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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혁으로서의문학과역사](46)이산하 장편연작시’한라산’

    1980년대는 필화의 활화산 시대였다.연속적으로 터졌던 각종 필화 중 가장첨예했던 사건이 장편 연작시 제1부 ‘한라산’이었다.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제주도에서,지리산에서,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민족해방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전사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는 헌사를 앞세운 이 시는 ‘사회과학 전문 부정기 간행물’을 표방한 ‘녹두서평’ 제1호(1986.3 발행)에 게재되었다. “독자 대중은 우리의 사회 현실과의 치열한 대결과정을 통해 구체화된 논의를 담은 출판물을 원하고 있다.독자 대중의 그러한 요구는 우리의 사회현실을 추상적이거나 반역사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명백한 거부이고,자족적이고 현실에 대해 무기력한 아카데미즘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며,나아가 타국의 이론에 대한 일방적인 승인의 강요가 아니라 그것의 우리 사회 현실에의 올바른 적용에 대한 요구이다”는 기치를 내건 ‘녹두서평’은 특집으로‘민주주의 혁명과 제국주의’를 다뤘는데,이것은 당시 한국의 군부독재 정권 타도를 위한 기본과제로 보았다. 군부독재와 제국주의론을 결부시켰던 이 특집은 특히 8.15 직후 미군정의 성격 규명에 초점을 맞춰 분단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폭로코자 시도했으며,그연장선에서 장시 ‘한라산’도 자리매김하도록 배치되었다.중요 논문보다 우대하여 가장 앞에 ‘한라산’을 실었던 편집 의도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연작시는 곧 미군의 분단 한국 침탈사 고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 제1부 ‘서시’ 1∼4에서는 “이 땅은 아메리카의 한 주”란 구절로 알수 있듯이 미국에 대한 비판정신이 관류하고 있다.제1장 정복자 1∼5에서는8.15 직후 진주한 미군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침략 야욕을 규탄하고 있다.제2부 ‘폭풍 전야’ 1∼5에서는 1945년 9월28일 미군의 제주도 진주와,47년 3.1절 행사 때 희생 당한 한 소년,그리고 총파업과 도민들의 결연한 투지를노래한다. 제3부 ‘포문을 열다’ 1∼4에서는 4.3항쟁 횃불이 오르면서 터진 혼란상을점묘파(點描派)식으로 엮어 나간다.마지막 제4장 ‘불타는 섬’은 “미고문단 초대 단장이자 팬터곤 내에서도 극우파로 이름 높은 윌리엄 L.로버트 준장을 현지에 파견하여,대규모 중원부대를 미군 상륙함정으로 섬의 해안 곳곳에 대놓고,미국식 빨갱이 토벌전을 개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제주 항쟁의 전설적 인물인 김달삼과,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열 중령은 “일본 복지산 예비 육사 동기”였던 사실.둘은 민족 내분을 멈추고자 극비 회동(4.28)을 갖고 전격적인 합의에 이르러 바야흐로 제주항쟁은 평온하게 마감될 전망이었다. 그러나 5월 6일자로 김익열은 해임,6월 18일 여수 제14 연대장으로 전임되므로써 4.28 평화안은 사그라진 채,김익열의 후임으로는 제11연대장 박진경이부임,“모두 불사르고/모두 죽이고/모두 약탈하는” 삼광(三光)정책과,“불태워 없애고/죽여 없애고/굶겨 없애는” 삼진(三盡)정책을 폈다.이 처참한진화 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박진경의 암살이 뒤따랐고,그 범인은 모 하사관의 배신으로 잡혀 수색에서 처형 당했다는 데서 연작시는 끝난다. 제주 4.3항쟁을 다룬 많은 소설과 시 중 이산하의‘한라산’처럼 비극 그자체를 미국의 개입으로 못박는 경우는 없었던 터라 이 잡지는 이내 호된 홍역을 치뤘다.즉 강력한 단속과 시인의 구속이 잇따랐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김삼웅 칼럼]‘양金’ 화해협력 약속지켜라

    “이제 우리 두 사람은 국민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지금 권력자들에 의하여 우리를 서로 이간 분열시키려 하는 의도가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음을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유신체제 아래서 서로 협력하여 18년의 박정희정권을 종식시켰듯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상호협력하여 나라의 민주화를 마침내 이룩하는 데 헌신할 것입니다.우리는 언젠가‘두 사람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협력하였다’는 국민과 역사의 평가를듣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삼고,더불어 함께 싸워나가고자 합니다.따라서우리는 이 시간부터 우리에 대한 분열적 표현과 구별을 거부합니다.”1985년 3월1일 김대중·김영삼 공동의장(민추협)은‘3·1절메시지’를 통해 3·1정신으로 군사독재와 싸우자는 궐기의 내용을 담으면서 상호협력을 다짐했다. 두 사람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기회있을 때마다‘민주화 이후’까지도 합심협력하겠다고 국민과 역사 앞에 약속하고 다짐했었다. 프랑스‘르 몽시(Le Moncie)’는 양김이 분열하여 각각 대통령후보에 나섰을 때인 1987년 12월16일자에 이를 비판 풍자하는 만화를 실었다.거대한 강물 위에 놓인 다리가 두 쪽으로 동강난 사이에 한 쪽은 DEMO라 쓰인 피켓을들고 다른 한 쪽은 CRATIE라 쓰인 피켓을 든 체 추종자들과 끊어진 교각을향해 걷고 있는 내용이었다. 약속,헌신짝 버리듯해서야“남북통일 등 한민족 화합의 시대로 들어가는 마당에 지역차별 의식이 아직도 온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현상이다.망국적 지역색 타파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김대중),“언제부터인가 우리들 의식 속에는 배타적 지역감정이심화돼 분열과 대립이라는 우려할 만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지역갈등을 과거사로 돌리고 번영과 화합의 발길을 내딛기 위해 함께 협력하겠다.”(김영삼) 91년 4월1일 양김은 대구의‘나라를 위한 기도회’에 참석,지역갈등 해소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했던 것이다.여기서‘함께’란 양김 스스로를말한다. 양김은 협력하여 군정을 종식시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통령에 당선되어한 분은‘현직’,한 분은‘전직’에 있다.그러나‘민주화 이후’까지도 협력하겠다던 약속은 깨진 지 오래이고 지금은 분열과 갈등이 심화된 상태이다. 지난 16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마민주항쟁 20돌을 맞아부산 민주공원 개막식에 나란히 참석하여 치사와 축사를 했다.외형적으로는지극히 정상적인 이 행사가 실제로는 양김의 갈등과 적대라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비쳐 많은 국민을 속상하게 만들었다. YS는 행사에 앞서 삼성자동차 공장과 모교 방문 등 지지들에게‘역적’‘유신 망령’ 등 극한 용어를 사용하며 DJ를 공격했다.얼마 전에는‘독재자’란 표현도 서슴지 않는 등 적대감을 보여왔다.DJ의 계속되는 화해 제스처에도YS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양김의‘사랑과 미움’의 관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그렇지만‘민주화’공로의 상당 부분을 양김에게 돌리는 데 인색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왜 저런 관계가 되었을까.YS의 최근 언행은 신중하지 못하다는 것이 많은 국민의 생각이다.자신의 정부가 망쳐놓은 국가경제를 살리는‘동지’에 대한 지원과 격려는커녕 삼성자동차문제를 지역감정으로연계시키려 한점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자유메달’을 받는 DJ에게‘독재자’란 표현,지역갈등을 자극하는 발언 등은 양김관계 이전에‘전직’으로서 어른답지 못한 언행이란 평가다. 지역갈등 해소에 협력을정부 또한 YS정부의 하나회 청산과 쿠데타세력 단죄 등 업적을 평가하면서화해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무엇보다 양김은 지역갈등 해소의 약속을 지켜야한다.영·호남 지역주의는 박정희정권의 산물이지만 양김 또한 피해자인 동시에 수혜자인 것도 사실이다.그렇다면 현직과 전직이 힘을 모아 지역갈등을 해결하는 노력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정치적 국경선’처럼 깊어가는 동서갈등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양김의 협력이 중요한 것은‘민간정부’의 실패는 과거 군사정부에 명분을 주게 된다는 점이다.그리되면 민주화운동의 명분을 잃게 된다.양김이역사와 국민을 의식하면서 화해와 협력의 대국민 약속을 지켜야 할 소이연이기도 하다. 김삼웅 주필
  • [독자의 창] 일장기 닮은 무궁화 造花에 씁쓸

    지난 3월1일 3·1절 기념행사장.3부 요인과 귀빈들의 가슴에 단 무궁화 조화(造花)를 보고 분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무궁화가 가진 생화 자체의 한시성(100일꽃) 때문에 나라의 상징인 무궁화조화를 행사에 사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3·1절 행사는 일제의 잔학상과 폭력을 만 천하에 알리는 행사다.그런데도 마치 일본국기인일장기처럼 둥그렇게 물들인 꽃을 무궁화라고 착용하고 있는 참석자들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외국인들도 잘 알고 있는 무궁화인데 자기나라국화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지 심히 부끄러운일이다. 나라꽃 무궁화의 생명은 단심(丹心)의 표현에 있다.힘차게 뻗어나오는 방사맥은 우리의 민족성을 상징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심도 없고 볼품도 없는 일장기와 같은 것을 달고 있는 모습은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인식부족에서오는 것으로 안타까운 마음 어쩔 수 없다.무궁화를 사랑하는 한 국민으로서도저히 바라만 볼 수 없다.‘나라꽃 무궁화’.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만든무궁화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자.후손들에게,청소년들에게 올바로 알려주어야하지 않을까. 김해 국제공항에도 터무니없는 무궁화가 공항내에 장식돼 있다.국제공항에정체불명의 나라꽃이 등장해서야 말이 되는가.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다.정부부처중에 국기·국가·국화를 담당하는 곳이 있을 것이다.담당자들이 좀더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 [대한포럼] 분단책임국의 結者解之 노력

    金大中대통령은 제80주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 있는 강대국들이 한반도 평화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분단상태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대립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한반도분단에 상당한 관련이 있는 강대국들이 책임을 통감해서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金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천명은 한반도 분단에 직·간접 책임이있는 당사국들이 한반도 평화보장과 통일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원칙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특히 정부수립 이후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분단 책임론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金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한반도 분단의 책임론을 공식제기하고 능동적인 협조를 촉구한 것은 시대적 상황에 비춰볼 때 상당한 의미를 함축한 것으로 평가된다.첫째,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분단에 책임 있는 강대국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우리 민족이 분단 때문에 겪고 있는 유형·무형의 고통을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을 성취하는 과제는 분단에 책임 있는 강대국들이 결자해지 원칙에서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2차대전 종전처리 과정에서 외부의 힘에 의해 분단국이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우리민족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의 본질도 모른 채 분단을 맞게 됐고 동족상잔에 이어 세계사에 유례없는 민족적 고통이 계속되고있다.우리민족이 겪고 있는 이같은 비극적 분단의 실체는 한반도에 대한 패권을 추구했던 강대국들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으므로 강대국에 대한 책임문제를 제기하고 협조적 노력을 제안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金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 대목으로 평가된다. 둘째,앞으로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확실히 행사하겠다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金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햇볕정책은 아직 남북관계 정상화의 기본틀을 확실히 마련하지는 못한 상태다.그러나 분단 반세기 만에 금강산관광시대를 개막시켰고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증대시키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한 사실은 매우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국민의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관계개선을추구하는 정책방향을 큰 틀로 잡고 있다.국민정부의 2기 대북정책 방향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포괄적인 틀에서 운영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金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은 한반도를 둘러싼 각종 현안에 대한 대증요법식 단기적 해결책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이라는 햇볕정책의 큰 틀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함으로써 북한 스스로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이같은 대북정책 방향은 金대통령이구상하고 있는 ‘일괄타결’에 접근하는 전향적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해법은 모든 대북현안과 북·미수교,북·일수교 등 북한의 관심사를 함께 푸는 일괄적 타결방안에도 효과적으로 접근할수 있다.따라서 金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미·일에 대한 협력을 공식제의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판단된다.또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미국에 포용정책 동참을 설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북·미관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회의 보수주의 인식과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인식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또한 이같은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부의 의회·행정부간 상호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미·일의 적극적 협조가 수반되면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라는 민족적 과제는 우리 정부 힘으로 충분히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張淸洙 논설고문]
  • 어제 3·1절 80돌 행사 다채

    1일 전국 곳곳에서는 80년 전 일제의 압제에 항거해 독립만세를 외치며 우리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렸던 선열들의 높은 뜻을 기리는 행사가 펼쳐졌다. 충남 천안시 목천면 독립기념관 내 ‘통일 염원의 동산’에서는 독립운동유공자와 이산가족 및 광복회원 등 33명이 ‘통일 염원의 종’을 33번 타종했다.병천면 주민들은 柳寬順열사가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아우내장터 근처의柳열사 추모각을 참배했다. 서울시는 광복회원 및 독립유공자 유족이 참석한 가운데 보신각 타종식을가졌으며,탑골공원에서는 국악인들의 판소리,원로 가수들의 흘러간 노래 공연 등이 열렸다. 마을 주민들이 집단 학살된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지에서는 23위의 영령을 추모하는 연합예배가 열렸으며,근처 발안장터에서는 만세시위가 재연됐다. 부산역 광장에서는 천주교·기독교·불교단체 등으로 구성된 ‘범종교 3·1정신 현창운동 부산추진위원회’ 회원 2,000여명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부산진역까지 행진했다.‘범종교 3·1정신 현창운동 대구지역협의회’도 대구시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에서 기념식을 갖고 가두행진을 했다.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 있는 의병장 毅菴 柳麟錫선생 묘역에서는 白凡 金九선생이 柳선생 묘소를 참배한 뒤 남긴 고유문 친필이 담긴 ‘金九선생 고유문비’ 제막식이 있었다.
  • 金대통령 3·1절 기념식 치사

    金大中대통령은 1일“한반도 분단에 책임 있는 강대국들이 한반도 평화에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제80주년 3·1절 기념식에서“우리는 이제 미·일 등과 긴밀하게 협의하고,협력하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켜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는 광복회원과 3부 요인,시민대표 등 4,000여명이 참석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남산 장충공원에서 열린‘3·1독립운동 기념탑’제막식에 참석,“무엇보다 의식개혁과 국정 전반의 총체적인 개혁을 통해 과거의 적폐와 악습을 말끔히 청산해야 된다”며 강력한 과거 적폐척결 의지를 표명했다. 한편 이날 3·1운동기념사업회가 서울 탑골공원에서,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도 같은 장소에서‘범종교 3·1절 기념식’을,‘민중의 기본권보장과 양심수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역광장에서‘3·1절 반외세 민족자주정신 계승대회’를 갖는 등 3·1정신을 추모 계승하기 위한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 3·1절 첫돌기념식 사진 찾았다

    3·1절 첫돌 기념행사의 감격과 당시 행사장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해주는사진자료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백범 서거50주기를 맞아 본사 주관으로 백범김구선생의 전집을 편찬하고 있는 백범 김구선생전집편찬위원회(위원장 尹炳奭)는 지난 1월 대만의 중국국민당 당사위원회에서 임시정부 관련 자료를 조사하던중 1920년 3월 1일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3·1의거 1주년 기념식 사진사본을 입수,28일 공개했다. 가로16㎝×세로12㎝ 크기의 이 사진은 3·1의거 1주년을 맞아 상하이 민단(民團)에서 개최한 기념식 장면으로 장소는 상하이시내 정안사로(靜安寺路)소재 올림픽대극장이다.79년 전에 촬영한 사진임에도 촬영·보존상태가 모두극히 양호하다.촬영자는 임정 관계자나 상하이거주 교민으로 추측되나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보도에 따르면,李東輝 국무총리를 비롯해임시정부 요인들이 대거 참석한 것으로 나와 있어 사실상 임시정부가 이 행사를 주관한 것으로 보인다.당일 오후 2시 상하이 대한민단장 呂運亨의 사회로 시작된 기념식은 독립선언서 낭독,국기게양에 이어 임정요인들의 축사가이어졌고 행사후에는 자동차로 상하이시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날 행사장에는 ‘대한독립선언 기념’이라는 현수막과 대형 태극기를 교차로 내걸었으며 미국·영국의 국기와 함께 천장에는 만국기를 게양했다.또1·2층의 행사장 중 1층은 민단 관계자와 상하이거류 한국인들로 가득찼고,2층에는 외국인 수 백명과 ‘대륙보(大陸報)’등 영자지의 취재기자들도 참석했던 것으로 나와있다.당시 3·1절 기념식을 이처럼 성대하게 치를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조계(租界)내에 있던 임시정부가 신변안전 등을 보장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며 최초의 3·1절 행사기록 사진인란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이날 상하이시내에서 한국교민들이 밀집돼 있던 프랑스 조계지역은 동포들이 내건 태극기가 물결을 이뤘고 ‘독립신문’은 이 날의 감격을 “우리민족의 부활일인 오늘 하루를 무한히 기쁘게 축하하자”고 적었다. 鄭雲鉉 jwh59@
  • 3·1운동-臨政 수립 80돌/총독부,해외 3.1행사까지 탄압

    일제하 조선총독부는 해외 독립진영에서 개최한 3·1절 기념행사를 극비에감시,탄압한 사실이 총독부 문서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본사 취재팀이 최근 일본 외무성사료관에서 단독입수한 ‘국외(國外)에서소위 독립선언 기념일의 상황에 관한 건’이라는 비밀문건에 따르면,일제는조선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3·1의거 기념행사를 치밀하게감시,탄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정(大正)14년(1925년) 3월 31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명의로 작성된 이문건(高警 제1090호)은 총 20페이지로 구성돼 있으며 당시 일제가 중국·만주·노령(露領.러시아령)·미국 등지에서 열린 3·1의거 기념행사를 철저히감시,분석한 것으로 나와있다.총독부는 문건에서 “재외 불령선인(不逞鮮人. 독립운동가)들은 매년 3월 1일을 소위 독립기념일로 하여 축하연 또는 기념식 명칭으로 집회를 가져왔다”면서 “금년에도 지나(支那.중국) 각지에서행사를 가졌는데 그 규모는 점차 감퇴하고 있다”고 밝혔다.또 문건에는 각지역에서 개최된 3·1절 기념식의 행사일정·참가자 인원·주요 발언내용 등 세밀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중국인이나 한국인 밀정을 동원했던 사실도언급돼 있다. 3·1의거 6주년을 맞아 상하이임시정부와 의정원은 이날 오전 10시 상하이시내 포석로(蒲石路) 신민리(新民里) 제14호에서 朴殷植국무총리,崔昌植의정원 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청년동맹회는 별도로 정오부터 망지로(望志路) 소재 사무실에 모여 기념식을 갖고는 “애국선열의 뒤를 따라 맹진(猛進)하자”고 서약하였다.또 상하이교민단은 오후 3시 민국로(民國路) 침례교회 예배당에서 500여명이 모여 별도의 집회를 가졌다.참석자들에게는 청년동맹회가 제작한 ‘3월 1일’이라는 ‘불온유인물’을 나눠주어 독립의식을 일깨웠다.이날 일경측은 참석자들이 행사후 일본영사관에 폭탄을던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중국인 밀정 정자향(程子鄕)을 행사장에 침투시켜 애국인사를 체포하는 장소로 악용한 것으로 나와있다. 같은 날 난징(南京)에서는 조선인 70여명이 동명(東明)학원에 모여 기념식을 가졌는데,鮮于爀은 연설을 통해 “분투 7년이지나도록 독립을 쟁취하지못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로는 (일제)파괴사업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한편 베이징(北京)에서는 한교(韓僑)동지회와 고려학생회 공동주최로 북경대학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여기서도 ‘말썽’이 생겼다.서울출신 왕동춘(王桐春.본명은 徐昌鉉 또는 徐浩錫)이 일제의 밀정혐의를 받고 행사도중에퇴장당한 것. 또 간도(間島)지역에서는 이날 독립진영에서 대규모 시위와 함께 일본영사관 습격과 일본인 요인암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돼 일·중 양국경찰이 대거 동원돼 삼엄한 경계를 편 사실도 나와 있다.중국지역에서는 이밖에 텐진(天津)·지진(吉林)등에서도 행사가 열렸다.천진에서는 당일 오전9시 교민단장 金政·李壇海·申聖文등 3명이 태극기로 장식한 자동차를 타고 미리 준비한 인쇄물 3천 매를 영·불·독 등 각국 조계(租界)지역에 살포하였다.미국 하와이에서는 당일이 일요일이어서 하루 미뤄 3월 2일 교민단 등에서 기념행사를 가진 것으로 나와있다. 한편 총독부는 이 문서를 일본 내각 각부서와 해외 공사관,법원·경찰부서,각 도지사 등에게 발송하였다.이는 총독부가 해외 독립진영과 교민들의 3·1절 기념식을 특별히 감시,탄압하기 위해 일제 공권력 기관을 총동원했음을보여주고 있다. 韓詩俊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일제가 해외에서 열린 3·1의거 기념행사를 감시,탄압한 것은 이를 계기로 조선인들이 또다른 ‘거사’를 할 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이라며 “3·1정신은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투쟁의 정신적지주였다”고 평가했다.그러나 이 문건에는 행사당일 특별히 독립진영과 일경측이 충돌한 사례는 언급돼 있지 않다.이는 대부분의 기념행사가 옥내에서 치러진데다 일경의 감시가 심해 대규모 집회나 시위는 불가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鄭雲鉉 jwh59@
  • 종교인들 ‘제2의 3·1운동’ 펼친다

    80년전 3.1절에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듯이 종교지도자들이 손을 잡고 ‘제2의 3·1운동’을 펼친다. 국내 7대 종교지도자들의 모임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3·1운동 80주년을 맞아 ‘범종교 3·1정신 현창(顯彰)운동’을 펼치기로 하고 보성사(普成社)기념조형물 건립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종교지도자협의회 지덕(池德) 대표회장은 1일 “3·1 독립선언서는 2천만우리겨레의 염원과 시대정신을 함축한 민족의 성전(聖典)”이라면서 “우리는 33인 민족대표들이 제시한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종교지도자협의회는 ‘기미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보성사(普成社) 터에 기념조형물을 세우기로 하고 이미 터닦기작업과 함께조형물 제작에 들어갔으며 27일 제막식을 갖는다. 서울시립대 정대현교수가 제작중인 조형물은 높이 6.3m에 가로 세로 2m크기로 세 사람이 태극을 받들고 있는 형상의 청동구조물.기단의 바닥크기는 3·1운동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가로 세로 각각 3.1m로 했다.기단부의석재 조형물 둘레에는 보성사의 옛모습과 만세 부르는 광경,그리고 기미독립선언서 전문과 불교와 개신교,천도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민족종교및 문화관광부의 세움말이 새겨진다. 종교지도자협의회 관계자는 이 조형물을 “민족의 웅지를 상징하는 추상미술조각”이라고 설명하고 “21세기를 앞두고 3·1정신이 흐려져 있는 것이안타까워 종교지도자들이 조형물을 세우고 80년전 그때처럼 3·1정신 회복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성사 기념물 건립사업은 지난해 4월 천도교 김광욱(金光旭)교령이 취임하면서 추진됐다. 현재 연합뉴스와 조계사 사이 보성학교 뒷마당에 자리잡았던 보성사는 천도교 3세교조인 孫秉熙선생이 1910년말 보성학원을 인수하면서 운영권이 천도교로 넘어갔다.보성사는 천도교가 운영하던 창신사(彰新社)에 합병된 당시의 최대 인쇄소이다.1919년 2월27일 극비리에 2만1천부의 ‘독립선언서’를 찍어냄으로써 역사의 현장이 됐으나 그해 6월 일제의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전소됐다. 종교지도자협의회는 내달 1일 3·1운동 80주년 기념식도 80년전의 모습대로 성대하게 꾸미기로 했다.각 종단의 관계자들이 견지동 조계사,저동 영락교회,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원불교 원남교당,천주교 명동성당,명륜동 성균관,사직단,장충단 등에서 가두행진으로 서울 종로 3가 탑골공원에 집결,기념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기념식에서는 기미독립선언서와 ‘제2의 3·1선언서’가 낭독되고 각 종단의 3·1운동 80주년 메시지도 발표된다.또 극단 ‘모시는 사람들’과 염광여상 취주대의 선열 추모공연, 김덕수패의 사물놀이도 펼쳐진다. 이와함께 전국의 각 사찰과 성당,교당,교회,향교 등에서도 이날 정오 일제히 ‘제2의 3·1선언서’를 낭독하고 전국 200여곳에 종단별로 가두홍보대를 설치,3·1절을 전후한 3∼4일간 대국민 알림운동에 나선다. 이밖에 3·1정신 계승을 위한 범종교인 학술발표회를 비롯,청소년 국토순례,연극 ‘우리로 서는 소리’공연,3·1정신 계승방안 공모,3·1정신 현창 도서 간행,3·1정신 현창 미술전시회 등 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朴燦 parkchan@
  • 3·1운동 기념탑 告由祭儀 거행

    3·1절 80주년을 기념해 건립중인 독립운동기념탑 고유제의(告由祭儀)가 2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장충동기념비 건립지에서 열렸다. 고유제의란 나라에서 큰 일을 할 때 조상과 천지신명에게 일이 잘 되기를비는 일종의 고사다.3·1독립운동 기념탑 건립위원회(위원장 李壽成)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기념탑 건립을 천지신명께 알리고 3·1운동 선열들에게 애국애족정신 계승을 다짐하기 위해 마련됐다. 고유제의는 신령을 맞이하는 영신례(迎神禮),음식을 바치는 전폐례(奠幣禮),술을 따르는 작헌례(酌獻禮),제사 지낸 음식을 먹는 음복례(飮福禮),신을환송하는 송신례(送神禮)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金義在 국가보훈처장,吳榮祐 한국마사회장,李元範 3·1운동기념사업회장,金三悅 독립유공자 유족회장,金光旭 천도교교령,柳興洙·徐尙敎 원로애국지사 등 각계인사와 광복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 기념탑은 다음달 중순쯤 완공돼 3월1일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李相錄 myzodan@
  • 3·1운동 기념탑 세운다/남산 기슭에 민족자주의 혼 ‘우뚝’

    ◎장충동 국립극장 입구… 내년 3·1절 준공/金 총리서리·유공자 등 참석 어제 기공식 ‘3·1독립운동 기념탑’이 남산 기슭에 세워진다. ‘3·1독립운동기념탑 건립위원회(위원장 李壽成)’는 14일 상오 9시 서울 중구 장충동2가 국립극장 입구 공원에서 3·1독립운동기념탑 건립 기공식을 가졌다. 기념탑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이날 착공됐으며 3·1절 80주년을 맞는 내년 3월1일 준공식을 갖는다. 이날 행사에는 金鍾泌 국무총리 서리,金正吉 행정자치부장관,金義在 보훈처장,李萬燮 국민신당 총재,柳在乾 국민회의 부총재,金龍煥 자민련 부총재,吳榮祐 마사회장,車一錫 서울신문 사장 등 관계자와 독립유공자 및 애국지사,광복회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金총리서리는 축사에서 “3·1운동은 민족 독립을 위해 온 겨레가 하나가 됐던 위대한 민족 자주운동”이라면서 “당시 선열들이 대동단결해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것처럼 이곳이 지금의 국난을 이겨내고 통일 조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민족의 성지가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車一錫 상임부위원장은 식사에서 “3·1독립운동 정신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지만 부끄럽게도 이를 기리는 변변한 상징물 하나 없었다”면서 “3·1독립운동 80주기를 한 해 앞두고 운동의 진원지였던 서울 중심부에 기념탑을 건립,선열들의 고귀한 이상을 기릴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기념탑은 독립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을 의미하는 높이 1919㎝의 석조물로 홍익대 金永元 교수(조각과)가 작품 제작을 맡았다.
  • 김 대통령 3·1절 기념사서 새 정부 성격 규정

    ◎임정 정통성 잇는 유일 정부/첫 여야 정권교체로 민주주의 국시 실현 김대중 대통령은 1일 취임후 첫 경축행사인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정신을 새정부 출범의 역사적 의미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접목시켰다.하나는 국민의 정부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받드는 유일한 합법정부’로 규정한 것이며,다른 하나는 3·1운동을 ‘국민 대화합의 절정을 이룬 국민적 총참여’로 해석한 것이다.이는 역대정부와 차별화 시도로 특히 지난 94년 독립투사들의 위폐 송환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문민정부야말로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정부로 규정한 대목과 비교된다. 김대통령은 먼저 “3·1절을 기념하는 오늘은 79년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선열들과 우리 국민들의 거룩한 정신이 최초로 실현된 자랑스런 날”로 정의했다.그 의미는 “국민에 의한 여야간 정권교체로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대가 온 것”이라는 표현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즉 국민의 정부는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시가 최초로 실현된 정부라는 의미다.그는그 이유로 3·1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왕정복고를 지향하는 정부가 아니고 민주주의를 지향한 민주공화국인 ‘민국’이었다는 점을 적시했다.국민의 정부를 50년에 걸친 권위주의와 독재정치를 물리치고 출범했다고 천명함으로써 서로 동일선상에 놓은 것이다. 김대통령은 또 3·1운동을 전국 13도의 모든 사람들이 남녀노소,상하귀천,좌우사상의 차별없이 참여한 ‘민족의 대행진’으로 재해석했다.그러면서 이를 IMF체제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정부기구 축소,근로자의 고통분담,기업의 구조조정 등 새정부가 추진중인 노력들과 연결시켰다. “3·1운동의 대화합정신이 다시한번 이 땅에 발현되고 있다”.이 한마디에 김대통령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응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가족모임 관례 깨고 정국구상/김 대통령의 첫 휴일

    ◎주말엔 해외교포 초청… 관저개방 실천 천주교 신자인 김대중 대통령이 일요일인 1일 성당에 가지 못했다.기독교 신자인 이희호 여사도 마찬가지다.대신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상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 79주년 3·1절 기념행사에 나란히 참석했다.“앞으로도 두 분이 가능한한 공식행사에 함께 참석하게 될 것”이라는 게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의 전언이다. 김대통령 내외가 참석못한 행사는 또 있다.김대통령은 매주 성당미사가 끝나면 전 가족이 모여 점심을 함께 하는 게 관례가 되다시피 했다.장남인 김홍일 의원과 둘째인 홍업씨 가족이 모두 참석한다.취임식 참석차 일시 귀국한 셋째 홍걸씨 가족은 하루전인 지난달 28일 미국으로 돌아갔다.박대변인은 다음주도 가족모임이 있을 지는 아직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김대통령이 다닐 성당을 천주교 규율에 따라 청와대 인근 성당으로 옮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김대통령은 어려운 경제상황과 국회 총리인준 문제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가족모임 취소의 직접적 동인도 여기에 있다는 게 비서진들의 설명이다. 김대통령은 토요일인 28일에도 하오 4시쯤 관저로 퇴청했다고 한다.정부조직법을 재가하고,3급 이상 비서관들의 인사를 받은 뒤이다.관저에서는 박공보수석이 올린 3·1절 기념사를 손질한 뒤 이여사와 함께 모처럼 TV ‘3김시대’를 시청했다고 한다.사실과 맞지않는 부분이 많고 이여사역의 여배우가 실제로 많이 닮았다는 게 김대통령의 시청평이었다고 한다. 이날 아침에도 예외없이 상오 6시30분쯤 일어나 맨손체조와 20분간 산책을 한 뒤 취임식에 참석했던 해외교포들을 청와대로 초청,잇따라 만났다.비서진은 이를 ‘관저의 개방’으로 표현했다. 김대통령이 전날 ‘7개부처 장관 공석’이라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정부조직법을 재가한 것은 국정표류를 하루속히 종식시키려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해석이다.3급이상 비서관 면담에서는 “비서는 비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앞으로 머리와 아이디어로 도와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그러면서 “중요한 일이 있으면 직접 보고하라”고 말해 앞으로 격식과 절차를중시하지 않을 생각임을 분명히 했다.
  • 인력 부족 지방노동사무소 긴급증원/국무회의 4일

    4일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는 구인·구직을 알선해 주는 지방노동사무소와 인력은행 지원문제를 중점 논의했다. ○…이기호 노동부 장관은 “구인·구직자와 실업급여를 타려는 사람들이 하루 1천7백여명이고 이는 예년에 비해 10배가 증가한 것”이라며 “사무소 장소도 협소해 민원인들이 길거리에까지 줄지어 있는 상태”라며 인력지원을 호소. 고총리는 “당장 직원들을 200∼250명 증원시켜 다음 국무회의에 상정할 것”을 지시하고 장소가 협소하면 민원인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급한대로 구민회관을 사용해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아이디어를 제시. ○…회의는 17개 안건 가운데 총무처가 제출한 ‘총무처 소속 직제개정안’에 문제점이 제기돼 의결을 유보. 고총리는 정부청사관리관리본부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에 대해 “본부라는 명칭은 치안본부·소방본부·민방위본부 처럼 특수조직에 사용하는 것”이라며 “본부를 설치하면 본부장도 필요하다”며 ‘작은 정부’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 ▷의결안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개정법공포안 △금융기관연체대출금특별조치법시행령(개정안)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시행령(〃) △신용보증기금법시행령(〃) △신기술사업금융지원법률시행령(〃) △기업활동규제완화특별조치법시행령(〃)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시행령안 △지방교육행정기관직제령(개정안) △국립각급학교공무원정원규정(〃) △해양경찰청소속직제(〃) △국제전기통신연합헌장개정서안 △국제전기통신연합협약개정서안 △영예수여 (2건) △제15대대통령취임행사기본계획안 △제79주년 3·1절기념행사계획안.
  • 새정부 초기 사면할때 한총련 관련자 제외를/검찰 건의

    검찰은 새정부 출범 초기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면때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총련 관련 사범은 포함시키지 말 것을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측에 건의했다. 검찰의 고위관계자는 5일 “15대 대통령 취임과 3·1절에 단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면에서 한총련 관련자를 포함시키면 한총련과 범민련 남측본부가 해마다 8월15일에 맞춰 열어온 범민족대회와 범청학련 통일축전 행사가 과격·폭력시위화될 우려가 있으므로 대상에 포함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여러차례 설명했다”면서 “김당선자 쪽에서도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정신대 할머니 돕기 2억7천만원

    ◎본사 「텍섹 5678」 「삐삐콜」통해 13만8천통 쇄도/서울신문·스포츠서울·SBS 3·1절 밤 공동실시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SBS-TV가 78주년 3·1절을 맞아 지난 1일 밤 실시한 「정신대 할머니 돕기 사랑의 전화」행사가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속에 진행돼 짧은 시간에 2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금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상보 23면〉 이날 행사는 SBS가 하오10시55분부터 「3·1절 특별생방송­158인의 증언」을 2시간동안 방영하는 사이,서울신문·스포츠서울이 운영하는 자동응답서비스(ARS)인 「텔섹5678」의 번호 02­700­5678과 「삐삐콜」의 번호 02­700­5679을 통해 모금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그 결과 2시간동안 무려 13만8천10통의 전화가 전국각지에서 걸려왔으며,모금액은 2억7천602만원에 달했다. 광복 5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은 정신대문제를 재조명하고,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린다는 생각으로 행사를 마련한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SBS측은 『짧은 시간에도 엄청난 관심을 보여준 국민들에게 감사한다』며 이날방송을 마쳤다.
  • 정신대 할머니돕기/온국민 온정 쏟아졌다

    ◎서울신문 스포츠서울 텔섹 700­5678,삐삐콜 700­5679 통해/일제만행 증언땐 함께 분노/전화모금 사상 최고액 기록/서울신문·스포츠서울·SBS 3·1절 특별행사 『그때 일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너무도 분한 생각에 얼마나 가슴을 쥐어 뜯었는지 모릅니다.한많은 세월을 원망하며 하늘보고 흘리던 눈물도 이제 말라 버렸어요…』 3·1절 78주년인 지난 1일밤 시간은 엄숙하게 흘러갔다.최근의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지 못했던 사람들은 한편의 TV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브라운관 앞을 떠날줄 몰랐다.그리고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다.평소같으면 모두가 잠들었을 새벽 1시가 지난 후에도 사람들은 쉽게 잠을 청하지 못했다. 이처럼 온 국민을 하나로 묶어준 프로그램은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SBS-TV가 마련한 「158인의 증언­정신대 할머니 돕기 사랑의 전화」. 생존해있는 158명 정신대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정신대문제를 재조명하고,이들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서울신문·스포츠서울이 운영하는 자동응답서비스(ARS)인 「텔섹5678」번호 02­700­5678과 삐삐콜 번호 02­700­5679를 통해 전화모금을 실시하는 것이 이날 행사의 내용이었다. 국민들의 깊은 관심을 확인하는데는 2시간이라는 방송시간도 길었다.이날 특별생방송이 시작된지 5분이 지나면서 전화가 밀려들어 40여분만에 6만여통이 폭주,전화회선에 쉴 틈을 찾기 어려웠다.새벽 1시 방송이 끝났을때는 모두 13만8천10통을 기록해 전화모금행사로는 사상최고의 모금실적을 올리면서 엄청난 국민적 관심을 반영했다.서울신문·스포츠서울의 「텔섹5678」과 「삐삐콜」이 복잡한 절차없이 간단히 20초의 통화만으로 모금을 실시한 것은 성과의 큰 몫을 했다.이번 행사에 동참한 한국통신 고도통신국 전화정보사업부 공진성 과장은 『짧은 심야방송인 점을 감안할 때 동참자가 이렇게 많을 줄은 예상못했다』면서 『서울신문·스포츠서울이 마련한 이번 이벤트는 전화사서함 모금운동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스튜디오에 나온 정신대 할머니들이 끝내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은 모습에 시청자들은 감동이상의 가슴 찡한 전율을 느꼈다. 이들 정신대 할머니들이 겪었던 고통은 그들만이 아닌 우리 민족 모두의 아픈 역사다.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이끌어내 어두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반드시 정리해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온 국민이 참여한 이날 사랑의 전화모금 행사는 더욱 그 의미가 빛날수 있었다.
  • 6대 종교계 대표 3·1절 공동기념식/78년만에 처음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유교·천도교 등 6대 종교계 대표가 1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3·1절 78주년 공동 기념식을 갖기로 했다.이들 종교계 대표가 공동으로 3·1절 행사를 갖는 것은 3·1 독립만세 운동 이후 처음이다.
  • 정신대 아픔 되새기며 사랑의 모금/3·1절 78돌 특별 이벤트

    ◎서울신문·스포츠서울­SBS/「158인의 증언」통해 참상·일의 얄팍한 보상 조명/700­5678·5679 연결하면 성금 2천원 자동기부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SBS­TV가 78주년 3·1절을 맞아 「정신대 할머니 돕기 사랑의 전화모금」행사를 마련한다. SBS가 1일 하오10시55분부터 2시간동안 「3·1절 특별생방송­158인의 증언」을 내보내는 동안 서울신문·스포츠서울이 운영하는 자동응답서비스(ARS)「텔섹5678」(02­700­5678)과 삐삐콜(700­5679)3천회선을 연결,전국적인 전화모금 이벤트를 벌이는 것. 행사 참여 희망자들이 전화를 걸면 『이 전화는 SBS서울방송과 서울신문·스포츠서울이 마련한 정신대 할머니 돕기 사랑의 전화입니다.정신대 할머니 돕기 전화캠페인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20초 가량의 멘트와 함께 한 통화당 2천원의 성금이 자동기부된다.접속된 전화요금은 한국통신을 통해 모금돼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전달될 예정. 이날 방송될 「158인의 증언」(임립 연출)은 50여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있는 위안부문제를 재조명하고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과 공감대를 확인하기 위한 프로그램. 1부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소」는 14살때 고향마을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다 납치돼 중국 위안소로 끌려간 뒤 2년간 위안부생활을 했다는 어느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위안부들의 실상을 알아본다.『정신대는 공창이었다』 『그들은 돈벌려고 온 여자들이다』라는 등의 일본측 망언에 대한 할머니들의 반박증언과 피해사례들도 제시한다. 2부 「이제는 우리가 할머니를…」에서는 지난달 2일 68세로 한많은 생을 마감한 「위안부 화가」 강덕경 할머니의 삶을 추모하고,그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되짚어 본다.특히 얼마전 일본이 「아시아 평화를 위한 국민기금」이라는 민간단체를 내세워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몇푼의 위로금을 던져주는 것으로 보상문제를 매듭지으려한 「만행」과 관련,왜 일본의 돈을 받지 말아야 하는지 그 이유도 생각해 본다. 한편 이날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서울신문의 텔섹5678과 삐삐콜의 평소 기능이 정지된다.
  • 차량 태극기 달기 운동/정부,광복절 맞아

    「국경일에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정부가 제51주년 광복절을 맞아 이번에는 「승용차에 태극기 달기 운동」에 나섰다. 특히 대한석유협회가 이 운동에 적극 호응, 14·15일 이틀동안 전국의 주유소에서 차량용 태극기를 고객사은품으로 제공하고,전국의 가스충전소에서도 택시에 태극기를 달아주기로 했다. 또 광화문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도 임시국기판매소를 개설, 가정용과 차량용 국기를 일반인에게 판매한다. 개발된 차량용 태극기는 창문형과 엔진덮개형의 두 종류다. 지금까지 차량용 태극기는 정부의전차량과 외교사절단 등 주로 정부행사에만 활용해 왔고 일반에는 지난 3·1절에 시험적으로 보급했을 뿐이다. 한편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은 가정용 태극기와는 달리 차량용은 비가 올 때도 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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