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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인 명의 건물 퇴출”… 중구의 역사 바로잡기

    485동 현장 조사… 직권말소 의뢰도 서울 중구는 관내 일본인 명의 건축물대장 및 등기 정비 사업을 연내 마무리한다고 5일 밝혔다. 대상은 건축물대장에 올라 있는 관내 건물 11만 3000여동 중 소유자가 일본인으로 잡히는 건물 485동(광복 이후)이다. 구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이 사업을 벌여 실체 없이 건축물대장·등기부에만 살아 있는 일본인 명의 건물 636건(광복 이전)을 색출하고 청산 절차에 들어간 바 있다. 부동산 공적장부에 일본인 이름이 아직도 수두룩한 것은 해방 이후 새 건물을 짓고 등기를 하면서 기존 등기를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소유자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다가 소유권 이전, 금융권 대출 등을 시도하면서 사용에 제약이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복잡한 절차와 대행수수료로 말소 절차를 포기하기 일쑤다. 구는 이달 건물 등기 및 재산세 과세 여부 확인 등 검토를 거친 후 4~5월에 일본인 명의 건물 485동을 놓고 현장조사를 한다. 이어 6월부터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건축물대장·등기 정비에 돌입한다. 건물이 없는 경우 직권으로 건축물대장을 말소하고 등기말소를 의뢰한다. 서양호 구청장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해인 만큼 사업에 더욱 집중해 일제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행정 정보의 신뢰성도 높이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지창욱 “‘신흥무관학교’ 출연, 100년 전 조상님 마음 느꼈으면”

    지창욱 “‘신흥무관학교’ 출연, 100년 전 조상님 마음 느꼈으면”

    지창욱이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공연에 참여하는 소감을 전했다. 5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는 창작뮤지컬 ‘신흥무관학교’ 시연회가 진행됐다. ‘신흥무관학교’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육군본부가 주최, 주관하고 공연제작사 쇼노트가 제작한 창작뮤지컬이다. 이름 없는 평범한 청년들이 든든한 독립군이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린 작품이다. 항일 독립 전쟁의 선봉에 섰던 신흥무관학교를 배경으로, 격변하는 시대를 치열하게 산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김동연 연출을 비롯해 박정아 음악감독, 채현원 안무감독, 서정주 무술감독이 의기투합했다. 지창욱, 고은성은 국권침탈에 항거해 자결한 유생의 아들이자 신흥무관학교의 뛰어난 학생인 동규 역을 맡았다. 알고 보면 아버지와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을 지닌 캐릭터로, 극의 반전을 담당한다. 병장 지창욱은 “군생활을 ‘신흥무관학교’ 공연을 하면서 보내게 됐다. 사실 공연을 하면서도 많은 걸 느끼고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많은 분들이 공연을 보면서 100년 전 독립운동을 했던 조상님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지창욱은 이어 “공연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느낄 것 같다. 100년 전에 힘든 시절에 독립운동을 한 분들의 마음과 그 안에서 사는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이 다 녹아 있다. 음악과 즐기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마음을 하나하나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흥무관학교’ 공연은 오는 4월 2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진행된다. 사진=연합뉴스 연예부 seoulen@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박순부·허은·이은숙 여사…그들은 ‘독립군의 어머니’였다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박순부·허은·이은숙 여사…그들은 ‘독립군의 어머니’였다

    “네 어머니와 아내를 무겁게 대하라.” 지난달 8일 시인 이윤옥씨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10권 완간 기념 ‘책 잔치’가 열렸다. 권마다 2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시와 산문으로 담은 책이다. 속표지에는 이런 짧은 헌사가 실려 있다. “이 책을 이 땅의 모든 남성에게 바칩니다.”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만하다. 다음은 지은이의 머리말 일부. “원고 뭉치를 들고 백방으로 뛰어다녀봤지만 선뜻 이 책을 찍어 준다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이 남성의 전유물이 돼 버린 풍토에서 여성독립운동가만의 책을 출간하는 것은, 독립운동처럼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아야 가능했다.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가 홍수를 이뤘다. 그동안 여성의 역할을 액세서리 정도로 평가절하했던 것에 대한 반성의 결과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반성치고는 너무 피상적이었다. 양적으로만 늘었지 질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택 기준은 언제나 ‘남성 못지않은 활동상’이었다. 삼종지도의 억압구조 속에서 수행했던 여성 혹은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은 외면당했다. 건국훈장 서훈자 1만 5537명 가운데 여성 독립지사가 전체의 2.3%(357명)에 불과한 현실이나, 5등급의 건국훈장 가운데 대부분 마지막 등급인 애족장을 서훈했거나, 훈장이 아닌 건국포장이나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은 이런 기준 때문이었다. 일송 김동삼 선생의 며느리 이해동 여사는 1987년 독립운동기념관 개관식 때 보훈처 초청으로 중국에서 잠시 귀국했다. 개관식 치사에선 온통 일송 이야기뿐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이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아버지께 공이 있다면 반 이상은 시어머니(박순부 여사) 몫이었다. 독립운동도 의식주가 있어야 가능한데,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건 온전히 여자의 몫이었다. 여자들은 하루 스무 시간씩 일하며 밥해 먹이고 옷 지어 입히고 땔감 마련해 추위를 피하게 했다. 공산주의 나라에서도 남녀를 동등하게 대하는데, 왜 한국에서는 여성의 역할을 하찮게 보는지 모르겠다.” 박순부 여사는 만주 벌판을 호랑이처럼 떠돌며 항일투쟁에 나섰다가 옥사한 남편 일송과 그 동지들의 후방을 말없이 지키다가 만주에서 쓸쓸하게 돌아갔다. 이 여사 역시 1989년 영구귀국할 때까지 77년간 여러 남매를 낳아 키웠지만, 둘째 중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맏아들 이준형은 출소한 뒤 “일본 놈들 밑에서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은 치욕”이라며 자결했다. 다음은 그가 남긴 네 가지 유언 가운데 하나.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자들의 고생이 심했다. 여성을 대할 때 보통으로 대하지 말고 무겁게 대하라.” 허은 여사는 조부 허형, 재종조부 허위 등 집안이 모두 독립지사였다. 어른들을 따라 1915년 만주로 망명한 허 여사는 1922년 석주의 손자 이병화와 결혼한 뒤 끝없이 찾아오는 독립군을 수발하는 ‘독립군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시집온 첫해 집에서는 서로군정서 회의가 서너 달 계속됐다. 만주의 독립지사치고 그의 집을 드나들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며, 따듯한 밥 한 그릇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집에는 항상 손님이 많았는데 땟거리가 부족해 삼시세끼가 녹록지 않았다. 양식이 없을 때는 좁쌀 쭉정이로 죽을 끓였다.” “의복도 단체로 만들어서 조직원들에게 배급했다. 부녀자들이 동원되어 흑광목과 솜뭉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대량생산을 했다. (중략) …김동삼, 김형식 어른들께 손수 옷을 지어드린 것은 지금도 감개무량하다.” 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밥 짓다가 기절해 가마솥 안으로 고꾸라질 뻔하기도 했다. “시집온 이듬해, 한번은 감기에 걸렸으나 누워서 쉴 수가 없었다. 무리했던지 부뚜막에서 죽 솥 안으로 쓰러지는 걸 마침 시고모부가 보시고는 잡아 떠메고 방에 눕혔는데 꼬박 24시간을 혼절했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서) 시조부, 시부에 이어 남편도 7년간의 옥고 탓에 일찌감치 세상을 떴다. 남겨진 5남2녀를 키우고 가문을 지키는 것은 온전히 허 여사의 몫이었다. 형제들이 때론 고아원에도 가고, 보육원에도 보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4남1녀는 허 여사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혁명 가족의 안주인’ 이은숙 여사의 간난신고는 ‘고초당초’보다 매웠다. 결혼 당시 지금 시세로 수천억 혹은 수조 원에 달한다는 남편 우당 이회영 여섯 형제의 재산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경학사 등을 경영하는 데 모두 썼다. 불과 몇 해가 지나지 않아 “하루 잘해야 일중식이요, 한겨울에도 절화하기(불피우지 못하기)를 한 달이면 반이 넘”었다. ‘매일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했다. “언젠가 이을규 형제분과 백정기, 정화암 네 분이 오셨다. 그날부터 먹으며 굶으며 함께 고생하는데 짜도미라고 하층민들이 먹는 곡식조차 살 수 없었다. 강냉이로 멀건 죽을 쑤어 연명했다. 내 식구는 오히려 걱정이 안 되나, 노인과 사랑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너무도 미안하여, 죽을 쑤는 날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상을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서간도 시종기’에서) 이 여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고무공장 직공으로, 부잣집 침모로, 심지어 유곽 여인네의 옷을 수선하는 삯바느질까지 했고, 몇 푼 벌면 송금했다. 이 사실이 드러나 경찰서로 불려가곤 했다. 이 과정에서 두 손녀와 아들 규오가 성홍열로 차례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규숙, 현숙 자매는 천진 부녀구제원에 보내야 했고, 외손녀 현덕은 늑막염으로, 딸 현숙은 폐렴으로 그리고 외손자는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둘째 아들 규학은 친일파 암살 과정에서 체포돼 고문으로 청력을 잃었고, 셋째 아들 규창 역시 13년형을 받았다. 이 여사 자신은 마적떼의 총격으로 어깨에 관통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우당은 1932년 일제의 감옥에서 고문당한 끝에 세상을 떴고 첫째 시숙 이건영은 질병으로, 조선 10대 갑부로 꼽히던 둘째 시숙 이석영은 영양실조로, 셋째 시숙 이철영은 풍토병으로, 여섯째 시숙 이호영은 일본군에 의해 가족 전체가 몰살당했다. 함께 망명했던 식솔 60여명 가운데 살아서 귀국한 이는 다섯째 시숙 이시영 선생 포함 20여명뿐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인 박자혜 여사는 살아서는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고, 죽어서는 단재의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다. 망명 전 박 여사는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간호부로 일하던 엘리트였다. 파업 태업 등을 주도해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힌 터였기에 1922년 귀국한 뒤 온갖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나석규 의사 등 국내로 잠입한 독립운동가들의 거사를 뒤에서 도왔다. 단재는 1936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고 둘째 아들은 1942년 영양실조로 사망했으며, 그 자신은 잦은 체포와 고문 후유증으로 1944년 단칸방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다. 단재는 일제의 호적을 거부한 탓에 2009년 가족관계등록부가 생기기까지 무국적자였다. 가족관계부가 생기고도 혼인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하여, 단재의 가족관계부에는 지금도 아들과 손주 이름만 달랑 올라 있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경 15명을 사살한 김상옥 의사의 어머니 김점순 여사도 세 아들을 조국의 독립에 바쳤다. 김 여사는 평소에도 잠입한 독립지사들을 숨겨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줬다. 백범의 부인 곽낙원 여사는 시장에 버려진 배추 겉껍질을 모아 김치를 담갔고, 그것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둘도 없는 반찬이 되었다. 베트남에는 ‘어머니 영웅’이란 칭호가 있다. 항불, 항일, 항미 독립전쟁에 자식을 바친 어머니들에게 주어지는 ‘서훈’이다. 세상에 어머니를 배반할 자식은 없다. 베트남이 물질적으로는 풍부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견고한 것은 그 덕분일 것이다. 2018년 허 여사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자 아들 이항증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가사노동에 대한 첫 서훈이며 음지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쏟은 여성 독립지사에 대한 첫 훈장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어머니 영웅’, ‘아내 영웅’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와 아내가 없었다면 안중근도 이회영도 이상룡도 김동삼도 김구도 여운형도 신채호도 없었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그날처럼 차려입고 “만세”…하나된 함성, 하나된 강서

    그날처럼 차려입고 “만세”…하나된 함성, 하나된 강서

    강서공고~방화근린공원 감동 재현 외침소리에 모두 뛰쳐나와 코끝 찡 손도장 찍기·휘호쓰기… 주민들 뭉클 노 구청장 “학생들이 기획해 큰 의미”“대한독립만세~.” 만세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남녀노소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1919년 3월 1일 전국에 들불처럼 퍼진 그날의 함성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지난 1일 오전 9시 20분, 서울 강서구 강서공업고등학교 앞 대로에서다. 이날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로 열린 거리행진엔 주민 1500여명이 참여했다. 강서공고 앞 왕복 4차선은 주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은 3·1운동 당시 복장을 갖췄다. 검정 두루마기를 두르거나 유관순 열사가 입었던 흰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고, 한 손엔 태극기를 들었다. 대한독립만세가 적힌 머리띠를 두른 이들도 있었다. 노현송 강서구청장도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동참했다. 진성준 서울시 정무부시장도 구민의 한 사람으로, 그날의 감동 재현에 함께했다. 노 구청장 등은 대북 소리를 신호로 하나가 돼 걸음을 뗐다. 한 발 한 발 힘찬 걸음을 내딛으며 결의에 찬 표정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대형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 자주독립만세, 기억하라 민족의 함성,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 등의 문구가 적힌 만장기가 행렬을 뒤따랐다. 행진 대열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났다. 만세 소리를 듣고 집에서 쉬던 주민들도, 길 가던 주민들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뛰쳐나와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외쳤다. 행진은 강서공고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방화근린공원까지 30분간 이어졌다. 대형 태극기를 들고 만세행진에 참가한 한 여고생은 “저희 또래인 유관순 열사를 생각하며 만세를 불렀다”며 “일제의 만행에 대항해 10대 여고생들도 목숨을 내놓고 만세를 불렀던 그날의 장면이 그려져 울컥했다”고 했다. 한 주민은 “딸과 함께 인근 공원에 운동하러 가다가 만세 소리를 듣고 참가했다”며 “1919년 당시에도 이처럼 만세 소리가 전국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코 끝이 찡했다”고 했다. 행진이 끝난 뒤 열린 기념식에선 3·1독립선언서 낭독, 만세 삼창, 축하 공연 등이 진행됐다. 안중근 의사 손도장 찍기와 휘호 쓰기, 태극기 그리기, 페이스페인팅 등 다양한 체험 행사도 마련됐다. 체험 행사를 기획·준비한 강서혁신교육지구 학생자치연합회 학생들은 “지역 내 10여개 학교 학생들이 모여 준비했다”며 “오늘의 감동은 어른이 돼도 생생하게 떠오를 것 같다”고 했다. 노 구청장은 “강서구민들의 울림이 강서를 넘어 전국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며 “그날을 잊지 않고 기리는, 이 폭발적인 에너지가 강서의 내일을 밝게 하는 것 같아 가슴 뭉클하다”고 했다. 한편 같은 시간 양천향교에선 강서구 독립운동가인 상산 김도연(1894~1967) 선생을 기리는 2·8독립선언 결의서 낭독식이 열렸다. 상산 선생은 도쿄유학 시절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2·8독립운동을 주도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울포토] 건배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서울포토] 건배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오찬에서 한완상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의 건배사에 건배를 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배틀트립’ 한현민·크리스티안, 서대문형무소 방문..뭉클 소감

    ‘배틀트립’ 한현민·크리스티안, 서대문형무소 방문..뭉클 소감

    ‘배틀트립’ 한현민, 크리스티안이 서대문형문소에 방문, 애국지사들의 애환을 가슴으로 마주한다. KBS 2TV 원조 여행 설계 예능 ‘배틀트립’이 신학기를 맞아 3월 한달 간 ‘세상이 학교다’ 특집을 선보인다. 오늘(2일)부터 2주에 걸쳐 방송되는 ‘세상이 학교다’ 특집 1탄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역사 전문가 설민석이 여행 설계자로 나서,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설민석의 3식 여행’을 선보인다. 서울 편 여행 체험단으로는 모델 한현민과 방송인 크리스티안 부르고스, 부산 편은 배우 정시아와 오승은이 출연할 예정. 이날 한현민과 크리스티안은 설민석의 설계에 따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민주 항쟁에 힘썼던 대한민국 선조들의 애환과 의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로 3.1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가 수감되고 순국한 장소로 널리 알려진 서대문형무소 역사 전시관에 방문한 것. 두 사람은 5천매에 달하는 수감자들의 사진과 비좁은 수용시설을 숙연하게 살펴보는가 하면,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 앞에 놀라움을 감추기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한현민과 크리스티안은 서대문형무소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로 꼽히는 지하 고문실에 입성해 탄식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가둬두는 고문인 ‘벽관’을 체험한 한현민은 “너무 잔인하다. 다른 것들도 심하지만 이게 제일 고통스러울 것 같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신장이 190cm에 달하는 한현민에게는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던 것. 크리스티안은 투어를 마친 뒤 서대문형무소에 걸려있는 대형 태극기을 보며 “태극기 멋있다”며 뭉클한 소감을 남겼다고. 이에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외국인의 마음에도 먹먹한 울림을 안긴 ‘설민석의 3식 투어’에 궁금증이 증폭된다. 한편, KBS2 ‘배틀트립’은 2일 오후 9시 1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신동헌 시장 “3·1운동 정신 가슴깊이 돼새겨야”

    신동헌 시장 “3·1운동 정신 가슴깊이 돼새겨야”

    경기 광주시는 1일 3·1절 100주년을 맞아 만세운동 재현 거리행진과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신동헌 시장과 독립유공자 후손, 광복회원, 시민, 학생 등 500 여명이 참석했다. 기념탑 참배로 시작된 행사는 3·1독립운동 기념탑에서 광주시 노인복지관까지 거리행진을 하며 100주년 3·1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특히 3·1만세운동 재현 거리행진은 대형태극기를 선두로 일본헌병과 독립투사들로 분장한 공연단원들이 100년 전 당시 상황을 생생히 재현한 퍼포먼스를 벌여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거리행진이 끝난 후 노인복지관에서 진행된 기념식은 극단 파발극회의 창작 뮤지컬 ‘해공과 함께하는 대한독립 만세!’를 시작으로 3·1운동 경과보고, 독립선언서 낭독, 기념사, 삼일절 노래 제창,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신 시장은 “3·1운동이 국민주권의 역사를 되살려냈듯이 3·1운동 정신을 가슴깊이 새기며 광주시를 시민과 함께하는 소통과 화합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엄태준 시장 “의병항쟁 중심 이천, 일제 총칼에 당당히 맞서”

    엄태준 시장 “의병항쟁 중심 이천, 일제 총칼에 당당히 맞서”

    경기 이천시는 1일 오전10시 이천아트홀 소공연장에서 제100주년 3.1운동 기념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념행사에는 시장,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독립유공자 후손, 기관사회단체 및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시민과 함께 3.1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시민화합을 이루는 기념행사를 추진했다. 기념식은 이천예총과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이천평화나비의 3.1운동 100주년 기념 공연을 시작으로, 이천 항일운동 영상 시청, 최상돈 이천시광복회 사무국장의 독립선언서 낭독, 엄태준 시장, 송석준 국회의원, 홍헌표 시의회의장의 기념사, 이천어린이합창단과 함께하는 3.1절 노래 제창, 안송란 광복회장의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또한 이날 이천아트홀 로비에서 이천항일운동 및 이천소녀상 관련 사진전시회, 독립만세운동 체험 포토존, 손 태극기 나눠주기, 다도체험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를 마련해 시민들과 함께 3.1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엄태준 시장은 기념사에서 “의병항쟁의 중심이었던 이천의 만세시위는 모두가 혼열일체가 되어 일제의 총칼 앞에 맨손으로 맞서 당당히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의 자주독립을 외쳤다”면서 “100년전에도 그랬듯이 시민 여러분과 다함께 손을 잡고 우리 후손들이 자랑할 만한 이천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항진 시장 “3·1운동의 자립, 자존, 자유 뜻 받아 새롭게 융성하는 여주시민이 되자”

    이항진 시장 “3·1운동의 자립, 자존, 자유 뜻 받아 새롭게 융성하는 여주시민이 되자”

    경기 여주시는 1일 오전10시 여주시민회관에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과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항진 여주시장을 비롯해 정병국 국회의원, 유필선 여주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시·도의원들과 박근출 여주시독립운동가기념사업회장 등 독립유공자 후손, 유관단체, 공무원,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여주시민합창단의 독립군가와 뮤지컬 ‘여강은 흐른다’팀의 갈라쑈로 시작된 기념식은 독립유공자 후손 소개, 독립선언서 낭독, 기념사, 붓글씨 퍼포먼스,3·1절 노래제창,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박근출 여주시독립운동가기념사업회장은 기념사에서 “3·1 독립만세운동이 보여준 민족적 정통성과 독립운동가의 삶이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확립했다”며 “이런 정체성을 바탕으로 여주만세운동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자”고 말했다. 이항진 시장은 “3·1 독립만세운동에서 외친 대한독립이라는 것은 누군가에 지배를 당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도 누군가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자립, 자존. 자유의 본 뜻이다”이라며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 스스로 존귀하다는 뜻”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일제의 강압을 물리치고, 혹독한 전쟁도 이겨내고, 어려운 경제성장을 일으켜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고 그렇게 100년의 성장을 했다” 고 덧붙였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청소년 나비 300명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자” 퍼레이드

    청소년 나비 300명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자” 퍼레이드

    경기청소년평화나비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일 오후 2시 30분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주제로 독립운동가와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기 위해 300명의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300 나비’가 되어 야탑역광장에서 시청광장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고 밝혔다. 청소년평화나비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청소년 동아리이며, 현재 성남, 용인, 광주, 오산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170명의 서포터즈가 지난 2월 9일 발대식을 시작으로 3주간 3.1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배우고, 수요집회에 참가하여 문제해결에 앞장섰다. 또한 퍼레이드를 직접 기획하고 행사 물품 제작과 운영까지 청소년들이 직접 진행을 했다. 100년전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외쳤던 학생들의 만세처럼 300명의 청소년들이 목소리로 함께 했다. 이들은 “100년전 오늘을 기억하겠습니다” 라는 구호와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 “일본은 역사왜곡을 중단하라” 등의 구호도 함께 외쳤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새봄, 유관순 열사 연기하는 배우 ‘1919유관순 어떤 내용?’

    이새봄, 유관순 열사 연기하는 배우 ‘1919유관순 어떤 내용?’

    이새봄이 ‘1919유관순’ 주연을 맡았다. 일제시대 유관순 열사와 소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1919 유관순’이 3.1절을 맞아 30초 예고편을 공개한 가운데 주연 배우인 이새봄이 화제다. 이새봄은 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영화를 준비하고 촬영을 끝마칠 때까지 유관순 열사의 유언은 그 분을 연기하는 내내 큰 힘이 되어주었어요.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고 밝혔다. 한편 1919유관순은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로부터 공식 후원을 받은 작품으로 이달 중 개봉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은수미 시장 “3.1운동 정신으로 한반도 평화와 민족 통일 이뤄야”

    은수미 시장 “3.1운동 정신으로 한반도 평화와 민족 통일 이뤄야”

    은수미 경기 성남시장은 “3.1운동 그날의 함성은 분단에 갇히지 말고 한반도 평화와 민족 통일을 이뤄 세계로 날아오르는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명령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은 시장은 1일 성남시청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성남3.1만세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100년 전 그 날의 간절하고 단호했던 목소리가 여전히 들린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비록 어제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됐지만 한반도 평화와 민족 통일의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며 “포기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라는 격려로 다가온다”고 덧붙였다. 은 시장은 또 “만세운동이 독립을 갈구하는 세계 여러 약소민족의 희망의 등불이었듯 앞으로 우리가 만들 100년은 3.1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도전이자 도도한 물결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또 “성남에서는 남상목, 윤치장, 이명하 선생 등이 일본군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셨고 남태희, 한백봉, 한순회, 이시종 선생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셨다”면서 “성남에 살았던 5천 여명의 시민 중 3천3백 여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했을 정도로 성남은 뜨겁고 용감했다”고 말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열린 이날 행사는 만세운동 추념제, 태극 길놀이 퍼레이드, 100주년 기념식 등 3부로 나눠 진행됐다. 이와 함께 독립운동가 웹툰 캐릭터전이 시청 누리홀에 마련돼 시민들의 주목을 끌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노란 나비가 되어 일본 사죄 받으세요” 나눔의 집 ‘3·1절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추모제

    “노란 나비가 되어 일본 사죄 받으세요” 나눔의 집 ‘3·1절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추모제

    3·1 운동 100주년인 1일 오전 10시 30분 경기 광주시 퇴촌 나눔의 집 1역사관 광장에서 ‘3·1절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추모제는 지난해 별세한 하점연·김순옥 할머니의 약력 소개와 헌화로 시작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위에는 현재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이옥선(92) 할머니가 먼저 분향과 국화를 바쳤다. 유가족 추모사에서 2013년 타계한 최선순 할머니의 아들 왕상문씨는 직접 쓴 시를 낭독했다. 그는 최 할머니를 ‘당당한 어머니’로 기억하고 목이 멘 소리로 “어머니, 노란 나비가 되어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훨훨 날아 일본군 사죄 끝까지 받으세요. 우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외쳐 주위를 숙연케 했다. 나눔의 집 대표이사 송월주 큰스님은 성우 스님이 대독한 추모사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법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대로 가해국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옥선 할머니의 내레이션으로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 에움길(A long way around) 편집본도 상영됐다. 에움길을 만든 이승현 감독은 “우리들의 삶에 있어 깨달음을 준 할머니들의 성장드라마이고 영웅의 일대기”라고 소개했다. 추모행사에서는 국악인 김태희씨의 추목곡 연주, 유경은씨의 대금 연주, 그리고 일본 음악인인 하타 슈지(기타)씨와 자이케 마사토(색소폰)씨의 공연도 이어졌다. 하타 슈지씨는 이옥선 할머니에게 사죄의 큰절을 올리고 “공연이 할머니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또 “3·1운동 100주년은 의미있는 날이다. 100주년을 계기로 해서 진정한 한·일관계가 회복되고 정치인이 아닌 일반 국민들의 교류를 통해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추모제는 위령비 참배와 추모 나비 달기로 마무리됐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양아들이 되어 나눔의 집을 돕고있는 양기대 전 광명시장은 “3·1운동 100주년이라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지만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가슴 아프다”면서 “정부와 국민 모두가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밝혔다.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참석한 이수민(광주 경화여고 3학년)양은 “3·1운동 100주년 이라는 의미가 가슴에 와닿는다. 100년 전 숭고한 희생을 한 분들께 감사 드린다”면서 “3·1절에 일제에 의해 고통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뵈니 감회가 새롭고 뜻 깊다”고 말했다. 글·사진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윤봉길 종손’ 윤주빈, 큰할아버지와 똑 닮은 외모 ‘그는 누구?’ [종합]

    ‘윤봉길 종손’ 윤주빈, 큰할아버지와 똑 닮은 외모 ‘그는 누구?’ [종합]

    윤봉길 의사의 종손인 윤주빈에게 관심이 모아졌다. 탤런트 윤주빈은 1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된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피아노에 맞춰 ‘심훈 선생이 옥중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를 낭독했다. 윤주빈은 윤봉길 의사의 종손이다. 윤봉길 의사는 윤주빈의 큰할아버지다. 윤주빈은 지난달 28일 방송된 KBS 2TV 3.1운동 100주년 전야제 ‘100년의 봄’에 출연해 큰할아버지 윤봉길 의사의 사진에 “너무 많이 봐왔던 사진인데 오늘 또 이렇게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어 “할아버지의 용기 덕분에 대한민국은 독립의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렸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윤주빈은 또한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큰할아버지 #윤봉길 #윤우의 #매헌 #매헌윤봉길 #윤남의 24세의 큰할아버지와 31살의 나 멋진 사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윤주빈은 1989년생으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2012년 OCN 드라마 ‘신의 퀴즈3’로 데뷔한 윤주빈은 tvN ‘더 케이투’, JTBC ‘미스 함무라비’ 등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았다. 윤주빈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윤봉길 의사와 정말 닮았다”, “멋있다”, “대한의 핏줄”, “자랑스럽겠다”, “멋져요”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1919 유관순’, 3.1절 맞아 스페셜 포스터 공개!

    ‘1919 유관순’, 3.1절 맞아 스페셜 포스터 공개!

    조선의 딸 유관순과 그녀와 함께 독립을 외쳤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려 낸 3.1 운동 100주년 기념작 ‘1919 유관순’이 삼일절을 맞아 스페셜 포스터와 30초 예고편을 공개했다. 공개된 포스터에는 태극기가 전면을 차지하며 이목을 압도한다. 그 가운데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과 ‘우리는 결코 지지 않았다!’라는 카피를 등장시켜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포스터와 함께 공개된 예고편에는 일본군의 총탄에 피를 흘리면서도 절대 만세를 멈출 수 없었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모진 고문 속에서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 8호 감방 소녀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지고 있다. ‘1919 유관순’은 학생, 기생, 시각장애인, 과부, 만삭의 임산부, 간호사, 백정의 딸 등 유관순 열사 외 숨겨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100년 만에 재조명 하는 작품으로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로부터 공식 후원을 받았다. 100년 전, 대한독립을 위해 세상에 맞서기 시작한 그 시절 모든 소녀들의 이름 ‘1919 유관순’은 오는 3월에 개봉되어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영상부 seoultv@seoul.co.kr
  • ‘윤봉길 종손’ 윤주빈, 3.1절 편지 낭독 ‘뭉클’

    ‘윤봉길 종손’ 윤주빈, 3.1절 편지 낭독 ‘뭉클’

    윤주빈이 3.1절 기념식서 심훈 선생의 편지를 낭독했다. 탤런트 윤주빈은 1일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날 윤주빈은 과거 심훈 선생이 옥중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를 낭독했다. 앞서 일왕 승일 기념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해 스물다섯의 나이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의 종손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은 윤주빈은 윤봉길 의사와 똑 닮은 외모로 할아버지의 업적을 기려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지난 28일 생방송 된 KBS2의 3.1운동 100주년 특집 전야제 ‘100년의 봄’에서 한수연, 박환희와 함께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할아버지들에게 영상 편지를 보냈다. 이들은 “할아버지, 잘 지내시나요? 2019년 봄의 문턱에서 아직 많이 춥기만 했을 1919년의 봄을 떠올려 봅니다. 할아버지의 용기 덕분에 대한민국의 의지를 세계에 알렸고 그 덕분에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몸을 던져서 나라를 구한 할아버지의 뜻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라고 전했다. 특히 이들은 각자 할아버지의 사진을 소중히 안은 채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으며 “저희에게 주어진 매일을 감사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며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여기는 완전한 봄이 왔어요”라고 말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사진 = 방송 캡처 연예부 seoulen@seoul.co.kr
  • 학생들이 직접 항일운동지 탐방팀 구성 ‘청소년 역사·문화탐구단’ 모집합니다

    학생들이 직접 항일운동지 탐방팀 구성 ‘청소년 역사·문화탐구단’ 모집합니다

    경기도 김포교육지원청이 학생들이 직접 해외 항일독립운동지 탐방팀을 구성하는 ‘청소년 역사·문화탐구단’을모집한다. 김포교육지원청은 초·중·고·특수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함께 걷고 성장하는 2019 김포 청소년 역사·문화탐구단’을 모집한다고 1일 밝혔다. 오는 22일까지 공모마감하고, 학생 10∼12명에 인솔교사 1∼2명로 구성된 팀 단위별로 모집한다. 최종 선정된 팀에는 2500만원이 지원된다. 파견기간은 4박5일 일정으로 오는 6∼10월 중이다. 자세한 모집요강은 김포교육지원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이번 역사·문화탐구단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주목할 점은 학생들이 직접 주도해 임시정부 역사현장에서 지난 100년 여정을 성찰하고 애국선열의 자주 독립정신을 계승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항일유적지 탐방으로 대한민국 미래 100년의 희망을 생각해 보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마련됐다. 학생들 스스로 구성한 역사문화탐구단을 중국으로 탐방하며 대한민국 항일 독립투쟁과 우리민족의 국난극복 역사와 관련 있는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조사·연구할 기회를 부여한다. 김정덕 김포시교육지원청 교육장은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만 배운 선열들의 항일투쟁운동의 발자취를 직접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재조명해 역사인식을 높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해 이번 청소년 역사문화탐구단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100초 인터뷰] 한국 근현대사와 비보잉의 만남…엠비크루의 ‘춤으로 보는 한국사’

    [100초 인터뷰] 한국 근현대사와 비보잉의 만남…엠비크루의 ‘춤으로 보는 한국사’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특별한 공연을 계획하는 이들이 있다. 비보잉 그룹 엠비크루(M.B.CREW)다. 이들은 비보잉과 힙합, 랩, 걸스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해 한국 근현대사를 관객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춤꾼’ 엠비크루는 어떻게 ‘춤으로 보는 한국사’란 공연을 기획하게 된 걸까. 지난달 25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엠비크루 멤버이자 예술인 대표 박재형(34)씨는 “딱딱하거나 지루할 수 있는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힙합, 비보잉 등 다양한 장르의 스트릿댄스를 접목한 공연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춤으로 보는 한국사’ 공연은 3.1운동, 6.25전쟁, 8.15 광복, 88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다양한 근현대사를 담았다. 이를 통해 ‘우리의 슬픈 역사를 잊지 말자’와 ‘더 나은 대한한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자’라는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처음 시도하는 공연인 만큼, 첫 공연 준비는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대사가 없는’ 넌버벌 퍼포먼스라 내용 전달에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랩이었다. 시각적 전달이 어려운 부분은 랩으로 풀어주고, 거기에 춤과 음악을 얹어 흥미를 북돋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춤으로 보는 한국사’는 2018년 남이섬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세 차례 관객과 만났다. 이전 공연에서 발견한 문제점은 수정, 보완을 거쳐 알찬 모습으로 금년에 새롭게 선보일 계획이다. 박씨는 “직접 공연장을 섭외해서 ‘춤으로 보는 한국사’ 공연을 할 생각”이라며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속한 엠비크루는 2002년 결성, 현재 세계적인 비보잉 팀으로 성장했다. 2015년 세계 최고 비보이 크루를 가리는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와 2016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비보이 대회 ‘운베스티(Unvsti) 배틀’에서 우승을 하는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폐막식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엠비크루’ 팀 이름에 대해 묻자 박씨는 “춤출 곳이 마땅치 않았던 중·고등학교 시절 중랑청소년수련관에서 연습을 많이 했다. 그곳의 바닥이 비보잉 하기에 좋은 ‘마룻바닥’이었다”며 “마룻바닥의 ‘M’과 비보이의 ‘B’를 합쳐서 엠비크루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엠비크루 멤버들은 “앞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박씨는 “예술은 가난하고 힘든 직업이라고 하는데, 엠비크루가 좋은 공연을 만들어서 ‘춤으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것이 우리의 계획”이라고 전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 그때 그날의 함성과 눈물 따라 가볼까

    그때 그날의 함성과 눈물 따라 가볼까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된 해다. 순국선열들의 독립정신과 활약상을 되새길 전국의 역사적 장소들이 후손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독립운동의 흔적이 짙게 배인 7개 지역을 3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우리 근대사가 기억하는 선조들의 뜨거운 함성과 눈물에 귀 기울여볼 때다.① 서울 독립문… 역사박물관·경희궁 등 일제강점기 흔적 서울에는 도심 곳곳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등 시대별로 서울의 변화상을 전시한다.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서울과 평양의 3·1운동’도 열린다. 박물관 옆 경희궁은 아픈 역사가 서린 궁궐이다. 인현왕후와 혜경궁홍씨 등이 거주했던 궁은 일제가 집중적으로 파괴한 대상이었다. 경희궁을 나서면 강북삼성병원 내에 있는 경교장이 금방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도심재생예술을 입은 돈의문박물관 마을, 아관파천의 아픔이 서린 정동길 등으로 시간 여행이 이어진다. 3·1운동 열사들이 옥고를 치른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타전한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행촌동 딜쿠샤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② 서울 망우리공원… 만해 한용운·위창 오세창 넋 기린 곳 망우리공원은 뜨거운 역사를 품은 야외박물관이다.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호암 문일평, 소파 방정환 등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잠들었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연보비를 읽다 보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난해 9월엔 ‘유관순열사 분묘합장표지비’가 세워졌다. 이곳은 20년 전까지 망우리공동묘지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약 83만 2800㎡(25만여평) 규모로 문 열어 1973년까지 운영됐다. 2만 8500기가 넘는 무덤이 있었지만 꾸준히 이장해 현재 7400여기가 남았다. 이장으로 생긴 빈자리에는 나무를 심었고 울창한 생태 공원으로 변신했다. 숲이 우거져 고즈넉한 곳에 5.2㎞ ‘사색의 길’도 조성됐다. 망우리공원에는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 조각가 권진규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묘지도 있다.③ 충북 괴산 홍범식 고택… 1919년 1500명의 함성 생생히 독립운동가 홍범식은 대한제국이 1910년 한일병탄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결했다. 그는 아들에게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는 유서를 남겼다. 아버지의 유훈을 받은 소설가 벽초 홍명희는 고향 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 홍범식 고택에 들어서면 홍명희가 3·1운동을 준비했다는 사랑채를 만난다. 그의 주도 아래 1919년 3월 19일 괴산산막이시장 거리에서 1500여명이 목 놓아 만세를 외쳤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ㄷ자형’ 안채는 조선 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택을 둘러봤다면 진주성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을 모신 충민사, 괴산호의 절경이 아름다운 연하협구름다리 등을 함께 둘러봐도 좋다.④ 충남 천안 유관순 생가와 7개 전시관 있는 독립기념관 천안에는 독립운동의 함성과 결의를 되새길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를 살펴볼 수 있는 독립기념관이 대표적이다. 높이 51m ‘겨레의 탑’과 동양 최대 기와집인 ‘겨레의 집’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우리 역사를 시기별로 전시한 7개 전시관은 다양한 문헌자료와 체험시설로 방문객을 맞는다. 꼼꼼히 둘러보려면 5시간 정도 걸리니 미리 동선을 짜서 가는 것이 좋다. 주변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캠핑 공간에는 꼬마열차, 어린이방 등 편의시설이 있어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도 손색이 없다.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병천에는 유관순 열사 생가가 있다. 유관순 열사가 체포돼 옥사할 당시 전소된 가옥과 헛간을 복원했다. 가까운 곳에 그의 영정을 모신 기념관이 있다.⑤ 전남 완도 소안도 항일운동기념관… 항일운동의 성지 완도 본섬에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소안도에는 1년 내내 태극기가 휘날린다. 함경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릴 만큼 치열한 저항정신을 보여준 땅이다. 소안도에 가려면 완도 화흥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10~12회 운항하는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여객선 이름부터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가면 이곳이 어떻게 항일운동 성지가 됐는지 알 수 있다. 당사도등대 습격사건과 사립소안학교 설립 등을 알게 된다. 인구 6000여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는 사실도 소안도가 항일운동의 성지였음을 뒷받침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과 몽돌해변 등도 소안도를 방문해야 할 이유다.⑥ 경북 안동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독립지사의 투쟁사 안동은 시·군 단위로 전국에서 독립 유공자(약 350명)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1894년 갑오의병부터 1945년 광복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안동과 경북 독립지사의 투쟁사를 문헌과 자료,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유학이 뿌리 깊은 지역이지만 의병활동이 실패한 뒤 신학문을 받아들인 혁신유림이 생겨났다. 이들은 국권을 빼앗긴 후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일제의 고문시설인 벽관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많아 흥미롭다. 기념관을 나서면 독립운동 성지로 알려진 내앞마을이다.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일송 김동삼 생가 등이 있다. 안동의 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임청각도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다. 가까운 월영교의 밤경치도 놓치면 아깝다.⑦ 경남 밀양 의열기념관…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도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밀양은 영화 ‘암살’을 통해 재조명된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고향으로 항일 독립운동 요람이다. 의열단은 식민지배자와 민족반역자 처단, 조선총독부 등 식민지배기관 파괴에 집중했다.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를 폭파하고,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는 등 모든 투쟁의 배후에 김원봉이 있었다. 김원봉이 태어난 집터에 지난해 의열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단정하고 아담한 건물로 들어가면 영상과 자료들로 그의 삶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일대는 밀양의 만세운동으로부터 태극기 변천사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로 꾸며졌다. 이 지역 최초 만세운동이 일어난 밀양 관아지와 보물 147호 밀양 영남루도 독립운동과 연결되는 장소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사설] 3·1운동 100주년 아침에 되새기는 민주주의의 가치

    3·1운동 100주년 아침이다. 100년 전 선대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던 독립만세의 현재적 의미를 곱씹어 볼 만하다. 더는 식민지가 아니라고 해서, 독립된 나라에서 산다고 해서 그저 3·1운동을 과거의 일로 박제화해 역사 교과서에 가둬서는 안 된다. 정부는 2월 26일 3·1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진 유관순 열사에게 독립유공자 1등급 서훈을 추가했다. 유관순 열사 외에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영화 ‘암살’의 김원봉 등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의 공훈 및 삶을 재조명하는 것 또한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3·1운동 정신의 정수는 평화와 국민 화합, 민주주의에 있다. 이는 21세기에 더 심화해야 할 가치들이다. 100년 전 오늘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전체 인구의 10분의1가량인 200여만명이 참가한 사실 등을 학자들이 새로운 역사적 증거로 찾아냈다. 총칼로 진압한 일본 헌병대에 맞서 비폭력으로 항거했던 탓에 7509명이 숨졌고 1만 5850명이 다치는 등 희생이 컸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받던 여러 나라 민중들에게 민족자주에 대한 깊은 감화를 주었다. 특히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 중국의 반제 반봉건 5·4운동 등은 3·1운동에서 비롯된 도미노 효과였다. 한반도는 66년간 ‘전쟁 중단’ 상태지만, 한반도에 평화의 뿌리를 내리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평화 통일은 3·1운동 정신의 정수와 맥이 닿는다. 실제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로 시작하는 100년 전 독립선언문은 인류공영의 지혜를 담은 세계평화 선언문이다. 독립선언문 후반부에서 ‘동양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했다. 이는 과거 우익세력들이 강조했던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 향후 새롭게 만들어질 동북아 평화질서의 패러다임 속 한국이 해내야 할 역할을 고스란히 적시한 100년 전 가르침이다. 어제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북미 정상은 기대했던 ‘종전선언’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반도는 물론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더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며 평화의 가치를 통해 공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국민 통합의 과제 또한 3·1운동으로부터 반드시 되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3·1운동에 나선 이들은 남녀노소, 직업, 계급, 지역, 종교의 구분도 없었다. 각자의 처지와 이해관계는 서로 달랐지만, 독립이라는 지상명제 앞에서 화합하고 일치단결했다. 진보와 보수, 종교, 노사, 남녀 등 여러 형태의 갈등과 대립이 얽혀 국가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내지 못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각자가 가진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범국가적 과제 앞에서는 국민 통합을 이뤄 내야 한다는 당위성은 3·1운동이 우리에게 준 또 다른 교훈이다. 특히 평범한 장삼이사들이 자발적으로 떨쳐 일어났다는 점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를 확인하는 과정으로도 인식된다. 나라의 주인은 왕이나 양반과 같은 특권 계층이 아닌, 바로 국민이라는 인식은 2016년 대통령 탄핵의 촛불집회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듯 3·1운동으로부터 시작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고 심화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 100년 우리는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왔다. 그 결과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와 문화, 정치 등에서 한국의 저력을 세계에 알리며 ‘한국식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이 아침 100년 전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화합과 평화,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또 다른 100년을 향해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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