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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주 의회, 매년 3월 1일 ‘유관순 열사 추모의 날’로 제정

    미국의 뉴욕주가 매년 3월 1일을 유관순(1902~1920) 열사 추모의 날로 제정한다. 뉴욕주는 캘리포니아주와 함께 미국 내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31일(현지시간) 뉴욕한인회에 따르면 뉴욕주 의회는 오는 14일 열릴 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유관순의 날’ 제정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결의안이 채택되면 앞으로 뉴욕주는 매년 3월 1일을 ‘유관순의 날’로 지정해 열사를 추모하게 된다. 이번 결의안은 주 상원에서는 민주당의 토비 앤 스타비스키·존 리우 의원, 주 하원에서는 민주당의 론 김, 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 의원이 각각 결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김민선 뉴욕한인회 회장은 “‘유관순의 날’ 제정은 뉴욕주가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공감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면서 “뉴욕 한인사회에서도 100주년을 맞은 3·1운동 취지를 되새기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회는 14일 직접 주의회를 방문해 결의안 채택을 지지할 예정이다. 한인회 관계자는 “역사적인 ‘유관순의 날’ 제정 결의안이 통과되는 현장에 많은 한인이 찾았으면 좋겠다”며 참여와 지지를 당부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기획연재 ‘간과된 여성들’ 시리즈에서 유관순 열사를 추모하는 장문의 ‘부고 기사’를 싣기도 했다. NYT는 유관순 열사의 출생과 집안 분위기, 기독교 신앙에서부터 이화학당 시위에 참가하고 고향 충남 천안의 아우내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과정까지 상세히 소개하면서 “3·1운동은 한국의 민족단결을 일깨웠고 일제 저항의 기폭제가 됐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文, 학생·해경 등 의인 6인과 해돋이 산행… “새해에 바라는 마음 다들 간절”

    文, 학생·해경 등 의인 6인과 해돋이 산행… “새해에 바라는 마음 다들 간절”

    임우철 애국지사 등 국민 10명과 통화도문재인 대통령이 1일 시민들과 함께 남산에서 기해년(己亥年) 첫날 일출을 맞았다. 문 대통령은 새해 첫 일정으로 박재홍·유동운·박종훈·안상균씨와 민세은·황현희양 등 ‘2018년을 빛낸 의인’ 6명과 함께 남산으로 해돋이 산행을 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박재홍씨는 지난해 5월 서울 봉천동 원룸 화재 현장에서 대학생을 구조했고, 유동운씨는 사고 현장에서 운전자를 구조했다. 박종훈씨는 지난해 8월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 총기 사건 현장에서 범인을 제압했으며, 제주 해경인 안상균씨는 지난해 8월 제주 우도에서 발생한 유조선 충돌 사고 때 수중 봉쇄 작업을 벌여 쏟아지는 기름을 막았다. 지난해 10월 피를 흘리며 쓰러진 행인을 발견한 중학생 민세은양과 고등학생 황현희양은 소방서에 구조 요청을 한 뒤 병원까지 동행했다. 산행에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수현 정책실장, 주요 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도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오전 7시 남산 국립국장을 출발해 팔각정에서 해돋이를 지켜보고 청와대 관저에서 의인들과 떡국을 먹으며 의로운 행동을 하게 된 동기와 이후 달라진 삶 등에 대해 묻고 이야기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오늘 남산 팔각정에 올라가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 일출을 보러 올라왔던데 그만큼 새해에 바라는 마음이 다들 간절한 것 아니겠나”라고 소감을 말했다. 산행에는 75분이 걸렸다. 오후에는 각계각층 10명과 전화 통화를 하며 새해 인사를 나눴다. 먼저 새해에 100세를 맞은 임우철 애국지사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올해가 3·1운동·임시정부 100주년이다. 생존 독립운동지사로서 감회가 새로우시겠다”고 물었고, 임 지사는 “누가 이북과 이렇게 가깝게 만들 수 있겠나. 백두산에 가셨던 모습은 지금도 감동적”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지난해 10월 강원 홍천 화재 현장에서 3세 아이를 구조한 홍천소방소 대원 6명과 전화 통화를 했다. 한국에서 의과 공부 중인 남수단공화국 출신의 토마스 타반 아콧, 지난달 서귀포 여객선 좌초 현장에서 승객을 구조한 선장 양정환씨,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리스트 김아랑 선수 등과도 새해 인사를 나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100년 전 경기침체의 기억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100년 전 경기침체의 기억

    새해 2019년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났던 3·1운동 100주년이다.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국제적인 전후(戰後) 처리를 위해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된 해이기도 한데, 당시 제기된 민족자결주의는 우리나라 3.1운동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생각한다.그리고 바로 그때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국 등 주요 경제가 전후공황(戰後恐慌)에 진입하던 시점이기도 하다. 특히 1919년을 지나 1920년과 1921년에 걸쳐 세계경제는 강력한 경기하강 충격에 노출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 파괴적인 결과가 1929년 세계 대공황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프린스턴대학 크리스티나 로머 교수 논문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국민소득을 현저히 낮춘 것으로 보고된다. 당시 경제공황의 핵심적인 원인은 전쟁 종식이다. 즉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전쟁 물자 조달 과정에서 증가한 전시(戰時) 수요가 사라진 탓이다. 전시 수요를 대체할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생산시설이 잉여설비로 전환된 것이다. 또 하나 전후 경기침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노동시장 요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징병으로 민간 노동력이 부족한 시기였고, 그 결과 노동부문과 노동조합의 파워가 강력해질 수 있었던 때로 평가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힘이 강화된 상태였는데, 전쟁이 끝나면서 참전 군인들이 퇴역하고 이들이 민간 노동력으로 다시 합류하기 시작하자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기존 노동자들과의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즉 종전 후에 시장에는 노동의 초과 공급이 발생하며 사실상 임금하락 압력이 존재하게 되는데, 기존 노동자들은 이미 상승된 임금을 받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임금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에 대한 수요는 감소해 일자리가 줄고 실업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1919년은 미국에서 노동운동과 파업이 많았던 시기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1919년 종전 후에 발생한 경제 현상들은 최근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미·중 무역 갈등을 비롯한 국제 통상환경의 악화와 국내 정책 충격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데 역할을 했던 것이 세계적인 반도체 특수(特需)였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수요가 약화하면서 2018년 상반기 이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 반도체 관련 생산ㆍ가동ㆍ출하는 모두 감소한 반면 재고는 증가하고 있다. 즉 앞으로 반도체 관련 대규모 생산설비 투자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 되고 있다. 노동시장 측면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노출되고 있다. 즉 경기 상황이나 기업 여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임금을 조정하기 어려운 경직적인 임금 구조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징인 데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의 경직적인 시행 등 노동비용 충격이 정책적으로 가해지면서 마치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경기침체 시기처럼 노동 수요의 감소가 발생해 일자리가 위축되고 있다. 물론 경제성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서 노동 수요가 확대되는 시기라면 노동 비용의 증가를 감내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이미 국내 경기 침체가 상당히 진전된 상황이어서 비용 증가를 감내하기 어려운 한계기업을 중심으로 어려움에 처하고 사정이 나은 기업들도 고용 축소와 투자 보류 등 비용 절감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최근 금리 인상과 관련된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요인 증대와 신흥국 중심의 위기 확산 등 국제경제 환경마저 악화되고 있어 관련 정책의 궤도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향후 경제운용의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전반적인 수요 부진, 노동시장의 여건 악화, 금융시장 불안 등 대내외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요인을 우리가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100년 전(前) 경기침체 이야기지만 당시에 있었던 전후 경제공황과 이를 유발했던 요인들을 분석하고 반면교사 삼는다면 2019년을 맞이하는 오늘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보다 나은 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경제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며 정책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고치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관련 위험에 대한 노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 신아영-딘딘 “12월 28일, 나석주 의거일을 아시나요?”

    신아영-딘딘 “12월 28일, 나석주 의거일을 아시나요?”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가 아나운서 신아영, 래퍼 딘딘과 함께 ‘나석주 의거일’인 오늘(28일) ‘대한민국 역사, 실검 프로젝트’를 펼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역사, 실검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날에 맞춰 그날의 정확한 한국사 지식을 카드뉴스로 제작, SNS상에 널리 퍼트리는 대국민 역사교육 캠페인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1926년 12월 28일, 나석주 의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 및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의거를 알린다. 이는 3.1운동 이후, 잠잠해진 독립운동 열기와 민족혼을 일깨운 큰 사건이다. 서경덕 교수는 “내년은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이다. 이를 기념해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의 의미 있는 날을 함께 기억하자는 것”이라며 “팔로워 수가 많은 유명인사와 함께 캠페인을 펼친다면, 많은 SNS 사용자들에게 전파가 될 것이고, 실검까지 등장할 수 있어 더 많은 네티즌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캠페인에 동참한 신아영와 딘딘은 “의미 있는 역사 캠페인에 동참하게 되어 기쁘다”며 “특히 많은 팔로워분들이 ‘좋아요’를 통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오늘 하루 나석주 의사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캠페인에 동참한 유명인사들은 소이현-박하선, 송은이-김숙, 박명수-정준하, 하하-스컬, 방송인 알베르토-다니엘, 쇼트트랙 곽윤기-김아랑, 라이머-안현모 부부 등이다. 한편 서경덕 교수는 내년으로 다가온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 독립운동에 기여한 인물, 사건 등을 다국어 영상 제작 및 SNS 캠페인을 통해 국내외로 꾸준히 알리고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신아영-딘딘 “12월 28일, 나석주 의거일을 아시나요?”

    신아영-딘딘 “12월 28일, 나석주 의거일을 아시나요?”

    MBC 애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MC를 맡고 있는 아나운서 신아영과 래퍼 딘딘이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힘을 모아 12월 28일 ‘나석주 의거일’에 맞춰 ‘대한민국 역사, 실검 프로젝트’를 펼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역사, 실검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날에 맞춰 그 날의 정확한 한국사 지식을 누구나 다 이해하기 쉬운 카드뉴스로 제작하여 SNS상에 널리 퍼트리는 대국민 역사교육 캠페인이다. 이번 주제는 1926년 12월 28일은 나석주 의사가 동양 척식 주식회사 및 조선 식산 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의거일로 3.1운동이후 잠잠해진 독립운동 열기와 민족혼을 일깨운 큰 사건임을 전하고 있다. 이번 일을 기획한 서 교수는 “내년은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의 의미있는 날을 함께 기억하자는 대국민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팔로워 수가 많은 유명인사들과 함께 캠페인을 펼친다면 많은 SNS 사용자들에게 전파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실검까지 등장할 수 있게 되어 더 많은 네티즌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캠페인에 함께 동참한 신아영와 딘딘은 “의미있는 역사 캠페인에 동참하게 되어 기쁘다. 특히 많은 팔로워분들이 ‘좋아요’를 통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오늘 하루 나석주 의사를 더 널리 알릴수 있을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캠페인에 동참한 유명인사들은 소이현-박하선, 송은이-김숙, 박명수-정준하, 하하-스컬, 방송인 알베르토-다니엘, 쇼트트랙 곽윤기-김아랑, 라이머-안현모 부부 등이 함께 해 큰 화제가 됐다. 한편 서경덕 교수는 내년으로 다가온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에 기여한 인물, 사건 등의 다국어 영상 제작 및 SNS 캠페인을 통해 한국사를 국내외로 꾸준히 알리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항일운동가 베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니 자랑스럽다”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항일운동가 베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니 자랑스럽다”

    “베델 역사 몰랐다는 게 조금 부끄러워 생가라는 사실 알고 독립활동 공부해” 외관은 1860년대 원형 완벽하게 보존 보훈처, 수집된 자료 통해 막바지 고증 확인되면 국외 현충시설 지정해 관리“베델의 생가가 제 집이란 소식을 접하고 베델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브리스틀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신 분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게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항일언론운동을 펼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생가 현 주인인 아서 쿡(71)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영국 브리스틀에 위치한 자택이 베델의 생가였다는 사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항일운동가 베델이 우리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브리스틀은 런던에서 서쪽으로 190㎞ 떨어진 항구도시다. 베델 생가는 쿡과 부인 조(70)가 1999년부터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월 서울신문의 취재<2018년 8월 10일 27면>로 자신의 집이 베델 생가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 뒤 도서관을 다니며 베델의 독립활동을 공부했다고 전했다. 베델의 생가가 위치한 ‘에저턴 로드’(Egerton Road)는 산업혁명으로 브리스틀에 공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늘자 조성됐다. 해당 주택은 1860년대 건축됐다. 현지에서 확인한 주택의 외관은 건축 당시 원형이 대부분 그대로 보존됐다. 단독주택 2개를 붙여서 지은 ‘이호연립주택’(semidetached house)으로 2층 집이었다. 현재도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형태다. 1800년대 후반에는 주로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 거주했다.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외관과 달리 내부는 거주를 위해 수차례 리모델링을 했기 때문에 당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축 당시 있었던 벽난로 등은 사라졌고 주택 확장 공사로 출입문의 위치도 바뀌었다.보훈처 관계자들은 이날 베델의 생가를 고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쿡이 보관하고 있던 지번 부여 안내서, 마을이 들어설 당시의 지적도 등을 확인했다. 지번 부여 안내서에는 1900년대 초 브리스틀시에서 지번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베델의 생가도 이때 ‘54’라는 지번을 받았다. 또 브리스틀시 기록보관소(아카이브)를 찾아 당시 인구실태조사 자료 등을 확인했다.보훈처는 이번 1차 현장 점검 결과, 베델의 생가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후속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과거 정진석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는 현지에서 찾은 ‘브리스틀 인명록’(1872년판)을 통해 베델의 출생지 주소(Egerton villa, Egerton Road, Horfield)를 특정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영국 주소 체계와 달라 생가를 직접 찾아가지는 못했다. 이후 지난 8월 서울신문이 브리스틀시 공무원의 도움으로 베델이 1872년 태어난 주택(54 Egerton Road, Bishopston, Bristol)을 찾았다. 보훈처는 향후 베델의 생가임을 완전히 확인하면 향후 이곳을 국외 현충 시설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영국에 있는 국외 현충 시설은 이한응 열사의 순국지 등 총 네 곳으로 베델의 생가가 지정되면 다섯 번째가 된다. 유럽의 항일운동 역사 유적지는 희귀한 데다 항일언론운동의 주축이었던 베델이 태어난 곳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게 보훈처의 설명이다. 현충 시설로 지정되면 ‘독립유공자의 생가’를 표시하는 안내판을 부착하고 더 나아가 정부가 매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 교수도 “(베델 생가의 현충 시설 지정은) 환영할 일”이라며 “향후 시설을 어떻게 관리할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가의 현재 주인인 쿡은 “나도 지역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쳤기 때문에 역사에 관심이 많다”며 “베델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했지만 크게 본다면 그의 일생이 영국이나 일본 등 당시 만연하던 제국주의에 어떤 의미를 전달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브리스틀에 많은 한국인 유학생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큰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역사를 영국 사람에게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감회를 전했다. 브리스틀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캠페인 성금 주요 기부자 명단 총 모금액 4112만 702원(최종) ▲개인 이상우 외 203명 ▲단체 대한국인, 스타키 그룹, 복주요양병원, 대구금오회, 광주제일고 등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110년 전 문갑·영친왕 사진 엽서… 베델 사랑과 정신, 한국 품으로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110년 전 문갑·영친왕 사진 엽서… 베델 사랑과 정신, 한국 품으로

    한국인 일상 담긴 엽서로 지인과 안부 생전 수집 사진 뒷면엔 날짜·상황 기록 대한제국 흔적 고스란히 3대 걸쳐 간직 ‘독립운동 지원’ 고종 황실, 영국에 엽서 베델 사후에도 부인에게 고마움 전해 “유품 통해 조부 독립 정신 기억해주길”“한국 사람들이 제 할아버지가 한국 역사에 남기신 업적과 희생정신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기억하려는 진심을 늘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들 유품이 우리 가족에게도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에 계속 지니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지만 한국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유품이 있어야 할 곳은 제 집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항일독립운동의 ‘촉진제’ 역할을 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22일(현지시간) 영국 스폴딩 자택에서 열린 베델의 유품 기증 협의식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수전은 “이 유품을 통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한 할아버지 베델의 희생과 정신에 대해 계속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베델 후손의 기증으로 베델이 쓰던 수납용 가구인 문갑(文匣)과 사진, 우편엽서 등 1900년대 초반 대한제국 시절 쓰였던 유물이 대거 한국으로 돌아온다. 베델이 1909년 한국에서 사망한 뒤 부인인 메리 모드 게일이 영국으로 돌아가며 가져갔던 유품에는 당시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유품을 기증받게 될 보훈처는 이날 우선 육안으로 보관 상태를 점검하고 100년이 지났지만 양호하다고 판단했다. 고이 보관한 듯 사진들은 구겨짐이나 바랜 흔적이 거의 없이 원본 그대로였고 엽서도 100여년 전의 우표가 그대로 부착돼 있었다. 내용도 확연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기증된 유물 중 수납용 가구인 문갑은 역사적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갑은 당시 안방 침실이나 창 밑에 두고 문서나 편지 등 개인적인 물건이나 일상용 물품을 보관하던 가구다. 수전이 기증한 문갑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높이는 61.5㎝였다. 베델이 한국에 머물 때 부인과 사용했던 것으로 내년이면 110년이 되지만 녹이 슬거나 훼손된 흔적이 거의 없었다.1909년 베델이 한국에서 사망하자 부인인 게일이 이 문갑에 베델의 유품을 넣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왔다는 게 수전이 전해 들은 얘기다. 이후 문갑은 베델의 며느리에게 전수됐고 2002년 사망하자 수전에게 전달됐다. 베델가(家)가 3대에 걸쳐 보관해 온 것이다. 수전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문갑 청소를 시키고 용돈을 주곤 했었다”며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좀더 잘 관리할 걸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엽서 수십장은 대부분 베델 내외가 지인과 주고받은 연하장이었다. 연하장은 대부분 당시 한국에서 발행된 것이었다. 엽서 뒷면에는 고종 황제와 영친왕의 사진, 한국인의 평범한 일상 등이 인쇄돼 있어 시대상을 반영했다. 찍힌 날짜 도장과 우표도 훼손되지 않았다. 베델 가족은 이 엽서를 통해 지인과 수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고종의 비서승으로 베델이 대한매일신보를 제작하는데 많은 지원을 했던 박용규가 게일에게 보낸 엽서는 베델의 사망과 게일의 귀국 후에도 계속됐다. 고종 황실이 독립운동을 펼친 베델을 지원했고 사망 후에도 지속적으로 고마움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베델이 생전에 수집했던 사진 뒷면에는 자신의 서명과 함께 사진을 촬영한 날짜, 촬영 당시 상황 등을 기록해 놓았다. 대한매일신보에서 함께 일했던 양기탁 선생 등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보훈처는 이날 이들 유품을 영구 임대 방식으로 기증받기로 했다. 기증 유품은 문갑, 베델의 사진이 담긴 앨범 3개, 원본 형태의 사진 10장, 우편엽서 20장 등이다. 수전은 “어머니는 항상 자신이 시아버지(베델)에게 한국 독립운동에 대해 말하면 ‘별일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란 답을 들었다고 자주 얘기했다”며 “자신의 유품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 하늘에서 보시더라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수전은 “할머니(게일)는 조선을 사랑하고 일제의 만행을 잊지 못해 유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유품을 보는 한국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독립)정신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으면 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스폴딩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국민성금 4000만원 넘어… “내년 3월까지 7647명 명패 전달”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국민성금 4000만원 넘어… “내년 3월까지 7647명 명패 전달”

    서울신문과 대한광복회가 지난 10월부터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진행한 ‘독립유공자의 명패 성금’을 모금한 결과, 포스코가 7700개의 명패를 제작해 후원키로 했고, 4000만원 이상의 국민 성금이 모였다. 모금된 국민 성금은 명패 케이스를 제작하는 데 사용된다. 보훈처는 내년부터 총 7647명의 독립유공자 및 직계 후손에게 명패를 전달하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정부는 올해 상징적으로 시제품 2개를 만들어 국내외 유공자 각각 1명에게 전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3일 제89주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맞아 광주시 남구에 있는 노동훈(92) 애국지사의 가정을 방문해 처음으로 명패를 달았다. 또 피우진 보훈처장은 22일(현지시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후손을 찾아 해외 유공자에게 처음으로 명패를 전달했다. 보훈처는 내년부터 42명의 국내외 생존 유공자를 직접 찾아 명패를 전달한다. 또 내년 3월까지 국내외 모든 유공자와 후손의 자택에 명패를 달아주는 게 목표다. 해외 유공자 및 후손은 미국(81명), 일본(30명), 호주(7명) 등 13개국 157명이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캠페인 성금 주요 기부자 명단 총 모금액 4112만 702원(20일 현재) ▲개인 이상우 외 203명 ▲단체 대한국인, 스타키 그룹, 복주요양병원, 대구금오회, 광주제일고 등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가치 검증 후 문화재 지정땐 독립기념관 전시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가치 검증 후 문화재 지정땐 독립기념관 전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의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후손들이 베델 부부가 사용하던 수납용 가구 등에 대해 정부에 유품 기증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국가보훈처는 곧 유물로서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검증에 착수한다. 보훈처 관계자는 23일 “베델 선생의 후손들이 ‘독립유공자의 명패’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피우진 보훈처장에게 직접 유품 기증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곧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유품 조사를 의뢰 및 접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국외 한국문화재의 구입·기증과 불법·부당 반출 문화재의 환수를 추진하기 위해 2012년 7월 설립됐다. 보훈처는 베델의 유품이 국외 한국문화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보훈처의 의뢰를 받은 재단은 서면 또는 방문을 통해 유품을 조사하게 된다. 1차 판단이 끝나면 유품 소장자에게 임시보관증을 발급하고 유품을 국내의 임시격납처로 옮기게 된다. 이후 재단 유물수증심의위원회를 열어 소장 가치를 판단하고 유물로 지정될 경우 소장자에게 기증수납서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재단은 유물을 기증처로 보내게 되는데 베델의 유물은 독립기념관 전시가 유력하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베델 손녀집에 ‘독립유공자 명패’ 걸렸다

    베델 손녀집에 ‘독립유공자 명패’ 걸렸다

    을사늑약 부당함 폭로 글 게재 등 인정“제 집이 해외에서 처음으로 독립유공자의 명패를 부착하는 곳인 데다 한국의 국가보훈처가 여기서 공식 기념행사까지 열어주니 정말 기쁩니다. 한국인들이 우리 할아버지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에게 얼마나 감사하는지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1904년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항일언론운동을 한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22일(현지시간) 영국 스폴딩의 자택에 독립유공자 명패가 걸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처럼 감격스러워 했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이날 이곳에서 열린 ‘독립유공자의 명패 전달식’에 참석했다. 피 처장과 수전은 문 왼편에 ‘독립유공자의 집’이라고 적힌 명패와 베델의 항일 공적을 설명하는 영문 설명판을 부착했다. 수전은 감회에 젖은 듯 연신 명패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보훈처는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중 첫 명패 전달 대상으로 베델을 선정했다. 그만큼 한국의 독립운동사에서 베델의 역할을 크게 인정한 것이다. 베델은 민족언론을 창간했을 뿐 아니라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하는 글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폭로하는 글을 게재하는 등 독립운동의 ‘촉진자’로 활약했다. 1968년 한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수전은 1995년 베델의 직계 후손으로서 처음 한국을 방문해 훈장을 받았다. 수전은 “할아버지를 기리는 공식 행사 때마다 한국을 자주 찾았는데, 오늘은 한국 정부가 영국을 직접 찾아줘 감회가 새롭다”며 “이 명패로 할아버지가 조선이란 나라에 가서 특별한 업적을 남긴 사실이 이웃에 전파될 것이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내 조상이 한 나라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사실이 영광스럽다”고 덧붙였다. 서울신문과 대한광복회는 보훈처 후원으로 지난 10월부터 내년 3·1운동·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독립유공자의 명패’ 모금 활동을 벌여왔다. 한편 이날 수전은 베델 부부가 조선에서 사용하다 영국으로 가져간 수납용 가구, 우편엽서, 베델이 촬영한 당시 사진 등을 한국 정부에 기증(영구 임대)했다. <서울신문 8월 3일 27면> 스폴딩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인촌로→고려대로’ 성북, 일제 잔재 거리명 지운다

    ‘인촌로→고려대로’ 성북, 일제 잔재 거리명 지운다

    서울 성북구 ‘인촌로’가 ‘고려대로’로 바뀐다. 성북구는 지난달 15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실시한 ‘도로명 변경 서면동의’에서 인촌로 주소 사용자 9118명 중 5302명(58%)이 고려대로로 바꾸는 데 동의했다고 19일 밝혔다. 구는 지난 2월 항일독립지사선양단체, 고려대 총학생회와 인촌로 변경 논의를 착수했고, 8월엔 인촌로 직권 변경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설명회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 인촌로는 지하철 6호선 보문역~고대병원~안암역~고대앞사거리 구간(약 1.2㎞)으로, 도로명판 107개와 건물번호판 1519개에 사용된다. 구는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을 교체하고, 공적장부의 도로명 주소 전환 작업도 최대한 빨리할 계획이다. 인촌 김성수는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인물이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성북동 심우장으로 옮겨온 후 그를 따르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성북구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쳐 온 만큼 인촌로 변경은 당연한 노력”이라며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을 앞두고 바른 역사 세우기에 동참해 주신 구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이사람 e향기] “태양광 에너지는 국가산업 전략 수종… 에너지 자립국으로 거듭나자”

    [이사람 e향기] “태양광 에너지는 국가산업 전략 수종… 에너지 자립국으로 거듭나자”

    “태양광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가 원자력과 석탄에너지를 제치고 우리나라 미리 에너지 정책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과 바람직한 미래 에너지 정책 설계를 위해 한국원자력학회에 공동 콘퍼런스를 정식 제안합니다.” 정우식 (사)한국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은 최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이같이 밝혔다(관련 기사 34면). 에너지원별 비중을 ‘현재보다 늘려야 한다’는 응답을 기준으로 태양광 에너지와 바이오에너지, 풍력에너지 등 재생에너지는 각각 67.9%, 66.6%, 61.1% 등인 반면 최근 논란이 된 ‘원자력 에너지’는 25.0%에 그쳤다. 정 부회장은 또 “미국 원자력에너지연구소(Nuclear Energy Istitute) 자료에 의하면 1기가와트 설치에 태양광 에너지는 1060명, 원자력발전은 500명, 석탄발전은 190명, 가스발전은 50명 정도 고용 창출이 된다”며 “검증된 태양광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를 국내에서 자체 생산해 ‘에너지 자립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양광 에너지 등을 국가산업의 전략 수종으로 보고 그에 맞는 법률적 지원과 산업육성정책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새해 태양광지도사 민간자격증 사업을 실시해 인력양성의 물꼬를 트겠다”며 “북한과 태양광 에너지 협력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협회는 지난 10월 중국에서 북측 관계자와 만나 태양광 에너지 협력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을 논의했다. 현재 100조원인 세계 태양광 시장이 2~3년 후 150조원 이상으로 폭발 성장할 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데다 북한 주민들의 전기복지 제공과 북한산업 활성화를 위한 전력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만인의 행복으로부터 내 자신의 행복을 찾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삶을 살고자 한다는 정 부회장. 한국의 태양광산업이 명실상부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어가는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서 펼치게 될 활약을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서울신문 기획특집(서울플러스)과 공동으로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태양광 관련 대국민 여론조사를 하셨습니다. -태양광 에너지에 대한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일차적으로 태양광산업협회의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근거자료가 되겠지만 나아가 정부의 태양광산업과 재생에너지 정책에도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지금까지 태양광 에너지를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여론조사 진행은 몇 안 되는 사례로 기억합니다. 새해에는 분기별 여론조사로 정례화시켜 국민의 뜻을 적극 반영할 계획입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로 보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원자력과 석탄에너지를 제치고 우리나라 미래 에너지 정책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협회에 앞서 원자력학회의는 ‘원자력’을 중심으로 지난 11월 19일 여론조사를 발표했습니다. -원자력학회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에너지정책과 바람직한 미래 에너지 정책 설계를 위해 원자력학회와 공동 콘퍼런스를 정식 제안합니다.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직접 소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태양광과 원자력’은 상충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가요. -우리나라 에너지는 석탄·원자력·재생에너지·LNG 분야로 4축입니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발생하는 화석연료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문제 제기가 많습니다. 줄여야 한다는 확고한 흐름입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와 나라를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 LNG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재생에너지가 산업뿐만이 아니라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재생에너지가 전체 에너지를 감당할 만큼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가 성장할 동안 국가에너지 체계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보완해 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현 정부 정책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자력발전은 2083년까지는 재생에너지와 함께 가야 할 주요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양광산업 10대 쟁점’이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통해 대표적인 가짜 뉴스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9월부터 태양광에 관한 가짜뉴스가 증폭되어 왔습니다. 가짜뉴스 사례를 보면,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에 대한 오해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어떤 특정 언론이나 특정 이해 세력을 대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과장, 침소봉대한 언론 보도를 통해서 진실과는 거리가 먼 기사들을 양산하고 있어서 기자회견을 통해 진실한 보도를 해줄 것을 요청 드리고자 했습니다.→현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2030년에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이 EU는 평균 32%, 독일은 2030년 50%~60%에 해당됩니다. 한국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재생에너지에 대한 홀대 속에 그 비율이 턱없이 낮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발표한 3020정책 자체는 아주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계적인 추세에 비하면 상당히 미흡한 게 사실입니다. →태양광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제되어야 할 규제는 무엇인가요. -태양광을 설치할 때, 지자체에서 도로 이격거리 제한으로 인해 100m 많게는 900m 이내 떨어진 곳은 인허가가 불허되는 제한 규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산지법시행령의 경우, 원자력이나 화석원료발전소는 산지사용 부담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 태양광만 산지 전용료뿐만 아니라 20년간 사용 후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는 규제가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20년 사용하고 원상 복귀 시켜야 한다는 조항은 없지 않습니까? 화석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태양광만 특별히 20년 후 원상 복귀를 시켜야 되어야 하는지요? 이런 규정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고 태양광에 대한 차별정책입니다. 그리고 공장이나 주택 등 건축허가 시 경사도 20°도 까지 신축할 수 있으나 태양광만 15°도 이상은 설치할 수 없습니다. 또 주택, 공단, 골프장 등 산지 훼손 측면이 있음에도 이에 대한 규제가 없는데 오히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이산화탄소를 절감하는 효과가 증명된 태양광에 대해서만 특별 규제를 하는 것은 과도하기도 하고 형평성에 어긋난 차별규제라 생각합니다. 추가로, 수상태양광을 하려고 해도 5㎞ 이내에 주민들에게 모두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문제라든가 이런 것도 과한 규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태양광산업에 대한 세계적인 추세는 어떻습니까. -전 세계 전력에 대한 투자현황을 보면 태양광·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85~90%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원전, 화석발전이 10% 내외입니다.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에 85%~90%를 투자한다는 것은 다른 기존 에너지원 보다 훨씬 경제성, 효율성, 안정성, 환경성 등이 종합적으로 검증이 되었기에 투자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이미 태양광 생산단가가 원전, 화력발전, 가스보다도 훨씬 저렴해졌다는 것입니다. 미국, 중국, 인도, 독일, 영국이 2017년을 기점으로 태양광발전단가가 원전, 화석원료, 가스보다도 저렴해져 있는 상황이고 전 세계적으로는 2023년~2025년에 그리드 패리티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리드 패리티란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단가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존 화력발전 단가가 동일해지는 균형점을 말합니다. →부회장께서는 ‘태양광산업을 국가전략 수종업종’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오셨는데요. -현재 한국의 에너지 사용량은 세계 7위~10위로 에너지 소비대국입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2위 경쟁대국이고요. 에너지 생산을 위해 99% 가까이 원료를 수입하고 있어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패권경쟁이 치열해지고 에너지를 자원화, 무기화하려는 추세들로 인해 에너지 수입 자체에 불안정성도 높아가고 있어요.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 750만 인구의 영남지역으로 만약 이 지역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회복할 수 없는 국가적, 세계적 재앙이 될 것입니다. 이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네요. 또한 4차 산업혁명과도 깊은 연관이 있고 현재 세계적으로도 폭발적인 기술혁신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먹고 살 수 있는 신성장 동력도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분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국제 정세에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의 태양으로부터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환경적으로 검증된 에너지를 국내에서 자체 생산하여 ‘에너지 자립국가’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에 정부는 태양광산업을 국가산업의 전략 수종으로 보고 그에 맞는 법률적 지원과 산업육성책이 필요합니다. →태양광산업이 일자리 창출, 고용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 원자력에너지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1기가와트 설치에 태양광 에너지는 1060명, 원자력은 500명, 석탄발전은 190명, 가스발전은 50명 정도 고용 창출이 된다고 합니다. 산업생태계를 살펴보면, 태양광연구, 부품 소재 제조업, 설치시공, 유지관리, 발전사업자, 전력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는 빅 데이터, 전력을 생산·판매할 수 있는 프로슈머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특히, 전력 거래 프로슈머는 블록체인기술 기반으로 형성되고, 규모가 큰 태양광발전소는 드론을 통해 관리되는 등 4차 산업과 관련한 다양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합니다. 유럽의 경우, 태양광 제조업이 14%, 유지관리, 발전사업, 설치시공 등이 86% 일자리가 창출되는 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협회에서 준비하는 인재양성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내년 초부터 실시하려는 사업으로 민간자격증 사업입니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최소한의 기본 교육을 통해 준비하고 투입하고자 합니다. 우선, 태양광지도사자격증 취득을 통해 인력양성의 물꼬를 튼 다음 점차 전문적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협회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십시오. -지난 참여정부 시절 재생에너지산업에 드라이브를 건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흐름에 재생에너지의 핵심인 태양광산업정책을 생산하고 태양광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협회가 있어야 된다는 공감대 속에 2008년 12월에 협회가 설립되고, 2009년 6월에 사단법인으로 공식 등록했습니다. 현재 세계 1위 기업인 한화를 비롯해서 LG,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 신성이엔지 등 태양광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설치시공기업들, 한전을 비롯한 발전사업자들도 회원사로 가입하여 65개 회원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협회 차원에서 북한과 교류협력도 준비하고 계신가요. -태양광업계는 중국의 저가 경쟁에 의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데요. 남북경협이 제대로 된다면 중국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우수한 기술력에 저렴한 원가경제력이 확보되면 현재 100조원에서 2~3년 후 150조원 이상으로 폭발적 성장 할 세계태양광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협회는 지난 7월에 태양광경협TF를 구성해서 경협을 위한 기초자료수집, 북측의 재생에너지 관련 법률, 정책 등 연구를 진행했고 지난 10월에는 중국에서 북측 관계자를 직접 만나 경협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을 논의한 상태입니다. 북측은 발전량 자체도 부족하지만 전력계통망이나 설로가 낙후되어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북측의 전력망을 신설하려면 10년 이상 소요됩니다. 태양광은 소규모로도 생산해서 공급이 가능해 대규모로 건설해도 1~2년이면 가능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전기복지 제공과 북한의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전력 문제 해결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학창시절 동국대 총학생회장 이후 지금까지 한길로 살아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협회 부회장이라는 중책은 어떤 인연으로 맺게 되신 건가요. -지난 30여년 동안 저의 일관된 삶은 내 자신의 삶보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삶, 내 자신의 행복보다는 만인의 행복으로부터 자신의 행복을 찾는 여정입니다. 학생운동, 시민운동, 통일운동이 그렇습니다. 특히, 불교환경연대 활동 당시 전국의 모든 사찰에 태양광을 비롯한 친환경 에너지를 설치하려고 사업을 준비했어요. 당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저지하는 것이 중심 운동으로 전개되면서 하지 못했던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연이 되어 태양광산업협회에 부회장으로 일을 하게 된 것은 못다 이룬 꿈을 한번 펼쳐볼 수 있는 기회를 하늘이 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 당선을 위해 불교계에서 큰일을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저는 동국대학교로 치면 약 30여 년간 인연을 이어 온 불교계 일을 대한불교청년회 중앙회장을 끝으로 마무리하고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국민들과 같이 저 역시 탄핵 이후보다 민주화되고, 보다 국민의 삶이 청정해질 수 있는 정부가 수립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1년간 준비한 전국의 500명 불자 조직을 통해 새 정부를 만드는데 열심히 뛰었습니다. 불교계 모든 종단이 민주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불교계는 약간 보수적인 후보를 지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교계가 촛불정신을 받은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데 노력하자는 취지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돕게 되었어요. 불교계 5대 종단의 대표 스님들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 내외분과의 자리를 만드는 등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삶의 철학이라고 할까요. 개인적인 포부는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 태양광업계가 매우 어렵습니다. 태양광산업이 명실상부한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어가는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태양광 기업들의 어려움이 해결되고 태양광 종사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산업과 국민을 위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일차적인 포부입니다. 삶의 철학은 ‘만인의 행복으로부터 내 자신의 행복을 찾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삶을 살고자 합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정우식 부회장은 1969 전남 보성 출생 1993 동국대학교 철학과 졸업 경력 1991 서울 동국대학교 총학생회장 2006~2010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2011~2013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청년위원장 2016~2017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민주평통 자문위원 대한불교청년회(KYBA) 중앙회장 조계사청년회장 연꽃 생협 이사장 DMZ평화생명동산 이사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이사 경부운하저지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4대강 범국민대책협의회 집행위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운영위원 한국종교연합 공동대표(현)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회 민족대표(현) (사)평화문화재단 이사(현) 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 민주당 중앙당 교육연수원 부원장 서울특별시당 청년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직능특보 박원순 시장 후보 조직특보 조희연 교육감 후보 종교본부장 저서 : 목민심서, 하루 첫 생각 상훈 :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장상(2001),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2006),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상(2009), 통일부장관상(2013)
  • 이낙연 총리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꿔 부르자”

    이낙연 총리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꿔 부르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14일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꿔 부르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3·1운동 및 임정수립 100주년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3·1운동의 바른 이름 붙이기에 관해 학계에서 좀 더 깊은 논의가 전개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제는 3·1거사를 폭동, 소요, 난동으로 부르며 불온시했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 등 민족진영은 3·1혁명, 3·1대혁명이라 불렀다”며 “제헌국회의 헌법조문 축조심의에서 3·1거사에 대해 혁명, 항쟁, 운동 등의 명칭이 논의되다가 ‘3·1운동’으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세에 대한 저항을 ‘혁명’으로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몇몇 의원의 주장이 받아들여 졌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3·1거사의 영향을 받아 두 달 뒤 중국에서 벌어진 5·4운동을 중국은 ‘5·4운동’ 또는 ‘5·4혁명’이라고 부르고, 1894년 농민 봉기도 ‘동학란’으로 불렸지만 1960년대 이후 ‘동학혁명’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출발이라고 헌법이 선언하고 있다”며 “그 100주년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과거 100년을 총괄하고, 현재를 조명하며, 미래 100년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3·1운동의 역사를 훨씬 더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것과 3·1운동의 바른 이름 붙이기에 관한 것,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3·1운동 관련 학술행사에서 ‘1919년 3월 1일 오후 5시까지 시위대를 진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 �, ‘독립 만세라는 시위방식을 제안한 사람은 누구인� ?� 대한 흥미로운 질문이 나왔다”며 “3·1운동 연구나 기념사업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전개되면 좋겠다”고 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삼일대로에 이름 새기고, 3·1운동 정신 기리고

    삼일대로에 이름 새기고, 3·1운동 정신 기리고

    서울시가 3·1운동의 발상지 삼일대로에 추진하는 ‘3·1시민공간’ 조성 사업에 시민은 물론 해외동포들의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시민단체인 ㈔사람숲(이사장 양길승)은 지난 6월부터 시작한 3·1시민공간 조성 기부자 모집에 최근까지 2000여명이 신청했다고 13일 밝혔다. 국내는 1000여명, 해외 모집에는 목표(1031계좌)를 넘는 1700여계좌를 달성했다. 해외의 경우 미주한인서부연합회, 실리콘밸리한인회, 이스트베이노인봉사회 등 샌프란시스코 지역 교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이뤄졌다. 샌프란시스코 ‘김진덕정경식’재단의 김순란 이사장과 김한일 대표의 노력이 컸다고 사람숲은 전했다. 특히 주목받는 해외 인사들의 기부도 많았다.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의 참상을 영문 논픽션 에세이로 고발한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의 부모가 딸과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금을 냈다. 또 캘리포니아 주의회 중국계 미국인 의원들과 일본계 미국인 마이크 혼다 의원, 중국의 위안부 문제 전문가인 장솽빙(張雙兵)도 동참했다. 기부 금액은 3·1운동의 의미를 담아 최소 3만 1000원부터이며 오는 20일까지 신청받는다. 기부자는 사람숲이 주도하는 탑골공원 후문광장, 서북학회 터,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 운현궁 앞 등 5군데 작은 공원에 설치하는 걸상과 바닥재 등 한 곳에 이름을 새길 수 있다. 경기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이모(47·회사원)씨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도에 태어나신 외할아버지는 내 이름과 내 말을 쓰는 게 소원이셨다”며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그의 소원을 영원히 담아드리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시는 3·1운동의 발상지인 삼일대로 안국역~탑골공원 구간을 3·1시민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역사가 숨 쉬는 공간인 만큼 선조들의 이야기를 시민에게 전달하고 3·1운동 정신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주안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내년 3월 1일 완공될 예정이며 사람숲은 이 중 거리공원 조성에 참여한다. 배다리 사람숲 상임이사는 “삼일대로는 100년 전 시민 스스로 독립의 정당성을 세계에 외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라면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조성하는 역사적 상징 공간이야말로 3·1운동을 현재화하고 3·1운동 100주년을 뜻깊게 맞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독립운동가 명패 보면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 가져달라”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독립운동가 명패 보면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 가져달라”

    내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과 광복회는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지난 10월 말부터 독립유공자 명패달기 성금 모금을 진행해왔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10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존경과 예우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앞으로 명패를 마주하게 될 때마다 이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주셨으면 하는 당부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또 “이번 명패 사업은 독립유공자의 예우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으로 시작됐다”고 했다.→‘독립운동가의 명패’를 제작해 독립유공자에게 전달하려 성금 모금 캠페인을 추진하는 소감은. -‘독립운동가의 명패’ 프로젝트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온몸을 던져 희생하고 헌신하신 독립유공자 분들에게 우리 국민이 직접 정성을 모아 명패를 달아드리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또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대한매일신보를 계승한 서울신문과 독립유공자의 유지를 계승하고 있는 광복회가 함께 캠페인을 진행해 의미를 더하고 있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국민 성금 모금을 통해 독립유공자에게 명패를 달아드릴 수 있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특히 이 사업은 문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으로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평소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 문제를 고심해 왔고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각계에서 이번 모금에 참여했다. -학생독립운동 포상자의 학교 후배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하기도 했고, 대한민국 정체성과 보훈 선양을 위해 공익재단과 기업도 기꺼이 함께했다. 당초 사업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 같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독립유공자에게 이번 명패가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은가. -명패는 단순히 달아드리기 위한 형식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도록 독립유공자의 헌신을 나타내고 감사와 품격을 담아 디자인됐다. 독립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사업을 통해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은 자긍심을 갖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국가유공자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존경과 예우는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경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명패를 마주하게 될 때마다 이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주셨으면 하는 당부를 드리고 싶다. →내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100주년의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3·1운동은 지역과 세대, 종교를 넘어 전 국민이 한마음이 돼 대한독립과 국민주권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던 중요한 사건으로 3·1운동 이후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반만년 역사 중 최초의 민주정부이며 대한민국의 뿌리다. 내년 100주년은 조국 광복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통해 성공한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남북평화와 번영을 바탕으로 ‘새로운 희망의 미래 100년’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100주년을 앞두고 어떤 정책과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는가. -보훈처는 내년 100주년 추진 방향을 ‘기억과 계승, 예우와 감사, 참여와 통합’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동안 4월 13일이었던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자료 고증을 통해 4월 11일로 바로잡고 내년에 100주년 기념식을 갖게 된다. 또 3·1절부터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까지 전국 70개 만세운동 발현지를 돌아보는 ‘3·1만세운동 전 국민 릴레이 만세재현 독립의 횃불’ 행사를 통해 100주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임시정부 활동 전체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과 중국 충칭의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복원,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 선생 기념관’ 조성, 그리고 일본 도쿄의 ‘2·8독립선언 기념 자료실’ 재개관, 충칭 광복군 총사령부 복원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다. →보훈처는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해 북한과 공동으로 유해 발굴을 시도하고 별도 사업단까지 구성돼 있다. 현재 사업의 현황과 향후 계획은. -정부는 2010년 ‘안중근의사유해발굴추진단’을 발족한 뒤 안중근 의사 매장지 관련 자료 조사를 매년 실시하고 있으며 보다 정확한 유해 매장지 단서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최근 남북 관계 개선에 따라 안중근 의사 유해 남북 공동발굴을 ‘당국자회담’ 의제로 상정토록 노력하고 합의 결과에 따라 매장 추정지에 대한 조사와 발굴을 남북 공동으로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독립운동 해외 사적지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국외 사적지의 경우 해당국에 소유권이 있어 정부 주도로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정부는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해당 국가와 긴밀히 협조하고, 해당국 민간단체와의 상호 협조로 국외 사적지가 잘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국외 사적지 관계자 연석회의를 비롯한 현지 실태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세대가 지날수록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작업이 쉽지 않은데. -2005년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을 설치한 이래 지금까지 1만 5000여 명에 이르는 분들을 포상했으나 알려진 독립운동 규모에 비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서훈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개인의 인적사항과 활동내용이 자료에서 확인돼야 가능해 독립운동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독립운동 관련 행형기록을 전수조사·분석하고 있다. →보훈처 최초의 여성 처장 취임 이후 그동안 조명되지 못했던 여성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전체 유공자 중 여성의 비율과 향후 계획은. -현재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여성은 357명으로 전체 서훈자 1만 5180명 중 2.35%에 해당한다. 지난해 말 300명도 채 되지 않았던 상황에 비춰 보면 괄목할 만하지만 독립운동 과정에서 여성이 실제로 수행한 역할을 감안하면 여전히 매우 적은 규모다. 포상하려면 당시의 자료에서 공적내용이 확인돼야 하는데 여성의 경우 남존여비 풍조 등 시대상황의 한계 때문에 활동상이 자료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성독립운동가 발굴 정책연구 용역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에 부응하는 예우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최근 보훈정책 혁신을 위해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가 출범해 ‘독립운동 분야’와 관련된 권고안을 발표했다. 보훈혁신위가 권고한 독립유공자 훈격 재심사와 가짜 독립유공자 권고안 등 보훈처의 향후 계획은. -전수조사는 약 5개년에 걸쳐 단계별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역사 등 각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가칭 ‘독립유공자검증위원회’를 구성하고 산하에 전수조사 실무 TF를 조직해 별도의 조사와 연구 인력을 확보하고 조사와 검증 업무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겠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캠페인 성금 주요 기부자 명단 총 모금액 3680만 9350원(10일 현재) ▲개인이상우 외 226명 ▲단체대한국인, 스타키그룹, 대구금오회, 광주제일고 등
  • 성동 ‘뚝섬항일운동’ 아시나요

    성동 ‘뚝섬항일운동’ 아시나요

    서울 성동구는 지난 4일 구청 8층 대회의실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발족식을 개최했다고 9일 밝혔다. 성동구는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주민들과 함께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준비위원회를 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준비위원회는 역사분과, 종교분과, 문화분과, 구민참여분과 총 4개 분과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역사분과는 뚝섬항일운동 등 지역의 항일운동 발자취를 찾고, 강연 등을 통해 3·1운동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종교분과에선 지역 내 종교계 참여를 유도하고,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등 집회를 연다. 문화분과에선 3·1절 100주년 기념 주간을 지정, 사진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구민참여분과에선 태극기 퍼포먼스, 태극기 달기 운동 등 독립운동 정신을 기릴 여러 행사를 추진한다. 구 관계자는 “행사 기획부터 준비, 진행까지 관이 아니라 주민 주도로 이뤄진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 구 뚝섬 지역에서도 항일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는 점을 구민들에게 널리 알릴 것”이라고 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3·1운동은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으로 진행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평화독립운동이자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점”이라며 “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구민 모두가 역사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기념행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자동차 번호판·화폐·배지… 일상생활에서 애국정신 기린다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자동차 번호판·화폐·배지… 일상생활에서 애국정신 기린다

    유공자 존경 의미 자연스럽게 표현 美, 붉은색 등 3색 車번호판에 사용 영연방 국가선 양귀비꽃 배지 제작 佛, 현충일에 ‘수레국화’ 공식 판매국가보훈처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가의 명패’를 독립유공자에게 전달키로 하면서 다른 선진국의 보훈 상징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붉은 양귀비꽃, 프랑스의 푸른 수레국화, 미국의 성조기 3색 등 선진국은 이미 과거부터 보훈 상징물을 집중 육성해왔다. 기념일이나 기념시설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독립유공자를 우대하는 문화를 조성할 수 있어서다. 보훈처 관계자는 3일 “독립유공자의 명패는 국가가 직접 유공자를 보호하고 존경한다는 의미를 담아 태극기를 활용해 디자인했다”며 “국가유공자를 상징하는 명패가 유공자의 집에 걸리면 이웃이 유공자와 가족의 존재를 인식해 따뜻한 말을 건네고 교류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공자를 존경해야 한다는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보훈 상징물인 명패가 유공자 보호와 존경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북미에서는 통상 자동차 번호판을 활용해 애국심을 표현한다. 미국 18개주와 워싱턴DC에서 1976년 독립 200주년을 맞아 국기에서 사용하는 붉은색, 흰색, 푸른색의 조합을 자동차 번호판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었다. 캐나다는 1967년에 10개주 중 5개에서 자동차 번호판에 캐나다 연방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표기(Canada Centennial)를 할 수 있게 했다. 현재도 미국은 의회 명예훈장 수상자, 전사자 가족, 진주만 생존자, 전쟁포로 등에게 특별 번호판을 쓸 수 있도록 한다. 캐나다도 캐나다군, 유엔군, 왕립캐나다 기마경찰(RCMP) 등에 소속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작전 또는 평화유지 임무에 참여한 경우에 특별 번호판을 신청할 수 있다. 캐나다는 번호판에 주로 붉은 양귀비꽃을 새겨 넣는다.붉은 양귀비꽃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거의 모든 영연방 국가에서 사용하는 상징물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1차 세계대전 중 캐나다 원정군이던 존 알렉산더 맥크래 중령이 2차 이프르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에 만개한 붉은 양귀비꽃을 보고 쓴 시(플랑드르 들판에서)가 기원”이라며 “1915년 시가 발간된 후 미국 조지아대 모이나 벨 미셸 교수가 이 시에 감명을 받아 1918년 붉은 양귀비꽃을 전쟁 사망자 추모를 위한 상징으로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이후 영국에서 1921년에 붉은 양귀비꽃 상징물을 제작했고 제대군인과 전쟁 사망자의 유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판매했다. 현재 영연방 국가에서는 현충일(11월 11일)이나 앤잭 데이(4월 25일·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기념일)에 붉은 양귀비꽃 배지를 옷에 착용한다. 영국에서만 연간 4000만개 정도의 붉은 양귀비꽃 상징물이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표권은 영국 제대군인 협회가 갖고 있다. 프랑스 수레국화도 1916년 제대군인, 전쟁 피해자, 유가족, 고아 등을 기리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됐다. 색깔이 1차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푸른색 군복과 유사해서 참전 군인의 상징물이 됐다는 설도 있다. 프랑스 정부는 1935년부터 현충일(11월 11일)에 수레국화를 판매하도록 공식 인증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외국에서 화폐, 우표, 자동차 번호판 등에서 보훈과 관련한 상징물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며 “독립유공자의 명패 역시 향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가유공자 명패는 태극에 불꽃 도형을 결합해 국가유공자의 존재 가치와 숭고한 희생을 표현했다. 불꽃 도형 윗부분은 태극기의 건괘로 처리해 하늘을 공경하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사상을 함축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캠페인 성금 주요 기부자 명단 총 모금액 3620만 9350원(지난달 30일 기준) ▲개인 이상우 외 203명 ▲단체 대한국인, 스타키 그룹, 복주요양병원, 대구금오회, 광주제일고 등
  • 문 대통령, 프라하에서 청산리대첩 ‘소환’한 까닭은?

    문 대통령, 프라하에서 청산리대첩 ‘소환’한 까닭은?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의미 깊은 해다. 체코는 독립운동과도 아주 깊은 인연이 있다. 1919년 극동지역에서 볼셰비키 전투 중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 군대가 우리 임정 대표들과 여러 차례 교류했다. 1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체코로 돌아갈 때 그들이 가진 무기를 우리 독립군들에게 매도를 해줬다. 그때 한국 독립군이 체코 군대로부터 매입한 무기를 사용해 크게 이긴게 청산리 대첩(1920년)이다.” 고교 시절부터 역사학도를 꿈꿀 만큼 남다른 관심을 지닌 문재인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체코 동포·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이처럼 체코와 청산리대첩의 남다른 인연을 끌어냈다.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에서 독립군이 10여 회의 전투 끝에 일본군 연대장을 포함 1200여 명을 사살하는 등 빛나는 승리를 거둔 이면에는 체코 무기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프라하 힐튼호텔에서 열린 동포·기업인 간담회에서 “청산리대첩이라는 항일운동에서 가장 유명한 그 승리도 체코 무기의 우수성에 도움을 받은 바가 크다. 그런 사실이 청산리전투 참여했던 이범석 장군의 ‘우둥불’이라는 회고록에 기록돼 있다”고 설명하자 참석했던 20명의 교민은 ‘그런 사실이 있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 대통령은 이어 “3·1운동도 여기 체코 신문에 아주 크게 보도가 돼서 중유럽과 동유럽에 3·1 독립운동을 알리는 아주 큰 역할을 했다”며 “정부는 내년에 3·1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남북이 공동으로 하는 온겨레의 축제로 준비하고 있다”며 재외 동포들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원래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처음 변호사 할 때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말할 만큼 해박한 역사 지식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문 대통령은 또한 “체코는 아시아 국가 중에 최초로 우리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며 “그런 만큼 체코는 우리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중요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체코는 한국전 이후에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위원국으로 이렇게 참여한 인연도 있어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아주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문 대통령은 동포간담회와 별도로 현지 기업인과도 만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간담회에 기업인들을 초청해 한꺼번에 행사를 진행했다. 간담회에는 체코한인회 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체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 주재원,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감독, 체코국립극장과 국립발레단 단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동포 20명이 참석했다. 양동환 현대자동차 체코 법인장, 박현철 두산 인프라코어 유럽 법인장 등 체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 등 경제인들도 함께했다. 최춘정 세계한인경제인협회 프라하지회 부회장은 “중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체코에 한국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진출했다“며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어, k-pop, 한국 영화 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며 체코인들에게 한국 문화, 역사, 예술을 알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한섭 프라하 한글학교 교장은 “교민 자녀들이 한-체코 간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문화.역사와 한국어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합창단원으로 활약 중인 조원배 테너는 문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는 마음을 담아 ‘벚꽃엔딩’과 ‘희망의 나라로’를 부르기도 했다. 프라하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미스터 션샤인’ 고애신 몰래 도운 유한양행·교보생명 창업주

    ‘미스터 션샤인’ 고애신 몰래 도운 유한양행·교보생명 창업주

    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이 의병을 조직해 활동하는 데 도움을 준 숨은 독립운동가를 조명해 더욱 인기를 얻었다. 특히 민족기업은 당시 일제에 의한 파산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 자금을 몰래 지원했다. 국가보훈처가 내부 문헌 자료 및 해당 기업 등을 조사해 100년 전 군자금을 댄 3개 기업을 확인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26일 “독립유공자 공훈록 등을 확인한 결과 유한양행, 동화약품, 교보생명을 각각 세운 유일한, 민강, 신용호 선생이 독립운동을 지원하거나 실제 독립투사로 활동했다”고 밝혔다.1894년 평양 출생인 유일한 선생은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소년병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1919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서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석명하는 결의문’을 작성·낭독했다. 제너럴일렉트릭사의 회계사로 근무하던 그는 1926년 연희전문학교 교수 초청으로 귀국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의 신념은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였다. 이후 미국 내 모든 한인 단체를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집행부 의원으로 일명 ‘맹호군’으로 불린 한인국방경위대를 편성하는 데 후원했다. 지속적으로 군자금을 출연해 독립운동을 후원한 것도 확인됐다. 1944년에는 미군의 한국침투작전을 위해 특수공작을 주임무로 하는 한인훈련부대가 설치되자 이곳에 입대해 1조 책임자로 임명됐다.민강 선생은 1883년생으로 14세 때 선친이 세운 동화약방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1909년 각계 인사 80여명과 비밀결사단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국권회복운동에 나섰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남대문 밖에 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에 매진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고 한성임시정부 수립과 국민대회 개최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동화약품을 연락 거점으로 자금조달 활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렀다.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후 비밀 연락기관이었던 서울연통부의 책임자도 겸했는데 1921년 연통부가 발각되면서 또다시 1년 6개월간 감옥에 갇혔다. 출옥 후 상하이에서 교민단의사회의 학무위원 등을 역임했지만 1924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다시 옥고를 치렀고, 출소 직후 순국했다.1917년생인 신용호 선생은 독립운동 가문에서 태어났다. 맏형은 전남 영암의 항일농민운동의 주동자였고, 셋째 형도 일본 도쿄에서 항일 학생운동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였다. 20살 때 중국으로 떠나 사업을 시작했고 1941년 북일공사를 설립해 미곡 유통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직간접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후 30살 때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와 민주문화사를 설립했다. 자원이 없는 국가의 대안은 교육과 자본이라고 생각해 1958년 대한교육보험회사(교보생명)를 창립했다. 특히 자녀가 진학하면 보험금 전액을 돌려받는 진학보험은 일제시대와 6·25전쟁 이후 인재 양성에 기여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3·1운동·임정 수립 100주년 주화 공개

    3·1운동·임정 수립 100주년 주화 공개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2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100주년 기념주화를 공개했다. 한완상 기념사업추진위원장과 허진호 한국은행 부총재보, 조용만 한국조폐공사 사장, 독립유공자인 고 박성화 지사의 손자 박지홍씨 등이 참석했다. 기념주화는 은화 2종류로 모두 액면금액이 5만원이다. 은화 1종은 3·1운동을 주제로,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희승 박사의 한글 풀이본 독립선언서를 인용했다. 은화 2종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주제로, 임시정부 초기 청사의 모습을 담았다. 100주년 기념주화는 다음달 7일까지 우리은행과 농협은행 전국 지점 또는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받아 내년 1월 2일 발행된다. 가수 비와이(본명 이병윤)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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