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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급에서 잘랐다… 윗선 못 밝힌 ‘국정원 간첩조작’

    3급에서 잘랐다… 윗선 못 밝힌 ‘국정원 간첩조작’

    검찰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처장(3급)과 과장, 중국 선양 총영사관 파견 직원들이 유우성(34)씨의 간첩 혐의 입증을 위해 관련 자료들을 조작한 것으로 결론냈다. 그러나 남재준 국정원장 등 ‘윗선’ 개입 여부는 밝혀내지 못해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진상수사팀(팀장 윤갑근)은 14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앞서 구속 기소한 국정원 기획담당 김모(47·4급) 과장, 조선족 협력자 김모(61)씨에 이어 이모(54·3급) 대공수사처장과 이인철(48) 선양 총영사관 교민담당 영사 등 2명을 추가로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1월 선양 부총영사로 파견된 권모(50·4급) 과장은 자살기도 후 현재 병원 치료 중인 점을 감안해 시한부 기소중지했다. 검찰은 이 처장과 권 과장에게는 모해증거위조 및 사용, 사문서위조 및 행사,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를, 이 영사에게는 사문서위조 및 행사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처장의 윗선인 남 원장, 서천호 2차장, 대공수사국장(1급)을 무혐의 처분했다. 또 유씨 사건 수사 및 공소 유지를 담당한 검사 2명도 무혐의 처분했다. 윤갑근 팀장은 “(문서위조에 사용한 공작금은) 대공수사처장 전결로 이뤄졌고, 대공수사국장이나 부국장의 혐의를 인정할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수사 결과 발표 이후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개선 방안 마련과 수사 및 공판에 관여한 검사 2명 등에 대해 감찰을 지시했다. 한편 이날 서 2차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실무진에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진행한 사안이지만 지휘 책임을 진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사과한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곧바로 서 차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는 지난달 발언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4·3 아픈 역사 관용·화합으로 미래 발전 디딤돌 놨다”

    “4·3 아픈 역사 관용·화합으로 미래 발전 디딤돌 놨다”

    4·3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처음 열린 제6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유족과 도민, 각계 인사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봉행됐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추념사에서 “제주도민 여러분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대립을 관용과 화합으로 승화시켜 미래를 향한 더 큰 발전의 디딤돌을 놓았다”며 특히 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화해의 자리를 함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 총리는 희생자에 대해 애도를 표하고 유가족과 제주도민에게 위로를 전하며 “제주의 화합과 상생 정신을 미래지향의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켜 온 나라로 확산시켜야 하며 오늘의 추념식이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더 도약하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추도사에서 4·3추념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이는 정부 차원의 과거 역사 청산을 통해 4·3의 바른 역사 세우기에 한발 다가섰음을 의미하며, 4·3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상징적 조치”라고 말했다. 정문현 4·3희생자유족회장도 인사말에서 “오늘의 뜻깊은 국가제례 봉행을 시작으로 과거의 아픈 상흔을 위로받고 대통합의 차원에서 평화의 섬으로 한걸음 내딛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정의당 천호선 대표 등 각 정당 대표와 제주 출신 국회의원, 4·3특별법 제정에 앞장선 새정치민주연합 추미애 의원도 추념식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과 도민을 위로했다. 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과 도민들은 위패봉안실과 행불인 각명비에 헌화하고 각명비와 위패를 닦으며 희생자를 추념했다. 한편 제주4·3특별법은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文 “민주만 무공천 땐 일방적 선거결과 우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24일 통합신당(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에 대해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 등 통합신당 지도부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한 당내 반발이 수그러들기는커녕 갈수록 확산하는 양상이어서 최종적으로 무공천 방침 철회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문 의원은 부산지역 언론사 정치부장단 간담회에서 “지금 상황에서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확정하는 것은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며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공천이 필요한 이유를 당원들에게 설득하고 의견을 묻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선거 무공천은 정치개혁을 위한 공약이었지만 상대방인 새누리당에서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민주당만 무공천을 할 경우 일방적인 선거결과가 우려된다”고 했다. 문 의원 측 관계자는 문 의원의 발언에 대해 “무공천 입장을 번복하거나 재검토하자는 취지가 아니며 설득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 대선 때 기초선거 무공천을 공약했던 당사자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반면 안 의원은 이날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당 창당대회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는 국민을 깔보는 정치”라며 무공천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이에 따라 문 의원이 기초선거 무공천 관련 발언 수위를 더욱 높일 경우 안 의원과 정면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문 의원과 ‘김한길·안철수’ 투톱체제 간 당권 경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김 대표는 이날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정권을 잡으면 제주 4·3사건 정책을 어떻게 펼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정권 잡을 분(안 의원)이 여기 있다”며 웃어 넘겼다. 안 의원은 “새누리당을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먼저 변화해서 국민께 희망을 드려야 한다”고 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제주 4·3 국가추념일로 지정…도민들 “갈등 풀 기회… 환영”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사건이 66년 만에 국가 추념일로 지정됐다. 정부는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첫 화상 국무회의에서 ‘제주 4·3희생자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념일 명칭은 4·3희생자 추념일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제66기 제주4·3사건 희생자위령제는 정부 주관의 국가적 행사로 격상돼 처음 열리게 됐다. 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자 희생자 유족과 제주도민들은 반 세기 넘도록 이어져 온 제주 사회의 반목과 갈등을 풀 전기가 마련됐다며 환영했다. 제주도민들은 이를 계기로 다음 달 3일 열리는 추념행사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길 바랐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4·3 추념일 지정은 2000년 4·3특별법 제정과 2003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더불어 제주 4·3의 해결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도민과 희생자, 유가족을 대신해 정부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우 지사는 “많은 분이 국가 배상 등 새로운 과제를 요청하고 있다”며 “앞으로 제주도와 평화재단, 유족회가 적절한 해결 방안이 뭔지 의견을 모아 연로한 4·3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제주4·3특별법은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1948년 4월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했다. 4·3사건중앙위원회가 현재까지 신고를 받아 결정한 관련 희생자(행방불명자 포함)는 1만 4032명, 유족은 3만 1253명이다. 중앙위는 추가로 희생자 326명, 유가족 2만 8426명을 접수해 심사하고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출생직후 사망한 신생아 28분 후 다시 살아나다

    출생직후 사망한 신생아 28분 후 다시 살아나다

    태어나자 마자 사망한 신생아가 28분 후 숨을 다시 쉬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8일(현지시간) 새벽 캐나다 핼리팩스의 한 병원에서 4.3kg에 달하는 여아가 태어난 직후 사망했다. 이날 새벽 3시경 의사가 정식으로 아기의 사망을 선고하자 산모는 물론 온 가족이 비탄에 빠졌다. 오랜시간 기다리던 아기를 차마 떠나 보내지 못했던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눈물의 기도 뿐. 그러나 정확히 28분 후 간호사로부터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아기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것. 영안실로 이동하기 직전 아기는 거짓말처럼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해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 아빠 로빈 시르는 “우리의 기도가 통했는지 아기가 기적처럼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면서 “의사도 어찌된 일인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고개를 숙였다”며 밝혔다. 이어 “의사가 섣부른 사망 선고를 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면서 “병원 측에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제주의… ’ 美세계평화영화제 엑스포제상 수상

    제주의 아픈 현대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제주의 영혼들’(The Ghost of Jeju)이 2014 시카고 세계평화영화제 엑스포제 상을 수상했다. 총 80분 분량의 이 영화는 제주 4·3사건부터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태까지 제주의 현대사를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향과 공권력에 맞서 자결권을 외치는 사람들’이란 하나의 주제로 다룬다. 세계평화영화제 조직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미국인들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발굴해 알려 주었다며 레지스 트렘블레이(69) 감독의 ‘제주의 영혼들’에 엑스포제 상을 시상했다. 닉 앵가티 세계평화영화제 위원장은 “엑스포제 상은 주목받지 못했던 사실, 미디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의미 있는 내용을 전달한 작품에 수여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시카고 대학 브루스 커밍스 교수 등이 등장해 제주의 문제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제주의 굴곡진 현대사를 미국 정부의 제국주의적·군사주의적 성향이 빚어낸 일련의 사태로 해석한다. 트렘블레이 감독은 12일부터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주 등에서 미주 순회상영회를 열 계획이다. 연합뉴스
  • “아버지 흔적 한 줄 찾으려 70년 평생을…”

    “박 선생님의 아버지께서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의 서대양어업통제주식회사에서 노역한 기록이 확인됐습니다.” 박정우(73·가명)씨는 지난 22일 일본에서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멍하게 하늘만 올려 봤다. 평생 기다린 소식인데도 눈물조차 맺히지 않았다. 칠순 노인의 마음은 인고의 세월을 버티는 동안 물기 없이 바짝 말라 버렸다. 1943년 제주도 뱃사람이던 아버지(당시 20세)는 징용 영장을 받고는 아내와 두 살배기 아들인 박씨를 남겨 둔 채 일본으로 끌려갔다. 박씨의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어머니는 재혼해 떠났고 돌봐 주던 조부모는 1947년 제주 4·3사건 때 숨졌다. 성인이 된 뒤 민간단체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일본 정부의 자료를 볼 수 없어 애만 태웠다. 박씨를 비롯한 무자료 동원자 가족들은 피해자임에도 사실을 입증하지 못해 속을 끓여 왔다.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관계자는 “강제동원자 가족이 정부 지원금을 신청하려면 서류로 피해 사실을 밝혀야 하는데 무자료 피해자는 입증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박씨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을 돕는 일본 단체인 ‘일본제철 재판지원회’ 회원 우에다 게이시(56)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보추협에서 박씨 등 ‘무자료 징용자’ 가족들의 사정을 전해 들은 우에다는 “내가 시청 공무원이라 행적 자료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도움을 약속했다. 넉 달 뒤 우에다는 약속을 지켰다. “일본 연금 기록을 뒤져 보니 박씨의 아버지가 서대양어업통제주식회사에서 노역한 기록이 있었다”고 알려 온 것이다. 이희자 보추협 회장은 “찾은 내용은 한 줄뿐이지만 평생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헤맨 아들에겐 숙제를 조금은 해결한 기분일 것”이라면서 “박씨는 곧 우에다 등과 함께 시모노세키를 방문해 아버지가 걸어온 삶의 경로를 추가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보추협은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일제강점기 때 강제동원됐지만 자료가 전혀 없는 무자료 강제동원자 18명의 행방을 일본 단체와 함께 4개월째 추적한 결과 1명의 노역 기록을 찾았다”고 밝혔다. 무자료 강제동원자의 가족이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노역 기록을 찾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신고받은 인원은 모두 22만명으로 이 가운데 절반인 11만명가량이 무자료 강제동원자다. 보추협은 아직 행방을 찾지 못한 17명의 강제동원자 행적도 끝까지 추적할 방침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내가 좀팽이라 그림으로 호방해지고 싶었다”

    “내가 좀팽이라 그림으로 호방해지고 싶었다”

    “예술로써 혁명하겠다는 사람들은 다 멍청입니다. 현대사회는 권력과 돈, 사랑, 예술의 다양한 축으로 이뤄지는데, 이를 모두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제주 출신의 민중 미술가 강요배(62)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민중 미술가란 수식어를 달았을 만큼 제주 4·3사건, 노근리 학살 등에 초점을 맞춰 예술, 인권을 언제나 화두 삼았던 그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작가는 민족미술인협회장과 탐라미술협회 대표를 거쳐 1998년에는 민족예술상을 받았다. 그런 작가가 반주로 기울인 술잔이 조금씩 늘어가자 속내를 털어놨다. 소문난 애주가인 그는 “(내가) 원래 성격이 좀팽이라 그림으로 자유롭고 호방해지고 싶었다”면서 “‘형태’보다 ‘기운’을 중시하는 드로잉을 하면서 타고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그림은 마음의 거울이고 나를 키웠다. 인생도 그렇다”고 말했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작가는 인근 갤러리로 자리를 옮겼다. 60점 가까이 내걸린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을 묻자 전시실 가운데로 나섰다. “여길 보세요. 다 나를 반사해 비추고 있지 않습니까. 내 거울이고 자식인데 어떻게 덜 중요하고 덜 애착이 갈 수 있을까요.” 작가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화가 강요배’는 좀 뻔뻔스러워졌다. 서울에서 교직을 접고 23년 전 고향인 제주로 돌아가 제주시 인근 귀덕리의 바닷가와 들판에서 풀꽃과 풍경을 스케치하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다. 어느새 싱긋 웃는 입과 은근한 매력을 풍기는 코가 돌하르방을 쏙 빼닮게 됐다. 작가는 그동안 제주와 북녘의 자연을 배경으로 그린 서정적 드로잉을 모아 다음 달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첫 소묘전을 이어간다. 한때 삽화가로도 이름을 날렸던 작가는 전시에서 원칙에 충실한 ‘봄’ 등 1980년대 초기 드로잉부터 ‘해금강’ 등 1990년대 말 북한 답사 스케치, ‘관덕정 돌하르방’ 등 최근의 제주 풍경과 인물을 그린 작품까지 53점의 드로잉과 4점의 아크릴화를 내놓았다. 작품마다 띠는 색채와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캔버스에 먹으로 표현한 ‘초원의 바람’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다. 검은 바탕에 흰 학이 날개를 쭉 펼친 채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기세다. “어느 날 막걸리로 목을 축이다 일필휘지로 그렸지요. 몽골 전통음악을 들으며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학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추상화에 가까운 소묘인 ‘금강대 물소리’는 자연 풍광을 즉흥적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1998년 백두산 금강대를 둘러보다가 북한 가이드였던 남은정씨의 노래 한 자락을 듣고 눈 감고 그린 그림이란다. 작가는 “그림은 몸을 통해 흐르는 마음”이라며 “마치 옛 정선이나 김홍도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의 문을 열고 물소리, 바람소리를 즐겼다”고 말했다. 작품들은 모두 경쾌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율을 떠올리게 한다. 유화로 유명한 작가는 “드로잉은 작가의 왕성한 예술혼이 담긴 그 자체로 중요한 장르”라면서 “최근 디지털 시대의 미술과 달리 소묘에는 단 한 번에 가는, 몸으로 하는 맛 같은 게 느껴진다”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둘로 나뉜 한국 현대사, 어떤 책 읽어야 할까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한국사에 대한 조명이 학자마다, 사관마다 다르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위해서는 결국 다양한 방식으로 서술된 책을 훑어보는 수밖에 없다. 최근 나란히 나온 역사서를 통해 역사의 씨실과 날실을 꿰맞춰 볼 수도 있다. 일제 강점기와 친일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한 ‘친일, 청산되지 못한 미래’(민족문제연구청년모임·정운현 지음, 책보세 펴냄)는 친일 문제 100선을 꼽고, 저자가 쉽게 대화하듯 답을 덧댔다. ‘친일청산’의 구체적인 뜻부터 친일행적에 대한 판단과 북한의 친일청산 해법, 친일파의 공과론, 현대판 친일파 이해 등 다양한 의문점을 풀어준다. ‘두 개의 한국 현대사’(임영태 지음, 생각의길 펴냄)와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현대사’(남정욱 지음, 시대정신 펴냄)로 현대사 집필의 차이를 가늠해볼 수도 있다. ‘두 개의 한국 현대사’는 상식과 비상식, 진실과 왜곡이라는 틀거리 안에서 현대사를 직시하고 비판한다. 한국사 교과서 사건, 광복절 논쟁, 국정원 대선개입 등 결정적 사건을 골라 한국사의 흐름을 정리했다.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현대사’는 보수 시각과 궤를 같이한다.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을 반란·폭동으로 설명하고 5·16군사정변을 ‘군사혁명’라면서 근거를 내세우는 등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눈보라 덮치는데 소는 어디로 갔을까

    [이 주일의 어린이 책] 눈보라 덮치는데 소는 어디로 갔을까

    테우리 할아버지/현기영 지음/정용성 그림/현북스/44쪽/1만 2000원 제주 한라산 둘레에 완만한 곡면으로 펼쳐진 오름. 여름이면 소뿔이 햇볕에 반짝이고 쇠파리 떼가 금빛 먼지처럼 빛나는 목장에 겨울이 찾아들었다. 백 마리가 넘던 소들도 모두 제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테우리(소를 기르는 사람이라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 할아버지는 오름 분화구에 여태 앉아 있다. 암소와 송아지를 데려갈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다. 친구는 곧잘 아파 드러눕기 일쑤다. 할아버지의 걱정은 친구의 지각에서 그의 오래된 상처로 옮아간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섬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생긴 흉터다. 나라의 남쪽과 북쪽이 각각 따로 국가를 세우려 하자 섬사람들은 맹렬히 반대했다. 이를 싫어하던 쪽의 군인들은 사람과 마소의 목숨을 마구잡이로 앗아 갔다. 젊은 테우리였던 할아버지에게도 군인들이 달려들었다. 도망친 사람들이 숨은 곳을 대라는 말에 허위허위 아무렇게나 가리킨 동굴에 한 아이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숨어 있을 줄은 짐작도 못 했다. 이후 할아버지는 사람을 떠나 소들과 곁을 나누며 살아온 참이다. 옛일을 떠올린 사이 친구의 암소와 송아지가 사라지고 없다. 검은 구름 떼가 몰려오고 눈보라가 얼굴을 덮치는데 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제주가 고향인 현기영 작가의 단편 ‘마지막 테우리’(1994)가 원작이다. 작가는 어린 손자에게 들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동화로 다듬었다. 실제 고향에서 만난 노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가는 “마른 땅바닥의 균열처럼 그물 친 주름살들, 억새꽃같이 허옇게 센 머리칼과 구레나룻, 소처럼 알 수 없는 표정…. 노인은 늦가을의 이울어 가는 초원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제주 4·3사건의 아픔 때문에 속세와 연을 끊고 소의 순정한 눈매, 우직한 발걸음을 닮은 삶을 살아온 노인의 이야기가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후] 여야 의원들 66년 만에 단체사진 찍는다

    19대 국회의원이 제헌국회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다. 국회사무처는 다음 달 3일 오전 대한민국 헌법 제정의 주역들과 제헌헌법 전문을 재현한 기념 조형물을 공개하고 오후 국회 본회의 직후 국회의사당 정현관 앞에서 여야 의원이 모두 모여 기념 촬영을 한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촬영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 직후 제헌 국회의원들이 단체 사진을 찍은 이후 처음이다. 제헌국회는 200명이 정원이었지만 제주 4·3사건 발생으로 제주를 제외하고 198명이 선출됐다. 당시 단체 사진에는 5명의 불참으로 193명의 제헌 의원과 사무총장 1명이 더해진 194명의 얼굴이 담겼다. 이번 19대 국회의원 단체 사진은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 등 국회 내에 전시되고 국회 헌정기념관에도 보관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제헌 국회의원 198인의 모습과 제헌헌법 전문을 담은 기념 조형물 제막식이 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 개최된다. 본회의장 앞 벽면에 설치될 조형물은 가로 7.1m, 세로 2.3m 크기의 청동 부조로 제작된다. 제헌의원상(像)은 조각가인 류경원 충북대 교수가, 제헌헌법 전문은 서예가 김주익씨가 직접 제작한다. 제막식에는 강창희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국회의원, 전직 국회의장, 헌정회 관계자, 국회 직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은 “여야 국회의원이 한자리에 모여 촬영하는 단체 사진은 국회 역사를 간직하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라면서 “이번 단체 사진 촬영이 국민을 위한 새로운 화합의 정치, 상생의 정치를 다짐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제주 4·3’ 국가기념일로

    ‘제주 4·3사건’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다. 안전행정부는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모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17일 입법예고에 들어간다고 16일 밝혔다. 안행부는 규정 개정 절차를 거쳐 오는 4월 3일 이전에 국가기념일 지정을 완료하고 당일 위령제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제주도 유세에서 “제주도민의 아픔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7월에는 추모기념일 지정 방침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추모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 지금까지 제주특별자치도가 주관했던 제주 4·3사건 관련 행사를 정부가 주관하게 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한 두 문제는 틀려라”… 농어촌공사 승진비리 테크닉

    한국농어촌공사 승진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충남경찰청 수사과는 13일 최종 브리핑을 갖고 부정시험 대상자 61명을 적발해 이 중 충남지역본부 차장 윤모(53·3급)씨, 세종대전금산지사 차장 윤모(54·3급)씨, 전 한국생산성본부 사회능력개발원 리크루트센터장 엄모(57)씨와 응시자 3명 등 모두 6명을 배임수재 및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알선책 강모(48·4급)씨와 돈을 주고 문제를 건네받은 응시자 김모(48)씨 등 25명을 배임증재 혐의로 입건했다. 윤씨 등은 2008년부터 2011년 말까지 3차례 치러진 승진 시험에 응시하는 전국의 동료 직원 25명에게 사전에 시험 문제를 알려 주고 1인당 1000만~2000만원씩 모두 3억 155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기능직에서 5급 정규직으로, 4급에서 3급으로 승진하려는 직원들을 노렸다. 세종대전금산지사 윤씨는 농어촌공사가 사회능력개발원에 승진 시험 문제 출제를 위탁한 첫해인 1997년 엄씨에게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접근해 문제를 빼내 충남본부 윤씨와 함께 3급 승진 시험에 합격한 뒤 승진 시험 때마다 응시자를 소개하는 알선책과 돈을 받아 오는 전달책까지 두고 조직적으로 문제 유출 비리를 저질렀다. 이들은 응시자가 거래에 응하면 “술 끊었다고 소문을 낸 뒤 가방 들고 출퇴근하면서 공부하는 척해라. 의심할 수 있으니 한두 문제는 틀려라”고 지시했다. 반만 선불로 받은 뒤 “불합격하면 돈을 돌려주겠다”며 영수증까지 써 줬다. 두 윤씨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엄씨와 짜고 똑같은 수법으로 승진 시험 응시자들로부터 모두 2억 9400만원을 챙기기도 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났다. 이것까지 합치면 윤씨 등이 문제 유출 대가로 받아 챙긴 돈은 6억 950만원에 이른다. 경찰은 한편 사법 처리를 못하는 2003~2007년 시험 부정에 가담했던 직원 30명의 명단을 농어촌공사에 통보했다. 예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길섶에서] 지슬과 청야/박찬구 논설위원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불편한 사건을 다룬 영화 ‘청야’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6·25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 주민 719명이 국군에게 몰살당한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당시 군의 비공식 작전명이었던 청야는 벽을 튼튼히 하고 들의 곡식을 거둬들여 적의 식량보급을 끊는다는 ‘견벽청야’를 뜻한다.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어이없는 죄명으로 젖먹이와 어린이 385명을 포함해 마을 사람들은 말 그대로 초토화를 당했다. 관람 내내 제주 4·3항쟁을 그린 ‘지슬’이 오버랩됐다. 지슬과 청야, 두 편의 독립영화는 이념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영혼을 씻김굿으로 달래며, 그 광기의 역사를 우리 공동체가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화두를 건넨다. 역사물에서는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과 팩트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두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묵직하고 쓰리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청야는 툭 던진다. ‘몰랐다면 알아야 하고, 알았다면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국회 65년간 단 한 장의 사진/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국회 65년간 단 한 장의 사진/이지운 정치부 차장

    65년 역사에 딱 한 장뿐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다. 국회의원 단체 사진,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을 마치고 찍은 것이 유일하다. 제헌국회는 200명이 정원이었지만 제주 4·3사건으로 인해 제주지역을 빼고 198명이 선출됐다. ‘지역구 사정’ 때문이었을까. 이 가운데 5명은 개원식에도 나오지 않았다. 사무총장 1명이 더해져 첫 사진에는 194명의 얼굴이 나온다. 대부분 깔끔한 정장 차림이지만 이승만 의장을 비롯해 몇몇은 당시 기준으로 개량 한복을 입었다. 고름 대신 단추를 단 것이다. 머리 모양새는 대개 비슷하다. 기름을 발라 넘겼는데, 좌우 머리의 비율만 약간씩 다른 정도다. 거의 군화를 연상시키는 뭉뚱한 코의 구두를 신은 것은 해방 직후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듯하다. 이 사진이 조만간 청동부조로 재탄생되는데,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자료도, 사진 설명도 없이 달랑 사진만 남겨졌기 때문이다. 얼굴이 가려 있거나 식별이 되지 않는 국회의원도 있어 유족들로부터 개별 사진을 받았다고 한다. 국가기록에 대한 무관심은 그때부터였을까. 기록과 관리의 허술함에 기가 막힌다. 또, 단체 사진은 왜 제헌국회 것밖에 없는 것일까. 제2대 국회는 전쟁 때문이라고 쳐도 19대 국회에 이르는 동안 왜 사진을 남기지 못했을까. 찍을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찍을 여건이 못된 것일까. 강창희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단체 사진이 단 한 장뿐임을 알게 된 것은 올 초의 일이다. 헌정 역사를 재조명하는 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됐고 65년 만에 국회의원 단체 사진 촬영을 준비해 왔다. 강 의장은 지난 9월 정기국회 개회 본회의 직전이나 직후를 염두에 두었지만, 이 계획은 일찌감치 수포로 돌아갔다. 여야 경색과 뒤이은 야권의 장외투쟁 돌입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국회는 지난 65년간 매년 매순간 극심한 여야 대치 때문에 단체사진 찍을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일까. 설마. 2대 국회가 사진을 남겼다면 12대 국회의원과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이라도 비교해 보련만. 19대 국회 2년차가 저물어간다. 2014년은 단체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다 모일 만큼의 관계 개선은 가능할까. 수원구치소에 있는 이석기 의원까지 포함해 300명 국회의원이 함께한 사진은 귀한 사료가 될 터이다. 후대 사람들은 “선거법이 ‘299인’으로 규정했는데 어떻게 돌파했을까”하며 기이해하다가 이를 ‘부칙’으로 해결한 선인들의 지혜에 감탄할지 모르겠다. 이 의원이 빠져 299명이 되더라도 사진은 그 자체로 ‘내란음모 혐의 국회의원 구속’이라는 역사를 담게 될 것이다. ‘2014년 상반기 중으로 사진을 찍지 못한다면?’ 하고 생각해 보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대법원에는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판결이 줄줄이 예고돼 있는 상황이다. 몇 명이 사라질지 모른다. 통합진보당이 해체되는 상황이 오든 안 오든 19대 국회가 출발했던 모습은 한 장의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게 된다. 제헌국회도 그랬다. 1949년 4월 이른바 ‘남로당 프락치 사건’으로 국회부의장 김약수 등 13명의 의원이 체포됐다가 이듬해 2심 계류 중 6·25가 발발했다. 한 장의 사진이 참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jj@seoul.co.kr
  • 공공기관 청렴도 檢·警·한수원 ‘최하위권’

    공공기관 청렴도 檢·警·한수원 ‘최하위권’

    하루가 멀다 하고 쇄신 얘기가 나오는 검찰과 경찰이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최하위 기관으로 꼽혔다. 또 원전 비리, 철도 사고 등 사회에 충격을 안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역시 청렴도에서 낙제에 가까웠다. 19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공직유관단체 등 653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2013년 청렴도 조사’에서 올해 전체 평균 점수는 지난해와 같은 7.86점(10점 만점)이었다. 2002년 부패방지위원회가 처음으로 실시한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는 전문기관을 중심으로 진행되다가 2011년부터 정책 전문가, 시민 등이 폭넓게 참여해 조사의 신뢰성을 더했다. 올해는 민원인 16만 5191명과 기관 직원 5만 6284명, 학계·시민단체·지역주민·학부모 등 1만 8507명이 조사에 응했다. 조사는 지난 8~11월에 걸쳐 실시됐으며, 이 과정에서 신뢰도를 저해하는 행위가 일어나면 감점을 적용해 점수를 매겼다. 청렴도 1등급을 받은 기관에는 병무청과 통계청, 경기 오산시, 충북 보은군, 서울 마포구가 뽑혔다. 제주도교육청, 한국남부발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수출입은행, 한국기술교육대도 분야별로 1등급을 받았다.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서울시가 가장 점수가 높았으나 2등급 수준이었다. 고위 공직자가 비리에 연루됐거나, 조직 내부의 부패 문제가 드러난 기관들은 최하위(5등급)에 들었다. 몇 년째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검찰청(6.91점), 경찰청(6.86점), 국방부(7.12점)에 이어 각종 비리를 낳고 전력 비상사태를 야기한 한수원(7.65점), 인재(人災) 사고가 불거진 코레일(7.85점), 수십조원의 부채를 안고도 성과급 잔치를 벌인 한국도로공사(7.82점)가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썼다. 올 한 해 금품·향응·편의를 제공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민원인은 0.7%로, 지난해(1.0%)보다 다소 낮아졌다. 위법·부당 예산집행 비율과 부당한 업무지시 등 부패 경험 비율은 각각 6.2%, 6.6%를 보이면서 전년보다 1.4~3.3% 포인트 감소했다. 하지만 연고 관계에 따른 업무처리(6.82점), 조직 내 알선·청탁·압력행사 정도(8.44점), 부패 신고자 보호 실효성(7.72점)은 0.24~0.56점 낮아져 청렴 문화와 부패방지제도에 대한 평가는 악화됐다. 한편 올해 부패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1045명(220개 행정기관)이었으며, 부패 금액은 237억 4141만원으로 집계됐다. 권익위는 청렴도 평가 부진 기관에 대해 청렴컨설팅과 반부패경쟁력평가를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협의회 “다양한 사관 인정 검정제를 판박이로 만들려 해”

    교육부가 29일 고교 한국사 교과서 7종에 대해 수정명령을 내리자 교과서집필자협의회는 즉각 반발했다. 교육부와 협의회는 지난달 교육부의 829건 수정 권고 이후 ‘강(强) 대 강 대치’를 이어왔다. 그 동안 수정 권고를 전부 수용하는 등 교육부와 보조를 맞춰 온 교학사마저 “교육부가 수정 권고를 받아 고친 제주 4·3사건 등에 대해 수정명령을 발동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협의회는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갖고 교육부 수정명령에 대한 공동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협의회 대표인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법적 근거가 없는 교육부의 수정명령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다양한 사관을 인정하는 검정제도의 정신을 교육부가 훼손하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래엔 대표 집필자인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대법원 판례와 국회 입법조사처 검토에서 불법으로 판명된 수정명령을 강행하는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언젠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을 역사를 통해 익히는 역사학자로서 정부의 불법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지난 8월 한국사 교과서 검정통과 뒤 교과서 논란이 장기화되면서 ‘교육부의 수정명령→집필자의 수정명령 이행 거부→해당 교과서 발행 정지→한국사 교과서 고교 채택 파행 및 혼란→검정에서 국정으로의 한국사 교과서 체제 전환 논의’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역사학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17학년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사가 필수과목이 되는 등 국사를 검정에서 국정 체제로 전환시키던 유신 때 상황과 비슷한 정책이 실현되고 있어서다. 교육부의 수정명령 내용을 보면 이미 8종 교과서를 국정 단일 체제처럼 ‘판박이 교과서’로 만들려는 시도가 엿보인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이런 식의 수정은 결국 8종의 교과서 전체를 국정교과서처럼 똑같이 만들려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별이 된 ‘베트남의 별’

    별이 된 ‘베트남의 별’

     ‘영원한 무인’으로 평가받는 채명신 전 주월 한국군사령관(예비역 중장)이 25일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황해도 곡산에서 항일운동가였던 아버지와 독실한 크리스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진남포 소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소련군 주둔 이후인 1947년 공산주의를 피해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홀로 월남했다. 모태신앙을 지닌 그는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1948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제5기로 임관했다.  1948년 제주 4·3사건 때 9연대로 발령받아 토벌작전에 가담했다. 6·25전쟁 때에는 육군 중령으로 한국군 최초의 유격대로 불리는 ‘백골병단’을 이끌고 신화적인 전공을 세웠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박해진 1951년 1·4후퇴 무렵, 대구에서 단 3주간 교육을 받고 전선에 투입된 백골부대는 정식 군번도 없이 적 후방으로 침투해 교란작전을 벌였다. 인민군 중장이자 빨치산 총사령관인 길원팔을 육박전 끝에 생포하기도 했다. 악전고투 끝에 1951년 4월 강릉으로 귀환했을 때 살아남은 병력은 647명 중 283명밖에 되지 않았다.  휴전 후 9사단 참모장이던 박정희 당시 대령과 인연을 맺었다. 백골병단 생존자들과 강릉을 찾은 그를 박정희 대령은 ‘죽을 줄 알면서도 이북에 들어가 게릴라전을 하니 대단하다’며 고깃집으로 데려가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의 인연으로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했다. 5사단장이던 그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동대문 근처까지 진출, 박정희 당시 소장을 도왔다. 당시 혁명 5인 위원회와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참여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3차례에 걸쳐 자신을 도와 정치를 같이하자고 했지만, 군복이 더 좋다면서 과감히 돌아섰다. 1965년 8월 맹호부대장 겸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맡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인 1969년 4월 헬리콥터로 이동 도중 베트콩의 공격을 받고 국군 28연대 주둔지역인 투이 호아에서 헬기가 추락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1969년 귀국한 이후 2군사령관으로 부임했다. 1972년 박 대통령은 그를 불러 유신의 뜻을 내비치며 군부 내의 지지를 이끌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결국 대장 진급에서 탈락하고 같은 해 6월 전역했다. 사실상 강제 예편이었다. 이후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 등을 역임했다.  군 복무기간 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세운 공로로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베트남 최고2등훈장, 미국 공로훈장, 타이완 공로훈장, 필리핀 명예훈장, 태국 왕관훈장, 브라질 문화훈장 등 외국 훈장도 다수 받았다.  2000년 베트남 참전 전우회 회장과 2004년 사단법인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을 거쳐 같은 해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총재 등을 맡아 활동했다. 저서로는 ‘베트남전쟁과 나(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 여사와 1남 2녀가 있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지며, 28일 발인을 거쳐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02)3010-2631.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별이 된 ‘베트남의 별’

    별이 된 ‘베트남의 별’

    ‘영원한 무인’으로 평가받는 채명신 전 주월 한국군사령관(예비역 중장)이 25일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황해도 곡산에서 항일운동가였던 아버지와 독실한 크리스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진남포 소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소련군 주둔 이후인 1947년 공산주의를 피해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홀로 월남했다. 모태신앙을 지닌 그는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1948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제5기로 임관했다. 1948년 제주 4·3사건 때 9연대로 발령받아 토벌작전에 가담했다. 6·25전쟁 때에는 육군 중령으로 한국군 최초의 유격대로 불리는 ‘백골병단’을 이끌고 신화적인 전공을 세웠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박해진 1951년 1·4후퇴 무렵, 대구에서 단 3주간 교육을 받고 전선에 투입된 백골부대는 정식 군번도 없이 적 후방으로 침투해 교란작전을 벌였다. 인민군 중장이자 빨치산 총사령관인 길원팔을 육박전 끝에 생포하기도 했다. 악전고투 끝에 1951년 4월 강릉으로 귀환했을 때 살아남은 병력은 647명 중 283명밖에 되지 않았다. 휴전 후 9사단 참모장이던 박정희 당시 대령과 인연을 맺었다. 백골병단 생존자들과 강릉을 찾은 그를 박정희 대령은 ‘죽을 줄 알면서도 이북에 들어가 게릴라전을 하니 대단하다’며 고깃집으로 데려가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의 인연으로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했다. 5사단장이던 그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동대문 근처까지 진출, 박정희 당시 소장을 도왔다. 당시 혁명 5인 위원회와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참여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3차례에 걸쳐 자신을 도와 정치를 같이하자고 했지만, 군복이 더 좋다면서 과감히 돌아섰다. 1965년 8월 맹호부대장 겸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맡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인 1969년 4월 헬리콥터로 이동 도중 베트콩의 공격을 받고 국군 28연대 주둔지역인 투이 호아에서 헬기가 추락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1969년 귀국한 이후 2군사령관으로 부임했다. 1972년 박 대통령은 그를 불러 유신의 뜻을 내비치며 군부 내의 지지를 이끌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결국 대장 진급에서 탈락하고 같은 해 6월 전역했다. 사실상 강제 예편이었다. 군 복무기간 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세운 공로로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베트남 최고2등훈장, 미국 공로훈장, 타이완 공로훈장, 필리핀 명예훈장, 태국 왕관훈장, 브라질 문화훈장 등 외국 훈장도 다수 받았다. 2000년 베트남 참전 전우회 회장과 2004년 사단법인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을 거쳐 같은 해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총재 등을 맡아 활동했다. 저서로는 ‘베트남전쟁과 나(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 여사와 1남 2녀가 있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지며, 28일 발인을 거쳐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02)3010-2631.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겹치고 넘치는 새해 예산 철저히 가려라

    국회예산정책처는 ‘2014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 보고서에서 예산안에 담긴 8313개 사업 가운데 359개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전체 사업의 4.3%는 예산 삭감 등 조정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돼 국회 예산 심사에서 반영 여부가 주목된다. 기초연금, 행복주택, 셋째아이 등록금지원 등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들도 문제가 있는 예산 편성 사례에 포함됐다. 주먹구구식 예산 편성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정부는 이런 지적이 제기되는 원인을 성찰하고 보완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새해 예산안은 복지공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세출 구조조정의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기존 사업 가운데 불요불급한 것은 폐지 또는 통합하는 등 예산 절감을 위해 강도 높은 세출 다이어트를 실시해야 한다. 제한된 세수(稅收)로 공약을 실천해야 하고 지방재정도 확충하는 등 복잡한 산식을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유사한 사업과 겹치는 등 예산을 과다 편성한 사례들이 적잖다고 하니 과연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고의성이 있을 경우 관련자에 대한 적절한 견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지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나랏돈을 제대로 썼는지 국민을 대신해서 감시하고 새해 예산안에 문제는 없는지를 세밀하게 따져야 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보면서 느끼는 심정이다. 어제까지 3일째 예결위가 진행됐지만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공방을 벌이면서 결산을 위한 정책질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어서다. 국회는 2004년 조기결산제를 도입, 정기국회 개회 전인 8월 31일까지 결산심사를 마치도록 국회법을 바꿨다. 그러나 법을 지킨 것은 2011년 한 차례뿐이다. 올해도 국정원 댓글 사건 청문회 때문에 결산국회는 제때 열리지 못했다. 국회는 오는 12월 2일까지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지난해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예산안 처리가 해를 넘기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산 심사를 제대로 해야 지적 사항을 새해 예산안에 반영할 수 있다. 정쟁만 일삼다가 결산과 새해 예산안을 모두 날림 심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료들의 예산 편성 권한만 과도하게 키우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예산안을 제대로 심사하는 것이 곧 민생을 살리는 길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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