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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싱’ 100만명 시대

    ‘돌싱’ 100만명 시대

    이혼으로 배우자 없이 사는 남녀 가구주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사별 상태인 가구주 200만명까지 더하면 이혼이나 사별 이후 재혼하지 않고 사는 가구주가 330만명이다. 11일 통계청의 2010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 이혼 상태인 가구주는 126만 7000명으로 5년 전(90만 4000명)보다 40.2% 늘어났다. 이혼한 가구주는 1980년 7만명에서 1990년 17만 4000명, 2000년 55만 3000명 등으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이혼 상태인 가구주가 전체 가구주(1733만 9000명)의 7.3%를 차지했다. 1980년대에는 100명 중 1명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0명 중 7명꼴로 늘어난 것이다. 이혼이 크게 늘어난 것이 원인이지만 이혼 건수와는 조금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80년 2만 3662건이던 이혼 건수는 1992년 5만 3539건으로 5만건을, 1998년 11만 6294건으로 10만건을 넘어섰다. 이어 2003년 16만 6617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05년 12만 8035건, 2010년 11만 6858건 등으로 하락세를 보여왔다. 이혼 건수는 다소 줄어들고 있는데 이혼한 가구주가 늘고 있다는 것은 이혼 이후 재혼을 하지 않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이혼상태인 가구주의 성별을 보면 여자가 72만 1000명(56.9%)으로 남자 54만 6000명(43.1%)보다 많다. 여성이 남성보다 이혼 이후 독신으로 남아 있는 것을 선호하는 셈이다. 연령별로 보면 40대가 40.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50대 33.8%, 30대 12.2%, 60대 10.5% 순이었다. 이혼 가구주의 거주지는 경기가 전체의 23.3%로 가장 많았고 서울(20.6%), 부산(8.9%), 인천(7.0%) 순이었다. 사별 상태인 가구주는 2005년 183만 2000명에서 작년 202만 1000명으로 10.3% 늘었다. 이에 따라 이혼이나 사별 이후 재혼하지 않고 사는 가구주는 같은 시기 273만 6000명에서 328만 8000명으로 20.2% 증가해 전체 가구주의 19.0%를 차지했다. 특히 혼자 사는 가구주는 176만 4000명으로 전체 가구주의 10.2%에 해당됐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써니’ 600만 돌파 흥행비결은…

    ‘써니’ 600만 돌파 흥행비결은…

    영화 ‘써니’가 개봉 두달 만에 관객 600만명을 돌파했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인 ‘아저씨’(622만명)의 기록도 무난히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4일 개봉한 ‘써니’는 강력한 경쟁자였던 미국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쿵푸팬더2’마저 따돌리고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통틀어 올 상반기 흥행작 1위에 올라섰다. 3일 현재 누적관객수는 611만명. ‘써니’가 이렇듯 외화의 맹공 속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 돌풍을 일으킨 비결은 뭘까. 우선 ‘1050’을 꼽을 수 있다. 영화는 불혹을 넘긴 여성들이 고교 시절 칠공주로 뭉쳤던 ‘써니’ 멤버들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등장 여배우만 총 14명. 유호정, 홍진희 등 40대 배우 7명과 이들의 10대 시절을 연기한 심은경, 강소라 등 10~20대 배우 7명이다. 2명의 배우가 1명의 인물을 연기했지만, 감독은 10대와 40대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점에서 동등한 비율로 교차편집했다. 즉, 젊은 관객에게는 자신들의 고교 시절과 비교해 보는 재미를, 중장년 관객에게는 과거의 향수와 현재의 삶을 반추해 보는 추억의 시간을 제공한 것이다. 배급사인 CJ E&M의 최민수 과장은 “10~20대는 드라마, 30~40대는 공감대, 50대 이상은 향수에 반응하면서 세대를 초월할 수 있었다.”면서 “주된 공략층인 2040(20~40대)은 물론 10대와 50대까지 끌어들여 1050으로 저변을 확대한 것이 가장 큰 흥행 동력”이라고 풀이했다. 최 과장은 “‘트랜스포머3’ 개봉(6월 29일) 이후에도 관객수 변화가 거의 없는 점에 비춰 볼 때 평일 단체 관람을 주도했던 중년 여성들에 이어 중장년층 남성들까지 가세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써니’는 톱스타 없이 신인 배우만 대거 기용하거나 여성들이 ‘떼’로 나오는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충무로의 속설도 보기 좋게 깼다. 또 하나의 성장 동력은 ‘복고’ 코드다. 한 영화기획사 관계자는 “‘쎄시봉’, ‘나는 가수다’ 등 사회 전반적으로 복고 열풍이 강하게 불어 젊은 층에도 복고 소재가 별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강형철표 코미디도 한몫했다. 전작 ‘과속스캔들’(830만명)에서 드라마와 코미디를 잘 버무리며 뻔한 소재를 뻔하지 않게 다루는 재주를 선보였던 강 감독은 복고 소재를 다루면서도 복고로만 흐르지 않았다. 촬영, 음악, 편집 등에서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을 유지한 것.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수많은 추억 마케팅 영화가 있지만 ‘써니’는 과거의 옷을 입고, 현대적인 정서로 요즘 이야기를 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열린세상] 반값 등록금, 반값 문화, 반값 경쟁력/이현청 상명대 총장

    [열린세상] 반값 등록금, 반값 문화, 반값 경쟁력/이현청 상명대 총장

    온 나라가 등록금 논쟁에 휘말린 느낌이다. 논쟁이 어디서 누구로부터 출발하였는가도 중요하지만, 반값 등록금이 가능하다면 재원은 어디서 누가 언제 얼마만큼 조달하느냐가 쟁점이다. 논쟁을 보면서 우리나라 교육문화와 정치문화의 현주소, 그리고 정부와 정당 간의 책임 있는 결정과정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듯하여 마음이 착잡하다. 우선 대학 교육의 사회적 기능이라도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들인지 무조건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면 대학의 세계 경쟁력도 제고하고 양질의 대학 교육을 이뤄 낼 수 있다는 것인지, 82%가 넘는 대학의 진학률이 국가·사회적으로 보탬이 되는지, 그리고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대학 자율성이 담보되는지 고민하고 주장하는지 알 수 없다. 2014년까지 정부에서 총 6조 8000억원을 투자하고 대학들도 1조 5000억원의 장학금을 투입하여 등록금 30%를 인하한다는 합의되지 않은 여당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면 2014년 이후는 어찌할 것인가 묻고 싶다. 물가상승과 감가상각비 등 제반 추가 예산이나 재정 부담은 누가 책임질 것이며 등록금 고지서에 당장 50% 등록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학생, 학부모들의 요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똑같이 등록금을 낮추는 일이 합리적인지, 향후 물가 인상에 따른 증가요인은 감안했는지 걱정이다. 물론 저렴한 등록금으로 양질의 교육을 하여 취업도 잘 시키고 국제경쟁력도 높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더구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악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 어린 학생들의 아픔과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서라도 대학을 보내고자 하는 부모의 절박함과 높은 등록금 부담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고 대학을 등록금을 가지고 안위하며 치부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사회 분위기만은 자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뿐만이 아니라 어느 기관 어느 조직이든 자율을 침해받는다면 제한된 발전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 자율 없이 자유경쟁과 마켓 원리가 성립될 수 없고 이곳저곳에서 간섭받는 기관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는 없다. 대학은 더더구나 더 그렇다. 대학 발전의 관건은 소위 2A라 볼 수 있는 자율(autonomy)과 책무(accountability)를 담보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0대 대학에 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지원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통제와 간섭을 하기 때문이다. 어느 국회의원이 “우리나라 바둑이 세계 제일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교육당국자에게 질문하였다고 한다. 교육당국자는 당황하며 답을 제대로 못했다 한다. 그 국회의원은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지만 자율은 곧 책무성을 낳고 책무성은 효율성과 함께 경쟁력을 배양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반값 등록금은 할 수만 있다면 반대할 일이 아니지만 우선 할 것은 청년 실업 해소이고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이며 세계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21세기는 두뇌산업의 시대이고 대학교육도 국가경쟁력의 첨병이 되어야 한다. 이웃 중국이 2020년까지 외국유학생 70만명 유치를 목표로 삼고, 일본이 30만명 외국유학생 유치 목표를 갖고 있는 것도 국제 경쟁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의 정치 사회학적 심리의 근간은 평등고등교육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오해의 소지도 이러한 점 때문이다. 이참에 사학진흥법을 제정하여 우리 고등 교육 예산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과 같이 국내총생산(GDP) 1.0%로 확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학 또한 철저한 자구노력을 통해 낭비요소를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대학 질서 확립과 구성원들이 새로운 자세로 거듭날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경제 포퓰리즘의 시각에서 반값 등록금, 반값 문화, 반값 경쟁력의 해법에만 안주해서는 희망이 없다. 자율에 바탕을 둔 대학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 시리아 사상최대 30만명 시위

    시리아 반정부 시위가 석 달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1일(현지시각)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중부 하마 지역에서는 30만명이 시내 중심부 중앙광장에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현지 인권 운동가들에 따르면 시위 현장과 터키의 접경 지역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해 이날 하루 동안에만 28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난 3월 중순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본격화된 이래 가장 큰 규모라고 현지 지역조정위원회 대변인은 말했다. 하마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아마드 칼레드 압델 아지즈 하마 지사를 해임했다. 전국에서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를 각각 구성해 하마 지역에 집결하면서 시위 현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AP는 전했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정오 금요기도회를 마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였다. 현지 관계자들은 알아사드 정권이 터키와의 국경 지대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터키로 넘어간 시리아 난민들이 세를 불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알 아사드 정권의 시간이 다 돼 가고 있다.”며 개혁을 촉구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시리아, 사상 최대 규모 시위,하마 주지사 해임

     시리아 반정부 시위가 석 달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1일(현지시각)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중부 하마지역에서는 30만명이 시내 중심부 중앙광장에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현지 인권 운동가들에 따르면 시위 현장과 터키와의 접경지역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 이날 하루 동안에만 28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난 3월 중순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본격화된 이래 가장 큰 규모라고 현지 지역조정위원회 대변인은 말했다. 이날 하마지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바샤드 알 아사드 대통령은 아마드 칼레드 압델 아지즈 하마 지사를 해임했다.  전국에서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를 각각 구성해 하마 지역에 집결하면서 시위 현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AP는 전했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이날 정오 금요기도회를 마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현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였다.  현지 관계자들은 아사드 정권이 터키와의 국경지대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이는 터키로 넘어간 시리아 난민들이 세를 불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알 아사드 정권의 시간이 다 돼가고 있다.”며 개혁을 촉구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꿈의 이동통신 ‘4G LTE시대’ 활짝 열렸다

    꿈의 이동통신 ‘4G LTE시대’ 활짝 열렸다

    국내에 본격적으로 4세대(4G) 이동통신인 롱텀에볼루션(LTE) 시대가 열렸다. LTE는 1980년대 1세대 아날로그 통신보다 전송 속도는 5000배, 현재의 3G 서비스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는 5배 이상 빠른 진화된 네트워크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30일 각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첫 LTE 상용 서비스를 1일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탄탄한 통화 품질을 토대로 롱텀에볼루션(LTE)을 ‘프리미엄 서비스’로 구현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SKT는 이날 선포식에서 “3세대(3G)인 WCDMA(광대역코드 분할 다중 접속)와 4G인 LTE를 동시에 제공하는 국내 유일의 통신사로 최고의 통화 품질을 LTE에서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LTE 가입자를 올 연말까지 30만명, 2015년까지 1000만명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내년 1월 수도권 및 광역시 등 23개 도시에 LTE망을 구축하고 2013년에는 전국 82개 시로 이를 확대하고 LTE의 진화된 네트워크인 LTE-어드밴스드를 조기 도입할 계획이다. 서울에만 안테나 기지국(RU) 1772대, 디지털 기지국(DU) 609대를 구축했고, 이미 구축한 서울의 2G 중계기 20만대(전국 100만대)를 LTE와 연동해 건물 안이나 지하 등에서도 터지는 4G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는 4G LTE망을, 다른 지역에서는 3G망을 활용해 전국적으로 안정된 고속 무선 데이터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기지국 간 간섭제어기술(CoMP)을 LTE망에 적용해 커버리지 경계 지역에서 데이터 속도가 저하되는 것을 사전에 막았다. LTE용 소형 기지국(펨토셀)도 조기에 개발해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배준동 네트워크 CIC 사장은 “LTE 서비스에 800㎒ 대역 주파수를 활용하는데, 지난 28년간 이 대역을 운용해 온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어 통화 품질에서 경쟁사를 제압할 수 있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이날 기념행사에서 “한국에서 가장 빠른 ‘얼티미트 스피드’(The Ultimate Speed)를 개시한다.”고 선언했다. LG유플러스가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스피드 경쟁에서 자사가 우월하다는 점이다. 800㎒ 주파수에서 수신과 발신 대역을 각각 10㎒씩 사용해 데이터 전송 속도를 최대 75Mb㎰까지 구현하고 있다. 경쟁사의 LTE보다 전송 속도가 2배 빠르다는 설명이다. LG유플러스는 1일부터 서울, 부산, 광주 등 거점 도시에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고 9월에는 서울 전체와 수도권, 연말까지는 전국 82개 시로 LTE 서비스를 확대한다. 내년 7월에는 국내 사업자 중 가장 먼저 전국 단일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내년까지 사상 최대인 1조 2500억원을 LTE 구축에 투자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LTE 기지국과 소형 기지국을 각각 6200개, 5만개 구축하고 건물 내부와 지하 공간에서의 서비스를 위해 중계기 11만개를 설치해 도시뿐 아니라 군·읍·면 지역까지 망라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국망 구축 시점인 2012년 가입자 300만명을 기대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LTE 핵심 서비스로 고해상도(HD)급 비디오 콘퍼런싱, 무선을 통한 실시간 폐쇄회로(CC)TV, 스마트 교육, 실시간 HD 방송, 이동형 N스크린인 ‘3D 슛 앤드 플레이’ 등을 선보였다. 데이터 트래픽 해소 방안으로 트래픽이 몰리는 인구 밀집 지역에서 4G LTE와 와이파이 U+존 사이에 자동 전환 기능을 도입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평시엔 쉼터·재난땐 방패…지자체 방재림 조성 바람

    평시엔 쉼터·재난땐 방패…지자체 방재림 조성 바람

    부산 등 해안을 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해안 방재림(숲) 조성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해안 방재림이 태풍이나 지진해일(쓰나미) 발생 때 피해를 최소화하는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실례로 일본은 대형 쓰나미에도 해안 방재림이 비교적 잘 조성된 미야기현 센다이 공항과 인근 지역은 피해가 적었다. ●60m방재림, 해일속도 70% 낮춰 해안방재 숲은 바다에서 발생하는 모래 날림, 해일, 풍랑 등으로부터 해안 마을과 농경지를 지키기 위해 바다와 인접한 지역에 조성한 숲을 말한다. 평상시에는 시민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재해 때에는 해안지역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부산, 내년까지 ‘숲 벨트’ 구축 부산시는 내년까지 총 260억원을 들여 해안가에 65㏊ 규모의 ‘해안 숲 벨트’ 구축사업을 추진한다. 올해는 기장군 일광면 임랑해수욕장 일원 1㏊와 강서구 송정동 녹산 신호 산업단지 해안가에 각각 1㏊의 방재림을 조성하고 있다. 내년에는 2003년 태풍 ‘매미’ 내습 당시 큰 피해를 보았던 강서구 명지오션시티와 녹산·신호 산단 일대 해안가에 200억원을 투입해 50㏊ 규모의 방재림을 조성한다. 기장군 임랑, 일광, 좌광천, 월전과 해운대구 송정천 등에 10㏊ 정도의 해안 방재림을 구축하기로 했다. 4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수영천, 영도구 동삼 혁신지구, 서구 암남공원 등에도 50억원을 들여 5㏊ 규모의 방재림을 만들기로 했다. 부산시는 해안가에 조성될 방재림의 주요 수종은 지역 특성에 맞는 염해에 강한 해송과 분비나무, 팽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등 활엽수를 심기로 했다. ●해안 낀 전남·경북·제주도 추진 전남도는 태풍이나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로부터 해안지역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천연방파제인 해안 방재림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하고 올해 사업비로 3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올해 대상은 완도, 신안 등 2개 지역의 3㏊이다. 앞서 전남도는 2006년부터 여수와 해남, 완도, 진도, 신안 등 5개 시·군에 60.65㏊의 해안방재림 조성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지난해까지 모두 15㏊를 조성했다. 경북도도 올해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리 일대 해안지역 1㏊와 흥해읍 용안리 일원 2㏊에 각각 방재나무를 심는다. 제주도도 자연재해가 대형화되고 빈발하게 발생하는 점을 고려해 올해 안에 제주시 이호동 이호해수욕장 일원 0.5㏊,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일원 0.5㏊에 각각 해안 방재림을 조성하기로 했다. 각 지자체가 해안 방재림 조성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최근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등으로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가 더욱 대형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너비 60m의 해안방재림 조성 때 지진해일 속도를 70%, 에너지를 90%까지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 때 30만명이 사망했지만, 방재림이 잘 돼 있는 시메우레우섬의 사망자는 4명에 불과했다. 당시 스리랑카에서도 방재림이 없는 곳은 6000여명의 인명피해를 냈지만, 방재림 지역은 2명만 사망하는 데 그쳤다. 부산 김정한기자·전국종합 jhkim@seoul.co.kr
  • “복수노조 혼란은 기우…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사 윈윈”

    “복수노조 혼란은 기우…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사 윈윈”

    “복수노조제도가 큰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은 지나친 우려입니다.” 지난 26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1동 2층 집무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다음 달 1일 시행되는 복수노조제도로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노동계가 노조법 전면 재개정을 주장하고 각 기업은 복수노조 설립에 대해 대비책을 세우느라 부산한 데 대해서 “복수노조 때문에 없던 근로자의 불만이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또 노동계가 집행부의 입장에만 매몰돼 노동조합법 전면 재개정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동계가 반대하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노조 역시 사측과의 교섭에서 힘을 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의 관습과 다른 데 대해 우려는 있을 수 있지만 민주주의 체제에 여러 정당이 있듯 한 기업에 여러 개의 노조가 있는 것은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7월 1일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된다. 교섭창구 단일화나 복수노조 설립 등 현장의 혼란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지나친 우려다. 현재까지의 관습과 달라 우려가 생길 수 있지만 교섭창구 단일화는 혼란을 없애기 위해 만든 제도다. 한 회사에 노조가 여러 개 생기면 근로자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결사체가 생겨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지만 회사와 따로 교섭하려면 노조의 힘이 분산되는 약점이 생긴다. 교섭창구 단일화로 노조는 힘을 모을 수 있고 회사는 효과적으로 교섭을 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노조는 새로운 노조의 탄생이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이 여러 개인 것처럼 노조가 여러 개인 것은 성숙된 사회로 가는 당연한 과정이다. →노조법 전면 재개정 등 노동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하반기 노사관계 전망은. -현장의 노사관계는 대단히 안정적이다. 양대노총 등 중앙 단위가 시끄러운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이 들고 나온 노조법 전면 재개정의 핵심인 복수노조제도는 이미 국제노동기구로부터 결사의 자유를 지키지 못한다고 11차례 개선 권고를 받은 바 있다. 14년 유예 끝에 한국노총도 합의를 했고 민주당 소속 의원이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시절에 국회를 통과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근로자를 위해서 노동권의 신장과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혹시 기존 노조의 간부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노조는 존립 근거가 대한민국 근로자에 있다. 총연맹의 집행부 입장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시간제 일자리는 일자리 나누기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질 좋은 일자리보다 질 낮은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비판이 많다. -시간제 일자리의 목적은 기존 일자리를 쪼개는 것이 아니고 사각지대에 숨어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있다. 우리는 왜 밤에 몸이 아프면 병원의 좋은 시설이 있는데 응급실에 가야 하나. 휴일에 왜 도서관 이용이 어려운가. 직장 보육원을 왜 낮에만 쓸 수 있나.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면 얼마든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틈새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다가 통상 근로자로 전환하는 절차 등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의 보호책이나 기업의 유인책도 만들고 있다. →최근에 발효된 ILO의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에 대한 우리나라의 비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 가사노동자는 약 30만명에 이른다고 보고 있는데 우선 이른 시일 내에 실태조사에 나설 것이다. 결과에 따라 필요하다면 해당되는 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결사의 자유가 침해받는다면 노동조합법을, 산재보험이 필요하다면 산재보험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미루기 위한 목적은 전혀 없다. 단, 무조건적인 보호보다는 실효성 있는 방안 마련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겠다. →지역 일자리가 향후 일자리 정책의 핵심이라는 의견들이 많다. 동의하는지. -지금까지 중앙정부 위주로 일자리 정책이 펼쳐져 왔다. 하지만 ‘될성부른’ 지역주도형 일자리를 찾아 중앙정부는 지원을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지역만큼 지역의 일자리를 잘 아는 곳은 없다. 이 과정에서 다른 소관 부처들도 적극적으로 설득할 생각이다. 일례로 최근에 경기 이천시 하이닉스반도체를 방문했는데 환경부 소관 법령이 개정되지 않아 공장 증설이 막혔고, 지역 일자리 창출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에 따라 국무회의에서 다른 부처들에 협조를 촉구했다. 지자체 장들도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지역 일자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어 힘들어한다. 고용허가제를 업종이나 숫자 모두 늘려 달라는 건데, 반면 국내 근로자와 경합관계가 문제될 수 있다. 해법은 있나. -외국인 근로자 문제는 내국인에게 먼저 일자리를 주는 원칙과 내국인이 도저히 가지 않는 곳에만 외국인 고용을 허가한다는 원칙이 있다. 외국인 인력을 더 쓰자는 목소리가 분명 많은데 참고는 하되 실제 그런지 업종별로 분석해서 정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 실제 해당기업이 내국인을 구하려는 노력을 14일(채용 공고기간) 정도 했는지 등이 그것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4일 자영업자 실업급여 임의 가입 법안이 환노위를 통과했다(29일 본회의 예정). 자영업을 하다가 망하는 경우 실업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능력개발과 직업훈련도 받을 수 있다. →기업들의 장애인 고용이 아직도 미흡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장애인을 정부가 미고용 기업에 주는 경제적 페널티 때문에 고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장애인을 볼 때 장애 있는 부분만 보지 말고 다른 부분을 보면 유용하다. 숨은 보배를 쓴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채용이 미진한 것을 볼 때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만일 장애인을 처음부터 쓰기 힘들다면 인턴처럼 채용해 보고 늘려갈 수 있다. 물론 장애인 채용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기업에 가하기 위해 다음 달 1일부터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경우 장애인 부담금을 최저임금(90만 3000원) 수준으로 크게 올린다. →다음 달 5일 노동부에서 고용노동부로 개명한 지 1년이 된다. 소회는. -그간 일자리 현장 지원단을 만들어 소관 업무와 거리가 있는 근로감독관까지 일자리 현장에 투입했다. 지난 한 해 일자리 정책을 만들어 냈다면 앞으로는 이런 정책들을 내실화하고 조율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고용노동부는 태생적으로 노사 모두로부터 압박받는 어려운 입장에 있다. 이 두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감안하되 국민 입장에서 정책을 고민하겠다. 전경하·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이채필 장관은 ▲1956년 울산 출생 ▲검정고시, 영남대 행정학과 졸업 ▲행시 25회 ▲1992년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 ▲1994년 고용부 양산지청장 ▲2004년 산업안전국장 ▲2005년 고용정책심의관 ▲2007년 직업능력정책관 ▲2008년 노사협력정책국장 ▲2009년 기획조정실장 ▲2010년 노사정책실장, 고용노동부 차관 ▲2011년 5월 고용노동부 장관
  • 백만장자 330만명… 亞, 富의 중심

    백만장자 330만명… 亞, 富의 중심

    아시아 지역의 백만장자 수와 이들이 보유한 총자산이 처음으로 유럽을 추월했다. 미국이 속한 북미 지역도 수년 내 추월해 아시아가 명실상부한 세계 부의 중심이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22일(현지시간) 글로벌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와 컨설팅회사 캡제미니가 발표한 ‘2011 세계 부(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백만장자 수는 전년보다 9.7% 늘어난 330만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6.3% 증가한 유럽의 310만명보다 20만명이 더 많다. 백만장자들이 보유한 투자 가능한 총자산도 아시아가 10조 8000억 달러(약 1경 1637조원)로 유럽(10조 2000억 달러, 1경 990조원)보다 많았다. ●高성장 지속… 증시 활황 영향 북미지역과의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 북미 지역의 백만장자 수는 340만명이었고, 이들이 보유한 총자산은 11조 6000억 달러(약 1경 2499조원)였다. 메릴린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거시경제지표가 탄탄한 성장세를 유지했고,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이어간 데다 부동산 시장도 강세를 보인 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백만장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10개국 중 6개국이 아시아에 포진해 있다. 제조업 활황과 수출, 내수 등 3박자를 고루 갖춘 홍콩과 싱가포르, 인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백만장자 클럽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홍콩은 백만장자 수가 전년보다 33.3%, 베트남도 33.1% 증가했다. ●백만장자 전년보다 8.3%↑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에서 회복되면서 백만장자는 전년보다 8.3% 늘어난 1090만명이었고, 보유 총자산도 9.7% 증가한 42조 7000억 달러였다. 하지만 백만장자 증가 추세는 2009년 17%의 절반 수준으로 많이 둔화됐다. 존 티엘 메릴린치 글로벌투자매니지먼트의 미국 총책임자는 “지역적으로 아시아·태평양의 증가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했다. ●美·日·獨에 53% 집중 보유 자산이 3000만 달러(약 323억원)가 넘는 초부유층 수는 전년보다 10% 증가한 10만 3000명이었다. 이들이 보유한 총자산은 15조 달러에 달했다.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며 다음은 일본, 독일, 중국 순이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전년보다 12%가 늘어난 53만 4500명을 기록했다. 인도의 경우 백만장자 수가 15만 3000명으로 처음으로 12위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전세계 백만장자의 53%가 미국과 일본, 독일에 집중돼 있다. 여성과 젊은 백만장자 수가 급증한 것도 눈에 띈다. 메릴린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백만장자의 27%가 여성이었다. 2008년의 24%보다 3% 포인트 늘어났다. 또한 45세 이하의 젊은 백만장자도 전체의 17%로 2008년의 13%보다 4% 포인트 증가했다. ●갑부, 위험자산·사치품에 투자 백만장자들의 투자 패턴도 변화를 보였다. 이들은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원자재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된 미국과 유럽시장보다 수익률이 높은 신흥시장의 주식과 채권에 대한 투자를 늘려 재미를 봤다. 고가의 예술품과 최고급 승용차, 시계, 희귀 포도주, 보트, 제트기, 희귀 동전 등 색다른 투자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톨스토이가 쓴 명작 ‘전쟁과 평화’를 잠시 기억해본다.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 안드레이 청년이 죽어가면서 ‘시베리아의 하늘도 파랗구나’라고 읊었다. 평화로운 파란 하늘을 진작 봤으면 전쟁을 할 일도 없을 텐데 죽어갈 때 누워서 하늘을 보니 ‘왜 피 흘리면서 전쟁을 했을까’라는 물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6·25전쟁은 왜 했을까. 평화를 위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했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눈물겹도록 아프게 하는 역사를 왜 만들어야 했을까. 참으로 비통하고 영원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이기에 해마다 6월이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였다. 젊은 장교의 일성은 이랬다. “사단장 각하, 전방에서 적이 전면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개성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개성은 벌써 점령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서울과 개성 등 전방을 지키는 보병 제1사단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의 숨가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알리는 제1보였다.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에서 10일 전부터 3개월 과정의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1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낙동강까지 후퇴한 1사단은 한국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미1군단에 배속돼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후퇴와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함께 다부동을 지키던 미군 27연대장 마이켈리스(Michaelis) 대령이 “전선 좌측의 한국군 부대가 무단 이탈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는 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후 1사단은 평양 입성을 가장 먼저 했다. 백선엽 장군은 최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 당시 1128일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다. 6·25전쟁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6월이어서 그런지 강의를 해 달라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뒤에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192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92살. 그런데도 전쟁의 기억은 분명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백 장군이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제주도라고 답을 드렸다. 그러자마자 나오는 얘기는 이러했다. “제주도 무척 많이 갔지. 6·25때 모슬포에 보충대가 있었어. 16주 동안 교육을 시키고 전쟁터에 보냈거든, 그래 육군 제1 훈련소야. 20살 전후의 청년들 10만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어, 내 동생(백인엽 장군)이 훈련소장도 했고. 태풍도 많이 왔어. 미군부대에서 지원 받은 천막을 치고 훈련했지. 하루에 상륙함정(LST) 두 척이 오고 가면서 훈련병들을 실어 날랐어. 그 병사들이 전쟁터에 많이 죽었어.” 백 장군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지금의 5~6주 교육보다 더 긴 16주 교육을 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 “미군의 2차대전 방식을 그대로 따랐거든. 미군은 100개 사단이 있었는데 대부분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보내졌어. 2차대전때…. 제주도 훈련소는 일제때 썼던 비행장이야, 그러니까 일본군들이 중국의 난징(南京) 폭격을 위한 중간 기지였지. 훈련소에는 미군 고문관들이 많았어.” 백 장군은 왜 제주에 자주 갔을까.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했었거든. 훈련소에 물이 부족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 LST나 미군 비행기를 이용해서 여러 번 갔어. 아마 수십 차례 될걸. 또 동생이 1년동안 훈련소장으로 있었거든. 장도영 장군도 훈련소장을 했었지.” 백 장군은 잠시 4·3사건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1948년 4월 3일이야. 내가 부산 3여단 참모장을 했어. 제주 관할이니까 부대 시찰차 갔었지. 그때는 제주읍이야. 4월3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김익열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 김달삼(金達三)이 이끄는 폭도들이 제주지역 11군데 지서를 습격했다고 말야.” 잠시 관련 자료을 들여다본다. 김달삼은 사회주의 혁명가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고향은 대구. 일본에서 중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1945년 1월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했으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이다. 1946년 말 제주도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에 남로당 대정면 조직부장을 맡았으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가 됐다. 화제를 다시 돌려 6·25 전쟁때 제1보를 보고한 김덕준 소령에 대해 물었다. “그날 아침 7시였어.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전화를 받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를 갖고 있는거 알았거든.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수차례 얘기했고…” 백 장군은 이 대목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에게 북한의 남침 예상을 얘기했고 나도 미군 고문단과 만날 때마다 전투기와 탱크, 대포를 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술회했다. “우리야 그때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미군에게 그렇게 여러번 얘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말야. 북한군은, 나중에 노획문서를 보니 깨소금까지 준비할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어.” 백 장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이 왜 6월 25일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북한군은 남한에서 먹을 것이 많은 계절인 6월부터 9월까지를 정했지. 3개월이면 부산까지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어. 이 시기는 들판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거든. 전쟁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해. 북한은 추수때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을 짰어.” 그렇다면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먹고 싸웠을까.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농협창고에서 쌀을 얻었고 밭에 가면 파와 배추가 있었지. 그걸 먹었어. 또 우리 선량한 아주머니들, 국민들이 갖다주는 음식도 먹었어. 아주 훌륭한 분들이야. 다부동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민들이 갖다주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할 때는 어땠을까. “김일성 군대는 낙동강에서 완전히 녹았어. 북진을 하면서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 왔고 군에서 나오는 건빵을 먹었지. 고지 전투에서는 배가 고파 이탈하는 군인들도 더러 있었어. 북진할 때는 하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동복으로 갈아 입었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보더니 많이 환영했어. 먹을 것도 주고….” 백 장군은 평북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중공군은 장개석 군대 출신들의 최정예 부대야. 일본군과 10년을 싸운 군사들이었지. 전쟁경험이 아주 많아. 그런 군사 100만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 군이 당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 1사단을 덜 당했어. 운산 일대에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전에 알 수 있었지. 하루 밤새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더라구. 결국 후퇴하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백 장군은 북한군의 변화상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120만명의 지상군과 20만명의 특공대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61년 동안 북한은 청와대도 습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등 별 장난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계를 잘해야 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출신들이 군대를 가잖아. 자원이 아주 훌륭해요” 백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전체 110명이었는데 지금 만나는 동기들은 겨우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다. “아픈 데 없어. 병원도 안 가. 동기들과 만나 옛날 얘기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맥아더 장군이 얘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은 “너무 오래 살았어.”하면서 껄껄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백선엽 그는 누구인가 1920년 평안북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3월 평양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다가 만주 봉천(奉天) 군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42년 12월 제9기로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1943년 4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해방 직후에는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45년 2월 월남했다. 이후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년 2월에 임관했다. 그해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에서 제5연대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으로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1950년 4월에 개성을 관할하는 국군 1 보병사단 사단장(당시 계급 대령)으로 부임했다. 1951년 겨울에는 지리산의 빨치산 소탕을 위한 ‘백(白) 야전사령부’를 구성했으며 이 사령부를 모태로 이듬해 4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군단을 창설했다.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군 훈련체계의 개혁, 보급체계 개편, 상이군인들에 대한 복지 향상 등에 힘썼다. 이때 10개 상비사단 창설(11~20사단), 10개 예비사단 창설 등을 추진했다. 퇴역 후에는 외교관 생활을 한 뒤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대한민국 최초의 원수계급에 해당하는 예우를 받고 있다.
  • 백선엽 “깨소금까지 준비한 북한군 6월 25일 도발한 것은”

    백선엽 “깨소금까지 준비한 북한군 6월 25일 도발한 것은”

    지금도 눈물겹도록 아프게 하는 역사를 왜 만들어야 했을까. 참으로 비통하고 영원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이기에 해마다 6월이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였다. 젊은 장교의 일성은 이랬다. “사단장 각하, 전방에서 적이 전면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개성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개성은 벌써 점령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서울과 개성 등 전방를 지키는 보병 제1사단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의 숨가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알리는 제1보였다.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에서 10일 전부터 3개월 과정의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1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낙동강까지 후퇴한 1사단은 한국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미1군단에 배속돼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후퇴와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함께 다부동을 지키던 미군 27연대장 마이켈리스(Michaelis) 대령이 “전선 좌측의 한국군 부대가 무단 이탈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는 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후 1사단은 평양 입성을 가장 먼저 했다. 백선엽 장군은 최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 당시 1128일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다. 6·25전쟁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6월이어서 그런지 강의를 해 달라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뒤에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192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92살. 그런데도 전쟁의 기억은 분명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백 장군이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제주도라고 답을 드렸다. 그러자마자 나오는 얘기는 이러했다. “제주도 무척 많이 갔지. 6·25때 모슬포에 보충대가 있었어. 16주 동안 교육을 시키고 전쟁터에 보냈거든, 그래 육군 제1 훈련소야. 20살 전후의 청년들 10만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어, 내 동생(백인엽 장군)이 훈련소장도 했고. 태풍도 많이 왔어. 미군부대에서 지원 받은 천막을 치고 훈련했지. 하루에 상륙함정(LST) 두 척이 오고 가면서 훈련병들을 실어 날랐어. 그 병사들이 전쟁터에 많이 죽었어.” 백 장군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지금의 5~6주 교육보다 더 긴 16주 교육을 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 “미군의 2차대전 방식을 그대로 따랐거든. 미군은 100개 사단이 있었는데 대부분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보내졌어. 2차대전때?. 제주도 훈련소는 일제때 썼던 비행장이야, 그러니까 일본군들이 중국의 난징(南京) 폭격을 위한 중간 기지였지. 훈련소에는 미군 고문관들이 많았어.” 백 장군은 왜 제주에 자주 갔을까.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했었거든. 훈련소에 물이 부족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 LST나 미군 비행기를 이용해서 여러 번 갔어. 아마 수십 차례 될 걸. 또 동생이 1년동안 훈련소장으로 있었거든. 장도영 장군도 훈련소장을 했었지.” 백 장군은 잠시 4·3사건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1948년 4월 3일이야. 내가 부산 3여단 참모장을 했어. 제주 관할이니까 부대 시찰차 갔었지. 그때는 제주읍이야. 4월3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김익열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 김달삼(金達三)이 이끄는 폭도들이 제주지역 11군데 지서를 습격했다고 말야.” 잠시 관련 자료을 들여다본다. 김달삼은 사회주의 혁명가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고향은 대구. 일본에서 중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1945년 1월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했으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이다. 1946년 말 제주도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에 남로당 대정면 조직부장을 맡았으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가 됐다. 화제를 다시 돌려 6·25 전쟁때 제1보를 보고한 김덕준 소령에 대해 물었다. “그날 아침 7시였어.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전화를 받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를 갖고 있는거 알았거든.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수차례 얘기했고?” 백 장군은 이 대목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에게 북한의 남침 예상을 얘기했고 나도 미군 고문단과 만날 때마다 전투기와 탱크, 대포를 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술회했다. “우리야 그때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미군에게 그렇게 여러번 얘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말야. 북한군은, 나중에 노획문서를 보니 깨소금까지 준비할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어.” 백 장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이 왜 6월 25일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북한군은 남한에서 먹을 것이 많은 계절인 6월부터 9월까지를 정했지. 3개월이면 부산까지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어. 이 시기는 들판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거든. 전쟁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해. 북한은 추수때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을 짰어.” 그렇다면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먹고 싸웠을까.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농협창고에서 쌀을 얻었고 밭에 가면 파와 배추가 있었지. 그걸 먹었어. 또 우리 선량한 아주머니들, 국민들이 갖다주는 음식도 먹었어. 아주 훌륭한 분들이야. 다부동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민들이 갖다주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할 때는 어땠을까. “김일성 군대는 낙동강에서 완전히 녹았어. 북진을 하면서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 왔고 군에서 나오는 건빵을 먹었지. 고지 전투에서는 배가 고파 이탈하는 군인들도 더러 있었어. 북진할 때는 하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동복으로 갈아 입었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보더니 많이 환영했어. 먹을 것도 주고?.” 백 장군은 평북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중공군은 장개석 군대 출신들의 최정예 부대야. 일본군과 10년을 싸운 군사들이었지. 전쟁경험이 아주 많아. 그런 군사 100만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 군이 당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 1사단을 덜 당했어. 운산 일대에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전에 알 수 있었지. 하루 밤새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더라구. 결국 후퇴하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백 장군은 북한군의 변화상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120만명의 지상군과 20만명의 특공대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61년 동안 북한은 청와대도 습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별 장난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계를 잘해야 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출신들이 군대를 가잖아. 자원이 아주 훌륭해요” 백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전체 110명이었는데 지금 만나는 동기들은 겨우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다. “아픈 데 없어. 병원도 안 가. 동기들과 만나 옛날 얘기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맥아더 장군이 얘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은 “너무 오래 살았어.”하면서 껄껄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질병 관통한 한국인의 몸 보건 의료사로 본 시대상

    해방기와 한국전쟁은 근현대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격동의 시기로 꼽힌다. 정치체제와 사회통치를 둘러싼 이념·사상의 충돌과 그로 인한 깊은 상흔은 ‘비극의 소용돌이’로 불리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래서 그 시기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측면의 재조명 작업이 활발한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 반추와 회고의 물결이 도도하지만 격동기 질병·위생에 대한 연구며 돌아보기는 불모지대로 남아 있다. 그런 가운데 그 전대미문의 혼란기를 질병과, 위생, 의료의 관점에서 돌아본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를 지낸 전우용씨가 낸 ‘현대인의 탄생’(이순 펴냄). 해방을 맞은 1945년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 격동기를 관통해 온 한국인의 삶과 몸, 질병에 대해 꼼꼼하게 들춰내 흥미롭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이 땅에선 급격한 인구이동과 결집이 반복됐고 그 흐름은 온갖 질병의 창궐과 유행·확산을 동반했다. 통계로 보자면 해방 후 1년 동안 230만명 이상의 해외거주 한국인이 고국으로 돌아왔고 정부 수립을 전후해 1950년 초까지 제주도와 여수·순천 일대를 중심으로 무려 8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왕좌왕하는 군중들 사이에 페스트, 콜레라, 두창, 디프테리아,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창궐했고 1948년 태어난 신생아 44만명 중 40%인 18만명이 돌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한다. 저자는 해방 후 한국의 ‘3대 망국병’이라고 불리는 성병과 결핵, 마약중독의 만연을 당연히 사회 혼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200만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고, 폭격으로 700만명 이상이 살 곳을 잃었던 한국전쟁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시 한 미국 군의관은 한국을 “책에서만 보던 질병의 왕국”이라고 표현했고 미군 간호장교는 “복부 총상을 당한 한국군을 수술할 때는 위속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징그러운 기생충을 꺼내야 했다.”고 증언했을 정도이다. “질병과 전쟁이 서로를 부추기며 대다수 사람들을 죽음 가까운 곳에 몰아넣었던 시대에 사람들은 더 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는 저자. 그는 “현대인은 의학의 시선으로 자기 몸과 생활습관, 주변환경을 살피고 교정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라고 할 때 해방이후 한국전쟁기까지의 보건의료사는 현대한국인의 탄생사라고 할 만하다.’고 결론짓는다.1만 5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65세 이상 11.3%… 한국 더 빨리 늙는다

    65세 이상 11.3%… 한국 더 빨리 늙는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1명은 65세 이상 고령인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국 모든 시·도의 65세 이상 인구 구성비가 7%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다. 65세 이상 인구 구성비가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통계청이 30일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 인구부문 전수집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0년 11월 현재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542만명으로 총 인구의 11.3%를 차지했다. 2005년 436만명보다 106만명(24.3%)이나 급증했다. 시·도별로 보면, 울산의 65세 이상 인구가 7.0%(2005년 5.3%)로 높아지면서 전국의 모든 시·도가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전남의 고령인구 비중이 20.4%로 고령화가 가장 많이 진전됐으며 경북 16.7%, 전북 16.4%, 충남·강원이 각각 15.5% 순이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2005년 추계 당시 2010년 고령인구는 11.0%였는데, 이번 조사 결과 11.3%로 조금 더 늘어났다.”면서 “고령화 진전이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의 총조사 인구는 4858만명으로 2005년(4728만명)보다 130만명(2.8%) 늘었다. 50년 전보다 약 1.9배 증가했다. 지난 5년간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0.5%였다. 연령별로는 30~40대 인구가 1599만명(33.3%)으로 인구구조의 중심을 이루면서 30대 미만과 50대 이상이 적은 ‘항아리형’ 인구피라미드를 보이고 있다. 40~44세 인구가 413만명(8.6%)으로 가장 많으며, 0~4세 인구는 221만명(4.6%)으로 2005년 238만명(5.1%)보다 16만명이 줄었다. 노령화와 함께 여초(女超)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성별로 보면 남자는 2416만명, 여자는 2441만명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많았고, 2005년보다 각각 2.3%, 3.2% 늘었다. 또 30대의 미혼율은 29.2%로 2005년 21.6%에 비해 7.6% 포인트 증가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인구밀도는 ㎢당 486명으로 2005년(474명)보다 12명 많아졌다. 우리나라는 방글라데시(1033명/㎢), 타이완(640명/㎢) 다음으로 세계 세 번째의 인구 조밀 국가로 나타났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미국은 백인의 나라?…피부색이 바뀌고 있다

    미국은 백인의 나라?…피부색이 바뀌고 있다

    미국의 얼굴이 바뀌어 가고 있다. 다민족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이라지만 200년 넘게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히스패닉을 제외한 백인 인구의 비중이 예상보다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대신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인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 10년간 늘어난 미국 인구 2명 가운데 1명이 히스패닉계일 정도다. 그런가 하면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인 가정’도 점점 줄어 2010년에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결혼한 부부가 소수로 ‘전락’했다. 26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2010 인구 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히스패닉 인구는 지난 10년간 43.0% 증가했다. 2000년 3530만명에서 2010년 5047만명으로 1517만명이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늘어난 미국 전체 인구 2732만명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증가율도 전체 증가율 9.7%의 4배가 넘는다. 지난 10년간 백인 인구는 226만명이 늘어 1억 9681만명으로 집계됐다. 백인 인구 비중은 63.7%로 10년 전에 비해 5.4%포인트 낮아졌다. 백인 인구 증가율은 1.2%에 그쳤다. 아시아계 인구의 급증세도 눈에 띈다. 2000년 1024만명에서 2010년 1467만명으로 43.3%나 늘었다. 증가율만 놓고 보면 히스패닉계를 조금 앞선다. 한국 교민의 경우 현대차의 생산공장이 들어선 앨라배마에서 특히 많이 늘어났다. 2010년 현재 현대차 공장이 있는 몽고메리 일대에는 한국 교민 832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10년전에 비해 102.1%나 늘어난 수치다. 미국에서는 결혼한 부부가 ‘소수’로 전락했다. 이날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10년 미국 가구 중에서 결혼한 부부의 비율이 48%로,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1950년 78%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전통적인 가정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2010년 부부와 자녀로 된 가정의 비율은 20%로, 다섯 가정 가운데 한 가정에 불과했다. 10년 전에는 네 가정 가운데 한 가정꼴이었고, 1950년에는 절반에 가까운 43%였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난 데다 동거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북한산 둘레길의 힘!

    북한산 둘레길의 힘!

    지난해 9월 북한산국립공원에 둘레길이 조성된 이후 백운대나 인수봉, 만경대 등 정상에 오르던 120만명의 탐방객이 둘레길을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저지대 탐방객이 늘면서 정상으로 나 있던 샛길 이용이 줄어 생태계 복원에도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사장 엄홍우)은 둘레길의 탐방객 분산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북한산과 도봉산 지역의 탐방객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아직 둘레길이 조성되지 않은 도봉산의 경우, 자운봉 등 정상과 연결되는 주요 탐방로의 탐방객이 0.7%(1만 6000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둘레길이 조성된 북한산은 정상 탐방객이 오히려 13.2%(30만명)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둘레길이 만들어지면서 정상으로 나 있던 샛길 이용도 현저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與 “반값 등록금 최우선 과제로 추진”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22일 무상 교육을 포함한 대학 등록금 인하 방침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황 원내대표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24일, 또는 25일 조찬회동을 갖고 대학등록금 인하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황 원내대표는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등록금에 대한 국가와 정부, 당의 입장은 단순한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대한 것”이라며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쇄신의 핵심은 바로 등록금 문제라는 첫 번째 민생문제에서부터 뭔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계적 도입땐 재정부담 줄어” 그는 “무상 등록금도 배제하지 않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무상으로 될지, 반값으로 될지에 대해서는 국민결단도 필요하고 국가재정, 국가철학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최근 당정이 이명박 정부의 대선공약인 ‘반값 등록금’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6월 국회에서 해당 상임위 등을 통해 토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내에선 국가 장학제도를 비롯한 정부 재정지원을 통해 중위 소득자(소득구간 하위 50%) 자녀까지 소득구간별로 대학등록금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식 정책위 부의장은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재정부담액과 관련, 정부 추계로 4조 9000억원라는 자료가 있다지만, 중위 소득자까지를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도입할 경우 재정부담은 반 이하로 낮아질 것”이라며 “다만 아직 정책위 차원에서 재정 규모를 확정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반값 등록금’ 실현에 필요한 재원을 추가 감세 철회와 세계잉여금, 세출 구조조정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교육과학기술 분야 정책위 부의장인 임해규 의원은 2009년 반값 등록금 재원 마련을 위해 내국세의 8%를 고등교육 교부금으로 지원하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친이계 한 의원은 “아직 추가 감세에 대한 당론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재원이 투입되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포퓰리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초 정부는 반값 등록금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등록금은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계속 올라 반값 등록금 정책은 공수표가 될 정도였다. 교과부가 지난달 전국 4년제 대학의 등록금 공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평균 등록금이 800만원 이상인 국공립대는 50곳으로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 사립대학교도 정부의 동결 요청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학교가 등록금을 올렸다. 의학계열은 1200만원이 넘는 곳도 있었다. 때문에 정부는 반값 등록금 정책이 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 내리는 게 아니라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도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반값 등록금’ 취지는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장학혜택이 총 등록금 부담의 절반 정도가 되게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등록금 800만원 이상 50곳 현재 대학 등록금 관련 지원책은 든든학자금제도와 성적 장학금을 꼽을 수 있다. 든든학자금제도는 등록금을 대출받아 취업 뒤 갚도록 하는 제도로 소득하위 70%의 가구의 자녀가 대상이다. 성적장학금은 소득 하위 50%의 가구 자녀가 대상이다. 하지만 든든학자금의 경우 거치기간 동안 이자가 누적돼 상환부담이 큰 복리이자인 데다 성적제한 등 까다로운 신청자격과 복잡한 신청절차 등으로 학생들은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일반 학자금 대출을 받는 실정이다. 성적장학금도 실제 혜택을 받는 학생은 성적이 A학점 이상인 30만명 가운데 2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교과부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등록금 인하 추진은)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인다는 기존 정책을 재강조했다는 의미”라며 “현재 추진되고 있는 관련 등록금 지원 정책들이 좀 더 힘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규·김효섭기자 cool@seoul.co.kr
  • [사설] 실직자에게 가혹한 건보 근본대책 세워라

    국민건강보험이 형평성을 유지하지 못해 직장을 잃은 이에게 오히려 지나친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2009년에 직장을 나와 지역가입자가 된 130만명 가운데 절반인 64만명이 월 평균 보험료를 3만 6715원(본인 부담)에서 8만 1519원으로 2.2배나 더 내게 됐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직자가 되면 대개는 수입이 끊겨 모은 돈으로 가족 생계를 어렵게 이어가야 한다. 그런 상황에 보험료가 줄기는커녕 고정수입을 가졌을 때보다 갑절 이상 내야 한다면 이만큼 가혹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현 건보체계가 지역가입자에게는 종합소득, 부동산 등의 재산 보유 상태, 자동차 유무에 따라 보험료를 책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산층·서민층 대부분에게는 재산이 있어 봐야 그저 가족이 몸 담아 사는 집 한 채뿐이요, 그동안 굴려온 자가용 하나뿐이다. 집과 자동차는 생활의 연장이지 수입의 원천은 아닌 것이다. 지금은 베이비부머(1955~63년 출생한 자) 세대가 벌써 집단으로 퇴직을 맞은 시대이다. 게다가 우리사회가 실직자와 그 가족에게 기초적인 생활 보장을 해줄 만큼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엮어 놓은 상태 또한 아니다. 따라서 집과 자동차가 있다고 해서 고정수입이 없는 집에 ‘건보료 폭탄’을 퍼붓는다면 실직한 집안의 가계에 큰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국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터이다. 건강보험의 목적은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질병·사고·부상 탓에 거액의 진료비를 내느라 가계가 치명상을 입지 않게끔 보호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수단은 세금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입이 많은 사람은 많이, 적은 사람은 적게 내서 기금을 모으는 일이다. 그러므로 당초 목적에 어긋나지 않게 건보료 책정 기준을 바꾸어 최소한 실직자에게 부담을 더하는 사례는 없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서민과는 어차피 상관없는 일정규모 이상의 금융·임대 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해 실제로 돈이 많은 이들이 건보료를 더 내게끔 정책을 바꿔야 한다. 이야말로 정부가 내세운 ‘친서민’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길이다.
  • “해마다 200여만명 찾는데… 셋방살이 끝내야죠”

    “해마다 200여만명 찾는데… 셋방살이 끝내야죠”

    “인류의 보편적인 인식에 기반해 다(多)문화와 타(他)문화에 대해 공존할 수 있는 이해를 넓히는 것이 21세기 민속박물관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국내 대학(안동대, 중앙대)에 민속학과가 만들어진 지 32년 만에 첫 민속박물관장을 맡은 천진기(49)씨의 취임 일성이다. 안동대 민속학과를 나온 그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을 거쳐 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으로 재직 중 공모 절차를 통해 지난 6일 관장으로 공식 임명됐다. 몇 안 되는 내부 승진자이자 40대 관장이다. ●“다문화 사회 속 공존의 가치 찾을 것” 9일 13대 관장으로 첫 근무를 시작한 천 관장은 온통 민속학의 미래 가치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마치 ‘준비된 관장’처럼 박물관의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거침 없고 분명하게 소신을 밝혔다. 그는 “고리타분하게 과거의 추억을 더듬거리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나아갈 길 속에 현재적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민속학의 본령”이라며 ‘다문화 사회 속 공존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천 관장은 “민속학의 의의는 단출하면서도 명쾌하다.”면서 “골동품이나 오래된 것들을 갖다 놓고 연구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모습이 민속학의 소중한 연구 자료이자 대상이라는 얘기다. 그는 “21세기는 경제 발전, 월드컵 개최 등 한국 역사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시공간”이라면서 “세계인류사적인 축적이 이뤄진 만큼 ‘지금, 여기’가 민속학적 연구의 의미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흔히 과거 추억의 어느 순간, 물건, 사람을 더듬는 것으로 민속학을 국한시키곤 하지만 천 관장이 바라는 민속학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른다.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대해 각별히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 문화와 공존할 수 있는 힘은 다문화 가정, 타문화 사회 구성원과 삶 속에서 어울릴 수 있는 현실에서 나온다.”면서 “전 세계 다양한 문화를 이해, 인정, 포괄하고 그 속에서 우리 문화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21세기 민속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국격에 맞는 민속박물관 지을 때” 천 관장은 “젊은 관장으로서 화통하게 소통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향해 함께 맹진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이제 우리 국격에 맞는 국립민속박물관을 지을 때”라는 현실적 목표도 함께 제시했다. 연간 230만명 관람객 중 100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찾고 있는 ‘명소’인데도 ‘셋방살이’를 전전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은 것. 민속박물관은 서울 삼청로 경복궁 안에 있다. 천 관장은 주한미군기지 이전이 확정된 서울 용산이나 충남 행복도시 등을 ‘내집 마련’ 후보지로 노리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주말 박스 오피스] ‘써니’도 ‘과속스캔들’처럼?

    [주말 박스 오피스] ‘써니’도 ‘과속스캔들’처럼?

    황금연휴가 낀 5월의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는 강형철 감독의 신작 ‘써니’가 차지했다. 9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6~8일 ‘써니’는 전국 538개 상영관에서 32만 6874명을 동원했다. 강 감독의 전작 ‘과속스캔들’ 흥행 기록(830만명)을 이을지 주목된다. 2위는 498개 상영관에서 28만 1167명을 동원한 미국 할리우드 영화 ‘소스 코드’가 차지했다. 3위는 ‘토르: 천둥의 신’으로 22만 2491명을 끌어모았다. 4, 5위는 ‘체포왕’(16만 7502명)과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13만 4632명)가 각각 차지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국민연금 ‘1인 1연금’ 효과·파장

    국민연금을 ‘1인 1연금’ 방식으로 개편하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현행 ‘1가구 1연금’ 가입구조가 만들어진 지 16년 만이다. 국민연금 제도 설계 초기인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소득대체율(연금으로 받는 돈과 은퇴 전 소득의 비율)이 60%에 달했기 때문에 1가구 1연금 제도의 실효성은 비교적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두 차례 재정위기로 인한 연금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주로 남성인 가장의 연금만으로 노후 생활을 완벽하게 보장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소득이 있는 국민을 모두 가입자로 분류해 노후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방안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고 이 방편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 바로 ‘1인 1연금’ 방식이다. 대부분 전업주부인 무소득 배우자를 가입자에서 제외시키는 현행 가입구조는 남녀 노후 보장률에 현격한 차이를 불러왔다. 공단에 따르면 2009년 말 기준 1945∼1950년생 여성 107만 7470명 가운데 국민연금 수급자는 26만 8177명(24.8%)에 불과하다. 같은 연령대의 전체 남성 102만 3109명 중 65만 8705명(64.3%)이 국민연금을 받는 것과는 수급률이 무려 39.5%나 차이가 난다. 또 여성은 평균 납부기간이 90∼134개월, 평균 연금액은 16만 9075∼24만 7200원에 불과한 반면 남성은 납부기간이 113∼163개월, 연금액은 27만 9210∼38만 4533만원 수준이다. 복지부와 연금공단 측은 일본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국민연금 가입자를 우리나라의 지역가입자에 해당하는 1호, 직장가입자인 2호, 직장가입자의 무소득 배우자인 3호로 나눠 관리한다. 지역가입자는 무소득 배우자를 합한 2인 분량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배우자와 가입자가 모두 연금소득을 얻는다. 직장가입자는 소득의 16% 수준인 보험료를 내면 2인분의 기초연금과 소득비례 연금을 받게 된다. 하지만 노후 보장 강화라는 목적에도 불구, 18~59세 국민 대부분을 연금 가입자로 재편할 경우 뒤따를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우선 국민연금 납부 여력이 있는 국민이라고 하더라도 보험료 납부 부담을 추가로 지우게 되면 당장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연금공단도 사실상 강제납부 부담을 지우는 것은 대규모 ‘연금저항’을 유발할 것으로 보고 적용 제외자를 임의가입 형태로 유도해 자발적인 납부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또 가입구조를 전면 개편하지 않고 한번이라도 국민연금을 납부한 적이 있는 적용 제외자를 일시적인 납부 예외자로 편입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더불어 현재의 복잡한 관리체계를 개편해 납부이력이 있는 813만명을 포함해 1630만명에 달하는 잠재 납부 대상자를 추가로 관리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용기 연금공단 가입지원실장은 “잠재적인 납부 대상자의 관리는 매우 조심스러우며,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보험료를 자발적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다각적인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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