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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뉴라이트 교과서의 위험한 역사인식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내놓은 한국 근·현대사 대안교과서는 역사인식과 기술에 있어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4·19 혁명을 좌파 학생운동으로 격하하는가 하면,5·16 군사쿠데타를 경제발전의 획기적 계기가 된 혁명으로 격상했다. 유신체제를 “행정차원에서 집행력을 크게 제고했다.”고까지 미화했다. 우리 사회는 이념의 편차는 있더라도 4·19는 학생혁명이요,5·16은 군사정변이자, 유신은 민주를 정지시킨 독재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지 않고 역사의 평가를 확립했다. 그런데 교과서포럼은 이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기존 교과서가 친북좌파 편향적이라고 비판하며 우파적 교과서에 집착해온 교과서포럼은 식민지근대화론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그 귀결이 일제 식민지배의 긍정이고,5·18민주화운동의 폄하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발전국가의 계승자로 치켜세운 것이다. 합의된 역사 평가를 비틀고 유신과 5·18 피해자들이 엄연히 살아있는 현실에서 독재를 찬양하거나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일은 뉴라이트가 모종의 목적을 지닌 정치지향적 수구세력이라는 의심을 확신으로 굳히게 한다. 고2,3학년의 선택과목인 한국 근·현대사는 2002년부터 국정에서 검정으로 개방되어 6종의 교과서가 나와 있다. 교과서포럼이 내년 이런 내용의 책을 출판한다고 하지만 검정을 받지 않으면 교과서로 쓸 수 없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가 채택률 0.4%에 그친 사례가 있다. 극우적 시각에서 한국사를 왜곡한 이 교과서가 숱한 화제는 뿌렸지만 일본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전철을 교과서포럼은 밟지 않았으면 한다. 교과서라는 법정용어도 함부로 쓰지 말라는 교육부의 당부도 새겨 듣길 바란다.
  • [씨줄날줄] 전직 대통령/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대한민국 건국 이래 대통령 직에 오른 분은 모두 9명, 이 가운데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을 뺀 전직 대통령은 모두 여덟 분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민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 ‘전직’은 아직 없는 듯하다. 한때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개헌을 거듭하며 장기집권하다 4·19혁명으로 쫓겨났다. 그는 이국땅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타계한 뒤에야 국민의 용서를 받아 환국했다. 내각책임제 하의 유일한 대통령인 윤보선은 재직시 장면 총리와 끝없는 권력투쟁을 벌였다. 그러다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올 것이 왔다.”고 추인했다. 그는 뒷날 박정희를 상대로 반독재투쟁을 벌이지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협력하는 등 불투명한 정치 행각으로 빈축을 샀다. 윤보선을 뒤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업적에 관한 평가가 가장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이다. 경제성장은 공(功)으로 꼽히는 반면 장기집권과 독재적 통치는 어쩔 수 없는 과(過)의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종말과 그에 따른 시국 혼란을 틈타 총칼로 집권한 전두환, 그리고 전두환 세력의 2인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훗날 내란죄로 1심에서 사형 등을 선고받았다. 잇단 감형과 사면으로 자택에서 칩거한 지 오래됐지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노태우의 후임인 YS(김영삼 대통령)는 ‘IMF 사태’를 불러들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직전 대통령인 DJ(김대중)는 필생의 과업인 ‘햇볕정책’이 최근 도마에 오르면서 새삼 시련을 맞고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사이의 혼란기에 잠시 대권을 계승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어제 아침 별세했다. 그는 박정희의 종말을 부른 ‘10·26사태’, 전두환의 권력장악 계기가 된 ‘12·12사태’, 그리고 국민의 숭고한 피로 얼룩진 ‘5·18 광주’를 권력의 최상부에서 겪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하야한 뒤로는 증언을 일체 거부한 채 세상을 떴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이 없는 현실은 국민의 비극이다. 재직 시에 존경받고, 퇴직 후에도 길이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언제쯤이나 우리 역사에 등장할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서울대 개교 60주년] 6·25때 부산 피란… 91년에 첫 직선총장

    [서울대 개교 60주년] 6·25때 부산 피란… 91년에 첫 직선총장

    서울대는 1946년 7월 문교부가 내놓은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에 따라 출범했다. 서울 동숭동을 중심으로 서울시내 곳곳의 캠퍼스에서 초기 30년을 보낸 뒤 1975년 현재의 관악캠퍼스로 이전했다. 1924년 설립된 경성제대를 모체로 동숭동의 문리과대, 법대, 예술대를 비롯해 사범대, 상대, 공대, 의대, 치대, 농림과대 등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던 9개 단과대로 출발했다. 설립 과정에서 일부 교수와 학생들은 미 군정의 통치, 대학자율권 침해 등을 이유로 거세게 저항, 전국 400개 학교가 동맹휴업하는 이른바 ‘국대안 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50년에 터진 6·25전쟁을 피해 51년부터 전쟁이 끝난 53년까지는 부산에 내려가 있어야 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학교이름을 ‘국립서울대학교’에서 ‘서울대학교’로 바꿨다. 4·19혁명으로 교수협의회가 결성되고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학생회를 조직하기도 했으나 5·16 쿠데타로 강력한 통제를 받게 됐다. 이때 서울대는 동숭동을 중심으로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이 밑바탕에 깔린 서클, 야유회, 미팅 등 독특한 대학가 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유신시대의 긴급조치와 광주사태 등 부당한 권력의 억압을 보다 못한 많은 학생들이 강의실을 뛰쳐나와 민주화를 외쳤다.87년 6월 항쟁 이후 학내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대학 자율권이 신장돼 91년 첫 직선총장이 선출되기도 했다. 90년대부터 사회적으로는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힌 특정 집단의 권력화를 우려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우려의 중심에 서울대가 있었다.‘서울대 폐지론’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법원서 승리 확정된 대통령 당선자 칼데론

    당선자 꼬리표를 다는 데 두달 넘게 걸렸다. 그의 당선 선언이 나오기 하루 전인 4일 발간된 미국의 시사주간 뉴스위크 최신호는 ‘달콤씁쓸한 승리’라고 표현했다. 멕시코 연방 최고선거재판소는 5일 대선 당선자 발표와 관련한 판결에서 우파 집권 국민행동당(PAN) 펠리페 칼데론 후보의 승리를 확인했다. 판결문은 칼데론 후보는 지난 7월2일의 대선에서 집계된 전체 4160만표 가운데 23만 3831표 차로 좌파 야당 민주혁명당(PRD)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를 제치고 승리한 것으로 돼있다. 이는 당초 공식 개표에서 나타난 표차 24만 4000여표보다 약 1만표가 줄어든 것이다. 우파 집권 국민행동당(PAN) 소속 펠리페 칼데론(44) 앞에는 산적한 과제들이 놓여 있다. 우선 오브라도르 후보가 칼데론 후보의 승리와 그가 이끌 정부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좌·우파 분열 정국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그의 임기는 1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다. ●자서전 제목 ‘무릎꿇지 않는 아들’ 선거 구호로 칼데론은 선거운동 내내 자서전 제목 ‘무릎꿇지 않는 아들’을 구호로 애용했다.PAN의 창당 주역 중 한명인 부친의 후광을 유권자에게 부각시키는 동시에 그로부터 독립적인 행보를 걸어왔음을 강조한 것이었다. 대권에의 꿈을 공언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었다. 선거 초반 9% 가까이 뒤져 있던 판세를 뒤집은 것도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센테 폭스 대통령 정부에서 에너지 장관을 8개월 지냈지만 폭스 대통령이 자신의 대권 출마 의사를 문제삼자 항의의 뜻으로 사직했다. 친기업 성향으로 기업가와 중상류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오브라도르 후보가 맹렬히 반대했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도 찬성했다. 그는 선거기간 야당의 FTA 반대 목소리를 “멕시코를 개발도상국가 지위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라고 맞받아쳐 재미를 봤다. 또 범죄와의 전쟁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도 안정을 희구하는 지지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3년 이상 체류한 불법체류자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협정을 미국과 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카리스마 부족-깨끗하지 못한 처신 약점으로 야당의 반발 외에 앞으로도 그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이는 건 깨끗하지 못한 처신이다. 국영개발은행 총재때 300만페소(약 3억원)를 빌렸다가 나중에 갚은 일은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1994·1995년 금융위기때 민간은행들에 공적 자금을 지원하도록 법률을 만드는 데 칼데론이 조언한 것도 논란을 낳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멕시코에서도 이를 금융위기에서 나라를 구해낸 결단으로 보는 시각과 일부 은행에 특혜를 제공한 부패 행위로 보는 시선이 맞서 있다. 또 에너지장관 재직때 처남이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회사와 특혜 계약을 하도록 하고 탈세를 도왔다는 의혹 역시 야권의 단골 메뉴로 등장할 것이다. 일단 PRD는 16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고 이날 오브라도르를 당선자로 선언할 계획이다. 지난주에는 폭스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을 훼방놓아 순연시킨 바 있다. 멕시코는 언제든 두개의 정부로 쪼개질 수 있는 시한폭탄을 여전히 안고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조지훈 ‘4·19 헌시’ 詩碑 세우기로

    고려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시인 조지훈 선생이 4·19혁명 직후 쓴 헌시가 시비(詩碑)로 만들어진다.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라는 제목의 이 시는 4·19혁명 보름 뒤인 1960년 5월3일자 고려대 학보인 ‘고대신문’ 특집 통합호 1면에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라는 부제와 함께 실렸다(서울신문 2006년 4월19일). 이 시에는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다 피흘린 제자들에 대한 찬사와 제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교수들의 자기반성이 담겨져 있다. 시비는 이 대학 국문과 교수들이 문과대학 창립 60주년을 맞아 ‘지훈시비건립위원회’를 꾸려 내부 모금활동을 벌인 결과 만들어지게 됐다. 하늘·땅·사람을 상징하는 화강암 3조각에 새겨져 고려대 교내 문과대학 뒤편에 세워질 예정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사진으로 제2인생 허형구 전 법무부장관

    사진으로 제2인생 허형구 전 법무부장관

    노을이 산과 벌판을 덮기 시작한 저녁. 백로 한 마리가 석양을 물고 둥지로 돌아온다. 새끼는 목이 빠져라 고개를 들어 어미를 부르고 기다림 끝에 짝을 만난 백로 한 쌍은 정에 겨운 듯 고개를 한껏 젖힌다. 온종일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허형구(80) 변호사는 그때를 놓칠세라 렌즈의 초점을 맞춘다. ●검찰 근현대사의 산증인 허 변호사는 1926년 김해에서 태어났다. 김해평야로 유명한 그의 고향은 겨울이면 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찬바람이 쌩쌩 불던 곳이었다. 수문을 넘어가 조개를 줍고 가을이면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끓여 먹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가정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직공생활을 했다. 그후 독학으로 부산대학에 들어갔으며 제2회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부산대 출신으로 고시에 합격한 것은 허 변호사가 처음이었다. 6·25 직후인 1953년 부산지검에서 검사로서 첫발을 뗀 허 변호사는 “법과 원칙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시절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부산에 근무할 때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시위를 벌이던 김주열군이 진압하던 경찰이 쏜 최류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수사해 공산당의 폭동선동이라는 조작·은폐 시도를 파헤쳤다. 그는 “말못할 압력도 있었지만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수사했다. 그뒤 4·19혁명을 보면서 민중의 힘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30년간의 검사생활 끝에 1981년 제17대 검찰총장과 88년 제38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그는 검찰 근현대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민주화와 사회발전, 통치권자의 생각도 진보해나가고 발전해가는 측면도 있지만 요새 검찰이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검찰의 중립은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헌법정신의 기본인 삼권분립 차원에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5공화국 시절 검찰총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른바 ‘저질연탄 사건 수사’로 9개월 만에 총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그가 강조하는 검찰의 중립성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수사에 대한 뒤숭숭한 소문이 있은 뒤 얼마 전까지 수사를 칭찬했던 대통령이 어느날 검찰에 책임을 물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검찰 고위간부가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했으나 결국 물러나기로 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후 6년가량 변호사로 활동하다 다시 노태우 정부 때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 ●백로와 사랑에 빠진 팔순의 사진작가 허 변호사는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검사 생활하는 틈틈이 사진을 즐겨 찍었다. 답답한 도심을 떠나 복잡한 사건을 잊고 자연의 품에 안겨 스트레스를 풀어보자고 시작한 사진이었다. 하지만 공직에서 떠난 그에게 사진은 제2의 인생을 선물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난도 길러봤지만 사진만 한 매력은 없었다. 사진동호회에 가입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아직은 아마추어’라며 겸손해하지만 좋은 풍경과 벗할 수 있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을 만큼 열정만은 프로다.“법률은 강직하게 사회를 지켜야 하고 예술은 부드럽게 세상을 보듬어줘야 한다. 사진 한 장에 낭만을 담고 싶다.”며 사진에 대한 철학을 밝혔다. 허 변호사의 사무실에는 각종 법률서적과 더불어 사진관련 서적, 필름뭉치와 벽에 걸려있는 풍경 사진들이 눈에 띈다. 어려서부터 문학 책을 좋아했던 터라 그의 사진에는 ‘토지’,‘메밀꽃 필무렵’ 등 문학작품의 무대가 자주 등장한다. 또 안개에 둘러싸인 숲, 이슬을 머금은 꽃 등 자연도 단골손님이다. 팔순의 사진작가는 특히 백로와 사랑에 빠졌다.“백로 사진은 상당히 찍기 어렵습니다. 좋은 장소에서 오래 참고 기다린 사람에게만 그 자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단순한 사진 한 장이 아닙니다.”자신의 일생을 회상하듯 “고고하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으면서도 올곧은 자태를 렌즈에 담고 싶었다.”고 말하는 노신사의 머리에도 백로가 내려앉았다. 백로를 사진에 담기 위해 밟아보지 않은 서식처가 없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는 백로 사진을 위주로 전시회를 세 차례나 열었고 지난해 7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백로와 무학 그리고 사계비경’이라는 제법 규모있는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올초에는 대검찰청 로비에서 전시회를 열고 후배 검사들에게 그동안 갈고 닦은 사진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운영자문위원직도 맡고 있다. 허 변호사는 “3∼4월이면 백로가 오기 시작해 5∼6월초까지 많이 찍는다. 하지만 요즘은 백로 서식지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백로가 사람을 피해 숨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디카’보다는 아날로그가 더 매력 허 변호사는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지금은 손자·손녀만 20여명이 넘는다. 자신의 손자·손녀 또래의 젊은이들이 월드컵을 맞아 거리에서 펼치는 응원을 보고 있자면 그들이 조국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그의 눈에 비친 젊은 세대는 ‘열정’ 그 자체다. 해방과 6·25,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어온 허 변호사는 이들에게 “기다릴 줄 알아라.”고 조언한다. 허 변호사는 “디지털 카메라도 좋지만 필름으로 찍어서 현상하며 기다려야 하는 아날로그에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좋은 사진은 시간과 장소가 맞아야 하며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참아야만 찍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좌우명은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이다.“물 방물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수없는 세월 동안 견디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돌을 뚫듯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려면 참고 노력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팔순에 접어든 허 변호사는 요금 건강이 예전같지 않아 오전에만 법무법인 사무실에 나와 근무하고 오후에는 산보 등을 하며 건강을 관리한다. 그는 “사진에 빠져 곁을 비웠어도 지금까지 싫은 내색을 안한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검찰과 법무부의 총수까지 지낸 그에게 욕심은 없다. 다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면 일생을 정리할 수 있는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게 그의 작은 소망이다. ■ 허형구 변호사는 ▲1948년 부산사범학교 졸업 ▲1952년 부산대 법과대 졸업 ▲1953년 부산지검 검사 ▲1966년∼서울지검부장, 대전·부산지검·서울지검 차장검사 ▲1974년 청주지검장 ▲1981년 검찰총장 ▲1988년 법무부 장관 ▲1990년 변호사(현) ▲저서 검찰실무, 주석형사소송법(3권)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박성서의 가요X파일] 한국 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1)

    [박성서의 가요X파일] 한국 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1)

    ‘시작은 그 끝과의 약속이다.’라는 어귀가 먼저 눈에 띄는 평창동의 ‘김준 재즈클럽’. 이 곳에는 ‘재즈계의 신사’라 불리는 김준씨가 늘 삽화처럼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재즈는 여백이 많은 음악입니다. 불협화음을 화음화하는데 묘미가 있지요. 악보에 없는 음을 표현하는 즉흥적인 호흡이 생명입니다.” 재즈는 연습을 게을리하면 그걸로 끝장이라고 말하는 김준(66)씨. 때문에 그는 활발한 공연과 더불어 매년 한두 장 이상의 음반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하루 연습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남이 알고, 사흘 안 하면 무대에서 떠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즈에 몰두하는 김준씨 클럽에는 필자가 시간 날 때마다 드나들었지만 불과 두세 번 정도를 빼면 손님이 단 한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스스로 강조하듯 ‘돈 안 되는 일’에 매달려 온 지 30여년째다. 솔로 활동 이전 ‘빨간마후라’로 잘 알려진 남성 4중창단 자니브라더스의 멤버였던 그는 또한 69년도부터 동료 박상규, 장우, 차도균씨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포 다이나믹스’를 결성해 현재까지 근 36년간 함께 활동하며 우정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가수 겸 작곡가 김준씨의 본명은 김산현. 그의 삶은 귀족풍의 얼굴과는 달리 파란만장했다. 1940년 임야만도 18만여 평이 넘었던 신의주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토지개혁으로 재산을 몰수당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가족은 46년, 진남포 해안에서 어선을 이용하여 탈북, 서울로 와 남산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강원도의 원주와 영월, 문경, 목포 등을 거쳐 제주 최남단 모슬포에 정착, 대정고를 졸업했다. 타고난 음악적 자질로 각종 콩쿠르에서 제주를 석권했던 그였지만 가난으로 인해 대학 진학의 꿈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그는 대학입학자격이 주어지는 경희대 주최 ‘전국 남녀 고교 음악경시대회’에 참가한다. 이미 졸업생이었지만 학교장의 배려로 고3재학생으로 서류를 위조해 응시한 것. 결국 그는 200여 명의 참가자 중 3위로 입상하며 경희대 음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60년, 대학생활이 시작되자마자 4.19를 맞아 잦은 휴강과 함께 결국 휴교령이 내려졌다.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종로2가 ‘뉴월드’ 음악감상실 DJ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함과 동시에 당시 50인조로 구성된 교회 성가대 ‘시온성가단(단장 이동일)’의 일원이 된다. 아울러 이 무렵 당시 4인조 쿼텟 ‘멜로톤’의 멤버 한 명이 입대해 결원이 생기자, 대타로 참여해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61년 5월16일, 라디오에서 새벽을 가르는 군가연주와 ‘혁명공약’을 낭독하는 아나운서의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학교는 4.19에 이어 다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교 정문 앞에는 엄청난 포신을 자랑하듯 탱크가 버티고 있었고 이른바 ‘혁명군’들이 10m 간격으로 서서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2학기 수강신청을 끝내고 정상수업이 시작되던 어느 날, 그는 한 방문객과 마주친다. 그리고 이내 지프차에 실려 미아리고개에 있는 군부대 막사로 이송된다. 그 곳엔 이미 예닐곱 명이 먼저 와서 초조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 중 한명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예술 중흥을 위해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쳐 새로 창단하는 ’예그린가무단‘의 합창단원으로 입회시키겠다’고 했다. 사실상 일방적인 통고에 가까웠던 이 예그린의 단장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혁명 주체 세력’ 김종필씨였다. ‘단복은 계절에 따라 무상 제공’ ‘출연료 파격 대우’ ‘향후 무대활동 보장’ 등이 그들이 내건 조건이었다. 이 예그린합창단의 월급은 당시 돈으로 무려 ‘오천원’ 정도였기 때문에 기성가수나 교직에 몸담은 실력자들까지 앞 다투어 응시, 경쟁이 치열했던 터라 그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된 예그린, 그는 창작 뮤지컬 ‘한 여름 밤의 꿈’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등 활동을 시작했으나 1년 후 예그린은 해산되고 만다. 때문에 합창단 중 막내이자 가장 ‘끼’가 많았던 동갑내기들, 즉 김준, 양영일, 장호성, 진성만은 4중창단을 결성,62년 ‘자니브라더스’를 결성한다. 예그린은 당시 악보 보는 것을 시작으로 연기, 춤까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를 요구했던 만큼 이들 네 명의 실력은 이미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의 음악적 실력은 대표곡인 ‘빨간 마후라’ 취입과정에서도 잘 나타난다.63년 초여름. 이 영화 제작사인 신필름 측은 작곡가 황문평씨에게 주제가 작곡을 의뢰해온다. 아울러 이 영화주제가는 파일럿들이 첫 출격할 때 불러야하는데 하필 오늘 OO기지 비행장을 빌려 촬영하는 날짜라 오늘 중으로 만들어 달라고 독촉을 해왔다. 가사를 받아 쥔 황문평씨는 노래 구상은 물론 동시에 노래를 불러줄 가수부터 찾아야 할 형편이었으므로 급한 대로 당시 동아방송 강수향 음악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 마침 방송국에 자니브라더스가 나와 있다는 것을 알고 황씨는 곧바로 악상의 뼈대를 잡고 방송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멜로디를 다듬었다. 주제가를 의뢰받은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작곡을 했고 두서너 번의 연습 끝에 ‘빨간 마후라’는 자니브라더스에 의해 취입된 것이다. 자니브라더스의 넷 모두는 악보만으로도 곧 바로 노래가 가능한 실력자들이었다. 이렇게 급조된 ‘빨간 마후라’는 어느덧 대표적인 공군가로 자리했다. 또한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면서 특히 대만에서도 이 노래가 대만 공군가로 불려지고 있는데 심지어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대만국민들은 이 노래가 자국의 군가로 알고 있을 정도다.(계속) sachilo@empal.com
  • “대학생들 사회의식 부족”

    작가 조정래(63)씨가 25일 서울대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씨는 이날 서울대 기초교육원 주최 관악초청강좌에서 대학생의 52%가 ‘4·19가 다시 오면 나가 싸우지 않겠다.’고 응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최근 대학생들의 사회의식 부족을 개탄했다. 그는 “한 사회집단에서 혁명이 성공하려면 1%의 행동하는 사람과 10%의 지지자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면서 “일제 치하 우리나라에서 독립운동 가담자는 2400만명 중 10만명이 안 됐으며 우리는 이 때문에 독립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전대협(한총련의 전신)을 탈퇴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총학생회가) 탈퇴했어도 여러분들 전체가 탈퇴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기 1%,10%를 만들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제르미날(MBC 밤 12시55분)1884년 프랑스 일간지에 연재됐던 에밀 졸라의 소설 ‘제르미날’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직접 지하 갱도에 내려가 광부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삶을 취재했던 에밀 졸라는 이 소설에서 19세기 말 비참한 광부들의 인생과 애환, 투쟁 의식을 그려내고 있다. 노동자들을 변혁의 주체로 바라보며 이에 대한 헌사를 바치는 작품이다. 클로드 베리 감독은 에마뉘엘 베아르의 아름다움이 빛났던 ‘마농의 샘’(1986년)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감독. 여기에 광부 출신 가수 르누아, 프랑스가 자랑하는 국민 배우 제라르 드파르뒤와 미우미우가 연기력을 보태며 대서사시를 만들어 냈다. 할리우드 영화의 물결에 맞서 프랑스 정부가 대대적인 투자를 한 이 작품은 한국에서 개봉했을 당시 ‘쥐라기 공원’에 밀려 일찍 간판을 내리는 불운을 겪었다.‘제르미날’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3월22일부터 4월19일까지를 의미한다. 혁명의 기운이 싹트는 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프랑스 제2제정 시대 젊은 실업자 에티엔 랑티에(레노)는 프랑스 북부 몽수에서 광산 노동자가 된다. 주위는 가난과 알코올 중독, 불결한 환경과 난잡한 생활로 가득하다. 마유(제라르 드파르뒤)처럼 충직한 사람도, 샤발(장 로저 밀로)같이 교활한 사람도 만나지만 공통점은 자본의 착취로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 아수라장 속에서도 에티엔과 카트린(주디스 헨리)은 아름다운 사랑을 일구게 된다. 어느날 임금이 깎이자 광산에서는 대대적인 파업이 일어나고 에티엔은 사회주의 투쟁에 나서지만 파업 진압을 위해 군대가 투입되는데…1993년작.170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어바웃 슈미트(MBC무비스 밤 1시)명배우 잭 니컬슨이 연기란 이런 것이라며 원맨쇼를 펼치는 작품이다. 퇴직과 함께 부인과도 사별한 노년 남성의 황혼기를 과장되지 않은 코미디로 그려내며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를 소재로 한 풍자극 ‘일렉션’(1999년)으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연출했다. 평생을 바쳤던 보험회사에서 은퇴한 워렌 슈미트(잭 니컬슨)는 갑작스레 부인마저 잃게 된다. 유품을 정리하다 부인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 워렌. 워렌은 매일 73센트를 후원해 주는 6살의 탄자니아 소년에게 편지를 쓰며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데….2002년작.125분.
  • [임영숙칼럼] 한명숙 총리가 해야 할 일

    [임영숙칼럼] 한명숙 총리가 해야 할 일

    남성 중심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역설적으로 갖게 되는 이점이 하나 있다. 남성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을 돌아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 대한 관심과 사려 깊음은 모성과 일맥상통하며 부드러운 여성적 리더십을 구성한다. 한명숙 총리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게 된다면 그는 성공한 총리가 될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밀어붙이기 리더십과는 다른 화합과 포용의 리더십, 대화와 조정으로 상생을 추구하는 리더십을 지금 우리 사회는 바라고 있다. 날카로운 대립과 갈등에 온 국민이 지쳐있는 것이다.“나를 따르라.”는 리더십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명감을 공유하고 “우리가 해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 점에서 총리의 취임식 발언은 기대를 갖게 한다.“민생현장을 찾아 지친이들의 손을 감싸드리는 민생총리가 되겠다. 파인 골을 메우고, 상처난 곳을 어루만지고, 등지고 돌아선 사람들의 손을 맞잡게 하겠다.”“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힘과 에너지는 오직 우리 국민 속에 있다. 국민 속에 잠재해 있는 무궁무진한 지하수와 같은 에너지, 저력, 잠재력을 살려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말보다는 실천이 문제이다. 벌써부터 여성총리의 부드러운 리더십만으로는 산적한 문제 해결에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걱정을 사라지게 하려면 한 총리는 시급히 국정 현안을 파악하고 조정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실무자를 압도할 정도로 국정을 소상히 파악했던 전임 이해찬 총리가 치밀한 업무 인수인계를 통해 새 총리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임총리에게 했던 것 이상으로 새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총리의 역할은 그의 능력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신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국정 후반기에 접어든 이제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기보다는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것이 새 총리가 떠안은 과제이다. 그러나 여성총리는 정치문화뿐만 아니라 경제구조에서도 발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주력산업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면서 여성이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어가는 ‘우머노믹스’시대가 오고 있다고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분석했다. 국가경쟁력 1위 자리를 몇년째 고수하고 있는 핀란드는 여성 대통령이 연임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른바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등 시급한 국정현안을 풀어나가는 데도 이런 흐름을 읽고 현실에 접목해 나가야 한다. 한 총리가 무엇보다 지켜야 할 덕목은 사심없이 원칙과 소신에 따라 정도를 걷는 것이다.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총리직 수행에 있어 중요한 핵심은 상식적 판단과 균형감각”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힐 때 당연한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데서 파국이 빚어진다. 여당이나 청와대가 그런 함정에 빠질 때 한 총리는 분명하게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엄정하게 관리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다. 한명숙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날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4·19 혁명 기념일이었다. 그가 업무를 시작한 날은 씨 뿌리는 날인 곡우이자 장애인의 날이었다. 대한민국 첫 여성총리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우연의 일치이다. 한 총리는 그 역사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성과 열린우리당을 넘어서 국민의 총리로서 성공해야 한다. 논설고문 ysi@seoul.co.kr
  • [사설] 첫 여성총리 기대 크다

    한명숙 총리지명자가 어제 국회 인준절차를 무난히 통과했다.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이다. 김구 선생은 서산대사의 시구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하얀 눈밭에 난 첫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므로 갈지자로 걷지 말라는 것이다. 한 총리는 처음으로 눈길을 낸다는 심정으로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여성 총리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 후 60년 가까이 되어서야 여성 총리가 등장한 것은 비정상이었다. 마침 4·19혁명 46돌을 맞은 날 민주화운동가 출신으로 여성운동의 대모인 한 총리가 국회 임명동의를 받았다. 이제 한 총리는 남성 리더십의 구태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새로운 여성 리더십을 정치·행정 분야에 부어넣음으로써 우리 사회를 감성이 넘치고 유연한 방향으로 이끌길 바란다. 학연과 지연, 접대문화로 일그러진 공직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 총리의 공과는 역시 업무능력으로 결판난다. 인사청문회에서 한 총리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준 반면 정책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여야 모두와 모나지 않으려는 충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비롯한 경제·사회 정책에서 두루뭉술한 답변을 거듭한 것은 소신의 결여로 비쳐졌다. 책임총리제 기조를 유지하면서 내각을 장악하려면 업무에 해박하고, 소신이 뚜렷해야 한다. 서민·소수자 보호, 경제 안정, 환경·문화 중시 등 미래를 지향하는 내각 면모를 빠른 시일안에 정립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한 총리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첫 여성 총리의 성공을 도와야 할 것이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각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일도 한 총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한 총리는 청문회에서 “선거운동 기간 동안 당정협의나 공약발표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정도를 넘어 선거중립내각을 구성했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한명숙 내각이 공정하다는 인식을 확실히 줄 때 여야 화합과 국민통합을 주도할 수 있다.
  • [19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 업(YTN 오후 1시20분) 장애인을 우리사회의 동일한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더불어 같이 살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가치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 이런 측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과 함께 장애인 복지문제를 자세히 알아보고 복지정책 현안에 관해서도 살펴본다.   ●문화 36.5(EBS 오후 10시5분) TV를 시청하다 보면 출연자들의 언어 표현은 물론, 가요 프로그램에서도 보기에 민망한 내용들이 있다. 그래서 각 방송사마다는 자체 심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만든 사람의 창작 의도까지 무시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창작자와 평가자의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사전 심의제에 대해 알아본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5분) 자신의 병명도 모른 채 알코올과 약물중독, 자살시도까지 하는 공포증 환자들을 밀착 취재해 ‘공포증’의 실체를 알아본다. 죽음보다 두려운 공포증, 과연 어떤 해결책도 없는 것인가? 다양한 환자 사례와 각계 전문가들을 통해 ‘공포증’에 대한 치료 방법 등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현장기록 ‘형사’(MBC 오후 7시20분) 2005년 6월, 국내 최대의 인터넷 쇼핑몰 사기 사건 용의자 이민성(가명)이 고객들의 결제 대금 23억 8000만원을 들고 사라진다. 휴대전화 사용 기록 등으로 미루어 그의 중국 밀항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이민성이 인천의 한 야적장에서 싸늘한 사체로 발견된다.   ●걱정하지마(KBS2 오전 9시) 가출한 재이의 학교에 다녀온 지영은 자신이 이혼을 해서 재이에게 큰 상처를 줬음을 진심으로 후회한다. 경준과 연화는 조촐하게 마련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결혼사실을 알린다. 한편 미연의 건축사사무소는 점점 심한 빚 독촉에 시달리고, 급기야 빚쟁이들이 사무실로 들이닥치는데….   ●낭독의 발견(KBS1 오후 11시40분) 4·19혁명일을 맞아 신동엽 시인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그가 남긴 위대한 작품들을 신동엽 시인의 부인 인병선 여사의 낭독으로 들어본다. 고3시절 서점에서 시인을 만나 대학졸업 전 신동엽 시인과 결혼한 이후, 신동엽 시인과 삶을 함께 걸어온 인병선 여사와 시인 신동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 4·19 함성 46년 뒤 새로 햇빛 조지훈 ‘혁명 헌시’

    4·19 함성 46년 뒤 새로 햇빛 조지훈 ‘혁명 헌시’

    “사랑하는 젊은 이들아/붉은 피를 쏟으며 빛을 불러 놓고/어둠 속에 먼저 간 수탉의 넋들아/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늬들의 공을 온 겨레가 안다.” 1960년 5월3일 고려대 학보인 ‘고대신문’ 특집 통합호 1면에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피 흘린 제자들에 바치는 스승의 헌시(獻詩)가 실렸다. 제목은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 이 시를 쓴 사람은 당시 문과대 교수였던 조지훈(1920∼1968) 선생이었다. 청록파 3인 중 한명으로 학생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선생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려대생들의 4·18의거를 힘찬 어조로 소리 높여 찬양했다. 한국현대사의 한 자락을 장식하고 있는 이 시가 46년 전의 벅찬 감동과 흥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수학과 56학번 김문식(70)씨는 모교 박물관에 1960년 5월3일자 고대신문을 기증했다. 이 신문은 기존에 박물관에 있던 신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선명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시에는 어리고 기개 없다며 한심하게 여겼던 제자들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선봉역할을 한 데 대해 미안한 동시에 가슴 벅차게 자랑스러워 하는 스승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선생은 “그날 너희 오래 참고 참았던 의분이 터져/노도와 같이 거리로 거리로 몰려가던 그때…사실을 말하면 나는 그날 비로소/너희들이 갑자기 이뻐져서 죽겠던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문학적 가치보다는 시대사적 의미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유가족과 학교의 애정이 더욱 각별하다. 지난해 박물관은 선생의 부인이자 서화가인 김난희(82) 여사에게 이 시를 서화로 만들어 주길 특별히 부탁했고 김 여사는 1년 넘게 공들여 대형 서화를 완성, 최근 기증했다. 학교측은 대형 서화와 5월3일자 신문을 한데 모아 특별전시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17일 TV 하이라이트]

    ●사이언스+ (YTN 오후 1시35분) 수천 년의 역사 속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전통은 문화 콘텐츠 개발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이다. 첨단기술과 문화의 만남은 옛것을 연구해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찾아낸다는 ‘온고지신’의 정신과도 같은 이야기다.‘왕의 남자’에 쓰인 디지털 한양을 찾아가 본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5분) 일상에서 자주 이용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소외받는 욕실. 타일을 적극 이용하고 고정관념을 깬 소품으로 멋지게 꾸며놓은 윤미경 주부의 집을 공개한다.‘주부생활백서’에서는 다양한 샤워부스와 욕조에 설치만 하면 마사지 효과가 나는 장치 등 욕조와 샤워부스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본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8시55분)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은 여자. 자신의 동의 없이 의사가 점까지 뺀 사실을 알았다. 여자는 점을 빼서 사업이 망했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데 이 경우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또 영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신고한 경우 업무방해죄에 해당되는지도 알아본다.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MBC 오후 8시20분) 기훈은 태희에게 뮤지컬을 보러 가자며 데이트 신청을 한다. 순진한 태희는 기훈의 마음을 읽지 못해 혼란스러워한다. 태희와 뮤지컬을 보다가 잠이 들어버린 기훈은 희수의 전화를 받지 못하고, 희수는 기훈 대신 연재만화의 마무리를 한다. 한편 태수는 초등학교 축구감독 자리를 제의받게 된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여성 최초 시사주간지 편집장, 유인경 기자. 남자 기자들과 함께 지내며 터득한 요즘 남자 이야기, 열등감 덩어리였던 유인경의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공개된다.80년대 ‘당신은 안개였나요’로 심금을 울렸던 중견가수 이미배.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이미배의 라이브무대를 만나본다.   ●가요무대(KBS1 오후 10시) 4·19 혁명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노래와 1960년대 당시 유행했던 노래들을 들어본다. 김주열 열사를 위한 노래 ‘남원 땅에 잠들었네’를 가창력 있는 가수 김용임의 목소리로 듣고, 박재홍의 ‘4·19행진곡’을 김국환의 목소리로 듣게 된다. 남인수가 불렀던 ‘4월의 깃발’은 현철, 김국환, 조항조가 함께 부른다.
  • [책꽂이]

    ●스코르타의 태양(로랑 고데 지음, 김민정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이탈리아 남부 작은 마을에서 5대째 살아가는 스코르타 일가의 이야기. 대대로 이어져온 가족의 거짓과 비밀로 온갖 비극적 사건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운명에 맞서 싸우는 스코르타 가문 사람들을 통해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2004년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작.9400원.●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김광림 지음, 다시 펴냄)화가 이중섭의 50주기를 맞아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원로시인인 저자가 털어놓는 비화.‘내 그림은 가짜’라며 주변의 그림을 몽땅 불사르려는 이중섭을 가까스로 만류한 사연과 군보급품 박스에서 양담배 은박지를 수집해 이중섭에게 전해줬던 일화 등을 실었다.9000원.●기적 불 때(윤진현 책임편집·해설, 범우 펴냄)일제시대 극작가 겸 소설가이자 동아일보·시대일보 기자로 활동한 김정진(1886∼1936)의 작품집. 탄생 120주년을 맞아 ‘범우비평한국문학’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책에는 ‘사인의 심리’‘십오분간’등 희곡 11편, 평론 3편, 장편소설 ‘독와사’등 대표작들이 실렸다.1만 8000원.●한 뙈기의 땅(엘리자베스 레어드 지음, 정병선 옮김, 밝은세상 펴냄)이스라엘 점령 치하에서 테러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비극을 묘사한 소설. 자유가 억압된 사회에서 맘껏 축구를 할 수 있는 ‘한 뙈기의 땅’을 갈망하는 아이들의 동심이 가슴을 울린다.9000원.●만인보 제21∼23권(고은 지음, 창비 펴냄)‘민족사의 거대한 벽화’를 목표로 1986년부터 내놓고 있는 연작시집.2004년 식민시대에서 한국전쟁 전후를 다룬 시 719편을 묶어 16∼20권을 낸 데 이어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배경으로 보통 사람들의 삶을 416편의 시에 담았다. 각권 8000원.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건전가요 부르기’의 선구자 전석환(1)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건전가요 부르기’의 선구자 전석환(1)

    ‘아름다운 노래 정든 그 노래가 우리 마을에 메아리쳐 오면….’ 60∼70년대 라디오 전파의 잡음 속에 들려오던 그리운 노래들 중 하나인 ‘정든 그 노래’다. 이 노래들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60년대 말, 달달 꿰고 다니던 ‘국민교육헌장’만큼이나 아직도 선명하게 각인된다. 다름아닌 전석환씨다.‘싱어롱 Y’를 통해 ‘건전가요 부르기’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던 그에 의해 전국적으로 번졌다. 특히 스포츠머리에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노래를 지도하던 그의 캐릭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능란한 화술과 시원시원한 리더십으로 공개방송 ‘다함께 노래하자’ ‘노래의 메아리’ ‘삼천만의 합창’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 직장과 학교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전파했다.70년 9월 한 인터뷰에서,“그동안 2500회의 노래 부르기 지도를 했으며 한 해 동안 만나는 사람이 무려 16만명, 그리고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는 3000여곡 정도 된다.”고 했다. 그의 왕성한 활동과 함께 전국적으로 벌어진 ‘다함께 노래 부르기’ 열풍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유행가 일부를 ‘소리의 공해’라 치부하기도 했고 때문에 건전가요 보급은 일종의 국가적 시책이기도 했다. 전석환씨는 “하루 여덟 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나머지 시간을 모두 노래와 함께 살았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그는 1934년 황해도의 섬, 용매도에서 태어났다. 음악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인천고 3학년 시절인 55년, 교회 성가대원들로 4중창단을 결성해 활동하면서부터. 이어 57년 HLKX(인천기독교방송국)에 특별출연하면서 찬송가를 기타반주에 맞춰 부르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다. 이 행동은 당시 경건하게만 여겨지던 교회음악에 대한 정서로 인해 찬반논쟁까지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파장을 몰고 왔다. 파격적인 시도만큼이나 음악을 바라보는 눈도 깨어 있던 그는 연세대 종교음악과에 입학한 후인 58년 조선호텔 ‘미군장교클럽’에서 전자 오르간을 연주하며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이때의 레퍼토리들이 그가 후에 전개하는 노래 부르기 운동의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60년대 초, 전석환씨는 학교 선배이기도 한 당시 YMCA 청년부 김창열 간사와 함께 ‘싱어롱 Y’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당시는 4·19와 5·16으로 이어지는 매우 혼란했던 시기로 연일 데모와 함께 휴강이 잦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대부분 갈 곳이 없어 음악감상실 등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둘은 의기투합해 ‘돌체’ ‘뉴월드’ 등 음악감상실을 돌며 ‘싱어롱 Y’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싱어롱 미치’라는 프로그램 명에서 힌트를 얻은 이 이름의 Y는 ‘Young’과 ‘Youth’ 그리고 ‘YMCA’ 등의 의미를 함께 포괄한 단어입니다.” 이런 행사를 통해 그동안 부르기 쉽지 않았던 외국곡이나 민요 등을 발굴, 채보해 보급했는데 대표적인 곡들이 ‘작별(Auld Lang Syne)’ ‘사모하는 마음(I Do Adore Her)’ ‘그리운 고향(Sloop John B)’, 그리고 전래민요인 ‘군밤타령’이나 ‘밥타령’ ‘꼬불꼬불’ 같은 노래들이다. 현재 악보집을 살펴보면 전석환씨가 채보, 개사한 대부분의 노래들은 특정 가수 표기가 없다. 주로 합창을 통해 불려져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역시 많은 가수들과 함께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남성4중창단 쟈니브라더스. 당시 예그린합창단 출신들로 구성된 이 남성4중창단의 첫 멤버는 김산현(김준), 양영일, 장호성, 진성만. 이 중 장호성씨가 멤버에서 빠지자 전석환씨가 긴급 합세해 62년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에서 개최된 MBC 주최 ‘5·16혁명 1주년 기념 중창 콩쿠르’에 출전, 대상을 수상한다.‘쟈니’는 전석환의 미8군 무대에서의 애칭. “이 무대에서 내가 직접 통기타를 치며 함께 하모니를 맞춘 노래가 ‘냉면’과 ‘맹꽁이와 삽살개’였는데 이 노래들 역시 그 무렵 내가 악보를 만들어 보급하던 노래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까지 소규모의 ‘싱어롱 Y’를 통해서만 불려지던 노래가 대형무대에서, 그것도 통기타 반주만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선보인 최초의 장면일 것입니다.” 이렇게 선보인 통기타 음악은 계속해서 ‘코코넛 트리오(박상규, 남승우, 김경수)’,‘사인트리오(리더 이인순)’ 등 대학생 보컬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YMCA가 본격적으로 ‘싱어롱 Y’라는 프로그램을 정기행사로 끌어들이면서 통기타 붐은 젊은이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전석환의 싱어롱 Y’는 이렇듯 우리나라에서의 캠프송, 레크리에이션송 문화로 깊이 자리 잡으며 포크송, 즉 통기타 노래 붐으로 점차 확산되어 갔다.(계속) 글 박성서(가요평론가/저널리스트) sachilo@empal.com
  • 여섯개의 얼굴을 가진 31歲 女社長

    여섯개의 얼굴을 가진 31歲 女社長

    퍽 능동적이고 결단력 있는 또는 억센 여자라는 인상. 집에 들어앉아 남편에게 바가지나 긁고 앉아 있지 못하는, 흔히 말해지는 ‘똑똑한 여자’ 라는 인상. 게다가 청산유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능변이다. 충북 충주산. 창덕여중고때부터 梨大政外科를 졸업(60년)할 때까지 2년만 빼놓고 매 학기 상을 탔으니까 재원이란 말을 들었음직하다.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간 이유는, 『외교관이 되려고 했어요. 외교관이 되려는 막연한 꿈에 들떠 1학년때 외국인 상대로 영어를 배웠어요. 2학년때는 일년동안 행정과 3부 고시공부를 했는데, 준비를 너무 안해서 고배를 마셨어요. 한참 「서클」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4·19직후 고대 모의국회(제10회)에서 국무총리상 (「스피치」상)을 받았죠. 이걸 계기로 서울대 행정대학원 토론회, 육사토론회에도「두개의 중국」이라는 제목으로 참석했어요』 4학년 1학기때는 중부서 유치장에 4일간 구류, 『인생을 많이 살고』나온 일도 있다. 『제가 각 대학 대표들로 구성된 「汎民靑」의 최고 간부였어요. 그때 「민족일보」라는 신문이 있었죠. 거기 정치에 관한 글을 하나 투고했는데 무슨 문구가 하나 석연치 않다고 경찰에서 나를 수배했어요. 형사가 학교와 집으로 잡으러 왔는데, 이 원섭 교수님과 박 관숙 교수님이 피신해 있었어요. 후배 4명이 잡혔는데, 申아무개가 자수하면 모두 석방시킨다. 자수해라 이런 방송을 했대요. 5·16혁명후 5일만에 남대문경찰서로 자진 출두했어요』 『「汎民靑」은 순수한 연구단체였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잡혀왔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반말조로 묻는 거예요. 기분이 나빠서 서장 좀 만나자고 반항했죠. 그랬더니 「다이아 팔찌」좀 차라는 거예요.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죠. 할 수 없다고 잘라서 말했더니 「은숙이는 역시 배짱이 두둑하다」고 해요. 「말은 많은지 몰라도 배짱은 없다」고 말했어요』 차에 실려 간 곳이 중부경찰서 유치장. 『맨 위칸엔 민주당 거물들이 갇혀있고 가운데 칸에서 우리 동료들이 나를 보자 「브라보!」「빅토리!」하며 반기더군요. 가슴이 답답해지며 눈물이 나오더군요. 밤 열한시에 주먹밥이 나오는데 동료들은 머리 숙이며 피했어요. 나는 먹어봐야겠다 마음먹고 쪼갰더니 「다꾸왕」이 들어 있었어요. 입에다 탁 넣었더니 구역질이 콱 올라와요. 각종 범죄를 저지른 여자들과 아편장이들도 한방에 있었는데, 밤이 되니까 춤추는 여자에, 노래하는 여자…거기서 인생 많이 산 셈이지요』 외교관이 되려던 생각을 버리고 「서클」활동도 끊었다. 정치외교과 아닌 진짜 정치가 해보자는 배짱이 생겼다. 당한데 대한 분노가 지배적인 감정이었다. 5·16후 申씨의 가정은 기울기 시작. 4학년때 유학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빨리 졸업해서 취직을 해야만 집을 꾸려갈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딸 둘. 申銀淑씨는 둘째 딸. 4학년 2학기부터 취직준비로 「타이프라이터」를 배웠다. 졸업후 공보부 산하단체인 내외문제연구소 총무로 취직. 당시 공보차관 李元雨씨는 이대정외과에서 외교사를 가르친 은사였고, 李씨의 힘으로 내외문제연구소에 쉽게 취직. 62년2월1일부터 63년8월까지는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63년9월1일부터는 민주공화당 경기도지부 부녀간사가 되고 총선거때는 경기도 지구 유세위원으로 지명되어 李百日 후보를 위해 돌아다니며 연설도 했다. 63년 연말에 약혼했고 64년2월 지부를 그만두면서 결혼. 신랑은 당시 陸寅修의원의 비서관이었던 金鍾達(37·현재 培洋산업 상무이사). 그러니까 陸의원과 이백일의원이 중매를 선 셈. 『아빠는 李孝祥의장을 모시고 올라온 경상도 사나이였는데, 독특한 경상도 사투리에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웠어요. 저렇게 무뚝뚝하고 건방지고 돼먹지 않은 남자가 있나 생각했죠. 전화로도 건방지고 돼먹지 않았다고 막 싸웠어요. 총각으로 보이지도 않구요. 어머니가 大邱(신랑의 고향)까지 내려가서 신랑의 신상을 파악하느라고 답사했어요. 이효상의장이 보증을 섰고 주례를 서 주셨어요』 결혼하자 청량리에 5만원짜리 전세를 얻었다. 『결혼하니까 내 월급은 만원이 넘는데 아빠 월급은 7천7백원, 세금 빼고 뭐 빼고 나서 6천원 갖다주었어요.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생각에 숨 막히고 앞이 캄캄하더군요. 내 자신이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본 결과 바가지 긁는 게 소용 없다는 걸 알고 있었죠. 비서관 봉급이라는 게 뻔한 거고, 도대체 월급장이한테 바가지를 긁는다는 건 도둑질해오라는 거나 다름 없는 거예요. 때때로 친정 보조도 받았어요』어떻게 곤란을 타개하느냐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 『비서관들한테 전화를 놔주었는데, 그걸 놔서 팔았어요. 아빠는 비서관 생활 3년만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데로 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빠 직장 그만두기 전에 내가 뭘 해야겠다. 공백 메우기 위해 뒷받침하자고 생각했어요. 청량리의 새「빌딩」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계약했어요. 양장점, 미장원, 이것 저것 생각하다가 망해봤자 본전인 장사 하자 그래서 식품점을 차렸어요. 안되면 먹어서 없어지는 거니까요』 겟돈 40만원과 친구 돈 30만원을 빌어서 70만원. 67년 선거때 아빠는 옥천에 내려가고 가계는 크게 잘되지 않았으나 1할 장사는 되었다. 이자 꺼가면서 한 달 수입 4만여원. 셋째 아기를 배고 있었으므로, 6개월만에 가게를 90만원에 팔았다. 아빠는 대한통운으로 옮겨서 대구 지점으로 내려갔다. 『90만원을 어떻게 안까먹고 싹을 길러서 사느냐 생각하다가 이자를 놓았어요. 아빠는 수습사원으로 월급 7천원을 받았는데, 대구 하숙비가 9천원이었거든요. 내가 하숙비를 보태야 할 입장이었죠. 마음은 초조하고 이런 식으로 있다가는 2, 3개월안에 다 까먹겠다 싶더군요. 아기낳고 회복도 되기 전에 퉁퉁 부운 몸으로 친구를 찾아다녔어요』 무슨 장사를 할까? 「아케드」양품점, 충무로 양장점 등으로 친구를 찾아 알아보았다. 딸 둘 낳고 아들도 낳았으니 인제는 돈버는 문제만 남았다는 생각. 숙대를 나온 가까운 친구가 하는 다방을 찾아갔다. 신설동 「로터리」의 「명」다방. 처녀가 다방을 어떻게 하느냐?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직접 한다기보다 「마담」과 「레지」가 한다. 네가 주인인지 사람들이 모르느냐? 아무도 모른다. 완전히 기업화되어 있고 학부출신들이 많이 한다. 물론 돈도 상당히 벌린다 등등의 정보를 입수. 자주 찾아가면서 결심을 얻었고 마침내 태평로에 다방 「영진」을 차렸다. 『아빠는 없고 아이 낳은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몸이 퉁퉁 부워 있는 상태였어요. 이야기만 들어서는 납득이 안갔어요. 망설일 것 없이 부닥쳐 보자 결심하고 뭐 한다는 얘기 안하고 친구와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마련했죠』 아빠한테서는 수시로 장거리전화가 왔다. 다방을 하니까 주로 다방에 나와있는 시간이 많았고 밤에도 집을 비우는 형편. 아빠가 밤에 대구에서 집으로 장거리전화를 해보면 주로 없었다. 수상하다! 『전화로 좋은 사람 있으면 가라는 거예요. 밤마다 집에 없으니까 완전히 오해한 거지요. 올 날짜도 아닌데 뛰어 올라 왔더군요』 밤에 부부가 마주앉았다. 날카로운 긴장과 냉기. 아내 申씨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도장을 내 놓는 거예요. 이혼하자는 거죠. 나는 잘 살기 위해서 한거다, 하지만 당신이 그만 두라면 그만 두겠다고 말했어요. 어쨌든 잘못했다고 했죠. 남편 허락 없이 내 마음대로 한 거니까요. 밤새도록 냉전을 했습니다』 이튿날 申씨는 남편을 이끌고 전부터 아는 사이인 「초원」다방 주인을 찾아 갔다. 남편에게 다방을 재인식시키기 위해서. 마침내 남편 金씨는 꽃다발을 사들고 친구들과 함께 「영진」에 입장, 아내에게 꽃다발을 증정했다. 다방 1년. 자기 나름대로 비교적 마음에 드는 일을 해보자고 경양식집 「그라찌에」를 시작했다. 종업원 20명. 「호스테스」와 종업원들을 될 수 있는대로 학부 출신으로 확보할 예정. 『특히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자라고 해서 여자보다 돈 버는 재주가 더 뛰어나다거나 남편을 돈버는 기계로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집에서 바가지만 긁을 게 아니라 자기 손으로 무얼 했으면 좋겠어요』 1남2녀. 5살 꼬마는『엄마는 왜 매일 나가?』라면서 불평. 그래서 엄마를 잊으라고 「피아노」를 사주었다. 한편 5시~7시까지 낮잠을 재우는 대신 밤에는 1시까지 놀아줌으로써 엄마와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없애주려고 한다. [ 선데이서울 69년 5/25 제2권 21호 통권 제35호 ]
  • [혁신 공기업탐방] 이우재 한국마사회 회장

    [혁신 공기업탐방] 이우재 한국마사회 회장

    한국마사회(KRA) 이우재 회장은 요즘 승마에 재미를 붙였다. 경마란 말만 들어도 승마와 같은 고급 레저 스포츠가 연상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승마를 전국에 보급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인 자신부터 승마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1일 “아직도 경마하면 도박·중독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면서 “KRA가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경마를 고급 레저 스포츠로 승격시켜 모든 가족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승마를 대중화하기 위해 경마에서 은퇴한 말을 승마용으로 적극 투입하도록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이 회장을 만나 경마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혁신 방안을 들어봤다. 취임 초부터 특히 윤리경영을 강조했는데.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2가지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다. 하나는 경마 순위를 조작하는 경마부정에 대한 이미지와 다른 하나는 경마 수익금을 마사회가 마음대로 쓴다는 점이다. 이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철저히 없애겠다. 특히 경마 수익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내 의지로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된다.KRA 운영도 그동안 정치생활처럼 깨끗하게 하겠다. 철저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지 못하면 어느 조직이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직원들에게 늘상 깨우치게 하고 있다. ●비실명 부정비리신고센터 운영 지금까지 시행한 윤리경영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나. -윤리경영의 실천을 위해 비상임이사 수를 늘려 외부 감시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투명계약 시스템을 정착하기 위해 일부 특수 분야를 제외한 모든 계약에 ‘전자입찰제’를 실시하고 ‘청렴계약제’를 적용토록 했다. 또 부조리 예방 등 감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부패방지팀’을 신설했다.‘내부공익신고자 보호 프로그램’ 및 ‘부조리 신고보상제도’ 마련과 ‘부정비리신고센터 운영 활성화’를 통해 신고자 자격을 외부인까지 확대하고 비실명 신고도 접수토록 했다. 윤리경영 성과는 나타나고 있나. -이제 윤리경영이 KRA의 핵심 경영이념으로 뿌리내렸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노력이 외부로부터 인정받게 돼 지난달 19일 ‘2005년 대한민국 사회책임경영대상 공기업부문 윤리경영대상’을 수상했다. 경마를 고급 레저 스포츠로 발전시킨다는 장기플랜을 세웠다고 들었다. -경마가 선진경마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경마상품의 품질이 우선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건전한 경마문화 조성, 경마시행의 공정성 강화, 서비스 향상을 통한 고객만족도 제고 등이 뒤따라야 한다. ●경마정보 공개 확대 추진 그렇다면 구체적인 복안이 있나. -외부의 경주마도 경기에 참여토록 하는 ‘외마사 제도’를 활성화해 경기의 질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 경주의 박진감을 높이고 향후 외국산마와 직접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경주편성체계도 바꿔야 한다.KRA가 공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경마팬을 위한 재단도 설립할 계획이다. 건전한 흐름을 유도해 부정경마 개연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마정보 공개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최근 경마매출이 하락하고 있다. -경마매출액은 외환위기 이후 2002년까지 매년 평균 27% 내외의 고성장을 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급격한 하락세로 반전, 현재까지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7조 6000억원까지 갔던 매출액이 5조 3000억원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내수침체 장기화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해 경마팬이 그만큼 마권을 덜 샀기 때문이다. 또 과거처럼 경마가 독점적인 시장 점유를 하지 못하고 로또, 카지노, 경륜 등의 경쟁산업이 확대되면서 시장점유율이 잠식됐다. 사설경마, 마권구매대행업, 경마게임오락장 등 불법·유사산업도 계속 번지고 있다. 매출감소를 막을 대책은 있나. -서울경마일수를 확대하고 제주교차경주를 1회 추가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또 회사의 업무추진비를 20% 줄이는 등 경상경비를 줄이고 관람대 리모델링 사업 등 자본투자 계획도 축소·연기하는 것을 고려중이다. 장외발매소 리모델링 또는 이전 등을 통해 접근 및 쾌적성을 강화하고, 모바일 베팅 및 PC 베팅 추진 등 베팅방식도 다양화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해 1조 1944억원 사회환원 경마이익금은 얼마나 사회에 환원하고 있나. -KRA는 한국마사회법과 시행령에 따라 전체 이익금의 60%를 특별적립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레저세와 교육세 등의 세금으로 1조 400억원을 납부했다. 또 축산발전기금과 농어촌복지사업으로 1447억원을 출연했으며, 독거노인·불우청소년 등 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97억원을 지원하는 등 모두 1조 1944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KRA는 경마가 열리는 하루 동안 16만여명이 500억원의 마권을 사 다른 공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벌고 있다. 예전에 대통령이 주재한 공기업 및 산하기관 혁신대회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공기업 사장을 보니까 정말 애국자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국회의원을 해봤지만 최근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공기업 사장을 보면서 그동안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 지방교육세 환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어떤 입장인가. -현재 레저세액의 60%로 부과되는 레저세분 지방교육세가 내년부터는 20%로 환원토록 돼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경마팬들에게 많은 상금을 돌려줄 수 있어 경마상품의 선진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5일 국무조정회의를 통해 현행 60%의 세율로 3년 동안 연장하고,2009년부터는 40%로 영구세화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만약 레저세분 지방교육세가 정상적으로 환원되지 않을 경우에는 2003년 이후의 경마 매출액 감소로 한때 1834억원까지 달했던 축산발전기금 출연금은 370억원으로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담 오풍연 공공정책부장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KRA Angels 봉사단 ‘한국마사회(KRA)의 천사들’ KRA 전 임직원이 천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직원 900여명이 단원으로 있는 ‘KRA 에인절(Angels) 봉사단’을 통해서다. 봉사단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공익기업’이라는 KRA 기업이념에 따라 지난해 1월 창립됐다. 봉사단의 첫 활동은 지난해 3월 충청도 지역에 내린 폭설 피해 농가 복구작업. 지난 8월에는 전북지역을 강타한 폭우 피해 농민들의 복구작업에도 동참했다. 이밖에도 정신지체아 보호시설 봉사활동, 해양환경 정화, 독거노인 및 소년소녀가장 도시락배달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KRA는 에인절 펀드도 운영하고 있다.1계좌에 1000원씩 직원들이 월급에서 원하는 만큼의 성금을 내고 있다. 현재까지 6000만원을 적립했다. KRA는 농촌봉사활동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지속적인 지원을 한다는 계획이다. 또 부서별로 1부서 1시설 돕기운동도 펼치기로 했다. 경로원, 고아원 등의 시설을 골라 부서원들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난 18일에는 KRA 에인절 봉사단장을 맡고 있는 이우재 회장과 직원 등 250명이 김장 1만 4500포기를 담가 서울과 과천 불우이웃들에게 전달했다. 최원일 KRA 사회공헌팀장은 “경마수익금을 금전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 외에도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 KRA 에인절 봉사단의 목적”이라면서 “봉사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KRA에 남아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농업전문가’ 이우재 회장 이우재 회장은 운동권 출신의 전문경영인이다. 이 회장은 4·19혁명 주도,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지난 1979년부터 3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이후에도 전민련 중앙위원, 민중당 상임대표 등을 지낼 만큼 영향력있는 ‘재야정치인’이었다. 15·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는 ‘농업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지역구가 서울이면서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며 농촌발전을 주도했다.‘한국농민운동사’ 등 10여권이 넘는 농업관련 서적도 저술했다. 지난 4월 KRA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개최된 아시아경마회의(ARC)와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 등 굵직한 행사를 무난히 치러 전문경영인으로서 합격점을 받았다. 이 회장은 최근 승마의 매력에 푹 빠졌다. 승마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이 회장은 “마사회장이 말(馬)을 못 탄다는 것은 말(言)이 안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충남 예산(68) ▲예산농고·서울대 수의과 ▲민중당 상임대표 ▲15·16대 국회의원 ▲대한수의사회장 ▲한나라당 부총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혁명과 웃음/천정환 외 지음

    1964년, 스물 넷의 나이에 단편소설 ‘무진 기행’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김승옥(64).‘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극찬을 들으며 문단에 발을 디딘 그는 이후 대중소설,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는 전방위 문화예술인으로 대중에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등단 전 시사만화가로 먼저 데뷔했다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혁명과 웃음’(천정환 외 지음, 앨피 펴냄)은 소설가 김승옥이 아니라 시사만화가 김승옥을 새롭게 부각시킨 책이다.4·19혁명의 불길이 뜨겁던 1960년, 서울대 불문과 신입생 김승옥은 학비를 벌 요량으로 신생 ‘서울경제신문’에 네컷 시사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필명은 김이구. 순천 고향집의 번지수를 따서 지었다. 콧수염을 기른 전형적인 중년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파고다 영감’은 그해 9월1일부터 이듬해 2월14일까지 134회가 연재됐다. 첫 작품은 장관에게 취직을 부탁하러 온 지게꾼이 ‘도시락 배달국’을 설치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는 이야기. 당시 새로 출범한 장면 국무총리가 청렴한 지도자의 면모를 위해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세태를 반영했다. 날카로운 현실인식에 기반한 신랄한 풍자는 이후 김승옥의 전방위적인 창작활동을 추동한 힘의 단초를 보여준다. ‘웃음과 혁명’이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연습’으로 등단하기 이전의 김승옥을 조명한 책이라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르네상스인 김승옥’(백문임 외 지음)은 5년 간의 짧은 작품 활동끝에 ‘순수문학’의 장을 떠난 이후의 김승옥을 다루고 있다.1967년 ‘안개’로 시작된 그의 영화 이력은 1986년 ‘무진 흐린 뒤 안개’에 이르기까지 16편에 이른다.‘어제 내린 비’,‘영자의 전성시대’,‘겨울여자’ 등 1970년대를 풍미한 영화의 각본들도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저자들은 “김승옥의 문학 바깥 활동이 그저 개인적인 여기나 외도의 소산은 아니었다.”면서 “결코 한번도 제대로 씌어지지 않은, 그러나 꼭 씌어져야 하는 새로운 작가론과 작품론”이라고 밝혔다.2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김승옥은 현재 재활 치료 중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아리랑국제방송 3부작 다큐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을 앞두고 사상 첫 한국인 수상이라는 쾌거가 기대됐으나, 아쉽게도 바람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문단에서는 섣부른 기대를 품기에 앞서 번역 등을 통해 꾸준히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리랑국제방송은 19일부터 3일 동안 매일 오후 9시30분에 3부작 다큐멘터리 ‘한국 문학 60년사’를 내보낸다. 이번주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주간을 맞이하여 마련한 특집 다큐멘터리다. ‘한국’가 주목되는 이유는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주관 방송사인 독일 헤센방송국(HR)도 행사 기간 동안 이 다큐멘터리를 동시에 방영하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는 출판 올림픽으로 꼽히는 세계 최대 도서전.15세기에 시작됐을 정도로 전통이 있고, 매년 110여 개국 6700여 출판사가 참여해 도서전을 펼친다. 올해 북페어 주빈국으로 초청된 나라는 바로 한국. 이미 지난 3월부터 국내 대표문인들이 독일을 찾아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최근 4년 동안 한국 문학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100회 가까이 제작했던 아리랑국제방송은 ‘한국’를 통해 해방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움트기 시작한 한국 문학을 총정리했다. 소설가 박완서 김주영 조정래 이문열 김훈 공지영 조경란, 시인 고은 신경림 김지하, 평론가 이어령 김윤식 백낙청 김화영 정과리 등 문단을 빛낸 우리 문인들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나 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 해방 직후부터 4·19혁명기를 다루는 1부 ‘환희와 극복의 시대’에서는 반전시 박봉우의 ‘휴전선’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그린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그리고 최인훈의 소설 ‘광장’ 등을 살피며,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을 걸었던 작가들의 발자취를 돌이켜본다. 2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상실과 격동의 시대’는 5·16혁명에서 출발해 87년 6월까지 기나긴 군사정권 시기를 담았다. 이 시기의 생명파와 해체문학으로 대표되는 순수 문학과 암흑기에 민중에게 등불이 되고자 했던 참여문학을 비교하는 시간이다. 요절 시인 김수영과 이와 관련한 논쟁을 벌였던 평론가 이어령 교수나, 저항문학의 선두에 섰던 고은, 김지하 시인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마지막 3부는 ‘다양성의 시대’. 거대 담론의 시대가 끝나고 젊은 작가군이 쏟아져 나왔다.90년대 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신경숙 은희경 등 여성작가들을 비롯해 독특한 개성을 뽐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현주소를 점검한다. 또 ‘퇴마록’ 등 하이퍼텍스트 인터넷 문학의 발전상도 알아본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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