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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본격 표몰이 나서는 ‘1강2중’] 李 “좋은 대통령”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을 하루 앞둔 26일 본격적인 표몰이에 나서며 바쁜 일정을 보냈다.그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이제 마음에 결심을 하게 되는 시점에 왔다.”면서 “박근혜 전 대표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해서 유행이 됐는데, 저는 참 ‘좋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잘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에 앞서 이 후보는 경기도 파주 1사단 수색대대를 방문, 장병들을 위로하고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인사말을 통해 이 후보는 “여러분이 전방에서 적과 싸우는데 우리는 후방에서 민망하게 말로 아군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군심’(軍心)잡기에도 나섰다. 이 자리에서 기자들의 ‘공식 선거전에 박 전 대표와 함께 유세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 후보는 “물론이다. 당연하다.”며 “원칙적으로 본인(박 전 대표)이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기대를 나타냈다. 이어 그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일류국가비전선포식에 참석, 한나라당의 대선 정책공약을 발표했다.‘BBK 의혹’에 대해서는 “상대는 유일하게 BBK 하나에 매달려 그것으로 성공하면 성공이고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이다.”며 “얼마 뒤 검찰 발표가 있을 텐데 그들이 그 뒤에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여유를 보였다. 오후에 이 후보는 서울 수유리 4·19기념탑을 방문, 헌화한 뒤 방명록에 “4·19정신 이어받아 정권교체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민주국가 잘사는 대한민국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어 넣었다.특히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묘를 참배하고 “이 사람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살린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27일 새벽 0시부터 득표활동에 나섰다. 첫 방문지는 동대문시장. 이 자리에서 그는 “새날이 밝았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사설] 대선 불확실성 줄일 法 보완 서둘러야

    올 대선판이 유난히 어지럽다. 후보등록일이 3주도 채 남지 않았지만, 범여권 후보 단일화와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 출마 여부에 따라 대진표가 확 달라질 상황이다. 심지어 유력 후보에 대한 테러설에, 이를 빌미로 한 ‘스페어(여분) 후보론’까지 제기되면서 선거구도의 불확실성이 심해졌다. 대선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도록 제도 보완을 서두를 때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등록 마감 5일 이후인 12월2일부터 정당추천 후보의 유고가 발생하면 해당 정당은 아예 후보없이 선거를 치러야 한다. 지난 3·4대 대선에서 민주당 신익희·조병옥 두 유력 후보가 잇달아 돌연사하자 자유당 이승만 후보가 거저 당선되다시피 했다. 선거민주주의로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민의는 결국 4·19혁명으로 분출됐다. 행여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지난 지방선거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피습 때처럼 정신이상자나 정치적 의도를 가진 측에 의한 테러 가능성 등을 완전 배제하긴 어렵지 않은가. 여야는 만에 하나 이런 사태의 발생에도 대비해 관련법을 고치는 등 제도 보완에 나서기 바란다. 당시 열린우리당 측이 나중에 석연찮은 이유로 파기하긴 했지만, 여야는 지난 7월 정치관계법특위 소위에서 여론조사 1·2위인 대선 후보가 사망하면 선거를 30일 연기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마침 한나라당이 선거연기법과 허위폭로금지법, 매니페스토선거법 등 관련 법안을 다시 다루려 한다니, 여야는 유불리를 떠나 선거민주주의를 착근시킨다는 차원에서 조속히 머리를 맞대야 하겠다.
  • [씨줄날줄] Mr. 쓴소리의 출마/이목희 논설위원

    조순형 의원이 그제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누구도 하기 힘든 얘기를 했다.“50년 전통 민주당의 정체성과 잃어버린 5년을 되찾기 위해 결심했다.”는 것이다. 조 의원이 정계에 입문한 시기는 1981년. 그럼에도 그는 이승만 정권 때 정통야당인 민주당을 거론할 자격은 있다. 당시 민주당의 거목 유석 조병옥 박사가 조 의원의 부친이기 때문이다. 조 의원이 지적한 ‘50년 정통성’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겨냥한 느낌을 준다.‘잃어버린 5년’은 친노(親盧) 세력과 함께 할 수 없음을 말한다. 조병옥 박사는 옛 민주당 구파를 이끌었다.DJ는 민주당 신파의 막내였다. 정통 민주당의 맥을 흔들며 굴곡의 역정을 보낸 DJ는 이제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라고 조 의원이 쓴소리를 던진 셈이다. 전후 맥락을 간파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조 의원 견제에 나섰다. 정세균 의장과 장영달 원내대표는 “4·19혁명 후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 정권이 신·구파로 갈려 다투는 바람에 5·16쿠데타를 불러왔다.”고 강조했다. 조 의원에게 범여권 대통합을 훼방놓는,‘적전(敵前) 분열주의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조 의원측 관계자는 “신·구파를 떠나 잡탕식 헤쳐모여가 옛 민주당의 정통성을 잇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조 의원의 형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은 생전에 풍류를 즐겼다. 조 전 부의장은 특히 DJ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으며 말년을 술로 보내기도 했다. 형과 달리 모범생인 조 의원이 통합민주당 독자경선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범여권 대통합을 역설하는 DJ와 다시 대척점에 섰다. 민주당 구파에 속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이미 ‘이명박 지지’를 표명해 구파의 맥을 이은 조 의원을 지원하기 힘들게 됐다. 조 의원은 통합민주당의 몇몇 인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개인 이미지로 고군분투해야 할 처지다. 조 의원은 대담한 쓴소리로 인상이 강하고 날카로워 보인다. 하지만 눈물 많고 여리며, 상처 잘 받는 내성적 성격이라고 지인들은 전한다. 그런 조 의원이 막강한 배경을 가진 전·현직 대통령에 도전장을 내민 모습이 드라마 야인시대의 한 장면 같아 흥미롭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이색거리 탐방] 강북구 ‘애국애족의 길’

    [이색거리 탐방] 강북구 ‘애국애족의 길’

    다른 자치구에선 찾아볼 수 없는 길이 강북구에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삼각산을 끼고 ‘ㄷ’자를 뒤집어놓은 듯한 총 4.9㎞ 도로가 그곳이다. 바로 ‘애국애족의 길’이다. 국운의 정기가 서린 명산으로 통하는 삼각산(북한산) 아래 이 길을 자녀와 함께 걸으면 선열들의 나라사랑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삼각산 아래로 태극기가 펄럭 18일 강북구에 따르면 삼각산이란 예로부터 백운봉(백운대), 인수봉, 국망봉(만경대)의 3개 봉우리를 일컫는다. 조선 태조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할 때 무학대사가 봉우리에 올라 ‘길지’임을 점지한 곳이다. 그러나 일제는 백운봉에 쇠말뚝을 박아 백두대간의 정기를 차단하려고 했다. 삼각산을 바라보며 ‘태극기 사랑길 (1)’이 있다. 강북구청에서 아카데미하우스까지 2.9㎞, 우이동 등산로 입구에서 도선사까지 0.9㎞의 길이다. 두 길에는 눈이 오거나 비오는 날만 빼고 매일 태극기가 걸려있다.300m 간격으로 312개 국기게양대를 설치하고 태극기를 펼쳐 걸었다. 이 길로 연 500만명 등산객들이 지난다. 게양된 태극기 한 장마다 담당자를 정해 변색·훼손된 태극기는 즉시 교체한다. 올해도 1260만원의 관리예산이 들지만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수유2동 삼성아파트 등은 태극기걸기 시범마을이다. 첫번째 길 중간쯤 ‘무궁화공원 (2)’이 자리잡고 있다. 부지 233㎡(70.48평)에 10여종의 토종 무궁화 150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공원 안에 간이휴게실도 있다. 공원을 지나면 ‘국립4·19민주묘지 (3)’가 나온다. 부지 8만 6837㎡(2만 6268평)에 4·19혁명의 희생자 281명의 영령이 잠들어 있다. 다목적광장, 연못, 기념관 등이 잘 정비돼 있다. ●곳곳에 나라사랑 선열의 체취 4·19묘지를 지나 올라가면 이준 열사 등 24명의 ‘순국선열 묘역 (4)’이 흩어져 있다. 묘역은 애국·애족·독립 등으로 구역을 나눠 탐방코스로 잘 정비돼 있다. 강북구에 공무원이나 공익근무요원이 새로 오면 반드시 이곳을 찾아 선열들 앞에서 나라와 공익을 위해 일하는 각오를 다진다. 우이동길을 따라가다 보면 ‘솔밭공원 (5)’이 나온다. 부지 3만 4955㎡(1만 573평)에 100년생 소나무 1000여 그루가 자생한다. 솔밭 주변은 고대로부터 기우제 등 나라의 제사 터로 알려졌다. 지금은 생태연못과 야외무대, 건강지압보도 등이 있다. 태극기나 나라사랑과 관련된 전시회, 사생대회 등이 자주 열린다. 우이동 등산로 입구에서 산으로 오르면 ‘봉황각 (6)’을 만난다. 손병희 선생 등이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젊은이들을 합숙훈련시키던 곳이다.3·1운동의 민족대표 33명 가운데 15명이 이곳에서 배출됐다. 봉황각이라는 현판 글씨는 서울신문 초대사장을 지낸 민족언론인 오세창이 명필들의 필체를 모사했다. 더 오르면 ‘도선사 (7)’가 나온다. 신라말 풍수설의 대가 도선국사가 세운 절로 ‘천년후 불법과 국운을 일으킬 곳’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이 때문에 일제가 절에 불을 질렀다. 이밖에도 백운봉 정상에는 독립운동가 정재용 선생이 3·1운동의 역사성을 후대에 전하려고 새긴 암각문이 있다. 수유동 화계사는 조선어학회 주관으로 최현배 등 국문학자 9명이 숙식을 하면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어 공포한 곳이기도 하다. ●뒤늦은 유적 정비 아쉬움 삼각산은 옛 조상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1915년 일제 조선총독부는 삼각산을 북한산으로 바꾸는 민족정기 말살정책을 폈다. 이를 지금도 공식명으로 표기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김현풍 강북구청장은 정부를 상대로 삼각산 명칭복원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 유적지 표지판이 턱없이 부족하고 안내에도 소홀하다는 지적에 따라 정비 및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협력을 대연정 가능한 수준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19일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협력의 수준을 연정, 대연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7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통해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고, 관용과 책임의 정치문화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타협이 되지 않는 일은 규칙으로 승부하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면서 “승자에게 확실한 권한을 부여하여 책임있게 일하게 하고 선거에서는 확실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반대를 용납하지 않고, 자유와 양심을 짓밟고, 마침내 언론을 망치고, 사법권을 망치고, 고문·투옥·살인마저 마다하지 않았던, 잔인했던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을 이어왔다.”면서 “오랜 세월을 싸운 끝에 93년이 되어서야 4·19는 ‘혁명’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으나 이제 다시 그런 수모의 역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노 대통령이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기념식과는 별도로 참배만 해왔다.”면서 “관행으로만 알고 그렇게 해왔는데 지난해 유가족으로부터 참석 요청을 받고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했다.”고 양해를 구했다.박찬구기자ckpark@seoul.co.kr
  • 4·19 부상자 2명 기념일 2일전 숨져

    4·19혁명에 참가했다가 총상을 입고 후유증에 시달려온 유상석(76)씨와 박명용(68)씨가 혁명 47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지난 17일 나란히 숨을 거둬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전남대 졸업 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유씨는 4·19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가 집회 도중 서울 성북경찰서 근처에서 왼팔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유씨는 9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이듬해 1월에 퇴원했지만 제대로 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등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고통 받았다. 여동생 유사승(59)씨는 “3선개헌 반대 집회 때는 직접 만든 현수막을 들고 김포공항까지 가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면서 부상 후에도 반독재운동을 활발하게 벌였다고 전했다. 사망 전 유씨는 2000년부터 뇌졸중과 치매로 쓰러져 7년 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4·19 당시 21세였던 박명용씨는 더 힘든 세월을 보냈다. 다리 부위에 총탄을 맞아 양쪽 대퇴부를 모두 절단해야 했던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 40여년을 병원에서 보낸 끝에 유씨와 같은 날 숨을 거뒀다.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김병오 ‘6월 민주항쟁 20주년 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 등은 18일 보훈병원을 찾아 이들을 위문할 예정이었으나, 방문 하루 전에 사망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천정배의원 25일만에 단식중단

    ‘한·미 자유무역헙정(FTA) 반대’ 단식농성을 계속해온 천정배 의원이 19일부로 25일 만에 단식농성을 중단한다. 천 의원측은 18일 “천 의원은 4·19혁명 47주년을 맞아 수유리 4·19 국립묘지에 참배한 뒤 단식을 중단할 계획”이라며 “더욱 비장한 각오로 한·미 FTA 무효화 투쟁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4·19유공 건국포장 받아

    전만길(65) 전 서울신문 사장이 4·19 유공자들에게 주어지는 건국포장을 받는다. 전 전 사장은 광주 조선대 부속고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60년 4월 광주 고교생들의 시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 포상을 받게 됐다. 포장 전달식은 19일 오전 서울 평동 4·19혁명 기념관에서 열린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4·19 유공자 71명 포상

    박실 전 국회사무총장 등 4·19 유공자 71명에게 정부 포상이 수여된다.국가보훈처는 4·19혁명 47주년을 맞아 당시 부상을 입거나 주도적 역할을 한 공로자들에게 건국포장을 서훈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포상자에는 박 전 사무총장 외에도 마산 3·15의거 당시 마산여고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한 고(故) 김미령씨와 4·19 시위 당시 대학생으로 부정선거 규탄연설을 하다 부상을 당한 오석보 전 원자력재단 전무이사 등이 포함됐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기고] 중용과 통합,임시정부에서 배우자/박유철 국가보훈처장

    유대인 시인 사뮈엘 울먼은 ‘청춘’이라는 시에서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었을 때 비로소 늙는 것”이라며 인간의 꿈과 정신의 가치를 찬미했다. 윤봉길 의사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올리는 서신에서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산다. 이상은 무엇이냐? 목적의 성공자이다.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이상의 꽃이 피고 목적의 열매가 맺기를 자신하여 길을 떠나간다는 결심을 하였다.”라고 썼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태울 수 있는 열정을 다짐한 것이다. 이상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88년 전 일제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선열들은 자주독립이라는 이상을 품고 불굴의 의지로 투혼을 불태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1919년 3·1운동으로 표출된 온 겨레의 독립을 향한 여망을 모아 4월13일 중국 상하이에 세워졌다. 그 후 임시정부는 일제의 탄압을 받아 항저우, 창사, 충칭 등으로 청사를 수차례 이전해야 하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런 모진 시련 속에서도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일제 폭압에 신음하는 겨레의 가슴에 뜨거운 조국애를 심어 주었으며, 민족혼의 산실로서 대한인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떨쳤다. 또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이끌어 우리 민족의 자존의지와 긍지를 되살렸다. 나아가 일제강점 이후 끊임없이 전개돼온 무장투쟁의 맥을 이어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고 다양한 항일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다해 왔다. 임시정부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임정이 비록 망명지에 수립되었으나 우리나라 최초로 등장한 민주공화제로 대한민국 민주헌정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 헌법에도 잘 반영돼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27년이란 오랜 기간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일이었으며, 국제외교를 강화하여 열강세력이 1943년 카이로선언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보장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임시정부의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의 정신은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으로 계승되어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고 있다. 또한 임시정부에서 표방한 민주, 정의, 독립정신은 6·25전쟁과 4·19혁명,5·18민주화운동 등 광복 후 우리 역사의 고비마다 국난 극복과 민주 발전을 위한 시대정신으로 표출되었다. 임시정부의 또 하나의 의의는 20여년간 통합을 추구하던 임정의 좌·우 양 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는 것이다.1942년 임시정부는 좌·우합작이자 통합정부를 이루었다. 독립이라는 최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좌·우세력이 정치적으로는 자유를, 경제적으로는 평등의 요소를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이념적인 격차를 줄여 신의를 쌓아간 과정과 성과는 역사적 교훈이 된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다. 오늘 우리가 88년 전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시정부 헌장에는 “남녀노소와 모든 종파가 일치단결하여 정의와 인도가 지배하는 나라를 세우자.”는 말이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적 갈등을 넘어 국민통합으로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 4·19혁명 기념 추모식·등반대회

    동국대(총장 오영교)는 13일 오전 9시 국립 4·19묘지와 북한산에서 ‘제47주년 4·19혁명 기념 추모식 및 제38회 동국인 등산대회’를 개최한다.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2)

    ‘사랑이 깊으면 얼마나 깊어/여섯 자 이내 몸이 헤어나지 못하나/하루의 품삯은 열두 냥 금/우리님 보는 데는 스무 냥이라 (에헤이 엥헤야 에헤이 엥헤야) 네가 좋으면 내가 싫고 내가 좋으면 네가 싫고/너 좋고 나 좋으면 에헤이 엥헤야 에헤이 엥헤야’-‘열두 냥짜리 인생’(김희창 채보, 개사. 블루벨즈 노래.1963년) 당시 60년대 서민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 부문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던 블루벨즈의 대표곡 중 하나 ‘열두 냥짜리 인생’. 이 드라마가 영화로도 만들어져 국민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그 당시는 속칭 ‘보릿고개’ 시절이었다. 나 역시 중학교 입시를 거친 세대라 집안 형편에 따라 한 교실 안에서도 ‘진학반’ ‘비진학반’으로 나눠 공부했던 서글픈 기억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어 이러한 노래에 쉽게 공감하는지 모른다. 그렇듯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혁명으로 막이 올라 5·16으로 이어지며 시작된 우리의 1960년대는 아직 ‘보릿고개’였다. 느닷없이 적극 장려된 해외 이민으로 ‘브라질 이민선’을 타는 사람도 늘어나고 전 국민의 환호 속에 월남 전선으로 떠나던 맹호·청룡·백마부대 용사, 그 젊은이들. 당시 유년시절을 보내던 이들은 ‘파월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되는 위문편지 숙제 속에 묻혀 있기도 했고,‘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며 아침저녁으로 스피커를 통해 학교 운동장마다, 동네마다 가득 울려 퍼지던 이 노래와 더불어 당시 구호,‘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다’가 어느새 ‘100만달러 수출 탑을 쌓아올린’ 건설한국을 자랑스러워했다. 이 때 들었던 새마을노래, 그 주인공 또한 블루벨즈였다. 우리나라 가요 최초의 쿼텟, 블루벨즈는 멤버들 개인이 군 입대 등으로 결원이 생기면 쇼무대 등을 위해 임시 멤버로 강수향, 곽규호씨 등으로 대체해 활동했지만 이들 대체멤버가 음반 취입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다. 그러나 1968년, 창단 멤버 현양씨가 정식으로 탈퇴하자 KBS전속가수 7기생인 장세용씨가 가세, 후기 블루벨즈를 이뤄 활동한다. 아울러 ‘블루벨즈’는 또한 스코틀랜드 지방에 서식하는 ‘젊음을 상징하는 꽃’ 이름이기도 하다. 이 꽃말처럼 이들의 노래는 당시 다른 노래들에 비해 비교적 젊다. 소월 시에 김광수씨가 곡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를 비롯,‘부두(장세용 작사, 곡)’ 등이 그렇듯. 아울러 당시에는 유행가 일부를 ‘소리의 공해’라 치부하기도 했고 때문에 건전가요 보급 역시 일종의 국가적 시책이기도 했는데, 특히 ‘싱어롱 Y’의 선구자 전석환씨에 의해 주도되었던 ‘건전가요 부르기 운동’의 최전방에 섰던 첨병 또한 블루벨즈로 ‘정든 그 노래’,‘그리운 고향’,‘냉면’ 등을 이때 발표한다. 블루벨즈, 이들의 노래엔 늘 생동감이 느껴진다. 네 명의 목소리가 합쳐져 같은 화음을 구사하고 있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약간씩 미묘한 차이도 감지되는 것이다. 완벽하고 정확한 멜로디로서가 아니라 절묘하게 이탈된 곡선이 이들 화음에 들어 있어 노래가 살아 있다고도 느껴진다. 특히 ‘잔치잔치 벌렸네, 무슨 잔치 벌렸나’로 시작되는 ‘즐거운 잔칫날(손석우 작사, 곡)’과 ‘고생도 달가와(최요안 작사, 손석우 작곡)’에서의 웃음소리를 표현한 부분 등에서 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화음의 이탈이, 그 흐름을 이어가는 묘한 곡선에서 이들 넷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감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멜로디 속에 함께하는 또 하나의 다른 흐름,‘부두’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노래를 휘감는 멋진 휘파람소리 또한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1987년에 재결성, 기념 음반 ‘블루벨즈/내 인생 후회는 없지만’을 발표하는데, 이때는 오리지널 멤버인 박일호·서양훈·김천악·현양씨가 함께했다. 이들 멤버 모두 52세 때였다. 현재 리더 박일호씨는 한국연예협회 이사장을 거쳐 한국대중문화원장으로 활동 중이고, 서양훈씨는 미국 LA복음방송국의 본부장으로 재임 중이다. 장세용씨는 적십자 봉사활동을 그리고 대체 멤버 곽규호씨는 송파실버악단에서 각각 활동하고 있고, 김천악·현양·강수향씨는 타계했다. 1960∼70년대, 궁핍한 시대에 희망을 안겨준 ‘푸른빛의 종소리’ 블루벨즈, 이들의 멋진 하모니를 통해 노래는 지쳐있는 삶, 혹은 인생의 응원가이며, 그로부터 몇 십년이 지난 지금쯤엔 옛 노래가 바로 마음의 고향일 수 있음을 실감한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우이령 진달래길 달려요”

    “우이령 진달래길 달려요”

    4·19혁명을 기념하는 국제산악마라톤 대회가 삼각산에서 열린다. 진달래가 만개한 삼각산 우이령의 봄을 만끽할 수 있는 호기다. 특히 마라톤 코스인 삼각산 우이령은 40년째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된 곳이어서 삼각산의 속살이 첫 공개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자치구에서 외국인도 참가하는 산악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특이하다. ●올해부터 국제대회로 확대 ‘제2회 4·19기념 삼각산 우이령 마라톤 대회’는 4월22일 오전 9시30분에 출발 신호를 울린다.2년 전에 처음 대회를 열었으나 올해부터 국제대회로 확대해 참가자 규모도 두배로 늘렸다. 코스는 덕성여대 운동장을 출발해 가오사거리∼삼각산문화예술회관∼국립 4·19묘지∼교통광장∼우이령∼유격교∼우이령∼전경대∼교통광장을 거쳐 덕성여대로 돌아오도록 했다. 종목은 코스를 완주하는 하프(21.0975㎞)와 10㎞,4·19㎞ 등 3가지. 가파르지는 않더라도 우이령 고개까지 뛰어 오르기 때문에 일반 마라톤과 다른 색다른 묘미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종목별, 남녀별 입상자에게는 트로피와 함께 5만∼30만원의 상금을 준다. 참가자 전원에게는 기념 티셔츠, 물통 등을 나눠주고 추첨을 통해 자전거 10대도 준다. 접수할 때에도 종목에 관계없이 선착순으로 고급양말 1000켤레, 단체 참가자에게는 인원이 많은 순에 따라 순금돼지 10개를 준다. 참가신청은 오는 25일까지 대회 홈페이지(www.gangbukmarathon.com)로 받는다. 참자자는 대회 진행을 위해 3000명을 선착순으로 뽑는다. 참가비는 하프와 10㎞ 코스는 3만원,4.19㎞는 1만원이다. 강북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베이징 시민들도 참가한다. ●40년 만에 공개되는 우이령 우이령은 다른 이름으로 ‘소귀고개’다. 고개에서 가까이 보이는 우이암의 우뚝 선 흰 바위가 소의 귀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우이령길은 서울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를 잇는 6.8㎞ 비포장길. 이 길은 북한산 국립공원의 남쪽 삼각산과 북쪽 도봉산을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을 따라 남으로 내려오던 한반도의 등허리가 분수령에서 말을 갈아타고 한북정맥을 치달리며 대성산, 광덕산을 비켜 세우고 도봉산을 지나 북한산으로 내달리기 위해 쉬어가는 곳이 우이령이다.’(국정넷포터 이정근의 글) 예전에는 한양의 혜화문∼아리랑고개∼양주∼연천∼평강∼함흥으로 이어지던 지름길이었으나 1968년 1·21사태 때 김신조 등 북한 특수군이 청와대 침투로로 이용하면서 폐쇄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이 곳은 군부대와 전경대가 들어섰다. 곳곳에 군 시설이 자리잡은 덕분에 자연환경이 잘 보전됐다. 우이령길에 접어들면 북쪽으로 다섯 개의 봉우리(오봉)가 눈에 들어온다. 군 유격장의 하강코스에 고인 물이 마치 연못을 방불케 한다. 흔히 보기 어려운 토종식물인 산개나리, 끈끈이주걱, 은방울꽃, 용담, 동의나물 등도 많이 자란다. 예부터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 철쭉이 만발하는 곳이다. 대회를 주최하는 강북구 김현풍 구청장은 “봄 기운이 완연한 때에 역사적인 코스에서 자연을 느끼며 이색적인 산악마라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재계 ‘新 486’을 아시나요

    재계에 ‘신(新) 486’ 바람이 거세다. 신486이란 1948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60살인 사람을 일컫는다.‘386’에 빗댄 신조어다. ‘월간 CEO’가 7일 국내 5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분석한 결과, 신486은 43명이었다. 허창수 GS그룹·허동섭 한일시멘트·홍영철 고려제강·설원봉 대한제당·이동욱 무림제지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국전쟁 직전에 태어나 4·19혁명(13세),5·16군사쿠데타(14세),88서울올림픽(41세), 외환위기(50세), 한·일 월드컵(55세) 등을 두루 겪으며 경제발전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세대로 응축된다. 이기태 삼성전자·강유식 ㈜LG·남용 LG전자·김대중 두산중공업·손관호 SK건설·유재홍 SKC&C 부회장 등도 신486이다. 금융권에서는 신상훈 신한은행장, 박해춘 LG카드 사장, 김태언 제일화재 대표이사 등이 눈에 띈다. 건설업계에서는 김갑렬 GS건설·박승구 동양건설산업·윤문기 신성건설 사장 등이 대표주자다.GS그룹 허 회장과 GS건설 김 사장은 나이·고등학교(경남고)·대학교(고려대)·회사(GS)까지도 같아 시선을 끈다. 500대 기업 CEO 510명 가운데 60세 이상은 절반(50.7%)이나 됐다. 일선 기업현장에서는 젊은 기업가보다 여전히 연륜과 경험이 풍부한 기업가가 중용되고 있음을 말해준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4·19묘지 앞에 무궁화 공원 조성

    강북구가 수유동 4·19국립묘지 앞에 무궁화공원을 만든다. 4·19혁명 때 순국선열의 정신을 받들기 위해 묘지 입구에 나라의 꽃을 심기로 한 것이다. 유달리 ‘나라 사랑’을 강조하는 김현풍 구청장의 의지가 담겼다. 무궁화공원은 수유동 576번지 4·19묘지 입구의 오른쪽에 233㎡(70.48평)의 작은 규모로 조성돼 오는 6월 주민에게 공개된다. 공원에는 산책로를 따라 10여종에 이르는 토종 무궁화 1500그루를 심는다. 무궁화 종류마다 꽃 소개와 생육조건, 꽃말 등을 안내하는 푯말을 세운다.높이 2∼3m의 무궁화 꽃밭에는 나무의자도 설치하기로 했다. 원래 공원조성 부지에는 무허가 판잣집 한 채가 있었으나 2004년 집에 불이 나면서 주변이 흉물스럽게 방치됐다.“국립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이 보기에 흉하고 4·19정신에도 어긋난다.”는 김 구청장의 뜻에 따라 2005년에 공사계획을 세웠다. 빠듯한 구 살림에도 판잣집 거주자에게 1100만원 건물보상을 해주고 지난해 말까지 기반 공사를 마쳤다. 예산 3400만원을 들여 옹벽을 쌓고 진입로도 만들었다.올해 3000만원을 추가로 편성해 다음달부터 식재 작업에 들어간다. 무궁화공원은 강원도 홍천에도 있고, 청와대 입구에도 무궁화 꽃밭이 있다. 그러나 진해, 경주, 여의도 등에 만발한 일본 꽃인 벗꽃만큼 전국에 많지 않은 실정이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아름다운 화해’

    “우리와 상의 한 번도 없이 5차 학술회의까지 끝낸 줄 알고 화를 냈네요.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강재식 4·19민주혁명회 회장) “정리되지 않은 사안을 유출시킨 건 우리쪽 실수였습니다. 일시나마 오해를 불러일으켜 죄송합니다.”(박효종 교과서포럼 상임공동대표) 지난 12일 서울대 인근 한 다방에 모여앉은 4·19혁명단체 간부들과 뉴라이트(신 우익) 단체로 알려진 교과서포럼 소속 교수들은 서로에게 고개를 숙였다.4·19혁명 성격을 두고 지난달 30일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지만 의외로 ‘4·19는 자유민주주의 혁명’이라는 같은 생각을 확인했다. 오해는 불과 사흘만에 협력으로 변했다. 이들은 14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심포지엄 무산 사태에 대해 화해했으며 올바른 역사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화해는 이념·계층·지역간 대립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최근의 모습들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화해’였다. 발표에 앞서 이들은 지난 12일부터 3차례 정도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교수들의 멱살까지 잡았던 4·19민주혁명회측. 강재식 회장은 “4·19 정신을 기리는 공적 단체인 우리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4·19 관련 교과서포럼을 5차까지 끝낸 줄 알고 화를 냈었다. 그런데 심포지엄 무산 이후 언론을 통해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만나서 오해를 풀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교과서포럼은 이미 5차례의 학술회의를 가졌으나 4·19 등과 관련한 논의는 없었다. 교과서포럼 박효종 대표도 “오해가 있었다고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 사회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4·19단체나 우리나 의사소통의 부재로 인해 오해를 했던 부분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사상과 이념에 차이가 있어도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교류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대안교과서에 4·19혁명으로 이들은 우선 4·19를 ‘혁명’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이뤘다. 교과서포럼은 “4·19민주혁명 이념을 존중해 대안교과서에는 4·19를 ‘혁명’으로 표기할 것”이라면서 “5·16,5·18 등 대안교과서에 실릴 내용은 포럼 안팎에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쳐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 발전의 공과는 4·19혁명측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회장은 “산업 발전에 있어 박 전 대통령의 공과는 인정하자는 여담을 나눴다.”고 말했다. 이들은 화해 협력의 일환으로 앞으로 열릴 관련 세미나에서도 의견을 나누기로 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뉴라이트교과서 통과 힘들듯”

    “뉴라이트교과서 통과 힘들듯”

    교과서포럼이 지난 29일 대안 교과서에 대한 검정 승인을 교육부에 신청하겠다고 밝히면서 승인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 적용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상의 검정 기준으로 볼 때 현재로서는 승인받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정 교과서는 모든 용어를 통일하도록 기준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안 교과서는 5·16을 ‘5·16혁명’으로 표기했지만 현재 통일된 용어는 ‘5·16군사정변’이다.4·19도 ‘4·19학생운동’으로 표기하고 있어 현재의 ‘4·19혁명’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검정을 받으려면 용어부터 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검정기준’과 ‘집필상의 유의점’도 지켜야만 한다. 교육부가 내년 2월 고시 예정인 ‘제8차 교육과정’(가칭)의 검정 기준이나 집필상의 유의점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러나 2001년 만든 7차 교육과정에 따르면 공통 기준과 교과서별 기준으로 나뉜다. 공통기준은 4개 영역,5개 항목에서 유·무로 판정하도록 돼 있다. 위원회의 합의를 거쳐 5개 항목 가운데 하나라도 문제가 있다고 판정하면 승인받을 수 없다. 교과서별 기준을 보면 한국근현대사의 경우 6개 영역,20개 항목에서 A,B,C로 평가한다. 이 가운데 C가 2개 이상이면 통과될 수 없다. 교과서포럼이 대안 교과서를 검정기준에 맞춰 신청한다면 4개의 항목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공통기준에서는 헌법정신과의 일치 영역에서 2개 항목, 교과서별 기준에서 내용 선정 및 조직 영역에서 2개 항목이다. 교과서 검정 절차를 보면 교육부는 내년 2월 교육과정 개편 고시에 이어 교과서가 실제 쓰이기 1년 6개월 전인 2010년 9월 이전에 교과서 검정 공고를 해야 한다. 이때 교과서별 검정기준과 집필상의 유의점을 함께 공고하며, 출판사들은 이 기준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부에 검정 신청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학계와 교사 등 다양한 시각을 가진 각계 전문가 10명으로 교과서 검정심사위원회를 구성하며, 위원회의 독자적인 토론을 거쳐 합의제 방식으로 승인 여부를 가린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관계자는 “현재로선 대안 교과서가 통일된 용어를 쓰지 않고 있어 승인될 가능성이 없다.”면서 “그러나 용어를 통일된 것으로 고칠 경우 역사 해석 부분에 대해서는 검정심사위원회에서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4·19회원과 몸싸움… 참석교수등 4명부상

    군사정권과 유신체제를 긍정 평가하는 내용의 역사교과서를 공개해 논란을 빚었던 ‘교과서포럼’의 학술 모임이 반대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30일 오후 2시20분 서울 신림동 서울대 사범대 교육정보관 101호. 신우익(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이 마련한 ‘제6차 심포지엄’이 열리려던 참이었다. 전날 공개한 고등학교 2학년 선택과목인 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에 대한 공청회 자리였다. 회의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30여명이 행사장 뒷문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4·19혁명회와 공로자회, 유족회 소속 회원들이었다.5∼6명은 “죽여, 너희가 무슨 교수냐.”고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뒤엎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토론자의 멱살을 잡으면서 몸싸움이 시작됐다. 연단에 있던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와 서울대 안병직 명예교수, 이영훈 교수 등 발표자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발길질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안 교수 등 4명이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었지만 현장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몸을 피했다. 유족회 등 회원들은 즉석에서 ‘4·19혁명 부정을 규탄한다.4·19혁명정신을 계승하는 헌법을 부정하는 뉴라이트 교수들은 사죄하라.’는 내용의 선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강재식 4·19민주혁명회장은 “4·19를 학생운동이라고 하면 안 된다. 교과서포럼이 해체될 때까지 서울대로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 명예교수는 경비실에 피해 있다가 시위대의 항의에 “너만 4·19했냐. 나도 다 했다.”며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어 기자들에게 “학자는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가 있는데 저 사람들은 순무식쟁이들”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한편 자유주의연대와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등 뉴라이트 단체들은 이날 오후 ‘교과서포럼 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내고 “교과서포럼의 시안(대안 교과서)은 기존 교과서의 좌편향을 바로잡으려다 역편향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면서 “소수자들의 사견이 충분한 내부 의견수렴 과정 없이 뉴라이트 전체의 입장인 듯 유포됐다.”고 해명했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씨줄날줄] 전직 대통령/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대한민국 건국 이래 대통령 직에 오른 분은 모두 9명, 이 가운데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을 뺀 전직 대통령은 모두 여덟 분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민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 ‘전직’은 아직 없는 듯하다. 한때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개헌을 거듭하며 장기집권하다 4·19혁명으로 쫓겨났다. 그는 이국땅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타계한 뒤에야 국민의 용서를 받아 환국했다. 내각책임제 하의 유일한 대통령인 윤보선은 재직시 장면 총리와 끝없는 권력투쟁을 벌였다. 그러다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올 것이 왔다.”고 추인했다. 그는 뒷날 박정희를 상대로 반독재투쟁을 벌이지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협력하는 등 불투명한 정치 행각으로 빈축을 샀다. 윤보선을 뒤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업적에 관한 평가가 가장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이다. 경제성장은 공(功)으로 꼽히는 반면 장기집권과 독재적 통치는 어쩔 수 없는 과(過)의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종말과 그에 따른 시국 혼란을 틈타 총칼로 집권한 전두환, 그리고 전두환 세력의 2인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훗날 내란죄로 1심에서 사형 등을 선고받았다. 잇단 감형과 사면으로 자택에서 칩거한 지 오래됐지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노태우의 후임인 YS(김영삼 대통령)는 ‘IMF 사태’를 불러들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직전 대통령인 DJ(김대중)는 필생의 과업인 ‘햇볕정책’이 최근 도마에 오르면서 새삼 시련을 맞고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사이의 혼란기에 잠시 대권을 계승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어제 아침 별세했다. 그는 박정희의 종말을 부른 ‘10·26사태’, 전두환의 권력장악 계기가 된 ‘12·12사태’, 그리고 국민의 숭고한 피로 얼룩진 ‘5·18 광주’를 권력의 최상부에서 겪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하야한 뒤로는 증언을 일체 거부한 채 세상을 떴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이 없는 현실은 국민의 비극이다. 재직 시에 존경받고, 퇴직 후에도 길이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언제쯤이나 우리 역사에 등장할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서울대 개교 60주년] 6·25때 부산 피란… 91년에 첫 직선총장

    [서울대 개교 60주년] 6·25때 부산 피란… 91년에 첫 직선총장

    서울대는 1946년 7월 문교부가 내놓은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에 따라 출범했다. 서울 동숭동을 중심으로 서울시내 곳곳의 캠퍼스에서 초기 30년을 보낸 뒤 1975년 현재의 관악캠퍼스로 이전했다. 1924년 설립된 경성제대를 모체로 동숭동의 문리과대, 법대, 예술대를 비롯해 사범대, 상대, 공대, 의대, 치대, 농림과대 등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던 9개 단과대로 출발했다. 설립 과정에서 일부 교수와 학생들은 미 군정의 통치, 대학자율권 침해 등을 이유로 거세게 저항, 전국 400개 학교가 동맹휴업하는 이른바 ‘국대안 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50년에 터진 6·25전쟁을 피해 51년부터 전쟁이 끝난 53년까지는 부산에 내려가 있어야 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학교이름을 ‘국립서울대학교’에서 ‘서울대학교’로 바꿨다. 4·19혁명으로 교수협의회가 결성되고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학생회를 조직하기도 했으나 5·16 쿠데타로 강력한 통제를 받게 됐다. 이때 서울대는 동숭동을 중심으로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이 밑바탕에 깔린 서클, 야유회, 미팅 등 독특한 대학가 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유신시대의 긴급조치와 광주사태 등 부당한 권력의 억압을 보다 못한 많은 학생들이 강의실을 뛰쳐나와 민주화를 외쳤다.87년 6월 항쟁 이후 학내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대학 자율권이 신장돼 91년 첫 직선총장이 선출되기도 했다. 90년대부터 사회적으로는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힌 특정 집단의 권력화를 우려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우려의 중심에 서울대가 있었다.‘서울대 폐지론’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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