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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의 유럽」 건설 초석 쌓았다/EC정상 마스트리히트회담 결산

    ◎영국의 거센 반발무마… 일정·방법 구체화/재정조건 까다로워 경제통합은 진통 예상 유럽공동체(EC)정상들은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서 이틀간의 회담을 통해 유럽통합조약을 타결,금세기안에 하나의 유럽을 형성하는 역사적인 초석을 쌓았다.이로써 EC는 지난 57년 창설된 이후 34년만에 단순한 경제공동시장에서 공동의 통화와 외교정책을 추구하는 유럽연방의 틀을 마련했다. EC정상들은 이번 회담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유럽의 통합은 이상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강박감때문에 영국의 반대로 10일 심야회담을 강행,▲단일통화·중앙은행설립 ▲공동외교안보정책 ▲단일사회정책등을 골자로 하는 통합조약문에 서명함으로써 대유럽의 실현을 다짐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느슨한 연합을 요구한 영국등 일부회원국의 반발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통합을 주장했던 독일·프랑스등의 구상보다 상당히 완화된데다 상당부분 불확실성을 내포하고있어 그 실현단계에서 계속 협상과 불화의 문제점을 안고있다. 통합조약은 아직도 타협과 개선의 요소를 안고있으며 96년 재검토규정을 포함하고 있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향후 유럽통합의 일정과 방법을 구체화함으로써 통합을 번복할 수 없는 절차로 확정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통합조약은 우선 경제통합의 일정을 늦어도 99년1월1일부터 단일통화를 실시키로 했으며 94년까지 각국이 단일경제구조기준에 적합하도록 내실을 기한뒤 96년 이를 평가해 96년12월31일까지 7개국을 초과할 경우 97년부터 실시키로 했으며 미달할 경우는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어 99년부터는 기준도달국의 수에 관계없이 실시키로 했다.영국은 이번회담에서 참가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추후에 결정하도록 규정하고있어 앞으로 영국의 참여문제와 연인플레율 3%이내와 국가부채율이 총생산의 60%를 넘지말아야 하는등 까다로운 재정조건에 몇나라가 합격해 최종적으로 경제통합에 합류할수 있을지가 성패의 관건으로 남아있다.현재 통합기준에 부합한 국가는 프랑스·덴마크·룩셈부르크등 3개국뿐이기때문에 96년까지 조약기준에 부합하는 국가가 얼마나 될는지가 의문이다. 정치통합분야에 있어서는 조약전문에 「연방」이라는 용어를 삭제할것을 요구하는 영국의 요구가 반영돼 「보다 긴밀한 관계를 지향하는 통합」이라고 표현했으며 유럽의회에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자는 독일측의 요구와 이에 반대하는 영국의 입장을 반영시켜 입법·감사권의 부여는 추후에 검토키로해 조약문에 거론하지 않기로 하는 대신에 조약개정승인권만을 인정하기로 했다. 가장 핵심이 되어온 자체방위력문제와 관련해서는 당초 독일·프랑스가 제기한 서구연합(WEU)의 군사기구화를 인정하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유럽방위의 기본축임을 확인,영국과 포르트갈등 친나토세력의 주장을 수용했다. ◎유럽통화단위(ECU)란/99년부터 전EC국 공용화폐/현재 1ECU는 1.3불 가치 늦어도 99년부터 EC 12개국들의 공용화폐가 될 「에쿠」(또는 「에퀴」)는 유럽통화단위(ECU)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이미 10여년전에 도입되었다. 지난 79년 회원국간 금융정책의 협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EC는 각국 화폐끼리의 환율변동폭을 일정범위로 묶어두는 「유럽통화제도(EMS)」를 도입했으며 이의 실행을 위해 에쿠를 탄생시켰었다. 앞으로 에쿠가 3억5천만명 EC인들의 유일한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범위에서 유동적인 각국 화폐간의 환율이 완전고정되는 절차와 발행기관인 유럽중앙은행의 설립이 전제되어야 한다.현재 에쿠의 가치는 바스켓 방식,즉 각국 통화를 그 나라의 인플레율·재정적자까지 포함한 경제력을 감안해 통합,평균해서 산출되는데 현재 1에쿠는 약 1.3달러(9백80원)의 환율가치를 갖고 있다.
  • “소신·하향지원”… 상·중위권 집중 둔화/전기대원서 마감

    ◎「눈치」 여전… 마지막날 27만명 몰려/지방사립대·신설대 강세//증원된 이공계학과 막판까지 미달 25일 마감된 92학년도 전기대학 입시원서접수결과 경쟁률이 지난해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아졌고 안전하향지원추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경쟁률이 지난해의 4.53대 1에서 4.1대 1로 낮아진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산업인력육성정책에 따라 전기대정원이 예년보다 많은 9천7백65명이나 늘어난 데다 체력장응시자가 88년이후 4년만에 1만9천여명 줄어든 93만1천6백1명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또 체력장수검자들의 전기대지원율이 떨어진 것도 전기대경쟁률을 하락시킨 요인이 됐다. 지난해에는 체력장수검자들의 69.8%가 전기대에 원서를 냈으나 올해는 68.3%인 63만9천4백85명이 지원,결국 전기대응시자는 전년도에 비해 2만2천9백84명 감소했다. 이처럼 지난해에 이어 체력장수검자들의 전기대지원율이 떨어진 것은 무조건 대학에 진학하려는 대학선호풍조가 점차 누그러들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안전하향지원추세도 어느정도 예상된 것이었지만 상위권대학은 물론 중위권대학의 경쟁률까지 전반적으로 수그러진 것은 다소 의외라고 할수 있다. 이는 93학년도부터는 교과서가 개편돼 재수하면 불리하다는 재수기피풍조가 널리 퍼진데다 이공계대학의 증원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수험생들은 물론 일선 진학지도교사들까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일단 붙고 보자」는 심리가 층이 두꺼운 중위권 수험생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따라 이공계 일부 학과는 마감시간전까지 정원에 미달하기도 했다. 상위권대학에는 소신지원이 이어져 고려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 경쟁률이 지난해에 비해 낮아졌는데 이는 「선지원 후시험」입시제도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현상은 경북대·부산대·전남대 등 지방의 상위권대학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이처럼 소신·안전 하향지원현상이 상위권대학에서 중위권대학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지방사립대·신설대를 중심으로 한 하위권대학의 경쟁률은 크게 높아졌다. 내년에 신설되는 한국산업기술대(충남 천안)대진대(경기 포천)의 경쟁률이 20대 1을 넘어섰으며 군산대(10.7대 1),대전대(19.45대 1),호서대(11.64대 1)등도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도 예년처럼 막판 눈치작전이 치열했다. 전기대 지원자 63만9천4백85명 가운데 41%에 이르는 26만7천5백97명이 마지막날 원서를 접수했기 때문이다. 한편 7백52명 정원인 산업체근로자 특별전형 9개대학에는 1천2백4명이 지원,1.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 커뮤니스트 여인의 눈물/함혜리 생활부기자(현장)

    ◎고향 못가는 이산가족 슬픔 아는가 왜 이제 왔는가. 꽃다운 나이에 넘은 분단의 벽이 높아서였던가.어떻든 남을 등졌던 「북의 여인」 여연구씨가 노인이 되어 44년만에 아버지 몽양(여운형)묘소앞에 섰다.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판문점을 넘어서면서부터 부친묘소 참배와 혈연상봉을 기대한 나머지 상기한 표정이었다.지병인 고혈압을 염려한 나머지 건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일 없습니다』(괜찮습니다)를 연발했다.그것도 시원스러운 소리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그 꿈을 서울에서 실현했다.부친묘소 참배와 혈연의 상봉이 한꺼번에 이루어졌다.여느 사람들이 인지상정으로 그리워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서울에서 해결한 그녀는 서울의 보통사람들을 봤을 것이다.그 가운데는 그녀처럼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산의 아픔을 씹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북에 고향을 두고 온 남의 실향민들에게 비친 오늘의 그녀는 부러운 존재다.그들은 조상묘소를 참배하고 혈연을 만나는 지극히 소박한 심성의 염원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실향의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 앞에 여연구는 부친 묘소에 바칠 화환까지 미리 준비해 왔다. 하나는 딸 「여연구」가 형제와 함께 바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김일성주석이 보내는 화환이었다.그녀는 김일성의 화환을 묘소에 놓기 전까지는 줄곧 벅찬 감정으로 해서 흐느꼈다.평창동 라마다올림피아호텔에서 수유리 묘소에 도착하기까지,또 묘소앞에서도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그것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인간의 눈물인지 모른다. 그러나 화환을 바치고 나서,더 엄밀히 말하면 김일성주석이 보낸 화환을 묘소에 놓고나서는 사정이 사뭇 달라졌다.냉랭한 자신으로 되돌아와 역시 미리 준비한 추념문을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장군님!』이라는 대목이 튀어나왔다.그때는 이미 눈에서 눈물도 거두어들인 것처럼 보였다. 여연구 그녀는 남의 이산가족들이 실향의 고통을 겪는 동안 이렇게 부친묘소를 참배했다.그녀가 남의 부친묘소를 참배하고 혈육과 상봉하는 것처럼 실향민의 고통을 잠시라도 덜어줄 방법은 없을까.「정치적 어버이」가 아닌 「혈연의어버이」로 섬길 수 있고,또 참배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북녘땅에 오길 기대해본다.그녀의 뒤늦은 눈물에서 인간적 연민을 느꼈지만,주석의 화환을 통해서는 동질성이 멀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 우리 이산가족의 한은…(사설)

    분단이후 북한의 여성대표들이 처음으로 서울에 왔다.25일 상오 판문점을 거쳐 남쪽땅을 밟은 북한여성대표들은 이날부터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란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한뒤 오는 30일 북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있다.이들은 세미나에만 참석하는 것이 아니고 경복궁·남대문시장·수원삼성전자공장등도 둘러보도록 되어있다. 이들의 일정중 특히 눈길을 끈것은 북한대표단을 이끌고 있는 여연구가 아버지 몽양 여운형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었다.여연구는 25일 서울에 온뒤 바로 수유리의 아버지묘소를 찾았다.47년초 동생들을 데리고 월북했던 그녀가 44년만에 다시 돌아와 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한 감회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20세의 처녀로 월북한뒤 64세의 할머니가 되어 아버지묘소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은 숙연하기도 하고 감동적일수도 있다.우리는 그녀가 44년이란 긴세월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아버지묘소앞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길이 없다. 그러나 체제와 이념을 뛰어넘은 인도적인입장에 설때 그녀가 아버지묘소를 참배했다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이기도 하다.우리는 여연구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 한구석 아쉬움과 함께 서글픔을 지울수가 없다.지금 우리주변에는 북쪽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를 알지못해 아픈 가슴을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이산가족들이 수없이 많다.이들은 정초나 추석때 또는 북쪽가족들의 생일만 되면 북녘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눈물을 짓곤 한다.그래서 우리정부는 최근 70세이상의 고령 이산가족들을 판문점으로 모셔가 아픈가슴의 만분의 일이나마 달래보려는 일을 추진하기도 했다.우리이웃의 이산가족들이 여연구가 아버지묘소를 참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느낌을 받았겠는가. 한사람의 자식으로 당연한 도리를 한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마음한구석에는 「왜 우리는 부모의 묘소를 참배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지울수가 없을 것이다.우리정부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이산가족의 슬픔을 덜어주는 인도적인 사업을 제의해 왔지만 북한은 줄곧 이를 외면해 왔다.적십자회담의 재개를 거부하고 있으며 남북고위급회담에서도 이 문제에 관한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불가침선언등 정치·군사문제의 선해결만 고집할뿐 신뢰를 구축하고 화해의 정신을 발양할 수 있는 인도적인 문제에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신뢰가 구축되지 않고 화해의 정신이 발양되지 않는한 남북문제는 평행선을 달릴수밖에 없다. 정치·군사문제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사람과 물자가 서로 오갈수 있는 풍토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식사회주의」를 외치면서 고립과 폐쇄의 틀안에서 웅크리고 있다.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문을 열어야한다. 이산가족의 슬픔을 덜어주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고 핵무기개발보다는 인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일에 앞장서야 한다.여연구가 아버지묘소를 참배하는 모습을 지켜본 우리모두의 간절한 소망이다.
  • 몽양 묘소에 선전성 김일성 화환/북한여성들 서울 오던날

    ◎철거요구 우리측과 옥신각신/개회식선 「그리운 금강산」 축가 ○…25일 하오 여연구씨가 검은색 비로드천의 한복에 흰색 베일 차림으로 서울 도봉구 우이동 여운형 묘소를 참배하는 동안 북측 일행이 갑자기 김일성 명의의 화환을 묘소앞에 배열하고 정치선전극을 벌여 이의 철거를 요구하는 우리측과 마찰을 빚었다. 북측 참가자일행은 참배도중 미리 갖고온 커다란 상자에서 「고 몽양 려운형선생을 추모하며 김일성」이라는 내용의 글씨가 쓰여진 화환과 「아버님을 추모하며 려연구·려원구·려붕구」라는 2개의 화환을 꺼내 묘소앞에 내세운 것. 이들 대형조화 2개는 이른바 「김일성화」와 「김정일화」,국화 등으로 장식한 것으로 누가 보아도 정치선전의도가 짙은 것으로 보였다. 이에 추모사업회 관계자들이 『민간차원의 순수한 행사에 꽃만 놓으면 됐지 굳이 김일성 휘장을 걸 필요가 있느냐』고 항의하자 북한측은 『여성들끼리 하는 일을 왜그럽니까,2분만 기다려 주시지요』라며 대꾸,우리측과 10여분간 옥신각신. 북측은 기록용 사진을 찍고 마지못해 철거. ○…『아버님이 귀여워해 주시던 소녀 둘째딸이 40여년이 지난 지금 여기에 섰습니다』 25일 하오 서울 도봉구 우이동 106번지 몽양 여운형씨의 묘소를 찾은 여연구 북측 대표는 묘지내에 들어서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 여씨는 이날 하오 2시55분 남측 이효재씨와 승용차편으로 아버지의 묘에 도착,하얀 스카프를 머리에 덮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20여분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날 몽양의 묘에는 여명구씨(64·의학박사)와 올케 오세연씨,몽양선생 추모사업회원 등 30여명이 미리 대기. 특히 여씨의 증조할머니뻘 되는 여귀옥씨(대한기독교 여자절제회)와 그의 두딸은 추모사와 추모곡을 준비하기도. 또한 몽양선생 추모사업회측은 미리 향을 피우고,여대표에게 전달할 선물 등을 빈틈없이 준비.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서울토론회에 참석하는 북측 참가단 15명은 25일 상오 11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를 통해 남녘땅에 첫발을 디뎠다. 여연구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비롯한 세미나 참석 북측 참가자 5명은최봉춘 북측 책임연락관 안내로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을 넘어서자 마자 미리 대기중이던 이효재씨(한국여성단체 연합회장)등 우리측 영접위원 5명으로부터 각각 꽃다발을 전달받은 후 서로 가볍게 포옹. 특히 47년 이화여전 재학중 월북해 44년만에 남녘땅을 밟은 여부의장은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도 만감이 교차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오 6시 호텔 2층 임페리얼룸에서 열린 개회식에서는 윤정옥 대표가 개회선언을 했으며 이어 이효재 대표가 경과보고,이우정 대표가 환영사,참가대표와 영접위원 소개,축가 등의 순서로 진행. ○…개회식 마지막 순서로 평양범민족통일 음악제에도 참가했던 윤인숙 교수(단국대 음대)가 축가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 분위기를 돋우었다. ○…북한측 일행이 몽양 묘소를 참배하고 다소 늦는 바람에 기자회견은 30분 늦게 시작됐으며 여연구 대표는 선친묘소 참배때 무리한 탓인지 불참. 이 자리에서 북측 정명순씨는 『서울 방문 기간중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씨,문규현 신부,유원호씨를 만나고 싶다』고 불쑥 제의하면서 선물까지 가져왔다는 말을 끝내 잊지 않았다.
  • 「녹지지도」 처음 나온다

    ◎환경보존·효율적 국토관리에 획기적 자료/환경처,4년만에 완성 이달안 배포/전국토 녹지상황 조사·분석/자연보호 일깨우는 교재로도 활용/수역·원시림등 11등급 분류 우리나라의 녹지분포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녹지자연도(녹지자연도)지도가 4년여의 작업끝에 나오게 됐다. 환경처는 우리나라의 자연자원을 효율적으로 보존,관리하고 국토개발을 합리적으로 해나갈수 있도록 하기위해 지난 88년초부터 전국토를 대상으로 실시한 녹지자연도(Degreeof Green Naturality=DGN)정밀조사내용을 토대로 지난 9월부터 지도제작에 착수,이달내 완성,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출간되는 녹지자연도 지도는 전국토의 등급별 녹지상황을 종합·분석한 것으로 앞으로 농공단지확대조성등 녹지를 포함한 국토개발계획추진등과 관련,효율적인 자연환경보존수립자료로 크게 활용될 전망이며 특히 본격적인 지방자치화와 더불어 지역별 균형개발및 녹지보존대책수립등에 이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밀지도로서의 공신력을 확보하기위해 5일국립지리원의 승인을 거친 이번 녹지자연도지도는 전국토의 녹지공간을 0등급인 하천등 수역(수역)을 포함,주거·상업지역인 1등급에서부터 원시림지역인 10등급까지 11등급화해 1㎦(1mesh)단위로 쪼갠 25만분의 1 지도위에 청색 황색등 4가지의 색깔로 도형화한 것이다. 이번 녹지 자연도조사는 전국 각대학의 식물학전문교수및 연구원등 2백여명으로 구성된 전문조사단이 전국을 3개 시·도씩 3개권역으로 나눠 1년에 1개권역씩을 현지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 지도제작에는 지난 8·9월 실시한 비무장지대의 생태계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아 이지역은 제외됐다. 환경처는 이달내에 제작이 완료되는 5백여장을 각 시·군등 행정기관과 국립대학·공공도서관등에 우선 배부해 녹지관리 및 연구·학습자료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환경처의 한 관계자는 5일 『녹지자연도지도는 영국·독일·일본등 선진국에서 이미 제작돼 국토관리등의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자연환경보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 시점에 제작·출간되는 이번 우리의 지도 역시 앞으로 정부의 국토이용개발계획 수립에는 물론 학계·일반국민의 녹지보존관심등을 유도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녹지자연도 사정결과 자연초원이나 원시림 지역인 10등급은 제주도가 15㎦로 가장 많고 강원도 태백시와 경남 산청군에 각각 1㎦가 있으며 그밖의 시·도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지역별 녹지등급분포는 강원도의 경우 원시림 또는 자연식생에 가까운 8등급이 46.8%로 가장 많았고 제주도는 갈대군락과 같이 비교적 식물의 키가 큰 2차 초원지역인 5등급이 33.0%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 베트남 당서기장/14년만에 첫 방중/경협방안등 논의

    【하노이 로이터 AP AFP 연합】 베트남의 도 무오이 공산당서기장과 보 반 키에트총리는 5일 베트남 최고위 지도자들로서는 지난77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양국 정상회담등을 통해 실질적인 새 협력관계를 모색한다.
  • 히로뽕 대부 추적 4년만에 검거/곽진국씨

    ◎국내 최고 거물… 7백억대 시판/구로동에 비밀공장… 대일 거래 기도 서울지검 강력부(김영철부장검사·차유경검사)는 31일 국내 최대 히로뽕제조거물로 지난 87년부터 수배됐던 곽진국(63·서울 도봉구,쌍문동 192의 2)를 붙잡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서울과 부산등지에서 히로뽕을 사들여 복용하거나 중간에서 판매한 손호영씨(38·회사원·부산시 금정구 구서2동)와 우창일씨(29·운전사·경남 울주군 온산면 당월리 283)등 6명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움직이는 히로뽕공장」으로 불리며 수배 4년만에 붙잡힌 곽씨는 지난 86년부터 87년 사이 서울 구로1동의 한 2층방에 히로뽕제조공장을 차려놓고 염산에페드린 24㎏을 원료로 6차례에 걸쳐 히로뽕 16㎏,시가 64억원(최종소비가 7백20억원)어치를 만들어 판 혐의를 받고 있다. 곽씨는 이 가운데 5㎏은 일본으로 밀매하려다 미수에 그쳤었다. 검찰수사결과 곽씨는 히로뽕을 만들어 판 돈으로 구로동 제2공단안에 비닐제조공장인 「원일화학」을 설립,운영해 왔으며 송파구 신천동 장미아파트 1채와 도봉구 쌍문동 단독주택등 부동산을 소유하는가 하면 충남 예산군 도고에 3만5천평짜리 양어장도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구속된 사람은. ▲곽진국 ▲우창일 ▲최승관(33·서울 성동구 화양동 12의 50) ▲손호영 ▲이시출(37·경남 마산시 합성1동) ▲장재문(36·서울 강동구 천호3동 211의 1) ▲배영익(29·서울 종로구 창신2동 688) ◎곽씨의 행적과 검거경위/대학원 수료… 「검은돈」으로 수백억 치부/전담반 12명 애인집등 철야잠복 계속 검찰이 31일 국내 히로뽕계의 최고 거물 곽진국씨를 구속한 것은 마약사범에 대한 당국의 끈질긴 추적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지난 87년 검찰에 수배돼 4년동안 추적을 받아온 곽씨는 「움직이는 히로뽕공장」으로 불릴만큼 히로뽕계의 거물이었다. 사립명문대의 대학원에서 경영자과정까지 거친 곽씨는 비상한 두뇌로 지난 70년대초부터 국내에서 히로뽕을 만들어 팔아오면서도 꼬리가 잡히지 않았었다. 곽씨는 지난 86년부터 87년사이 소비가격으로 7백20억원어치의 히로뽕 16㎏을 만들어 퍼뜨리는가운데 소길석씨(구속중)를 통해 일본에 팔려다 소씨가 붙잡히면서 꼬리가 잡혔다. 곽씨는 그동안 서울 구로동 제2공단안에 대지 2백95평,건평90평 규모의 비닐제조공장인 원일화학을 세워 재계인사로 변신하려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충남 도고에 3만5천평짜리 뱀장어·가물치 양식장을 다른 사람이름으로 운영,막대한 돈을 벌었다. 곽씨의 이같은 사업자금은 히로뽕제조·판매에서 얻은 돈이 밑천이 됐음은 물론이다. 검찰은 곽씨가 잠적한 뒤인 88년부터 2개팀 12명의 전담반을 구성,끈질긴 추적을 계속해왔다. 그가 잘 나타난다는 유흥업소,아들의 집,내연의 처집등 7곳에서는 일일철야잠복을 해왔다.그는 최근 도봉구 쌍문동 이모여인 집에 들렀다가 잠복수사관들에게 붙잡혔다. 검찰은 곽씨의 검거로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히로뽕 하수조직들을 철저히 파악해 히로뽕의 뿌리를 뽑는데 큰 획을 그을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 히로뽕에 대한 강력한 단속으로 기업인·주부·농민층·청소년에까지 번지던 히로뽕사범이 멈칫하긴 했으나 잔존세력을 남겨두고는 이를 근절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그의 검거는 또다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일본과 대만 필리핀등으로부터 「히로뽕수출국」이라고 불려오던 불명예를 벗어날 전기가 될 것으로도 기대되고 있다.
  • 전국 땅값 오름세 크게 둔화/3분기 2.7% 올라 4년만에 최저

    ◎서울은 1.9%에 그쳐… 7개군은 하락 부동산경기가 전반적으로 진정국면을 보이면서 전국의 땅값도 오름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다. 26일 건설부에 따르면 3·4분기중 전국의 땅값은 전분기에 비해 평균 2.71%가 올라 2·4분기의 3.39%,지난해 동기의 3.88%보다 상승세가 낮았다. 3·4분기의 지가상승률은 87년 2·4분기의 2.35%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땅값 오름세를 지역별로 보면 주거지역이 2.71%,상업지역 2.78%,공업지역 3.61%,녹지지역 3.11%,비도시지역이 2.01%씩 올랐다. 이에따라 올들어 1월부터 지난 3·4분기까지의 지가상승률은 11.18%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24%보다 4.06%포인트가 낮아졌다. 이같은 지가상승률둔화추세는 토지공개념제도의 시행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는데다 건설경기진정대책등으로 투기적 가수요와 신규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3·4분기 지가상승률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1.93%,대구 2.07%,전남 1.09%,강원 1.34%,충남이 1.94%로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한 반면 각종 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진행중인 대전은 7.14%,인천 4.78%,창원 7.99%,청주 5.59%,마산은 5.40%로 비교적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나 경북 영풍군(마이너스2.15%)과 충남 공주군(마이너스0.33%)등 7개군은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땅값이 내렸다. 특정지역의 거래가격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지의 경우 올해초 평당 6백만원에서 이달중순에는 12.6% 오른 평당 6백77만5천원에 거래됐으며 중랑구 신내동의 대지는 평당 2백70만원에서 16.1%가 오른 3백13만6천원에 팔렸다. 개발사업이 진행중인 청주 대덕동의 대지는 올해초 평당 80만원에서 38.8% 치솟았으며 충북 청원군 강내면의 논도 평당 3만4천원에서 39.1%가 오른 4만7천3백원에 거래됐다. 대구 북구 사수동의 대지는 8.1%가 오르고 춘천시 우두동의 대지는 14.3%가 올랐다. 건설부는 아직도 물가불안과 각종 선거에 따른 지역개발 기대심리등 불안요인이 남아있으나 토지공개념제도를 비롯한 투기억제조치의 지속적인 시행과 부동산 공급물량의 확대등으로 땅값의 안정기조가 상당기간동안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 봉명탄광 폐광/개광 44년만에/적자누적으로

    【문경】 국내 굴지의 탄광인 문경 봉명탄광(대표 이범재)이 개광 44년만인 지난 11일 폐광됐다. 13일 문경군에 따르면 마성면 외어리 봉명탄광은 지난 6월14일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으로부터 폐광결정을 받아 이달말까지 조업을 한후 폐광키로 했으나 광원들이 지난 9일 상오부터 퇴직위로금을 일시불로 지급해줄것을 요구하며 입갱을 거부,전면파업에 들어감으로써 당초계획보다 19일 앞당겨 이날 회사정문에 폐광공고를 내고 44년만에 광구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 공산당엘리트 15만명 “실업자 전락”(탈공산주의 소련을 가다:1)

    ◎“독재잔당” 백안시… 구직 별따기/이념 맹종에 입당전 전문성도 퇴색/당사등 거대 재산 각기관서 쟁탈전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내걸린 구러시아황제의 깃발은 재미있는 감회를 안긴다.레닌의 볼셰비키혁명으로 러시아에서 사라졌던 챠르황제의 깃발이 74년만에 낫과 망치의 레닌기를 몰아내고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새로운 러시아의 바람을 맞고 있다.마르크스의 변증법이 너무나 정확하게 공산당 본부의 깃발교체에서 증명되고나 있다고 해야할까. 모스크바 스타르이 광장 4번가 6층건물.흰대리석의 이 건물이 정당아닌 소련권력의 구조로서 소련을 움직였던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있던 곳이다.이곳에 당(당)서기장의 집무실이 있었고,정치국이 있었으며 중앙위원회 사무실이 있었다. 중앙위원회는 소련최대 백화점인 굼과 면해 있다.건물의 뒷면은 크렘린궁의 앞마당인 붉은광장과 연결되어 있다. 공산당중앙위원회는 지난 30일 최고회의에서 공산당활동중지명령과 함께 폐쇄됐다.붉은기가 걸려있던 옥상에는 차르의 깃발이 게양됐고 민주세력의 「점령」을축하하기 위해서인듯 출입구 양쪽에도 각각 구러시아국기가 걸려있다.마네즈광장에서,붉은광장입구에서 시위대의 시내진출을 막기위해 사용되곤 했던 그 바리케이드가 공산당중앙위원회 둘레에 쳐져 이건물이 폐쇄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공산당의 활동중지와 함께 소련에는 두가지의 화젯거리가 생겼다.하나는 활동중지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된 공산당간부와 소속직원들의 거취에 관한것이다.또하나는 모스크바를 비롯,소련전역에 산재해있는 공산당건물을 누가,어떤 기관이 사용하느냐가 관심을 끌고있다. 소련의 주요도시마다 각지역 공산당 본부가 자리잡고 있었다.그건물은 거의 모든도시에서 가장 좋은 건물들로 꼽혀 왔다.길가던 관광객이 가장 호화로운 건물을 가리켜 물으면 대부분 공산당건물이었다.이 엄청난 재산의 사용권을 놓고 서로다른 세력들간에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공산당의 활동중지로 소련연방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모두 1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이중에는 최고위 정치국원도 있고 건물의 경비·청소원과 타자수도 포함돼 있다.경비원과 청소원처럼 이념에 종속되지 않고 건물에 종속된 사람들은 별문제가 없다. ○일부서는 낙관도 그러나 공산당본부의 간부직에 있었던 사람이나 조직의 공산당 책임자로서 월급을 받았던 사람들의 경우는 다르다.더구나 지금처럼 공산당원을 벌레처럼 쳐다보는 곱지않은 시선앞에 이들의 일자리가 금방 나타나줄지 궁금하다. 국립무기화학연구소 공산당 책임자로 있던 블라디미르 레오니도비치씨(46)는 낙관론을 펴는 사람이었다.그는 『공산당 간부의 대부분이 공산당 간부가 되기 전에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뛰어났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직 공산당 간부들이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공산당 간부 양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당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쌓아야만 했다.소련사회가 시장경제도입과 함께 전문화될수록 이들은 새로운 일거리에서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될것이다』 레오니도비치씨의 말은 일견 옳다.공산당의 간부가 되기 위해서는 당에의 충성도 중요하지만 자기분야에서의 업적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격요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만나는 더많은 사람들은 레오니도비치씨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비록 한때 전문가였지만 수년동안 전문가로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이상 전문가로 부르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또한 전직 공산당원을 보는 일반시민들의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져만 간다.아무래도 모스크바에서 받는 느낌은 수만명의 공산당 엘리트들이 공산당시대의 종말과 함께 그들의 실제능력보다 낮은 삶을 살게 될것이란데 있다. 포포프 모스크바 시장은 최근 폐쇄된 공산당 중앙위원회 건물을 비롯,공산당 소유건물을 자신들이 사용하게 해달라는 사람들 때문에 가장 바쁜 사람이 되고 있다. ○청산의 대상으로 소련공산당 재산의 국고귀속은 최고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에라야만 가능하다.그러나 중앙위원회에 내걸린 차르의 깃발은 공산당이 막을 내린 것만이 아니라 역사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최고법원의 판결도 하나의 절차로서만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소련의잘못된 역사가 엮어지는 과정에서 그동안 수많은,때로는 죄없고 유능한 많은 인물들이 청산되어 왔다.그러나 이제는 공산당 간부들이 공산당 역사와 함께 청산되려 하고 있다.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7

    ◎“공산 잔영 지우기” 국민손에 달렸다/경쟁원리 도입… 나태·무책임 추방이 열쇠/물가·민족갈등 해결없인 더 큰 혼란 우려 요즈음 모스크바 시민들은 다시 일상의 생활을 되찾았다.빵가게·육류가게앞에는 다시 먹을것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TV는 새민주 소련의 출범을 놓고 난상토론중인 연방최고회의 임시총회장면을 하루종일 방송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어느덧 먹고 사는 문제로 다시 돌아와 있다.한때 자고나면 하나씩 사라지던 볼셰비키혁명 지도자들의 동상제거소식도 이제는 뜸해졌다. 정치면에서 지난 1주일은 소련 국민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일주일이었다.볼셰비키혁명 74년만에 공산주의가 다시 폐기됐다.쿠데타군의 탱크들이 모스크바시내를 빠져 나가던 날 러시아공화국의 한 대의원은 『74년전 10월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망하던 날은 몹시 추웠고 공산주의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비가 오고있다』는 날씨이야기로 자신의 연설을 시작했다. 많은 학자들이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종말을 고한 것은 지구의 절반을 지배해온 공산주의가 다원주의·다당제·사상·표현의 자유등 민주적 가치에 기초한 자본주의 이념에게 길을 비켜주었다는 점에서 중대한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 공산독재는 막을 내렸지만 경제난,민족간 갈등,만연한 부정부패,일하려 들지않는 국민의식등 쿠데타이전에 안고있던 문제들 어느 하나 해결된것 없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구체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체제는 만들어지지 않은 체제의 공백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 소련학자는 74년전에 버린 자본주의를 다시 찾아 나가는 「또 하나의 혁명」이 이제 소련에서 시작됐으며 이 혁명이 완성되려면 또다시 74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쿠데타기간 3일동안 러시아공화국 청사를 지키려고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쿠데타군의 탱크에 맞서 거리를 누비던 시민들의 모습은 이 나라에서 이제 공산독재는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때 거리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념적 확신을 가지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쿠데타세력에 대한 저항보다는 기존체제 전반에 대한 일종의 집단히스테리같이 보였다. 이 히스테리의 대상은 쿠데타세력·공산당·군·관료세력등 기존체제의 모든 수혜자들이 포함된다.이 집단파괴의 에너지를 어떻게 새로운 사회건설에 모아 나가느냐가 앞으로 소련지도자들이 해야될 최우선 과제라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소련국민들 사이에 뿌리박힌 소위 「사회주의 근성」이 바뀌어져야 한다.남보다 더 일하지 않으려는 의식,「노동자의 천국」이라는 환상이 심어놓은 한없는 나태,무책임한 태도들이 바뀌지 않고는 어떤 개혁도 성공할 것같지 않다. 레흐 바웬사 폴란드대통령은 『사회주의는 한사람이 일할 삽을 5명이 잡고 일하는 것』이라고 사회주의의 비효율성을 지적한 적이 있다. 개혁이란 결국 이가운데서 4명을 쫓아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국민들의 이해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본주의 경쟁의 원리와 인센티브제에 대한 인식을 국민들이 얼마나 빨리 갖느냐에 개혁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지난해 1단계 가격자유화조치때와 같은 사재기·파업등의 혼란이 되풀이되면 개혁의 길은 그만큼 더 멀어질뿐이다.국민들의 이해와 협조없이 본격적인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쿠데타이후 소연방은 엄청난 속도로 쇠퇴의 길을 걷고있다.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재결합이 전제되지 않을때 이 해체의 과정은 엄청난 위험을 수반할 것이다.새연방구성에 대한 합의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공화국간 내전발발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29일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민족과 카자흐민족간 충돌이 벌써 일어났다.어쨌던 소련국민들은 수십년의 시행착오끝에 공산주의를 버리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그 시행착오의 대가로 소련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실로 끔찍한 것이다.그리고 그 시행착오는 소련국민들에게 잘못된 제도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식까지도 바꾸라는 어려운 과제를 남겨 놓았다.
  • 발트3국 완전 독립 “산넘어 산”

    ◎수출 60%·원유수입 전량 연방의존/국경문제·러시아인 반발등 난제로 발트해 연안 3국의 탈소독립이 거의 기정사실화되어가고 있다.소련에 강제합병된지 51년만에 주권국가로서 다시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연방과 마무리해야할 제반문제를 남겨놓고는 있지만 세계 40여개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했거나 국가인정을 준비중이어서 발트3국의 독립은 이제 돌이킬 수 있는 선을 넘어선 상황이다.강권통치속에서 잠복돼온 독립염원이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을 타고 지난 87년말 시작된 독립요구시위로 가시화된 이래 4년만에 열매를 맺은 셈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독립하기까지에는 공화국내 러시아인들의 처리를 포함한 국경문제 등 아직도 숱한 장애들이 남아있다.에스토니아 인구의 40%,라트비아의 35%,리투아니아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자존심 강한 러시아인들이 순순히 약소민족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 틀림없다. 또 독립후에도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까지에는 한세대 정도의 고난이 불가피하다.발트3국은 제조공업 위주로 특화돼 있어서 소련내 15개 공화국 가운데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잘사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그러나 소비원유의 거의 전량을 러시아공의 볼가유전으로부터 국제시장가격의 20%에 불과한 싼 값에 수입하고있기 때문에 독립후 에너지공급에 막대한 추가비용이 소요된다.국민총생산의 60%정도를 소련내에 수출해왔으나 이들의 조악한 공업제품이 앞으로 선진공업국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도 쉽지않은 실정이다. 조상이 서슬라브민족인 발트3국은 러시아·게르만·폴란드·스웨덴·덴마크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고 18세기경부터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오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인 1920년을 전후해 차례로 독립했지만 2차대전 직전 독소불가침조약에 따라 40년 소련에 각각 합병됐다. 리투아니아는 인구 3백72만명으로 리투아니아인 비율이 80%를 넘고 정밀기계공업과 금속가공업에 중점을 두고있으며 라트비아는 인구 2백69만명으로 54%가 라트비아인이며 전기·전자 금속·화학공업·자동차 등의 산업이 발달돼 있으며 에스토니아는 인구 1백58만명으로 65%가 에스토니아인이고 식품가공업과 직물 등 경공업 위주다.
  • 소 공산당 영욕의 74년사

    ◎노동자에 의해 무너진 「노동자천국」/억압과 부패의 철권통치… 인민불만 누적/고르비의 개방정책 이후 급속한 몰락의 길 지난 1917년부터 74년동안 소련 그 자체로 모든 것 위에 군림했던 소련공산당이 모든 것을 잃고 이름마저 없어질 신세로 전락했다. 소련공산당은 공포와 억압 정치로 소련을 이끌어왔다.소련공산당이 소련이란 국가를 창출해 낸 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 1917년의 역사적 사실이다.마찬가지로 이후 70여년간 계속된 「소련공산당이 곧 소련이다」는 정치체제와 통치방식이 오늘날의 소련 위기와 소련공산당의 궤멸을 초래했다고 역사는 증명한다. 소련공산당은 이 명칭 그대로의 이름(CPSU)을 1952년에야 갖게 됐지만 그 연원은 93년전인 1898년에 발족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LDP)이다.1903년 제2차 당대회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을 지도자로 하는 볼세비키(다수파)가 멘셰비키(소수파)를 누르고 당 주도권을 잡았다. 1905년 1월 20만여명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러시아 차르의 동궁앞에 몰려와 시위를 벌였으나 1천여명이 학살되는 데그쳤다.그러나 1917년 10월26일 레닌이 주도하는 노동자와 병사들이 페테르스부르크궁에 입성하면서 세계사 최초로 노동자농민의 소비에트연방 정권이 탄생했다.혁명의 성공과 함께 볼셰비키조직은 러시아사회민주당을 「전러시아공산당」으로 바꿨는데 이때 레닌은 이를 「이 시대의 지혜,명예,그리고 양심」이라고 불렀다. 1921년부터 28년까지 신경제정책(NEP)을 통해 일부 사기업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서 공산당은 산업과 문화,그리고 사고까지 통제·지배하는 중앙집권의 틀을 잡았고 이를 위해 「적색테러」를 일삼았다. 이같은 철권통치는 24년 레닌사망을 전후해서 당내부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막후 권력투쟁 과정에서 심화된 뒤 스탈린의 집권기간동안 최고에 달했다.스탈린은 집권후 당의 권한을 무한정 강화하면서 당의 이름으로 정적 뿐만 아니라 일반 「인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갔다. 2천만명이나 사형·유형·감금 당하는 암흑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흐루시초프 당제1서기가 발렌코프 총리와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했지만 당에 힘의 바탕을 둔 흐루시초프가 4년만에 전권을 장악,소련정치무대에서의 공산당의 위치를 분명히 했다.흐루시초프는 스탈린시대의 공포정치를 다소 완화하려고 했으나 64년 궁정쿠데타를 통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뒤를 이어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당서기장은 코시긴 총리,포드고르니 최고회의의장과 3두체제를 형성했으나 곧 당의 브레즈네프가 독주,통치권을 휘둘렀다. 소련공산당의 공인 당사는 『소련공산당의 역사는 영웅적 투쟁의 도정이며 노동계급과 사회주의,그리고 공산주의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다』고 시작되지만 소련의 실상은 공산당 고위 특권계급에게만 무한한 혜택을 주는 「당주의」의 병폐가 만연했다.이를 위해 공산당은 전국의 어느 기관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당세포를 무조건 배치시켜 개개인의 일상과 의식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82년 브레즈네프의 사망으로 KGB의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가 당서기장으로 선출됐고 개혁의지를 드러내긴 했으나 84년에 사망했다.후임자 체르넨코도 별다른 실적없이 병사했는데 85년3월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서기장에 선출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듬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노선을 선언한 다음 개혁이념과 정책을 실천해갔다.소련식 사회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 몰린 탓이었다. 강압적 중앙통제의 계획경제와 사유재산의 부정은 생산성의 저하만 가져왔다는 점이 확실해지면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꾀했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이 갖고 있는 해악에서 벗어나고자 권력의 분산을 시도하기에 이른 것이다.90년2월 고르바초프는 1당독재의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공산당을 주축으로 개혁을 진행시키고자 했고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한다고 되풀이 천명하다가 강경 공산주의자의 쿠데타란 역습을 당한 것이다.이 역습으로 고르바초프와 그의 개혁노선은 지금까지의 「공산당」이란 울타리를 뛰어넘도록 강요당했다. 역사는 진정한 소련의 개혁을 위해 탈공산당 및 초공산주의를 지시하고 있다. □소 공산당 약사 ▲1898년=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발족 ▲1903년=레닌볼셰비키당 창당 ▲1917=10월혁명,레닌 소비에트정부수립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 수립 ▲1924년=레닌 사망,스탈린 당권장악 ▲1953년=스탈린 사망 ▲1956년=흐루시초프 당제1서기,스탈린격하연설 ▲1964년=흐루시초프 실각,브레즈네프·코시긴·포드고르니집단지도체제 시작 ▲1968년=「브레즈네프독트린」발표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 ▲1985년=체르넨코 사망,고르바초프 승계 ▲1986년=고르바초프,개혁 선언 ▲1990년=공산당일당독재 포기 ▲1991년=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 사임 및 공산당해체 촉구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2

    ◎“반 볼셰비키”74년만의 시민 대혁명/「보수반란」거부,새역사 만들기/“ML주의는 환상”체험적 입증 지금 소련에서는 볼셰비키혁명 발생 74년만에 이를 완전히 뒤엎는 또 하나의 대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공산독재의 종언을 알리는 세기의 시민혁명인 것이다.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것으로 기록될 이 혁명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4일 소련 공산당이 곧 해체될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시작된 소련역사는처음부터 소련 국민들에게는 비극의 연속이었다.1917년 러시아가 유혈혁명에 의해 소련으로 태어난 것은 러시아전통의 상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그 핵심은 러시아정교였다.물론 그 당시에는 러시아정교도 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기에는 너무 부패했었다.따라서 붕괴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여있었다. 이때 이를 대신해서 새로 나온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와 당이었다.세기의 혁명가 레닌이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당초 마르크스주의에도 없는 공산당을 만들어 소련을 탄생시킨 것이다.정교대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마르크스주의로 대체되고,공산당이 교회를,공산당 지도부가 사제의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그러나 74년이 지난 지금 소련 국민들을 현혹시켰던 이데올로기와 공산당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가.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날 당시 러시아정교가 당했던 똑같은 운명에 처해 이제 역사의 심판을 받게됐다. 공산독재가 시작된 이래 소련국민들이 얻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잃은 것들뿐이었다.그들은 자유도 뺏겼고 「빵」도 잃었다.의욕도 상실했다.「평등」도 말뿐이었다.70만명에 이르는 붉은 귀족(노멘클라투라)들은 호위호식하고 있는데 반해 그들은 생활고에 시달려왔다. 그들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공산주의가 국민들을 위해 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되레 생활의 질만 퇴보시켰다는 점이다.그래서 거짓된 이념에 속아서 살아온 소련국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누적,이번에 폭발직전의 상황에서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을 구심점으로 대대적인 시민저항운동을 벌여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강경보수세력을 굴복시킨 것이다. 이번에 쿠데타로 곤욕을 치른 고르바초프는 역대 소련 지도자들이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과감한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진해온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도 모든 조직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공산당에 의지하면서 강경보수파의 눈치만 살피며 보신에만 급급하다가 이번에 쿠데타를 맞게된 것이다. 이제 74년에 걸친 독재자들의 교활한 「공산주의 실험」은 끝났다.이들의 정권유지를 위한 무모한 실험으로 소련 국민들만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앞으로의 과제는 소련 국민들에게 새희망을 심어주고 있는 옐친이 「공산독재」의 관에 마지막 못질을 하고 민주정치를 해나가는 일일 것이다.
  • 대입지원자 4년만에 감소

    ◎체력검사 신청자 작년비 2% 줄어/전기대 경쟁률 4.3대 1 예상 대입체력검사 지원자가 88년 이후 4년만에 처음으로 줄어 들었다. 교육부가 23일 집계한 92학년도 대입체력검사 지원자현황에 따르면 모두 93만1천6백1명이 원서를 내 91학년도보다 1만9천4백47명(2%)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내년도 대입경쟁률은 올해보다 다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92학년도의 대입경쟁률과 관련,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현재로서는 대학입학정원이 확정되지 않아 예측하기 어려우나 내년에 전·후기대학의 입학정원이 6천명가량 늘어나고 체력검사지원자가 이처럼 줄어든 것을 감안할 때 4·3대 1 안팎의 경쟁률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예상했다. 지난해에는 전기대(입학정원 14만7천3백61명)가 4.5대 1,후기대(입학정원 5만8천6백49명)가 4·55대 1의 경쟁률을 각각 보였었다. 원서마감결과,재학생은 59만4천5백명(63.8%)으로 지난해의 61만5백86명(64.2%)에 비해 1만6천86명(2.6%)이 줄어 들었으며 재수생은 32만6천8백61명(35.1%)이 원서를 내 지난해33만1천2백12명(34·8%)보다 4천3백51명(1·3%)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교육부는 이같은 감소현상에 대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실업교육강화가 주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 유엔시대가 더욱 보람찬 한국인들

    ◎저력의 코리안 160명 국제무대를 누빈다/“당당한 회원국… 이젠 위상 높일때”/현재 최고위직은 WHO 한상태처장/국장급 6명·과장급도 20여명 맹활약 조국 한국의 유엔가입을 예비하며 세계속의 한국인은 뛰고 또 뛰었다.그들에게는 활짝핀 미래의 「유엔한국」시대가 더욱 흐뭇하다. 유엔속을 누비며 일하고 있는 저력의 한국인은 현재 1백60여명,유엔바깥 국제기구에서 뛰고 있는 사람까지 합하면 2백50여명에 이른다.비회원국답지않은 막강한 맨파워다.오는 9월17일로 정식가맹국이 되면 더 늘어날 것이다.그들은 한결같이 근면·성실성과 뛰어난 전문지식인으로서 한국의 국제위상과 한국인들의 우수성을 더 높이고 있다.유엔내에서의 「한국」인상은 더없이 좋다.한국외교43년의 숙제였던 우리의 유엔가입을 위해 그들은 보이지않는 일조를 했다. 한국인 가운데 유엔내 최고위직에 올랐던 사람은 유엔 산하기구인 유엔개발계획(UNDP)아태지역 대표를 맡았던 김윤열박사(63)이다.지난 89년 정년으로 은퇴한 김박사는 우리나라와 국제기구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현직에 있는 유엔 고위직(국장급)으로는 세계보건기구(WHO)아태지역사무처 처장인 한상태박사(63),유엔 아동기금(UNICEF)홍보담당 부국장인 구삼열씨(50),인사담당부국장 김재희씨,유엔공업개발기구(UNIDO)의 조영림·임영일씨,유엔환경계획(UNEP)의 박길씨 등을 꼽을 수 있다. 유엔 회원국은 자국인사들이 유엔내 각종 기구에 진출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다.그러나 우리는 아직 비회원국인데도 이들은 자력으로 유엔내 요직에 진출해 더욱 돋보인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말한다. 전세계 50억 인구의 보건문제를 총괄하고 있는 WHO의 아태지역총책임자인 한상태사무처처장은 지난 67년부터 WHO에서 근무해오다 사무처 차장을 거쳐 24년만에 처장으로 승진했다.김윤열박사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두번째 유엔국제기구의 지역책임자가 됐다. 19년동안 AP통신 기자를 하다 불우아동을 구원하는 UNICEF 의회담당조정관을 거쳐 홍보담당 부국장을 맡고 있는 구삼열씨는 지난87년 UNICEF 그란트총재에 발탁된 케이스로 세계적인첼리스트인 정명화씨의 남편이기도 하다.구씨는 최근 UNICEF 한국위원회 조직문제를 정부등과 협의하고 부인 정씨의 국내연주를 보기 위해 귀국해 있으며 오는 14일 중국으로 출장간다. 김재희 UNICEF 인사담당부국장은 서울신문기자출신으로 주시에라리온대표를 지냈다. 과장급으로는 WHO에 5명,국제원자력기구(IAEA)에 6명,UNICEF에 5명,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에 6명등이 있다. 정부가 유엔의 각종 기구에 파견하고 있는 공무원도 35명에 이른다. 유엔은 사무국을 비롯한 5개의 주요기구,1백6개의 산하기구,18개의 전문기구및 IAEA등 2개의 독립기구로 구성되어 있다.
  • 각종 지표에 나타난 경제기상도

    ◎과열 건설경기 주춤·수출회복세 확연/내수진정 국면·고물가 고삐잡혀/땅값 4년만에 최저·집값 내림세/과소비·수입억제가 지속적 안정성장 과제로/노사분규 작년보다 26%나 줄어… 증시도 침체 늪 벗고 상승궤도에 고물가·과소비성향 등으로 남미경제로의 전락이 우려됐던 우리경제가 올들어 물가고삐가 잡히고 자금흐름이 건전해지는등 건실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부동산투기와 노사분규·자금난등 불안했던 현상들도 주춤해지거나 호전추세로 돌아서고 있고 오랜 침체에 빠졌던 증시도 회생하면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물론 수입증가로 인한 국제수지불안과 과소비등 부분적으로 취약요소가 내재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우리경제가 내용면에서 혼란을 벗어나 개선돼가는 모습을 각종 경제지표들이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성장내용등 건실 ▷성장◁ 과열을 우려할 정도로 우리경제의 성장속도에 가속이 붙어 있다.적정수준으로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일만큼 성장에 불이 붙어 두자리수 가까운 고성장이 2년째 지속되고 있다. 한때 과속성장으로 건설현장의 인력난·자재난이 야기되기도 했으나 건설경기진정책에 힘입어 한풀 꺾이면서 진정국면에 들어섰다.또 민간소비지출증가율이 지난 1·4분기에는 성장률을 밑도는등 성장내용도 건실해지고 있다. 특히 건설경기가 둔화되고 내수가 주춤해지면서 수출이 살아나고 있는 것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건설경기의 활황도를 나타내는 국내건설수주와 건축허가면적이 올들어 둔화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내건설수주규모는 올 상반기 17.3%의 증가율을 기록했으나 지난해 상반기 59.8%에 비해서는 현저히 둔화됐다.또 상반기 건축허가면적도 1.2%증가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의 34%에 비해 크게 줄었다. 제조업생산증가율이 올 상반기 8.2%를 기록,전년동기(9.0%)보다 다소 밑돌고 있지만 이 역시 높은 수준이며 제조업가동률도 이 기간중 80.1%로 전년동기(79.6%)수준을 웃돌고 있다. 상품 출하액기준으로도 내수용상품출하가 상반기 12.8% 증가해 전년 상반기(14.9%)보다 다소 둔화된 반면 수출용 출하는 같은 기간 마이너스 3.7%에서 4.2%증가로 반전되는등 올들어 수출회복조짐도 뚜렷하다. 소비부문에서도 상반기중 도·산매판매가 지난해 동기(14.8%)보다 낮아진 7.3%증가에 머물고 내수용 소비재 출하도 지난해 상반기의 14.4%에서 13.5%로 떨어짐으로써 과소비가 수그러드는 모습이다. 물론 아직도 건설경기의 활황기조가 계속되고 있고 지난 상반기 에어컨·냉장고·승용차·컬러TV등 내구용소비재 판매가 15.3%나 늘어나는등 과소비성향이 남아있기는 하다. ○수출 14.2% 늘어 ▷국제수지◁ 그동안 부진했던 수출이 4월이후 회복세가 가속화돼 상반기중 통관기준으로 14.2%가 증가했다. EC·동남아및 북방지역에 대한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미국·일본·중동지역에 대한 수출도 2·4분기들어 회복세를 탔다.그러나 수출회복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높은 증가세를 유지,경상수지의 적자폭이 늘어나 국제수지방어가 경제정책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입은 상반기중 통관기준으로 20.6%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이는 유통시장개방과 수입의존적 수출구조외에도 건설자재와 시설재수입·소비재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6월에만 철강재가 지난해 동기보다 53.8%가 늘었고 수출용 부품중심의 전기전자제품의 수입도 36.7%나 증가했다.또 내수용수입이 원자재를 중심으로 33.6%,수출용 수입도 12.5%가 늘었다. 이같은 수입급증세로 상반기동안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58억달러로 당초 예상한 연간20억달러적자를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그러나 아직도 수입의 주종이 원유·기계류 등 원자재나 시설재이기 때문에 적자가 일시적이며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낙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오름세 물가 꺾여 ▷물가◁ 연초이후 급등세를 보였던 소비자물가오름세가 지난4월을 고비로 꺾였다. 7월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올들어 월간으로는 가장 낮은 0.4%를 기록,연초이후 7%의 상승률을 기록했고 도매물가상승률도 연초이후 7월까지 1.3%가 올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가 7.8% 오르고 도매물가가 1.3% 상승했던 것과 비교해볼 때 물가가 거의 잡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4월이후 소비자물가의 오름세가 이처럼 둔화된 것은 연초 공공요금의 대거인상으로 추가인상요인이 없었던데다 유가인하와 채소류·과일등 계절상품의 출하가 호조를 보인 때문이다. 특히 이달이후 추석물가요인과 9월로 예정된 중·고교수업료인상(9%)등 불안요인이 없지 않지만 올해 소비자물가는 9%선에서 잡힐 것으로 물가당국은 내다보고 있다. ○전세값 3% 내려 ▷부동산◁ 우리경제 최대골칫거리의 하나였던 부동산도 최근 완연한 진정세를 타고 있다. 증시회복으로 부동산쪽에 몰렸던 부동자금이 증시로 유입됨에 따라 부동산시장에는 냉기마저 감돌고 있다. 지난 2·4분기의 땅값 상승률이 4년만에 최저치를 보였으며 전국 주요도시의 집값이 최근 3개월째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2·4분기 전국 땅값의 평균상승률은 3.39%로 1·4분기의 4.69%,지난해 2·4분기의 3.73%에 비해 크게 둔화되면서 지난87년 3·4분기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을 보였다. 이에따라 지난 상반기 평균지가상승률이 8.2%로 지난해 동기의 10.93%보다 2.69%포인트가 내렸다. 주택은행이 전국39개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7월중 주택가격도 집값이 전월보다 0.4% 떨어지고 전세값도 한달새 1.0%가 하락해 최근 석달간 집값은 1%가,전세값은 3.3%가 각각 떨어졌다. 또 부동산경기의 위축으로 아파트청약미달사태가 빚어지고 채권입찰제가 실시되는 대형아파트의 경우 채권상한미달 당첨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경기의 위축은 토지초과이득세의 시행등 정책적인 요인에다가 신도시물량공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보이나 여전히 우리경제가 극복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노사관계 안정화 ▷노사분규◁ 지난 상반기중 노사분규발생건수는 모두 1백87건으로 전년동기 2백53건에 비해 26.1%가 감소했다.평균분규일수도 11.94일로 전년동기 12.4일에 비해 짧아졌다. 노사분규의 이같은 안정움직임은 87년이후 지속된 노사분규가 노사쌍방에 모두 이롭지 못하다는 인식과 함께 교섭경험이 쌓이면서 노사가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노력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노동부발표에 따르면 88년과 89년에 3조∼4조원에 달했던 생산차질액이 90년이후 노사관계가 안정세를 보이면서 지난4월말에는 5천6백41억원으로 전년대비 58.7%가 줄어들었고 수출차질액도 1억2천6백만달러로 57%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 빠른 회복세 ▷증시◁ 우리 경제의 국면전환을 예고하는 가장 분명한 신호는 증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89년4월1일의 종합주가지수 1천7을 정점으로 이후 2년여동안 줄곧 내리막을 걷던 증시는 지난 6월22일의 5백90선을 고비로 다시 급격한 상승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종합주가지수·거래량·고객예탁금 등 장세를 판단하는 3가지 지표가 모두 연중최고치를 경신하는 폭발장세가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지속되면서 그동안의 장기침체에 대한 불안을 말끔히 씻어냈다. 7일 종합주가지수는 7백41로 연중 최저수준인 지난 6월22일이후 46일만에 1백51포인트를 올려 놓았다. 거래량은 최근 며칠동안 하루 5천만주를 오르내려 지난해 연간 1일 평균거래량 1천86만주의 5배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증시가 상승국면으로 빠뀜에 따라 그동안 증시에 등을 돌렸던 시중의 유동자금이 다시 증시로 급속히 몰려들고 있다. 지난 6월말 9천5백34억원에 불과했던 고객예탁금이 한달여만인 이달초에는 2조6천억원 수준까지 늘어났다.최근에는 1일평균 6백억∼1천억원의 신규자금이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 이같은 증시회복세가 올하반기에도 계속될 경우 기업의 직접금융 조달기회를 넓혀줌으로써 자금난을 해소하고 부동산시장에 떠도는 투기자금을 증시로 흡수해 부동산투기 진정에도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금난 완화될듯 ▷자금◁ 증시 활황과 함께 시중 자금사정도 좋아져 기업들의 자금난이 점차 완화되고 있다.서비스업과 부동산시장에 집중됐던 자금의 흐름도 다시 제조업을 중심으로 정상화되는 기미를 뚜렷이 보이고 있다. 하반기 들어 시중 실세금리도 이같은 자금사정의 호전을 반영,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 6월 연18.8%까지 뛰어올랐던 1년만기 통안증권 수익률은 지난7일 18%까지 떨어졌으며 3년만기 회사채수익률도 자금난이 극심했던 지난6월 19.4%까지 치솟았으나 현재는 18.45%로 작년말수준 이하로 낮아졌다. 월말자금수요와 부가가치세 납기등이 맞물려 하루짜리 콜금리는 7월말 19%를 상회했으나 8월들어 18%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시중 자금사정이 좋아짐에 따라 지난달 0.05%선이었던 부도율도 최근에는 0.02%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같은 시중 자금사정의 호전 추세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 「오대양」수사 중간점검·추이 전망/기자방담

    ◎유 사장,현금인출 위장등 돈거래에 치밀/집단자수,“세모와 알력 탓” 분석/송 여인 행적서 사채가닥 잡아/의혹의 「변사」 타살여부 규명에 관심 ­세인의 관심을 모았던 세모의 유병언사장이 1일 구속됨에 따라 이른바 「오대양사건」의 검찰수사가 1단계는 매듭된 것 같습니다. 지난달 10일 김도현씨 등 오대양출신 6명의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자수를 계기로 4년만에 다시 화제에 오른지 3주만입니다. 그동안 검찰과 경찰의 수사현장및 사건 관련 여부로 주목됐던 세모의 주변,그리고 박찬종의원이나 김현의원,탁명환씨 등등 많은 현장과 사람들을 취재하느라 수고한 취재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사건경과를 간추려 보고 앞으로의 추이를 살펴봅시다. ­87년 8월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2리 오대양 용인공장 식당천장에서 32명이 집단변사한 오대양사건은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거의 잊혀져 가고 있었던 사건이었으나 6명의 집단자수로 다시 초미의 관심거리로 떠올랐지요. ○6명 자수에 의아 ­실제에 있어 김씨 등은 본 사건과는 관계가 없고 다른 4명을 살해 또는 암매장한 사실을 자수한 것이었으나 자수동기에 의문이 많은 등으로 「오대양사건」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흥미있는 것은 4년전 사건발생 당시 집단 변사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지목돼 수배됐던 노순호씨(당시 오대양총무과장)가 「오대양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김씨 등에 의해 살해·암매장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지요. ­집단자수사건 초기부터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 돼왔던 것은 이들의 자수동기라 할 수 있죠. 뭣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잊어가고 있는 지금에 와서 파란을 일으키는가 하는 의문인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당사자는 세모인 만큼 이들이 세모와의 알력으로 세모를 혼내주기위해 자수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씨등의 집단자수를 계기로 항간에서는 「오대양사건」은 세모를 제외하고는 성립조차 되지않는다고 할 정도로 세모관련설이 끊임없이 나돌았죠. ­검찰이 사건 전반에 대해 재수사에 나선 것은 4명의 살해 암매장사건 송치를 사흘 앞둔 지난달 17일쯤이었습니다. 재수사에 나선 배경은 우선 김도현씨등 6명의 자수동기가 석연치 않은데다 자수자들의 배후에 어떤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등의 의혹이 무성했기 때문이었는데 검찰로서는 「오대양사건」을 근본적으로 파헤쳐 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수사초기에는 검찰도 무척 자신이 없는듯 보였어요.재수사착수사실 자체를 부인하는가 하면 재수사를 하더라도 기대할 성과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계속 꽁무니를 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꼬리문 세모 관련설 ­그렇습니다.송종의대전지검장이나 심재륜차장검사등 수사간부들이 다같이 『4년전의 일을 지금와서 어떻게 밝혀내겠느냐』고 반문하곤 했습니다. ­먼저 집단변사사건은 수사기록을 다시 찾아내 검토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사방법이 거의 없거든요.시체는 모두 화장해 버려 흔적도 없는데다 뚜렷한 목격자나 증인도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사체부검결과등을 보면 타살일 것이라는 의혹이 여러군데 드러나 보이지만 막상 뚜렷한 증거는 없습니다. ­아무튼 유병언사장의 구속이후 검찰의 수사방향은 집단변사의 원인을 밝히는데 있다고 하겠는데 자살 또는 타살인지를 밝혀줄 명확한 수사결과가 나올지 주목거리입니다. ­최소 1백70억원이라는 오대양 사채의 행방에 대해서도 검찰의 입장은 매우 회의적이었습니다.『「수서사건」수사에서 한보그룹 정태수회장이 살아 있는데도 비자금을 못 밝혀내는데 박순자씨가 죽고 없는 상황에서 사채가 어떻게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를 밝혀낼 수 있겠느냐』고 말하며 발뺌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요.또 암매장된 노순호씨의 부인 박명자씨가 남편이 암매장된 사실을 알면서도 4년 가까이 숨겨온 것을 예로 들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종교집단의 사건을 상식적인 수사로 밝혀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의 수사는 구속자 6명과 불구속 2명이 송치된 20일쯤부터는 차츰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사채부분에 대한 수사에 들어간 검찰은 사채행방을 찾는데 있어 가장 핵심인물인 송재화씨의 과거 사건기록을 전남도경에서 넘겨받고참고인 조사와 수표및 예금 구좌의 추적 등을 통해 박순자씨가 송씨에게 4억6천여만원을 보낸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구좌추적에 애먹어 ­그렇지요.7∼8년전의 일이라 무척 여러웠겠지만 구좌추적이 어느 정도 이뤄지자 처음의 회의적인 태도와는 달리 검찰도 수사에 자신감을 갖게되었고 한 수사간부는 『검사로서 한번 해볼만한 탐나는 수사』라고 까지 표현하더군요. ­검찰의 수사는 이번 사건에 관련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와 주식회사 세모에 대한 수사로 방향이 잡히게 됐는데 여기에는 민주당 박찬종의원의 폭로가 기폭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폭로성발언들이 여기저기서 잇따르자 수사관계자들은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된다며 몹시 불만을 표시했지요. 특히 민주당 김현의원은 거의 매일 아침마다 기자회견을 자청,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기자들에게 알려 주었는데 지나치게 의도적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구원파 개입” 폭로전 그뒤 세모 유사장으로부터 명예훼손혐의로 고소된 대전침례신학대학정동섭교수와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소장의 폭로성 발언도 잇따랐는데 검찰은 이들이 자제해 주길 몹시 바라는 눈치였어요. ­검찰이 유사장을 구속할 수 있었던 것은 가능성이 희박했던 수표추적을 해냈기 때문입니다.검찰은 유씨가 용의주도한 계획아래 뒷날의 화근을 남겨두지 않으려고 주로 현금으로 거래했기에 애초 수표추적은 곤란하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결과 송재화씨를 통해 삼우트레이딩 개발실에 전달된 사채중 모두다가 현금이 아니고 간혹 수표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추적이 가능해졌다는 후문입니다. 또 서울에서 세모측이 다른 곳에서 송금된 돈을 찾을 때 수표로 받은 뒤 이를 기재할 때 은행직원과 짜고 현금으로 인출해간 것처럼 위장하는 소위 수표 「세탁」수법의 한가지를 구사했던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검찰,공소유지 자신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유씨에 대한 조사에서 나타난 「검찰의 피의자 조사공동화현상」입니다. 이 말은 검찰쪽에서 먼저 나온 말이기도 한데지난번 김기설씨 분신자살사건으로 검찰에 구속된 강기훈씨가 검찰조사과정에서 일관되게 혐의내용을 부인하고 침묵으로 일관해 결국 이같은 내용만 담긴 진술조서를 근거로 기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씨도 검찰에 소환돼 철야수사를 받으면서 증거물을 제시하고 추궁해도 계속 부인으로 일관,담당검사는 결국 그 내용만으로 조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영장을 발부받고 기소할 수 있을 만큼의 증거물과 참고인진술이 있어 검찰로서는 공소유지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유사장 구속이후 수사팀도 대전지검차장검사가 서울로 발령난 심재륜검사 후임에 유재성검사가 부임하고 법의학에 밝은 서울지검 추호경검사 등 검사6명이 새로 보강됐는데 새 수사팀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참석자 ▲사회1부=최철호·손성진·오승호기자 ▲사회2부=박대출기자 ▲사회3부=박국평차장 최용규기자 ▲사진부=남상인·김명국·손원천기자
  • BCCI 청산 6개월∼1년 걸릴듯

    ◎내주부터 절차밟아 내년까진 폐쇄해야/자산 여유있어 예금자보호엔 문제없어 BCCI가 지난77년 국내에 발을 디딘지 14년만에 문을 닫는다. 금융통화위원회는 1일 BCCI본점이 청산절차에 들어가 국내지점의 존속사유가 사라졌다며 지점폐쇄결정을 내렸다. 이날 금통위의 인가취소로 BCCI는 내주부터 상법에 따라 청산절차를 밟아 늦어도 내년까지 지점을 폐쇄해야 한다. 청산절차의 핵심은 채권및 채무변제로 대략 6개월,길게는 1년이 걸릴 전망이다. 먼저 법원이 은행감독원의 지점폐쇄명령 신청을 받아들여 청산인을 선임하기까지 2개월가량 소요된다. 일본의 예로 볼때 청산인은 변호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가장 많지만 감독원이나 BCCI측이 선임한 인물로 선정될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다. 청산인이 선임되면 2개월에 걸친 공시최고기간을 거쳐 채권채무의 변제가 실시된다. 지난달 10일현재 BCCI지점의 자산은 6백46억7천만원. 이중 1억원이상 대출업체 51개를 포함,대출금이 3백50억원으로 가장많고 외국환보유 94억원,본지점차입금 50억원등으로 구성돼있다. 이에비해 부채는 4백99억3천만원으로 자산이 훨씬많아 예금인출등 예금자보호에는 다른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예금주별로는 5백만원 안팎의 소액예금을 한 내국인은 청산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예금을 찾을 수 있다. 국내지점과 거래하는 무역업체는 청산기간중 거래대금을 변제받을수 있으나 해외지점거래업체의 경우 외국의 수입업체와 협의,결제은행을 바꾸면 수출입대금을 받을수 있다. 또 BCCI가 지급보증을 선 대기업의 어음도 지급보증거래은행을 바꿔 대금을 회수할 수 있게된다. 청산에 따른 예·대출의 이자는 자산동결 이전의 기간에만 적용된다. BCCI의 청산으로 직원 78명의 임금은 청산시까지 지급되며 퇴직금은 규정에 따라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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