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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네시스보다 비싼 ‘포니1’ 7000만원대 매물로

    제네시스보다 비싼 ‘포니1’ 7000만원대 매물로

    국내 한 중고차쇼핑몰에 36년 전 차량인 ‘포니1’ 승용차가 매물로 등장했다. 가격은 대형차 제네시스보다 비싼 7000만원대. 20일 보배드림에 따르면 대구에 사는 염모씨가 포니1을 매물로 내놨다. 이 차는 30년 전에 생산된 1980년식이며 자주색. 주행거리 14만 9000㎞인 이 차량은 3도어이고 자동 변속기가 장착돼 있다. 염씨는 이 차가 무사고 차량이라고 소개했다. 포니는 현대자동차가 1973년 개발에 착수해 1975년 12월에 첫선을 보인 모델로 당시 출고가는 227만원이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5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몽골 소녀, 방 미셸. 활달한 성격 탓에 낯선 환경에도 금세 적응,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 만점이다. 재결합 뒤 180도로 달라진 아빠의 태도에 미셸은 요즘 더욱 신이 나 있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 가족. 한 번의 시련 뒤, 더욱 단단해진 가족을 만나본다. ●클래식 오디세이(KBS2 밤 12시35분) 독일 제1공영방송에서 주관하는 유서 깊은 콩쿠르 독일 ARD 국제 콩쿠르는 1977년부터 17년 동안 첼로 부문 우승자가 없었다. 하지만, 1994년 그 기록 아닌 기록이 깨졌다. 옌스 페터 마인츠가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첼로계의 슈퍼스타 옌스 페터 마인츠의 연주와 매력을 만나본다. ●책 읽는 사람(MBC 오후 5시20분) 맥가이버, 형사 콜롬보, 형사 가제트.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외화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목소리를 담당했던 대한민국 대표 ‘천의 목소리’ 배한성. 그의 어린 시절, 지금의 배한성이 있을 수 있도록 꿈을 키워준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고 한다. 배한성이 사랑한 2권의 책 ‘세계일주무전여행기’와 ‘돈키호테’를 만나본다. ●닥터 챔프(SBS 오후 8시50분) MOU 체결식이 끝난 뒤 연우는 도욱에게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느냐고 묻고, 도욱은 뜬금없이 태릉선수촌 각 종목 감독과 코치진의 사진과 프로필을 건네며 모두 외우라고 말해 연우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다 희영을 만난 도욱은 조만간 감독들과 식사하려는데 언제가 괜찮겠느냐며 묻는다. ●다큐 10+(EBS 오후 11시10분)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하와이. 해마다 1월과 4월 사이에 5000마리 이상의 혹등고래가 따뜻한 바다를 찾아 이곳으로 온다. 밴쿠버에서부터 베링해까지 분포돼 있는 북태평양 서식지를 떠나 무려 4000㎞를 이동해 찾아오는 여정. 플랑크톤과 한류성 어류가 거의 없는 열대 해역에 고래들이 해마다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멜로다큐 가족(OBS 오후 11시5분) 톱가수 나훈아와 외모는 물론이고, 몸짓, 노래실력까지 닮은 ‘나운하’ 박승창씨. 학창시절 화가를 꿈꿨던 그는 화구를 살 돈을 모으기 위해 극장쇼 무대에서 나훈아 흉내를 냈고,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36년 동안 나훈아 모창가수 ‘나운하’로 살아가고 있지만 당당하게 자신을 ‘가짜’라고 외치는 그의 ‘진짜’ 삶을 만나본다.
  • ‘사형선고’ 이철 前 코레일 사장 “과거 잘못된 사법판단 바로 섰다”

    “과거 잘못된 사법 판단이 마침내 이날 바로 섰습니다.” 30일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 3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이철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판결 직후 “오늘 판결은 과거 잘못된 판결에 대한 사법부의 사과를 듬뿍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전 사장은 “이 판결은 독재정권에 절절히 요구했던 민주화의 정당성과 반민주적 통치행태의 위법성을 새삼 확인한 데 의의가 있다.”며 “사법부가 긴 기간 동안 심적 고통을 겪은 우리들과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게 사과를 한 것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 전 사장은 또 ▲민청학련 조작사건에 대한 정부 사과 ▲사건 진상에 대한 국정원과 기무사의 실상 공개 ▲사법부가 1970년대 긴급조치 및 80년대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에 대한 재심을 모두 받아줄 것을 요구했다. 이 전 사장은 민청학련 결성 당시 의장 직책을 맡아 활동하던 중 1974년 ‘내란의 수괴’로 정부 전복을 위한 민중봉기를 계획했다는 혐의로 사형이 확정됐었다. 이 전 사장은 그러나 다음해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고, 이후 “당시 학원 자율화를 논의한 사실이 있을 뿐 내란을 모의한 사실은 없다.”고 재심을 청구, 이날 무죄를 선고받았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36년만에 ‘법원의 사죄’

    36년만에 ‘법원의 사죄’

    “영광입니다.” 1974년 7월21일 군사재판(비상군법회의) 법정.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김병곤(당시 21세·1990년 작고)씨는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이렇게 외쳤다.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차라리 피고인 석에서 그들과 같이 재판을 받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가 법정모욕죄로 구속됐다. 우리 사법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날’로 남은 이날에 대해 법원이 36년 만에 사죄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 홍승면)는 30일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던 이철(62)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 12명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를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받은 이들 중에는 검찰의 사형 구형에 “영광입니다.”라고 응수한 김씨도 포함돼 있었지만, 부인이 대신 선고를 들었다. 이미 20년 전 작고했기 때문이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4년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다 “공산주의자들의 조종을 받아 인민혁명을 시도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썼다. 그의 나이 고작 21세. 비상군법회의 검찰부가 구속 기소한 180명 중 가장 어렸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상급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이듬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하지만 민주화를 향한 ‘투쟁’은 멈추지 않았고, 무려 6번이나 더 옥살이를 했다. “군사 독재를 결코 대물림하지 않겠다.” 야학교사를 하다 김씨의 반려자가 된 박문숙(55)씨는 그가 항상 입버릇처럼 했던 말을 전했다. 두 딸이 태어났지만 ‘옥살이’ 탓에 실제 얼굴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씨가 안동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어느 날 가족과 특별면회가 주어졌다. 박씨는 두 딸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지만, 문득 어린 딸들이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이상하게 여길까 걱정됐다. 결국 “지금 미국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며 딸들을 데려가야 했다. 김씨는 1990년 12월 위암으로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씨는 20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삶’을 인정받았다. 민청학련 사건 재심을 맡은 재판부는 “법원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사명이 있음에도, 민청학련 사건에서는 재판 그 자체가 인권침해 수단이었다.”고 사죄했다. 또 “30년이 넘도록 이를 바로잡지 못한 것도 법원의 잘못”이라며 “피고인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민주화가 이룩된 만큼 국민의 자유와 권리 수호라는 사명을 다시 한번 되새기겠다.”고 다짐했다. 김씨가 “영광입니다.”라고 응수했던 일화가 전해지자, 시인 김지하는 ‘고행 1974’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분명히 사형은 죽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광입니다’. 확실히 그렇다. 우리는 드디어 죽음을 이긴 것이다. 병곤이 한 사람, 나 한 사람이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집단적으로 이긴 것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15일 바티칸으로 떠나는 한홍순 주 교황청 신임대사

    15일 바티칸으로 떠나는 한홍순 주 교황청 신임대사

    한홍순(67) 주 교황청 신임 대사는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만나기로 약속한 당일에도 새벽 2시 남짓에야 겨우 잠들었다고 했다. 오는 15일 3년 임기를 수행하기 위해 바티칸으로 떠나는 만큼, 준비에 바쁘려니 했지만 오히려 부임지로 떠날 준비는 거의 못했다고 했다. 한 대사를 만난 것은 지난 3일, 아시아가톨릭평신도대회가 한창인 때였다. 20여개 나라 가톨릭 평신도 대표 400여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 준비위원장으로서, 거의 모든 프로그램의 사회 또는 세미나 발제 등을 그가 도맡고 있었다. 바쁜 행사 도중 잠시 짬을 낸 그지만 자신의 일에 쏟는 열정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지금까지 주 교황청 대사가 직업 외교관 또는 군인이 아닌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는 “주 교황청 대사는 작은 나라(바티칸 시국)의 대사이기도 하지만 그 의미보다는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도덕의 지주 역할을 하는 종교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라면서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한다.”고 말했다. 평생에 걸쳐 학자로 살아온 뒤 처음으로 공무원-직업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건만, 얘기를 계속 듣다 보니 긴장감보다는 설렘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난다. “G20을 개최하는 나라로서 경제력, 국력에 걸맞은 국제사회 의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 국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구촌 공동선을 이루는 일이라면 교황청과 우리 정부가 함께 도덕적 협력을 통해 해야 할 게 많이 있겠죠.” 그는 “정부를 대표하는 것이 대사의 첫 번째 임무인 만큼 정부의 정책을 충실히 반영하고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가톨릭 신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대사의 임무 수행에 전혀 거스를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주되게 관심을 보이는 현안에서도 에둘러 가는 법이 없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방한, 그리고 제2 추기경 임명 문제 등을 얘기하면서도 원칙적이지만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우리 국민들이 추기경 추가 임명 문제와 교황 방한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이러한 국민적 바람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이 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국제외교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결국 인간 관계가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요.” 괜히 엿보이는 자신감이 아니다. 그의 이력을 보면 인생 자체가 ‘준비된 주 교황청 대사’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청년 시절 숱한 경제학도들이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가는 상황에서 ‘청년 한홍순’은 대학(서울대 경제학과)을 졸업한 뒤 로마로 건너가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36년 동안 한국외대 경제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이제 정년퇴임 뒤 다시 교황청으로 가서 해야 할 일을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1984년부터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해온 최장수 위원인 데다, 3년째 교황청 국제감사위원 등을 맡아온 만큼 한 대사 이상의 적임자도 없다. 물론, 교황청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탈리아어와 영어 모두 능통하다. 젊었을 적 학업을 위해 교황청과 연을 맺었던 한 대사. 이렇게 늙어서 다시 교황청으로 돌아가게 된 상황에 대해 “역시 하느님의 일에 우연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감격스러움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사실 준비랄 것도 없죠. 어떤 책을 가져갈까 제일 고심하고 있어요. 너무 많이 가져갈 수도 없고, 적으면 서운하니까 100권 안팎으로 고르려고요. 한국의 사상과 역사, 그리고 교회의 교리에 대한 책을 고르고 있습니다만 영 쉽지 않네요.” 만남을 정리하며 던진 얘기다. ‘겸손한 당당함’이라는 역설이 현실에서 성립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황남대총 발굴 36년만에 오롯이 만난다

    황남대총 발굴 36년만에 오롯이 만난다

    국내에서 가장 큰 무덤인 경주 황남대총의 유물 특별전이 발굴 36년 만에 최대 규모로 열린다. 봉분 두 개가 남북으로 나란히 붙은 쌍분(雙墳)으로 길이 120m, 높이 23m에 이르는 황남대총은 1973~1975년 대대적인 발굴을 실시해 총 5만 8000여점의 유물을 거뒀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이 용산 이전 5주년 기념으로 7일부터 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개막하는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릉 황남대총’은 이 가운데 황금 장신구와 귀금속 그릇, 서아시아산 유리그릇, 철기 등 1268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황남대총의 금관과 금장식 일부 등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신라 왕릉 하나만을 주제로 이처럼 대규모 전시를 열기는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황남대총 출토 유물을 재조명하고, 과학적 분석성과를 공개하는 한편 동북아시아에서 황남대총의 학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역점을 뒀다. 황남대총은 신라 마립간(4세기 신라에서 사용한 왕의 칭호) 시기의 왕릉으로 추정될 뿐 무덤의 주인공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눌지 마립간(눌지왕·417~458)설과 내물 마립간(내물왕·356~402)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실성 마립간(실성왕·402~417)설이 새롭게 제기됐다. 마립간은 황금을 통해 나라의 위계를 새로 만들었다. 마립간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에 속하는 왕족은 황금제 장신구로 꾸민 복식을 착용하는 등 ‘황금의 나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황남대총 출토물은 동북아시아 고고학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고구려 계열의 다양한 문물들은 중국 지안에서 발굴된 고구려 태왕릉의 주인공을 밝히는 데 단서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본 고훈 시대의 연대 추정에도 새로운 학설의 근거를 마련해 준다고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선 황남대총의 구조를 쉽게 알 수 있도록 전시장에 실물 95% 크기의 무덤 구조물을 재현하는 한편 고분 내부 구조를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3D 홀로그램 영상물도 마련했다. 전시는 10월31일까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도봉 법조타운 시대 개막

    서울북부지방검찰청(검사장 이창세)은 1일 도봉구 도봉동 신청사 준공식을 갖고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이어 도봉동 법조타운 시대를 열었다. 북부지검 신청사는 도봉동 620번지 일대 부지 2만 2671㎡에 지하 1층, 지상 13층 규모로 들어섰다. 준공식에는 이귀남 법무부 장관과 박삼봉 서울북부지법원장 등 법조인과 이동진 도봉구청장을 포함한 관할 5개 구청장과 구의회의장이 참석했다. 이 법무장관은 축사에서 “지역주민과 소통을 강화하고, 범죄 없이 안전한 서울 북부지역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부지검은 1974년 서울지검 성북지청으로 개청한 이래 노원구 공릉동의 낡고 좁은 건물에서 업무를 해왔으며 36년 만인 지난 7월19일 새 건물로 이사를 마쳤다. 관할 행정구역은 동대문·중랑·노원·강북·도봉구이다. 관할 경찰서는 강북·동대문·노원·도봉경찰서·중랑경찰서 등 5개이다. 검사장 1명과 차장검사 1명, 사무국 및 형사 제1~6부로 구성됐다. 한편 노원구 공릉동에 함께 있었던 서울북부지법은 지난 5월24일 먼저 신청사 준공식을 거쳐 도봉동 신청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日 한국인피해자 소송 번번이 외면… 끝없는 절규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日 한국인피해자 소송 번번이 외면… 끝없는 절규

    역사 속 공식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날은 1910년 8월29일이다. 그러나 강제 병합조약 체결은 이미 일주일 전인 8월22일에 이뤄졌다.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던 을사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민족적 저항 앞에 혼쭐이 났던 일제와 친일파들은 일찌감치 조약을 체결한 뒤 사전 정지작업을 벌이기 위한 시간을 벌고자 했다. 대대적인 예비검속을 벌이고 민족주의 단체를 해산시켰다. 민족의 혼으로 상징되는 말과 문자, 노래, 역사, 국민과 국가의 재산과 생명 등을 모두 잃어버린 36년 일제강점기의 압제가 사실상 이날부터 시작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한센인 등 일제강점이 남긴 고통은 100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똑똑히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2004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 제2법정은 “이러고도 일본이 인권 국가인가. 우리 아버지 살려내.”라는 절규로 뒤덮였다. 군인과 군속,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 피해자 35명의 13년 법적 투쟁이 허무하게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3명의 재판관은 “원고 청구 기각, 소송비용은 원고부담”이라는 짤막한 선고 직후 법정을 빠져나갔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 회장 등은 1991년 12월 “한일청구권 협정은 양국 국교정상화의 일환일 뿐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일본의 개인 보상책임은 해결되지 않았다.”며 도쿄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33차례 심리 끝에 나온 1심 판결은 “국제법상 가해국에 대한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도쿄고등법원 역시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최근 외무성 내부문서를 통해 양 회장의 주장처럼 일본 정부가 한일협정 체결 뒤에도 개인청구권이 유효하다고 판단했음이 확인됐다. 간 나오토 총리가 최근 “식민지 지배는 한국에 반(反)했다.”며 사과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일본은 행동으로 보여 준 적이 없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수많은 소송이 제기됐지만, 과거의 죗값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인해 청구권이 소멸됐다며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일제가 조선인 5000여명을 태운 배를 폭파해 수장시킨 ‘우키시마마루(浮島丸) 사건’에서는 1심 재판부가 유족과 피해자 15명에게 4500만엔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지만, 2심과 최고재판소가 이를 뒤집었다. 피해자들은 일본에 제기한 소송이 기대에 못 미치자 우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쓰비시중공업 일본공장으로 징용돼 강제노역을 했던 이근목씨 등 6명이 2000년 회사를 상대로 6억 6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처음으로 부산지법에 냈다. 재판은 무려 7년을 끌다 결국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기각됐고, “전쟁범죄에도 시효가 있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피해자 중 1명인 박창환씨는 2002년 사망해 판결을 보지도 못했다. 재판부가 사건을 각하하지 않고, 일제 피해자 소송이 우리 법원 관할임을 인정해 준 것이 유일한 소득이었다. 대한변호사협회 최봉태 일제피해자인권소위 위원장은 “일본은 아직도 한일협정 문서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 최고재판소로부터 문서 공개 판결을 받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2005년 한일협정 문서가 일부 공개된 후 우리 정부가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일제 피해자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국가를 상대로 법적 투쟁을 전개했다. 2006년에는 위안부 피해자 109명이 헌법소원을 냈고, 원폭 피해자와 태평양전쟁 강제동원 희생자들도 뒤따랐다. 헌법재판소는 그러나 침묵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제 강제징용자 미불임금을 당시 기준으로 1엔당 2000원으로 환산해 지급하도록 한 ‘강제동원희생자지원법’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됐다.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부터 현재까지 일제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총 46건에 달하며, 이 중 7건은 헌법소원이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아 대규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소송 당사자 10만명을 모아 ▲명성황후 진상 규명 ▲일왕 공식 사죄 ▲찬탈문화재 반환 등을 제기할 예정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에선 무슨 일이…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에선 무슨 일이…

    그러니까 그해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즉위한 지 4년째인 융희(隆熙) 4년이었다. 대부분 백성들은 그냥 경술년이라 불렀고, 뒷날 서기년도를 본격 도입하면서 1910년으로 기록했다. 허나 한동안 신문, 자료 등 여러 기록에서는 그해를 메이지(明治) 43년으로 표기했다. 백중도 지나갔건만, 여름 막바지 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그해 8월22일 ‘국치의 날’ 이후부터였다. 꼬박 100년 전 그날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한합방조약’이 체결됐다. 무력한 나라의 가여운 백성들은 하루 아침에 나라를 잃고 황국의 신민이 되고 말았다. 그날 오후 2시 서울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興福軒)에서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회의 안건은 단 하나였다. 한·일병합조약의 전권을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순종과 총리대신 이완용은 물론,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탁지부대신 고영희, 법부대신 이재곤, 궁내대신 민병석, 시종원경 윤덕영 등 각료들과 왕족 대표 이재면, 원로 대표인 중추원 의장 김윤식 등이 참석했다. 회의 자리는 침울했다. 순종의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각료들도 쉬 입을 떼지 못했다. 침묵은 길었고 더위에 지친 매미만 흥복헌 바깥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이완용이 5년 전 1905년 을사조약 당시의 ‘활약’에 이어 다시 한 번 나선다. 합방의 필요성과 불가피성, 그동안 일본과 교섭한 내용 등을 한 시간 가까이 설명했고, 이미 닷새 전 이완용이 모두 손을 써 놓았던 나머지 각료들은 모두 마지못해 “옳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순종은 이완용의 발언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3시가 조금 넘어갔다. 마침내 순종은 “권신이 모두 가(可)하다면 짐도 이의가 없다. 동양평화를 위해 기쁜 일이다.”며 조약에 관한 전권을 이완용에게 위임하는 것에 동의했다. 이완용은 위임장을 들고 지체 없이 농상공부대신 조중응과 함께 마차에 올라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있는 통감관저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명의로 데라우치와 함께 합방조약을 체결했다. 함께 샴페인을 마시며 자축했다. 숱한 외적의 침입과 전란 속에서도 지켜온 나라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910년 8월22일 월요일 오후 5시였다. 이날 서울 거리는 평온하기만 했다. 서울 주재 외신 기자들은 저녁 헌병사령관 아카시가 주최한 연회에 참석해 취재 라인이 사실상 봉쇄됐다. 거리를 순찰하는 헌병과 경찰의 눈초리는 더욱 엄중해졌지만 그들의 얼굴 표정에서는 어떤 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외교권 박탈은 물론, 군대가 해산되고 경찰권까지 넘겨주는 등 합병의 수순이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 가슴 속에 쌓인 체념은 이미 컸다. 그러나 이에 앞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겪은 혼란과 불안감, 전민족적 항거를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일주일 동안 이를 공포하지 않은 채 물밑 작업을 벌였던 점도 평온한 분위기 조성에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예비검속이 단행됐고, 수천명의 항일인사가 체포됐으며, 어지간한 민족주의 단체는 대부분 해산당했다. 모든 저항의 싹을 잘라낸 뒤, 8월29일 일본의 강제 병합은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순종은 끝끝내 조인된 조약서에 국새를 찍지 않는 소극적 방식으로나마 저항했지만 일본의 강제 병합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훗날 국제법상 불법을 주장할 수 있는 여지라도 남겨 놓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날의 공로로 이완용은 훈1등 백작이라는 작위를 받고 은사금 15만원을 ‘하사’받았다. 36년의 일제 강점이 사실상 시작된 날은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짜릿한 기쁨으로, 누군가에게는 무기력한 체념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심한 일상 속에서 저물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천마총 금관 서울온다

    천마총 금관 서울온다

    천마총 금관이 36년 만에 서울 나들이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7일부터 내년 2월13일까지 선·고대관 신라실에서 천마총 금관(국보 188호)과 허리띠(국보 190호)를 전시한다고 밝혔다. 1973년 경북 경주시 천마총에서 출토된 높이 32.5㎝, 지름 20㎝의 이 금관은 출(出)자 모양의 장식을 한 전형적인 신라 금관으로, 화려함과 정교함에서 당대 황금문화의 정수로 꼽힌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천마총 금관은 발굴 이듬해인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신라명보’ 특별전에 출품된 이래 두 번째 상경이다. 새달 9일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신라 금관인 황남대총 금관(국보 191호)이 함께 전시돼 신라를 대표하는 두 금관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1974년 발굴된 이 금관은 높이 27.5㎝, 지름 17㎝로 역시 출(出)자 모양의 장식이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란 첫 원전 본격가동 가시화

    서방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첫 원자력 발전소인 부셰르 원전이 착공 36년 만에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기구 대표는 “오는 21일 부셰르 원전의 원자로에 연료를 주입할 것”이라며 “연료의 봉인을 해제할 때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관들도 배석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이란 파르스통신이 13일 전했다. 살레히 대표는 연료 주입 기념식에 IAEA 관계자들도 초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9월5일에는 핵연료가 원자로심에 주입될 것”이라며 “원전이 국가 송전망과 연결될 수 있는 단계인 발전용량의 50%에 이르는 시점은 이때부터 2주가량 더 소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원전이 최대 발전용량에 이르는 데에는 6∼7개월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셰르 원전을 건설 중인 러시아 국영 원자력회사 로스아톰도 오는 21일 부셰르원전에 첫 연료가 주입될 예정임을 확인했다. 이란 남서부 부셰르지역에 자리한 이 원전은 1000㎿급 원자력발전소로, 가동 이후 20년 후에는 이란 전체 전력 수요의 17.5%를 공급할 예정이다. 앞서 미국은 부셰르 원전 가동을 앞두고 러시아 측에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증명할 때까지 원전 가동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러시아 관리들은 “지난 6월 나온 유엔의 이란 제재가 러시아의 부셰르 원전지원 계획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예정대로 원전가동 계획을 강행했다. 러시아는 “부셰르 프로젝트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면밀한 감시를 받아 왔다.”면서 “이란은 부셰르 원전에서 나오는 모든 폐우라늄 연료를 러시아로 운송해 재처리하기로 약속했으므로 핵무기를 만들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유엔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의심하면서 지난 6월 4차 제재를 가했다. 서방 국가들은 석유가 많은 이란이 민수용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핑계로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고 의심해 왔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日총리 사죄담화] 간총리 8·15 담화 전문

    올해는 한·일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해입니다. 정확히 100년 전 8월 한·일 병합조약이 체결돼,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습니다.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도 나타났듯이, 정치적·군사적 배경 아래,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고자 합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에 솔직하게 임하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식민지 지배가 가져다 준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여기에 다시 한 번 뼈져린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심정을 표명합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앞으로의 100년을 바라보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구축해 갈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실시해 온 재(在)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반환 지원이라는 인도적 협력을 앞으로도 성실히 실시해 갈 것입니다. 또한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거쳐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인도하고자 합니다. 일본과 한국은 2000년에 걸친 활발한 문화 교류나 인적 왕래를 통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훌륭한 문화와 전통을 깊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양국의 교류는 매우 중층적이고, 광범위하며 다방면에 걸쳐 있고, 양국 국민이 서로에게 느끼는 친근감과 우정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양국의 경제관계나 인적 교류의 규모는 국교정상화 이래 비약적으로 확대됐고, 서로 절차탁마하면서 그 결합은 아주 공고해졌습니다. 한·일 두나라는 이제 21세기에 있어서 민주주의나 자유,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하고 긴밀한 이웃 국가가 됐습니다. 이는 양국관계에 그치지 않고, 장래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을 염두에 둔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세계경제 성장과 발전, 그리고 핵 군축이나 기후변화, 빈곤이나 평화구축이라는 지구 규모의 과제까지, 폭넓게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여 지도력을 발휘하는 파트너 관계입니다. 저는 이러한 커다란 역사의 전환점에, 한·일 양국의 유대가 더욱 깊고, 더욱 확고해지는 것을 강하게 희망하는 동시에 양국 간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합니다.
  • ‘실용적 토털사커’ 32년만에 일냈다

    ‘실용적 토털사커’ 32년만에 일냈다

    지난 36년 동안 세계무대에서 네덜란드 축구의 아이콘은 ‘토털사커’였다. 전원공격, 전원수비로 설명되는 토털사커는 유럽축구의 변방에 머물고 있었던 네덜란드를 1974년과 1978년 월드컵 결승까지 올려놓았다. 이후로 네덜란드는 수비수의 공격가담을 미덕으로 여겼고, 수비의 공백으로 골을 내주더라도 전원공격으로 더 많은 골을 넣으면 된다는 식의 경기운영을 해 왔다. 이 같은 전술은 수준이 낮은 상대를 만났을 때 골잔치를 벌이며 맹위를 떨쳤고, 세계 축구팬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수비조직이 탄탄하고, 공격전술이 뛰어난 강팀을 상대로는 어이없이 무너지는 약점을 노출했다. ‘정해진 포지션은 없다.’는 토털사커의 대전제를 충족하기 위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세계수준의 선수 7~8명이 필요했다. 모든 선수들이 최전방에서 최후방까지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전술적 특성은 체력부담도 컸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는 비교적 약팀들과 상대하는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는 승승장구하다가 16강 토너먼트에서는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 정상의 주변에서 겉돌던 네덜란드 토털사커에 과감한 혁신을 시도한 것은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이었다. 유로2008을 계기로 전술변화를 시도한 판마르베이크 감독은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위해 최후방 수비를 보강하고, 미드필더진의 유기적인 플레이를 강조했다. 수비수들의 공격가담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비 뒷공간의 공백을 없애기 위해 ‘전원공격’이라는 토털사커의 제1원칙을 버렸고,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이나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인테르 밀란) 등의 스피드와 결정력이 높은 선수들에게 공격을 전담시켰다. 반면 ‘전원수비’라는 제2원칙은 유지했다. 공격전담 선수들도 수비상황에서는 모두 자기진영으로 내려와 대인마크를 하게 했다.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 안정적 수비가 균형을 맞춘 ‘실용적 토털사커’가 완성된 셈. 판마르베이크 감독은 공수의 조율을 사위인 마르크 판 보멀(바이에른 뮌헨)에게 맡겼다. 판 보멀은 터프한 플레이로 상대 역습을 중원에서 차단하고, 상대 공격의 키플레이어를 꽁꽁 묶었을 뿐만 아니라 역습 상황에서 적재적소에 공을 뿌려주는 등 장인어른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다. 팬들은 “‘오렌지 군단’ 특유의 화끈한 축구가 실종됐다.”고 네덜란드의 전술적 변화를 비판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7일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우루과이와의 준결승전에서 3-2로 승리하며 6전 전승으로 32년 만에 결승에 진출했다. 이런 결과는 판마르베이크 감독의 전술혁신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좋은 축구’를 버리고 ‘이기는 축구’를 선택한 판마르베이크 감독의 네덜란드가 그토록 열망했던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포를란家 “아… 얄궂은 운명이여”

    우루과이 월드컵축구대표팀 ‘포를란의 꿈’이 36년 만에 또 ‘오렌지군단’ 네덜란드 앞에서 산산조각났다. 디에고 포를란(31·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을 앞세운 우루과이대표팀은 7일 새벽 케이프타운의 그린포인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4강전에서 네덜란드에 2-3으로 져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자국에서 개최됐던 1930년 원년 대회와 1950년 브라질대회에서 우승했던 우루과이는 60년 만의 결승 진출을 노렸지만, 결국 네덜란드의 벽을 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우루과이가 월드컵 무대에서 네덜란드와 만난 건 두 차례. 그러나 전부 쓴잔을 들었다. 지난 1974년 서독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우루과이는 네덜란드와 처음 맞붙어 0-2로 졌다. 당시 포를란의 아버지인 파블로 포를란(65)이 선수로 뛰었다. 수비수로 조별리그 세 경기에 출전한 파블로는 네덜란드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우루과이는 1무2패로 탈락해 일찌감치 귀국길에 올랐고, 네덜란드는 결승까지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36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서 다시 만난 네덜란드와의 대결에 이번에는 아들이 나섰다. 2008~09시즌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득점왕(32골)에 오른 대형 골잡이 출신답게 포를란은 0-1로 끌려가던 전반 41분 그림 같은 중거리슛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남아공월드컵 6경기 통산 4골째. 득점왕 경쟁에 불을 지핀 건 물론 무엇보다 36년 전 네덜란드 앞에 무릎 꿇었던 아버지의 ‘한’도 푸는 듯했다. 그러나 가나와의 8강전에서 레드카드를 받아 경기에 뛸 수 없었던 ‘파트너’ 루이스 수아레스(아약스)의 빈자리가 컸다. 어깨가 더 무거웠던 포를란은 제몫을 했지만 끝내 패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84분을 뛴 포를란은 1-3으로 끌려가 패색이 짙던 후반 39분 세바스티안 페르난데스와 교체돼 쓸쓸히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아버지를 대신해 36년 전 네덜란드에 진 빚을 갚으려던 그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네덜란드 “마지막 남미 없앤다” 우루과이 “더이상 잃을게 없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가 월드컵 첫 우승 길목에서 오랜 침묵에서 깨어난 ‘원년 챔프’ 우루과이와 격돌한다. 네덜란드는 오는 7일 오전 3시30분 케이프타운의 그린포인트 스타디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미팀 우루과이와 4강전을 갖는다. 공·수가 안정된 네덜란드의 우세가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그동안 늘 우승후보로 꼽혔음에도 늘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터. 그러나 네덜란드는 지난 2일 8강전에서 36년 만에 브라질을 격파(2-1 승),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다. 네덜란드는 4강전에서도 아르연 로번(26·바이에른 뮌헨)-로빈 판페르시(27·아스널)-디르크 카위트(30·리버풀)로 이어지는 공격라인과 이를 뒷받침하는 베슬러이 스네이더르(26·인테르 밀란)의 경기 조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대회 초반 기대에 못 미치는 공격력으로 애를 태웠지만 부상에서 회복한 로번의 가세로 위용을 되찾았다. 특히 인테르 밀란을 유럽 정상으로 이끈 스네이더르는 E조 조별리그 일본전, 슬로바키아와의 16강전에 이어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도 줄줄이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다만, 포백 수비라인의 오른쪽 축 흐레호리 판데르빌(아약스), 수비형 미드필더 니헐 더용(맨체스터시티)을 비롯한 4명의 선수가 무더기로 옐로카드를 받은 건 변수. 지금까지 막강한 수비조직력으로 공격라인을 뒷받침한 네덜란드의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으로서는 수비 라인을 다시 짜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목표를 초과(?) 달성한 우루과이는 네덜란드에 견줘 훨씬 부담이 덜하다. 가나와의 8강전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차지하며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입장이다. 공격의 핵은 역시 디에고 포를란(32·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포를란은 가나전 동점골을 포함해 3골을 터뜨리며 우루과이를 4강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포를란의 파트너인 루이스 수아레스(23·아약스)가 가나전 핸드볼 반칙으로 퇴장당해 이번 4강전에 나설 수 없는 점이 악재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공격수 반열에 올라선 수아레스의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 4강까지 올라온 우루과이의 수명 연장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브라질 ‘퇴장’ 네덜란드 4강행

    브라질 ‘퇴장’ 네덜란드 4강행

    1974년 서독 월드컵 이후 36년 만의 극적인 설욕전이었다.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세계 랭킹 1위)이 네덜란드(4위)에 무릎을 꿇는 대이변이 나왔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초강세를 보이던 남미축구가 드디어 유럽의 벽에 막혔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2일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 넬슨 만델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8강전에서 ‘삼바 군단’ 브라질에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브라질과의 역대 전적에서도 2승1무1패로 한걸음 앞서간 네덜란드는 유럽 지역 예선부터 13경기째 연승행진을 이어갔다. 이로써 4강에 선착한 네덜란드는 가나(32위)와 우루과이(16위)의 승자와 준결승전에서 맞붙게 돼 결승 진출이 유력하다. 네덜란드가 우승컵을 거머쥘 경우 월드컵 역사상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된다. 12년 만에 재회한 두 팀은 ‘미리 보는 결승전’다운 명승부를 펼쳤다. 전반에는 브라질이 카를루스 둥가 감독이 주장했던 실리축구에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운 공격력까지 가미해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결국 네덜란드는 브라질에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중앙선 부근에서 펠리피 멜루(유벤투스)가 문전으로 쇄도하는 호비뉴에게 스루패스를 찔러줬고, 호비뉴는 논스톱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하지만 후반 들어 경기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후반 8분 안드레 오이여르(에인트호번)의 오른쪽 중거리슛이 멜루의 머리에 맞고 자책골이 되면서 네덜란드가 동점골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 후반 23분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이 오른쪽 측면에서 연결한 코너킥을 문전에서 디르크 카위트(리버풀)가 백 헤딩 패스했고,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인테르 밀란)가 그대로 헤딩 결승골로 역전에 성공했다. 브라질은 후반 28분 멜루가 반칙으로 퇴장당한 뒤, 승부의 추는 네덜란드로 기울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남미 vs 非남미 4강행 맞대결

    남미 vs 非남미 4강행 맞대결

    남아공월드컵을 규정지을 만한 키워드는 뭐가 있을까. 이변? 오심? 둘 다 타당하지만 ‘남미’만한 키워드도 없을 듯하다. 월드컵 본선에 나선 남미 5개국이 모두 16강에 진출한 데 이어 브라질과 붙은 칠레를 제외한 4개국이 ‘최후의 8팀’에 속했다. 공교롭게도 8강전 네 경기 모두 남미와 비(非) 남미의 대결이다. 네덜란드-브라질, 우루과이-가나, 아르헨티나-독일, 파라과이-스페인이 각각 4강행을 다툰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첫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 8강에 유럽보다 남미가 많았던 적은 없다. 남미 언론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끼리의 준결승’이 열릴 수 있다며 들뜬 모습이다. 유럽은 역대 최소진출의 ‘굴욕사’를 썼다. 남미와 함께 세계축구를 양분해 온 유럽은 13개팀이 본선에 올랐지만 스페인·독일·네덜란드만 남았다. 지난 대회 결승을 치렀던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했고, 잉글랜드·포르투갈도 줄줄이 탈락했다. 하지만 남미가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스페인·독일·네덜란드 모두 ‘우승후보’로 손색이 없다. 스페인은 2008년 유럽선수권대회 챔피언을 차지한 상승세로 월드컵 첫 우승까지 노린다. 다비드 비야(바르셀로나)의 골폭풍이 시작됐고, 16강에서 포르투갈을 꺾은 자신감도 오롯하다. 게다가 2000년대 남미와의 A매치에서 무패(10승1무)일 정도로 ‘남미 킬러’다. ‘토너먼트의 절대강자’ 독일은 화끈하고 날카로운 공격력에 물이 올랐다. 아르헨티나와 막강 화력쇼를 펼칠 예정. 4년 전 똑같이 8강에서 만났던 두 팀은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독일이 4-2로 이겼다. 독일은 이번 대회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바이에른 뮌헨)와 루카스 포돌스키(쾰른) 등 공격진이 고르게 골을 넣었다. 롱패스에 이은 순도높은 득점은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과 맞붙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월드컵 본선 상대전적도 1승1무1패. 네덜란드는 1994년 미국월드컵 8강, 1998년 프랑스월드컵 4강에서 브라질에 잇달아 발목을 잡혀 복수 의지가 결연하다.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을 앞세워 36년 만의 ‘타도 브라질’을 선언했다. 견고한 수비와 원샷원킬의 네덜란드는 경기를 치를수록 안정감을 더해 가고 있다. 역대 18번의 월드컵에서 남미와 유럽은 9번씩 우승을 나눠 가졌다. 유럽 세 팀이 ‘남미축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세대교체 실패·내분… 거함 伊·佛의 침몰

    남아공월드컵이 또 하나의 진기록을 남겼다. 월드컵 80년 역사상 처음으로 디펜딩챔피언과 준우승팀이 나란히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 ‘영원한 강자란 없다’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일깨워 준 셈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FI FA랭킹 5위)는 24일 ‘발칸반도의 복병’ 슬로바키아에 2-3으로 패해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이탈리아의 탈락은 프랑스(FIFA 9위)의 실패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프랑스는 워낙 월드컵에서 널 뛰는 성적표를 거둔 전력이 있는 터라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카테나치오(빗장수비)’를 앞세운 지지 않는 축구로 4회 우승을 일군 이탈리아의 몰락은 충격적이다. 이탈리아가 월드컵 본선 2라운드에 오르지 못한 것은 1974년 독일대회 이후 36년 만이다. ‘아주리군단’의 몰락은 세대교체의 실패와 ‘킬러’ 부재에서 비롯됐다. 대표선수 23명의 평균 나이는 28.3세. 잉글랜드(28.7세), 브라질(28.6세), 호주(28.4세)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을 필두로 파비오 칸나바로, 빈첸조 이아퀸타(이상 유벤투스), 다니엘레 데로시(AS로마), 안드레아 피를로(AC밀란) 등 독일대회 주력 9명이 이번에도 뛰었다. 부폰과 피를로 등의 부상 탓도 크지만, 대체제를 키우지 못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 듯하다. 해결사의 부재도 아쉬웠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고작 4골밖에 얻지 못했다. 4년 전에는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유벤투스)와 루카 토니(AS로마) 같은 해결사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없었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9명을 그대로 중용하면서 “나이가 많다는 것은 큰 경기 경험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실패였다. 프랑스 역시 세대교체가 어정쩡했다. 4년 전 뛰었던 선수 중 윌리엄 갈라스(아스널), 티에리 앙리(FC바르셀로나), 플로랑 말루다(첼시) 등 7명이 그대로다. 노쇠한 앙리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했던 앙드레피에르 지냐크(툴루즈)나 ‘지단의 후계자’라던 요안 구르퀴프(보르도)는 ‘덜’ 자랐다. 물론 자중지란이 결정적이었다.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과 선수들의 불화, 지단을 비롯한 1998년 우승 멤버들의 ‘갈등 사주설’ 등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현대상선 부산신항 터미널 개장

    현대상선 부산신항 터미널 개장

    현대상선이 부산신항 터미널을 개장, 8년 만에 국내에 ‘자영터미널’을 갖게 됐다. 올 1·4분기 116억원의 깜짝 영업이익을 낸 현대상선은 이번 터미널 개장으로 회복세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현대상선은 22일 부산신항 남컨테이너 터미널에 위치한 ‘현대상선 부산신항터미널’을 개장했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개장식사에서 “1974년 부산에 첫 컨테이너 항만이 생긴 지 36년 만에 부산항이 세계 5대항만으로 거듭난 것처럼 현대상선 부산신항터미널도 동북아물류의 허브, 세계의 중심항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터미널 개장이 현대그룹에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현대상선은 2002년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허치슨터미널에 부산 자성대·감만 터미널을 매각했다. 신항터미널은 현대상선이 8년 만에 다시 국내에 마련한 전진기지인 셈이다. 부산신항터미널은 신항 남컨테이너 터미널에 위치한 2-2단계 터미널이다. 2006년부터 25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안벽 길이 1.15㎞, 면적 55만㎡, 수심 17m로 1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박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끝까지 죽을 힘 다하면 꼭 이겨”

    “끝까지 죽을 힘 다하면 꼭 이겨”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은 한국에 행운의 도시다. 벌써 36년 전 일이다. 프로 복서 홍수환이 1974년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아널드 테일러를 누르고 세계챔피언이 된 바로 그곳이다. 당시 아무도 예상 못했었다. 테일러는 강자였고 홍수환은 아시아 변방의 촌놈이었다. 독기 하나로 겁 없이 도전했다. 경기는 15회까지 가는 악전고투였다. 넘어질 듯 안 넘어진 홍수환은 끝내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를 외쳤다. 공교롭게도 한국 축구대표팀이 23일 이런 더반에서 나이지리아와 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결전을 치른다. 모든 면에서 당시와 상황이 비슷하다. 꼭 이겨야만 하는 혈전이다. 객관적 전력에서도 우리가 낫다고 할 여지가 별로 없다. ☞[화보] 환하게 웃는 허정무…이 웃음 계속 이어가길 그러나 홍수환은 “기죽을 필요도 긴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20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축구 대표팀을 향한 응원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건 평상심이 가장 중요하다. 평소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달라붙으면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도 했다. 사실이다. 홍수환은 1977년 WBA 슈퍼밴텀급 타이틀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에게 2회 4번 다운된 끝에 3회 역전 KO승을 거둔 적도 있다. 그는 “끝까지 할 수 있다고 믿고서 죽을 힘을 다하면 된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꼭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로 징조가 좋다.”고도 했다. 그는 “당시 더반에서 테일러는 초록 팬티를 입었었고 나는 우리 대표팀의 상징색 빨간 팬티를 입었었다. 내가 이긴 것처럼 축구대표팀도 꼭 승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분 좋은 우연이다. 더반이 축구대표팀에게도 행운의 땅이 될 수 있을까. 이제 딱 2일 뒤면 판가름난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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