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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정유 9연패 1승 남았다

    LG정유가 2연승을 달리며 정상에 바짝 다가섰다. LG정유는 25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99한국배구슈퍼리그 여자부 최종결승 2차전에서 현대의 불같은 저항을 힘겹게 뿌리친 끝에 3-1(25-20 26-24 19-25 25-21)로 신승했다.LG정유는 이로써 최종결승전 2연승을 기록,우승을 향한 V3에 한게임을 남겨놓았다.결승 3차전은 27일 열린다. LG정유는 이날 승리로 올시즌 통산 18전전승을 달리며 대회 9연패와 전승우승의 가능성을 높였다.6년 묵은 결승진출의 꿈을 이룬 현대는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2차전마저 내줌으로써 우승 희망이 한결 희박해졌다. 이날 게임은 똑 같이 등번호 4번을 단 LG정유 장윤희와 현대 구민정의 왼쪽 날개 싸움으로 일관했다.장윤희는 이날 22점을 올려 구민정(29득점)에게 득점에서는 뒤졌으나 공격성공률(48%)과 서브리시브 성공률(61%)에서 압도했다. 장윤희는 또 팀동료인 이윤희(11득점)의 오른쪽 공격과 홍지연(14득점)의중앙공격이 활기를 띤데 힘입어 무인지경인 상대의 오른쪽을 마음껏 공략했다.LG정유는 팀 전체적으로도 낮고빠른 토스와 서브로 상대 수비를 흩뜨리는데 성공해 현대의 추적을 따돌렸다. 승부의 최대 분수령은 4세트.2세트에서 후반 역전극을 펼친 LG정유는 4세트에서도 11-14까지 밀렸으나 현대 강혜미 세터의 서브범실과 정선혜의 잇따른 왼쪽 공격으로 15-15 타이를 만든 뒤 장윤희와 홍지연을 해결사로 내세워게임을 뒤집었다.
  • 대한항공 창단 첫‘결승 착륙’

    대한항공이 창단후 처음으로 최종결승전 진출을 사실상 결정지었다. 대한항공은 18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99한국배구슈퍼리그 3차대회 남자부 더블리그에서 강호 현대자동차를 3-1(22-25 25-18 26-24 25-23)로 물리치고 3승1패를 기록했다.대한항공은 남은 삼성화재(3승)와 LG화재(3패)의 경기에서 1승만 올려도 최종결승전에 진출한다.만일 대한항공이 남은 2게임을모두 패해도 세트득실률(득세트/실세트)에서 현대를 크게 앞서있다.1승3패의 현대는 남은 2게임을 다 이겨도 자력으로 최종결승전에 나서기는 어려게 됐다.대한항공은 지난 88년과 89년 잇따라 3위를 한것이 최고 성적이다.현대는 4년만에 결승진출 좌절을 맛보게 됐다. 대한항공은 또 이날 승리로 이번 시즌 들어 현대에 3승2패의 우위를 보였다.이날 게임은 대한항공 센터 박선출의 화려한 속공이 돋보인 한판이었다.무릎부상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무통주사를 맞으며 코트를 누벼온 박선출은 속공으로 18점을 올리고 2개의 블로킹,1개의 서브에이스 등으로 21점을 엮어냈고 공격성공률에서도 두팀을 통틀어가장 많은 67%를 기록했다.왼쪽 주포 박희상 역시 23점을 올리는 맹활약으로 박선출과 함께 승리의 주역이 됐다. 남자부 대한항공(3승1패) 3-1 현대자동차(1승3패) 박해옥 hop@
  • 삼성화재 화력 LG 압도…개막전 장식

    삼성화재가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삼성은 12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99한국배구슈퍼리그 3차대회 개막전에서 블로킹의 압도적인 우세로 ‘천적’ LG화재를 3-1(26-24 25-19 18-25 25-16)로 눌러 시즌 통산 9게임 연속 무패행진을 벌였다.삼성은 이로써 이번시즌 들어 LG에 3승1패의 확실한 우위를 지키며 대회 3연패 가능성을 높였다. LG는 1차대회 승리에 이어 2차대회 마지막 경기에서도 초반 리드 끝에 2-3으로 역전패하는 등 삼성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여왔으나 구준회가 레프트로 빠지면서 생긴 센터 공백을 메우지 못해 또 무너졌다. 삼성은 김상우가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가뜩이나 취약한 센터진에 큰 구멍이 뚫릴 것으로 우려됐으나 신정섭(11득점)이 기둥센터 역을 충실히 해내며 속공과 블로킹에서 맹활약했다.삼성은 김세진(24득점)과 신진식(20득점)을 앞세운 좌우 날개에서도 LG화재를 압도했다. 최대 승부처는 1세트 후반.21-21로 팽팽히 이어지던 균형은 삼성이 김규선의 스파이크와 김세진의 블로킹,김규선의 속공으로 잇따라 3점을 얻으면서깨지기 시작했다.삼성은 2세트까지 블로킹 포인트만 10점을 올리는 등 센터싸움에서 우위를 확보해 세트스코어 2-0으로 달아나며 일찌감치 기선을 제압한 끝에 승리를 낚았다.박해옥 hop@남자부삼성화재(1승) 3-1 LG화재(1패)
  • 김세진·신진식 쌍포 작렬

    삼성화재가 대한항공의 비상을 막으며 선두를 지켰다.삼성은 31일 광주염주 체육관에서 열린 99한국배구슈퍼리그 2차대회 남자부 경기에서 박희상 박선 출이 부상으로 빠진 대한항공에 예상밖의 고전을 치르며 3-1(25-20 25-22 23 -25 25-22)로 이겼다.삼성의 김세진 신진식 쌍포는 54점을 합작하며 승리를 주도했다.삼성은 7승1패로 전날 경기대를 3-0으로 꺾은 현대자동차와 동률을 이뤘으나 세트득실률에서 앞서 선두를 지켰다.대한항공 5승3패. 대한항공은 주득점원 박희상과 박선출이 무릎및 발목 부상으로 결장했음에 도 첫세트를 빼앗는 선전을 펼쳐 3차대회에서 만만치 않은 저항세력으로 떠 오를 것임을 예고했다.특히 대한항공 김종화는 중앙과 좌우를 휘저으며 21점 을 올려 박희상의 빈자리와 최천식의 부진을 충실히 메웠다.삼성은 4세트에 서 22-20까지 쫓겼지만 대한항공 김종민의 서브 범실과 김경훈의 투터치 반 칙으로 2점을 주워 담은 뒤 신정섭의 중앙속공으로 25점에 선착,게임을 마무 리했다. 광주?많玟萬? hop@ [광주?많玟萬?hop@]
  • 담배공사 “3차대회 보이네”

    담배인삼공사가 우승후보 현대를 잡고 3차대회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담배인삼공사는 29일 광주염주체육관에서 계속된 99한국배구슈퍼리그 2차대회 여자부 경기에서 최광희의 왼쪽 공격이 살아나고 현대 주포 구민정의 공격을 무력화 시켜 현대를 3-1(25-22 25-22 19-25 25-13)로 꺾었다.담배인삼공사의 최광희는 48%의 공격성골률로 25득점을 올려 팀 승리에 기여했다.담배인삼공사가 현대를 꺾기는 지난 시즌 1차대회 이후 처음이다. 담배인삼공사는 4승6패로 도로공사와 동률을 이뤘으나 세트득실률에서 앞서 3위권으로 올라섰다.현대는 흥국전에 이어 2연패를 기록하며 5승4패의 불안한 2위를 지켰다.광주┑박해옥 hop@여자부 담배인삼공사(4승6패) 3-1 현대(5승4패)
  • 현대,담배공사 꺾고 5연승-배구슈퍼리그

    현대가 외인부대 3인방의 맹활약을 업고 1패 뒤 5연승 가도를 달렸다. 현대는 14일 경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99한국배구슈퍼리그 여자부 경기에서 해체팀 출신들인 구민정 장소연 강혜미의 완벽한 호흡에 힘입어 담배인삼공사를 3-1(25-19 25-19 21-25 25-20)로 누르고 개막전 첫경기에서 LG정유에패한 이래 5번 연속 승리했다.담배인삼공사는 2승5패가 됐다. 특히 SK에서 한솥밥을 먹던 세터 강혜미와 센터 장소연(28득점)은 고비마다 번개 같은 이동공격과 중앙속공을 합작했고 구민정(27득점)은 파워 넘치는왼쪽 공격으로 담배인삼공사를 농락했다. 현대는 이날 부상중인 레프트 김영숙 자리에 안은영을 넣고 레프트 배정자를 센터로 돌리는 등 진용에 변화를 준 것이 성공적인 조화를 이뤄 강력한우승후보로서 면모를 일신했다. 담배인삼공사 최광희는 이날도 혼자서 26점을 올리는 활약을 보이며 공격종합선두(총 137득점)를 달렸으나 팀 패배로 빛을 잃었다. 1,2세트를 잇따라 이긴 현대는 최광희 양선영 양날개가 분전한 담배인삼공사에 3세트를 내준뒤 4세트를5점차로 이겨 승리를 결정지었다. 여자부 현대(5승1패) 3-1 담배인삼공사(2승5패)
  • 현대自,김세진 분투 삼성화재에 2연승-공동선두

    현대자동차가 절묘한 블로킹으로 삼성화재의 설욕의지를 꺾고 2연승으로 공동선두에 올랐다. 현대자동차는 10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99한국배구슈퍼리그 2차대회남자부 경기에서 블로킹으로 24점을 올리며 삼성에 3-1(20-25 25-17 25-18 30-28)로 역전승 했다.삼성 1승1패. 현대는 이날 후인정(21득점) 이인구(18득점) 방신봉(17득점)의 세갈래 공격이 주효했고 블로킹의 호조로 삼성을 압도했다.대회 3연패에 도전하는 삼성은 김세진의 오른쪽 공격에 주로 의존하면서 현대진영을 공략하느라 번번이 현대 수비벽에 막혀 1차대회에서 진 빚을 갚지못했다. 세트 스코어 1-1 뒤 맞은 3세트부터 게임은 현대의 분위기로 돌아섰다.현대는 3세트 초반 7-7까지 접전을 벌였으나 후인정의 백어택과 박종찬의 블로킹이 효력을 보이면서 앞서나가 7점차로 손쉽게 세트를 얻었다. 현대는 4세트 들어서도 19-20까지 리드를 허용했으나 삼성 권순찬이 아웃되는 공을 경황중에 걷어내다 점수를 잃는 어이 없는 실수와 방신봉 박종찬의연속 블로킹으로 점수를 보태 승리를 낚았다.대전│박해옥 hop@남자부 현대(2승) 3-1 삼성(1승1패)
  • 현대 강혜미 종횡무진…道公 꺾고 1차대회 준우승

    현대는 3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99한국배구슈퍼리그 1차대회 여자부리그에서 해체된 SK케미칼 출신의 장소연-강혜미 콤비와 한일합섬 출신 국가대표 레프트 구민정으로 짜여진 외인부대 3인방의 맹활약에 힘입어 도로공사를 3-1(27-25 18-25 25-10 25-12)로 물리쳐 3승1패를 기록,4승으로 우승을차지한 LG에 이어 1차대회 준우승에 올랐다. 174㎝의 단신 세터 강혜미는 공수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승리의 주역이됐다.강혜미는 이날 좌우를 왕래하며 낮고 빠른 볼배급과 강력한 스파이크서브로 상대 수비진을 흔들었다.구민정은 24득점,센터 장소연은 23득점을 올려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1세트를 듀스 끝에 2점차로 어렵게 이긴 현대는 2세트를 빼앗겨 세트스코어 1-1 타이를 이루었다.현대는 조직력이 살라나면서 3세트를 여유있게 따돌려 승기를 잡았다. 4세트 역시 상승세를 탄 현대의 페이스였다.현대는 초반부터 구민정의 강력한 스파이크 공격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3-0으로 달아난 뒤 서브미스와 오버타임 등 도로공사의 연이은 실책으로 점수차를 순식간에 7-1까지 벌려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자일반부 현대(3승1패) 3-1 도로공사(1승2패)
  • 이희호 여사 ‘CCC 편지’에 신앙간증문

    ◎“고난은 새시대 알리는 전주곡”/모태신앙으로 태어나 62년 DJ와 결혼/험난한 인생행로서 하나님의 역사체험 대통령 부인 李姬鎬 여사(창천감리교회 장로)는 한국대학생선교회가 발행하는 ‘CCC편지’ 최근호에 신앙간증문을 기고해 주목을 끌었다. 李여사는 ‘고난의 현재적 의미­기도와 두레박으로 퍼올린 영광과 감사’라는 제목의 간증을 통해 험난했던 인생행로와 대통령 부인이 된 이후의 감회등을 소상히 밝혔다. 李여사는 “50년만에 여야간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남편이 4수만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민주화와 정의에 목말라 몸부림치던 민중의 승리였고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작품이었다”며 “성서에서 보듯 고난은 죄의 대가만이 아닌,오히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전주곡”이라고 강조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그는 기독교계통의 학교를 졸업한 뒤 크로목사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갈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YWCA 총무로 재직하다가 62년 金대통령과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고난 그 자체’였다고 술회했다. 李여사는 73년 金대통령이 일본에서 납치됐을 당시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기도를 드리면서 남편의 생사가 확인되기를 바랐고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했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그가 예수님을 죽음 직전에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때나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남편을 감옥에 보낸채 연금생활을 하면서 의지할 분이라곤 하나님밖에 없었고 고난의 해답을 성경을 통해 얻었다는 李여사는 92년 대선때 사지에서 남편을 살려주셨던 하나님께서 반드시 대통령에 당선시켜주실 것으로 믿었으나 낙선해 잠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 대한민국 정체성(金三雄 칼럼)

    건국 50주년은 통사적 의미에서 대한민국 건국 77년이라야 옳다. 우리 헌법의 전문대로 “3·1운동으로 건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기 때문이다. 1919년 4월 11일과 12일 조국의 광복을 위해 중국 상하이에 모인 애국지사들은 제 1차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를 열어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전문 10조의 임시헌장을 심의 통과시켰다. 헌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제11조)”,“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이를 통치함(제2조)”이라 규정하여 명실상부한 근대민주국가의 국체와 정체를 확립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11일 의정원의원 申錫雨의 동의가 가결되어 채택되었다. 이날 조선 고려 대한 등 여러가지가 논의되었으나 결국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어 이후 임정의 헌법강령 포고문 대일선전포고문 등 모든 문건이 대한민국으로 표기되고 1919년을 건국기원으로 삼았다. 그러나 망국시절의 정파들은 ‘대한’‘고려’‘조선’을 각 진영의 이념 성향에 따라 쓰게 되었다.대체로 보수적 우익측은 대한,좌익측은 조선,회색적 중간층은 고려라는 국호를 선호했다. 이른바 ‘좌(左)조선 우(右)대한,남(南)대한 북(北)조선’의 성향이고,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해방 직후 다시 국호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설정식은 ‘대한’을 사용해야 할 근거로 ①망국 직전까지 사용했던(대한제국) 국호이니 광복적 의미가 있고 ②대한은 3·1운동 이후에도 사용했던 것이니 그 법통을 계승하는 의미가 있으며 ③대한의 ‘한’은 삼한시대부터 국호의 표상으로서 역사적 유래가 있다고 지적했다. ○항일단체들 민주공화제 선호 그는 또 ‘조선’을 재사용할 근거로 ①조선은 단군시절부터 국호로 역사적 유래가 있고 ②조선은 우리 민족의 범칭적 용어로 어느때든지 사용할 수 있으며 ③조선은 우리 지역의 이름으로 널리 쓰는 말로 쓰기에 쉽고 편리하다고 해석했다. ‘고려’의 근거로는 ①대한과 조선에 구애됨이 없이 완전히 새로 출발하기 위해서 ②대한과 조선이 지금 대립하니 이를 발전적으로 해소하여 분열을 피하고 통일을 기하기위해서 ③외국에서 불리고 있는 코리아와 관련이 있는 용어라는 이유를 들었다. 3·1운동을 주도한 손병희의 1919년 7월 4일자 경성지방법원 예심조서에 따르면 “조선이 독립하면 어떠한 정체를 세울 생각이었는가”란 검사의 신문에 “민주정체로 할 생각이었다. 그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와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언명하여 민주정체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일제강점기동안 국내외 독립운동단체 460개 가운데 민주공화제를 추구하는 민주지향형이 244개로 53%인데 비해 계급투쟁형 34%,왕정복고형 8%,군정추구형 5%로 나타났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이념적 성향을 살필 수 있다. 이러한 민주공화제의 의지는 임정으로 수렴되고 해방과 함께 건국의 이념으로 승계되었다. 8·15 건국은 최초로 실질적인 근대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제국 시기의 전제군주체제와 일제식민통치를 청산하고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후삼국통일 이래 다시 분열 학계는 여전히 8·15 해방이 연합국의 승리에 의해 타율적으로주어졌다는 외인론(外因論)과 한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이 해방의 필연성을 싹틔웠다는 내인론(內因論)으로 나뉘고 있다. 외인론이든 내인론이든 해방과 함께 이질적인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후삼국의 통일 이래 꼭 1012년만에 서로 대립 상쟁하는 분단국가를 만들어 어언 남북이 정권수립 50주년을 맞게 되었다. 비록 분단상태에서 맞은 건국 50주년이지만 적어도 3·1항쟁 이래 국혼(國魂)과 국맥(國脈)으로 지켜온 민주공화제를 바탕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제2건국’을 계기로 국난극복과 통일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하겠다.
  • 두 빈소(朴康文 코너)

    항일투사 海平 李在賢 선생이 세상을 떴다는 기별을 받고 빈소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병원의 장례시설에 모셨다고 했다. 안양에 있는 작은 집에서 검박하게 살던 그에게 사후에 누리는 이런 호사란 좀 뜻밖이었다. 유족이 퍽 애쓴 것 같았다. 장례식장 건물 앞에는 연신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와닿고 차림새가 말쑥한 사람들이 내렸다. 해평 선생을 조상하러 온 손님들이거니 하고 인파에 묻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빈소 문전은 분향 재배 순서를 기다리고 서 있는 사람들로 이미 꽉 차 있었다. 고인의 고매한 인품이 이렇듯 사람을 모으는가 생각하며 둘러보는데 생소한 이들 뿐인 것이 이상했다.해평 선생의 빈소가 아니었다. ○광복군 장교와 친일고관 거기서는 높은 관직에 있던 어떤 분이 조객을 맞고 있었다.그 가족이 별세한 것이었다.그 전직 고관은 일제때 유능하고 충성심 있는 관리로서 신임을 받았다.대한민국에서도 오랫동안 여러 요직을 맡았다.관직에서 물러났건만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은 거기 모인 조객의 숫자로 알 만했다.정작,해평 선생 빈소의 분위기는 고인의 성품처럼 고즈넉했다. 아니,쓸쓸했다고 해야 옳다. 평소 선생을 존경하던 이들이 상 두어개를 둘러싸고 앉아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는 몇 시간 내내 새로 온 조객은 거의 없었으니까. 해평 선생은 광복군 장교로서 미국 전략정보처(OSS)와 합작해 8월 말로 예정한 국내 진입을 준비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광복군 안에 국내정진군(國內挺進軍) 총지휘부가 구성되고 이범석 장군이 총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해평 선생은 본부요원이 되었다.안춘생 선생은 평안·황해·경기지역을 맡은 제1지구 대장,장준하 선생은 제1 지구의 경기도반장이었다. 국내 정진군은 국내에 들어와 적의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무장세력을 조직하여 미군이 상륙할 때 내응하는 것이 임무였다. 미군 훈련관이 실시한 3개월간의 특수훈련이 거의 끌나는 8월초 국내정진군은 편성되었다. 곧 미국 잠수함으로 국내에 침투하여 임무를 수행할 참이었다. 일본 항복이 조금만 늦었더라면,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승리를 거두고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있을 터였다.모든 광복군과 임시정부 인사들은 통한의 눈물을 뿌려야 했다. 해평 선생은 광복후 귀국해 수십년이 되도록 국가 보훈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이역 땅에서 갖은 신고를 겪으며 싸우다 광복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간 투사들께 죄스러워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지 않았다. ○수십년간 공적 숨겨 그는 에스페란토­한국어사전 편찬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다.그 작업이 마침내 끝났을 때,출판비용을 조달할 방도가 달리 없자 유공자로서 훈장과 함께 받게 된 돈을 여기에 썼다.그래서 국내에서는 이 분야 최초인 사전이 해평 덕분에 나오게 되었다. 이번 광복절을 하루 앞둔 오늘,서울 남산에서 3·1 독립운동기념탑 건립기공식이 있다. 그 건립위원회 구성원 명단에,앞서 말한 전직 고관의 이름이 끼인 것을 보았다. 해평 선생을 영결한 것은 지난해 일이었지만,그 때 대조적이던 두 빈소의 풍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 與 승리땐 개혁·정계개편 가속/재·보선이후 정국 전망

    ◎광명을 뺏기면 국민회의 지도체제 위기/한나라 패배하면 급속 붕괴·분당 가능성 여야가 7·21 재·보궐선거에 던진 의미는 각별하다. 7개 지역에서만 선거전이 벌어지지만 그 파장은 전국적으로 미칠 전망이다. 국민회의·자민련쪽에서 볼 때 선거결과는 金大中 대통령의 각종 개혁작업과 여권의 정계개편 속도를 조절하는 가장 큰 변수다. 야당쪽에서는 당의 진로,당 지도체제 향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는 국회정상화를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일 각 당의 판세 분석으로 볼 때 7개 선거구는 국민회의와 자민련,한나라당이 각각 3:1:3의 비율로 가져갈 공산이 크다. 국민회의는 서울 종로와 경기 광명,수월 팔달등 3곳,자민련은 부산의 해운대·기장을 1곳,한나라당은 서울 서초갑과 대구 북갑,강릉을 3곳에서 당선한다는 얘기다. 이런 구도라면 개혁드라이브를 가속하하는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여권은 ‘지방선거에서의 승리=개혁추인’으로,‘7·21 재·보선 승리=개혁완성주문’으로 보고 있다. 국민회의는 후보를 낸 서울·수도권지역 3곳을 이기면 선거승리로 간주한다. 이후 금융·기업·사회부문 구조조정을 한층 강도높게 추진해나갈 것을 이미 공언한 상태다. 金鍾泌 총리서리 인준문제가 걸린 원구성 협상에서도 여권이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여권의 정계개편 시도도 탄력을 받게 된다. 더욱이 자민련이 PK지역(부산 경남)‘입성’에 성공할 경우 정계개편의 속도·강도는 훨씬 커질 전망이다. 이 경우 추진중인 수도권·강원지역 야당의원영입이 영남지역까지 확산되는 도미노현상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다만 수도권 가운데 한나라당과 각축중인 광명을이 야당의 승리로 귀결될 경우 상황은 ‘반전’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위의 구도대로 광명을과 해운대·기장을을 놓칠 경우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당권경쟁과 맞물려 내분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여권의 의도대로 일부 의원들이 이탈할 경우 당은 걷잡을 수 없는 분당(分黨)상황에 이를 지도 모른다. 현재로서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趙淳 총재가강릉을의 선거에서 패배하면 더욱 그렇다. 한나라당이 해운대·기장을을 내주더라도 광명을을 ‘차지’한다면 여권은 각종 개혁과 정계개편,향후 정국운영에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趙世衡 총재대행의 국민회의는 개혁의 와중에서 ‘지도체제위기’라는 국면을 떠안고 가야하는 부담이 생긴다. 개혁속도를 다소 조절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권에서는 7·21 재·보선이 여권의 이니셔티브를 촉진하는 계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 7·21 재·보선 공식 선거전/후보등록 첫날 3.4대1

    7·21 재·보궐선거가 5일부터 16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후보등록 첫날인 이날 7개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여야 후보들은 일찌감치 후보등록과 출정식을 마치고 거리유세에 나섰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여권 후보는 국정개혁과 경제회생을 위해 힘을 보태 달라고 호소했고,반면 한나라당 등 야권후보들은 견제세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앞서 국민회의 趙 총재권한 대행은 광명을 선대위 발대식에서 “보선승리를 통해 이나라 정치 발전과 경제회생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그린벨트 해제 등 지역개발을 약속했다. 한나라당 趙淳 총재는 “건전한 야당이 필요하며 오만과 독선은 또다른 불행을 낳을 수 있다”며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당부했다. 자민련 朴俊炳 사무총장은 “개혁과 정국안정을 위해 힘있는 연합여당의 후보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중앙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이날 하오 5시 현재 7개 선거구에 모두 23명이 후보등록을 마쳐 3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 ‘한지붕 두가족’ 불협화음/홍콩 반환 1년

    ‘동방의 진주’ 홍콩이 7월1일로 중국에 반환된 지 꼭 한돌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홍콩 차이나의 1년’은 세계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비록 법적으로는 ‘1국가 2체제’로 자유분방한 영국식 정치환경이 보장됐지만,역사적 주권 귀속이 주민들에겐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직 ‘생부모’(중국)보다는 150년을 함께 생활해온 ‘양부모’(영국)쪽에 더 마음이 쏠린 그들이었다. 더욱이 때마침 밀어닥친 아시아권 경제위기에서 홍콩도 예외가 아니다.변혁의 물결로 소용돌이치는 홍콩의 오늘을 진단해 본다. ◎급속 中國化 부작용… 국제 비즈니스센터 위상 흔들/개혁세력 선거 승리… 시민 상당수 “英領시절 그립다” 홍콩이 50년 시한부인 특별행정구라는 지위로 중국에 귀속된 지 어언 1년. 사회주의 체제하의 12억 본토인과 시장경제하의 650여만 홍콩인들이 ‘한지붕 두가족’처럼 딴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1국 2체제’구도는 겉보기엔 순조롭게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질적인 체제의 접목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탈(脫)영국 중국화’로 요약된다. 홍콩은 더 이상 동서양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하던,과거의 ‘동양의 진주’가 아니다. 올들어 홍콩거주 영국인들의 ‘엑소더스’도 가속되고 있다. 반환 이전 3만1,400여명을 헤아리던 영국인들이 현재 2만7,000여명으로 줄었다. 중국 정부의 음양의 간섭으로 서구식 자유주의도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문제는 급속한 ‘중국화’과정에서 장점보다는 부작용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영국 통치의 강점이었던 ‘법의 지배’가 약화되는 대신 인치와 연고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영국령일 때보다 한층 무질서해진 교통질서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중국어 전용이나 서구적 질서의 실종은 그렇찮아도 위기국면인 홍콩경제의 주름을 깊게 하고 있다. 금융·무역 등 국제 비즈니스센터로서의 홍콩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는 까닭이다. 다수 홍콩인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최근 홍콩대 사회과학원의 여론조사가 이를 입증한다. 주민 대다수가 영국 통치를 그리워하는 역설적인결과가 나온 탓이다. 이는 지난해 9월 주권반환 100일에 즈음한 홍콩정부의 여론조사 결과와는 극히 대조적이다. 당시엔 주민의 80%가 “‘홍콩 차이나‘가 더 안정되면서 번영할 것”으로 내다봤다. 요컨대 홍콩과 중국이 협연하고 하고 있는 ‘1국 2체제’교향악은 아직 미완성 상태로 불협화음을 빚어내고 있는 셈이다. 중국 귀속후 처음 실시됐던 지난달 입법회(의회)선거에서도 이 여론이 반영됐다. ‘홍콩발전민주연맹’ 등 친중국계는 불공정 시비 속에 간선제로 뽑는 의석을 독식,억지로 다수파가 됐다. 하지만 민주당 등 개혁세력이 직선제인 지역구 20석중 15석을 석권,사실상 승리를 거뒀다. 이 결과는 중국 귀속 이후 상황에 대한 홍콩인들의 강력한 불만표출로 받아 들여진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기묘한 동거체제가 벌써 삐걱거리고 있는 징후인 것이다. ◎홍콩은… 홍콩은 홍콩섬과 대륙의 구룡반도,그리고 부근의 240개의 조그마한 섬들로 되어 있다. 모두 합해 면적은 1,067㎢. 제주도가 1,845㎢이니 제주도의절반보다 조금 큰 편이다.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동서양간 경제교류의 징검다리로 보물과 같은 존재라 해서 흔히 ‘동방의 진주’로 불린다. 그러나 157년전만 하더라도 홍콩섬은 불모의 땅이었다. 고작 해적의 소굴에서 ‘동방의 진주’로 변신한 것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1841년 아편전쟁의 와중에 홍콩섬에 영국군이 처음 진주했고 이듬해에 아편전쟁이 끝나면서 영국에 할양된다. 18년후 2차 아편전쟁이 4년만에 매듭지어지며 구룡반도와 스톤 캐터스섬이 영국 영토가 된다. 그리고 1898년의 의화단 사건을 수습하면서 영국은 란타나오섬을 비롯한 200여개의 섬들을 또 넘겨받는 대신 할양기간을 99년으로 조정하는 조약을 맺었다. 6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며 홍콩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면서 영국이나 중국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게 했던 조약들이 평등하지 않다면서도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79년 반환협상을 시작했고 84년 협상에서 역사적인 ‘97년 홍콩반환에 관한 공동성명’에 조인하면서 97년 7월1일 157년만에 본래의 중국 땅이 되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누가 이끄나/董建華·陳方安生 1국2체제 실험 주도/李柱銘 민주당수 “개혁세력의 희망봉”/통화전문가 任志剛 경제 조타수 역할 ▲둥젠화(董建華·61) 행정장관=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부터 가장 많은 스폿라이트를 받았던 인물. 지난 1년동안 톈안먼(天安門) 사태 추도행사를 보장하고 입법회의 선거를 실시하는 등 유화 정책을 많이 썼다. 홍콩의 초대 행정장관으로서 앞으로 4년간 ‘1국 2체제’실험을 주도해나갈 인물이다. ▲천팡안성(陳方安生·58) 행정총리=둥젠화 행정장관 아래 홍콩의 관료들을 이끄는 제2인자. ‘홍콩의 대처’로 불린다. 영국 통치시절 홍콩 번영의 반석이라 할 깨끗한 행정관료 조직을 중국 귀속 이후에도 별 흔들림없이 잘 지켜내고 있다는 평이다. ▲스투화(司徒華) 지련회 주석=홍콩 민주 운동 단체의 대부격인 ‘애국민주운동을 지원하는 홍콩시민들의 연합회’(약칭 지련회)주석. 톈안먼 사태 기념 촛불시위 등을 주도. 중국의 인권탄압상을 국내외에 알리며 홍콩시민의 민주화 교사역을 하고 있다. ▲리주밍(李柱銘·60) 민주당 당수=5월24일 홍콩이 중국이 반환된 후 처음 치러진 입법회 선거에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귀속 전 최대 정당인 민주당의 수장. 이번 입법회 선거에서 민주당 등 개혁세력이 지역구를 휩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 수호자’인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는 길에 당연히 자신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해 미국측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셉 얌(任志剛·50) 홍콩 재정사 금융관리국 총재=아시아 경제위기를 통해 급부상한 통화정책 전문가. 지난해 10월 미국 달러에 대한 홍콩달러 가치 하락 압력이 거세자 하룻밤 사이에 홍콩 이자율 280% 인상을 단행,환율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주역이다. 홍콩 경제 순항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달라진 것들/北京語 배우기 열풍… 모르면 2류시민/“아편전쟁은 침략전쟁” 中 역사관 주입/영국紋章 사라지고 紫荊化도안 사용 홍콩 특별행정구의 거리에선 이제 그 흔하던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왕관 로고를 찾아볼 수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 동상은 물론 우표에 찍힌 여왕 흉상도 사라져 버렸다. 대신 특별행정구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꽃(紫荊花 자형화)도안이 행정특구 깃발에서부터 경찰제복에 이르기까지 뒤덮고 있다. 지난해만해도 어색하던 지하철과 공공장소에서의 보통화(普通話 베이징 표준어)의 사용도 자연스런 일이 됐다. 영국 통치 시대 홍콩에선 영어와 광둥어(廣東語)만을 사용해 보통어는 소통이 불가능한 외국어에 불과했다. 초등학교 등 각급 학교에선 보통화 교육이 필수가 됐다. 아직 완벽하지 못한 보통화를 배우려는 공무원과 직장인들로 학원은 계속 호황이다. 영국 치하에서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면 2류 시민이 됐던 것처럼 이제 매끄러운 보통화 실력없이는 설땅이 좁아지고 있다. 각급 학교의 교과서가 개정된 것은 물론이다. 중화민국은 타이완(臺灣)으로 격하됐고,역사는 영국의 식민지배적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관으로 대체됐다. 예전 영국령 홍콩 시절 교과서에서는 아편전쟁이 자유무역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일어났다고 기록했지만 이제는 본래 모습대로 침략전쟁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공휴일도 달라졌다. 6월 두번째 토요일부터 시작되던 ‘여왕 탄신 기념일’연휴는 지난해로 홍콩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대신 10월1일부터 3∼4일간 이어지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수립일이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뒤덮는 불꽃놀이 속에 가장 성대한 축제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7월1일 이전까지 법원의 최종 판결은 영국의 추밀원에서 결정했으나 이제는 홍콩에도 최종심 법원이 설치돼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거리의 외환 환전창구에선 인민폐(중국돈)를 바꿔주고 있고 인민폐를 홍콩돈처럼 받는 상점도 늘고 있다. 물론 ‘베이징 바람’이 점점 거세질 수록 ‘홍콩 차이니즈’들의 정치적 참여와 비판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홍콩의 중국화는 어쩔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경제/불황 주름살/1분기 마이너스성장 실업률 15년래 최악 중국 반환 1주년을 맞는 홍콩이 요즘 우울하다. 홍콩의 버팀목은 단연 경제. 꼭 영국과 결별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마침 닥친 아시아 경제위기에 휩쓸리며 어려움을 격고 있다. 90년대 들어 5%대의 경제 성장율을 유지해 왔으나 올들어 1·4분기에는 -2%를 기록했다. 경제가 침체되다 보니 실업률도 최악의 상황이다. 1.4분기 실업률은 4.1%. 최근 15년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96년의 실업률은 2.8%,지난해 2.5%였다. 지난해 중국 귀속을 앞두고 불안심리가 팽배하면서 오르기만 했던 부동산 가격과 주식의 폭락은 사뭇 심각하다. 주가는 1년 전보다 절반 아래로 떨어졌고 부동산도 40∼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홍콩 경제가 자랑하는 고정 환율제마저 흔들리고 있다. 홍콩 달러가 실제가치보다 높게 평가되면서 수출 경쟁력이 탄력을 잃고 1년 내내 붐비던 관광객마저 발길이 뜸해졌다.중국에 편입되면서 11%나 줄었던 관광객이 올들어 24%나 더 감소했다. 재무장관격인 도널드 창(曾蔭權) 재정사(財政司)는 지난 17일 올 경제성장률 3.5%의 달성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몇년간경제 전망도 어둡다고 털어 놨다. 버팀목인 경제가 허약해지자 홍콩 사회가 흔들린다. 실제로 최근 홍콩대학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콩장래에 대한 불신도(不信度)도 지난해 9%에서 25%로 늘어났고 신뢰지수는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동북아와 동남아의 요충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세계최고의 컨테이너 수송능력과 첵납콕 신공항 등으로 요약되는 아시아 금융·무역의 중심지 홍콩. 그러나 싱가포르와 상하이(上海)가 홍콩의 자리를 맹렬히 추격하는 상황에서 ‘동방의 진주’가 얼마나 더 ‘제 색깔’을 유지할지, 의구심이 커가고 있다.
  • 5·10 제헌국회 총선 50주년­역사적 의의

    ◎봉건사회 종언… 독립정부 토대 구축/사상 첫 민주선거… 王朝국가서 국민국가로/냉전체제속 ‘반쪽선거’ 분단고착화 초래 ‘역사의 등불은 선미(船尾)만을 비추는가’-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된 전철(前轍)을 밟기 마련이다.특히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시대인들에게 제헌국회 총선 50주년의 의미를 교훈으로 되살리는 작업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국민의 정부’를 맞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새김질하는 차원에서도 더욱 그렇다. ‘5·10 선거’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보통선거다.지리적 이념적으로 ‘반쪽선거’에 그쳐 분단을 고착화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한민국건국을 위한 합법성의 기초가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정치적으로는 통치엘리트의 교체를 공식화한 의미를 갖는다.국왕을 정점으로 양반계급내에서 통치엘리트가 충원되던 봉건적 신분제 사회가 막을 내리고 시민계급이 통치행위의 전면에 부상한 계기가 된 것이다.‘5·10 선거’를 기초로 48년 5월 31일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7월17일에는대한민국헌법이 공포되어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다.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논리도 ‘5·10 선거’의 유효성에 근거한다. ‘5·10 선거’가 남한 단독선거로 치르진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소간의 치열한 패권주의적 신경전 때문이다.일제 패망이후 한반도내 민주적 임시정부의 구성 문제를 논의하던 미·소 공동위원회가 정부 구성에 참여할 정당·사회단체의 범위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미국은 47년 9월17일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한다.미국은 유엔에서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총선거실시안을 추진하지만 소련이 “인구비례에 의한 선거는 남한진영의 승리와 소련에 비우호적인 정부의 수립으로 연결된다”며 반대,결국 남한 단독선거로 귀결된다.국내에서도 단독선거 반대 주장이 제기됐지만 “정부수립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의견이 대세를 탄다.이에 따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우려하며좌익소탕 작업을 벌이던 미군정은 48년 3월1일 ‘조선인민대표의 선거에 관한 포고’를 통해 ‘선거실시’를 공식 발표하고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수립운동을 적극 지원한다.당초 선거날짜는 일요일인 5월9일이었지만 기독교계의 변경 요청으로 하루 늦춰진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참여파와 불참파,남북협상파 등으로 나뉘어 치열한 세다툼이 벌어진다.李承晩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한국민주당,민족청년단,대동청년단,서북청년회,대한노총 등 반탁·반공의 우익세력들은 선거를 적극지지한다.특히 朴憲永계의 좌익세력 ‘조선인민공화국’에 맞서 결성된 한민당은 “선거를 반대하는 것은 소련의 앞잡이인 남로당이나 북로당의 모략에빠져 사회혼란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반면 남로당과 민주주의민족전선 등 좌익세력은 파업,시위,방화 등 폭력행사를 통해 선거반대 투쟁을 벌인다. 양쪽의 치열한 대립 속에 金九와 金奎植 등 우익 중간파들은 “남한 단독선거는 민족분단을 영구화한다”며 남북협상을 추진한다.金九 등은 ‘3천만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라는 성명에서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절박한 심정을 토한다.우여곡절끝에 4월20일 평양을 방문한 이들은 ‘전조선 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단독선거배격운동을 촉구하는 결정서를 채택하지만 취약한 국내 기반과 국제적 냉전체제의 가속화,협상의 전략적 실패 등으로 ‘통일정부 수립’의 꿈을 접고 만다.이처럼 ‘5·10선거’는 독립정부 수립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분단의 고착화라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그러나 왕조국가에서 국민주권국가로 발돋움한 토양을 마련,건국의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5·10선거’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
  • 서울신문 패왕전/저단 신예 돌풍

    ◎안달훈 초단 이희성·김영삼·이현욱 2단 본선토너 진출/차민수 4단,예선서 강호 최규병 8단 누르고 16강 합류/삼성화재배 한국6·중국8·일본2명 16강 확정/조훈현 9단,하반기 들어 이창호 9단에 5연패 제33기 패왕전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22일부터 시작된 1차예선에는 5단이하 기사 75명이 출전,차민수 4단,김영삼 2단,김승준 5단 등 11명이 2차예선에 진출했다.아직 대국을 하지 않은 최명훈 5단­박성수 초단의 승자가 2차예선에 합류한다. 본선진출자 12명을 가리는 2차예선은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한국기원에서 계속됐다.1차예선 진출자 12명과 6단이상의 기사 68명이 출전한 2차예선에서는 이희성 2단,안달훈 초단,김영삼 2단,이성재 4단,차민수 4단,김일환 8단,김승준 5단,이현욱2단 등 8명이 16강 본선토너멘트 진출자로 가려졌다.나머지 4명의 본선진출자는 이세돌 초단­홍종현 8단,김희중 9단­조대현 8단,강훈 9단­노영하 8단의 승자와 김인 9단과 1차예선 미진출자의 대국에 따라 결정된다. 본선진출자 면면을 살펴보면 김일환 8단을 제외하면 모두 저단진의 신예들.서봉수 9단,양재호 9단,백성호 9단 등 고단진들이 모두 신진기사들의 제물이 됐다.특히 차민수4단은 1차예선에서 파죽의 3연승을 구가한뒤 2차예선 결승에서 5강의 한명으로 꼽히고 있는 최규병 8단마저 눌러 본선에서의 활약상이 주목된다. 이들은 본선시드를 배정받은 유창혁 9단,윤성현 5단,이상훈 4단,목진석 3단과 토너멘트로 대국을 벌여 조훈현 패왕에 도전하게 된다. ○이창호­위 빈9단 대결 ○…우승상금 3억원이 걸린 삼성화재배 본선 16강자가 가려졌다. 13일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32강전에서는 중국기사들의 돌풍이 두드러져 창 하오(상호) 8단,마 샤오춘(마효춘) 9단,뤄 시허(라세하)6단,저우 허양(주학양) 8단,왕 레이(왕뇌) 6단,네 웨이핑 9단,천쭈더(진조덕) 9단,위빈(유빈) 9단 등 중국기사 8명이 모두 이겨 16강에 진출했다. 한국은 13명 가운데 6명이 이겨 반타작에 조금 못미쳤다.이창호 9단,유창혁 9단,김동면 6단,김승준 4단,이성재 4단,김성룡 4단이 승리한 반면 조훈현 9단,서봉수 9단,김인9단,서능욱 9단,최규병 8단이 중국기사에,홍태선 7단,목진선 3단이 일본기사에 무릎을 꿇었다. 일본은 10명 가운데 고바야시 샤토루(소림각) 9단,히코사카 나오토(언판직인) 9단 등 2명이 승리했으며 조치훈 9단 등 8명은 탈락했다. 16강 대진은 이창호 9단­위빈 9단,유창혁 9단­천쭈더 9단,김동면 6단­창 하오 8단,이성재 4단­뤄 시허 6단,김승준 4단­왕 레이 6단,김성룡 4단­마 샤오춘 9단,네 웨이핑 9단­히코사카 나오토 9단,저우 허양­고바야시 사토루 9단의 대결로 짜여졌다. 빅 카드는 서로 1승1패를 기록하고 있는 이창호 9단과 위빈 9단과의 대국.이창호 9단이 스승 조훈현 9단을 누른 위빈 9단을 맞아 어떻게 대국에 임할지 관심거리다.이성재 4단과 뤄 시허 6단,김승준 4단과 왕 레이 6단 등 신예들의 대국은 호각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나머지 대국은 우열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방심하다 보면 뜻밖의 결과가 나올수 있다. ○타이틀 2개씩 주고 받아 ○…조훈현 9단이 이창호 9단과의 사제대결에서 다시 슬럼프에 빠졌다. 조9단은올 상반기만 해도 이9단과 2­2로 팽팽한 균형을 유지했다. 최고위전에서는 도전자로 나서 2­3으로 졌지만 KBS바둑왕전에서는 2­1로 승리,우승을 차지했다.이어 배달왕기전에서도 도전자로 나서 이9단을 3­2로 눌러 타이틀을 추가했다.이9단도 곧바로 반격,BC카드배에서 3­1로 승리,스승 조9단으로부터 타이틀을 빼았아 왔다. 결국 상반기에는 사제가 타이틀을 2개씩 주고 받아 무승부를 이뤘다. 이 때문에 바둑계에서는 조9단이 완전한 회복세를 보였다고 판단,하반기의 대 반격을 기대했다. 그러나 하반기에 벌어진 타이틀전에서는 조9단이 이9단에게 완전히 밀리고 있다.왕위전에서는 두번의 반집패를 포함,4­0으로 무릎을 꿇었으며 명인전 도전 1국에서도 불계로 져 하반기에는 타이틀 획득은 고사하고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를 두고 기계에서는 조9단이 반집패의 충격에서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함께 이9단이 타이틀의 경중에 따라 대국에 임하는 자세가 틀리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Ⅳ

    ◎외세개입 없을땐 100% 적화통일 가능/나진·선봉에 남한기업 투자 원치 않아 ▷북한 대외관계◁ ○외교정책·전략 소·동구붕괴 이후 북한 대외정책의 핵심은 ‘체제고수’라는 기본목표하에 내부를 공고히 하면서 대국(주변4각)들과의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이들을 이용해 나가는 전략임. 외교정책 결정은 소·동구 붕괴이전에는 ①외교부 수립 ②당 국제부 심사 ③김정일 비준 ④외교부 하달순이었으나 90년대 들어 김정일이 직접 관장한 이후부터 외교부가 주도하고 있음. 외교정책 주도인물로는 김영남·강석주 등을 들수 있는데 외교부가 주관한 대미 핵협상이후 강석주가 김영남을 제치고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신임을 받고 있음. 북한지도층은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경제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일·북 관계에 진전이 없자 미국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 되어야 함을 깨달았음.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간섭을 견제하면서 대미관계 개선을 통해 일본을 따라오게 하고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기 위한 것임. 김정일을 UN을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부속기구로 보고 있으며 대 UN외교활동 중점을 주한미군 철수와 국제기구로부터의 지원획득에 두고 있음. ○해외 주체사상연구소 70.10 김일성과 단독 면담하여 주체철학 확립사업을 승인받고 4년간에 걸친 집필활동을 통하여 김일성 명의로 주체사상을 집대성 하였음. 최근까지 주체사상 연구소 활동을 위해 연간 100∼120만불의 예산을 사용해 왔음. 주체사상의 세계전파를 위해 78.4 동경에서 주체사상 국제연구소르 창설(초대 이사장 야스이 카오루,현재는 이노우에 슈하치)하고 매년 자금을 지원해 왔으나 최근에는 북한의 자금난으로 2년전부터 조총련에서 지원하고 있음. 현재 지역별 주체사상연구소는 인도,불란서,페루,나이제리아에 있으며 동 조직에 대한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는 아주 주체사상연구소(인도)에 매년 3∼4만불,중남미 지역 1만불,불란서에 5천불 정도 지원한 바 있음. 해외주재 북한대사가 주체사상 전파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있으며 일부지역에는 전담요원이 파견된 바도 있으나 이들 조직의 활동보고를 받거나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음. ○주요국과의 관계 김정일의 대미접근 의도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평화적」이라는 대외명분도 세우려는 것으로서 중국의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는데 대해 골탕을 먹이고 남한을 고립시키는 등 여러책략을 기본고리로 미국과 상대하려는 것임. 김정일은 미국을 타도대상인 적인 동시에 이용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미국과의 수교가 상당기간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수교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제기되고 북한의 남한 고립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임. 북한이 미국과 미사일 관련 협의에 수표하더라도 종잇장에 불과할 것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을 것임. 내부적으로 ‘미·북 핵합의’를 “신출귀몰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승리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어 모두 이를 믿고 있는 실정임. 김정일이 “일본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취함으로써 일본을 끌어 당기라”고 지시한바 있으며,대일관계 개선 목적은단지 사죄와 보상금을 얻어내는데 있음. 일본과의 수교회담은 처음에는 일본과 직접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차츰 미국의 승인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대미관계 개선에 우선을 두고 있음. 일·북 수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있으며 1백억불정도의 보상만 받을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수교할 것임.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북한은 미국과의 접근을 원치않는 중국을 자극하여 보다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임. 북한은 한·중 수교이후부터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으며 외교적 사안을 전혀 통보하지 않는 등 다소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북한은 소련붕괴이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도 벗어나려 하고 있기때문에 중국측에서 김정일을 수차 방중 초청해도 거절하고 있음. 북한은 남쪽을 무력으로 통일시키는데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을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음. 러시아가 한국의 자본과 러시아 기술을 이용하여 북한의 공장을 정상화시키려고할 경우 북한은 설비는 받아들일 것이나 남쪽인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임. 북한은 대만에서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만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음. 북한은 홍콩의 중국반환에 대비하여 보위부 반탐국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작년 여름 총영사관 설치문제와 관련하여 홍콩을 방문하였다고 함. 91년경 김일성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줄때 뿐이며 자본주의 국가나 남조선에서도 받아먹고 있어 ‘밑빠진 독에 불붓기’”라면서 “이제부터는 동남아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언급하였음. 김정일도 21세기를 태평양 시대라고 보고 동남아를 중요시하면서 필리핀·호주 등과의 수교를 추진하고 있음. 김일성은 91년경 교시를 통해 동남아 다음으로 브라질,페루 등 중남미 국가 야당과의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이들국가의 여당은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임. ○조총련의 대북송금 실태 김정일은 조총련의 송금을 최대의 명줄(중요자금원)로 간주하고 있으나 80년대에는 송금액이 6억달러 정도였으나 지금은 정확한 액수를 알수 없으며 빠찡코,부동산 등의 수입이 감소하여 많이 줄어들고 있음.또한 북한은 조총련에 교육비 명목으로 선전차원에서 자금을 보내기는 하지만 직접 투자는 하지 않고 있으며 지난번 일본 지진시 북한이 위로금을 보냈을때 ‘황’이 “뭐 그렇게 많이 보내느냐”고 하자 통전부 간부가 “보내면 몇배로 되돌아온다”고 대답한 바 있음. 지난 91∼92년도에 수교교섭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1백억불 이상 받아낼 계획이었음. 김일성 생존시에 배상금을 쓰는 문제에 대해 조금 논의를 했는데 경제부문이 아닌 다른부분에 쓰려는 것으로 들은바 있음. ▷대남 및 남북관계◁ ○북한의 대남 기본전략 과거 김일성은 대남혁명전략으로 남한내 이른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킨 다음 연방제로 통일하는 평화적 방법과 전쟁이라는 비평화적 방법을 병행하였음. 김정일은 오직 무력에 의해서만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에 비해 경제력은 열세이나 일본 등 외부간섭이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극심한 식량난에도 아랑곳없이 군사력 강화는 물론 무력통일을 위한 사전 기반조성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철수·남한 내부와해 및 지하당조직 공작을 추진하고 있음. 특히 최근에는 남한과 해외의 군사정보 수집을 위해 별도 공작기구를 설립하는 등 군관련 공작에 주력하고 있음. ○연방제통일전략(합작통일전략) 북한의 기본 대남전략은 ①남한은 내부적으로 와해시키고 ②무력으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며 현재 ‘남한정세가 정치적 문제·학생데모 등으로 혁명의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 북한이 대남 강경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결정한데 따른 것이며 남북관계에서 온건파가 발붙일 자리는 없음. 북한의 연방제 통일전략은 외국 등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남한내에 혼란을 일으키고 인민 봉기에 의한 정권을 수립한 후 합작하겠다는 것으로 속임수에 불과함. 김정일은 개방을 하면 체제가 무너지고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식권력승계를 하더라도 대남정책에는 변화가 있을수 없고 있지도 않을 것임. ○대남정책 입안 및 집행절차 대남 공작사업은 대남사업을 전담하는 당 소속 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작전부·조사부와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각각 자체계획을 수립,김정일의 비준을 받아 집행하고 있음. 공작부서간 상호 업무협조는 김정일의 직접적인 통제아래 이루어지므로 김정일 이외에 어느 누구의 지휘나 협의·조정없이 자체적으로 수행함. ○남북대화 북한은 남북대화를 ‘적과의 전쟁’으로 간주하여 모든 전략을 김정일의 결재하에 추진하고 있음. 남북대화 전략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수립하며 동 전략에 따라 조평통·정무원 등 관계자로 구성된 회담대표단이 이를 수행함. 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응했던 것은 남한을 안심시키고 국제적 이미지를 좋게 하자는 의도였으며 당시 연형묵 총리는 로봇에 불과했음. 94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김일성이 서울을 방문할 경우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며. 회담목적은 연방제통일과 남북 경제교류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었음. 4자회담은 잘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쌀을 준다면 나올 수는 있겠으나 딴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끌 것임. 북한이 ‘3+1’회담을 주장한 이유는 중국의 조선문제에 대한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임. 북한 고위인사 대부분중 대미협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며 대미협상이 김정일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4자회담 참석에는 반대하고 있음. 조선기독교연맹 위원장 강영섭은 통일전선부 사람들이 작성해주는 것을 읽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며,북한에는 종교를 믿으면 곧바로 통제구역으로 쫓겨남. 민간급 접촉은 김정일의 지시로 통전부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남한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해 재야단체 등을 반정부 투쟁에 끌어들이려는 유인술책임. 또한 당국간 대화 거부입장을 정당화 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 국내 일부단체의 대북접촉을 부추겨 통일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경제지원 등도 얻어내 보려는 속셈임. 남북경협은 대외경제위 산하 ‘대외경제협력 추진위’가 주관하고 있으며 동 기구는 크게 나진·선봉투자,금강산 개발,남한 기업인 접촉 등 3가지 업무를 담당함.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와같이 비단섬을 경제특구나 관광특구로 개발하려고 하는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1일관광을 시키는 정도일 것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봄. 북한이 나진·선봉지역을 개방한 것은 폐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모면해 보기 위한 것으로 남한기업의 투자는 원하고 있지 않으며 남한기업인에게는 경영권을 절대로 주지 않을 것임.
  • 세기의 체스대결/컴퓨터가 인간 이겼다

    ◎2승3무1패… 상금 70만달러 획득 【뉴욕 AP AFP 연합】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열렸던 체스 챔피언과 슈퍼컴퓨터간의 대결이 11일 결국 컴퓨터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85년이래 세계 체스챔피언 자리를 놓치지 않아온 러시아의 체스천재 게리 카스파로프는 이날 오전 뉴욕에서 IBM이 개발한 슈퍼컴 딥 블루(DEEP BLUE)와 인간과 컴퓨터간의 세기의 체스대결 6차 최종대국을 벌였으나 초반에 패배했다. 카스파로프는 대국 시작후 불과 1시간이 지난 무렵 19수만에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자 패배를 선언했다. 초반 1,2차전을 서로 나눠갖고 나머지 3연속 무승부를 기록한 끝에 열린 이번 6차전 경기를 마감한 최종 점수는 슈퍼컴 3.5점,인간 2.5점이었다.이번 대국을 통해 IBM 개발팀은 70만 달러를,카스파로프는 40만달러를 각각 손에 쥐게됐다. 인간에게는 진 적이 없던 카스파로프는 게임에서 패한후 믿을수 없는 결과에 격분한 듯 판을 뒤엎어 그가 받은 충격의 심도를 여실히 보여줬다.
  • 박찬호/어린이날 2연승 선물/잘던지고 잘때려 미 프로야구 스타로

    ◎“꿈을 안고 자라라” 조국새싹에 메시지 『오늘의 승리를 어린이 날을 맞은 고국의 어린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어린이 날 새벽 안방에 날라온 박찬호의 승전보는 어린이 들에게 더 없는 선물이며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코리아 특급」 박찬호(24)가 5일 새벽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거브스와의 경기에서 잘 던지고 타자로서도 뛰어난 기량을 펼쳐 올 2번째 승리를 따내 이역만리에서 멋진 어린이날 선물을 고국에 전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어린이날 나들이에 들떠 거의 뜬눈으로 보낸데다 이날 상오 5시부터 KBS­TV의 위성중계를 통해 박찬호의 던지고 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올렸다. 지금은 이국 땅에서 늠름한 모습으로 경기를 하는 박찬호도 어린 시절에는 여느 어린이들처럼 양탄자를 타고 날라 다니는 신바드를 꿈꾸는 동네에서 소문난 개구장이였다. 충남 공주에서 전파상을 하는 박재근씨(55)의 3남1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난 박찬호는 1살 터울인 형(헌용) 동생(상준)과 어울려 다니면서 싸움도 많이 하고 장난도 무척 심했다. 박찬호는 공주 중동초등학교에 입학해 3학년때까지는 육상을 했다.다른 아이들보다 큰 키 덕분에다 운동 신경이 뛰어나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은 반드시 한번은 해보고 마는 고집도 있었다.이것이 승부근성으로 발전됐다.초등학교 4학년 들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구에 입문,5학년때 주전으로 뛰기 시작하며 3루수겸 1번타자로 활약,타격상을 받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 입단해 받은 계약금의 일부를 떼내 자신이 다니던 초·중·고에 1천만원씩,그리고 한양대에는 1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아 어렵게 선수생활을 하는 후배들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씨도 지녔다.박찬호의 어린이 사랑은 유별나다.지난해 겨울 잠시 귀국해 바쁜중에도 「박찬호 어린이 교실」을 열고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T셔츠와 사이볼 등을 나누어주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 박찬호는 이날 승리를 따낸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어린이날을 생각하며더욱 힘을 냈다』면서 『고국의 어린이들에게 승리의 선물을 보내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 조훈현 9단 패왕 고수/서울신문사 주최

    ◎유창혁 9단 3대1로 물리쳐 「조제비」 조훈현 9단(44)이 패왕전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조9단은 28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벌어진 서울신문사 주최 전통의 제32기 패왕전 도전5번기 제4국에서 「일지매」 유창혁 9단(31)을 흑 2백71수만에 1집반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3승1패를 기록,대망의 패권을 안았다. 이로써 조9단은 대회 2년 연속 우승과 함께 동양증권배·KBS바둑왕전·기왕전·BC카드배 등 5관왕을 굳게 지켰다. 이날 조9단은 초반 상변에서 쌈지뜨고 사는 바람에 백에게 외세를 허용,불안한 출발을 보였다.그러나 좌하귀 백대마를 쫓으며 특유의 발빠른 공격을 개시,백의 두터움을 지워 추격의 불을 댕겼다.이후 하변 접전에서 유9단의 백 144수 완착에 편승해 상황은 백중세로 돌변했다.유9단이 198로 승부수를 날렸으나 조9단이 선방,미세한 승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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