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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곡물생산/4년만에 소비량 초과 예상/미 농무부

    ◎수확 8% 늘어 18억여t… 3천만t 남을듯/밀 등 대거증산 영향 【워싱턴 로이터 연합】 96/97년 세계 곡물생산량이 4년 만에 처음으로 소비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미농무부가 10일 전망했다. 세계 곡물재고는 보관곡물이 소비됨에 따라 올해 수확 직전이면 70년대초 이래 최저수준인 2억3천3백60만t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미농무부는 96/97 경작연도에 대한 1차 전망에서 세계 곡물생산이 밀과 사료용 곡물의 대거 증산에 힘입어 8%가 늘어난 18억3천4백만t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밀 생산은 5억7천8백50만t으로 지난 몇년간 최다 생산해에 들 것으로 예상됐다. 한편 96/97년 곡물 소비량은 95/96년도보다 4천3백만t이 많은 18억5백만t으로 증가,세계 곡물재고를 2억6천2백만t으로 증대시킬 것으로 전망됐다.
  • LG/지구촌 곳곳에 「CDMA」 수출 “박차”

    ◎중남미·동남아 겨냥,단말기 공급 등 적극 추진/STAREX 독자 개발… 세계수준 기술 두각/루마니아등에 연구법인 설립… 「해가 지지않는 개발체제」 구축 우리나라 최초의 통신·방송복합위성인 무궁화호 제작에 참여,무선통신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세계최초로 CDMA상용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국내 이동통신의 수준을 세계수준으로 높인 LG정보통신은 79년 설립이래 우리나라의 통신산업을 선도해 왔다. LG정보통신은 독자모델 교환기 STAREX시리즈 및 TDX를 생산하는 교환기분야,CATV,원격화상회의 등의 영상망분야.LAN,VAN,WAN 등의 전송시스템분야 그리고 핸드폰,무선호출기등을 생산하는 단말기분야에서 현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79년이래 통신산업 선도 STAREX는 일종의 주차수 공용시스템으로 이는 한정된 주파수를 다수의 이용자가 공용하는 첨단무선통신방식이다.통화품질이 좋고 음성·데이터통신이 가능할 뿐 아니라 셀룰러 이동통신 기능인 개별통신 외에 PSTN통신도 가능해 동시에 지령이 필요한 항만 및 치안,운수,건설 등의 서비스분야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로 현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이동전화수요를 효과적으로 분산수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LG정보통신은 이미지를 새롭게하기 위해 지난 95년 상호를 금성정보통신에서 LG정보통신으로 변경하고 기업을 공개,국민기업으로 재탄생했다.LG정보통신은 지난해 지속적인 연구개발투자를 통한 경쟁력향상으로 매출과 수익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했다.먼저 매출에 있어서는 5천1백27억원을 달성,전년도 대비 52%의 성장을 이룩했다.수익에 있어서도 전년도 대비 120% 증가한 2백66억원의 경상이익을 거뒀다. ○작년 경상이익 120% 증가 이같은 경영성과는 지난해 LG정보통신이 세계최초로 상용화한 CDMA장비출시,FLC,SDH 등과 같은 광전송장비의 판매확대 및 통신단말 매출의 신장에 따른 것이다. 그 중에서도 먼저 경영의 세계화를 위한 활동을 살펴보면 지난 92년 국내최초로 베트남에 교환기를 수출한지 4년만에 교환기수출 1백30만 회선을 돌파하는 성과를 업계 최초로 이룩했으며 미국내 장거리전화운영사업 및 인도의 통신운영사업에 진출,필리핀의 TRS망 구축사업 수주 등 해외에서 사업영역을 크게 넓힌 바 있다. 또 연구개발의 세계화로 세계전역에서 24시간 연구개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에 연구법인을 설립하였고 베트남과 루마니아의 현지법인에는 연구개발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국내 소재 3개연구소와 더불어 「해가 지지않는 연구 개발체제」구축을 완료했다. ○이웃사랑 운동도 전개 이밖에도 PCS개발,멀티미디어사업강화 및 초고속통신망 시범사업참여 등과 같은 미래사업에 대한 대비를 해왔으며 환경친화적 기업경영과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펼친 「사랑의 생명삐삐」보급운동 등과 같은 이웃사랑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더불어 함께하는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도 잊지 않고 있다. 한편 LG정보통신은 금년초에 회사의 2005년 장기목표를 「세계 톱10 종합통신기기 사업자」로 구체화했다.그리고 96년도 매출목표를 95년 대비 46% 신장된 7천5백억원으로 설정했으며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CDMA장비와 단말기의 판매를 가속화하고 초고속통신망의 ATM교환기와 광전송장비 및 멀티미디어장비 및 판매를 확대하여 현재의 시장위치를 확고히 지켜나가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해 LG정보통신은 올해를 「환경경영의 해」로 정하고 「가치경영,인재경영,품질경영,고객경영의 심화」 「경영의 세계화」 「연구개발의 세계화」 「미래사업의 세계화」를 경영의 4대과제로 선정해 세계속의 초우량 LG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LG정보통신의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CDMA이동전화시스템 개발이다.LG정보통신은 지난해 5월 한국이동통신의 CDMA 이동전화 시스템공급업체로 선정되었으며 95년 10월에는 한국전파연구소로부터 CDMA기지국 장비 및 단말기의 형식검정을 획득했다. 이에따라 올 1월1일 인천·부천지역에 CDMA 이동전화시스템이 설치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서울과 수도권 및 대전지역에 장비를 설치,4월 운용에 들어갔다. 한편 LG정보통신은 CDMA와 관련,브라질의 유수한 통신장비제조업체인 스플라리스사와 자본합작을 통한 중남미시장 진출방안을 적극 모색중이고 동남아 시장을 겨냥,베트남에서 열린 「텔레콤 95」에도 장비를 출품한 바 있다.또 중국,인도네시아 등의 국가기관 및 통신업체와 CDMA장비와 단말기 공급 및 망구축에 대한 기술제공도 적극 추진중이다. LG정보통신은 이밖에 국내최초로 지난 93년 8백MHz의 주파수공용통신 시스템을 개발한데 이어 95년 2월에는 3백80MHz의 주파수공용통신 장비개발에도 성공함으로써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이 대역의 장비를 모두 독자기술로 개발한 기업이 됐다. LG정보통신은 최근들어 기업의 주요기밀 보안 및 사원복지,그리고 고객관리 등의 용도를 IC카드의 다양한 기능을 기용한 기업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IC카드사업부분을 대폭 강화했다. ○브라우터 사업에도 역점 국가프로젝트사업 참여를 통한 전국민 IC카드화를 선도하며 개인정보화 실현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목표아래 LG정보통신은 지난 89년부터 사업을 추진,내무부 주민전산망 보안장비,한국통신 IC카드 시범시스템 납품등 국내 유력기관에 IC카드를 도입해왔다. LAN의 중요성이점점 높아져가고 있는 가운데 LG정보통신은 「브라우터」사업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브라우터는 브리지와 라우터의 합성어로 서로 떨어져 있는 LAN과 LAN을 연결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는 장비를 말한다.LG정보통신의 브라우터는 FDDI,THERNET과 WAN을 접속시켜 지역간 상호연동이 가능하도록 한 장비로 림모트 및 로컬관리기능을 지원하며 슬롯형으로써 사용자환경에 맞는 4종류로 구성돼 있다. LG정보통신은 국내통신시장 개방을 앞두고 핵심부품의 개발,시스템의 신뢰성 향상 등에 주력할 계획이다.〈고현석 기자〉
  • 비디오작가 백남준(이세기의 인물탐구:96)

    ◎규격을 거부하는 첨단예술가/텔레비전 주사선 조작으로 비디오예술 “창시”/기존관념에 도전… 어떤 일에도 의미부여 안해/개관이래 외부 나간적 없는 뉴욕 휘트니비엔날레 93년 국내 유치도 멜빵 달린 바지에 두꺼운 신문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뉴욕의 「남준 백」은 상오 11시께 아침식사를 하러 소호로 나온다.단골식당은 그의 스튜디오가 있는 스프링스트리트 코너바.아주 천천히 야채샐러드 한접시를 다 비우고 스테이크나 생선,롤빵을 더 시켜먹는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신문을 읽는다.뉴욕타임스,인터내셔널헤럴드튜리뷴,월스트리트저널을 샅샅이 읽고 한국신문도 훑어본다.임대료가 비싼 남의 스튜디오를 빌려 쓰기 때문에 주로 밤샘작업을 하는 편이고 취미는 낮잠과 산책.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겉모습은 언제나 천진무구하기만하다. 그러나 어눌한듯 하면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의 성찬은 상대방의 질문에 선문선답식으로 우회하거나 때로는 정곡을 찌르면서 그속에 해학과 사물에 대한 통찰이 숨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84년,34년만에 고국땅을 밟으면서 「예술은 사기」라고 한 말은 당시 우리의 지적분위기에서는 폭탄선언이었고 『왜 무엇을 근거로 예술이 사기인가』라는 논란과 함께 오랫동안 문화예술계에 혼란의 파장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그가 비디오아트를 하게된 동기는 너무나 「간단」하다.기술잡지에서 본대로 텔레비전의 주사선만을 조작했는데도 『펑펑 새로운 그림이 쏟아져나왔다』는 것이고 『비디오무용만 해도 세상만사 아무거나 찍어서 이어붙이면 무용이 된다』고 대수롭지않게 말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92년 8월,동숭동 문예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무용가 김현자와의 퍼포먼스를 예로 들수 있다. 그날 그는 직접 무대에 나와 피아노에다 못을 박거나 피아노건반을 의미없이 튕겨보기도 하고 손가락을 허공중에 찔러보는 지루한 되풀이를 계속하고 있었고 김현자는 김현자대로 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춤을 추어대고 있었다. ○“예술은 사기” 충격선언 동양철학을 하는 도올 김용옥은 이 공연을 보고 처음엔 『공연자체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다른 범인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 천재이거나 범인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천재』일꺼라고 비꼬았다.반대로 가야금명인이자 현대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황병기는 『우리가 얼마나 부질없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부자연스럽게 살고있는지를 너무도 강렬하게 반영해준 천재의 공연』이라고 호평해 마지않았다.그러나 『왜 공연을 한시간만에 끝냈느냐』는 질문에 백남준은 『그렇게 지루한걸 뭣하러 오래해, 빨리 끝내는게 좋지』 두사람의 엇갈린 비평을 일시에 일축했다. 그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대규모 회갑전을 본 도올은 『광대한 화폭이 끝없이 움직일뿐만 아니라 눈길이 닿는 순간마다 변화무쌍을 구사하는 그의 색채예술에 현혹되지 않을수 없었다』고 고백하게 되었다.『그는 무엇보다 정감이 가는 인간이며 해탈한 인간,그리고 그 인간이 훌륭하다』고 전제하고 「무위적 행동속에 유위」를 창조하는 백남준에게는 『참으로 광막한 지식의 세계가 엄존하고 있으며 관심의 초점이 맞닿는 곳마다 확고한 전거와 자기류의 해석을 가지고 있었다』고 감탄했다.실제로 그는 「한국의 역사는 물론 중국 노장과 주자학의 도덕적 엄격주의,명대사회의 개인주의와 시민정신을 표방한 양명학,삼국유사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고 디테일한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러나 막상 백남준은 「천재의 둘째」라면 서러워할 김용옥이 누구인가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머리를 빡빡 깎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절깐의 중놈취급」하여 도올이 그의 저서를 증정하자 『왜 스님이 한글로만 책을 썼느냐?한문 없는 거는 책두 아니다. 난 그런 책은 안본다』고 묵살한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일탈한듯 방심한 듯한 그의 움직임을 세세히 뜯어보면 서구사회에서 물든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세속적 관심과 유행의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고 디컨스트럭션(비구조)과 디포메이션의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에서도 정통성과 엄숙성,현실에 대한 야유와 풍자,시니시즘과 현란미까지도 치밀한 계산에서 종횡무진 모자이크하고 있음을 간파할수 있다. ○6·25 나던해 도일 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화랑에서 열린 「존케이지에 대한 경의」만해도 단순히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른 행위예 불과한것 같지만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뿐만 아니라 두둘겨 부술수도 있다」는 기존관념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파괴의 실천임은 말할것도 없다. 콩을 던지고 쉐이빙 크림을 바르고 자신의 웃통을 벗은채 「인간첼로」가 되는가 하면 바이올린을 강아지처럼 끌고 다니는 그의 뒷모습에선 틀에 박힌 모든 일상에서 훨훨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의 묘한 아이러니와 비애감이 물씬 풍겨난다. 대표작의 하나인 「달은 가장 오래된 TV이다」도 마찬가지다.「초승달에서 그믐달까지 달의 차고 기우는 과정을 교교한 시적차원으로 창출한 반면 TV모니터와 대좌한 「TV부처」의 경우는 「동양적 사유와 첨단기술이 서로 깊이 조응하는 무시무종의 윤회」를 구사하면서 기계의 철학화와 종교화를 꾀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산것은 6·25가 나던해 일본에 건너가기 전까지 18년 뿐이다.태창방직 설립자인 백낙승씨와 조종희씨의 3남2녀중 막내,종로구 서린동에서 그가 어린시절 「가장 재미있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피아노」였고 경기중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분배의 정의없이는 의를 실현할수 없다」는 사상이 지금까지도 「남의 모방이나 티내는 예술을 거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는 7월17일 독일의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 50주년 기념행사 오프닝콘서트등 전세계를 누비는 전시와 공연에 쫓기는 중에도 기업체로부터 의뢰받은 작품제작을 위해 1년에 한번은 서울에 오고 그때마다 「부자가 많은 서울」에 익숙지 못한 그는 호텔비가 저렴한 변두리쪽에 숙소를 정하고는 반드시 만날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호텔프런트에 「암호」를 대게하는 여전한 장난기를 누리기도 한다. 알뜰하고 낭비가 전혀 없지만 지난 93년에는 1억원이 넘는 돈을 내놓아 개관이래 외부에 나가본 적이 없다는 뉴욕 휘트니비엔날레를 국내에 유치했고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정보예술전에는 세계적인 미술인등 컴퓨터천재 60여명을 초청,고국의 미술계발전을 위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일본인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구보전성자)와는 77년 뉴욕에서 결혼,시게코도 비디오작가이지만 둘이는 서로의 작업을 존중하고 철저히 방해하지 않는다. ○부인도 비디오 작가 그에대해 확신할수 있는 것은 그는 규격화를 거부하는 첨단예술가,행위예술가로서 어떤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모든 상식과 틀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때문에 수시로 파괴되고 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프랑스의 미술평론가 장폴 파르지에는 그런 그를 향해 「피카소이후 20세기작가 중에서 유일하고도 진정한 새로운 구상형식의 창시자」로 단정짓고 도올역시 「그는 한국이 낳은 예술가이긴 하지만 한국예술가는 아니며 마르셀 뒤상 막스 에른스트 쉔베르크와 머스커닝햄,그가 친애해 마지않던 존케이지 조셉 보이스와 함께 세계적 예술가」로 정의를 내리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형태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이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예술가」이며 더욱 확실한것은 예술가의 온상인 뉴욕하늘에 뜬 수많은 「별」들중에서도 특히 특별한 광채를 발하는 「아주 눈부신 존재」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연보 ▲1932년 서울출생 ▲1956년 동경제대 졸업,독일 뮌헨대 쾰른콜로뉴대서 작곡수업 ▲1957년 프라이부르크 뮤직콘설바토리 입학,다름슈타트 강좌참가 ▲1960년 플럭서스결성 ▲1963년 독일 첫비디오 개인전 ▲1965∼77년 미국 첫개인전이후 유럽및 남미 전미국연속순회 ▲1978년 뒤셀도르프 국립미술대 초빙교수,파리·도쿄개인전 ▲1982년 뉴욕휘트니미술관주관 백남준 회고전,플럭서스 20주년기념전 ▲1984년 우주오페라 △1부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도쿄·몬트리올개인전 ▲1986년 우주오페라 2부작 「바이바이 키플링」,체이스맨해튼소장전 ▲1988년 서울현대화랑 개인전,국립현대미술관에 「다다익선」설치.우주오페라 3부작 「손에 손잡고」발표 ▲1989년 서울현대화랑서 조세프 보이스를 위한 진오귀굿 추모공연 ▲1991년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백남준 대회고전」순회전시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백남준회갑기념전,「92 춤의 해를 위한 김현자와의 퍼포먼스」(서울문예회관) ▲1993년 대전엑스포 비디오아트쇼,뉴욕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유치 ▲1994년 밀라노 두오모성당광장 공연,파리 퐁피두센터공연 ▲1995년 광주비엔날레특별전,제네바 유엔창립 50주년기념행사참가,조선일보미술관·갤러리현대·박영덕화랑 개인전등 수백여회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기념전 〈수상〉 독일 캐피탈지 「세계의 톱미술가」5위(93∼95년),스웨덴 스톡호름 아트페어 「올해의 미술가」(95),93,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호암상예술상(95년)
  • 「이」,레바논 게릴라기지 맹폭/대헤즈볼라 보복공격

    ◎레바논군 등 17명 사상 【베이루트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은 11일 레바논내 친이란계 헤즈볼라에 대한 보복으로 이들의 근거지에 헬기와 전투기를 동원한 대대적 폭격을 가했다. 레바논 보안관계자들은 이날 폭격으로 레바논 정부군 병사 1명을 포함해 최소한 5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아파치 헬기들은 상오 11시(현지시간)쯤 해상쪽에서 급속도로 날아와 베이루트 남부 교외의 헤즈볼라 지휘소 등 목표물들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으며,동부와 남부 레바논의 게릴라 진지에도 전투기와 헬기에 의한 폭격이 이뤄졌다. 이스라엘이 지난 82년 팔레스타인 게릴라 소탕을 이유로 베이루트를 침공한 이후 공격에 나선 것은 14년만에 처음이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폭격이 지난 9일 헤즈볼라 게릴라들이 양국 사이의 안전지대에 있는 키리아트 시모나 마을에 로켓포 공격을 가해 36명이 부상하고 군인 1명을숨지게 한데 대한 보복공격임을 분명히했다.
  • 투금사 24년만에 없어진다/7월부터 전국 15개사 종금사 전환

    서울의 8개사를 비롯한 15개 국내 투자금융회사가 상반기중에 모두 종합금융회사로 전환돼 7월부터 종합금융업무를 시작한다. 재정경제원은 2일 금융기관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투금·종금업무를 통합하는 내용으로 작년말 개정된 종합금융회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달중 종금사 전환 인가 신청을 접수한 뒤 5월에 인가를 내주고,6월중 국제금융·리스업무 등 다른 법률에 의한 인허가절차를 마친 뒤 7월부터 종금업무를 취급하도록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종금사로 전환하면 어음 및 채무증서 발행·할인·매매·중개 등 투금업무외에 시설대여(리스)업,증권투자신탁업,유가증권 매매·중개업,외국환업무 등 종금업무를 모두 할 수 있게 된다. 재경원은 그러나 상환기일을 경과한 부도어음·수표 등 부실자산 규모가 자기자본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건전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충족할 때까지 종금사 인가를 받더라도 현재의 투금업무만 취급하도록 업무를 차등화할 방침이다. 이로써 투금사는 지난 72년 사채시장 양성화 조치로 생겨난 뒤24년만에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재경원은 자본금 규모가 적은 투금사에 대해서는 상호신용금고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증시사정으로 금융기관 증자가 어렵고 상호신용금고도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모두 종금사로 전환하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 일 주가 4년만에 최고치 2만1천5백엔 기록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주가가 1일 거품경제 몰락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이날 도쿄주식시장의 니케이평균주가지수는 하오 3시 지난주말에 비해 1백53엔54전이 오른 2만1천5백60엔39전으로 지난 92년 8월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거래량은 3억5천9백만주였다. 일본 주식시장의 주가는 거품경제 몰락후 92년 8월 1만4천3백9엔으로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그 뒤 등락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회복돼 왔다. 주가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금융기관의 결산기대책 매도세가 지난주에 끝난데다가 경기회복세로 지금까지 신중하던 일본 국내기관투자가와 외국인투자가들의 매수가 활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소설가 이문구(작가를 찾아:4)

    ◎“사회밑바닥 경험이 내 문학의 바탕”/9살때 남로당출신 부친­형들 잇따라 피살/고아로 무작정 상경­행상·막노동 닥치는대로/김동리 선생이 「노가다판 문장」 인정해줘/중학때 떠난 고향 72년 「관촌수필」통해 귀향 「그녀는 별쭝맞게도 눈치가 빨라 무슨 일에건 사내 볼 쥐어지르게 빤드름했고 귀뚜라미 알듯 잘도 씨월거리곤 했는데,남좋은 일에는 개미허리로 웃어주고,이웃의 안된 일엔 눈물도 싸게 먼저 울어댔으며,욕을 하려 들면 안팎 동네 구정물은 혼자 다 마신듯이 걸고 상스러웠다」(연작소설 「관촌수필」중 「녹수청산」에서) 작가 이문구(55)씨의 글은 누가 봐도 이문구답다.능수버들처럼 척척 늘어지고 휘감기는 문장,어지러울 정도로 넘쳐나는 토박이말과 사투리.마치 판소리 사설을 되살린 듯한 이문구 소설의 생명력은 무엇에서 나올까. 그 비밀을 찾아나선 날은 꽃샘추위로 바람이 거칠고 하늘은 잔뜩 찌푸린 3월 중순이었다.작가는 마침 고향인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 그의 「작업실」에 있었다.청라저수지를 낀 언덕배기 빨간 벽돌집에는 어엿한 당호는 커녕 문패조차 없었다.주인을 암시하는 건 「문학의 해」를 알리는 스티커뿐이었다. ○판소리 사설 문제 이씨는 『한달에 20일쯤은 작업실에 있어야 글을 좀 쓰게 된다』면서 『지난 겨울엔 거의 들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문학의 해」집행위원회 홍보·출판 분과위원장,계간 「한국소설」편집위원장 등 맡은 일이 많아 수시로 불려다니기 때문이라는 것.문단의 공식행사건,문인들이 초상을 치루는 사사로운 자리건 남들은 으레 그가 끼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본인도 즐겨 뒤치다꺼리를 맡는다. 그는 지난 89년 고향에 작업실을 마련했다.10년 넘게 앓던 위궤양에 간염까지 겹쳐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가족을 서울에 남기고 요양하러 혼자 내려온 지 3∼4년만에 건강을 완전 회복해 이제는 글쓸 때만 이곳에서 보낸다.그가 태어나고 「관촌수필」의 무대가 된 관촌(갈머리,지금의 보령시 대관동)마을하고는 산하나 너머 거리로,원래 일가붙이가 비우고 간 오두막을 친구들이 개조해 주었다고 한다. 그의 귀향은 여느 사람들의 그것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고향이라면 흔히 어머니의 품처럼 여기지만 이씨에게 고향이란 「견딜 수 없어 도망쳐 나온 끔찍한 곳」에 불과하다. 이씨는 대대로 벼슬을 한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다.8순인 할아버지는 「조선조 마지막 유생」같은 분,아버지는 신식 지식인으로 남로당 보령군 총책을 맡고 있었다.그가 아홉살 때 「6·25」가 터지자 아버지는 예비검속돼 피살되고,형들도 「빨갱이 자식」이란 이유로 살해당한다.할아버지·어머니도 잇따라 세상을 떠나 이씨는 고아가 된다. ○서양식 작법 무시 중학을 마치고 농사를 짓던 이씨는 59년 무작정 상경한다.그는 당시를 『가족을 빼앗아간 저주스러운 땅에서,「빨갱이 자식」이라는 주위의 눈총을 받아내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서울에서는 좌판·행상·막노동을 닥치는대로 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선비기질,농촌과 도시 밑바닥생활에서 얻은 경험,거기에 「6·25」에 대한 참혹한 기억은 이후 이문구문학의 바탕이 된다.이씨가 문학에 뜻을 둔 계기도 독특하다.중학생 때 그는신문에서 희한한 기사를 발견한다.대구 시인 이모씨가 「6·25」때 부역한 것이 드러나 처형당하게 되자 문인들이 구명활동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그때는 빨갱이 자식으로서 언젠가 화를 입지 않을까 늘 걱정했다』면서 그 기사를 보자 「문학을 하면 쉽게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이씨는 61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스승이자 아버지같은 김동리 선생을 만난다.「노가다판 문장」을 쓰는 그를 동리는 『앞으로 한국문단에 아주 희귀한 스타일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격찬했고,그의 습작을 논하라는 시험문제를 내기도 했다.예언대로 그는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문체와 문학세계를 개척했다.67년에 발표한 두번째 작품 「백결」에서 이미 이문구다운 글이 등장한다. 그는 한동안 고향을 찾지 않는다.그러다 72년 「관촌수필」연작을 시작함으로써 스스로 고향을 되살린다.그때쯤에는 고향·고향사람에 대한 참혹한 기억을 잊은 것일까.아니면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이씨는 그때 사정을 자세히 밝히려 들지 않았다.다만 귀향후 생활을 이야기하면서 『땅에다 무엇을 심든지,아니면 가축을 길러도 다 잘된다』고 고향땅에서 받은 은혜를 강조했다. 그를 특징짓는 문체와 어휘 구사를 평단에서는 대부분 「시골 밭둑의 싱싱한 수풀 같다」는 식으로 긍정한다.많은 문인들이 술자리에서는 『이문구처럼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한다는데 콤플렉스를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한다.반면 「그의 문체가 산문의식을 약화시키고 주제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섬」 소재 작품 구상 작가는 그같은 비판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쓰는 문체가 대부분 일본식·서양식인 판에 우리 전통양식을 고수하는 작가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아울러 자신은 『기승전결이니,사건의 배경·인물을 정교하게 설정해야 하느니를 따지는 서양식 소설작법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섬과 섬사람을 소재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바닷가 마을에서 성장했지만 그동안 섬이야기는 한번도 쓰지 않았다.보령 앞바다에만 섬이 78개떠 있는데 이를 소재로 전혀 다루지 않은 것에 이씨는 『미안하고』『왠지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그래서 뜻맞는 고향사람들과 함께 섬을 연구하고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섬을 알게 된 다음 작품화할 생각을 갖고 있다. 또 90년대 농촌을 그리는 작품과,「매월당 김시습」이후 관심을 갖게 된 역사소설도 쓴다는 것이 그의 장기계획이다.〈이용원 기자〉 □약력 ▲1941년 충남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 관촌마을(지금의 보령시 대관동)에서 태어남 ▲50년 「6·25」발발후 부친과 형들 피살,본인은 외가로 피해 모면 ▲조부는 51년,어머니는 56년 별세,고아됨 ▲중학 졸업후 농사짓다 59년 무작정 상경 ▲61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입학 ▲65년 단편 「다갈라 불망비」,66년 단편 「백결」로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 ▲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 발족 주도,실무간사 맡음 ▲77∼80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행정리(발안 쇠면마을)서 생활 ▲80년 콩트집 「누구는 누구만 못해서 못허나」판금당함,이어 문인으론 유일하게 정치활동규제자로 지정됨 ▲주요작 「장한몽」「해벽」「관촌수필」「우리 동네」「매월당 김시습」등 ▲「월간문학」·「한국문학」·한진출판사 편집장,실천문학사 발행인 등 역임 ▲78년 한국문학작가상 등 문학상 8가지 수상.
  • 이훈평씨 야당 34년만에 전국구 배정(오늘의 인물)

    국민회의의 이훈평 유세위부위원장(54).야당가에선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불릴 만큼 마당발이다.걸쭉한 입담으로 야당가의 비화를 얘기하면 웃지않고 배겨날 사람이 없다.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3층 출입기자실은 그의 주요 「출입처」.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른다. 그가 이번에 전국구 16번을 배정받았다.지난 62년 어느날,재경목포동우회를 만들기 위해 당시 초선의원이던 김대중총재를 만나면서부터 야당판에 뛰어들었으니까 꼭 34년만에 「턱걸이 번호」에 안착한 것이다. 이부위원장은 목포상고 38회 졸업생이다.김총재(22회),권노갑 선대위상근부위원장(27회)의 「새카만」 후배로 권부위원장이 김총재의 분신이라면 이훈평은 「리틀(작은)권」인 셈이다.〈양승현 기자〉
  • 국내 밀조공장 4년만에“재등장”/대규모 히로뽕조직 계기로 본실태

    ◎밀조기술자 등 속속 출감… 국내서 직접 제조/총책 한삼수 검거… 옛 거물 활동 재개 조짐 「백색의 공포」히로뽕의 국내 밀조활동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지검이 21일 적발한 「히로뽕 밀조단」은 지난 92년 이후 뿌리뽑힌 것으로 알려진 국내 히로뽕 제조공장이 다시 등장했음을 말해준다.인천지검도 지난달 히로뽕 밀조조직을 적발했었다. 그동안 히로뽕 제조기술자들은 중국에 공장을 차리고 완제품을 국내에 밀반입하는 수법을 써왔다.국내의 단속 활동이 워낙 강화된데다 원료구입 등에서 상대적으로 중국의 여건이 좋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조직총책 한삼수씨가 국내에서 히로뽕을 만들다 붙잡힌 것은 심상치 않은 조짐이라고 검찰은 걱정했다.과거의 「거물」들이 국내 활동을 재개한 신호로도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씨는 70년대 최모씨 등 2명과 함께 마약계의 「3대 거두」로 꼽혔다.이들은 히로뽕 사범의 「원조」다.일찌감치 검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요주의 대상으로 지목되다 이번에 꼬리를 잡혔다. 함께 구속된 노병율씨는 히로뽕 업계에서 「교수」로 통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급 제조기술자.제조기술자들은 기술수준에 따라 「총장­교수­전임강사­강사」로 분류되는데,2차대전중 일본 군수화학 공장에서 제조기술을 익힌 「총장」급은 대부분 사망했다. 히로뽕 반제품을 만드는데는 통상 두 달이 걸린다.하지만 노씨는 불과 나흘만에 고순도의 제품을 만드는 「신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다.특히 히로뽕 밀조과정에 부인과 아들,처남까지 끼워넣는 등 일가족 모두를 「마약사업」에 끌어들였다. 총책 한씨는 일본 폭력조직의 두목과 국내 호텔에서 수억원의 카지노 게임을 즐기는 등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자백했다.검찰은 이에 따라 일본 폭력조직이 마약제조 및 판매 등에 개입했는지 여부도 수사중이다. 2차대전 당시 일본 군수화학 공장의 노동자들이 주로 사용한 히로뽕은 전후 일본에서 60만명의 중독자를 양산했었다.요즘도 폭력조직들이 세력 확장을 위한 자금원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지난해 1월부터 6개월 동안 히로뽕사범 51명이 처형당하는 등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히로뽕의 주소비지가 됐다.장기적이고 집중적인 단속이 절실하다.
  • 고속성장 2000년엔 소득 2만달러 돌파/GNP 1만달러 시대

    ◎「삶의 질」 변화/양보다 질위주… 건강·문화욕구 증대/민간자율 존중 등 선진행태 점차 정착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국민의 삶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최근 한 민간연구소는 1만달러시대의 중산층을 「주말에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을 찾아 벽에 걸려 있는 대형액정TV로 영화를 감상하는」 모습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1만달러시대는 한마디로 각 개인이 여가선용과 자기개발을 중시,삶의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행태와 욕구가 다양화된다.양보다 질을 따져 전반적으로 고급화추세를 보인다는 얘기다. 경제학자들은 국민소득 1만달러를 성장일변도시대에서 경제성숙기로 넘어가는 분수령으로 일컬는다.경제는 물론 사회전반에 총체적인 고부가가치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일만 하는 시대」에서 「여가를 즐기는 시대」로 전환된다.과거의 「헝그리정신」이나 「잘 살아보세」식의 소득·수출증대를 위한 국민적 캠페인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수입이 생기면 저축하기보다는 여유 있고 고급스럽게 쓸 궁리를 하게 된다. 가계수입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45년 29.8%에서 94년 현재 4.5%로 줄었다.같은 기간 자동차는 7천3백26대에서 7백40만대로 늘었다.생계유지를 위해 지출하는 비중은 줄고 안락한 생활을 위한 선택적 지출이 늘어나는 추세가 더욱 심화된다.도시가구 소비지출중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94년 29.7%로 감소추세다.물론 미국(12%)이나 프랑스(18.6%)·일본(20.1%)에 비하면 아직 높다. 소비패턴은 고급화·서구화·편의추구의 방향으로 급속히 변화된다.도시가구 지출중 여가활동비는 국민소득 1천달러이던 지난 77년 2만8천5백48원으로 1.7%에 불과했으나 94년 66만4천6백44원에 4.9%로 껑충 뛰었다.외식비와 교양오락비도 급증한다. 의식주에서 사치품과 일반상품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국산품과 외제를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게 된다.위스키·포도주·고급의류·신발 등의 수입과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보편화된다. 고가품의 소비계층이 중산층이하로 확산된다.중대형승용차·개인용컴퓨터·휴대폰 등의 소비가 급증하고 가전제품의 대형·고급화가 가속화된다.위스키소비가 급증하는 반면 막걸리소비는 급감하고 골프·스키·헬스·볼링장은 인산인해를 이루는 반면 탁구장 등은 파리를 날린다.유통업체의 대형화·고급화도 가속화돼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은 매출급신장을 즐기는 반면 재래시장이나 영세소매점은 매출부진을 면치 못하게 된다.평균연령과 노령인구가 늘어나면서 조세부담과 보건의료비지출도 증가한다. 고부가가치화사회에서는 노동시간이 짧아지는 대신 단위시간당 노동의 생산성은 크게 높아진다.단순인력보다는 고급인력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되고,여성·노령인구의 취업이 증가한다.1만달러를 전후해 노사관계도 성숙화된다.문화적 수요가 증가된다. 기업은 1만달러 소득시대의 소비패턴변화를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신세대·취업주부·아동·독신자·노인그룹 등이 새로운 관심대상으로 떠오른다.소득불균형은 시정되지만 재산불평등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지방화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역이기주의적 폐해가 심화되고,다원화사회가 전개되면서 지금까지의 중앙집권에 의한 획일적 성장도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김주혁 기자〉 ◎향후 GNP 전망/2만달러 도약에 미 10년·독은 12년 걸려/총 GNP 4,517억달러… 42년간 327배로 배고픔에서 잊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경제가 마침내 1인당 국민소득(GNP) 1만달러시대를 열었다. 지난해말 현재 1인당 GNP는 1만76달러.광복후 정확히 50년,한국은행이 국민소득통계를 내기 시작한 지 42년만의 일이다.선진국에 비하면 자랑할 만한 성과는 아니지만 「보릿고개」가 멀지 않은 과거이던 우리로서는 대단한 일이다. 선진국의 1만달러 돌파시기를 보면 미국·독일·스웨덴·스위스가 78년,프랑스 79년,캐나다 80년,일본 84년,영국과 이탈리아는 86년이었다.싱가포르는 89년,대만은 92년에 1만달러를 달성했다. 53년의 1인당 GNP는 67달러,60년엔 79달러였다.그러다 70년대들어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국민소득도 고속성장하기 시작했다.70년대초 박정희정부는 「80년 1인당 국민소득 1천달러」달성을 국민에게 약속했고,이 약속보다 3년 빠른 77년에 1천달러를 달성했다. 80년에는 1천5백97달러,89년에는 5천2백10달러로 5천달러고지에 올랐다.53년 이후 42년만에 1인당 GNP가 1백50배 성장한 셈이다.1인당 GNP순위도 70년 2백53달러로 80위에서 80년 61위,94년 32위로 뜀박질했다. 2만달러시대도 멀지 않았다.우리경제가 고성장·고물가구조인데다 원화가치가 오르는 추세여서 2만달러시대는 의외로 빨리 올 것 같다.1인당 GNP를 결정하는 요인은 경제성장률·GNP디플레이터·환율·인구증가율.경제성장률과 GNP디플레이터·원화절상폭이 높을수록 1인당 GNP는 올라간다.인구증가율은 반대다. 주목해야 할 변수는 환율.원화가치가 오르면 달러로 표시된 국민소득이 늘게 되는 환율의 마력이 숨어 있다.다른 요인의 변화가 없고(예컨대 성장을 하지 않더라도) 원화가 전년보다 평균 10% 절상되면 국민소득은 그만큼 늘게 된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실현 가능한 연평균 경제성장률(불변가격기준·7%)과 GNP디플레이터(5.5%)·인구증가율(0.9%)·원화절상률(4%)을 가정해 1인당 GNP를 계산해보면 「2000년 2만달러」가 가능하다. 지난해의 1인당 GNP 1만76달러에 경제성장률과 GNP디플레이터를 반영해 각각 1.07과 1.055를 곱하고 원화절상률과 인구증가율을 고려한 0.96과 1.009로 각각 나누면 올 연말의 1인당 GNP는 1만1천7백40달러가 된다.이같은 율을 연차적으로 적용하면 2000년에는 2만1천6백60달러가 된다. 일본이 1만달러를 달성한 지 4년만에 2만달러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2만달러대로의 점프는 세계에서 최단시간이다.1만달러에서 2만달러까지 걸린 시간은 스위스가 8년,미국 10년,프랑스 11년,독일이 12년이었다. 일본이 2만달러를 빨리 돌파한 것도 환율덕분이었다.엔화는 84년 달러당 2백37엔이었으나 88년에는 1백28엔으로 껑충 뛰었다.연평균 14%씩 엔화가 절상돼 가만히 있어도 이만큼 국민소득은 늘어난 것이다. 총GNP도 괄목성장을 했다.53년 14억달러였으나 지난해 4천5백17억달러로 42년간 3백27배나 커졌다.GNP순위도 70년 세계 33위에서 80년 27위로 올랐고 94년에는 12위가 됐다.지난해에는 이 보다 한 단계 오른 11위였다.2001년에 이르면 스페인과 캐나다·브라질을 제치고 세계 8위로,2010년에는 영국도 따돌려 7위에올라설 전망이다. 미국과 독일·일본은 1만달러를 달성했을 때 경제성장률이 3∼4%,독일과 일본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대였다.반면 우리는 경제성장률이 9%,소비자물가상승률이 4.7%로 대조를 이룬다.그러나 국민소득은 늘지만 소득계층간 부의 불평등,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현상,지역간의 성장격차,삶의 질 향상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곽태헌 기자〉 ◎95년 경제성적표/작년 GDP 9% 성장/91년이후 최고 기록 지난 해 상반기에 경기 정점에 오랐던 경기활황 국면은 일단락된 것으로 나타났다.작년의 경제성적표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문제는 연착륙이 가능하냐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한은이 20일 발표한 「95년의 국민계정(잠정)」을 보면 지난해의 우리경제는 내용이 좋았다.먼저 GDP 성장률은 9%로 지난 91년의 9.1% 이후 가장 높았다. 설비투자와 수출이 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이 우선 높은 점수를 받을수 있다.설비투자 증가율은 전년의 23.6%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5.9%나 돼 견실한 성장을 뒷받침했다.섬유기계 등 일부품목을 제외한 산업용 기계류 대부분에 대한 투자가 호조를 보여 22.6%의 높은 증가세를 유지했다.수출도 지난 86년 이후 가장 높은 24.1%나 증가했다. 건설업의 증가율은 9.8%로 지난 91년의 14.8% 이후 가장 높았다.민간건설은 설비투자 증가를 반영하여 공장 등 비주거용 건물건설이 호조를 보인데다 표준건축비 조기 인상,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투자가 큰 폭으로 확대돼 10.8%나 성장했다. 그러나 경기양극화에는 개선조짐이 전혀 없어 앞으로 정부의 정책이 양극화해소에 모아져야 될 것으로 보인다.제조업의 증가율은 10.7%로 지난 88년의 13.8% 이후 가장 높았다.중화학공업의 성장률은 14.8%나 됐지만 경공업은 음료생산이 마이너스 4.9%를 기록하는 등 부진해 마이너스 0.7% 성장으로 뒷걸음쳤다.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의 양극화현상은 더욱 심화된 셈이다.민간소비 증가율도 7.9%로 아직은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어서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지표상으로 나타난 지난 해의 실적은 전반적으로는 괜찮지만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는 점이다.지난 해 4·4분기의성장률이 예상을 뒤엎고 잠재성장률인 7∼7.2%에도 미치지 않은 6.8%에 그쳤기 때문이다.당초 정부는 4·4분기의 실질성장률이 7.2%에 달한 것으로 판단,이를 경기연착륙의 주요 징후로 파악했었다.특히 4·4분기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1.5%에 그쳐 연착륙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지난해 3·4분기까지는 제조업 생산지수 증가율이 11∼15%선이었으나 4·4분기에는 7∼9%선으로 뚝 떨어졌다. 이와관련 김영대 한은 이사는 『4·4분기의 성장률이 낮아진 데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쌀 생산량이 2백50만섬 줄어 증가율이 0.5% 포인트 감소한 요인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경기 연착륙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기는 하다.그럼에도 4·4분기의 의외로 낮은 성장율은 정부나 업계에 지금보다 훨씬 높은 긴장도로 경기흐름을 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난 해 총저축률이 36.2%나 되는데다 총투자율은 37.5%로 세계에서 3위권이나 되는 점도 우리경제를 밝게보는 요인이다.〈곽태헌 기자〉
  • 정부 대표단 23일 방북/대화중단 4년만에

    ◎두만강 개발계획 실무협의 정부 대표단이 유엔개발계획(UNDP) 주관으로 추진 중인 두만강 개발계획(TRADP)과 관련한 실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의 나진·선봉을 방문한다. 정부 당국자는 16일 『재경원 김광임 대외경제심의관과 통일원 및 외무부 실무자 등으로 구성된 정부 대표단이 오는 23∼26일 북한의 나진·선봉지역을 방문,두만강 개발계획에 따른 재원조달 방안 등을 논의할 실무 회의에 참석한다』고 밝혔다.정부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관리가 북한을 방문하기는 지난 92년 2월 남북 고위급 회담 이후 4년만에 처음이다. 우리나라와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 등 5개국 대표단이 참석하는 이 번 회의는 나진·선봉지역의 도로와 항만 및 통신 등의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 등을 중점 논의한다.정부 대표단에는 한국통신 등 민간분야 전문가도 포함돼 있다. TRADP는 북한의 나진·선봉지역과 중국 연길 및 러시아 나홋카 지역을 연결하는 두만강 주변 지역을 교통관광 및 제조·가공의 중심지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 사라예보 포위 4년만에 풀어/세르비아계/보스니아에 주권 이양

    【사라예보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의 회교도·크로아티아연방경찰이 지난달 29일 세르비아계로부터 인수한 사라예보외곽지역에 진입함에 따라 지난 4년간 세르비아계에 포위됐던 사라예보가 해방됐다. 압도 헤비브 회교도크로아티아연방 내무장관은 이날 자동차로 사라예보 교외 일리야스를 거쳐 중부의 비소코까지 달린 후 사라예보의 포위망이 이제 풀렸다고 공식발표했다. 회교도·크로아티아연방경찰은 사라예보에서 일리야스를 거쳐 중부 보스니아로 연결되는 사라예보 북부 주요고속도로망을 장악했다. 사라예보 시민은 몇주일 전부터 나토평화군의 보호 아래 시 외곽지역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드나들기 시작했으나 사라예보의 포위상태가 해제되고 이 지역 통행에 대한 회교도·크로아티아연방정부의 주권회복이 공식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김 대통령 출국인사 전문

    저는 10일간 일정으로 인도와 싱가포르를 국빈으로 방문하고,태국에서 열리는 제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금 출국합니다. 저의 인도방문은 우리나라 국가원수로는 처음입니다.인도는 서남아시아의 중심국가이며 비동맹운동의 주도국으로서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저의 이번 인도방문은 우리와 서남아시아의 경제협력기반을 넓히고,비동맹권과 외교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국민소득이 2만4천달러를 넘어 이미 선진권에 진입한 나라로 우리의 6대교역상대국입니다.싱가포르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국제외교무대에서 우리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우방입니다. 저는 이번 싱가포르방문에서 이 나라의 지도자들과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위한 역내 국가간의 협력증진방안을 논의할 것입니다. 태국에서 열리는 제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는 25개국 정상이 모여 두 지역간의 정치·경제협력증진문제를 폭넓게 협의할 것입니다.저는 이 회의에 참석하는 주요국가 정상들과 개별정상회담도 가질 예정입니다. 이번 아시아·유럽정상회의는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관계를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아시아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수출시장으로서,그리고 가장 큰 해외건설시장으로서 우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순방중 싱가포르에서 우리나라의 동남아시아정책의 기조를 밝히는 연설을 할 계획입니다.저는 이 연설에서 21세기 아시아 공동번영을 위해 한국과 아세안의 동반자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것입니다.저의 이번 인도와 싱가포르방문에는 우리 경제인이 동행하여 현지의 경제인과 만나 민간차원의 경제협력문제를 협의합니다. 3월4일 돌아와서 순방결과를 국민 여러분에게 보고드리겠습니다. ◎인도 환영만찬 답사 요지 인도는 수천년 동양문화의 요람이었고 아시아인의 정신적 고향이었습니다.다양성 속에서도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나가는 인도국민의 인내와 관용,그리고 저력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과 인도는 비록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과거와현재를 관류하는 각별한 인연을 토대로 앞으로 우리 두 나라 관계가 더욱 발전할 것으로 믿습니다.인도는 제3세계 비동맹운동의 주도국으로 세계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해왔습니다.또한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SARC)을 이끌면서 이 지역의 공동번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한국은 APEC의 산파역할을 했으며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도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새로운 협력의 물결이 넘쳐날 수 있도록 우리 두 나라는 굳게 협력해나가야 합니다.나의 인도방문은 이러한 계기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국과 인도의 관계는 73년 수교이래 모든 분야에서 착실한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인도정부가 지난 91년부터 경제개혁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이후에 양국관계는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양국간의 교역은 4년만에 무려 2.5배나 증가하여 20억달러에 달했으며 금년 들어서도 높은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또한 양국 기업의 합작투자와 기술제휴도 크게 늘어남으로써 이제한국은 인도의 열한번째 투자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정도의 결과에 만족해서는 안될 것입니다.한국과 인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제적 보완성을 갖고 있습니다.인도의 풍부한 자원과 인력,그리고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효과적으로 결합될 때 양국의 공동이익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 “한국 안보리 진출로 국제위상 제고”/풀치 이 유엔대사는 말한다

    『올해 처음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한 한국의 안보리 활동은 대단히 성공적이다.한국이 보여주고 있는 안보리 활동에 대한 열정은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였다』 안보리에서 한국과 함께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중인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파올로 풀치 유엔대사의 평가이다.지난 93년부터 유엔주재 이탈리아대사로 있는 그는 유엔가입 4년만에 안보리 이사국이 된 한국이 전문적 판단에 바탕을 두고 중심있게 안보리 현안을 처리하고 있다며 후한 점수를 주었다.이탈리아는 지난해 우리보다 1년 앞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벌여 온 한국의 안보리 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 ▲올 1월 안보리에 진출한 이래 박수길대사가 이끄는 한국대표단은 안보리의 분위기에 완전히 적응하고 있다.지난 1월이후 안보리에서 토의된 모든 안건에 있어 박대사는 구석구석 상세한 데까지 상당한 지식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평가와 판단에 있어서도 아주 균형잡힌 모습을 보여주었다.­안보리내에서 한국대표단이 내린 판단의 방향은 바람직 한 것인가. ▲안보리에서 효율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국제평화와 안전이란 대의명분을 진전시키려는 입장을 취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말은 쉽지만 안보리에서 다뤄지는 현안이 너무도 복잡하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그러나 한국대표단은 지금까지 판단에 있어서 침착성과 객관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안보리활동으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은 어떻게 변했다고 보는가. ▲안보리의 진출은 확실히 국제사회에서 명예와 권위를 나타내주는 것이다.이탈리아도 1년전에 안보리에 진출했을 때 그랬지만 한국도 오늘날 국제사회에서의 명예와 권위를 누리고 있다.한국의 국제적 면모는 전반적으로 강화됐다고 할 수 있다.한국도 어느덧 세계 평화와 안전유지에 참여하는 책임감을 누구보다 먼저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안보리에서 특히 개도국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은 것으로 알고 있다.이같은 활동이 가능하다고 보는가.▲한국이 속한 아시아그룹은 많은 나라들이 선진국보다는 못하지만 상당한 수준으로까지 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과도기에 있으며 많은 나라들이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한국은 평화와 안전유지에 기여할 새 「지역 구조틀」속에서 한국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경제발전의 요소가 과거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점에서 한국은 제3세계 국가들도 참고해 유용하게 쓸 것들을 확실히 갖고 있어 이들 국가들의 대변자로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탈리아도 한국과 같은 비상임이사국인데,최근 논의되고 있는 안보리의 개혁방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유엔에서는 안보리 개혁이 중요한 의제로 추진되고 있다.이 일은 미래의 국제정치적 균형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가져 올 것이다.이와 관련해 이탈리아와 한국은 모두 안보리 개혁이 독일과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야망을 만족시키거나, 영구적 특권지위인 「영원한 이사국」을 갈망하고 있는 5개 상임이사국의 야망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못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지 않도록 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5개 상임이사국이 영원히 이사국 지위를 누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오늘날 국제관계에 있어서 민주성이 갈수록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 비쳐볼 때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이탈리아처럼 한국도 안보리의석이 더 자주 그리고 정기적으로 순환되는 것을 허용하는 개혁의 모델에 관심이 클 줄 믿는다. ­한국이 안보리 개혁에도 영향을 미칠수 있을 만큼 국제적 위치가 높아졌다고 보는가. ▲한국이 속하고 있는 그룹은 역동성과 경제능력,문화적 전통으로 충분히 그렇게 할 힘이 있다고 본다.한국은 이 지역의 대변자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40년동안 전문외교관 생활을 해온 풀치 대사는 유엔의 최대과제중 하나인 안보리 개혁과 관련,한국의 협조를 당부하면서 『안보리는 2개국 혹은 5개국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30개국 정도의 중간규모 이상의 국가들의 자발적 기여로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그가 안보리 개혁과 관련해 한국에 「공동관심」을 진지하게 촉구하는 대목에서 한국의 위상변화가 절실히 감지됐다.그는 한국이 경제개혁과 정치민주화를 바탕으로 21세기에도 강력한 성장추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경제발전에 걸맞는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증대를 강조했다.그는 그러나 한국의 안보리 활동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하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외교관으로서 대답하기가 다소 껄끄러운듯 유보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 문민정부 개혁 3년/해외언론이 본 「역사 바로세우기」

    ◎“부정축재 폭로 영웅은 한국 민주주의”/돈을 섬긴 개발독재형 정치체제 막 내려­아사히 AWSJ/법치국가 된 한국… 체질개선 전환점 섰다­비즈니스위크 타임/한국상황은 중 지도자에도 경고메시지­독 안차이거 「청산과 창조의 명예혁명」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이 추진되면서 한국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5·6공 잔재 및 12·12 등 과거청산,5·18특별법 제정,5·17쿠데타 수괴세력 단죄 등 수소폭탄급 조치가 취해질 때마다 세계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한국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부정축재에 대해 대국민사죄 성명을 발표한 95년10월27일.노씨의 대국민사죄는 로이터·AFP 등 주요 통신사와 전세계 주요 매체들에 의해 즉각 긴급뉴스로 보도됐다. 로이터는 눈물을 흘리는 노씨의 스케치기사와 함께 해설기사를 싣고 『한국 정치권의 부패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됐다』면서 『김영삼대통령의 장래는 노씨와 노씨로 대표되는 「더러운 정치」와 어떻게 성공적으로 단절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LA타임스는 같은 달 31일 서방경제학자의 말을 인용,『김대통령이 이번 난국을 수습할지는 한국의 개혁과 시장개방을 원하는 미국의 국익에도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김대통령은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개혁적 지도자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해외언론들은 11월1일 노씨가 마침내 검찰에 소환되자 해설을 곁들인 주요 면 톱기사로 다루는 등 기사밸류를 한층 높였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퇴임대통령의 계좌」라는 사설을 통해 노씨가 돈과 국민중 돈을 주인으로 섬겼으며 이는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수반되는 위험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국인들의 수긍을 얻었다. 독일의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는 다음날인 2일 한국 정치사의 어두운 이면이 밖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한국은 이 사건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 민주주의 성숙도를 세계에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의 시선은 이 때까지만해도 비자금사건을 일과성 정치파문으로 보는 측면이 있었으나 같은 달 16일 노씨가 구속되자 한국인들의 단호한 「부패와의 단절 의지」를 확실히 인정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 언론들은 노씨 구속수감을 1면 머리기사·긴급뉴스·해설·사설 등을 통해 대서특필했다.르몽드지는 『김대통령 집권후 착수한 부패척결운동의 결과』라고 긍정적으로 풀이했으며 아사히신문은 이 사건은 조금 먼 눈으로 보면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개발독재형 정치체제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달 24일 김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정을 민자당에 지시했다는 뉴스 역시 주요 통신사에 의해 전세계에 긴급뉴스로 타전됐다.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25일 김대통령이 80년 광주민주화운동 학살사건의 군책임자들을 처벌할 특별법제정을 천명함으로써 15년간 한국을 괴롭혀온 이 사건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면서 10년전만해도 군책임자 처벌이 거론되면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여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됐다고 덧붙였다.또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노씨 부정축재사건이 폭로되는 과정에서 영웅이 있었다면 바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라고 극찬했다. 해외의 관심은 12월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골목길 성명을 통해 검찰의 군사반란 수괴혐의에 정면 반발하고 3일 검찰에 의해 수감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외국언론들은 전직대통령이 2명이나 수감된 것이 전례가 없기 때문인지 나름대로 향후 정국전망을 내놓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이와 관련,미 뉴욕타임스는 전씨 구속은 자유선거와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시대가 오면 역사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논평했다. 비즈니스위크는 한국이 경제체질개선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했으며 타임지는 「한국은 이제 법치국가가 됐다」는 제하의 12월11일자 특집을 통해 한국인들은 자신의 나라가 하루 아침에 깨끗히 정화될 수는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독일 안차이거지는 한국상황은 중국지도자에게도 경고의 의미를 줄 것이라고 지적했고 LA타임스는 한국이 혼돈을 겪고나면 더욱 안정된 정치체제와 강력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지난해 11월 이후 숨가쁘게 진행된 한국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전씨 구속까지 내내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이들은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다른 국가들로부터 경제성장의 모델로 간주되고 있는 한국이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민주주의 모델로도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지 한국인들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 ◎문민정부 개혁 3년 일지 ▲2월25일­제14대 대통령취임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개방 ▲2월27일­대통령 재산공개 ▲3일3일­「신경제 1백일계획」및 「신경제 5개년계획」수립지시 ▲3월4일­일체의 정치자금 안받을 것을 선언 ­안가 12개동 철거 및 개방 ▲3월13일­부산·전남·전북·경북·제주등 지방청와대 폐쇄 ▲3월18일­김포공항등의 대통령 전용귀빈실개방 ­국무위원 첫 재산공개 ▲4월19일­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4·19묘지 참배 ▲5월13일­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특별담화 ▲7월10일­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정상회담(청와대) ▲8월9일­옛 조선총독부건물 철거지시 ▲8월12일­금융실명제 전격단행 ▲9월7일­고위공직자 재산공개 ▲11월17∼29일­시애틀 APEC회의 참석 및 미국방문 ▲3월15일­공직선거 부정방지법등 3개 정치개혁입법안 서명 ▲3월24∼30일­일본과 중국 공식방문 ▲4월14일­정부,2015년까지 45조원 투입하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계획확정 ▲5월19일­국방부,경기·강원 북부지역 군사보호구역 5억3천5백만평 해제 ▲6월1∼7일­러시아 및 우즈베키스탄방문 ▲6월28일­판문점서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7월25∼27일 평양남북정상회담 합의 ▲7월5일­농어촌에 2004년까지 15조원 투자계획발표 ▲7월8일­김일성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 무산 ▲8월15일­「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천명 ▲11월10∼19일­인도네시아 보고르 APEC 지도자회의 참석 및 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방문 ▲11월17일­시드시방문중 「세계화 구상」천명 ▲12월3일­재정경제원 신설등 대대적 정부조직개편 단행 ▲1월9일­7월1일부터 부동산실명제실시 발표 ▲1월21일­세계화추진위 발족 ▲1월26일­「마틴 루터 킹 평화상」수상 ▲3월2∼15일­덴마크 유엔사회개발 정상회의참석 및 프랑스·체코·독일·영국·벨기에 방문 ▲3월23일­「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복지구상 발표 ▲5월31일­사립대 학생선발방식 자율화등 교육개혁단행 ▲6월21일­북경 남북쌀회담서 북한에 쌀 15만t지원 합의 ▲6월27일­4대 지방선거실시,지방자치 34년만에 전면부활 ▲7월22∼29일­미국 국빈방문 ▲8월11일­광복50주년을 앞두고 3천1백69명에 대한 특별사면·복권단행 ▲10월16∼28일­유엔창설 50주년 특별정상회의 참석 및 캐나다방문 ▲11월9일­한국,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11월14일­중국 국가원수로는 첫 방한한 강택민 주석과 정상회담 ▲11월16일­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11월17∼20일­오사카 APEC 지도자회의 참석 ▲11월24일­「5·18특별법」제정지시 ▲12월2일­건국이래 최대인 7백50만명에 대한 일반사면령 공포안 서명 ▲12월3일­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1월5일­중소기업청 신설지시 ▲1월9일­새해 국정연설,지속적 개혁 등 6대 국정과제 제시 ▲1월15일­무궁화위성2호 발사성공 ▲2월6일­신한국당 제1차 전당대회
  • 작년 방송3사 광고수입 1조4,715억원

    ◎MBC­TV 4,979억원으로 최고/불교방송­R 94년보다 40% 증가 지난해 KBS·MBC·SBS등 공중파 방송3사의 총광고 수입이 94년에 비해 24.2% 늘어난 1조4천7백15억원에 이른 것으로 한국방송광고공사 조사결과 나타났다. 이는 「대형 이벤트 부재」및 「케이블TV 등장」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방 출범과 TV 방송시간 증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매체별로는 TV가 25.2% 늘어난 1조2천9백75억원(88.2%),라디오가 16.7% 늘어난 1천7백34억원(11.8%)을 기록했다. 이를 방송사별로 보면 MBC­TV가 21.2%의 성장률을 보여 4천9백79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KBS­2TV와 SBS­TV는 각각 32.1%와 34.4% 증가한 4천5백55억원과 3천28억원의 실적을 나타냈다. 지난해 5월 개국한 지역민방의 경우 부산방송(PSB) 1백35억원,대구방송(TBC) 1백20억원,광주방송(KBC) 79억원,대전방송(TJB) 79억원등의 광고실적을 올려 당초 기대를 훨씬 웃돌았다. 라디오부문에서는 불교방송(BBS)이 40.6%의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한 것을 비롯,방송사 모두 4년만에 처음으로 두자리수성장을 기록했다. 한편 지난 한해동안 방송광고를 한 광고주 6천9백57개사 가운데 삼성전자가 전년에 비해 71% 늘어난 5백41억원을 지출,1위에 올랐으며 그 다음이 LG화학(4백13억원)·LG전자(3백14억원)·제일제당(2백72억원)·태평양(2백55억원)순이었다. 광고대행사의 방송광고 취급순위는 제일기획(2천53억원)·LG애드(1천5백31억원)·대홍기획(1천2백22억원)·코래드(1천6억원)·금강기획(9백45억원)등의 순이었다.
  • “작년 소주소비량 감소”/94년보다 2.1%…양주·맥주 선호영향

    ◎진로,점유율 49.8% 1위… 경월·보해순 소주 소비가 91년이후 4년만에 감소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0개 소주업체의 판매량은 76만9천2백76㎘로 94년의 78만5천5백70㎘보다 2.1% 줄었다. 소주판매량은 91년 3.4% 감소했으나 92년에는 4.7%,93년에는 3.4%,94년에는 6% 증가했었다. 업체별로는 진로와 경월이 각각 38만2천6백81㎘와 10만6천7백16㎘로 94년보다 각 0.5%와 45.8% 늘었다. 그러나 나머지 8개업체는 1.7%∼29.3%까지 감소,매출이 매우 부진했다. 이처럼 소주판매량이 감소한 것은 소비자들의 기호가 양주·맥주 등 고급주로 쏠리고 있는 데다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점유율은 진로가 49.8%로 1위였고 경월(13.9%),보해(8.4%),무학(6.3%),금복주(5.8%) 순이었다.
  • 공관장회의 참석차 일시귀국 박수길유엔대사 인터뷰

    ◎“유엔안보리 서울개최 방안 검토”/비상임이사국 활동 한달… 보람과 책임 느껴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박수길유엔대사는 7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 한달동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서의 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박대사는 『유엔가입 4년만에 새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하는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안보리에 참석,우리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대해 무한한 긍지와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안보리 가입으로 국가위상이 어느 정도 달라졌나. ▲처음 유엔에 가입했을 때는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부탁만 했는데,이제 각국의 외무장관과 유엔의 대표가 분주하게 우리를 찾고 있다.우리의 국력이 국제사회에 투영된 것으로 본다. ­미국·러시아등 상임이사국과의 관계는. ▲5개 상임이사국과 한달에 두차례정도 쌍무협의를 갖는다.유럽문제는 주로 영국·프랑스와 의견을 나누고,아프리카와 남미문제는 주로 미국측과 의견을 교환한다.우리나라 외의 비상임이사국 9개국 가운데 6개국이 비동맹국가로 최근에는 이들과 함께협의회도 개최,대비동맹국관계도 강화되고 있다.이사국과 협력도 하면서,독자적인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남북한문제의 해결을 위한 활동은. ▲본부와 협의해 안보리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한반도문제는 남북당사자간의 해결이 기본원칙이지만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 긴장이 완화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안보리의 서울개최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으로 본다.지금까지 안보리 이사국이 침략을 받은 경우는 없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의 방한계획은. ▲부트로스 갈리 총장은 한반도문제에 관심이 많다.이달말 한반도긴장완화를 위해 남북한을 동시방문할 예정인데,북한측이 아직 수용하지 않고 있다.총장이 남북한을 방문하면 남북대화재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 교통사고 사망 4년만에 증가/작년 1만3백명

    지난해 교통사고사망자는 1만3백23명으로 전년에 비해 2.3% 증가,지난 92년 「교통사고 줄이기운동」을 시작한 이래 4년만에 처음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경찰청에 따르면 92년 교통사고사망자는 1만1천6백40명,93년 1만4백2명,94년 1만87명으로 해마다 13.3%,10.6%,3%씩 감소했으나 지난해에는 예상목표인 9천7백명보다 6백여명을 초과했다.
  • 물가잡는 경제시책을(사설)

    새해들어 경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물가의 오름세가 가파르고 무역수지적자가 크게 늘어나는가 하면 경기의 하강속도도 예상보다 빠른 편이어서 다각적인 경제안정운용대책이 조기에 마련돼야 함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물가문제다.1월중 소비자물가는 각종 음식료품과 공산품값인상 등의 영향으로 0.9%나 올랐다.연간 물가억제목표 4.5%의 5분의 1이나 잠식된 것이다. 더욱이 앞으로 아파트표준건축비,대학등록금인상 및 국제원자재가격상승등 대내외의 경제요인과 총선에 따른 인플레심리의 확산과 같은 악재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물가고삐를 단단히 조일수 있는 정책수단이 동원돼야 할 것이다. 무역수지 적자도 1월중 19억달러로 월별실적으로는 4년만에 가장 큰 규모다.지난해 12월의 산업생산증가율이 크게 둔화됐고 6개월정도 앞의 경기상태를 예고해주는 경기선행지수역시 내림세를 보였다. 이처럼 물가 무역수지 경기등 국가경제의 3대거시지표들이 난조를 보이고 고물가와 경기침체현상이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가 엿보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정부가 가장 먼저 물가를 잡는데 총력을 기울이도록 촉구한다.물가안정 없이는 무역수지가 개선되기 힘들고 성장의 의미도 퇴색되기 때문이다. 특히 물가상승을 선도하는 각종 공공요금은 관련기관에서 인상분을 자체흡수토록 독려하고 개별품목 가격의 뇌동기습인상행위는 행정지도를 강화하거나 부당이득을 세금으로 추징하는 방안으로 철저히 규제해야 할 것이다.경기의 급속한 하락을 막고 연착륙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물가를 자극하기 쉬운 내수진작의 방식은 될수 있는 한 피하고 수출산업발전과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중점을 두는 경쟁력 강화위주의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와함께 기업들은 노사화합으로 원가절감 기술혁신등 무한경쟁의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노력을 기울이고 가계역시 물가안정과 무역역조 개선에 기여토록 근검절약의 자세를 보일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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