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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⑤호찌민의 꿈과 ‘도이머이’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⑤호찌민의 꿈과 ‘도이머이’

    베트남은 이미 외국인들 생각처럼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중국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베트남정부가 발표한 2005년도 예상 경제성장률은 8.5%다. 지난 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넘어선 다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베트남이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금년 1월부터 4월까지 베트남은 96억 5000억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2%가 늘어났다.1·4분기 동안 베트남에 유입된 외국자본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늘어난 15억 6000만달러였다. 경제발전에 따른 내수시장의 성장도 두드러진다.1·4분기 베트남의 자동차 내수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가 늘어난 6930대에 달했다. 관광산업 성장도 폭발적이다. 특히 미국 관광객의 숫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가 늘어난 9만 5000명을 기록했다. 총 대신 달러를 들고 돌아온 미국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베트남은 새로운 전선, 수출전선에 무역전사를 대거 투입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베트남은 미국을 2004년도 최대 수출국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베트남은 단순 투자대상국에서 해외 투자국가로 변하고 있다.2억 3000만달러를 해외에 투자한 베트남은 97만달러를 들여 한국에도 농기계부품을 생산하는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2005년 베트남 국가운용계획의 핵심은 8.5%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 국영기업의 구조조정에 맞추어져 있다.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법령을 개정하고 내·외국기업에 통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법을 마련 중이다. 2002년 1월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발효시킨 베트남은 2006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유럽연합(EU)에 이어 일본도 베트남의 WTO 가입에 지지의사를 표했다. 베트남의 변화는 경제분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4월30일, 항미 승전 30주년을 맞아 베트남 국영TV는 특집 방송의 일환으로 사이공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즈엉반민이 생전에 남긴 인터뷰 화면을 내보냈다. 즈엉반민은 2001년 미국에서 죽은 사람이니 그렇겠거니 했던 사람들도 이어지는 인터뷰화면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 응우옌까우끼가 국영TV에 등장한 것이다. 응우옌까우끼는 사이공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이미 시장경제가 일상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지만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매우 완고했던 베트남이다. 공산당 일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를 엄연한 국가체제로 삼고 있는 베트남이 종전 30주년을 맞아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또 한 번의 정치적 변화를 예상케 하는 것이다. 지난 뗏(설)에는 20여만명의 재외동포들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여기에는 응우옌까우끼와 열렬한 반공주의 작곡가였던 팜주이 등이 있었는데 이들 다수는 프랑스와 미국의 편에 섰던 사람들이다. “만약 우리가 호찌민사상이 아닌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은 베트남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이공 당 서기장을 지낸 쩐박당은 전쟁 후에 베트남이 비교적 적은 후유증을 앓으며 민족통합을 이루고 도이머이를 통해 경제재건을 이룩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호찌민사상에 있다고 단언했다. “많은 지도자가 있었지만 호찌민만이 베트남의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호찌민의 사상만이 베트남을 다 담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일은 말입니다, 절대 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정신과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1975년 개방한 호찌민영묘를 참배한 사람이 지난해 연말 집계로 4000만명에 달한다.1990년 개관한 호찌민박물관을 관람한 관광객의 숫자는 1500만명이다. 지난 한 해 동안 250만명을 불러들인 베트남 관광사업의 성공은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자연이나 기반시설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베트남은 비록 부자나라는 아니지만 자부심을 가진 나라다. 베트남은 그들의 자부심을 문화적 매혹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해왔다. 문화는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 무엇보다 인간의 수준과 품격에 관계하는 것이다. 호찌민은 여기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부자는 아니지만 자부심이 있는 나라인 이유를 호찌민박물관 우옌티딘 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호찌민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호찌민 자체가 문화니까요. 호찌민은 단순히 정치, 사상적인 차원이 아닌 우리의 문화적 차원에서 존재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어떤 판단을 할 때 생각하게 됩니다.‘호 아저씨였다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말이죠.” 호찌민은 죽었지만 그가 추구했던 삶의 양식은 오늘날 베트남 문화의 일부로 수용되어 있다. 베트남인들의 가치판단 과정에서 호찌민의 생애는 어떤 형태로든 관계한다고 우옌티딘 관장은 덧붙였다. “호찌민이 만약 단순히 정치·사상적인 차원에서 존재했다면 이미 잊혀졌을지 모릅니다. 그의 삶은 어떤 정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바쳐진 것이 아니었어요. 인간이 품격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정치, 사상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것도 독창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호찌민의 그런 면모는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초기부터 나타난다.1924년 6월23일, 제5차 국제공산당대회 제8차회의에서 호찌민은 식민지문제에 무관심한 서구 공산주의자들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구사회는 공산주의 운동의 요람이기도 했지만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주의 국가들이기도 했다. “동지들은 식민지 문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필요하다면 나는 최대한의 기회를 이용해서 이 문제를 제기하고, 반드시 동지들을 각성하게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호찌민의 맹렬한 비판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세계 공산주의 진영의 막강한 지도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한 무명 아시아청년이 보여준 당돌한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도차이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그들은 식민지 문제에 아무런 견해도 없었기에 더욱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프랑스 공산당 총서기장이었던 엠 토레는 훗날, 그 당시 유럽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문제에 대한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호찌민이었다고 고백했다. 1924년 모스크바에서 독일혁명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호찌민은 한층 더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인도차이나 사회는 서구와 다르다. 현재 인도차이나의 계급투쟁은 서구처럼 격렬하지 않다. 마르크스는 뛰어난 이론으로 자기 학설을 세운 사람이지만 그 학설은 일정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수립된 것이다. 그런데 그 역사란 어떤 역사인가. 유럽의 역사다. 유럽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유럽이 인류 전체는 아니다.” 이런 호찌민의 견해는 그가 창당한 베트남공산당에 반영됐다. 그가 직접 기초한 강령과 노선은 레닌 이후 코민테른을 장악한 스탈린이나 그의 정적 트로츠키 어느 쪽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호찌민은 당시 식민지 베트남에서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자와 반민족세력을 제외한 모든 계급 및 정파와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찌민의 대통합노선은 반공주의자들의 폄하처럼 전술적 차원의 ‘술수’가 아닌 확고한 원칙이었다. 호찌민은 많은 혁명가들이 간과하고 있는 통합의 가치와 기능에 대해 깊이 주목했다.1941년,3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호찌민이 까오방성의 팍보에서 창건한 반외세 통일전선조직인 베트민. 통합을 지향하는 확고한 원칙 없이 술수적인 차원에서 베트민을 운영하였다면 단일한 항불전선은 결코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단결 단결 대단결, 호찌민은 그 슬로건의 상징이고 증거였다. 단결을 지향하는 호찌민의 지도력은 베트남 통일의 정신적 토대였다. 그러나 소망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서로의 운명이 일치한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단결할 수 있다. 너의 행복이 나의 불행일 때, 나의 행복이 너의 불행일 때 단결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울 때 네가 웃고, 내가 웃을 때 네가 울어야 한다면 절대 뭉칠 수 없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한국보다 50년 전에 호찌민이 벌인 금 모으기 운동이다. 1945년, 호찌민은 독립국가를 출범시켰지만 베트남 경제는 완전히 피폐해 있었다. 프랑스에 이어 베트남을 차지한 일본의 착취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통킹델타와 메콩델타라는 세계의 곡창지대가 있었지만 여기서 나온 쌀과 곡식은 모조리 수탈당했다.1944년에서 1945년까지,1년 남짓한 일본의 통치기간 동안 굶어죽은 베트남인들은 무려 200만명이었다. 그러니 독립을 얻었어도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 인민들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었다. 끔찍한 시간은 계속되었고 인민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굶주리며 죽어갔다. 이 참담한 때에 독립정부를 만든 호찌민은 민생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두 가지 운동을 궁리해냈다. 금식운동과 금 모으기 운동이다. 일주일에 하루 굶기 운동을 통해 아사자 구제에 나섰고, 호찌민은 그 운동을 제일 앞에서 실천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금 모으기 운동이었다. ‘금 주간’을 선포하고, 가지고 있는 금붙이를 모으자는 호찌민의 호소에 인민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국가재정을 확보하고 굶주리고 있는 동포를 구제하기 위한 이 운동에 각계각층의 인민들이 참여했다. 대를 물려온 반지를 내놓은 농촌의 가난한 부인네, 끼니를 굶으면서도 처분하지 않았던 결혼 패물을 내놓은 중년의 노동자 부부…. 금 기부의 행렬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때 놀랄 만한 기부자들이 나타났다. 참파왕조의 공주 출신인 우옌티템은 황금관과 황금목걸이를 모두 내놓았다. 포쩐짱 왕의 마지막 후예인 우옌티템 공주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으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하노이의 한 부자는 수백 돈이 넘는 금덩어리를 기꺼이 내놓았다. 이때 걷힌 금은 이제 막 출범한 독립정부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재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항불·항미항전의 마지막 시기까지 중요한 밑천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금 모으기 운동의 최대성과는 50년 뒤 한국에서처럼 모아진 금붙이 그 자체가 아니었다.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자는 전국민적 결의와 연대감의 확보,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의 회복이었다. 베트남인민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조국이 목숨을 바쳐서 지킬 가치가 있는 공동체라고 느낄 수 있었다. 호찌민의 지도력은 이러한 통합의 힘을 바탕으로 한 결단과 선택을 통해 발휘되었다.8월혁명 당시 남부베트남혁명위원장을 지낸 쩐반이유는 호찌민의 가장 탁월한 능력을 인내와 결단력으로 꼽았다. “너무 큰 나라와 붙어지내며 세계 최강대국과 싸워야 했던 베트남이 가장 잘하는 일은 우리가 언제 강해져야 하는지, 또 언제 싸워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호찌민은 우리가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줄 아는 인내를 가르쳤고, 우리가 싸워야 할 때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심어준 지도자지요.” 변화하는 베트남이 어떻게 호찌민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 나에게 남부베트남 혁명의 최고지도자였던 쩐반이유는 이 한마디로 대답했다. “내 안의 불변으로 만변하는 세계에 대응하라(以不變 應萬變).” 이 말은 호찌민이 협상을 위해 프랑스로 떠날 때 후인툭캉에게 주석직 대행을 맡기면서 한 말이었다. 여러 문제점이 뒤따르고 있지만 베트남은 지금 만변하는 세계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호찌민이 지니고 있었던 ‘내 안의 불변’하는 정신을 지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bang80@jowoo.co.kr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주이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혁신 공기업 탐방] ⑧ 강경호 서울지하철공사 사장

    [혁신 공기업 탐방] ⑧ 강경호 서울지하철공사 사장

    서울지하철공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파업, 만년 적자기업, 지하철 역사의 혼잡, 환승에 따른 불편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 공사의 이미지가 확 달라졌다. 파업은 최근 5년 동안 거의 없었다. 지난해에만 3일간 파업을 했다가 자진 철회한 것이 전부다. 내년에 더 놀랄 만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흑자원년으로 삼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강경호 사장은 1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자신감을 내비쳤다.“경영혁신을 통해 지난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났다.”면서 “무임수송 등에 대한 일부 지원이 이뤄지면 내년 흑자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승역을 복층구조로 바꾸고, 출퇴근때 지하철 배차간격을 줄이면 혼잡과 환승에 대한 불편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강 사장의 비전을 들어봤다. 부임하자마자 최저가낙찰제 도입과 입찰제도 개선 등 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는데. -부임해서 보니 공사는 개통 30여년이 됐는데도 초기 건설비의 대부분을 차입부채로 조달하고 수송원가를 보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막대한 부채와 만성적인 적자로 여건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운임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수익구조를 개발했다. 고부가가치 동영상 광고개발과 신개념의 역사개발 등이다. 또 예산의 불필요한 낭비요인을 없애기 위해 투자심사제도를 활성화했다. 특히 행운에 의한 낙찰, 업체간 변별력부재 등 구조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던 종전의 공공기관 적격심사낙찰제를 개선해 공사 실정에 맞는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했다. 그밖에도 기업의 소모성 자재(MRO) 구매대행 아웃소싱 제도를 지방공기업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신개념 역사란 무엇을 말하나. -현재의 환승역을 보자. 환승역 대부분의 노선이 수평으로 펼쳐져 있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바꿔타려면 많이 걸을 수밖에 없다. 환승이 불편하면 지하철 이용객이 더 늘지 않는다. 또 지하철역 상당수가 곡선이다. 곡선이면 지하철이 속도를 내지 못한다. 속도를 내지 못하면 지하철 배차간격도 줄일 수 없다. 신개념 역사란 이같은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이다. 갈아탈 노선을 수직으로 배치해 최단거리로 환승하도록 하고, 역사도 직선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장 혼잡한 환승역인 신도림역, 사당역, 종로3가역, 삼성역, 잠실역, 교대역 등을 우선 대상으로 할 것이다. 환승역을 확 뜯어고치려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나. -물론이다. 그래서 이들 지하철역과 주변 땅을 동시에 개발해 수익을 얻겠다는 것이다.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은 물론 쇼핑·문화·주거를 하나로 묶는 복합환승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운임수입 외에도 부동산개발과 아파트·상가 임대사업으로도 이익을 내겠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와 홍콩 등은 지하철 환승역을 이미 이같은 모델로 바꿔놨다. 건설교통부와 행정자치부, 서울시 등이 협조해주면 가능하다. 경기부양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개발에 따른 이익은 전적으로 승객에게 돌아간다. 공사가 경영혁신을 위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분야는. -지금의 경영환경은 고객 및 성과중심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의 관행적 경영방식을 따르거나 공급자 중심의 의식으로는 공기업의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경영혁신을 위해 인사제도를 능력과 성과중심으로 개선했다. 근무 형태는 분야별 업무특성과 시간대별 업무량을 감안해 비숙박 위주로 짤 계획이다. 또 선진경영기법인 6시그마 경영기법 등을 도입해 업무프로세스 혁신을 통한 원가절감 실현과 신개념의 역사개발을 통해 환승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예정이다. 경영혁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러 한계가 있다고 보여지는데. -과다한 부채, 낮은 운임수준, 과중한 투자비 등 공사의 경영여건은 매우 어렵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오는 2007년까지 행정명령으로 이행하도록 한 소방안전대책비 1조 353억원을 포함해 2008년까지 2조 824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정부는 전동차내장재 교체비 1918억원의 40%인 767억원만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공사는 신개념 역사개발 등의 자구노력을 통해 7672억원 가량만 확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지하철공사가 전국 지하철 수송인원의 40%와 서울시 교통분담률 35.6%를 담당하고 있는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 임을 감안해 정부, 서울시, 공사의 3자 공동노력에 의한 지원범위 제도화가 필요하다. 안전개선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당시 역무원, 승무원, 사령실간의 비상통신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달까지 역무원, 승무원, 사령실간 다자간 통화가 가능한 휴대용 무전기를 지급할 계획이다. 또 전동차 화재 발생시 즉각 조치할 수 있도록 전동차화재 자동경보장치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밖에 승강장 및 대합실에 안내데스크를 설치한다든지, 승강장에는 안전요원을 상주시키고 대합실에는 필요시 도우미를 고용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물론 공사는 화재에 대비 지하철 의자를 불에 타지 않는 스테인리스 제품으로 지난해 11월에 전량 교체했다.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재난에 공로를 한 시민에게 최고 3000만원을 포상하는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최근 지하철이 문화공간으로써의 역할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향후 계획은 어떤가. -지하철 예술무대는 지하철을 생활속의 문화공간으로 만들고자 2000년 5월 을지로입구역 등 10개역에서 처음으로 막을 올렸다. 요즘 주5일제가 본격화되면서 많은 직장인들이 문화적인 여가선용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문화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서 자리 잡아 가고 있어 공사도 더욱 문화에 신경을 쓰고 있다. 앞으로도 지하철예술무대에서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하고 이채로운 공연을 열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힘쓰겠다.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올 무임수송비용 1000억 예상” 서울지하철공사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무임수송에 따른 손실이다. 무임수송은 현행법에 따라 노인 등 교통약자와 국가유공자의 요금을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요금을 내지 않고 몰래타는 부정승차는 연간 5억원에 불과, 경영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 15일 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무임수송인원은 1억 880만명으로 손실액이 866억원에 달했다. 매년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어 올해 무임수송에 따른 비용은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무임수송비용은 해마다 늘고 있지만 서울시 지원은 지난해부터 끊겼다.2001년만해도 무임수송비용은 476억원에 불과했으며, 이 가운데 38.5%인 183억원을 서울시가 지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무임수송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자 지원을 중단했다. 무임수송에 따른 손실을 메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지하철 요금을 올리든지 손실을 정부·지자체가 보전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요금을 올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서민 물가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공사측은 정부나 서울시 등이 일부 보조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사원도 2003년 감사에서 무임수송 비용의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2003년 말 지하철내장재 교체비 1918억원의 40%인 767억원만 지원했을 뿐 무임수송에 따른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서울시의회가 공사측에 큰 힘이 돼주고 있다. 시의회가 최근 서울지하철의 안전 운행 및 과다한 부채 해소를 위해 ‘노인 등 무임수송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에 대한 건의’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동시에 무임수송비 등 공익서비스 제공 비용 부담은 국가 또는 서비스를 요구한 자가 전액 부담토록 하는 도시철도법과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요구키로 했다. 강경호 사장은 “정부 등이 손실을 일부 보조해주면 공사 경영이 안정될 수 있고, 경영이 안정되면 지하철 안전과 서비스가 한층 강화된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강경호 사장은 누구? 강경호 사장은 2003년 4월 취임한 이후 매일 아침 지하철로 출근한다. 역대 사장들도 취임 초 지하철로 출근한 적은 있지만 강 사장처럼 2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지하철을 고집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강 사장의 집은 분당선 수내역 부근이다. 그래서 출근하려면 15분가량 걸어 수내역에서 지하철을 탄 뒤 선릉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 사당역에서 내려야 한다. 출근시간만 1시간15분이다. 때문에 강 사장은 지하철의 불편함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승객들에게선 꼭 개선할 점을 듣는다. 냉난방에 문제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지시한다. 한 여름 지하철 냉방이 너무 셀 때 노인들로부터 춥다는 말을 듣고 지하철 10량 중 2량에 냉방을 약하게 한 약냉방차를 운영하도록 지시할 정도다. 많이 걸어야 지하철을 바꿔탈 수 있는 현재의 환승역을 개선한 뒤 역세권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도 강 사장의 아이디어다. 강 사장은 1972년 현대그룹 공채로 입사한 뒤 30대에 한라중공업 이사로 승진해 사장·부회장을 지낸 CEO다. 세계대중교통연맹 아태지역 의장도 맡고 있다. ▲서울(60) ▲경기고·서울대 공대 ▲현대양행 부장 ▲한라중공업 상무·전무·대표이사 ▲한라그룹 부회장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혁신 공기업탐방] ⑦ 김균섭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인터뷰

    [혁신 공기업탐방] ⑦ 김균섭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인터뷰

    “혹시 애프터서비스(AS)를 받다가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저희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줬습니까.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국내 가전업체 AS담당 직원이 수리를 해주고 가면 어김없이 업체 본사로부터 AS의 만족도를 묻는 내용의 전화를 받게 된다. 이런 풍경은 더 이상 민간기업만의 영역이 아니다. 김균섭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은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실시간으로 고객만족도를 조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민원의 접수·검토·결재·통보·사후관리 등 전 과정의 고객만족도를 조사해 관리하는 것이다. 그는 또 “올 여름 ‘선풍기로 시원한 여름나기’ 범국민 캠페인을 펼쳐 4500억원의 에너지를 절약하겠다.”는 계획도 소개했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고위공직자에서 민간기업 CEO로 변신했다가 다시 공기업 사장으로 컴백한 김 이사장을 만나 경영 및 혁신의 방향을 들어봤다.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1년이 됐다. 그간 역점을 둔 분야부터 설명해달라. -산업자원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바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공단의 업무를 잘 알고 있었다. 취임하자마자 유가가 사상 초유로 뛰어 할일이 많았다. 공기업의 특성상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일은 많아져 취임 초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취임 이후 업무체계부터 바꿨다. 열심히 일하는 체계보다는 효율적으로 일하는 체계를 도입한 것이다. 공단 직원들이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낀 것으로 안다. 그러나 공단에 오기 전 대표이사로 있었던 HSD엔진의 성과가 알려지면서 두려움이 점차 줄어들었다. 이미 검증됐던 길을 걷는 것이기 때문에 저항이 없었다. 고객만족도 향상에 최우선을 두는 느낌이다.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실시간으로 고객만족을 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민원처리, 업무처리, 경영정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업무의 품질향상은 물론 고객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고 자신한다. 구체적으로 고객만족을 높이기 위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꿨나. -시스템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업무를 온라인화하고, 불필요한 업무는 없애거나 단축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열사용기자재를 검사받기 위해서는 본사나 지사에 와서 신청서를 접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 접수가 가능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검사시간까지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검사가 끝나면 그 즉시 해당 업체에 검사를 받을 때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개선할 사항은 없는지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 결과는 임원진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즉 실시간으로 민원처리가 돼 고객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직원들의 근무태도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에너지이용합리화 자금을 융자받을 때도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공단측이 알아서 다 처리해주고 있다. 공단 조직은 어떻게 개편했나. -공단의 체제를 에너지효율 향상, 이산화탄소 저감, 신재생에너지 보급 등 3가지의 핵심역량사업에 맞춰 개편했다. 이에 따라 경영전략본부, 수요관리본부, 기술개발지원본부, 기후변화대책본부, 신·재생에너지개발보급센터 등 4본부 1센터 체제로 바꿨다. 대팀제도 도입했다. 종전의 12처 32팀의 조직을 14실(대팀)만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30개의 간부 보직이 줄게 됐다. 남는 인력은 고유가와 기후변화협약 등으로 늘어난 업무에 투입하고 있다. 별도의 인원 충원 없이도 인력이 늘어나는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대팀제가 도입되니까 결재 단계도 직원-실장 2단계로 축소됐다. 공단의 혁신방향을 설명해 달라. -기본적으로 능률과 성과를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다. 즉,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일을 잘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업그레이드 KEMCO(에너지관리공단의 영문 이니셜)’라는 슬로건 아래 혁신에 대한 공감대를 조성하고,4대 과제를 전사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정확한 성과평가를 위해 부서별, 사업별로 핵심성과지표(KPI)를 발굴했다. 또 감(感)에 의존해서 일하는 방식에서 통계와 과학적인 근거에 의거해서 업무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조직문화를 바꿨다. 이른바 6시그마 경영기법이다. 6시그마운동의 진행상황은. -6시그마는 제품 생산업체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경영만족을 위한 품질경영 기법으로 적용될 수 있다. 즉, 이는 효율적으로 일해 남은 시간은 자신의 능력 개발에 투자 할 수 있다. 우선 올해부터 전문인력 양성, 시스템 구축, 제도 마련 등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6시그마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34개 프로젝트를 시범실시하고, 하반기부터는 34개의 프로젝트를 본격 운영할 계획이다. 매주 수요일을 6시그마의 날로 정해 전사적인 활동도 하고 있다. 경영혁신 차원에서 인사평가시스템을 구축하고, 다면평가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사업이 성과중심으로 진행되고 평가가 실적중심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사는 역량중심으로 단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난해 5월 학연·지연·혈연·성별·직군에 대해 5대 무차별 인사원칙을 선언했다. 또 능력 있고 참신한 인재를 발탁할 수 있도록 승진 최소연수제도도 없앴다. 다만 이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사 다면평가제도, 부서장급 4개 직위에 대한 공모제를 실시했다. 아울러 부서와 개인의 실적을 근거로 성과금을 차등 지급토록 해 역량중심의 근무평정시스템을 완성해 나가고 있다.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김균섭 이사장은 김균섭 이사장은 다소 별난 사람이다.‘한창 잘 나가는’ 자리에 있을 때 이를 과감히 버리고 변신을 택하곤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기도 한다. 기술고시 9회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공직생활 25년여만인 지난 1999년 6월 산자부 기획관리실장에 전격 발탁됐다. 하지만 6개월만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기획관리실장까지 했으니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됐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 이사장은 2000년 1월부터 적자기업이었던 HSD엔진(현 두산엔진)의 CEO로 변신했다. 주변에선 공직에만 있던 김 이사장이 곧바로 민간기업 CEO로 성공할까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은 보란듯이 HSD의 최대 난제였던 조직간 화합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 취임 첫해부터 흑자경영을 이뤄냈다.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김 이사장은 2002년 1월 다시 3년 임기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2003년 8월 HSD엔진 사장직에서 물러났다.HSD엔진의 경영이 정상화된 만큼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경남 진주(55) ▲부산고·서울대 항공공학과 ▲기술고시 9회 ▲상공부 수출진흥과장 ▲산자부 산업기술국장·기획관리실장 ▲HSD엔진 사장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선풍기로 여름나기’ 100만명 서명운동 ‘한여름에는 에어컨을 과하게 틀고 긴 옷을 입는다. 반면 한겨울에는 실내온도를 과하게 높여 속옷만 입고 지낸다.’ 에너지관리공단이 지적하는 우리나라 냉난방 문화의 현주소다. 공단은 사상 유례 없는 고유가 시대에 맞는 실질적인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 에너지 절약의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여름철 에너지 절약 캠페인으로 4월24일부터 6월30일까지 ‘선풍기로 시원한 여름나기’ 100만명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가두서명과 공단 인터넷 홈페이지(www.kemco.or.kr)를 통해 에너지 절약 실천 약속을 한 시민이 8일 현재 12만여명에 달한다. 서명자 중 공개추첨을 통해 경차(3대)와 김치냉장고(30대), 스탠드(300대), 선풍기(3000대) 등 경품도 나눠준다. 공단은 또 한여름인 7∼8월 전기사용량을 전년대비 10% 이상 절약한 가구에 대해서는 3만 5000원을 돌려주는 행사도 병행할 계획이다. 공단이 이처럼 선풍기 사용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것은 그에 따른 경제적인 효과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냉방온도를 3도만 올려 한여름철 적정온도인 26∼28도를 유지하면 연간 450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 냉방전력 수요 감소에 따른 발전소 건설 비용까지 감안하면 경제적 효과는 3조원 이상이다. 공단이 이번 페스티벌의 성공을 자신하는 것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실시한 ‘따뜻한 가족 페스티벌’을 성공리에 마쳤기 때문이다. 내복을 입어 불필요한 난방 사용을 줄이자는 캠페인을 전개하자 캠페인 기간동안 전국 지역난방 열 사용량이 전년 동기에 비해 4% 줄어들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81억원의 효과다. 게다가 캠페인 기간동안 내복 제조업체의 판매량이 20% 이상 증가해 경제활성화에도 한몫했다. 공단 관계자는 “앞으로는 구호에만 그치는 캠페인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실제로 동참해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온라인보험 연중무휴 약관대출 ‘눈에띄네’

    온라인보험 연중무휴 약관대출 ‘눈에띄네’

    인터넷으로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보험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보험대리점이나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는 오프라인 보험상품에 비해 보험료가 15% 이상 싼 영향이 가장 크다. 온라인 보험 가입자는 인터넷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30대 이하 젊은 세대가 대부분이다. ●클릭 몇번으로 OK 온라인 보험은 자동차보험 시장에 교보자보·다음다이렉트·교원나라 등 3개 순수 온라인 보험사가 진출, 돌풍을 일으키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뒤따라 기존 보험사들이 인터넷을 통한 영업망을 구축하면서 시장 규모가 부쩍 커졌다. 자동차보험은 물론 암보험, 종신보험, 건강보험 등 생명보험과 상해보험, 여행자보험, 화재보험 등 손해보험 상품의 상당수가 온라인에서 처리가 가능하다. 일부 보험사는 온라인 보험과 판매 경쟁을 해야 하는 설계사들이 반발하는 바람에 일부러 상품 홍보를 자제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지난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한 온라인 매출이 500억원에 달했다.920억원 규모의 약관대출 실적을 거두었고, 정보제공 등 1000만건의 업무를 처리했다. 온라인을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물론, 연중 무휴로 약관 대출도 할 수 있다. 공인인증서를 이용한 자필 서명도 가능하고 보험금 보상청구도 이메일 등으로 접수할 수 있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동안 온라인 보험으로 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1만 5000여명에 이르는 설계사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해 홍보를 중단했다. 온라인 보험에 가입하는 방법은 보험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점은 비슷하다. 홈페이지에서 청약서를 찾아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직업, 건강상태, 보험료 이체계좌 등을 입력한다.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금융결제원의 전자인증서로 청약서 자필서명을 대신하면 가입 절차가 끝난다. 보험사는 이렇게 접수된 청약서의 개인병력기록 등을 살펴 보험가입이 적합한지 여부를 가린다. 보험증권은 이메일 등을 통해 발송된다. 가입하기 전에 홈페이지의 상품관련 정보를 꼼꼼히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자동차보험에서 종신보험까지 온라인 보험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판매경쟁을 하는 곳은 자동차보험 시장이다. 그동안 온라인 영업을 미루던 그린화재가 다음달에, 쌍용화재가 6월에 온라인 보험 업무를 시작한다. 동양화재도 올 하반기에 시스템을 가동한다. 중·소형 보험사들이 가세하자 이미 온라인 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다른 보험사들도 영업망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해상은 별도의 온라인 판매자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할인점 ‘홈플러스’와 제휴해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보험을 판매하고 있는 동부화재는 판매 제휴선을 늘리기로 했다. 온라인 보험사인 교보자보는 48세 이상 운전자에게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특약을 개발, 차별화에 나섰다. 다음다이렉트는 운전자 가족까지 보장하는 특약을 최근 출시했다. 다음다이렉트는 인터넷경매사이트 옥션과 업무제휴를 한 데 이어 GS이숍, 롯데닷컴, 신세계몰 등 온라인 쇼핑몰 등과의 제휴를 서두르고 있다. 지금은 보험료가 비싼 종신보험도 인터넷으로 가입할 수 있다. 다만 변액유니버셜 보험은 투자상품인 만큼 전문설계사와의 심층적인 상담을 통해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해 오프라인 채널만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전화가입 보험도 인기 인터넷뿐만 아니라 전화로 가입하는 텔레마케팅(TM) 상품 가입자도 늘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이 늘면서 더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온라인 보험과 마찬가지로 보험료가 10%쯤 저렴하고 가입하기도 편리하다. 전화 상담원으로부터 상품정보 등을 듣고 상담원이 묻는 대로 인적사항 등을 대답하면 바로 가입할 수 있다. 인적사항 등은 자동녹음돼 본인 인증용으로 쓰인다. 자료는 팩스나 우편 등으로 받아볼 수 있다. 온라인 보험보다 자유로운 상담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다만 가입할 때 병력기록 등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전화가입 보험은 기록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남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보험에 가입했는지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Zoom in 서울] 동물 뛰노는 서울 만든다

    [Zoom in 서울] 동물 뛰노는 서울 만든다

    “아빠, 오늘은 족제비를 봤어요.‘다솜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줬어요.” 서대문구 무악재고개 기슭에 사는 30대 회사원 김모씨의 6살 난 딸아이는 집밖에서 종종 야생동물과 친구가 된다. 김씨 역시 생태육교를 걷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북악산-창덕궁-종묘-세운상가-남산 등 현재 단절된 24개 서울의 생태녹지축 연결사업이 완료되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이야기들이다. 자연 녹지와 야생 동물, 그리고 서울시민과의 행복한 ‘동거’가 시작되는 셈이다. ●2010년까지 3000억들여 조성 서울시는 “북악산-창덕궁-남산 등 현재 단절된 24개 녹지축을 생태통로로 연결, 서울 도심과 외곽의 녹지를 하나로 묶는 생태녹지축 연결사업을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3일 밝혔다. 예산만 300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최근 선보인 뚝섬 서울숲에 이어 서울의 ‘녹색지도’를 다시 그리게 된다. 서울의 생태녹지축은 급격한 산업화와 무분별한 도로의 개설로 70년대 대부분 끊겼다. 생태녹지축 연결사업의 핵심은 단절된 서울의 녹지를 원래 모습에 가깝게 연결, 서울 도심부까지 녹색의 그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연결로의 형태는 생태육교나 녹지 도로, 산책로 등이 있다. 시민들이 연결로를 통해 기존 녹지를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은 물론, 야생 동식물이 자유롭게 번식하고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이번 사업을 통해 서울시에는 산과 산이 서로 연결되는 환상녹지축, 산과 평지가 연결되는 남북육경축 등 두 개의 녹지축이 출현한다. 환상녹지축은 북한산에서 시작, 수락산-아차산-길동자연생태공원-대모산·청계산-우면산-관악산-천왕산-우장산-덕양산-봉산-안산에서 다시 북한산으로 돌아온다. 서울을 감싸 안은 형태로 서로 연결된다. 역시 북한산에서 출발하는 남북육경축은 세 줄기로 나뉜다. 덕수궁-남산-용산기지-보라매공원-관악산까지의 한 줄기와 종묘-세운상가-남산-국립묘지-낙성대-관악산, 그리고 낙산에서 동대문운동장을 거쳐 남산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이 그것이다. ●다람쥐·족제비 도심 출현 녹지축이 연결되는 지역은 모두 24곳. 서대문 무악재고개와 북악산-창덕궁-종묘-세운상가-남산 등 도심과 서초 양재고개, 송파대로, 강북 오동근린공원 등 시 외곽을 망라한다. 서초 반포천 등 5개 하천의 생태계도 복원된다. 매봉산-월드컵경기장 등 10곳은 최근 녹지축이 연결됐다. 서울시는 올해 관악산-현충묘지공원 지역의 관악산과 까치산근린공원 사이 80.2m, 남산 지역의 매봉산∼금호산공원 사이 32m 길이에 폭 15m의 생태육교를 설치한다.60억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 12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도심 지역은 지상에 폭 30m 정도의 녹지 도로와 옥상 녹화사업 등을 통해 연결된다. 한강 주변과 다리도 생태적으로 조성, 동물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한다. 연결로에는 먼저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등 나무들을 심어 곤충의 이동을 유도한다. 이렇게 되면 꿩, 참새, 딱새 등 녹지에서 살던 새들이 날아든다. 이어 다람쥐, 산토끼, 족제비, 오소리 등 소형 포유류가 도심으로 이동하게 된다. 정상적인 생태계가 도심까지 이식되는 셈이다. 마지막 단계까지는 완공 뒤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시의회 협조로 5년 내 완료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24곳의 녹지축을 연결하는 데에만 3000억원 가까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또 세운상가 등 도심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에서는 개발 논리에 맞서 녹지축 연결로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완전한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는 육교 대신 막대한 예산이 드는 터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고민거리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년 100억원씩을 투자해도 20∼30년이 걸린다.”면서 “시의회 등의 협조로 집중 투자,2010년까지는 사업을 완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⑧-현대산업개발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⑧-현대산업개발

    올해는 현대산업개발 정세영(77) 명예회장과 정몽규(43) 회장이 자동차에서 건설로 배를 갈아탄 지 6년째 되는 해다. 자동차를 운영하던 경영인이 과연 건설을 잘 이끌겠느냐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대산업개발은 빠르게 새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른 형제들은 일찌감치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으나 정 명예회장은 현대자동차에 인생의 32년을 묶어두는 바람에 뒤늦게 독립했다. 정주영가의 다른 형제들이 현대건설에서 땀 흘리며 가꾸던 회사를 발판으로 분가한 것과 달리 정 명예회장의 ‘왕회장’ 독립은 2세 경영체계 구축과 함께 갑자기 이뤄졌다. 하지만 이들 부자는 “아파트도 자동차처럼 만들어야 팔린다.”면서 ‘현대자동차 신화’를 건설에 접목시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교수하면 배고파”, 현대와 인연 정 명예회장이 현대와 인연을 맺은 때가 1951년 부산 피란 시절이다. 고려대 정치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 명예회장은 왕회장 밑에서 잡역부 아르바이트생으로 인연을 맺었다.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도 왕회장 사무실에서 일손을 도왔다. 이미 두 형님(정인영 전 한라그룹 회장, 정순영 현대시멘트 명예회장)은 현대건설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다. 미국 유학을 떠난 것은 큰형의 메시지가 작용했다.57년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했으나 당리당략에 빠진 현실 정치에 빠져들기 싫어 정치 지망생의 꿈을 접고 대신 대학 교수의 길을 찾았다. 욕망은 모교 강단에 서고 싶었으나 우선 한 대학으로부터 교수 채용 사실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왕회장은 “나랑 같이 일하자.”고 소매를 잡았다. 늘 그랬지만 그에게 맏형의 말은 제의나 권유가 아닌 명령이나 다름없었고 한번도 거역한 적이 없었다. 내 사업으로 생각하고 32년 동안 일궜던 현대자동차도 왕회장이 사실상의 장조카 MK(정몽구)에게 넘겨주라는 한마디에 순순히 따랐을 정도다. 첫 직책은 신입사원 채용위원장. 동시에 신규 사업 진출을 검토하는 일도 겸했다. 왕회장이 처음 맡긴 프로젝트는 시멘트 공장 건설에 필요한 국제개발국차관(AID)을 빌려오는 일이었다. 둘째형(인영·85)과 함께 충북 단양의 광산을 사들이는 한편 미국과 국내에서 공장 건설을 위한 교섭을 벌여 어렵사리 성사시켰다. 하지만 그에게 가난보다 더 무서운 시련이 찾아왔다.30대 초반인데도 건강에 이상이 감지됐다. 간경변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마와 씨름하느라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아내의 정성어린 간병과 용기로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다시 일에 뛰어들었다. 새로 부임한 곳이 단양 시멘트공장 공장장이었다. 사선을 넘나들던 건강을 되찾으면서 일에 미쳤다. 65년 대한건설협회 해외시찰단 일원으로 동남아 여러 나라를 방문할 기회를 얻는다. 마침 태국에 세계은행 자금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정보를 캐낸 그는 이 사실을 서울 큰형님에게 보고한다. 정 회장은 왕회장으로부터 “태국에 그대로 눌러앉아 공사 진행상황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고 방문단에서 빠져 관련 정보 입수에 본격 나선다. 이렇게 해서 현대건설 방콕지점장이 됐고 파타니∼나리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고속도로건설 경험도 없었던 현대였고, 국내 최초의 해외건설 공사 수주로 기록됐다. ●‘포니 정’,32년의 자동차 인생 시작 1967년 시멘트 공장 기계를 사기 위해 미국에 있던 중 본사로부터 포드자동차와 접촉하라는 전보를 받는다. 포드 자동차가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조사단이 방문했는데 서울에서 그들을 만나지 못했으니 미국에서 포드측에 관심있다는 뜻을 전하라는 메시지였다. 즉각 움직여 자동차 산업에 대한 현대의 관심을 전달하고, 포드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둘째형의 적극적인 협상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같은 해 말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는 현대자동차 회사가 설립됐고, 초대 사장으로 임명돼 있었다. 이렇게 해서 ‘포니 정’의 32년 자동차 인생이 시작됐다. 자동차 진출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포드와의 조립계약을 맺은 뒤 68년 3월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자동차 공장 구경도 못하고 자동차 공장을 지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젠가 우리 손으로 만든 자동차를 수출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키워갔다. 본격적인 공장 건설과 함께 인재 사냥에 나섰다. 급한 대로 현대건설에서 유능한 사람을 빼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이양섭 부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 부장은 20년 넘게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면서 사장까지 역임했다. 윤주원씨도 현대건설에서 스카우트해 사장까지 지냈다. 신동원씨는 당시 상공부로부터 추천받은 경우다. 신입사원도 뽑기 시작했다. 이들이 오대양 육대주를 달리는 오늘의 현대차를 있게 한 일꾼들이었다. 마침내 68년 11월 제1호 ‘코티나’가 나왔다. 공장을 짓고 자동차를 생산하기까지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음해 5월부터는 중형 승용차 포드 20M도 생산했고,8월에는 자체 설계한 첫 버스를 출고하는 저력을 발휘하면서 쾌속질주를 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현대차의 질주를 시기하고 배 아파하는 소리도 들렸다. 경쟁사인 신진자동차와 정치권의 압박으로 숱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70년초 1차 석유파동에 휩싸이면서 판매도 급감했다. 할부로 판매한 자동차의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 때 막내 동생 상영(KCC명예회장·69)씨가 잠시 금강슬레이트 경영을 접고 부사장으로 와서 채권회수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 한 마디에 자동차 인생 종지부 언제까지 단순 조립생산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포드와 50대50 합작회사를 만들어 엔진 공장을 짓고 기술을 이전받아 자립의 길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포드가 약속한 지분 50%에 대한 자본 납입을 미루고 협상이 결렬되면서 ‘마이웨이’를 외쳤다.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74년 국산 1호차 조랑말 ‘포니’가 탄생했고 이를 이탈리아 토리노 국제모터쇼에 내놓는 기염을 토했다. 모든 테스트를 마치고 76년 2월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고 중남미를 중심으로 수출까지 이끌어냈다. 이 때부터 현대자동차는 국내 기업이 아니라 세계 기업으로 커갔다. 아울러 96년 MK(정몽구 현대차 회장)가 그룹 회장을 맡을 때까지 9년 동안 왕회장을 대신해 현대호를 이끌었다. 이즈음 현대가의 2세 경영체제가 이뤄지면서 자동차 회장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앉았다. 정 회장은 용산고, 고려대 경영학과, 영국 옥스퍼드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88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이 때부터 현대자동차를 몰고가는 드라이버는 몽규 회장이었다. 하지만 삼성자동차 허가, 외환위기라는 거센 풍랑과 맞서 싸워야 했다. 여기에 노사분규 시련도 덮쳤다. 젊은 정 회장에게는 경영자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시험대였다. 정 회장은 의연하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이방주, 김수중, 김판곤 등의 임원이 정 회장의 훌륭한 참모 역할을 했다. 하지만 9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뒤 경영 구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MK가 현대차와 기아차의 새 회장으로 오면서 몽규 회장은 부회장으로 내려앉는다. 장차 밀어닥칠 일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었다. 마침내 99년 3월3일 왕회장은 명예회장을 부른다. 왕회장은 “MK한테 자동차 회사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라는 말로 자동차에서 손을 떼라고 했다.“잘못된 것 없다.”는 대답이 나오기 무섭게 “그렇게 해.”라는 왕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내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이끌었던 사업이었지만 거역하지 않고 “예”라는 한마디로 32년 자동차 인생을 접었다. 아울러 왕회장의 생각과 달리 아들 몽규도 함께 자동차를 떠나 현대산업개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아파트도 자동차처럼 지어야 한다 새 사업을 가꾸고 키우는 일은 몽규 회장과 전문 경영인이 맡았다. 명예회장은 경영 자문만 할 정도다. 정 회장은 아파트에 자동차 제조업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사소한 하자가 나와도 불량품이 완전히 고쳐질 때까지 모든 공정을 멈추는 것이다. 현장 중시와 품질경영 기치를 내세웠다. 체면 따위는 내팽개쳤다. 경쟁사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찾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삼성래미안 아파트 강남 일원동 주택전시관을 찾은 적도 있다. 지난해에는 용산 시티파크 모델하우스를 찾아 경쟁사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파트 이름을 ‘I-PARK’로 바꾸는 등 변신도 꾀했다.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지 않는 것도 다른 건설사와 다르다. 안정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수주·매출 목표를 줄이는 것도 그에게는 창피한 일이 아니다. 자동차에서 건설로 배를 갈아탄 지 6년 만에 부동산 박사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 강남 역삼동 스타타워(아이타워)사옥 매각도 그의 판단이었다. 부채를 갚아 정상적인 회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로는 최고의 조건으로 넘겼고, 부동산 개발회사가 특정 사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돈이 된다 싶으면 정든 사옥도 팔 수 있고, 부동산 회사가 개발 이익을 남기고 사옥을 옮기는 것은 결코 흉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부동산업자는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낭만적인 ‘포니 정家’혼맥 ‘포니 정’과 정 회장은 결혼 과정이 비슷하다. 낭만적이다. 처음부터 명문가를 골라 배필을 정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소개해준 여성과 사랑을 싹 틔우다가 결혼에 골인했다. 정 명예회장은 대학 시절 왕회장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한때 사무실 여직원에게 마음이 끌리기도 했지만 유학길에 오르는 바람에 첫사랑의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했다. 유학 시절에는 공부하느라 연애 한번 못해봤고 현대건설 입사 이후에는 일에 파묻혀 서른이 넘도록 노총각으로 지냈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뉴욕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의 소개로 박영자(69) 여사를 만난다. 박 여사는 부산에서 올라와 이화여대 3학년에 다니던 귀여운 단발머리 학생이었다. 첫눈에 사로잡혀 매일 데이트를 할 정도였고 세 번째 만나던 날 프러포즈를 했다. 아버지와 다름없었던 큰형님과 형수에게 인사를 시켰는데 두 사람 모두 마음에 들어했다. 명문대가를 따지지 않는 현대가의 결혼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산으로 내려가 어른들의 허락을 받은 뒤 만난 지 100일이 안돼 약혼하고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정 명예회장은 큰딸을 결혼시키면서 노신영 전 총리와 사돈 관계를 맺었다. 사위 경수(51)씨가 노 전 총리의 장남이다. 노씨는 서울대 교수로 국제정치 전문가다. 노 전 총리 차남은 중앙일보 고 홍진기 회장 딸 홍라영씨와 결혼했다. 이로 인해 노신영가는 국내 굴지의 그룹인 현대, 삼성가와 동시에 사돈 관계를 맺었다. 정 회장의 결혼도 명예회장과 마찬가지로 순수함 그대로였다. 역시 반 중매 반 연애로 이뤄졌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김나영(39) 여사를 만났다. 결혼 얘기를 잘 꺼내지 않는 몽규 회장이지만 몇몇 절친한 친구한테는 결혼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나영씨는 연대 수학과를 나온 재원. 키도 크고 미인이었다. 첫 만남에서 정 회장은 상당한 호감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정 회장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키도 크고 집안도 좋고 미인인 데다 마음까지 곱다.(아까운데)친구 중 누구 소개 시켜주면 안 될까.”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친구들이 오히려 격려해 줬다.“너보다 키 작은 여성을 만나면 어떻게 하느냐. 천생배필이다.”며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영씨는 당시 대한화재보험 김성두 사장의 딸이다. 하지만 당시 대한화재는 기울어가는 회사였다. 정략적 결혼이었다면 잘나가는 집안과 결혼했을 터이지만 현대 집안에서는 이들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다. 정씨 일가의 결혼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계기로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회장 시절 사돈인 대한화재를 살리기 위해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위장계열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중점 관리 대상으로 지정돼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 회사는 뒤에 대한생명으로 인수된다. 범 현대가의 경영 특징이지만 현대산업개발에도 처가쪽 사람이 없다. 정 회장 처남이 잠깐 현대자동차와 현대산업개발에서 근무했으나 지금은 독립,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막내 딸 유경(35)씨는 김석성 전 전방회장의 1남4녀중 막내인 종엽씨와 결혼했다. 몽규 회장에 이어 재계 인맥을 형성한다. 유경씨는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한 뒤 현대산업개발에서 잠시 근무했다. 종엽씨는 미국 벨뷰대학 출신으로 전방 계열의 내의류 생산업체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역시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나 1년 동안 사귀다가 결혼하게 됐다. ●다재다능한 전문 경영인 포진 현대산업개발 전문 경영인은 삼각편대로 구성됐다. 자동차에서 정 회장과 함께 현대차를 키웠던 전문 경영인과 현대산업개발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통이 주력부대다. 여기에 금융기관 등에서 스카우트한 전문가 그룹이 한 축을 버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이방주 사장은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의 핵심 브레인. 전형적인 재무통. 현대자동차 재경본부장과 사장을 거쳤다. 정 회장이 현대산업개발로 옮길 때 함께 배를 갈아탔으며 현대차·현대산업개발을 키운 1등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너의 신임이 남달리 두터워 자동차에 이어 건설회사에서도 대표이사 사장을 6년째 맡고 있다.ROTC 포병장교 출신. 연극계 대부 고 이해랑씨가 부친이며 문화계에도 아는 사람이 많다. 건설업계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주택협회회장을 맡을 정도로 부동산과 건설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보성고,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정 명예회장과는 고교·대학 동문인 셈이다. 김정중 사장은 77년 현대산업개발에 입사, 국내외 현장을 누빈 건설업계 산증인. 기술연구소장, 건축본부장, 영업본부장을 거쳤다. 과거 현대아파트는 물론 I’PARK까지 그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현대산업개발이 지은 아파트다. 마케팅팀 및 영업기획팀을 신설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을 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전고와 한양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김택 현대역사 사장은 현대산업개발 에 입사해 관리본부장, 리모델링 사장을 거쳐 2003년부터 현대역사 사장을 맡고 있다. 고속철도 용산역에 8만 2000평 규모의 복합쇼핑몰 ‘스페이스9’를 운영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다. 소탈한 성격에 정확한 판단과 추진력을 갖춘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용산고, 고려대를 나와 정 회장과 고교·대학 동문이다. 인텔리전트 빌딩, 첨단 홈네트워크 시스템 구축 업체인 아이콘트롤스는 김대철 사장이 맡고 있다. 주거 공간의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축, 주거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현대산업개발 자재담당 임원과 기획실장을 지냈다. 서라벌고와 고려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MBA출신이다. 장동열 아이앤이 사장은 음악·시·영화 등에 관심이 깊다. 따뜻한 카리스마로 감성경영을 한다는 평을 받는다. 의사결정까지는 심사숙고하지만 일단 정해진 일은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을 지녔다.2년전 현대산업개발의 기계·전기팀에서 떨어져 나간 회사다. 광주고와 전남대 건축공학과를 나왔다. 현대엔지니어링플라스틱 이건원 사장은 현대차 부품개발분야에서 27년 동안 몸담으면서 국내 자동차 부품 및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현대산업개발 유화사업부로 출발,2000년 분사한 회사. 충남 당진에 공장을 갖고 있으며 자동차 내외장재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 분야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제품 사용 범위를 밥솥, 김치 냉장고 등 생활가전으로 넓혀가는 중이다. 아이앤콘스는 부산 아이파크 프로축구단장과 현대산업개발 영업기획 임원을 역임한 곽동원 사장이 이끌고 있다. 경남고, 성균대를 나왔다. 중·소규모 아파트와 빌라를 짓고 건물 리모델링, 개발사업 등 부동산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업체다. 유일한 금융관련 회사인 아이투자신탁운용도 있다. 유가증권 투자·운용과 투자자문 업무를 하면서 신뢰받는 금융서비스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표는 글로벌에셋운용 총괄본부장을 역임한 우경정 사장이다. 프로축구단 아이파크스포츠는 이준하 사장이 책임진다. 정 회장과 용산고 동문이자 오랜 친구다. 어려서부터 양쪽 집안끼리 가까웠다. 연대 출신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MBA를 받았다. 현대차와 현대산업개발에서 영업·마케팅, 홍보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데 있어 모험적이고 개척정신이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올해 경영 목표를 ‘한국형 클럽스포츠의 성공적 사업 모델 구축’으로 정했다. 우승과 동시에 스포츠단에도 사업 마인드를 접목시키기 위해 사업다각화와 경영합리화를 꾀하고 있다. chani@seoul.co.kr ■ ‘만능 스포츠맨’ 정몽규 회장 현대산업개발 CEO들은 유난히 스포츠에 애착을 갖는다. 스포츠로 뭉친 인맥경영을 보는 듯하다. 특히 정몽규 회장은 스포츠광이다.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다. 선수 수준인 종목만 5개나 된다. 그 중에서도 수영은 프로급이다. 승마, 수상스키, 스키(요즘은 보드를 탄다)도 수준급이다. 수상 경력이 있는 종목도 있다. 그는 격한 운동을 좋아한다. 철인3종경기,MTB(산악 자전거타기) 마니아다. 기업인 중심으로 구성된 철인3종경기 동호인이다. 얼마전에는 스키장에서 보드로 스피드를 즐기다가 안전 펜스를 뛰어넘으면서 어깨를 다친 적도 있다. 기계 위에서 하는 운동은 별로다. 가끔 한강변이나 남산에서 뛰기도 한다. 정 회장은 “콧구멍이 시커머지더라도 밖에서 운동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한다. 골프는 할 줄은 알지만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다. 운동할 때는 운동에 전념해야 하는데 골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도 싫다. 정 명예회장도 30년 이상 수상스키를 즐겼다. 바쁜 일정 중에도 양수리에서 물 위를 활주하곤 했다. 이런 인연으로 수상스키협회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선수 육성과 보급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이방주 사장도 스포츠를 즐기는 CEO다.1년에 3∼4회 마라톤 경기에 참가한다. 최근 10㎞를 1시간 안에 뛰었다. 시간이 나면 등산을 한다. 회사 차원에서는 프로축구 아이파크 스포츠단을 운영한다. 회사 차원의 지원도 대단하다. 부산에 연고를 두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10여곳의 재개발단지를 수주하는데 상당한 보탬이 됐다고 한다. 대부분의 스포츠단이 그렇듯이 아이파크 축구단도 해마다 적자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적극 밀어준다. 스포츠단 이준하 사장은 재미있는 스포츠에 사업성을 가미한 경영을 한다. 올해 적자폭을 줄이고 돈을 벌 수 있는 별도 사업을 추진, 스포츠단을 모회사에 손을 내밀지 않을 정도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chani@seoul.co.kr ■ 정세영·몽규 父子 ‘막노동 경영수업’ 정세영 명예회장과 몽규 회장은 경영 수업의 첫 출발도 비슷하다. 이 때 형성된 인맥은 건설이나 자동차 회사의 초석을 다지는 주역이 됐다. 정 명예회장은 부친이 부산 피란시절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막 벌여놓은 현대건설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큰형(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둘째형(정인영 전 한라그룹 회장)이 미군 공사를 수주해 오면 시장에 나가 현장에 투입할 인부를 모아오고 자재를 사들이는 일이었다. 이 때 만난 이춘림씨는 훗날 현대건설 회장에 오른다. 이 전 회장은 그래도 건축도(당시 서울대 건축학과 3학년생)라서 설계를 하고 공사 감독도 했지만 정 명예회장은 그야말로 잡역부이자 막노동꾼이었다. 막노동판에서 만난 인맥은 현대건설을 떠날 때까지 끈끈하게 유지된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외아들 몽규에게 혹독하게 경영 훈련을 시켰다. 대학생이었던 정 회장은 방학 때면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고된 잡일을 해야 했다. 임직원들도 모르게 했다. 땡볕 아래서 리어카를 끌고 숙식도 독신자 기숙사에서 해결하는 생활이었다. 정 회장은 울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것을 가장 기억이 남는 과거로 떠올린다. 자식뿐 아니라 전문 경영인에게도 가혹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강한 저력을 발휘할 수 있게 훈련시켰고 인맥을 관리했다. 자동차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인들을 잘 관리했고, 그 뒤에 현대산업개발로 모셔와(?) 중역을 맡겼다. 이방주 사장을 비롯해 김판곤 전 현대역사 사장 등이 자동차에서 날리던 선수들이다. 이들은 정 명예회장과 함께 현대자동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키운 베테랑 경영자들이다. 정 회장 역시 자녀 교육에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생인 큰아들 준선(13)이를 초등학교 6학년 때 영국으로 홀로 유학보냈다. 준선이는 재능을 인정받아 당당히 이튼스쿨에 자력으로 입학했다. 따로 돌봐주는 사람 없이 기숙사에서 생활토록 하고 있다. 호랑이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바위에서 떨어뜨리는 식이다. chan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베트남전 종전 30주년] 끝나지 않은 40년전 악몽…반전운동·종교 귀의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흘렀지만 전쟁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한국은 32만여명을 파병, 전사 5099명, 부상 1만 1232명이라는 희생을 안았다. 한국군에게 피해를 당한 베트남 사람들도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 나라는 1992년 수교한 뒤 서로의 상처를 보살펴 주며 과거의 악연을 씻고 있는 중이다.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아 전쟁 희생자들의 고통 속에서도 돈독해지고 있는 양국 관계를 살펴봤다. ■ 참전 생존자들의 고통 “1년에 몇번씩은 퀴논의 그 지긋지긋한 전략촌을 찾아갑니다. 손에는 M1 소총을 들고 있죠. 그리고는 저의 오발로 밀림에서 죽은 30대 여인의 치켜뜬 두 눈과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던 정 일병이 겹쳐집니다. 소리치며 깨어나면 가슴이 콱 막혀 숨을 못 쉬겠어요.40년이나 지났으면 잊혀질 법도 하련만….” 지난 28일 오후 서울 명동의 커피숍.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묵은 악몽을 얘기하던 박정익(가명·59·목사)씨의 눈가가 젖어든다.1965년 12월3일. 이 날은 박씨의 가슴에 핏빛 화인(火印)으로 남아 있다. ●밀림 헤매는 ‘김상사’ 박씨에게 베트남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194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다 65년 10월 맹호부대 기갑연대 3중대 소속으로 베트남 중부 캄란 땅을 밟았다. 전쟁보다 가난이 더 무섭던 시절.1년만 버티면 집 두 채를 산다는 말에 자원했다. 하지만 전장에 나서기엔 박씨는 너무나 여렸다. 실전 투입 한달도 안돼 퀴논 지역 작전에서 동료를 잃었다.“살아서 소 몰고 고향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친구였다.“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저 자신이 점점 ‘짐승’이 돼 갔지요.” 이듬해 11월 무사히 귀환해 수원에서 큰 포목점을 열었지만 전쟁의 악몽은 베트남 해변가의 안개처럼 머릿속을 짓눌렀다. 그를 ‘구원’한 건 신앙의 힘이었다. 뒤늦게 신학대학에 진학해 개척 교회를 열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도 베트남의 상처를 말하지 못했다.“퀴논에서 목회를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짙은 그림자 남긴 베트남의 악몽 강인용(가명·부산)씨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자기와 가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다. 베트남에서 귀환해 가정을 꾸렸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지 못했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가족들을 괴롭혔고 결국 아들과 부인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 강씨는 세상과 연락을 끊은 채 살고 있다. ●속죄의 길로 택한 반전 운동 베트남의 기억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바꾼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김용삼(55)씨는 ‘추악한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왜곡된 현대사 바로잡기에 뛰어들었다. 해병대 5중대 소속으로 68년 7월 전쟁터에 뛰어든 그는 이듬해 4월 최전방이던 호이안 지역 전투에서 오른손에 총알 관통상을 입고 제대했다. 우연찮게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돌보게 됐고 이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베트남 전쟁의 본질 규명에 나섰다. 경남 마산의 시민사회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김영만(59)씨는 해병대 포병 3대대 11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67년 2월14일 ‘짜빈동 전투’에서 코에 총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200명의 해병대는 짜빈동 전투에서 월맹군 3000여명을 격퇴했다. 해병 전투사는 이를 ‘베트남전 최고의 해병 전투’로 기록한다. 김씨 역시 ‘학살’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짜빈동 전투 이틀 전 30대 남자 포로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다. 당시 포로 즉결 심판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죽은 포로의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며 애원했다.“고향에 계신 친할머니 같았어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에 오기 전의 정상적인 청년으로 돌아온 거죠.” 김씨는 화랑무공훈장도 보훈 혜택도 마다하고 제대한 뒤 모든 것을 잊고 ‘희망의 땅’ 미국으로의 이민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민 준비를 위해 호텔 견습생으로 들어갔다가 척추를 다쳤다.30대의 대부분을 하반신 불구로 보냈고 부인은 행상에 나섰다. 2003년 3월 그는 배상현씨 등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들을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파견했다. 김씨는 “이라크 파병은 우리 민족이 베트남전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잘못된 결정”이라면서 “전쟁을 없애는 것이 베트남에서의 죄갚음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고엽제후유증 8만명 고통 PTSD는 치료도 못받아 “포탄 날아온다. 모두 피하라.” 2003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LA의 USC 부속병원. 낯선 한국말 고함이 병동의 새벽 정적을 깼다.“여보, 제발 정신 좀 차려봐요.”눈을 뒤집은 채 병상에서 소리치고 있는 목사 김모(58)씨의 손을 잡고 부인 김모(56)씨가 눈물로 애원했다. “여기가 어디야. 또 월남 아니야.”김씨는 결국 꽁꽁 묶여 정신병동으로 갔다. 원인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백마부대 소속으로 1968년 9월부터 15개월을 베트남에서 보냈던 그는 현재 중풍과 PTSD 증세로 대소변도 못 가눌 정도가 됐다.PTSD는 전쟁 등 극단적인 사건에 노출된 뒤 나타나는 불안 장애. 헛것이 보이거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등 충격을 현실처럼 느끼기도 하고 한없이 차가워지기도 한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의한 PTSD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PTSD로 150만여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만여명이 자살을 택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파월 장병들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고엽제 환자 280명 중 60%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그러나 보상은커녕 치료마저 요원하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병상 일지에 관련 증세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어야 전투와 연관된 상해로 인정받기 때문에 PTSD 전상자는 공식적으로 없다.”면서 “미국처럼 PTSD 환자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아버지는 PTSD로 고통받았고, 그 고통이 유영철에게 정신적 외상으로 전이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엽제의 고통도 끝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와 후유의증 환자는 8만여명. 그러나 판정 조건이 너무 엄격하다. 진단받은 사람 가운데 17.9%만이 후유증으로 판정받고, 이중 58.3%만이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는다. 고엽제는 참전자 2세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2000년 182명의 부산·경남지역 고엽제 후유증 환자 2세 연구에 의하면 선천성 기형이 15건, 전신 허약이 12건이나 나타났다.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건강 장애를 보였다. 고엽제 피해로 미국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도 2억 4000만달러를 보상비로 챙겼다. 그러나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32만여명을 보낸 한국은 한 푼도 못 받았다. 이두걸 이효용기자 douzirl@seoul.co.kr ■ 당시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예비역중장 “주한美軍 차출 막으려 파병” “주한미군을 자꾸 나가라고 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패망 직전의 월남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주위로부터 많이 듣고 있어요.”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5년 가까이 파병부대를 지휘한 채명신(80) 예비역 육군 중장은 베트남전 종전 30주년과 관련해 이 전쟁이 주는 교훈이 뭐냐고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반미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사회 일각의 풍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요즘 그는 베트남참전동지회와 6·25 유공자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강의차 지방출장도 자주 다니고 있으며, 옛 전우들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올해가 월남전 종전 3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투부대 파병 4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답게 그는 종전보다는 전투부대 파병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듯 했다. 월남 파병을 ‘용병(傭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파병의 불가피성을 들었다. ●朴대통령 “쉽지 않은 전쟁” 고민 “당시 파병은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돼 있었습니다. 미국이 월남에 지상군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주한미군을 빼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미국 본토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제한적이었거든요.” 당시 우리보다 GNP가 많고 군사력도 월등한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파병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경제발전과 5·16 이후 불편했던 미국과의 관계 등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파병 직전 박정희 대통령이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던 자신을 불러 전투병 파병을 논의했었다는 얘기도 털어왔다. 육본 작전참모부장은 전투수행에 관한 한 군의 최고 전문가다. 당시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았던 만큼 박 대통령도 적잖은 고민을 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월남에 파병되면 게릴라전을 수행해야 하는데, 뚜렷한 목표의식과 인간적인 존경을 받는 카리스마의 리더십, 은신과 보급이 가능한 지리적 환경 등을 호찌민부대가 갖추고 있어 싸움은 쉽지 않겠지만 미국을 붙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민간인 무차별 총질 결단코 없었다” 최근 월남전과 관련해 이따금씩 보도되고 있는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참전 의미를 훼손하려는 의도적인 비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주민으로 가장한 베트콩들이 많은 마을에서 수색작전을 하는 과정에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일부 주민들과 교전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무런 혐의도 없는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한 적은 결단코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게 당시 사령부의 지휘방침이었다고도 했다. 실제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의 전과(戰果)를 거론했다. 당시 한국군은 사살자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베트남에 주둔하는 8년간 4만명 이상을 사살했는데 총이나 수류탄도 대략 2만정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은 동료가 쓰러지면 시체보다 총을 먼저 챙길 정도로 무기를 생명처럼 여겼는데 이 정도로 많은 무기를 노획한 것은 한국군이 얼마나 알뜰하게 베트콩만 골라서 공격했는지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미군과의 작전지휘권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파병 직전 박 대통령도 현지에서 미군의 지휘를 받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작전 지휘권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 결국 그의 뜻대로 됐다. “미군은 당시 한국군 병력이 2만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군의 통제를 받으라고 강요했지만, 애초에 미국의 (월남전) 개입이 잘못됐고, 잘못된 군사전략에 우리가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게 내 신념이었습니다.” ●용병 논란 우려 독자 작전권 고집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되면 ‘용병 논란’이 생길 게 뻔하고, 미군도 전쟁을 청부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권을 가질 때만 이 전쟁의 성격 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로 설득했더니, 의외로 미군들도 수긍을 하더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이 결국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제개발을 첫 손에 꼽았다. 파병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점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금융기구에서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했던 차관을 선뜻 내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또 현대건설 등 월남전 특수에 힘 입은 것도 분명한 사실 아니냐고도 했다. 그는 ‘고엽제’ 등 전쟁의 부작용의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 고엽제 후유증이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고엽제 부작용 이렇게 심할줄을” 문민정부 때부터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를 후유증으로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현재 1만 2,000명이 후유증 판정을 받았으며,3만명은 의증 판정을 받은 상태다. 참전유공자회 책임자를 맡은 만큼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철군한 이후 베트남을 방문하지 않다가 수년전 관광차 하노이만 잠깐 한차례 들렀다고 한다. 또 월남전과 관련해 제작된 각종 영화 등도 관심있게 봤다. 하지만 상당수 작품의 경우 허구가 지나쳐 고개를 돌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베트남전과 한국군 파병 등에 대해 회고록을 집필중이다. 잘 하면 올 연말쯤이면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그는 나중에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현지 사령관을 마친 뒤 귀국, 군사령관을 마치고 군문을 떠났으며, 이후 스웨덴과 그리스, 브라질 등의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기업 1000여곳 진출… 한류열풍 한국사람으로서 지금 베트남에 간다면 자신감을 만끽할 수 있다. 이제 한창 ‘성장’의 맛을 들인 이 후발 개도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선망의 대상이다. 불과 30년전 총부리를 겨눈 적(敵)이었다는 역사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2005년 베트남의 정서는 친(親)한국 일변도다. 하노이 도심 곳곳에서는 ‘SAMSUNG’과 ‘LG’와 같은 한국 기업의 간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마티즈, 매그너스 등의 승용차는 30년전 탱크가 밟고 다녔을 법한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한국 제품이란 사실이 부각돼야 시장 점유율이 올라갈 만큼 베트남에서 한국의 경제적 이미지는 ‘선진국급’이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가속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투자액이 40억달러를 넘었고 최근 3년간 투자금액은 타이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KOTRA 하노이 무역관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농업을 뺀 베트남 전체 취업 인구의 3%(35만명)를 고용하고, 베트남 수출액의 10%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주’한 한국 기업은 1000개는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섬유·의류·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출발한 우리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90년대 중반부터 철강·통신·사회간접시설을 향해 정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양국간 교류 확대가 ‘돈벌이’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1997년 드라마 ‘의가형제’로 시작된 한류 열풍은 이제 완전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베트남의 주요 TV채널에선 저녁 황금시간대에 ‘파리의 연인’과 ‘리멤버’ 등 한국 드라마끼리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뉴스도 경제뿐 아니라 스포츠·문화·사회현상과 같은 시시콜콜한 영역까지 보도돼 서울과의 시차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유학이나 한국 기업 취업을 위한 ‘한국어 배우기’ 붐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해외에선 드물게 한국어 인증시험이 치러지는 곳이 베트남이다. 응시생이 월 200∼300명에 이른다.TV에서 한국어 강좌가 방영되고, 호찌민과 하노이의 주요 7개 대학에 한국어 학과가 개설돼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통업계 ‘손안의 게임시장’ 잡아라

    이통업계 ‘손안의 게임시장’ 잡아라

    “게임 마니아를 잡아라.”이동통신 서비스업계가 휴대전화로 대용량 3D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사업에 ‘올인’하고 있다. 음악포털에 주력했던 서비스를 게임분야로 확장하고 있는 것. 최근 연평균 24%의 성장세를 보이는 게임시장이 음악시장과 함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할 것이란 판단에 따른 전략이다.3D게임이란 가속엔진과 그래픽 전용 칩이 탑재된 전용폰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3차원 게임 서비스다. ●게임포털 잇따라 오픈 SK텔레콤과 KTF가 최근 게임포털을 오픈했다. SK텔레콤은 모바일전용 게임포털인 ‘GXG(지엑스지,www.GXG.com)’ 를 지난 11일 내놓았다. 오픈 첫날에 게임빌의 ‘미니고치(육성 시뮬)’ 등 16종의 모바일 3D게임을 선보였다. 올 상반기에만 총 73종을 내놓을 예정이다. 상대방과 대전하며 즐기는 네트워크 게임, 온라인 동시 런칭게임이 출시 대기중이다.SK텔레콤은 올해 게임 기획, 개발 등에 100억여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KTF는 이에 앞서 지난 4일부터 대용량 3D게임 전용사이트인 ‘GPANG(지팡,www.gpang.com)’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팡은 기존 0.5MB(메가바이트)에서 100MB 이상으로 저장용량을 확장, 대작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현재 액션, 슈팅, 레이싱 등 총 11개인 콘텐츠를 연말까지 100여개로 확대하고 다음 달에는 여러 명이 접속해 즐기는 네트워크형 게임도 출시할 예정이다. LG텔레콤은 게임포털을 만들지 않았지만 오는 7,8월쯤에 대용량 3D게임을 자사 무선인터넷인 ‘이지아이’에서 제공할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타사의 게임포털과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며 다각적인 게임사업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게임 전용폰도 출시 이동통신 업계가 모바일 게임시장의 진출 문을 열어젖히자 삼성전자,LG전자, 팬택&큐리텔,SK텔레텍은 별도의 가속엔진과 그래픽 전용칩을 탑재한 전용 게임폰 출시를 잇따라 계획 중이다. 가격은 대체로 50만원대. 모두가 큰 화면과 고출력 스피커, 별도의 게임 조작버튼을 통해 3D게임을 즐길 수 있는 폰이다. SK텔레콤은 5종의 전용폰을 상반기에 출시한다. 삼성전자 SCH-G100과 SK텔레텍의 IM-8300이 이달에,LG전자의 SV-360이 다음 달에 출시된다. 팬택&큐리텔과 모토로라의 전용폰도 출시가 예정돼 있다.KTF도 전용폰 SPH-G1000을 지난 6일 출시했고, 다음달에는 여성전용 모델인 LG-KV3600을 내놓는다. 올 연말까지 5∼6종의 ‘지팡’ 전용폰을 출시한다. ●아직은 ‘고가’, 전용요금제 유리 3D게임은 용량이 커 내려받는 요금 부담이 만만찮다. 게임 전용포털을 통해 PC싱크(유선으로 내려받는 것)방식을 이용하면 통화료를 내지 않고 게임 값(정보이용료)만 내면 된다. 무선인터넷 이용때보다 훨씬 싸다. SK텔레콤은 PC싱크 방식을 이용하면 4500∼5500원, 무선으로 내려받으면 3000∼3700원의 정보이용료에다가 데이터 통화료를 따로 부과한다. 네이트 프리(월 1만 4000원) 정액요금제에 가입하면 통화료 없이 정보이용료만 내면 된다.KTF는 월 9800원의 전용요금제를 적용했다. SK텔레콤 게임사업팀 조용보 부장은 “게임은 개인적 집중도가 높고 게임 이용자도 10대 초반과 30대로 확장되고 있어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서로 밀어주니 몸값 쑥쑥 미래 쑥쑥

    서로 밀어주니 몸값 쑥쑥 미래 쑥쑥

    재(財)테크든, 자(自)테크든 선택의 핵심은 결국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하는 문제다. 미혼일 때는 선뜻 공부에 투자를 아끼지 않다가도 결혼을 하고 나면 이런 저런 돈 쓸 곳이 많아지면서 자기계발은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그럼에도 부부가 함께 노력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2030 부부가 늘고 있다. 김용섭(33)·전은경(30)씨는 “지속적인 자기계발로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가는 것은 ‘1+1’이상의 시너지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부부 자테크족’이다. 김씨 부부는 결혼을 앞둔 2001년 2월 ‘능력과 전문성 키우기 5년 계획’을 세웠다. 당시 김씨는 컨설팅회사에서, 전씨는 디자인 전문교육기관에서 그래픽디자인 강사로 일하며 각각의 분야에서 책을 내는 등 이미 상당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 보다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서로를 전폭적으로 밀어주기로 했다.5년 동안 석사학위를 하나씩 따고, 전문성을 키워나가면서 해마다 두 사람이 함께 책을 한권씩 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두 사람은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대학원 공부와 다양한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학비와 정보수집 비용 등으로 해마다 3000만원 이상을 썼다. 4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투자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숙명여대 원격대학원 등에서 디지털콘텐츠와 웹미디어 전략을 가르치고 있다. 미디어전략을 분석하는 컨설팅과 각종 칼럼을 쓰는 일도 꾸준히 했다. 전씨도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매니지먼트를 공부하면서 현재는 디자인 전문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책 쓰기 목표도 거의 이루었다. 지금까지 김씨가 8권, 전씨가 5권의 책을 펴냈다.‘1위 웹사이트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2003년)’,‘전략적인 웹디자인(2002년)’ 등은 두 사람의 전문 분야를 접목시켰다. 부부칼럼니스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혼은 안 미친 짓이다(2004년)’ 등 함께 쓴 책도 3권이다. 김씨는 “디지털 시대에 조직에 기대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미지와 가치를 바탕으로 한 ‘1인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차근차근 달성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한 사람이 열 걸음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에게 투자하면서 같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자신에 대한 투자에도 시기가 중요한 만큼 20∼30대가 최적기”라면서 “결혼은 자기발전의 걸림돌이나 사회활동의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동기부여이며 상호 발전을 위한 기회”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물론 투자에는 책임과 노력이 따라야 하고 때로는 기대 이하의 결과도 감수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모든 투자가 다 그렇고, 그것이 또 투자의 매력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 것보다 자기계발로 3000만원짜리 몸값을 1억원짜리로 만들어 낸다면 이보다 현명한 투자는 없을 것”이라면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에 자기 자신만큼 좋은 대상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자기투자 올인 ‘自테크’ 바람

    자기투자 올인 ‘自테크’ 바람

    젊은 직장인 사이에 ‘10년 안에 10억 만들기’가 상징하는 재(財)테크 열풍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한창 젊을 때부터 열심히 모으고, 효과적으로 투자해 앞날을 준비하자는 당찬 미래설계였다. 하지만 이제 그 투자의 대상이 바뀌고 있다. 자신에 대한 투자로 부가가치와 자기 만족을 동시에 높인다는 ‘자(自)테크’족이 늘고 있는 것.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1년치 연봉을 몽땅 투자해 해외 연수를 떠나고, 주경야독하며 자격증을 준비하는 등 유형도 다양하다. 물론 포기해야 하는 시간과 돈 등 기회비용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들은 “갈수록 험난해지는 세상, 몇년 동안의 과감한 투자로 원하는 일을 찾고 ‘몸값’도 올리는 것이 재테크보다 더 가치있고 확실한 투자”라고 입을 모은다. ●“1억원 이상 기회비용 기꺼이 감수” 맹계원(31)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달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에 다닌다. 연세대와 포항공대 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서 3년 동안 연구원으로 일한 그의 지난해 연봉은 성과급을 합해 6200만원 정도. 맹씨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자리를 미련없이 포기한 것이다. 그는 “이공계통의 학문적 배경과 연구직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큰 틀에서 기업 전체를 조망하고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변신의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진학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2년 전 결혼한 그가 수입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한 학기 600만원이 넘는 학비를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석사학위가 없는 것도 아닌데 또다시 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는 데 대한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은 지금 투자해야 얻어지는 것”이라면서 “정말 하고 싶고 또 전망있는 일을 위해 과감히 투자했고 후회없이 공부하고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지난 2월 KAIST에서 테크노MBA를 마치고 삼성코닝정밀유리에 대리급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유종현(32)씨도 비슷한 케이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3년 동안 삼성코닝 해외영업팀에서 일했던 그는 2003년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유씨는 “아무리 하고 싶어도 시기를 놓치면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투자했다.”면서 “2년 동안 1억원 이상의 기회비용이 들었지만 나 자신을 보다 가치있게 만든 ‘경제적인 투자’였다.”고 자부했다. ●전문성 강화·인생의 전환점도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수출팀에서 4년 동안 일했던 윤희선(가명·35·여)씨는 거의 5년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해 동시통역사로 직업을 바꿨다.2000년 회사를 그만둘 때 “남들은 못가서 안달인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는 만류도 많았지만 “평생직장 개념이 이미 사라진 마당에 더 늦기 전에 좀 더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다.”며 주저없이 사표를 던졌다.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올해부터 GM대우에서 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윤씨는 3년 동안의 진학 준비와 2년 동안의 학비로 이전에 직장생활을 하며 저축한 돈 모두를 투자했다. 그는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승진하고 연봉도 올랐을 테니 지금 수입이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그저 돈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유롭고 전문적이며 평생 할 수 있는 ‘내 일’을 얻기 위해 집중적으로 투자한 돈과 시간, 에너지는 결코 아깝지 않은 ‘남는 장사’”라고 강조했다. 경기 성남 S고교 영어교사인 임혜진(가명·29·여)씨는 2003년 한해동안 1년치 봉급을 몽땅 털어 어학연수를 다녀왔다.3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면서 실전 영어의 중요성을 절감하기도 했지만 알게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것도 불안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1년을 외지에, 그것도 자비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한다. 캐나다의 대학 부설 언어교육원에서 영어를 공부하면서 틈날 때마다 여행을 하며 대학시절에도 누리지 못한 자유를 만끽했다. 연수기간 동안의 다양한 경험과 회화실력으로 가르치는 일에도 자신감이 붙었고 삶의 활력도 얻었다. ●“재테크보다 더 확실한 투자” 자기계발 열풍은 더욱 경쟁이 치열해가는 사회환경의 변화 및 자아실현을 강조하는 가치관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기대감이 교차한 결과이다.‘공부하는 직장인’이라는 뜻의 ‘샐러던트’가 늘어나는 것도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 욕구가 더욱 뚜렷해지는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윤창한 연세대 경영대학원 사무부장은 “최근 2∼3년 사이 학생들 연령이 5∼7세 낮아져 지금은 3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라면서 “그만큼 일찍부터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자기 투자에 ‘올인’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박희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의 모습으로는 당장 내일도 보장받기 힘들 만큼 지식과 사회 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면서 “격화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계발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조건 일터에서 성실히 일한다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젊은시절 투자로 주변 여건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확실한 무기를 갖추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수익률 높은 ‘고급 인력’이 되는 것이 재테크보다 확실하고 안정적인 노후 보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효용 박지윤기자 utility@seoul.co.kr ■자테크의 좋은 점 5가지 ▲전문성을 강화해 ‘몸값’을 높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투자다. ▲몇년 동안의 투자로 평생 전문직으로 탈바꿈해 ‘고수익’을 얻는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비로소 찾아 자아를 실현한다. ▲인생의 전환점이자 훗날까지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믿을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인 불확실성의 시대에 자신감으로 무장한다.
  • “산불진화 하늘과 지상공조 중요 백두대간등 산림자원 조기진화 대책 시급”

    “산불진화 하늘과 지상공조 중요 백두대간등 산림자원 조기진화 대책 시급”

    “산불은 공중 진화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지만 지상진화 시스템과의 공조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번 양양·고성 산불은 이런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계기가 됐습니다.” 산불 진화에 대한 대형 헬기의 역할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산림청의 산불 진화 헬기를 총괄지휘하고 있는 김용하 산림항공관리소장은 이처럼 ‘하늘과 지상의 공조’를 거듭 강조했다. 지난 5일과 6일 산불 진화 상황은 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양양 산불이 설악산으로 올라가던 6일 진화 헬기가 공중에서 물을 뿌리자 지상 진화대가 신속하게 잔불을 정리해 2시간 만에 완전히 꺼졌다. 반면 5일은 이같은 공조가 뒷받침되지 않아 고생은 고생대로 했으면서도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헬기가 산불을 모두 끄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큰 불을 잡아 주는 역할이 주 임무”라면서 “현재 우리는 공중 진화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계절적 재해임에도 투자가 미흡한 데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항공법에는 8시간 비행을 금지하고 있고, 풍속이 초당 15m를 넘을 때는 비행이 불가능한데 (우리는)이런 악조건을 감내하고 있다. 정비 인력도 빠듯해 교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인력이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산림항공관리소는 현재 전국에 7개 지소를 두고 있다. 김 소장은 그러나 이런 체제로는 경남 함양·산청, 충남 예산·서산, 강원 춘성·화천·고성 등에서 불이 났을 때 “30분 이내에 진화가 불가능하다.”고 분석한다. 지리산과 백두대간 등 중요한 산림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산불 조기진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올해는 남과 북이 산불진화에 공동 대응하는 첫 물꼬를 텄다. 지난 8일 북한의 협조로 산림청 헬기가 사상 처음으로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에 투입돼 산불을 진화했던 것. 김 소장은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 군·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훈련을 해왔지만 실전 투입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남북한뿐 아니라 유엔사도 포함된 산불 진화 대책을 정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동해안 지역은 구조적으로 산불 발생시 대형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예방에 집중하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산불 진화에 대해 “조종사와 정비사, 공중 진화대원 등 모든 이들이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한 결과”라며 현장 인력들에게 공을 돌리는 한편 “특히 30대 이상 헬기가 동원됐지만 아무런 사고가 없었다는 점이 다행이자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동남아로 사업 확장 글로벌 홈쇼핑 도약” GS홈쇼핑 강말길 부회장

    LG홈쇼핑은 사명을 GS홈쇼핑으로 변경하고 ‘글로벌 홈쇼핑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GS홈쇼핑 대표이사 강말길 부회장은 11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사명변경과 CI교체작업은 단순히 이름 바꾸기 차원이 아니다.”면서 “회사 혁신의 계기로 삼아 세계 1등 홈쇼핑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국내 대표적인 유통전문 경영인인 강 부회장은 “현재 대기업의 상품 판매는 오프라인과의 충돌, 방송비용 등을 감안하면 별 이익이 없다.”면서 “활로를 찾지 못하는 중소기업의 제품이 장벽없이 홈쇼핑에 쉽게 입점할 수 있도록 절차를 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초창기 홈쇼핑업계의 성장률이 30∼50%로 초고속 성장했지만 주고객층인 30대 중상류층 주부들은 홈쇼핑 시장에서 이탈해 나갔다.”면서 “앞으로 ‘품질경영’에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강 부회장은 특히 “지난 1일 중국 충칭시에서 방송을 시작한 충칭 GS쇼핑에 3년간 1500만달러를 투자하고 중국내 다른 도시나 동남아시아 등지로 홈쇼핑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죽도록 노력했는데…

    사업 부진과 주식투자 손실을 비관한 30대 남자가 두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경북 포항에 사는 유모(35)씨는 지난달 29일 오전 11씨쯤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봉화터널 인근 30m 높이의 낭떠러지에서 승용차를 몰고 떨어져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승용차는 낭떠러지 중간에 자리잡은 커다란 나무에 걸렸다. 차량에서 빠져 나온 유씨는 인근 야산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한 수면제 90알을 먹고 두 번째 자살을 기도했다. 이번에는 경찰이 신음중인 유씨를 발견,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건졌다. 낭떠러지에 차량이 걸려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행인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인근을 수색하다 유씨를 발견한 것. 응급치료를 받고 살아난 유씨는 주식투자로 2000만원을 날리고 사업도 부진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에 출동한 한 경찰관은 “낭떠러지에서 가속페달을 더 밟았거나 신고가 늦었다면 유씨는 목숨을 건지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인명은 재천이란 말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성공시대] 한국형 쌀국수 전문점

    [성공시대] 한국형 쌀국수 전문점

    웰빙풍을 타고 외식 식단에 추가된 메뉴가 바로 베트남 쌀국수다. 월남인의 아침식사인 쌀국수는 시원한 국물에다 칼로리가 낮아 20∼30대 여성들이 가까이 한다. 하지만 특유의 향신료 탓에 꺼리는 사람들도 다수다. 이같은 결점을 털어낸 쌀국수 가게가 등장했다.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호아빈’ 박규성(40) 사장은 아내 정선경(34)씨가 개발한 ‘한국형’ 베트남 쌀국수로 점포 수를 소리없이 늘리고 있다. 2년제 IT전문학교에서 15년 동안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던 박씨는 사업에서 인생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여러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린 끝에 ‘좋아하는 것을 팔자.’는 생각으로 즐겨 먹던 베트남 쌀국수를 장사 아이템으로 정했다.2001년 당시에는 쌀국수 프랜차이즈점이 많지 않아 시장 진입에 호기라는 점도 작용했다. ●현지서 조리법 익힌뒤 ‘한국화’ 에 매달려 본격적인 사업을 하려면 먼저 쌀국수의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했다. 수차례에 걸쳐 아내와 함께 베트남과 미국 등으로 향했다. 호찌민시의 쌀국수점을 모두 다녔을 정도로 쌀국수에 대해 ‘일가견’을 쌓은 뒤 현지 사람들을 통해 배운 육수제조법을 토대로 우리 입맛에 맞는 육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아내 정씨가 동서, 처제 등과 함께 육수 개발팀을 꾸렸다.1년여에 걸쳐 거의 매일 육수 개발에 매달렸다. 이웃 주민들에게는 강한 향신료가 풍기는 이상한 냄새로 수차례 항의를 받기도 했다. 자신감이 어느 정도 생기자 지인들을 불러 시식회를 가졌고 마침내 ‘시원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맛에 도달했다. 경상북도 상주 출신인 박 사장은 “시골 출신인 내 입맛에 맞으면 일반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호아빈의 쌀국수는 정통 베트남 쌀국수의 맛에서는 다소 비껴간다. 베트남 쌀국수에 들어가는 정향, 오각과 팔각 등에 매콤한 맛을 더하기 위해 산초와 계피 등을 추가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외에도 다른 고기를 넣어 특유의 국물을 우려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고추기름과 청양고추도 첨가했다. ●담백하고 칼로리 낮아 고객 발길 줄이어 박 사장은 “시원하며 깔끔하고 느끼하지 않은 맛을 추구했다.”면서 “정통 베트남 쌀국수에서는 다소 벗어났지만 농촌으로 시집온 베트남 출신 주부들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게를 찾는 등 베트남 사람들의 입맛에도 적합하다.”고 말했다. 우리 입맛에 맞는 육수가 개발되자 박씨 부부는 2003년 10월 일산 신도시에 1호점을 냈다. 테이블이 12개에 불과했지만 3개월 만에 월 매출액 4000만원, 순이익 1000만원을 넘겼다. 자신감을 얻은 박씨는 지난해 2월 서소문 오피스타운의 분식점 자리에 2호점을 열었다. 아내 정씨는 “기존의 베트남 쌀국수 가게가 마니아층을 위한 음식이었다면 호아빈 쌀국수는 대중을 위한 음식”이라면서 “여기에 소점포, 저가 전략으로 점주들과 고객들에게 쉽게 파고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90년대 말부터 생겨난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들은 가게 규모가 40∼50평 이상으로 대형 매장이 주류였다. 국수 한 그릇의 가격도 7000∼1만원으로 다소 높은 편이었다. 박 사장은 육수의 원액을 개발해 원가를 낮추고 10∼30% 저렴한 메뉴판을 내놓았다.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몰리고 가맹점 수도 다른 업체에 비해 빠르게 증가했다. 오는 8일 개점하는 천안점까지 합치면 호아빈의 전체 매장 수는 30개로 국내 쌀국수 체인점 가운데 가장 많다. ●소점포·저가 전략 적중… 1년여만에 가맹점 30곳 시내 직장인들이 주고객인 직영 2호 시청점은 월 매출액이 7000만원에 달한다. 월 순이익은 2000만원, 하루 400∼500명이 몰린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는 차례를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다. 낮 12시∼12시50분, 오후 6∼7시에 찾으면 어김없이 줄을 서야 한다. 시청점을 관리하는 아내 정씨는 “겨울철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추워해서 매출액이 다소 떨어지며 따뜻한 날에 사람들이 더 몰린다.”면서 “전체 매출액 가운데 쌀국수와 베트남 음식의 비율은 6대4 정도”라고 밝혔다. 시청점의 투자비는 인테리어와 시설 등에 1억원, 보증·권리금으로 2억여원 등 모두 3억여원이 들었다. 하루 매출액은 월∼토요일 250만원, 일요일에는 160만∼170만원으로 다소 떨어진다. 박씨 부부는 “국내 최초로 유통기간이 하루뿐인 생면을 이용한 쌀국수를 내놓았다.”면서 “맛과 품질에서 어느정도 인정받으면 내년쯤에는 일본과 호주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글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리뉴얼 마친 신세계백화점 미아점

    리뉴얼 마친 신세계백화점 미아점

    ‘작지만 강해요.’ 신세계백화점 서울 미아점이 지난달 18일 리뉴얼 공사를 끝내고 다시 태어났다.‘길음 뉴타운’ 지역을 중심으로 새 아파트 단지에 속속 입주를 시작하는 등 서울 동북부 상권이 급속히 부각되고 있는데 힘입어, 아날로그 매장을 디지털 매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상품 구색을 다양화하는 등 ‘강소(强小) 백화점’으로 새단장했다. ●가전제품·가구·의류등 구색 대폭 보강 장재영 미아점장은 “올 4월에만 인근 아파트 단지에 4000여가구가 새로 입주하는 등 앞으로 상권내 새 아파트 단지의 입주가 러시를 이룰 것으로 예상돼 상품 구색을 이들 신규 입주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개편했다.”며 “다른 상권에 비해 30∼40대가 상대적으로 많은 점을 고려해 작지만 강한 경쟁력을 갖춘 실속형 백화점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대대적으로 강화된 가전제품 매장. 이전까지 장소가 좁아 흉내내기에만 급급했던 가전제품 매장을 5층에서 6층으로 옮겨 혼수 가전부터 컴퓨터, 소형 기기 등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가전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브랜드도 삼성전자와 LG전자, 소니, 필립스 등 국내외 대표적 가전 업체들이 대부분 입점해 있을 정도로 확대됐다. TV 제품을 쇼핑하기 위해 들렀다는 최형일(58·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씨는 “이전에는 가전제품 매장이 좁아 전시된 제품의 종류가 많지 않은 등 백화점으로는 조금 부족한 점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 리뉴얼 공사로 가전제품 매장이 크게 넓어지고 상품 구색을 골고루 갖춰 쇼핑하기가 한결 좋아졌다.”고 털어놨다. 가구와 홈패션 등 생활용품 브랜드를 대폭 늘려 ‘새집 꾸미기’ 수요도 집중 공략하고 있다.‘장인가구’와 ‘에이스‘,‘시몬스 침대’를 비롯해 소파 전문업체인 다우닝 등의 브랜드를 선보였다. 최근 새로 건설되는 아파트들이 붙박이 형식의 시스템 가구(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구성이 가능한 가구)를 선호하는 까닭에 시스템 가구 브랜드인 ‘한샘’을 입점시켰고, 앤티크풍의 고품격 가구 브랜드인 ‘렉스 디자인’도 내놓아 가구용품 매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다. 홈패션 브랜드도 많이 보강됐다.‘키스앤헉’‘마리끌레르’‘홈타임’ 등의 브랜드가 선보인 데 이어 고품격 침구 브랜드인 ‘아르페지오’를 내놓아 보다 다양한 홈패션 스타일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신부현(53·서울시 강북구 미아동)씨는 “미아점이 강북 백화점 가운데 터줏대감이지만, 상품의 구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시내 백화점을 주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분위기가 깔끔해지고 상품 종류가 다양화돼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눈에 띄게 화사·깔끔해졌어요” 이 지역의 소비자층이 30∼40대가 상대적으로 많은 점을 감안해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패션의류 브랜드를 세분화했다.30대 전후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캐주얼 라이프 스타일인 ‘헤지스’와 자연 친화적인 소재를 사용해 편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강조하는 ‘빈폴’ 매장을 새롭게 보강했다. 여기에 품위와 감성을 추구하는 유럽풍의 도회적 감각 브랜드인 ‘카운테스 마라’와 ‘피에르 가르뎅 캐주얼’ 등도 내놓아 남성 캐주얼 브랜드의 품격을 높였다. 집과 가까워 자주 찾는다는 이정신(48·여·서울시 성북구 동선동)씨는 “오래돼 칙칙하게 느껴졌던 백화점의 분위기가 화사하고 밝아진 게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며 “하지만 상품의 구성이 너무 젊은 층 위주로 전개돼 있어 우아한 맛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라고 지적했다. ●“젊은 층 위주 상품구성 옥에 티” 유아·아동 브랜드에도 ‘공’을 들였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7∼13살 아이들을 위한 여자아이 전문 브랜드인 ‘리틀 브라이드’를 들여왔고, 로봇 캐릭터 시리즈 기본을 디자인해 친숙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R로봇’도 선보였다. 어린이들의 실용성과 활동성을 기본으로 한 ‘캔키즈’와 6개월∼6살 아이들을 위한 유아의류 전문 브랜드인 ‘레드기어’도 내놓았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쇼핑 정보·주변 명소 ‘컨시어지 데스크’에 문의하세요 미아점의 품격은 3층에 마련된 ‘컨시어지 데스크’에서 나온다.‘컨시어지’는 로마시대 ‘성문지기’에서 나온 말로 소비자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일종의 관문 서비스를 말한다. 컨시어지 서비스는 지금까지 특급 호텔이나 강남 지역의 일부 백화점에서만 진행되던 것으로, 소비자가 문의하는 제반 사항에 대해 포괄적으로 심도 있게 응대해 문제를 해결해 준다. 앞으로는 소비자들의 쇼핑환경 전반뿐 아니라, 점포 주변의 문화까지 누릴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컨시어지 서비스는 ▲1대1 소비자 안내 ▲매장 안내 ▲행사 안내 ▲지리정보 제공 등이 주요 기능이다.1대1 소비자 안내는 VIP는 물론 노인·장애인·외국인 소비자 등 도움이 필요한 모든 소비자들의 요구를 1대1로 서비스한다. 매장 안내는 점포에 입점한 브랜드의 종류와 특징을 문의 소비자에게 안내할 뿐 아니라 명절이나 기념일 등 다양한 선물시즌에 선물 상담자의 역할을 해낸다. 행사 안내는 전단 행사나 신세계 다른 점포는 물론 롯데·현대백화점 등 동업계의 행사도 비교, 안내해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쇼핑 정보를 제공한다. 지리정보 제공은 음식점·미용실·레저공간 등 점포 주변의 명소에 대한 안내와 연계, 교통편 등 영업과 관련이 없는 소비자 안내 기능을 맡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독서· 여행하고… 사진도 찍고…”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40년 금융 외길을 걸으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는 배운 만큼 나누며 살겠습니다.” 오는 28일 주주총회에서 지난 8년간의 은행장 생활을 마감하는 김승유 하나은행장.22일 저녁 행장으로서의 마지막 기자 간담회에서 김 행장은 “충청은행을 인수해 제2의 도약을 맞았을 때와 SK사태를 잘 넘겼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저간의 소회를 밝혔다. 김 행장은 1971년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에 입사,30대에 부사장으로 발탁돼 10여년간 임원을 맡은 뒤 91년 하나은행 전무로 은행 경영을 시작했다.97년 행장이 된 뒤 98년 충청은행,99년 보람은행,2002년 서울은행 인수 등 3개 은행과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로써 역대 시중은행장 중 3개 은행을 잇따라 인수합병한 유일한 행장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또 은행 설립 이후 34년 연속 흑자배당을 실시한 것도 주주중심의 투명경영을 실천한 김 행장의 노력이라는 평가다. 김 행장은 “은행 합병때마다 인력 구조조정을 하면서 직원들을 만나 설득하느라 몇달간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면서 “합병은행으로 입지를 단단히 굳힐 수 있었던 것은 실력으로 승부한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합병 성공요인을 직원들의 공으로 돌렸다. 김 행장은 “그동안 못다한 독서·여행도 하고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겠다.”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을 메모로 남기고 싶고, 특강도 하는 등 금융 발전과 후배 금융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인의 추천으로 오는 5월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총괄할 예정이다. 그는 후배 금융인들을 향해 “글로벌 금융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제를 보는 안목과 국제경제에 대한 식견, 화폐금융 리스크 등 금융 기초가 튼튼해야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행장은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의장을 맡아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올 하반기 설립될 지주회사 회장으로 취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마니아]경품 타내기 의기투합한 모임 ‘프리죤’

    [마니아]경품 타내기 의기투합한 모임 ‘프리죤’

    “공짜 싫어하는 분 있나요?” 셀 수도 없이 많은 경품이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날마다 쏟아지고 있다. 사행심을 조장하는 풍조라는 비판도 함께 쏟아진다. 하지만 경제난이 심각할수록 홍보엔 경품 내걸기를 뛰어넘을 만한 게 없으며, 소비자들 역시 이왕 필요한 것을 잘만 하면 공짜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영 무관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한민국 대표 공짜 동아리를 자처하는 모임이 있다. 그러나 사회봉사 활동도 활발해 요즘같이 인색해지기만 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공짜로 벌어 공짜로 이웃을 돕는 사람들이니 무엇보다 ‘사회 환원’ 하나만큼은 확실히 책임을 지는 셈이다. 다름 아닌 프리죤(Free-zone)이다. 타이틀도 프로들 모임에 걸맞게 ‘왕창 싹쓸이’라고 내걸었다. ●공짜, 양잿물도 마신다? 지난 1월 창립 다섯 돌을 맞은 ‘프리죤’ 회원은 현재 1만 5000여명이다.20∼30대가 주를 이루지만 살림살이에 애쓰는 주부가 많은 점이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경품 행사에 대한 정보는 이들의 손 안에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동호회 대표인 황홍식(33·회사원·서울 광진구 자양동)씨는 “아무래도 여럿이 모이다 보니 정보가 많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경품이 걸린 행사에는 때때로 작전도 필요하다고 살짝 알려줬다. 응모한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를 잘 따져보고 마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회원들이 일제히 참가하는 ‘벌떼 작전’은 성공 가능성을 훨씬 높인다. 마라톤의 페이스 메이커처럼 서로 힌트를 주고받으며 돕기도 하고, 엉뚱한 힌트를 내보내는 ‘방해작전’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한다. 정기 모임이 있을 때면 즉석 복권을 받아 한 사람에게 몰아주기로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기도 한다. ●호박이 덩굴째 들어와요 황 회장은 “이렇게 해서 가장 큰 경품을 탄 사례로는 2002년 어느 회원이 30평대 아파트를 낚은 것을 비롯해 자동차 등 수두룩하다.”고 웃었다. 그는 “그러나 흔히 연상할 수 있듯이 아무리 같은 회원이라고 해도 일일이 밝히지는 않아 누가 무엇을 받았는지 알기는 어렵고 굳이 물어보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보통 한달에 3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리면 고수로 불린다. 부산에서 사는 40대 회원 부부를 포함해 몇몇은 한해에 3000만원 이상 거뜬히 건진다고 귀띔했다. 주변에서 색안경을 쓰고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반면엔 그 방면에 대해 공부를 하는 셈이니 당당한 실력파라 할 만하다는 게 회원들의 얘기다. 황 회장은 “가벼운 글 쓰기가 취미인데, 직장의 한 동료가 값비싼 경품을 타는 것을 보고 1999년 어느 날 ‘펜팔 테크닉 이벤트’라는 행사에 응모한 게 경품 마니아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듬해인 2000년 1월 회원 10여명을 모아 동아리를 만들었다. ●웬만한 건 공짜 노리기 회원 가운데 고수로 손꼽히는 70여명은 거의 일주일에 3∼4개씩 경품을 택배로 받는 일이 기본적이다. 최근에 가입한 새내기 한명은 며칠 사이에 노트북을 비롯해 컬러 휴대폰, 순금 목걸이, 배낭, 티셔츠 등에 당첨됐다. 노트북을 빼고는 모두 벼룩시장에 올렸고, 순금 목걸이를 공짜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선물했다. 한달에 한 차례 갖는 모임에는 30여명이 모인다. 영화 등 문화·공연 티켓을 경품으로 받은 회원이 공짜로 동료들에게 나눠주거나, 나아가 다함께 관람하면서 우의를 다진다. 고수들에게는 경품을 타낼 수 있다, 없다 ‘냄새’를 맡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주제를 보고 게임이면 게임, 글쓰기면 글쓰기, 방송 프로그램 등 여러 부문에 따라 실력을 발휘하는 주특기도 따로 있다. 그러나 투자하는 시간은 하루 20∼30분 정도면 충분하단다. 일부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무조건 공짜를 탐내는 것은 아니라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이 배어 있다. ●어르신들 말벗 돼드리기 “아침 10시 복지관에 왔는데 이른 시각이어서인지 아무도 안보여 먼저 2층에 올라갔습니다. 목욕 끝나신 분 옷갈아 입히고 식사 도와 드리면서 오랜만에 가슴이 뿌듯했어요.” 아이디 ‘사라제로’는 지난 6일 40회 봉사활동을 다녀온 소감을 이렇게 털어놨다.“디지털카메라, 휴대전화, 김치냉장고 등 경품시장에 나오는 생활필수품은 절대 돈을 주고 사들이는 일이 없다.”는 프로 아니랄까봐 아이디 자체에 그런 이미지를 새겨놓았다. 프리죤은 매월 첫째주 일요일이면 무조건 노인복지관을 찾아간다. 사회봉사가 의무화돼 있는 것이다. 이날도 치매를 앓는 노인들을 위해 식사 마련, 청소 등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2001년부터 ‘서울역 헌혈의 집’을 찾아가 헌혈한 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홀트복지회로 옮겨 봉사를 했는데,2003년 노인복지관으로 그 대상을 바꿨다. 좀 더 손길을 아쉬워하는 어려운 이웃이 분명 주변에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수소문한 뒤부터다. ●“경품, 사랑의 디딤돌” 홍 회장은 “봉사활동을 하리라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은, 먼 얘기지만 고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별난 학생으로 꼽혔는데 졸업하기 직전에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터에 성탄절 때 거리 캐럴 공연으로 10여만원을 모아 소년·소녀가장 돕기에 썼던 게 그나마 좋은 일을 해보게 된 인연”이라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프리죤 회원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도 봉사활동을 하는 일요일 하루 2∼3시간이다. 거꾸로 가장 힘든 때도 역시 봉사활동 시간인데, 참여자가 적으면 힘이 빠진다고 한다. 많게는 20여명이 참여해 정모(정기 모임) 때와 엇비슷한 숫자가 된다.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봉천1동 동명노인복지센터에서 실시한 40회 사회봉사 활동에는 7명이 동참했다. 이날 모임에도 참여자가 적어 아쉬움이 적잖았다고 회원들은 고개를 떨군다. 강홍구(36) 봉사부장은 “뜯어보면 경품 잘 타는 비결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욕심만 챙기지 않고 사정이 좋지 않은 이웃에게 베풀수록 더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다 황 회장은 지난해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인맥’이라는 책자를 펴냈다.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공간은 잘못 쓰면 독약이 되지만 잘만 활용하면 본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아주 좋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게 요지다. 다양한 업종끼리 교류가 가능해져 특정 부문 전문화에 성공하면 동호회 활동 경력이 취업난 뚫기에도 직효가 분명 나타난다는 소신을 담았다. 최근에는 동호회 운영 노하우에 대한 글로 제2탄이라 할 글들을 엮어 탈고 했다. 다음달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그는 “각 지역을 돌아가며 갖는 정모 때에도 회원들이 타낸 경품을 내걸고 노래자랑 등 장기 경연대회를 여는 등 공짜를 매개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소개했다. 과연 프리죤이 공짜 마니아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공짜를 즐기는 사람들이 공짜를 많이 받기 위해 모인 이 동아리로서는 사회활동이라는 뜻깊은 일에 무게가 실렸다. 각박해져만 가는 사회 분위기에 그나마 위안을 안겨주는 셈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고수들이 말하는 당첨비법 마냥 공짜를 바라지 않고 노력해서 경품을 타낸다는 뜻으로 아이디를 ‘예술도둑’으로 붙인 프리죤 황 회장은 당첨 노하우를 이렇게 들려준다. (1)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행사들은 마니아들을 악용하려는 업체들 때문에 이따금 ‘배달 사고’도 일어나고 엄청난 숫자가 달려들어 확률도 낮다. 대신 길거리 이벤트나 장기자랑에는 무조건 참여하는 게 좋다.(2)글을 쓸 때는 튀는 제목을 달아라.(3)무슨 응모든지 노력한 흔적이 잘 보이도록 한다.(4)지어낸 얘기더라도 진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상상력을 발휘해 보여준다. 고수들은 첫째, 매일매일 몇개의 상품을 지급하는 경품 행사는 자정 직후 응모할 경우 확률이 높다고 조언한다. 대개 시간대별로 상품을 지급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럴 경우 하루가 시작돼 응모자가 적고, 당첨자가 정해지지 않은 경품이 많이 남은 0시 직후를 공략하면 좋다. 둘째로 이벤트 기간이 짧은 것, 행사 기간에 비해 당첨 인원이 많은 것은 적극적으로 응모해야 한다. 특히 까다로운 문제를 내거나 유별난 조건을 내거는 이벤트의 경우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두손을 들어버리기 때문에 당첨 확률은 더 높아지는 것이다. 평범한 진리에 충실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자기 생각을 글로 띄우거나, 자기 사진을 올려서 추천을 많이 받으면 경품을 받는 이벤트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선을 다한 만큼 효과를 거두려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이벤트를 가려내는 게 우선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녹색공간] 나무를 심은 사람/조연환 산림청장

    우수·경칩을 지나 얼었던 땅이 풀리면 나무를 심는 계절이 시작된다. 나무는 식목일에만 심는 것이 아니다. 구덩이를 팔 수 있다면 일찍 심는 것이 좋다. 어디를 둘러봐도 나무 한 그루 없는 붉은 산이었던 학창 시절, 봄이 되면 해마다 산으로 가서 나무를 심고 소나무 잎을 갉아 먹는 송충이를 일일이 잡아내고는 목청껏 노래부르면서 산을 내려오던 기억이 새롭다.‘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산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메아리가 살게 시리 나무를 심자.’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서는 우리나라를 일제 36년간의 산림자원 수탈과 한국전쟁 등으로 완전히 황폐화된 땅에 나무를 심고 가꾸어 국토의 64%를 푸르게 만든 산림녹화 성공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이제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민둥산은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 너무 우거져서 산에 들어가기도 힘들다고 불평할 정도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산림청에서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알아본 결과 40∼50대 이상은 나무를 심어 산이 푸르게 됐다고 응답하는 반면 30대 이하 젊은 층은 산에 나무가 저절로 생겨나서 저절로 자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과외에 시달리고 점수 한 점 더 얻기에 급급해 산에 나무를 심어 본 일이 없는 젊은이들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무를 심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 그 많은 산에 그 많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수고를 알 수 있겠는가. 나무를 심는 계절이 오니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생각난다. 이 책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아무것도 살지 않는 황무지에다 매일 100알의 도토리를 심었다.10개 중 2개 정도가 싹이 나고 그나마도 들짐승에게 뜯어 먹히지만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도토리를 심었다.55세인 부피에는 “만일 30년 후에도 하느님이 내 생명을 허락하신다면 계속해서 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89세까지 나무를 심다가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동안 나무들이 자라서 황무지는 울창한 숲이 되고 들에는 꽃이 피고 계곡엔 물이 흘렀다. 떠났던 사람들도 돌아와 그곳은 전쟁을 모르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이 됐다. 황무지를 낙원으로 만드는 일은 바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부피에처럼 한 평생 나무를 심고 가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다. 대표적인 분이 임종국씨다. 그는 1956년부터 전라남도 장성의 축령산 자락에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나무나 심고 있다고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는 20여년간 150만평의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더 이상 투자할 여력이 없자 자식같이 키우던 나무들을 남에게 넘기고 72세로 타계하기까지 오직 나무만을 바라보며 사셨다. 지금도 전남 장성의 축령산 자락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그분의 뜻을 기리는 듯 하늘을 향해 올곧게 잘 자라고 있다. 산림청에서는 임씨를 ‘숲의 명예전당’에 모셔 그 뜻을 기리고 그가 조림한 산을 매입해 국유림으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산림녹화 성공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헌신적으로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더 이상 나무를 심을 필요가 없어서 식목일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나무는 심지 않고 놀러 가는 날이 됐기 때문에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사람들로서는 허탈감과 함께 서운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더라도 기념일로는 남게 되어 이제는 노는 날이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식목일은 나무 심는 날로 지켜질 것이다. 한 그루 나무를 심는 것은 생명을 심는 것이며 미래를 심는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 사용하는 나무의 양은 잣나무 500그루 분량이나 된다. 태어나면 누구나 500그루의 나무는 심어야 비로소 제 몫을 다 하는 것이다. 오늘 지구가 멸망한다 할지라도 한 그루 나무를 심겠다는 선인(先人)의 말이 실감나는 계절이 됐다. 올 봄에는 한 그루 나무를 심자. 이 땅의 엘제아르 부피에가 돼 보자. 그리고 나무를 심고 가꾸는 분들의 수고와 고마움을 생각해 보자. 조연환 산림청장
  • 수원 지역 첫 대안初校 ‘칠보산 자유학교’

    수원 지역 첫 대안初校 ‘칠보산 자유학교’

    경기도 수원 지역의 첫 대안초등학교인 칠보산 자유학교(freechal.com/suwondaean)가 지난 5일 문을 열었다. 맞벌이를 하는 중산층 부부들이 공동 출자해 만든 이 학교는 교육과 탁아를 함께하는 ‘공동 육아’의 이념에서 출발했다. 집같이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자연환경과 이웃들의 삶을 체험하며 세상을 배우고 있다. 아직은 전교생이 12명뿐인 작은 학교이지만 서수원 지역의 작은 교육 공동체를 꿈꾸는 칠보산 자유학교의 수업 현장을 찾았다. ■ 자유롭고 즐겁게 ‘더불어 삶’ 배운다 지난 9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LG빌리지 상가 지역에 터를 잡은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를 찾았다. 상가 건물 2층에 자리한 학교는 겉으로는 평범한 사무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학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우리집’ 같다는 느낌이 든다.40여평 규모에 방 3개와 거실, 부엌, 화장실을 갖춘 일반 아파트와 같은 구조였다. 안방은 4·5학년이 공부하는 교실로 ‘형님반’이라고 부른다.2학년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중간방은 ‘생각반’이다.1학년 ‘나무반’ 어린이들은 중간방 옆에 있는 작은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각 반 이름은 모두 아이들이 스스로 정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말과 글’ 수업을 마친 어린이들은 점심을 먹으려고 거실로 모였다. 칠보산 자유학교의 거실은 단체 수업과 놀이 활동, 그리고 식사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오늘의 메뉴는 자장밥과 미역국. 식단은 학부모가 직접 짠다. 학부모들이 배식 당번을 정해 매일 한 명씩 학교를 방문해 밥을 짓고 어린이들의 식사 지도를 맡는다. 밑반찬은 각자 집에서 마련해 학교로 가져온다. 점심 식사를 마친 아이들에게는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남자 어린이 7명은 학교 앞 공터로 몰려간다. 학교가 임대한 공터 흙 바닥에서 아이들은 뒹굴듯 축구 삼매경에 빠진다. 여자 어린이 5명은 교실에 남아 지난 ‘살림수업’시간에 배운 콩나물 종이 접기에 여념이 없다. 주먹만한 시루에 종이 콩나물을 가득 접어 넣어야 숙제를 마치는 것이다. 오후 1시30분.‘마을에서 배우기’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풍물패 샘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별님 강사와 함께 전래동요를 배운다. 거실에 모인 어린이들은 한 강사의 장구 장단에 맞춰 강강술래, 문지기놀이, 손치기, 발치기 등 우리 동요를 배운다. 노래를 익힌 어린이들은 한 강사와 함께 학교 앞 공터에 몰려나가 둥글게 원을 만들고 강강술래와 문지기놀이를 즐긴다. 정규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30분부터는 청소 시간이다. 각자 교실과 거실을 쓸고 닦은 뒤에는 집에 가도 되고 학교에 남아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놀다 가도 된다. 오후 4시30분쯤이면 집에서 보내온 과일과 떡 등 푸짐한 간식이 준비되기 때문에 대부분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간다. 가장 어린이다운 모습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도록 지도하는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의 재학생들은 한결같이 학교가 좋다고 말한다. 수원의 한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다 담임 교사의 불공평한 체벌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4학년 송은서(10·가명)어린이는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뒤 집에서 생활하다 올해부터 이 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송 어린이는 “전 학교에서 선생님이 서류용 집게를 입에 물려 벌을 세우거나 때리는 일이 많아 너무 속상했다.”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이 학교가 좋다.”며 활짝 웃는다. 수원 상촌초등학교에서 4학년을 마치고 5학년은 칠보산 자유학교에서 시작한 최은솔(11)양은 부모님의 권유로 학교를 옮겼다. 최양은 “전 학교를 그만둘 때는 섭섭하고 걱정도 됐지만 새 학교를 다녀보니 학교가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의 정규 과목은 3과목뿐이다. 교과서도 없다.7차 교육과정에 근거한 국어 수업인 ‘말과 글’, 수학 과목에 해당하는 ‘수’,4·5학년생들을 위한 ‘외국어’수업이 전부다.‘말과 글’수업은 일반 초등학교의 전형적인 국어 수업과는 다르다. 만들기·그리기·동화책 읽기 등을 통해 우리말과 글을 익히는 종합적인 언어 수업에 가깝다.‘수’시간에는 생활에 꼭 필요한 셈을 공부한다.‘외국어’수업은 고학년을 대상으로 실험적으로 시도해 보는 영어 수업이다. 무리한 목표를 정해 암기식으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어동화를 읽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외국어를 익힌다. 이 시간에 저학년 학생들은 나들이나 미술활동을 한다. 오전 중에는 정규 수업을 진행하고 오후 수업은 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다양한 과목을 배운다.‘살림’수업은 의·식·주는 단순히 돈으로 사서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활에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가르친다. 어린이들은 이 시간에 요리, 바느질, 종이접기 등을 경험한다.‘마을에서 배우기’ 시간에는 외부 강사와 함께 노래를 배우거나 전래 놀이를 즐긴다. 또 마을 시장을 방문해 경제활동에 대해서 공부한다. 매주 금요일 ‘학교 밖 학교’ 시간에는 인근 칠보산에 방문해 자연을 관찰하고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칠보산 자유학교는 어린이들이 원하는 그대로 진행된다. 매주 월요일 오후 어린이 회의를 개최해 학교 생활의 규칙을 만든다. 이 시간에는 학생들이 나들이 가면 좋을 곳, 꼭 하고 싶은 운동 경기, 배우고 싶은 노래 등을 발표해 어린이들의 의견을 수업 내용에 반영한다. 때문에 전임 교사 3명은 정규 수업이 끝나면 늘 모여 일주일 단위 수업 계획을 세운다. 이 학교의 또 다른 특징은 재학생들이 모두 예사말을 사용한다는 것. 교사와 학생 사이에 예의는 지키되 격의 없이 지내기 위해서다. 어린이들은 전임 교사들에게도 ‘반짝이’,‘봄날’,‘산’과 같은 별명을 부른다. 칠보산 자유학교 대표 교사인 이한별(27·여)씨는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수업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면서 “어린이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학교의 수업 목표”라고 말했다. 수원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칠보산 학교 어떻게 문 열었나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의 시작은 서수원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육아’ 모임이었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사이좋은 어린이 집’이 문을 연 것은 지난 2001년. 권선구 금곡동 LG빌리지에 살고 있는 맞벌이 부부 7∼8쌍이 모여 육아 문제를 함께 고민한 것이 칠보산 자유학교의 첫 출발이다. 아파트 이웃 주민으로 서로 안면이 있는 10가구가 모여 한 가구당 400만원씩 출자해 ‘사이 좋은 어린이 집’을 탄생시켰다. 아파트 단지내 33평 주택을 전세 9000만원에 임대했다.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취학 전 어린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교사도 2명 채용했다. ‘사이 좋은 어린이 집’은 1년 뒤 참여 가구 수가 24가구로 두배 이상 늘었다.2002년에는 LG빌리지 근방의 300여평 규모 단독주택으로 옮겨 텃밭도 가꾸기 시작했다. 현재 ‘사이 좋은 어린이 집’에는 어린이 25명이 지내고 있으며 전담 교사 4명, 조리사 1명이 있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취학 어린이를 돌보는 ‘방과 후 어린이 교실’도 운영하게 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저학년 어린이 21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전담교사도 3명이다. ‘사이 좋은 어린이 집’과 ‘방과 후 어린이 교실’에 참여했던 공동육아협동조합 구성원들은 지난해 4월부터 공동육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대안학교를 세우기 위해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수원 대평중학교 박정근(47) 교사를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 설립 추진위원장으로 추대하고 1년간 학교 개교를 준비했다. 공동육아의 개념을 이해하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전담 교사 3명도 선발했다. 수원 지역에서 참여를 희망하는 학부모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통한 홍보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공동육아에 참여했던 어린이 7명과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어린이 5명, 총 12명의 어린이가 이 학교에 재학 중이다. 이중 남매·형제가 함께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가 6명이다. 학부모들은 대학 교수, 의사, 중·고 교사, 대기업 간부, 소설가 등 대부분 중산층이다. 정기적인 학부모 모임도 열어 이들의 관계는 매우 돈독하다.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도 학부모가 한 아이에 400만원, 두 아이는 500만원을 출자해 세운 학교다. 출자금액의 80%는 어린이가 졸업할 때 다시 회수하고 20%는 교육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 이 조합의 생각이다. 학부모들은 등록금 형태로 한 어린이당 매월 30만원을 내 학교를 운영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칠보산 자유학교는 물론 학력인정을 받는 학교는 아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수원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학교설립 주역 박정근선생님 “나의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이 공동육아의 철학입니다.” 칠보산 자유학교 설립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했던 대평중학교 박정근(47) 교사는 “교육을 중심으로 서수원 지역에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 칠보산 자유학교 개교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육아·탁아에 대한 학부모들의 기대치는 높아졌지만 사회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육아·탁아·보육·교육의 기능을 모두 담당할 공동체라는 것이다.30대 맞벌이 부부를 중심으로 수원 지역에서 시작된 육아 모임이 우리나라 교육의 작은 이정표를 세울 대안학교를 탄생시킨 셈이다. 박 교사는 “우리의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 모임을 통해 바른 가정, 좋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에게 더 나은 생활환경, 더 깨끗한 먹을거리,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친환경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박 교사는 환경에 관심이 있는 수원 지역 교사를 중심으로 ‘도토리 교사 모임’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수원 칠보산 학교를 학부모와 학생들의 손으로 직접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친환경 교육환경 학교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다음달 칠보산과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2∼3평의 텃밭을 분양받아 논과 밭을 가꾸기 위해서다. 박 교사는 “교육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 환경을 만들고 공동체 기금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30대 남자 둘 일탈을 꿈꾸다

    전업작가를 꿈꾸는 유부남 문호(정찬)는 기혼자임을 숨긴 채 채팅으로 만난 윤정(윤지혜)과 하룻밤을 보낸다. 다리가 불편한 노총각 연구원 종규(김유석)는 아무 여자에게나 집적거리면서도 이미 결혼한 첫사랑 수현(신소미)을 잊지 못해 주위를 맴돈다. 늦깎이 신인 감독 민병국(42)의 ‘가능한 변화들’(18일 개봉, 제작 무비넷)은 이처럼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30대 중반 두 남자의 일상과 환상을 다루고 있다. 겉으론 평범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영화속에서 꿈꾸는 ‘변화’의 외양은 어찌 보면 대단히 통속적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변화의 욕구를 성적인 욕망으로 손쉽게 치환해 버린다. 유부남 상사와 불륜 관계인 윤정은 약혼자와 미국행을 앞두고 일탈의 통로로 문호를 이용하고, 검사 남편을 둔 대학강사 수현 역시 무의미한 일상의 탈출구로 종규를 받아들인다. 이들에게선 공통적으로 변화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 느껴질 뿐 무엇을 위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드러나지 않는다.“오랜 삶의 법칙에서 인간이 뛰어넘을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질문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검은 옷의 남자’의 등장은 이 영화를 더욱 요령부득으로 만든다. 하지만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은 기대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예술성은 이미 여러 곳에서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 1년간 모스크바, 로카르노, 비엔나, 베를린아시아퍼시픽 영화제 등에 초청됐고,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을 수상했다. 스태프들이 개런티나 장비료 일부를 영화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제작비를 아껴가며 완성한 ‘가능한 변화들’은 재정난으로 개봉을 미뤄오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 마케팅 지원기금으로 뒤늦게 개봉하게 됐다.18세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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