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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에 맞선 홍콩필 평화 바이러스

    코로나에 맞선 홍콩필 평화 바이러스

    베토벤 교향곡·화합 메시지 전할 예정“한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어입니다. 우리는 흔들림 없이 투어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우려로 주요 내한공연과 각종 공연이 속속 취소·연기되는 가운데 한국 클래식 팬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베네딕트 포어 홍콩필하모닉 대표는 최근 이메일을 통해 다음달 10~13일로 예정된 한국 공연 진행 의지를 재차 밝혔다. 신종 코로나가 잦아들지 않는 터라 ‘홍콩필도 내한을 취소할 수 있다’는 전망 속에 나온 발표다. 그는 이번 동아시아 투어에서 중국 본토가 제외되는 사실을 강조하며 공연 추진을 알리는 한편 “중국 내 현재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어서 이런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필은 아시아 단체로는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의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의 ‘2019 올해의 오케스트라’로 선정됐다. 이번 공연에선 세계적 지휘자 야프 판즈베던의 지휘로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 전쟁 속 희망을 향한 외침과도 같은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제5번 등을 연주한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홍콩 사태를 반영하는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도 전할 예정이다. 15년 만에 내한공연이 성사된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도 예정대로 한국을 찾는다. 1980년 제10회 쇼팽 콩쿠르에서 포고렐리치가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심사위원장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일화는 그를 단번에 세계 클래식 무대의 중심에 올려놨다. 2005년 10월 서울 예술의전당 연주회 이후 한국을 찾지 않았던 그는 오는 19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른다. 공연 기획사 빈체로와 롯데콘서트 측은 “현재까지 공연 취소 및 연기 논의는 없었고,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국 클래식 팬들이 오랜 기간 기다려 온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지난 6일로 예정된 내한공연을 하지 못했다. 139년 역사의 보스턴 심포니는 1960년에도 한국에 올 계획이었지만 공연 2주 전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일정을 취소했다. 결국 보스턴 심포니는 세계 정상급 악단 중 유일하게 내한공연이 없는 단체로 남았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文 “부산형 일자리, 어려움 겪는 경제에 큰 힘 주는 기쁜 소식”

    文 “부산형 일자리, 어려움 겪는 경제에 큰 힘 주는 기쁜 소식”

    총선 격전지 ‘PK 민심 끌어안기’ 분석도문재인 대통령이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비상 상황 속에 있지만, 경제 활력을 지키고 키우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부산광역시청에서 열린 ‘부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에 참석해 축사에서 “부산에서 시작된 경제활력의 기운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상생도약’을 할 수 있도록 힘차게 뛰겠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달 20일 신종 코로나 사태가 국내에서 본격화한 뒤 문 대통령의 첫 외부 경제일정이다. 이번 사태가 기업·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정부의 경제활력 행보가 멈춰선 안 된다는 문 대통령의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부산형 일자리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코렌스EM과 20여개 협력업체가 강서구 국제산업물류도시에 입주, 2031년까지 총 7600억원을 투자해 43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광주형 일자리 이후 7번째 지역 상생형 모델이다. 문 대통령은 “부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은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에 큰 힘을 주는 매우 기쁜 소식”이라며 “노사 상생을 넘어 원청·하청 간 상생으로 진화했다는 게 자랑”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부산 노사민정이 한 걸음씩 양보해, 국제산업물류도시는 세계 최고의 전기차 부품생산지로 도약할 것”이라며 “부산은 반드시 대한민국 경제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통령의 이날 방문은 21대 총선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부산·경남(PK) 지역 민심 끌어안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부산은 일제강점기 때 노동착취에 저항했고 4·19혁명, 부마항쟁, 6월항쟁 주역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며 “부산의 꿈은 대한민국의 꿈”이라고도 했다. 야구팬들의 ‘부산갈매기’ 열창, 부산국제영화제 등 지역 민심에 호소하는 언급도 했다. 부산시는 신종 코로나 대응을 위해 행사장 전 출입구에 발열감지기를 설치하고 방역요원, 손소독제·마스크를 배치했다. 내빈 2명의 체온이 37도가 넘는 것으로 발열감지기에 나타나 이들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방역 요원들은 이들을 다른 참석자들과 분리한 뒤 고막 체온을 재고 역학조사서를 쓰도록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고전과 창신이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사

    고전과 창신이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사

    내 기억에 이근배 선생은 신춘문예 다관왕으로 가장 선명하다. 신춘문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문청들의 최고 로망이다. 선생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따라다니는 이 화려한 이력은, 한국문학사 전체에서 한 천재 시인의 탄생을 예고한 전무후무한 기록임에 틀림없다.●천재 시인의 탄생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벽’으로 당선된 1961년 경향신문 시조 ‘묘비명’으로 2관왕에 올랐다. 이듬해 동아일보(시조 ‘보신각종’)와 조선일보(동시 ‘달맞이꽃’), 1964년엔 한국일보(시 ‘북위선’) 신춘문예에 줄줄이 당선됐다. 다른 신인상까지 살피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불어난다. 선생은 약관의 나이인 1960년 3월에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를 냈다. 표지는 빨간 빛깔이고 속표지에는 스무 살 ‘청년 이근배’의 사진이 수줍게 들어 있다. 1960년 3월 25일 출간이니까 4·19혁명 한 달 전쯤이다. 서문은 미당 서정주가 썼는데 은사로서 제자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있다. “경자년(庚子年) 3월 3일”에 썼으니 미당 서문도 곧 회갑을 맞는 셈이다. 이근배 선생은 백지를 꺼내더니 붓펜으로 멋있게 ‘回榜宴’이라고 썼다. 회방연이란 예전에 과거에 급제한 지 예순 돌을 기념하는 잔치를 이르던 말인데, 면앙정 송순이 회방연을 치렀다고 한다. 말하자면 올해는 첫 시집이, 내년은 신춘문예 등단이 회방연을 맞는 셈이다. 선생은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으니 올해 여든하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열정적인 활동으로, 누구보다도 정확한 기억으로, 내내 자신이 걸어온 한국문학의 숲길을 풍요롭게 열어 보여 주었다. ●이근배 시의 뿌리, 아버지 이근배 선생에게 아픈 가족사가 있었고 그것이 선생 시의 원형이 됐다는 것은 알 만한 분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았던 아버지에 대해 깊은 자랑과 연민과 원망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다. 김종길 시인은 “일제강점기부터 ‘사상가’였던 부친에 대한 이 시인의 ‘아버지 콤플렉스’가 그로 하여금 조국 분단의 비극을 유난히 뼈저리게 겪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선생은 최근에 그 ‘사상가’ 아버지를 독립운동가 유공자로 신청해 놓았다. “할아버지는 유학자셨고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셨어요.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는 사회주의 계열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께는 독립운동 근거 자료가 워낙 많아 인정받으실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신청을 겨우 했으니, 그동안 자식 노릇 제대로 못했던 거지요.” 소년 근배에게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나라 찾는 일 하겠다고/감옥을 드나들더니 광복이 되어서도/집에는 못 들어오는”(‘자화상’) 분이셨다. 선생은 자신의 ‘자화상’을 전문 암송하면서 탄복할 만한 기억력을 다시 보였다. 당연히 어머니는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잠 못 드는 평생”(‘냉이꽃’)을 보내셨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나는 대로 이근배 선생과 가까웠던 세 분을 여쭈었다. 공초 오상순, 미당 서정주, 무산 조오현이다. 두 분 스승에 대한 애착과 오현 스님에 대한 애틋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공초는 무장무애, 미당은 천의무봉, 오현은 능소능대였어요. 공초 선생은 제게 정말 많은 사랑을 주셨어요. 그분이 남기신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와 ‘자유가 나를 구속하는구나’ 하는 말씀은 지금도 ‘우주의 지휘자’로서 그분을 기억하게끔 해줍니다. 문학사에서 그동안 저평가됐는데, 유 교수 같은 분이 정확하게 평가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공초가 지어 준 이근배 선생의 아호 ‘사천’(沙泉)은 ‘오아시스’라는 뜻이다. 시인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도 이 이름을 썼다. ‘사천’은 이근배 시의 본령을 풀어 가는 데 상징적 열쇠가 돼 준다. 스스로도 “사막 같은 세상을 잘 건너가라고?/오아시스 같은 사람이 되라고?”(‘사막 타클라마칸’)라고 노래한 바 있듯이, 그의 시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불우한 역사에서 솟구쳐 오른 모국어의 샘이었기 때문이다. “미당 선생은 한국어가 어떻게 그리 아름답고 풍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살아 있는 현대시의 고전이지요. 제가 선생님 돌아가시고서 쓴 조시가 ‘미당경전’이에요.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작년에 펴낸 시집 ‘대백두에 바친다’에 실린 ‘미당경전’에서 선생은 21세기 첫 성탄전야에 돌아간 미당을 그리워하는 음성을 처연하고도 감동적으로 들려주었다. 스승의 시를 ‘경전’으로까지 명명하는 선생의 마음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미당과 사천은 등단작 제목이 같다. 1936년에 미당도 신춘문예에 ‘벽’으로 당선했으니 말이다. 스승과 제자는 나이도, 신춘문예 등단도, 모두 스물다섯 터울이다.●이근배 시의 메타포, 벼루 이근배 선생은 시를 일러 “사람의 생각이 우주의 자장을 뚫고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렇게 커다란 스케일과 촘촘한 밀도로 쓰인 그의 시는 사라져버린 것들의 아름다움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되살리면서 펼쳐져 왔다. 그 은유적 육체를 시인은 ‘벼루’에서 찾아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단단한 돌의 질감과 예술적 조형미를 아울러 갖춘 벼루는 이근배 시의 상징적 메타포로 충분할 것 같다. “할아버지 방에서 나오던 먹 냄새가 원체험이지요. 저는 불가사의한 신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옛 벼루를 비롯한 선현들의 유묵 또는 청자, 백자 등 유물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연벽’(硯癖)이라는 말도 있듯이 선생은 세계 제일의 벼루 컬렉터로 유명하다. ‘시행일여’(詩行一如)라고 했거니와 ‘연행일여’(硯行一如)라도 되는 듯이 선생은 벼루에서 삶과 우주, 시간과 예술을 바라본다. 귀하기 짝이 없는 수백 년 묵은 벼루들을 낱낱이 보여 주면서 스스로도 예술가로서의 존재 방식을 묻고 있는 듯했다. ●대한민국예술원 원로들에 대한 예우 지난해 말 선생은 제39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했다. 시인으로는 조병화 선생에 이어 두 번째이고 문인으로 치면 일곱 번째다. “1964년 탄생한 대한민국예술원은 김동리 선생이 추진해 만든 국가기관입니다. 누가 변형시키거나 축소할 수 없지요. 회원 수는 100명으로 정해져 있어요. 이분들은 평생을 예술에 헌신해 온 원로이지만 여전히 쟁쟁한 현역들입니다. 이분들이 국가 위상을 높이는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예술원에 대한 예우 제고가 필요합니다.” 예술원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도 촘촘하게 세웠다. “제 임기 동안 ‘회원’이라는 명칭을 ‘종신회원’으로 바꾸고 국가적 차원의 예우를 통해 예술원의 위상을 높여 가려고 합니다. 또 예술원 단독 청사 입주를 꾀해 보려고 해요.” 예전에 “남들이 막장에 들어가 모국어의 보석을 캘 때 갱구 앞에서 부스러기 돌이나 줍고 있었다”(‘문학적 자전’)라고 겸손해한 그였지만, 이제는 그 선두에 서서 예술의 도약을 꿈꾸는 역할을 맡게 됐다. 그리고 선생은 개인적으로도 고향 당진에서 ‘이근배문학관’을 세우기로 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곳이 우리 문학의 분열을 통합하는 큰 둥우리가 되리라 상상해 본다. 그러고 보니 선생의 시는 순수나 참여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는 우리나라의 산수를 빼닮지 않았는가. 선생은 ‘추사를 훔치다’(2014)에서 성현과 예인들의 흔적을 통해 공동체적 기억을 통합적으로 구축했는데, 거기서도 지금은 사라져간 것들의 품격과 위의를 통해 한국문학의 모뉴멘트를 이루어 가려는 의지를 강렬하게 보여 주지 않았던가.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일을 시라고 했던 이근배 선생은 스스로도 “스며 나오는 전시대의 전아한 향기, 한지에 진한 먹으로 쓰이고 몇 세대를 넘겨도 여전히 오히려 더욱 은근하게 풍겨오는 선비 시절의 문향”(김병익)을 선사해 왔다. 비록 “글자를 읽을 줄도 모르고/붓을 잡을 줄도 모르면서/지가 무슨 연벽묵치라고/벼루돌의 먹 때를 씻는 일 따위에나/시간을 헛되이 흘려버리기도 하면서”(‘자화상’) 살아왔다고 고백했지만, 우리는 선생이 서재인 ‘신연재’(神硯齋)에서 더 웅숭깊어진 이근배 문학을 완성해 갈 것이라고 믿는다. 고전(古典)과 창신(創新)이 힘차게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을 보여 주면서 말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139년 품은 음악 마법에 빠져보세요”

    “139년 품은 음악 마법에 빠져보세요”

    “드디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니!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클래식 명장이 보내온 이메일에는 첫 한국 방문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지난해 11월 타계한 마에스트로 마리스 얀손스의 유일한 제자이자 그의 위치를 이어 갈 지휘자로 조명받고 있는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42)가 한국 클래식 무대에 오른다. 그가 이끌고 오는 악단은 자신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한국과는 연이 닿지 않았던 지휘자와 악단이 함께 한국을 찾는다. 다음달 6~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보스턴 심포니의 첫 한국 공연을 지휘할 넬손스를 서면으로 먼저 만났다. 1881년 창단한 보스턴 심포니는 시카고 심포니, 뉴욕필하모닉,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미국의 주요 악단으로 꼽히지만, 유일하게 한국 방문 공연이 없었다. 1960년 아시아 투어 중 한국 공연이 예정됐으나, 당시 4·19혁명으로 한국 정세가 급변하면서 공연 일주일 전 취소됐고 이후 60년간 방한 소식은 없었다. 2014년부터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을 맡은 넬손스도 애초 2010년 10월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 공연이 예정됐지만, 당시 영국 파운드화 위기 영향으로 오케스트라 재정 상황도 악화되면서 아시아 투어를 취소했다. 넬손스는 이와 관련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이번 연주에서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나고 한국의 문화를 며칠이나마 경험할 수 있어서 모든 단원들은 아주 큰 기대를 갖고 있다”면서 “139년 보스턴 심포니 음악의 역사를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 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이어 “한국의 클래식 공연 현장 분위기는 매우 활기차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처음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됐다”면서 “수년간 한국의 훌륭한 뮤지션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뛰어난 실력에 감탄하곤 했는데, 그 실력이 고향의 문화에 대한 증거라고 확신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스승 얀손스와 같은 라트비아 출신인 넬손스는 보스턴 심포니와 함께 성장하며 수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전 세계로 중계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를 이끌었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런던에서 넬손스의 음악회를 직접 본 일화를 소개하며 “완전히 얼이 빠져버렸다. 음악영화를 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넬손스와 보스턴 심포니는 이번 서울 공연에서 바르토크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6일)과 바버 메데아의 명상과 복수의 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7일)를 각각 연주한다. 지난해 11월 빈 필하모닉의 대구 공연을 함께했던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도 14년 만에 협연자로 서울을 찾는다. 넬손스는 “오케스트라와 투어를 다닐 때에는 최대한 단원들의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려고 노력하고, 협연자가 있으면 협연자가 빛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우리 오케스트라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분들이 두 공연 모두 참석해 우리의 다양한 음악성을 발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프로그램 구성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음악과 악단, 관객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보스턴 심포니와 같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법의 수준이 있어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형성되는 단계죠. 저는 연주자들의 능력을 믿고, 연주자들은 저를 믿고 있습니다. 이런 마법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만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드릴 겁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코리아쿱오케스트라, 3·1운동과 4·19혁명 정신 담아낸 ‘칸타타 레볼루션’ 8일 초연

    코리아쿱오케스트라, 3·1운동과 4·19혁명 정신 담아낸 ‘칸타타 레볼루션’ 8일 초연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3·1운동과 4·19혁명 정신 등을 담아낸 작품을 초연한다. 코리아쿱오케스트라는 다음달 5일 오후 7시30분 제주문예회관, 8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칸타타 레볼루션’(Cantata Revolution)이라는 타이틀로 음악회를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음악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주관한다. 코리아쿱오케스트라는 이번 연주를 통해 3·1운동과 4·19혁명 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에서 끊임없이 ‘자유와 평등’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건들을 음악적으로 해석했다. 항쟁과 혁명정신을 통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구상하고자 했다는 것이 코리아쿱오케스트라의 설명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중장기창작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국립합창단 전속 작곡가 오병희가 곡을 맡았으며, 지휘자 김덕기, 소프라노 강혜정, 바리톤 김동섭 등이 참여한다.코리아쿱오케스트라는 앞으로 3년 동안 레볼루션 시리즈를 제작해 음악이 갖는 친숙함으로 새로운 민주주의의 미래를 그려볼 예정이다. 코리아쿱오케스트라는 연주자들이 스스로 오케스트라를 조직, 운영, 관리함으로써 연주의 질적 향상에 책임을 다하고 세분화된 복무규정과 철저한 자기 성찰로 높은 수준의 연주력을 유지, 연주자들에 의한, 연주자들을 위한 오케스트라를 추구하고 있다. 매년 90여회 공연에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오페라, 발레 공연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n&Out] 생각보다 그들은 어리지 않다/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In&Out] 생각보다 그들은 어리지 않다/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3·1운동과 4·19혁명에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학생과 청소년들도 적극 참여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역사적인 과정에 참여했을까? 그들에게 청소년 미성숙론을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역사는 분명 지속적인 선거권의 확장 과정이었다. 왕과 귀족들이 독점했던 권력이 부르주아에게 넘어갔고,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거쳐 빈민과 노동자, 여성, 흑인에게 선거권이 확장됐다. 소수의 엘리트 독점주의를 깨고, 천부인권 사상을 정치제도로 투영해 온 과정이 민주주의의 길이었다. 그 결과 재산과 권력이 없어도 일정 연령을 넘어서면 선거권을 지니게 됐다. 왕과 귀족, 부르주아의 관점에서 보통선거를 바라본다면 미성숙한 존재들에게 투표권을 주었다고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보통선거의 마지막 보루는 연령이다. 걱정해야 할 대상은 오히려 어른들이다. 어른들은 합의하지 못하지만 청소년들은 합의를 도출해 낸다. 어른들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지만 청소년들은 상대를 인정한다. 어른들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 틀로 세상을 보지만,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다. 청소년들이 읽는 책의 양이 어른들보다 훨씬 많다.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상위권에 속하지만, 성인들의 역량 평가는 중간 수준에 불과하다. 왜 청소년들을 믿지 못하는가? 학창 시절의 민주시민 교육을 통한 성장 경험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학급회의와 학생회 활동을 의미 있게 했던 경험이 개인의 삶에 남아 있는가? 학교 측에 무엇인가를 제시해 변화를 만들어 봤던 경험을 각 개개인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기성세대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비교적 일천하다. 그러나 학교는 바뀌었다. 학생회장을 뽑는 선거를 보면 대단히 역동적이다. 후보자들끼리 토론을 하고 그 과정을 지켜본 뒤 학생들은 투표를 한다. 학생자치회의 위상은 강화되고 있다. 학생회가 주관하는 행사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교칙을 학생·학부모·교원 대토론회를 통해 정하기도 한다. 우리의 교육 목표는 민주시민 양성이다. 교육기본법과 교육 과정의 목표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문서와 실제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 민주시민은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을 욱여넣는다고 길러지지 않는다. 삶과 문화,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기ㆍ승ㆍ전ㆍ입시로 귀결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러한 경험을 유보시켜 왔다. 그런 점에서 선거 연령 하향 조정은 민주시민 교육을 학교의 교육 과정과 일상에서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선거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소극적인 방식을 넘어 민주시민 교육의 철학과 방법, 내용을 어떻게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구현할 것인가를 모색해야 한다. 주입과 교화를 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쟁점과 토론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풍성한 자료와 프로그램, 체험처를 지역사회에서 제공해야 한다. 생각보다 그들은 어리지 않다.
  • 판소리명가대회 종합대상 받은 김수지 소리꾼 ‘한국예술진흥원’ 개원

    판소리명가대회 종합대상 받은 김수지 소리꾼 ‘한국예술진흥원’ 개원

    판소리명가 대회에서 종합대상 국회의장상을 수상한 김수지 소리꾼이 통합예술단체 ‘한국예술진흥원’을 설립하고 오는 19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개원식을 갖는다. 한국예술진흥원은 국악을 비롯해 연극·미술·뮤지컬·무용·실용음악을 대중과 함께하는 통합예술단체다. 대중에게 더 많은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해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현재 실험적인 창작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구사해 “환장 Fastival” 진행 중에 있다. 또 서울 강북구에서 ‘4·19혁명창작국악경연대회’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도 교육과 공연기획으로 역량을 넓혀갈 예정이다. 김수지 대표는 “풍부한 아이디어와 국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젊은 여성 사업가들을 응원한다”고 말했다.또 “원도심에 젊음을 더하는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2020년부터 청년에게는 공연의 기회를 주고 해외공연사업과 국내공연사업에 문화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업을 지속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 대표는 전주예술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국악대학 연희예술학부 음악극 판소리를 전공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로, 판소리명가 장월중선명창대회 종합대상을 수상했다. 4시간 30분에 걸쳐 동초제 심청가 완창발표회와 2013~2018년 판소리유파대제전을 연출했다. 청와대·안전행정부 주최 제4346주년 개천절 경축식행사에도 출연한 바 있다. 한편 ‘프룻듀’라는 품격 있는 고품격 과일바구니포장전문점도 오픈한다. 인사나 승진·예단과일·출산·병문안·집들이 등 고급스러운 과일 선물로 무게가 있으며 생화 장식까지 설날이벤트로 예약주문이 많아 과일바구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프룻듀 홈페이지(http://fruitdew.com)로 문의하면 된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전문] 문 대통령 신년사 “확실한 변화 통해 상생 도약”

    [전문] 문 대통령 신년사 “확실한 변화 통해 상생 도약”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앞서 2020년 신년사를 통해 올해 국정 구상을 밝혔다.다음은 문 대통령 신년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의 뜻깊은 해를 보내고, 올해 ‘4·19혁명 60주년’과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으며 3년 전, 촛불을 들어 민주공화국을 지켜냈던 숭고한 정신을 되새깁니다. 정의롭고 안전하며, 더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에 따라 우리 정부는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경제와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와 개혁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칙과 특권을 청산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노력해왔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낯선 길을 함께 걸어주셨습니다. 국민들이 불편과 어려움을 견디며 응원해주신 덕분에 정부는 ‘함께 잘 사는 나라’, ‘혁신적 포용국가’의 틀을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신 국민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올 한해, ‘확실한 변화’로 국민의 노고에 보답하겠습니다.국민 여러분, 2020년은 나와 이웃의 삶이 고르게 나아지고 경제가 힘차게 뛰며, 도약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민들께서 ‘포용’, ‘혁신’, ‘공정’에서 ‘확실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포용’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까지 미치게 하여 국민의 삶을 더 따뜻하게 하겠습니다. 일자리는 국민 삶의 기반입니다. 지난해 정부는 일자리에 역대 최대의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청년·여성·어르신에 대한 맞춤형 일자리 지원을 강화하고, 민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전방위적인 정책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일자리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신규 취업자가 28만 명 증가하여 역대 최고의 고용률을 기록했고, 청년 고용률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상용직이 크게 증가하면서 고용보험 가입자 수가 50만 명 이상 늘고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주는 등 고용의 질도 개선되었습니다. 올해 이 추세를 더 확산시키겠습니다. 특히, 우리 경제의 중추인 40대와 제조업 고용부진을 해소하겠습니다. 40대 퇴직자와 구직자에 대한 맞춤형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민간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도록 규제혁신과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하겠습니다. ‘부부 동시 육아휴직’을 도입하여 아이를 키우며 일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고, ‘청년추가고용장려금’,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 지원을 통해 여성·청년·어르신의 노동시장 진입도 촉진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걸음 더 다가가겠습니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아닌, 사람 중심의 창의와 혁신, 선진적 노사관계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그동안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통계작성 이후 처음으로 연간 노동시간이 2,000시간 아래로 낮아졌고, 저임금근로자 비중도 20% 미만으로 줄었습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2000년 이후 최고를 기록한 반면, 파업에 따른 조업손실 일수는 최근 20년 이래 가장 낮았습니다. ‘지역 상생형 일자리’도 광주를 시작으로 밀양, 대구, 구미, 횡성, 군산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올해 국민들의 체감도를 더욱 높이겠습니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안착을 지원하고, 최저임금 결정체계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높이겠습니다.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와 ‘전국민 내일배움카드제’를 통해 고용안전망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겠습니다. ‘지역 상생형 일자리’도 계속 늘려갈 것입니다. 지난해 기초연금 인상, 근로장려금 확대 등 포용정책의 성과로 지니계수,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3대 분배지표가 모두 개선되었습니다. 가계소득도 모든 계층에서 고르게 증가했고, 특히 저소득 1분위 계층의 소득이 증가세로 전환되었습니다. 올해 더 ‘확실한 변화’를 보이겠습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여 더 많은 가구가 혜택받게 하고, 근로장려금(EITC) 확대와 기초연금 인상 등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더 넓히겠습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특히 중증질환, 취약계층, 아동의 의료비 부담을 대폭 줄여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지난해 고3부터 시작한 고교 무상교육을 올해 고2까지, 내년에는 전 학년으로 완성하고, 학자금 대출금리도 낮춰 누구나 교육기회를 충분히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해서는 금융·세제 지원과 상권 활성화 지원을 더욱 확대하겠습니다. 농정틀도 과감히 전환하겠습니다. 2016년에 13만 원 수준이던 쌀값이 19만 원으로 회복되어, 농가소득 4천만 원, 어가소득 5천만 원을 돌파했습니다. 농어가 소득안정을 위해 올해부터 ‘공익형 직불제’를 새롭게 도입하고 ‘수산분야 공익직불제’도 추진하겠습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의 바람입니다. 우리 정부는 교통사고, 산재, 자살을 예방하는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고, 미세먼지 대응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왔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교통사고와 산재 사망자 수가 크게 감소했고,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개선되는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합니다. 안전에 관한 노력은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존 정책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고, ‘어린이 안전 종합대책’을 더해 국민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미세먼지가 높은 겨울과 봄철 특별대책을 마련하여 3월까지 강화된 선제조치를 시행하겠습니다. 계절 관리제, 석탄발전소 가동중단, 노후차량 감축과 운행금지, 권역별 대기개선 대책, 친환경 선박연료 사용 등을 통해 대기 질의 확실한 변화를 만들어내겠습니다. 국외 요인에 대응하여 중국과의 공조·협력도 강화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 반 세기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듯이, 4차 산업혁명 시대도 우리가 선도할 수 있습니다. ‘혁신’을 더 강화하여 우리 경제를 더 힘차게 뛰게 하겠습니다. 지난해 혁신성장 관련 법안 통과가 지연되는 상황 속에서도, 신규 벤처투자가 4조 원을 돌파했고 다섯 개의 유니콘 기업이 새로 탄생했습니다. 200여 건의 ‘규제샌드박스’ 특례승인과 열네 개 시도의 ‘규제자유특구’ 지정으로 혁신제품·서비스의 시장 출시도 가속화되었습니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로 단말기와 장비시장에서 각각 세계 1위와 2위를 차지했고, 전기차와 수소차 수출도 각각 두 배와 세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ICT 분야 국가경쟁력이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혁신을 향한 우리의 노력이 하나하나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올해는 혁신의 기운을 경제 전반으로 확산시키겠습니다. 벤처창업기업의 성장을 지원하여 더 많은 유니콘 기업이 생기도록 하겠습니다.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등 3대 신산업 분야를 ‘제2, 제3의 반도체 산업’으로 육성하고,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분야 투자를 확대해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탄탄히 구축하겠습니다. ‘규제샌드박스’의 활용을 더욱 늘리고 신산업 분야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도 맞춤형 조정 기구를 통해 사회적 타협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상생의 힘’을 확인했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하여 핵심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에 기업과 노동계, 정부와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았습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라는 목표에 온 국민이 함께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못한 일이었지만 불과 반년 만에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이제 대일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품목들을 국내 생산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일부 품목은 외국인 투자유치의 성과도 이뤘습니다. 올해는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2조1천억 원의 예산을 투자하고, 100대 특화 선도기업과 100대 강소기업을 지정해 국산화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가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고, 나아진 경제로 ‘확실한 변화’를 체감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세계 경제가 점차 회복되고 반도체 경기의 반등이 기대되고 있으나, 무역갈등, 지정학적 분쟁 등 대외 불확실성은 여전합니다. 구조적으로는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고. 생산가능인구가 지난해보다 23만 명 감소하는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것입니다. 올해 수출과 설비 투자를 플러스로 반등시켜 성장률의 상승으로 연결시키겠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미중 무역갈등과 세계경기 하강 속에서도 수출 세계 7위를 지켰고, 3년 연속 무역 1조 불, 11년 연속 무역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전기차, 수소차, 바이오헬스의 수출이 크게 증가하는 등 새로운 수출동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도 가격이 급락한 가운데서도 수출물량이 증가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신남방 지역 수출 비중이 지난해 처음으로 20%를 돌파하고, 신북방 지역 수출도 3년 연속 두 자릿수로 증가하며 수출 시장도 다변화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전체 수출액을 다시 늘리고 2030년 수출 세계 4강 도약을 위한 수출구조 혁신에 속도를 내겠습니다. 3대 신산업, 5G, 이차전지 등 고부가가치 수출을 늘리는 한편, RCEP 협정 최종 타결 등 신남방·신북방 지역으로 새로운 시장을 넓히겠습니다. 중소기업 수출금융을 네 배 확대하고, 한류와 연계한 K-브랜드로 중소기업의 수출비중도 더욱 늘려가겠습니다. 더 좋은 기업투자 환경을 만드는 데도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총 100조 원의 대규모 투자프로젝트를 가동하고, ‘투자촉진 세제 3종 세트’와 같은 투자 인센티브를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23개 사업 25조원 규모의 ‘국가균형발전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는 한편,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생활 SOC’ 투자도 역대 최대 규모인 10조 원 이상으로 확대하여 지역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겠습니다. 아울러, K-팝과 드라마, K-뷰티, K-콘텐츠, K-푸드 등 한류를 더욱 활성화하고, ‘방한 관광객 2천만 시대’를 열겠습니다.국민 여러분, ‘공정’은 우리 경제와 사회를 둘러싼 공기와도 같습니다. ‘공정’이 바탕에 있어야, ‘혁신’도 있고 ‘포용’도 있고 우리 경제사회가 숨 쉴 수 있습니다. 최근 공정경제에서는 차츰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고리가 대부분 해소되었고 하도급, 가맹점, 유통 분야의 불공정거래 관행이 크게 개선되었으며, 상생결제 규모도 100조 원을 돌파하는 등 공정하고 건강한 시장경제가 안착되고 있습니다. 또한, 법 개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시행령 등의 제·개정을 통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정착시키고, 대기업의 건전한 경영을 유도할 수 있는 기반을 곧 마련할 것입니다. 상법 개정 등 공정경제를 위한 법 개정에도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최근 ‘공수처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누구나 법 앞에서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평등하고 공정하게 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수사권 조정법안’이 처리되어 권력기관 개혁을 위한 법과 제도적 기반이 완성되면 더욱 공정한 사회가 되고 더욱 강한 사회적 신뢰가 형성될 것입니다. 어떤 권력기관도 국민과 함께하는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법적, 제도적, 행정적 개혁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나아가 교육, 채용, 직장, 사회, 문화 전반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공정’이 새롭게 구축되어야 합니다. ‘공정’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요구를 절감했고, 정부는 반드시 이에 부응할 것입니다. 국민의 삶 모든 영역에서 존재하는 불공정을 과감히 개선하여 공정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택 공급의 확대도 차질없이 병행하여 신혼 부부와 1인 가구 등 서민 주거의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인고의 시간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를 향한 신념과 국민들의 단합된 마음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우리 정부 들어 평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2017년까지 한반도에 드리웠던 전쟁의 먹구름이 물러가고 평화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남북협력에서 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북미대화가 본격화되면서 남과 북 모두 북미대화를 앞세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북미대화가 성공하면 남북협력의 문이 더 빠르게 더 활짝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북미대화의 동력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무력의 과시와 위협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도 북미대화의 촉진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미 대화의 교착속에서 남북 관계의 후퇴까지 염려되는 지금 북미대화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과 함께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이라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국제적인 해결이 필요하지만, 남과 북 사이의 협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도 있습니다.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함께 논의할 것을 제안합니다. 남과 북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생명공동체’입니다. 8천만 겨레의 공동 안전을 위해 접경지역 협력을 시작할 것도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는 남북이 한민족임을 세계에 과시하고, 함께 도약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남북 정상 간 합의사항이자, IOC에 공동유치 의사를 이미 전달한, 국제사회와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실현되도록 지속적인 스포츠 교류를 통해 힘을 모아가길 바랍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제1회 동아시아 역도 선수권대회’와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북한의 실력있는 선수들이 참가하길 기대하며 ‘도쿄올림픽’ 공동입장과 단일팀을 위한 협의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남북 간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남북이 함께 찾아낸다면 국제적인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북 간의 관광 재개와 북한의 관광 활성화에도 큰 뒷받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무장지대의 국제평화지대화’는 남북한의 상호 안전을 제도와 현실로 보장하고 국제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 제안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등재한 경험이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는 생태와 역사를 비롯해 남북화해와 평화 등 엄청난 가치가 담긴 곳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등재는 우리가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북한의 호응을 바랍니다. 평화를 통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궁극적으로 평화경제입니다. 평화경제는 분단이 더 이상 평화와 번영에 장애가 되지 않는 시대를 만들어 남북한 모두가 주변 국가들과 함께 번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는 거듭 만나고 끊임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습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갈 것입니다. 지난 한 해, 지켜지지 못한 합의에 대해 되돌아보고 국민들의 기대에 못미친 이유를 되짚어보며 한 걸음이든 반 걸음이든 끊임없이 전진할 것입니다. 올해는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평화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공동행사를 비롯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나가길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지난해 정부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를 통해 ‘상생 번영의 공동체’를 위한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올해도 정부는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한편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에 더욱 속도를 내어 외교를 다변화해 나가겠습니다. 미국과는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완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중국과는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올해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의 방한이 예정되어있는 만큼, 한중관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양국 간 협력관계를 한층 미래지향적으로 진화시켜 가겠습니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한다면, 양국 관계가 더욱 빠르게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는 신북방정책의 핵심 파트너입니다. 양국 수교 30주년이 되는 올해, 신북방 외교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올해 우리는 P4G 정상회의와 한중일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믹타(MIKTA) 의장국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국제 협력에 있어서도 당당한 중견국가로서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우리 국민이 되찾고 지켜낸 민주공화국이기에 우리는 그 이름에서 가슴 뜨거움을 느낍니다. 민주공화국에 대한 우리의 신념은 우리가 들었던 촛불만큼이나 뜨겁습니다. 우리가 지난해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특별히 기념한 것은 그 정신이 그대로 민주공화국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민주공화국은 상생으로 더 확장되고 튼튼해집니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함께 잘 살 수 있을 때 국민 주권은 더 강해지고, 진정한 국민통합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세계정세는 여전히 격변하고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국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보호무역주의와 기술 패권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내부적으로 더 통합적이고 협력적인 사회가 되어야만 경쟁에서 이겨내고 계속 발전해 갈 수 있습니다. 극단주의는 배격되고 보수와 진보가 서로 이해하며 손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부터 더 노력하겠습니다. ‘확실한 변화’를 통한 ‘상생 도약’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더 자주 국민들과 소통하겠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변화는 애벌레에서 나비로 탄생하는 힘겨운 탈피의 과정일 것입니다. 지난 2년 반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제 나비로 ‘확실히 변화’하면, 노·사라는 두 날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라는 두 날개, 보수와 진보라는 두 날개, 남과 북이라는 두 날개로 ‘상생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100년을 시작합니다. ‘혁신’과 ‘포용’, ‘공정’과 ‘평화’를 바탕으로 ‘함께 잘 사는 나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우산과 촛불… 비폭력은 폭력보다 강하다

    우산과 촛불… 비폭력은 폭력보다 강하다

    지난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고인 71.2%를 기록했다. 인두세를 내야 유권자 자격을 주는 데다 복잡한 등록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홍콩 투표율은 한국보다 다소 낮은 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홍콩 구의원 선거 가운데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때가 2015년 47.0%였다. 이번 선거에 관한 관심은 올 3월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시작했다. 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정부와 그 뒤에 버티고 선 중국에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시민에게 실탄을 발사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끝까지 ‘비폭력’을 고수했다. 홍콩 시민은 이번 선거로 친중 구의원들을 몰아내고, 시위를 주도한 젊은층의 정치 진입을 이끌 수 있었다. 이들이 만약 정부 당국과 경찰에 ‘폭력’으로 맞섰다면 어땠을까. 역사 속 폭력·비폭력 시민운동을 조사한 뒤 성공 여부와 그 이유를 분석한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겠다. 저자들은 1900년부터 2006년까지 폭력·비폭력 운동 323건을 분석했다. 우리의 1960년 4·19혁명을 비롯한 비폭력 운동이 106건, 폭력 운동이 216건이었다. 비교 결과 비폭력 운동이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둔 비율은 55%에 이르지만, 폭력 운동은 25% 정도에 그쳤다.‘왜?’라는 의문이 떠오를 법하다. 성공한 비폭력 운동들을 분석한 저자는 공통점으로 ‘시민의 참여’를 찾아냈다. 폭력 운동에 참여하려면 목숨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하지만 비폭력 운동은 장벽이 낮아 더 많은 사람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형태로 참여할 수 있어 효과도 더 좋았다. 비폭력 운동은 일상생활을 하며 참여할 수 있고 운동에 참여하고 나서 언제라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꼭 집회가 아니더라도 불매 운동과 같은 방식으로 반대편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저자는 이와 관련, “한국,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레바논, 이집트 등에서 일어난 최근 비폭력 운동은 시민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시민이 참여한 대형 운동에서 비폭력 운동 성공률은 70%까지 올라갔다. 시민 참여 규모가 가장 컸던 25건 가운데 20건이 비폭력 운동이었고 성공률도 두드러지게 높았다. 1978~1979년 팔라비 왕조 체제에 반대해 200만명이 참여한 이란혁명과 같은 비폭력 운동 14건(70%)이 명백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폭력 운동의 경우 1937~1945년 450만명이 참여한 중국의 일본 점령 반대 운동을 비롯한 5건 중 2건(40%)만 성공했다. 책은 1부에서 전체 사례에 관한 통계를 분석하고 2부에서는 실제 사례 4건을 들어 좀더 자세히 분석한다. 이란의 국왕을 몰아낸 이란혁명,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맞서 유례없는 진전을 이뤄 냈지만 결국 실패한 1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1987~1992),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필리핀 피플파워(1983~1986), 폭력·비폭력 운동 모두 실패한 미얀마혁명(1988)을 살핀다. 저자는 시민운동을 ‘비제도적인 행동 방식을 사용하는 정치 행위’라 규정하고, 여기에 사용한 여러 전술을 다양하게 풀어낸다. 시민운동을 고려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읽어 봐야 할 듯하다. 그러나 폭력·비폭력 운동의 지난 100년 흥망성쇠를 그저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공부가 될 수 있다. 폭력이 적은 노력으로 파괴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는 판단에 저자는 “승리와 혼란은 구별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폭력의 결과가 자극적이어서 주목을 많이 끌고, 따라서 효과도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얼마 전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바꿨던 우리로선 이미 방향을 알고 있지 않은가. ‘비폭력이 정답’이라고.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내년 5·18 40주년 광주-서울 5·18 광화문 문화제 공동 추진

    광주시가 내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민중항쟁 120년 전시회를 열고 서울시와 공동으로 ‘5·18 광화문 문화제’를 치르는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추진한다. 28일 광주시에 따르면 동학농민운동(1894년)부터 2016년 촛불혁명까지 대한민국 민중항쟁 120년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가칭 ‘동학에서 촛불혁명까지’(대한민국 민중항쟁 120년 전시)라는 전시회다. 국비 등 10억원을 들여 1주일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는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3사건추모관, 4·19혁명관,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까지 8개 민중항쟁(또는 사건) 전시관으로 구성된다. 제주도의 비극 4·3 추모관의 경우 4·3을 기록한 사진 등 자료를 바탕으로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 제주도 화가 강요배의 그림 등 관련 콘텐츠로 전시관을 꾸린다. 5·18민주화운동관은 5·18 관련 자료에 더해 1980년 5월의 상징과도 같은 ‘임을위한행진곡’, 소년이 온다(한강 소설), 택시운전사(영화) 등 친숙한 콘텐츠를 입혀 관람객과 만나게 된다. ‘동학에서 촛불혁명까지’라는 전시회 외에도 내년이 5·18 40주년이라는 상징성을 감안, 광주시는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시와의 공동 기념행사, 베니스 비엔날레 5·18 민주화운동 특별전, 5·18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원작으로 한 연극 공연 등이다. 광주시는 내년 기념행사 기간 ‘5·18 광화문 문화제’ 개최를 위해 다음 달 중순 서울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시는 또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5·18 민주화운동 특별전을 열고, 통상 9∼10월 열렸던 세계 인권 도시 포럼도 5월로 시기를 옮겨 확대할 계획이다. 5·18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원작으로 폴란드 스타리 국립극장이 제작한 연극 ‘The boy is coming’은 서울과 광주에서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시는 이를 위해 국비 77억원 등 모두 100여억원의 예산을 편성한다. 40주년 기념행사 성공 개최를 위해 각계가 참여하는 TF(특별팀)도 꾸렸다. 5·18기념행사는 그동안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 5월 3단체와 5·18기념재단, 노동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주도로 치러졌다. 그러나 이번 40주년 기념행사는 시가 주도하며, 5·18의 정신과 가치의 세계화·전국화를 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장관의 책상] 어떤 보훈단체장의 침묵/박삼득 국가보훈처장

    [장관의 책상] 어떤 보훈단체장의 침묵/박삼득 국가보훈처장

    “변한 게 없어서 더이상 요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한마디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전국의 보훈 현장을 다니고 보훈가족들을 만나면서 나의 기억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말이다. 보훈행정을 총괄하는 보훈처장으로서 이 따끔한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곱씹을수록 부끄러움이 커진다. 모 지방 보훈단체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유독 한 분이 자리가 끝날 때까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그 이유를 물으니 나온 말이다. 지난 10년간 보훈처장과 만나는 자리가 수차례 있었지만 자신의 요구에도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보훈은 다양한 성과를 냈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국민의 존경심을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 14만여명의 국가유공자 집에 ‘국가유공자 명패’를 달아 드렸다.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생활지원금’ 신설을 비롯해 지난해와 올해에만 1002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포상했다. 특히 전체 여성 포상자 472명 중 38%에 달하는 177명이 현 정부 들어 포상됐다. 참전유공자 진료비 감면을 13년 만에 60%에서 90%로 대폭 확대했고, 역대 정부 최초로 국가유공자 사망 시 영구용 태극기와 대통령 명의 근조기를 증정하고 있다. ‘생전 국립묘지안장심사제도’ 신설 역시 유족분들의 오랜 불편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28민주운동과 3·8민주의거의 국가기념일 격상, 7년 만의 4·19혁명 유공자 발굴·포상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이 밖에도 다양한 노력과 성과가 있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아직 이에 못 미치는 것 같다. 보훈가족들과의 만남은 국가보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까지의 성과와 함께 보훈정책에 대한 보훈 대상자들의 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실질적 고민과 실천이 필요할 때다. 보훈가족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이를 통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소통을 통한 정책 연구개발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현장의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보훈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우리 보훈가족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보훈정책 혁신과 추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행사장을 찾았을 때 누구보다 반갑게 환대해 주는 보훈가족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한 보훈단체장의 침묵(沈默)을 가슴 깊이 새기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말이다.
  • “한국전 전후 무차별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8부 능선 넘어”

    “한국전 전후 무차별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8부 능선 넘어”

    1948년 한반도 남쪽에 이승만 정권이 들어선 뒤 한국전쟁 발발 전후로 정치적 반대 세력, 소위 ‘빨갱이’를 소탕한다며 무차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우익 청년단체 등 지방 토착세력도 군경의 협조 또는 묵인 아래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잔혹하게 총살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100만명이 넘는다는 자료도 있다. 하지만 분단 체제에서 피해자 유족들은 빨갱이 가족으로 매도당하며, 연좌제의 사슬에 묶인 채 침묵을 강요당했다.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 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비극적인 현대사를 바로잡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진상규명위원회의 중립성 유지 등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아직도 계류 중이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라면 얼마 전 특별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극적으로 통과했다는 것이다. 20대 국회 회기가 반년도 남지 않은 게 변수지만 지난달 30일 서울신문과 만난 김하종(86) 한국전쟁유족회 특별법추진위원장(경주유족회장)은 “8부 능선은 넘었다”며 가장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상임위 통과에도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야당 의원들의 반대가 극심했는데. “국회 행안위 회의가 열리는 날이면 아침 일찍 열차를 타고 서울로 와 회의실 앞을 지켰다. 한국당 의원을 만나면 ‘지난번에 협조해 준다고 해 놓고 자꾸 반대하면 어떡하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지난 5월 행안위 회의장에도 들어갔는데. “당시 회의장이 난장판이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발언권을 준다고 하더라. 80세를 전후한 우리 유족들이 또 얼마나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 그때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유족들의 통한의 눈물을 닦아 줄 과거사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과거사법 개정안은 노무현 정부 때 설립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다시 가동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 사건도 다루게 된다. 20대 국회 들어 관련 법안만 7개나 발의됐지만 여야 대치 속에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자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유족회 회원들과 함께 학살 피해자 유해 40여구를 들고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6월 들어 속도가 나는 듯했지만 한국당이 상임위 의결 직전 이 법안을 안건조정위에 회부하겠다고 하면서 넉 달이 더 지체됐다. 그래도 김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되자 “얼마나 기쁜지 눈물이 다 났다”고 말했다. -그 오랜 세월 체력이 부치지는 않았는지. “1960년 10월 전국유족회가 결성될 당시 총회가 열렸는데 그때 참석한 33명 중 유일한 생존자다. 끝을 내겠다는 심정이다.” 김 위원장은 경북 경주시 내남면 출신으로 경주유족회장도 맡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내남면에서만 140명이 넘게 희생됐다고 한다. 그의 일가친척 22명도 빨갱이에 협조하는 ‘용공분자’(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사람)로 몰려 1949년 8월 1일 우익 청년단체인 민보단 단원들과 순경 등에 의해 총살됐다. 김 위원장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내남면 민보단장은 이후 3선 의원을 지낸 이모씨였다. 김 위원장 부친도 몰살당한 친척들을 매장하기 위해 현장에 갔다가 민보단원에게 두들겨 맞고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나. “당시 국민학교 담임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사적 복수’를 하라고. 이씨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라는 얘기였다. 등록금을 낼 형편도 안 됐지만 모친을 설득해 뒤늦게 공부를 했다. 경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시험을 쳐서 법무부 형정국(현 교정본부)에 들어갔다.”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형정국을 그만둔 까닭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다. 부친과 집안 사람이 억울하게 돌아가셨는데 명예를 회복시켜 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중에 복직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사표를 냈다. 경주로 내려와 이씨를 살인, 방화, 약탈 혐의로 고발했다. 이씨가 구속되자 상황이 달라지더라. 학살 피해자 유족 860여명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경주유족회가 만들어졌고 젊은 나이에 회장직을 맡게 됐다. 그해 11월 4000여명(경찰 추산 2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 지역 양민피학살자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그런데 1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뒤 유족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혁명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 당시 검사는 소급 입법인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해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이나 청춘이 아까워 무기징역을 구형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7년을 선고했고, 중간에 사면을 받아 실제 복역한 기간은 2년이 좀 넘는다. 유족회 총무를 했던 쌍둥이 동생도 6개월을 복역했다. 반면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씨는 증거불충분으로 나중에 무죄로 풀려났다.” -사면이 됐어도 요주의 인물로 분류돼 제약이 많았을 것 같다. “전담 경찰이 매일 집으로 왔다. 앞으로 취직은 못 하니까 장사를 하든지, 농사를 짓든지 양자택일하라고 하더라.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했는데 네가 어찌 이렇게 됐느냐’며 모친이 대성통곡했다.” -나라가 원망스러웠을 것 같다. “걱정하는 모친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위로했다. 당시 개간 붐이 일었는데 약 6600㎡(약 2000평)를 직접 개간했다. 젊은 사람이 개간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경주시장이 찾아왔다. 시장한테 유족회 회장이라고 소개하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얼마 안 돼 취업을 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고, 지인이 운영하던 동방고등공민학교를 인수했다. 이후 불국사실업중학교, 경주여상 교장 등을 지냈다. 하지만 1989년 사회안전법이 폐지될 때까지 정보경찰도 교장실을 안방 드나들듯 찾아와 감시했다.” 경찰의 감시 속에 유족회와 멀어지는 듯했지만 김 위원장은 유족들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다. 2010년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확정받고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까지 끝낸 뒤 2015년 다시 경주유족회장을 맡았다. 55년 만이다.-어려운 길을 또 택했다.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는데 장소가 여의치 않아 경주역, 예식장, 식당 등을 전전했다. 유족회장을 맡고 나서는 위령탑 건립을 추진했다. 경주시가 조례를 제정하고 1억 5000만원을 지원해 줬다. 2016년 경주 황성공원에 위령탑을 세우고 740여명의 희생자 이름을 새겼다. 당시 두려워서 신청을 못 한 희생자 가족들도 연락이 오고 있다. 추가로 이름을 새겨 나갈 예정이다.” -가족들은 걱정이 클 것 같다. “자녀들을 위해 다시는 유족회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게 어머니와 아내의 유언이었다. 딸만 다섯인데 걱정하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 추석 때도 가족들이 모였을 때 많이 설득을 했다. 아직 명예회복을 못 한 피해자 유족을 위해서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글 사진 대구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동학혁명 현재와 미래 학술대회

    동학농민혁명 125주년을 맞아 ‘동학농민혁명 현재와 미래, 어떻게 할 것인� ?遮� 주제의 학술대회가 30일 전북 정읍에서 열린다. 정읍시 덕천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교육관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서는 동학혁명이 일어난 1894년부터 현재까지의 학술연구사업 및 기념사업 성과를 검토하고 관련 자료를 토대로 향후 사업 추진 방향 등을 조명한다. 또 역사학자인 이이화 선생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란 주제로 기조 강연하고 조재곤 연구교수(서강대)가 ‘동학농민혁명 국외자료 현황과 활용방안’을 소개한다. 이어 배항섭 교수(성균관대)의 ‘동학농민혁명 연구현황과 미래가� ?� 원도연 교수(원광대)의 ‘국가기념일 제정 이후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의 기본방향’이 발표된다. 이형규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 이사장은 “동학혁명은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시원”이라며 “학술대회는 동학농민혁명이 지향했던 정신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文 “강력한 검찰 자정 방안 직접 보고하라”

    文 “강력한 검찰 자정 방안 직접 보고하라”

    “권력기관 국민 위해서 존재 명심해야” 부마항쟁 기념식서도 검찰개혁 강조 오늘 경제장관회의 주재… 올해 처음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법무부 김오수 차관과 이성윤 검찰국장을 청와대로 불러 검찰개혁 상황을 직접 보고해 달라고 전격 지시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지만 검찰개혁을 직접 챙겨 흔들림 없이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검의 감찰 방안, 법무부의 2차적인 감찰 방안이 실효적으로 작동하고 활성화돼 검찰 내에 아주 강력한 자기 정화 기능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며 “준비가 되면 저에게 직접 보고를 해 달라”고 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48분간 이어진 면담에서 문 대통령은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지금도 대검 자체 감찰 기능이 있고, 법무부에도 2차적인 감찰 기능이 있는데 크게 실효성 있게 작동돼 왔던 것 같지 않다”고 말한 뒤 “이미 발표된 개혁 방안 외에도 추가적으로 개혁을 취하겠다는 방안들이 있다면, 또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도 추가 방안을 제시할 테고, 검찰도 이런저런 개혁 방안을 스스로 내놓을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있다면 직접 보고도 해 달라”고 했다. 이어 “후임 장관을 인선하는 데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는 반면 검찰개혁은 아주 시급한 과제”라며 “흔들림 없이 잘 관리한다는 차원을 넘어 장관 대행으로서 장관 부재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역할을 다해 달라”고 말해 후임 인선을 서두르는 대신 검찰개혁을 챙길 것을 시사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남 창원 경남대에서 열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도 “모든 권력기관은 조직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민주주의 상식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또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2016년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민주항쟁의 위대한 역사가 있는 한 어떤 권력도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17일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경제·고용 동향, 정책 방향을 보고받는다. 문 대통령이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국가기념일 지정 의미… 피해 진상 규명·보상 위해 더 노력”

    “국가기념일 지정 의미… 피해 진상 규명·보상 위해 더 노력”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10·16)로 지정됐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유신 독재에 맞서 부산과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학생들이 시작하고 시민들이 참여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이끌었지만, 전두환 정권이 이어지면서 독재의 사슬을 끊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동아대 2학년 학생이던 당시 부마민주항쟁의 불씨를 지핀 주역 중 한 명으로 수년 전부터 꾸준히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온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지난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감격스럽지만 한편으론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마민주항쟁 이듬해인 1980년 5월 검거돼 모진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40년이 지난 지금도 한쪽 무릎이 불편하다는 유 구청장은 “우리가 아픈 과거를 제대로 규명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힘줘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이 어떤 의의를 갖나.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종식을 가져온 민중항쟁으로, 그동안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 전두환 신군부에 항거한 5·18광주민주화운동,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 집권을 끝낸 6·10민주항쟁에 비해 소외돼 그 역사적 가치에 준하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이를 딛고 공식적으로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게 된 신호탄인 셈이다.” -오는 16일 첫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에 특별한 계획이 있나. “창원에서 열리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나서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진행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당시 민주항쟁에 함께했던 동지들과도 만날 계획이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기에 평소에는 만나기 쉽지 않지만 이날만큼은 다 같이 모여 회포를 풀기로 했다.” -동료들과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 소식을 듣고 어떤 얘기를 했나. “당시 부산대 학생이었던 신재식, 김종세, 정광민과 동아대 학생이었던 강명규, 이동관, 김백수 등과 가끔 안부를 묻는다. 지난달 17일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이 이뤄지면서 모처럼 연락을 나눴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젊은 날을 회상하며 그 시절 겪었던 아픔, 상처 등을 서로 위로했다. 남은 과제인 피해 진상규명과 적절한 피해자 보상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가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여전히 진상규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2010년 5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부마민주항쟁 당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했지만 전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은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13년 5월에 ‘부마항쟁보상법’(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고, 2014년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후 조사단이 내게도 여러번 찾아와 관련 내용을 조사했으나 안타깝게도 당시의 수형기록 등 관련 자료가 보존돼 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이후 조사위에서 해당 군부대를 찾아가서 가까스로 일부 자료를 찾아냈다고 들었지만 항쟁 전 과정에 대한 재조명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앞으로의 과제는.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기간이 올해 말 종료를 앞두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지난달에 ‘부마항쟁보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개정안은 부마민주항쟁의 정의를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을 전후해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항쟁 참여자의 폭도 넓혔다.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기간을 연장하고 조사권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하루빨리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이유다. 또 국가로부터 인권을 침해받고도 외려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등의 합당한 보상도 진행돼야 한다. 이 밖에도 부마민주항쟁의 위상에 걸맞은 기념관도 건립해 우리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부마민주항쟁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바로 세워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향후 헌법 개정 시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이 다른 민주화운동들과 함께 헌법 전문에 담길 수 있도록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희생정신이 후대에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서초동과 광화문… 다수결은 옳은가

    서초동과 광화문… 다수결은 옳은가

    민주주의는 만능인가/김영평, 최병선 지음/가갸날/239쪽/1만 5000원가짜 민주주의가 온다/티머시 스나이더 지음/유강은 옮김/부키/456쪽/2만원우리는 ‘민주주의’를 말할 때 흔히 링컨의 명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을 떠올리곤 한다. ‘국민’이라는 단어를 무려 세 번이나 넣어 거듭 강조하는데, 여기서 국민은 누구를 말하는가. 이 질문을 한국으로 끌고 와서,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두고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의견이 갈린 상황에서 무엇을 국민의 뜻으로 읽을 것인가. 더 많은 인원이 집회에 참석한 쪽이 국민의 뜻인가. 질문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에 관해 고민해 볼 지금, 이를 주제로 한 책 2권을 꺼내 들었다. ‘민주주의는 만능인가’는 김영평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와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가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2014년부터 공동 집필했다. 민주주의에 관해 생각해 볼 19개의 주제를 뽑아 저자 7명이 돌아가면서 서로 글을 비판하고 의견을 모았다.●자유와 권리 보장 최선은 법의 지배 저자들이 고른 19개 주제는 민주주의에 관해 우리가 가볍게 넘겼던 부분을 겨냥한다. 예컨대 우리 고교 교과서는 민주주의를 ‘국민이 국민을 지배하는 자기 지배의 원리에 기초한 정치체제´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마피아 같은 조직도 자기 지배 원리에 따라 조직을 운영한다. 저자들은 아무리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 할지라도 그 운영이 민주적이지 않다면 그 정부는 민주정부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일정한 헌법 제약 속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한정된 과업만 수행하는 정부’를 진짜 민주주의 정부라고 설명한다. 북한도 스스로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지칭하지만, 민주주의 정부라 부를 수 없는 이유다. ●삼권분립 무너지면 초법행위 나타나 저자들은 이를 ‘법의 지배’라 칭하고 민주주의의 핵심을 여기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목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이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보장책이 바로 법의 지배라는 것이다. 그리고 법의 지배를 유지하려면 입법, 행정, 사법이 철저하게 나뉜 삼권 분립 체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면 결국 초법행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런 기반하에 저자들은 ‘정당이 있어야 민주주의 국가인지’,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인지’, ‘복지국가가 민주주의의 이상향인지’ 따진다. 이어 ‘포퓰리즘이 왜 위험한지’ 또는 ‘행정부의 팽창을 어떻게 봐야 할지’, ‘정책이 여론을 따라가야 하는지’, ‘다수결이 무조건 정당한지’ 등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에도 답한다. 저자들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만능이 아니며 깨지기 쉽다. 특히 21세기 들어 여러 나라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다.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의 신간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전 세계로 확산하는 신권위주의 광풍을 설명한다. 저자는 전작 ‘폭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한 바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국민 저자는 가짜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목한다. 2000년 대통령이 된 후 개헌과 부정선거로 2012년 대통령직에 복귀한 푸틴은 파시즘 철학자 이반 일린의 사상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아 러시아 제국 복원을 꿈꾼다. 그 첫발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우크라이나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확립에 나서며 유럽연합 가입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이어 유럽연합을 해체하고자 발걸음을 옮긴다.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지도자들과 함께 가짜뉴스와 인터넷 여론 조작으로 2016년 영국의 EU 탈퇴를 부추긴다. 이어 ‘파산한 부동산 업자’인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키려고 그의 경쟁자였던 힐러리에 관한 가짜뉴스를 제작해 소셜미디어에 퍼뜨렸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가 완벽한 것 같지만, 두 권의 책은 그렇지 않음을 거듭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깨질 수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바이마르 민주정부가 탄생했지만 나치 독재정부에 권력을 넘겨준 사례가 그렇다. 우리도 1960년 4·19혁명 다음해에 바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사례가 있다. 결국 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은 국민인 셈이다. 우리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지켜봐야 민주주의를 지켜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40년 만에 불러보는 ‘그날의 함성’

    40년 만에 불러보는 ‘그날의 함성’

    ‘소위 유신헌법을 보라. 그것은 법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무모한 정치욕을 충족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1979년 10월 16일 오전 9시 40분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생 정광민(현 10·16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은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 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뿌려 부산대 시위를 촉발했다. 이른바 부마민주항쟁의 처음이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는 마산으로 번졌고 학생과 시민이 합세한 민주화 운동은 마침내 유신정권의 종말을 가져왔다. 서슬 퍼런 유신 독재정권 몰락의 결정적인 단초였던 부마민주항쟁은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우리 현대사를 장식한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국가기념일에서 제외됐다가 항쟁 40년 만인 지난달에야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오는 16일 경남 창원시에선 ‘부마 1979, 위대한 민주여정의 시작’을 주제로 정부 주관의 첫 공식 기념식이 열린다. ‘다시 시월 1979’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과 공식 국가기념일 지정을 맞아 항쟁 주역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과 증언집으로 눈길을 끈다. 닷새 동안 진행됐던 당시 항쟁의 실상과 의미, 과제까지를 꼼꼼히 수록했다. 부마항쟁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여 당시 사건과 진실을 밝히는 최초의 출간물인 셈이다. 정광민 이사장을 포함해 당시 항쟁을 이끈 주역들은 인터뷰를 통해 항쟁 발발부터 닷새간의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특히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정권에 맞섰던 10명은 당시 항쟁이 자발적 학생들의 저항운동에 도시빈민과 노동자, 자영업자 등 민중이 자연스럽게 동참해 범시민운동으로 발전했다고 강조한다. 당시 부산대 국어교육과 77학번 학생이었던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부마항쟁은 어떠한 지도부가 있거나 조직이나 단일한 주체가 뒷받침한 항쟁으로 보기 어렵다.” 책에선 시위 전개 과정이 명확하지 않은 이 항쟁의 증언들에 더해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불거진 소멸 시효도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5월 부산지법 민사6부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체포된 뒤 경찰의 가혹한 수사로 피해를 당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항쟁 관련자 6명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화강암 병풍에 새겨진 4·19혁명… 우리 사회 성찰한 시간

    [흥미진진 견문기] 화강암 병풍에 새겨진 4·19혁명… 우리 사회 성찰한 시간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친구들과 손장난을 하고 놀았던 어린 날의 추억이 아직 생생하다. 이 노래는 윤극영 선생님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반달’이라는 제목의 동요다. 우리는 도미니코 수도원을 거쳐 윤극영 가옥에 들렀는데 이곳은 선생님께서 작고했을 때까지 살던 집이라고 한다. 집안에는 선생님께서 생전에 작곡하셨던 곡들의 노랫말들이 벽 한편에 걸려 있었고 유품이 전시돼 있었다. 윤극영 선생님은 방정환 선생님과 함께 한국 어린이문화운동을 이끌었으며 색동회를 창립했다. 또 일제강점기 때 우리의 민족정신과 미풍양속이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워 ‘설날’을 시작으로 600곡 이상의 동요를 만들었다고 기록에 나와 있다. 윤극영 가옥을 지키고 관리하는 가옥지기가 ‘설날’, ‘반달’, ‘고기잡이’, ‘우산’, ‘나란히’, ‘기찻길역’, ‘어린이날 노래’ 등을 한 곡씩 불러줬는데 어렸을 때부터 즐겨 부른 동요 대부분이 선생님께서 지은 곡임을 알게 됐다. 선생님이 쓰신 곡을 잘 살펴보면 암울한 시대였음에도 노랫말이 참 밝다고 느껴졌다. 아마도 밝은 노랫말을 아이들이 부르면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바라보고 멋진 미래를 만들어달라고 노래를 통해 부탁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극영 가옥에서 나와 4·19민주묘지로 향했다. 4·19민주묘지는 1960년 4·19혁명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 분묘다. 희생자들께 감사와 추모를 올리기 위해 4월 학생혁명 기념탑 앞에서 참배를 드렸다. 화강석으로 된 병풍에는 4·19혁명 당시 모습들이 새겨져 있고 그 뒤편으로 희생자의 묘가 있다. 4·19혁명에 앞서 4월 18일에 벌인 고려대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은 4·19 총궐기의 기폭제가 됐다고 한다. 우리는 4·19민주묘지에서 북한산 둘레길 2코스를 걸어 유림선생 묘역에 도착했고 옆에 있는 근현대사기념관을 끝으로 답사를 마쳤다.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우리 사회에 정의는 살아 있는가’라는 고민과 의심이 많았던 시기에 이번 답사는 나에 대한, 또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을 해볼 수 있게 한 뜻 깊은 시간이었다. 원서영 고려대 지리교육과 3학년
  • [미래유산 톡톡] 우울했던 1920년대… ‘반달 할아버지’ 동요는 한줄기 희망

    [미래유산 톡톡] 우울했던 1920년대… ‘반달 할아버지’ 동요는 한줄기 희망

    윤극영 가옥은 서울미래유산 제1호다. 192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듯 그 당시 동요는 애상적 어조가 주류를 이뤘다. 그런 분위기를 탈피하고자 밝고 긍정적인 측면의 아동상을 반영하는 데 주력했던 윤극영 선생님의 ‘반달’은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로 유명하다. 그러나 수채화 같은 분위기의 ‘반달’은 가평으로 시집간 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맏누이에 대한 상실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누님의 부고를 접한 윤극영은 그때 떠오른 초승달을 보고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던 찰나 떠올렸다. 피아노로 옮겨 불렀을 때 너무나도 슬펐다고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염원으로만 표현됐던 작품의 창작 동기를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졌던 선생님의 동요 외에 미공개된 동요 ‘연못속’, ‘기러기’, ‘앞으로갓’, ‘담모통이’ 4곡은 만주 용정에 거주하던 1933년에 만들어진 노래들로 선생님의 연구에서 의미를 지니는 곡들이다. 암울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연못속’은 율동을 어떻게 가미해서 불러야 하는지가 설명된 노래로, 연못 속에서 헤엄치는 아기붕어의 모습을 의인화해 명랑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기러기’ 역시 ‘연못속’ 작품처럼 기러기의 모습을 의인화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외롭고 서러운 새’라는 표현은 기러기의 힘든 마음을 살필 수 있는 대목으로, 타향살이에 지친 자신과 조국의 상황을 담고 있다. ‘앞으로 갓’과 ‘담모통이’는 일상적이고 해학적이며 흥미를 유도하는 작품으로 대중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지녔다. 선생님의 동요는 당시의 우울했던 시대의 한줄기 희망과 같은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 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근현대사 기념관은 독립, 민주화, 통일에 기여했던 많은 분들의 묘소와 생가가 자리잡은 강북구 초대길에 있다. 임시정부수립과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 동학혁명부터 3·1운동,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근현대사의 역사를 조망해 놓은 근현대사 기념관은 의미가 남다르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부마민주항쟁’ 10월16일 40년 만에 국가기념일 지정

    ‘부마민주항쟁’ 10월16일 40년 만에 국가기념일 지정

    1979년 10월 부산과 창원 일대 시민들이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던 부마 민주항쟁 발생일이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행정안전부는 17일 국무회의에서 부마 민주항쟁이 시작된 1979년 10월16일을 기리고자 10월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안’을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0·16 민주항쟁 기념일은 51번째 국가기념일이 됐다. 행안부는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기념하고자 최초 발생일인 10월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40주년을 맞은 올해부터 정부 주관으로 기념행사를 진행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부산과 창원 지역의 부마항쟁 기념사업 관련 단체들이 따로 기념식을 열었다. 국가기념일로 처음 치르는 올해 기념식은 10월16일 경남 창원시에서 ‘부마1979, 위대한 민주여정의 시작’을 주제로 열린다. 구체적인 장소는 이달 안으로 확정된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에 저항해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10월16일 부산에서 5000여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시민들이 합세해 유신헌법과 긴급 발동 등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다.10월18일에는 마산, 창원, 진주 지역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했다. 당시 정부는 계엄령과 위수령을 내려 1천560여명을 연행하고 120여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이후 부마항쟁 발생 열흘 만인 10월26일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부마사태의 수습책을 둘러싸고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심한 언쟁을 벌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차 실장을 총으로 숨지게 함으로써 유신체제는 막을 내리게 됐다. 시위 기간은 짧았지만 군사정권 철권통치 18년을 끝내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민주화운동 가운데 하나로 불리고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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