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30대 투자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피카소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조성하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15
  • [뉴스 분석] 경제지표 호전세…경기 바닥쳤나?

    [뉴스 분석] 경제지표 호전세…경기 바닥쳤나?

    내수 여전히 부진… 정부 “지표 개선… 경제회복 기대” 경기 하강세가 멈췄나. 본격적인 경기 회복세로 보기는 어렵지만 경기가 바닥을 친 것으로 볼만한 경제지표들이 최근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제조업 생산이 큰 폭으로 반등하고 수출 감소폭도 줄면서 기업 심리는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소비와 투자는 감소폭이 커지는 등 내수는 여전히 부진하다. 결국 내수의 회복 여부가 향후 경기 흐름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2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2월 제조업 생산은 전월 대비 3.3%가 증가해 2009년 5월(4.1%) 이후 6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의 효과로 반도체(19.6%) 생산이 크게 늘었다. 금속가공(12.5%), 담배(9.6%), 의약품(4.0%) 등도 증가했다. 제조업 출하도 1월보다 2.5% 증가해 한 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연속으로 두 자릿수 감소세를 기록했던 수출도 3월에는 감소폭이 한 자릿수로 줄어들 전망이다. 기업 심리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3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및 경제심리지수(ESI)’에 따르면 이달 제조업의 업황 BSI는 68로 2월(63)에 비해 5포인트가 올랐다. 지난해 10월(71) 이후 넉 달 연속 하락세를 그리다 5개월 만에 상승 전환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경기가 바닥을 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수 관련 지표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비를 나타내는 2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8%가 줄어 1월(-1.3%)보다 감소 폭이 커졌다. 투자 역시 감소세가 이어졌다. 2월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6.8%가 줄어 두 달 연속 감소했다. 감소폭도 2014년 8월(-7.5%) 이후 1년 6개월 만에 가장 컸다. 또 지난해 가계 여윳돈은 사상 최대인 99조 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5조 7000억원이 늘었다. 두 배나 많았던 20~30대 취업자 수를 50대 취업자 수가 통계를 작성한 2000년 이후 15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추월한 것도 경기 악화로 심각해진 구직난을 보여준다. 이처럼 엇갈린 지표 속에서도 정부는 제조업과 수출 회복세에 따라 3월 이후 내수 지표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인대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3월에는 수출이 개선되고 경제 심리가 호전되면서 경기 회복세가 확대될 것”이라면서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효과가 본격화하고 신형 휴대전화가 판매되면 소비·투자 지표도 반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완연한 경기 회복 여부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난해 하반기 수출이 안 좋은 가운데 소비가 나아지면서 경제를 떠받쳤다면 올해는 정책 효과가 둔화되고 수출 부진이 지속되면서 경제의 힘이 빠지는 모습”이라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단기적인 정책이 수출과 소비를 살리는 데 지난해만큼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교육비·집 아낌없이 주다가… ‘노후 파산’

    1986년 남편과 사별한 A(63)씨는 세 자녀를 혼자서 키웠다. 그러다 지인을 통해 다단계 부동산 업체를 소개받았다. “2억원만 투자하면 대박이 날 것”이란 말에 혹해 대출까지 받아 땅을 샀는데, 이게 잘못돼 빚더미에 앉고 말았다. A씨는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개인회생은 소득은 있지만 빚이 과도하게 많을 경우 최장 5년간 어느 정도의 빚을 갚으면 나머지를 탕감해 주는 제도다. 하지만 A씨는 유방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받았고, 식당 일도 더 할 수가 없었다. 개인회생 절차를 더 진행할 수 없게 된 A씨는 파산을 신청했다. 25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올해 1~2월 파산 선고를 받은 1727명 중 60대 이상이 428명(24.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이상 파산 선고자 비율은 50대(37.2%)보다는 적지만 40대(28.2%)와 비슷하고 30대(8.9%)보다는 많다. 법원은 노후 파산 선고자가 갈수록 느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노인들은 빚을 갚을 능력이 부족하고, 소득이 있더라도 생계비 등을 빼면 채무를 변제하기 어려워 파산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49.6%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12.6%)의 4배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서울신문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했던 노인 빈곤 분석에 따르면 ▲병환 ▲이혼·사별 ▲이른 재산 증여 ▲조기 은퇴 및 연금 공백 ▲자기 집에 대한 집착 등이 파산 등 노후를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5대 요인으로 나타났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많은 부모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파산한 자녀들에게 재산을 일찍 증여했다”면서 “현재 60~80대가 된 부모들 중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투자가 미래다] 경제 위기일수록 선제적 투자…신성장 동력으로 미래 밝힌다

    [투자가 미래다] 경제 위기일수록 선제적 투자…신성장 동력으로 미래 밝힌다

    2~3%대에 머물던 경제성장률이 1%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기업들의 위기의식은 훨씬 더 절박하다. 수출 부진, 채산성 악화, 금리와 환율 변동 등 아찔한 대내외 경제 여건 속에서도 주요 기업들은 ‘선제적 투자’의 끈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올해 30대 그룹의 80%는 선제적 투자를 계속할 것으로 조사됐다. 자산 상위 30대 그룹의 2016년도 투자계획은 122조 7000억원으로 지난해 실적 116조 6000억원보다 5.2% 증가한 규모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시설투자는 지난해보다 7.1% 증가한 90조 9000억원, 연구·개발(R&D)투자는 지난해와 비슷한 31조 8000억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송원근 경제본부장은 “주요 기업들이 과감한 설비투자를 하는가 하면 신성장동력 개발을 위한 R&D투자 프로젝트에도 힘을 쏟고 있다”면서 “기업들의 투자 노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 정부의 규제완화와 신성장동력 지원책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과감한 투자와 고용으로 정면 돌파하려는 기업들의 생존 전략들을 들여다봤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인간 바비’ 되려고…성형에만 6억원 쓴 美여성

    ‘인간 바비’ 되려고…성형에만 6억원 쓴 美여성

    “바비인형이 되고 싶어요” 지난해 3월 16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사는 바비인형을 닮고 싶은 여성 나네트 해먼드(Nannette Hammond·43)에 대해 보도했다. 다섯 아이의 엄마인 나네트 해먼드는 바비인형처럼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에만 약 50만 달러(한화 약 5억 8100만 원)의 거액을 지불한 인간 바비인형이다. 그녀는 세 번의 가슴 확대와 가슴 리프트, 입술 필러, 보톡스, 라미네이트, 반영구 화장, 머리염색, 인조 손톱, 재택 태닝 살롱 등 바비인형이 되기 위해 수억 원의 비용을 드렸으며 심지어 24만 7000달러(한화 약 2억 8899만 원)에 달하는 핑크색 바비 포르셰 자가용도 소유하고 있다. 바비인형이 되고 싶은 나네트의 노력은 수술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바비인형의 예쁜 몸매처럼 자신의 18인치 허리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1시간 이상 헬스를 하며 야채와 샐러드, 닭고기 등만으로 식단 조절을 병행한다. 어린 시절부터 바비인형에 집착했던 나네트는 항상 바비인형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고 수줍음이 많았던 그녀는 바비인형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나네트는 바비인형 피부를 갖기 위해 16살 때부터 태닝을 시작했다. 21살 때엔 B컵에서 C컵이 되기 위해 3천 달러(한화 약 351만 원)를 들여 가슴 확대를 했다. 또한 24살 되던 해, 그녀는 머리염색과 DD컵이 되기 위해 두 번째 가슴 확대로 9천 800달러(한화 약 1147만 원)를 사용했다. 이후 성형외과 간호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나네트는 성형수술에 더욱 집착하게 됐고 27세엔 바비인형의 두꺼운 입술을 갖기 위해 정기적으로 보톡스와 콜라겐 필러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30대 초반 나네트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 데이브(Dave)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입술 확대와 머리염색에 1천 823달러(한화 약 213만 원)와 속눈썹 확장에 490달러(한화 약 57만 원)를 지불했다. 나이가 들어도 바비인형에 대한 염원은 약해지지 않았다. 나네트는 38살 나이에 28H 사이즈를 위해 9천 800달러(한화 약 1146만 원)을 들여 세 번째 가슴확대 수술을 받았다. 그녀가 한 가장 최근의 성형은 2년 전 5만 800달러(한화 약 5943만 원)을 들여 한 라미네이트 치아성형. 이렇게 그녀가 바비인형이 되기 위해 지출한 돈은 놀랍게도 49만 4천 달러(한화 약 5억 8000만 원). 이런 거액의 돈을 성형 미용에 쓸 수 있었던 것은 20대 초반에 만난 의사 남편 데이브의 지원 덕분이다. 나네트는 두 대의 개인 전용비행기와 대저택을 소유한 재력가 남편 데이브의 지원 아래 다섯 명의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현재 나네트는 집에서 매일 10분간의 태닝과 스프레이 썬탠에 월 140달러(한화 약 16만 원)과 매주 매니큐어 및 페티큐어에 350달러(한화 약 41만 원)을 소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비의류와 비키니, 액세서리 구입을 위해 매달 280달러(한화 약 33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네트는 앞으로도 성형수술 이외에도 바비인형 외모 유지를 위해 화장품에 더 투자할 계획이다. 나네트의 남편 데이브는 “나는 나네트의 모습을 좋아하고 항상 그녀를 지원하는 것이 행복하다”며 “그녀는 훌륭한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라고 전했다. 70대에도 바비인형처럼 외모를 유지하는 것이 꿈이라는 나네트 해먼드는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7만여 명의 팔로워를 가진 소셜미디어 스타로 활동 중이다. 사진·영상= Nannette Hammond Instagram / News Dog TV youtube 손진호 nasturu@seoul.co.kr
  • ‘인간 바비’ 되려고…성형에만 6억원 쓴 美여성

    ‘인간 바비’ 되려고…성형에만 6억원 쓴 美여성

    “바비인형이 되고 싶어요” 지난해 3월 16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사는 바비인형을 닮고 싶은 여성 나네트 해먼드(Nannette Hammond·43)에 대해 보도했다. 다섯 아이의 엄마인 나네트 해먼드는 바비인형처럼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에만 약 50만 달러(한화 약 5억 8100만 원)의 거액을 지불한 인간 바비인형이다. 그녀는 세 번의 가슴 확대와 가슴 리프트, 입술 필러, 보톡스, 라미네이트, 반영구 화장, 머리염색, 인조 손톱, 재택 태닝 살롱 등 바비인형이 되기 위해 수억 원의 비용을 드렸으며 심지어 24만 7000달러(한화 약 2억 8899만 원)에 달하는 핑크색 바비 포르셰 자가용도 소유하고 있다. 바비인형이 되고 싶은 나네트의 노력은 수술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바비인형의 예쁜 몸매처럼 자신의 18인치 허리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1시간 이상 헬스를 하며 야채와 샐러드, 닭고기 등만으로 식단 조절을 병행한다. 어린 시절부터 바비인형에 집착했던 나네트는 항상 바비인형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고 수줍음이 많았던 그녀는 바비인형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나네트는 바비인형 피부를 갖기 위해 16살 때부터 태닝을 시작했다. 21살 때엔 B컵에서 C컵이 되기 위해 3천 달러(한화 약 351만 원)를 들여 가슴 확대를 했다. 또한 24살 되던 해, 그녀는 머리염색과 DD컵이 되기 위해 두 번째 가슴 확대로 9천 800달러(한화 약 1147만 원)를 사용했다. 이후 성형외과 간호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나네트는 성형수술에 더욱 집착하게 됐고 27세엔 바비인형의 두꺼운 입술을 갖기 위해 정기적으로 보톡스와 콜라겐 필러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30대 초반 나네트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 데이브(Dave)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입술 확대와 머리염색에 1천 823달러(한화 약 213만 원)와 속눈썹 확장에 490달러(한화 약 57만 원)를 지불했다. 나이가 들어도 바비인형에 대한 염원은 약해지지 않았다. 나네트는 38살 나이에 28H 사이즈를 위해 9천 800달러(한화 약 1146만 원)을 들여 세 번째 가슴확대 수술을 받았다. 그녀가 한 가장 최근의 성형은 2년 전 5만 800달러(한화 약 5943만 원)을 들여 한 라미네이트 치아성형. 이렇게 그녀가 바비인형이 되기 위해 지출한 돈은 놀랍게도 49만 4천 달러(한화 약 5억 8000만 원). 이런 거액의 돈을 성형 미용에 쓸 수 있었던 것은 20대 초반에 만난 의사 남편 데이브의 지원 덕분이다. 나네트는 두 대의 개인 전용비행기와 대저택을 소유한 재력가 남편 데이브의 지원 아래 다섯 명의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현재 나네트는 집에서 매일 10분간의 태닝과 스프레이 썬탠에 월 140달러(한화 약 16만 원)과 매주 매니큐어 및 페티큐어에 350달러(한화 약 41만 원)을 소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비의류와 비키니, 액세서리 구입을 위해 매달 280달러(한화 약 33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네트는 앞으로도 성형수술 이외에도 바비인형 외모 유지를 위해 화장품에 더 투자할 계획이다. 나네트의 남편 데이브는 “나는 나네트의 모습을 좋아하고 항상 그녀를 지원하는 것이 행복하다”며 “그녀는 훌륭한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라고 전했다. 70대에도 바비인형처럼 외모를 유지하는 것이 꿈이라는 나네트 해먼드는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7만여 명의 팔로워를 가진 소셜미디어 스타로 활동 중이다. 사진·영상= Nannette Hammond Instagram / News Dog TV youtube 손진호 nasturu@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8) 김도연 포스텍 총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8) 김도연 포스텍 총장

    서울의 낮 기온이 영상 20도까지 올랐던 지난 4일, 덕수궁 근처의 식당에서 만난 김도연(64) 포스텍 총장은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전에는 진짜로 190㎝였는데 나이 먹더니 좀 줄어든 것 같다”며 유쾌하게 웃는 그에게 척박했던 국내 공학연구의 토양을 개척하고, 교수와 행정가의 길을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두뇌집단인 포스텍을 이끌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들어 봤다. -“헤이, 무슈(미스터) 김. 여기 신문 좀 봐봐. 너네 나라 얘기 맞지?” 얼마 전에도 그러더니 기숙사에 같이 있는 녀석이 또다시 아침부터 자존심을 긁었다. 기사 제목이 대략 ‘한국은 세계에서 아기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였다. 버려진 한국 아기들의 해외 입양에 대한 특집기사였다. 그 프랑스인 학생이 아시아 후진국에서 온 유학생을 조롱할 목적으로 기사를 보여준 건지, 단순히 관심을 나타낸 것뿐인데 내 자격지심이 옹졸하게 받아들인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1976~79년에 걸친 3년 반의 프랑스 유학생활 동안 나는 ‘해외에 나가면 자기 나라 국력만큼 대접받는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절감해야 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결심했다. “열심히 배워 한국으로 돌아가서 너희들이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만들어 다시 돌아오마.”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석사를 마친 1976년 초,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해외 유학은 당초 나의 인생 로드맵에 존재하지 않았다. 공부를 마치면 돈을 벌고 싶었다. 어려서 나의 장래희망은 ‘과학자’도 ‘선생님’도 아닌, 오직 ‘부자’였다. 석사 졸업을 앞두고 박사과정에 진학할지, 취업을 할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카이스트 졸업생 중 프랑스로 유학하는 학생들에게는 프랑스 정부에서 특별 장학금을 제공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당시 대한항공이 자국산 에어버스 여객기를 구매해 준 데 대한 프랑스의 정부 차원의 보답이었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그때 나와 같은 케이스로 프랑스 유학 길에 올랐다. -“돈을 벌려고 해도 석사보다는 박사 학위를 받고 와야 기회가 많이 생기지 않겠나.” 당시 프랑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우리는 달에 못 가는 게 아니라 가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미국의 달 착륙을 평가절하했던 프랑스였다.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나중에 한국에 수출한 초고속 열차 ‘TGV’, 세계 최고의 원자력 발전 기술 등이 다 프랑스의 대학과 연구실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6개월의 프랑스어 랭귀지 스쿨을 거쳐 그해 가을 미셰린타이어 공장으로 유명한 소도시 클레르몽페랑의 블레즈파스칼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산학협력 연구학생을 자원했기 때문에 유학 생활의 대부분을 파리에 있는 르노자동차 중앙연구소에서 보냈다. 산학협력 과정을 택했던 건 기술의 현장 응용에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현지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생존 차원의 절박함 때문이기도 했다. 유학 시작 6개월 만에 한국에서 아내가 건너 왔는데, 프랑스 정부가 주는 장학금으로는 나 혼자 살아가기도 빠듯했다. 산학협력 연구학생을 하면 르노자동차에서 추가로 연구비와 생활비를 줬다. 자동차 생산공장에 딸린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다 보니 어떻게 특허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생산라인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실용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다. -평안도의 기독교 집안이었던 우리 가족은 북한 정권의 종교 탄압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나는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태어나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왔다. “공부는 반에서 중간 정도만 해라. 대신에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라.” 아버지는 중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왜 다른 집들처럼 공부하라고 얘기를 안 하시지?’ 어린 마음에 섭섭함까지 들 정도였는데, 결과적으로 그 말씀만큼은 참 잘 지켰다. 경기고 우리 교실 60명 중에 30등을 왔다 갔다 했다. 동창 중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며 천재 소리를 듣던 친구가 나노 분야 최고 전문가로 노벨물리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우리 학교의 임지순(65) 석좌교수다. -1974년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마치고 카이스트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 당시 카이스트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대단했다. 20대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인 병역 의무가 면제됐고, 석사 과정인데도 나라에서 당시 직장인 평균 월급(4만 5000원)의 3분의1이나 되는 1만 5000원을 다달이 생활비로 보조해 줬다. 카이스트 교수들의 월급은 서울대 교수의 3배였고, 아파트도 나왔다. 외국 유학을 마치고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하면 대통령이 공항까지 관용차를 보내 줬을 정도였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1979년 7월 돌아옴과 동시에 아주대 기계공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때 나이 27세. 아주대는 1971년 우리나라와 프랑스 정부의 한·불 기술초급대학 설립에 관한 협정 이행을 위해 설립된 학교였는데, 1977년 당시 김우중 대우실업 사장이 인수를 했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을 교수로 많이 채용했다. -아주대에서 나는 ‘빡빡이 교수’로 불렸다. 병역은 면제받았지만 3주 군사훈련은 필수였다. 귀국하고 얼마 후 훈련소에 들어갔는데, 지금과 달리 그때는 박사 학위 소지자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박사님이 그 정도밖에 못하나.” 남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고 들어온 나를 훈련소 조교들이 얼마나 괴롭히던지. 훈련소를 나오고 얼마 되지 않은 그해 9월 1일 첫수업을 하러 들어왔을 때 학생들은 내가 교수라고 하자 처음에는 믿지를 않았다. 군인 머리를 한 멀대 같은 청년이 허여멀건 얼굴로 다니면 먼 발치에서도 못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교수 임용 2개월도 안 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는 ‘10·26사태’가 일어났다. 이듬해 5월까지 대 학이 문을 닫았다. 계엄령 초기에는 교수들까지 완전히 통제했는데, 얼마 후 교수들은 연구실 출입이 허용됐다. 학교 정문 앞에서 버스를 타고 연구실로 들어가는 식이었는데, 어느 날 버스에 올라온 계엄군이 출입증을 검사하더니 내 직위에 ‘조교수’로 돼 있는 걸 보고는 “야, 조교는 내려. 교수도 아닌 게 왜 여기에 타고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옆에 있는 다른 동료 교수가 ‘조교’가 아니라 ‘조교수’라고 말해 줘서 들어갈 수 있었다. -1982년 서울대 재료공학과에서 학과 졸업생을 교수로 유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 덕에 1969년 재료공학과 창립 이후 2회 입학생이었던 나는 서울대 교수로 옮길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 이외 대학 이공계에서는 인문사회 계열처럼 그냥 강의만 이뤄졌다. 실험실이 갖춰진 대학이 거의 없었다. 절삭공구 하나 변변한 걸 찾기 힘들었다. 아주대에 있을 때도 학교에서 연구를 위한 실험은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중견기업과 손잡고 기술 실용화 연구를 함께 했었다. 사실 아주대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기술회사를 창업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서울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꿈을 버렸다. 훌륭한 학생들과 함께 좋은 논문을 쓰는 공학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비로소 하게 됐다. -당시 연구환경이 얼마나 척박했는지는 상상도 못 한다. 요즘에야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이 국내에서 연간 5만건 넘게 나오지만 서울대에 부임하던 해에는 전체 100건이 안 됐다. 제대로 된 첫 논문은 일본 정부의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1984년 일본이 전 세계 청년 학자들을 초청해 일본 문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가졌는데, 나는 2개월 반 동안 일본무기재료연구소에 갔다. 거기서 현지 연구원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했다. 그때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서울대로 자리를 옮겨 1986년에 처음 SCI급 논문을 낼 수 있었다. -우리 사회 전체에 민주화 바람이 불던 1980년대, 대학은 그 중심에 있었다. 학생과 전투경찰이 아침에 캠퍼스에 같이 등교하던 시절이었다. 1987년 부교수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선배 교수가 연구실에 찾아와 종잇장 하나를 꺼내 놓았다. “김 교수, 여기에 사인해. 나만 믿고 그냥 하면 돼.” 그 선배가 시키는 일이라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 흔쾌히 사인을 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서울대 교수 4·13 호헌반대’ 성명이었다. 사인을 한 다음날 모든 신문 1면을 그 기사가 장식했고, 해당 교수들 이름이 모두 실명으로 게재됐다. -아침부터 연구실 전화가 불이 났다. 가족이며 친척, 친구들이 “큰일 난 거 아니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걱정은 됐지만 특별히 겁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잘리면 잘리는 거지. 그런데 해직교수가 되고 나면 나는 뭘 먹고살아야 하지? 당초 꿈대로 돈이나 벌까?’ 그러나 6·10항쟁으로 이어지는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 아래 우리 서명 교수들에게 특별한 불이익을 주는 조치 같은 것은 취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수시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나의 현실을 한탄하며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다. 교내에 경찰이 들어와 제자들을 폭력적으로 체포해 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던 나는 30대 나약한 젊은 교수일 뿐이었다. 마음이 참담했고 학생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4·13 호헌반대 성명에 서명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나의 괴로움은 한층 더 컸을 것이다. -조용히 연구나 하던 사람이 2005년 갑자기 동료 교수들의 추천으로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으로 뽑혔다. 1990년대 초에도 학생 담당 부학장이라는 보직을 맡기는 했는데 공대 학장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과학 행정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2007년까지 공대 학장을 했었는데 졸지에 2008년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를 합친 교육과학기술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됐다. 6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두고 울산대 총장으로 갔다. 그러다 다시 2011년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도 않지만 일이 주어지면 싫다고 거부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학생들에게 ‘과학’과 ‘기술’은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역할도 다르다. 과학자는 ‘새로운 지식과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고 엔지니어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테크닉을 만들어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노벨상은 엔지니어들이 받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의 영역이다. 그런 개념도 없이 매년 10월 노벨상 시즌이 되면 기술을 전공한 공학자들에게 “왜 노벨상을 받는 연구를 못 하느냐”고 질타하는 사람들이 있다.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얘기다. -충북 감곡에서 주말농장을 하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과학기술은 농사 짓는 것과 비슷하다. 씨를 뿌리고 움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빨리 채소나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해서 씨를 뿌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계속 흙을 뒤적이거나 이제 막 싹이 텄는데 키를 키우겠다고 잡아 늘이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노벨상 수상자가 당장 몇 년 안에 나오는 것은 원치 않는다. 지금처럼 사교육이 공교육을 넘어서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북돋우지 못하는 교육을 시키는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과학기술 정책이나 교육시스템을 지금처럼 운영해도 문제 없구나’ 하는 착각을 낳을 수밖에 없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술이 적당히 센 편이다. ‘논어’의 ‘유주무량불급란’(唯酒無量不及亂)이란 말을 자주 인용한다. 내가 좇는 공자의 주도를 압축한 말이다. 공자의 주량은 거의 무한대였는데, 어지러운 데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 역시 실제로 이른바 ‘필름’이 끊겨 본 기억은 없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클레르몽페랑 제1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료의 물성을 연구하는 재료공학 중 무기재료(세라믹) 공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발표한 논문이 200편이 넘는다. 세라믹은 전자재료, 내열재료뿐만 아니라 강철을 절단하는 재료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물질이다. 연구자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초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지내 행정가로서 경험이 풍부하다. 다양한 이력 때문에 고든리서치 콘퍼런스를 포함해 세계적인 학술회의에 40회 이상 초청받아 강연자로 나섰다.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 시절에는 공대 학생들의 결혼식 주례를 도맡다시피 했다. ▲1952년 부산 출생 ▲아주대 기계공학과 교수 ▲서울대 재료공학과 교수·공과대학 학장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울산대 총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장관급)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포스텍 제7대 총장
  • 주형환 “차질 없이 투자 이행하도록 지원”

    주형환 “차질 없이 투자 이행하도록 지원”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올해 30대 그룹 투자계획(122조 7000억원)에 대해 “더 중요한 것은 차질 없는 이행”이라고 강조했다. 주 장관은 9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요 투자기업 간담회’에서 “30대 그룹의 투자계획이 올해 모두 이행될 수 있도록 강력한 의지를 갖고 속도감 있게 지원하겠다”며 이처럼 말했다. 이어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는 범정부 전담 지원반을 구성해 도로·용수·전력 공급 등 미시적인 사항까지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전력공급 문제로 난항을 겪던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단지 건설에 대해서는 “공장 가동에 차질이 없도록 전력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내년 중반 가동을 목표로 평택 반도체단지에 15조 6000억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그동안 전력 공급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충남 당진시와 경기 안성시의 반대 등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주 장관은 “1단계로 이달 154㎸ 송전선로의 착공에 들어가 오는 10월까지 완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10조원이 투자되는 LG디스플레이 파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신규 공장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로 전력을 공급해 주기로 했다. 재계는 이날 간담회에서 에너지신산업의 시장 확대 지원과 차세대 기술 개발에 필요한 연구개발(R&D) 세액 공제 지원 등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주 장관은 “R&D 세제 지원 대상에 포함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협의할 것”이라면서 “해외 항공기 엔진개발 사업 참여를 위해 필요한 장기 저리 금융의 경우 산업은행 등을 통해 지원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N포 세대’ 20대 주식투자 32% 늘어

    ‘N포 세대’ 20대 주식투자 32% 늘어

    주식을 하는 20대가 지난해 30%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한국예탁결제원의 ‘2015년도 12월 결산 상장법인 주식 투자자 현황’에 따르면 20대 주주의 수(중복 주주 제외)는 전년 34만 5000명에서 45만 5000명으로 31.9%나 증가했다. 20세 미만도 9만 6000명에서 11만 8000명으로 22.9% 늘었다. 30대(10.7%)와 40대(5.5%), 50대(2.6%)의 증가율을 크게 웃돌았다. 20대의 보유 주식 수도 8억 8000만주에서 12억 1000만주로 37.5% 증가했다. 전체 연령대 평균 증가율 10.5%를 크게 상회했다. 예탁원 관계자는 “20대 이하의 경우 그간 주식 투자 인구가 많지 않아 약간만 늘어도 증가율 폭이 크다”며 “그렇더라도 최근 주식에 뛰어든 젊은 층이 많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취업이 힘들어지고 저금리로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걸 원인으로 꼽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 투자 설명회를 가면 앳된 얼굴이 굉장히 많이 보인다”며 “취업난 탓에 ‘한 방’을 노리는 풍조가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스마트폰 보급 확대로 주식투자 접근이 쉬워진 것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건강한 20대 주식 인구가 늘려면 이들 계층의 소득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30대 그룹 올 123조 ‘공격 투자’… 어려워도 5.2% 더 푼다

    30대 그룹 올 123조 ‘공격 투자’… 어려워도 5.2% 더 푼다

    삼성, 반도체 단지 15조 6000억 현대차, 스마트카 13조 3000억 LG, OLED 시설 등에 14조 투입 그룹 80% “올해 경영 여건 악화”… 사업 구조조정 등 내실화에 주력 국내 30대 기업은 올해 경영 환경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투자는 전년보다 늘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9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주재한 주요 투자기업 간담회에서 자산 상위 30대 그룹의 올해 투자 계획은 전년 투자 실적(116조 6000억원)보다 5.2% 증가한 122조 7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투자 계획은 시설 확충비와 연구개발(R&D)비를 합해 산정한 것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의 한전 부지 매입비 10조 5000억원은 지난해 투자 실적에 넣지 않았다. 30대 그룹 중 투자를 늘릴 계획이 있는 그룹은 18개,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한 그룹은 3개, 감소한 그룹은 9개로 조사됐다. 주요 그룹들은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유통, 에너지 등 주력 업종에 대한 설비 투자와 신성장동력 개발을 위한 R&D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평택 반도체단지 건설에 15조 6000억원을 투자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2018년까지 1단계로 15조 6000억원이 집행된다. 현대차그룹도 같은 기간 친환경 및 스마트 차량 개발에 2018년까지 13조 3000억원을 투자한다. SK그룹은 올해에만 SK하이닉스 설비 투자로 5조 4000억원, SK텔레콤 망 투자에 1조 3000억원, SK브로드밴드 인프라 투자에 6500억원을 투입한다. LG그룹은 OLED 등 관련 시설 확장을 위해 2018년까지 10조원을 투입한다. 2014년 11월부터 시작한 마곡 사이언스파크에 2020년까지 4조원을 투자한다. 롯데그룹은 제2맥주공장 설립을 위해 26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신세계그룹은 면세점 사업을 위해 2020년까지 2700억원을 투자하며, CJ그룹은 콘텐츠 사업에 올해에만 6700억원을 투자한다. 주 장관은 “30대 그룹의 올해 투자계획이 차질 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총력 지원하겠다”면서 “특히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는 범정부 전담 지원반을 구성해 신속히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경련 조사 결과 30대 그룹이 집행한 지난해 투자 규모는 116조 6000억원으로 당초 계획(125조 9000억원) 대비 투자 집행률은 92.6%에 그친다. 한편 30대 그룹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80%의 기업들이 올해의 전반적인 경영 여건이 악화할 것으로 봤다. 어려운 대내외 경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중점 전략으로는 사업 구조조정 등 경영 내실화(70.1%)를 가장 많이 꼽았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삼송지구 상전벽해…신분당선 연장되면 ‘강남 20분대’ 쾌속교통

    삼송지구 상전벽해…신분당선 연장되면 ‘강남 20분대’ 쾌속교통

    -2~3인 가구 증가추세에 원룸 / 투룸 중소형 아파트형 오피스텔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삼송지구가 올해 신분당선 연장이 확정되면서 교통요지로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삼송지구에는 삼국시대부터 한양을 중심으로 지금의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관서대로가 있던 곳으로, 서해안으로 통하는 서울이 핵심 관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발표로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지난 3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신분당선을 삼송까지 연결하는 계획을 포함시켰다. 신분당선 삼송 연장선은 총 21.7km노선으로, 광화문을 거쳐 은평뉴타운, 고양 삼송지구까지 이어진다. 신분당선은 삼송역에서 강남, 수원, 광교, 화성 봉담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고양 화정~은평구 신사를 잇는 광역도로 개통과 2022년 삼성역과 동탄역을 잇는 GTX도 완공 예정이다. 현재 삼송지구에는 통일로가 자리하며, 강변북로, 원흥~강매 간 도로, 화정~신사 간 도로(계획),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인접해 있어 교통이 우수하다. 이러한 메가급 교통호재의 중심에는 ‘삼송역 현대썬앤빌 더 트리니티 오피스텔’이 있다. 오피스텔은 삼송역에 분양되는 오피스텔 중에서 강남, 광화문 등 서울 중심업무지구와의 빠른 접근성을 투자장점으로 갖추고 있다. 오피스텔 바로 앞 3M거리에 삼송역이 있기 때문에 광화문까지의 대중교통 이동시간이 20분대로, 강남 일대는 30분대로 단축될 예정이다. 개통이 확정된 신분당선 삼송역 연장선을 이용하게 되면 용산도 19분 정도 거리로 빨라지게 된다. 즉, 2분대 이내로 삼송역을 이용할 수 있는 삼송역 더블 초역세권 오피스텔이 된다는 얘기다. 삼송지구로 유입되는 연령 특성상 1~3인 가구의 20~30대 연령층이 주를 이루고 있어 더블 역세권이라는 입지 요인은 매력적인 투자장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지 중개업자들의 중론이다. 최근에는 원흥~강매 간 도로가 개통했으며 자유로와 제2자유로, 서울외곽순환도로, 인천공항 고속도로 등 주요 간선도로를 연결해 수도권 이동이 더욱 편해졌다. 또 강변북로, 원흥~강매 간 도로, 화정~신사 간 도로(계획),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인접해 있어 교통이 우수하다. 삼송역 초역세권 상업지구 중심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입주자들은 근거리에서 생활편의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현재 농협 하나로클럽이 오피스텔 앞쪽에 있는 데다 복합쇼핑몰과 대형마트 입점도 계획되어 있는 상태라서 앞으로 삼송역을 중심으로 한 삼송지구 일대 생활여건이 빠르게 개선될 전망이다. 2017년 개관될 신세계 복합쇼핑몰 내에는 쇼핑몰을 비롯해 이마트, 영화관, 명품관이 있는 삼송지구를 대표하는 복합쇼핑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여져 삼송역과 인접한 은평구 거주자들의 기대도 크다. 신세계 복합쇼핑몰은 일산 현대백화점의 약 4배에 달하는 36만 ㎡ 규모로 건설된다. 같은 해에 이케아 2호점도 오픈될 것으로 보이며, 롯데몰 은평점은 올해 개관된다. 분양관계자는 “대형급 교통호재와 대형소핑몰 조성은 지역 거주자의 생활편의 향상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이는 꾸준한 유입인구로 이어져 투자자 입장에서도 공실률 해결과 동시에 안정적인 수입원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매력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삼송역 현대썬앤빌 더 트리니티 오피스텔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지구 상업지구 8블록에 들어선다. 오피스텔은 총 29층 1개 동 규모에 오피스텔 638실, 단지 내 상가로 건설되며, 전 세대는 중소형 원룸과 투룸으로 공급된다. 주변에는 북한산국립공원과 창릉천, 서오릉 등이 있다. 모델하우스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634-6번지에 마련되어 있다. 문의 : 1877-8838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비즈 in 비즈] 온·오프 ‘기저귀 대전’… 대리점만 패자?

    [비즈 in 비즈] 온·오프 ‘기저귀 대전’… 대리점만 패자?

    이마트가 온·오프라인 최저가로 판매한다고 선언한 뒤 기저귀 매출이 훌쩍 뛰었습니다. 이마트는 20일까지 사흘 동안 기저귀를 2만 1408개 판매해 창립행사로 기저귀를 많이 팔 때보다 3배 더 팔았다고 21일 밝혔습니다. 기저귀와 함께 젊은 고객이 몰려든 데 이마트는 반색합니다. 이마트의 20~30대 매출 비중이 지난해까지 3년 동안 35.2%→33.8%→32.1%로 줄던 참이었습니다.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기저귀 매출 타격은 없었다”며 태연한 표정이지만, 이마트의 선전포고 시점이 예사롭지 않다는 게 유통업계의 평가입니다. 쿠팡, 티몬,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3사가 2010년 사업 시작 뒤 매출 증대에만 골몰한 채 영업손실을 내오다 지금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 상태에 빠져 있다는 추정 때문입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폰할인 등 추가 판촉에 나서지 않는 소셜커머스 업체들의 무대응 행보는 투자금이 풍부하던 과거에 비하면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채널별 유통 공룡들 간 ‘전(錢)의 전쟁’이 시작되자 제조사들은 긴장하면서도 반색합니다. 대형마트와 소셜커머스가 서로 앞다퉈 팔아주는 형국이니, 제조사가 쥘 현금도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공룡들 간 싸움은 예상치 못한 유통 지형 변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당장 대형마트나 소셜커머스의 납품 경로에서 배제된 ‘오프라인 대리점’의 피해가 예상됩니다. 이미 유한킴벌리는 도·소매점에 납품하는 대리점에 온라인과 비교해 높은 기저귀 납품가를 적용한 전례가 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3일 이런 대리점 차별 행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제 오프라인 대리점의 협상력은 더 위축될 테고, 대리점을 통해 골목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기저귀를 보기는 더 어려워지겠습니다. 유통업체 간 싸움이 끝난 뒤 기저귀는 ‘생활필수품’에서 비싸게 줘도 동네에서는 구하기 힘든 ‘비축품’으로 변할지 모르겠습니다. 홍희경 산업부 기자 saloo@seoul.co.kr
  • 초역세권 오피스텔 ‘신중동역 센트럴프라움’ 오는 2월 베일 벗다

    초역세권 오피스텔 ‘신중동역 센트럴프라움’ 오는 2월 베일 벗다

    이달 부천 중동의 골든블록에 ‘신중동역 센트럴프라움 오피스텔’이 본보기주택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분양에 나선다. ‘중동역 센트럴프라움’은 최신설비와 시스템이 적용된 360실 규모의 오피스텔을 부천시 원미구 중동 1146-2, 3번지에 공급된다. 단지는 지하6층~지상20층 1개 동 규모에 오피스텔 360실과 근린생활시설 19호로 구성되며, 주차공간도 372대를 수용할 수 있다. 면적별 타입은 ▲전용 27.64㎡ A타입 252실, ▲전용 36.82㎡ B타입 18실, ▲전용 35.84㎡ C타입 18실, ▲전용 28.18㎡ D타입 36실, ▲전용 36.91㎡ E타입 36실이다. 전 실은 중소형평형대 5가지 타입으로 구성되어 중동1~2인 수요자의 라이프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이 1.5룸, 투룸 오피스텔로 공급된다는 점에서 희소 투자가치가 높은 데다 교통, 대형할인점, 문화, 공원 등의 생활인프라가 잘 갖춰져 임대수요가 풍부한 골든 블록에 자리하여 실수요자는 물론 투자자의 관심이 높다. 최근 20~30대 젊은 신혼부부나 싱글 직장인들의 1.5룸, 2룸 오피스텔 수요가 늘자 건설사들도 이에 발맞춰 실용성을 겸비한 다양한 형태의 주거형 오피스텔을 내놓고 있다. 더욱이 1.5룸/투룸 오피스텔은 공간활용도가 커 선호도가 높다. 센트럴프라움 오피스텔은 신중동역에서도 교통입지가 탁월한 핵심부에 위치한다. 신중동역(지하철 7호선)까지 도보로 5분, 부천시청역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 중동IC 차량으로 7분 거리, 도보 10분 권역 내에는 대중교통편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으며 고속도로 진입도 빠르게 할 수 있다. 인근에는 외곽순환도로 중동IC와 부천종합터미널이 있어 서울과 수도권 전 지역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교통 외에도 생활편의/복합문화시설을 가까운 거리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부천시청과 부천원미경찰서 등의 공공기관부터 홈플러스,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등 대형백화점과 마트, 순천향대학병원이 위치한다. 향후 부동산자산으로서의 미래가치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부천테크노파크, 오정물류단지가 가까이에 있는 데다 약 18만 평의 부천시 영상문화단지 복합개발이 예정돼 있어 임대수요와 미래가치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장관계자는 “현재 골든 블록으로 통하는 신중동 일대 오피스텔 공급현황을 살펴보면 10년 이상이 70%. 6년 이상이 26%로 노후화된 오피스텔이 많다”며 “또 중동은 거주 인구 수 대비 오피스텔 공급량이 적어 투자희소성도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장환경이 부천 중동에 들어서는 신중동 센트럴프라움으로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시행 ㈜엔디, ㈜태남건설, 시공 ㈜태남건설, 분양보증 주택도시보증공사, 금융기관은 신한은행이 맡는다. 견본주택은 2016년 2월 개관될 예정이다. 문의 1577-9136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소자본 창업 열기 속 ‘커피식스’ 17일 서울, 18일 부산 사업설명회

    소자본 창업 열기 속 ‘커피식스’ 17일 서울, 18일 부산 사업설명회

    -“절반 가격에 맛도 좋아 부담 없이 디저트 즐겨요” 지난 해 침체된 외식업계에서 단연 두각을 보인 저가 디저트가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KJ마케팅은 오는 17, 18일 커피식스 미니, 쥬스식스의 창업설명회를 서울과 부산에서 진행한다. 특히 부산에서는 올해 첫 사업설명회로 지난 달 서울, 대구 지역 창업설명회가 예비 창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얻으며 성황리에 진행된 이후 부산에서도 창업 문의가 쇄도해 진행하게 됐다. 이에 따라 커피식스 미니, 쥬스식스 창업설명회는 서울 커피식스 압구정점(강남구 신사동 648-13번지 1,2층), 부산은 벡스코 제1전시장 216호(부산광역시 해운대구 APEC로 55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오후 2시 열리며, 사전 예약자에 한해 참석할 수 있다. (예약 및 문의 02-501-7266) 두 브랜드는 1천원대에 100% 아라비카 커피, 생과일 주스를 제공하는 파격적 서비스로 지난 해론칭 3개월 만에 60개 이상 매장을 오픈 하는 등 저가 디저트 시장의 부흥을 이끌었다. 이 같은 상승세는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계약 체결 후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매장이 약 90개로 2월 중 매장수는 150여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번화가나 대학가 등 테이크 아웃 비중이 높은 20~30대 소비자를 타깃으로 할 경우 부담을 줄이면서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예비 창업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인기 요인은 놀라울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품질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커피식스 미니는 100% 아라비카 원두만을 사용한 아메리카노(3종), 라떼(3종) 등 대중적 메뉴만으로 전문화했다. 아메리카노가 1,500원, 라떼 류가 2,500원이다.(14온스 기준) 저변이 확대된 커피 시장에서 애호가들을 상대로 싸고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며 단골 고객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쥬스식스는 까다로운 수입과일 망고를 다루던 망고식스의 노하우로 생과일 주스를 판매한다. 사과, 오렌지, 바나나, 키위, 토마토, 파인애플 등 생과일 주스가 1,500원, 2종 혼합 과일 주스가 2,000원이다.(14온스 기준) ‘1,500원 생과일 주스’라는 컨셉만으로 별다른 광고 없이도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있으며, 생과일 만을 사용해 먼저 맛을 본 소비자들이 블로그 등 SNS를 통해 “싸고 맛있다”는 입소문을 내주고 있다. 마케팅도 더욱 공격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쥬스식스는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기 아이돌 그룹 비투비의 멤버 육성재를 모델로 발탁하고 광고 촬영을 진행했다. 육성재는 가수로서의 그룹 활동뿐만 아니라 <후아유 - 학교 2015>,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 4>, <일밤 - 복면가왕>, <SBS 인기가요> 등에 출연하며 배우, MC 등 다방면으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대세남으로 꼽히는 스타다. 쥬스식스는 육성재와 함께 광고, 이벤트, 프로모션 등 다각적인 마케팅을 계획하고 있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투자 비용, 합리적 매장 운영이 가능한 점도 매력 포인트다. ㈜KJ마케팅은 망고식스를 운영하는 ㈜KH컴퍼니와 제휴하여 변화된 시장과 소자본 창업에 최적화된 설계로 두 브랜드를 내놓았다. 최소화된 규모(4~5평)에서 전문화 된 메뉴를 제공함으로써 합리적인 투자 비용으로 창업을 할 수 있다. 현재 매장 또는 기타 사업을 운영 중이거나 창업 가능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숍인숍 창업도 가능하다. 유사 업종이라면 테이블 한 두 개 대신 한 쪽에 전문화 생과일 주스 전문점 또는 커피전문점을 운영할 수 있고, 타 업종이라도 저렴한 투자비로 수익 다각화를 노릴 수 있다. 두 브랜드를 함께 묶어 ‘커피식스 미니 + 쥬스식스’의 병합 매장도 운영할 수 있다. 이 경우 각기 매장을 개설할 때보다 효율적으로 창업할 수 있고, 운영 시 에도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이점과 서로의 비수기를 보완해 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창업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디저트의 경우 혼자보다 둘 이상이 함께 즐기는 경우가 많아 취향이 다른 소비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오픈 한 매장의 경우 두 브랜드를 병합한 모델이 많다. 한편, 창업설명회는 회사 소개, 마케팅 전략, 창업 과정 등 브랜드 소개를 비롯해 최근 창업 트렌드, 카페 운영 노하우 등 조언도 얻을 수 있다. 설명회 후 희망자는 1:1 창업 컨설팅도 받을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3] 설날 아침에 퍼진 떡국을 먹으며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3] 설날 아침에 퍼진 떡국을 먹으며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 중에서도 저는 차례상에 올려 느물하게 퍼진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허랑한 탓인지 먹는 것도 그런 황당한 취향을 가진 것이겠지요. 그런 저를 보고 예전에 어머니께서는 “귀신이 운감(殞感)한 제사 음식은 원래 맛이 없는데, 지가 좋다니 그거라도 실컷 먹고 복이나 많이 받아라”시며 별 일이라는 듯 타박을 하시곤 했지요. 그렇게 떡국을 먹고 나면 으레 세배 차례가 오는데, 어른께 드리는 인삿말도 “과세 평안하게 하셨습니까” 정도로 아예 틀이 갖춰져 있어 따로 고민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올해는 철 좀 더 들어라” 딱 그 말 한마디 하시고는 괘춤에서 세뱃돈을 꺼내 나눠주시곤 했지요.  ●“철 좀 들라”는 그 지난한 가르침 그 “철 들라”는 말을 되새겨 봅니다. 이 나이에 새삼 철 들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사는 일 가만히 곱씹어보면 참 철없이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또 말 자체가 자의적이어서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기가 어렵지만 간추려 정리하자면 ‘나잇값 좀 하며 살라’는 뜻이겠지요. 개인적으로도 그 말의 함의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여기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어려운 사회적 화두와 마주친 적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군부독재 타도’나 ‘직선개헌’ 등의 화두가 지배했던 시대를 지나 지금의 ‘양극화 해소’나 ‘인구와 고령화 대책’, ‘성장과 분배’ 문제 등이 모두 국가적 난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누구도 선뜻 이거다 싶은 방책을 내놓지 못하지만, 제게 있어서는 이런 거대담론이나 사회적 화두들이 갖는 난이도가 하나 같이 ‘철 들라’는 이 난감한 화두에 한참 못 미칠 뿐이고, 또 생각해 보면 이런 고난도 화두의 해법이 어쩌면 ‘철 좀 들라’는 예전의 그 설날 덕담에 있는 일인지도 모를 입입니다. 20때, 30대를 거치면서 나도 철이 좀 들고 싶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에 골몰히 빠져도 보았고, 집착도 했지만 여전히 답이 없었습니다. 나잇값 한답시고 좀 진중하자니 마치 스스로 소외된 ‘루저’들의 인간군상 속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고, 좀 설치면서 나대자니 뒷전에서 누군가 비죽거리며 수근대는 것만 같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돈도 좀 모아 노년을 편하게 살 궁리도 해야 하지만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탓에 그런 일은 꼭 남의 일만 같고, 돈 걱정 안 하면서 ‘철 없이’ 살자니 아내와 딸들의 얼굴이 밟힙니다. 게딱지처럼 작고 낡은 집 채를 장만하지 못해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할 일이 걱정인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이미 ‘나의 것’이 아닌 ‘나’ 가족들 태우고 운전을 하다보면 더러 욕할 일이 생깁니다. 어찌나 운전을 거칠게 해대는지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거나 핸들을 꺾을 일이 종종 생기니까요. 그럴 때면 “저런 개망나니 같은 놈이…”라거나 “뭐, 저딴 자식이 다 있어”라며 나도 몰래 욕설을 내뱉곤 하는데, 그럴 때면 여지없이 아내의 타박이 날아듭니다. “그래 봐야 그 욕, 나하고 애들 밖에 안 들어. 그러려니 하면 되잖아”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아니, 내게 저렇게 하는 놈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그러겠어? 그걸 자꾸 점잖은 척 봐넘기니 세상이 갈수록 이렇잖아” 그렇게 말은 하지만, 제가 옳은 지는 확신이 없습니다.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봐도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누구는 “야, 그래도 넌 아직 젊구나. 그럴 수 있을 때 그렇게 살면 되는거지, 의기소침해서 살 필요 없잖아”라고 하고, 다른 친구는 “이젠 우리도 나이 들었어. 그러다 노상에서 젊은 애들에게 봉변 당하기도 십상이고, 걔들 해코지라도 하려고 들면 사고 나. 그냥 모르는 척 사는게 제일이야” 그렇게 우리는 하루 하루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사는 일’에 익숙해져 갑니다. 일이 없지 않지만 없다고 여기고 싶고, 실제로 일이 있어도 덮고 지나치려 합니다. 왜 그렇게 우리의 삶은 왕성한 확장성을 갖지 못하고 자꾸 위축되거나 기세를 잃어가는 것일까요. 문제는 보통의 삶,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라는 게 1년 단위, 한 달 단위, 하루나 시간 단위로 목표를 정해 두고, 그걸 지키며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인의 의지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 삶, 특히나 어딘가에 소속된 직장인이라면 집에 들어와 먹고 자는 일까지도 이미 직장의 일이고, 직장의 사람인 탓입니다. 직장의 사람은 자기 의지대로 살기가 어렵습니다. 내 삶이지만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사회에 발을 디디고 나선 그 순간, 우리의 삶은 무엇엔가 예속돼 끌려갑니다. 그 무엇이 자본일 수도 있고, 관행일 수도 있고, 법령에 근거한 규칙이나 제도일 수도 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계약관계에 의해 우리의 삶이 규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당신이 만약 아침을 거른다면, 왜 그렇습니까. 아마 너무 늦게 일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씻고 옷을 차려입고 하려다 보니 시간이 빠듯해 차분하게 식사를 할 여유가 없어 그 중 쉬운 식사를 포기하는 것이지요. 애당초 아침을 안 먹는 습관이라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밤잠을 푹 잘 수 있다면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 신문도 보고, 몸도 움직이다가 입맛이 들면 가볍게 식사를 하겠지요.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일단 일을 하고자 하는 그 순간, 당신은 그 일, 그 일의 주체와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고, 그런 일련의 예속이 당신의 삶, 구체적으로는 식습관까지 규정했다고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거칠게 운전하는 사람도, 그걸 보고 욕을 해대는 저도 그런 예속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겠지요.  ●예속된 삶이지만 자기 정체성 찾아가야 우리가 생각없이 소일하는 나날들에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철이 든다는 것은 이런 예속을 자각하는 일, 그리고 그런 예속의 삶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의미나 가치를 되새기는 일이 아닐까요. 그만 해도 좋은 일이지만, 좀 더 노력하고 애를 써서 그런 의미나 가치를 현실 속에서 유형화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우리 같은 갑남을녀가 항상 거창한 것만 꿈꾸며 살 수는 없습니다.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도 학창시절이나 20∼30대 젊은 나이에나 가능한 일이지요. 만약 누군가가 나이 들어서도 그렇게 산다면 죽는 순간까지 시행착오와 불만, 그리고 자기부정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를 두고 안고수비(眼高手卑)라고 하지요. 물론 젊다면 거대한 이상을 위해 열정을 불사르는 삶이 아름답겠지만, 이상이라는 것도 현실의 토대 위에서 키워야 하는 것이니까요.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꿈도 좋지만, 그런 이상의 허물을 벗겨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니 어마어마한 꿈보다는 실현 가능한 작은 목표를 정해 하나씩 이뤄가는 것이 보다 실질적이겠지요. 예컨대 새해에는 담배를 끊겠다거나, 음주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거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의견이 다를 때 버럭거리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겠다거나 하는 것이 그런 사례가 될 것입니다. 개개인의 삶이 각자의 삶으로 이름지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고, 운영할 수 있는 삶, 다시 말해 ‘진정한 내 삶’은 ‘각자의 삶’ 중에서도 자투리에 불과합니다. 그것 말고는 우리가 임의로 구상하고 운영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건 시대착오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자신의 것을 찾아내고 가꿔가는 것이야말로 세상이 허락한 삶 중에서 진정 내 것을 일구는 아름다움이기도 할 것이고, 그래야만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건강한 삶이란 자신을 옥죄지 않는 것일테지만, 세상이 그걸 허락하지 않으니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아주 작은 자투리를 잘 활용해 자신과 가족과 사회의 건강성을 엮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운동만 해도 그렇습니다. 다들 시간이 없어서 운동할 엄두도 못 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쁜 나날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운동할 시간 정도는 뺄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3∼4회, 회당 2시간 정도면 되니까요. 운동은 투자에 견줘 무조건 남는 선택이니 헛수고라고 여기지 말고 한번 시작해 보시지요.  ●자신의 방식으로 건강 도모하는 새해가 되길… 보편적인 건강법이 참 많습니다.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적당히 운동도 하고, 담배 끊고, 과음 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정기적인 건강검진도 추가되었지요. 다 옳은 말입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살면 건강하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자기 삶이지만, 따져보면 예속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돈이 없어서도 그렇게 못하고,바빠서도 그렇게 못하고, 돈과 시간이 다 있어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어서 그렇게 못 합니다. 지혜는 궁할 때 필요합니다. 지금 당신의 처지가 건강 따위를 살필 여력이 없다고는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지만 있다면 근무지에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장딴지와 허벅지, 허리와 복부의 근육을 단련할 수 있고, 심장 기능도 강화할 수 있으니까요. 또 매일 회사 근처에서 사 먹는 점심이라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달고 짜서 ‘입에만 좋은 음식’ 대신 덜 짜거나 야채가 많은 음식을 골라 먹기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세상만사는 생각 나름이고, 맘 먹기 나름입니다. 앞서 말한 ‘틀림없이 자기 삶이지만,따져보면 예속된 삶’이라는 현실도 생각을 바꾸면 ‘틀림없이 예속된 삶이지만, 따져보면 자기 삶’이라는 기막힌 반전의 발상이 가능한 게 또한 사람의 일이니까요. 건강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자기만의 건강 방식을 찾아서 진득하게 실천하고 지켜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나이 들수록 ‘남의 장단에 깨춤을 추지 않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올 설에도 퍼져서 느물한 떡국을 먹을 것입니다. 복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저에게 익숙하기도 하고 또 저다운 선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 방식대로 내 삶을 사는 것’의 작은 부분이라면 굶는 것도 아닌데, 좀 퍼진 떡국이면 어떻습니까. 또, 그래서 ‘철이 든 삶’이라는 이 지난한 화두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것은 망외의 소득일 터이니 기쁨이 더하지 않겠습니까. jeshim@seoul.co.kr
  • 주형환 “맏형들이 나서 달라” 대기업 “ICT 규제 확 풀어 달라”

    주형환 “맏형들이 나서 달라” 대기업 “ICT 규제 확 풀어 달라”

    예정된 시간 넘겨 2시간 격론 한전 전기판매 독점 완화 추진 AIIB 투자 기업에 지원 검토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30대 그룹 사장단과 만났다. 산업부 장관이 30대 그룹 사장단과 간담회를 가진 것은 2014년 1월 이후 2년 만이다. 각종 규제로 움츠러든 대기업의 투자를 독려해 수출 위기를 타개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전국경제인연합회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산업부 장관과 30대 그룹 사장단의 간담회는 예정된 1시간 30분을 훌쩍 넘겨 2시간가량 진행됐다. 강성천 산업부 산업정책국장은 “참석자 모두가 발언하고 주 장관이 일일이 답변해 치열하고 의미 있는 토론이 이뤄졌다”면서 “그만큼 경제상황이 심각하고 이를 돌파하겠다는 민관의 의지 역시 강하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재계 관계자는 “보통 장관이 길게 연설하면 참석한 기업은 듣고만 있거나 일부만 형식적으로 호응하는 게 보통인데 이날은 상당히 생산적인 의견이 오갔다”고 평가했다. 주 장관과 사장단은 최근 수출 위기에 대해 바깥 상황만 탓하지 말고 우리 산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주 장관은 “지난해에 이어 올 1월 수출도 큰 폭으로 줄었는데 대외 여건의 문제만은 아니다”라면서 “우리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새로운 대체산업의 창출이 늦어진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기업 관계자는 “수출 물량은 선방하고 있지만 수출 단가가 너무 낮아졌다.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업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장단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확 풀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 사업이나 신사업에 대해서는 일부를 제외한 모든 사업 추진을 허용하는 네거티브식 규제의 틀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 장관은 “민간의 과감한 투자가 조기에 성과로 나타나도록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화답했다. 특히 “30대 그룹은 우리 경제의 맏형”이라면서 “우리 경제가 어려운데 30대 그룹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와 일자리 창출, 수출 부진 타개를 위해 정부와 팀플레이해 달라”고 당부했다. 산업부는 30대 그룹의 건의사항 가운데 당장 조치가 가능한 부분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올해 안에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전력시장의 경쟁과 참여를 확대한다. 한국전력의 전기 판매시장 독점을 완화해 전력을 민간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투자하는 사업에 우리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예비 타당성 조사를 지원하기로 했다. 주 장관은 앞으로 30대 그룹과 반기별로, 주요 투자기업과는 매달 간담회를 갖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서울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가 이현세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가 이현세

    갓 태어나서 큰집에 양자로 갔다 10대의 나는 연좌제에 떨었다 20대의 나는 까치였다 30대의 나는 최고 작가였다 40대의 나는 영화를 말아먹고 심의·검열과 싸웠다 50대의 나는 내 시대는 갔다고 생각했다 60대의 나는 웹툰을 배웠고 처음 신인상도 받았다 70대의 나는 동화를 쓰고 싶다 20년 동안 ‘삼촌’과 ‘숙모’로 알아 왔던 분들이 실제로는 나를 낳아 준 사람들이었다. 나 자신의 우둔함에 질식할 것 같았고, 아무 말도 안해준 식구들이 야속했다. 방황하기를 한 달여, 그 숙모가 조용히 말했다. “친자식에게 더운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인 나만큼이나 아프겠니. 나를 봐서라도 이래선 안 된다.” 어머니는 눈빛으로 아들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이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박찬호가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자기가 이긴 게임에서 던진 공들, 경기장 입장권을 다 갖고 있는 친구예요. 미국 생활에서 여러 번 위기가 왔는데, 그때마다 자기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포기를 못했다더군요.” 화실 창가에 놓인 박찬호 투구 모습 모형(피규어)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그가 말했다. 그는 박찬호를 매우 좋아하고, 또 친하다고 했다. 그의 등번과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사러 미국 LA 다저스 구장까지 갔다 오기도 했다. “자기를 정말 사랑합니다. 자유, 독립, 자존이라는,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3가지 가치를 가장 확실히 실현한 친구죠.” 그건 어떻게 보면 자신과 닮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화실. 이현세(60) 만화가는 아무런 준비 없이 평소처럼 앉아 있었다. 눈가의 주름과 희끗희끗한 머리만 빼면 영락없는 ‘까치’였다. -‘현세는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 아직 모르나 봐요.’ 친척들이 하는 나직한 수군거림이 대형 스피커 음량으로 내 귀에 꽂혔다. 경주 시내로 나가 재수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20년 동안 ‘삼촌’과 ‘숙모’로 알아 왔던 분들이 실제로는 나를 낳아 준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참석한 문중 시제(時祭). 엄마와 숙모, 누나들 모두 나에게 비밀로 해 왔던 ‘천기’를 집안 어른들이 누설하고 말았다. 내가 갓난아기 때 큰집에 양자로 들어갔고, 생부는 내가 아홉살 때 돌아가신 삼촌이었다는 사실. 나 자신의 우둔함에 질식할 것 같았고, 아무 말도 안 해준 식구들이 야속했다. -수험서를 덮고 매일 술만 마셨다. 왜 그렇게 20년을 꽁꽁 숨겼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혼자서 끙끙 앓으며 방황하기를 한 달여. 어느날 밤 술에 취해 ‘숙모’의 품에 안겨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그 숙모가 조용히 말했다. “친자식에게 더운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인 나만큼이나 아프겠니. 나를 봐서라도 이래선 안 된다.” 어머니는 눈빛으로 아들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이다. -그 일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대학을 포기하고, 만화의 길을 걷기로 했다. 혼자서 서울로 왔다. 경주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서울은 또 달랐다. 생활은 만만치 않았고 정착할 곳도 찾아지지 않았다. 문하생으로 받아 달라고 무수한 만화작가 화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내가 제법 ‘성공’을 한 뒤 그분들 중 한 분을 뵀는데 “눈빛에 반항기가 줄줄 흘러 부담스러웠다”고 당시 얘기를 하셨다. 처음 자리잡은 곳은 순정만화로 유명한 나하나 선생님 화실이었다. 그다음은 개그만화의 하영조 선생님 화실. 액션만화를 추구했던 나에게 두 분 선생님과의 작업은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순정만화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미학과 개그만화의 익살맞은 표정 연기 등이 합쳐져 까치를 비롯한 내 만화의 등장인물 라인업이 구축될 수 있었다. -분단의 비극을 오롯이 간직한 우리 집의 가족사를 떼어 놓고는 나와 만화를 말할 수 없다. 일제 때 만주에서 살던 할머니는 해방 직후 서른 언저리에 아들 셋을 데리고 경북 울진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향이라고 해도 먹고살 게 없었다. 얼마 후 둘째 아들은 “내가 돈 벌어 오겠다”며 다시 만주로 나갔다. 그러다 38선이 그어지면서 둘째는 졸지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됐다. 가족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6·25가 터지고 북한 인민군이 남쪽까지 밀고 내려오면서였다. 둘째는 인민군이 돼 나타났다. 형제가 어울리는 모습이 마을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화근이 됐다. 인민군이 퇴각한 후 첫째 아들이 괴뢰군 부역자로 몰려 헌병대에 끌려갔다가 죽임을 당했다. 큰아들은 처형되고 둘째 아들은 월북. 할머니는 차라리 만주에 계속 있는 게 나았다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1956년 셋째 아들의 장남으로 내가 태어났다. 할머니는 나를 큰며느리에게 양자로 보냈다. 종가의 대를 잇기 위해서였다. -우리 일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전쟁 직후에 흥해(현재 포항시 북구 흥해읍)로 터전을 옮겼다. 부역자 가족이란 딱지를 달고서 울진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길러 준 어머니는 잡화점을 냈고, 낳아 준 아버지는 자갈땅을 사서 밭을 일궜다. 그 덕에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됐을 때 ‘삼촌’이 경주역의 기차 수리 공장에 취직했다. 어느 날 삼촌에게 “크레파스를 사 달라”고 졸랐다. 선뜻 돈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극장에서 서부영화를 보고 만화책을 빌려 보느라 그 돈을 다 써 버렸다. 다음날 저녁 삼촌이 집에 들러 새로 산 크레파스로 그림 한번 그려 보라고 하셨다. 엉겁결에 나는 “저한테 돈 주겠다고만 하시고 그냥 가셨잖아요”라고 둘러댔다. 삼촌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가 착각했다”며 다시 돈을 주셨다. 아들이 거짓말하는 걸 다른 가족들이 알게 되는 게 싫으셨던 것이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날 수업을 받는데 작은누나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교실로 왔다. 아버지가 일하던 공장으로 뛰어갔는데 할머니와 큰어머니, 숙모가 통곡을 하고 있었다. 앞에는 아버지가 하얀 무명천에 덮여 누워 있었다. 전기 감전이라고 했다. 삼일장 내내 나는 학교에 있었다. ‘삼촌은 나를 거짓말하는 아이로 알고 돌아가셨겠구나’ 생각하니 죄스럽기도 했지만, 억울하기도 했다. 10여년 후 그가 나의 진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그 일이었다. -학교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그럭저럭 공부를 잘해서 지역 명문인 경주중에 입학했지만 줄곧 형사들의 감시 속에 살았다. 연좌제에 걸려 인생이 막혀 있다는 생각이 점차 커져 갔다. 경주고에 들어가면서 원래 좋아했던 술이 더 잦아졌다. 방과 후에 당시 경주오거리에 있던 막걸리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열성이었던 건 미술부 활동이었다. 고1 때 유도에 빠져 2학년 때는 경북 대표로 전국체전까지 나가기도 했지만, 미술만큼은 아니었다. 특히 스케치는 어렸을 때부터 꽤 소질이 있었다. 미대 진학을 유일한 길로 생각했다. 연좌제의 공포가 나를 더욱 미술로 몰아갔다. 그러나 미대 입학원서를 쓰기 위해 안과에 가서 색맹검사를 했더니 색약 판정이 나왔다. 그때는 왜 그렇게 색약에 대해 엄격했는지. 당시 입시제도하에서 나는 미대 지원을 아예 할 수가 없었다. -유신과 군사정부 치하에서는 노래나 영화가 그렇듯 만화에 대해서도 검열이 심했다. 이를테면 갈등이 증폭되는 스토리나 격투 장면 같은 게 들어가는 그림은 허용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액션만화를 보면 커서 데모를 하기 쉽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스포츠 만화로 방향을 돌리고 ‘공포의 외인구단’을 처음 내놓은 것이 1982년. 26세 때였다. -내가 만화를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캐릭터다. 날 대신해 움직여 줄 수 있는 아바타만 구현하면 그다음부터 소재나 스토리는 부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스토리 궁핍을 느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게 필생의 캐릭터인 ‘까치 오혜성’이다. 한(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의지로 부딪쳐 결국 파괴되는 인간이랄까. 가족사 때문에 트라우마와 핸디캡에 시달려야 했던 성장기의 아픔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기도 하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전에도 나는 대본소(만화방) 시장에서 꽤 인지도 있는 작가였다. 하지만 외인구단은 기존 작품과 차원이 달랐다. 어린이 만화만 있던 시절, 극단적이고 상처투성이인 주인공 영웅이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고난에 시달리다 결국 이를 극복하지만 최후에는 처절히 파멸하는 이야기의 만화는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대략 한 달에 한 권씩 2년간 30권을 내놨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본소의 맨 앞칸에는 언제나 외인구단이 자리잡았다. ‘까치’를 이름으로 내건 만화방들이 속속 생겨났다. -나이 서른 전에 최고액을 받는 작가가 됐는데, 권투(‘지옥의 링’)든 시대극(‘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이든, 페미니즘(‘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이든 뭘 그려도 잘 팔렸다. ‘남벌’은 서울대 신입생들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로 선정됐다. 만화가 뜨니 나도 스타가 됐다. 맥주 등 광고 CF에까지 나올 정도였다. 돈도 정말 많이 벌었다. 돈이 나를 거쳐 밖으로 흘러나가는 게 문제였지만. 마흔을 갓 넘긴 1997년부터는 세종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나의 40대는 ‘전쟁’의 시기였다. 첫 번째 난관은 1996년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아마게돈’의 대실패였다. 한동안 영화계에서 최고의 손실액 기록을 보유했을 정도다. 총감독으로서 투자를 담당했던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손해를 많이 봤다. 돌이켜보면 그건 영화도 아니었다. 영화 문법도 모르는 총감독의 오만과 무지 탓이다. -두 번째 난관은 ‘천국의 신화’ 필화 사건이다. 대하 역사물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서른 살 때였다. 미국에 가서 광활한 그랜드캐니언을 마주하고 나니 ‘내가 왜 스포츠 만화나 그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여년간 ‘환단고기’ 등 역사서들을 공부하고 ‘100권’을 목표로 1996년 1부 3권을 내놨다. 그러나 2년 뒤 청소년 음란물 시비로 검찰에서 기소하고, 법원이 3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터무니없는 심의와 검열에 내가 고개를 숙이면 어느 작가가 이겨 낼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은 것은 6년이 흐른 뒤였다. 당시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1남 2녀)이 끝까지 아버지를 믿어 준 데 대해 지금도 고마움이 크다. -50대가 되니 세상이 많이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인기 만화 작가 ‘이현세’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엔 ‘내 시대는 갔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지만 이게 당연한 세상의 섭리 아닌가.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그려 큰 인기를 얻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표현이 좀 과한가?(웃음) 완벽하다고 여긴 작품은 없다. 그리고 원래 나는 ‘옥에 티’가 많은 작가다. ‘공포의 외인구단’에도 같은 사람인데 야구 글러브가 왼손, 오른손 바뀌어 그려진 장면들이 있다. 나는 쓰레기통 속에서 수많은 ‘가짜 꽃’을 피우다가 언젠가는 한 송이 진짜 꽃을 피우는 게 작가라고 여긴다. 내 작품은 아직도 쓰고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던질 습작의 연장선상이다. 난 천재형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부모님께 극단적인 집중력과 낙관주의를 물려받았다. 한창때는 한번 그리기 시작하면 하루이틀 꼬박 밤을 새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덕분에 마감은 종종 늦었지만 펑크를 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남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배가 고프고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생각했을 정도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천국의 신화’ 6부를 시작했다.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도록 수위를 조절했지만, 나로서는 무척 감사한 일이다. 작년 말에는 네이버에서 ‘웹툰 신인상’까지 받았다. “60 평생에 처음으로 신인상을 받았다”고 하니 후배 작가들이 다들 자지러졌다. -지금 연재 중인 천국의 신화는 10년 정도 더 해야 한다. 6부는 고조선 멸망으로 끝난다. 이후 여러 민족들이 군웅할거했던 시기를 지나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다. 그 뒤에는 나도 70대가 된다. 그때는 동년배를 위한 동화를 그리고 싶다. 아니면 손주를 위한 동화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큰아이가 30대 후반인데, 이 녀석들이 셋 다 결혼을 안 했다는 거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만화가 이현세(60)씨는 한국 만화의 ‘오늘’을 있게 한 대표적인 작가다. 1979년 ‘저 강은 알고 있다’로 데뷔한 그는 1982년 ‘공포의 외인구단’을 통해 운명에 맞서는 열정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역동적인 그림체로 선보여 만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나이 불과 26세였다. 이후 ‘지옥의 링’(1985), ‘야수의 전설’(1985),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1988), ‘아마게돈’(1988), ‘블루엔젤’(1989), ‘폴리스’(1992), ‘남벌’(1994), ‘천국의 신화’(1997) 등 히트작과 문제작을 내놓으면서 ‘불온’과 ‘미숙’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만화를 대중문화의 중심부로 격상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초로(初老)의 나이에도 ‘천국의 신화’ 6부를 웹툰에 연재하는 여전한 ‘현역’이다. ▲경주중·경주고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1997~) ▲한국만화가협회 회장(2005~2007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2009~2012년)
  • [서울광장] 경제 새 길에 정치권이 재를 뿌려서야/최용규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경제 새 길에 정치권이 재를 뿌려서야/최용규 편집국 부국장

    지금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잘사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개인에 따라 약간의 무리를 했을 수는 있겠지만 작년 한 해 동안 1900만명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여유가 없고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가 궁핍을 벗어던지고 이만큼 살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 경제를 이끈 초일류 기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가의 삼성 휴대전화가 애플과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현대차가 중국 대륙을 누비며 질주할 때 한국의 부(富)의 두께는 점점 두터워졌다. ‘코리안 드림’의 출현이 결코 낯설지 않았으며, 비록 동남아 국가들이기는 하나 이들의 부러워하는 눈길은 우리에게 자긍심을 심어 줬다. 그러나 2016년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10여년간 이어져 온 성공 신화가 막을 내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스마트폰, 반도체, 가전, 철강, 조선 같은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는 세계 1등 제품이 있었기에 밖에 나가 큰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급성장과 침체 일로인 세계 경기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앞서 언급한 우리의 주력 수출품 중에서 중국과 비교해 확실히 비교 우위에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제품은 거의 없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기술력이 이미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고, 가성비는 밀리고 있다. 자원이라고는 사람이 다인 우리로서는 시장을 지켜 내거나 신(新)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유일한 생존 조건이다. 우리가 핀란드의 노키아나 일본의 소니처럼 과거의 영광을 읊조리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만큼 실패에 관해서는 논할 가치조차 없다. 생존과 융성에 관한 답을 찾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며 그 시작은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보름 전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인터뷰했을 때다. 단도직입적으로 “(우리 조선) 희망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희망’이라는 단어에 ‘그렇다’고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는 게 그의 변이다. 그는 조선산업의 새 길을 이렇게 제시했다. “유럽이 일본에 밀리고, 일본이 한국에 먹힌 것처럼 중국으로 조선산업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이유는 조선산업이 노동집약적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군함, 유럽이 크루즈선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보유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무기로 범용 선박이 아닌 고급 선박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주력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는 비단 조선산업만이 아니다. 철강,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스마트폰은 삼성이 초일류 기업이 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미래의 삼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세계 산업 흐름을 볼 때 현재는 구산업이 신산업으로 대체되는 일종의 전환기이자 격변기이다. 스마트폰과 반도체로 대표되는 삼성이 바이오로 방향을 틀었듯이 다른 대기업들도 한시바삐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나서야 할 때다. 우선 기업이 신산업에 과감하게 뛰어들도록 하려면 대외적인 변수 못지않게 대내적인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한다. 그런데 1월이 다 가도록 30대 그룹 가운데 투자와 고용 계획을 발표한 곳은 신세계와 한화그룹 2곳뿐이다. 다른 데가 아닌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인 삼성, 현대차를 비롯해 SK, LG 등 4대 그룹이 신성장 산업을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속도를 내기는커녕 이를 뒷받침할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데는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는, 즉 리스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하는 짓을 봐라. 어떻게 투자 계획을 발표할 수 있겠나?” 한 대기업 간부의 말이다. 투자에 나서야 할 기업이 눈치만 보고 머뭇거린다면 위기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꼴이다. “우리나라의 진짜 위기는 내후년(2018년)에 올 수 있다고 보고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을 짜고 있다. 올해(총선)와 내년(대선) 선거를 거치면서 위기 요인을 제거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에 치명적일 것이다.” 며칠 전에 만난 금융권 임원의 경고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ykchoi@seoul.co.kr
  • “인건비 절감 목적 비정규직 확대해선 안 돼”

    “인건비 절감 목적 비정규직 확대해선 안 돼”

    지속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 준수 당부 “일반해고는 최후 수단 오남용 말아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28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30대 기업 인사노무담당임원(CHO) 간담회를 갖고 현안인 노동개혁과 관련해 “인건비를 절감할 목적으로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 운영의 유연성 차원에서 어느 정도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도 “9·15 노사정 대타협 합의 내용인 상시·지속적 업무에 가급적 정규직을 고용한다는 원칙을 준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장관은 올해 ‘비정규직 목표관리 로드맵’을 마련하고,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모든 사업장의 근로감독 과정에서 비정규직 차별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또 “일반해고는 현저히 업무 능력이 부족한 경우처럼 법·판례의 기준과 절차에 따라야 정당성이 인정되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지침 내용을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등 오남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고소득 임직원의 임금 인상 자제로 인한 절감 재원이 확실히 청년 채용 확대에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며 “올해 정년 60세 시행과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청년들이 그 어느 때보다 일자리 때문에 고통이 클 것이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가능한 한 많은 인재를 채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대해서는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총파업은 명백히 불법이며 기업들도 법과 원칙이 확립되도록 하는 데 동참해 달라”면서 “고용 세습 등 잘못되고 청년을 절망하게 하는 단체협약의 독소조항도 해소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역외탈세 사주 일가·기업 고강도 세무조사

    역외탈세 사주 일가·기업 고강도 세무조사

    “사주 일가가 해외에 현지 법인을 세운 뒤 편법 거래로 자금을 빼돌린 뒤 제멋대로 쓰다가 과세 당국에 포착됐다. 조세회피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가공 비용을 보내거나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수출하는 방식으로 회사돈을 빼돌린 사례도 있었다.” 국세청은 오는 3월 역외소득·재산 자진신고 기한 마감을 앞두고 역외탈세 혐의가 짙은 기업과 개인 30명을 대상으로 전국 차원의 동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세무조사에서는 금융거래 추적 조사와 ‘포렌식 조사’(삭제된 전산데이터 복구와 컴퓨터 암호 해독 등 고도의 전산 기법을 활용한 세무조사 기법), 국가 간 정보교환, 거래처 조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된다. 특히 사주 일가에 대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한·미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FATCA)을 통해 미국에 있는 계좌 정보도 활용할 수 있다. 내년엔 영국과 독일, 케이만제도 등 세계 53개국의 해외 계좌 정보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조사 대상에는 국내 30대 그룹의 계열사 관계자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기본법상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세무조사 대상을 확인해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역외 탈세자 총 223명을 조사해 모두 1조 2861억원을 추징했다. 2012년 8258억원, 2013년 1조 789억원, 2014년 1조 2179억원으로 매년 증가세다. 국세청 측은 “이번에 적발된 사례 가운데 A씨의 경우 선친이 해외 신탁회사를 통해 보유하던 미국의 고급 주택과 금융자산에 대해 상속세를 신고하지 않고 투자소득을 차명으로 관리하며 호화 생활을 즐겼다”면서 “하지만 결국 꼬리가 밟혀 600억원이 넘는 돈을 추징당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고의적인 세금 포탈 사실이 확인되면 세금 추징은 물론 관련 법에 따라 형사고발할 방침이다. 다만 아직 신고하지 않은 역외소득과 재산이 있는 납세자는 오는 3월까지 자진 신고하면 가산세와 과태료를 면제받는다. 조세포탈 등의 범죄 혐의에 대해서도 최대한 관용 조치가 내려진다. 한승희 국세청 조사국장은 “앞으로 해외에 소득이나 재산을 숨기는 역외 탈세 분야에 세무조사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면서 “국가 간 금융정보 자동교환 확대로 역외 탈세자 적발이 갈수록 쉬워지는 만큼 아직 신고하지 않은 소득과 재산이 있다면 오는 3월까지 자진 신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대신증권 고객님 상담하세요, ‘신입 PB’ 김○ ○변호사입니다

    대신증권 고객님 상담하세요, ‘신입 PB’ 김○ ○변호사입니다

    앞으로 증권사의 일선 지점 창구에서 변호사에게 자산관리 상담을 받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증권사 영업맨’ 변신을 시도하고 있어서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신증권은 최근 전문직 프라이빗뱅커(PB) 10명을 채용했다. 이번에 선발된 PB들은 변호사 3명과 회계사 4명, 세무사 3명으로 조만간 일선 영업지점에 배치돼 ‘부자 고객’을 대상으로 한 자산관리 상담 업무를 맡게 된다. 대부분 30대 초중반인 이들은 로펌, 회계법인, 세무법인 등 해당 자격 분야의 경력을 갖고 있다. 이 중에는 증권맨 출신으로 전문직 자격증을 따고 경력을 쌓은 뒤 다시 증권업계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 일반 지점의 PB 담당자로 전문직을 대거 채용한 것은 대신증권이 증권업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으로, 금융권 전체에서도 이례적이다. 대개 금융투자회사에서 이른바 ‘사’(士) 자가 붙는 전문직 인력은 본사에서 경영전략 수립이나 법무·세무 자문, 상품 개발 등을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 영업 전략을 양분화하는 증권업계 추세와 맞물려 전문직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다수의 대중 고객층에 대해선 사람 대신 컴퓨터가 자산관리와 상담 업무를 제공하는 ‘로보어드바이저’와 같은 자동화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반면 수수료 부담을 느끼지 않는 자산가들에게는 더욱 고급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재테크 상담은 물론 법률, 회계, 세무 등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갖추는 것이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