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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3·1절 72돌/독립유공자 54명에 훈장 수여

    3·1절 제72주년 기념식이 1일 상오 서울을 비롯 전국 각시도에서 독립유공자 유족·선행시민 등 각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서울에서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박준규 국회의장 김덕주 대법원장 등 3부요인과 이강훈 광복회장 등 광복회원,3·1운동 희생자유족 등 각계인사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고 한정도 정훈모씨 등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중 희생된 독립유공자 54명에게 건국훈장 애국장 및 애족장이 수여됐다. 이날 정오엔 서울 종로2가 보신각 종이 33번 타종됐다. 타종행사에는 이강훈 광복회장·서상교 광복회이사·이태영 33인 유족대표·이해원 서울시장이 참석했다. 한편 서울 파고다공원에는 해마다 열리던 3·1운동 희생자에 대한 추모식이 열리지 않았음에도 어린이와 중고생을 동반한 가족단위의 입장객이 몰려 3·1정신을 기렸다.
  • 재야인사 20여명/3·1절 시국성명

    문익환목사 계훈제·백기완씨 등 재야인사 20여명은 1일 상오9시 서울 중구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3·1절 72주년을 맞아 성명을 내고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어떠한 외세에 굴함이 없이 자주독립을 쟁취하자』고 말했다.
  • 외언내언

    3·1절로 시작하는 3월. 민족자존의 원천이 되는 달이다. 70년전의 독립운동 사료가 무궁무진하게 계속되어 발굴될만큼 아직도 3·1운동은 살아 숨쉰다. 더욱이 올해에는 북방외교가 열리자 또다른 방향에서 풍요한 자료들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 연변대학 교포교수가 당시의 언론보도를 분석한 자료는 신선하고 힘차다. 3·1운동을 『…생기와 살기의 충돌,공리와 강점의 고전』이라고 규정하고,조선측이 생기와 공리에 해당하고 일본측에 살기와 강점이 있다고 한 「매주평론」이란 신문도 있었다. 생기와 공리가 잠시 좌절된다 하더라도 곧 조선민족 독립자치의 광영이 실현될 것이라고 예견하며 『조선의 독립운동은 위대하고 비장하고 정확한 이념이 있으며 민의를 표시하며 무력을 쓰지않아 세계혁명사의 새 기원을 열어 놓았다』고 평가한 대목도 있다. ◆3·1운동이 한민족의 기상을 얼마만큼 높였는가를 알아보게 하는 기사들이다. 3월은 이처럼 우리의 근세사중에서 가장 자부심을 지닌 달이다. 조선의 혈기있는 사람중 하나도 없었다고 비칠만큼 나라찾기에 열혈을 바쳐온 선조들의 독립투쟁이,오늘의 우리에게는 오히려 송구스럽다. ◆한순간도 빤할 날이 없이 부끄럽고 구차한 허물들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들을 보면,무서운 참을성과 투쟁의지로 버티며 독립을 추구한 옛분들은 얼마나 탄식할 것인가. 그분들이 지녔던 『위대하고 비장하고 정확한 이념』이 지금의 우리에게서도 제발 발휘되었으면 좋겠다. ◆봄도 시작되고 새학기도 시작되고 회계년도도 새로 출발하는 달이 3월이다. 악몽의 걸프전도 종식되고,수렁같은 수서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간다. 우리민족의 정신의 바탕을 관류하는 지하수에는 위대하고 비장한 성분이 섞여있다. 3월이면 더욱 도도히 흐르는 이 생명수를 길어올려 새롭게 출발하는 달 3월을 준비하자. 틀림없이 밝고 빛나는 앞날이 열릴것 같은 신념이 든다.
  • 3·1절 「파고다 추모제」/광복회,올해부터 중단

    ◎유족회선 반발,강행키로 대한광복회(회장 이강훈)는 28일 매년 3월1일 파고다공원에서 실시해오던 「3·1운동 희생자추모제」를 올해부터 치르지 않기로 했다. 광복회는 이와함께 지금까지 광복회 주관으로 실시해오던 추모제를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해 매년 을사조약 체결일이자 임시정부에서 선열추모제날로 정한 11월17일에 성대히 치러주고 구서대문형무소자리에 선열추모비를 건립해 줄 것 등을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그러나 33인 유족회 권혁방회장은 『광복회가 정부의 경비지원이 끊겨 3·1절 추모제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내년부터는 유족회 자체적으로 파고다공원에서 추모제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 한ㆍ미 “미래지향”선언속 「빈손협력」

    ◎일,「과거청산」에 매달려 실질보장 “어물어물”/무역역조 시정등 처방없이 원론서 맴돌아/「아태신질서」 동반관계 조율은 성과/두차례 정상회담 뭘 남겼나 한일양국은 1박2일간에 걸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의 방한을 통해 「알맹이」보다는 「분위기」조성의 불확실한 성과를 얻었다. 물론 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총리가 두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불행했던 과거를 덮어두고 밝은 미래를 지향한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한일양국은 새로운 우호선린관계의 길을 열어 놓기는 했다. 그러나 이번 가이후총리의 방한은 처음부터 「가이후카드」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우리측 입장에서 풍성한 수확을 얻어내기는 어려웠다. 일본은 이번 가이후방한에서 『이제 과거는 그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했고 동아시아에서 급속히 형성되고 있는 새질서에 대응,일본의 위상을 추구하는 시발점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다. 이에대해 한국은 과거사는 종결짓되 확실한 보증을 요구했고 동북아시아에서 한일양국이 발을 맞추려면 일ㆍ북한관계 개선문제에 우선 보폭을 일치시켜야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두차례의 한일정상회담은 3가지의 「불확실한 성과」를 가져왔다. 첫째는 일단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의 설정에 합의한 점이다. 이에대한 가시적인 문건은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및 처우에 관한 각서」와 「한일우호협력3원칙」이다. 지문날인제 철폐,국공립초중고교 재일한국인교사채용기회 확대 등으로 상징되는 이 「과거사 청산각서」는 일부 내용의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한일양국은 『이제부터 미래얘기를 하자』는 징표로 해석되고 있다. 「아태지역의 평화와 화해,그리고 번영과 개방을 위한 공헌강화」 등 3개항의 우호협력원칙은 일견 「공자말씀」인 면도 없지않지만 미래지향문제와 관련한 양국의 「헌장」으로 이해된다. 또한 가이후총리가 10일 일제식민치하의 3ㆍ1독립운동의 진원지인 파고다공원을 일본총리로서는 최초로 방문,3ㆍ1운동기념비에 헌화하고 묵념한 것은 과거사 종결선언의 정치적 행동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의 「미래지향」 표명이 그 지긋지긋한 과거의망령으로부터 탈출하자는 데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동반자관계로 나가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것인지 하는 점이다. 이에대한 판단은 앞으로의 일본의 태도를 봐야한다는 점에서 유보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미래지향의 선언도 불확실한 성과라고 평가된다. 둘째는 일ㆍ북한수교 교섭과 한소관계 진전문제에 대한 양국의 상호협력에 인식을 같이한 점이다. 일본측은 그동안 한국이 강력히 요청한 일ㆍ북한수교에 따른 5개원칙을 전폭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힌데 이어 한걸음 더 나아가 이달말께 평양에서 있을 일ㆍ북한수교 교섭 1차본회담에서는 「5개원칙」의 하나인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겠다는 적극성을 보였다. 일본은 대북수교교섭에서 한국과의 사전 충분한 협의,남북대화와 교류에 있어 의미있는 진전 등을 항상 유념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가이후총리는 『한소관계진전에 대해 한국으로부터 충분한 협의를 얻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일ㆍ북한수교와 한소관계진전은 일종의 「맞보기」임을 지적했다. 일ㆍ북한수교는 한국이 폐쇄노선의 한계점에 이른 북한을 어떻게 해서든 개방으로 몰고 나오려는 시점에 일본이 북한에 「경협 및 보상」이라는 구원의 밧줄을 던져주는 형국이다. 이에반해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대소경협 등 한소관계진전은 일본이 경협을 미끼로 대소 북방 4개도서문제를 해결하려는 판에 매우 껄끄러운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이다. 이같은 한일양국의 입장은 서로 이해가 엇갈리는 것이기 때문에 정상간의 「외교언사」로만 극복되기는 어렵다. 다만 일본이 한국과의 진정한 동반자로서 「북방도서」보다 「분단의 고통」에 얼마나 더 비중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자국이기주의를 절제할 가능성은 있다. 셋째,산업기술협력ㆍ60억달러의 무역역조 등 현안에 관해 기본적인 문제점을 함께 인식한 점이다. 그러나 이들 현안과 관련,분명한 처방없이 원론만 되풀이 한 것은 앞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올 상반기중 한일산업기술 협력위원회를 열어 기술이전 문제를 본격 검토키로 한 것이나 가이후총리가 한국건설업체가 일본에서 차별없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하면 특례조치로 사안별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다소 진전된 것이다. 양국정상은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의 기초작업으로 청소년ㆍ학술ㆍ문화교류를 대폭 증진키로 합의했으나 일본문화의 침투 등 이 과정에서 제기될 부작용에 대한 완충장치는 계속 숙제로 남아있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오는 2월의 미소정상회담,3월의 미일ㆍ한미정상회담 그리고 4월의 일소정상회담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한에 따른 한소정상회담 등 한반도주변 국가 정상들간의 연쇄회담의 시발점이 된다는 면에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재편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한일양국이 동북아에서의 새로운 국제적 기류에 공등대응하고 이 지역 협력문제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은 양국의 위상제고에 일단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가이후총리의 방한은 올봄으로 예상되는 일왕의 한국방문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일왕의 방한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이는 미래지향을 선언한 한일양국 관계를 보는국민들의 「체감온도」를 반영해 주고 있다.
  • 가이후총리 방한 이모저모

    ◎“반일”구호속 파고다공원 3ㆍ1비에 헌화 ○…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 도시키 일본총리는 10일상오 청와대에서 약 90분간에 걸친 2차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재일교포법적 지위문제,무역역조시정문제,기술협력문제,유엔가입문제,아시아ㆍ태평양협력문제 등 양국간 쌍무적인 문제들에 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 회담이 끝난 뒤 이수정청와대 대변인은 『양국정상은 한일양국관계에 대해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회담을 가졌으며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회담내용에 만족을 표시했다』고 발표. 양국정상은 예정된 의제외에 폐르시아만사태도 거론,미ㆍ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이 결렬된데 유감을 표시하고 전쟁 등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 일이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했는데 가이후총리는 노대통령에게 『회담 결렬소식을 듣고 유엔대사에게 사무총장을 만나 중재노력을 적극화하도록 훈령했다』고 설명. 노대통령은 희담을 마치면서 『현재 한일관계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불행했던 과거를 매듭짓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정립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성의를 갖고 노력하자』고 말했으며 가이후총리는 『지난해 5월과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룩한 결과에 보람을 느낀다』며 『성의와 신념을 갖고 합의사항을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 가이후총리는 또 『지금 나는 파고다공원을 방문,느낀 바를 일본국민들에게 솔직히 전달하여 흐림이 없고 맑은 한일관계를 여는 인식을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며 노대통령은 가이후총리가 훌륭한 한국인의 친구로 오래 남기를 바라며 아시아순방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고 인사. ○…이날 상오 가이후총리의 파고다공원방문은 공원밖에서 수백명의 시민들이 반일구호를 외치는 등 다소 착잡한 분위기속에 3ㆍ1독립선언비에 헌화하고 경내를 잠시 둘러보는 순서로 10여분만에 종료. 가이후총리는 부인 사치요(행세)여사 및 나카야마(중산)외무장관 등 수행원 10여명과 함께 이날 상오11시50분쯤 공원정문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배문환종로구청장의 안내를 받으며 경내에 진입. 검은색 오버코트차림의 가이후총리는 손병희선생동상옆을 지나 곧바로 3ㆍ1독립선언비에헌화하고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 가이후총리는 이어 독립선언비주위의 3ㆍ1운동찬양부조물을 둘러봤는데 당시 유관순열사가 만세를 부르는 장면,해주기생이 일경의 기마에 짓밟히는 모습과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조각 등 세군데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내자의 설명을 경청. 가이후총리는 시종 무거운 표정으로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으며 유열사상 앞에서 『당시 17세의 여고생으로 천안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만 끄덕이기도. ○…김영삼 민자당대표,김대중 평민당총재,김재광 국회부의장 등 여야정치지도자들은 10일 하오 국회를 방문한 가이후 일본총리를 맞아 과거의 불행했던 한일관계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일본측의 반성을 강력히 촉구. 이날 해외순방중인 박준규국회의장을 대신해 가이후총리를 영접했던 김부의장은 『일제의 식민지정책 속에 7백50만이란 천문학적 숫자의 우리 동포가 희생당했다』고 전제,『가이후총리의 방한을 맞아 우리 국민 일부가 반대데모를 했다는 사실이 불행했던 과거청산이 미진했음을 증명한 것』이라며 물질적 배상보다 허심탄회한 입장에서 일본측의 성의있는 반성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
  • 과감한 민주개혁 촉구/야권 「6ㆍ10」 3돌 성명

    평민당의 김태식대변인은 9일 「6ㆍ10민주항쟁」 제3주년에 즈음한 성명을 발표,『6ㆍ10민주항쟁에서 보여준 국민의 확고한 힘을 군사독재정치가 더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면서 『대통령중심제의 준수,정치범 전원석방,지자제 전면실시 등을 외면할 경우 제2의 6ㆍ10항쟁과 같은 국민적 저항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가칭)의 장석화대변인도 이날 『6ㆍ10시민항쟁 정신의 분출은 3ㆍ1운동 4ㆍ19혁명과 함께 이 나라를 영구히 존립하게 하고 진정으로 가치있게 만든 기념비적인 민족ㆍ민주운동』이라며 과감한 민주개혁과 민생보호정책 시행을 촉구했다.
  • 유관순 열사 한자명 「관순」아닌 “관순”

    ◎천원 고향주민 호적부서 발견/“독립정신 퇴색 노려 일제 조작” 충남 천원군 병천면ㆍ동면일대 주민들은 『「유관순」열사의 이름가운데 「관」자가 「관자의 잘못』이라면서 유열사의 바른 이름찾기운동에 나섰다. 3.1운동 당시 유열사가 살았던 천원군 동면사무소 이돈종호적계장(57)은 최근 낡아 퇴색된 유열사가 일가의 호적부를 확인한 결과 유열사는 광무6년(명치35년) 11월17일 아버지 유중권,어머니 이소제씨 사이에서 둘째딸로 태어났으며 이름도 관순이가 아닌 관순이로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호적부에는 유열사의 6살 위인 언니 계출,3살위인 오빠 우석,아래로 3살밑인 남동생 인석과 6살아래인 관석 등의 형제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따라 이 일대주민들은 『한국민의 뿌리말살정책에 혈안이 됐던 당시 왜정관리들이 의도적으로 유열사의 이름중 관자를 관자로 바꿔치기 했다』면서 유열사의 얼을 빚내기 위해 바른이름 찾기운동을 벌이게 됐다고 말했다. 유열사의 호적등본이 이처럼 뒤늦게 발견된것은 지난 73년1월 행정구역개편 당시 충남 천원군 병천면 용두리 338로 바뀐 유열사의 출생지는 본래 동면 용두리 338이었기 때문에 구호적부도 옛 주소지인 동면사무소에 그대로 보관되고 있어 역사학자는 물론 누구도 쉽게 유열사의 호적이름 한자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계장은 지난 85년부터 동면ㆍ병천면 등 아우내일대 주민들 사이에 『유열사 이름이 호적기록과 틀리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다 최근 유열사의 사촌동생 정석씨(74ㆍ병천면 용두리 418)가 유열사의 정확한 한자이름을 찾아줄 것을 요구해와 옛날 호적을 일일이 뒤져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 3ㆍ1절 71돌 기념식

    제71주년 3ㆍ1절 기념식이 1일 상오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김재환국회의장 이일규대법원장을 비롯,재경광복회원 및 3ㆍ1운동 희생선열유족 등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 오늘 3ㆍ1절 71돌/전국서 기념행사

    정부는 1일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3부요인 재경광복회원 및 각계대표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71주년 3ㆍ1절 기념행사를 갖는다. 지방의 경우 이날 각 시ㆍ도단위로 기념식을 개최하며 3ㆍ1운동 사적지가 있는 지역에서는 사적지별로 3ㆍ1운동 추모제ㆍ봉화제 등이 거행된다.
  • 독립유공자 윤기안옹

    정의여중ㆍ고 설립자이자 국가독립유공자인 윤기안옹이 26일 상오2시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일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90세. 1919년 3ㆍ1운동에 참가해 일장기말살죄로 1년6개월을 복역한 윤옹은 지난82년 국가유공자로 국민훈장동백장을 받았고 71년에는 정의여중ㆍ고를 설립해 교육에 헌신했다. 발인은 20일 상오9시 한일병원 영안실. 연락처 901­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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