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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4·3사건 비극 65년 만에 등 돌렸던 경찰·유족 손 잡다

    제주 4·3사건 비극 65년 만에 등 돌렸던 경찰·유족 손 잡다

    1948년 제주4·3으로 인해 65년 동안이나 서로 등을 돌렸던 경찰과 유족들이 화해의 손을 맞잡았다. 제주4·3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는 2일 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화해와 상생을 위한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두 단체는 편향된 시각에서 불신하고 냉대하며 오직 자기들의 주장만 옳다며 등지고 살아왔다”면서 “공동의 노력을 통해 화해와 상생으로 제주 발전에 동참할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제주4·3은 1948년 4월~1954년 9월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 항쟁을 가리킨다. 일본이 패망한 뒤 한반도를 통치한 미 군정에 의해 친일 세력이 재등장하고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과정에서 도민이 떼죽음한 사건이다. 유족들은 유·무죄와 별도로 군경 토벌대에 처형됐다는 이유만으로 이른바 ‘빨갱이’ 딱지가 붙어 피해를 대물림했다. 2003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진상조사위원회 의견에 따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 충돌 및 진압 과정에서 국가 권력에 의한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유족과 도민에게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지난 5월 4·3유족회 제주시, 서귀포시지부회 창립 기념 행사에 경우회 회원들이 참석하고 6월 6일 제58회 현충일 추념식 때 4·3 유족들이 충혼묘지에 참석하는 등 최근 들어 두 단체가 서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현창하 경우회장은 “4·3 당시 당사자들은 숨졌거나 고령인데 언제까지 대립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4·3은 시대가 낳은 비극으로, 도민 모두가 피해자라는 입장에서 서로 아픔을 치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문현 4·3유족회장은 “서로 이해하고 도우면서 본보기가 되면 다른 4·3 관련 단체들도 화해와 상생의 분위기에 동참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4·3위령제 朴대통령도 불참

    4·3위령제 朴대통령도 불참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리는 제65주년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박근혜 대통령이 불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북한의 1호 전투 근무 태세 돌입 등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4·3 위령제에 참석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게 청와대 내부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를 대표해 국무총리가 4·3 위령제에 참석하는 것이 그동안의 의전 관례”라고 밝혔지만 박 대통령의 위령제 불참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8월과 10월, 12월 등 세 차례 제주 유세에서 “4·3사건은 제주 도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가슴 아파 하는 사건으로 그동안 정부의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부족했다. 국가 추모 기념일 제정을 비롯해 제주 도민들의 아픔이 가실 때까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4·3유족회와 제주도의회 등은 “박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은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미진했던 제주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했다.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은 4·3 위령제에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공언했다는 점에서 위령제 불참에 대한 실망감이 적지 않다. 민주통합당 김현 대변인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 대통합을 강조한 박 대통령이 정작 대통령에 취임해서는 4·3사건의 아픔을 외면하며 국민 화합의 약속을 저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은 반드시 지킬 것이며 위령제에 불참한다고 해서 제주 4·3사건에 대한 해결 의지가 후퇴한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새누리 5龍 제주 민심잡기 총출동

    새누리 5龍 제주 민심잡기 총출동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 5명과 당 지도부가 1일 제주시에 있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현 정부에서 집권 여당 지도부와 대선후보들이 동시에 이곳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17~19대 총선에서 1석도 건지지 못할 만큼 여권에 싸늘한 제주 민심을 달래 보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박근혜 후보는 이날 4·3 평화공원 참배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제주 4·3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고 많은 분들이 희생되신 가슴 아픈 역사다.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대선 공약에 4·3사건 유족을 위한 정책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홍성수 4·3 유족회장이 “재단 기금 외에 복지 예산으로 유족들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자 “잘 조사해서 반영하겠다.”고만 답했다. 박 후보가 4·3 평화공원을 방문한 것은 2007년 대선 경선 후보 시절 이후 5년 만이다. 4·3 평화공원 참배를 마친 대선 경선 후보 5명은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 참석했다. ‘안녕하시우까. 참말로 반갑수예.’라는 제주도 방언으로 연설을 시작한 박 후보는 야권을 겨냥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과거를 헤집고, 상처를 뒤집어서 국민을 편 가르고 갈등을 선동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개혁의 대상, 쇄신의 대상이 아니겠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는 공항 인프라 확충과 민군 복합 관광미항 건설을 약속했다. 김문수 후보는 야권의 종북세력 논란과 관련, “대선은 애국세력과 종북연합세력의 대결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종북연합세력에 맡길 수 없지 않으냐.”고 호소했다. 김태호 후보는 “안철수 교수는 책을 내면서 ‘(국민들이) 내 생각과 같다면 출마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 존경받는 사람들은 국민들로부터 검증받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임태희 후보는 “온 국민들이 우리 새누리당 경선보다 올림픽을 응원하고 있다. 올림픽 기간 중에라도 일정을 조정하면 어떻겠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안상수 후보는 “인천시장 재임 기간 인천공항을 1등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면서 “제주 신공항을 빠른 시일 내 최고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4·3사건 희생자·유족 추가신고 하세요

    정부가 제주4·3사건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추가 신고를 오는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받는다. 민주통합당 강창일 의원(제주시갑)은 지난 19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사건실무위원회 관계자 등과 함께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을 만나 이 같은 정부의 입장을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맹 장관은 이 자리에서 “희생자 및 유족 추가 신고 요청에 대해 국무총리실이 18일 승인함에 따라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3개월간 추가 신고를 받을 예정”이라고 답했다. 맹 장관은 11월부터 추가 신고를 받는 이유는 그에 따른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고, 사전 홍보를 통해 많은 유족의 신고를 독려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유족회와 제주도, 제주도의회 등은 4·3사건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추가 신고, 4·3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 확대, 국가기념일 지정 등을 정부에 줄곧 요구해 왔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가 지난해 1월까지 신고를 받아 결정한 4·3사건 관련 희생자(행방불명자 포함)는 1만 4033명, 유족은 3만 1253명이다. 정부는 이후 추가 신고를 받지 않았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6·2 지방선거 현장] 4·3유족회 與비례대표 추천거절

    ‘4·3 유족회는 정치 단체 아니다.’ 한나라당 제주도당이 제주 4·3유족회에 도의원 비례대표 1번 추천을 요청했지만 유족회는 13일 거절의사를 밝혔다. 제주도당은 비례대표 1번 여성후보 추천을 요청하면서 4·3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따른 후속사업 완수를 위해 지속적인 대 중앙 설득작업을 향후 유족회와 공동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또 4월 3일을 공식적인 ‘국가추념일’로 지정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희생자 유해 발굴의 마무리, 4·3평화공원 3단계사업 시행, 4·3재단기금 확충 등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홍성수 4·3유족회장은 “유족회는 정치단체가 아니며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이같은 요청이 있어도 수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거절했다. 또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당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 입장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헌편 민주당 제주도당은 도의원 공천과 관련, 전략공천 없이 100% 국민참여 경선을 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참여경선 방식은 당원선거인단 투표결과 50%, 전화면접 여론조사 결과 50% 를 반영하여 후보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도의원 후보자 공모는 14일 마감하며, 15~16일 개별 후보 면접, 경선은 20~25일 사이에 치러질 예정이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미처 꿈 피우지 못하고…” 분향소마다 끝없는 애도 물결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미처 꿈 피우지 못하고…” 분향소마다 끝없는 애도 물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사흘째인 25일 전국 81개 정부 분향소와 197개 민간 분향소에는 평일인데도 남녀노소 추모객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일부 추모객은 고인의 비극적인 최후가 안타까운 듯 흐느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또 전 세계 재외공관과 한인회에도 분향소가 설치돼 교민들도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전국 278곳 분향소에 추모객 몰려 서울 경희궁 옆 서울역사박물관 로비에 마련된 정부 공식 분향소에서는 오전 8시쯤 유족측 대표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노 전 대통령의 영정 봉안식을 거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식 조문에 들어갔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이 유족대표 자격으로 추모객을 맞았다. 한승수 국무총리,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희락 경찰청장 등 정·관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과잉수사 논란으로 주목받고 있는 임채진 검찰총장도 문성우 대검 차장과 빈소를 찾았으나 굳은 표정으로 헌화한 뒤 말없이 돌아갔다. 오세훈 서울시장,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도 고인을 엄숙히 애도했다.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여행객과 출·퇴근길 직장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추모객을 맞았다. 분향소 주변에서는 ‘상록수’ ‘아침이슬’ 등 민중가요가 배경음악으로 잔잔히 울렸다. 서울시는 모든 분향소에 페트병 수돗물 ‘아리수’를 무료 공급했다. 한편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대한문 앞에 차려진 분향소를 경찰차로 막은 데 대해 “일부는 버스를 치워달라고 요구하지만 일부는 경찰 버스가 막아주니 분향하는 데 오히려 아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버스가 막아주니 아늑” 발언 논란 전남 함평군 해보면 대각리 오두마을에서 생태휴양지 ‘황토와 들꽃세상’을 운영하는 김요한(66) 목사는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 큰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김 목사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오두마을을 방문한 사실을 떠올렸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국가를 대표해 제주 도민과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고,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위령제에 직접 참석해 희생자들을 위로했다.”면서 조문단을 구성, 국민장에 참석하기로 했다. 부산역광장 분향소에는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가 영정 앞에 추모의 글을 올리고 “무엇이 급해 그토록 소원했던 ‘사람 사는 세상 봉하마을’의 꿈을 미처 피우지 못한 채 서둘러 떠났느냐.”라고 애통해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4월 충북도로 이관한 대통령 별장 청남대에도 영정이 설치됐다. 청남대관리사무소는 역사문화관에 영정과 함께 좌우에 노 전 대통령의 활동사진 20여점을 전시했다. 대전시청 북문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50m 길이의 현수막이 걸렸고, 노사모 회원이 사용했던 노란색 풍선도 등장해 애통함을 더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애도의 조문행렬 주미 한국대사관은 24일(현지시간) 대사관 1층에 분향소를 설치, 교민과 외국인들의 조문을 받았다. 한덕수 주미대사는 부인과 함께 가장 먼저 분향한 뒤 동포단체 등의 조문을 받았다. 한 대사는 “애통하고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강하신 분이라 잘 견디실 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인회와 종교 단체에도 민간 분향소가 속속 설치됐다. 주일 대사관도 25일 미나토구의 대사관 건물 1층 접견실에 고인의 분향소를 설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한·일 관계를 냉각시켰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당수, 하시모토 세이코 외무성 부대신과 야부나카 미토지 외무성 사무차관 등이 이날 오후 분향소를 찾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면서 명복을 빌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도 이날 총영사관에서 떨어진 지역의 교민들을 위해 지역 민단에 분향소를 뒀다. 이현주 주중한국대사관 공사는 “대사관 직원들에게 국민장 기간에 화려한 복장이나 빨간색 넥타이 등을 자제하고 음주 가무를 중단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대전 이천열·베이징 박홍환·서울 김승훈기자 sky@seoul.co.kr
  • [Local] 제주 4·3특별법 개정 반대 투쟁

    제주 4·3사건 관련 단체들이 가칭 ‘한나라당 제주4·3특별법개정안 반대 범도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4·3특별법 개정안 폐기를 위해 공동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제주4·3연구소,제주4·3희생자유족회,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등은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제주4·3희생자유족회 김두연 회장은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4·3위원회 기능을 존치시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시법에 의해 2010년 10월이면 폐지되기 때문에 이는 곧 4·3특별법의 폐기를 노리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4·3사건 좌익 폭동은 왜곡”

    국방부가 제주 4·3사건을 ‘좌익세력의 무장폭동’으로 규정, 고교용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관련 내용을 수정하도록 교육과학기술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자 제주 4·3 관련 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제주 4·3희생자유족회, 제주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제주 4·3연구소 등은 19일 성명을 내고 “그 동안 정부기관의 조사, 연구에 의해 4·3사건이 남로당 중앙당 지시와는 무관하게 대다수가 무고한 희생을 당했음이 밝혀졌는 데도 ‘남로당 지시’,‘선동에 속은 양민’ 운운하는 것은 수만 제주도민의 억울한 희생에 이념을 덧칠해 ‘불가피한 희생’으로 몰고 가려는 작태”라고 비난했다. 이들 단체는 “국방부가 4·3사건 왜곡에 앞장서는 등 현 정부가 4·3위원회 폐지를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4·3사건을 왜곡하고 제주도민을 좌익반란세력으로 규정한 국방부 장관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노총제주본부와 진보신당제주추진위원회도 “국방부의 행태는 4·3 영령과 제주도민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역사적 평가와 국가의 결정에 대해 반기를 드는 반란 행위”라며 교과서를 개정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보수단체 ‘제주4·3사건 폭동’ 주장 파문

    일부 보수단체가 정부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폐기하고 4·3평화공원 공사를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진정하고 나서 제주 4·3사건 유가족 등 관련 기관·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28일 제주 4·3사건 관련 기관·단체에 따르면 건국유족회 제주유족회, 자유시민연대, 대한민국수호연합 등 5개 단체 대표로 구성된 ‘제주 4·3사건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위’가 지난 24일 대통령직인수위에 진정서를 보내 이같이 요구했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진상보고서가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사형수, 무기수를 비롯해 폭동에 가담한 1만 3564명을 희생자로 만들기 위해 ‘제주 4·3폭동’을 ‘제주 4·3민중봉기’라고 가짜로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또 “제주시 봉개동에 ‘폭도공원’(평화공원)을 조성해 국군과 경찰을 증오와 타도의 대상이 되게 하고 대한민국을 적화통일 학습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단체는 2003년 정부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하고, 이를 토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하자 위헌이라며 이듬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소송을 제기했으나 각하된 바 있다. 한편 대통령직 인수위는 최근 제주 4·3위원회 등 14개 과거사위를 폐지하고 이를 진실화해위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구례 ‘여·순사건 위령탑’ 제막

    20일 전남 구례군에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졌다. 올 4월 순천에 이어 두번째다. 이날 구례군과 유족회에 따르면 군비 6800만원으로 구례읍 서시천 둔치공원에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탑’을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 유족회원과 기관단체장 등 200여명이 참석해 분향하고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위로했다. 여·순사건 유족회 구례군지부 박찬근(71) 지부장은 “사료 등에 따르면 당시 구례에서만 1000여명의 양민이 희생됐다.”며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원혼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중이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일부 병사들이 제주도 4·3사건 진압작전에 반발, 우익계 장교들을 사살하고 여수·순천·구례 등을 점령하는 바람에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천명의 무고한 양민이 희생됐었다.구례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오늘의 눈] 재평가 된 제주 4·3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 4·3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공식 사과함에 따라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의 하나인 4·3사건은 굴절과 왜곡의 역사를 보내고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됐다. 이는 지난 2000년 1월 정부의 제주4·3특별법 공포 이후 3년 10개월에 걸친 대장정의 결과지만 제주도민들로서는 실로 4·3발발 반세기여 만에 얻은 가슴 벅찬 쾌거이며 승리다. 대통령의 사과발표 직후 4·3유족들은 물론이고 4·3사건희생자유족회,4·3연구소 등 4·3관련 단체원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고 그동안의 한과 반목,갈등이 풀리는 감격에 눈물 흘렸다. 남북 분단 이후 처음 제주에서 치러진 대규모 민간교류 체육·문화축전인 남북평화축전에 이어 1일 성공리에 끝난 제주평화포럼 과정에서의 이 역사적인 ‘4·3평가’로 인해 제주는 이제 ‘붉은 섬’이라는 오명을 씻고 ‘인권과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게 됐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의 사과는 4·3의 완전한 매듭이 아니라 신원·상생·화합의 시작이다.“4·3의 교훈을 더욱 승화시켜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가치를 확산시키고 화해와 협력으로 이 땅의 모든 대립과 분열을 종식시켜 한반도의 평화,나아가 동북아와 세계 평화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대통령의 말처럼 미래 기약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의 사과로 4·3평화공원 조성,4·3추념일 제정,후유장애자와 유족에 대한 생계비 지원,4·3유적지 발굴 등 정부 4·3진상규명위원회가 건의한 7개 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4·3에 대한 기존 주장과 해석을 지지하는 전·현직 군·경 등 보수층의 반발은 여전하다. 이로 인해 앞으로 4·3특별법 개정을 통한 후속조치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일 가능성이 많지만 이들의 의견 역시 존중돼야 함은 물론이다.이것이 민주주의다. 김영주 전국부 부장급 chejukyj@
  • ‘제주4·3’ 대통령사과 배경/ ‘잘못된 과거’ 국가사과 선례로

    노무현 대통령이 31일 제주 4·3사건에 대해 사과함에 따라,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를 매듭짓는 계기를 마련했다.공권력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들에 대한 이번 사과로 한국전쟁을 전후해 발생한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유사 사건들에 대해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단 구성 및 명예회복 요구들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대한민국건국 희생자유족회 등은 크게 반발했다. 장준영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은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정부가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었다.”면서 “과거의 잘못된 사건에 대해 국가가 사과하는 것은 미래로 한 발짝 움직이기 위한 것인 만큼 불만이 있는 층들도 한국의 인권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제주 4·3사건은 역대 정부에서 제주도민이 줄기차게 ‘명예회복’을 요구해온 사안이었다.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론화돼 국회에서 99년 말 4·3특별법이 제정됐다.정부는 이 법에 따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4·3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시켜,지난 10월15일 최종보고서를 확정했다.노 대통령은 “사실 4·3특별법은 국민의 정부 시절 김 전 대통령이 마음먹고 만든 법”이라며 “제가 오늘 받은 박수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받는 박수로 생각한다.마음에 미안함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진상위의 사과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지만,보수세력의 반발 등 이념논쟁으로 비화될 조짐이 일자 우려하는 눈치다.노 대통령의 이번 제주도 일정 중 4·3평화공원 조성현장 방문을 포함시킬지 여부를 두고도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정무쪽의 시민사회비서관들과 일부 참모들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현장을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했고,의전과 행사쪽 참모들은 “지난 9개월간 대통령의 지방 순회일정은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만큼 일관성 유지 차원에서 방문하면 안 된다.”는 명목으로 반대했다. 결국 평화공원 현장방문은 실현되지 못했다.‘사과’의 수위도 문제였다.한 관계자는 “사죄,사과,사의,유감 등 단어를 놓고 고민했지만 명료하게 하자는 입장이 우세했다.”고 전했다. 문소영기자 symun@
  • ‘제주4·3보고서’ 검토소위 통과

    지난 3월29일 잠정채택돼 6개월간 유예기간을 뒀던 정부의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가 7일 검토소위원회를 통과,오는 15일 열릴 전체회의에서 정부의 첫 공식보고서로 채택될 지 주목된다.정부는 이날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주 4·3보고서 검토소위’에서 새롭게 제기된 보수단체와 4·3유족회 등의 수정의견 360건 가운데 30여건을 바탕으로 내용이 일부 수정된 보고서를 통과시켰다. 조현석기자
  • 韓國戰 정전 50년 양민학살 재조명

    한국전쟁이 끝난지 50년이 지났는데도 몸서리쳐지는 아픔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당시의 양민학살 현장에서 최근 유골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보상,명예회복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경남 산청 외공리사건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소정골에서는 3년 전부터 매년 4월5일 위령제가 열린다. 소정골에서 양민들이 학살됐다는 소문은 2000년 5월 14일 사실로 확인됐다.진주와 산청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장서 현장에서 250여구의 유골과 유품을 발굴했다. ●통비(通匪)로 몰린 마을주민 떼죽음 당시 발굴작업을 지켜본 참석자들은 설마하다 쏟아져 나오는 유골을 보며 치를 떨었다.굴삭기가 땅을 1m쯤 파내려가자 희생자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됐다.어린이와 부녀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다수 있었다.발굴단은 당초 6기의 무덤을 모두 발굴키로 했으나 1기에서 엄청난 유골이 나오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발굴된 유골만 수습해 합장하고 작업을 중단했다. 발굴작업을 주도했던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 김영이 사무국장은 “뒤엉켜 있는 유골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면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유골이 나와 작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전 당시 거창·함양에서 양민들이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학살당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낮에는 태극기를 게양하고,밤에는 인공기를 꽂는 상황이었지만 국군들은 양민들을 통비(通匪)로 몰아 무차별 처형했다.당시 열한살이었던 강복석(63·진주시 상봉서동)씨도 “학살현장에서 2시간 정도 총소리가 들렸고,골짜기에서 나온 군인들이 삽과 곡괭이를 강물에 씻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이곳에서의 학살은 사건발생 10년만에 신문보도로 드러났지만 이듬해 일어난 5·16쿠데타로 다시 어둠속에 묻혔다. ●유골 쏟아져 작업중단 외공리 대책위는 누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난 3월 개혁당 김원웅 의원을 통해 국회에 청원도 했다.외공리 대책위 서봉석 실행위원장은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반인륜적인범죄”라며 “한국전이 끝난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진상규명이 안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산청 이정규 기자 jeong@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사건 경북 경산시 평산동 폐(廢)코발트광산 인근 대원골에서 최근 한국전쟁 직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의 두개골·치아 등 25점의 유골과 신발밑창 등 다량의 유류품이 발견됐다.2000년 3월 폐쇄된 코발트광산 입구 및 갱도 속에서 한국전쟁 당시 처형된 희생자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데 이은 것이다. ●70년대 초 정부가 갱도 입구 폐쇄 경산 폐 코발트광산 학살사건의 희생자는 35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 대부분은 대구형무소 수감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사건이 터진 것은 50년 8월 중순쯤.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이 북측에 가담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전국적으로 대량 학살이 저질러질 때였다. 학살은 군경이 이들을 폐광산 위 수직갱도 주변으로 끌고가 총살하거나 산 채로 수직갱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알려졌다.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모(73)씨는 “사건 후 폐광산 주변 계곡에서 흘러 나온 물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고 악취도 심해 농사를 짓지 못할 지경이었다.”며 “그러다 70년대 초에 와서 정부가 갱입구를 시멘트나 흙,철망으로 막아 버렸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은 95년 평산동청년회 등이 중장비를 동원,광산 입구를 파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그러나 이후 5년여간 방치돼오다 ‘경산시민모임 민간인학살대책위(위원장 장명수·47)’가 구성되면서 본격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2000년 첫 확인… 본격 진상조사 경산시의회도 지난해 말 ‘경산 민간인학살 특별위원회’를 구성,학살현장 확인 등 조사활동을 벌인 뒤 관련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건의했다.유족과 시민모임대책위는 2000년부터 매년 7월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경산유족회 이태준(66·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 공동대표는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문제를 제쳐 두고라도 50여년간 구천을 헤메고 있을 원혼을 달래려면 정부 차원의인도적인 진상규명과 유골 수습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 ■대전 산내사건 대전 ‘산내학살사건’의 희생자는 7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제주 4·3사건 관련자 300명,여순반란 및 보도연맹사건 관련자 3000여명에다 민간인들도 상당수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이 터진 것은 1950년 7월 초에서 중순 사이.북한 인민군이 내려오고 있다는 말에 군경이 대전 동구 산내동(당시 충남 대덕군 산내면 골령골) 계곡에 이들을 모아놓고 2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학살을 저질렀다. 첫번째 학살은 7월4일부터 6일까지 사흘 동안 이뤄졌다.대전형무소 수감자 3000여명을 트럭으로 이곳에 실어온 뒤 총살했다.2차 학살은 17일 같은 곳에서 있었다.이 때 여성 등 민간인들도 상당수 포함됐다. ●美국립문서보관소 관련자료 나와 지난해 4월 발굴된 영국 데일리 워커지 앨런 위닝턴 기자의 증언록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는 “학살 직후 현장엔 6개 구덩이에 7000여명이 묻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그는 “인민군이 금강을 돌파하자 이날 새벽 남아 있던 대전형무소와 인근 교도소 정치범 등을 트럭 1대에 100명씩 모두 37대에 태워 옮긴 뒤 학살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관심으로 바깥에 알려졌다.충북 영동 노근리 학살사건으로 군경에 의한 학살사건이 공론화되자 이 단체는 99년 10월 ‘산내학살사건 민간조사단’을 구성하고 진상조사에 나섰다.같은 해 12월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증거가 나왔다.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비밀문서가 해제된 뒤 탐라대 이도영 교수가 아버지를 잃은 4·3사건 관련자료를 뒤지다 이를 발견한 것이다. ●“최고 상층부서 지시” 기록 비밀문서에는 “사흘간 대전형무소 수감자 1800명이 산내에서 학살됐다.”며 “이는 최고 상층부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그러나 위닝턴 기자는 증언록에서 “미군의 지시로 일어난 학살사건 중 하나다.”고 밝혀 누구의 지시로 학살사건이 이뤄졌는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유가족과 대전참여연대는 2000년부터 매년 7월8일 희생자들의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특별법청원 박재욱의원 제주 4·3사건의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 추진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한국전쟁 전후의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관심도 탄력을 받고 있다.개혁당 김원웅 의원 등이 발의한 법률안 2건이 계류돼 있고,경북 경산 등 전국적으로 15곳에 이르는 사건의 특별법 제정 청원이 24건이나 된다. 지난 해와 올해 두 차례 입법청원을 낸 한나라당 박재욱(사진·경북 경산·청도) 의원과의 일문일답. 청원서를 내게 된 배경은. -경산에 코발트 광산이 있었는데 6·25 직후에 3500명 가량이 갱도에서 처형됐다.규모로는 전국에서 제일 클 것이다.3∼4년 전부터 유족과 지역주민들의 제기로 진상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해 경산시의회 등에서 청원이 올라왔다.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다.피해보상까지 해주면 좋지만 현재로선 기념식과 위령탑 건립을 바라고 있다. 사실 이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당시에는 법도 없었고 재판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양민이 상당수 무고하게 희생됐을 것으로 본다. 최근 예결위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요구했는데. -행정자치부는 당시 사정을 알 수 있는 서류나 증거물이 미비하다며 국회나 기타 신뢰성 있는 조사기관이 진상조사를 실시하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예산 문제다.조사가 시작되면 아마 전국적으로 피해 신고가 봇물처럼 올라올 것이다.일개 부처에서 손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국회 차원의 조사 활동은. -곧 시작할 것이다.공청회도 해야 한다. 박정경기자 olive@
  • 韓國戰정전 50년 양민학살 재조명

    수많은 양민학살 사건 가운데 제주 4·3사건과 거창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만 정부가 조치를 취하자 여기저기서 형평성 문제를 들면서 억울한 원혼을 달래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전국의 대표적 양민학살 현장을 다시 돌아보고,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청원을 낸 국회의원과 정부의 입장을 알아본다. ■고양 금정굴사건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 학살사건의 유족들은 지난달 1일부터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9·28수복직후 부역혐의자 연행 지난달 30일 농성장에 나온 희생자 유족회 서병규(68) 회장은 1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두 형을 금정굴에서 잃었다고 했다.서씨는 “정부와 정치권은 금정굴 학살 진상조사를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고 말했다. 1995년 9월 유족들은 자비와 시민단체가 모은 1300만원으로 금정굴 유해 발굴작업을 폈다.당시 발굴된 유골은 모두 153인으로 추정됐다.그중엔 여성 10여명과 어린이 유골도 1구 발굴됐다.금정굴 학살은 50년 9·28 수복 직후부터 그해 11월 초까지 부역자를 색출한다며 경찰과 우익단체가 혐의자를 대거 연행,경찰서 창고에 가뒀다가 살해한 사건이다. 경기도의회는 99년 진상조사특위를 구성,금정굴 사건이 학살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경기도는 이에 따라 고양시에 유골의 추가 발굴과 위령사업을 추진하도록 통보했다. ●지하 15m 금광서 400여명 처형 고양시의회는 그러나 ‘금정굴위령사업촉구결의안’을 부결시켰다.유족들과 고양시민회 등이 결성한 ‘금정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시의회의 공식 사과와 우익단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며 분노했다.유족들은 “희생자들은 반공과 국가안보라는 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양민”이라며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한을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금정굴 사건 공대위 이춘열 집행위원장은 “금정굴 희생자와 함께 연행된 사람들 가운데 부역혐의가 짙다고 판단된 사람들은 당시 서울로 송치됐고 아이로니컬하게도 대부분 목숨을 건졌다.”며 희생자들이 억울하게 처형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금정굴 현장은 1995년 1차 발굴후현재 방수포로 덮여 있다.금정굴은 일제 때 금을 캐기 위해 뚫었던 수직굴로,유골이 발굴된 곳은 지하 15m 지점이다.유족들과 증언자들은 당시 금정굴로 끌려간 이들이 400여명에 이른다며 추가 발굴도 요구하고 있다. 입구엔 장승 조형물이 세워졌고 철제 안내문과 안내판이 서 있다.유족들은 인근 창고를 사무실로 쓰면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나주 세지면 동창교사건 전남 나주시 세지면의 일명 ‘동창교 양민학살 사건’(51년 1월20일) 희생자는 136명.면 소재지인 오봉·벽산리 300여가구 주민 가운데 어린이와 노약자를 뺀 젊은이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육전에 희생됐다. 이들은 대낮에 “동창교 아래에서 강연이 있다.”며 위협하는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 소속 군인들의 총칼 아래 억울하게 죽어갔다.군인들은 함평에서 영암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국사봉의 빨치산을 토벌하러 가던 길이었다.(육군 전투상보 기록) ●주민 5열로 세운뒤 총난사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는 조기영(73·세지면 벽산1구)씨는 당시 22살 청년으로 현장에 끌려갔다가 ‘경찰가족’이라고 거짓말해 사지(死地)를 벗어났다.현재 세지우체국 담벼락에 몸을 숨긴 그는 “군인들이 동창다리 밑으로 주민들을 5열횡대로 세운 뒤 다리 위에서 M1소총과 기관총으로 난사한 뒤 인근 논과 밭,산에서 일하던 주민들까지 잡아죽였다.”고 증언했다.이어 “당시 세지초등학교 박모 교사의 부인을 총으로 쏜 군인들이 등에 업혀 울던 세살바기마저 사살했다.”고 몸서리쳤다. 이후 47년간 숨죽이며 살던 세지면 주민(37명)들은 1998년 7월,‘세지 동창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계·46·나주시의원)’를 출범시켰다.이어 유족회를 만들고 2000년부터 해마다 합동위령제(음력 12월12일)를 지내고 있다.내년에는 위령탑을 세울 계획이다. ●“주검 일일이 확인사살” 이상계 추진위원장은 “군인들은 총을 쏘기 전 주민 5명을 가려내 소를 잡아 먹고 일일이 주검을 들춰가며 확인사살까지 자행할 정도로 인간 이하의 행동을 했다.”는 증언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추진위원장은 “한국전쟁의 동일선상에서 자행된 함평 양민학살 사건은 60년 6월 국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가 이뤄졌으나,동일부대의 만행으로 저질러진 동창 양민학살사건은 조사마저 안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나주 남기창기자 kcnam@ ■전주형무소 사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북 전주시 전주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좌익 정치·사상범 1400여명이 군경에 의해 학살됐다는 증언과 자료가 나와 한국사에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형무관 “4차례 자행” 증언 당시 전주형무소 형무관이었던 이순기(78·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씨는 “50년 6월 26일부터 전주가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7월 20일까지 4차례에 걸쳐 좌익 사상범들이 퇴각하는 군경에 의해 집단 살해됐다.”고 증언했다.전쟁이 터진 다음 날인 26일 상부로부터 좌익 사상범에 대한 ‘예비검속령’이 떨어졌고,이날 저녁부터 3년 이상 장기복역한 사상범이 끌려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해 7월 4일 이씨는 사상범 40명이 5명씩 끈으로 묶여 실려가는트럭에 동승했다.전주농고 동문 쪽 야산에서 군인들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 앞에 죄수들을 나란히 세우고 기관총으로 쏘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이씨는 “사상범들은 현재 전북대가 있는 건지산,농협전북본부와 완주군청이 있는 자리,진안으로 나가는 소리개재 등으로 끌려가 살해되고 그 자리에 묻혔다.”고 말했다.특히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황방산에 묻힌 시신들은 막판에 재판도 받지 않고 끌려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밝혔다.이들은 좌익계통 사람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있던 억울한 사람들이었다. ●“좌익 접촉” 이유 재판없이 처형 “7월 16일 전주를 떠났다가 10월 13일 다시 돌아와 보니 전주교도소 주변에서 인민군과 함께 철수하던 좌익들이 우익인사 400명을 죽여 시신들이 수습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진보잡지인 ‘월간 말’은 5월호에 한국전쟁 당시 전주형무소 집단학살 사건의 처형장으로 지목됐던 전주 황방산 부근을 발굴한 결과 수많은 유골을 찾아냈다며 이를 다룬 미국 정부문서보존소 사진을 공개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정부 대책 없나 정부는 다수의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추가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양민학살 관련 정부지원 현황 대규모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작업은 행정자치부 산하 ‘4·3사건 지원단’과 ‘거창사건 지원단’에서 맡고 있다.4·3사건이 한국전쟁 이전에 불거졌다는 점을 고려하면,전쟁 당시의 민간인 희생과 관련된 정부지원단은 거창사건이 유일하다.지원단의 업무는 해당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묘역조성사업 등이다.피해보상 문제는 제외됐다. 거창사건 지원단의 경우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특별조치법’이 제정됨에 따라 구성됐다.지원단은 그동안 거창사건과 관련된 피해접수자 557명 가운데 548명,산청·함양사건 피해접수자 399명 중 386명에 대해 각각 명예회복을 마쳤다.현재는 묘역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4·3사건 지원단은 99년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구성돼 그동안 1만 4028명의 피해신고를 받았다.이 가운데 2778명을 희생자로 결정했으며,오는 2004년 말까지 모든 접수자에 대한 결정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다른 피해자들과 형평성 문제 정부는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의 어려움,전쟁 당시 다른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이 얽혀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어 난감한 입장이다. 거창사건의 경우 당시 이루어졌던 군사재판을 근거로 진상규명 등을 했지만,양민학살사건 대부분은 관련 기록이 전무한 실정이다.따라서 진상규명작업이 유가족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100만∼200만명으로 추정되는 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의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희생자 1인당 1억원씩 보상한다해도 최소 100조원이 필요해 국가재정에서 충당이 불가능하다.게다가 양민학살사건은 군의 작전과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정확한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국방부가 나서야 하지만,양민학살 인정은 군의 명예 실추와 직결된다는 부담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가족들의 억울함을 이해하지만,정부가 대책 마련에 앞장 서기도 어려운 입장”이라면서 “국회 차원의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
  • 이 사람/ 제주 4·3희생자 유족회 이성찬 회장

    ‘4·3’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일반적으로 ‘4·3’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지구 소속 한라산무장대가 미 군정 하의 경찰을 향해 본격 공격을 개시한 1948년 4월3일을 일컫는다.이후 제주도 전역이 전란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기까지 6년 6개월동안 군·경과 ‘산(山)사람’들로 인해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다.지난 2000년 1월12일 공포된 4·3특별법에 의해 공식 신고된 희생자수만 사망 1만 715명,행방불명 3171명,후유장애 142명 등 1만 4028명.신고 이전에 죽은 사람과 미신고자까지 포함하면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인 2만 6000명 정도가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4·3이후 산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가해졌던 ‘연좌제’라는 형벌 아닌 형벌이었다.이제 정부 등 각계의 노력으로 4·3이 제자리를 찾으려 하고 있다.사건이냐,폭동이냐,항쟁이냐에 대한 답과 함께 산사람들에 대한 폭도·무장대·공비·해방군·유격대 등의 표현이 정리되려는 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55주기 4·3위령제를 앞둔 이성찬(59) 제주도 4·3희생자유족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새로운 감회로 올 4·3을 기다리고 있다. 4년여에 걸친 각고 끝에 4·3에 대한 진상이 곧 정부 차원에서 규명되고 희생자 유가족과 제주도민들의 숙원이던 4·3평화공원도 삽질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정부가 4·3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려는 기류도 흘러나오고 있다.그렇게 바라던 4·3특별법이 제정된 지도 3년이 지났다.이 회장의 얼굴도 종전에 비해 평안을 찾은 듯하다.머리숱이 많이 빠졌을 뿐이다. 유족회장으로서 4·3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학자가 아니라 정확히 정의하기는 무리지만 느끼고 경험하고 살펴본 바에 의하면 암울한 시대에 국가폭력에 의해 수많은 제주도민이 죽어간 ‘민간인 학살사건’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은 과거 교과서에 실린 내용과는 다른,자칫 ‘좌익적’이라는 오해를 살 만도 하다.그러나 그것은 기우(杞優)이고,‘화해’와 ‘상생’을 힘주는 데서 가장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4·3임을 깨닫게 된다. “4·3의 해법은 ‘화해’‘상생’이 답입니다.4·3특별법이 제정된 취지도 역시 지난 세기에 자행됐던 불행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에는 화해와 상생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당시 돌아가신 분들은 이념 때문이거나 누구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희생자일 뿐입니다.서로 위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4·3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의 해법대로 4·3문제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마음이 편치는 않다.“대립각은 언제나 있을 수 있지요.지금도 4·3을 왜곡하는 사람들과 과거 문제를 들춰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단체나 소수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4·3유족회장으로 간곡히 호소합니다.이제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청산해 가신 임들의 넋을 달래고 희망의 불빛을 밝혔으면 합니다.” 이 회장의 고향은 제주시 오라동,사건 당시는 제주읍 오라마을이다.오라마을은 1948년 5월1일 ‘오라동 방화사건’으로도 유명하다.그에게도 ‘상처’가 없을 리 만무했다. “아버님은 1949년 토벌대의 공격이 너무 무서워 산으로 피신했는데 이후 살려준다는 말을 믿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귀순했으나 경찰은 다른 일행들과 제주읍 동부두 주정공장에 감금해 버렸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형무소로 이감됐고 6·25가 터지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학살됐지요.” 어느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어머니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일본으로 건너가 개가했고…,당시 5살이던 저와 동생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슬하에서 ‘폭도자식’이라는 질시와 냉대를 받으며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한참 뜸을 들인 뒤 기자가 보상문제로 말머리를 돌렸다.“지금 보상을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4·3 해결과정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다만 국가 공권력에 의한 잘못이었다고 밝혀진다면 향후 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고맙게도 지금 공동체적 보상 형태로 국가가 4·3평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인 만큼 오는 4월3일 착공할 평화공원 조성 예산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중하지만 할 말을 멈추지는 않는다. “4·3이 발발한 지 어언 반세기가 훌쩍 넘었습니다.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이 사건의 진상이 하루속히 정확히 드러나 당시 희생된 원혼들과 유족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 주었으면 하는 게 유족회장으로서의 바람입니다.난항을 겪고 있는 수형인들에 대한 희생자 결정도 4·3특별법 정신에 걸맞게 처리돼 4·3중앙위원회가 4·3의 실상을 가감없이 의결해 주기를 바랍니다.욕심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오는 4·3 위령제 때 참석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아마 오실 것으로 믿습니다.” 글·사진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4·3 희생자 인정 의미/ ‘폭도’ 몰려 고통… 유족 명예회복

    해방 이후 건국 과정의 혼란기에 빚어진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 중 하나인 제주 4·3 당시 희생된 도민 중 1715명이 20일 사상 처음으로 국가 차원에서 ‘희생자’로 공식 결정된 것은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날 결정은 상당수 억울하게 폭도로 규정돼 반세기동안 한을 안고 살아온 4·3 희생자의 유족과 제주도민의 명예 회복은 물론 국민 화합과 인권 신장을 통해 민주 발전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제주4·3 당시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아 수형인으로 분류된 도민들에 대해 4·3중앙위 심사소위가 심의를 보류해 전체회의에 심사대상으로 올리지 못했고,후유장애자로 신고된 142명에 대해 심사를 신속하게 진행하지 못해 지난해 5월 희생자 신고 이후 법적 지원 등을 받지 못한 채 7명이 사망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주도 4·3사건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진상규명·명예회복범국민위원회 등 4·3 관련 6개 단체는 이날 논평을 통해 “우리는 오늘 첫 결정이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본 4·3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첫 명예회복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이어 “다만 4·3 당시 실체없는 재판을 받아 형무소 생활을 하다 돌아가신 수형인과 고령의 후유장애자들이 희생자 결정 대상에 오르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4·3사건 희생자 신고를 지난 2000년 6월부터 2001년 5월까지 접수한 결과 사망자 1만 715명,행불자 3171명,후유장애자 142명 등 총 1만 4028명이 신고했다.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신고를 기피하거나 내용을 잘 몰라 신고를 못한 도민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4·3사건의 피해규모를 짐작케 한다. 이제 미신고자에 대해서도 4·3특별법 취지를 잘 설명하고 추가 신고기간을 설정해 구원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등 특별법 정신에 맞게 제주도민의 맺힌 한을 풀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4·3 관련 단체의 주장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진상규명 일지 ■ 제주도 ◆ 99.8.11 제주4·3사건 위령사업 범도민추진위원회 설치 및 운영 조례 제정 공포 ◆ 〃 10.18 ‘4·3문제해결 제주도의 근접 방향’ 도민 공청회 개최 ◆ 〃 12.7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사업 범도민추진위 구성(100명) ◆ 2000.3.14 제주4·3 평화공원 부지 매입 ◆ 〃 4.3 새로 마련된 부지에서 제52주년 4·3위령제 봉행 ◆ 〃 9.7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 발족 ◆ 2001.4.10 제주4·3 평화공원 조성계획 완료 ◆ 〃 7.23 제주4·3사건 신고 희생자 사실조사 ■ 중앙 부처 및 국회 ◆ 99.4.13 여·야 총무회담에서 국회 4·3특위 구성 합의 ◆ 〃 4·3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 2000.1.12 4.3특별법 공포 ◆ 〃 8.28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발족
  • 대마도서 4·3 수장위령제 봉행

    제주4·3유족회(회장 이성찬) 등 제주4·3관련 단체는 26일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쓰시마섬(對馬島)에서 4·3사건과 관련해 수장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제주4·3 수장 위령제’를 봉행한다. 이성찬 회장을 비롯,김영훈 제주도의회 의장,강원철 도의회 4·3특위 위원장,임기옥 도의회 4·3특위 위원,김창후 4·3연구소 부소장 등 30여명은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25일 오전 일본으로 떠났다. 이들은 위령제를 전후해 당시 쓰시마지역 신문 기자들과 시신 인양자들을 만나 증언을 듣는 한편 조선 역사관 조난비 등을 견학하고 일본 해상보안청과 군청,경찰 등을 방문,관련 자료를 수집해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제주도민 수장 사건은 지난 50년 당시 예비검속을 전후해 4·3과 관련됐다는 이유로 군·경에 끌려간 도민들이 제주항 앞바다 등에 수장,학살된 사건으로,4·3관련 단체들은 이들의 사체 가운데 상당수가 대마도로 표류해 간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조선 소송사태로 골머리

    조선일보가 잇따른 명예훼손 소송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조선일보는 이 중 일부 재판에서 이미 패소한 상태이며,조만간 몇몇 소송이 추가로 제기될 것으로 알려졌다.90년대 이후 언론수용자들의 권리의식 고양으로 언론사 상대 소송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나 특정사에 대한 이같은 소송사태는 드문 일이다. 지난 24일 대검찰청 과장,공보관 등 부장검사 20명은 조선일보 10월 20일자 ‘녹취록사건서 비춰본 검사들 줄대기’제하의 보도로 인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조선일보사와 조선일보 편집국장,취재기자 등을 상대로 총 10억원의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금년 들어서만 여러 건의 명예훼손소송에 피소되었다.지난 4월 MBC ‘100분토론’팀과 진행자 유시민씨는 유씨가 ‘언론개혁 100인모임’에 가입,편파진행을 했다는 조선일보 보도를 문제삼아 총 9억원의 손배 및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냈으며,8월에는 민주당 박양수 의원이 이른바 ‘개헌문건’을 자신이 작성했다는 조선일보 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변용식 편집국장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또 7월에는 조선일보반대 시민연대 등시민단체가 작가 이문열의 ‘홍위병’운운 칼럼 게재와 관련해 소송을 냈으며,KBS는 7월 16일자 ‘기자수첩-잠잔 재해방송’보도가 잘못됐다며 서울지법에 손배 소송을 냈다. 이밖에 MBC는 8월 4일자 조선일보 사외보의 내용과 관련해반론보도 가처분 신청을 냈으며,김태정 전 법무장관은 ‘이용호사건’과 관련한 조선일보 보도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지난 9월 조선일보와 디지털조선일보를 상대로 모두 10억원의 손배 청구소송을 냈다.한겨레의 ‘언론권력’시리즈와 관련해서는 양사가 맞소송을 낸 상태다. 잇따른 소송 피소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는 상당한 건수의재판 패소를 기록하고 있다.지난 4월 서울고법은 97년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과 관련,조선일보의 ‘검찰의 감청의혹’ 사설이 원고 주장대로 당시 수사검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조선일보 측에 1억2,000만원 배상 및 정정보도 판결을내렸다.이른바 ‘최장집교수 사상검증사건’과 관련한 소송에서도 조선일보 측은 일부 패소했으며,또 외대 이장희 교수가 자신의 통일교재를 이적표현물로 보도해 명예가 훼손당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도 조선일보는 패소했다. 한편 현재 조선일보를 상대로 수 건의 명예훼손 소송이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자신이 시민단체 특강에서 ‘윤전기 테러’등을 발언한 것으로 왜곡보도했다며 조선일보에 대한 언론중재위 정정보도 신청에이어 조만간 소송을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또 ‘제주4·3사건’ 보도와 관련,제주4·3유족회가 중심이 돼 범제주도민 차원에서 월간조선과 조선일보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내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조선일보 사장실 관계자는 “소송사건은 사내여러 곳에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처리하고 있어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제주4·3사건 진상규명위 희생자 심사위원7명 선임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李漢東)는 최근 제주4·3희생자 심사소위원회 위원 7명을 선임했다.위원은 다음과 같다. △김삼웅(金三雄) 대한매일 주필 △박재승(朴在承) 서울시변호사협회장 △박창욱(朴昌彧) 전 제주4·3사건민간인희생자유족회장 △서중석(徐仲錫)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이황우(李璜雨) 동국대 경찰학과 교수 △임문철(林文喆) 제주서문성당 주임신부 △한광덕(韓洸德) 전 국방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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