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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단독] 남의 자리 가서 표결·여론 따가운 법안 ‘꼼수 정정’ 퇴출 1순위

    [단독] 남의 자리 가서 표결·여론 따가운 법안 ‘꼼수 정정’ 퇴출 1순위

    20대 국회 전자 표결 정정신고 전수분석 ‘의석 착오’ 22건… 산만한 본회의장 영향 전자표결, 대리투표 논란으로 번지기도 법안 표결 신중하게 제도적 명문화 필요2018년 2월 2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이날 처리된 68개 법안 중 4개 법안을 같은 당 김경협 의원 이름으로 ‘찬성’했다가 뒤늦게 실수를 알아차렸다. 회의장을 오가는 과정에서 바로 뒷줄 김 의원의 의석을 자신의 자리로 착각하며 벌어진 실수였다. 정정 결과 법안 4건에 대한 윤 의원의 표결은 ‘불참’에서 ‘찬성’으로, 김 의원 표결은 ‘찬성’에서 ‘불참’으로 바뀌었다. 26일 서울신문이 ‘20대 국회 전자표결 정정 신고 내역’을 전수 분석한 결과 전체 551건 중 ‘의석 착오’로 인한 정정은 4년간 22건(4.0%)이었다. 본회의장 의석 중앙의 전자표결기 바로 왼쪽에는 명패가 놓여 있지만 어이없는 표결 실수가 적잖게 벌어진 것이다. ●‘최다 정정’ 심재철 누드사진 보다 망신살 이 같은 표결 실수는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어수선하고 산만한 본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회의장에서는 의원들이 회의 도중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동료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복도를 오가며 통화를 하는 모습 등이 드물지 않게 포착되곤 한다. 20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정정 신고(24건)를 낸 미래통합당 심재철 의원은 2013년 본회의장에서 누드사진을 보다가 언론 카메라에 잡혀 수모를 겪기도 했다. ‘몰아치기’ 법안 처리와 의원들의 낮은 법안 이해도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20대 국회는 본회의당 평균 50여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하루 만에 100여건의 법안을 의결한 날도 적지 않았다. 시간에 쫓겨 국회의장의 기계적인 진행 멘트와 의원들의 속전속결 표결을 합쳐 불과 1~2분 안에 법안 하나가 뚝딱 가결되는 식이다. 현재로서는 표결 실수를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은 마땅치 않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300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제자리에서, 제대로 투표하는지 회의 중에 일일이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본회의 전자표결은 1994년 관련 조항이 국회법에 삽입되며 시작됐다. 1997년 본회의장에 전자표결기를 설치했지만 ‘투표 실명제’를 꺼리는 분위기 탓에 1년 넘게 방치됐다가 이듬해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전자표결은 다른 의석에서 표결할 수 있는 허점 때문에 대리투표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다. 2002년 11월 본회의에서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자리를 비운 같은 당 의원들을 대신해 표결 버튼을 눌렀다가 발각된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 표결 결과는 무효 처리되고 재의결 절차를 밟았다. 2009년 7월 방송법 처리 과정에서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대리투표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1~2분 만에 법안 뚝딱… 몰아치기도 문제 표결 정정은 사후에 회의록을 보지 않는 한 해당 의원의 진짜 의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문제도 야기한다. 국회 본회의 생중계나 당일 언론 보도로 접하는 표결 결과와는 다른 결과가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3일 주식 장외거래에 대한 거래세를 낮춰 주는 증권거래세법 개정안 표결에서 정의당 김종대·여영국·이정미·추혜선 의원은 현장에서는 찬성을 했다가 사후에 기권으로 정정했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처음부터 ‘기권’을 했다. 단순한 조작 착오에 의한 일괄 정정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기는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2017년 1월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채택 건이 올라왔다. 당시 표결에서 통합당 이철우·최연혜 의원은 현장에서는 보고서 채택을 찬성했다가 이후 기권으로 바꿨다. 여론의 눈이 따가운 법안 표결 시 정정 신청이 면피를 위한 ‘꼼수’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몰아치기 법안 처리를 지양하고 본회의 처리 안건에 대한 의원들의 사전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론에 따라 표결하는 한국 국회의 특성상 의원들이 법안에 대해 각자 고민을 하지 않는 데다 마지막에 법안을 몰아서 처리하다 보니 착오도 늘어난다”며 “신중하게 표결하도록 제도적으로도 명문화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표결 실수에 대해 “의원들이 스스로를 헌법기관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전문성도 없고 준비도 없이 표결에 임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보여 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단독] 남의 자리 가서 표결 버튼 누른 의원들

    [단독] 남의 자리 가서 표결 버튼 누른 의원들

    20대 표결 정정 신고 내역 전수 분석‘남 자리에서 표결’ 의석 착오도 22건20대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에서 표결한 뒤 “잘못 눌렀다”는 등의 이유로 표결 내용을 뒤바꾼 건수가 4년간 551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몰아치기 표결’로 인한 법안에 대한 이해 부족, 어수선한 본회의장 분위기 등이 표결 정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26일 서울신문이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20대 국회 전자표결 정정 신고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 20일 마지막 본회의를 제외하고 지난 4년간 의원들은 총 551건의 표결 정정 신고를 했다. 정정 사유로는 ‘표결기 조작 지체’가 292건(53.0%)으로 가장 많았다. 조작 지체는 정해진 시간 내에 표결 버튼을 누르지 못해 기권 등으로 기록된 경우다. 이어 의사 표시를 잘못한 ‘표결기 조작 착오’가 206건(37.4%), ‘표결기 오작동’이 31건(5.6%)이었다. 다른 의원 자리에서 표결했다가 정정한 ‘의석 착오’는 22건(4.0%)이었다. 오작동을 제외하면 94.4%가 의원들의 실수 탓이다. 심재철 의원 4년간 24회로 최다 의원별로는 미래통합당 심재철 의원이 4년간 24회(착오 23회, 지체 1회) 정정 신고를 해 20대 국회에서 가장 잦은 표결 실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 의원은 지난해 8월에는 한 본회의에서 해양경찰법안 등 3건 표결에 모두 ‘찬성’을 눌렀다가 ‘기권’으로 정정했다. 민생당 박주선 의원은 22회로 두 번째로 정정 내역이 많았다. 다만 이는 모두 기기 오작동이 사유였으며 다른 회의에서 표결 실수는 없었다. 통합당 나경원 의원은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확대하는 아동수당법 개정안에 ‘찬성’했다가 이후 ‘기권’으로 바꾸는 등 21회 정정 신고를 했다. 또 2017년 3월에는 하루 만에 총 43건의 표결 정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표결 정정은 본회의가 끝나기 전 의원실이 국회 사무처에 의사를 전하면 법안 처리 결과를 뒤집지 않는 선에서 반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명문화된 규정 없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전략적으로 표결 결과를 뒤바꾸는 ‘꼼수’로 악용될 소지가 적지 않다. 이 같은 표결 실수는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어수선하고 산만한 본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회의장에서는 의원들이 회의 도중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동료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복도를 오가며 통화를 하는 모습 등이 드물지 않게 포착되곤 한다.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도 흔하다. 20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정정 신고(24건)를 낸 미래통합당 심 의원은 2013년 본회의장에서 누드사진을 보다가 언론 카메라에 잡혀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루 100여건 법안 처리에 뭐가 뭔지… ‘몰아치기’ 법안 처리와 의원들의 낮은 법안 이해도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20대 국회는 본회의당 평균 50여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하루 만에 100여건의 법안을 의결한 날도 적지 않았다. 시간에 쫓겨 국회의장의 기계적인 진행 멘트와 의원들의 속전속결 표결을 합쳐 불과 1~2분 안에 법안 하나가 뚝딱 가결되는 식이다. 현재로서는 표결 실수를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은 마땅치 않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300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제자리에서, 제대로 투표하는지 회의 중에 일일이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리투표 등은 하지 않을 거란 신뢰를 토대로 의사진행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본회의 전자표결은 1994년 관련 조항이 국회법에 삽입되며 시작됐다. 1997년 본회의장에 전자표결기를 설치했지만 ‘투표 실명제’를 꺼리는 분위기 탓에 1년 넘게 방치됐다가 이듬해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전자표결은 다른 의석에서 표결할 수 있는 허점 때문에 대리투표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다. 2002년 11월 본회의에서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자리를 비운 같은 당 의원들을 대신해 표결 버튼을 눌렀다가 발각된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 표결 결과는 무효 처리되고 재의결 절차를 밟았다. 2009년 7월 방송법 처리 과정에서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대리투표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현장 표결과 회의록 결과 따로 ‘꼼수’ 악용 가능 표결 정정은 사후에 회의록을 보지 않는 한 해당 의원의 진짜 의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문제도 야기한다. 국회 본회의 생중계나 당일 언론 보도로 접하는 표결 결과와는 다른 결과가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3일 주식 장외거래에 대한 거래세를 낮춰 주는 증권거래세법 개정안 표결에서 정의당 김종대·여영국·이정미·추혜선 의원은 현장에서는 찬성을 했다가 사후에 기권으로 정정했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처음부터 ‘기권’을 했다. 단순한 조작 착오에 의한 일괄 정정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기는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2017년 1월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채택 건이 올라왔다. 당시 표결에서 통합당 이철우·최연혜 의원은 현장에서는 보고서 채택을 찬성했다가 이후 기권으로 바꿨다. 여론의 눈이 따가운 법안 표결 시 정정 신청이 면피를 위한 꼼수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몰아치기 법안 처리를 지양하고 본회의 처리 안건에 대한 의원들의 사전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론에 따라 표결하는 한국 국회의 특성상 의원들이 법안에 대해 각자 고민을 하지 않는 데다 마지막에 법안을 몰아서 처리하다 보니 착오도 늘어난다”며 “신중하게 표결하도록 제도적으로도 명문화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표결 실수에 대해 “의원들이 스스로를 헌법기관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전문성도 없고 준비도 없이 표결에 임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보여 주는 결과”라며 “배우려고 노력하는 자질을 갖춘 국민의 대표를 뽑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 ― 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 감독님만의 선수 지도 철학이 있는가. “감독인 나의 스타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선수들 각자의 장점을 발굴하려고 노력한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은 한다. 선수들이 배구를 하면 스트레스에 굉장히 많이 노출되는데 선수들 얘기를 경청하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려고 도와준다. 배구가 재밌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선수 시절에 내가 싫었던 건 웬만하면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로 하기 싫었지만 도움이 됐던 것들은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 편이다.” ― 올시즌 유일한 이적생인 고예림 선수가 ‘새 직장’ 현대건설이 다른 점으로 소통을 많이 하는 점을 꼽더라. “선수들이 저하고도 얘기를 많이 하지만 훈련 시간에 선수들끼리 대화하는 시간을 준다. 수비와 세터 간 호흡은 어떤 식으로 맞출 건지, 어느 위치에서 수비할 건지 등을 얘기한다.” ―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 하루 일과를 설명해주시면. “주중에는 오전 8시 30분 스태프 미팅을 마치고 오전 훈련을 하고, 점심먹고 오후 훈련을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내 자신을 돌아본다. 혹시나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선수들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운동 외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나. “훈련 시간 중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고전도 많이 읽는다. 최근에는 패스트와 한중록을 읽었다. ―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격언이 있나. “항상 겸손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어느 위치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 감독님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차가워보인다는 얘기를 하더라. “저는 정적인 사람이다. 여행보다는 책 읽기, 돌아다니기보다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굉장히 단호하다. 과거 일에 끙끙 앓고 미련 두기보다는 앞으로 계속 가는 스타일이다. 정에 이끌리지는 않는다. 꽤 오랫동안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 말도 들어보면서 묵묵히 숙고(熟考)한 뒤에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 뒤로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만약에 잘못되면 그건 내가 책임져야하는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차가워 보인다는 얘기를 듣지 않나 싶다.”― 고교시절부터 함께한 김철용 감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제가 일신여중으로 스카우트 됐는데 김철용 선생님도 제가 고등학교 갈 때 일신여상에 부임하셨다. 고3 언니들이 전국체전이 끝나고 실업팀으로 간 뒤인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반부터 고등학교 체육관에 올라가서 연습을 했는데 그때 선생님을 처음 뵀다.” ― 김철용 감독은 당시 A속공을 가장 잘하는 1학년 이도희를 공격수에서 세터로 전향시켰다고 하던데. “사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세터를 시키려고 했는데 제가 하기 싫다고 했다. 세터들이 워낙 욕을 많이 먹으니까 하기 싫었다. 중학교 때는 신장이 큰 편이라 항의가 받아들여졌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니 배구 선수 치고는 신장이 170cm로 작은 편이라 안 먹혔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때도 공격수였는데 당시 주전 세터였던 임혜숙 언니가 1학년 중반쯤 국가대표팀에 차출돼서 나가는 바람에 세터 자리가 비었고 그때 김철용 감독님이 세터를 시켰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선생님이 시키면 하는 거였다. 제가 1학년때 고3 언니들이 좋은 경기력을 갖고 있었다. 토스를 초보자가 하는데도 언니들이 받아주고 잘 때려주니까 계속 이겼던 것 같다.” ― 초등학교 1학년때 육상 선수를 하다가 10살 때 배구를 시작하셨다. 배구를 시작한 배경은. “키가 커서? 어렸을 때는 잘 뛰고 그랬나보더라.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랐는데 부모님이 몸이 약하니까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지 않겠냐고 해서 하게 됐다. 제가 막내라 아버지가 저를 되게 예뻐하셨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운동하는 걸 별로 안좋아하셨는데 학교 선생님이 설득했다. 그뒤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잘 해주셨다.” ― 김철용 감독과 이도희 감독 본인의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고교랭킹 1위로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가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 흥국생명이 이다영을 데려갔다. 이다영이 부진할 때 믿고 기용해 리그 최고 세터 수준으로 키운 걸로 아는데. 현대건설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큰 것 같다. “아쉽지 않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FA는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 거기 가서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애정을 갖고 그 선수를 키웠기 때문에 그 선수가 좋은 선수가 성장하길 바란다. 팬들의 그런 비판은 2018~2019 시즌에 이다영 선수가 힘들어할때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최근 이다영의 대체자인 세터 이나연 영입도 화제였다. “아직까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단계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좀 있다. 이 선수가 얼마나 따라올지, 이 선수가 내가 얼만큼 발전 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이 선수랑 같이 훈련해보면서 이 선수가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보이게 하는 게 제 역할이다. 단점은 안 보이게 하면서 장점 부각되게 하는게 제 역할인 거 같아서. 이나연 선수는 자신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 이다영 선수는 당연히 포함 될테니 이다영 선수를 빼고 코치 시절부터 통틀어서 감독님 밑을 거쳐간 세터 중에 기억에 남는 세터를 말해달라. “염혜선 선수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선수여서 좀 더 잘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효희 도로공사 코치는 선택이 굉장히 좋은 선수여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사실 흥국생명 이영주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공격수 였다가 세터로 전향한 선수였다. 프로팀에서 제일 처음 가르쳤던 선수라서 구질도 좋고 그래서. 운동을 좀 더 오래 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김다인 선수가 제 밑에서 올해 3년째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 선수가 잘 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수원시청에서 뛰던 김주하는 결혼 뒤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감독님과 닮았다. 감독님도 수원시청에서 뛰셨다. “코로나19로 포스트시즌을 치르지 못하면서 리베로 김주하 선수를 선보이지 못하고 끝난게 아쉬웠다. 김연견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체자가 필요했는데 이영주는 너무 어렸고, 고유민은 리베로 자리를 부담스러워해서 레프트 백업으로 원위치했다. 그래서 김주하 선수에게 부탁을 했고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김주하는 우리 팀의 주전 리베로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다. 수원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이번 시즌 개인사로 작년에 그만둔 것 같더라. 몸이 좀 많이 아팠는데 몇개월 쉬고나니까 괜찮아졌다고 하더라. 김주하 선수는 체력이라든지 고질적인 부상이 있다. 충분히 체력 보강을 해야 시즌때 아프지 않고 시즌을 마칠 수 있다고 많이 얘기를 했다.” ―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이성 구로청장, ‘매니페스토 공약이행 평가’ 3연속 최우수(SA) 등급

    이성 구로청장, ‘매니페스토 공약이행 평가’ 3연속 최우수(SA) 등급

    서울 구로구는 이성 구로구청장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주관 ‘민선 7기 전국 기초단체장 공약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에서 최우수(SA) 등급을 받았다고 26일 밝혔다. 구로구는 “이 구청장은 2018년과 2019년에 이어 3년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국매니페스토평가단은 지난 1월 22일부터 4월 20일까지 전국 226개 시·군·구 홈페이지에 공개된 1만 5799개의 공약 정보 자료를 분석·평가했다. 이 구청장은 공약이행 완료·2019년 목표달성·주민소통·웹소통·공약일치도 5개 항목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신도림기적의도서관 건립, 천왕역 일자리토털플랫폼 조성, 하천변 수목원화 사업, 항동 생활체육관 건립,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 개관, 스마트도시 가상체험관 조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민과의 약속을 지켰다. 구 관계자는 “2019년 12월 기준 지역균형발전, 교육·문화, 스마트산업도시, 녹색도시, 복지·안전 등 5개 핵심 분야 89개 공약 사업에서 절반이 넘는 53.9%의 이행률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구청장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각종 평가에서 11년 연속 수상을 이어오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부문 선거공약 분야 우수상을 시작으로, 2011년 청렴 분야 우수, 2012년 일자리 분야 최우수, 2013년 공약이행 분야 우수, 2014년 지방선거부문 공약집 분야 최우수, 2015년 도시재생 분야 최우수, 2016년 청년문제 해소 분야 우수, 2017년 지역 문화 활성화 분야 최우수, 2018년 공약이행 분야 최우수, 2019년 공약실천계획서 분야 최우수를 받았다. 이 구청장은 “주민들과 소통하며 주민 입장에서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가 좋은 성과로 이어져 기쁘다”며 “남은 기간 동안 공약 이행률 100%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한명숙 檢수사팀 “증인 진술 조작 전혀 없었다”

    한명숙 檢수사팀 “증인 진술 조작 전혀 없었다”

    한 전 총리 5년째 추징금 7억여원 미납‘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돈을 준 적 없다’는 고 한만호씨의 진술 번복을 거짓으로 몰기 위해 검찰이 증인 진술을 조작했다는 보도에 대해 당시 수사팀이 “명백한 허위”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검찰은 25일 수사팀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검찰이 한씨 동료 수감자의 진술을 조작하고 이들을 압박했다는 보도는 객관적 사실관계에 배치된다”고 밝혔다.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이날 한씨의 동료 수감자 A씨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그는 사건 재판 당시 법정 증언한 동료 수감자 2명과 다른 수감자다. 한씨의 동료 수감자 2명은 당시 법정에서 “한씨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나에게 혜택이 없으니 진술을 번복해야겠다’고 고민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뉴스타파는 인터뷰를 통해 당시 수감자 2명의 증언이 한씨의 진술 번복을 되돌리기 위한 조작이었다고 보도했다. 검찰이 미리 작성한 진술서를 수감자들이 손으로 베끼도록 하는 방식으로 수감자들을 학습시켰다는 정황도 부각했다. A씨는 “검찰 협조를 거부하면서 법정에 나가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은 한씨의 동료 재소자를 조사한 적은 있지만 이는 ‘한씨가 진술 번복 이전부터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겠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풍문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고 진술까지 연습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검찰은 이어 “(A씨는) 사기·횡령·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20년 이상의 확정형을 선고받은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의 일방적인 진술은 보다 철저히 검증한 뒤 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 전 총리는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과 함께 추징금 8억 8300여만원이 확정됐지만 4년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추징금 납부액은 1억 7000여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딸의 입냄새 때문에… 테라브레스, 개발 비화 화제

    딸의 입냄새 때문에… 테라브레스, 개발 비화 화제

    인류의 과학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그 위대함 뿐만 아니라 발견 일화로도 유명하다. ‘뉴턴의 사과’를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중력을 떠올린 그의 일화는 어쩌면 법칙의 내용보다도 이야기로써 더 유명하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유명 제품들 중에도 이런 재미있는 일화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올해 1월 초, 국내에 정식 런칭 후 연일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고 있는 제품인 테라브레스 역시 마찬가지이다.테라브레스는 1994년에 미국인 ‘해롤드 카츠’씨가 만든 구취제거제로 출시 이후부터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는 제품이다. 100여 개가 넘는 나라에 수출 되어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직구족들이 애용하는 제품이다. 테라브레스를 체험한 사람들이 말하는 제품의 효과성은 ‘저녁에 테라브레스로 가글을 한 후 잠을 자고 나면 다음날 점심까지 입 냄새가 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구매 고객들 사이에서는 정설로 통하고 있다. 이러한 테라브레스는 제품 탄생 비화가 공개되며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개발자인 해롤드 카츠에게는 사랑하는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딸이 수심에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것이다. 그는 딸에게 그 이유를 물었고 딸은 자신의 지독한 입 냄새 때문에 고민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 말을 들은 카츠 씨는 딸을 위로해주거나 유명한 가글 제품을 사 주는 대신 본인이 직접 해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입 냄새를 없애는 제품을 스스로 만들기로 결심한 것. 그리하여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구취제거제 테라브레스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딸은 아이러니하게 자신의 입 냄새로 인해 아버지에게 극진한 효도를 한 셈이다. 한 때, 테라브레스는 국내 론칭 과정에서 효과성이 미국 제품에 비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현재 식약처에서 테라브레스의 성분 중 하나인 ‘소디움 클로라이트’의 국내 사용을 금지한 까닭에 ‘염화세틸피리디늄’으로 대체한 것이 잘못 알려진 해프닝이었다. 온누리 H&C의 임정헌 브랜드 총괄은 “테라브레스 국내 제품은 이미 테라브레스 본사에서 오리지널 제품과 ‘효과의 동일성’을 인정받았다. 이는 개발자인 해롤드 카츠 씨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이에 그치지 않고 분기마다 국내 제품을 미국 테라브레스 본사로 보내 효과성 테스트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국내 소비자 분들께서도 안심하고 사용하셔도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 런칭 후 4개월 만에 완판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는 테라브레스는 현재 온누리아이코리아 홈페이지, 스마트스토어 및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입덕일지] 불꽃 같은 모델, 한혜진의 이유 있는 인기

    [입덕일지] 불꽃 같은 모델, 한혜진의 이유 있는 인기

    “불꽃 같은 직업인 것 같아요.” 한혜진은 자신의 직업인 모델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때, 완벽한 신체와 비율로 최고의 정점에서 활활 타올랐다가 산화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며 불꽃에 비유했다. 그런 의미에서 데뷔 21년차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혜진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모델이다. 최근 예능을 통해 잘 알려진 친근한 ‘달심’ 한혜진이 아닌, 프로페셔널한 모델 한혜진의 매력에 대해 분석해 봤다. ▶ 모델 분야의 개척자, 한혜진 한혜진이 모델 중에서도 ‘톱모델’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보그, W, 엘르, 바자 등 국내 각종 잡지 표지모델을 섭렵한 것은 물론 세계 4대 패션쇼(뉴욕, 파리, 밀라노, 런던)에 모두 선 한국인 모델이기 때문이다. 2006년 밀라노 컬렉션 구찌쇼 최초의 한국인 모델, 2007년 F/W 뉴욕 컬렉션 안나수이쇼 최초의 한국인 피날레 모델이 된 한혜진. 동양인 모델, 그 중에서도 한국인 모델에 대한 수요와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 이러한 타이틀을 얻었기에 한혜진은 가히 ‘이 분야의 개척자’라고도 불린다. 한혜진은 자신 이후로 많은 한국인 모델들이 해외 패션쇼에 진출하게 된 것에 대해 지난해 방송된 KBS2 ‘대화의 희열2’에서 이렇게 말했다. “몰랐던 세계에 대해서 갔다 온 사람이 ‘그 세계는 이렇다더라’고 전해주면 그 다음에 나가는 친구들은 조금 더 수월할 수 있잖아요. 이게 참 좋은 것 같아요” ▶ “군기란 없다” 선배 한혜진의 남다른 인성 한혜진이 진정한 톱모델로 꼽히는 또 다른 이유 중에는 일명 ‘군기 센’ 모델계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한혜진은 자신이 겪었던 모델 세계에 대해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천지였다”고 말한 바 있다.“맨날 혼나는 게 일이었어요. 도시락 늦게 가져왔다고 혼나고, 선배들 안 갔는데 먼저 쇼장 밖으로 나갔다고 혼나고, 메이크업 두 번 받는다고 혼나고, 눈썹 하나 더 붙였다고 혼나고.” 하지만 그녀가 후배 모델들과 있을 때의 모습은 이와는 달랐다. 후배 모델인 이현이는 선배 한혜진에 대해 “처음엔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후배들을 위한 것이었다”며 “한혜진은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혼자 미움을 받더라도 총대를 메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델 이혜정 또한 모델계 군기를 없앤 모델로 장윤주, 송경아, 한혜진을 꼽았다. 지난해 모델 데뷔 20주년을 맞은 한혜진은 “선배들이 현역에서 잘 버텨주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지금처럼 느낄 때가 없었다. 나도 그렇게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 모델만이 할 수 있는 재능 기부, 디지털 런웨이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많은 행사가 취소된 가운데, 패션계도 타격을 피해가진 못했다. 서울시 주최 글로벌 패션쇼 ‘서울패션위크(SEOUL FASHION WEEK)’ 서울컬렉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모델 한혜진은 업계에 도움이 되고자 ‘디지털 런웨이’라는 장을 마련했다. 약 40명의 디자이너들의 옷 100벌을 입고 혼자 패션쇼를 선보인 것. 모델로서 한 패션쇼에서 최다 30벌을 입어봤다고 말한 한혜진에게 100벌을 입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공개된 디지털 런웨이 현장 속 한혜진은 정신적∙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모델만이 할 수 있는 일로 타인을 도울 수 있음을 되새기며 프로답게 디지털 런웨이를 마무리했다. 그의 특별한 재능기부에 사람들은 많은 관심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 한혜진, 알고보니 기부천사 한혜진은 평소 자신이 모델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한혜진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2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성금 1000만원을 기탁했다. 또한 지난해 4월에는 고성군, 속초시 등 강원지역에 발생한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2016년에는 기부를 위해 플리마켓을 여는 모습이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한혜진은 2014년 소속사 아카데미를 통해 20대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토크콘서트 형식의 재능 기부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혜진은 그 누구보다 모델로서 베풀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 임효진 기자의 입덕일지 : ‘입덕’할 만한 스타를 발굴해 그의 모든 것을 파헤칩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재난 발생 시 LTE 기반 통신망 일원화…영상·사진 실시간 공유

    재난 발생 시 LTE 기반 통신망 일원화…영상·사진 실시간 공유

    세월호 참사로 17년 만에 빛보다 올 1월부터 1단계 중부권 시범운영 개시 1조 4776억 투입… 3단계 걸쳐 연말 완료 경찰·소방 등 8대 분야 333개 기관 하나로 수천명 단위로 안정적 다자간 통화 가능 상황실서 원격조종으로 ‘주변음 청취’도“여기는 재난안전통신망 서울운영센터입니다. 잘 들립니까?” 얼핏 흔한 스마트폰처럼 보이는 단말기로 통신을 시도하자 곧 “예. 정부서울청사 정문에 나와 있습니다”라는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단말기 속 영상은 어지간한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것처럼 끊김 없이 선명했다. 앞으로 재난 현장에 출동하는 전국 모든 경찰과 해경, 소방관은 한국이 세계 최초로 구축하는 4세대 무선통신기술(LTE) 기반 재난안전통신망으로 연결된 단말기를 이용해 지휘관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신문은 20일 행정안전부 재난안전통신망사업단 관계자들과 함께 정부서울청사에 자리잡은 서울운영센터를 찾았다. 3교대로 24시간 공무원들이 상주하며 영화에서나 봄 직한 각종 계기판과 지도를 통해 재난안전통신망 관리와 개별 단말기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현재 공사 중인 대구와 제주센터가 완공되면 세 곳에서 서로 보완이 가능해 한 곳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전체 기능에 아무 문제가 없도록 했다. 거기다 긴급 통신에 대비해 고정기지국과 이동기지국도 운영한다.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은 모두 1조 4776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투입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운영센터와 1만 5447곳에 이르는 기지국 구축비에 3810억원, 전용회선료와 전기료 등 운영비에 6960억원, 경찰과 소방, 해경 등에 지급할 단말기 24만대 구입비에 4006억원이 든다. 이미 지난 1월부터 1단계로 중부권(대전·세종·충청·강원) 통신망의 시범 운영을 개시했고 8월까지 호남권과 영남권, 제주 등 9개 시도를 포함한 남부권 통신망을 2단계로 구축하고 연말까지 수도권 통신망 구축도 완료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전국에서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난안전통신망은 경찰관과 소방관 등 현장요원이 지휘자와 현장 정보를 신속히 주고받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공동으로 사용하는 전국 단일 통신망을 의미한다. 특히 평상시 순찰이나 단속은 물론 재난 상황에서 통신이 가능해야 하고 보안도 유지해야 하는 특별한 기능을 필요로 한다.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을 마무리하면 현재는 상호 통신이 불가능한 경찰, 해경, 소방, 군, 지방자치단체, 전기안전, 가스안전, 의료 등 8대 분야 333개 재난 관련 기관 상호 통신과 정보 공유가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스마트폰과 크기가 비슷한 단말기를 통해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이나 경찰이 종합상황실은 물론 수천명 단위로 다자간 통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음성통화와 영상통화는 물론 녹화·녹음이 가능하고 단말기를 가진 현장대원 대신 상황실에서 원격조종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주변음 청취’ 기능도 있다. 기존 통신사가 가진 이동기지국 및 상용망과 연동해 전국 어디에서나 통신망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통신망을 유지할 수 있다. 통제실에서 사용자 간 통화를 강제로 멈추게 한 뒤 지시를 내리는 ‘가로채기’ 기능 등도 갖췄다.●세월호 참사 반면교사 삼아 사업 완료까지는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기존에는 경찰·소방·해경·지자체 등 유관기관마다 사용하는 통신망이 제각각이었다.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도 음성통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과 소방은 초단파(VHF)·극초단파(UHF) 무전기와 유럽 표준 기반인 테트라(TETRA)를 사용했고, 해경이나 보건복지부(응급의료무선통신망)는 KT파워텔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상용망(iDEN)을 주로 쓰는 식이었다. 통신이 안 되니 신속한 상황 공유도 불가능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2014년 세월호 사고, 2017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 대형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관련 기관 사이에 신속하고 유기적인 대응이 안 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논의가 처음 나온 것은 2003년이었다. 하지만 2008년 3월 감사원이 감사에서 외국계 특정 기업이 사업을 독점하는 문제와 그에 따른 기술 종속 등을 지적한 뒤 사업이 보류됐다. 5년 넘게 표류하던 사업이 다시 살아난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2014년 세월호 참사였다. 세월호 사고라는 비극을 통해 현장과 지휘체계를 연결하는 통신망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다시 제기되자 박근혜 정부는 그해 5월 국무회의에서 부처 협업으로 임기 안에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을 완료하겠다는 사업 방향을 확정했다. 그해 7월에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제시한 재난안전용 4세대 무선통신기술(PS-LTE) 방식을 확정했고 9월에는 기획재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 사업으로 지정했다. 2015년부터는 산악지형인 강원도 평창과 강릉, 정선 등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지원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마침내 2018년 1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중부권에서 1단계로 본사업을 시작했고 1단계 사업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부터는 수도권과 남부권 사업에도 착수했다. 처음 검토를 시작하고 나서 17년 만에 대미를 장식하게 된 셈이다. ●세계 최초 PS-LTE 방식… 5G 전환은 숙제 재난안전통신망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PS-LTE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도 추진 중이며, 유럽연합(EU) 역시 기존 통신망을 PS-LTE로 전환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 중인 국제표준 기술이다. 심진홍 행안부 재난안전통신망사업단장은 “도시 단위로는 두바이 정도 사례가 있긴 하지만 전국적인 상용화는 한국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거기다 독자기술로 전국적인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기 때문에 해외 업체의 기술 독점이나 종속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행안부는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을 통해 내수 진작과 수출 등 앞으로 10년간 약 5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보다 PS-LTE 관련 장비와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고용 창출과 수출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또 PS-LTE 자체도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에 참여하는 국내 업체들이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게다가 국가 차원의 비용 절감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행안부는 일단 2025년까진 운영 경험을 쌓으면서 단계별 보완을 진행하는 동시에 더 높은 단계로 고도화하는 방안 역시 고민 중이다. 재난안전통신망은 계획부터 완료까지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대규모 프로젝트여서 이제 다음 단계를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철도망 등과도 연동하는 광대역 공공안전 신경망 구축이 필요하다”며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과도 연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상용화한 차세대 통신기술인 5G는 현재로서는 재난안전통신망에서 요구하는 기술과 안정성을 갖추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다르다는 점도 염두에 두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국가재난통신망을 5G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5·18 교육? 지금의 우리와 연결고리 찾는 데부터 시작해야”

    “5·18 교육? 지금의 우리와 연결고리 찾는 데부터 시작해야”

    현직 역사교사 3인이 말하는 “5·18 교육 이렇게 하자” 단순 서술 아닌 스스로 묻고 답해야‘주먹밥’처럼 나눔과 배려 가치 연결 교사도 적극적 학습하되 독선 경계해야왜곡·막말 처벌하는 정부 역할도 필요40년 전 그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싸운 역사는 오늘날 10대 청소년에겐 ‘시험 범위’가 되어버렸다. 서울신문이 만난 많은 청소년이 민주화 운동을 과거의 일로 여겼고, 내용도 제대로 몰랐다. 현재 학교는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주고 있을까. 미래 세대에게 5·18을 포함한 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현직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 3명을 만났다. 김영주(40·14년차) 광주여고 교사, 박래훈(42·16년차) 전남 순천 별량중 교사, 이희정(34·2년차) 강원 원주 북원중 교사다. 김씨와 박씨는 올해 광주교육청의 5·18 인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이씨는 강원도에서 광주까지 정기적으로 연수를 받으러 다닐 정도로 더 생생한 수업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교과서 단편 서술 한계…스스로 생각하는 수업 필요” 근무 지역도 기간도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으로 “학교 수업에서 단순히 과거 기록을 전하는 데서 벗어나 현재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어나기도 전이니 당연히 옛날 사건으로 느껴지겠지만, 과거의 정신이 현재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지난해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주먹밥이 선정됐듯, 5·18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신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웃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고 나선 시민들의 나눔과 배려”라면서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라고 말했다.이씨는 “5·18은 박제된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반민주적인 요소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도록 하는 힘”이라면서 “학생들에게도 이런 현상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가르치려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교사들은 현재 교과서와 현장의 한계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현재 근현대사 부분에서 5·18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이 단편적 사건으로 각각 나열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한 흐름인데도 시민들의 역량이 축적되는 과정을 알 수 없고, ‘또 독재하고 또 저항한다’는 인상만 줄 수 있다”면서 “민주화 운동끼리 연결 지점이 없어 피해 내용 중심으로 서술된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교과서에는 당시 계엄군의 도청 진압 직전까지 저항한 민중의 희생과 성숙한 시민 의식, 자치능력이 치밀하게 나오지 않는다”면서 “단순 사건 나열만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민주화 운동은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사회적 이슈에 대해 더 심도 있게 교육할 수 있는 계기수업의 역할이 필요하다.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5·18 기념재단과 함께 인정교과서를 개발해 학교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김씨는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5·18 등 계기수업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면서 “교사 입장에서 학교 관리자가 ‘지역 정서에 안 맞다’며 눈치를 주거나, 일괄적으로 강요하는 교육은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수업을 준비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독선에 빠지지 않게 관리하고 소통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계기수업 격차 커…지역 특색 살려야 이씨는 “지역과 교사 개인마다 역량이 차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오히려 이런 특색을 살려 다채로운 수업이 많아져야 한다”면서 “광주가 5·18이라면 대구는 2·28 민주운동, 제주는 4·3사건, 강원은 분단과 통일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전문성을 보장하도록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학생들에게 생생한 역사를 가르치려면 교사가 먼저 나서서 배워야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인정교과서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박씨는 “광주교육청에서는 전국 교사를 대상으로 5·18 연수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면서 “5·18을 모르는 교사가 얼마나 되나 하겠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면 단순히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교사 스스로 자세히 알아야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인정교과서는 학생들 스스로 질문, 응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단 최근의 관점까지 포괄한 것”이라면서 “사건 이후 트라우마, 역사 왜곡, 다른 나라와의 연대, 청소년과 여성의 입장 등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를 모두 5·18이라는 소재로 얘기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특히 4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왜곡과 막말 등에 대해선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박씨는 “5·18 특별법 제정으로 진실이 다 드러났다고 하지만, 당장 발포 명령자도 모른다.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니 역사 왜곡이 반복되는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이런 역할을 다 해야 교육 현장에서도 청소년에게 5·18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지역 차별적인 인식이나 5·18에 대한 ‘낙인’은 청소년이 아니라 기성세대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오히려 미안하다”면서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잘못된 역사를 사죄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월드피플+] 美 쌍둥이, 38개 대학 동시 합격… “코로나 사투 간호사 될 것”

    [월드피플+] 美 쌍둥이, 38개 대학 동시 합격… “코로나 사투 간호사 될 것”

    5월 졸업시즌을 맞아 한창 시끄러워야 할 미국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올해는 예년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대졸자는 졸업식이 취소된 것도 모자라 사회에 나오자마자 역사상 가장 심각한 취업난과 맞닥뜨리게 됐다.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 고졸자 역시 재정 악화로 4년제 대학 대신 2년제 칼리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처럼 대다수 졸업자가 침체한 분위기 속에 졸업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몇몇 학생은 나름대로 결실을 거두며 선전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NBC뉴스는 위스콘신주의 한 쌍둥이 자매가 동시에 38개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고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쌍둥이 자매 아리엘 윌리엄스(18)와 아리아나 윌리엄스(18)는 동생이 1등, 언니가 2등으로 밀워키의 한 전문고등학교를 나란히 졸업했다. 고교 시절 내내 상위권을 독차지한 쌍둥이는 이번 입시에서 켄트주립대학 등 38개 대학에 모두 합격했다. 2분 먼저 태어난 언니 아리엘은 “코로나19 봉쇄에도 우리를 계속 지원해준 학교 덕이다. 멘토들이 문자와 전화로 꾸준히 격려해줬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쌍둥이는 누구보다 열심히 학업에 매진했다. 언니를 제치고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아리아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서 늘 성공하고 싶었고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공부가 자신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다는 쌍둥이는 “학업으로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증명할 수 있었다”고 뿌듯해했다. 흑인 학생회와 지역사회 청소봉사 등 대외활동도 훌륭히 수행했다. 아리아나는 “나와 언니는 모든 걸 함께 했다. 같은 단체에 가입해 활동에 참여했다”며 애틋함을 내비쳤다.그런 노력 덕에 쌍둥이는 장학금도 받게 됐다. 현지언론은 합격을 통보한 대학들이 하나같이 거액의 장학금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38개 학교가 쌍둥이에게 제시한 장학금은 전액 장학금을 포함해 총 100만 달러(약 12억 원)에 달한다. 재정적 이유로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 졸업을 희망하는 쌍둥이는 진학할 학교를 고심하고 있다. 38개 학교 전체 합격은 물론 100만 달러의 장학금까지 제안받은 쌍둥이는 “학업에 열중하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주목받을 날이 올 것”이라면서 “남 얘기라고 생각지 마라. 우리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며 수험생을 독려했다.한편 간호학을 전공으로 택한 쌍둥이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입학도 전에 투철한 사명감을 갖게 됐다. 폐렴을 앓다 뇌졸중까지 얻은 아버지를 보며 간호학 공부를 결심했다는 쌍둥이는 “전염병 대유행을 지켜보며 간호사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더 확실히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간호사가 감염병 최전선에서 생명을 구하고 있다. 우리도 그들 중 일부가 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어느 삶을 가도 괴로움은 있어”… 만수의 반백년 롱런 비법

    “어느 삶을 가도 괴로움은 있어”… 만수의 반백년 롱런 비법

    “성적도 바닥을 기어보고 다 해봤지만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농구를 정말 좋아하고, 농구가 너무 재미있으니까요.” 1990년대 인기 농구만화 ‘슬램덩크’에서 농구에 대한 사랑을 수줍게 고백하던 강백호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재학(57) 감독에게서 받은 느낌이 그렇다. 만 가지 수를 발휘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지략이 뛰어나 ‘만수’(萬手)라는 별명을 가진 그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3년 재계약을 하며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가장 길게 한 팀을 지휘하는 기록에 성큼 다가섰다. 3년 후면 모비스와 19년을 함께하며 김응용(79)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이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를 지휘하며 세웠던 기록(17년 11개월)을 넘어선다. 대우 제우스, 신세기 빅스(이상 현 인천 전자랜드) 감독 시절까지 합치면 프로 감독으로 보낸 기간도 24년을 넘겨 최장 기록을 세우게 된다. 최다 1149경기 출장에 최다 662승,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에 정규리그 1위 6회…. 프로농구 감독으로서 최고 기록은 대부분 유 감독의 몫이다. 16년간 모비스 왕조를 함께 건설했던 양동근이 은퇴하며 새로운 시기를 앞두고 있다. 자유계약선수(FA)를 네 명이나 폭풍 영입하는 등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유 감독을 12일 만나봤다.-국내 프로스포츠의 거목 김응용 회장에 견줘지고 있는데. “더 오래하셨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가 비교된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젊은 선수들과 매일 같이 지내다 보니 세월 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지낸 게 아닌가 한다. 감독은 파리목숨이라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직업이라고 집사람에게 이야기하며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코트를 씹어 먹는 천재 포인트 가드로 이름을 날렸지만 스물여덟에 은퇴했을 정도로 ‘코트의 여우’로서의 생활이 짧았다.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재활을 오래하고 했으면 조금 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모교인 연세대에서 코치 제의가 들어와 ‘에라, 갈 때 가자’는 마음이었다.” -서른다섯에 감독 데뷔해 최연소 기록을 갖고 있다. 그때 품었던 목표는 모두 이루었는지. “사실 지금도 목표는 없다. 선수 때도 그렇고 목표를 정해 놓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강한 편이다.”-프로 감독은 피를 말리는 직업이다. 한 경기에서도 수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농구 감독은 특히 더 그럴 것 같다.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지치기 쉬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을 것 같은데. “힘들고 고민도 많았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다. 농구를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마음의 무게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래도 고비가 있었을 텐데. “성적이 안 나거나 뜻대로 안 될 때는 굉장히 힘들다. 젊었을 때는 부모님이나 집사람에게 괴롭다고 토로하고, 힘들다고 털어놓으면서 넘어가곤 했다.” -정말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지. “프로에 오기 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있다. 연세대 코치로 갔을 때다. 후배들을 가르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스카우트 등 농구 외적인 일이 많았다. 아버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어느 삶을 가도 힘들고 괴로운 일은 다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 듣고 고민하다가 다시 하게 됐다.” -승부의 세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시간 나면 자전거나 러닝머신을 타며 운동으로 푼다. 아니면 코치들하고 사우나를 같이하고 그런 게 대부분이다. 비시즌이 해외를 돌아다니며 외국인 선수를 보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시기인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매일 체육관에 출근하고 있다.” -감독 생활을 돌이킬 때 가장 이불킥을 하게 되는 순간은. “초년병 때 현대랑 하는데 한 쿼터에 2점밖에 못 넣은 적이 있다. 그 경기가 흑역사다. 그런 날이 있는데 뭔가 씌운 듯 자유투도, 레이업도 안 들어갔다. 팀도 창단한 지 얼마 안 됐고 선수들도, 나도 모두 어렸을 때다.” -반대로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순간은. “06~07시즌 챔피언결정전 7차전이다. 동근이도 자기 인생의 최고 경기로 꼽고 있는데 나도 그렇다. 2004년 모비스에 처음 와서 7위를 하고, 2005년 바로 정규 1위를 했다. 그리고 나서 06~07시즌에 7차전까지 간 끝에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스스로 롱런의 비결을 무엇으로 보는지. “조직을 중시한다, 수비를 강조한다, 선수들의 장점을 키워 성장시킨다…. 기사를 보면 여러 말씀들을 해주시는데 난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선수들이 전술·전략을 성실하게 따라 주지 않으면 어렵다. 내 경우 고참 선수들, 외국인 선수들을 비롯해 함께한 선수들이 대체로 잘 따라와 줬다. 그게 비결이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식사를 전원이 함께하는 규율 같은 게 있는데 어찌 보면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만 뒤에서 불평불만하는 선수들이 거의 없이 따라 줬다.” -선수 선발 때 인성을 보는 것이 아닌가. “국내 선수들은 풀이 너무 작아 그럴 여유가 없다. 잘하면 무조건 뽑아야 한다. 모비스는 꾸준히 성적을 내서 드래프트 때 뒤에서 뽑아야 했었으니까. 다만 외국인 선수의 경우 현지 관계자들에게 꼭 인성을 물어보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팀을 지휘하며 지켜온 철칙이 있다면. “단체 운동이기 때문에 동료에 대한 배려를 중시한다. 정해진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거나 연습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든가 그런 거다. 사실 훈련량이 많거나 강도가 세지 않은데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모비스는 타이트하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중간에 바뀐 것이 있는지. “요즘 굉장히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주변에서 하도 말을 많이 들어서 어투라든지 인상을 되도록 유하게 하려고 애쓴다. 내 스타일은 아니라 안 맞는 옷을 걸친 것 같아 힘든 면이 있다. 내가 유해지는 게 선수들에게 과연 좋은 일인지, 욕을 좀 먹더라도 경기력을 위해 원래대로 타이트하게 하는 게 좋은 것인지 확신은 없다. 앞으로도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경기 내내 성난 표정이라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거기에는 좀 오해가 있다. 나는 긴장하거나 무엇인가에 집중하면 미간이 모이고 눈이 올라가 화가 나지 않았어도 화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웃는 사진이 없어 사진 고르는 게 무척 힘들다. 안경 생각도 했는데 난시는 한 번 쓰면 계속 써야 한다고 해서 미루고 있다. 은퇴 전에는 한 번 써볼까 한다. 허허허.” -운명처럼 16년을 함께했던 양동근이 없는 시즌을 맞아야 하는데. “올해는 동근이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중요하다. 동근이가 핵심 역할을 했기 때문에 팀 전체 스타일도 달라져야 한다. 올해와 내년은 그런 준비를 하고 밑바탕을 깔아 토대를 단단하게 굳히는 시기라고 본다. 물론 그러면서 성적도 내면 좋겠지만.“ -리빌딩은 사실상 처음 아닌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16년 전과는 체력적으로 많이 달라졌지만 기분은 딱 모비스에 처음 왔을 때 새로 시작하는 바로 그 기분이다. 몸이 따라 줄지는 모르겠지만 선수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하려 한다. 그런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다.” -감독 커리어 이후 농구계에서 더 큰 일을 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난 생각이 다르다. 농구 감독을 오래하고 성적도 냈다고 해서 행정을 잘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단장이나 그런 쪽에는 더 잘하는 분들이 있다. 그저 재미있어서 열 살 때 농구를 시작했다. 3년 후면 농구만 해온 지 50년이 넘게 된다. 남은 시간은 가족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게 농구 감독 이후의 목표라면 목표다.” 글 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인터뷰]의혹에 입연 윤미향 “딸 유학비 말 바꾼적 없다”

    [인터뷰]의혹에 입연 윤미향 “딸 유학비 말 바꾼적 없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일축했다. 다음은 윤 당선인과의 일문일답.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 내용에 대해 야당에선 윤 당선인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 제기했다. ‘당일 아침 알았다’에서 ‘합의 전날 알았다’로 말이 바뀌었다는 의혹도 있다. 이와 관련해 무엇이 사실인지 말씀해달라. 2015 한·일 합의 전체 내용은 2015년 12월 28일 당일에 기자회견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총리로서 사죄, 국고 거출 세 가지가 미리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었다. 그 내용을 그대로 통보받았다. 2015년은 해방 70주년으로 우리에게 굉장히 의미있는 해다. 이 해에 위안부 문제 꼭 해결하자는 중요한 결의를 다졌고, 한국정부에게도 “올해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해자들도 여러차례 촉구했다. 그래서 그 해에 한일 국장급 협의가 서울과 도쿄에서 여러번 열렸다. 처음에는 외교부에게 주도권이 있었고, 그때 마다 우리가 외교부에 면담을 요청 했다. 일본과 접촉했다고 하는데, 국장급 협의를 열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 피해자가 전달했던 요구가 해결됐는지 등을 물어보고 촉구했다. 피해자들이 전달한 이야기는 2014년에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채택한 ‘일본정부에게 요구하는 제언’이라는 요구서 내용이다. 요구서에는 일본 정부가 해야할 일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첫 번째, 역사적 사실 인정해야 한다. 그 사실 안에는 위안소 운영 등 이것이 범죄라는걸 인정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 인정 위에 공식 사죄하라, 사죄하되 고노가 사과하고 아베가 번복하는 이런 방식이 아니라 다시 번복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죄하라고 얘기했다. 사죄 증거로 배상도 하라고 했다. 배상은 한국사회에서 헷갈리는 측면이 있는데 일본정부가 준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다. 그건 위로금이다. 화해치유재단의 기부금이다. 배상은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주는 금전을 말한다. 그 안에는 금전적인 배상도 있지만 비화폐적 배상도 있는 굉장히 포괄적 용어다. 그래서 배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역사교과서에 기록해야 한다는 요구도 같이 했다. 한국정부에도 숱하게 전달했고, 일본정부, UN에도 전달하고 미국정부에도 전달했다. 이 문제에 미국정부도 관련 있다고 우리가 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회에서 활동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내용이 반영됐는가를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했어야 했다. 우리를 배제하고 우리 요구 없이 그냥 체결되면 또 다시 역사는 거꾸로갈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 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일본정부가 전혀 변화가 없다”, “피해자의 요구에 진전이 없다”고 계속 답변했다. 그래서 ‘아, 이번에도 힘들구나’라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외교당국자 회의가 열리지 못 했고, 8월 아베담화가 나왔다. 위안부의 ‘위’자도 없고,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지배 책임도 언급이 없었다. 오직 서구에 대한 반성과 사죄만 있었다. 그 때 당시 ‘아, 광복 70주년이지만 올해도 그냥 지나가나보다. 우리는 내년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할머니들과 함께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실시한 TF팀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합의 주도권이 외교부에서 청와대로 넘어간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일본 총리 관저에서 합의를 긴밀하게 진행하기 시작한 시기다. 그 땐 외교부 당국자 회의가 안 열렸다. 우리는 몰랐다. TF 결과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다. 2015년 12월 24일 밤에 연내 타결을 목적으로 기시다 외무상이 방한한다는 일본발 뉴스가 떴다. 외교부에게 확인했는데 모른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모를 수밖에 없었다. 외교부가 아니라 청와대가 주도했을테니까. 그 후 뉴스에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할 것이다, 국고 거출 등의 얘기들이 언론에 조금씩 보도가 됐다. 여기에 덧붙여 한일 국장급 협의가 12월 27일 열릴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7일 오후에 한일 국장회의가 열렸다. 그 때 계속해서 언제 끝나는지 물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다 끝난 밤에, 도저히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의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밤에 언론에 나온 통보 그대로, 엠바고 상태로 통보받았다. 일본 정부 책임 인정, 사죄, 국고 거출. 기밀유지 조건이었다. 저는 기밀유지 조건에 ‘네’라곤 했지만 그 내용을 기밀유지 할 순 없었다. 그래서 법률가에게 연락하고, 일본에도 연락하고, 내일 이런 내용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침 일찍부터 법률가들을 모아 놓고 통보받은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의논했는데 아무도 이것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 때 제가 이용수 할머니도 대구에서 올라와 달라 요청해서 이용수 할머니도 논의 자리에 같이 있었다. ‘아직 이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기자회견을 보자’해서 다 같이 기자회견을 봤다. 그런데 윤병세 장관이 “이것으로 불가역적인 해결이다. 국제사회에 비난과 비판을 자제하겠다. 소녀상 철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그 때 ‘아, 국민도, 언론도, 우리도 다 속았구나’라고 생각해서 즉각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협의하지 않았다. 11차례 만난 것? 15차례 피해자 접촉? 그건 우리들이 합의에 대해 요구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만난거지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설명한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2015 한·일합의가 채택되고 일방적으로 발표됐다. 그 자리는 어떻게 진행되나 확인하는 자리였지, 공유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외교부의 대답은 늘 “진전이 없다”는 대답이 전부였다. 어떻게 일본정부가 하고 있다든가 구체적인 건 우리랑 논의하지 않았다.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한 말이 무엇이냐면 “명절 때 인사 온다고 해서 오라고 했더니, 명절 방문한 것도 15차례에 포함돼 있었어? 그럼 거부했어야 됐네?”였다. 그 정도로 2015 한·일 합의 이후 그들의 변명은 형편이 없었다. 2015 한·일합의는 일본 시민사회에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이었고, 피해자들에게도, 관련 단체에도, 인권을 위해 일해온 세계 시민사회에도 문제적인 합의였다. TF 결과에서 이면 합의까지 있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2015 한·일합의 때문에 화해치유재단 해산된 작년까지 제자리걸음이었다. 늘 일본정부는 “한·일합의로 다 끝났다. 왜 골대를 옮기냐”고 했고, 우리 정부는 합의 때문에 한 마디도 말 못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딜가든 그 합의 때문에 소녀상 철거 움직임들, 위안부는 강제연행 아니다, 독도는 일본땅이라 하는 일본의 맹공격에 대응하지 못 했다. 이런 일들이 그 합의 때문에 있었는데 그걸 사전에 협의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에 대해서도 야당이 몰아붙이고 있다. 호프집(옥토보훼스트) 맥주값 비용으로 3339만원 지출 처리됐는데, 그 호프집에선 430만원만 받았다고 한다. 차이가 많이 난다.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금액을 입력하는건 회계 담당자가 한다. 제가 추후 확인해보니까 입력하는 칸이 하나밖에 없더라. 그럼 ‘옥토보훼스트 외’라 쓰고 총체적으로 입력하는 거다. 1년에 한번 후원회를 연다. 이건 다른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옥토보훼스트는 그날만큼은 자신들의 이익을 만드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맡기지만 모든 시스템은 그대로 옥토보훼스트가 그대로 제공한다. 요리사, 자원봉사자 등을 다 옥토보훼스트 측이 제공한다. 한 해만 한 것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를 내걸었을 때 후원이 어렵다. 보통 이렇게 장소를 잘 안 빌려준다. 그런데 옥토보훼스트가 빌려줘서 그동안 해왔다. 430만원 금액 포함해서 후원회 개최에 사용된 돈이 3339만원이다. 그 날 문화행사 진행비, 감사패와 현수막 제작비, 추가적 물품 구입비, 티켓비 등 행사 하나를 하기 위해 여러 비용이 든다. 그 총비용이 3339만원이다. 그런데 마치 술집에서 하루 밤에 쓴 것처럼 보도가 나갔다. -정의기억연대는 인력부족에 따른 회계 오류를 인정했다. 공격 많이 받는 만큼 더욱 철저히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 남는다. 어떤 한계가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정의기억연대에서는 회계를 한 사람이 하고 있다. 총 인원이 8명밖에 없다. 한 사람이 영수증 발급부터, 기부금 신청하고 정부 보고하고 모든 일을 다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입력을 세밀하게 하지 못했을까 싶다. 대부분 NGO가 그렇지만 사람을 인건비 문제로 사람을 많이 고용하지 못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활동 중점은 운동을 하고, 이슈를 만들고 피해자를 지원하고 그런 일들을 계속 해야했기 때문에 회계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보완해 나가면 된다. 횡령은 아니라는 것은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다. 혼자서 하기도 버거운 일을, 그렇게 철저하게 홈택스에 입력하고, 보고하고 홈페이지에도 전체 일년 회계 결산을 보고하고 과정을 거치는데 마치 횡령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란 생각 가질 수밖에 없다. 활동가들에게 어떤 잘하라는 격려는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우려를 하지 않도록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은 좋다. 그런데 활동가들의 활동까지도 폄훼하는 그런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에게도, 활동가들에게도 상처를 주지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정의연 전 이사장 월급이 최저임금보다 높은 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도 있다. 제가 정대협 간사를할 때는 1992년도에 30만원을 받았다. 그 다음 50만원. 몇 년 지나고 80만원을 받고, 2002년도에 150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해서 270만원을 받다가, 300만원을 받았다. 이사회에서 350만원으로 작년에 올려줘서 거부했다. 그래서 300만원을 받았다. 그게 정대협 30년 일했던 제 활동비다. 그 외 교통비를 쓰거나 이런 비용들은 활동비에서 썼다. 교육하거나 연대활동 하러갈 때 그냥 가능하면 내 활동비로, 사비로 썼다. SNS에서 저는 유급활동가라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공개했다. 여러분들 후원이기에 저는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공개했고, 그리고 25년 간 수요일 책쓰고 그 돈은 박물관에 기부하기도 하고 나비기금에 기부하기도 했다. 가능하면 제 활동을 활동가로서 살고싶어서, 유급활동가긴 하지만, 그렇게 해왔다. -5년간 소득세 643만원 납부하신 걸로 나온다. 계산하면 부부 각자 연봉이 최대 2500만원대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축소 신고 한 것 아니냐는 비판 있다. 이에 반해 재산은 재산 8억원 신고했다. 시부모, 친정부모의 재산 합쳐 8억이라는데 원래 재산은 2억 정도인 것이 맞나? 맞다면, 일반적으로 이렇게 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신고했나. 국회의원 후보를 신청할 때 재산 신고하는 칸에는 부모님들까지 다 쓰게 돼 있었다. 그래서 저희 부보님 아파트, 평생을 해서 산 아파트와 지금 쓰는 차,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는 방 한 칸짜리 빌라가 다 포함된거다. 다 안 써도 되는줄은 몰랐어. 쓰라고 하니까 충실하게 다 쓴 거다. 당에도 어떤 내역인지 설명했다. 신고서를 쓸 때 당에서도, 선거관리위원회도 이 내용들을 안 써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칸이 있어서 쓴 거다. 혹시 잘못될 수 있으니까 다 선관위에서 감수받았다. 소득세는 제가 정확하게 어떻게 산정되는지 모르겠는데, 세무서 가서 떼어온 그대로 제출한거다. 평소 소득세는 정의연에서 활동비 받는 것, 가끔 원고를 쓸 때 받은 것에 대한 세금 포함된 것이니까 어떻게 하는지는 모른다. 소득세를 직접 신고하는 건 아니지 않나. 소득세는 급여를 받을 때 사무실에서 처리한다. 급여를 받으면 세금이 이미 떼진 상태에서 오지 않나. 그렇게 받았지, 그게 어떻게 산정돼서 하는지는 모른다. -딸 UCLA 유학비용을 처음엔 전액 장학금이라 했다가, 나중엔 남편의 배상금으로 해명. 이를 번복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 있다. 제가 한 번도 그렇게 번복한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말이 됐는지 모르겠다. 제 딸이 처음부터 UCLA에 간 건 아니다. UCLA에 가기 위해 언어도 해야 하고, 피아노 전공이라 그와 관련한 공부도 미리 해야 했다. 그 공부를 시카고에서 일년 간 전액 장학금을 받고 했다. 그래서 그걸 SNS에 올린적이 있다. 자랑하려고. 딸을 칭찬하려고. 딸이 시카고에서 일년 동안 공부하는데 전액 장학금 받게 됐다고 썼다. UCLA 논란 나왔을 때는 언급 필요성도 못 느꼈다. 왜 제 딸아이가 무슨 돈으로 공부하는지를 언급해야 하나. 이미 남편도, 저도 경제생활을 하고 있고, 저희 가족도 탄탄하다. 어제 소명한 것처럼 저희는 2018년에 큰 배상받은 것이 있다. 그 배상금은 제 아이가 남편이 감옥에 있을 때 태어났고, 그래서 이 배상금은 우리 것이 아니라 너의 것이라고 딸에게 말했다. 그 때 딸이 UCLA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장학금 제도가 어렵다고, 어떻게 할지 물었다. 그 때 이 돈이 있으니까 이 돈으로 공부했으면 좋겠다, 너의 꿈을 키워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대로 학비로 썼다. 딸이 이번 6월에 졸업인데 돈이 충분하다. 향간에 UCLA가 얼마다? 이런 얘기 도는데 그것도 다 소명했다. 기숙사비까지 다 합쳐도 8만 5000불이다. 딸이 2018년 9월부터 했는데 미국은 한국과 학기제가 달라서 올해 6학기를 다 마쳤다. 6학기가 총 석사학위 기간이다. 다 합쳐도 8만 5000불 정도다. UCLA와 시카고는 별도다. 일년 동안 준비하는 과정이 있고, 거기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했다. 그 공부 중에 UCLA를 지원했는데 합격했다. 장학금으로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장학금은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 돈으로 학비를 하자고 해서 쓰고 있다. -오늘 아침에 페이스북 글을 봤는데 조선일보 기자가 딸 취재 들어 갔다고 썼더라. 조선일보 반박은 그런 기자가 없다고도 하던데 어떤 일이 있었나. 카카오톡 메시지 그대로 친구가 보내왔다. 친구가 보낸 메시지에 조선일보 기자라고 하는 이름 공개 했다. 그 기자가 음대생을 찾고 있다, 그래서 너를 소개를 했다라고 하더라. 그 친구에게 와서 내 딸이 어떤 차를 몰고 다니냐, 어디서 사느냐, 놀면서 다니느냐를 물어봤다고 하더라. 이 친구가 집은 기숙사라 학교 근처고, 차는 없고 걸어다닌다고 얘기했다 하니까 “그냥 그렇게 공부만 하고 다니는 친구군요”하고 끊었다고 하더라. 소개한 친구는 조선 기자라고 소개 했고, 그 메시지에도 그렇게 써있다. -지인통해서 취재가 들어온건가? 조선일보 측에서 딸 친구를 취재하고 다니는 거다. 그리고 채널A 기자는 오늘 세 명이 저희 집을 방문했더라. 문은 안 열렸지만 세 명이 들이닥쳤다. -집에 남편분이 있었나? 딸이 있었다. 딸이 “엄마 집에 오지마”라고 하더라. 친구 취재 사건 터졌을 때 딸이 “나 때문에 엄마에게 무슨 지장있어?”라며 걱정하더라. 굉장히 성실하게 공부하는 아이다. 내가 많이 도와주지 못 했고. 그렇게 스스로 자기가 개척해서 하고 있다. -보수진영의 프레임 공격이라고 생각하나. 정의연에서는 왜곡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하는데, 당선자 본인도 법적 대응할 계획있나. 정의연에서 하고 있으니까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처벌하고 그런 것보다는 그렇게 활동가와 NGO를 공격하는,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보도하는 것에 대해서 재발 방지 차원에서 법적인 활동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고 저는 차분하게 어떻게 하면 국회활동을 잘 해나갈 것인가를 준비하고 공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퇴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던데 그러면 안 된다. 사퇴는 돌아가신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저를 지지해주는 수많은 세계 각지 동포들, 연대해주신 분들, 그 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외 동포들은 비례밖에 못 찍지 않나. 어떤 분은 윤미향을 당선되게 하려고 버스를 몇 시간씩 타고 가서 투표했고, 비행기를 타고 가서 투표했다. 그 분들의 뜻은 국회 가서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해결해 달라는 취지로 느껴진다. -이용수 할머니와 무슨 오해있었나. 만나서 풀었나. 지금 할머니와 연락이 잘 안 되고 있다. 일요일에 만나려고 할머니가 계신다는 곳으로 갔는데 결국 못 만나고 올라왔다. 지금은 할머니가 왜 그런지 안다.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 때문인가?) 저는 누가 뒤에 있고 그런 것보다도, 이용수 할머니 신고 전화를 제가 받았다. 그 때 간사는 저 혼자였고, 수많은 활동가들이 함께 했다가 그만 두고 떠나는 그런 일을 겪었다. 그런데 끝까지 할머니 곁에서 함께한 사람은 나였다. 그런 내가 국회로 떠난다니까…. 처음에 “국회 가서 할머니랑 같이 할거에요”라고 할 땐 할머니가 굉장히 신나하셨다. 그런데 심경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이 문제 해결하고 가라”고 하시더라. 제가 할머니한테 웬만하면 “네, 할머니 알았습니다”라고 하는데 이 문제는 이미 비례도 당선됐고, 또 국회로 가는 것을 저는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국회에 가서 이 문제를 계속 함께 한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계속 “이 문제 해결하고 가” 이렇게 이야기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 아니에요, 봐주세요”라고 했는데… 할머니 입장에선 배신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문제는 내가 풀어야 하고, 앞으로 활동에서도 지속적으로 할머니랑 만나려고 시도할 것이다.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와 관련해서, 수요집회를 중단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펴는데 어떻게 대응하실 것인가. 수요시위를 계속 해야 한다. 왜냐면 그동안 돌아가신 분의 약속도 그렇고, 수요시위 시작할 때 이번 정부에게 우리의 이야기는 “해결될 때까지 수요시위는 계속 된다”였다. 그 약속지키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해왔고, 오히려 이번 일로 수요시위 나오겠다는 분도 많다. 감사한 일이다. 최용상씨 발언은 일본정부가 원하는 발언이다.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 -최용상 대표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은? 이미 그 분에 대해서 많은 말을 했다. 더 이상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어떤 활동, 언행을 중단하고 태평양 피해자 유족답게 일본정부에 강제동원의 피해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함께 손잡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복동 할머니 장학금이 정의연 이사 자녀에게 지급된 것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이건 칭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평소에 늘 약자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해고된 노동자 힘내라. 쨍하고 해뜰날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라란 이야기를 해고된 노동자에게도 하시고, 세월호 희생자들 앞에서도 힘내라 하시고, 평화운동, 통일운동, 여성운동 늘 지지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재일조선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항상 나는 희망을 갖고 살았다고 말씀했기 때문에 희망을 받드는 일을 하자고 했다. 할머니가 남기신 기부금으로 한국의 시민사회 단체 자녀들, 사실 활동가들이 굉장히 어렵다. 그 활동가들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업을 해서 희망을 주자고 생각했다. 김복동이 아이들의 학업 속에 살아 있다는 것,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는 것 보여주자는 취지로 장학금을 줬다. -국회에서 어떤 활동 할 생각인가. 앞으로 위안부 운동의 방향은 무엇인가. 저는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 한일간에도 분쟁이 있고 갈등이 있지 않나. 이것을 어떻게 해결 할까 고민하고 있다. 30년 동안 활동을 해온 만큼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일본과 일본정부, 일본시민사회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가장이라기엔 어폐가 있지만 그래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부드러운 방법으로 어떻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저는 평화를 만들고 싶다. 국회는 입법기관이지 않나. 법을 활용해서 아직 완료되지 않은 진상규명, 교육 체계와 해외 각지에 이 문제 알리는 역사 인식의 확산, 그리고 일본정부가 계속 일본의 역사 인식을 홍보하는데 우리도 따로 한쪽에서 목소리를 내서 균형감 있게 인식하고 판단해서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노력 하고 싶다. 그 노력을 위해서 국회로 가겠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이번 일로 인해서 어느 누구도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이용수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거나 그런 인식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을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 국회에 가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 달라.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농구, 내 사랑”…‘만수’ 유재학의 슬기로운 감독 생활

    “농구, 내 사랑”…‘만수’ 유재학의 슬기로운 감독 생활

    “어렵고 힘들어도 농구 감독 그만둘 생각못해”“농구를 좋아하고 농구가 재미 있었기 때문에”“롱런, 운이 좋아서···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유해지려고 노력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야”“감독 초년병 때 한 쿼터에 2득점··· 흑역사”“06~07 챔프전 7차천 통합 우승 최고 순간”“양동근 없는 새시즌 팀 전체 스타일 바꿔야”“농구 감독 이후에는 가족과 시간 보내고 파”“성적도 바닥을 기어보고 다 해봤지만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농구를 정말 좋아하고, 농구가 너무 재미있으니까요.”1990년대 인기 농구만화 ‘슬램덩크’에서 농구에 대한 사랑을 수줍게 고백하던 강백호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재학(57) 감독에게서 받은 느낌이 그렇다. 만 가지 수를 발휘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지략이 뛰어나 ‘만수’(萬手)라는 별명을 가진 그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3년 재계약을 하며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가장 길게 한 팀을 지휘하는 기록에 성큼 다가섰다. 3년 후면 모비스와 19년을 함께하며 김응용(79)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이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를 지휘하며 세웠던 기록(17년 11개월)을 넘어선다. 대우 제우스, 신세기 빅스(이상 현 인천 전자랜드) 감독 시절까지 합치면 프로 감독으로 보낸 기간도 24년을 넘겨 최장 기록을 세우게 된다. 최다 1149경기 출장에 최다 662승,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에 정규리그 1위 6회…. 프로농구 감독으로서 최고 기록은 대부분 유 감독의 몫이다. 16년간 모비스 왕조를 함께 건설했던 양동근이 은퇴하며 새로운 시기를 앞두고 있다. 자유계약선수(FA)를 네 명이나 폭풍 영입하는 등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유 감독을 12일 만나봤다. -국내 프로스포츠의 거목 김응용 회장에 견줘지고 있는데. “더 오래하셨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가 비교된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젊은 선수들과 매일 같이 지내다 보니 세월 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지낸 게 아닌가 한다. 감독은 파리목숨이라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직업이라고 집사람에게 이야기하며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코트를 씹어 먹는 천재 포인트 가드로 이름을 날렸지만 스물여덟에 은퇴했을 정도로 ‘코트의 여우’로서의 생활이 짧았다.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재활을 오래하고 했으면 조금 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모교인 연세대에서 코치 제의가 들어와 ‘에라, 갈 때 가자’는 마음이었다.”-서른다섯에 감독 데뷔해 최연소 기록을 갖고 있다. 그때 품었던 목표는 모두 이루었는지. “사실 지금도 목표는 없다. 선수 때도 그렇고 목표를 정해 놓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강한 편이다.” -프로 감독은 피를 말리는 직업이다. 한 경기에서도 수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농구 감독은 특히 더 그럴 것 같다.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지치기 쉬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을 것 같은데. “힘들고 고민도 많았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다. 농구를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마음의 무게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래도 고비가 있었을 텐데. “성적이 안 나거나 뜻대로 안 될 때는 굉장히 힘들다. 젊었을 때는 부모님이나 집사람에게 괴롭다고 토로하고, 힘들다고 털어놓으면서 넘어가곤 했다.” -정말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지. “프로에 오기 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있다. 연세대 코치로 갔을 때다. 후배들을 가르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스카우트 등 농구 외적인 일이 많았다. 아버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어느 삶을 가도 힘들고 괴로운 일은 다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 듣고 고민하다가 다시 하게 됐다.”-승부의 세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시간 나면 자전거나 러닝머신을 타며 운동으로 푼다. 아니면 코치들하고 사우나를 같이하고 그런 게 대부분이다. 비시즌이 해외를 돌아다니며 외국인 선수를 보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시기인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매일 체육관에 출근하고 있다.” -감독 생활을 돌이킬 때 가장 이불킥을 하게 되는 순간은. “초년병 때 현대랑 하는데 한 쿼터에 2점밖에 못 넣은 적이 있다. 그 경기가 흑역사다. 그런 날이 있는데 뭔가 씌운 듯 자유투도, 레이업도 안 들어갔다. 팀도 창단한 지 얼마 안 됐고 선수들도, 나도 모두 어렸을 때다.” -반대로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순간은. “06~07시즌 챔피언결정전 7차전이다. 동근이도 자기 인생의 최고 경기로 꼽고 있는데 나도 그렇다. 2004년 모비스에 처음 와서 7위를 하고, 2005년 바로 정규 1위를 했다. 그리고 나서 06~07시즌에 7차전까지 간 끝에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스스로 롱런의 비결을 무엇으로 보는지. “조직을 중시한다, 수비를 강조한다, 선수들의 장점을 키워 성장시킨다…. 기사를 보면 여러 말씀들을 해주시는데 난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선수들이 전술·전략을 성실하게 따라 주지 않으면 어렵다. 내 경우 고참 선수들, 외국인 선수들을 비롯해 함께한 선수들이 대체로 잘 따라와 줬다. 그게 비결이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식사를 전원이 함께하는 규율 같은 게 있는데 어찌 보면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만 뒤에서 불평불만하는 선수들이 거의 없이 따라 줬다.”-선수 선발 때 인성을 보는 것이 아닌가. “국내 선수들은 풀이 너무 작아 그럴 여유가 없다. 잘하면 무조건 뽑아야 한다. 모비스는 꾸준히 성적을 내서 드래프트 때 뒤에서 뽑아야 했었으니까. 다만 외국인 선수의 경우 현지 관계자들에게 꼭 인성을 물어보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팀을 지휘하며 지켜온 철칙이 있다면. “단체 운동이기 때문에 동료에 대한 배려를 중시한다. 정해진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거나 연습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든가 그런 거다. 사실 훈련량이 많거나 강도가 세지 않은데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모비스는 타이트하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중간에 바뀐 것이 있는지. “요즘 굉장히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주변에서 하도 말을 많이 들어서 어투라든지 인상을 되도록 유하게 하려고 애쓴다. 내 스타일은 아니라 안 맞는 옷을 걸친 것 같아 힘든 면이 있다. 내가 유해지는 게 선수들에게 과연 좋은 일인지, 욕을 좀 먹더라도 경기력을 위해 원래대로 타이트하게 하는 게 좋은 것인지 확신은 없다. 앞으로도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경기 내내 성난 표정이라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거기에는 좀 오해가 있다. 나는 긴장하거나 무엇인가에 집중하면 미간이 모이고 눈이 올라가 화가 나지 않았어도 화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웃는 사진이 없어 사진 고르는 게 무척 힘들다. 안경 생각도 했는데 난시는 한 번 쓰면 계속 써야 한다고 해서 미루고 있다. 은퇴 전에는 한 번 써볼까 한다. 허허허.”-운명처럼 16년을 함께했던 양동근이 없는 시즌을 맞아야 하는데. “올해는 동근이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중요하다. 동근이가 핵심 역할을 했기 때문에 팀 전체 스타일도 달라져야 한다. 올해와 내년은 그런 준비를 하고 밑바탕을 깔아 토대를 단단하게 굳히는 시기라고 본다. 물론 그러면서 성적도 내면 좋겠지만.“ -리빌딩은 사실상 처음 아닌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16년 전과는 체력적으로 많이 달라졌지만 기분은 딱 모비스에 처음 왔을 때 새로 시작하는 바로 그 기분이다. 몸이 따라 줄지는 모르겠지만 선수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하려 한다. 그런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다.” -감독 커리어 이후 농구계에서 더 큰 일을 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난 생각이 다르다. 농구 감독을 오래하고 성적도 냈다고 해서 행정을 잘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단장이나 그런 쪽에는 더 잘하는 분들이 있다. 그저 재미있어서 열 살 때 농구를 시작했다. 3년 후면 농구만 해온 지 50년이 넘게 된다. 남은 시간은 가족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게 농구 감독 이후의 목표라면 목표다.” 글·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기고] 취업맞춤특기병, 미래를 디자인하다/모종화 병무청장

    [기고] 취업맞춤특기병, 미래를 디자인하다/모종화 병무청장

    “할아버지처럼 멋진 군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초등학생 손주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우리 손주처럼 하면 되지”라고 대답해 주었다. 어린 나이에 하고픈 게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물음을 갖는다는 것이 참으로 기특했다. 새삼 이런 기억을 떠올린 건 얼마 전 취업맞춤특기병의 취업 성공 사례를 접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자동차정비 기술명장을 꿈꾸던 청년은 꿈을 이루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직업전문학교를 찾아가 정비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취업맞춤특기병에 지원해 군 복무 중에도 차량정비병으로 기술을 숙련했고, 전역 후 곧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청년들에게 군 복무 중 학업이나 경력 중단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스펙이 부족한 고졸 청년들에게 취업의 문은 더욱 높아 보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저소득층, 청년 등을 대상으로 맞춤형 취업을 지원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조속히 시행하겠다고 다짐했다. 병무청도 청년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바로 기술이나 스펙이 없는 고졸 이하 병역의무자를 대상으로 한 취업맞춤특기병 제도다. 입영 전에 기술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군 경력을 쌓은 후 전역한 뒤 취업에 도움을 주도록 도입했다. 병역이행이라는 본연의 가치를 뛰어넘어 역량계발의 기회와 사회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공급해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병역과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병역의무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제도를 도입한 2014년 이후 취업맞춤특기병으로 전역한 청년 2850명 중 1597명이 취업했다. 취업률이 56%에 달한다. 기술훈련과 군 복무, 취업에 이르기까지 고용노동부와 국가보훈처, 중소벤처기업부, 참여 기업과 각 군이 제도의 성공을 위해 함께 노력한 결과다. 올해부터는 특히 우수기업 취업을 높이기 위해 각종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병무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병역의무자를 대상으로 병역진로설계 사업을 확대 추진하고 있다. 입영 전에 개인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군 복무 분야를 설계하고 복무 중 자기계발을 위한 학습정보와 군장비의 모의체험 등 군 생활 정보도 제공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우리 청년들이 군 복무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군 복무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견인하는 마중물이 되는 것, 병무청장으로서의 간절한 소망이다.
  • “3년간 기부금 41% 피해자 지원”… 정대협 회계 섞여 비율 들쑥날쑥

    “3년간 기부금 41% 피해자 지원”… 정대협 회계 섞여 비율 들쑥날쑥

     후원금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논란이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기부금 중 피해자 지원금이 41%를 차지한다고 공개하는 등 해명에 나섰다. 쓰임새가 달라진 ‘고(故) 김복동 할머니 장학금’은 김 할머니가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사회구조적 피해자들을 위해 썼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1시간을 넘긴 기자회견에도 기부금 사용처 등 일부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아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의연은 11일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사람 다목적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원금 사용 세부 내역을 공개했다.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이 후원금을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문제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1 정의연 후원금 왜 다른 데 썼나  정의연은 이날 후원금 사용 내역을 공개했다. 정의연은 피해자 후원금 논란이 단체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정의연은 단순히 위안부 피해자의 생활안정을 지원하는 단체가 아니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 수요집회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단체라는 것이다.  이날 정의연이 공개한 사업수행비용에 따르면 2017~2019년 목적지정 기부금을 제외한 일반 기부금 22억 1900여만원 중 피해자 지원 사업 지출은 9억 1100여만원으로 약 41%를 차지한다. 목적지정 기부금은 김복동센터 건립 등 후원자가 특정 사업을 위해 써 달라고 지정해서 기부한 금액이다. 2 2년간 피해자 지원 비율 6% 미만  연도별로 보면 지난해 전체 사업비 13억 6300여만원 중 피해자 지원금은 37%다. 2018년은 12억 2600여만원 중 5%, 2017년은 15억 7500여만원 중 75%에 해당한다.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금 비율이 들쑥날쑥한 것에 대해 “2018년에는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피해자 지원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정의연 회계에는 5%만 나타난다”고 밝혔다. 다만 정의연은 일부 회계 표기에 대한 잘못은 인정했다. 정의연은 국세청 홈택스에 공시된 정의연 기부금 활용 내역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수혜 인원 ‘999명’, ‘9999’명 등에 대해 “부족한 인력으로 실무편의적 태도를 보인 결과”라며 사과했다. 3 진보진영 자녀 김복동장학금 혜택  정의연은 정의연 관련 인사 및 진보사회 단체 자녀들이 ‘김복동 장학금’을 받았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김복동 장학금은 2016년 김 할머니가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5000만원을 기부하며 시작됐다. 김복동 장학금을 운영하는 단체 ‘김복동의 희망’은 김 할머니가 지난해 1월 별세한 후 같은 해 3월 장학금을 확대개편하면서 ‘국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로만 한정한 장학금을 추가로 만들었다.  장학금 지급 대상이 확대되면서 당시 정의연 이사의 자녀가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장학금 수혜자들이 진보계열 시민단체 활동가의 자녀들로 밝혀졌다.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할머니의 당초 취지와 달라진 부분이다.  정의연은 이에 대해 “김 할머니는 평소에도 쌍용차 노동자들, 사드 반대 시민 등 재일조선학교 학생들뿐 아니라 사회구조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면서 “그 뜻을 받들어 시민단체 자녀들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4 윤미향 당선자 자녀 유학자금 출처  이날 정의연 전 이사장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윤미향 당선자는 딸의 미국 유학 비용 출처 논란에 대해 “간첩조작 사건으로 고통받은 남편과 가족의 배상금”이라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2018년 자녀 유학을 고민할 당시, 남편의 배상금 지급이 이뤄졌다”며 이같이 소명했다고 시민당 제윤경 대변인이 전했다.  윤 당선자의 남편인 김삼석씨 남매는 1993년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14년 재심을 청구해 간첩 혐의 무죄를 선고받았고 2018년에는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했다. 윤 당선자 남편이 받은 형사배상금은 1억 9000만원, 남편의 가족들에게 지급된 민사배상금은 8900만원이다. 현재까지 지출된 윤 당선자 딸의 학비·생활비는 약 8만 5000달러(한화 약 1억원)로 배상금 총액보다 적다.  시민당 관계자는 “윤 당선자 가족은 지급받은 배상금을 (간첩조작 사건) 당시 뱃속에 있던 딸의 몫으로 보고 학비로 지원하는 상황”이라며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윤미향 “간첩사건 배상금으로 딸 유학 지원” 해명

    윤미향 “간첩사건 배상금으로 딸 유학 지원” 해명

    딸 유학 비용 출처 관련 해명2018년 국가 상대 손배소송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는 11일 최근 논란이 된 딸의 미국 유학 비용 출처에 대해 “간첩조작 사건으로 고통받은 남편과 가족의 배상금”이라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2018년 자녀 유학을 고민할 당시, 남편의 배상금 지급이 이뤄졌다”며 이같이 소명했다고 시민당 제윤경 대변인이 전했다. 최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 기부금 운영이 불투명했다고 주장하자 기부금 일부를 딸의 유학비용으로 쓴 게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이 일었다. 연간 수입이 많지 않은 윤 당선자가 딸의 미국 UCLA 유학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점에 근거해 의혹이 제기되자 배상금을 활용했다고 해명한 것이다. 윤 당선자의 남편인 김삼석씨와 그 동생 김은주씨는 1993년 국가안전기획부가 발표한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14년 재심을 청구해 간첩 협의 무죄를 선고받았고, 2018년에는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했다. 윤 당선자 남편이 받은 형사배상금은 1억 9000만원, 남편의 가족들에게 지급된 민사배상금은 8900만원이다. 현재까지 지출된 윤 당선자 딸의 학비·생활비는 약 8만 5000달러(한화 약 1억원)로 배상금 총액보다 적다. 시민당 관계자는 “윤 당선자 가족은 지급받은 배상금을 (간첩조작 사건) 당시 뱃속에 있던 딸의 몫으로 보고 학비로 지원하는 상황”이라며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윤 당선자가 정의연의 성금·기금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았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윤 당선인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소명이나 해명이 필요하지 않은 내용”이라며 “당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신임 검사에 당부한 추미애 “정의가 살아 숨 쉴 수 있게 해달라”

    신임 검사에 당부한 추미애 “정의가 살아 숨 쉴 수 있게 해달라”

    로스쿨 출신 70명 임관식2012년 첫 임용 후 최대추 장관 “인권 보호” 강조코로나19로 참석자 제한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제9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70명이 11일 검사로 신규 임용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신임 검사들에게 인권 보호와 정의 실현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추 장관은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검찰의 최우선 가치는 인권 보호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개선할 사항은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n번방 사건에서 보듯이 국민은 변화하는 사회현상과 신종 범죄에 법이 빠르게 응답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국민이 요구하는 정의가 우리 사회에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우리 이웃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로스쿨 출신은 적게는 35명(2014년), 많게는 55명(2019년)이 신규 검사로 임용됐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5명이 늘었다. 2012년 로스쿨 출신 검사가 처음 임용된 후 최대 규모다. 선발 과정에서는 지원자의 인적 사항을 평가 위원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법학(학부 기준) 전공자는 22명으로 전체의 31.4%에 그쳤다. 신임 검사들은 이날 서울동부지검 등 24개 일선 검찰청에 가배치된 상태다. 앞으로 9개월 간 수사 실무, 윤리 교육, 일선청 수습 실무 등의 교육을 받은 뒤 내년 상반기 정기인사에 맞춰 정식 배치된다. 신임 검사 중에는 공인회계사, 변리사, 한의사, 약사 등 전문 경력을 갖춘 이들도 포함됐다. 이날 임관식에는 신임 검사들의 가족들도 참석했다. 다만 최근 서울 이태원 클럽을 출입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 추세를 보이자 참석 가능 인원을 신임 검사 1인당 가족 2인으로 제한했다. 법무부 직원도 제한하면서 고기영 차관, 구본선 대검 차장검사 등 법무부와 검찰 고위인사 일부만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전원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임관식을 지켜봤다. 신임 검사들은 이날 추 장관으로부터 임명장을 전달받은 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이동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참석한 신임 검사 임관식은 비공개로 열렸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70% 지지율 자신감… “마지막까지 국민과 국난 극복 매진”

    70% 지지율 자신감… “마지막까지 국민과 국난 극복 매진”

    개혁 과제보다 코로나 생존전략 초점문재인 대통령은 남은 2년 임기 동안 코로나19 극복에서 한발 더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질서 재편을 선도하겠다는 구상을 10일 내놓았다. 고용안전망 확대로 코로나 극복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한편 첨단산업의 세계 공장화와 ‘한국판 뉴딜’로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집권 4년차 구상에는 중간평가 성격인 4·15 총선 압승과 1987년 민주화 이후 4년차 정부로는 역대 최고치인 70% 안팎의 지지율에 따른 자신감이 묻어난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위기를 가장 빠르게 극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임기 마지막까지 위대한 국민과 함께 담대하게 나아가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5월 취임 2주년 대담,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과 일자리·규제 혁신, 부동산 대책, 북미 교착을 풀기 위한 남북 협력까지 국정 과제들을 망라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오롯이 코로나19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전략에 무게를 둔 점도 눈에 띈다. 최근 논란이 일던 전 국민 고용보험제 추진을 공식화한 것도 지금이야말로 사회안전망 확충을 의제화하기에 적절한 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영업자 확대나 재원 마련 등 충분히 논쟁적인 사안임을 감안해 ‘사회적 합의’, ‘단계적·점진적’ 추진을 거듭 강조했다. 총선 압승 이후 여권 내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공감대도 코로나19 극복 ‘올인’과 맞닿아 있다. 2004년 탄핵 직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고도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과거사기본법·사립학교법·언론관계법)의 ‘늪’에 빠져 2007년 대선마저 패배했다. 생존 위기에 몰린 다수 국민의 삶과 거리가 있는 개헌이나 휘발성 짙은 개혁 과제보다는 코로나19 극복과 이후 생존전략을 고민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당 180석 총선 승리와 70%대 국정지지율에 담긴 민심은 ‘위기 극복에 대한 주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해묵은 개혁 과제를 마냥 미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향후 ‘우선순위’와 ‘속도조절’을 둘러싼 논란도 예상된다. 동시에 ‘한국판 뉴딜’ 등 코로나19 극복을 빌미로 규제완화 등 ‘재난 자본주의’가 확산될 것이란 우려 또한 청와대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한국판 뉴딜)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는 물론 의료와 교육의 공공성 확보라는 중요한 가치가 충분히 지켜질 수 있도록 조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미디어캔, UHD 채널 ‘유맥스’ 인수… AXN 토·일 ‘걱정마수다#‘

    미디어캔, UHD 채널 ‘유맥스’ 인수… AXN 토·일 ‘걱정마수다#‘

    미디어캔(대표 손현아)이 UHD 전문채널 ‘유맥스’(UMAX) 법인 인수계약을 체결했다고 8일 밝혔다. 지난해 10월 소니픽처스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채널 ’AXN 코리아’ 인수에 이은 인수합병(M&A)이다. 대형 ‘복수 채널사용 사업자’(MPP)가 줄고 있는 모습과 다르게 미디어캔이 연이어 채널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자회사 필콘미디어를 통해 이미 AXN, 하비라이프, 스테이지쇼TV 등 3개 채널을 운영해온 미디어캔은 UMAX 인수로 4개 채널 운영 MPP로 도약할 계획이다. UMAX는 국내 유료방송사업자(SO)들이 설립한 홈초이스가 2014년 론칭한 세계 최초 24시간 UHD 전문채널이다. 지난해엔 8K 업스케일링 관련 특허를 취득했다.미디어캔의 자체 콘텐츠 제작도 대거 확대된다. 미디어캔은 이번달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자체제작 콘텐츠 ‘걱정마수다#’의 비공개 시사를 지난달 28일 진행하기도 했다.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당시 행사는 주주와 임직원, 출연자, 일부 시청자들이 참석해 프로그램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과 촬영 후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걱정마수다#’은 일반인 대상으로 예약제 샵을 운영해 의뢰인의 고민 상담과 맞춤형 변신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방송인 지상렬을 비롯해 개그맨 이상준, 오세일 헤어 디자이너, MC 조은나래, 양재진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고정 출연했다. ‘걱정마수다#’은 필콘미디어 채널 ‘AXN’에서 지난 2일부터 매주 토, 일 오전 11시, 오후 8시20분에 방송된다. 미디어캔은 올 하반기 종합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미디어캔 사업전략실 유진희 부장은 “이번 UMAX 인수 및 오리지널 콘텐츠 ‘걱정마수다#’ 론칭은 미디어캔의 MPP 사업자로서의 본격 활동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캔은 올해 총 10개 프로그램, 150편 이상 자체제작 콘텐츠를 모두 UHD 초고화질로 제작할 예정이다. 이 중 5개 프로그램(약 60편)은 이미 제작 중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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