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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온 4·3을 위로하는 아주 특별한 선물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온 4·3을 위로하는 아주 특별한 선물

    31일 4·3 당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낸 특별한 선물이 4·3평화재단에 도착했다. 그 선물은 다름 아닌 지난해 제주민예총·탐라미술인협회 ‘2021 예술로제주탐닉’ 참가자들이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과 함께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조를 심어 키우고 그 조로 빚은 오메기술을 증류해서 빚은 제주 전통 ‘고소리술’이었다. 이 술은 ‘잃어버린 마을’ 중 하나인 동광리의 옛 마을 ‘무등이왓’ 200평의 밭에서 작년부터 ‘조’를 키우고 10월에 곡식을 장만하여 술을 빚은 것이다. 12월에는 이 술은 ‘큰넓궤’에 들어갔다가 다시 세상밖으로 나왔다. ‘큰넓궤’는 동광 사람들이 4·3의 광풍을 피해 50일 동안 숨어지냈던 동굴로 이 ‘큰넓궤’에서 실제로 50일간 술을 저장했다가 꺼내 왔다. 이 시간은 4·3을 견뎌낸 50일을 기억하며 ‘큰넓궤’의 술이 익기를 기다린 시간이기도 하다. ‘무등이왓’에 위치한 200평의 밭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잃어버린 마을’의 새 희망을 가꾸는 뜻도 담겨 있어 더 의미가 깊다 이날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강문석 탐라미술인협회장, 이상준 동광리 이장과 함께 4·3평화기념관에서 이 고소리술 10병을 4·3평화재단에 기증하며 말했다.“4월 3일 지역마다 지내는 위령제 때 영령들을 위로하는 제주(祭酒)로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5·18 광주와 국내 인권단체 등에도 이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전하면 더 뿌듯할 것 같습니다.” 이에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은 “4·3희생자 보상과 유족들의 명예회복이 점점 이뤄지는 시점에서 기증품의 의미가 크다”며 “동광리 주민들과 예술인들이 만든 역사와 전통이 앞으로도 값지게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동광리의 큰넓궤는 동광목장 안에 있는 용암동굴로 1948년 11월 중순 이후 동광 주민들이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던 곳이다. 동광리 주민들이 대거 이 굴로 숨어들게 된 것은 11월 15일 중산간마을에 대한 초토화작전이 시행된 이후였다. 이 날 토벌대는 무등이왓 주민들을 전부 모이게 한 후 그 중 10명을 무자비하게 총살했다. 그 후 동광 주민들은 마을 인근 여기저기에서 숨어 사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주민들은 큰넓궤를 발견하게 되고, 폭설이 쏟아지자 이 굴로 들어갔다. 큰넓궤는 험한 대신 넓었고, 사람들이 숨어 살기에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 굴로 찾아든 사람은 120여 명이 되었다. 당시 어린아이들이나 노인은 이 굴속에서 살았다. 동광리마을에선 4·3사건으로 172명(2020년 기준)의 희생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 북촌리 너븐숭이 아기무덤의 비극… 이름도 없이 잠들어 있다

    북촌리 너븐숭이 아기무덤의 비극… 이름도 없이 잠들어 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인권유린’을 한, 그 날이 다시 돌아왔다. 벌써 74주년. 올해 제주는 특별한 봄을 맞고 있다. 제주4·3특별법 개정으로 올 하반기부터 4·3희생자에게 국가 차원의 피해 보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엔 직권재심과 특별재심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희생자 73명이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억울한 것은, 그 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죽어간 어린 영혼들이 있다. 818명.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4·3의 비극을 다시 소환한다.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집단 대학살 지난 29일, 제주도 조천읍 북촌 너븐숭이 4·3 위령성지로 향했다. 함덕해변 옆동네라고 하면 대충 알게 되는 그 해안마을 북촌리는 1949년 1월 17일 대규모 집단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너븐숭이 4.3위령탑 앞에는 벚나무 3그루가 시리도록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그 옆에선 토종 동백꽃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2019년 12월 발간된 ‘제주4.3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북촌리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448명(2021년 기준)이 희생된 곳이다. 그 슬픈 역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령비 옆 마늘 밭에는 노인네가 코발트빛 푸른바다를 배경 삼아 한가롭게 농삿일을 하고 있었다. 멀리 토벌대를 피해 배를 타고 나가 숨기도 했던 ‘다려도’가 아른거렸다. 그날 아침, 군인들을 태운 트럭이 북촌리를 경유해 함덕 대대본부로 가던 도중, 북촌국민학교 서쪽 고갯길 속칭 ‘마가리 동산’에서 무장대의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사망했다. 주민들이 사망한 군인의 시신을 수습해 함덕국민학교 대대본부로 싣고 갔다. 군인들은 주민들이 보초 경비의 책임을 물어, 시신을 운구해 간 주민 중 경찰 가족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8명을 함덕리 고두물로 끌고 가 구타 후 총살했다. 그리고 군인들이 북촌리 마을을 덮쳤다. 오전 11시 전후, 무장 군인들이 마을을 포위하고 집집마다 들이닥쳐 총부리를 겨누며 전부 학교운동장으로 내몰고는 온 마을을 불태웠다. 400여 채의 가옥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쇠막(외양간)에 있던 소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인 1300명의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어린 학생 등을 일으켜 세워 ‘빨갱이 가족’을 찾아내라고 들볶던 군인들은 이 일이 여의치 않자 주민 몇십 명씩 끌고 나가 학교 인근 밭에서 사살하기 시작했다.#강요배 화백의 ‘젖먹이’ 그림은 북촌 학살 비극의 상징 4·3사건으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고모를 한꺼번에 잃은 제주4·3희생자유족회 감사인 이상언(59·북촌리 4·3유적지 해설사)씨는 너븐숭이4.3기념관으로 안내하며 마치 그날의 비극이 눈앞에서 펼쳐지듯 설명했다. “강요배 화백이 그린 ‘젖먹이’ 작품은 북촌국민학교운동장에서 실제 있었던 상황이에요. 학교운동장에서도 무장대와 내통한 사람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협박했어요. 군인들이 기관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애기 업은 한 아주머니가 총에 맞아 죽어갔어요. 아주머니 등에 업혀 있던 애기가 쓰러진 엄마 품에서 빠져 나와서 젖을 물고 있는 비참하고 안타까운 그림인데, 정말 그날 엄마는 죽고, 아기는 살았어요.” 이어 그는 “그림 속에 묘사된 여자 아이는 현실 속에서는 네 살 된 한경림이란 남자 아이로 40대에 세상을 떠났다”며 “북촌에는 한씨의 누님 두 분이 살고 있지만, 이 그림을 보면 가족사가 생각나는 듯 한동안 그림을 내려 달라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4·3사건으로 제주의 아이들은 세상에 나와 빛을 보기도 전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도내 10세 미만의 아이들 818명이 4·3사건때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너븐숭이 애기무덤에는 4·3사건 당시의 아이들 3~8기의 봉분과 함께 4·3사건 이전에 병사한 아이들의 12기 봉분 등 총 20기가 있다. #너븐숭이 아기무덤엔 어린 넋들을 위로하는 바람개비, 동백꽃, 그리고 ‘맛동산’ 이씨는 이곳 너븐숭이에서 영화 ‘폭낭의 아이들’을 촬영한 사유진 감독이 2020년 12월 16일 제주4·3평화공원 내 각명비 174개 중에서 10살 미만의 어린이 희생자 약 818의 이름을 각각 천에 적고 그 이름 적힌 천(이하 ‘위패’)을 인근 ‘평화의 숲’ 폭낭(팽나무)에 열명(列名)하고 그 이름 불러주었던 사연도 전했다. 심지어 제작팀은 제주4·3평화공원에서 북촌 너븐숭이 애기무덤까지 818명의 어린이 희생자 위패를 모시고 5시간을 도보 순례해 북촌리 희생자 유족회 회장 고완순(84)에게 인계했다. 유족회장은 위패 담긴 함을 받아 소나무에 묶어 넋을 위로했고 할머니들이 와서 가마솥에 밥을 해서 제대로 먹지 못해 죽은 아이들을 위해 주먹밥을 동백꽃 모양으로 만들어 위로했다. 우연하게도 취재 현장에 간 날도 때마침, 너븐숭이 아기무덤 앞에선 4·3사건 74주년에 즈음해 추모 영상물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 때 희생된 아이를 재연하는 예닐곱살된 아이가 흰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동백꽃을 무덤에 바치고 묵념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너븐숭이의 애기무덤은 이렇다할 조경이나 장식도 없다. 그러나 다크투어를 하는 사람들은 이 곳에 올 때마다 아기무덤에 누군가는 동백꽃을 바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귀천’이란 시를 바치고, 또 누군가는 바람개비를 바치고 추념했다. 이날은 누군가가 ‘맛동산’ 과자들을 모든 무덤에 바치고 갔다. 초라할 지 모르지만 더없이 소중하고, 애달프다 못해 먹먹해지는 추모의 공간이었다. 오는 3일에도 ‘폭낭의 아이들’ 제작팀은 이곳에서 어린영혼들을 위한 추념식을 연다고 했다. 왜 하필 북촌 주민들은 밭일을 하다가 돌아올 때 쉬어가던 ‘너븐숭이’(넓은 언덕)에 어린아이들을 묻었을까. 아마도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농작물을 심어도 자랄 수 없는, 쓸모 없는 땅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옴팡밭에는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비가 죽은 자들을 위로하듯 누워있다 너븐숭이 언덕 뒤엔 옴팡밭이 있다. ‘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이라는 뜻인 이곳도 ‘마치 무를 뽑아 널어 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100여명 희생됐다. 고완순 회장의 기억에 따르면 여자들은 하늘을 보고 죽고, 남자는 엎어져서 죽어 있었다. 한겨울이지만, 오후 4시쯤 해가 기울 때 햇빛에 비친 밭이 피가 땅 속으로 흐르다 대지 위로 흘러 나와 핏빛이었다는 것이다. 너븐숭이의 비극은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라는 소설로 세상에 알려졌다. 옴팡밭은 ‘순이삼촌’의 장면 장면을 돌 위에 비문처럼 새겨 놓았다. 마치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 하듯 누워있다. 북촌사람들은 4·3은 입밖에 낼 수 없는 금기어였다. 왜냐하면 북촌대학살이 있은 지 5년 후인 1954년 1월 23일 세칭 ‘아이고 사건’이 그 발단이 됐다. 이 날 전몰장병인 북촌 출신 김석태의 고별식을 끝내고 4·3 당시 허무하게 죽어간 주민들의 혼을 함께 달래려고 술 한 잔 올리고 ‘아이고’ 통곡한 것이 제주경찰서에 알려져 마을이장 등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당했다. 그 후 사람들은 한날한시 지내는 위령제도 마음대로 지내지 못하고 침묵 속에 살았다. ‘…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던 것도 싸락눈이었다. 그 시간이면 이집 저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오르곤 했다.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그러나 이 ‘순이삼촌’(1978년) 소설이 나온 뒤 사람들이 용기를 내 그 아픈 사연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너븐숭이 4·3기념관에 새겨진 희생된 443명의 명단이 그것이다. 거기엔 네글자 이름도 있다. 아버지 이름 뒤에다 자식 子가 붙어 있었다. 홍영삼자, 고두필자, 김상순자…. 그들은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이름없이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이었다.
  • 4.3버스가 5년 만에 다시 달린다

    4.3버스가 5년 만에 다시 달린다

    제주 4·3의 아픔을 싣고 ‘43버스’가 5년만에 다시 달린다. 제주특별자치도는 4월 1일부터 ‘제주터미널~제주 4·3평화공원~절물’ 구간을 운행하는 버스의 노선번호를 당초 343, 344번에서 43-1, 43-2번으로 변경 운행한다고 30일 밝혔다. 지난 2017년 8월 16일 대중교통 체계가 개편되면서 43번 버스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 노선번호 체계가 3자리 숫자표기로 변경됨에 따라 343번으로 바뀐 것이다. ‘4·3’을 상징하던 43이라는 번호는 사라지고, 현재 343번과 추가 신설된 344번 2개 노선이 4·3평화공원을 경유하고 있다. 이 ‘343, 344’번호로는 ‘제주4·3’을 유추해내기는 어려워 ‘4·3’을 의미하는 상징 하나를 잃고 살았다. 도는 새 노선번호가 생김에 따라 30~31일 버스 내에 변경된 번호를 부착하고 시범 운행하고 있다. 버스 번호 변경으로 인한 노선과 시간표는 기존과 동일하지만, 승객들의 혼선을 막기 위해 변경된 버스번호(43번)를 버스정보시스템(BIS)에 반영·홍보하고 있다. 43-1, 43-2 버스는 하루에 6대, 각 14회씩(편도기준) 운행되며, 배차 간격은 각 55~110분, 55분~100분이다. 43-1 버스는 제주터미널~공항~제주시청~대림아파트~봉개동~제주 4·3평화공원~절물구간을 운행하며 43-2번 버스는 제주터미널~공항~용담사거리~동문로타리~대림아파트~봉개동~제주 4·3평화공원~절물구간을 달린다. 특히 도는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을 맞아 오는 4월 3일 당일에 한해 버스 2대를 추가 운행(총 8대)해 제주 4·3평화공원을 찾는 도민과 추모객에게 대중교통 이용 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다. 김재철 제주도 교통항공국장은 “4·3은 모든 제주사람들의 아픔이고 역사”라며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는 과거라는 말이 있듯이 제주도민의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는 버스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4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제28차 회의 심의 결과, 3272명(희생자 38명, 유족 3234명)이 4·3희생자 및 유족으로 추가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 2002년부터 결정된 제주4·3사건 희생자 및 유족은 총 9만 8917명(희생자 1만 4577, 유족 8만 4340)으로 늘었다. 도는 이번에 결정된 희생자에 대해서는 추념식 전에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 위패를 설치하고, 행방불명자 희생자인 경우는 빠른 시일 내에 표석을 별도로 설치할 예정이다.
  • 백발노인의 슬픔을 대신해 읊다… 4·3사건 재심서 73명 무죄

    백발노인의 슬픔을 대신해 읊다… 4·3사건 재심서 73명 무죄

    “다시 봄이다. 되돌릴 수 없음을 알기에 꽃피는 봄에도 ‘해마다 피는 꽃은 똑같은 그 꽃이건만, 해마다 꽃 구경하는 사람은 그 사람 아니어라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고 했다. 그럼에도 ‘살암시민 살아진다.(살고 있으면 살 수 있다)’는 말처럼 삶이 아무리 험해도 살아있는 한 살기 마련이다. 그만큼 삶이 소중함에도 피고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희생됐고, 목숨마저 빼앗겼다. 피고인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서러워할 봄이라도 있지만’…” 제주지방법원 4·3재심 전담 재판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29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4·3특별법) 전면 개정 이후 처음 열린 재심 공판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군사재판 수형인 40명과 일반재판 수형인 33명 등 총73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장 부장판사는 무죄판결 뒤 이렇게 읊었다. 장 부장판사는 유희이의 대비백두옹(백발 노인의 슬픔을 대신해 읊다)이란 시의 한 구절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을 인용하며 4·3의 아픔을 어루만진 것이다. 74년 만에 명예를 회복하는 순간, 유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이날 재판부는 제주출신 현기영 작가의 4·3의 비극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 한 구절도 인용했다. 재판부는 “‘그해 고구마농사는 풍작이었다. 송장거름을 먹은 고구마는 목침 덩어리만큼 큼직큼직했다’는 짧은 구절로 그날의 비극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다”고 했다. 4·3희생자 고(故) 허봉애씨의 딸 허귀인씨는 “오늘 아버지의 죄명이 ‘내란죄’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재판도 없이 목포로 끌려갔고, 이후 2차례 편지가 온 이후 연락이 끊겼다. 무죄라고 하니 정말 눈물이 난다. 모든 한이 풀리는 것 같다”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이날 제주지법은 4·3 관련 재심에 대한 도민사회의 관심이 매우 높다고 판단, 이날 법정 내부 촬영을 언론에 모두 허용했다. 재판에서 구형에 나선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는 “4·3 사건으로 약 3만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제주에서 벌어졌다”며 “부모와 형제, 자매, 자식을 잃은 유족들은 통한의 세월을 보냈다. 피고인들은 죄가 없어도 군경에 연행돼 처벌받았다.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내란죄,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오늘날 재판에 서게 됐다”며 “공소사실은 범죄 증명이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한편 제주4·3특별법 전면 개정으로 1948년에서 1949년 사이 고등군법회의 명령서에 기재된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피해자 당사자가 아니라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 4·3 다랑쉬굴 유해 11구는 왜 바다에 뿌려졌나… 진상규명·성역화 필요

    4·3 다랑쉬굴 유해 11구는 왜 바다에 뿌려졌나… 진상규명·성역화 필요

    “이렇게 허망하게 섬을 떠나고자 40년 세월 참아온 건 아닌데 이렇게 억울하게 한라산을 등지자고 칠흑 어둠에서 두눈 부라리고 기다려 온 건 아닌데 허나 서러워 마라, 내 아주 떠나는 건 아니니 그 좋은 날에 억새꽃 따라, 그대들 곁으로 다시 오리니 서러워 마라, 서러워 마라.” 독립영화 ‘다랑쉬굴의 슬픈노래’에서 마지막 유해를 뿌리러 바다로 떠나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제주 4·3의 참혹함과 학살의 실체적 모습을 응축하고 있는 다랑쉬굴이 발견되고 그 유해가 공개된 지 올해 30주년을 맞아 지난 26일 제주4·3 어린이체험관 평화교육강당에서 “다랑쉬굴 발굴 30년, 성찰과 과제”를 주제로 특별세미나가 열렸다.  구좌읍 세화리 남서쪽 6㎞지점으로 해발 170m에 위치한 다랑쉬굴에서 지난 1992년, 유해 11구가 발굴됐다. 4.3 당시 진압작전을 피해 굴속으로 피신했다가 참화를 당한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피란민들이었다. 아이 1명과 여성 3명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유해는 정식·정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 45일 만에 화장돼 바다에 뿌려져 진상규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랑쉬굴의 발굴은 그동안 말로만 듣던 4·3학살 피해의 쇠망치 같은 것이었다. 1992년 4월 2일 제주4·3연구소에서는 제주경찰서 정보과에 다랑쉬굴 발견 사실을 통보했다. 경찰, 행정기관, 언론사에서 이날 현장 검증했다. 그러나 현장 검증 후 제주도지방경찰청은 죽음의 원인을 집단자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 발표했다. 경찰은 또한 이들 희생자들을 세화리 습격사건 무장대로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없었다. 발굴 유해 중에 9세의 어린아이와 4·3 당시 굴 밖에서 희생되어 이미 수습되었던 시신 중에 7,9세의 어린이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4·3학살의 광풍을 피해 피란했던 주민들임이 명백했다.도민들과 국회의원, 도의원들도 다랑쉬굴 4·3희생자 유해를 ‘도민장’으로 하고 합동묘역을 조성해 한과 상처를 치유하여 화합의 징표로 보존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4·3연구소를 비롯한 도내 각계의 염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바로 관계기관이 개입이 본격화된 것이다. 또한 4·3 당시 무장대에게 피해를 당한 유족들도 동원돼 “폭도들의 무덤을 만들 수가 있느냐, 만약 무덤을 만든다면 그냥 둘 줄 아는냐”라는 색깔론이 불거졌다. 4·3의 트라우마를 일깨워 공포의 공작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5월 4일 결국, 도민장으로 가져갈 것을 목표로 했던 유해의 처리는 졸속으로 처리되어 한줌의 재로 김녕리 앞바다에 뿌려지고 말았다. 박경훈 제주4·3평화재단 전시자문위원장은 “다랑쉬굴 유해 발굴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지만, 발굴과 유해의 처리의 전 과정이 또 다른 살아 있는 4·3이었다”며 “공안정국 하에서 은폐와 왜곡으로 재빨리 이 사안을 숨기려했던 당시 당국의 조처는 4·3이 끝난 지 4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레드아일랜드의 시각으로 제주사회를 바라봤던 지배세력의 시각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며, 그들의 공작으로 40여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일깨워까지 이용하고자 했던 제주사회 단면을 드러낸 또 다른 사건이었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다랑쉬 입구를 봉쇄한 지 30년, 이 사건은 마치 그 현장처럼 그 당시의 진실여부도 드러나지 못한 채 봉인돼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양정심 연구실장도 “당시에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발굴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만 발굴하느라 뼈 잔해와 놋그릇, 물허벅, 솥 같은 유물 같은 게 아직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4·3평화공원에는 다랑쉬굴 특별전시관이 조성되어 있지만, 정작 실제 현장인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은 여전히 토지 소유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30년간 아무런 공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박 위원장은 “4·3 당시 다랑쉬 피란민 상태 및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뿐만 아니라, 다랑쉬굴 유해발굴 및 처리과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며 “제주특별자치도 자체 예산, 또는 국비를 활용해 현 소유주인 이화재단을 설득하여 토지를 매입하고 4·3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 중의 하나인 다크투어리즘의 현장으로 차후 주변 정비 및 성역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아! 4·3길이여, 슬픈 역사를 기억하라

    아! 4·3길이여, 슬픈 역사를 기억하라

    어두운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 그럴려면 그 역사 현장을 잘 보존해야 한다. 더이상 슬픈 역사는 반복되선 안 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4·3의 현장을 역사·교육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올해 4·3길 2곳을 추가 조성한다고 17일 밝혔다. 도는 이를 위해 오는 25일까지 지역주민 주도로 사업을 추진할 마을을 공모하고 4·3유적지보존위원회 심의를 거쳐 새달초에 사업대상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4·3유적지와 주변 마을자원을 연계한 권역별·주제별 코스 개발이 가능한 지역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해설사 운영·마을 시설을 이용한 4·3길 센터 운영 가능 여부도 판단하게 된다. 최종 대상지가 선정되면 연령·신체능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무장애길 조성 같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검토한 뒤 도로, 돌담, 코스이정표 등 설치 공사를 8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도는 늦어도 9월쯤 새로운 4·3길이 개통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도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동광마을, 의귀마을, 북촌마을, 금악마을, 가시마을, 오라마을 등 6개 마을에 총 3억원을 투입해 4·3길을 조성, 유적지 해설사를 현장에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 김승배 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단순 관광지 방문보다는 역사 현장을 찾아 교훈을 삼는 다크투어가 인기를 끌고 있어 4·3의 역사를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미래세대들에게 가슴아픈 역사현장의 교육을 통해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도는 제주4.3희생자 보상금 신청을 앞두고 제적등본 및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교부 청구권자를 확대했다. 이에 따라 유족으로 결정된 ‘방계혈족’(희생자의 형제자매, 형제자매의 직계비속, 직계존속의 형재자매와 형제자매의 직계비속)도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됐다.
  • 다른 이름 쓰고 어릴 때 이름 쓰고… 4·3 추가 희생자 194명 확인

    다른 이름 쓰고 어릴 때 이름 쓰고… 4·3 추가 희생자 194명 확인

    제주도는 수형인 명부와 4·3희생자 자료를 심층 분석한 결과 추가 희생자 194명을 확인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4·3 군사재판 수형인 중 희생자로 결정된 대상을 당초 1931명에서 194명이 늘어난 2125명으로 추가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당초 군사재판 수형인 중 4·3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은 1931명으로 알려졌다. 수형인명부와 4·3희생자 자료를 서로 비교해 이름이나 등록기준지(본적) 등의 일치여부를 단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추가로 밝혀낸 194명은 4·3희생자 결정 당시 내용을 일일이 분석하여 인적사항 등 자료를 분석하고, 희생자 신고 당시 진술, 이명(異名) 또는 아명(兒名·어릴때 이름), 당시 본적 등을 심층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추가 확인했다. 도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하 합동수행단)에서 신속히 직권재심 청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행정조사를 추진해 왔다. 도는 군사재판 수형인 중 추가로 확인된 4·3희생자에 대해 합동수행단과 협업을 통해 직권재심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까지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재심청구는 477명으로 앞으로 2053명이 남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재심청구 시 중요한 수형인 특정을 행정조사를 통해 지원하고, 합동수행단에 제공해 직권재심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수형인에 대한 현황 분석 후 ‘도-합동수행단-유족회’ 등과 협업으로 현장 방문을 통한 진술 및 면담 등을 통해 수형인 특정 작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김승배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직권재심 청구의 핵심인 수형인 특정을 위해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증언채록은 물론 자료조사도 확대해 나가겠다”며 “4·3 군사재판 수형인과 유족들의 조속한 명예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합동수행단은 현재 2차에 걸쳐 40명에 대해 재심청구를 진행하여 재심개시가 결정됐으며, 제주지방법원에 4·3 재심사건 처리를 위한 전담재판부가 처음으로 신설된 만큼 신속한 재심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제주 4·3희생자 온라인 추모관 구축

    제주 4·3희생자 온라인 추모관 구축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 4·3희생자 추념식 현장을 방문하지 못하는 국민과 도민을 위한 ‘메타버스 온라인 추모관 시스템’을 3월 말까지 구축할 예정이다. 도는 지난 25일 제주도청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 준비상황 중간 보고회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참석인원 제한이 예상되는 만큼 온라인을 통한 추모 동참을 유도하기로 했다. 메타버스 온라인 추모관이 구축되면 온라인에서 개인별 가상인물이 헌화와 방명록 작성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가 주관하는 이번 추념식은 오는 4월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추념광장에서 열린다. 정부 및 4·3유족회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규모·참석대상 등을 확정할 예정이다. 또한 올해 6월부터 보상금 신청·접수가 예정됨에 따라 국가 차원의 실질적 보상 및 4·3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 등의 의미를 담아 추념식을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 구만섭 도지사 권한대행은 “올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 본격 시행된 시점에서 제74주년 4·3추념식이 열리지만,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 따른 확진자 급증으로 자칫 추념식 준비 인력이 확진될 우려가 크다”며 “각 기관에서는 확진자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을 미리 수립하는 등 방역과 안전에 각별히 신경써 달라”고 당부했다.
  • 제주 4·3군법회의 수형인 첫 직권재심 청구

    # A(여·농업)씨는 4·3사건 이후 피난생활을 하다가 18세 때 군인에게 연행돼 1949년 7월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위반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전주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6·25 이후 행방불명됐다. A씨는 4·3희생자 B씨와 1975년 5월 사후 결혼했다. # C(농업)씨도 21세 때 경찰에 연행돼 1949년 7월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위반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6·25 이후 행방불명됐다. 제주 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은 10일 이같이 관련 자료가 있는 4·3 수형인 희생자 20명에 대해 1차로 직권재심을 법원에 청구했다고 밝혔다.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인 군법회의의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희생자는 2530명이다. 그동안 4·3사건 생존 수형인 및 유족들의 재심청구는 있었으나 4·3사건 군법회의 수형인에 대해 검사가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1948년부터 49년까지 2차례 진행된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과 내란죄 등의 죄목으로 최대 15년형을 선고받고 다른 지역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6·25전쟁 이후로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이다. 한편 도는 이날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74년 만에 신원이 확인된 4·3 희생자 5명에 대한 보고회를 열고 유가족에게 인계했다.
  • 17살때 집에서 이유없이 잡혀갔다...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 첫 직권재심 청구

    17살때 집에서 이유없이 잡혀갔다...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 첫 직권재심 청구

    # A(남·17)는 중학교 재학 중 자택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1948년 12월 군법회의에 의해 내란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인천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6·25 이후 행방불명됐다. # B(여·18)는 농업에 종사하던 중 4·3사건 이후 피난생활을 하다가 군인에 연행되어 1949년 7월 군법회의에 의해 국방경비법위반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전주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6·25 이후 행방불명됐다. B는 4·3희생자와 1975년 5월 사후 결혼했다. # C(남·21)는 농업에 종사하던 중 경찰에 연행되어 1949년 7월 군법회의에 의해 국방경비법위반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6·5 이후 행방불명됐다. C의 형 E(24)도 1949년 7월 군법회의에 의해 국방경비법위반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E의 딸이 재심을 청구하여 2021년 3월 제주지방법원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은 바 있고, 이번에 합동수행단에서 직권재심을 청구하여 C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 제주 4·3 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은 10일 4·3 수형인 희생자에 대한 직권재심을 법원에 청구했다. 합동수행단은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인 군법회의의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희생자 2530명 가운데 인적사항이 특정되고 관련 자료가 있는 20명의 수형인에 대해 1차적으로 청구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4·3사건 생존수형인 및 유족들의 재심청구는 있었으나, 4·3사건 군법회의 수형인에 대해 검사가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1차 직권재심이 청구된 20명은 1948년부터 49년까지 2차례 진행된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과 내란죄 등의 죄목으로 최대 15년형을 선고받고 다른 지역 형무소에서복역하다 6·25 전쟁 이후로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이다. 제주4·3위원회로부터 권고받은 직권재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2021년 11월 24일 출범한 합동수행단은 “최대한 신속하게 직권재심 청구 업무를 수행해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4·3희생자 발굴유해 5구가 74년 만에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도는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4·3희생자 5명에 대한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를 열고 신원확인유해 5구를 유가족에게 인계했다. 유족대표로 참여한 고(故) 김석삼 희생자의 자녀인 김영숙 씨는“가족과 헤어진 아버지는 7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오늘, 딸과 그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신 아버지가 너무나도 반갑고 이곳에 편히 모시게 되어 작게나마 자녀의 도리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 101세 누나의 채혈로… 4·3희생자 유해 신원 확인

    진화된 유전자 검사법으로 제주4·3희생자 유해 5구의 신원이 74년 만에 확인됐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서울대 법의학연구실에서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NGS)을 적용해 제주국제공항에서 발굴한 4·3희생자 유해 5구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이로써 지난해까지 발굴된 411구의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38명으로 늘었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전부 20~30대 남성으로 1948~1949년 희생됐다. 이 중 3명은 군법회의에 회부돼 죽임을 당한 희생자로 화북과 한림, 서귀포 거주자로 확인됐다. 나머지 2명은 행방불명된 희생자로 조천과 대정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법회의 희생자 중 1명은 가족인 101세의 누나가 채혈을 하면서 극적으로 신원 확인이 이뤄졌다. 특히 이번 신원 확인은 친부모·자식관계만 판별 가능한 성염색체검사(STR)가 아니라 NGS를 적용, 성과를 거둬 주목된다. NGS는 유전자 DNA의 일정 구간을 증폭해서 분석하는 방식으로 방계 6촌까지 판별이 가능하다. 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해 3월 표선면 가시리에서 발굴된 유해 3구를 시작으로 서귀포시 강정동, 상예동 등 도내 7곳의 암매장 추정지를 발굴 조사해 총 6구의 유해를 수습, 총 411구의 4·3희생자 유해를 찾았다.
  • 101세 누나의 채혈로…74년 만에 4·3희생자 유해 신원 확인

    101세 누나의 채혈로…74년 만에 4·3희생자 유해 신원 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 5구의 신원이 74년 만에 확인됐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실에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을 적용해 제주국제공항에서 발굴한 4·3희생자 유해 5구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신원 확인은 지금까지 유전자 검사 방식에서 좀더 진화한 검사법으로 성과를 거둬 주목을 끈다. 친부모·자식관계만 판별 가능한 성염색체 검사(STR)가 아니라 신원을 특정할 수 없었던 유해에 대해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을 적용했다. NGS는 유전자 DNA의 일정 구간을 증폭해서 분석하는 방식인데 방계 6촌까지 판별이 가능하다. 이로써 2021년까지 제주국제공항 등지에서 발굴된 411구의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38명으로 늘었다. 이번에 새롭게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전부 20·30대 남성이었다. 이중 3명은 군법회의에 회부돼 죽임을 당한 희생자로 화북과 한림, 서귀포 거주자로 확인됐다. 나머지 2명은 행방불명된 희생자로 조천과 대정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군법회의 희생자 중 1명은 가족인 101세의 누나가 채혈을 하면서 극적으로 신원 확인이 이뤄졌다. 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2021년 유전자감식과 더불어 희생자 유해발굴을 진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3월 표선면 가시리에서 발굴된 유해 3구를 시작으로 서귀포시 강정동, 상예동 등 도내 7곳의 암매장 추정지를 발굴 조사해 총 6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총 411구의 4·3희생자 유해가 발굴됐다. 올해는 도내 유전자 감식 뿐만 아니라 도외 행방불명인 신원확인을 위한 유가족 채혈도 새롭게 시행할 예정이다.
  • 올해 제주 4·3 추념식 슬로건은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 선정

    오는 4월 3일 치러지는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 슬로건으로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가 선정됐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7일부터 한 달 동안 진행된 공모를 통해 총 462건이 접수됐고 1차와 2차 심사를 거쳐 최우수 1건, 우수 2건, 장려 5건 등 8건을 뽑았다고 2일 밝혔다. 최우수작인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는 4.3으로 희생당한 제주도민들의 마지막 숨비소리가 역사에 남을 숨결이 된 점을 감안, 희생하신 분들의 뜻을 이어 받아 평화가 가득한 미래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수작은 ‘제주4·3! 희망을 수놓다! 평화로 통하다!’와 ‘4·3 다시 피는 붉은 봄, 다시 흐르는 푸른 역사’가 선정됐고, 장려에는 ‘제주4·3, 대한민국을 밝히는 또 하나의 빛’ 등 5건이 뽑혔다. 슬로건 공모결과는 도청 홈페이지에 게시되며 향후 홍보 아치, 선전탑, 현수막, 홍보영상, 홍보자료 등 추념식 각종 홍보물에 활용된다. 제주도 관계자는 “이번에 선정된 슬로건을 활용해 4·3추념식 홍보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고려해 방역대책을 강구하고 유족 중심의 추념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 서류·현장 점검… 제주 4·3 명예·피해회복 조사단 가동

    제주도는 24일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후속조치를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4·3 명예·피해회복 사실조사단을 본격 가동한다고 24일 밝혔다. 사실조사단은 ▲희생자·유족의 신청·접수 건에 대한 피해 여부 등 조사 ▲희생자 보상금 신청 관련 구비서류 확인 ▲민법상 상속권자 등 청구권자 적격 여부 및 보상금액 확인·조사 ▲4·3 관련 군사재판 수형인(2530명) 직권재심 청구서류 구비 ▲직권재심 청구 대상자 특정을 위한 현장·행정조사 등을 수행한다. 단장은 행정부지사가, 부단장은 특별자치행정국장이 맡으며 4·3지원과 3개 팀(14명), 사실조사요원 14명이 활동한다. 행정시는 부시장이 단장을, 부단장은 자치행정국장이 맡아 자치행정과 1개 팀(제주시 6명, 서귀포시 4명)과 읍면동 공무원 96명, 사실조사요원 107명이 참여한다. 또 사실조사단 민간협력조직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유족회 등 제주4·3 관련 민간단체 등으로 구성된다. 보상금 신청은 하반기부터 받을 예정으로, 4·3희생자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경우 민법상 상속권자들이 보상금 청구권자가 된다. 지급 첫해인 올해 정부예산 1810억원이 편성돼 1만 5000여명의 희생자 중 2000여명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승배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청구권자가 도 내외뿐만 아니라 일본 등 국외에도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 사람이라도 누락되지 않도록 보상금 신청·접수 관련 홍보 및 안내에 행정력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제주 4·3 희생자 명예·피해회복 사실조사단 가동

    제주 4·3 희생자 명예·피해회복 사실조사단 가동

    제주도가 4·3특별법 후속조치의 차질없는 추진을 위해 4·3 명예·피해회복 사실조사단을 본격 가동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에 따른 보상금 지급 등 후속 조치를 위한 제주도 차원의 기구가 운용된다고 24일 밝혔다. 특히 ▲희생자·유족의 신청·접수 건에 대한 피해여부 등 조사 ▲희생자 보상금 신청 관련 구비서류 확인 ▲민법 상 상속권자 등 청구권자 적격여부 및 보상금액 확인·조사 ▲4·3 관련 군사재판 수형인(2530명) 직권재심 청구서류 구비 ▲직권재심 청구 대상자 특정을 위한 현장·행정조사 등을 전담 수행한다. 도 사실조사단 단장은 행정부지사가 맡고, 부단장은 특별자치행정국장으로, 4·3지원과 3개팀(14명), 사실조사요원 14명이 전담 활동한다. 행정시는 부시장이 단장을 맡고, 부단장은 자치행정국장이 맡아 자치행정과 1개팀(제주시 6명, 서귀포시 4명)과 전 읍면동 공무원 96명, 사실조사요원 107명이 참여한다. 또 사실조사단 민간협력조직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유족회 등 제주4·3 관련 민간단체 등으로 구성되며 자료조사, 마을별 현장조사·면담 등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명예·피해회복을 위한 보상금 신청은 하반기부터 받을 예정으로, 4·3희생자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경우 현행 민법 상 상속권자들이 보상금 청구권자가 된다. 지급 첫 해인 올해 정부예산 1810억원이 편성됐는데 1만 5000여명의 희생자 중 약 2000여명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승배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청구권자가 도내·외뿐만 아니라 일본 등 국외에도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실조사단을 적극 가동해 한 사람이라도 누락되지 않도록 보상금 신청·접수 관련 홍보 및 안내에 행정력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4.3 희생자 보상금 올 하반기 2000여명이 받는다

    4.3 희생자 보상금 올 하반기 2000여명이 받는다

    제주4·3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 및 피해회복을 위한 보상금 지급이 시작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4·3희생자의 실질적 피해회복을 위한 개별보상을 추진, 올해 하반기부터 보상금 지급 신청을 받을 예정이라고 19일 밝혔다. 보상금 지급은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이뤄지며 지급 첫 해인 올해 정부예산으로 1810억원이 편성됐다. 이를 토대로 올해에는 1만 5000여명의 희생자 중 약 2000여명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보상금 지급은 지난해 12월9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뤄지게 됐다. 개정안은 공포 후 3개월이 지난 오는 4월부터 시행된다. 이후 후속 절차를 거쳐 이르면 6월부터 접수가 이뤄지며 실제 보상급은 하반기부터 지급되는 것. 보상금 신청은 생존희생자와 4·3희생자 심의·결정 순 등을 고려해 4·3위원회에서 순서를 결정, 그 후 내용을 공고할 계획이다. 보상금액은 사건 발생시기와 근접한 통계자료를 기초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등의 4.3 희생자에게는 1인당 9000만 원이 균등 지급된다. 후유장애인과 수형인은 노동력 상실 등을 고려해 9000만 원 이하의 범위에서 지급될 예정이다. 특히 군사재판 수형인 2530명의 조속한 명예회복을 위한 직권재심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과 협력, 직권재심 대상자 특정을 위한 행정조사도 지원한다. 이와 함께 총사업비 300억원에 달하는 4·3평화공원 활성화사업이 올해 11억원 기본 설계비가 책정됨에 따라 평화공원 조성 마무리에도 박차를 가한다. 유해발굴 및 유전자 감식도 8억 7000만원을 들여 지속 추진할 방침이다. 김승배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올해는 4·3희생자 보상금 지급, 직권재심 등 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피해회복사업이 본격 시작되는 매우 뜻깊고 중요한 시기”라며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되고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 19년만에 정부 차원 4·3사건 추가 진상조사 나선다

    19년만에 정부 차원 4·3사건 추가 진상조사 나선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에 따라 19년 만에 추가 진상조사가 이뤄지며 보상금은 하반기부터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4·3중앙위원회 추가진상조사분과위원회(위원장 주진오)는 지난 6일 4·3평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4·3추가 진상조사에 대한 기본계획안을 의결했다고 10일 밝혔다. 4·3사건 추가진상조사는 앞으로 3년간 시행되는데 ▲지역별 피해실태 ▲행방불명 피해실태 ▲4·3시기 미국·미군정의 역할 ▲무장대와 군·경 토벌대 활동 ▲재일제주인 피해실태 ▲연좌제 피해실태 조사 등 6대 주요 주제가 선정됐다. 특히 유족들은 연좌제 피해를 당할까봐 제주4·3 당시 부모, 배우자 등 가족의 희생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앞으로 내실있고 공정한 조사를 당부하며, 이미 고령인 4·3희생자 및 유족들에 대한 증언 조사, 정부·기관 소장 자료 발굴, 미국 현지 조사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4.3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등 희생자들의 보상금은 1인당 9000만원이며, 보상청구권은 현행 민법상 상속순위에 따라 부여하기로 했다. 유족으로 결정된 사실상의 배우자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제사봉행과 무덤 관리를 하면서 이미 유족으로 인정된 4촌 이내 방계혈족이 사망한 경우, 그 자녀(직계비속)에 대한 청구권도 인정된다. 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회 주진오 위원장은 “앞으로도 더욱 충실한 추가진상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위원회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것”을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 확정된 추가진상조사 계획은 이달 말로 예정되어 있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김부겸 국무총리)’에 회부돼 최종 의결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제주4·3평화재단은 관련 기관 기록 수집·사료 조사·증언 채록 등을 위해 재단 조사연구실을 중심으로 추가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전문 인력을 추가 확충할 예정이다.
  • 4.3희생자 보상금 1인당 9000만원 지급은 이렇게 시작됐다

    4.3희생자 보상금 1인당 9000만원 지급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해 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이하 4.3특별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4.3희생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이 시작된다. 제주도는 올해부터 오는 2026년까지 5년간 사망·행방불명 희생자 1인당 9000만원의 보상금을 균등 지급한다고 3일 밝혔다. 정부가 발표한 보상금 지급 인원은 1만 1000여명으로 총 보상액은 9600억원이다. 올해 4·3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위한 정부예산은 1810억 원이다. 1인당 9000만원 지급 산정 기준과 관련, 장윤식 4.3재단 총무팀장은 “과거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희생자 8000만원, 배우자 4000만원, 자녀 800만 원과 형제자매 400만 원을 지급하는 일명 8·4·8·4안과 비교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단순히 희생자한테 지급한 액수만 따진다면 적은 금액은 아니다”며 “유족회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일단 합의를 하고 향후 보완 입법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로 결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9000만원을, 후유장애인과 수형인인 경우 장애등급·구금일수 등을 고려해 보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인 경우 현 민법을 적용해 상속인의 보상청구가 가능하고, 무호적자인 경우는 그 유족으로 결정된 사람이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 유족 보상청구권 대상에서는 희생자의 제사를 지내거나 무덤을 관리하는 4촌의 직계비속(5촌)도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특히 현행 배.보상의 의미로 명시된 ‘위자료 등 특별한 지원’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보상금’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개정안의 제2조 정의에서는 “보상금이란 제주4.3사건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를 전보하기 위하여 지급되는 일시금을 말한다”고 명시됐다. 이와 관련 문성윤 4.3유족회 고문변호사는 지난달 4·3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공청회에서 ‘위자료 등’을 통칭해 사용한 ‘보상금’ 용어와 관련해 ‘배상금’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며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것은 배상 책임으로, 보상 용어로 전체 금액을 포함한 명칭으로 가는 것은 아쉽다. 배상 명칭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도는 올해 상반기 인사 시 도·행정시에 보상금 지급 등을 위한 전담팀을 각각 신설하고 읍면동에는 기간제 근로자 등을 배치해 보상금 신청 및 안내에도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4·3유족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보상지급 안내 영상을 제작해 읍면동, 4·3유족회 등 단체 등에 배포하고 각종 회의·행사때 유튜브 등 SNS, 버스정보시스템, 전광판 등에 다양한 홍보수단을 통해 안내에 철저를 기할 계획이다. 윤진남 특별자치행정국장은 “4·3희생자는 1만 5000여명, 국내에서 유례없는 다수에 대한 보상건이고 7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상이 이뤄지는 만큼 신청·접수 및 심의·결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도정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정부 4.3희생자 배보상금 1인당 9000여만원 제시

    정부 4.3희생자 배보상금 1인당 9000여만원 제시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액이 희생자 1인당 8960만원으로 제시됐다. 7일 제주4·3 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6일 오후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비공개회의를 열어 유족회 등을 대상으로 ‘과거사 배·보상 기준 제도화에 관한 연구용역’ 결과를 이같이 설명했다. 유족회 관계자는 “용역진이 등급별로 배·보상 금액을 차등 지급하는 방침을 철회하고 균등 지급 방식을 제안했다”며 사실상 균등 지급 방식이 결정됐다고 전했다. 용역진은 1954년 기준 통상임금의 화폐가치를 현시점 가치로 재산정해 국가보상 관련 법상에 준해 1인당 배·보상금을 6960만원으로 산정하고, 나머지 2000만원을 위자료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보상금은 내년 1차연도를 시작으로 3년에서 최대 5년까지 단계적으로 지급되는 방안이 나왔다. 다만 유족회는 과거사와 관련해 법원에서 판결한 배·보상금이 1인당 최대 1억3000만원인 것과 비교해 용역진의 결정한 배·보상금이 적은 것으로 보고 유족들을 대상으로 관련 의견을 물은 후 조만간 입장을 낼 예정이다. 4·3희생자 배·보상은 올해 2월 국회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법제화 됐다.4·3특별법 제16조(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등)에는 ‘국가는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에 대해 위자료 등의 특별한 지원을 강구하며 필요한 기준을 마련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2022년도 정부예산(안)에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1차년도 배·보상금 1810억원을 포함시켰다.
  • 제주4·3 희생자·유족 1011명 추가심사 요청

    제주4·3 희생자·유족 1011명 추가심사 요청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 실무위원회는 올해 ‘제7차 희생자 및 유족 신고자’에 대한 사실조사를 거쳐 1011명에 대해 제주4·3 중앙위원회에 심사를 요청했다고 30일 밝혔다. 실무위 요청자는 사망자 3명, 수형자 1명 등 희생자 4명과 직계존비속 등 유족 1007명이다. 제주4·3희생자 및 유족은 제주지사(권한대행)가 위원장으로 있는 실무위에서 신고를 받고 서류 심사 등으로 1차 심사를 거치게 된다. 이후 국무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제주4·3중앙위원회에서 1차 심사를 거친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희생자 및 유족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4·3 희생자와 유족 신고 접수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7차례 진행됐다. 그동안 확정된 희생자는 1만4312명, 유족은 6만789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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