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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농구] 끝내준 포웰

    [프로농구] 끝내준 포웰

    승부처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는 리카르도 포웰(전자랜드)의 ‘타짜’ 기질이 또 한번 빛났다. 전자랜드는 11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PO) 2차전 SK와의 경기에서 포웰(18득점)의 활약에 힘입어 76-75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적지에서 열린 1~2차전을 모두 잡은 전자랜드는 남은 세 경기에서 한 경기만 승리하면 4강 PO에 진출하는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5전3선승제로 치러진 역대 6강 PO에서 1~2차전 승리팀은 100%(13차례) 4강 PO에 올랐다. 치열하게 전개됐던 승부는 종료 직전 갈렸다. 72-72 동점인 종료 52초 전 김선형이 3점슛을 꽂아 넣어 SK 쪽으로 승부가 기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김선형은 종료 23초 전 상대의 반칙 작전으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놓쳐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포웰의 득점으로 75-74까지 좁혀진 상황. SK의 박승리가 자유투 2개를 또다시 모두 실패하자 전자랜드의 속공이 펼쳐졌다. 포웰은 종료 8초를 남겨 놓고 환상적인 돌파로 기어코 역전을 만들었다. SK가 마지막 공격에서 공을 빼앗기면서 승리는 전자랜드에 돌아갔다. SK는 김민수(14득점)와 김선형(12득점)이 분전했으나 빛이 바랬다. 발목 부상으로 결장한 애런 헤인즈의 공백을 끝내 메우지 못했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경기 후 “막판 김선형의 3점슛이 터졌을 때 졌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결과가 나왔다. 포웰뿐 아니라 모두가 잘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문경은 SK 감독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남은 경기에서) 포기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프로농구] ‘3점슛 랜드’ 전자랜드

    [프로농구] ‘3점슛 랜드’ 전자랜드

    외곽이 펑펑 터진 전자랜드가 전문가들의 전망을 비웃듯 기선을 제압했다. 9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시작한 프로농구 SK와의 6강 플레이오프(PO)를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SK의 3승이나 3승1패 우세를 점쳤지만 전자랜드는 1차전을 87-72로 이기며 역대 6강 PO 1차전을 승리한 팀이 4강 PO에 진출한 확률 94.4%를 가져갔다. 리카르도 포웰이 18득점 9리바운드로 앞장섰고 차바위(13득점)와 정효근, 정영삼(이상 12득점)이 뒤를 받쳤다. 다섯 시즌 연속 6강에 올라 한 번도 챔피언결정전에 오르지 못했던 전자랜드가 올 시즌은 달라질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SK는 3점슛을 12차례 시도해 3개만 성공한 반면 전자랜드는 24개 중 14개를 집어넣었다. 리바운드에서 32-35로 밀린 전자랜드의 승인이기도 하다. 문경은 SK 감독은 경기 뒤 “상대가 좋아하는 농구를 하게 만든 게 패인”이라며 “(3쿼터 초반 다친) 애런 헤인즈는 오른 발목을 다쳤는데 4쿼터 나왔다가 안되겠다며 물러나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며 낯빛이 어두워졌다. 경기 전 “오늘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열심히 슛 연습을 하더라”고 전했던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인사이드 싸움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에게 공격 리바운드를 쉽게 내준 점은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쿼터부터 전자랜드는 정효근과 포웰이 3점슛 두 방씩을 터뜨려 28-17로 앞섰다. 2쿼터 종료 4분31초를 남기고 SK가 37-28까지 쫓아왔지만 전자랜드는 차바위의 3점슛 두 방 등을 앞세워 1분40여초를 남기고 43-32로 달아났다. 전자랜드는 3쿼터 종료 7분 19초를 남기고 포웰의 잇단 실수와 김선형의 3점 플레이를 허용해 46-44까지 쫓겼다. 이 위기를 벗어나게 한 건 다시 외곽포였다. 정효근과 정영삼의 3점슛이 연달아 터져 4분 49초를 남기고 54-46으로 달아났다. 4쿼터 종료 5분 55초를 남기고 주희정에게 3점슛을 얻어맞아 69-66까지 쫓긴 전자랜드는 포웰의 골밑슛과 이현호의 3점슛으로 74-66으로 달아난 데 이어 포웰의 연속 6득점을 앞세워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新 평판 사회] 체육계에 부는 신선한 바람

    [新 평판 사회] 체육계에 부는 신선한 바람

    ‘실력으로만 선수를 뽑겠다.’ 울리 슈틸리케(61) 축구대표팀 감독의 평범한 이 말 한마디가 한국 축구를 불신의 늪에서 건져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상무)이라는 무명 선수를 발굴해 브라질월드컵 참패와 ‘의리 축구’에 분노하던 축구 팬들에게 27년 만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이라는 희망을 던져 줬다. 프로야구에서는 ‘대졸 간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올해 억대 연봉자 141명의 62.4%인 88명이 고졸이다. 인맥이나 학벌보다는 실력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스포츠에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실력 축구’ 만세 슈틸리케 감독 무명 깜짝 발탁 후 아시안컵 준우승… 제2의 한국축구 전성기 예고 감독이 선수들의 실력만 보고 팀을 짰을 때 한국 축구는 강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은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이상 은퇴), 김남일(교토상가), 차두리(FC서울) 등 젊은피를 대표팀에 대거 수혈했다. 이제 축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지만,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선수를 뽑았다는 비난이 히딩크 감독을 향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는 능력으로 뽑는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선발한 선수들을 원동력으로 월드컵 4강 위업을 달성했다. 일본 J리그 2부팀에서 뛰던 박지성 등은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해외 리그에 진출, 한국 축구의 새 장을 열기도 했다. 반면 홍명보 전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자신이 총애하던 박주영(무적)과 함께 침몰했다. 홍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무승(1무2패)의 참담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홍 감독은 계약 기간을 6개월여 남겨 두고 떠밀리듯 물러났다. 팬들은 초라한 성적보다 ‘의리 축구’에 분노했다. 홍 감독은 2009년 이집트 국제축구연맹 청소년월드컵 8강,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영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홍 감독은 최근 경기에서 활약을 보인 선수 대신 자신과 청소년월드컵,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함께한 ‘홍명보의 아이들’을 중용했다. 23명의 월드컵 최종 명단의 15칸을 홍명보의 아이들이 채웠다. “소속팀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던 발언을 그대로 뒤집었다. 원칙을 어겼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 중심에는 박주영이 있었다. 박주영은 소속팀 아스널에서 출전 기회를 전혀 잡지 못했다. 경기 감각도, 컨디션도 정상이 아니었다. 월드컵 본선 2경기에 나서 슈팅 1개를 때리는 데 그쳤다. 홍 감독의 후임자 울리 슈틸리케(독일) 감독은 달랐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9월 부임했다. 첫 시험 무대인 2015 호주 아시안컵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4개월뿐이었다. 빠듯한 일정을 쪼개 수차례 프로축구 K리그 경기를 지켜보면서 선수를 찾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경험이 없고 소속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한 이정협(상주 상무)을 깜짝 발탁했다. 박주영은 제외됐다. 이정협은 아시안컵 6경기에 나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슈틸리케 감독의 안목이 정확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은 27년 만에 아시안컵 준우승을 달성하며 한국 축구의 부활을 예고했다. 최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슈틸리케 감독은 “제2의 이정협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면서 “그라운드에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선수 선발 기준을 분명하게 밝혔다. 인맥과 학연, 지연은 한국 축구의 오랜 병폐다. 국내에 연이 없는 외국인 감독은 여기서 비교적 자유롭다. 히딩크 감독이나 슈틸리케 감독처럼 센세이션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2006 독일월드컵을 지휘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원희(서울 이랜드)를 오른쪽 수비수로, 2007 아시안컵을 이끈 핌 베어벡 감독은 조재진(은퇴)을 발굴해 중용한 바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고졸 야구’ 만세 2000년대 이후 대학 간판 대신 프로 진출이 대세… 억대 연봉자 10중 6명 고교 야구 대어 선수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프로보다는 대학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에 가면 당장 거액의 계약금을 손에 쥐고 체계적인 몸 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학력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대졸 간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대학 시절 국가대표로 발탁돼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졸업 후 몸값이 더 뛴다는 장점도 있었다. 당시에는 대학 야구도 인기가 좋았고, 대학 스카우트가 고교 선수들과 꾸준하게 접촉하며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선수들은 프로로 갔으나 박봉에 시달리고 실력 차를 극복하지 못해 낙오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고졸 연습생 출신 장종훈 롯데 타격코치가 1990~1992년 빙그레 유니폼을 입고 3년 연속 홈런왕에 등극, 신화를 일구면서 고교 스타들의 프로 진출이 점차 늘었다. 1996년에는 장종훈과 김상진(두산) SK 코치, 김상엽(삼성) NC 코치가 처음으로 고졸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경북고를 졸업한 이승엽(삼성)이 32홈런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고, 일본으로 진출하기 전인 2003년까지 매년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국민 타자’로 우뚝 섰다. 2000년대 이후부터 고졸이 대세가 됐다. 2000년 이후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선수 중 2005년 손민한(NC·당시 롯데)을 빼고는 모두 고졸이다. 1999년까지는 장종훈(1991~1992년)과 이승엽(1997, 1999년) 단 두 명만 고졸이었으나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신인왕도 마찬가지다. 2002년 조용준(현대·은퇴)과 2005년 오승환(당시 삼성·한신), 2011년 배영섭(삼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졸이 생애 한 번뿐인 영광을 거머쥐었다. 억대 연봉을 받는 고졸 선수의 비율도 점차 증가했다. 8일 프로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2000년에는 1억원 이상을 받은 31명 중 11명(35.5%)만이 고졸이었으나 2004년에는 40.2%(82명 중 33명)로 40%대를 넘었다. 2010년에는 51.8%(110명 중 57명)를 기록, 처음으로 고졸이 대졸을 앞질렀다. 올해는 억대 연봉 141명 중 88명이 고졸로 채워져 역대 최고인 62.4%로 집계됐다. 특히 상위 6명인 김태균(한화·15억원)과 윤석민(KIA·12억 5000만원), 최정(SK), 장원준(두산), 강민호(롯데·10억원), 이승엽(삼성·9억원) 등이 모두 고졸이다. 물론 고졸이 프로에서 바로 두각을 나타내기는 힘들다. 입단 첫해 신인왕을 차지한 ‘순수 신인’은 2007년 임태훈(두산)을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2008년 최형우(삼성)부터 지난해 박민우(NC)는 모두 2군에서 1~2년 이상 경험을 쌓은 ‘중고 신인’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교 선수는 이제 몇 년 2군에 머무르더라도 대학보다는 프로행을 택한다. 대학 간판이 프로에서 성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최근 들어 구단도 즉시 전력감인 대졸보다 키워서 쓸 수 있는 고졸을 더 선호한다. 지난해 8월 프로야구 신인 지명 2차 회의에서는 신생팀 kt를 제외한 모든 구단이 1라운드에서 고졸을 뽑았다. 2라운드에서도 KIA와 한화만 대졸을 선택했고, 나머지 구단은 모두 고졸을 지명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프로농구] 못 말리는 김시래… 신바람난 LG

    [프로농구] 못 말리는 김시래… 신바람난 LG

    김시래(LG)가 마치 플레이오프(PO)를 기다렸다는 듯 폭발했다. 김시래는 8일 경남 창원체육관으로 오리온스를 불러들인 프로농구 6강 PO 개막전에서 개인 시즌 최다인 21득점 5어시스트 2스틸 활약을 펼쳐 82-62 완승에 앞장섰다. 정규리그를 4위로 마친 LG는 5위 오리온스에 20점 차 대승을 거두며 확실한 기선을 제압, 역대 36차례 6강 PO의 1차전을 따낸 팀이 34차례 4강 PO에 진출한 확률 94%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정규리그 득점왕 데이본 제퍼슨이 24득점 17리바운드 더블더블 활약을 펼쳤고 국가대표 빅맨 김종규도 15득점, 4쿼터 3점슛 세 방을 집중시키는 등 18득점을 거든 김영환의 활약도 볼만했지만 김시래가 더 돋보였다. 높이를 앞세운 LG가 달아나면 오리온스가 외곽슛을 앞세워 추격하는 형국이었던 3쿼터 후반, 승부의 추를 가져온 것이 김시래였기 때문. 그는 3쿼터 종료 3분여를 남기고 51-49로 앞선 상황에 골밑 돌파로 반칙을 얻어내 추가 자유투까지 집어넣었다. 이어 상대 공격을 막고 시도한 속공을 이지운이 득점으로 마무리해 LG는 56-49로 달아났다. LG는 4쿼터가 시작되자마자 김영환의 3점포, 김종규의 자유투로 64-52, 두 자릿수로 앞선 뒤 다시 김영환이 3점슛을 터뜨려 결정적 승기를 가져왔다. 오리온스는 트로이 길렌워터가 17득점, 리오 라이온스가 12득점으로 분전했으나 국내 선수 중 허일영 혼자만 두 자릿수(11) 득점으로 뒤를 받쳐 10일 같은 경기장에서 열리는 2차전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 부담을 안았다. 추일승 오리온스 감독은 경기 뒤 “김시래의 픽앤드롤 공격을 막지 못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공격을 막지 못한 것이 우리가 무너진 시발점이었다”고 뼈아프게 시인했다. 김진 LG 감독은 “슈터 문태종이 부진했지만 김시래가 집중력을 보여주고 구심점이 됐다”며 “오리온스의 외곽슛이 부담이 돼 (선수들에게) 10%만 줄이자고 했는데 모두 그 부분을 잘해 줬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월드컵·올림픽 개최 경제성장 도움 안돼”

    국제 스포츠대회 개최가 경제성장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5일 발간한 ‘국제 스포츠 행사 개최 및 참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월드컵 개최 여부나 참가 성적은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0∼2014년 월드컵에 한 번 이상 참가한 26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연구 결과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는 전년도 성장률과 세계 경제성장률, 환율 등의 ‘경제 변수’이지 월드컵은 아니었다. 다만 월드컵 성적은 GDP를 구성하는 세부 요소인 소비와 수출, 수입 등에 일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8강에 진출하면 소비에 긍정적 영향이 있었다. 또 월드컵에 참가하는 것 자체만으로 수출에는 일부 긍정적 효과가 있었고 4강에 진출하면 이 효과가 더욱 커졌다. 수입은 8강에 진출했을 때 증가율이 높아졌다. 이는 소비 진작을 위해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보다 8강 이상의 성적을 올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최승문 부연구위원은 “월드컵을 열어 놓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남들에게 파티 장소를 제공해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며 “앞으로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할 때는 경제적 효과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와 지자체는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 단계에서 수익이 훨씬 크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개최 이후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면 전망치와 꽤 다르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는 공적자금 2조 2056억원이 투자됐다. 인천시가 발행한 지방채(빚)만 1조 2500억원 수준이다.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 개최를 위해 12조원의 정부 예산을 투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2019년에는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네이마르 2골…바르셀로나, ‘MSN라인’ 맹활약에 국왕컵 결승 진출

    FC바르셀로나가 ‘MSN라인’(리오넬 메시·루이스 수아레스·네이마르)의 맹활약에 힘입어 코파델레이(스페인국왕컵 축구대회) 결승에 올랐다. 바르셀로나는 5일(이하 한국시간) 스페인 비야레알의 엘 마드리갈 경기장에서 열린 2014-2015 코파델레이 4강 2차전에서 비야레알을 3-1로 물리쳤다. 1차전에서 3-1로 이긴 바르셀로나는 합계 6-2로 비야레알을 가볍게 따돌리고 결승 한 자리를 차지했다. 최근 27경기 가운데 2패만 거두는 상승세도 이어갔다. 바르셀로나는 대회 37번째 결승에 도전한다. 앞서 26번 우승을 차지, 이 대회 최다 우승팀으로 올라 있다. 지난해에는 맞수 레알 마드리드에 져 준우승한 바 있다. 네이마르가 2골, 수아레스가 1골을 넣었고 메시는 골 대신 도움 1개로 힘을 보탰다. 바르셀로나는 전반 3분 메시의 침투 패스를 네이마르가 골로 연결해 일찌감치 앞서 나갔다. 비야레알은 전반 39분 조나단 도스 산토스의 동점 골로 물러나지 않고 맞섰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후반 28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패스를 받은 수아레스가 추가 골을 터뜨렸고 후반 43분 샤비의 크로스를 네이마르가 머리로 받아 쐐기골로 연결해 완승을 챙겼다. 바르셀로나는 아틀레틱 빌바오-에스파뇰의 4강전 승자와 5월31일 결승에서 격돌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설기현 지도자로 인생 후반전… 시즌전 은퇴 후 성대 감독 대행

    설기현 지도자로 인생 후반전… 시즌전 은퇴 후 성대 감독 대행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설기현(36)이 지도자로 변신한다. 설기현의 에이전트사 지쎈은 3일 “설기현이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성균관대 축구부 감독 직무대행을 맡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감독이 아닌 감독 직무대행인 것은 설기현이 감독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기현은 2급 지도자 자격증밖에 없어 감독직을 맡을 수 없다. 성균관대는 설기현이 올해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는 것을 전제로 직무대행에 앉히기로 했다. 설기현이 올해 대학 대회 벤치에 앉을 수 없는 만큼 1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코치가 설기현을 대신해 경기장에 나설 예정이다. 프로축구 K리그 인천 측은 설기현의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설기현은 지난 2일 프로축구연맹에 선수등록까지 마친 상태다. 지쎈은 “설기현이 아직 인천과 계약 기간이 1년 남았지만, 평소 꿈꿔왔던 지도자 제의가 들어와 구단에 양해를 구했다”고 설명했다. 광운대 출신으로 2000년 벨기에 주필러리그 로열 안트워프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설기현은 안더레흐트(벨기에)로 이적해 72경기에서 18골을 터트렸다. 2002년 월드컵에서는 대표팀 공격수로 나서 한국의 4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프로농구] 모비스 쉬는 날이 잔칫날

    [프로농구] 모비스 쉬는 날이 잔칫날

    프로농구 모비스가 1일 역대 최다인 통산 여섯 번째(전신 기아 포함)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이날 경기가 없었던 선두 모비스는 2위 동부가 SK에 69-75로 패하면서 승차가 2경기로 늘었다. 두 팀 모두 아직 두 경기씩 더 남아있지만, 모비스가 모두 패하고 동부가 모두 이기더라도 순위는 뒤집히지 않는다. 승률이 같아지더라도 모비스가 동부와의 상대전적에서 4승2패로 앞섰기 때문이다. 이날 동부와 SK전을 지켜본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우승이 확정되자 “사실 올해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승해서 더 기쁘다”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챔피언결정전 3연패에 도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2~2013시즌과 지난 시즌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모비스지만 정규리그에서는 각각 2위에 그쳤다. 2009~2010시즌 이후 5년 만에 맛보는 달콤한 정규리그 우승이다. 프로농구연맹(KBL)은 정규리그 마지막 날인 오는 5일 모비스의 홈인 울산에서 시상식을 갖고 상금 1억원을 전달할 예정이다. 모비스는 개막 전 악재가 많았다. 유재학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을 맡느라 거의 팀을 챙기지 못했고, 주장 양동근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뛰느라 체력이 떨어져 있었다. 함지훈의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이대성은 발목 부상으로 개막 후 한 달 넘게 코트에 서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외국인 로드 벤슨이 코칭스태프에 항명하다 퇴출됐다. 유 감독도 시즌을 시작하면서 ‘6강에 들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 그러나 ‘챔피언의 저력’은 강했다. 양동근-문태영-리카르도 라틀리프 등 2연패의 주역들은 시즌이 거듭될수록 옛 모습을 되찾았다. 2년 차 전준범은 한 단계 성장했고, 박구영-박종천-송창용 등 식스맨들은 여전히 두터웠다. 벤슨 대신 영입한 아이라 클라크는 마흔 살의 나이가 걱정됐지만, 라틀리프의 백업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올스타전 브레이크 직전 SK에 1위 자리를 빼앗겼으나 곧 되찾았고, 시즌 막판 동부의 거센 추격을 받았지만 뿌리쳤다. 사상 첫 개인 통산 500승 금자탑을 쌓은 유 감독의 지략과 카리스마도 다시 한번 빛났다. 유 감독이 수년에 걸쳐 다져놓은 조직력은 올해도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3연패 이상 당한 적이 없다는 건 유 감독이 시즌 내내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고 정신력을 무장시켰다는 뜻이다. 모비스는 2일 인천에서 전자랜드와 원정경기를 치르고, 5일 kt전을 끝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2위 팀과 함께 4강 플레이오프(PO)에 직행하는 모비스는 18일부터 6강 PO(정규리그 4위-5위) 승리팀과 챔피언결정전 진출 티켓을 놓고 5전3승제 대결을 펼친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프로농구] 정영삼 역전의 ‘붕대투혼’

    [프로농구] 정영삼 역전의 ‘붕대투혼’

    정영삼(전자랜드)의 ‘붕대 투혼’이 빛났다. 24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SK와의 6라운드. 정영삼은 1쿼터 종료 36초를 남기고 SK의 애런 헤인즈를 수비하다 머리를 받혔다. 눈 주위가 찢어진 그는 적잖이 피를 흘렸고 붕대를 친친 감은 채 2쿼터 코트에 돌아왔다. 그의 투혼은 동료들을 분발하게 만들었다. 헤인즈가 12득점을 쌓은 SK는 1쿼터를 20-17로 앞선 채 마쳤지만 정영삼이 코트에 돌아오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3쿼터 종료 4분여를 남기고 정영삼이 상대 장신 숲에서 몸을 던져 공을 따낸 뒤 김민수의 파울로 자유투를 얻어낸 것이 압권이었다. 상대 선수와 부딪쳐 다시 피를 흘린 정영삼은 지혈한 뒤 4쿼터 다시 코트에 돌아왔다. 경기 종료 2분36초를 남기고 69-69 동점 상황에서 헤인즈가 5반칙 파울로 물러난 뒤 리카르도 포웰이 연속 4점을 집어넣자 SK는 코트니 심스가 공격자 파울을 저지르며 흐름을 내줬다. 종료 1분9초를 남기고 SK가 주희정의 뱅크슛으로 2점 차로 좁혔지만 전자랜드는 이현호가 골밑의 포웰에게 공을 찔러줘 다시 4점 차로 달아났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3초. SK 김선형이 던진 회심의 3점슛이 림을 맞고 튀어나왔다. 정영삼은 종료 37초를 남기고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시켜 진땀 나는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전자랜드가 79-77로 이기며 3연패에서 탈출, 6강 플레이오프(PO) 진출 매직넘버를 ‘1’로 줄였다. SK는 지난 11일 전자랜드전부터 원정 5연패, 2012년 2월 10일 이후 1110일 만에 같은 기록을 썼다. 선두 모비스와의 승차는 3경기, 2위 동부와의 승차는 2경기로 늘어 4강 PO 직행 전망도 흐릿해졌다. 임병선 전문기자 bsnim@seoul.co.kr
  • [프로농구] 멀어지는 2위

    [프로농구] 멀어지는 2위

    SK의 4강 플레이오프(PO) 직행 꿈이 흐릿해졌다. 프로농구 SK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2일 경남 창원체육관을 찾아 벌인 LG와의 프로농구 정규리그 6라운드를 79-86으로 지는 바람에 공동 선두 모비스, 동부와의 승차가 2경기로 벌어졌다. 4강 PO에 직행할 수 있는 2위로 올라설 발판을 마련해야 했던 SK는 남은 다섯 경기에서 안간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주포 애런 헤인즈가 2쿼터에 일찌감치 4반칙에 걸려 어려운 경기를 풀어갈 수밖에 없었다. 반면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고루 활약한 덕에 3연승을 내달린 LG는 오리온스와 공동 4위로 올라섰다. 두 팀이 6강 PO에 진출하더라도 홈에서 시작하고 한 경기를 더 홈에서 치르는 3위 다툼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LG는 50-37로 크게 앞선 채 전반을 마쳤지만 3쿼터부터 SK의 추격에 힘겨워했다. 3쿼터 종료 1분여를 남기고 SK가 6점 차까지 따라붙었지만 LG는 김영환의 연속 4득점으로 숨을 돌렸다. 4쿼터에서도 두 팀의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지만 LG는 해결사 문태종이 4쿼터에서만 10점을 몰아치며 SK의 기세를 꺾었다. 특히 종아리를 다쳐 결장한 포인트가드 김시래 대신 출전한 유병훈이 15득점 8어시스트 3스틸로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운 공이 컸다. 7위 kt는 잠실체육관에서 삼성을 73-61로 눌렀고, 8위 KGC인삼공사는 안양체육관에서 KCC를 76-71로 따돌렸다. KCC는 허재 전 감독의 5연패 이후 지휘권을 넘겨받은 추승균 대행도 5연패를 당해 팀 자체 최다 연패(2007년 2월 10연패) 타이로 주저앉았다. 임병선 전문기자 bsnim@seoul.co.kr
  • FC서울 “PO 뚫고 아시아챔프로”

    프로축구 개막이 20여일 남은 가운데 FC서울이 K리그 클래식 12개 구단 중 가장 먼저 축구공에 불을 댕긴다. 서울은 17일 오후 7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하노이 T&T(베트남)와 2015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서울은 K리그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제주를 물리치고 3위에 올라 극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단판 승부로 열리는 이 경기에서 이기면 서울은 H조에 편성돼 오는 25일 광저우 원정을 시작으로 본선 조별리그에 참가한다. H조는 2013년 대회 챔피언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 디펜딩 챔피언 웨스턴 시드니(호주)와 가시마 앤틀러스(일본) 등 강적들이 잔뜩 몰려 있는 ‘죽음의 조’다. 서울은 번번이 첫 우승컵 앞에서 돌아섰다. 2013년에 결승에 올랐지만 광저우에, 지난해 4강전에서는 시드니에 패해 눈물을 삼켰다. 지난 8일 일본 가고시마 전지훈련에서 돌아온 최용수 감독은 “올 시즌에는 누구도 못 말리는 화끈한 축구를 펼치겠다”고 다시 우승컵에 도전할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서울은 K리그에서 수비수 5명을 포진시키는 스리백 전술로 일관해 ‘버티기 축구’라는 비난을 받았다. 최고의 골잡이 데얀, 플레이메이커 하대성 등이 중국 리그로 빠져나가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스트라이커 정조국이 지난 시즌 말 군 복무를 마치고 합류하는 등 형편이 훨씬 나아졌다. 에스쿠데로, 몰리나 등 다른 공격수들도 겨울 훈련을 통해 발끝을 더욱 날카롭게 했고 캡틴 고명진, 외국인 부주장 오스마르 등도 중원에서 공수를 연결하기 위한 담금질을 마쳤다. 최근 호주 아시안컵에서 마지막 국가대표의 불꽃을 태운 차두리는 이번에도 여전히 든든한 오른쪽 풀백을 자임하고 나섰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사커는 추억이다] 무결점의 짐승이 넣은 두 골 ‘릴리앙 튀랑’

    [사커는 추억이다] 무결점의 짐승이 넣은 두 골 ‘릴리앙 튀랑’

    역대 프랑스 선수들 중에서 국제경기(A매치)에 가장 많이 출전했던 선수를 아십니까? 화려한 족적을 남겼던 미셀 플라티니(Michel Platini, 現 UEFA회장)도 아니고, 레블뢰 군단(‘Les Bleu’는 프랑스 어로 파란색. 프랑스 국대의 유니폼에서 유래된 애칭)의 최전성기를 진두지휘했던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도 아닙니다. 1991년에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장 피에르 파팽(Jean Pierre Papin)도 아닙니다. 답은 ‘무결점의 짐승'(zero defects beast)이라 불렸던 릴리앙 튀랑(Lilian Thuram)입니다. 그는 신인 때부터 냉철한 판단으로 탁월한 위치선정을 보여주었으며, 특유의 피지컬과 스피드로 ‘이 선수는 결점이 없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AC파르마, 유벤투스, FC바르셀로나 그리고 프랑스 대표팀에서까지 튀랑은 가는 곳마다 주전으로 활동했고, 이 모든 팀을 정상반열에 올려놓은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그의 활약상이 인상적으로 뇌리에 꽂히기 시작한 건 97년 가을이었습니다. 튀랑이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파르마라는 팀에서 활약을 펼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의 파르마는 세리에의 우승후보였습니다. 파르마를 비롯해 유벤투스,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란, 라치오, 피오렌티나, AS로마까지. 총 7개 팀이 우승경쟁을 펼치며 ‘세븐 시스터즈’라 불리며 영국의 텔레그래프 지로부터 “세리에가 상향평준화되었다”고 평가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AC파르마는 강력한 수비진을 바탕으로 안전한 경기력을 선보이는 팀이었습니다. 수비수로서 발롱도르를 받은 사나이 ‘파비오 칸나바로’(Fabio Cannavaro)를 중심으로 아르센티나의 국가대표 센터백 ‘로베르토 센시니’(Roberto Sensini)와 릴리앙 튀랑의 스리백은 최강의 호흡을 자랑했습니다. 분명히 스리백임에도 불구하고 상대편 공격수에게는 포백보다도 더 신경 쓰이는 수비조합이었습니다. 최후방에는 현존하는 최고의 키퍼 ‘지안루이지 부폰’(Gianluigi Buffon)이 든든하게 골망을 지키고 있었으며, 당시 남미의 최고 테크니션이라 불렸던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Juan Sebastian Veron)이 중원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에르난 크레스포’(Hernan Crespo) 또한 1996년 리버플레이트에서 이적 온 이후로 팀의 주포로서 파르마의 우승경쟁을 도왔습니다. 센시니-베론-크레스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중심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남미 특유의 빠른 템포의 공격과 2대1 패스플레이로 공격을 주고하던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피지컬을 교묘하게 섞어 전형적인 남미축구에서 탈피했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선수가 바로 릴리앙 튀랑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 불리던 인테르의 호나우도(Ronaldo)가 “파르마와의 경기는 항상 긴장된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들을 상대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검은 흑인 선수가 제일 무섭다. 그는 마치 사나운 날짐승 같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이후로 이탈리아 언론에서는 그를 짐승이라고 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호나우두와 세리에 최고의 공격수로 손꼽히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Gabriel Batistuta)도 1997년 파르마와의 원정경기에서 “짐승이 파르마에 온 이후로 나는 그 팀과 상대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 저번 홈경기에서 나의 완벽한 헤딩을 그가 시저스 킥으로 걷어내는 것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것 같다”며 튀랑을 치켜세웠지요. 특히 칸나바로와의 호흡은 가히 그 어느 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최강의 수비조합이라고 할 만 했습니다. “전 세계 어느 팀과 비교해 봐도 그보다 나은 수비조합을 찾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델 라 포스트지의 1면 기사제목은 당시 파르마의 수비가 얼마나 견고했는지를 잘 나타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96/97시즌에 아쉽게도 승점2점 차로 유벤투스에게 우승을 내어주며 준우승을 차지해야만 했던 튀랑은 자국에서 열린 98년 월드컵에서 자신의 진가를 만천하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축구는 ‘예술’(Art Soccer)이라고 불리며 유일무이하게 신의 레벨에 도전하는 축구였습니다. 마르셀 드사이(Marcel Desailly)-로랑 블랑(Laurent Blanc)-릴리앙 튀랑-비셍테 리자라쥐(Bixente Lizarazu)가 구성했던 포백은 베를린 장벽처럼 견고했습니다. 지네딘 지단과 엠마뉴엘 쁘띠(Emmanuel Petit), 그리고 디디에 데샹(Didier Deschamps)이 구성했던 미드필더 진은 공수전환이 물 흐르듯 이어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구현하기에 한 점이 부족함도 없었지요.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미드필더였던 카람뵈우가 벤치를 지키고 있을 정도로 맴버가 탄탄했습니다. 더불어 최고의 크로스 능력을 선보였던 유리 조르카예프(Youri Djorkaeff)와 로베르 피레(Robert Pires)가 양쪽 측면을 담당했습니다. 그들이 패스해 준 볼을 논스톱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크리스토프 뒤가리(Christophe Dugarry)와 다비드 트레제게(David Trezeguet)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예 티에리 앙리(Thierry Henry)도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줄 정도로 빈틈이 없는 최고의 엔트리였습니다. 튀랑의 진면목을 보여줬던 대표적인 경기는 8강 이탈리아전과 4강 크로아티아 전이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전에서 로베르토 바조와 측면대결을 펼쳤습니다. 바조는 오른쪽으로 측면 공격을 시도했지만 튀랑은 한 번의 크로스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튀랑은 묵직한 오버래핑을 여러 차례 시도하며 말디니를 힘으로 제압했습니다. 공수에 걸친 거의 완벽한 활약이었습니다. 결국 프랑스는 승부차기에서 이탈리아를 4-3으로 제압하며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했던 이탈리아 전과는 달리 크로아티아와의 준결승전은 처음부터 다소 어렵게 흘러갔습니다. 당시의 크로아티아는 월드컵 첫 출전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가 있던 팀이었습니다. 특히 발칸의 폭격기라 불리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다보르 수케르'(Davor Suker)의 존재감은 프랑스가 여태껏 이기고 올라왔던 다른 모든 강팀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선취골도 수케르의 발에서 나오면서 프랑스의 홈 관중들은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사상 초유의 결승행을 바랬지만 다시 4강에서 꿈을 접어야 할 것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드리웠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튀랑은 기적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페널티 박스 밖에서부터 2대1 패스를 하면서 2명의 센터백을 무력화시켰고, 넘어지면서 슈팅을 시도했습니다. 그것이 튀랑의 A매치 첫 골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터진 말 그대로 ‘천금같은’ 골이었습니다. 그것이 튀랑의 발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는 10분 후 다시 황소처럼 공을 페널티 박스까지 몰고 오더니 오른쪽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중거리 슛을 시도했습니다. 공은 빨래 줄처럼 골망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크로아티아의 모든 수비수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지단, 데샹, 조르카예프를 철벽처럼 봉쇄하며 팽팽한 경기를 이어갔던 흐름에서 나왔던 골이었기 때문에 더 믿기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국민들도 튀랑이 저기서 저런 슈팅을 때릴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프랑스 국민의 염원에 감복한 신이, 튀랑에게 잠시 동안 지단의 재능을 빌려준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골이었습니다. 그 골이 튀랑이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넣은 두 번째 골이자 마지막 골이었습니다. 훗날 SKY SPORTS 인터뷰에서 티에리 앙리는 “만약 그 때 튀랑이 프랑스 대선에 출마했으면 대통령에 당선됐을 겁니다.”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인터뷰 당시 옆에 있던 트레제게도 “그만큼 튀랑의 두 골은 프랑스가 가장 필요로 했던 한 경기에서만 나왔고, 그 후로 어떤 상황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고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튀랑의 골로 월드컵 우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에메 자케 감독님은 튀랑에게 고마워합니다”라며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어조로 튀랑을 칭찬했습니다. 2008년까지 142경기를 출전하면서 프랑스 A매치 최다 출전자가 된 릴리앙 튀랑. 그리고 그의 유일한 두 골. 그것은 정말 드라마처럼 기적적인 한 경기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후 튀랑은 파르마를 98/99시즌 코파아메리카 정상에 올려놓았고 찰떡궁합을 자랑했던 부폰, 칸나바로와 함께 유벤투스로 이적했습니다. 유벤투스에서는 파르마시절과는 달리 라이트백으로 더 많이 활약했습니다. 튀랑-칸나바로-몬테로-제비나가 주축이 되었던 수비라인은 98년의 프랑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고 튀랑은 그의 커리어 역사상 첫 리그 우승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의 칼치오폴리로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또 다른 전성기를 보낸 그는 파리 생 제르망에서 1년을 더 뛰고 고국에서 은퇴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가슴 아픈 소식이 축구 팬들을 찾아왔지요. 메디컬 테스트에서 ‘심장비대증'(심장이 커지는 병)이 발견되어 입단이 취소된 것입니다. 그는 일전에 똑같은 병으로 가족을 잃었던 경험이 있어 2008년 돌연 현역은퇴를 결심하게 됩니다. 은퇴 후 그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로 변신해 전시회, 이벤트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역시절부터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참여했었던 그는 2011년 말 '인간동물원 : 야만인의 발명'이란 전시회를 기획하여 팬들 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인종차별 캠페인을 하면서도 자신은 축구와는 떨어져 살 수 없다며 일주일에 한번은 꼭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장을 찾는다는 튀랑. 앞으로도 그의 파워풀한 활동량과 스피드, 무엇보다도 그가 넣었던 두 골은 영원히 프랑스 국민들의 가슴속에, 전 세계 축구팬들의 뇌리 속에 전설로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김용표 인턴기자 nownews@seoul.co.kr
  • 차두리 고마워…아시안컵 축구 결승 풀타임 뛰고 국대 은퇴

    차두리 고마워…아시안컵 축구 결승 풀타임 뛰고 국대 은퇴

    차두리 고마워, 아시안컵 축구 결승 끝으로 국대 은퇴 차두리 고마워, 아시안컵 축구 결승 한국대표팀이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결승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경기가 끝나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이번 대회로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차두리의 이름이 올라왔다. 31일(한국시간) 호주 시드니 호주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 결승에서 차두리는 연장전까지 15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마지막 경기를 뜨겁게 마무리했다. 이날 차두리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서 적극적으로 경기장을 누볐다. 차두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성공적인 드리블 돌파로 그 실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무려 14년이란 시간동안 국가대표로 뛰어준 차두리에게 네티즌들은 ‘차두리 고마워’라는 키워드를 만들어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차두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뛰는 동안 월드컵 4강진출과 아시안컵 준우승을 함께 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두리 고마워!…아시안컵 축구 결승 풀타임 뛰고 은퇴

    차두리 고마워!…아시안컵 축구 결승 풀타임 뛰고 은퇴

    차두리 고마워, 아시안컵 축구 결승 끝으로 국대 은퇴 차두리 고마워, 아시안컵 축구 결승 한국대표팀이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결승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경기가 끝나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이번 대회로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차두리의 이름이 올라왔다. 31일(한국시간) 호주 시드니 호주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 결승에서 차두리는 연장전까지 15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마지막 경기를 뜨겁게 마무리했다. 이날 차두리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서 적극적으로 경기장을 누볐다. 차두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성공적인 드리블 돌파로 그 실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무려 14년이란 시간동안 국가대표로 뛰어준 차두리에게 네티즌들은 ‘차두리 고마워’라는 키워드를 만들어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차두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뛰는 동안 월드컵 4강진출과 아시안컵 준우승을 함께 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 호주 결승전 중계로 무도 결방 결정 ‘무도팬들 아쉬움폭발’

    한국 호주 결승전 중계로 무도 결방 결정 ‘무도팬들 아쉬움폭발’

    MBC ‘무한도전’이 한국 호주 결승전 중계로 결방된다. MBC는 31일 방영 예정이었던 ‘무한도전’을 2015 AFC 아시안컵 한국 대 호주 결승전 생중계로 대체했다. 한편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26일 아시안컵 4강전에서 이라크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따라서 호주 대 UAE 경기 승자인 호주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경기를 펼친다. 사진=MBC 무한도전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차두리 고마워…아시안컵 축구 결승 끝으로 국대 은퇴

    차두리 고마워…아시안컵 축구 결승 끝으로 국대 은퇴

    차두리 고마워, 아시안컵 축구 결승 끝으로 국대 은퇴 차두리 고마워, 아시안컵 축구 결승 한국대표팀이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결승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경기가 끝나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이번 대회로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차두리의 이름이 올라왔다. 31일(한국시간) 호주 시드니 호주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 결승에서 차두리는 연장전까지 15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마지막 경기를 뜨겁게 마무리했다. 이날 차두리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서 적극적으로 경기장을 누볐다. 차두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성공적인 드리블 돌파로 그 실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무려 14년이란 시간동안 국가대표로 뛰어준 차두리에게 네티즌들은 ‘차두리 고마워’라는 키워드를 만들어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차두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뛰는 동안 월드컵 4강진출과 아시안컵 준우승을 함께 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홍성찬 호주오픈 테니스 Jr 결승… 한국 첫 우승 꿈

    홍성찬 호주오픈 테니스 Jr 결승… 한국 첫 우승 꿈

    남자 주니어 테니스 세계 랭킹 9위 홍성찬(18·횡성고)이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주니어 남자단식 결승에 진출했다. 홍성찬은 30일 호주 멜버른 파크 테니스장에서 열린 대회 12일째 4강전에서 아키라 샌틸런(주니어 24위·호주)을 2-0(6-2 7-6<2>)으로 물리쳐 31일 낮 12시 30분 시작하는 결승(SBS스포츠 생중계)에서 로만 사피울린(주니어 19위·러시아)과 우승을 다툰다. 이번 대회 톱 시드를 받은 사피울린은 주라베크 카리모프(주니어 45위·우즈베키스탄)를 2-1(6-3 6<4>-7 6-1)로 따돌리고 결승에 올랐다. 한국 선수가 테니스 그랜드슬램 주니어 단식에서 결승에 오른 것은 1994년 윔블던 전미라, 1995년 이종민과 2005년 김선용(이상 호주오픈), 2013년 윔블던 정현에 이어 홍성찬이 다섯 번째다. 앞서 결승에 올랐던 4명은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2011년에는 부모가 모두 한국 사람인 미국 국적의 그레이스 민이 US오픈 주니어 여자단식 정상에 올랐다. 이어 열린 남자단식 준결승에서는 세계 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가 지난해 대회 우승자 스탄 바브링카(4위·스위스)를 풀세트 접전 끝에 3-2(7-6<1> 3-6 6-4 4-6 6-0)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 다음달 1일 앤디 머리(6위·영국)와 우승을 다툰다. 조코비치는 1987년생 동갑인 머리와의 상대 전적에서 15승8패로 앞섰다. 특히 2013년 윔블던 결승에서 머리에게 무릎을 꿇은 뒤 조코비치가 4연승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는 네 차례 만나 2승2패로 팽팽했다. 2011년과 2013년 호주오픈 결승에서는 조코비치가 이겼으나 2012년 US오픈과 2013년 윔블던 결승에서는 머리가 이겼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축구 결승, 한국 호주 결승전 중계로 무한도전 아쉬운 결방 ‘우결과 음악중심은?’

    축구 결승, 한국 호주 결승전 중계로 무한도전 아쉬운 결방 ‘우결과 음악중심은?’

    한국 호주 결승전, 무한도전 아쉬운 결방 ‘우결과 음악중심은?’ ’한국 호주 결승전’ MBC ‘무한도전’이 한국 호주 결승전 중계로 결방된다. MBC는 31일 방영 예정이었던 ‘무한도전’을 2015 AFC 아시안컵 한국 대 호주 결승전 생중계로 대체했다. 앞서 ‘무한도전’은 지난 17일에도 아시안컵A조 예선 한국 대 호주의 경기 생중계로 결방된 바 있다. ’무한도전’은 결방되지만, ‘음악중심’과 ‘우리결혼했어요’는 각각 35분 당겨진 3시 15분과 4시 25분에 방송될 예정이다. SBS도 마찬가지로 ‘놀라운 대회 스타킹’이 결방하고 아시안컵 결승전을 생중계한다. 한편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26일 아시안컵 4강전에서 이라크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따라서 호주 대 UAE 경기 승자인 호주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경기를 펼친다. 사진=MBC 무한도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국 호주 결승전, 무한도전 결방 결정 ‘아쉬워~’

    한국 호주 결승전, 무한도전 결방 결정 ‘아쉬워~’

    MBC ‘무한도전’이 한국 호주 결승전 중계로 결방된다. MBC는 31일 방영 예정이었던 ‘무한도전’을 2015 AFC 아시안컵 한국 대 호주 결승전 생중계로 대체했다. 한편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26일 아시안컵 4강전에서 이라크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따라서 호주 대 UAE 경기 승자인 호주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경기를 펼친다. 사진=MBC 무한도전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차두리 고마워…아시안컵 축구 결승 풀타임 뛰고 은퇴

    차두리 고마워…아시안컵 축구 결승 풀타임 뛰고 은퇴

    차두리 고마워, 아시안컵 축구 결승 끝으로 국대 은퇴 차두리 고마워, 아시안컵 축구 결승 한국대표팀이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결승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경기가 끝나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이번 대회로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차두리의 이름이 올라왔다. 31일(한국시간) 호주 시드니 호주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 결승에서 차두리는 연장전까지 15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마지막 경기를 뜨겁게 마무리했다. 이날 차두리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서 적극적으로 경기장을 누볐다. 차두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성공적인 드리블 돌파로 그 실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무려 14년이란 시간동안 국가대표로 뛰어준 차두리에게 네티즌들은 ‘차두리 고마워’라는 키워드를 만들어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차두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뛰는 동안 월드컵 4강진출과 아시안컵 준우승을 함께 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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