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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펠리페 스페인 국왕, 부친에 주어지던 年 배당금 2억 7000만원 박탈

    펠리페 스페인 국왕, 부친에 주어지던 年 배당금 2억 7000만원 박탈

    펠리페 6세(52) 스페인 국왕이 지난 2014년 스캔들에 연루돼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안 카를로스(83) 전 국왕에게 주어지던 왕실 배당금 혜택을 박탈했다. 왕실은 15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발표해 매년 전 국왕에게 지급하던 19만 4000 유로(약 2억 6340만원)의 왕실 배당금을 더 이상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전 국왕이 고령에도 여전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한다는 지적이 잇따른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39년 왕좌에 앉았던 카를로스 전 국왕은 상당한 재산을 은닉한 혐의로 스위스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현지 언론들은 전 국왕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페이퍼 컴퍼니 계좌를 통해 1억 달러의 뇌물을 챙긴 것으로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물론 왕실은 이런 의혹 제기에 가타부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스페인 왕실 사정에 정통한 이들은 아들이 국왕이 아버지의 불미스러운 일들에 얽히고 싶지 않아 ‘거리 두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은 스페인 내전을 승리한 뒤 파시스트 독재자로 36년을 군림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1975년 숨지자 이틀 만에 왕위에 올랐다. 프랑코 지지자들은 그가 절대군주제를 지켜줄 것을 바랐지만 입헌 군주제를 받아들여 의회에 권력과 권한을 상당 부분 넘겨주고 자신은 상징적 존재로 물러섰다. 카탈루냐와 바스크 같은 독립하려는 민족들을 다독여 진정시켰고, 1981년 군부 쿠데타를 사전에 와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몇년 전까지 국민들에게 많은 신망을 얻었으나 2012년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코끼리 사냥을 즐기는 등 사치를 누렸고, 막내딸 크리스티나 공주와 남편 이나키 우르단가린 부부의 부패 혐의에 연루돼 존경을 잃어 결국 선위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열아홉 빌리 아일리시 ‘4관왕’… 그래미, 다양성 품다

    열아홉 빌리 아일리시 ‘4관왕’… 그래미, 다양성 품다

    39년 만에 4개 본상 석권·최연소 신화도 ‘Z세대’ 불안·우울 녹여… 8월 23일 내한 주요부문 후보 확대·심사위원 충원 변화 ‘올해의 노래’ 후보 8명 중 여성 7명 올라 BTS 한국팀 첫 공연 “내년엔 후보 목표”열아홉 살 신예 빌리 아일리시가 그래미 시상식의 새 역사를 썼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62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아일리시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최고의 신인’ 등 주요 4개 부문을 싹쓸이했다. 4개 부문 석권은 1981년 크리스토퍼 크로스 이후 39년 만이다. 21세에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최연소 기록도 깼다. 아일리시는 2019년 가장 핫한 싱어송라이터였다. 지난해 3월 발매한 첫 정규 앨범 ‘웬 위 올 폴 어슬립, 웨어 두 위 고?’ 앨범이 빌보드 200 정상에 올랐고, 수록곡 ‘배드 가이’는 세계 차트를 휩쓸었다. ‘10대 팝스타’ 하면 통상 떠오르는 밝은 이미지를 정면으로 깨뜨리는 그의 음악은 불안한 ‘Z세대’(10~20대)의 정서를 대변하듯 몽환적이면서도 나른하다. 아일리시 자신이 우울증을 앓으며 겪은 슬픈 감정과 자살 충동 등을 가사와 멜로디에 녹였기 때문이다. 앨범 프로듀싱을 함께한 친오빠 피니즈 오코넬과 트로피를 받은 아일리시는 “그래미는 그동안 TV로만 봤는데 무척 영광이다. 모든 팬에게 감사하다”며 감격했다. 아일리시는 오는 8월 23일 내한해 한국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아일리시와 함께 여성 신인 아티스트 열풍을 주도하며 8개 부문 후보로 올랐던 리조는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래미 시상식은 세계 최대 규모이자 가장 권위 있는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꼽히지만 보수적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받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주요 부문 후보를 8명으로 늘리고 심사위원을 충원하는 등 변화를 시도해 왔다. 올해는 ‘올해의 노래’ 후보 8명 중 7명에 여성이 이름을 올리는 등 성별, 신인, 인종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시상식 생중계 해설을 맡은 임진모 평론가는 “올해 그래미는 사실상 첫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상식은 차분한 분위기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넘나들었다. 2년째 진행을 맡은 얼리샤 키스는 “영웅을 잃었다”며 이날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했고, 공연장에는 브라이언트의 사진과 유니폼이 걸렸다. 지난해 3월 총격으로 피살된 래퍼 닙시 허슬에 대한 추모도 이어졌다. 믹 딜, DJ 칼리드, 존 레전드 등이 함께 그를 기리는 합동 공연을 선보였다.한국 뮤지션으로는 처음으로 공연자로 참여해 2년 연속 그래미 무대를 밟은 방탄소년단(BTS)은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빌보드 19주 1위를 기록한 릴 나스 엑스의 ‘올드 타운 로드’ 무대에서 빌리 레이 사이러스, 디플로, 메이슨 램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난해 리더 RM은 이 곡의 리믹스 버전 ‘서울 타운 로드’의 랩 피처링을 하기도 했다. RM은 공연 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큰 목표는 새 앨범”이라며 “만약 내년에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면 그게 가장 큰 목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를 마친 뒤에는 “지난해 꼭 돌아오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원하던 게 이뤄져 기쁘다”고 소감을 남겼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최다승 도전 조코비치·세리나, 최대 변수는 주심

    최다승 도전 조코비치·세리나, 최대 변수는 주심

    역대 최악의 산불에 시달리고 있는 호주의 멜버른에서 20일 개막하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테니스대회는 ‘주심’(체어 엄파이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대회조직위원회는 18일 산불에 따른 이번 대회 공기 청정도 관련 규정을 발표했다. 조직위는 “공기 상태를 점검, 1~5까지 수치로 매긴 뒤 5까지 수치가 떨어질 경우 경기를 중단할 계획”이라면서 “단 타이브레이크 도중이면 끝날 때까지, 세트 도중이면 짝수 게임을 마친 뒤 경기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의료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은 주심의 재량으로 경기 중단 여부를 정하도록 했다. 경기 리듬이 특히 중요한 테니스 경기에서는 코트와 주변 상황에 따른 주심의 판단이 어느 다른 경기보다 중요하다. 2012년 5월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였던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를 세트 2-1로 리드하고 있던 네 번쩨 세트 도중 주심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1세트 막판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졌기 때문이었다. 야간 경기를 치르지 않는 프랑스오픈의 특성상 경기는 39년 만에 중단됐고 결승은 결국 다음날로 순연됐다. 1, 2세트를 거푸 따낸 나달을 상대로 조코비치는 3세트를 만회하고 4세트도 2-1로 앞서며 기세를 올리던 중이었지만 경기 중단으로 리듬을 잃어 결국은 ‘1박2일’ 결승에서 1-3으로 졌다. 물이 불로 바뀌었을 뿐, 올해 호주오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올해 호주오픈 최다승(8승)을 벼르는 조코비치, 여자선수 메이저대회 최다승(24승)을 겨냥한 세리나 윌리엄스(미국)에게도 변수 중의 하나는 산불과 스모그이지만 더 중요한 건 경기 중단 권한을 어느 때보다 전폭적으로 위임받은 심판의 합리적인(?) 판단이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8번째 겨냥한 조코비치도, 24번째 메이저 우승 노리는 세리나도 .. 문제는 주심

    8번째 겨냥한 조코비치도, 24번째 메이저 우승 노리는 세리나도 .. 문제는 주심

    경기 중 공기 질 1~5단계 체크해 떨어질 경우 언제라도 경기 중단하도록 남자단식 권순우 21일 남자단식 1회전 .. 한나래 개막 첫날 여자단식 128강전 역대 최악의 산불에 시달리고 있는 호주의 멜버른에서 20일 개막하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테니스대회는 ‘주심(체어 엄파이어)’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중요해졌다.대회조직위원회는 18일 산불에 따른 이번 대회 공기 청정도 관련 규정을 발표했다. 조직위는 “공기 상태를 점검, 1~5까지 수치로 매긴 뒤 5까지 수치가 떨어질 경우 경기를 중단할 계획”이라면서 “단 타이브레이크 도중이면 끝날 때까지, 세트 도중이면 짝수 게임을 마친 뒤 경기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의료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은 주심의 재량으로 경기 중단 여부를 정하도록 했다. 경기 리듬이 특히 중요한 테니스 경기에서는 코트와 주변 상황에 따른 주심의 판단이 어느 다른 경기보다 중요하다. 2012년 5월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였던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를 세트 2-1로 리드하고 있던 네 번쩨 세트 도중 주심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1세트 막판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졌기 때문이었다. 야간경기를 치르지 않는 프랑스오픈의 특성상 경기는 39년 만에 중단됐고 결승은 결국 다음 날로 순연됐다. 1, 2세트를 거푸 따낸 나달을 상대로 조코비치는 3세트를 만회하고 4세트도 2-1로 앞서며 기세를 올리던 중이었지만 경기 중단으로 리듬을 잃어 결국은 ‘1박2일’ 결승에서 1-3으로 졌다. 물이 불로 바뀌었을 뿐, 올해 호주오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말한 법은 없다.올해 호주오픈 최다승(8승)을 벼르는 조코비치, 여자선수 메이저대회 최다승(24승)을 겨냥한 세리나 윌리엄스(미국)에게도 변수 중의 하나는 산불과 스모그지만 더 중요한 건 경기 중단 권한을 어느때보다 전폭적으로 위임받은 심판의 합리적인(?) 판단이다. 한편, 한국선수로는 유일하게 남자 단식에 나서는 권순우(23)는 21일 니콜로즈 바실라시빌리(조지아)와 1회전을 치른다. 여자 단식의 한나래는 20일 타마라 지단세크(슬로베니아)를 상대로 14년 4개월 만의 한국 여자선수 메이저대회 2회전 진출을 노크한다.
  • 세금으로 취업자 30만명 반등했지만… 40대·제조업 ‘허리’ 못펴

    세금으로 취업자 30만명 반등했지만… 40대·제조업 ‘허리’ 못펴

    증가폭 3배 늘어… 청년실업률 6년래 최저 홍남기 “3대 지표 개선… 고용 질도 좋아져” 60세 이상 노인일자리 37만 7000명 증가 40대 16만 2000명 줄어… 28년만에 최악 주력 제조업 8만명↓ 초단기는 30만명↑ 지난해 연간 취업자 증가 폭이 2년 만에 30만명대를 회복하고 고용률도 60.9%로 2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우리 경제의 허리인 40대와 제조업의 고용 한파는 심각했다. 정부는 일자리 ‘반등의 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세금을 투입한 노인·단기 일자리의 힘이 컸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이 15일 발표한 ‘2019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취업자는 2712만 3000명으로 전년보다 30만 1000명 증가했다. 2018년 증가 폭(9만 7000명)의 3배를 웃도는 수치다.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30만명 이상 늘었고 12월에는 51만 6000명이나 증가한 데 힘입은 것이다.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인 고용률은 2018년보다 0.2% 포인트 상승한 60.9%로 1997년 이후 가장 높았다. 15~64세 고용률은 66.8%로 1989년 집계 이래 최고였다. 지난해 실업자는 106만 300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명 감소했고 실업률은 3.8%로 2018년과 같은 수준이다.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8.9%로 2013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취업자 증가, 고용률, 실업 등 3대 고용지표가 모두 개선되면서 양적 측면에서 V자형 반등에 성공했다”면서 “고용 여건 전반의 뚜렷한 개선이 이뤄지며 고용의 질 성과도 확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 증가 폭은 30만 1000명이었지만 60세 이상 일자리 증가 폭이 37만 7000명으로 196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컸다. 어린이 등하교 도우미, 골목길 쓰레기 줍기 등 재정을 투입해 만든 노인 일자리의 효과로 풀이된다. 통계청 관계자도 “지난해 정부 재정일자리가 11월로 마감될 예정이었지만 하반기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12월까지 확장됐고 2018년 기저효과도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40대 취업자는 전년 대비 16만 2000명 줄어 1991년(-26만 6000명) 이후 28년 만에 감소 폭이 가장 컸다. 30대 취업자도 전년보다 5만 3000명 줄었다. 고용의 질이 높아졌다는 근거도 희박하다. 제조업(-8만 1000명), 도·소매업(-6만명), 금융·보험업(-4만명) 등이 감소했고 주력산업인 제조업은 지난달까지 21개월째 감소세다. 국민 세금이 투입된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은 16만명 늘었고 숙박 및 음식점업도 6만 1000명 증가했다. 지난해 1~17시간 초단기 일자리 증가 폭은 30만 1000명으로 1980년 통계 작성 이래 39년 만에 가장 컸다. 지난해 고용원을 두지 않은 ‘나홀로 자영업자’는 전년보다 8만 1000명 증가했다.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도 ▲40대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 ▲직업훈련 강화 ▲40대 창업 지원 등을 포함한 ‘40대 맞춤형 일자리 대책’을 3월에 발표할 계획이다. 40대 구직자 채용 기업에 고용촉진장려금을 지급하고 40대가 창업한 기업에 세무·회계 부문을 지원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일자리를 많이 늘려 놓은 상태에서 양질의 민간 일자리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40대 일자리는 서비스업보다 제조업 종사자가 기술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슈가맨3’ 정여진X최불암 ‘아빠의 말씀’ 무대에 유재석 “울컥”

    ‘슈가맨3’ 정여진X최불암 ‘아빠의 말씀’ 무대에 유재석 “울컥”

    39년 전 배우 최불암과 함께 노래 ‘아빠의 말씀’을 불렀던 소녀 정여진이 중년이 되어 ‘슈가맨3’에 등장했다. 3일 방송된 JTBC 예능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3’(이하 ‘슈가맨3’)에는 최불암이 재석팀 슈가송의 제보자로 등장했다. 최불암은 ‘아빠의 말씀’에 대해 “오래됐지만,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노래다. 오랜 세월 동안 정여진이 어떻게 변했을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후 스튜디오에선 39년 전 ‘아빠의 말씀’을 부르는 어린 정여진과 젊은 시절 최불암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재생됐다. 순수한 어린아이가 질문을 하고 아빠가 답하는 듀엣곡 ‘아빠의 말씀’이 흘러나오자 스튜디오는 추억으로 물들었다. 유재석은 “울컥하네”라면서 감정에 복받치는 모습을 보였다. 영상이 꺼지자 슈가맨 정여진이 직접 등장해 ‘아빠의 말씀’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에서 ‘언제 어른이 되냐’고 묻던 아이가 중년이 된 모습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이어 최불암도 무대에 등장해 39년 만에 만난 정여진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출연진과 객석에선 감동의 눈물을 훔치는 모습들이 포착됐다. 무대를 마친 후 최불암은 “속에서 무언가 꿈틀하고 뭉클한 느낌이다”라며 “여진이가 이렇게 성장했구나. 어른이 됐다”고 말했다. 정여진은 웃으며 “오래전에 어른이 됐다. 진짜 어른이 돼 최불암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돼서 감동”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정여진은 노래를 부르게 된 이유에 대해 “작곡가였던 아버지께서 이 곡을 편곡했다. 원래는 아버지와 부르려고 했는데 상업적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국민 아버지인 최불암 선생님을 섭외했다”고 밝혔다. 최불암은 “이 곡 원곡 가수가 내가 동경했던 앤서니 퀸이어서 수락했다”며 “또 다른 이유는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금동이(임호)를 우리 집으로 입양했는데, 내가 한 게 아니라 작가가 써준 것 뿐인데 세상 사람들의 칭찬이 전부 나에게 오더라. 그래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제안을 받았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정여진은 그동안 다양한 CM송과 애니메이션 ‘개구리 왕눈이’ ‘요술공주 밍키’ ‘호호 아줌마’ ‘달려라 하니’ OST 등 무려 3000곡 이상을 부른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번엔 뼈라도 찾았으면” 5·18 미성년 행불 가족 ‘희망의 끈’ 39년

    “이번엔 뼈라도 찾았으면” 5·18 미성년 행불 가족 ‘희망의 끈’ 39년

    “빈 땅을 본께 속이 문드러진다 안하요. 뉴스보고 바로 왔는디….” 지난 21일 이귀복(83)씨는 옛 광주교도소로 미친듯이 달려갔다.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교도소 부지에서 신원 미상의 유골들이 무더기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안타깝지만 유골은 볼 수 없었다. 1차 감식을 위해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진 뒤였다. 1980년 5월 당시 7살짜리 아들 이창현군이 사라진 뒤부터 아버지는 39년째 이렇게 산다. 광주교육청에 따르면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사이에 희생된 초·중·고등학생 수는 18명이다. 옛 광주교도소 부지의 무연고자 공동묘지에서 지난 19일 신원 미상의 유골 40여구가 발견됐다. 아이로 추정되는 유골도 나왔다. 이곳은 전부터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계엄군에 의해 암매장된 장소로 지목됐다. 단정할 수는 없다지만 유골이 5·18 행방불명자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23일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한 5·18 행방불명자 가족들은 그렇게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휴교령이 내려졌던 1980년 5월 19일 창현군은 집을 나갔다. 일을 마치고 온 어머니는 저녁 때까지 창현군이 돌아오지 않자 광주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아들을 찾고자 아버지도 광주 시내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소식조차 알 수 없었다. “뼈라도 찾아 보겠다고 전국 안 간 데가 없지요. 5·18 행방불명자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리만 나오면 무조건 달려갔으니까.” 실종 10년째인 1989년 이씨는 5·18 유족회가 발간한 책자에서 아들의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 속 아들은 총상을 입은 채 숨져 있었다. 창현군은 1994년 5·18 행방불명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시신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 7남매 중 장남인 남진현(77)씨도 1980년 5월 22일 이후로 지금까지 막내동생 남현규(당시 9살)군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나간 현규군이 돌아오지 않자 온 가족이 막내를 찾아 나섰다. 전남도청과 병원 등을 돌아다녔지만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군용 트럭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가는 모습을 봤다는 아버지 친구의 증언이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남씨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네 동생 현규를 꼭 찾아야 한다’, ‘이대로는 억울해 눈을 못 감겠다’고 자주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현규군은 역시 지난해 말 5·18 행방불명자로 인정됐다. 남씨는 이번에 발견된 유골들이 5·18 행방불명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교도소 공동묘지에 시신을 묻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면서 “민간인은 어차피 못 들어가고. 계엄군이 5·18 희생자들 시신을 매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내 아들이었으면 하지만 한편으론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다. 다만 유골이 누군가의 잃어버린 가족이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광주시가 5·18 행방불명자로 인정한 경우는 84명이다. 이 중 6명은 실종자 가족 유전자(DNA)와 분석해 신원을 확인했으나 남은 78명은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다. 158명은 행방불명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5·18참여한 60대 39년만에 무죄 판결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군법회의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은 60대가 39년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무신)는 12일 소요와 계엄법 위반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받은 김모(61) 씨에 대한 재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전교사계엄보통군법회의는 1980년 10월 24일 김씨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김씨의 항소에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는 1980년 12월 29일 원심판결을 깨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검사는 지난해 11월14일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으며, 법원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재판부는 “김 씨의 행위는 시기·동기·목적·대상·사용수단·결과 등에 비춰 볼 때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 및 1980년 5·18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 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헌법의 존립과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다”고 판단했다. 이어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에 해당, 범죄가 되지 않는 행위다.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대학생 신분이던 1980년 5월 22일~25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연일 이어지던 반정부 시민궐기대회장에 참석하는가 하면 전남도청을 점거하는 등 광주 일원의 평온을 해함과 동시에 불법 시위를 한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사장님이 미쳤어요…송년 파티서 120억원 깜짝 보너스 쏜 美 회사

    사장님이 미쳤어요…송년 파티서 120억원 깜짝 보너스 쏜 美 회사

    미국의 한 기업이 직원들에게 총 1000만 달러의 깜짝 보너스를 쐈다. 10일(현지시간) CNN 보도에 따르면 미 메릴랜드 주에 본사를 둔 ‘세인트존 부동산’ 측은 7일 열린 송년 파티에서 198명의 직원에게 총 1000만 달러, 우리 돈 119억 2400만 원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회사 사장인 로렌스 메이크랜츠는 “이달 초 우리 회사는 2000만 평방 피트(약 185만8000㎡)의 부동산 개발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라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쓴 모든 직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보너스는 근속연수에 따라 적게는 100달러(11만 9300원), 많게는 27만 달러(3억 2211만 원)까지 지급됐다. 사측은 이제 막 입사해 아직 업무에 투입되지 않은 신입직원에게 100달러를 지급했으며, 39년 근속한 정비사 한 명에게 27만 달러가 돌아갔다고 밝혔다. 이 직원은 38년 근속한 사장보다 더 많은 보너스를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치 못한 깜짝 보너스에 놀란 직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웃으며 어쩔 줄을 몰랐다. 14년간 회사에 몸담은 스테파니 리지웨이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라면서 “아직도 쇼크 상태다.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라고 기뻐했다. 그녀는 보너스를 자녀 학자금에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 급여 및 복리후생 담담 멜리사 알레만도 “빨간 봉투를 열고 금액을 확인한 뒤 숨이 안 쉬어졌다. 19년간 이 회사에서 일했는데 마침내 영화를 완성한 것 같다”라며 아이처럼 좋아했다.사장은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놀라운 장면이었다. 모두 비명을 지르고 울고 웃고 껴안고 감정에 북받쳐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은 연말 보너스로 신용카드 대금, 주택담보대출, 학자금 대출 등 다양한 채무를 청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송년 파티를 위해 사측은 전국 각지의 8개 지사 직원과 손님에게 드는 항공료와 호텔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보너스를 지급하려면 모두가 파티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장은 "파티에 참석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적은 이메일을 미리 발송했다. 오지 않으면 무언가 큰 일이 날 것만 같은 암시를 줬다"라고 웃어 보였다.메이크랜츠 사장은 “우리 직원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직원은 회사 성공의 기반이자 이유이다. 그들에게 감사를 표할 방법을 고민했는데 성공한 것 같다”라며 뿌듯해했다. 보너스 지급 후 직원들이 퇴사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우려를 했다는 그는 오히려 사기가 진작된 직원들이 새로운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서 고맙고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포토] 軍 보안사가 찍은 ‘5·18 광주’ 사진 39년 만에 공개

    [포토] 軍 보안사가 찍은 ‘5·18 광주’ 사진 39년 만에 공개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26일 서울 여의도 정론관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령부가 정보 활동을 위해 채증한 사진첩 13권(중복 포함 사진 1769장)을 공개했다. 박 의원은 국정감사 당시 이 사진첩의 존재를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공개를 촉구해 왔으며 국가기록원에서 해당 사진첩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층 석탑, 5칸 대광보전, 2층 대웅보전… 입체미 입은 산사

    5층 석탑, 5칸 대광보전, 2층 대웅보전… 입체미 입은 산사

    2018년, 7개 사찰을 묶은 ‘한국의 산지승원’이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수천개의 불교 사찰 가운데 이들은 건축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도 뚜렷하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충남 공주의 마곡사는 누가 언제 설립했는지, 또 어떻게 변해 왔는지 역사가 명확하지 않다. 반면 다른 6개 사찰의 중흥조는 자장율사(통도사), 의상대사(부석사와 봉정사), 진표율사(법주사), 대각국사(선암사), 서산대사(대흥사) 등 한국 불교 사상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다. 불명확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마곡사의 가람배치는 매우 창의적이다. 또한 원초적 모습의 영산전, 측면이 정면인 독특한 대광보전, 희귀한 2층 전각인 대웅보전 등 독특한 건물로 가득하다.●수평으로 늘리고 수직으로 중첩되고 절 이름의 유래도 석연치 않다. 고려 중기에 이 절을 중창할 때 신도들이 밭의 삼(마)과 같이 많아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 이 절 이전에 마씨들의 마을이 있었다는 설 등 종교시설의 유래치고는 유치할 정도다. 비교적 믿고 싶은 설은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선승이었던 마곡보철의 이름을 땄다는 것이다. 중국 선불교를 일으킨 이는 육조혜능이고, 그의 법맥은 남악회양을 거쳐 마조도일 그리고 마곡보철에 이른다. 신라 말 낭혜화상 무염은 당나라로 유학해 마곡보철의 제자가 됐다. 보철이 혜능의 증손 제자이니 무염은 고손인 셈이다. 무염은 귀국해 보령에 성주사를 세우고 성주산문을 열었다. 인근인 공주 일대는 성주산문의 권역이 됐기에, 이 산문 정통성의 뿌리인 마곡의 이름을 따 절을 세웠을 법하다. 현재 마곡사 가람은 태극 모양으로 휘돌아 흐르는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두 곳에 조성됐다. 남쪽은 영산전이, 북쪽은 대광보전이 중심 전각이 된다. 신라 말 주산인 태화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곳에 처음의 가람을 세웠다. 지금의 영산전이 있는 남쪽 가람이고, 그저 지역의 작고 소박한 사찰이었다. 한때 폐사가 됐던 마곡사는 고려 중기에 대대적으로 부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밭의 삼과 같이 신도가 많이 모였다니, 절을 크게 확장해야 했다. 개울 남쪽은 땅이 좁아 개울 건너 북쪽 너른 터에 큰 가람을 세우게 된다. 현재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있는 곳이다.확장에는 성공했지만 큰 문제가 발생했다. 개울로 나뉜 두 개의 가람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가. 다리만 놓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기존의 남가람과 새로운 북가람은 산에 가려 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강력한 진입로를 만들어 두 가람을 연결하는 수였다. 영산전 영역 바로 앞에 해탈문을 세우고 그 뒤로 천왕문을 세웠다. 두 개의 문이 겹쳐지면 길이 만들어진다. 그 연장선 위에 극락교를 세워 개울을 건넌다. 남가람에서 북가람으로 향하는 길은 휘어져 있다. 그만큼 연결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극락교를 지나도 북가람의 모퉁이에 다다를 뿐이다. 북가람의 중심에는 5층탑과 대광보전이 놓이고, 그 뒤로 대웅보전이 솟아 있다. 가장 뒤의 대웅보전은 산등성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2층으로 만들었다. 그래야만 대광보전 너머 수직적으로 중첩돼 보이기 때문이다. 마곡사는 가람 확장에 매우 불리한 지형을 가졌다. 개울이 가로막고, 남가람과 북가람의 산은 거의 직각으로 놓여 규칙적인 가람배치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럼에도 문들과 다리를 잇는 강력한 길이 개울을 건너고, 5층탑의 상승감이 수평적인 5칸 대광보전으로 하강하다가 다시 뒤의 대웅보전으로 솟아오른다. 건축적 창의성으로 지형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두 개의 가람을 하나로 통합해 입체적인 건축 경관을 얻었다. 더 나아가 산과 개울이라는 자연과 건축을 일체화했다.●5층 석탑, 불교적 불개토풍 북가람의 중심에 서 있는 5층석탑에 주목하자. 이 석탑은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전형적 비례의 고려시대 탑이다. 2층 몸돌 4면에 부처상을 새겨 마치 사방불탑 같은 성격도 갖는다. 더욱 특이한 것은 가장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이국적인 탑이다. 보통 한국 탑은 원판과 구슬 모양 석재들을 겹쳐 꽂아 가장 위의 상륜부를 이룬다. 그러나 이 탑의 상륜부엔 이른바 ‘풍마동’이라는 특수한 청동 구조물을 얹었다. 티베트 불교의 불탑 모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 산속에서 발달한 밀교의 일종으로,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국교로 삼았던 종교다. 일명 라마교라 하고 현재도 중요한 중국 불교의 종파다. 베이징 중심부에 있는 묘응사 백탑은 원나라 때 세운 전형적인 라마교의 탑이다. 마치 하나의 봉우리가 솟은 것 같은 높이 50.9m의 이 거대한 탑은 여전히 중요한 베이징의 랜드마크다. 이 백탑을 그대로 축소하면 1.8m 크기의 마곡사 풍마동이 된다. 재료만 청동으로 바뀌었을 뿐 놀랍게도 닮은꼴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청동의 세공기술 또한 고려와는 다른 이국적인 솜씨다. 원의 간섭기인 13세기에 유입된 수입 완제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강력했던 몽골제국이 고려를 침략했다. 결국 항복하고 말았지만 고려는 귀중한 강화조건을 관철했다. “불개토풍(不改土風)-의관은 고려의 풍습을 따른다.” 의관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몽골의 사위 나라가 됐지만 고려의 언어와 영토와 왕실은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호복과 변발을 강요당하고, 나라 자체가 없어진 유라시아의 대부분 정복국에 비해 파격적인 대우였다. 6차례의 대대적 침략에도 39년간 끈질기게 항쟁한 대가였다. 그러나 한 세기에 가까운 원간섭기에 온전한 토풍을 지키기는 힘들었다. 제국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와 고려의 유행을 바꿨고, 자발적 친원 행위도 무수하게 벌어졌다. 종교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개성의 대형 사찰들은 원황실을 축원하는 노골적 부역을 자원했다. 개성 근처에 세워졌던 경천사 석탑은 그 명확한 증거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1층 홀에 전시된 이 탑은 강융이라는 친원 귀족이 원나라의 승상 탈탈을 위해 원나라 장인들을 데려와 만든 원나라풍의 기념물이다. 그러나 고려 불교의 수백년 전통은 밀교적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라마교가 종파로서 자리잡을 여지를 주지 않았다. 마곡사 5층탑은 고려의 몸통에 몽골의 머리를 얹고 있다. 이 이상한 형상이 바로 당시의 불교적 ‘불개토풍’이었다. 모자를 바꿨지만 몸통은 바꾸지 않았다.●다시 개울을 따르고 건너 대웅보전에서 일단 멈췄던 마곡사는 현대에 들어 다시 확장의 역사를 시작했다. 마곡천을 건너 성보박물관과 템플스테이 건물을 지었다. 상류로 향하다 다시 개울을 건너면 현대적인 일군의 건물들이 나타난다. 한국문화연수원, 2009년에 전통불교문화원으로 지은 수련원 건물이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야심작이다. 전통적 내용을 현대적 그릇에 담겠다는 포부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원래 이 땅은 17세기 마곡사 중창을 위해 기와를 굽던 가마터였다. 조사 결과 여러 곳의 가마터가 발굴됐다. 그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가운데에 운동장을 만들었고 남쪽에 숙박동을, 북쪽에 교육동을 지었다. 개울을 경계로 두 가람이 들어선 마곡사의 배치와 유사한 환경이고 유사한 해법이다. 선방, 다도실, 지대방, 강당 등을 수용한 교육동은 하나의 건물이면서도 여러 지붕이 중첩된 모습이다. 마치 여러 동의 기와집이 모여 하나의 가람을 이루는 모습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배열된 숙박동은 현대판 요사채라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는 배흘림 나무 기둥도, 날렵한 처마 선도 없다. 콘크리트 벽과 금속제 경사 지붕만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조형이다. 그럼에도 기와지붕 없는 한옥이고, 중첩된 전통 가람의 배치법이다. 마곡보철이 스승 마조를 따라가다가 물었다. “어떤 것이 큰 열반입니까?” 마조가 답했다. “급하구나.” 보철이 다시 물었다. “급한 것은 무엇입니까?” “물을 살펴보아라.” 문헌기록이 없는 마곡사에서 가람배치의 비밀을 풀고, 5층탑 풍마동의 역사를 밝히려 추정과 상상에 빠져 있었네. 아, 조급했구나! 그저 마곡천의 휘어짐을 살피고 그 흐름에 발길을 따르면 되는 것을. 물길은 장애물이 아니라 건축의 무한한 생명선이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5층 석탑, 5칸 대적광전, 2층 대웅보전… 입체미 입은 산사

    5층 석탑, 5칸 대적광전, 2층 대웅보전… 입체미 입은 산사

    2018년, 7개 사찰을 묶은 ‘한국의 산지승원’이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수천개의 불교 사찰 가운데 이들은 건축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도 뚜렷하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충남 공주의 마곡사는 누가 언제 설립했는지, 또 어떻게 변해 왔는지 역사가 명확하지 않다. 반면 다른 6개 사찰의 개산조는 자장율사(통도사), 의상대사(부석사와 봉정사), 진표율사(법주사), 대각국사(선암사), 서산대사(대흥사) 등 한국 불교 사상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다. 불명확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마곡사의 가람배치는 매우 창의적이다. 또한 원초적 모습의 영산전, 측면이 정면인 독특한 대적광전, 희귀한 2층 전각인 대웅보전 등 독특한 건물로 가득하다.●수평으로 늘리고 수직으로 중첩되고 절 이름의 유래도 석연치 않다. 고려 중기에 이 절을 중창할 때 신도들이 밭의 삼(마)과 같이 많아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 이 절 이전에 마씨들의 마을이 있었다는 설 등 종교시설의 유래치고는 유치할 정도다. 비교적 믿고 싶은 설은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선승이었던 마곡보철의 이름을 땄다는 것이다. 중국 선불교를 일으킨 이는 육조혜능이고, 그의 법맥은 남악회양을 거쳐 마조도일 그리고 마곡보철에 이른다. 신라 말 낭혜화상 무염은 당나라로 유학해 마곡보철의 제자가 됐다. 보철이 혜능의 증손 제자이니 무염은 고손인 셈이다. 무염은 귀국해 보령에 성주사를 세우고 성주산문을 열었다. 인근인 공주 일대는 성주산문의 권역이 됐기에, 이 산문 정통성의 뿌리인 마곡의 이름을 따 절을 세웠을 법하다. 현재 마곡사 가람은 태극 모양으로 휘돌아 흐르는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두 곳에 조성됐다. 남쪽은 영산전이, 북쪽은 대광보전이 중심 전각이 된다. 신라 말 주산인 태화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곳에 처음의 가람을 세웠다. 지금의 영산전이 있는 남쪽 가람이고, 그저 지역의 작고 소박한 사찰이었다. 한때 폐사가 됐던 마곡사는 고려 중기에 대대적으로 부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밭의 삼과 같이 신도가 많이 모였다니, 절을 크게 확장해야 했다. 개울 남쪽은 땅이 좁아 개울 건너 북쪽 너른 터에 큰 가람을 세우게 된다. 현재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있는 곳이다. 확장에는 성공했지만 큰 문제가 발생했다. 개울로 나뉜 두 개의 가람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가. 다리만 놓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기존의 남가람과 새로운 북가람은 산에 가려 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강력한 진입로를 만들어 두 가람을 연결하는 수였다. 영산전 영역 바로 앞에 해탈문을 세우고 그 뒤로 천왕문을 세웠다. 두 개의 문이 겹쳐지면 길이 만들어진다. 그 연장선 위에 극락교를 세워 개울을 건넌다.남가람에서 북가람으로 향하는 길은 휘어져 있다. 그만큼 연결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극락교를 지나도 북가람의 모퉁이에 다다를 뿐이다. 북가람의 중심에는 5층탑과 대적광전이 놓이고, 그 뒤로 대웅보전이 솟아 있다. 가장 뒤의 대웅보전은 산등성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2층으로 만들었다. 그래야만 대적광전 너머 수직적으로 중첩돼 보이기 때문이다. 마곡사는 가람 확장에 매우 불리한 지형을 가졌다. 개울이 가로막고, 남가람과 북가람의 산은 거의 직각으로 놓여 규칙적인 가람배치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럼에도 문들과 다리를 잇는 강력한 길이 개울을 건너고, 5층탑의 상승감이 수평적인 5칸 대적광전으로 하강하다가 다시 뒤의 대웅보전으로 솟아오른다. 건축적 창의성으로 지형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두 개의 가람을 하나로 통합해 입체적인 건축 경관을 얻었다. 더 나아가 산과 개울이라는 자연과 건축을 일체화했다. ●5층 석탑, 불교적 불개토풍 북가람의 중심에 서 있는 5층석탑에 주목하자. 이 석탑은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전형적 비례의 고려시대 탑이다. 2층 몸돌 4면에 부처상을 새겨 마치 사방불탑 같은 성격도 갖는다. 더욱 특이한 것은 가장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이국적인 탑이다. 보통 한국 탑은 원판과 구슬 모양 석재들을 겹쳐 꽂아 가장 위의 상륜부를 이룬다. 그러나 이 탑의 상륜부엔 이른바 ‘풍마동’이라는 특수한 청동 구조물을 얹었다. 티베트 불교의 불탑 모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 산속에서 발달한 밀교의 일종으로,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국교로 삼았던 종교다. 일명 라마교라 하고 현재도 중요한 중국 불교의 종파다. 베이징 중심부에 있는 묘응사 백탑은 원나라 때 세운 전형적인 라마교의 탑이다. 마치 하나의 봉우리가 솟은 것 같은 높이 50.9m의 이 거대한 탑은 여전히 중요한 베이징의 랜드마크다. 이 백탑을 그대로 축소하면 1.8m 크기의 마곡사 풍마동이 된다. 재료만 청동으로 바뀌었을 뿐 놀랍게도 닮은꼴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청동의 세공기술 또한 고려와는 다른 이국적인 솜씨다. 원의 간섭기인 13세기에 유입된 수입 완제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강력했던 몽골제국이 고려를 침략했다. 결국 항복하고 말았지만 고려는 귀중한 강화조건을 관철했다. “불개토풍(不改土風)-의관은 고려의 풍습을 따른다.” 의관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몽골의 사위 나라가 됐지만 고려의 언어와 영토와 왕실은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호복과 변발을 강요당하고, 나라 자체가 없어진 유라시아의 대부분 정복국에 비해 파격적인 대우였다. 6차례의 대대적 침략에도 39년간 끈질기게 항쟁한 대가였다. 그러나 한 세기에 가까운 원간섭기에 온전한 토풍을 지키기는 힘들었다. 제국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와 고려의 유행을 바꿨고, 자발적 친원 행위도 무수하게 벌어졌다. 종교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개성의 대형 사찰들은 원황실을 축원하는 노골적 부역을 자원했다. 개성 근처에 세워졌던 경천사 석탑은 그 명확한 증거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1층 홀에 전시된 이 탑은 강융이라는 친원 귀족이 원나라의 승상 탈탈을 위해 원나라 장인들을 데려와 만든 원나라풍의 기념물이다. 그러나 고려 불교의 수백년 전통은 밀교적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라마교가 종파로서 자리잡을 여지를 주지 않았다. 마곡사 5층탑은 고려의 몸통에 몽골의 머리를 얹고 있다. 이 이상한 형상이 바로 당시의 불교적 ‘불개토풍’이었다. 모자를 바꿨지만 몸통은 바꾸지 않았다.●다시 개울을 따르고 건너 대웅보전에서 일단 멈췄던 마곡사는 현대에 들어 다시 확장의 역사를 시작했다. 마곡천을 건너 성보박물관과 템플스테이 건물을 지었다. 상류로 향하다 다시 개울을 건너면 현대적인 일군의 건물들이 나타난다. 한국문화연수원, 2009년에 전통불교문화원으로 지은 수련원 건물이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야심작이다. 전통적 내용을 현대적 그릇에 담겠다는 포부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원래 이 땅은 17세기 마곡사 중창을 위해 기와를 굽던 가마터였다. 조사 결과 여러 곳의 가마터가 발굴됐다. 그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가운데에 운동장을 만들었고 남쪽에 숙박동을, 북쪽에 교육동을 지었다. 개울을 경계로 두 가람이 들어선 마곡사의 배치와 유사한 환경이고 유사한 해법이다. 선방, 다도실, 지대방, 강당 등을 수용한 교육동은 하나의 건물이면서도 여러 지붕이 중첩된 모습이다. 마치 여러 동의 기와집이 모여 하나의 가람을 이루는 모습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배열된 숙박동은 현대판 요사채라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는 배흘림 나무 기둥도, 날렵한 처마 선도 없다. 콘크리트 벽과 금속제 경사 지붕만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조형이다. 그럼에도 기와지붕 없는 한옥이고, 중첩된 전통 가람의 배치법이다. 마곡보철이 스승 마조를 따라가다가 물었다. “어떤 것이 큰 열반입니까?” 마조가 답했다. “급하구나.” 보철이 다시 물었다. “급한 것은 무엇입니까?” “물을 살펴보아라.” 문헌기록이 없는 마곡사에서 가람배치의 비밀을 풀고, 5층탑 풍마동의 역사를 밝히려 추정과 상상에 빠져 있었네. 아, 조급했구나! 그저 마곡천의 휘어짐을 살피고 그 흐름에 발길을 따르면 되는 것을. 물길은 장애물이 아니라 무한 건축의 생명선이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쌀의 굴욕… 39년 만에 생산량 최저

    쌀의 굴욕… 39년 만에 생산량 최저

    올해 쌀 생산량이 370만t대로 내려앉았다.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며 39년 만에 가장 적은 생산량을 기록했다. 태풍 등 기상여건 악화와 경지 감소 등에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쌀 생산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374만 4000t을 기록했다. 지난해(386만 8000t) 대비 3.2%(12.4t) 줄었다. 냉해 피해로 355만t을 기록한 1980년 이후 최저치다. 수확량이 가장 많았던 1988년(605만 3000t)의 5분의3 수준이다. 2012년부터 2015년(432만 7000t)까지 증가하던 쌀 생산량은 2016년 감소로 돌아선 뒤 올해까지 4년 연속 줄었다. 2017년(397만 2000t) 이후 3년 연속 400만t을 밑돌았다. 쌀 재배 면적도 72만 9814㏊로 지난해(73만 7673㏊)보다 1.1% 줄었다. 통계청은 정부의 논 타작물 재배 지원사업, 건물 건축, 공공시설 등 택지 개발에 따른 경지 감소 등으로 재배 면적이 줄었다고 밝혔다. 10a당 생산량은 지난해 524㎏에서 올해 513㎏으로 2.2% 감소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벼가 익어 가는 시점인 9월 이후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 링링·타파·미탁 등으로 인해 강수량이 늘고 일조량이 줄어든 영향 탓에 10a당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줄었다”고 말했다. 농촌 고령화 현상에 따라 벼농사를 기피하는 추세도 강해지고 있다. 지난해 농촌 인구 고령화율(65세 인구 비율)은 44.7%로 1965년 3.2%에 비해 41.5% 포인트 상승했다. 이에 따라 논벼 농가 비중은 1985년 82.9%에서 지난해 37.9%로 줄었다. 쌀 소비가 줄고 있는 점도 생산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0㎏(1일 167.3g)이었다. 최고치였던 1970년 136.4㎏(1일 373.7g)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민 1인당 1일 에너지 공급량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도 1965년 56.0%에서 2017년 23.1%로 줄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약 6만t의 쌀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면서 “지난달 하락한 산지 쌀값은 이달 5일 상승으로 전환됐고, 앞으로도 벼 가격 상승세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육군 항공부대 지휘관,5·18때 헬기사격 없었다고 주장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육군 항공부대 지휘관은 “광주 상공에서의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는 11일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 훼손)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88) 씨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이날 법정에는 39년 전 육군 제1항공여단장이었던 송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송씨는 “5·18 민주화운동 기간 광주에서 단 한 발도 사격한 적이 없다”며 헬기 사격 일체를 부인했다. 그는 “당시 육군본부의 지시에 따라 광주에 헬기 부대를 파견했다. 1980년 5월21일 UH-1H 헬기를 전교사에 작전 배속했다. 지휘권이나 작전통제권은 전교사령관에게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UH-1H 헬기의 파견 목적은 병력 수송이었다. 비무장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0년 5월22일 육군본부 상황실로부터 무장헬기 부대를 광주로 파견하라는 지시를 받고 코브라와 500MD 헬기를 전교사에 배속한 사실도 있다. (광주는) 작전 지역이 아니였기 때문에 벌컨포 등 기본 휴대량만 실어 보냈다. 하지만 헬기 사격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씨의 변호인은 헬기 종류별 특징과 기총 소사·실탄의 특성 등을 송씨에게 물으며,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데 주력했다. 당시 전교사에 작전 배속된 헬기부대에 대한 지휘 계통도 언급하며 전 씨와 헬기 사격 유무 간의 무관함을 주장했다. 송씨는 “헬기 속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메인 블레이드의 추진 각도를 변경해야 한다. 이 과정에 ‘땅’ 땅‘ ’땅‘ 소리가 난다. 도심에서는 이 소리가 배가 된다. 일반 시민은 이 소리를 헬기 사격 소리로 오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80년 5월 육군 31항공단에서 탄약을 관리했던 최종호(당시 계급 하사) 씨는 지난 9월 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탄약 장교로부터 ‘전투용탄을 지급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1980년 5월20일 또는 5월21일 오전께 탄약을 지급했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이어 “고폭탄, 20㎜ 보통탄, 7.62㎜ 기관총탄 등 3종류 4통 정도를 지급했다. 여기에 비상대기 중인 코브라 1대와 500MD 헬기에도 각각 탄약 1통 씩을 지급했던 것 같다. 고폭탄은 전쟁 때만 사용한다. 상관에게 ’지급해도 되느냐‘고 묻자 ’따지지 말고 반출해주라‘는 답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주일 뒤 반납을 받아보니 헬기 출동때 지급한 탄약보다 3분의 1정도 줄어든 상태였다. 고폭탄은 그대로 였다. 무장 헬기가 광주로 출동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광주 아니고서는 출동할 곳도, 실제 사격 할 만한 곳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검사는 이같은 최씨의 진술을 토대로 당시 명령 계통과 작전 상황 등을 물으며 송씨의 진술을 탄핵하는데 집중했다. 검사는 “당시 여러 대의 헬기가 무장한 뒤 광주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보안사 문서에 따르면 1980년 5월21일에도 500MD 헬기 2대가 광주로 출발한 사실이 있다”며 무장헬기의 광주 투입이 5월21일에도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남아 있는 여러 문서를 보더라도 5·18 당시 헬기 위협 사격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며 송씨의 증언을 반박했다. 전씨는 2017년 4월에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다.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주장, 고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지난해 5월3일 재판에 넘겨졌다. 최근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동반자들과 라운딩을 즐겼던 전 씨는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5월 단체는 이날 오후 광주지법 앞에서 전씨를 “강제 구인하라”며 손팻말 시위를 펼쳤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5·18때 헬기 조종사 전두환 재판 증인으로 선다.

    1980년 5월 광주 하늘에서 헬기를 직접 조종했던 조종사들이 39년만에 처음 재판정에 선다. 이들은 1995년 검찰 조사 때처럼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진술할 가능성이 크지만 의미 있는 진술이 나올 수도 있는 만큼 그들의 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광주지법 등에 따르면 11일 오후 2시 201호 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전두환(88)씨의 7번째 사자명예훼손 증인신문이 열린다. 이번에 증인으로 신청된 헬기 조종사 등은 전씨 측 변호인이 신청한 첫 증인으로, 송모(당시 육군 1항공여단장)씨, 구모(당시 103 항공대 소속 AH-1J헬기 부조종사)씨, 서모(당시 506항공대 소속 500MD 부조종사)씨, 김모(당시 506항공대장)씨 등 5명이다. 이 가운데 2명은 지난 10월 불출석 사유서를 재판부에 전달했으며, 나머지 3명은 현재까진 불출석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번 재판이 5·18 당시 헬기사격이 실제 있었는지 여부가 쟁점이라는 점에서, 당시 헬기조종사들의 증언 여부에 따라 재판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전씨 측이 당시 헬기조종사 등을 증인으로 요청한 것은 이들이 자신 또는 동료의 헬기사격을 진술할 가능성이 낮은데다 추가증인 요청에 따른 재판지연 효과 등을 염두한 것이라는 분석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1995년 검찰 조사 등에서 1980년 5월 당시 사격명령을 받긴 했지만, 발포사실은 모른다고 진술해 왔기 때문이다. 한편 전두환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불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김건모♥장지연, 커플샷 입수 “초밀착 스킨십”

    김건모♥장지연, 커플샷 입수 “초밀착 스킨십”

    가수 김건모와 예비신부 장지연의 커플 사진이 최초 공개됐다. 1일 방송된 KBS2 생방송 ‘연예가중계’에서는 내년 1월 결혼 계획을 밝혀 화제가 된 김건모의 예비 장인, 장욱조 씨를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김건모의 예비신부는 김건모보다 13살 어린 피아니스트 장지연으로 알려졌다. 장지연은 버클리음대를 졸업한 미모의 재원이다. ‘연예가중계’는 김건모의 예비 장인, 장욱조 씨를 단독으로 취재했다. 장욱조 씨는 “많은 축하를 받고 계신데 기분이 어떻냐”는 질문에 “말할 수 없이 기쁘고 감하사다. 경사 중에 경사 아니냐”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장욱조 씨는 “39년 동안 기다렸는데 딸의 짝을 만났으니 얼마나 기쁘겠냐. 좋은 가정을 이루는데 ‘연예가 중계’에 보여드리게 되어서 감사하다”라고 덧붙였다. 또 “두 사람의 열애 소식을 언제 들었냐”는 질문에는 “딸이 5개월 전부터 귀띔을 해주더라. ‘저 남자가 생겼습니다’라고 한 뒤 서로 교제중이기 때문에 ‘확신이 서면 연락 드리겠다’라고 하더라. 그 뒤 한 달 전 결혼에 대한 확신이 생겨 말을 해주더라”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특히 “가족의 반대가 있었냐”는 질문에 장욱조 씨는 “한 번도 없었다. 가족 모두가 김건모와의 결혼을 대환영했다. 워낙 유명한 국민가수가 우리 식구가 된다는 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냐”라고 밝혔다. 또 장욱조 씨는 “이선미 여사님이 친딸처럼 딸을 대해주더라. 딸도 이선미 여사님이 딸처럼 대해줘 ‘이 집에 시집을 와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더라”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후 장욱조 씨는 “내년 1월 30일 결혼식을 올리는데 양쪽에서 50명씩만 참석해 조촐하고 검소하게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며, 제가 주례를 볼 것 같다”라고 결혼식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또 이날 김건모와 장지연이 얼굴을 맞댄 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도 공개돼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나치 수용소 간수 지낸 93세 노인 오늘 독일 법정에 선다

    나치 수용소 간수 지낸 93세 노인 오늘 독일 법정에 선다

    두 차례나 인류를 상대로 잔학한 죄악을 저지른 독일이 역사 청산에 앞장서고 매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944년부터 이듬해 종전까지 폴란드 스투트호프 수용소 간수로 일하며 5230명의 유대인들이 숨지는 데 미력이나마 기여했다는 이유로 올해 93세의 노인 브루노 데이가 17일 독일 법정에 선다. 그의 나이 18세 무렵에 벌어진 일이지만 수용소 밖에서 경계 근무를 섰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안에서 잔인한 학살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해 아무런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의 전범 기소 이유다. 검찰은 데이가 “살인기계의 작은 톱니”였다고 규정했다. 데이 자신은 학살 음모에 일절 가담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이번 재판은 아마도 전직 나치 간수들을 상대로 한 재판 가운데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영국 BBC는 이날 예상했다. 다만 피고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심리는 일주일에 두 번을 넘지 않고, 한 번에 2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제한했다. 잡지 슈피겔에 따르면 이 수용소에 수용됐던 5000명은 목표를 겨냥하듯 처형됐고, 200명은 가스를 주입시켜, 30명은 ‘Genickschussanlage’란 끔찍한 방법으로 죽였다. 쉽게 말해 뒤에서 몰래 다가가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다. 핵심 쟁점은 유대인들을 특정해 죽인다는 것을 알면서 데이가 협력했느냐는 것이다. 당시 만 21세가 아니었기 때문에 70년도 훨씬 지난 일로 이 노인은 소년법정에 선다. 검찰은 2016년에야 그를 기소하는 움직임을 시작했는데 그의 이름이 박힌 나치친위대(SS) 복장을 찾아내고 스투트호프 문서저장고에서 그의 서명이 담긴 문서를 발견한 데 따른 것이었다. 1969년부터 나치 수용소 직원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례가 굳어졌다. 하지만 2016년 유대인 30만명 이상이 희생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회계원으로 일했던 오스카르 그로에닝에게 4년형이 선고되면서 판례는 뒤집혔다. 이때 유죄 주장의 핵심이 액세서리 이론이다. 인류에 반하는 범죄를 막으려 하지 않고 액세서리처럼 들러리만 섰다는 이유로 면책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데이의 너무 많은 나이 때문에 재판을 진행시키지 못했다. 때맞춰 같은 수용소의 간수로 일했던 요한 레보겐(95)이 지난해 12월 입원하는 바람에 데이의 재판도 지연됐다. 스투트호프 수용소는 1939년 9월 나치가 침공한 폴란드 단치히(지금의 그단스크) 동쪽에 중간 기착지로 지어졌다가 1942년에 집단수용소로 격상됐다. 독일 영토를 벗어나 처음 들어선 수용소는 아니었지만 1945년 5월 9일 소비에트 적군에 의해 가장 늦게 해방된 수용소이기도 했다. 이 수용소에서 숨진 사람만 6만 5000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간수들은 1944년 6월부터 가스실을 이용하기 시작했으며 강제노동 공장이 만들어져 나치 전쟁 장비들을 생산했다. 루돌프 스패너 박사가 이곳 수용소에서 죽은 이들의 시신에서 나온 기름을 모아 비누를 만들었다는 증거도 나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재배면적 감소·태풍에… 올해 쌀생산량 39년 만에 최저

    올해 쌀생산량이 39년 만에 가장 적은 377만 9000t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통계청이 15일 발표한 2019년 쌀 예상 생산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쌀생산량은 377만 9000t으로 지난해(386만 8000t)보다 2.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전국적 냉해 피해가 컸던 1980년 355만t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쌀생산량은 2016년부터 4년째 감소세다. 쌀 재배 면적도 지난해 73만 7673㏊에서 올해 72만 9820㏊로 1.1%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기타 작물 전환 사례가 늘고 택지 개발에 따른 경지 면적 감소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벼 낟알이 익는 시기인 지난달 초 제13호 태풍 ‘링링’이 한반도로 북상한 것과 일조 시간 감소도 생산 감소 원인으로 꼽힌다.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올해 쌀 생산량 39년만에 최저…가을 태풍에 쌀값 오를 듯

    올해 쌀 생산량 39년만에 최저…가을 태풍에 쌀값 오를 듯

    올해 쌀 생산량이 377만 9000t으로 39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벼 수확기에 찾아온 가을 태풍 피해를 고려하면 올해 쌀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부족해져 쌀값이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쌀 예상 생산량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쌀 예상 생산량은 377만9000t으로 지난해(386만 8000t)보다 2.3% 적을 것으로 예상됐다.이는 전국적 냉해 피해가 컸던 1980년 355만t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쌀 생산량은 4년째 감소세다. ‘논 타(他)작물 재배 지원사업’과 택지 개발에 따른 경지 감소 등의 영향으로 벼 재배면적이 줄어든 데다, 벼 낟알이 익는 시기에 제13호 태풍 ‘링링’, 일조시간 감소 등으로 기상여건이 악화한 점이 생산 감소 원인으로 꼽힌다.이번 조사는 올해 논벼, 밭벼의 생산량을 표본 조사해 추정한 결과로, 지난달 15일 기준으로 실시됐다. 따라서 조사 이후 발생한 제17호 태풍 ‘타파’와 제18호 태풍 ‘미탁’으로 인한 피해 규모에 따라 수치가 변동될 수 있다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5·18 진압 명령 거부한 이준규 경찰서장, 39년 만의 재심서 무죄

    5·18 진압 명령 거부한 이준규 경찰서장, 39년 만의 재심서 무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한 이유로 파면을 당하고 유죄를 선고받은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2단독 양효미 부장판사는 포고령 위반,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1980년 8월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선고유예한다는 처분을 받은 고인의 재심에서 11일 무죄를 선고했다. 고인은 1980년 5월 21일과 22일 시민 120여명이 총기와 각목 등을 들고 경찰서에 들어왔음에도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병력을 철수시킨 혐의로 당시 계엄사령부 산하 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에 회부됐다. 고인은 사상자 발생을 막기 위해 경찰 총기를 군부대에 반납하라는 당시 안병하 전남도 경찰국장의 명령에 따라 경찰서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고 총기의 방아쇠를 분리해 배에 실어 가까운 섬인 고하도로 향했다. 이후 목포로 다시 돌아왔다. 이준규 서장은 당시 경찰서 안에서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말라는 구내방송을 하고 무기를 반환하도록 설득하는 등 시민군과의 충돌을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준규 서장은 시위를 통제하지 못하고 자위권 행사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파면되고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90일 동안 구금·고문을 당한 뒤 군사재판에도 회부됐다. 당시 안병하 국장은 직위해제됐고 지시를 따른 다른 경찰 간부 11명도 의원 면직됐다. 군사재판 당시 목포시민들이 이준규 서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은 고문으로 건강이 나빠져 5년 간 투병하다가 1985년 암으로 사망했다. 고인의 사위 윤성식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와 딸 이향진 여사가 국가기록원 등에서 기록을 수집해 지난해 5·18 유공자와 특별재심을 각각 신청했다. 이준규 서장은 지난해 7월 5·18 민주 유공자가 됐다. 재판부는 “이준규 서장 행위의 시기와 동기, 사용수단, 결과 등을 볼 때 헌정 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찰청도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이준규 서장의 징계를 취소하는 절차를 검토 중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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