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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동 ‘뚝섬항일운동’ 아시나요

    성동 ‘뚝섬항일운동’ 아시나요

    서울 성동구는 지난 4일 구청 8층 대회의실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발족식을 개최했다고 9일 밝혔다. 성동구는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주민들과 함께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준비위원회를 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준비위원회는 역사분과, 종교분과, 문화분과, 구민참여분과 총 4개 분과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역사분과는 뚝섬항일운동 등 지역의 항일운동 발자취를 찾고, 강연 등을 통해 3·1운동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종교분과에선 지역 내 종교계 참여를 유도하고,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등 집회를 연다. 문화분과에선 3·1절 100주년 기념 주간을 지정, 사진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구민참여분과에선 태극기 퍼포먼스, 태극기 달기 운동 등 독립운동 정신을 기릴 여러 행사를 추진한다. 구 관계자는 “행사 기획부터 준비, 진행까지 관이 아니라 주민 주도로 이뤄진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 구 뚝섬 지역에서도 항일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는 점을 구민들에게 널리 알릴 것”이라고 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3·1운동은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으로 진행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평화독립운동이자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점”이라며 “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구민 모두가 역사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기념행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자동차 번호판·화폐·배지… 일상생활에서 애국정신 기린다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자동차 번호판·화폐·배지… 일상생활에서 애국정신 기린다

    유공자 존경 의미 자연스럽게 표현 美, 붉은색 등 3색 車번호판에 사용 영연방 국가선 양귀비꽃 배지 제작 佛, 현충일에 ‘수레국화’ 공식 판매국가보훈처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가의 명패’를 독립유공자에게 전달키로 하면서 다른 선진국의 보훈 상징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붉은 양귀비꽃, 프랑스의 푸른 수레국화, 미국의 성조기 3색 등 선진국은 이미 과거부터 보훈 상징물을 집중 육성해왔다. 기념일이나 기념시설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독립유공자를 우대하는 문화를 조성할 수 있어서다. 보훈처 관계자는 3일 “독립유공자의 명패는 국가가 직접 유공자를 보호하고 존경한다는 의미를 담아 태극기를 활용해 디자인했다”며 “국가유공자를 상징하는 명패가 유공자의 집에 걸리면 이웃이 유공자와 가족의 존재를 인식해 따뜻한 말을 건네고 교류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공자를 존경해야 한다는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보훈 상징물인 명패가 유공자 보호와 존경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북미에서는 통상 자동차 번호판을 활용해 애국심을 표현한다. 미국 18개주와 워싱턴DC에서 1976년 독립 200주년을 맞아 국기에서 사용하는 붉은색, 흰색, 푸른색의 조합을 자동차 번호판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었다. 캐나다는 1967년에 10개주 중 5개에서 자동차 번호판에 캐나다 연방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표기(Canada Centennial)를 할 수 있게 했다. 현재도 미국은 의회 명예훈장 수상자, 전사자 가족, 진주만 생존자, 전쟁포로 등에게 특별 번호판을 쓸 수 있도록 한다. 캐나다도 캐나다군, 유엔군, 왕립캐나다 기마경찰(RCMP) 등에 소속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작전 또는 평화유지 임무에 참여한 경우에 특별 번호판을 신청할 수 있다. 캐나다는 번호판에 주로 붉은 양귀비꽃을 새겨 넣는다.붉은 양귀비꽃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거의 모든 영연방 국가에서 사용하는 상징물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1차 세계대전 중 캐나다 원정군이던 존 알렉산더 맥크래 중령이 2차 이프르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에 만개한 붉은 양귀비꽃을 보고 쓴 시(플랑드르 들판에서)가 기원”이라며 “1915년 시가 발간된 후 미국 조지아대 모이나 벨 미셸 교수가 이 시에 감명을 받아 1918년 붉은 양귀비꽃을 전쟁 사망자 추모를 위한 상징으로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이후 영국에서 1921년에 붉은 양귀비꽃 상징물을 제작했고 제대군인과 전쟁 사망자의 유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판매했다. 현재 영연방 국가에서는 현충일(11월 11일)이나 앤잭 데이(4월 25일·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기념일)에 붉은 양귀비꽃 배지를 옷에 착용한다. 영국에서만 연간 4000만개 정도의 붉은 양귀비꽃 상징물이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표권은 영국 제대군인 협회가 갖고 있다. 프랑스 수레국화도 1916년 제대군인, 전쟁 피해자, 유가족, 고아 등을 기리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됐다. 색깔이 1차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푸른색 군복과 유사해서 참전 군인의 상징물이 됐다는 설도 있다. 프랑스 정부는 1935년부터 현충일(11월 11일)에 수레국화를 판매하도록 공식 인증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외국에서 화폐, 우표, 자동차 번호판 등에서 보훈과 관련한 상징물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며 “독립유공자의 명패 역시 향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가유공자 명패는 태극에 불꽃 도형을 결합해 국가유공자의 존재 가치와 숭고한 희생을 표현했다. 불꽃 도형 윗부분은 태극기의 건괘로 처리해 하늘을 공경하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사상을 함축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캠페인 성금 주요 기부자 명단 총 모금액 3620만 9350원(지난달 30일 기준) ▲개인 이상우 외 203명 ▲단체 대한국인, 스타키 그룹, 복주요양병원, 대구금오회, 광주제일고 등
  • 문 대통령, 프라하에서 청산리대첩 ‘소환’한 까닭은?

    문 대통령, 프라하에서 청산리대첩 ‘소환’한 까닭은?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의미 깊은 해다. 체코는 독립운동과도 아주 깊은 인연이 있다. 1919년 극동지역에서 볼셰비키 전투 중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 군대가 우리 임정 대표들과 여러 차례 교류했다. 1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체코로 돌아갈 때 그들이 가진 무기를 우리 독립군들에게 매도를 해줬다. 그때 한국 독립군이 체코 군대로부터 매입한 무기를 사용해 크게 이긴게 청산리 대첩(1920년)이다.” 고교 시절부터 역사학도를 꿈꿀 만큼 남다른 관심을 지닌 문재인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체코 동포·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이처럼 체코와 청산리대첩의 남다른 인연을 끌어냈다.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에서 독립군이 10여 회의 전투 끝에 일본군 연대장을 포함 1200여 명을 사살하는 등 빛나는 승리를 거둔 이면에는 체코 무기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프라하 힐튼호텔에서 열린 동포·기업인 간담회에서 “청산리대첩이라는 항일운동에서 가장 유명한 그 승리도 체코 무기의 우수성에 도움을 받은 바가 크다. 그런 사실이 청산리전투 참여했던 이범석 장군의 ‘우둥불’이라는 회고록에 기록돼 있다”고 설명하자 참석했던 20명의 교민은 ‘그런 사실이 있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 대통령은 이어 “3·1운동도 여기 체코 신문에 아주 크게 보도가 돼서 중유럽과 동유럽에 3·1 독립운동을 알리는 아주 큰 역할을 했다”며 “정부는 내년에 3·1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남북이 공동으로 하는 온겨레의 축제로 준비하고 있다”며 재외 동포들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원래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처음 변호사 할 때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말할 만큼 해박한 역사 지식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문 대통령은 또한 “체코는 아시아 국가 중에 최초로 우리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며 “그런 만큼 체코는 우리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중요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체코는 한국전 이후에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위원국으로 이렇게 참여한 인연도 있어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아주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문 대통령은 동포간담회와 별도로 현지 기업인과도 만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간담회에 기업인들을 초청해 한꺼번에 행사를 진행했다. 간담회에는 체코한인회 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체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 주재원,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감독, 체코국립극장과 국립발레단 단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동포 20명이 참석했다. 양동환 현대자동차 체코 법인장, 박현철 두산 인프라코어 유럽 법인장 등 체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 등 경제인들도 함께했다. 최춘정 세계한인경제인협회 프라하지회 부회장은 “중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체코에 한국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진출했다“며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어, k-pop, 한국 영화 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며 체코인들에게 한국 문화, 역사, 예술을 알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한섭 프라하 한글학교 교장은 “교민 자녀들이 한-체코 간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문화.역사와 한국어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합창단원으로 활약 중인 조원배 테너는 문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는 마음을 담아 ‘벚꽃엔딩’과 ‘희망의 나라로’를 부르기도 했다. 프라하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미스터 션샤인’ 고애신 몰래 도운 유한양행·교보생명 창업주

    ‘미스터 션샤인’ 고애신 몰래 도운 유한양행·교보생명 창업주

    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이 의병을 조직해 활동하는 데 도움을 준 숨은 독립운동가를 조명해 더욱 인기를 얻었다. 특히 민족기업은 당시 일제에 의한 파산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 자금을 몰래 지원했다. 국가보훈처가 내부 문헌 자료 및 해당 기업 등을 조사해 100년 전 군자금을 댄 3개 기업을 확인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26일 “독립유공자 공훈록 등을 확인한 결과 유한양행, 동화약품, 교보생명을 각각 세운 유일한, 민강, 신용호 선생이 독립운동을 지원하거나 실제 독립투사로 활동했다”고 밝혔다.1894년 평양 출생인 유일한 선생은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소년병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1919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서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석명하는 결의문’을 작성·낭독했다. 제너럴일렉트릭사의 회계사로 근무하던 그는 1926년 연희전문학교 교수 초청으로 귀국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의 신념은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였다. 이후 미국 내 모든 한인 단체를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집행부 의원으로 일명 ‘맹호군’으로 불린 한인국방경위대를 편성하는 데 후원했다. 지속적으로 군자금을 출연해 독립운동을 후원한 것도 확인됐다. 1944년에는 미군의 한국침투작전을 위해 특수공작을 주임무로 하는 한인훈련부대가 설치되자 이곳에 입대해 1조 책임자로 임명됐다.민강 선생은 1883년생으로 14세 때 선친이 세운 동화약방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1909년 각계 인사 80여명과 비밀결사단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국권회복운동에 나섰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남대문 밖에 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에 매진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고 한성임시정부 수립과 국민대회 개최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동화약품을 연락 거점으로 자금조달 활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렀다.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후 비밀 연락기관이었던 서울연통부의 책임자도 겸했는데 1921년 연통부가 발각되면서 또다시 1년 6개월간 감옥에 갇혔다. 출옥 후 상하이에서 교민단의사회의 학무위원 등을 역임했지만 1924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다시 옥고를 치렀고, 출소 직후 순국했다.1917년생인 신용호 선생은 독립운동 가문에서 태어났다. 맏형은 전남 영암의 항일농민운동의 주동자였고, 셋째 형도 일본 도쿄에서 항일 학생운동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였다. 20살 때 중국으로 떠나 사업을 시작했고 1941년 북일공사를 설립해 미곡 유통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직간접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후 30살 때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와 민주문화사를 설립했다. 자원이 없는 국가의 대안은 교육과 자본이라고 생각해 1958년 대한교육보험회사(교보생명)를 창립했다. 특히 자녀가 진학하면 보험금 전액을 돌려받는 진학보험은 일제시대와 6·25전쟁 이후 인재 양성에 기여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3·1운동·임정 수립 100주년 주화 공개

    3·1운동·임정 수립 100주년 주화 공개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2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100주년 기념주화를 공개했다. 한완상 기념사업추진위원장과 허진호 한국은행 부총재보, 조용만 한국조폐공사 사장, 독립유공자인 고 박성화 지사의 손자 박지홍씨 등이 참석했다. 기념주화는 은화 2종류로 모두 액면금액이 5만원이다. 은화 1종은 3·1운동을 주제로,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희승 박사의 한글 풀이본 독립선언서를 인용했다. 은화 2종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주제로, 임시정부 초기 청사의 모습을 담았다. 100주년 기념주화는 다음달 7일까지 우리은행과 농협은행 전국 지점 또는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받아 내년 1월 2일 발행된다. 가수 비와이(본명 이병윤)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박용진 의원 “명패 달아주기, 독립운동 해석 확대 계기로”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박용진 의원 “명패 달아주기, 독립운동 해석 확대 계기로”

    “서울신문과 보훈처의 독립운동가 명패 달아주기 운동이 내년 3·1 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독립운동의 해석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19일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1 운동에서 만세를 하다 사망하고 구금된 수많은 사람을 기리고자 독립운동가 명패 달아주기 모금 운동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연락 체계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기에 3·1 운동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였고 결국 우리나라 독립의 기폭제가 됐다”며 “그럼에도 3·1 운동을 배울 때 단순 만세 퍼포먼스로만 가르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독립운동가 명패 달아주기 운동으로 3·1 운동에 대한 의미를 재조명하는 것과 동시에 만주지역에서의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평가하는 일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명패 달아주기는 수많은 선열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그분들의 공적을 기억하게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후손에게는 자부심, 국민에게는 이들의 공적을 각인시키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잊고 있는 게 만주 지역에서의 독립운동가“라며 “독립운동에 대해 남한이든 북한이든 갈라서 보지 말고 위대한 투쟁은 따로 평가해주고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 의원이 잊혀진 독립운동가 문제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지역구(강북을) 인근 북한산 수유리 일대에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6위의 묘역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민주당을 창당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묘역도 있다. 박 의원은 “16위 외에도 국립현충원 등에 안장되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묘역이 있는데 한 곳으로 모아 안장하지 않더라도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해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독립운동 뒷바라지도 독립운동···여성 독립운동 예우받길“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독립운동 뒷바라지도 독립운동···여성 독립운동 예우받길“

    임정 비서장 차이석 부인 홍매영 서훈 신청 8년만에 인정받아 백범 선생 중매로 32살차 차이석과 결혼 독립당 당원으로 광복군 임정 활동·인정 아들 영조씨 “묘소 현충원 이장이 남은 일” “2010년 2월에 어머니(홍매영 여사)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는데 8년이나 기다렸습니다. 그간 정권이 바뀌고 여성 독립운동가도 인정받는 세상이 왔네요. 평생의 큰 소원을 이뤘습니다.” 차이석 선생(임시정부 비서장)과 홍매영 여사의 아들인 차영조(74)씨는 1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남기신 한국독립당(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김구·차이석 선생 등이 창립한 독립운동단체) 당원증으로는 독립유공자 인정이 안 된다고 수차례 들어서 기대도 안 했는데 이번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에 드디어 인정받게 돼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의 명패도 추후 전달할 계획이다. 홍 여사는 1942년 중국 충칭에서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광복군의 생활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한책임한국광복군군관소비합작사 사원으로 재직했고 이곳에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을 지원한 공이 인정됐다. 평안북도 의주에 살던 홍 여사는 남편의 제안으로 임정으로 가기 위해 나무배로 압록강을 건너던 중 남편이 중국 국경인 단둥에서 일본 경찰에게 발각돼 연행됐다. 홍 여사는 첫 중국행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5살·2살인 두 아이를 데리고 중국 시안의 광복군 진지에 도착했다. 차씨는 “어머니는 광복군으로서 훈련을 받았고 1942년 그곳에 들렀던 백범 김구 선생의 중매로 32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도 또 다른 독립운동’이라고 했었다고 어릴 때 어머니께 들었다”고 덧붙였다. 1944년 차씨가 태어났고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광복이 됐지만 차이석 선생은 귀국 준비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 9월 9일에 숨을 거뒀다. 세 아이를 데리고 1946년 귀국한 홍 여사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마련한 숙소(서울 충무로 1가 한미호텔)에서 거주하며 노상에서 불법 담배장사를 했다. 차씨는 “마약 단속하듯 단속반이 발로 차고 지나가기 일쑤였고 중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며 “오히려 취업 때 불이익을 받을까 광복군 경력을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가족은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충남 부여로 피난을 갔다. 차씨는 “형편이 힘드니 형과 누나는 고아원으로 갔고 김구 선생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나를 차(車)씨가 아닌 신(申)씨로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며 “6학년 때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졌고 학교를 관두고 아이스크림 행상이나 술집 심부름을 하며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홍 여사는 1979년 운명했고 부여의 작은 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다. 차씨는 “독립유공자가 됐으니 현충원으로 모시는 게 남은 일”이라며 “독립운동에 나섰던 남편을 돕고 남편 없이 자식을 키우고, 남모르게 독립투사를 위해 밥을 하고 옷을 기워준 여성도 합당한 예우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임정 ‘민주공화제’ 한일합병 뒤 유일한 대안이었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에서 ‘민주공화제’를 선언한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입헌군주제’가 아닌 ‘민주공화제’를 주장한 것은 급진적인 느낌마저 준다.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는 21일 3·1운동 당시의 임시정부가 ‘공화제’를 지향하게 되는 과정을 재조명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과 의의-사회진화론 비판과 공화주의 형성과정’ 학술대회를 연다. 신철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이 자리에서 공화제 주장이 1910년 한일병탄 이후 눈에 띄게 나타난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1897년 대한제국 수립 이후 독립협회(1896~1898), 대한자강회(1906~1907) 등의 발표문에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입장이 담겼지만, 한일병탄 이후 공화제가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에까지 반영됐다는 것이다.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임시정부가 미국의 대통령제와 중국 신해혁명의 영향을 받아 공화제를 택했다’는 내용의 ‘사회진화론’에 대해 반박한다. 윤 연구원은 “독립운동가들은 당시 ‘제2차 러일전쟁’, ‘미·일 전쟁’ 그리고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의 승리를 국권 회복의 ‘적기’로 파악했다”면서 “외국 한인사회를 기초로 독립전쟁을 준비하고 이를 구현할 정치적 조직으로 ‘공화제’ 형태의 임시정부를 구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미주 한인사회에서 활동하던 박용만의 ‘무형국가론’(1911년), 1914년 노령의 대한광복군정부, 1915년 중국 관내의 신한혁명당 등이다. 윤 연구원은 “활동 지역과 시기의 차이에도 세 건이 서로 연관이 있다”면서 “독일이 승리할 것이라는 잘못된 정세 파악으로 독립운동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 경험이 1917년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신규식·박은식·신채호 등이 작성한 1917년 ‘대동단결의 선언’ 배경이 됐으며, 1919년 4월 민주공화제를 정체로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박용진 의원 “명패 달아주기, 독립운동 해석 확대 계기로”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박용진 의원 “명패 달아주기, 독립운동 해석 확대 계기로”

    “서울신문과 보훈처의 독립운동가 명패 달아주기 운동이 내년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독립운동의 해석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국회 의원회관에서 19일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1운동에서 만세를 하다 사망하고 구금된 수많은 사람을 기리고자 독립운동가 명패 달아주기 모금 운동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연락 체계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기에 3·1운동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였고 결국 우리나라 독립의 기폭제가 됐다”며 “그럼에도 3·1운동을 배울 때 단순 만세 퍼포먼스로만 가르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독립운동가 명패 달아주기 운동으로 3·1운동에 대한 의미를 재조명하는 것과 동시에 만주 지역에서의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평가하는 일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잊고 있는 게 만주 지역에서의 독립운동가”라며 “독립운동에 대해 남한이든 북한이든 갈라서 보지 말고 위대한 투쟁은 따로 평가해 주고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 의원이 잊혀진 독립운동가 문제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지역구(강북을) 인근 북한산 수유리 일대에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6위의 묘역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민주당을 창당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묘역도 있다. 박 의원은 “16위 외에도 국립현충원 등에 안장되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묘역이 있는데 한 곳으로 모아 안장하지 않더라도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해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캠페인 성금 주요 기부자 명단 총모금액 3327만 5100원(19일 현재) ▲개인 이상우 외 198명 ▲단체 대한국인, 스타키그룹, 복주요양병원, 대구금오회, 광주제일고 등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독립운동 뒷바라지도 독립운동… 어머니가 인정받는 날 왔네요”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독립운동 뒷바라지도 독립운동… 어머니가 인정받는 날 왔네요”

    “2010년 2월에 어머니(홍매영 여사)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는데 8년이나 기다렸습니다. 그간 정권이 바뀌고 여성 독립운동가도 인정받는 세상이 왔네요. 평생의 큰 소원을 이뤘습니다.”차이석(임시정부 비서장) 선생과 홍매영 여사의 아들인 차영조(74)씨는 1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남기신 한국독립당(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김구·차이석 선생 등이 창립한 독립운동단체) 당원증으로는 독립유공자 인정이 안 된다고 수차례 들어서 기대도 안 했는데 이번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에 드디어 인정받게 돼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의 명패도 추후 전달할 계획이다.홍 여사는 1942년 중국 충칭에서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광복군의 생활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한책임한국광복군군관소비합작사 사원으로 재직했고 이곳에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을 지원한 공이 인정됐다. 평안북도 의주에 살던 홍 여사는 남편의 제안으로 임정으로 가기 위해 나무배로 압록강을 건너던 중 남편이 중국 국경인 단둥에서 일본 경찰에게 발각돼 연행됐다. 홍 여사는 첫 중국행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5살·2살인 두 아이를 데리고 중국 시안의 광복군 진지에 도착했다. 차씨는 “어머니는 광복군으로서 훈련을 받았고 1942년 그곳에 들렀던 백범 김구 선생의 중매로 32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도 또 다른 독립운동’이라고 했었다고 어릴 때 어머니께 들었다”고 덧붙였다.1944년 차씨가 태어났고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광복이 됐지만 차이석 선생은 귀국 준비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 9월 9일에 숨을 거뒀다. 세 아이를 데리고 1946년 귀국한 홍 여사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마련한 숙소(서울 충무로 1가 한미호텔)에서 거주하며 노상에서 불법 담배 장사를 했다. 차씨는 “마약 단속하듯 단속반이 발로 차고 지나가기 일쑤였고 중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며 “오히려 취업 때 불이익을 받을까 광복군 경력을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가족은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충남 부여로 피난을 갔다. 차씨는 “형편이 힘드니 형과 누나는 고아원으로 갔고 김구 선생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나를 차(車)씨가 아닌 신(申)씨로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며 “6학년 때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졌고 학교를 관두고 아이스크림 행상이나 술집 심부름을 하며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홍 여사는 1979년 운명했고 부여의 작은 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다. 차씨는 “독립유공자가 됐으니 현충원으로 모시는 게 남은 일”이라며 “독립운동에 나섰던 남편을 돕고 남편 없이 자식을 키우고, 남모르게 독립투사를 위해 밥을 하고 옷을 기워 준 여성도 합당한 예우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혼탁한 세상과 종교… 평신도가 나서야죠”

    “혼탁한 세상과 종교… 평신도가 나서야죠”

    오는 22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20호에서는 독특한 모임이 열린다.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종교개혁연대·공동대표 박광서, 김항섭, 이정배)가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종교의 역할을 성찰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연속 세미나의 세 번째 행사다.불교, 유교에 이어 천도교의 3·1운동과 이후 100년을 놓고 주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질 전망이다.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의 성찰과 역할을 다루는 만큼 종교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출가자와 성직자들이 할 수 없다면 평신도가 나서야지요.” 박광서(69) 공동대표는 토론회에 앞서 기자와 만나 “혼탁한 세상과 종교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종교개혁연대는 5년 전부터 대학교수와 연구자 등 지식인들이 사회 속 종교의 역할을 놓고 가져오던 소모임을 모태로 태동했다.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과 원효 탄생 1400주년을 계기로 발족했으며 지난 9월부터 3·1운동의 성찰과 과제에 초점을 맞춰 매달 한 차례씩 연속 세미나를 열어 오고 있다. 기성 종교의 일탈을 비판하면서 3·1운동 정신을 평신도부터 되새기자는 주장과 목소리를 수렴하고 있으며 다음달 20일 개신교 측 모임을 한 차례 더 가진 뒤 내년 3·1절을 즈음해 ‘범종교계 대국민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100년 전엔 이 땅의 종교들이 독립을 위해 평화의 몸짓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은 종교가 사람을 잃고 세상과 단절됐지요.” 3·1운동은 당시 민족대표 33인 대부분이 종교인이었던 만큼 종교계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로 뭉쳤다. 하지만 지금 종교계는 병약하고 무능하고 썩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건강한 종교 회복을 위해 재가신도들이 깨어나야 한단다. 박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와 미국 유학을 거쳐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5년 전 은퇴한 지식인이다. 젊은 시절부터 불교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 한때 출가를 생각했지만 더 큰 사회적 역할을 찾기 위해 불교사상과 맥이 닿는다는 물리학 교수를 택했다. 특히 종교계에선 평신도 역할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교수불자연합회와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단법인 ‘우리는 선우’를 창설한 주인공이고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도 지냈다. 1994년, 199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두 차례의 조계종 분규 때 불교·조계종 개혁을 외치며 대학교수와 정치인, 법조인, 교사 등 수백명이 이름을 올린 ‘불교지성인선언’을 주도한 인물이다. “많은 지식인과 재가 신도들이 종교개혁을 외쳐 왔지만 개선은커녕 더 악화돼 왔어요.” 그 슬픈 뒷걸음질의 핵심은 역시 성직자, 출가자 중심의 교단 운영에서 비롯되는 반사회적 적폐다. 사회 일반에서 늘 손가락질하는 거짓된 권위와 탐욕스런 권력이다. “종교 부패는 교단과 성직자의 탓이 크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일반 신도들의 책임도 적지 않아요.” 그 뼈를 깎는 성찰은 당연히 종교의 인간 해방과 탈성직, 탈권위로 이어져야 한단다. 그 말 끝에 불쑥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만약 사찰과 출가승, 교회와 성직자가 모두 없어진다면 평신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느닷없는 질문에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돌려준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데는 만유인력이 주효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비, 바람이 아닐까요.” 성직자와 출가자들이 다하지 못한 역할에 붙인 평신도의 위상이다. “종교가 제대로 작용한다면 재가자나 평신도들이야 보조자 역할만 해도 될 텐데, 오히려 지도자들이 사회적 짐이 되고 있잖아요.” 우리 사회는 나와 다른 것에 너무 인색하다는 박 대표. “꽃도 한 종류만 있으면 예쁘지 않다”며 “사회통합을 위해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종교계의 여유와 풍토가 아쉽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여생을 평신도들의 재가결사 운동에 바치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종교가 공통으로 갖는 핵심 사상인 자비와 평화, 정의로 무장된 지식인, 평신도들이 함께 연구하고 제안하고 지혜를 모아 더 좋은 세상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도록 울타리 역할을 하겠습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박열의 일본인 아내이자 동지…92년 만에 독립유공자 인정받다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박열의 일본인 아내이자 동지…92년 만에 독립유공자 인정받다

    조선 충북에 살면서 ‘만세 운동’에 감격 일본에서 박열 詩 ‘개새끼’ 접한 뒤 동거 첫 공판 때 조선 옷 입고 “나는 박문자” 사형 선고받는 자리서도 “만세” 외쳐 보훈처 “후손 찾는 대로 서훈·명패 전달”1920년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을 바탕으로 박열 의사와 일본에서 히로히토 일왕 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 여사가 유명을 달리한 지 92년 만에 한국의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 일본인이지만 박 의사의 아내이자 독립운동을 함께 한 동지였던 그는 사형을 언도받는 순간까지 일본 재판정에서 의연하게 일본을 훈계했다.국가보훈처 관계자는 12일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에 가네코 여사가 독립유공자 서훈(애국장)을 받게 됐다”며 “후손(친족)을 찾는 대로 서훈과 함께 독립유공자의 명패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네코 여사와 박 의사는 당시 조선과 일본에서 소위 뉴스메이커였다. 박 의사는 서울 고등보통학교(경기고의 전신)에 다니던 18세 때 3·1운동의 전면에 나섰다가 같은 해 10월 현해탄을 건너 도쿄에 정착했고 신문배달, 날품팔이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가네코 여사는 방탕한 아버지가 호적에 올리지 않아 조선 충북 부강면에 살던 고모부의 양녀로 자랐다. 그는 1919년 3월 30일 부강 지역의 만세운동을 보고 ‘감격의 눈물이 샘솟았다’고 기록했다. 같은 해 4월 일본의 외가로 돌아왔고 아나키즘을 접했다. 가네코 여사는 박 의사의 ‘개새끼’란 시를 우연히 보았고 친구를 통해 1922년 박 의사를 소개받았다. 같은 해 5월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고 ‘인간의 절대평등에 가장 큰 장애물은 일왕’이라는 생각을 공유했다.박 의사는 이 시기 흑도회에 가입하고 잡지 ‘흑도’를 발행했다. 가네코 여사는 ‘박문자’(朴文子)라는 조선 이름을 썼다. 이들은 “어떤 고정된 주의가 없다”며 마르크스, 레닌조차 추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22년 8월 박 의사가 니가타현의 조선인 노동자 학살사건의 참혹한 현장을 접한 게 두 사람이 의열 투쟁에 나선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두 사람은 1923년 10월 일본 왕세자의 결혼식에서 일왕을 암살하기 위해 폭탄 유입에 나섰지만 폭탄 투척 계획이 누설돼 체포됐다. 1923년부터 1925년까지 각각 20회 이상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1926년 2월 26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첫 공개 공판에서 조선 예복과 사모관대를 입고 출두한 박 의사는 이름을 묻는 재판장에게 “나는 박열이다”라고 답했다. 또 가네코 여사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박문자”라고 말했다. 3월 26일 열린 최종 판결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박 의사는 “재판은 유치한 연극이다”라며 재판장을 질책했고 가네코 여사는 만세를 외쳤다. 일본 검찰은 사형 대신 무기징역으로 특별 감형했지만 가네코 여사는 옥중에서 은사장을 찢어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1926년 23세였던 가네코 여사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그의 어머니에게 전해졌지만 의문사였다. 그해 박 의사와 가네코 여사가 재판소에서 다정하게 서로를 안은 채 앉아 있는 ‘괴사진’이 유포됐다. 다테마쓰 판사가 증거 확보를 위해 박 의사의 환심을 사려 찍은 것으로 밝혀졌고 당시 일본 야당은 사법권 문란으로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는 등 후폭풍이 일었다. 이 내용은 2016년 영화 ‘박열’로 다뤄졌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3·1운동 1주년 재현 16세 소녀가 내 어머니라니… 자부심 느껴”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3·1운동 1주년 재현 16세 소녀가 내 어머니라니… 자부심 느껴”

    소녀 6명, 배화여학교서 “독립 만세” 소 지사, 징역형 받고 1개월여간 옥고 98년 만에 유공자로… 후손에 서훈 전달 “늦게나마 위대한 분인 걸 알게 돼 기뻐”“몇 달 전에 조카가 전화를 해 할머니 이름이 신문에 났다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님이 한두 번 지나가는 말로 여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만세운동을 하다 왜놈에게 끌려갔었다고 했는데 그게 진짜였던 거죠. 자부심이 들었습니다.” 이중래(80)씨는 5일 서울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어머니 고(故) 소은명 지사에 대해 “하지만 평생을 너무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소 지사는 김경화, 박양순, 성혜자, 안옥자, 안희경 지사 등과 함께 1920년 3월 1일 자신이 다니던 배화여학교 기숙사 뒤편 언덕과 교정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본 경찰에 검거됐다. 3·1운동이 열린 지 1주년을 맞아 일제의 감시가 삼엄했지만 어린 여학생이 만세 운동을 결행한 것이다. 당시 신한민보에는 조선총독부는 미리 배화여학교를 포함한 선교회 부속학교에 엄중히 학생을 단속할 것을 경고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하지만 곳곳에서 만세재현운동이 있었다. 특히 당시 육군성의 사건 서류에는 ‘배화여학교와 진명여학교 학생들은 오전 8시 30분쯤부터 교내에서 만세를 부르고 서대문 감옥 태평동 출장소 수인(옥에 갇힌 사람) 약 200명은 0시 25분 및 오후 6시 15분쯤에 두 차례 만세를 불렀다’고 명시돼 있다. 소 지사는 당시 16살로 6명 중 가장 어렸다. 이후 그는 조선 독립 만세를 크게 외쳐 치안을 방해한 혐의로 검사국에서 취조를 받았고 같은 해 4월 열린 재판에서 징역 6월·집행유예 2년의 형을 받았다. 또 실제 1개월 5일간 옥고를 치렀다. 소 지사 등 6명은 국가보훈처가 올해 여성·학생 독립운동가 발굴에 나서면서 지난 광복절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무려 98년 만이었다. 독립유공자 중 여성 비율이 2%에 불과한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의 만세 운동은 더욱 높이 평가된다. 하지만 후손이 나타나지 않아 정부는 2개월이 넘게 서훈(대통령 표창)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러다 소 지사의 후손이 언론 보도를 보고 보훈처에 연락했고 인천보훈지청은 지난달 30일 소 지사의 장녀인 이복래(83)씨에게 서훈(대통령 표창)을 전달했다. 이씨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만 했다. 보훈처는 곧 ‘독립운동가의 명패’도 전달할 계획이다. 가족에 따르면 소 지사는 한때 유치원 교사로 일했지만 6·25전쟁 때 남편과 사별하고 8남매를 돌봤다. 빵을 머리에 이고 집집마다 다니며 팔아 입에 풀칠을 했다고 가족은 전했다. 아들 이씨는 “자식들도 흩어져 결국 어머니가 3명만 데리고 있게 됐고 누이는 남의 집 식모살이를 했다. 힘든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소 지사를 ‘온화하지만 중요할 땐 정말 냉철했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학교를 못 다니는 제게 알파벳을 가르쳐 줄 정도로 어머니는 당시 여성으로서 많이 배운 분이었다”며 “말수도 없이 늘 곧고 진중한 분이셨는데 뒤늦게나마 위대한 분이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소 지사는 1986년 81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적극 발굴·연구할 것”

    “서울 홍파동에 있는 홍난파의 생가는 등록문화재(제90호)로 지정돼 종로구에서 관리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집 바로 옆에 있던 영국 출신 언론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생가는 뉴타운 개발 때 철거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죠.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한국인의 집은 보존한 반면 한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외국인의 가옥은 정부조차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외국인 독립유공자 예우에 대해 묻자 한미영 배설(베델)선생기념사업회 감사는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서울신문 창간 기획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보도를 계기로 외국인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과 연구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1일 밝혔다. 베델은 1904년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우리 민족의 항일의식을 고취한 인물이다. 대통령 직속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회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외국인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에 인색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 “서울신문 보도를 계기로 내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이들의 공로를 기리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우선 보훈처를 비롯해 여러 정부 부처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 독립유공자 관련 업무 등을 유기적으로 관리하고, 외국인 독립운동의 가치와 의의를 기리는 학술대회와 포럼 행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보다 많은 외국인 유공자를 찾아내고 이들의 업적과 자료를 보전할 수 있도록 예산을 배정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외국인 독립운동가는 모두 69명이다. 이 중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에서 활약한 중국인을 뺀 외국인 독립운동가는 36명 정도로 추정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아픈 역사 돌아보며 잃어버린 자존감 찾다] 판소리에 맞춰 “대한독립만세”

    독립선언문 낭독·형무소 수감 체험 서울 서대문구는 서울시 공모 사업인 ‘서울 속 마을여행’의 하나로 이야기가 있는 역사 체험프로그램인 ‘판소리로 보는 독립탐방’을 이달 매주 토요일마다 서대문독립공원 일대에서 운영한다고 1일 밝혔다. 청년일자리 창출과 도시재생 활동가 양성을 위해 서대문구가 지난 8월 선발한 도시재생추진단 청년활동가들이 구와 함께 기획한 것이어서 더 뜻깊다. 서대문구 역사와 문화 자원을 활용한 이 프로그램은 판소리와 드라마를 통해 탐방객들이 진행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다. 소리꾼, 연주자들과 함께 1시간가량 독립문에서 시작해 3·1운동기념탑, 순국선열추념탑, 독립관을 거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잇달아 찾는다. 참여자들은 탐방길을 걸으며 소리꾼의 인도에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한다. 또 서대문형무소 수감 체험을 통해 독립지사들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간접 경험한다. 참가비는 3000원(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장료)이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매회 선착순 20명까지 참여할 수 있으며 구청 도시재생과로 신청하면 된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후배들의 십시일반 모금… 들불 같던 선배들의 독립정신 잇는다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후배들의 십시일반 모금… 들불 같던 선배들의 독립정신 잇는다

    포상자 212명 중 36명이 광주제일고 출신 이틀동안 50만 3250원 모아 광복회 전달 사회적협동조합도 후원금 200만원 보태 “광주고등학생 의회 알려 동참 호소할 것”29일 오전 11시 광주 북구 누문동 광주제일고 정문에 들어서자 왼쪽에 우뚝 솟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 손님을 맞았다. 숲과 어우러진 공간 맞은쪽 학교 본관에선 학생들이 코앞에 닥친 수능 시험에 대비해 책장을 넘기느라 숨소리조차 죽여야 했다. 벌써 내년이면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1929년 이맘때쯤 이곳 광주고등보통학교는 일제에 맞선 동맹휴학이나 독서회 활동 등으로 술렁였을 터다. 며칠 뒤 전국적 운동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신호탄이었다. 이젠 과거와 달리 평온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치는 보통 고교 풍경이다. 이런 역사를 가슴에 안은 학교 후배들이 최근 ‘뜻깊은 일’을 펼치고 있다. 1920년대 최대 규모의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한 선배들의 정신을 기리는 운동에 나선 것이다. 항일운동 참여자 중 생존자는 거의 없는 만큼 그 후손을 찾아내 ‘독립운동 유공자 문패’를 달아 주는 일이다. 교장실에서 만난 학생회장 장민성(17·2년)군은 “최근 반별 대의원회의를 열어 ‘명패 달기’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뒤 지난 22~23일 전교생 800여명과 선생님을 대상으로 50만 3250원을 모았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에 교직원과 전교생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보탰다. 부회장 조효인(17·2년)군은 “이런 운동의 취지 등을 학생회에서 운영하는 페이스북과 곧 열리는 ‘광주 고등학생의회’에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겠다”고 덧붙였다.매점 등을 운영 중인 학교 사회적 협동조합도 200만원의 후원금을 내놨다. 조합의 학생 대표인 이승민(17·2년)군은 “이사회에서 후원 금액 등을 흔쾌히 받아들여 어렵지 않게 성금을 마련했다”며 웃었다. 실제로 광주학생운동 관련 독립운동 포상자 212명 가운데 이 학교 출신이 36명에 이른다. 자료 분실이나 다른 이유 등으로 빠진 사람을 합치면 더 늘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는 당시 좌익계로 분류돼 훈장 수여 또는 유공자 지정에서 제외된 사람을 발굴·포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이날 푼푼이 모은 성금을 ‘크라우드펀딩’을 주도하는 광복회에 전달했다. 문대식 광복회 광주전남유족회 고문은 “독립유공자가 작고하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현실에서 젊은 학생들이 유공자와 후손에게 자긍심을 심는 것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띤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광주제일고 학생 100여명은 지난 27일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펼쳐진 제89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 만세재현 행사에 당당히 참여했다. 학생의 날인 오는 11월 3일에도 선배들의 항거 장소인 옛 전남도청 앞과 옛 광주역(광주동부소방서) 주변 등지에서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부터 5개월에 걸쳐 열기를 뿜었다. 194개교 5만 4000여명이 참가했다. 구속 1642명, 퇴학 582명, 무기정학 2330명이나 될 만큼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항일 학생운동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승오 광주제일고 교장은 “선배들의 독립항일 정신이 오늘날 면면히 이어지는 게 자랑스럽다”며 “학생 자치회에서 이끄는 명패 달기 운동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독립운동 유적지 한글 오류 바로잡기 나선 서경덕 교수

    독립운동 유적지 한글 오류 바로잡기 나선 서경덕 교수

    해외에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려 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팀이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의 잘못된 한글 표기를 수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9일 밝혔다. 서경덕 교수팀은 가장 먼저 중국 가흥에 위치한 ‘김구 피난처’의 잘못된 한글표기를 고쳤다. 유적지안내판에 잘못 표기된 ‘취사간’을 ‘주방’으로 수정하고, ‘욕조(원물)’을 ‘김구가 사용한 욕조’로 변경하는 등 안내판 8개를 자비로 수정했다.서 교수는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의 한글간판이 없어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진행하면서 내부 전시실을 둘러보다가 잘못된 한글표기들이 상당수가 있어서 많이 안타까웠다”면서 “다가오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의 잘못된 한글표기부터 바꿔 나가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시작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앞서 서 교수는 중국 웨이하이시의 유명 역사 유적지인 류궁다오(유공도) 내 잘못된 한글표기를 바꾸는 등 네티즌들의 제보를 받아 그 기관과 접촉해 올바른 한글 표기로 꾸준히 바꿔왔다. 또한 배우 송혜교와 함께 뉴욕 현대미술관, 토론토 박물관 등 세계적인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에 한글 안내서를 꾸준히 제공하는 등 전 세계에 한글을 널리 알려 왔다. 서 교수는 “올해 한글날을 시작으로 내년 한글날까지 1년간은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중심으로 잘못된 한글 표기를 집중적으로 수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충주에 항일독립운동역사관 개관

    충주에 항일독립운동역사관 개관

    일제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 희생을 추모할수 있는 공간이 충북 충주와 옥천에 마련됐다. 충주시는 5일 항일독립운동역사관을 개관했다. 충주시 칠금11길(칠금동620)에 위치한 역사관은 부지 355.1㎡, 연면적 882.72㎡에 지상 4층 규모다. 1층은 광복회충북지부북부연합지회 사무실로 쓰고, 2~4층은 전시관이 자리잡았다. 시는 다세대주택을 매입해 역사관으로 꾸몄다. 예산은 13억원이 투입됐다. 이곳에는 을미의병, 3.1운동 등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적 자료 233점이 전시돼 있다. 신채호, 유자명, 유인석 등 우리 지역 출신이거나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업적과 기록도 볼 수 있다. 역사관 개관은 윤경로 광복회충북지부북부연합지회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2015년부터 국내는 물론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를 방문해 자료들을 수집한 뒤 역사관을 마련하자고 건의했다.조길형 충주시장은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항일독립운동역사관 개관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주는 교육의 산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옥천에서는 항일 무장투쟁 독립운동가 범재 김규흥(1872~1936) 선생의 기념비가 그가 세운 창명(진명)학교 후신인 죽향초등학교에 세워졌다.1872년 옥천읍 문정리에서 태어난 그는 교육을 통해 민족을 일깨우려 한 선각자이자 독립운동가다. 1905년을 전후해 현 죽향초 전신인 사립 창명(진명)학교를 설립하고, 목화밭을 기증해 학교 터를 마련해줬다. 대한자강회 등에서 활동하며 나라를 개화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921년 박용만과 함께 베이징에서 흥화실업은행을 세워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기도했다.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36년 향년 65세로 중국 텐진에서 세상을 떠났다.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2014년 9월 선생의 업적 발굴을 위한 기념 사업회가 설립됐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청남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원 생긴다

    청남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원 생긴다

    대통령 전용별장으로 사용됐던 청남대(충북 청주시 문의면)에 일제 강점기 시절 고군분투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느낄수 있는 엄숙한 공간이 생긴다.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는 청남대 내 골프장 인근에 임시정부 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임시정부 국가수반을 지낸 이승만·김구·박은식·이상용·홍진 선생 등 5명의 동상을 제작중에 있다고 21일 밝혔다. 투입되는 예산은 16억원이다. 동상은 실물보다 커 키가 2.2m 정도 된다. 김구·이승만 선생은 의자에 앉아있고, 나머지는 서 있는 모습이다. 복장은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청남대는 이번 제작에서 빠진 안창호·이동령·양기탁 선생 등 임시정부의 다른 국가수반들 동상 제작도 검토중이다. 청남대는 동상 제작을 마무리한 뒤 내년 4월 11일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 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다. 그동안 4월13일이 임시정부 수립일이었으나 4월11일이 타당하다는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변경됐다. 청남대는 임시정부 공원에 임시정부 국가수반 전시관을 짓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단은 전국 지자체들이 신청한 관련 사업들을 심사해 오는 12월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청남대는 기념관 건립 사업이 선정되면 내년초 설계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국비와 지방비 등 총 100억원을 투입해 2600㎡에 3층규모로 건립한다는 구상이다. 공사 기간은 최대 3년정도로 잡고 있다. 전시관이 완공되면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국가수반들의 험난했던 역사와 여정을 느낄수 있는 다양한 유물과 유품 등을 마련해 전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또한 3.1운동 등을 가상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꾸며질 예정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임시정부 당시 대통령을 수반으로 불렀는데, 대통령 테마공원인 청남대에 그들을 전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이시종 지사의 공약사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청남대는 1983년 7월 전두환 대통령 시절 건설된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휴가철에 사용하던 별장이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권위주의 상징인 청남대를 주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선거 공약을 이행하면서 2003년 4월 소유권이 충북도로 넘어왔다. 이후 충북도가 청남대 안에 대통령길을 조성하는 등 명소를 추가 조성하면서 대통령테마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이웃 종교 향한 폭력, 결코 있어선 안 될 악”

    “이웃 종교 향한 폭력, 결코 있어선 안 될 악”

    2016년 개신교인 김천 개운사 난동 사건SNS 대리 사과·모금하다 교수직 파면종교계 연합해 손 교수 탄원, 1심 승소“韓 개신교, 하나님 빙자 영적 학대 만연”“사랑과 평화의 종교라는 기독교에서 어떻게 이웃종교에 폭력을 휘두를 수 있나요.” 학교를 상대로 낸 파면취소 1심 소송에서 승리한 손원영(53) 서울기독대 신학전문대학원 교수. 손 교수는 3일 기자와 만나 “이제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학교의 명예와 기독교의 본질을 생각해 이 정도에서 멈추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2016년 1월 개신교 교인인 60대 남성이 경북 김천 개운사에 난입해 불상, 법구를 부순 사건이 발생하자 불교계에 용서를 구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기고 몇몇 지인들과 함께 ‘법당 복구를 위한 모금활동’을 벌여 260여만원을 모았다. 모금액을 전달하려 했으나 개운사 측의 완곡한 거절로 종교평화를 위한 대화모임 ‘레페스포럼’에 전액 기부했다. 이 같은 사실을 문제 삼은 학교 측의 파면조치에 반발, 지난해 2월 파면처분 무효 확인소송을 냈고 지난달 30일 서울북부지법 민사합의12부가 손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 제가 파면을 자처한 측면이 있어요. 그냥 사표를 쓰고 학교를 떠나면 될 일이었는데….” 기자에게 저간의 속사정을 털어놓는 손 교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원래 감리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서울기독대 안에 대학교회를 개척해 학생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목회 활동을 폈어요.” 그는 서울기독대가 속한 교단인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의 ‘환원주의’에 심취했는데 갑자기 재침례를 강요해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용납할 수 없었고 기독교 명예의 차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지요.” ‘환원주의’는 초대교회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교리보다 성경에 치중해 예수에게로 돌아가자는 기독교 본래성 회복을 강조하는 운동을 말한다. 교파의 분열을 지양해 교단을 만들지 않는다는 입장에 충실하다. 그 환원주의를 강조하던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가 교단으로 발전하면서 문제가 불거졌고 자신에게도 재침례를 강요해 물러설 수 없었다고 한다. “저 개인에게 닥친 작은 일이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될지 몰랐어요. 지나고 나니 그 사태를 계기로 종교계에 엄청난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실제로 손 교수의 소송이 진행되면서 종교계를 중심으로 파면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탄원에 동참하는 목소리와 몸짓들이 이어졌다. 여러 종교그룹이 참여하는 대책위원회가 결성됐고 시민공청회도 열렸다. 종교개혁 500주년과 원효 탄생 1400주년을 맞아 종교계 포럼이 진행됐고 그 포럼을 계기로 한국종교개혁포럼이 결성됐는가 하면 3·1운동종교개혁연대도 만들어져 내년 3·1운동까지 평화통일을 모토로 종교연합 활동이 진행 중이다. “힘들었지만 이웃종교를 향한 폭력의 위험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개신교계와 학계가 이런 문제를 더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손 교수는 개신교계에 하나님 이름 아래 자행되는 영적 학대가 만연해 있다고 강조한다. 교리가 다르다고 교수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파면조치를 내린 학교의 폭력도 같은 맥락이란다. “선교는 당연히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성경적 방법을 써야 합니다.” 비인간적, 비성서적, 폭력적인 방법은 결코 있어선 안 될 악이라는 손 교수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신학자들이 교회 위기 극복을 위해 좀더 진지한 대안적 고민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금까지의 잃어버린 영성과 도덕성 회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통한 감동 회복이 중요하단다. “잃어버린 도덕성과 영성의 회복만으로 초대교회 신앙의 풍성함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은 사람을 용서하게 만든다고 거듭 강조하는 손 교수는 그래서 이제 진리(진), 도덕성(선), 아름다움(미)의 ‘진선미’ 대신 아름다움의 하나님을 먼저 강조하는 ‘미선진’의 신학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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