안성에 있는 ‘정헌배 전통주 연구소’에서 정 교수를 만났다. 연구소 안에는 누룩이 익어 술이 발효되는 냄새로 가득했다. ●“名酒는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자부심” “여기는 술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술을 만들어내는 방앗간입니다. 술을 숙성시키는 것을 연구하고 분석해내는 곳이지요. 술을 좋아하고 또 특정한 날을 기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빈티지가 있는 스토리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곳이지요. 술은 살아 숨 쉬는 옹기나 오크(참나무)통 속에서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며 맛과 색상, 향기와 성분 등도 변합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숙성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알코올을 ‘천사의 몫’이라고 찬양을 합니다. 까닭에 숙성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술도 이제는 ‘빈티지’로 가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술 가운데 예를 들어 막걸리는 대개 10여 일 안팎의 숙성과정을 거쳐 시중에 나오지만 코냑이나 위스키는 17년, 21년, 30년 그리고 심지어는 100년 등 오랫동안의 숙성을 거치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그만큼 ‘명품주’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고 정 교수는 설명한다. “술은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저장성도 뛰어나 금방 팔리지 않아도 큰 걱정이 없다.”라면서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기 때문에 지역특성을 반영하기에도 좋은 제품이다.”라고 강조한다. 특히 고부가가치의 상품성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확실히 검증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이젠 우리의 전통술도 숙성연한을 길게 해 세계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명품주로 만들어야 할 때가 됐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그런 명품주 생산과 함께 아름다운 음주문화를 갖자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명주(名酒)라는 것은 전통적 가치를 대물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대표적인 명주를 갖고 있고 후손들에게 물려줍니다. 프랑스의 코냑이 좋은 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내로라할 만한 주종이 없어요. 이제는 우리도 100년 묵은 술과 아름다운 술 문화를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이런 생각에 4년 전부터 우리의 전통 특산물인 인삼과 안성 지방의 쌀을 원료로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문을 듣고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부부가 결혼식 30주년을 4~5년 앞두고 미리 주문하는 술, 자식이 부모 회갑 기념식 때 선물로 준비하는 술, 결혼 후 첫 자식을 낳은 부부가 나중에 자녀의 결혼식 때 줄 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에 맞춰 ‘노사모’에서 주문한 술, 대학입학을 기념하기 위한 술 등 제각기 사연이 많다. 얼마 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60주년 때 사용하고자 위스키 60병을 미리 만들어놓는 일도 이와 같은 것이다. 주문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인삼주 술도가에서 직접 술을 담그는 행사를 하는 때도 있다. 담근 술은 지하 숙성고에서 최소 3년 이상 숙성과정을 거쳐야 찾아갈 수 있다. 요즘 들어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외국 관광객들도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담근 ‘빈티지 인삼주’(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는 인삼주는 소주에다 인삼을 담는 것이지만 이곳 인삼주는 인삼을 쪄서 홍삼화한 다음 누룩과 함께 위스키나 코냑처럼 오랜 시간 숙성시킨다.) 술독은 모두 2000여 통. 지하숙성고에 내려가 봤더니 이 술독들은 대금과 가야금 등 우리의 전통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숙성되고 있었다. 술독마다 각 사연을 담은 내용과 술 주인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방송인 주병진씨 등 알 만한 인사들의 이름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대학교수인 그가 어떻게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어릴 적 그의 꿈은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대구 경상중학교와 고교 시절만 해도 트럼펫을 불며 그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음악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영남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장차 멋진 군인의 길을 걷고자 학군단(ROTC)에서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한 달만에 시력미달로 중도에 하차했고 바로 민방위에 편입됐다. 이 무렵 그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장학금을 받게 됐다. 국가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 그는 수출 보국에 도움되는 일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중 술 전문가가 되기로 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것이 수출이며 농산물 가공품은 시간이 갈수록 좋아진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때 명주는 그 나라의 사회, 문화적 자부심이며 술은 전통적 가치와 사랑의 대물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술문화는 국적과 민족성이 뚜렷해 나라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대학 3,4학년 때 프랑스어 공부를 했으며 졸업 후 1년 동안 직장 다니며 유학자금을 마련한 뒤 ‘생각했던 대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남부 프랑스 몽펠리에 있는 폴 발레리 대학에서 6개월간 프랑스어 공부를 할 때 폴 발레리의 명언을 접하면서 감동을 받았다. 이후 파리 9대학 박사과정(술 마케팅)에 들어갔다. 그는 이때 ‘프랑스 포도주 시장 제도 및 유통연구서’ ‘맥주의 중장기 소비예측’ 등 발효주 중심의 연구에서 세계적인 소비량을 자랑하는 럼, 보드카, 위스키, 코냑 등 증류 숙성주 연구로 점차 확대시켜나갔다. 아울러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 지역을 다니면서 논문 자료를 수집했다. 결국 ‘세계 주류시장의 국제 마케팅 전략과 전망’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상이 빚은 名酒는 후손들과 뜨겁게 이어주죠” “프랑스에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알고 지내던 친구가 저를 집으로 초대하더군요. 식사를 마치더니 친구가 ‘파라다이스에 갈래?’라고 제의하더군요. 처음에는 무슨 룸살롱 같은 술집인가 했어요. 그런데 지하의 술 저장고에 데려갔습니다. 술통이 많이 있더군요. 친구는 한 통을 가리키면서 ‘우리 아버지가 내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담그신거야.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어 마시라고 하셨지’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며 술을 한 모금 마셨더니 그 친구의 조상과 잠시 연결되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정 교수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 음복하는 이유도 조상과 만나는 일이며 특히 조상이 빚은 명주는 후손들과 또 한 번 뜨겁게 연결되는 일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의 꿈은 ‘우리 술의 세계화’이며 ‘아름다운 음주문화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인삼주 숙성 등과 관련해 특허 4개를 갖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또 대학에서 아름다운 음주문화와 술은 인류가 아닌 동물이 먼저 마셨다, 소주는 아랍의 향수 제조법에서 유래했다는 등의 술과 관련된 오해와 진실 등도 강의한다. 또 ‘술나라 헌법’과 ‘술나라의 십불출(十不出)’ 등의 흥미로운 내용도 가끔 설파한다. 술 안 마시고 안주만 먹는 사람, 남의 술로 제 생색을 내는 사람, 술잔 잡고 잔소리하는 사람, 술 먹다가 딴 곳에 가는 사람, 술 먹고 따를 줄 모르는 사람, 남의 술만 먹고 제 술을 안 내는 사람, 술자리에서 축사를 오래한 사람 등이 십불출에 포함된다며 웃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정헌배 교수는… 1955년 구미에서 태어났다. 경상중과 경북사대부고를 나온 뒤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1979년 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폴 발레리 대학에서 어학공부를 마치고 파리9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1984년 이 대학에서 ‘술 마케팅’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3월부터 현재까지 중앙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재무부 세제발전심의위원, 농림부 전통주심사위원 등을 거쳐 공정거래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 자문교수로 활약하면서 우리나라 주류산업 정책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왔다. 이를 통해 새롭고 다양한 술이 제조, 판매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많은 역할을 해왔다. 청소년 대학생의 음주문화 개선을 위해 중앙대에 교양과목으로 ‘명주와 주도’라는 과목을 개설해 직접 강의하면서 음주문화시민연대를 운영하기도 했다. 우리술 세계화를 위해 2003년 ‘정헌배 인삼주가’를 설립,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아울러 경기도 안성에 ‘세계명주마을’을 포함한 우리 술 테마파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류제조 특허4개와 옹기독 실용신안 등 다수의 지적 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술나라 이야기’(2011) 등이 있다.
  • ‘007’ 시리즈 탄생 50주년… ‘스카이폴’ UP&DOWN

    ‘007’ 시리즈 탄생 50주년… ‘스카이폴’ UP&DOWN

    1954년 영국 해군 첩보부 정보분석가 출신 이언 플레밍(1908~1962)의 소설 ‘카지노로얄’은 전 세계적으로 6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1960년대 미·소 냉전 구도와 맞물려 플레밍이 심장마비로 숨지고 나서 출간된 ‘옥토퍼스와 리빙데이라잇’까지 14권의 소설 모두 예외 없는 성공을 거뒀다. 007의 폭발력을 간파한 영화제작자 앨버트 R 브로콜리가 첫 영화 ‘007 살인번호’를 공개한 건 1962년 10월 5일. 영화 역사상 최장 시리즈로 군림하며 22편이 만들어져 50억 달러(약 5조 6000억원)를 벌었다. 시리즈가 시작한 지 50주년을 맞는 2012년, 23번째 영화 ‘스카이폴’이 26일 전 세계 동시 개봉된다. ‘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는 운동 능력은 떨어지고, 두뇌 회전도 무뎌진 퇴물 요원이다. 하지만 조직에 배신당한 전직 요원의 공격에 MI6(영국 정보부) 본부가 파괴되고, 우두머리 M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믿을 건 역시 본드뿐. ‘아메리칸 뷰티’(1999)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샘 멘데스가 드라마의 색깔을 한껏 강화해 연출한 ‘007 스카이폴’의 장단점을 분석해 봤다. [UP] 스파이 하면 본드, 이름값 어디로 가나요 명불허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꽤 많았다. 007 시리즈의 23번째 영화인 ‘007 스카이폴’은 영국 첩보 시리즈로서의 고전미와 현대적 세련미가 균형을 잘 이뤘다. 영화는 시작부터 촘촘한 주택가의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현란한 오토바이 액션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곧이어 이어지는 오프닝 크레디트는 영국의 팝스타 아델이 부르는 주제곡 ‘스카이폴’이 웅장하게 흐르는 가운데 전위적이고 고급스러운 영상으로 올해 탄생 50주년을 맞는 007 시리즈의 오랜 역사와 품격을 담았다. ‘스카이폴’은 판에 박힌 듯한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달리 첩보영화의 고전으로서 자기만의 색깔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극 초반 눈길을 끄는 제임스 본드와 적의 격투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로 시속 50㎞로 달리는 기차 위에서 촬영돼 사실감을 더했다. 몸에 꼭 맞는 슈트를 입고 대부분의 액션 장면에서 대역을 쓰지 않고 열연한 ‘영국 신사’ 다니엘 크레이그는 여전히 섹시하고 매력적이다. 영화는 적과 싸우다 임무 실패로 실종됐던 본드가 죽음의 위기를 딛고 다시 첩보원으로 활약하는 과정을 통해 영웅의 인간적인 고뇌와 지치지 않는 열정을 전달한다. 또한 MI6의 수장인 M의 과거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MI6 조직을 구하려는 본드의 활약이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멘데스 감독은 신구의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한 연령의 관객층을 공략했다. 감독은 본드카로 1960년대 007 시리즈에 나왔던 ‘애스턴 마틴’을 등장시켜 헌정 작품의 성격을 드러내는 한편 젊은 컴퓨터 천재 Q를 통해 최첨단 무기들을 선보이는 등 관객의 향수와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한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는 영화의 큰 버팀목이다. 주디 덴치는 과거의 비밀을 간직한 M 역을 맡아 연기 관록을 뽐냈고, 본드와 숙명적인 대결을 펼치는 실바 역의 연기파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은 ‘제2의 조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악랄한 악당 역을 존재감 있게 표현했다. [DOWN] 쇠약해진 본드, 50년 골수팬들 실망할걸요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했던 007시리즈의 21편 ‘카지노 로얄’(원작소설의 1권에 해당)과 22편 ‘퀀텀 오브 솔라스’는 본드의 첫사랑 베스퍼 린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비밀조직 ‘퀀텀’과 본드의 대결을 그렸다. 말끔하면서도 바람둥이 이미지가 그득했던 1~5대 본드와 달리 크레이그는 ‘순정 마초’ 이미지로 시리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역대 본드 중 가장 거친 액션은 물론 처음으로 진지한 연애감정을 내보인 것. 23편의 메가폰을 잡은 멘데스와 제작진은 고민(혹은 욕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21~22편과 연결고리를 모두 끊어버린 독립된 이야기로 ‘스카이폴’을 풀어냈다. 본드가 악당과 마지막 대결을 펼치는 장소로 본드의 스코틀랜드 고향집을 택했다. 본드 부모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고, 이를 계기로 본드가 진짜 남자가 됐다고 슬쩍 흘린다. 시리즈의 또 다른 아이콘인 M 역의 주디 덴치도 과감하게 은퇴시킨다.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시리즈처럼 정색하고 ‘리부터’(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를 표방한 건 아니지만, 50주년을 맞아 ‘시즌 2’를 만들고 싶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육체적·정신적으로 쇠약해진 본드에 대한 연민, 조직과 인간관계 사이에서 고민하는 M의 모습, 동기 부여가 확실한 악당 실바(하비에르 바르뎀) 등 입체적인 캐릭터와 풍성해진 드라마는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산토끼’들을 포섭할 여지는 커졌지만, 50년 동안 단단하게 형성된 ‘집토끼’들에게는 실망스럽다. ‘본 시리즈’ 못지않은 크레이그의 맨몸 액션과 Q(영국정보부의 과학자)가 만들어낸 각종 신무기의 도움을 받는 첨단 액션을 되레 반감시킨 것은 분명하다. 상영시간이 2시간 23분이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드라마와 액션의 강약 조절이 더 아쉽다. 1대 본드걸 우슬라 안드레스를 시작으로 킴 베이싱어, 핼리 베리, 소피 마르소, 에바 그린 등 매혹적인 역대 본드걸과 달리 존재감이 없는 두 명의 본드걸(나오미 해리스, 베레니스 말로)이 구색 맞추기로 등장한 것 역시 실망스럽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최필립 “그만둬라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21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이사진이 잘 판단해 달라.’고 요청한 것과 관련, “지금 현재 누구도 이사장직에 대해 그만둬야 한다, 혹은 해야 된다고 말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며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장학회 이사회를 통해 임명된 만큼 누구도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 이사장은 이날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한 뒤 자신의 임기인 2014년까지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이사장은 “장학재단은 정치 집단이 아니다.”면서 “정치권에서 저희 장학회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해 저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최 이사장이 사퇴를 거부한 만큼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해법 찾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박 후보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으며, 대선 가도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최 이사장은 그동안 자진 사퇴 요구가 제기될 때마다 사퇴를 거부해왔다. 그는 지난달에도 사퇴 여부에 대해 “재단 임기 동안 업무를 다할 것”이라면서 “이사장직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박 후보가 자신의 사퇴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는 언론의 해석에 대해서도 “박 후보 스스로 이사진 거취 문제를 논할 위치가 아니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 것”이라고 했다. 최 이사장은 이날도 “스스로 잘 판단해서 하라는 박 후보의 말이 사퇴를 촉구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선대위 차원에서 최 이사장의 사퇴를 계속 설득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관 출신인 최 이사장은 2005년 박 후보의 후임으로 이사장에 임명돼 박 후보의 대리인격이 아니냐는 의혹이 줄곧 제기됐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Weekend inside-도시의 변신은 무죄] 무교동, 새 맛을 찾다

    [Weekend inside-도시의 변신은 무죄] 무교동, 새 맛을 찾다

    서울 한복판의 무교동 골목이 또 한 번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1960~70년대 번화한 유흥가에서 1980~90년대 대중음식점 골목으로 변신하더니, 긴 침체기를 거쳐 이제 말끔한 차림의 직장인과 외국인관광객이 넘치는 ‘신세대 프랜차이즈 거리’로 바뀌고 있다. 서울시 새 청사와 프레스센터(서울신문 사옥)의 금융위원회 입주, YG타워 신축 등으로 유동인구가 부쩍 늘면서 상인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무교동 식당에 빈자리가 없다. 19일 오후 중구 무교동과 어이지는 다동 156의 23층짜리 YG타워. 1~3층에 커피전문점과 일본식 철판구이, 프랜차이즈점 등에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2층의 빈대떡 프랜차이즈점인 ‘교동전선생’에서 만난 금융위 직원 김모(25·여)씨는 “여의도에서는 점심 때 식당을 찾는 것이 고민이었는데, 무교동에 오니 전통식당에서부터 퓨전 식당까지 이제는 먹거리가 너무 많아 무엇을 고를지 고민이 될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서울시 신청사에 59개 부서의 직원 2200여명과 프레스센터에 금융위 직원 200여명이 입주하면서 점심 때부터 저녁 때까지 부쩍 늘어난 손님으로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여기에다가 서울광장과 청계천 등을 찾는 일본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패밀리레스토랑과 편의점 등도 많이 늘어났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공연이 전 세계에 인터넷을 탄 것도 호재다. YG타워 빌딩 관리업체 YG코레이션의 정웅(43) 팀장은 “과거 무교동의 상징이 ‘전통’이었다면 YG타워 준공으로 ‘현대’가 더해졌다.”면서 “최근 100% 분양을 마친 YG타워가 무교동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20년 전통의 중국집 ‘북경’ 장용진(46) 사장은 “신청사 이전이 마무리되면서 매출이 20%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아침 매출이 20% 이상 늘었다는 무교동 북어국집 김광진(45) 사장은 “공무원들이 많이 찾으면서 평소보다 줄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무교동 40년 만에 이미지 변신 4년 만에 사무실과 상가의 임대료도 올랐다. 무교동 영진부동산 관계자는 “시청 근처의 상가는 10%, 사무실은 5% 이상씩 임대료가 올랐다.”고 말했다. 132㎡(40평형) 사무실은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가 400만원 선으로 30만원 이상 올랐다. 33㎡(10평형) 1층 상가는 3000만원에 월 250만원 선으로 50만원이 올랐다. 종합부동산회사 교보리얼코 김소진 과장은 “서울시 신청사 입주 등 호재로 사무실과 상가의 임대료가 4년 만에 올랐다.”면서 “당분간은 오름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60~70년대 무교동은 나이트클럽식 술집 등이 몰려 최고의 유흥가였고 다방이 많아 ‘다방골’로도 불렸다. 하지만 1980년대 유흥업소들이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30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용금옥과 부민옥, 남포면옥 등만이 옛 명성의 상권을 지켜 왔다. 김영대(66) 무교동상가번영회 고문은 “재개발 지역으로 묶인 무교동은 리모델링에 어려움이 겪었고, 결국 반듯한 빌딩 하나 없이 쓰러져 가는 건물과 지저분한 골목길로 방치되고 말았다.”고 무교동의 과거사를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 중구가 구청장 재량으로 도시환경정비(옛 도심재개발)구역 내 사업미시행지구의 건축 규제를 완화하면서 무교동의 변신에 탄력이 붙었다. 서울광장 완공과 청계천 복원으로 무교동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 편의점 주변에 자리를 잡은 뒤 눈에 띄는 서울시 신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박창주 무교동상가번영회 회장은 “무교동이 직장인뿐 아니라 가족단위 나들이객, 외국인들이 찾을 수 있는 깨끗한 곳으로 변신할 것”이라면서 “무교동의 재도약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환율 하락세… 고민에 빠진 기업들

    환율 하락세… 고민에 빠진 기업들

    원·달러 환율 1000원대 돌입이 임박하면서 삼성·현대차·LG 등 주요 기업들이 새해 경영계획 수립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1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2원 내린 1104.3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9월 9일(1077.3원) 이후 13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5월 24일 1184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로 8월 말 1134.7원, 9월 말 1111.4원으로 떨어졌다. 지난 16일에는 1107.2원으로 1110원 선이 무너졌다. 불과 5개월 만에 7% 가까이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1100원대 붕괴 또한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원·달러 환율이 1% 하락할 경우 경상수지가 연평균 5억 2000만 달러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 있고, 삼성경제연구소도 환율이 10% 하락하면 수출과 경제성장률이 각각 0.54% 포인트와 0.72% 포인트 하락한다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수출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새해 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환율 1000원대 시대’ 도래를 기정사실화해 새해 경영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은 ‘2013년 경제 전망’ 발표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투자은행(IIB) 등 주요 기관들은 내년 원·달러 평균 환율이 110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삼성은 지난해 2012년 원·달러 평균 환율을 1060원으로 예상해 경영계획을 수립, 1100원 선 붕괴를 앞둔 현 상황에서도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환율 영향이 큰 중공업 분야의 경우 보통 3~4년을 내다보고 환 헤지(위험 회피)에 나서고 있어 올해나 내년의 환율 변동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면서도 “다만 우리나라 성장의 주동력이 수출인데, 환율 급락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삼성보다 환율 변동에 민감한 현대차그룹의 경우 최근 환율 하락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차그룹이 운영하는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가 예상한 올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인 1130원 선이 이미 무너졌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80%에 가까운 현대차그룹은 원·달러 환율이 10원만 떨어져도 매출이 2000억원(현대차 1200억원, 기아차 800억원)이나 하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새해부터는 달러의 결제 비율을 줄이는 대신, 유로화와 위안화 등 다른 통화의 사용을 늘려 환 헤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해외생산 비중을 늘리고, 고급차종의 판매를 확대해 궁극적으로는 900원대 환율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중장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LG그룹도 내년 평균 환율을 LG경제연구원이 내놓은 1080원에 기반해 12월부터 새해 경영전략을 수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내년 하반기에는 1000원대 중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과거에도 환율이 1000원 밑으로 간 적이 있는 만큼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영기 대한상공회의소 거시경제팀장은 “연말까지 1050원까지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선호도가 여전해 추가 하락세는 주춤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내년 3월 사퇴…오명도 물러나라” 서남표 KAIST총장 회견

    “내년 3월 사퇴…오명도 물러나라” 서남표 KAIST총장 회견

    한때 대학 개혁의 상징으로 인식됐던 서남표(76)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이사회와 교수, 학생 등 안팎의 퇴진 요구에 굴복한 모양새다. 하지만 서 총장은 자신을 압박해 온 오명(72) KAIST 이사장에게 같이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사퇴의 시점도 지금 당장이 아니고 내년 3월로 멀찌감치 잡았다. 학내 분란이 쉽게 잦아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서 총장은 17일 서울 인사동 서머셋팰리스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3월 정기이사회를 끝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원래 임기는 2014년 7월까지다. 서 총장은 “제가 고국에 돌아온 이유는 KAIST를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만들어 고국의 발전에 공헌하겠다는 신념 때문이었고, 2006년 부임 이후 6년간 KAIST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했다.”면서 “숱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KAIST 발전을 위해 가장 적절한 퇴임 시기를 고민해 왔고 오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그는 “차기 정부와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분이 후임 총장으로 선임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작심한 듯 오 이사장의 동반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다. 서 총장은 2010년 9월 오 이사장이 취임한 뒤 줄곧 마찰을 빚어 왔다. 그는 “오 이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총장직 사퇴를 종용했다.”면서 “협박의 수단으로 (근거 없이) 대통령 이름을 댔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서 총장은 영어강의 전면 도입, 교수 영년직(테뉴어) 심사 강화, 성적에 따른 등록금 차별 징수제 등을 도입하며 KAIST 개혁을 추진해 왔다. 2010년에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총장 재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해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개혁 정책에 제동이 걸렸고, 올 초에는 모바일 하버와 관련된 특허 도용 사건에 연루되면서 학내외에서 사퇴 압박을 받아 왔다. 지난 7월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서 총장의 계약해지 안건이 상정될 예정이었지만 개최 직전 서 총장과 오 이사장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퇴진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서 총장의 퇴진 발표에도 불구하고 교수협의회와 학생회는 19일 국정감사와 25일 이사회를 앞두고 쫓겨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라며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경종민 교수협의회장은 “25일 이사회에서 서 총장을 해임하지 않는다면 비상총회를 여는 등 교수협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학생회도 서 총장의 즉각 해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총장실 점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육아 분담” 애 보는 아빠들

    “육아 분담” 애 보는 아빠들

    서울 서초동의 한 중견 정보통신업체에서 차장으로 일하고 있는 권모(38)씨는 올해 초 큰 ‘결단’을 내렸다. 남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지난 6월 1년 기한의 휴직에 들어갔다. 올해 초 부인이 둘째 아들을 출산했지만 몸이 아파서 아이를 돌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육아휴직 신청절차가 까다롭지 않고 회사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 유씨는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잘 놀아주지 못하던 아이들과 더욱 친숙해지는 계기가 됐다.”면서 “다른 사람도 남성 육아휴직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애 보는 아빠’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4년 새 4배나 늘었다. 성 역할의 변화와 아버지들의 육아 분담 추세 등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육아휴직 제도를 활용한 남성(공무원 제외)은 모두 1351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정도 늘었다. 2008년 355명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들어 9월까지의 전체 육아 휴직자 4만 8134명 가운데 남성 비중은 아직 2.8%에 불과하다. 하지만 2008년(1.2%)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증가율도 58.1%로, 같은 기간 여성 휴직자 증가율(25.4%)보다 훨씬 높다. 남성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주된 이유는 어린 자녀를 맡아줄 주변 사람이 없거나 배우자의 육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아이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목적도 상당하다. 현행 육아휴직 제도는 만 6세 이하의 초등학교 취학 전 자녀를 가진 근로자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다. 부부 관계인 남녀 근로자가 각각 사용할 경우 각 1년씩 총 2년을 쓸 수 있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됐으나 임금보전 등 지원책이 없어 유명무실하다가 2001년 11월 육아휴직 급여가 지급되면서 그해 남성 육아휴직자 2명이 나왔다. 이후 2008년 지금의 형태로 신청자격 등이 완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육아휴직 기간 중 근로자는 고용센터에서 월 통상임금의 40%(50만~100만원) 정도를 육아휴직 급여로 받을 수 있다. 육아휴직제를 시행하는 사업주에게는 휴직 기간에 맞춰 정부가 월 20만원의 육아휴직 장려금을 지급한다. 대체 인력을 30일 이상 고용하면 장려금과 별도로 월 30만원(대규모 기업 20만원)의 대체인력채용 장려금도 준다. 올해 9월까지 육아휴직 급여는 총 4만 8134명에게 2640억원이 지급됐다. 육아휴직 장려금은 255억원, 대체인력채용 장려금은 60억원 등이다. 신기창 고용부 고용평등정책관은 “스웨덴은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20%를 넘는다.”면서 “육아를 분담한다는 남성들의 의식 변화와 사업주들의 협조 및 지원이 뒤따라야(우리나라에서도) 남성 육아휴직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다른 길 걷는 中 대표작가 2인, 불편한 심경 토로

    다른 길 걷는 中 대표작가 2인, 불편한 심경 토로

    중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莫言)과 관련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중심으로 모옌의 노벨상 수상 비난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모옌 스스로 그런 논란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모옌은 14일 밤(현지시간) 관영 중국중앙(CC)TV 뉴스 채널의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에 진행자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당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금 매우 신나고 반드시 행복할 것으로 믿고 있다.”며 ‘행복하다’는 답변을 유도했지만 모옌은 오히려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행복이란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없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를 말하지만 나는 현재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근심 또한 많은데 어찌 행복을 논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공산당과 친한 어용 작가’라는 비난이 쇄도해 행복감보다는 심적 고통에 시달리는 상황을 표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그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에 대한 비난을 해명하는 데 할애했다. 한편 모옌에 대해 ‘국가가 필요로 할 때마다 손재주를 부리는 국가 시인’이라고 혹평한 중국의 반체제 망명작가 랴오이우(廖亦武)가 14일 중국을 맹비난했다. 랴오는 이날 세계 문화 소통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독일출판인협회가 수여하는 평화상을 받는 자리에서 “중국이란 나라는 깨부숴야 하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중국은 손에 피를 묻히는 비인간적인 제국”이라면서 “서구는 자유무역이란 미명 아래 학살자들과 공모하고 있다.”고 중국과 서방을 싸잡아 비난했다. 톈안먼(天安門) 사태 희생자를 애도하는 ‘대학살’이라는 시를 발표해 4년 동안 옥살이를 한 랴오는 지난해 7월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베트남까지 걸어서 탈출한 뒤 독일로 망명했다. 랴오는 이날 시상식에서도 톈안먼 희생자를 추도하는 노래를 불렀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수술 마취제·인공심장·안경… 인류 살린 1000년의 발견들

    수술 마취제·인공심장·안경… 인류 살린 1000년의 발견들

    과학기술은 지식이 켜켜이 쌓여 가는 학문이다. 먼저 연구를 시작한 과학자들이 남겨 놓은 유산은 후세들의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때로는 반박하고 뛰어넘어야 할 대상이 된다. 물론 그 와중에 얻어진 결과물들은 인류가 발전하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시대를 뛰어넘는 발명이나 발견이 등장한다. 이 같은 성과는 소위 ‘이정표’(Milestone)라고 불리며 과학기술은 물론 삶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생리·의학 분야에서 직접적으로 의학기술이 돼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친 이정표들을 시대순으로 선정, 소개했다. 첫 이정표는 13세기 중반에 시작하지만 현대로 올수록 급격히 이정표가 많아진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혜택이지만, 이 같은 이정표들이 없었다면 오늘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현미경·수술용 확대경의 원조 ‘돋보기’ 역사에 정확하게 기록된 생리의학사의 첫 이정표는 1250년에 세워졌다. 영국의 수도사였던 로저 베이컨은 ‘돋보기’(루페)를 발명했다. 이전에도 수정을 이용해 사물을 크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베이컨은 목적이 분명하게 무언가를 확대해 볼 수 있는 ‘볼록렌즈’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다. 현미경, 수술용 확대경 등의 원조다. 신학자이자 철학자, 의사이기도 했던 베이컨은 근대 자연과학의 탐구방법을 정립해 ‘경이의 박사’라고 불렸다. ●벤저민 프랭클린, 동생 위해 카테터 발명 다음 이정표는 무려 500년이 지난 1752년에 등장했다. 우선 밀라노 공작은 피렌체의 장인에게 ‘안경알 세 다스’를 주문하는 편지를 보낸다. 오목렌즈를 기반으로 한 안경의 발명과 기원에 대한 수많은 얘기 중 문서가 남아 있는 최초의 사례다. 같은 해 미국의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카테터’로 불리는 구부러지는 관을 만들어냈다. 요로결석으로 고생하는 동생 존을 위해 프랭클린은 금속 조각들을 연결해 요도를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카테터는 현재 인체 내의 모든 관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나무막대에서 영감 얻은 청진기의 탄생 1815년 12월 31일 프랑스 내과의사 르네 라에네크는 트럼펫 모양의 나무와 튜브가 달린 진찰기기를 만들어 아주 뚱뚱한 여성의 심장소리를 듣는 데 활용했다. 라에네크는 루브르궁에서 아이들이 긴 나무막대를 서로의 귀에 대고 떠드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이 기계를 만들었다. 의사의 필수품인 청진기의 탄생이었다. ●외과 수술의 고통을 줄여준 ‘에테르’ 인체에 칼을 대는 외과 수술의 고통을 덜기 위한 방법은 1841년 12월에 등장했다. 알코올, 아편, 마리화나, 최면 등 이전에 사용된 어떤 방법도 완벽하지 않았다. 미 조지아주의 의사인 크로퍼드 윌리엄슨 롱은 일종의 환각물질인 아산화질소를 즐기던 친구들의 자극을 더욱 높여줄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롱은 황산 에테르를 마신 사람들이 심하게 멍이 들어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롱은 환자의 목에서 낭포성 종양을 제거하면서 처음으로 현대식 수술용 마취제를 사용했다. ●엑스레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찍다 1874년에는 영국의 리처드 카톤이 검류계를 이용해 동물의 뇌파를 측정했다. 뇌전도(EEG)는 이후 사람에게 적용되면서 수면이나 정신질환을 근본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1895년에는 빌헬름 뢴트겐이 우연찮게 엑스레이를 발견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 발견은 보이지 않는 곳을 찍는 사진기술의 발명에 불과하다.”고 조롱했다. 엑스레이가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해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노벨상’ 에인트호번 심전도 측정기 개발 192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빌럼 에인트호번은 1903년 심장의 전기 흐름을 살피는 ‘심전도 측정기’를 개발했다. 첫 심전도 측정기는 300㎏에 이르는 거대한 기계로, 5명의 사람이 달라붙어야 조작이 가능했다. 1910년에는 스웨덴에서 복강경이 등장했고, 1935년에는 포르투갈에서 뇌엽절단 기술이 개발됐다. 복강경의 등장으로 더 좁게 절제하면서도 더 쉽게 수술을 할 수 있게 됐고, 뇌엽절단 기술은 ‘신의 영역’으로 분류되던 정신세계에 외과적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죽은 사람 살려낸 전기충격기에 ‘충격’ 이후 생리의학의 발전속도는 급속히 빨라진다. 1936년에는 심장박동기가, 그 다음 해에는 전기자극요법이 개발됐다. 1943년에 투석, 1944년에 일회용 도뇨관이 등장했고 1947년에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전기충격기(제세동기)가 환자의 생존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1950년에는 영국의 해럴드 리들리가 사람의 눈 속에 들어가는 콘택트렌즈를 만들어 ‘안과 혁명’을 이끌었다. ●인류 최초 ‘기계 심장’을 단 사나이 1952년 자동차회사 GM의 연구원이었던 41살의 헨리 오피텍은 인류 최초로 기계심장을 달았다. 오피텍은 1981년까지 살았다. 같은 해 자기공명영상(MRI)에 대한 원리도 발견됐다. MRI를 개발한 펠릭스 블로허와 에드워드 퍼셀은 이 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실제 MRI 기계는 1978년에 만들어졌다). 1953년에는 심장을 거치지 않고 혈액을 순환할 수 있는 바이패스 기술이 개발돼 멈춰 있는 심장을 수술할 수 있게 됐고, 프랑스에서는 인공 달팽이관이 청각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소리를 선물했다. ●하운스필드, CT 설계로 노벨상 받다 1958년에는 태아 초음파를 통해 임신 초기진단이 가능해졌다. 1963년에는 3살 아이를 대상으로 최초의 ‘간 이식’이 시행됐고 1967년에는 53세 남성이 최초의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18일을 더 살았다. 1971년 영국의 고드프리 하운스필드는 컴퓨터단층촬영기(CT)를 설계해 197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1973년에는 인슐린 펌프가 개발돼 당뇨환자들을 주사의 고통에서 해방시켰다. ●협업으로 만든 인공혈액·게놈 프로젝트 1980년대 후반부터는 보다 크고 획기적인 이정표들이 세워졌다. 더 이상 생리의학은 과학자 개인의 영역이 아닌, 집단협업으로 이뤄졌다. 인공혈액이 1989년에 만들어졌고, 1992년에는 DNA 정보읽기가 가능해졌다. 단순히 질병치료뿐 아니라 범죄자를 잡거나 친자확인을 할 때도 핵심적인 기술이다. 사람의 유전자 지도 전체를 그리는 휴먼게놈 프로젝트(2000년), 인공관절(2004), 인공간장(2006년) 등도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투입된 작업이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소지섭 “언제까지 ‘소간지’일수는 없잖아요?”

    소지섭 “언제까지 ‘소간지’일수는 없잖아요?”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찬 눈빛은 시린 가을의 느낌과 닮아 있다. 올해로 배우 데뷔 16년차. 이제는 뻔뻔해질 때도 됐건만 여전히 내성적인 성격의 배우는 연기가 마음대로 안 될 때 어디론가 숨고 싶다고 말했다. 새 영화 ‘회사원’으로 돌아온 소지섭(35) 이야기다. 그는 배우들 중에서도 유독 말수가 적기로 유명하다. 4년 전 ‘영화는 영화다’로 인터뷰를 했을 때 과묵한 그의 성격 때문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소지섭은 예전에 비해서는 말주변도 늘었고 훨씬 솔직해졌다. “어느 순간 제 성격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조금씩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연예인이 적성에 잘 맞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왜 잘 보여야 하는지도 몰랐죠. 지금도 속마음은 그대로예요. 낯가림도 있고 평소엔 말을 많이 하려고 애쓰지 않는 편이고요.” 패션 모델 출신으로 빼어난 옷 맵시로 ‘소간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소지섭. 그가 정장을 차려입고 멋진 액션을 하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을 해볼 만하다.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11일 개봉한 영화는 4일 만에 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면서 흥행에 청신호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금속 제조회사로 가장한 살인청부회사에 다니는 지형도 역을 맡았다. “영화 설정이 독특하고 재밌어서 출연을 하게 됐어요. 회사원이라는 제목이 주는 어감이 왠지 모르게 무겁고 슬펐어요. 회사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영화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어둠에서 활동하는 멋있는 집단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점이 매력적이더라고요.” 영화 속 형도는 냉정함과 차분함으로 회사 내에서 인정받는 사원이다. 하지만 10년 동안 회사를 집이자 학교로 여기고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닮은 아르바이트생 훈(김동준)을 만나 회사의 뜻을 거스른 뒤 회의를 느껴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니지만 그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연예인으로 살아온 그가 회사원의 비애를 공감할 수 있었을까. “어렸을 때 수영 선수로서 12년 동안 단체생활을 하면서 조직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더 큰 의미의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일반 직장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하고 무언의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엄청나게 많고요.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달려 나오는 순간부터 신경 쓰이는 게 많아졌죠.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스캔들이나 가십 기사가 나면 안 된다고 배워서 덜 자유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속 소지섭은 ‘살인이 곧 실적’인 회사에서 살인도 지극히 사무적으로 처리한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무표정하게 절도 있고 고난도의 액션 연기를 펼치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남자 배우 원톱 주연에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는 점 때문에 원빈의 ‘아저씨’와 종종 비교되기도 하지만, 소지섭은 절대 멋있어 보이려고 애쓴 작품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실 옷도 화려하지 않은 단벌이고, 자세히 보면 멋스러운 양복이 아니라 약간 펑퍼짐하고 헐렁한 느낌으로 지친 회사원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액션은 감정이 별로 없고 간결하고 묵직하게 그리고자 했죠. 영화를 보신 분들은 분명 ‘아저씨’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소지섭이라는 배우를 떠올릴 때 고독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그에게 매번 비슷한 연기를 한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잘된 작품이 없어서 기억을 못하실 뿐이지 데뷔 이후 아침 드라마 빼고 시트콤은 물론 전 장르의 드라마에서 별의별 역할을 다 해 봤어요. 많은 분들이 연기 변신을 안 하느냐고 물으시는데, 저는 캐릭터에 확 빠지기보다는 역할을 제 스타일화해서 연기하는 편이거든요. 작품 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면서 나중엔 처음과 다른 표정이 나오도록 애씁니다.” 특히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한때 자신이 좋아했던 가수였지만 작은 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는 훈이 엄마 유미연(이미연)과 아련하고 설레는 멜로 연기를 선보였다. “형도가 미연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일 수도 있지만 팬심, 연민, 안타까움 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인 것 같아요. 함께 연기한 이미연 선배님은 정말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느껴졌어요. 기존에 해 왔던 것들을 포기하고 이번 영화를 선택하기 힘들었을 텐데 내려놓으려고 애를 많이 쓰셨죠. 후배들에게도 많이 주려고 한 점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소지섭이 데뷔 초부터 승승장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배우 생활이 처음부터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모델로 데뷔해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으로 ‘소간지’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9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듬해 군 입대를 하면서 배우 생활에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요즘은 2~3년 안에 승부가 나는데, 배우가 9년이나 걸려서 빛을 봤으니 오래 걸린 편이죠. 그 사이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지기도 하고, 일이 없어 수입도 적다 보니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잘 버틴 편이죠. ‘소간지’라는 별명이 붙고 나서 한편으로는 고민이 되기도 해요. 비주얼만 보이는 것은 아닌지, 연기도 나쁜 것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하고요. 연기 못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듣기 싫거든요” 가장이었던 관계로 돈 때문에 시작한 배우 생활이지만 지금은 연기의 묘한 매력에 빠져 있다는 소지섭. 그는 “요즘엔 배우라는 직업이 연기 하나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범적이어야 하고 비즈니스도 잘해야 합니다. 솔직히 연기자는 범죄 빼고 뭐든지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약이 많은 편”이라는 고민도 털어놨다. 영화 속 형도는 자신이 번 전 재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만큼 순정적이고 헌신적이다. “저 역시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돈이든 마음이든 올인하는 스타일입니다. 저는 남녀 관계에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밀고 당기기를 하는 편도 아니죠. 이상형은 저의 직업을 이해해 주는 사람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름답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희생과 배려인 것 같아요.” 당분간 박스오피스에서 이병헌·장동건 등 대선배들과 경쟁을 펼쳐야 하는 그는 자신도 그 결과가 궁금하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항상 목표를 손익분기점으로 삼고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소지섭은 의외로 빨리 40대가 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세월이 주는 느낌은 절대로 연기로 커버가 안 되는 것 같아요. 특히 큰 스크린에서는 배우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아우라가 풍겨야 되거든요. 영화 데뷔작 ‘도둑맞곤 못 살아’ 이후 한동안 영화를 하지 않았던 것도 너무 빈틈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었어요. 언제까지나 ‘간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외적인 것들이 다 버려진 뒤의 제 모습이 궁금해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Weekend inside] 印·印尼·日 등 정치지형 바뀐다

    [Weekend inside] 印·印尼·日 등 정치지형 바뀐다

    ‘아웃사이더들의 반란’으로 아시아 정치판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아시아에서 ‘주류’가 아닌 ‘아웃사이더’들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판 자체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오는 12월 한국 대선의 무소속 안철수 후보뿐 아니라 일본,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인도, 말레이시아 등에서 비정치인 출신들이 각국 정치 지형을 뒤바꾸며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0일 인도네시아에서는 가구 수출업자였던 조코 위도도(51·이하 조코위) 자바주 솔로시장이 자카르타특별주 주지사 결선투표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는 2014년 대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 간 대리전 성격으로 치러졌다. 그런 만큼 그는 이제 기존 정치 거물들에게 위압적인 존재가 됐다. 파키스탄의 크리켓 영웅인 임란 칸(60·이하 칸) 파키스탄정의운동당 총재는 내년 6월 파키스탄 총선에서 차기 총리직을 정조준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연이은 극우 발언으로 주변국들과의 긴장을 초래하고 있는 ‘망언 제조기’ 하시모토 도루(43) 오사카 시장도 변호사 시절 텔레비전 토크쇼를 통해 넓힌 인지도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비정치인들이 기존 체제를 개혁하는 구심점으로 활약하고 있다. ‘제2의 간디’로 불리는 인도의 사회 운동가 안나 하자레(75)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패 관료 처벌 등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여 정치권을 위협했다. 2014년 총선을 겨냥한 정당을 출범하려 했던 그는 지난달 초 “국민들이 올바른 정치인을 뽑도록 힘쓰겠다.”며 창당 계획을 포기했다. 국민전선(BN)이 55년간 장기 집권해 온 말레이시아 정부는 야당의 견제보다 여성 변호사 암비가 스리네바산(56)이 주도하는 선거법 개혁 운동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기존 정치 쇄신 실패, 소셜미디어 세대 등이 동력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등의 해외 언론과 아시아 정치 전문가들은 ‘아웃사이더’들이 아시아 정치권의 최전선에 등장할 수 있었던 공통적인 배경으로 ▲폐쇄적인 기존 정치권의 쇄신 노력 실패 ▲부정부패에 대한 민심 폭발 ▲소셜미디어 세대의 반란 등을 꼽았다. 왕실에 가까운 폐쇄적인 정치권의 예로는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이 거론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가장 최근에 치러진 2009년 대선에서 1965년 축출당한 독재자 수하르토의 딸과 사위, 그의 재임 시절 장군 2명이 후보로 나섰다. ‘그때 그 장군’ 가운데 한 명이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현 대통령이다. 파키스탄에서는 집권당과 제2 정당이 모두 족벌 체제다. 비정치인 출신 ‘정치 스타’들은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로 민심을 사로잡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조코위 주지사 당선자는 공직자들의 뇌물 수수 행태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파키스탄의 칸 총재는 “국회에 입성하면 취임 90일 안에 모든 부정부패를 단죄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학력이 높고 도시에 주로 거주하며 수백명의 페이스북 친구를 거느린 소셜미디어 세대의 등장은 ‘아웃사이더’들에게 강력한 정치 참여 동력이 되고 있다. 트위터리안 등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이 거대 정당 체제 없이도 인터넷·모바일 기술을 통해 전 세계에 자신들의 개혁 아이디어를 퍼다 나르고 지지 세력을 결집해 주기 때문이다. ●신흥 정치 스타, 그들은? 이런 배경을 등에 업고 떠오른 신흥 정치인들은 기존 정치에 대한 냉소로 세대를 뛰어넘어 폭넓게 환영받고 있다. 1971~1992년 파키스탄 크리켓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칸은 주장으로 뛰었던 1992년 마지막 경기에서 고국에 처음으로 크리켓 월드컵 우승을 안기며 단숨에 ‘국민 영웅’이 됐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영화배우, 스포츠 스타 등이 인기를 표로 연결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칸은 이들과 달리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려는 비정치인 출신 정치인으로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최근 ‘미국 드론(무인정찰기) 반대 시위’ 등 각종 정치 집회를 주도하며 내년 총선에서의 의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여름에만 20만명의 지지자를 집결시키는 위력을 과시했다고 CNN은 전했다. 2000년대 초 시장 선거에 나섰을 때만 해도 조코위는 ‘정치에 대해 뭘 알겠냐’는 회의적인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가구 수출업자로 출장을 다녔던 유럽의 도시개발 사례를 솔로시에 적용해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시킨 그는 취임 1년 만에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원칙을 지키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유명하지만 늘 똑같은 체크 무늬 셔츠를 구겨진 채로 입고 다니는 소탈한 모습으로 ‘때묻지 않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각인시켰다. 이제 그는 인도네시아 국내총생산(GDP)의 6분의1을 차지하는 자카르타특별주를 책임지게 됐다. 솔로시의 부패를 청산한 것처럼 자카르타주를 부패의 수렁에서 건져낸다면 2014년 부통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다.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행동당(거린드라당) 총재의 신임을 받고 있다. 하시모토 시장은 일본의 대표 산업도시 오사카를 기반으로 성장한 지역 정치인으로, 리더십 부재로 침체됐던 일본 정계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중앙 무대까지 치고 올라왔다. 지난달 12일에는 일본유신회를 창당해 ‘새로운 정치’를 내걸며 기존 정치권의 구태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비주류들의 고민 특유의 카리스마로 ‘젊은 고이즈미’ ‘제2의 오자와’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그러나 폭넓은 지지 확보에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다음 달 초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차기 총선 여론조사에서 일본유신회의 지지율은 뚝 떨어졌다. 현실성 없는 정책과 내부 주도권 갈등, 망언을 일삼는 하시모토 시장의 가벼운 입(?) 등이 원인이다. 특히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잔혹한 역사를 부정, 왜곡하는 그의 극우 포퓰리즘은 나라 안팎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일본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독도를 둘러싸고 각각 중국, 한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매우 위험하고 근시안적인 태도라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칸과 조코위도 ‘주류’로 나아갈수록 자신들이 경멸했던 기존 정치권 세력과 타협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맞닥뜨리고 있다.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은 모두 지역 표심이 선거 승리의 관건이다. 지역 장악력이 높고 조직을 갖고 있는 구(舊)정치인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미 기존 거대 정당 조직원들을 지지자로 규합한 칸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군부, 정보국 등 권력 남용을 일삼은 ‘기득권’ 세력과 이슬람 무장단체의 잔혹 행위에 눈감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조코위는 인도네시아의 주류 정당 2곳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시모토 시장이 이끄는 일본유신회도 민주당 등 기존 정당에서 탈당한 정치인들로 꾸려졌다. 기존의 ‘정치 괴물’들과 싸우기 위해 원래 자신을 지지했던 이상주의자들을 저버리고 스스로 ‘괴물’이 된 형국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일본통신] 2012 日프로야구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일본통신] 2012 日프로야구 개인 타이틀 수상자는?

    2012 일본 프로야구가 팀 당 144경기를 모두 끝마쳤다. 일본은 9일 센트럴리그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 한신 타이거즈, 퍼시픽리그의 니혼햄 파이터스와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정규시즌을 종료했다. 특히 이날 요코하마와 한신의 경기에서는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는 ‘전설’ 가네모토 토모아키(44. 한신)가 경기 후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으며 21년간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 하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했다. 올해 일본야구 우승 팀은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3년만에, 그리고 퍼시픽리그에선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스가 역시 3년만에 우승하며 그 어느때보다 재미 없는 시즌을 연출했다. 이제 일본은 13일부터 센트럴리그 2위 팀인 주니치 드래곤스와 3위 팀 야쿠르트 스왈로즈, 퍼시픽리그 2위팀인 세이부 라이온스와 3위 팀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3연전을 시작으로 포스트 시즌에 돌입한다. 퍼스트 스테이지 3경기는 모두 2위 팀 홈 구장에서 열린다. 이와 함께 개인 타이틀 수상자도 모두 가려졌다. ▲ 센트럴리그 타율왕- 아베 신노스케(요미우리) 타율 .340(467타수 159안타) 아베가 프로 데뷔 후 첫 타율 1위를 차지했다. 아베의 타율 .340은 양 리그 통틀어 최고 타율이며 3할대 타자가 별로 없는 가운데 2위 사카모토 하야토(타율 .311)를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리며 안전하게 타율왕에 올랐다. 올해 요미우리가 3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 할수 있었던 건 공수 모두에서 팀을 이끌어 간 아베의 역할이 컸다. 기존의 거포들이 모두 사라진 팀에서 아베의 활약은 토종 타자의 자존심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홈런왕- 블라디미르 발렌티엔(야쿠르트) 31홈런 발렌티엔이 2년연속 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올해 발렌티엔은 지난해 똑같은 31개의 홈런을 기록 했는데, 5월 초 홈런 부문에서 단독으로 치고 나간 후 한번도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홈런왕 타이틀을 수성했다. 발렌티엔은 외국인 타자의 수명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일본에서 근래 보기 드문 슬러거로 올해 야쿠르트가 3위를 차지 하는데 있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였다. 타점왕- 아베 신노스케(요미우리) 104타점 올해 아베는 양 리그 통틀어 유일하게 세자리수 타점을 올렸다. 아베가 세자리수 타점을 기록 할수 있었던 건 요미우리의 팀 타선이 워낙 탄탄했기에 가능 한 일이었다. 또한 득점권 타율 .358이 말해 주듯 찬스에서 보여준 클러치 능력 역시 매우 뛰어 났다. 통상적으로 리그 MVP는 우승 팀에서 나왔던 전례를 감안하면 올해 센트럴리그 MVP는 아베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최다 안타- 사카모토 하야토, 쵸노 히사요시(이상 요미우리) 173안타 올 시즌 요미우리 리드오프를 맡았던 쵸노(타율 .301)와 유격수 3번타자인 사카모토(타율 .311)가 173안타로 최다 안타 공동 1위에 올랐다. 극심한 투고타저 바람 속에서도 아베의 104타점이 왜 가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증표다. 요미우리는 당분간 리그 최강의 팀으로 군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세대교체를 이뤘고 십년 간 팀을 이끌어 갈 젊은 타자들인 사카모토와 쵸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올해 요미우리는 리그에서 6명 밖에 없는 3할 타자 가운데 무려 3명이나 3할 타율을 기록했다. 도루왕- 오시마 요헤이(주니치) 32도루 타율 3위(.310)를 기록하고도 겨우 13타점에 머문 오시마가 32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했다. 주니치의 외야수이기도 한 오시마는 팀의 리드오프로서 답답한 팀 타선을 홀로 뚫고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주니치는 기존의 아라키 마사히로나 이바타 히로카즈로 대변되는 테이블 세터 대신 젊은(1985년생) 오시마의 출현으로 당분한 리드오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다승왕- 우츠미 테츠야(요미우리) 15승 요미우리의 좌완 에이스 우츠미가 리그 다승왕을 차지했다. 지난해 18승으로 요시미 카즈키(주니치)와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던 우츠미는 2년연속 다승왕과 더불어 평균자책점에서도 2년연속 1점대(2011-1.70, 2012-1.98)를 기록하며 팀 동료 스기우치와 함께 명실상부 한 일본 최고의 좌완투수 임을 재확인 시켰다. 평균자책점- 마에다 켄타(히로시마) 1.53 2010년 사와무라 에이지상에 빛나는 히로시마 에이스 마에다가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다. 올해 마에다는 29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리그에서는 유일하게 200이닝(206.1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철완을 과시하기도 했다. 206.1이닝을 던지는 동안 마에다의 자책점은 35점. 아울러 마에다는 14승을 기록하며 다승 부문 2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후반기 한때 소속 팀 히로시마가 그나마 3위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마에다의 호투 때문이었는데 다르빗슈가 떠난 일본 최고의 투수는 바로 자신 이라는 걸 증명 해준 시즌이기도 했다. 올 시즌 강력한 사와무라상 수상 후보다. 탈삼진- 스기우치 토시야(요미우리), 노미 아츠시(한신) 172개 소프트뱅크 시절 3년연속 200탈삼진을 기록한 바 있는 ‘탈삼진 제조기’ 스기우치가 센트럴리그로 옮긴 첫해 그 명성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올해 스기우치는 163이닝을 소화했다. 이 부문 공동 1위에 오른 ‘미남 투수’ 노미는 추락한 한신의 올 시즌 성적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몫은 충분히 해냈다. 노미는 182이닝을 던졌다. 세이브- 토니 바넷(야쿠르트), 이와세 히토키(주니치) 33세이브 임창용이 시즌 도중 전력에서 이탈 한 가운데 그를 대신해 마무리를 맡았던 바넷이 일본 진출 후 첫 세이브 1위를 차지했다. 올해 바넷은 57경기에 출전해 54.1이닝(평균자책점 1.82)을 던지며 임창용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다. 주니치의 베테랑 투수 이와세는 시즌 내내 세이브 1위를 달리다 막판 바넷과 공동으로 1위에 올랐는데 올 시즌 54경기에 출전, 51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2.29의 성적을 남겼다. 이와세는 지난해 후지카와 큐지(한신)에게 빼앗긴 세이브 타이틀을 2년만에 되찾았다. ▲ 퍼시픽리그 타율왕- 카쿠나카 카츠야(지바 롯데) 타율 .312(477타수 149안타) 지바 롯데의 유망주가 드디어 껍질을 벗었다. 올해 퍼시픽리그 타율1위는 당연히 나카지마 히로유키(세이부, 2위)의 몫이었다. 9월 초반까지만 해도 2위 그룹을 넉넉하게 따돌리며 무난한 타율왕이 예상됐지만 시즌 막판 갑작스런 타격 부진으로 1위 자리를 내줬다. 카쿠나카는 고교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독립리그인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에서의 빼어난 활약으로 스카웃터의 눈에 들어 지바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다. 홈런왕- 나카무라 타케야(세이부) 27홈런 나카무라 입장에선 참으로 민망스러운 홈런 숫자다. 하지만 한때 크고 작은 부상으로 신음하는 와중에서도 기필코 홈런왕 타이틀을 손에 쥔 건 타고난 홈런 DNA 덕분이었다. 그리고 지난해에 이어 2년연속 리그 홈런왕이다. 올해 나카무라는 어깨부상으로 시즌 초반 결장 해 123경기 밖에 뛰지 못했지만 6월부터 열린 양 리그 교류전부터 홈런 본능이 되살아 나며 이대호를 따라 잡으며 결국 홈런왕을 손에 넣었다. 최근 퍼시픽리그 5년동안 4회의 홈런왕을 차지한 나카무라는 누가 뭐라 해도 일본 제1의 슬러거다. 타점왕- 이대호(오릭스) 91타점 빈약한 팀 타선과 성적, 투수들의 집중 견재를 뚫고 이대호가 타점왕에 등극 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도 일본 진출 첫해라는 점까지 첨가하면 기대 이상의 활약이었다. 이대호는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을 딛고 이후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한국 프로야구에서 일본으로 건너 간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첫 타이틀 홀더가 됐다. 비록 자신을 원했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시즌 도중 경질 되는 아픔을 맛봐야 했지만 그동안 일본에 진출했던 한국 타자들이 한결 같이 첫해에 부진했던 걸 감안하면 이젠 내년 시즌이 더 기대가 될 정도다. 최다 안타- 우치카와 세이치(소프트뱅크) 157안타 ‘턱돌이’ 우치카와가 최다 안타 타이틀을 가져왔다. 현 일본 토종 우타자 가운데 가장 정교한 타자로 손꼽히는 우치카와는 지난해 요코하마에서 소프트뱅크로 이적 한 첫해에 타율왕(.338)을 차지 하더니 올해는 최다안타 타이틀까지 손에 넣었다. 시즌 중반까지 2할대 중후반에 머물렀던 우치카와는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타율도 정확히 3할에 맞췄다. 내년 3월에 열리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팀에 뽑힐 가능성이 크다. 도루왕- 히지리사와 료(라쿠텐) 라쿠텐의 ‘젊은 대도’ 히지리사와가 54도루를 기록하며 개인 첫 도루왕에 올랐다. 시즌 전 퍼시픽리그 도루왕은 4년연속(2007-2010) 도루왕을 차지한 바 있는 카타오카 야스유키(세이부), 그리고 2년연속(2010,2011) 도루왕을 차지했던 혼다 유이치(소프트뱅크), 그리고 지난해 52도루로 이 부문 2위를 차지했던 히지리사와의 3파전이 예상 됐었다. 하지만 히지리사와는 카타오카의 부상과 혼다의 타격 부진을 틈 타면서 올 시즌 비교적 높은(?) 타율 .270(16위)과 출루율(.338)로 확률 높은 도루 성공률을 자랑하며 도루왕을 차지했다. 다승왕- 셋츠 타다시(소프트뱅크) 17승 2010년 일본 최고의 중간투수에서 지난해 선발로 전환해 성공을 거뒀던 셋츠가 프로 데뷔 후 첫 다승왕에 올랐다. 올 시즌 셋츠는 27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17승 5패(평균자책점 1.91) 193.1이닝을 소화했다. 셋츠는 지난해까지 팀의 ‘선발 3인방’이었던 와다 츠요시(볼티모어), 스기우치 토시야(요미우리), 데니스 홀튼(요미우리)이 팀을 옮긴 가운데 유망주 오토나리 켄지와 함께 팀 마운드를 이끌었다. 셋츠는 영화배우 못지 않은 빼어난 외모로 젊은 여성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투수다. 평균자책점- 요시카와 미츠오(니혼햄) 1.71 다르빗슈가 떠난 니혼햄 마운드의 고민은 요시카와로 인해 말끔히 털어 낸 기가 막힌 한해였다. 요시카와는 전도유망한 투수였지만 껍질을 깨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프로 데뷔 6년차가 되는 올 시즌 150km를 넘나드는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과 예리한 슬라이더는 제구력과 더불어 좌우 핀포인트를 공략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구종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좌완 특유의 속구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요시카와는 평균자책점 뿐만 아니라 14승(2위)을 올렸는데 올 시즌 팀이 우승 하는데 있어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요시카와 역시 퍼시픽리그 MVP 후보다. 탈삼진- 타나카 마사히로(라쿠텐) 169개 올해 타나카는 부상으로 22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 보통 1선발 투수의 한 시즌 경기 출전수가 26-28경기 라고 볼때 한달 이상은 늦게 시즌을 뛴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나카는 탈삼진왕을 차지하며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다. 양 리그 통틀어 가장 많은 완투(8경기)경기를 펼쳤음에도 10승 4패(평균자책점 1.87)에 그쳤지만 10이닝 경기를 두 경기 연속 펼치는 등 여전한 이닝이터로서의 면모는 현 일본 최고 투수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활약이었다. 지난해 사와무라 에이지상의 주인공이도 한 타나카는 라쿠텐의 변비 타선을 또다시 원망해야 했던 시즌이었다. 세이브- 타케다 히사시(니혼햄) 32세이브 타케다는 리그 최고의 소방수다. 2009년 첫 세이브왕에 올랐던 타케다는 2010년 초반 김태균에게 끝내기 안타 등을 맞으며 시즌 전체를 망가뜨렸지만 지난해 다시 부활하며 구원왕에 올랐고 올 시즌 역시 32세이브로 이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다. 2년연속 수상이다. 하지만 올해 타케다의 출발은 좋지 못했다. 한때 구위가 떨어져 2군에도 내려 간 적이 있었을 정도로 올 시즌 야구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후반기 막판 들어 연이은 세이브 챙기기로 지바 롯데의 야부타 야스히코(26세이브)와 선발에서 마무리로 보직을 바꾼 와쿠이 히데아키(세이부, 30세이브)를 따돌리고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 사진= 요시카와 미츠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꺼져가는 용산의 꿈(하)] 서울 성급한 개발 몸살… 英·佛·日사례와 딴판

    [꺼져가는 용산의 꿈(하)] 서울 성급한 개발 몸살… 英·佛·日사례와 딴판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의 사업 추진 경과를 살펴보면 말 그대로 숨 쉴 틈이 없다. 2006년 8월 23일 국토해양부(당시 건설교통부)가 용산역세권 개발을 확정한 뒤 2007년 11~12월 사업후보자 선정과 사업을 담당한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 설립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리고 불과 1년 4개월 후인 2009년 4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의 마스터플랜이 발표됐다. 317만㎡의 땅에 31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투자되는 사업의 마스터 플랜이 불과 16개월 만에 완성된 것이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선진국의 경우 도시 전체에 대한 계획을 바탕으로 지구를 개발하고 최소한 20~30년 동안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가며 사업을 진행한다.”면서 “용산을 서울의 대표 업무중심지로 만들겠다고 말하면서도 이런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는 시작부터 완공까지 50년 가까이 걸렸다. 1958년 프랑스 정부는 라데팡스개발공사를 설립하고 개발 계획만 6년에 걸쳐 수립했다. 사업은 1964년에 본격 시작돼 2007년에야 끝이 났다. 개발 면적은 742만㎡로 비즈니스, 공원, 주거 등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지하철과 도로 등 모든 교통시설은 지하에 배치됐고 지상은 거대한 광장과 빌딩으로 구성됐다. 영국 런던의 신흥 금융중심지인 카나리 워프 개발 프로젝트는 1987년 시작돼 2006년에야 마무리됐다. 개발에 20년이나 걸린 것이다. 개발에 대한 기획까지 합치면 30년이 걸렸다. 규모는 용산의 4분의1 수준인 82만㎡이고 사업 비용도 30억 파운드(약 6조원)다. 미국의 남부 맨해튼 배터리 파크(33만㎡)의 개발도 1979년 시작해 2004년에야 끝이 났다. 일본 경제 불황기에 건설된 도쿄의 롯폰기힐스는 ‘고민은 길게 공사는 빠르게’ 진행된 케이스다. 1986년 시작된 롯폰기 재개발은 개발 이전 12년에 걸쳐 재개발준비위원회와 조합구성이 이뤄진 뒤 3년에 걸쳐 마스터 플랜과 구체안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개발 사업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공사 기간이 길어서가 아니다. 개발 계획 수립과 검토 단계에서 도시 전반의 주거·공공·업무 등 시설별 수요·공급에 대한 분석과 예측이 철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도시 개발 전반을 주관하는 독립적인 공공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마다 개발 공약을 하나씩 들고 나오다 보니 도시 전체에 대한 고민 없이 중구난방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공공조직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박주영, 모래바람 잠재울까

    누구의 발끝이 이란 원정 무승의 사슬을 끊을까.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의 최대 분수령이 될 4차전 이란 원정을 떠난 축구대표팀이 9일 새벽(한국시간) 결전의 땅 테헤란에 도착했다. 내년 6월까지 이어지는 최종예선의 반환점이 된다. 2승1무로 조 1위에 올라 있는 한국의 17일 이란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란 자체가 만만치 않다. 한국 대표팀은 원정에서 한 차례도 승전보를 전한 적이 없다. 역대 전적은 9승7무9패로 팽팽하기만 하다. 그러나 원정 전적은 2무2패로 한국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974년 아시안게임 이후 승리를 알리지 못했다. 이란은 1977년 아르헨티나월드컵과 2009년 남아공월드컵 예선 등 두 차례나 자신들의 안방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아 본선행에 훼방을 놓았다. 누가 이란 원정에서 과거의 징크스를 깨뜨릴 주인공이 될지 궁금해진다. 대표팀 선수 가운데 득점을 경험하는 등 이란에 특별히 강했던 멤버는 한 명도 없다. 최강희 감독의 고민 가운데 하나다. 박주영(27·셀타비고)의 역할이 그래서 더욱 중요해졌다. 이란은 아니지만 유독 중동세에 강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서의 아픔을 하나하나 털어내고 있는 중이다. 지난달 23일 헤타페전에서 프리메라리가 데뷔골도 기록했고, 컨디션도 좋은 것으로 전해진다. 종전 후반 조커로 활용됐지만 이제는 그를 공격의 중심에 내세우는 분위기다. 따라서 박주영이 이란전 원톱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물론, 최 감독 자신의 성향이나 이란의 전력을 감안한 전략이다. 그러나 투톱을 세울 경우에도 한 자리는 박주영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다. 최근 박주영은 소속팀에서 이아고 아스파스와 투톱을 이루며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 분데스리가 득점 2위를 달리는 손흥민(20·함부르크SV)을 원톱으로 내세우고 박주영을 처진 스트라이커로 붙이는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다. 최 감독은 현재 손흥민의 상승세와 발끝을 주시하는 눈치다. ‘닥공’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득점력이 좋은 둘을 전면에 내세워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김신욱(24·울산)과 박주영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제3의 카드도 있다. 196㎝의 김신욱을 원톱 ‘포스트맨’으로 세우고 박주영으로 하여금 상대 문전을 헤집는다는 전략. 김신욱은 이미 K리그뿐 아니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위협적인 공격카드로 인정받았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10월은 ‘상승의 달’… 작년 같은 폭등 가능성은 낮아

    추석 이후 본격적인 이사철로 접어들면서 세입자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윤달(4월 21일~5월 20일)을 피해 결혼을 늦춘 신혼부부 수요에 더해 재건축 이주 수요까지 몰리고 있어서다. 국민은행의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62.1%로 2003년 10월 이후 가장 높았다. 이미 전셋값이 오를 만큼 올라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셋값 상승은 계속될 전망이다. 부동산포털 닥터아파트는 최근 10년간 추석 이후 한달간 서울지역의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 추이를 조사한 결과 2002년과 2004년, 2008년을 제외하고 모두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대란으로 불린 2010년과 2011년에는 1.03%와 1.25%가 오르기도 했다. 부동산 관계자는 “재계약률이 높아지면서 물건 자체가 없다.”면서 “8~9월에 잠잠했던 전셋값이 10월부터 오름세를 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난해와 같은 전셋값 폭등 가능성은 낮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가을 이사철 전세 수요의 상당 부분이 9월 이전에 소화된 데다 전세 상승률은 0.5% 미만이었다.”면서 “급등세는 한풀 꺾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셋값 상승에 따라 월세도 덩달아 뛰고 있다. 지난달 전국 월세가격은 전월보다 0.2% 포인트 올랐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0.2% 포인트 올랐고 지방 광역시가 0.1% 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서울(0.2%)과 경기(0.4%), 인천(0.3%)의 월세 가격 상승이 도드라졌다. 주택유형별로는 아파트가 0.4%포인트 상승해 월세 가격 인상을 주도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30년 기타 치다 직업병…‘기타바’ 개발, 평창스페셜올림픽 주제곡 첫선 보일 것”

    “30년 기타 치다 직업병…‘기타바’ 개발, 평창스페셜올림픽 주제곡 첫선 보일 것”

    열한 살 때 형과 누나가 기타를 튕기는 모습을 보면서 클래식 기타에 빠졌다. 중학교 2학년 때 기타리스트 제프 백의 연주 앨범을 듣고 결심했다.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 시간이 흘러 조동익과 함께한 포크 듀오 ‘어떤 날’을 결성했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래도 어떤 날의 1·2집과 그의 솔로 1~3집은 명반으로 남았다. 하지만 기타에 정신이 팔려 국내활동을 접고 어느 날 오스트리아로 훌쩍 떠났다. 빈국립음대에서 6년, 이후로도 미국 피바디음악원에서 4년을 더 머물렀다. 2000년 귀국 뒤에는 기타리스트 활동보다 영화음악 감독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왔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를 비롯해 22편의 영화에 그만의 감성과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병우(47)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가 주인공이다. 연례행사처럼 가을마다 단독공연을 하던 그가 올해에도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팬들과 만난다. 지난해 가을 손부상이 잇따르면서 공연을 취소하기도 했던 게 생각났다. 건강부터 물었다. “안 하던 연주 테크닉을 연습하다 보면 팔 근육이 못 견디고 무리가 온다. 최근에도 이상 조짐이 있어 좀 놀랬다. 다행히 신경에 이상 있는 건 아니고 근육통이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나아졌다.” 30년 이상 목과 어깨는 구부리고 팔은 꺾은 채 기타를 품고 살았으니 직업병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개발한 게 울림통이 없는 ‘기타바’다. 그는 “고교시절 다리가 부러졌는데 의사가 제대로 관리를 해주지 않아 지금도 다리가 불편하다. 기타바를 만든 이유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교본에 나오는 자세대로 연습하다 보면 목과 어깨를 다치거나 실력은 늘지 않은 채 건강을 지키거나 둘 중 하나다. 직업으로 하든 취미로 하든 부상 없이 기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또 어디든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악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년 동안 새 영화음악 작업도 뜸했다. 지난해 공연과 올해 공연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그는 “2000년 귀국했을 땐 기타 공연으로만 살아가고 싶었는데 갑자기 영화음악 제안이 몰리면서 연주와 멀어졌다. 요즘 들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영화제작자협회 등의 영화음악 사용을 둘러싼 갈등 탓에) 영화음악을 할 기회가 줄었다. 다시 기타를 마음껏 칠 수 있게 됐으니 또 하나의 기회인 것도 같다. 50살이 되면 손과 팔 근육도 예전 같지 못할 것이다. 기타 솔로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1월에 열릴 평창 스페셜올림픽(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이자 사회사업가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의 제안으로 1968년부터 열린 지적발달 장애인 대회. 올림픽, 장애인올림픽과 더불어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인정하는 3대 올림픽이다) 개·폐막식 예술감독을 맡았는데 그 주제곡을 처음 선보일 것”이라면서 “한국어 버전은 가수 이적에게 맡길 건데 마침 그가 이번 공연 게스트”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 1월에 발표할 솔로 앨범 수록곡을 들려 드릴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가 솔로 앨범을 발표한 건 2003년 ‘흡수’가 마지막. 그동안 음반시장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바뀌었다. 디지털 싱글이 시장을 지배하는 게 현실. 이병우 같은 거장도 새 앨범의 색깔과 형식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2003년 앨범을 지금 들어보면 너무 어렵게 꼬아놨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음악을 대했던 것 같다. 더 편하고 기타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앨범을 구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가수의 목소리를 곁들이는) 피처링은 하고 싶지 않다. 기타의 매력만도 한 움큼인데 시장에서 덜 팔릴지언정 굳이 노래를 넣을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25년째 ‘면세한도 400弗’의 딜레마

    25년째 ‘면세한도 400弗’의 딜레마

    이번 추석·개천절 황금연휴에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간 사람이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20년 이상 400달러(약 44만원)에 묶여 있는 여행자 면세품 반입 한도를 놓고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연휴기간 동안 세관이 고가품 쇼핑객이 많이 이용하는 유럽노선 등에 대해 면세품 반입한도 초과 여부를 전수 조사하면서 이용객들의 불만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해외 여행객 면세한도는 1988년 1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랐다. 1달러에 750원선이던 당시 환율로 따지면 400달러쯤 되는 액수였다. 정부는 1996년 면세 한도액의 단위를 원화에서 달러화로 바꾸면서 금액을 기존과 비슷한 400달러로 책정했다. 이같은 규정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1988년부터 계산하면 25년째 400달러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여행객들은 불만이 많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88년 4548달러에서 지난해 2만 2489달러로 5배가 됐고 소비자물가지수는 같은 기간 38.8에서 104로 3.7배가 됐는데 금액을 24년 전 수준으로 묶어 놓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도 내심 고민이다. 현실적으로는 한도를 올릴 필요성을 느끼지만 국내시장에 대한 악영향 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2일 관세청에 따르면 면세품 구매 한도를 초과해 물건을 사오다 적발되는 사람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올 1~8월 면세액 이상 물품을 신고 없이 들여오다 적발돼 30%의 가산세를 부과받은 건수는 6만 9431건(8억 9500만원)이었다. 이미 지난해 전체 규모(4만 7314건·5억 7900만원)를 46.7%나 넘겼다. 2010년(1만 8924건)의 3.6배에 이른다. 최근 태국 푸껫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한모(31·여)씨는 “양가 어른과 회사 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몇 개 사고 나니 400달러를 훌쩍 넘었다.”면서 “블랙리스트(면세 한도 상습 위반자 명단)에 오른 사람이 아니면 세관이 잘 검사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입국 때 영 찜찜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온 임모(38)씨도 “해외여행이 흔해졌는데 현실성 없는 면세 한도가 여행객들을 탈법자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여행객 면세 한도를 지금보다 2~3배 높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기업투자 촉진 등을 위한 규제개혁 과제를 정부부처 등에 건의하면서 면세한도를 1000달러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세연구원도 지난해 관세청의 용역을 맡아 면세한도 조정 연구를 진행하면서 글로벌 경기 사정이 나아지면 600~1000달러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라별 면세 한도는 일본이 약 2500달러 수준이고 호주 930달러, 중국 800달러, 독일·프랑스·이탈리아 560달러, 스위스 320달러, 멕시코 300달러 선이다. 홍콩·필리핀 등은 한도 제한이 없다. 정부도 지난해 면세 한도 인상의 필요성을 인정해 구체적인 검토를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유보 결정을 내렸다. 관세청 관계자는 “면세 한도를 높이면 해외여행을 못 가는 서민들이 정서적 소외감을 느낄 수 있고 해외 쇼핑이 늘어 내수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측도 “선진국 기준에 비해 우리나라의 면세 한도가 대단히 낮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대하소설 ‘고구려’ 집필 중인 베스트셀러 작가 김진명

    [김문이 만난사람] 대하소설 ‘고구려’ 집필 중인 베스트셀러 작가 김진명

    ‘베스트셀러’는 말 그대로 일정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을 뜻한다. 원래 미국에서 시작된 용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954년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출판사상 10만권 돌파를 계기로 ‘베스트셀러’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베스트셀러 작가를 꼽으라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여러 작가가 있겠지만 그중 한 사람이 김진명(53)씨라는 데 주저함이 없겠다. 지난 20년 동안 그가 쓴 책 대부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지금까지 무려 1300만부나 팔렸다.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최근 600만부를 돌파했다. 이어 ‘하늘이여 땅이여’ 100만부, ‘1026(원제: 한반도)’ 100만부, ‘천년의 금서’ 300만부 등이 팔렸다. 그는 요즘 ‘고구려’를 주제로 13권 분량의 대하소설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고구려 1~4권’을 발간했는데 벌써 100만부를 넘어설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다음 달에는 ‘고구려 5권’을 펴낼 예정이며 2014년까지 전 13권 완간을 목표로 치열하게 고구려 역사의 수레바퀴와 씨름하고 있다. 삼국시대 이후의 역사와는 달리 고구려의 역사자료는 상당히 부족한데 어떻게 방대한 양의 대하소설을 이끌어가고 있을까. 최근 들어 ‘고구려’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쓰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의 필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증이 생겼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시내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자리에 앉으면서 역사소설 ‘고구려’가 서점가는 물론 지자체 도서관에서 인기 순위 상위에 오를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는 것 같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그러자 ‘고구려’에 대해 잠시 설명한다. 고구려 역사 가운데 가장 극적인 시대로 꼽히는 미천왕 때부터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 장수왕까지 여섯 왕을 그리고 있으며 미천왕과 고국원왕 얘기는 이미 발간됐고 다음 달에 소수림왕 편이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구려를 통틀어 미천왕이 가장 중요한 왕이라고 새삼 강조한다. 까닭을 물었더니 “고구려는 건국할 때 ‘우리 땅에서 한나라를 몰아내겠다’는 것을 국시로 삼았는데 미천왕이 낙랑을 몰락시키고 한사군을 몰아내 비로소 명실상부한 한민족의 나라를 이룩한 왕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금세 돌아온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역사 교과서에는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중국 역사서 곳곳에 이런 내용이 한두마디씩 기록돼 있으며 자료수집을 통해 얻은 팩트를 토대로 글을 쓰고 있다.”면서 ‘고구려’에는 처음 언급되는 역사적 내용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나올 소수림왕과 광개토대왕, 장수왕 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일부 잘못 알려진 부분도 소설 속에 녹이고 있다고 덧붙인다. ‘고구려’를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그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진다. “중국은 지금까지 버려두었던 요하(遼河)문명을 급속도로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습니다. 요하문명에서 황하문명보다 1500년이나 앞선 유물들이 쏟아져나오자 서둘러 동이(東夷)의 조상 치우(蚩尤)를 자신의 조상으로 둔갑시키고 있지요. 이 과정에서 고조선과 고구려는 물론 지금의 우리 한국인의 뿌리까지 자기네 후손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작가와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삼국지와 초한지, 수호지 등을 재번역하고 의역해 출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역사인 고구려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문학은 어느 곳에도 없고 누구도 쓰지 않고 있지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장수들의 이름은 다 외우면서도 미천왕이 누구이며 소수림왕이 어떠한지조차 잘 모르는 청소년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는 것. 따라서 젊은이들이 삼국지를 읽기 전에 고구려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 책을 쓰게 됐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삼국지보다 더 재미있게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이라도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설 여러 자료를 찾고 개발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심혈을 기울여 글을 쓰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동북아 정세에 대해 나름대로 전망과 분석을 내놓는다. “앞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로 가게 됩니다. 현재는 한국, 일본, 미국이 중심축이지만 중국이 미국과의 힘의 균형에서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고조선, 고구려, 그리고 북한은 물론 한국까지 이어지는 큰 틀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이 견디다 못해 이러한 틀에 끌려올 수밖에 없다고 중국은 판단하고 있지요. 또한 중국이 북한과의 동질화 작업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한국에 금방 흡수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이며, 그것이 바로 동북공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어 우리나라가 왜 대한민국인지 아느냐고 반문했다.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의 한(韓)은 고조선 이전의 한후(韓候)왕에서 시작돼 고조선과 삼국시대 등 한민족의 뿌리로 이어져 내려오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한’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기 때문에 덕수궁 입구에 붙어 있는 대한문(大漢門)의 중국식 한(漢)을 하루 빨리 우리의 한(韓)으로 고쳐야 하며, 우리 민족의 젖줄인 한강(漢江)의 한(漢) 또한 한(韓)으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동서고금에서 보면 역사왜곡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문제는 미리 깨끗이 정리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는 고조선을 잇는 나라로 우리 문화의 발상지입니다. 고구려를 안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민족사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과거이자 뿌리입니다.” ‘고구려’를 쓰기 위해 어느 정도 준비했느냐는 질문에서 옛고구려 땅을 여러 번 답사하고 어렵게 자료를 수집하는 등 준비에 20년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화제를 바꿨다. ‘무궁화~’를 비롯해 지금까지 쓴 10여권이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그런 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물었다. “젊었을 때(학창시절) 기본적으로 ‘인간이 쓴 책은 다 읽어 보자’고 해서 모든 것을 팽개치고 책 속에 푹 파묻혔습니다. 새벽에 도서관에 가면 늦은 밤에 돌아오기 일쑤였지요. 철학, 사회학, 물리학, 화학, 천문학, 수학 등 닥치는 대로 다 읽었습니다. 아마 이런 다독의 힘이 일단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원천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세상의 미래, 세상의 메커니즘을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문제를 제공할까, 또 어떤 스타일을 꺼내야 여러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과 세상의 메커니즘, 그리고 미래라는 틀에 어떤 주제와 스타일의 질문을 던져야 할지, 그런 육감과 인식의 작용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발한 착상과 이야기 반전, 서사적 공간을 만들어 내는 특유의 솜씨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겠다. 베스트셀러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평단에서는 김씨를 ‘대중소설가’로 인식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저는 문학의 향기를 좇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 모든 글이 문학의 향기가 나야 하는 것도 아니지요. 자유로운 정신에서 메시지를 담아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평단은 너무 문예 위주로 형성돼 있어요. 지나치게 문학성이 위주가 되다 보니 청소년들이 재미있는 게임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이제는 다양성에 대해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야 균형이 잡히는 것이지요. 문예를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문학계는 점점 뒤처지게 됩니다.” ‘고구려’가 끝나면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 생각인지 물었더니 “북한은 남한과 싸울 힘이 없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때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반도의 앞날을 집중적으로 다뤄 보겠다고 대답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김진명 작가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입시공부와 고시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역사책이나 철학책 등을 좋아해 날마다 남산도서관에 가서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대학 졸업 후 3년 동안 사업을 했으나 실패하면서 집안 재산을 몽땅 날렸다. 그러던 1992년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졌고 이에 대한 대응 논리가 별로 없다는 것을 직감한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3년 데뷔작인 장편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유명해졌다. 이 책은 지금까지 600만부나 팔렸다. 또한 ‘하늘이여 땅이여’(1998년, 100만부), ‘1026:원제 한반도’(1999년, 100만부), ‘천년의 금서’(2009년, 300만부) 등 잇따라 발표한 작품들 대부분이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인기를 굳혔다. 주요 작품으로는 앞에 언급된 것 외에 ‘몽유도원(원제:가즈오의 나라)’(1995)을 비롯해 ‘황태자비 납치사건’(2001), ‘킹메이커’(2007), ‘카지노’(2009) 등이 있으며 다음달 ‘고구려 5권’을 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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