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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연휴 가볼만한 곳] 귀성길에 ‘休 休 休’

    [추석연휴 가볼만한 곳] 귀성길에 ‘休 休 休’

    아무리 돌아가고 질러가도 귀경,귀성길은 막히기 마련이다.주차장을 방불케하는 고속도로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잠깐 도로에서 빠져 여유를 가져보자.전국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30분내에 가볼만한 곳들을 안내한다. ●서해안고속도로 삽교호 함상공원(송악IC) 지난 2002년 개장한 동양 최초의 군함 테마공원이다.우리 바다를 지키다가 퇴역한 상륙함 ‘화산함’과 구축함인 ‘전주함’을 충남도가 임대해 테마공원으로 꾸몄다. 운영은 ㈜삽교호 함상공원이 맡고 있다.군함 내부에는 5인치 함포를 비롯,미사일,어뢰,폭뢰,기관포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해대교를 건너자마자 송악IC에서 5분 거리에 있다.(041)362-3321,363-9229. 해미읍성(해미IC) 조선초에 쌓은 읍성.보존상태가 좋다.동헌,객사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성내 회화나무는 수령 600년으로,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매달아 고문했다고 한다.성곽을 따라 한바퀴 돌며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길이는 1,160m로 천천히 걸어서 1시간쯤 걸린다.해미IC에서 10분.해미읍성 관리사무소(041)660-2540. 곰소항(줄포IC) 젓갈산지인 곰소항은 줄포IC에서 빠져 내소사 가는 길목에 있다.도로변이건 포구 어시장이건 온통 젓갈상회다.곰소가 젓갈맛으로 명성을 얻게 된데는 인접한 천일염 염전의 소금 덕이 크다.곰소 염전은 무려 면적만 15만여평에 이르는데 예로부터 이곳 염전에선 소금을 만들 때 간수를 적게 사용했다.그래서 쓴맛이 거의 없다.많이 팔리는 새우젓의 경우 김치에 들어가는 추젓이 1㎏에 7000∼1만5000원.반찬용으로 인기 있는 오젓과 육젓은 1만∼3만원. 고인돌군락(고창IC) 고창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의 집단 밀집 지역이다.85곳 이상에서 2000기 이상이 분포하는 동양 최대의 고인돌 군락지다.특히 447기가 밀집된 고창군 아산면 죽림리,상갑리 일대는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이곳엔 남방식 및 북방식 고인돌이 두루 분포해 있어 동북아 고인돌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푸른 초원 위에 늘어선 고인돌을 구경하는 탐방로는 색다른 분위기를 주는 산책 코스.고인돌공원 관리사업소 (063)563-2793 ●중부고속도로 이천도예촌(서이천IC) 이천시 사음동 및 신둔면 수남리 일대에 자연스럽게 도자마을이 형성됐다.현재 300여 업체가 모여 있다.특히 3번 국도 주변으로 도자업체들의 전시판매장 및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어 작품 감상과 함께 구입도 할 수 있다.‘도예농‘(031-637-6555)과 신둔면 남정리의 ‘예원도요’(031-634-2244) 등에 가면 도자기 페인팅에서부터 손으로 빚기,물레성형,장작 가마 안내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건강나라(일죽IC) 중부고속도로 일죽IC에서 빠져 17번 도로를 타고 용인 방향으로 500m쯤 가면 오른쪽으로 초원 위에 지중해풍 양식의 건물이 눈길을 끈다.찜질방 ‘건강나라’다. 1만 5000여평의 부지에 지어진 건강나라엔 석굴암을 본떠 만든 12m 높이의 전통 한증막,대형 사우나,노천탕이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다.한방치료실,옥석굴,불가마,휴게실 등으로 이어지는 동선엔 꽃과 그림,가구 등이 적절히 배치돼 있어 마치 고급 카페 같다.입장료는 찜질방만 이용할 경우 6000원,사우나 시설을 함께 이용하면 1만원.(031)674-8255. ●중앙고속도로 물돌이마을(영주IC)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는 알려지지 않은 물돌이 마을이다.고풍스러운 고가들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어우러져 마치 고향을 찾는 마음으로 다녀오기에 적당하다.내성천이 마을 삼면을 돌아 흐른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옥은 ‘해우당고택’이다.고종 16년(1879년)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海愚堂) 김낙풍(金樂豊·1825∼1900)이 1875년 건립한 가옥.이 마을에서는 가장 큰 가옥으로 옛 선비의 단아한 격식이 느껴지는 고택이다.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초가집 ‘박천립 가옥’,마을 뒤쪽의 ‘만죽재(晩竹齋) 고택’도 관심을 기울여 살펴볼 만 하다.중앙고속도로 풍기IC 또는 영주IC에서 빠져 5번 국도를 타고 문수면 방면으로 가면 된다.영주시 문화관광과(054)634-2153. 봉정사(서안동IC)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있다.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조사가 세웠다.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역사적,학문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웅전과 고금당,화엄강당 등 고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서안동IC에서 빠져 34번 도로를 타고 안동시 방향으로 가다보면 봉정사 이정표가 나온다.(054)853-4181. ●천안-논산고속도로 마곡사(정안IC)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천년고찰.송림욕장과 온천을 끼고 있어 사계절 관광지로 인기다.마당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5층 석탑은 원나라 말기 라마교 양식을 본뜬 것으로 세계에서 3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귀중한 문화재이며,석탑 왼편 응진전 앞에는 마치 분재를 한 것처럼 이리저리 비틀린 노송이 고풍미를 더해준다.(041)841-6220 공산성(남공주IC)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뺏긴 백제가 남쪽으로 내려와 60여년간 백제의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다.성내에는 백제의 궁궐터와 연못이 남아 있다.공산성에는 조선 인조에 얽힌 얘기도 전해온다.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에 온 인조에게 성안마을 사람 임씨가 떡을 해 바쳤는데,맛이 하도 좋아 임금이 ‘임절미’로 불렀고 이것이 오늘날 인절미가 됐다고 한다.성곽 둘레는 2.5km로 천천히 돌아보면 2시간 정도 걸린다.입장료 일반 1000원. ●경부고속도로 아산스파비스(천안IC) 천안IC에서 빠져 628번 도로를 타고 아산 방향으로 30분 정도 직진하면 음봉면 신수리에 이르러 아산온천단지가 나온다.90년대 들어 개발된 아산온천은 다양한 레저시설을 갖춰 아이를 둔 가족 나들이로 각광받는 곳이다.그중 아산스파비스(041-539-2000)는 슬라이더를 갖춘 야외 온천풀과 바데풀,가족탕,유수탕 등을 갖춘 워터파크 형태의 온천으로 물놀이를 겸한 온천욕에 적당하다. 직지사(김천IC) 경북 김천 황악산 기슭의 직지사는 ‘다친 산짐승들이 생명력을 충전하는 곳’으로 전해내려온다.그만큼 불심이 충만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직지사는 신라 19대 눌지왕 2년(418) 아도화상이 창건했고,이후 사명대사를 비롯한 수많은 고승들이 깨우침을 얻은 곳이다.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대웅전과 비로전 등이 거의 전부인 보통 크기의 절이었으나,이후 대형 불사를 일으켜 수십개의 전각,탑을 갖춘 대형 사찰이 됐다.김천IC를 나오자마자 우회전한 뒤 다시 우회전해 4번 국도를 타고 12㎞ 정도 가면 이정표가 나온다. ●영동고속도로 삿갓봉 온천(여주IC)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지점인 삿갓봉(당고개)에 위치하고 있다.지하 800m에서 솟아오르는 최고 수질의 온천수를 자랑한다.국내 최초로 안데스산 청정호수염에 아로마테라피를 접목시킨 ‘아로마 소금탕’을 즐길 수 있다.깨끗한 숲 가까이 자리잡고 있어 등산과 산책을 하며 산림욕까지 즐길 수 있다.요금은 일반 5000원,미취학아동 4000원.(031)885-4800. 구룡사(새말IC)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에 의하여 만들어진 절로 치악산 국립공원 내에 있다.울창한 숲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산책은 물론 구룡사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등산로가 좋다.또 계곡 안쪽으로 구룡폭포를 비롯하여 귀암,용연 등의 경치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치악산국립공원 입장료 어른 3200원,어린이 700원.(033)732-4800. 강원참숯 숯가마(둔내IC)는 참숯으로 유명한 횡성군 갑천면 포동리 고래골에 자리잡고 있다.36년 동안 오직 숯만 구워온 최흥원(67)씨가 재래식으로 숯을 굽는 곳이다.이곳의 숯가마는 숯을 꺼낸 뒤 하루동안 열기를 식히고 다음날 황토숯찜질방으로 개방된다.숯가마는 모두 24개.이중 평일 2곳,휴일 3곳 정도가 찜질방으로 개방된다.나일론 옷은 고온에 녹기 때문에 반드시 면제품 옷을 입어야 한다.입장료는 5000원,면옷 대여 2000원.(033)342-4508 월정사(진부IC)는 오대산 동쪽 계곡에 있으며 1㎞에 달하는 500년 수령의 전나무 숲과 함께 오대산을 상징하는 사찰이다.국보 48호인 팔각 9층 석탑 및 보물 139호 월정사석조보살좌상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볼 수 있다.(033)332-6664.여유가 있다면 역시 오대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자생식물원도 가볼만 하다.총면적 3만 3000여평에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야생화와 식물 1000여종이 서식하고 있다.(033)332-7069. 임창용·나길회기자 sdragon@seoul.co.kr
  • ‘프라하의 봄’ 주역… 동유럽 민주화 기여

    바츨라프 하벨(69) 전 체코 대통령이 제7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울평화상문화재단(이사장 이철승)은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각계인사 15명으로 구성된 최종 심사위원회를 열고 ‘유럽의 양심’으로 불리는 하벨 전 대통령을 수상자로 확정했다. 이철승 이사장 겸 심사위원장은 “공산정권 시절부터 동유럽 민주화의 기수로 이름을 떨친 하벨 전 대통령은 1989년 시민혁명을 통해 체코의 민주화를 이뤄냈고,대통령 재임 때도 유럽의 평화정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하벨 전 대통령은 “명예롭게 생각한다.”면서 흔쾌히 수락 의사를 전해왔다.지난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하벨 전 대통령은 86년 에라스무스상을 시작으로 90년 시몬 볼리바르상과 유네스코 인권상,필라델피아자유메달(94년),미국 대통령 자유메달,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이상 2003년),그리고 올해 캐나다 명예동반자상 등을 잇따라 수상했다. 시상식은 다음달 중순 열릴 예정이며 상금 20만달러가 수여된다. 하벨 전 대통령은 ‘프라하의 봄’과 ‘벨벳혁명’을 주도한 동유럽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로,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됐다. 36년 프라하의 부유한 건축가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인문계 고등교육을 금지당해 공장 근로자로 일하며 야간학교와 체코 기술대학 경제학부를 나왔다.문학도의 꿈을 간직해온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연극무대에 뛰어들어 무대 조감독 등을 거치며 63년 ‘가든파티’,65년 ‘비망록’ 등의 희곡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 공산체제의 비인간화를 비판하면서 68년 작가동맹을 이끌고,‘프라하의 봄’ 운동에 참가해 옛 소련의 군사 개입을 비난하다 저술활동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독립작가서클의 ‘7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77년 1월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는 ‘77헌장’을 발표하면서 반체제 작가에서 민주화 지도자로 거듭났다. 79년 ‘부당하게 억압받는 자들을 변호하는 모임(VONS)’을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 5년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89년 학생시위에서부터 시작된 ‘벨벳혁명’의 물결에서 시민포럼을 결성해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그해 12월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회에서 대통령에 선출됐다. 세 차례 대통령을 지내고 지난해 퇴임해 인권과 자선에 관한 활동을 하고 있다.지난 6월에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북한에 대해 행동할 때’라는 글을 통해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96년 타계한 부인 올가 여사의 뜻을 살려 전 재산을 장애인 권리 찾기와 지원을 위한 재단에 기부하고,인권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열린세상] 정당한 처벌과 포상 필요하다/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과거사 청산은 학자들에게 맡기자고 했다.같은 당 여의도연구소도 대응책을 공식적으로 공개했는데,그 내용도 겨우 ‘학술단체가 정리하는 수준’이다.또 수사권부여도 반대하면서,현재 의문사조사위원회가 가진 조사권도 인정하지 않겠단다.과거사를 청산할 의지가 없는 셈이다.이제까지 비민주적인 정치권력이 역사해석의 방향뿐 아니라 실정법의 적용조차 왜곡해왔는데,연구 차원의 역사청산을 논한다면 위선일 것이다.당시 법에 따라 처리되었기에 청산은 필요 없다는 말도 구차한 변명이다. 중요한 관건은 악법의 적용이 아니라,죄에 걸맞은 처벌이다.개혁의 실마리를 놓친 듯했던 대통령이 이 문제는 제대로 짚었다.“프랑스는 불과 4∼5년 동안 30만명이 정부로부터 레지스탕스로 공식 인정받고 포상을 받았는데,우리는 일제 36년,의병시기까지 합치면 50∼60년이 훌쩍 넘는 침탈의 역사를 겪어왔는데 아직 1만명밖에 포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독립운동하면 대대로 패가망신당하는 세월속에 국가는 손을 놓고 있었으니,그 손은 ‘더러운 손’이었다. 포상을 하지 못한 과거는 처벌을 하지 못한 과거와 표리관계에 있다.1949년부터 활동에 나설 때 반민특위는 반민족자 7000여명을 파악했으나,실제로 취급한 건수는 682건에 그쳤다.영장발부 408건,체포 305건이었으며,검찰에 송치된 559건 중에서도 기소는 221건에 지나지 않았다.결과도 대부분 무죄 혹은 가벼운 자격정지로 끝났다.그 결과를,침탈 기간이 우리의 10분의1에 지나지 않았던 프랑스의 부역자처벌 결과와 비교해 보자.법원에서 조사받은 사건만 16만 827건에 이르렀고,최종적으로 7037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1500명에 대해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었다.그리고 3000명 정도가 중노동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공적으로 나라를 위해 선행을 하고도 포상을 받기는커녕 억울한 피해자가 된다면,얼마나 참담한가.근대 이후 처벌권을 독점한 국가가 공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광복 후 법과 정의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과 태도가 온전할 수 없었다.좋은 일 해 봐야 억울한 피해자만 된다면,사람들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사람들은 공적인 책임을 신뢰하지 않고,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서로 ‘몰래 가해자’가 될 것이다. 피해자가 되면 피곤하기만 하다는 인식이 널리 깔려있을 때,사람들은 공적으로 죄가 될 만한 사건에 대해 신고도 하지 않는다.형사사건의 범죄 신고율은 1998년에 22.7%로,독일의 48.0%,영국의 58.7%,프랑스의 60.8%와 비교해 매우 낮다.신고해 보았자 범죄가 법대로 처벌되지도 않고 또 재판 과정에서도 이차적인 피해만 입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작 사람들의 피해의식이 줄어들거나 사라졌느냐 하면,오히려 거꾸로다.1997년부터 2002년까지 평균 고소·고발 사건 수는 80만 1893건으로,일본의 1만 2174건에 대해 66배이며 인구를 감안할 때는 무려 170배에 달한다.고소사건의 73.5%가 불기소 처분될 정도로 죄가 되지 않는 민사사건이라고 하니,시민들은 재판을 통한 공적 처벌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해 사적인 원한만 키우고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그 결과 사회의 구조적 폭력성은 더욱 심화된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이제라도 청산을 해야 한다.민족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보수를 자처할 수도 없다.지금 처벌하자는 것도 아니다.최소한 기록이나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더구나 지금 제대로 해보았자,이류 청산밖에 안 된다.그것도 안 하면 역사는 삼류·사류로 더러워질 것인데,그 경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판할 수 있을까.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 [아테네 2004] ‘4년뒤 베이징’이 두렵다

    [아테네 2004] ‘4년뒤 베이징’이 두렵다

    ‘4년 뒤 베이징이 더 두렵다.’ 8월의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아테네올림픽의 성화가 30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꺼졌다.108년 만에 ‘신들의 고향’으로 귀환했던 올림픽은 4년 뒤 중국의 베이징에서 다시 열린다.아시아에서는 20년 만이다.지난 1964년 도쿄에서,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베이징올림픽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까.아마도 ‘거대 중국’의 위용을 뽐내는 무대가 될 것이다.도쿄올림픽 이후 일본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고,한국도 서울올림픽 이후 국제무대의 변방에서 벗어났다.13억 인구의 중국도 올림픽을 통해 그들이 오랫동안 꿈꿔온 ‘중화(세계의 중심)’로 나아가려 할 것이다. ‘부국강병’을 내세운 중국은 이미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 가입,2003년 미국과 구 소련에 이은 세계 세번째 유인우주선 발사,2010년 엑스포 유치 등 일련의 성공을 통해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급성장한 국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반면 한국 스포츠는 아테네를 통해 역동성에서는 중국에,치밀함에서는 일본에 밀린다는 것을 절감했다.베이징을 위해선 모자람을 분석하고 변화를 창조해야 한다.해답이 분명한 체육인들의 몫은 차치하더라도 현실에 바탕을 둔 국민들의 성원과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스포츠가 ‘국력의 바로미터’가 아니라는 것은 강변일 뿐이다.사상 처음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202개 전회원국이 참가한 아테네올림픽에서의 중국은 위력적이었다.407명 가운데 323명을 올림픽 출전 경험이 없는 선수로 채우고,취재진만 2500명에 달한 데서 보듯 중국은 아테네를 베이징의 리허설 무대로 삼았다.4년전 시드니에서 미국 러시아에 크게 뒤진 종합 3위를 차지한 중국은 공포감을 느낄 정도의 기세로 러시아를 밀어내고 ‘유일무이한 슈퍼파워’로 자부해온 미국과 당당히 양강체제를 이뤘다. 아테네올림픽을 지켜 본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4년 뒤엔 미국마저 제치는 모습이 뭉클하게 떠올랐을 것이다.지난 1984년 LA올림픽에 첫 선을 보인 중국은 이후 ‘빅4’로 자리매김했지만 아테네에서처럼 거의 전종목에서 위세를 떨치지는 못했다.세계의 주가를 좌우하고,‘세계의 지도자들이 잠들기전 후진타오의 건강과 개혁노선에 이상이 없기를 기도한다.’는 풍자가 나돌 정도로 훌쩍 커 버린 중국경제에 비견될 정도다. 이같은 강세는 경제력과 ‘스테이트 아마추어리즘’이 동시에 떠받치고 있어 더욱 위협적이다.개혁·개방 노선과 함께 흔들렸던 국가 주도의 스포츠 정책이 베이징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부활해 중국 스포츠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여기다 경제력이라는 윤활유까지 부어지면서 질풍노도로 변한 것.“아테네올림픽에 나온 수준의 선수들은 무궁무진하다.”는 한 중국 코치의 말은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비록 36년 만의 종합 3위 복귀에는 실패했지만 내용상으로 값진 결실을 거둔 일본도 4년 뒤에는 용틀임을 할 태세다.일본올림픽위원회(JOC)는 이미 지난 98년 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해 메달 획득률(메달수÷참가선수) 배가를 위한 ‘10개년 계획’을 세우고,2001년 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를 설립했다. 냉전시대 미국과 양강을 다툰 러시아 역시 권토중래를 노릴 것이 분명해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이 베이징 대회전을 앞둔 셈이다.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존재의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탁구 유승민이 일깨워준 ‘대고구려 후예’의 기상을 베이징에서 재현하려면 지금 바로 나서야 한다.2008년은 이미 시작됐다. 오병남 체육부장 obnbkt@seoul.co.kr
  • [다음핫이슈 토론] 과거사특위 찬48.5%·반48.8%

    [다음핫이슈 토론] 과거사특위 찬48.5%·반48.8%

    |미디어다음 정환석기자|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회내 과거사진상규명특위’ 설치를 제안한 것에 대해 네티즌들의 반응은 찬성과 반대로 팽팽하게 갈렸다.핫이슈토론에서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국회내 과거사진상규명특위’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총 참여자 1만1468명중 48.8%(5597명)가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반면 48.5%(5563명)는 찬성 의견을 보였다. 찬성측 네티즌들은 “과거사 진상규명은 누구를 처벌하고,보복하려는 게 아니라 적절한 보상과 명예회복 등으로 국민을 화해시키고 미래로 나가기 위한 것”이라며 “경제를 건설하는 일과 민족정신을 세우는 일은 별개가 아니라 동시에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반대측은 “노 대통령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주변국들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국내의 과거사 들추기에만 나서고 있다.”며 “시급한 경제,역사 문제에 매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과거사 청산 방침에 동참하기로 한 가운데 한나라당은 과거사의 포괄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여당과 의견을 같이했지만 형식과 범위 등에 이견을 보이고 있어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 100자 의견 ●국민의 단합 대한민국님 일제 36년 동안 살아 남으려면 앞잡이를 안 할 수는 없었을 것.오십보백보의 차이거늘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역사에 묻어두고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국력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다. ●과연 다 끝난 과거의 일일까??? 바이러스님 친일파의 자식들이 아비의 손에 죽어간 민중들의 핏값으로 얻어진 부와 권력을 바탕으로 호의호식하며 양당의 대표라는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거나 군림하고 있는데.다 끝난 일이라고? ●과거 정리와 경제는 dugylee님 동시에 추진되는 것이다.지난 50년간 우리가 정리하지 못한 것은 청산 대상자의 힘이 더 컸기 때문이다.이제는 청산할 수 있는 국민 역량이 향상되어 가능하다. ●미래 창조를 위한 정치를… mjh님 과거사를 들춰내어 국론분열을 유발하기보다는 수출증대를 통한 경제살리기 운동에 적극 앞장서 훌륭한 대통령이 되어주시길.
  • 정년퇴임 앞둔 조동일 서울대교수

    정년퇴임 앞둔 조동일 서울대교수

    “교수 노릇을 잘못해 용서를 구해야 할 일도 적지 않다.가르치는 일을 너무 엄격하고 가혹하게 했다.각자의 사정은 돌보지 않고 이뤄야 할 목표만 내세워 지나친 요구를 했다.사제관계가 아닌 사이인데도 학회에서 하는 발표를 지나치게 논박하는 무례를 저지르기도 했다.” 8월말 정년 퇴임하는 국문학자 조동일 (서울대)교수는 “36년간의 교수 생활을 통해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년까지 대학에서 일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 ●회고록 ‘학문에 바친 나날‘펴내 구비문학에서 고전문학으로,고전문학에서 한국문학으로,한국문학에서 동아시아문학으로,동아시아문학에서 다시 세계문학으로 학문의 영토를 넓히며 50권의 저서를 낸 이 시대의 인문학자.그의 학문적 업적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그것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의 학문이 ‘수입학에 휘둘리지 않고,자립학의 협소한 시야에서도 벗어나,보편타당한 이치를 밝히는 창조학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한국문학 그 자체에서 세계문학 전반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이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서사민요연구’(1970)에서 ‘세계문학사의 전개’(2002)에 이르기까지 숱한 저서들은 한국문학을 바탕으로 문학의 일반이론을 도출하고자 하는 그의 일관된 관심을 반영한다. ‘천재 교수’로 통하는 그가 지나온 날들을 회고하며 ‘학문에 바친 나날 되돌아보며’(지식산업사 펴냄)란 회고록을 내놓았다.자신이 몸담았던 네 학교(계명대 영남대 정신문화연구원 서울대) 시절을 되돌아보고,그 당시 배웠던 75명의 제자들이 스승과의 학문적 인연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꾸며졌다. 젊은 시절 10년 넘게 근무한 계명대와 영남대 시절을 회고하는 조 교수는 규제보다 자율을 중시한 ‘도가적’ 분위기의 영남대 학풍이 좋았다고 밝힌다.“학문의 세계에서는 아홉 사람이 놀고먹어도 한 사람이 제대로 하면 된다.먹고 놀까 염려해 열 사람을 다 묶어놓고 닦달하면 그 한 사람마저 아무 것도 못한다.” 스스로 가장 빛나는 저서로 꼽는 ‘문학연구방법’(1980)도 속 편했던 영남대 교수 시절 썼고,필생의 업적인 ‘한국문학통사’(전6권)도 그 때 기초를 잡은 것이다.정신문화연구원에 대해서는 일말의 아쉬움을 드러낸다.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잘못된 과거를 청산,학문하는 곳으로 거듭나겠다고 한 지 오래지만 아직 가시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조 교수에게 서울대 시절은 문학과 철학의 관계를 논하고 동아시아문학을 거쳐 세계문학으로 나아간 시기다. ●국문학서 세계문학이론 도출힘써 엄한 스승으로부터 혹독한 교육을 받은 제자들의 회고는 시종 긴장과 웃음을 자아낸다.조 교수의 호는 설파(雪坡).“세계에서 청계산을 가장 많이 오른 사람”으로 자부하는 조 교수는 등산 안내자라는 뜻의 세르파를 한역해 그런 호를 지었다.정신문화연구원 시절 제자인 이진오 (부산대)교수의 회고.“설파선생님은 학문세계의 ‘세르파’를 당신의 업으로 자임했다.부지런함이 병이라고 자탄하며 시원찮은 논문을 질타한 적은 많지만 게으른 사람을 비난한 적은 없었다.” “책 읽기보다는 산천유람이 더욱 소중함을 거듭 깨달았다.”는 조 교수는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백지에 그림을 그려나가려 한다.9월부터는 계명대 석좌교수로 활동하며 공개강의도 보다 활발히 해나갈 작정이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2004 아테네올림픽] 공은 둥글다

    ■ 아테네올림픽 특별취재단 이창구기자(체육부) 김명국차장(사진부) 김태충차장 조병모 위원석기자(이상 스포츠서울 스포츠부) 강영조기자(스포츠서울 사진부)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 남자축구는 절대 강자도,절대 약자도 없는 혼전양상이다.8경기 가운데 5경기가 무승부로 끝났을 만큼 치열했다. 이변도 속출했다.전쟁의 상흔을 딛고 참가한 이라크는 13일 그리스 파트라스에서 열린 D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19)가 버틴 우승후보 포르투갈을 4-2로 꺾었다.호나우두는 지난달 끝난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4)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동하며 팀을 준우승까지 이끈 월드 스타.‘대어사냥’에 성공한 이라크는 승점 3으로 조 선두로 나서 8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B조의 아프리카 복병 가나도 전통의 강호 이탈리아를 맞아 2-2로 비겼다.한국 이라크와 함께 아시아대표로 출전한 일본(B조)은 파라과이와 난타전을 벌인 끝에 3-4로 아쉽게 패했다. 2000시드니올림픽 1∼3위팀인 카메룬 스페인 칠레가 이번엔 모두 지역예선을 통과하지 못해 일찍부터 많은 이변이 예상됐다.이런 가운데 아르헨티나만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전(12일)에서 대승(6-0)을 거두며 강호로서의 체면을 세웠다.아르헨티나는 그동안 올림픽에서 실추된 남미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겠다는 각오.남미 국가가 올림픽에서 우승한 것은 1924년과 1928년(이상 우루과이) 두차례뿐이다.76년 만의 정상탈환을 노리는 남미의 선두주자 아르헨티나의 기세가 무섭다. 1968년(멕시코올림픽) 일본의 동메달 이후 36년 만의 메달권 진입을 노리는 아시아는 강호들과의 첫 경기에서 1승(이라크) 1무(한국) 1패(일본)를 기록하며 무난한 출발을 보였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다음네티즌이 꼽은 서울신문] 파산자 카페 ‘희망가’

    |서울신문 이재훈기자|“저는 인터넷 쇼핑몰의 분양사기를 당해 파산했습니다.빚 6억원을 모두 면책받았습니다.우리가 잘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죽음을 선택하거나 숨어 살 정도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우리 희망을 가집시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중국집.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파산카페 회원 20여명이 ‘선배’의 경험담을 듣고 있었다. 회사원 이영선(가명·26·여)씨는 부모가 파산 위기에 있다.이씨의 아버지(60)는 36년 동안 결근 한번 없이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사람을 너무 믿어 3차례나 보증을 선 끝에 1억원의 빚을 졌다.50대에 간신히 장만한 집은 5년만에 경매로 넘어갔다.어머니(56)는 친척에게 신용카드를 빌려줬다가 빚을 졌다. 이씨는 회원들 앞에서 “두 분이 외가에 얹혀 살며 추심원 전화에 오금을 못펴는 모습이 불쌍하다.”면서 “파산이라도 신청해 두 분을 지옥에서 구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그러자 회원들의 동병상련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개인 실책이 많아 완전면책이 힘들지 모르니 꼼꼼하게 준비하라.”는 충고부터 “하루빨리 파산을 신청해 두 분을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드리라.”고 걱정도 나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 서울신문(http:///www.seoul.co.kr)으로 ■ 100자 의견 ●신용불량자,왜 정부에 생떼? 은아님 제발 자신 탓 좀 해보시오.내 탓이오,내 탓이오…. ●자기 탓이라고 자꾸 그러시는데… Ekah님 아버지 사업 부도로 이렇게 됐습니다.낭비?함부로 말하지 마세요.곰팡이와 습기가 가득한 지하방에서 눈물 흘린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젠장…. ●함께 사는 사회… 라나다님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아프리카도 북한 동포도 지원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자국내의 시민을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또다른 희망… 푸른벌레님 개인 파산은 이 세상과 등지고 살거나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경제적 활동을 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돌아가서 자기 몫을 다시 해내는 구성원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정확하게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love님 우리 같이 성실한 서민들은 돈이 없어도 세금은 꼬박꼬박 내면 우리만 손해 아닙니까?모든 것을 면책해주면 그돈을 메우는 것은 국민들의 세금 아닙니까? ●파산하신 분들… besthosp님 파산자에겐 정책적인 도움도 필요하지만,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입니다.일을 할 수만 있다면 희망은 있는 것이지요. ●판사님이 다 알아서 잘 하십니다 잘살아보세님 아무나 파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파산은 정말 자살 직전에 하는 것입니다.말 그대로 오죽하면 파산하겠습니까….정말 답답한 사람들 많네…. ●마치 파산이 양질의 탈출구인양 미화 꿈이큰이님 파산결정 후 거주지를 마음대로 옮기지도 못하는 거주제한을 받는다.도덕적 해이는 기자들이 만들고 있다.
  • [파산, 그 이후] “살길은 있다”…파산자 카페 ‘희망가’

    [파산, 그 이후] “살길은 있다”…파산자 카페 ‘희망가’

    “저는 인터넷 쇼핑몰의 분양사기를 당해 파산했습니다.빚 6억원을 모두 면책받았습니다.우리가 잘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죽음을 선택하거나 숨어 살 정도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우리 희망을 가집시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중국집.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파산카페 회원 20여명이 ‘선배’의 경험담을 듣고 있었다. 그는 ‘신용불량자가 돼도 우체국 거래는 가능하다.’,‘완전면책을 받으면 연대보증인 보증채무도 사라진다.’는 등 직접 체득한 정보를 설명했다.모두가 신용불량자로 파산 신청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회원들은 초등학생처럼 경쟁적으로 손을 들고 질문을 퍼부었다.그들은 직접 체득한 생생한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아픈 마음 나누는 동병상련 회사원 이영선(가명·26·여)씨는 부모가 파산 위기에 있다.그의 아버지(60)는 36년동안 결근 한번 없이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사람을 너무 믿어 3차례나 보증을 선 끝에 1억원의 빚을 졌다.50대에 간신히 장만한 집은 5년만에 경매로 넘어갔다.어머니(56)는 친척에게 신용카드를 빌려줬다가 빚을 졌다.이씨는 회원들 앞에서 “두 분이 외가에 얹혀 살며 추심원 전화에 오금을 못 펴는 모습이 불쌍하다.”면서 “파산이라도 신청해 두 분을 지옥에서 구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그러자 회원들의 동병상련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개인 실책이 많아 완전면책이 힘들지 모르니 꼼꼼하게 준비하라.”는 충고부터 “하루빨리 파산을 신청해 두 분을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드리라.”고 걱정도 나눴다. ●상처,눈물…희망이라도 나누자 울산에서 올라온 정진화(가명·29·여)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언니가 선 보증과 카드빚을 갚으려 다단계 판매에 뛰어들었다.정씨는 “지난해 카드 빚이 1억 3000만원이라는 고지서를 받아보고는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면서 “우연히 알게 된 파산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다.곁에 있던 양정석(가명·35)씨가 “다단계 빚은 진화씨 책임이라 면책이 어려울 것”이라고 한마디 거들자,정씨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안양에 사는 주부 강지선(가명·34·여)씨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의 마지막 희망을 그렇게 짓밟으면 안 된다.”고 나무라기도 했다. ●‘예비파산자’우리도 전문가 파산 관련 서류를 들고 온 사람도 많았다.회사원 강지석(가명·28)씨는 파산신청서를 들고 와 자문을 구했다.강씨는 “변호사 수임료 100만원이 없어 직접 파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파산을 선고받고 면책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김태현(가명·44)씨는 “신청서에 처지를 과장하지 말고 심경을 진실하게 써야 하며 채무는 빠트리지 말고 모두 기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수첩에 받아적던 강씨는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격으로 이 자리의 회원들이 진짜 전문가”라며 정보를 얻기에 분주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신용회복 지원 4개제도 운용 개인의 신용을 회복하기 위한 지원 제도는 크게 4가지가 있다. ●개인회생제도 오는 9월23일부터 시행되는 일종의 개인 법정관리제도이다.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재조정해 신용불량자를 구제한다.정기 소득이 있는 사람이 7년동안 빚을 성실히 갚으면 나머지 빚을 탕감받는다.개인 워크아웃제가 신협에서 빌린 돈이나 사채 돈을 구제하지 않는 데 반해 모든 채무를 포괄적으로 구제한다. ●개인워크아웃 신용불량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된 채무자에게 상환 기간의 연장,분할상환,이자율 조정,변제기 유예,채무 감면 등의 채무조정 수단으로 경제적 재기를 돕는다.채무액이 적으면 상환조건을 조절할 수 있고 보증 채무도 사라지지만,채무액이 3억원으로 제한되어 있고 신청요건이 까다로운 단점이 있다. ●배드뱅크 채무자가 장기·저리로 신규 대출을 받아 채권기관에 빚을 변제하고,채권기관은 채무자에 대한 신용불량등록을 해제한다. 까다로운 소득증빙 요건이 없고 즉시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한시적으로 운용되는 데다,원금의 3%를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해 부담이 크다. ●개인파산제도 채무자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졌을 때 법원이 그 경위를 심리한 뒤 면책 선고로 빚을 탕감한다.조세 채무를 제외하고 모든 책임이 소멸되며 신분과 자격 제한도 사라진다.다만 공무원,변호사,공인회계사,사립학교 교원,의사,약사 등이 될 수 없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면책땐 공직생활 가능 파산은 모든 채무를 벗을 수 있는 면책의 필수적인 사전 절차이다.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파산으로 불이익이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꺼려한다.파산이란 말만 들어도 겁나게 하는 ‘카더라’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 상당부분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파산을 하면 호적에 빨간 줄이 가나? -호적에는 파산선고를 받은 사실이 올라가지 않는다.음주운전 전과기록이 호적에 기재되지 않는 것과 똑같다.다만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의 명부가 따로 있어 신원증명서를 발급받으면 파산선고 사실이 나온다. 하지만 완전 면책을 받으면 본적지에 통보하지 않으며,기록이 있어도 10년이 지나 복권되면 말소된다.또 형사 관련 일반조회에서는 파산과 면책 흔적이 남지 않는다. 파산은 가족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며 면책을 받으면 공무원이 되는 데도 지장은 없다. 파산을 하면 은행이나 신용거래가 불가능한가? -파산자의 신용거래는 신용불량자와 같다.지급정지를 당하고 거래하던 은행의 통장에서 돈을 찾을 수 없다.그러나 면책받은 뒤 채권기관에 내용증명을 보내 신용불량 해지 신청을 하면 신용거래법에 따라 정상거래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해지 뒤에도 기록을 일정기간 갖고 있는 채권기관이 대부분이라 본인 명의로 신용거래하는 것을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으며 정상적인 금융 거래까지는 통상 몇 년이 소요된다. 카드가 연체되면 지명수배나 형사고소되나? -연체로 형사처벌이나 지명수배까지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형사처벌을 받으려면 채무자가 처음부터 돈을 갚지 않을 목적으로 대출받고 고의로 연체하거나,대출받은 뒤 한 차례도 갚지 않거나,채권자를 속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카드깡’은 구제가 안 되나? -카드깡은 면책을 가로막는 사유가 된다.파산법 제367조 2항은 ‘파산의 선고를 지연시킬 목적으로 현저하게 불이익한 조건으로 채무를 부담하거나 신용거래로 인하여 상품을 구입하여 현저히 불이익한 조건으로 이를 처분하는 행위’를 과태파산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금액이 적을 때는 판사가 무시하기도 한다.판사가 재량면책 권한을 행사하여 일부 면책을 승인하기도 한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전문가가 말하는 ‘파산의 조건’ 파산하면 면책을 받아도 재기가 쉽지 않다.전문가들은 파산을 ‘죄와 벌’이라는 전근대적인 인과응보로 보는 데서 벗어나 채무자들의 경제적 재기에 최우선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종학(경실련 정책위원) 경원대 교수는 “미국은 경제적 회생 여부가 파산의 가장 중요한 선고 기준이지만 우리는 파산에 이르게 된 원인만 따진다.”면서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의 청산가치를 따져 처분했듯 개인파산도 새출발의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현 국회 입법정보연구관은 “면책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채권자가 강제집행을 할 수 없도록 미국과 같은 ‘오토매틱 스테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파산자의 새 출발을 위해 파산면제 재산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면 채권기관의 무분별한 대출이나 카드발급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전병서 중앙대 법대 교수는 “파산선고를 받으면 30일 이내에 다시 면책신청을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합쳐 파산과 동시에 면책을 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그는 “법적으로 ‘낭비’는 면책의 불허가 사유이지만 그 기준이 명확치 않다.”면서 “과거의 낭비가 지금은 레저 개념으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는 등 불합리한 측면이 많다.”고 비판했다. 임동현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국장은 “정부가 운용하고 있는 배드뱅크도 실제로는 원금탕감 없이 빚을 모두 받아내고 있다.”면서 “채권자와 채무자를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22) 구조조정 전도사 김재우(주)벽산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22) 구조조정 전도사 김재우(주)벽산 사장

    ㈜벽산 김재우 사장은 영락없는 용장(勇將)의 이미지다.180㎝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삼국지 관운장의 풍모다.올해로 벽산 CEO(최고경영자)가 된 지 7년째.IMF(국제통화기금)사태 속 붕괴 직전에 놓였던 적자회사를 단단한 흑자회사로 돌려놓은 능력이 장수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매김시켰다.불황기를 맞아 회사 업무 외에도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바쁜 강연 일정이 잡힌 그를 만나 36년 경영 이야기를 들어봤다. ●‘위기=위험+기회’ -1998년 1월3일 사장 취임식장은 바깥 날씨보다 더한 한기가 돌았다.정부가 IMF 관리체제를 선언한 지 딱 1개월 되던 시점.40년 된 회사와 1000명 직원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었다. 97년 적자는 300억원에 달했고,부채는 1800억원이 넘었다.외상매출의 5분의1 정도는 대금을 못받는 악성채권들이었다.모든 사람들이 패닉상태였다.새 사장은 건축자재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이 없었고,직원들은 극도의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를 합친 말 아닌가.”취임한 지 3개월째 들면서 지난 2개월동안의 구상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우선 직원을 980명에서 450명으로 절반 이상 줄였다.하지만 사람들을 그냥 내보낸 것은 아니었다.150명에게 우리회사 제품의 총판점을 차릴 수 있도록 창업을 지원했다.건축자재 시장이 불황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시장수요를 잘 예측·분석하는 최일선 전문가들이 필요했다.노련한 벽산의 직원들이야말로 우리 제품을 제대로 팔아줄 사람들이었다.당시 2∼3명씩 한 조가 돼 창업한 총판점 가운데는 현재 연 매출액이 100억원에 가까운 곳도 있다. -당시 금리는 살인적이었다.1개월짜리 CP(기업어음) 이자가 연 30%에 달했다.반면 회사매출의 60%는 외상거래여서 자금이 제대로 안돌았다.그나마 이 중 30%는 부도 등으로 대금을 고스란히 떼이는 판이었다.차라리 물건을 안 파는 게 나았다.거래처를 4000개에서 400개로 10%만 남기고 다 없앴다.판매목표는 전년의 60%로 낮췄다.목표를 무리하게 잡아 ‘부실판매’를 낳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대신에 거래조건은 강화해 반드시 담보가 있는 곳에만 납품하게 했다.그 외에는 100% 현금거래였다.얼마 안 지나 취임 때 16%에 달하던 부실채권 발생률이 0.1% 이하로 떨어졌다. -인력과 고객의 구조조정에 이어 그해 5월에는 의사결정의 슬림화에 착수했다.내가 가진 결정권을 10%로 줄이고 일선 책임자에게 90%를 넘겼다.조직원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더 큰 것은 CEO가 바빠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미국의 경영학자 알프레드 스로운의 “1%를 경영하라.”는 말처럼 CEO가 바쁜 이유가 책상에 앉아 결재할 서류 때문이어서는 안된다.지금도 나는 “반드시 내 결재가 필요한 일인가.” 자문해 본 뒤 그렇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몇십억원이 집행되는 일이라도 직원들에게 맡긴다.CEO가 바쁘면 변화를 제대로 짚어낼 수 없다. ●“나한테 걸레면 남한테도 걸레” -그해 8월6일 워크아웃이 시작됐다.회사 전체매출의 40%를 차지하던 전남 여수와 경남 진해의 석고보드 공장을 프랑스 라파즈(유럽 최대의 시멘트 골조회사)에 매각했다.생산량의 절반은 우리가 판매권을 갖는다는 조건이었다.벽산의 대명사 ‘석고보드’를 매각하려는 데 임직원의 반대가 거셌지만 나는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며 일축했다.나에게 소중한 것을 팔아야 남이 사준다는 얘기였다.그 이면에는 내가 생각한 구상이 있었다.“글로벌화는 불가피하다.하지만 우리 업역의 특성이나 규모로 볼 때 글로벌화를 선도하기는 어렵다.그렇다면 글로벌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우리의 역할을 더 키워야 한다.”지금도 여수·진해 공장에서 생산된 석고보드는 각각 50%씩 ‘벽산 석고보드’와 ‘라파즈 석고보드’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던 2001년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경영정상화 성공사례를 책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임직원 30여명과 함께 97년 300억원 적자회사에서 2000년 30억원 흑자회사로 전환시킨 과정을 책으로 만들어냈다.제목은 ‘누가 그래? 우리 회사 망한다고’.이어 2002년 워크아웃 공식졸업 이후에는 2탄으로 ‘거봐! 안망한다고 했지’를 출간했다.벽산이 금세라도 망할 것처럼 떠들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던진 성공리포트였다. -70년대 중동에서 불모의 열사를 누볐던 일들은 두고두고 나에게 재산이 됐다.특히 75년 1억달러 수주기록은 김재우라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각인시킨 일로 남아 있다.73년 나는 30세에 삼성물산 영국 런던지사장으로 갔다.이제 막 산업화의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선진국.하지만 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이듬해 나는 레바논 베이루트지사장으로 발령났다.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던 당시는 거꾸로 중동 ‘오일달러’를 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회사에서는 해결사로 나를 보냈지만 나의 상심은 대단했다.여유로운 생활은 물론이고 그룹내 최고의 영어전문가가 되겠다는 꿈도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 -분노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아랍의 현자(賢者) 한사람을 만났다.그는 “사람의 운명은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당신은 경쟁자보다 무엇 하나라도 더 나았기에 원치않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장기적으로 더 나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뜨거운 모랫바람을 맞아가며 중동 각국의 정부와 기업 인사들을 만났다.어느날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성 관료가 나를 찾았다.“군복,탄띠,요대 등 군대 비축물품을 300여가지 장만하려는데 삼성물산에서 공급할 수 있겠느냐.”그때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것들을 다루지 않았지만 나는 자신있게 “예스”라고 했다. 수주금액은 무려 1억 100만달러.당시 삼성물산의 연간 전체 수출액이 2억달러였다.다행히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져서 나와 회사는 중동지역에서 커다란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81년 우리나라가 이라크와 국교수립을 하는 과정에서 민간교류단장으로 미력이나마 공헌한 것도 그때 인연이 컸다. -우리 직원들은 매월 한권씩 책을 돌려본다.같은 책을 150권 사서 서로 돌려보고 독후감을 작성한다.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50여권을 읽었다.책 한권을 고르기 위해 나는 두 세권을 읽는다.얼마 전에는 조난당한 남극탐험대원 27명을 2년 만에 무사히 생환시킨 어니스트 새클턴 함장의 이야기를 다룬 ‘인듀어런스’를 감명깊게 봤다.고등학교 때 읽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만큼 큰 감동이었다.둘 다 살아있는 한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마찬가지로 요기 베라(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의 명언을 후배들에게 들려준다.‘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회의시간에 고개 숙이고 자료 읽는 사람과는 얘기를 안한다.생각을 안해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나는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셜록 홈즈를 자주 인용한다.생각을 통해 실마리를 찾아내는 홈즈와 단서를 뻔히 눈앞에 보고서도 추리를 하지 않는 그의 친구 존 왓슨이 비교대상이다.내가 최고로 치는 가치도 의사결정의 속도다.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위기상황에서 리더가 내려야 할 의사결정은 ‘무엇’(What)이 아니라 ‘언제’(When)”라고 했다.빨리 내린 잘못된 결정이 늦게 내린 바른 결정보다 차라리 낫다는게 내 신조다.나는 회의를 마칠 때 반드시 논의된 사항들의 중간점검을 하게 한다.그래야 나중에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는 낭비를 줄일 수 있다.아무 것도 결정짓지 못하는 회의는 쓰레기다. -벽산은 98년 워크아웃 개시와 동시에 정보화 투자를 시작했다.전 사원이 상여금을 반납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추진한 게 ‘1인 1PC 갖기’였다.이를 ‘사치’라고 느낀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평생직장은 없다.이곳을 떠나 다른 조직에 가더라도 정보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며 다독거렸다.우리가 빠르게 수렁에서 벗어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보화를 통한 생산효율 향상이었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재임 중 업적으로 보면 실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하지만 그는 만 80이 된 지금도 대통령 특사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그는 ‘희망보다 후회가 많을 때 늙는다.’고 했다.나는 항상 ‘오늘은 내 여생의 첫 날’이라고 생각하라고 직원들과 아이들에게 말한다.그런 점에서 아침시간은 ‘황금을 물고 있는’ 귀한 시간이다.하루에 1시간만 일찍 움직이면 1년에 보름이 내 손에 들어온다. ■ 김재우 사장은 ㈜벽산 김재우(金在祐·61) 사장은 별명이 많다.삼성에 있을 때에는 ‘일공일’(101)로 통했다.197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1백만달러(1억 100만달러) 납품을 따낸 게 인연이 됐다.98년 벽산에 온 뒤에는 ‘구조조정 전도사’란 별명을 얻었다.요즘은 온갖 강연이나 세미나에 연사로 초청받는 ‘스타 강사’다.30년 삼성맨 생활을 마치고 벽산의 최고경영자로 와서 경영권한 이양,매출목표 감축,거래선 축소 등 역(逆)발상을 통해 회사를 빠르게 정상화시켰다.97년 1816억원(부채비율 297.1%)이던 부채는 현재 210억원(59.2%)에 불과하다.지난해 매출은 2000억원이며 OA플로어,슬레이트,재래식 천장,미네랄 울,압출발포 폴리스틸렌 등에서 업계 1위다.그의 경영철학은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이다.어떤 일을 왜 해야 하는 지 알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얘기다.▲44년 경남 마산 출생 ▲경북사대부고·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삼성물산 특수사업본부장·정보산업 총괄전무,삼성항공·삼성물산·삼성중공업 부사장 ▲97년 벽산건설 사장 ▲98년 벽산 사장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아테네 GO]화룡점정 ‘성화점화’

    아네테올림픽 성화는 26개국 33개 도시를 돈 뒤 지난 10일 성화운송 전용기인 ‘제우스’에 실려 그리스로 돌아왔다. 고대올림픽 시절에는 올리브관과 지팡이가 성화를 대신했다.개최도시의 올림픽 전령들은 당시 그리스 세력권이던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까지 달려 올림픽 시작을 알렸다.1896년 시작된 근대올림픽의 역사에서 성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8년 암스테르담대회이지만 성화 봉송은 36년 베를린올림픽조직위원회가 그리스에서 점화해 베를린까지 운송할 것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봉송 프로젝트를 지시한 사람은 ‘나치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였다.평화를 상징하는 성화 봉송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2차례(40·44년)나 올림픽을 취소시킨 히틀러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올림픽의 아이러니다. 어쨌든 성화 점화는 올림픽 개막식의 ‘화룡점정’이다.76년 몬트리올 대회 때는 레이저 빔을 사용해 첨단 과학의 시대를 알렸다.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고 손기정옹과 임춘애에 의해 봉송된 성화를 섬마을 선생님 정선만씨와 마라톤선수 김원탁,소녀무용가 손미정이 승강기를 타고 세계수(世界樹)로 명명된 22m 위의 성화대까지 올라가 동시에 점화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왕년의 복싱스타 무하마드 알리가 떨리는 손으로 점화를 해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환경 올림픽’이 주제였던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는 호주 원주민(애보리진)의 우상이었던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이 발목까지 차오른 물 속으로 첨벙첨벙 걸어들어간 뒤 서서히 떠오르는 원형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연출했다.지난 6월 성화 봉송을 위해 서울에 온 아테네올림픽조직위원회 대변인 앤드루 던스콤은 “세계를 깜짝 놀랄 쇼를 준비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씨줄날줄] 전역/ 우득정 논설위원

    군에 갔다온 사람이면 누구나 ‘개구리복’(예비군복)을 입던 순간을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사병 출신은 아마도 가장 기쁜 순간으로,직업군인 출신들은 영광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으로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그래서 퇴임식이나 이임식보다 전역식이 더 진한 감동으로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1월에는 눈보라를 뚫고 36년의 군생활을 36㎞ 마라톤으로 마감한 장군이 나왔다.1994년에는 43년만에 사지에서 귀환한 첫 국군포로 조창호 중위의 전역식이 열렸다.그는 “나는 죽어도 항복하지 않는다.나는 포로가 되더라도 전력을 다해 탈출하겠다.”는 군인 수칙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전역사를 대신했다.올 1월에는 국군포로 전용일씨가 53년만에 전역 신고를 했다.얼마 전에는 두 차례 탈영 끝에 16년만에 제대한 한 전투경찰의 전역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린 전역식 몇 장면도 기억의 저편에 간직하고 있다.41년 전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던 그는 곧바로 철권통치로 장기집권의 길로 접어들었다.1980년에는 1년만에 별 두개를 더 보탠 2명의 육군 대장이 전역과 동시에 권력을 차례로 움켜쥐던 모습도 지켜봤다.그리고 아직도 그 망령은 여전히 살아남아 위세를 떨치고 있다. ‘NLL 사태’와 관련,남북 함정간 교신내용과 북의 전화통지문 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박승춘 합참 정보본부장이 자진전역 신청을 했다고 한다.33년에 걸친 군 생활의 마감이다.말이 ‘자진전역’이지 사실은 불명예 제대다.군 통수권자에 대한 항명성 반발이었다는 점에서 징계 수위가 약한 게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목청을 높이기에 앞서 미국 맥아더 장군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 확전 여부로 트루먼 대통령과 맞선 끝에 강제 전역조치됐지만 미국 귀환시 전쟁 영웅으로서 카 퍼레이드와 상·하원 합동 연설이라는 최상의 예우를 받았다.그래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 연설도 남길 수 있었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군에 대한 이러한 예우가 아닐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100년기업 100년상품] 국내 最古기업 두산

    우리나라 기업사를 되짚어볼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두산(斗山)이다.우선은 올해가 창립 109년째로 국내 최고(最古)기업(한국기네스북)이란 게 그렇다.또 재벌(財閥) 시스템이 갖는 문제를 한몸에 끌어안고 있다가 존망의 위기에 놓이는 시련을 겪었고,이를 계기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 변신에 성공했다는 점도 경영학 교과서의 한 장을 장식할 만하다. 두산의 모태는 경기도 광주 출신 소작농의 아들 박승직이 1896년 서울 배오개(지금의 종로4가)에 세운 ‘박승직 상점’(포목점)이었다.박승직은 ‘광장’이라는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공익사’라는 국내 최초의 무역회사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박승직은 36년 맏아들 박두병을 회사 취체역(지금의 상무급)으로 입사시키며 2세 경영체제를 구축했다.박두병은 경성상고를 졸업하고 조선은행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 선진화를 시도했고 46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따 회사명을 ‘두산상회’로 바꿨다. 8·15 광복은 두산이 대형화하는 도약대가 됐다.미 군정청은 한국내 일본인 재산을 처분하면서 쇼와기린(昭和麒麟)맥주의 관리인에 박두병을 지명했다.박두병은 이미 42년부터 쇼와기린의 대리점을 운영해 온 터였다.48년 회사 이름을 동양맥주로,상표는 OB(Oriental Brewery)로 바꿨던 그는 미 군정청이 물러날 때 동양맥주를 34억원에 사들였다. 두산상회와 동양맥주라는 양대축을 기반으로 성장을 거듭하던 두산은 6·25전란 속에 창업자 박승직이 타계하고 서울 영등포 맥주공장이 잿더미로 변하면서 존망의 기로에 놓였다.그러나 53년 8월 맥주출하를 재개하면서 회복의 발판을 마련했다.60년대 들어 박두병은 두산상회를 두산산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계열사 설립 및 인수합병에 박차를 가했다.60년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설립 및 합동통신사 인수,66년 한양식품(코카콜라 제조) 설립,67년 윤한공업(현 두산기계) 설립 등 그룹의 외형은 꾸준히 확대됐다. 박두병은 타계(73년)하기 4년 전인 69년 정수창을 동양맥주 사장에 선임했다.정수창은 일제 쇼와기린맥주 시절 박두병이 직접 뽑았던 사원이었다.이 때부터 10여년간 두산의 ‘전문 경영인 시대’가 이어졌다.81년 두산은 정수창 시대를 마감하고 창업 3세인 박용곤 회장체제를 구축했다. 60∼70년대 고도성장과 중동건설 특수 등에 힘입어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온 두산은 그러나 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휘청거렸다.식품·출판·건설·기계·전자 등 과도한 사업다각화 속에 주력기업인 동양맥주가 조선맥주(현 하이트맥주)에 추월당해 적자에 빠지는 등 사업부진이 계속됐다.95년 그룹 적자규모는 9000억원,부채비율은 625%나 됐다. 두산의 구조조정은 이 때문에 외환위기 이전인 96년부터 본격화됐다.오너 일가는 3M·네슬레·코닥 등 핵심 합작사 지분매각,코카콜라 영업권 양도,계열사 사옥·토지 매각 등 뼈아픈 구조조정에 들어갔다.98년에는 그룹의 모태인 동양맥주를 벨기에 인터브루에 넘겼고,그룹의 상징이었던 서울 을지로 사옥도 팔았다.100년 역사의 두산이 사라진다는 말들이 나왔지만 이 때의 감량은 나중을 위한 힘의 원천을 비축하는 계기가 됐다.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는 두산의 재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기자기한 소비재에서 중후장대한 중공업으로 색깔을 바꾼 두산의 또 다른 100년을 향한 여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유로 2004] 伊보다 더 허망할순 없다

    ‘불운인가,음모인가.’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4) 조별리그에서 ‘아주리군단’ 이탈리아가 탈락한 것을 두고 유럽이 시끌벅적하다. 이탈리아는 23일 새벽 포르투갈 기마랑스 아폰소엔리케스타디움에서 열린 C조 마지막 경기에서 불가리아를 2-1로 눌렀다.1승2무(승점 5)가 된 이탈리아는 스웨덴 덴마크와 동률을 이뤘지만 동률팀간 다득점 순위에서 밀려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같은 시간 열린 스웨덴-덴마크의 경기에서 승부가 갈렸거나,0-0 무승부로 끝났다면 무난히 8강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두 팀은 2-2로 비겼다.조 2위인 덴마크는 D조 1위 체코와,조 1위 스웨덴은 D조 2위와 8강에서 맞붙는다. 스웨덴과 덴마크 관중들은 ‘2-2 바이바이 이탈리아’ 등 스웨덴과 덴마크의 동반 진출을 희망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응원했다.동반 8강 진출이 확정되자 두 팀은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으며 축제분위기를 이어갔다.같은 시각 불가리아를 2-1로 잡고 8강 진출의 한가닥 불씨를 살린 이탈리아는 스웨덴-덴마크전이 2-2 무승부로 끝났다는 소식에 얼굴을 감싸쥐고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2-2는 이탈리아로서는 ‘저주의 스코어’.이탈리아가 아무리 불가리아를 큰 점수차로 이기더라도 8강에 진출할 수 없는 스코어였다.대회 조별리그 순위는 승점이 같은 경우 동률팀끼리 승자승 원칙,동률팀끼리 골득실차·다득점 순으로 순위를 가린다.그 다음이 전체 골득실차와 다득점이다.스웨덴 덴마크 이탈리아는 동률을 이뤘고,동률팀끼리 무승부를 이뤄 골득실차까지 같았다.결국 동률팀끼리 다득점으로 순위를 가리게 됐고,스웨덴이 3골,덴마크가 2골,이탈리아가 1골이었다. 악몽이 현실로 나타나자 프랑코 카라로 이탈리아축구협회장은 음모론을 제기했다.그는 “확실한 증거를 찾기 힘들겠지만 스웨덴과 덴마크가 무승부를 겨냥하고 경기에 나섰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최측인 유럽축구연맹(UEFA)은 “지금 상황에서는 경기 결과에 대해 의심할 만한 여지가 전혀 없다.”면서 음모론을 일축했다.지난 대회(유로2000) 준우승팀으로 36년만의 정상탈환을 노린 이탈리아는 ‘음모’와 ‘불운’의 논쟁만을 남긴 채 쓸쓸히 집으로 향하게 됐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개관 10돌 맞은 김석원 전쟁기념관장

    ‘인간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권력을 위해,때론 영광이나 명예를 위해,또 한 때에는 사랑을 위해….’ 얼마전 개봉된 영화 ‘트로이’의 도입 부분 내레이션이다.‘트로이전쟁’은 10년간 계속됐던 기원전 최대의 전쟁으로 예술과 문학사에서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트로이’는 저 유명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배경이 되고 있다.실재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인간 상상력의 극치다.3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트로이 목마’가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는 역사 이전의 시대부터 숱한 전쟁을 치르고,또 기억하면서 살아왔다.‘전쟁’이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1·2차 세계대전,6·25전쟁,베트남전쟁 등에서 실증적으로 경험했다.이라크 전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그래서 전쟁은 기억하고 싶던 아니던 인간과 더불어 영원히 ‘기념’될 수밖에 없다고 학자들은 얘기한다. ●1년에 100만명 관람… 분단의 상징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은 민족분단의 ‘상징’이다.해마다 이맘때쯤 가장 붐빈다.‘보훈의 달’이라는 이름아래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올 6월은 더욱 의미가 깊다.10일로 개관 10돌을 맞았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은 예상보다 찾는 이가 많다.연평균 100만명이 이곳을 들른다.이에 10년을 곱하면 그동안 1000여만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계산이다. 며칠전 김석원(64) 전쟁기념관장을 만나기 위해 기념관 ‘전사자명비’ 앞을 막 지나는 순간이었다.백발의 두 노병이 눈에 들어왔다.둘은 손가락을 짚어가며 돋보기를 들이대며 전사자명비를 열심히 살폈다. “연대장님,여기 있네요.이놈이 틀림없어요.” “백마고지,그 김 중사 맞아?” “그렇습니다.연대장님.” 이윽고 둘은 ‘김○○’이라고 적힌 이름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놈 참 용감했어.그때 고집만 안 부렸어도 살았을 텐데….” “연대장님,그래도 김 중사가 아니었으면 우리 연대본부는 아마 몰살당했을 겁니다.” “하긴,그래.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가로막힌 남북은 그대로야.이놈은 죽어서 우리한테 아무 말도 안하고 말야.살아 있다는 게 덧없을 뿐이야.” “…….” 잠시 침묵이 흘렀다.두 노병의 눈가는 이미 젖어 있었다.시인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문득 생각났다. ‘…나는 죽었노라.스물다섯 젊은 나이에,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때마침 견학온 유치원생 100여명이 그 앞을 시끄럽게 지나가는 바람에 더 이상의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전쟁기념관의 이운세 홍보부장은 “6월이어서 옛 전우의 이름이라도 찾으려는 노병의 발길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전통으로 이름날린 36년 ‘군인의 삶’ “전쟁기념관은 한마디로 전쟁을 단일주제로 5000년 민족사를 조망하고 있지요.그 교훈을 마음으로 새기고 두번 다시 전쟁의 참극을 겪어서는 안되겠다는 실천적 결의를 다지는 호국의 전당입니다.” 김 관장은 예비역 중장이다.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과 제5군단장,군수사령관 등을 지냈다.군 안팎에서는 소문난 ‘작전통’이다.지난 5월10일 관장으로 부임했다.그는 부임한 지 한달밖에 안됐다고 강조했지만 베트남전 참전과 36년 동안 군에 몸담아서인지 전쟁기념관의 중요성과 역할,그리고 나아갈 길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르죠.추모의 기능이 있습니다.20만여명의 전사자명비가 있어 추모객들의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전쟁기념관은 우리 민족이 겪은 전쟁사가 살아 숨쉬는 국내 최대의 군사박물관이자 아시아 최고의 기념관으로 우뚝 섰습니다.” 김 관장의 목소리가 더욱 빨라졌다.전쟁기념관은 도심속의 시민문화공간이라고 했다.3만 5000여평의 너른 부지위에 연못,분수,녹지공간이 그렇단다.매년 나라사랑 그림그리기 대회,평화사랑 글짓기 대회,청소년 문화교실,호국추모 꽃꽂이 전시회,6·25음식먹기 행사,열린음악회,영화시사회,패션쇼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이용하기에 따라 정말로 유익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뿐만이 아니다.어린이연극,청소년연극,도자기체험교실,과학체험교실,호신무예교실,전통예절교실 등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8년 발해건국 1300주년을 맞아 ‘발해를 찾아서’나,2000년의 6·25전쟁 5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2002년의 DMZ특별기획전 ‘갈 수 없는 땅,그러나 가야만 하는 곳’ 등은 관람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고 했다. 김 관장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대부분 전쟁기념관을 찾을 정도로 중요한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면서 “그동안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영국의 앤드루 왕자,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고(故) 살라후딘 말레이시아 국왕,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등 30여개국의 VIP들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용산 박물관벨트 중심으로 도약할 것 전쟁기념관에 보유중인 유물만 해도 3만여점에 이른다.김 관장은 “지난 4월 세계적 군사박물관인 프랑스의 앵발리드 박물관과 ‘양해 및 교류협약서’를 맺는 등 앞으로 스페인·영국 등 외국의 박물관과 교류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2005년 국립박물관의 용산이전이 완료되면 기념관 일대는 새로운 박물관벨트로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로 한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관 10주년에 맞춰 국내 최초로 ‘우리나라 전통무기’ 특별기획전이 열립니다.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전통무기를 총망라했지요.국보급·보물급도 많이 선보일 예정입니다.” 김 관장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하면서도 업무추진력만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오자복 현 성우회장과는 각별한 인연을 쌓고 있다.김 관장이 15사단 39연대 작전주임때 오 회장은 39연대장이었다.이후 김 관장은 오 회장의 ‘수제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1940년 경북 영주 출생인 그는 가난한 농가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61년 6월 사병으로 군입대했으나 장교가 멋있어 62년 6월 소위(갑종166기)로 임관했다.이후 위관급때에는 15사단에서,영관급때에는 28사단에서만 근무하게 되는 인연을 맺었다.28사단 81연대 2대대장 시절에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연대장,김동진 전 국방장관이 인근 3대대장으로 근무했다. “15사단은 젊은 시절 대부분을 보내 제 마음의 고향입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12)’등산경영’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등산이나 회사경영이나 같습니다.전열을 가다듬어 간다든지,뒤처지는 사람은 다른 동료들이 끌어주고 앞에 위험이 있으면 미리 경고해 준다든지….” 옛 재무부 관료시절 국내의 산이란 산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등산광이었던 박종원 코리안리(옛 대한재보험) 사장의 ‘등산경영론’이다.박 사장은 관료출신 중 성공한 대표적인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는다. 박 사장이 지난 1998년 7월 지휘봉을 잡으면서 코리안리는 놀랄 정도로 달라졌다.63년 창립 이후 98년까지의 순이익은 837억원에 불과했지만,박 사장이 취임한 이후 99년부터 지난 2003년의 순이익만 2475억원이다.5년간의 순이익이 과거 36년간의 합계액보다 3배나 많은 셈이다. “실적이 좋은 공사도 물론 적지 않지만,대체로 공사는 (민간기업보다는)무사안일한 것이 아닙니까.” 수익개념도 별로 없었고,이익을 창출하려는 노력도 제대로 없었다.코리안리는 지난 63년 공사로 출범했다.78년에 민영화가 됐지만 박 사장이 부임할 때까지도 민영화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던 셈이다. 박 사장은 먼저 구조조정을 통해 분위기 혁신을 시도했다.외환위기 때라 구조조정은 유행아닌 유행이 됐고,선택이 아닌 필수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특히 당시 코리안리는 보증보험 손실규모가 3800억원이나 됐고,그 해의 손실은 2800억원으로 예상되는 등 파산 직전이었다. ●실세 동창생도 구조조정 박 사장은 98년 9월 282명의 임직원을 197명으로 줄였다.30%를 줄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원칙대로 했다.김대중 대통령 시절 실세로 알려졌던 Y씨의 동창생인 모 부장을 정리했다.당시 경제부처의 고위관계자도 Y씨 친구 구명에 나섰지만,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박 사장은 또 노조 핵심간부 출신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시켰다.외부에서 노조간부를 살리려고 했지만,박 사장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핵심 두 사람을 인사고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정리하자,구조조정에 포함된 다른 직원들도 “저런 실세들도 짤리는데….”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취임해 보니 타원형 조직이었습니다.지점이 없고 본부만 있는 회사다 보니 한번 회사에 들어오면 계속 승진하고,이러다 보니 과장급 이상 간부직이 45%,대리급 이하가 55%인 기형적인 조직이었지요.” 상향·하향·동료평가 등 다면평가와 과거 7년간의 인사고과를 바탕으로 간부급 45%,사원급 18%를 구조조정했다.타원형조직이 피라밋조직으로 바뀌었다. “구조조정에 따라 물론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이하고 무사안일한 직원들,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직원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실적이 좋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점입니다.” 과거에는 사장라인,감사라인,상무라인 등 각종 파벌이 있었지만 그러한 것도 사라졌다.과거의 인사위원회는 유명무실했지만 지금은 부장들이 인사위원이 돼 승진할 사람을 가린다.또 부장들은 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한다.방출할 직원들도 나올 수밖에 없다.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 “이 곳에 온 직후 99년도 계획을 짤 때,직원들은 ‘98년 정도의 실적만 올려도 잘하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길래 내가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단언하느냐.’면서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해서 10% 성장하는 안을 다시 짜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99년 실적은 전년보다 15%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렇게 되자 직원들은 ‘하면 되는구나.’하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소극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로,부정적인 태도에서 긍정적인 태도로 직원들의 자세가 바뀌었습니다.” 2000년부터는 일본의 동아재보험을 제치고 아시아 1위에 올랐다.세계 17위.특히 동남아의 관련업계에서는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투명한 경영과 능력에 따른 인사 정보 공유가 잘 되는 점도 코리안리의 장점이다.확대간부회의가 대표적이다.매주 한차례 하는 확대간부회의에 노조 사무국장이 참석한다.정보를 공유하고 경영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취지에서다.대리급 이하의 직원들도 돌아가면서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한다. “직원들도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합니다.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일해야 더 잘 할 수도 있고,참여하면서 사명감도 갖게 됩니다.” 신입사원 선발 방식도 독특하다.지난해에는 서류심사와 면접 외에 야외면접을 도입했다.합격예정자의 2배수를 뽑은 뒤 오전에는 청계산을 등반하도록 했다.부장·차장·노조위원장 등이 조장을 맡았다.점심에는 축구를 하도록 했다.등산을 할 때에는 시간을 잘 지켰는지,복장을 비롯한 준비물을 잘 됐는지를 체크했고 축구시합에서는 팀워크를 중시하는지,적극적인지를 봤다.지금도 그렇지만,과거에는 공무원들이 민간으로 가는 것을 더 꺼렸다.그런데 왜 민간행을 선택했을까. “어느날 갑자기 자문자답을 해봤습니다.공무원 생활이 행복한가,나는 만족하고 있나를 스스로 물어 봤지요.토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는 공무원 생활….1급이 되고 차관,장관이 된다고 해서 행복할지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민간에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밖에서 오면 능력과 적재적소와는 관계없이 대체로 ‘낙하산’으로 폄하된다.당시의 대한재보험 노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정식으로)취임하기 전에 노조에서는 낙하산이라고 반대했습니다.(거의)망한 회사를 살리려면 노사가 화합하는 길밖에 없다고 설득했지요.재무부 사무관 시절 보험담당을 했던 경험에 따라 청사진을 설명했고,노조 간부들의 이해를 구했습니다.” ●“공무원들,목에 힘을 빼면 된다.” 민간쪽으로 가려는 관료들에게 부탁할 점은 뭘까.“목에 힘을 빼면 됩니다.그렇지 않으면 민간부문에서 살아 남을 수 없지요.선례는 그만 따지고 효율(수익성)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서울 수송동의 코리안리에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도전은 계속된다.’,‘아시아 1위에서 세계 초일류로’라는 자막을 볼 수 있다.직원들의 인사말도 “1등합시다.”로 됐다. “1등은 모범답안이 없습니다.남이 하지 않던 것을 해야 하고,시장개척을 하고,미래를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지요.코리안리 직원들은 1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작지만 강한 회사,단일기업으로 최고의 기업,최고의 봉급을 주는 회사로 키우고 싶습니다.” 코리안리의 대주주는 회사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소유와 경영의 분리,CEO와 직원들의 자신감과 적극적인 사고가 과거의 패배주의에서 벗어난 오늘의 코리안리를 만든 원천은 아닐까. 곽태헌기자 tiger@seoul.co.kr ■ 박종원 사장은 “아무래도 공직은 다소 조직이 경직된 편인 반면 민간부분은 유연하지 않습니까.모든 정책을 사장이 펴나갈 수 있고,그에 따라 성과도 있기 때문에 성향상 공무원보다는 민간쪽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 사장의 예상과 기대대로 민간부문으로 나온 뒤의 성적은 A+.보통 관료(특히 옛 재무부) 출신들은 민간으로 오면 실적과는 관계없이 6년은 보장된다는 말도 있지만 박 사장은 실적이 좋아 2001년 연임됐기 때문에 보통의 관료출신과는 성격이 다르다. 사람마다 스타일은 다르다.참모형도 있고,보스형이나 야전사령관 스타일도 있다.기자가 박 사장을 알게 된 것은 지난 97년 말.그는 공룡조직인데다 외환위기로 특히 바빴던 재정경제원의 공보관으로 부임했다. 해병대 출신의 박 사장은 분명 참모형은 아니었다.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관료형도 아니었다.연말이면 환갑이지만,등산으로 단련된 몸과 마음은 청춘이다.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14회 출신으로,재무부 외자관리과장,재정융자과장,총무과장을 지냈다.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통합된 뒤에는 재경원 총무과장을 맡았다.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에 이어 공보관을 지냈다.매우 솔직한 성격이다. ˝
  • [기네스코너]

    ●2만 3000년간 보존된 매머드 매머드란 우리들이 흔히 맘모스라고 잘못 부르는 홍적세 중기부터 후기에 걸친 빙하기에 생존하였던 코끼리와 비슷한 동물로 크기가 3m 정도나 된다.빙하기 시대에 멸종되었으며 현재 보존된 가장 오랜된 것은 1999년 10월,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프랑스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약 2만 3000년 전에 살았던 이 동물은 엄니(포유류 특히 식육류 등의 송곳니 또는 앞니가 발달되어 길고 커져서 입 밖으로 돌출한 이빨)의 무게가 각각 64.8㎏이나 나갔다. ●영하 89.2도 가장 낮은 기온 지표에서 기록된 가장 낮은 자연 온도는 1983년 7월21일 남극대륙 보스테크에서 기록된 -89.2℃였다. ●생후5개월에 장기 4개 이식 받아 캐나다 온타리오주 코버그의 ‘사라 마샬’은 1997년 8월7일 온타리오주 한 소아병원에서 5개월 24일이라는 나이로 새로운 간과 내장,위,췌장을 이식 받았다.사라는 태어날 때부터 거대방광,소결장,장연동저하 증후군으로 고생해왔다. ●나병환자가 121만명에 이르는 인도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1999년초 인도에선 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57만 7200명이었다가 1999년 7월에는 그 수가 63만 4901명이 늘어 121만 2101명에 달했다고 한다. 나병환자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는 브라질로 1999년 1월,7만 2953명에서 1999년 7월에는 11만 6886명으로 증가했다. ●최초의 인공 눈(眼) 2000년 1월17일 36년 전에 시력을 잃은 ‘제리’라고만 알려진 환자가 미국 눈 전문가인 월리엄 도벨이 개발한 인공 눈 덕분에 시력을 되찾게 됐다는 발표가 있었다.도벨이 개발한 안경을 보면 소형 카메라와 초음파 거리 측정기가 부착되어 있어서 제리가 허리에 차고 있는 컴퓨터로 신호를 보내게 된다.그 후 이 컴퓨터는 이러한 영상과 자료를 차례로 제리의 대뇌 피질 표면에 이식된 68개의 전극봉으로 보낸다.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제리는 물체의 윤곽을 보여주는 간단한 점들의 디스플레이를 보게 된다. ●페널티킥 3차례나 놓쳐 이 기록은 1999년 파라과이에서 열린 1999 코파 아메리카컵에서 만들어졌다.마르틴 팔레르몬(아르헨티나)선수가 대 콜롬비아전에서 한 경기에 3차례나 페널티킥 기회를 놓쳐 팀 패배에 일조를 했다.첫 번째 패널티킥은 골대에 맞았고 두 번째는 관중석에, 세 번째는 골키퍼의 손에 가로막혔다. ●유리제품 91% 재활용 스위스는 자국 내에서 팔리는 모든 유리제품의 약 91%를 재활용함으로써 유리 재활용에 있어서 세계 제일이다.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가 근소한 차이로 그 뒤를 잇고 있는데 양국 모두 유리 재활용률이 80%가 넘는다.˝
  • 송미령 권력을 사랑한 여인

    ●‘송가왕조’ 세 자매중 막내로 태어나 ‘송가왕조(宋家王朝)’ 세 자매 가운데 한 명인 송미령은 20세기 중국사의 화두이자 상징이다.큰언니 송애령은 산서성 최대의 금융재벌이던 공상희와 결혼했고,둘째언니 송경령은 부친의 친구이자 중국혁명의 아버지인 손문과 결혼했으며,송미령은 22년 동안 중국대륙을 통치한 국민당 총통 장개석과 결혼함으로써 이른바 송가왕조를 이뤘다.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1980년대 중반 송씨 자매들을 이렇게 평했다.“이들은 시대가 만들어낸 인물들이다.낙양의 모란꽃처럼 이들 각자에겐 운치가 있다.사람들은 말하기를 송애령은 돈을 사랑했고,송경령은 중국을 사랑했으며,송미령은 권력을 사랑했다고 한다.” 세 자매의 인생관과 인생역정은 이처럼 판이했다. ●송미령 가문의 원래 성씨는 韓 ‘송미령 평전’(첸팅이 지음,이양자 옮김,한울 펴냄)은 조국과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동시한 사랑한 한 여인의 ‘모순된’ 삶을 통해 20세기 현대사의 궤적을 그려낸다. 책은 먼저 송미령 가문의 원래 성씨는 송이 아니라 한(韓)임을 밝힌다.송미령의 부친 한교준은 집안이 어려워 열 세살 때 양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다.우여곡절 끝에 송가수(찰리 송)로 성과 이름을 바꾼 그는 신학대학을 졸업,선교사가 돼 귀국한다.송가수는 훗날 절강재벌로 성장해 손문의 혁명자금을 지원하는 혁명동지가 된다.송미령은 이런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인 어머니 예계진 사이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장개석과 결혼… 퍼스트레이디로 송미령은 매우 오만하고 독선적이었지만 미모와 교양,외교력 등을 두루 갖춘 강한 면모의 ‘서구적’ 여성이었다.송미령을 중국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게 한 결정적 사건은 장개석과의 결혼이었다.장개석에겐 이미 맏아들 장경국의 어머니인 첫 부인 모복미가 있었고,둘째 부인 진결여와 첩 요이성이 있었다.송미령에게도 미국 유학시절부터 사귀어온 유기문이란 연인이 있었지만,언니 애령의 권유와 퍼스트 레이디가 되려는 권력욕이 어우러져 장개석과 결혼에 이르게 됐다.언니 경령에 이어 중국의 두 번째 퍼스트 레이디가 된 것이다.경령은 이들의 결혼에 대해 “둘의 결합은 정치의 일부분이지 사랑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송미령과 장개석의 48년 결혼생활은 화려함과 허영,용기,외로움으로 점철된 것이었다.1·2차 세계대전과 중국 내전,권모술수와 배신의 한복판에서 송미령은 늘 주인공이길 원했다.결혼 후 그는 국민당을 이끌고 공산당과 일제침략에 맞서 싸우는 장개석을 10여년 동안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개인비서,통역관 겸 외교고문으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특히 1936년 ‘서안사변’은 송미령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장학량에게 납치 감금된 장개석을 구하기 위해 직접 서안으로 달려가 담판하는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담력과 외교력을 과시했다. ●美서 ‘차이나로비’ 주역으로 주목 송미령은 ‘차이나로비’의 주역으로 대접받았다.1943년엔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청으로 외국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미국의 원조를 요청하는 연설을 해 기립박수를 받았다.루스벨트 대통령은 “선교사가 중국에 예수를 전했듯이 송미령은 미국에 중국을 알렸다.”고 극찬했다. 1949년 대륙에서 공산당이 승리함에 따라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쫓겨났지만 송미령은 장개석을 도와 외교활동을 계속했다.그러나 송미령은 1975년 장개석이 사망한 뒤 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그의 미국생활은 외로웠다.장개석의 성병과 송미령의 나팔관 수술 등의 이유로 자식이 없었고,본처의 아들인 장경국과는 불화의 연속이었다.두 번에 걸친 유방암 수술에도 불구하고 송미령은 106세까지 장수했다. ●만년의 장개석, 송미령에 찬사 만년의 장개석은 수많은 신화를 남긴 아내 미령에게 “당신은 지혜로 따지면 제갈공명 아내와도 비교할 수 없고,능력으로 말하면 측천무후도 비교할 수 없으며,강하기로 말하면 서태후보다 백배 더 강하오.”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20세기 현대사를 풍미한 송미령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을 달린다.그러나 중국의 개방 이후 본토에서 씌어진 이 책은 비난도 찬양도 하지 않는다.송미령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소설적인 문체로 그릴 뿐이다.소설처럼 부담없이 읽는 가운데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중국에서 13쇄를 거듭한 베스트셀러인 이 책의 번역본은 800여 페이지에 이른다.3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나눔 세상] 양종의 성남 혜은학교교장 가족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찬 직업이 바로 교사입니다.나중에 손자가 태어나도 이 길을 권하고 싶어요.”(양종의 성남 혜은학교 교장) “평소 아버지 모습을 존경해 자식들이 모두 교직에 몸담게 됐습니다.”(아들 양동욱 오산 성심학교) “아버지가 교사 남편 구해 오라고 압력 넣은 적은 없어요.그냥 저희들이 존경하는 남성상이 아버지이다 보니 남편들이 전부 교사가 돼버렸네요.”(큰딸 양수현 고양 명현학교,작은딸 양유선 수원 서광학교) 36년 경력의 양종의(58) 교장과 아들 동욱(23)씨,두딸 수현(28)·유선(27)씨,사위 이관선(30·고양 경진학교)·성치영(33·서울 우진학교)씨 등 일가족 6명은 모두 교단에서 참스승의 길을 걷고 있다.이들의 교직 기간을 합치면 60년을 웃돈다.더 특이한 점은 6명이 모조리 장애아동을 돌보는 특수학교에 근무한다는 사실이다.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13일 양 교장은 “그냥 행복하고 좋아서 하는 일이지,봉사도 아니고 특별히 감사받을 일도 아니다.”라며 오히려 쑥스러워했다.그는 “자식들에게도 이 길을 권한 적이 없는데 다들 알아서 선택하더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교사 생활 6개월째인 동욱씨는 “교단에서 행복한 아버지 모습을 보고 항상 존경스러웠다.”면서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학교에서 가르치던 장애 어린이들을 집에 데려와 우리와 함께 놀게 하고 목욕시키고,같이 재우셨다.”고 말했다.이어 “당시에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교사가 되고 보니 쉽지 않은 일”이라며 아버지의 실천을 자랑스러워했다. 가족 모두 특수학교 교사로 지내다 보니 모처럼 주말에 다함께 모여도 주요 화제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말을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등 특수 교육과 관련된 얘기로 흐른다.해법을 찾기 어려울 때면 양 교장은 자상한 아버지·장인에서 영락없이 엄한 선배교사로 돌변,‘특수교육의 길’을 특강한다. 양 교장은 “온 가족이 함께 특수교육 연구센터를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2,3년내에 경기지역에 정신지체·정서장애 아동교육 관련 자료를 모은 도서관 등 연구센터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경기도 특수교육과정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양 교장은 “한국 사회에서 특수교육은 아직 시작 단계”라면서 “장애아동의 교육은 단순히 특수학교에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그는 지난 2001년부터 성남 혜은학교 운동장에 사람의 샘터(70평),소동물원(90평),야생화단지(80평) 등을 조성,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본선진출 한·일·이라크 올림픽축구 ‘필승’

    아시아축구가 36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노린다. 한국과 일본에 이어 이라크가 13일 새벽 끝난 아테네올림픽 아시아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3-1로 물리치고 C조 1위로 본선행을 확정했다. 본선 진출 16개국 가운데 유럽 3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13개국이 가려졌다.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3국은 아테네올림픽에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걸고 메달에 도전한다.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아시아 국가가 메달을 딴 것은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일본이 동메달을 목에 건 것이 유일하다. 한국 김호곤 감독은 ‘히딩크식’ 막판 담금질에 승부를 건다.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2002한·일월드컵 개막 이전 5개월 동안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과 무려 14차례의 A매치를 치르면서 4강 신화의 바탕을 다졌듯 김 감독은 “7월 초부터 유럽·아프리카·남미 등의 강호들과 평가전을 통해 경험을 쌓겠다.”고 말했다.평가전은 모두 해외에서 치러 어웨이 경기 적응력도 강화시킬 참이다. 특히 와일드카드 3명을 포함하면 올림픽팀에 7∼8명에 이르는 성인국가대표 주전급 선수들이 포진해 있어 전력은 어느 때보다 탄탄하다는 평가다.문제는 조직력과 골 결정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를 위해 자체 연습보다는 평가전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일본은 아시안컵(7월17일∼8월7일·중국)보다 올림픽을 우위에 뒀다.국가대표팀 지코 감독의 양보로 선수선발의 우선권을 올림픽팀이 갖게 됐다.지난 3월 일찌감치 본선행을 확정짓고 현재 평가전을 통해 조직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멕시코올림픽 동메달을 비롯해 8강 진출 3차례 등 아시아에선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역대 올림픽 랭킹에서도 17위(9승3무8패)로 한국(26위·4승6무7패)보다 앞섰다. 이라크는 ‘죽음의 조’로 불린 최종예선 C조(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오만)에서 살아 남았다.88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의 본선행.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 8강까지 진출한 전력을 갖고 있다.내친김에 본선에서의 선전으로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고국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겠다는 각오다. 박준석기자 p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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